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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 오징어 대풍 왜?

    태풍 ‘나비’가 지나간 동해안에 오징어가 대풍인 까닭은. 다름 아니라 태풍 ‘나비’가 표층수온을 낮추고 냉수대를 소멸시킨데다 영양염을 충분히 공급해 준 덕분이다. 21일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등에 따르면 지난 5∼8일 태풍 ‘나비’ 이후 울릉도를 비롯한 강원·경북연안 해역에 오징어 어군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지난 9,10일 양일간 강원 등 동해안 오징어 채낚기 어선 560척이 출어해 모두 1142t의 오징어를 잡아 평년보다 2배 이상의 어획고를 올렸다. 특히 울릉도는 20일까지 10일간 오징어 474t(위판금액 11억 3800만원)을 잡았다. 이는 예년 같은 기간에 오징어가 거의 잡히지 않았던 것에 비해 대풍이다. 울릉도에서는 최근 연일 200여척의 어선들이 출어, 만선으로 귀항하고 있다. 해수산연구소 관계자는 “다음달부터 12월까지 울릉도 이남의 경북연안에 걸쳐 오징어 어장이 폭넓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11,12월에는 구룡포, 감포 및 대마도 연안에서도 밀도높은 어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외국계 은행들 금리경쟁 점화

    외국계 은행들 금리경쟁 점화

    ‘고금리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상 가능성과 양도성예금증서(CD) 유통수익률 등 시장금리가 서서히 오르는 데 발맞춰 시중은행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본격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은 연 4.5% 이상의 고금리 특판예금을 잇따라 내놓으며 ‘고금리 전쟁’에 불을 지폈다. 국내 은행들은 외국계 은행의 선제 공격에 바짝 긴장하면서 예금금리 인상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고객들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은행들이 ‘예대마진’의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금리도 올리게 마련이어서 대출 고객의 부채 부담이 늘어난다. 현재 금융권 전체의 가계대출이 468조 7000억원에 이른 상황이어서 대출금리가 조금만 오르더라도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금리 인상은 중소기업 대출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외국계은행 공세에 국내은행 가세조짐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14일 은행권 최고 수준인 연 4.8%의 금리를 받을 수 있는 1년짜리 CD와 연 4.5%의 1년짜리 ‘프리스타일 예금’ 등 고금리 예금상품 3종류를 한꺼번에 출시했다.CD의 경우 CD상품에만 가입하면 연 4.6%의 금리를 주고, 오는 27일까지 판매되는 ‘부동산 리츠지수 연동예금’에 예금액의 절반 이상을 넣어 함께 가입할 경우 0.2%포인트의 금리가 더해진다. SC제일은행은 지난 12일 연 4.5%짜리 정기예금을 내놓고 연말까지 특별 판매에 들어갔다. 외국계 은행들이 고금리 경쟁에 돌입하자 국내 시중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수준이 연 3.4∼3.6%인 점을 감안하면 고객이 이탈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수신담당자는 “기업금융을 뚫지 못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이 특판예금을 앞세워 소매금융에 ‘올인’하고 있다.”면서 “국내 은행들이 본격 가세할 경우, 은행 수익성 악화 등 시장 교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올해 처음으로 지난 14일부터 23일까지 1억원 이상의 1년 만기 정기예금에 연 4.0%의 금리를 주는 특판에 들어갔다. 국민은행도 1000만원 이상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연 3.60%에서 3.65%로 올렸다. 우리은행은 현재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고 있는 여자농구단이 우승할 경우 고금리 특판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대출금리도 꿈틀 예금금리 인상 조짐과 함께 대출금리도 꿈틀대고 있다. 특히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심상치 않다. 주택금융공사는 오는 21일부터 서민들이 내 집 마련에 주로 활용하고 있는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 금리를 연 6.25%에서 연 6.50%로 0.25%포인트 올린다. 이번 금리인상으로 1억원을 20년 만기 모기지론으로 받을 때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원리금(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은 월 73만 928원에서 74만 5573원으로 월 부담이 1만 4645원 많아진다. 연간으로는 17만 5740원을 더 내야 한다. 모기지론의 금리 인상은 일반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에도 영향을 미쳐 대출 고객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의 3개월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기본금리는 지난 12일 현재 5.58%로,2주 전보다 0.08%포인트 높아졌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30일 5.10%였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9일부터 5.15%로 올렸다. 지난 8월 말 현재 금융권 가운데 은행의 총 가계대출 잔액은 296조 5652억원(주택담보대출은 184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88%인 약 261조원으로 시장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는 총 2조 6000억원의 추가 비용을 물어야 한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대출금리가 가계와 금융기관에 충격을 줄 정도로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상승 기류를 탄 것은 분명하다.”면서 “금리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적지 않은 가계가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식탁 위의 쾌락/하우드룬 메르클레 지음

    식탁 위의 쾌락/하우드룬 메르클레 지음

    ‘엠마가 들어서자 사람들은 온갖 꽃과 고급스런 식탁보의 기분 좋은 향기, 다양한 요리와 트뤼플 버섯 냄새가 섞인, 미풍으로 둘러싸이는 느낌을 받았다. 촛대 위의 촛불은 식기에 새겨진 은종 위에 길게 불꽃을 드리우고, 은은한 미광이 날카롭게 조각된 크리스털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엠마’는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이다. 그녀가 앉아 있는 식탁은 인간이 꿈꾸는 모든 게 갖추어져 있다. 맛있는 요리와 와인, 크리스털 유리잔, 촛불, 꽃, 향기가 나는 식탁보 등등.‘감각을 위한 축제’로서의 식사는 바로 이런 식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독일에서 호텔경영과 요리, 철학을 공부한 하우드룬 메르클레의 책 ‘식탁 위의 쾌락’(신혜원 옮김, 열대림 펴냄)은 이런 모든 것들, 미와 맛, 향유와 감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디세이아’가 쓰여졌던 기원전 700년 초기 그리스시대의 식사에서 시작해 고대 로마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와 19세기의 모습까지. 저자는 식탁을 둘러싼 다양하고 일상적이며, 동시에 특별한 모습들, 즉 손님 접대와 식탁문화에 대해, 음식과 와인 즐기기에 대해, 그리고 훌륭한 맛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각기 다른 시대마다 음식 섭취라는 행위가 어떻게 미학적인 일로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시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보여주는 만찬은 손님 접대의 절정을 보여준다. 손님의 발을 씻겨주고 새옷을 내주는 등 경건함과 공손함이 종교적 분위기마저 풍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향연 진행과정은 너무 완벽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축제의 절정은 식사시간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여흥, 즉 시를 짓거나 화가와 음악가들의 공연, 재담, 게임 등에서 완성됐다. 로마시대 권력층에게 식사는 곧 부와 권위의 과시였다. 이들은 호화주택에서 엄청난 파티를 열어 최고급 요리를 무제한적으로 제공했다. 평민들은 앉아서 음식을 먹었던 반면 부자들은 비스듬히 누워서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당시 포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수저와 나이프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고기를 먹기 좋게 자르는 하인들만이 사용했다.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엔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의 구분이 확실했다. 곡물을 껍질째 빻아 만든 무겁고 거무튀튀한 빵은 ‘나쁜 음식’으로 농민들이, 밀가루로 만든 눈처럼 하얀 ‘좋은 빵’은 귀족들이 먹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한 날짐승들, 꿩, 오리, 비둘기, 메추라기 등과 야생짐승 고기는 귀족들의 만찬에 쓰였다. 반면 돼지, 황소 등의 고기는 농부들에게 적합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계층의 서열이 위협받지 않도록 그에 맞춰 소비하는 ‘사치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사람들은 음식 그 자체를 넘어 식사도구와 식탁보, 식기 등 식탁을 둘러싼 것을 미학적으로 꾸미기 시작한다. 귀족들이 포크 사용에 매달린 것도 이때부터다. 전문 요리사와 요리책, 다양한 상차림 등 새로운 음식문화 양식이 이때 등장했다. 메뉴와 차림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식탁이 회의용 탁자처럼 변하는 등 현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이후 시민사회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또 진정한 미식이 무엇인지, 칭찬과 감사의 말을 표현하는 것이 식사를 얼마나 즐겁고 아름답게 만드는지 미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며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오늘 저녁 때는 가장 아끼는 식탁보를 꺼내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따뜻하고 아름다운 식탁을 꾸며 보는 게 어때요?’라고.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 (문헌,지도) 1. 삼국사기:(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 (열전) 이사부조에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기록이 있음. 2. 세종실록지리지: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과 무릉 두 개의 섬이 현(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는 기록이 있음. 3. 신증동국여지승람: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음 4. 팔도총도(동람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우리나라의 전도 -우산도(독도)가 울릉도의 안쪽에 그려져 있음(정상기의 동국지도에서 위치가 수정됨) 5. 장한상 울릉도사적기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이 있음.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 6. 문헌비고, 통문관지, 매천야록 등 # 독도의 역사1.512년:이사부가 신라영토에 귀속시킴(신라 지증왕 13년) 2.930년:고려에 귀속(고려 태조 13년)→백길과 태두가 토산물을 바침(고려사) 3.1401년:공도정책(조선 태종) 4.1407년:대마도주 종정무가 동해 무릉도(울릉도)에 마을을 옳겨 살게해 달라고 간청함에 조의를 거쳐 거절(태종실록) 5.1425년:우산도로 호칭(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삼봉도’,‘가산도’,‘가지도’ 등으로 호칭) 6.1693년: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있었으나 안용복의 활약에 의해 일본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문서를 보내옴으로써 일단락(숙종실록) 7.1881년:울릉도 개척령의 반포(고종 18년) 8.1883년:조선 태종 이후 실시해온 공도정책을 폐지하고 54명을 울릉도에 들여보냄. 9.1900년: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릉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게 함(대한제국 광무 4년) 10.1905년 2월:시마네현 고시로써 일본 영토로 불법 편입(러·일전쟁 때) 11.1906년: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독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 12.1914년:경상북도에 편입. 13.1946년:연합군 최고사령관이 항복문서의 시행을 위해 일본정부에 보낸 각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SCAPIN 제677호) 14.1953년:독도의용수비대가 창설되어 독도를 수호. 15.1982년:천연기념물로 지정(제336호) 16.1998년:‘신한일어업협정’의 체결(독도를 한일어업공동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수역에 포함) 17.2005년:민간인의 출입 허용 ●문제 독도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1)‘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복속시켰다. (2)‘고려사’에는 우산국 사람들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친 기록이 나온다. (3)‘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경상북도 울진현 소속으로 구분하고 있다. (4)일본 막부는 1699년에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하는 문서를 조선 조정에 보냈다. (5)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된 최초의 지도는 팔도총도(동람도)이다. ●풀이 및 정답 정답 3번. 울릉도와 독도는 하슬라주(신라) 또는 강원도(조선)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심태섭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은행 금리조정TF팀 띄웠다

