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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즙이 살살~ 입안이 달달…떡갈비 앞에선 王체면 없네

    육즙이 살살~ 입안이 달달…떡갈비 앞에선 王체면 없네

    달짝지근한 향기로 남녀노소를 통틀어 애간장을 녹이는 떡갈비는 갈빗살을 다져서 양념한 후 갈비뼈에 얹어 구운 요리다. 갈비에 붙은 살을 떼어 내 수십 차례 칼집을 넣어 다지고 양념하여 동그랗게 빚어 석쇠에 굽는다. 육즙이 풍부하고 부드러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원래 궁중에서 전파된 임금이 즐기던 고급 요리다. 아무리 맛이 있어도 임금이 체통을 벗어던진 채 갈비를 손에 들고 뜯을 수 없어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게 만들게 됐다고 한다. 쇠고기를 다져 만든 모양이 떡을 닮아 ‘떡갈비’로 불린다. 기름 부위를 뺀 살코기를 다져서 먹는 사람은 편하지만 만들기 쉽지 않다. 어린아이나 이가 부실한 노인들이 질긴 고기를 뜯어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더 환영받는 음식이 바로 떡갈비다. 요즘은 갈비 고유의 맛과 간편한 조리 방법으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궁중에서 유래한 떡갈비는 전라도 담양, 화순과 경기도 광주, 양주 일원에 전해져 오고 있다. 향토색에 따라 그 요리법이 전혀 다르게 발전해 왔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다는 떡갈비는 전남 지방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불린다. 먹거리가 풍부해 다른 지역에 비해 요리법이 뛰어난 남도 사람들의 손맛이 더해지면서 음식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소떡갈비, 돼지떡갈비, 염소떡갈비 등 종류도 다양하다. 2일 전문가들에게 들은 남도 떡갈비 얘기를 정리한다.●담양은 떡갈비 원조 지방… 어른 먹기 좋아 “효갈비” 담양군은 떡갈비의 원조 지방이다. EBS가 출간한 책 ‘천년의 밥상’에는 1419년 조선 외교관으로 일본에 당당하게 맞섰던 노송당 송희경(1376~1446) 선생에 의해 담양에 전해졌다고 적혀 있다