    은행 금리조정TF팀 띄웠다

    ‘포스트 저금리(저금리 이후)’ 시대가 임박하면서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은행마다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시켜 극비리에 기존의 예금 및 대출 상품을 리모델링하고 있고, 경쟁 은행의 자금운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은행은 ‘금리 상승에 대비하라.’는 황영기 행장의 지시에 발맞춰 각 영업본부별 TFT에서 ‘금리정책’을 재조정하고 있다. 이 은행은 3개월 만기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와 연동한 변동금리로 대출해 주던 시스템을 변경, 앞으로는 고정금리 상품을 추가해 고객의 판단에 따라 변동금리, 고정금리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영업전략을 바꿀 계획이다. 조흥은행 고위 관계자는 “아직 예금금리를 올릴 때는 아니지만, 부서별 TFT에서 금리 상승기에 걸맞게 고객의 수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은행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변동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고객들이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출 리모델링’을 어느 은행에서 먼저 시도하느냐에 따라 하반기 ‘영업 전쟁’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깊어가는 ‘금리 딜레마’ 은행들의 행보가 빨라지는 것은 그만큼 자금운용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돈을 끌어들이는 수신 부서와 대출을 일으키는 여신 부서의 입장차가 커 조정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수신 쪽에서는 “금리가 높은 특판예금 등으로 고금리를 갈망했던 고객들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신 담당자들은 “수신금리는 지금 수준으로 낮게 고정시키고, 대출금리는 상승하는 시장금리에 연동하도록 설계해 예대마진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고민은 근본적으로 금리상승에 따른 고객과 은행의 ‘이익 충돌’에서 비롯된다. 은행에 돈을 맡기거나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고객들은 변동금리 상품에 가입해 오르는 금리 혜택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은행 입장에서는 수신 금리를 고정시켜 만기 때 이자 지급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한편 대출 고객은 금리가 고정된 상품을 선호하는 반면 은행은 대출 금리를 변동시켜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를 많이 받아내길 바란다. 일부 은행은 일단 고객의 ‘환심’을 사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연 4.30%의 고금리 특판예금을 내놓았고, 우리은행은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1년 안에 금리가 오르더라도 처음에 설정한 금리를 적용해 이자를 갚도록 하는 고정금리 대출상품을 이달말 출시할 예정이다. ●대출 고객, 금리 상승 비상 금리가 오르면 예금 고객보다는 대출 고객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은행의 개인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7.9%에 달해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 추가 이자부담을 고스란히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은 대출이자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유층은 이자부담 증가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경기회복 지연으로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지난 3월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453조 111억원으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은 4조 5000억원 가량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은행들이 우량고객과 비우량고객간 금리차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은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용도따른 금리차이 확대 추세 재테크 전문가들은 새로 대출을 받는 고객이라면 대출 기간이 길 경우엔 비록 금리가 높더라도 고정금리 대출을 받을 것을 권한다. 또 변동금리 대출을 받더라도 변동주기를 길게 가져가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현재 변동금리 대출 상품을 이용하고 있는 고객들이 미리 고정금리 대출로 갈아타는 것은 만류한다. 갈아탈 때는 대출 상환금액의 약 2%까지 중도해지 수수료를 물어야 하기 대문이다. 신한은행 한상언 재테크 팀장은 “장기적인 금리인상은 예상되지만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당장 대출 갈아타기를 하는 것보다 금리 변동주기를 바꾸면서 서서히 금리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1)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1)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정감록’엔 중국인 술사 두사총(杜師聰)이 썼다는 ‘두사총비결’(杜師聰秘訣)이 포함돼 있다. 외국인의 이름을 빌린 예언서란 점에서 이채를 띤다. 자세히 알고 보면, 때로 중국 술사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적이 없지 않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를 따라 중국의 술사들이 많이 왔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조정의 후대를 받았다. 위세를 부리다 못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조선왕조실록’에 그런 내용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다. 뒷날 한국 민중은 그런 몹쓸 중국 술사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민중들이 칭찬하는 중국 술사도 없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두사총이다. 이상하게도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에는 그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두사총은 민간설화와 함께 민중의 기억 속에 길이 간직되었다. 그가 저술했다는 ‘두사총비결’은 늦어도 19세기 말부터는 ‘정감록’의 일부가 되었다.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에 가면 묘라리(妙羅里)란 마을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처음 지은 이가 바로 두사총이었다고 기억한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온 두사총은 중국 군대를 따라 전국 각지를 누볐다. 한 번은 이곳을 지나게 됐다. 두사총은 이곳의 지세를 자세히 살핀 다음 ‘풍취라대’(風吹羅帶)라고 결론지었다. ●술사 두사총은 명나라군대의 일원 비단 허리띠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이란 이야기다. 비단 띠는 고관대작이나 두르는 귀한 물건이라, 장차 이 마을 사람들은 부귀를 누리게 된다는 풍수예언이었다. 그런 뜻을 새겨 두사총은 마을 이름을 ‘묘라’(妙羅 매우 고운 비단)라고 했다. 훗날 묘라리는 번영을 누렸고, 묘라, 후리, 두무동 등 3개 마을로 발전했다. 따지고 보면, 두사총은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군대의 일원이었다. 그에겐 조선의 지세를 자세히 염탐해 중국에 보고할 사명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조선에 어마어마한 명당이 있다면 그 맥을 끊어 땅 기운을 약화시킬 임무를 띠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두사총은 그런 일에 종사한 흔적이 없다. 그는 전국을 유람하다 좋은 자리가 나오면 스스럼없이 조선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조선에 명당이 있다면 그 복은 당연히 조선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이런 두사총의 마음은 한국 민중에게 전해졌고, 민중은 그를 자기들 편으로 믿게 됐다. 두사총의 행적에 관해 많은 설화가 남아 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에도 한 가지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생달리란 마을 입구에 ‘마총’(馬塚)이란 비석이 서 있고, 깊은 곡절이 있는 말 무덤이 있다. 경상도까지 살펴보게 된 두사총은 이곳에서 ‘연주패옥(連珠佩玉)’이라 불리는 대명당을 발견했다. 구슬을 꿰고 옥을 단다는 뜻의 이런 명당에 묘를 두면, 그 집안에 금관자·옥관자를 단 정승 판서 벼슬이 수없이 나온다고 한다. 이 천하제일의 명당을 두사총은 정탁(鄭琢·1526~1605)에게 전해줄 생각이었다. 정탁은 지조 높은 선비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곽재우(郭再祐) 및 김덕령(金德齡)과 같은 명장을 발탁해 나라를 구하려고 애쓴 문신이었다. 정탁은 자기 한 몸의 안락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두사총은 정탁이야말로 장차 이런 명당의 주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몰래 정탁의 하인에게 그 명당 터를 일러줬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정탁이 세상을 떴다. 정탁의 아들은 아버지가 묻힐 명당을 찾아 하인과 함께 생달리까지 찾아왔다. 그런데 그들 일행이 생달리 동구 밖에 도착했을 때 불행히도 그 하인은 말 뒷발에 차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들은 몹시 억울하고 분심이 치밀어 올라 그 자리에서 말을 칼로 베어 죽였다. 생달리의 마총에 관한 전설에서 거듭 확인되듯 중국 술사 두사총은 ‘우리 편’으로 기억되었다. 전설 속의 그는 정탁과 같은 충신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조선 최고의 명당을 조선 최고의 신하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이었는지 누구도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 있다. 민중은 중국인 술사 두사총을 의리 있고 믿을 만한 지관으로 손꼽았다는 점이다. 두사총은 국적을 떠나 도선 및 무학대사 등과 더불어 한국 민중이 가장 존경하는 풍수의 대가였다. 사실 임진왜란 때는 다수의 중국인 술사들이 전국을 훑고 다녔다. 명나라 군대가 가는 곳마다 그들이 보였고 그 기세도 높았다. 조선 사람들은 중국 술사들에 대해 깊은 혐의를 두고 있었다. 그들 술사는 아무래도 중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인 술사들에 대한 불신이 깊어가는 가운데 민중은 그 반대편에 선 인물을 찾고 있었다. 민중이 보기에 진정 훌륭한 지관이라면 조선의 길지를 조선인들에게 돌려줘야 마땅했다. 위에서 살핀 두사총과 정탁에 관한 설화는 이런 민중의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호종단이란 나쁜 중국인 술사 두사총과는 영 딴판인 중국인 술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악질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이가 호종단(胡宗旦)이다. 그는 멀리 중국 송나라 때 인물로 제주도에 파견돼 명당기운을 해칠 사명을 띠었다 한다. 당시 세상엔 한 가지 소문이 횡행했다. 제주도엔 13개의 명당이 있어 천하제일의 인재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주도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중국 황제는 무척 당황했다. 황제는 압승지술(壓勝之術 명당기운을 억누르는 기술)의 대가 호종단을 제주도로 보내 13혈(穴)을 찾아 침질을 하게 했다. 비밀리에 호종단은 북제주군 표선면 의귀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서귀읍 서홍리로 옮겨 혈을 죽이려 했다. 이렇게 13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기(地氣)를 억눌렀다. 제주도 동부지방에는 샘이 별로 없고 서쪽에는 샘물이 많은 편인데, 그것은 호종단의 소행과 관련이 있다 한다. 더러 호종단의 뜻대로 된 곳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개는 천지신명의 방해로 호종단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둘러 일을 끝낸 호종단은 중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가 탄 배가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앞바다의 한 섬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 마리 날쌘 매가 배 위로 날아왔고 그러자 사나운 폭풍이 일어나 배를 물속에 가라앉혔다. 호종단은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았다. 제주도 사람들의 해석이 재미있다. 호종단의 횡포에 분노한 한라산신이 매로 변해 복수했다는 것이다. 호종단의 귀로를 차단했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고산리 앞바다의 그 섬을 차귀섬(遮歸島)이라 부른다. 호종단의 활동과 죽음에 관한 설화는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 역사상 제주의 풍수지리를 염탐할 목적으로 외부에서 술사들을 파견했을 법은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제주도의 어느 지역에선 샘물이 메마르고 인재의 배출이 멎었을 리는 없다. 도리어 사태는 그와 반대로 진행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정 지역에서 샘과 인재가 메마르자 그것을 호종단과 같은 악질적인 술사들의 행위 탓으로 돌렸다고 생각된다. 때로 민중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의 근본적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호종단은 민중이 공동의 기억 속에 불러들인 가공인물일 수도 있다. 그 점은 민중의 희망을 대변하는 두사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극히 선한 것과 극히 악한 것은 역사적 실체가 없는 기억의 창조물일 가능성이 많다. ●망각된 중국 술사 섭정국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당시 국왕 선조는 명나라에 술사의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다.“특별히 방술에 정통한 사람을 보내 주시어 지리를 명백히 살피게 하여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실록, 선조 26년8월8일 기축) 조선 측은 왜란이 터지자 수도 이전을 비롯해 궁궐과 능묘의 이전을 검토 중이었다. 국내엔 이처럼 큰일을 감당할 마땅한 전문 인력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중국 측에 도움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명나라 군대를 따라 조선에 들어온 술사들이 여러 명이었다. 김상(金上), 풍중영(馮仲纓), 왕종성(王宗盛), 양문성(楊文成), 이문통(李文通), 유원외(劉員外 이름은 미상)가 이를테면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그들 가운데 풍중영과 왕종성은 수도 한양의 풍수를 논하기도 했다.“건국된 지 2백년 만에 재액(災厄)이 있겠으나 그 뒤로는 무사하다.”(선조 26년8월10일 신묘)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은 1592년 임진년에만 한 차례 난리를 겪을 뿐 운수가 무궁하다는 일종의 덕담이었다. 선조는 그 말에 무척 감격해했다. 중국의 여러 술사들 가운데서 가장 각광을 받은 이는 섭정국(葉靖國)이었다. 그는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와 가까워 왕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풍수에 관한 일이라면 모두 관여했다. 선조비(宣祖妃)의 능을 정하는 문제에도 깊이 간여했다. 외국인이 조선 왕비의 능묘를 정하는 일에 뛰어들자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설사 섭정국 같은 이가 풍수에 능해 길지를 얻는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격국(格局)과는 다르다. 그는 심지어 길가의 낮은 지역과 집 뒤의 조그마한 동산을 가리키며 가장 좋은 곳이라 하니, 무슨 증거로 그 말을 믿겠는가?”(선조33년7월14일 을묘) 본래 풍수지리에 관한 이론은 고대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한·중(韓·中) 두 나라의 풍수 보는 법은 상당히 달랐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풍수지리설이 등장하기도 했고, 지역마다 유행하는 이론도 달라 서로 일정할 수가 없었다. 당시 한국에는 김여견(金汝堅), 김덕원(金德元), 송건(宋健) 및 이의신(李懿信), 박상의 등이 술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조선인 술사들의 능력을 불신했다. 결과적으로 섭정국의 활동영역은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었다. 서울에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는 것까지도 그의 견해를 참고할 정도였다(선조32년4월29일 무인).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 섭정국은 남대문에 벽보를 붙여 명나라의 도망병들을 불러 모아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조선 측에 물자 공급을 독촉하면서 관리를 구타하고, 도망병들을 거느리고 못할 짓이 없었다 한다. 선조는 풍수설(風水說)에 현혹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은 섭정국의 터무니없고 괴이한 주장을 맹신해 왕비를 장사지내는 일정을 몇 달씩이나 지연할 정도였다. 그러나 섭정국은 거만을 피우며 도리어 조선왕조의 관리와 백성들을 마음대로 때리고 짓밟는 등 만행을 자행했다. 얼마 후 섭정국은 명나라로 송환되었으며 한국 민중은 그를 깡그리 잊었다. 민중은 사기꾼 같은 섭정국이란 존재를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두사총비결’에 담긴 뜻 두사총은 조선의 중앙 정치무대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민중은 그를 무척 친근하게 여겼으므로, 예언서의 저자로 둔갑시켰다. 섭정국의 경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크게 보아 ‘두사총비결’의 요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어떤 곳이 길지며, 어느 곳이 흉한 땅인가를 밝혀 놓은 것이다. 이런 논의는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공통되는 점이 대부분이다. 물론 ‘두사총’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주장도 전혀 없지 않다. 길지에 관한 ‘두사총’의 견해를 살펴보면 우선 “태백산과 소백산은 백두산에서 갈려 내려와서 산맥이 나뉘었는데 본래부터 왕성한 기상이 있어 화기(和氣)가 넘쳐흐른다.”고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영천의 백운산, 동주, 용해를 먹을 것이 풍족해 대를 이어 길이 보존할 땅으로 보았다.‘정감록’은 어느 것이나 태백산과 소백산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두사총’ 역시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좀 더 부연하면 ‘정감록’은 백두산에서 시작돼 지리산까지 뻗어나간 백두대간의 주요 명당을 무척 중시한다.‘두사총’도 그런 입장이다.“화산, 가야산, 지리산, 두류산과 삼풍의 네 평야는 곧 어진 정승이나 좋은 장수가 계속해서 나올 곳으로서 땅은 기름지고 풍속은 순후해서 오래 갈수록 더 좋으나 누가 주인이 되겠는가?” 그밖에 영가의 백운산, 화약산, 대아산, 도성산, 명주(강릉), 소양의 기린산과 낭읍의 대미산을 길지로 손꼽은 것도 백두대간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두사총’은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의 명산을 꽤 중시하는 편이다. 오서산과 성주산, 강화의 마니산, 약수산을 “병화(兵火)가 들어가지 않고, 간사한 것이 침입하지 않는다”고 했다.“태령의 수양산과 곡산의 밝고 아름다움은 재앙과 어지러움이 이르지 않아서 길이 복된 땅이 될 것이오”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 여러 산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이른바 십승지(十勝地)에 속하지 않으며 ‘두사총’에만 길지로 나와 있다. 그런데 누구나 길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한다.“덕을 쌓고 오랫동안 어진 일을 한 집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살 수가 있겠는가?” ‘두사총’은 이렇게 반문한다. 이런 자격 검토도 실은 ‘정감록’ 요소요소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메시지다. ‘두사총’의 개성은 흉한 땅에 대한 주장에서 좀더 뚜렷이 부각된다.“호남의 산은 등을 돌리고 달아난 것이 많아서 좋지 못한 일이 많이 생긴다. 이것은 내버려두고 말할 것이 없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호남의 지세를 배역(背逆)으로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례로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가 그렇다. 그와는 달리 ‘정감록’에는 부안 변산, 무주, 운봉, 해남 등지를 길지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웬일인지 이런 전통을 ‘두사총’은 따르지 않는다. 그 대신 “신안 몇 고을은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고 하여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어쨌거나 호남을 푸대접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흔히 길지로 취급하는 경기도 양근의 용문산 등에 대해서도 ‘두사총’의 평가는 몹시 부정적이다.“양근 용문산과 유양산은 안으로 세 가지 안목의 정교한 것이 없으면서도 오로지 깊고 궁벽한 것을 숭상하여,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어 여기에 산다. 그러나 용문산 기운은 삼각산에 빼앗겼으니 이는 아마도 헛된 꽃이요 죽은 굴혈일 것이다. 게다가 산 안의 형세도 돌아서서 버리고 끌고 나갔다. 지각 있는 군자라면 내 말이 없더라도 알 것인즉 삼가고 삼가라.” 인용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용문산으로 들어와 피란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있다. 그런데 이것은 19세기 말의 사정이었다. 앞에서 말하기를,‘두사총’은 충청도와 경기도 일원의 새 길지를 언급한 점에 한 가지 특색이 발견된다고 했다. 그에 덧붙여 19세기 말 경기도 용문산 일대의 형편도 사실적으로 기술돼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두사총’은 19세기 말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에서 저술되고 읽혔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도 임진강 동쪽, 철령 이남을 이상향으로 상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으로 봐야 옳겠다.“임진강 서쪽과 철령 북쪽은 무엇을 족히 의논하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서북 지역은 극히 흉한 땅이란 얘기다. 굳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주장이다. 어찌 보면 새로운 듯하면서도 ‘두사총’은 ‘정감록’의 상궤를 그리 멀리 이탈하지는 못한 것이 틀림없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열린세상] 서민금융산업 활성책 세워라/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IMF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해 온 금융산업 구조개편작업의 결과, 한국의 금융산업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금융당국의 홍보 논리대로 한국의 금융산업은 투명성과 안정성을 얻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금융회사의 지배권을 외국자본에 내주었다. 시중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은행까지 외국인 주주가 6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은행업만 그런가. 증권, 보험 모두 외국자본의 먹잇감이 됐다. 결국 한국의 금융산업 개편은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장악을 위한 기반정비였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어졌다. 물론 오랜 악습과 타성에 젖어 있던 한국의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투명성과 안정성을 모두 확보해간다는 기대는 무리였을 것이다. IMF 위기라는 외부충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투명성과 안정성이 강화돼 금융기관들이 한국경제의 돈줄 역할을 제대로 하고 또 금융의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기업대출은 축소되고 가계대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수익창출의 근거를 따져보면 여전히 제멋대로 올린 수수료와 예대마진, 독점적 지위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 금융권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외국자금의 투자와 수익확보를 위한 안전장치 이상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외의 조건에서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자본력이 취약한 서민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소매거래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금융자본의 영업기반을 넓혀주기 위해 각 지역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는 서민금융기관을 정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1차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의 결과를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기우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목표와 내용을 갖고 서민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당국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기준에 못 미치는 서민금융기관을 퇴출시키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의 규모를 축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1차 금융기관의 실패한 구조개편 작업을 되풀이할 뿐이다. 정부정책의 기본기조는 동반성장이고 양극화 해소다. 그런 정부의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조치만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서비스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자는 발표도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부실이 심각한 서민금융기관을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을 묻고 부실해소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부실서민금융기관을 정비한다는 관점만으로는 서민금융산업의 위축으로 귀결될 뿐이다. 서민금융산업의 위축은 서민경제의 위축을 불러오고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서민금융산업의 활성화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과의 수신금리차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취약한 공신력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각종 교육훈련과 객관적인 평가, 부실방지를 위한 정기적인 외부감사와 투명성 공개 등의 조치를 통해서 한국경제의 실핏줄 같은 서민금융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감독기능의 적극적 역할과 시스템도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서민금융산업의 위축을 방지하고 활성화하려면 기존 금융기관의 잣대, 관점으로는 안 된다. 토착금융자본의 기초인 서민금융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태도변화가 시급하다. 이 공신력 확보에 제일 중요한 것은 시중은행처럼 자기앞수표발행 등의 업무를 보장하는 것이다. 서민 금융기관들이 금융결제원에 가입하면서 송금거래 등 상당 분야를 허용했으면서도 유독자기앞수표 발행을 금지하는 조치는 설득력이 없다. 신협·새마을금고 등의 연합회에서 자율적으로 통제하면 된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은행들 “이젠 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중은행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예대마진도 줄어드는 등 소매금융의 활로가 꽉 막히자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나 부동산 개발, 인수금융 주선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PF는 은행이 담보를 바탕으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의 수익성과 미래의 현금흐름을 분석해 대출 등의 방법으로 금융을 주선하는 것을 말한다.●줄 잇는 PF 주선국내 PF는 그동안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의 양강체제였다. 시중은행들은 산업은행이 주선한 SOC 사업에 보조 투자자로 참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산업은행이 손을 대지 않는 부동산 투자에 발빠르게 참여하고 있고,SOC 사업의 주관 금융사로 나서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13일 기업은행과 함께 인천대교 민간투자사업의 금융주선을 완료했다. 국민은행은 이 사업에 7827억원의 프로젝트 금융을 담당한다. 이 은행은 올 상반기에만 14건,3조 8480억원에 이르는 PF를 주선해 지난해 상반기보다 무려 3조원 이상 많은 약정액을 올렸다. 국민은행은 9월에는 5000억∼1조원 규모의 SOC 인프라 펀드도 설립할 계획이다. 지난달 송도신도시 개발사업에 1조 5000억원 규모의 PF를 주선한 우리은행도 올 상반기에만 15건의 사업에서 3조 6247억원의 약정액을 올렸다. 지난해 상반기 실적은 2조 3300억원이었다. 우리은행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리조트 개발 등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상반기 PF 주선 실적이 5664억원에 불과했던 조흥은행은 올해에 벌써 27건,4조 2601억원의 실적을 올렸다.●치열해지는 PF 싸움시중은행들이 PF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풍부해진 여유자금을 굴리는 데는 PF만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은행이 PF 부실률 0%를 기록하고 있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 대출보다 훨씬 안전하다. 더구나 대출 이자는 물론 각종 취급수수료나 지분참여를 통한 개발이익까지 노릴 수 있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민간유치투자(BTL) 사업이 본격화되고, 신분당선 전철사업, 용인서울고속도로 건설사업, 판교 신도시 개발사업 등의 PF 주선금융기관 선정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우리은행 PF팀 관계자는 “5000억원짜리 하나만 따내도 실적 순위가 뒤바뀐다.”면서 “앞으로 기업도시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금융권 경쟁 전체의 판도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저축은행 부실채권시장 ‘큰손’으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호저축은행이 부실채권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저축은행들이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떨어져 나온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입한 뒤 추심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부실채권 사들이기에 적극 나서는 것은 최근 잇따른 인수·합병(M&A)으로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되는 덩치 큰 저축은행들이 출현하고, 자체 부실을 털어내 건전성도 호전되면서 새로운 자산운영처 확보 전략에 따른 것이다.●새로운 틈새 시장으로 각광 저축은행의 전형적인 영업방법은 시중은행보다 높은 예금이자로 서민들의 돈을 모아 다시 고리의 대출을 일으켜 ‘예대마진’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예대마진의 폭이 줄었고, 결국 새로운 틈새시장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시중은행이나 카드사들로서도 회수가 불가능해진 부실채권을 계속 보유하게 되면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기 때문에 비록 싼 값에라도 채권을 팔아치우는 게 자산건전성 확보에 유리하다. 업계에 따르면 부실채권의 매입 가격은 액면가의 5∼50%로 다양하다. 신용채권이나 파산채권 등은 가격이 낮고, 담보물채권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만일 액면가 1억원의 부실채권을 10%의 가격인 1000만원에 사들여 3000만원만 회수해도 저축은행으로서는 남는 장사라고 한다. 최근 A은행은 액면가 30억원의 규모의 부실채권을 공개입찰을 통해 매각했는데, 입찰에 무려 10여개의 저축은행이 뛰어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직접 추심 등 영업력 강화 부실채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저축은행은 한국, 현대스위스, 솔로몬 등이다. 이들은 액면가 기준으로 각각 2조∼4조원에 이르는 부실채권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들이 인수하는 부실채권은 대부분 개인 채권이어서 개별적인 추심이 필수적이다. 수억원의 부실채권에는 수만명의 채무자가 걸려 있어 빚을 받아내는 추심이 결코 쉽지 않다.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그동안 꾸준히 추심 인력을 강화해 왔다. 정규직 인원이 200여명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175명의 ‘채권 관리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해 추심을 맡기고 있다. 채권 관리사들은 회수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솔로몬저축은행은 대주주인 솔로몬신용정보가 보유한 200여명의 추심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구실 못하는 괴로움을 지켜보겠다

    「3년간 동거」의 변심에 이 여인의 칼날 보복은 수면제 먹이고 면도칼로, 단골 술집서 서로 눈맞아 서울 성동구 행당동 강모(28) 여인. 이 여인은 11월 22일 상오 10시쯤 서울 종로구 신문로 S여관 2호실에서 보약으로 알고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있는 D보험회사 사원 박모(31·서울 종로구 계동)씨의 국부를 예리한 면도칼로 완전히 도려내고 자기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살아났다. 지금은 철창 안에서 남자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면서 그것 없는 남자의 생활을 지켜보겠다고 도사리고 있다. 강여인이 박씨를 만난 것은 그녀가 중구 화원 시장에서 술장사를 하고 있을 때인 지난 65년 여름. 박씨가 회사 동료직원들과 함께 이 술집을 드나들면서 강여인과 친숙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8월의 어느 날 근처 여관에서 두 남녀는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 치정(癡情)관계. 이런 경우 당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거의 정신 없이 일을 벌여놓고는, 그 쾌락을 종말이 어떤 것이든 짊어지게 되는 것. 이때부터 두 사람은 만나는 회수가 늘어났고 근처의 여관, 여인숙을 전전하게 되었다. 남자는 체격 좋은 총각, 미모의 강여인은「무학(無學)」 부산이 고향인 박씨는 부산에서 D대학을 졸업한 체격 좋은 청년. 서울 계동에 있는 시집간 누이집에 기거하면서 D보험 S출장소 총무로 한 달 1만 8천원의 봉급으로 생활해왔다. 봉급으로 자기 생활만을 하는 박씨였으나 객지에서의 직장생활이 외로웠던 박씨는 자주 술집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런대로 예쁘장한 강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강여인은 학교라고는 근처도 안간 여인. 박씨와는 달리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 배다른 3남 2녀의 막동이인 강여인은 부모가 일찍 죽어 부모의 얼굴을 모르면서 이미 결혼한 오빠, 언니들의 집을 며칠간씩 옮겨가는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22세 때 김모씨와 결혼, 그 후 남편은 병으로 죽고 박씨를 만났을 때는 처자있는 이른바「기둥서방」이모(35·상업)씨와 동거를 해오던 중이었다. 여관 등을 전전하던 이들은 어느 날 강여인의 정부 이씨에게 들켰다. 고소하겠다는 등 몇 차례의 싸움이 오간 뒤 박씨는 3만원을 이씨에게 주고 화해, 강여인을 혼자 차지했다. 그 후로 박씨는 떳떳하게 강여인의 술집, 오빠가 사는 판잣집, 형부집 등을 남편인양 드나들었다. 단꿈「신혼살림」차렸으나,「마담」알면서 마음변해 67년 초 이들은 종로구 관훈동에 보증금 3만원에 월세 3천원으로 방을 하나 얻어 살림을 시작, 마치 신혼부부인양 단꿈에 빠진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곳 저곳의 술집을 자주 드나들던 박씨에게는 또 하나의 여성이 나타났다. 67년 10월 중순쯤 박씨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 국일관 앞「H집」의「H마담」과 정을 통하면서부터 강여인에게 싫증을 느끼고 멀리하기 시작, 더욱이 강여인에게 돈을 빌어서는「H마담」에게 갖다주는 등 박씨의 냉대는 심해졌다.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강여인에게 금년 3월 중순께 오랜만에 박씨가 관훈동을 찾아왔다. 저녁을 시켜먹은 뒤 곧장 집으로 간다는 박씨를 뒤쫓으니 박씨는「H마담」에게로 가고 있지 않은가.「H마담」과 싸움을 벌였다.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박씨가「H마담」아닌 강여인 자기를 때리더라는 것. 모욕을 느낀 강여인은 이때부터 박씨의 국부를 자를 것을 결심, 6백원을 주고 예리한 접는 면도칼(길이 15cm)을 사서 품에 넣고 다녔다. 올해 8월 중순부터 4회에 걸쳐 발길을 끊은 남자의 회사로 전화연락, S여관에서 만나 동침할 대마다 기회를 엿보았으나 성공치 못하자 조급한 이 여자는 면밀한 계획을 짰다.(여관에서 만날 때마다 이 여자는 목욕하고 세탁한 옷, 고무신까지 새것을 신었다. 일을 저지른 뒤 자기는 마지막이라 생각, 최후를 깨끗이 하고 싶어서였다) 드디어 마지막 계획실행 일자를 결정, 11월 18일『보약이 있는데 달여줄 테니 만나자』고 D회사로 전화연락, S여관에서 21일 밤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박씨와 만나 보약을 달여 먹이고는 교섭 없이 12시쯤 잤다. 이 약을 먹인 것은 수면제를 먹인데다가 국부를 자르면 죽을 것을 염려, 국부를 잘린 뒤 죽지 않고 거뜬히 살 힘(?)을 주기 위해서 또 수면제를 먹고 힘이 없어 죽지 말 것을 바라서 보약부터 먹였다고 했다. 다음날 10시쯤 잠을 깬 강여인은「바카스」에다 수면제 15개를 타서 보약이라고 하고는 먹으라고 주었다. 안먹겠다는 박씨에게『「H마담」이 준다면 안먹겠느냐』고 강짜. 어쩔 수 없이 박씨는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자신도 수면제 먹고 범행,「아픔보다 아찔함 앞섰다」 한편 강여인 자신도 수면제 40알을 먹고 잠에 떨어질 무렵 품고 있던 면도칼로 박씨의 국부를 완전히 도려냈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12시 30분쯤 여관종업원 권모(21)군이 방문이 열려있어 닫으려고 보니 방안에 피가 가득했다. 기겁을 하고 112에 신고. 두 남녀의 생명을 구했다. 나중에 박씨는 보약을 마시고 잔 것만을 기억, 그 밖의 것은 모르고 단지 오줌이 마려 일어나니 방안엔 피가 흥건하고 아래가 아파 만져보니 국부가 없었다. 아픔보다 아찔함이 앞섰다. 뒤에 강여인은 국부만을 자르고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은『죽으면 복수가 간단히 끝나므로 살려놓고 괴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두고 보고 싶었다』고.『3년간이나 같이 지낸 자기를 농락,「H마담」을 상대한 것에 격분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박씨는『장난기로 강과 접촉했는데 강이 적극성을 보이자 자기는 총각, 결혼문제도 있고 해서 강을 멀리 하려고「H마담」을 사귄 것』이라고 강여인을 멀리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강여인은 지금 무척이나 즐겁다고 한다. 강여인은 음독 후 병원에서 소생,『나는 이렇게… 했다』면서 자랑스러운 듯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큰 소리다.『나는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면서 마지막 어느 날을 택하겠다고 했다. 지금 박씨는 서울 중부사립병원에서 남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면서『죽고싶은 심정』이나『앞으로 이성을 멀리 조용히 살고싶다』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씨의 형도 누이도 박씨가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조용히 돌아섰다. 강여인은 11월 22일 중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게 한다는 한 여자의 독한 마음이 한 남자의 장래를, 자신의 내일을 그르쳤다. 이런 종류의 관계에서 가령 분별력이라든지 자기들이 빠져 있는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안목을 요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남녀관계이든 최소한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어서 피차「비참」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변우형(邊雨亨)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인텔·모토롤라 반격에 삼성·LG전자 밀렸다

    인텔·모토롤라 반격에 삼성·LG전자 밀렸다

    세계 전자·IT업계에서 미국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삼성전자를 앞세워 반도체, 휴대전화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던 한국의 전자산업이 환율 100원 차이에 휘청거리고 있을 때 미국 기업들은 차별화된 기술로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 ●인텔, 삼성전자를 따돌리다 세계 반도체업계 1위인 인텔은 20일 노트북PC의 판매증가로 칩셋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2·4분기에 20억 40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7억 6000만달러보다 16% 늘어난 것이며 매출도 92억 3000만달러로 15% 증가했다. 인텔은 지난해 2·4분기만 해도 이익이 삼성전자(순이익 3조 1300억원)의 60% 수준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3000억원이나 앞섰다. 사업 영역이 같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과 비교해도 인텔의 실적 호전은 눈에 띈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지난해 2·4분기에 비해 매출은 4조 5800억원에서 4조 1700억원으로 7% 줄어드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조 1500억원에서 1조 1000억원으로 무려 53%나 줄어들었다. 인텔의 이같은 실적 호조세는 무선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용 칩셋인 ‘센트리노’의 판매 증가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LG 부진, 모토롤라 승승장구 한때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2위 자리를 빼앗겼던 모토롤라는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레이저(Razr)’ 등 새로 출시한 고가 휴대전화의 판매호조로 2·4분기 휴대전화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24% 늘어난 49억달러를 달성한 것. 영업이익도 4억 9800만달러로 25.7%나 증가했다. 판매대수도 3390만대로 지난해보다 41%나 늘어났다. 덕분에 세계시장 점유율은 14.8%에서 18.1%로 상승했다. 반면 지난해 2·4분기 8000억원의 영업이익으로 모토롤라(3억 9600만달러)를 압도했던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은 올 2·4분기 영업이익이 5300억원에 그쳤다. 휴대전화 판매량도 2440만대(점유율 13%)로 모토롤라와 큰 차를 보였다. 게다가 휴대전화 매출도 4조 1900억원으로 모토롤라에 못 미쳤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판매대수는 모토롤라에 뒤져도 고가제품이 많아 매출은 앞서 왔다. 2006년 1억대 판매로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3대 휴대전화업체로 도약하겠다던 LG전자는 오히려 2·4분기에 사상 첫 적자(40억원)를 내고 말았다. 판매대수는 1209만대에 그쳐 올해 목표 6200만대마저도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순항, 일본의 부활, 중국의 도전으로 국내전자·IT 기업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영화·드라마 주인공처럼…

    영화·드라마 주인공처럼…

    영화·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는 여행을 떠나자. 바쁜 일상 탓에 영화와 드라마로 평소의 여가를 대신하는 도시민들에게 영화 촬영지는 한번쯤 가보고 싶픈 여행지. 화면을 통해 보던 멋진 풍경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세트장을 돌아보며 잠시 영화 속으로 빠져도 좋고, 주인공 기분을 내도 좋다. 올초 개봉해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마파도’는 영화의 재미만큼이나 경치가 아름답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펼쳐진 해안선은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마파도는 가상의 섬. 지도를 아무리 훑어봐도 찾을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전남 고흥 앞바다에 있는 섬이라고 소개돼 있지만 실제로는 전남 영광군 백수읍 동백마을에서 촬영됐다. 섬은 아니지만 섬보다 더 멋진 해안선을 뽐내고 있는 영화 속의 그곳, 마파도의 절경 속으로 가족들과 함께 떠나보자. 글 사진 영광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아담하고 깔끔한 해수욕장 개펄을 끼고 펼쳐진 해안도로 주변 어느 곳에 가도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지만, 그래도 가마미해수욕장과 모래미해수욕장이 가장 좋은 피서지다. 해수욕장을 거점 삼아 2∼3일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좋다. 가마미해수욕장은 예부터 호남 3대 피서지로 알려진 곳. 병풍처럼 넓게 드리워진 솔숲에서 낮잠을 즐겨도 좋은 곳이다. 깨끗한 백사장과 바닷물 등 깔끔한 것이 최대 장점. 시골 인심이 살아 있어 바가지도 없다. 주차료 2000원만 내면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정에 관계없이 쉬다 갈 수 있다. 물론 별도 입장료도 없다. 해수욕장에는 군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널찍한 숙박용 텐트 30동이 해변과 마주하고 있으며 4인 가족이 묵기에 충분하다.1일 숙박료는 2만원, 사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민박집은 성수기 3만원이다. 가마미해수욕장 관광협의회(356-1020). 즐길거리도 많다. 밤마다 매주 3차례씩 백사장에서 무료 영화가 상영된다. 해변에서 바나나보트(1회 1만 2000원)와 플라이피시(2만원)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인근에 있는 원전홍보 전시관을 무료로 둘러보며 원자력에 대해 배워볼 수 있다. 모래미 해수욕장은 아담한 해수욕장. 해안선은 길지 않지만 해안선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정겨운 곳이다. 곱디고운 모래와 아직 때묻지 않은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다소 작은 것이 흠이다. 촬영지에서 멀리 보이는 송이도에는 멋진 조약돌 해수욕장이 있다. 섬 전체 모양이 사람의 귀처럼 생기고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송이도는 납작하고 매끈한 하얀 조약돌이 넓게 깔려 아름답다. 길이가 2㎞나 되며 맨발로 밟고 다녀도 전혀 아프지 않다. 계마항에서 하루 1차례 배편이 있으며,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 마파도를 찾아 영광 동백마을로 ●엽기 할매들의 보금자리 마파도로 향하는 길은 즐겁다. 영화 속의 코믹한 장면을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쏟아진다.160억원짜리 로또 당첨권을 들고 잠적한 여자를 찾아 마파도에 잠입한 비리형사(이문식 역)와 모범 건달(이정진 역), 마파도 다섯 할매의 코믹 연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서울을 떠난지 3시간.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를 빠져나와 영광읍을 거쳐 백수해안도로에 들어서자 바다 내음이 코를 찌른다. 산등성이를 따라 굽이굽이 뻗은 해안도로를 달리자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다. 해안도로는 백수읍 백암리 답동마을에서 시작해 동백마을을 거쳐 원불교 성지까지 총 16.3㎞에 이른다.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 달리자 ‘마파도 촬영지’라는 조그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뻔했을 정도로 표지가 크지 않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지만 마을엔 주차할 곳이 없다. 도로에 차를 세우고 좁은 샛길을 따라 100여m를 걸어 내려가자 17가구가 모여 사는 아담한 시골마을인 동백마을이 나타난다. 봄이면 홑동백꽃이 아름답게 피는 마을이다. 해변 마을이지만 동글동글한 돌을 쌓아 만든 돌담은 마치 섬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파도(麻婆島)라는 이름은 영화 속의 소재인 대마(大麻)와 노파(老婆)에서 만든 합성어다. 마을을 지나 해변에 이르자 언덕 위에 폐허 같은 허름한 흙집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마파도 세트장. 집 앞에서 머뭇거리자 마을 주민 정병양(61)씨가 다가와 “거기가 촬영지여, 들어가서 봐요.”라면서 “저 집이 할매들이 살던 집이고, 언덕 위의 저것이 일용엄니(할매역을 맞은 김수미)가 기도하던 사당이니까 천천히 돌아봐요.”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정씨는 “이 동네에서 지난해 8월부터 영화를 6개월 찍었는데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면서 “영화 시사회 때 동네사람을 모두 초청해서 봤는데 우리마을이 나오니까 신기했다.”고 후일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촬영을 위해 지은 집은 모두 다섯채. 바다를 내려보는 밭뙈기 위에 집을 짓고, 돌담을 쌓고, 밭을 일구어 가상의 섬을 탄생시켰다. 안으로 들어가자 항아리며, 가구며, 절구, 우물 등 영화 속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세트장의 담벼락에는 관광객들이 써놓은 낙서들이 눈길을 끈다. 집 안에서는 마치 “이놈들아 뭐하는 거여!”라며 소리치는 할매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특히 세트장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과 바다를 연결한 한적한 길이 눈에 익는다. 산등성이를 넘어 꼬불꼬불 이어진 길에서는 갯내음과 풀내음이 마파도의 정취에 흠뻑 빠지게 한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대마밭은 이곳에 없다. 영화 속 이 장면만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율무밭을 빌려 촬영했다고 한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경 촬영지에서 나와 해안을 따라 연결된 오솔길을 따라 전망대 방향으로 올라가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평지가 많은 서해안답지 않게 높은 해안 절벽이 장관을 연출한다. 오솔길 정상에 있는 백암해안전망대에 오르자 광활한 개펄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보이는 송이도와 안마도, 칠산도 갈매기 섬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7개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한데 묶은 칠산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 389호)로 지정돼 있다. 전망대에서 가파른 절벽길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가자 갯내음이 상쾌하다. 바닷물이 만나는 해안에는 거북이 모습의 거북바위와 어머니와 아들이 껴안고 있는 형상인 모자바위 등 멋진 바위들이 솟아 있다. 개펄은 진흙과 모래가 적절히 섞여 물 빠진 개펄 위로 차를 몰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바닥이 단단한 게 특징. 개펄을 호미로 헤집으면 백합과 바지락, 맛 등 각종 조개를 잡을 수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관광지로는 정유재란 열부순절지와 숲쟁이 꽃동산을 비롯해 원불교 영산성지, 소태산 박중빈 생가,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등을 만난다. 정유재란 열부순절지는 정유재란 때 부인들이 왜군으로부터 화를 면하기 위해 서해바다에 투신, 순절했던 곳으로 이 곳에서 보는 서해 낙조가 매우 아름답다. 공기가 맑고 시원한 공원이 조성된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생가는 잠시 쉬어가는 맛이 있다. 백제불교 문화의 진원지 불갑사와 함께 해변을 끼고 있는 나무 데크가 예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도 둘러볼 만하다. 불갑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갑사는 백제불교 문화의 진원지로 백제 불교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다.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먹을거리 먹을거리로는 영광의 대표 음식인 굴비백반을 비롯해 백합죽, 덕자찜 등이 유명하다. 백합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 있는 백합죽은 각종 약재를 넣어 따뜻하고 맛깔스럽다. 갖은 양념에 맛좋게 익힌 덕자찜은 영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을거리다. 굴비백반과 굴비구이를 파는 음식점이 많지만 굳이 백반을 시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식당에서 기본 반찬으로 굴비구이가 나온다. 고두섬의 절경을 마주한 언덕 위에 있는 고두섬 횟집(352-0001)은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백합죽(7000원)과 백합탕(2만 5000원)을 비롯해 자연산 활어(5만원) 등 각종 싱싱한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다. 영광굴비는 기본 반찬으로 맛볼 수 있다. 민박도 겸하는데, 최성수기에도 4인가족 기준으로 3만∼5만원이면 숙박이 가능하다. 이 집은 마파도 촬영팀 일부가 촬영기간 중 민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법성포에 가면 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영광 굴비를 만날 수 있다. 음력 3월경 칠산앞바다에서 잡은 산란 직전의 조기를 법성포에서 소금에 절여 건조시켜 맛이 독특하고 영양이 풍부한 영광 대표 특산품이다. 법성포 굴비거리에는 300여개의 굴비 판매점이 즐비하다. 크기에 따라 50만∼70만원짜리 굴비세트부터 3만∼5만원짜리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굴비특품 사업단(356-5667). 이 중 천연 옥물에 담가 굴비의 비린맛을 없앤 옥굴비(356-5002)가 맛있다.20마리짜리 굴비세트가 5만원으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절반가격에 좋은 품질의 영광 굴비를 살 수 있다. 가는 길은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나와 영광읍 방향(22번 국도)을 타면 된다. 대중교통은 서울·안양·안산·성남·이천에서 고속버스가 운행되며 3∼4시간 소요된다. 영광읍에서 가마미해수욕장까지 군내버스가 운행되는데 30분 걸리며 요금은 1900원이다. 영광터미널(351-3379). 영광군청 문화관광과(061)350-5208.
  • 은행 예대마진 환란후 더 커졌다

    지난 10년간 국내 일반 은행권의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마진은 3.5%대를 줄곧 유지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대출의 예대마진은 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경기상황이나 시장 금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예대마진은 은행권의 주요 수익원이었다는 얘기다.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일반은행의 예대마진 추이 및 변동요인’에 따르면 정부 당국에 의한 여수신 금리규제가 있었던 1997년까지는 은행의 예대마진이 3.4%포인트 내외에서 유지됐으나, 이후 외환위기 여파로 인한 대기업의 도산과 신용카드 대란 등이 있었던 2000년과 2003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3.6%포인트를 웃돌았다. 외환위기 이후 예대마진이 소폭 확대된 것은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올리기보다는 차주의 신용위험에 따라 차등금리폭을 확대하고 대출포트폴리오의 구조를 변화시켜 대출수익률을 높인 데 따른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한은이 분석한 예대마진은 신규취급 및 잔액기준이 아니라 은행이 보유한 여수신으로부터 실제 수입 또는 지급이 이뤄진 이자에 따라 산출된 것이다. 연도별 예대마진을 보면 95년 3.34%포인트에서 1996년 3.63%포인트로 올랐다가 1997년에는 금융위기로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따른 이자를 대거 회수하지 못함에 따라 3.42%로 뚝 떨어졌다. 예대마진은 외환위기 직후 이례적인 고금리 정책이 실시됐던 1998년에 4.20%포인트를 기록한 후 1999년에는 3.63%포인트, 대기업의 줄도산을 경험했던 2000년에는 3.29%포인트로 하락했으며,2001년 3.67%포인트,2002년 3.74%포인트,2003년 3.56%포인트,2004년 3.74%포인트를 각각 나타냈다. 기업대출 예대마진은 지난해 2.98%포인트를 나타내 98년의 3.16%포인트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으며,97년의 2.73%포인트에 비해선 0.25%포인트 확대됐다.이는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크게 높아진 데다 대출금리 결정과정에서 차주의 신용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의 급등세로 인해 2003년 3.65%포인트에서 지난해 3.50%포인트로 축소돼 2년 연속 축소세를 보였고,97년에 비해서는 0.36%포인트 줄어들었다.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아줌마들의 오빠’가 돌아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은 이들에겐 공감할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80년대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록 밴드 ‘벗님들’의 이치현과 ‘들국화’의 주찬권이 오뚝이처럼 다시 팬들 앞에 섰다.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이 돼 나타난 이들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특히 7080은 물론 신세대까지 ‘리메이크 붐’에 빠져 있는 세태를 비웃듯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신곡을 선보여 더 반갑다. ■ ‘벗님들’ 이치현 새 앨범 ‘운 빠소’ “ 과거에 집착하며 옛 추억만 팔고 사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 하루빨리 신곡을 발표하고 싶었어요. 전 은퇴한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 가수인 걸요.” ‘사랑의 슬픔’‘집시여인’등 히트곡으로 유명한 ‘벗님들’의 이치현(50)이 8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27년간 꿋꿋히 밴드 음악을 고수한 그답게 그것도 8인조 밴드를 이끌고. 그동안 방송활동을 접고 라이브 무대에 주력했던 그는 11집 정규 새 앨범 ‘운 빠소’(Un Paso:스페인어로 ‘한걸음 더’라는 뜻)를 내놨다.12곡이 든 신보와 지난 88년 라이브공연 실황을 담은 ‘Live In 88’ 등 2개 CD로 구성된 새 앨범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라틴록이란 장르를 앞세웠다. “그동안 무얼하고 지냈냐?”고 먼저 묻자 너털 웃음부터 짓는다.“궁여지책이었죠.92년 솔로로 나온 뒤 새 앨범 내려 했는데…서태지 등 ‘댄스 가수’들이 득세하면서, 설자리가 없더라고요.” 결국 그가 찾은 곳은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그저 노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고, 먹고 살기 위한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는 이유도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96년 미사리에 ‘산타나’라는 라이브 카페를 여는 등 ‘미사리 문화’를 이끌어낸 가수다. 가요계가 불황인 이 시점에, 그것도 리메이크가 아닌 신곡으로 앨범을 내는 ‘모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 “‘새 음반 안 내냐?’‘방송활동 안하냐?’는 팬들의 기대와 요구에 힘을 얻었죠. 이젠 과거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미사리 문화의 변질도 견디기 힘들었어요.” 뒤늦게 앨범 소개를 부탁했더니,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음악적 스승인 산타나의 음악과 가요를 접목시켰어요. 타이틀곡은 ‘한 걸음 더’인데, 경쾌한 라틴 리듬에 산타나풍의 기타 연주, 핸드 퍼커션 등 타악기 연주가 잘 어루러진 곡이에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데 3년이상 심혈을 기울였단다. 작곡 등 준비기간만 2년이 걸렸고, 녹음 작업만 1년 넘게 했다.“지난해 말 ‘비잉’(Being)이란 제목의 앨범을 다 만들어놓고도 다시 작업했어요. 재킷 사진도 맘에 안들고….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는 늦었지만 곧 25주년 기념음반을 낼 계획이다.“앨범 주제는 ‘로맨틱’이에요. 어쿠스틱 기타의 참맛을 느끼게 해드릴 게요. 물론 리메이크가 아닌 신곡들로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들국화’ 주찬권 새 앨범 ‘Low’“나이 먹었다고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생각도 해봤지만, 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죠. 전 영원한 록 뮤지션입니다.” 그룹 ‘들국화’의 전 멤버(드러머)로 작사·작곡은 물론 노래에 악기 연주까지 ‘원맨밴드’로서의 다재다능한 음악적 재능을 선보여 온 주찬권(50)이 5년 만에 5집 새 앨범 ‘Low’를 발표했다.‘Rock이 필요해’를 타이틀 곡으로 한 이번 앨범에는 32년 음악 인생의 굴곡을 담은 intro곡 ‘Low’를 시작으로 몽환적인 느낌의 ‘새 한마리’, 록의 면모를 십분 느낄 수 있는 ‘말썽꾸러기’‘길 떠나며’ 등 14곡을 담았다. “마음을 비운 채 ‘낮은 곳’에서 생각하고 ‘낮은 소리’로 말하자는 취지로 앨범 제목을 ‘Low’라고 정했어요.”음악과 함께한 지난 세월을 빗대어 표현했다며 미소짓는다. 지난 73년 미8군 활동을 시작으로 74년 ‘뉴스 보이스’,78년 ‘믿은 소망 사랑’,83년 ‘신중현과 세나그네’,85년 ‘들국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삶은 철저히 록과 함께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87년 들국화가 해체됐고,96년에는 14년간 이어오던 결혼생활을 끝냈다.97년에는 동료 허성욱을 교통사고로 잃었다.“이듬해 ‘들국화’를 재결성하고 새 앨범도 발표하려 했지만, 전인권 형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물거품이 됐죠.”이후 솔로 앨범과 한장의 프로젝트 앨범을 내놨지만, 모두 빛을 보지 못하는 등 내리막을 경험했다. “돈이, 배고프다는 것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솔로 2·3집은 기획사의 입김에 굴복해 원치 않는 곡들을 담았죠.” 이후 자신의 비겁함에 화가 난 그는 혼자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이번 앨범도 집 팔고 전세 놓으며 마련한 2000여 만원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만족하고 팬들이 좋아하면 되지 돈이 중요한게 아니잖아요?(웃음)” 그는 들국화의 부활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98년부터 준비해 왔단다.“남은 멤버 셋이서 ‘들국화 3집’에 쓸 ‘검은 눈동자’(가제) 등 5∼6곡을 이미 작곡해 놓은 상태예요. 옛 들국화의 명성에 먹칠하지 않도록 시간이 걸려도 성에 차게 만들려고요.” 그는 대학생인 큰딸(자연)이 손수 그려준 앨범 자켓을 자랑하며 인터뷰를 맺었다.“지금의 저를 있게 한 8할은 두 딸과, 제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이에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월드이슈] 지구촌 ‘백색중독’ 실태·폐해

    [월드이슈] 지구촌 ‘백색중독’ 실태·폐해

    “우리는 지금 마약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유엔 마약범죄국(UNODC)의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국장은 지난달 ‘2005 세계 마약보고서’를 발표하면서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강조했다.2003년 기준으로 전세계 마약 복용자 수는 성인 인구의 5%인 2억명을 넘어섰으며 전년에 비해 1500만명가량 늘어났다. 이번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44%는 마약 복용이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줄어든 국가는 25%에 그쳤다. 세계 전체 마약 시장규모는 연 3220억달러(약 335조원), 마약 생산량은 약 4만t에 달했다.2003년 각국 정부가 압수량 마약의 총량은 1985년에 비해 4배나 늘어났다. 코스타 국장은 “모든 지표를 종합해 볼 때 마약시장이 더 확대될 것은 분명하다.”면서 “마약 밀매가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로인 늘고 필로폰 줄어 세계적으로 가장 폐해가 심각한 마약 종류는 헤로인과 코카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2003년 헤로인 복용자는 1060만명, 코카인은 1370만명으로 집계됐다. 남미지역에서는 전체 마약치료자 가운데 코카인 중독자가 58.5%를 차지했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는 헤로인 등 아편류 복용자가 전체 마약치료자의 약 62%였다. 특히 코카인은 복용자가 전년보다 조금 줄어든 반면 헤로인은 전년보다 140만명이나 늘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전세계 아편류의 87%를 생산하는 거대한 아편생산 공장으로 변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얀마와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에서 아편류 생산량이 크게 줄었는데도 2003년 전체 아편류 생산량은 2%, 원료인 양귀비 경작면적은 16% 늘었다.2003년 아편류 압수량은 110t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카인의 경우 전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인 콜롬비아에서 생산량이 줄고 있는 반면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 재배가 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 코카인 수요가 줄지 않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최근 수요가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반면 ‘한국 대표마약’인 필로폰(메스암페타민) 등 암페타민계 마약 복용자는 2620만명으로 전년보다 340만명 줄어들었다. 이는 2002년 태국에서 암페타민류 마약생산 공장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인 것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암페타민계의 일종인 엑스터시 복용자는 약 790만명으로 나타났다. ●마약복용자 80%가 대마류 복용 대마초(마리화나)와 대마수지(해시시) 등 대마류는 상대적으로 다른 마약보다 중독성이 약한 것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복용하는 마약이다. 2003년 대마류 복용자는 1억 6090만명으로 전년보다 1000만명 정도 늘었다. 대마류 복용자는 전체 마약 복용자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마약 압수량 가운데 52%가 대마류다. 마약 치료를 받은 사람 가운데 아프리카는 63.8%, 북미에서는 45.1%가 대마류중독자였다. 2003년 마리화나의 시장 규모는 1131억달러, 해시시는 288억달러로 대마류 전체는 1400억달러를 넘어섰다.1990년말에 비해 대마 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북·남미와 오세아니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거의 전지역에서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2003년 대마류 전체 생산량은 전년보다 25% 늘어났다. 마리화나는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는 반면 해시시의 경우 세계 전체의 80%를 생산하는 모로코에 집중돼 있다. ●마약주사기 통한 에이즈감염 급증 마약의 확산은 에이즈 확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고서는 HIV바이러스에 감염된 주사기를 마약투약에 사용하고, 이런 방식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마약 복용자가 성관계를 가지거나 출산을 하는 방식으로 마약 투약이 에이즈 확산을 촉진시킨다고 밝혔다. 마약 주사기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전체 에이즈 감염자 가운데 5∼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사기를 통한 에이즈 감염 위험성은 에이즈 감염자와의 성관계보다 6배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욱이 헤로인 중독자는 보통 하루 1∼3차례 주사를 맞고 코카인 중독자는 더 자주 투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는 더 높아진다. 마약중독자 집단 가운데 1명이 에이즈에 걸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1∼2년 안에 감염될 가능성이 50∼60%나 된다. 보고서는 “아직 분석자료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마약 투약이 에이즈 확산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면서 “특히 성매매여성이 마약을 투약하고 에이즈에 걸릴 경우 에이즈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마약과의 전쟁’ 나선 중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은 지금 ‘마약과의 전쟁’을 수행 중이다. 지난 78년 개혁·개방의 기치를 든 이후 선전이나 주하이 등 일부 경제특구로 스며들었던 마약이 수년전부터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퍼지고 있어서다. 도시 유흥가에 머물렀던 마약이 최근 청소년과 대학생, 심지어 가정주부들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필로폰이나 케타민 같은 약물은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는 것이 중국 언론들의 지적이다. 아편 확산으로 청나라 몰락을 지켜봤던 중국 공산당은 마약을 ‘망국병’의 원흉으로 지목, 대대적인 근절을 선언한 것이다. ●작년 3만여명 마약중독 사망 지난해 말까지 중국의 마약 중독자는 공식적으로 79만 1000여명이다. 종류별로는 헤로인 중독자가 전체의 85.8%인 67만 9000명으로 가장 많다. 국가마약단속위원회는 최근 마약 중독자가 전년 대비 6.8%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마약 중독자가 상당수 누락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약 확산 속도와 비례해 중국 당국의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마약 밀매 조직원 6만 7000명을 구속하고 헤로인 10.8t을 압수했다. 압수된 엑스터시도 300만개로 전년보다 8배나 늘었다. 지난달 푸젠(福建)성 마약 밀매조직원 10명을 공개 처형하고 전국적으로 ‘마약 추방대회’를 갖는 등 대중 운동의 성격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마약으로 인한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마약으로 인한 사망자는 3만 3975명으로 집계됐다. 마약 중독으로 인한 손실은 지난해 3조 5000억원을 초과했고 매년 30%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다. 베이징(北京) 마약금지위원회 피이쥔(皮藝軍) 박사는 “에이즈 감염자 8만 9067명 가운데 마약 중독자가 41.3%를 차지했다.”며 “중국 노동 교도소에 마약투약 혐의로 수용된 재소자는 58만여명에 달한다.”고 심각성을 토로했다. ●마약중독자 70%가 35세이하 청년층 중국 마약 문제의 심각성은 청소년층은 물론 실업자와 농민들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79만명의 마약 중독자 가운데 35세 이하 청년층이 70%를 차지했다. 실업자와 농민이 각각 45%,30%로 집계됐다. 좌절한 실업자와 농민들이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고 마약을 사기 위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상황이다. 마약 단속이 허술한 농촌으로의 빠른 파급은 안그래도 파산 직전인 농촌 사회의 해체를 가속화시킬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 당국은 지난해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마약과의 ‘인민전쟁’을 선포했다. 마약과의 전쟁은 ‘5대 전선’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청소년 등에 대한 방어전략 ▲마약 중독자에 대한 대대적인 적발·보호 ▲국경 유통지역 차단 ▲불법 경로 차단 ▲중국 전역 타격 등이다. 중국으로 들어오는 주요 마약 루트는 동남아 지역의 ‘황금 삼각지대’와 중앙아시아 ‘황금의 초승달 지역’ 그리고 한반도 등 3개 통로이다. 윈난(云南)과 광시(廣西) 등 동남아 국경지역 등 산악루트와 광둥(廣東) 푸젠성 해안루트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양펑루이(楊鳳瑞) 국가마약단속위원회 상무 부주임은 “사방에서 마약이 유입되고 있으며 특히 황금 삼각지대에서 유입되는 것이 치명적”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마약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심각하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는 마약과의 대규모 ‘인민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엔 마약협약´ 가입… 신고땐 거액포상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지난 2002년 ‘유엔 마약협약’에 가입하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과 마약 근절을 위한 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등 국제 협력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당국은 시민들의 상시 고발 체제를 구축했다. 장쑤(江蘇)성의 경우 마약 범죄자를 신고할 경우 최고 10만위안(13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4월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처음으로 청년 마약예방 봉사단이 설립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oilman@seoul.co.kr
  • [세상에 이럴수가] 대마草등학교?

    |오클랜드(뉴질랜드) 연합|뉴질랜드에서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대마초 사용이 증가하면서 초등학교에서도 경찰이 대마초 단속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질랜드 언론들에 따르면 뉴질랜드 학교 운영위원회는 최근 오클랜드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학교에서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돼 징계를 받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며 학교 구내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행위에 대해 경찰이 나서 강력한 단속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운영위원회의 론 멀리건 고문은 중학생들이 대마초를 피우는 일은 종종 있었으나 지금은 심지어 10살짜리 학생들까지 학교에서 대마초를 거래하거나 피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비행 차원의 문제일 뿐 아니라 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며 모든 학교들은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재혼뒤 제2 반상인생 ‘토종바둑’ 서봉수 9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재혼뒤 제2 반상인생 ‘토종바둑’ 서봉수 9단

    삼라만상의 우주와 희로애락의 인간세계를 한곳에 축소시킨다면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가로·세로 42×45㎝에 불과한 나무판이 있다. 그 위에는 가로·세로 19×19줄이 교차되면서 361개의 점이 그어진다. 가운데 점은 천원(天元)이다. 지구 공전 주기가 365.25일이고 보면 절묘한 맞춤형이 바로 바둑판이다. # 1972년 최저단·최연소 명인전 타이틀 바둑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취미였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성인 남성 5명 중 2명이 바둑을 즐긴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동격서(聲東擊西)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소탐대실(小貪大失) 등 생존경쟁에서 보약처럼 응용되는 수많은 격언들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반상이다. 공자도 바둑을 좋아했던지라 ‘논어’에서 ‘바둑 두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진 일이다(以奕爲爲之猶賢乎己).’라고 했다. 서봉수(53) 9단. 요즘에는 이세돌 이창호 최철한 등 젊은피에 한발 밀려나 있지만 ‘서봉수류(類)’는 여전히 바둑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왜일까. 야전사령관, 야생마, 매운 고추장, 토종바둑, 오뚝이 등으로 불려온 그는 순수 ‘국산품’이기 때문이다. 서 9단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 바둑계의 정상은 일본 ‘유학파’들의 차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순수 국내파인 서봉수가 혜성같이 등장하면서 매운 고추장 맛을 보여줬다. 특히 ‘조훈현 서봉수 백년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둑계를 주거니 받거니 평정했다. 특히 반상 위를 마구 헤집는 전투 지향적인 기풍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팬들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1972년 ‘명인’ 타이틀을 땄을 때 최저단(2단), 최연소(19세)라는 기록을 세웠다. 명인전을 주최한 신문사는 1면 머리기사로 다룰 정도였다. # 29살 연하 베트남 여성과 지난해 재혼 서 9단은 올해로 입신의 경지(9단)에 이른 지 20년째. 아울러 70년에 프로입문했으니 바둑인생 35년이 된다. 휴전협정이 한창이던 53년에 태어난 그는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난해 12월 29세 연하의 베트남 여인과 재혼해 새 삶을 살고 있다. 결혼 당시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오해의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제2의 바둑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동 자택 인근의 커피숍에서 서씨를 만났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프로기사가 달리 할 것이 뭐 있겠느냐.”면서 “6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3일은 서울 반포에 있는 ‘권갑용 바둑도장’엘 나간다.”고 했다. 권갑용씨는 프로 7단으로 이세돌과 최철한 등을 배출해 바둑 스타의 제조기로 알려져 있다. 서씨는 이 바둑도장에서 예비프로들과 대국을 하면서 장차 한국 바둑계를 이끌어갈 후배들을 지도해주고 있다. 아울러 잡지와 컴퓨터 바둑코너 등에 기보해설을 해주고 가끔 지방 초청강연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시합이 우선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잠 자는 시간만 빼놓고 늘 바둑과 함께 지낸다. 바둑 외에 다른 취미는 없느냐고 하자 “학창시절 탁구 당구 등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무척 즐겼다.”면서 지금은 관전하는 정도로 멀어졌다고 대답했다. 다만 3년 전 골프를 배워 지인들이 불러주면 같이 라운드한다고 말했다.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약간 주저하더니 “평범한 가정주부로 빨리 적응해 잘 살고 있다.”면서 “(부인은)사고방식이 건전하고 착하다. 명랑한 성격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고 자랑했다. 어울러 “(베트남에서)고생을 하며 자라서 그런지 참을성이 많고 어려움도 잘 견딘다.”고 부연했다. # “먹고자는 시간 외엔 오로지 바둑만” 서로의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느냐고 하자 “집을 나설 때 아내에게 ‘굿바이’ 하면서 손을 흔들고 집에 돌아오면 웃으며 손을 잡는다. 또 시장하면 ‘배고프다.’는 눈짓을 한다.”면서 “같이 지내다 보니 굳이 많은 얘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웃었다. 가끔 주말에 함께 나들이도 한다. 인근 관악산 주변을 산책하고 기분 내키면 산 중간까지 오른다. 늦은 밤 집앞 24시간 할인매장에서 시장을 같이 보는 것도 재미란다. 최근에는 부인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컴퓨터 한대를 사주었다고 귀띔했다. 서 9단의 각오가 사뭇 비장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베트남 신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겠다고 몇 차례 다짐했다. 아울러 재혼 이후 물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에 서로 의지해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단다. 서 9단이 베트남 신부를 맞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고 몇 차례 베트남을 오고가면서였다. 결혼식 때에도 “신부는 비록 배운 건 없지만 순수하고 진실한 여자”이며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그를 사랑하며,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씨의 성적은 37전 23승 14패로 여전히 부진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 하나를 믿고 머나먼 이국 땅에 온 신부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돈도 벌고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 자신이 틀에 박힌 ‘기풍’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아요. 이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져야 합니다. 또 공부하고 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요즘에는 승부가 너무 치열합니다.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강해져요. 이 때문에 보는 사람들은 더욱 재미가 있지요. 엣날에는 고수들끼리 타협도 가끔 했는데…. 제 인생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바둑밖에 없어요, 밥먹고 자는 시간 외엔 오로지 바둑 공부만 하지요.” 세상살이가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바둑처럼 극명한 인생살이는 없다고 했다. 프로기사들은 한미디로 피말리는 토너먼트라고 했다. 지면 인생에서 탈락이란다. 조치훈씨의 경우 울면서 밤길을 걷다가 몇번이고 자살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친구들도 한번 패할 때마다 견디기 힘들 만큼 큰 충격 속에서 방황하고 헤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아픔을 이기는 방법은 그저 즐기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춘향이가 이도령 생각하듯이 늘 그리워하고 ‘올인’의 각오로 무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국에서 질 때마다 괴로워하다 보면 병이 생겨 인생끝장은 금방이란다. 또 바둑은 결국 체력싸움이라고 강조한다. 복서도 라운드가 계속될수록 펀치가 약해지듯이 바둑 고수도 초읽기에 몰리면 쉬운 수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상의 행마가 곧 인생이듯 늘 상대의 괴롭힘을 견뎌내야 하는 전쟁이라고 역설한다. “욕심없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타이틀 하나 정도 따면 좋겠지요.” 서 9단은 오뚝이라는 별명답게 여전히 역동성을 간직하고 있다.80년대 후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93년 제2회 응창기(應昌期)배 우승,97년 진로배에서 바둑사상 9연승 싹쓸이 신화,2000년 시즌 국내 최대 타이틀 LG정유배 우승 등 3∼4년 주기로 일을 내고 있다. # “나이 먹어도 새로운 바둑수는 생겨” 바둑계에서 50대는 분명 노장이다. 하지만 준비된 자의 미소는 늘 아름다운 법. 일본의 구토 9단은 나이 60에 천원전 타이틀을 차지했고, 후지사와는 66세에 왕좌전을 제패했다. 사카다는 80세에 은퇴했다. 또 얼마 전에 별세한 김수영 7단은 췌장암 판정을 받고서도 ‘아직 인생의 대마는 살아 있다.’며 공식대국을 7판이나 두었다. 원로 조남철씨는 60세에 9단 승단을 했고,82세에 ‘세번의 눈물’이라는 회고록을 펴내 바둑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무덤덤한 성격의 서 9단은 “바둑에서 똑같은 판은 하나도 없다.”면서 “승부란 늘 새로 시작하는 것이고 또 나이를 먹어서도 새로운 바둑 수는 생겨나는 법”이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대전 출생 ▲71년 배문고 졸업 ▲70년 프로입단 ▲71년 명인전 우승 ▲74년 제1기 국기전 우승 ▲75년 제10기 왕위전 우승 ▲76년 명인전 우승 ▲80년 국기전, 왕위전, 최고위전 우승▲83년 바둑왕전, 제왕전, 명인전, 기왕전 우승 ▲86년 제30기 국수전 우승 ▲87년 명인전, 제왕전, 국수전 우승 ▲86년 9단 승단 ▲88년 국기전, 기왕전 우승 ▲91년 동양증권배 우승 ▲92년 국기전 우승 ▲93년 제2회 응창기배 우승 ▲95년 제1회 신사배 우승 ▲97년 제5기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9연승 기록 ▲99년 LG정유배 프로기전 우승, 제1회 프로시니어기전 우승 ▲2003년 제3회 돌씨앗배 프로시니어기전 우승 ▲2005년 제6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4강. ■ 상훈 바둑문화상 수훈상 수상 4회(80,81,82,93년). 통산 1000승 달성(94년).
  • 은행들 카드사업 ‘올인’

    은행들 카드사업 ‘올인’

    은행들이 신용카드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카드회원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앞다퉈 이탈방지 전담반을 설치하는가 하면 카드업 진출을 노리는 SK텔레콤에 카드합작사 설립을 잇따라 제의하고 있다.1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LG카드 인수를 놓고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은행들이 카드 사업에 몰두하는 것은 ‘카드 사태’ 이후 신용카드 이용액이 증가하고 자산 건전성이 좋아지면서 카드수수료 수입이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기반인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이 줄어드는 것을 보충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용카드는 고객들의 소비성향은 물론 생활패턴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방카슈랑스, 적립식펀드 등 최근 은행들이 주력하고 있는 다른 상품의 마케팅에까지 활용될 수 있다. ●‘회원 이탈을 막아라’ 우리은행은 최근 우량 카드회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8명으로 구성된 ‘탈회회원 전담반’을 꾸렸다. 전담반은 우리카드에 회원 취소를 요청하고 다른 카드를 주로 쓰는 ‘변심한’ 고객들에게 연회비를 면제해주거나 서비스가 좋은 카드로 재발급해주고 있다. 국민은행의 KB카드도 17명의 전담 직원으로 꾸려진 ‘해지 리텐션 파트’를 운영해 이탈하려고 하는 고객의 마음을 돌리고 있으며, 하나·외환은행 역시 콜센터에 이탈방지팀을 운영한다. 제일은행은 곧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다. 신한은행과 별도로 전업 카드사 형태로 운영되는 신한카드는 향후 3개월 내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예측하는 모형을 개발, 매출실적이 양호하거나 잠재매출능력이 있는 고객들에 대해 불만사유 파악 및 추가적인 혜택 제공을 통해 이탈을 막고 있다. 조흥은행은 신용카드 발급 후 2∼4개월 동안 이용실적이 없는 회원을 대상으로 무이자할부, 현금서비스 수수료 할인, 경품제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웨이크업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뜨거운 감자’ SK텔레콤,LG카드 4∼5개의 시중은행들이 카드 사업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SK텔레콤에 합작사 설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SK텔레콤이 카드업계의 핵심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금융기관은 하나은행과 신한금융지주. 이들은 소버린자산운용과 SK그룹이 SK㈜의 경영권 다툼을 벌이던 2003년 SK㈜ 지분을 각각 1.88%와 1.63%씩 매입해 SK그룹을 지지하는 ‘백기사’ 역할을 해 인연이 남다르다. 두 은행은 최근 소버린이 SK㈜의 지분을 매각할 때도 “사업 파트너로서 끝까지 지분을 보유하겠다.”고 밝혀 신용카드 합작사 설립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은행들이 SK텔레콤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SK텔레콤이 보유한 정교한 고객관계관리(CRM) 데이터를 통한 카드시장 점유율 확대와 이동통신과 결합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가능성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SK그룹이 보유한 SK텔레콤,SK엔크린,OK캐쉬백 등의 회원 정보는 전국민을 망라하는 수준”이라면서 “특히 SK텔레콤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 가능해 실시간으로 다양한 카드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3월까지는 매각될 LG카드 인수전에는 채권단의 일원인 우리금융 및 하나은행에다 신한지주, 농협, 씨티은행까지 뛰어들었다. LG카드의 정상화작업이 예상보다 빠르고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와 시너지 효과 극대화 전략과 맞물려 과열 조짐까지 보인다. 어느 은행이든 회원수가 가장 많은 LG카드를 인수하면 일순간에 카드시장을 평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LG카드 지분을 22.93%나 갖고 있는 산업은행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 사태 이후 많은 카드사들이 은행으로 흡수된 데다 최근 은행들이 카드 영업을 집중 강화하고 있어 회원 확보와 LG카드 인수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남해에 고양이 나라

    남해에 고양이 나라

    사육단지 마련된 욕지도(欲知島)에 신나는 경기(景氣) 한 마리에 5천원 호가 지금 식구 천 2백 마리 엊그제까지 고양이 한 마리에 3, 4백원 하던 것이 벌써 5천원에 호가되고 있다. 무인도 70여 개와 유인도 60여 개를 안고 있는 통영군이 섬 지방의 쥐잡이 방안으로 착수한 고양이 사육의 범위가 확대되어 독립된 섬 하나를 고양이 사육단지로 선정, 수출용과 식육용, 애완용으로 구분, 사육하여 해외에까지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10월 15일부터 작업을 착수한 욕지도는 벌써 1천 2백 마리를 외지로부터 수입, 기르고 있다. 이곳 2천 2백 세대의 섬 사람들은 한 달 안으로 집집마다 한 마리 이상 고양이 기르기로 자발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소한 1년에 3배 이상의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70년까지 10만 목표 연간 10배의 번식율 통영군은 이 사육단지에 올해 말까지 5천 마리 이상 기를 수 있도록 행정력을 뒷받침하고 오는 70년까지는 한산도(閑山島)와 사양도(蛇梁島)까지 사육단지를 확장, 10만 마리 이상 사육시켜 완전한 고양이의 나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남해안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에는 쥐 한 마리 구경할 수 없게 되고 전국 농가에까지 보급이 될 경우 쥐 소탕작전은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암코양이는 1년 이상만 자라면 새끼를 밸 수 있고, 1년에 세 번 새끼를 낳는데 한 번 분만에 3마리 내지 5마리를 낳기 때문에 연간 10배의 번식율을 갖고 있다는 것.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재일교포는 10월 25일 욕지면장 앞으로 계속 수출계약을 맺자고 편지를 해왔는데 일본의 고유 악기인 삼미선(三味線:사미센) 재료로 쓰기 위해서라는 것. 가죽은 삼미선(三味線:사미센)의 재료 주문 밀리나 일체 사양 젖 8개가 달린 고양이 가죽이 삼미선 악기 재료로서는 최고라는데 이 가죽을 구할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전악기인 소고(小鼓)가죽도 고양이 가죽이 최고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본 상선회사 등에서도 배마다 필수적으로 흑색 고양이를 키우는데 계속 공급을 절충 중에 있고, 국내 큰 중국음식점에서도 고양이 고기를 구할 수 없어 특유한 고양이 요리를 내놓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모두들 키우고 있기 때문에 판로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 그러나 69년까지는 사육단지 확장을 위해 일체 외지 반출은 않기로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쥐 소탕의 행정 뒷받침 년 73만kg 양곡 절약도 고양이는 우선 전염병이나 각종 질병을 앓는 예가 거의 없고 바닷가의 생선 찌꺼기가 많아 자연사료가 풍부하여 섬 지방의 대량 사육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통영군수 김상조(金相朝)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김군수는 10월 20일 욕지도에 국한해서 쥐약판매금지령을 내렸다. 고양이가 약 먹고 죽은 쥐를 먹을 때는 같이 죽는다고 해서 취해진 조치. 김군수가 분석한 행정면으로서의 효과를 보면 내년 말까지 2만 마리의 고양이가 섬 지방에 분산되면 쥐 소탕으로 연간 73만 2천kg의 양곡이 절약되어 1,464만원의 이익이 생기고 지금까지 낭비되었던 쥐약대 138만 7천원(호당 250원 계산)이 절약되며 새끼 분만으로 생기는 소득이 6,606만원이나 된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이런 계산으로 국내 분양과 해외수출로 판로가 완전히 틔어 본격적인 상품화의 거래가 된다면 70년대부터는 통영군 단독으로 수억원의 소득을 보게 된다고 원대한 꿈을 펼쳤다. 기르는데 돈 한 푼 안들고 이름표만 달아 자연방목 더욱이 이 고양이 사육은 사육비가 필요없어 정부의 융자나 보조가 없어도 되고 사육에 필요한 우리나 기구가 없어도 되기 때문에 고양이 몸에 주인의 표시만 해놓고 섬 안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자랄 수 있는 것이 특색. 이래서 욕지도의 중심부락인 동항리, 서산리, 두미리 등지 사람들은 대부분 육지로 고양이 구하러 나가있고 부락별로 예쁜 고양이, 귀족 고양이 기르기 대항운동을 벌여 시상제도도 마련, 경남도지사의 우승「컵」까지 얻어 놓았다고 한다. 가장 값비싼 고양이는 3색 고양이로 현재 시가 6천원까지 올라 있고 전신을 통해 흰 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새까만 고양이는 외항선박이 값을 엄청나게 불러도 재수있는 동물이라고 사간다는 것. 현재 이 곳에서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고양이는 인도 지방의 야생 고양이로서 외항선박 선원들이 잡아다가 애완용으로 기르다 번식시킨 것인데 중국 등지에서는 식용으로 고급요리에 해당된다는 것. 가난의 상처 떨쳐 버리고 한 마리에 년 36불의 소득 이렇게 독특한「아이디어」에 새 터전을 마련한 신생 고양이 나라 욕지도는 삼천포항에서 일본 대마도쪽으로 20여「마일」떨어진 가난한 섬. 10여년 전만 해도 고등어 전갱이 주산지로 전국에서 가장 풍성한 어항으로 손꼽혔던 곳인데 해류 변동으로 고기떼도 사라지고 화려했던 옛날이 안겨준 가난의 상처만을 안고 있는 섬이었다. 이제 고양이 나라로 탈바꿈하면서 다시 한번 섬사람들은 풍성한 꿈을 안고 들떠있는 것이다. 한 지에 고양이 한 마리만 키워도 연간 36「달러」의 소득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 의욕은 크게 부풀어 있는 것이다. <공하종(孔河棕)·조기제(趙棋濟)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10 제1권 제8호 ]
  • “대마 흡연교사 견책 성희롱에 정직 한달”

    ‘지난 2003년 대마초를 소지하고 흡연한 서울 J고 교사에게 견책 조치’,‘같은 해 금품을 수수하고 학생을 성희롱한 서울 K여고 교사에게 정직 1개월 조치.’ 최근 3년 동안 교원비리나 교사윤리에 어긋나는 행위 1219건 가운데 공식징계가 아닌 불문경고 362건(29.7%), 최하위 징계인 견책이 488건(40%) 등으로 징계수준이 턱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한나라당 제5정조위원장인 이주호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에 의뢰해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26일 발표한 자료에서 밝혀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24일 ‘연내 부적격 교사 퇴출방안’을 발표한 바 있어 주목된다.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중징계에 해당하는 해임과 파면은 각각 37건(3%),16건(1.3%)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성적비리 행위도 3년 동안 파면 3건과 해임 1건, 촌지 등 금품비리 관련 비리도 파면 1건, 해임 9건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을 제외한 성추행·성폭행 등의 심각한 행위도 파면은 3건뿐이고 나머지는 견책 3건, 감봉 4건, 정직 4건 등 가벼운 조치를 받았다. 징계도 아닌 불문경고를 받은 교사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학부모들이 자식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데다 대부분 징계위원회가 교사들로 구성돼 ‘온정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대안으로 “교원들에게 일반 공무원법을 적용하기보다는 교육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정치한 기준 및 부적격 교사의 범주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며 “교육청 징계위원회 등 징계사건 조사에 학부모 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고 학생·학부모의 조사청구권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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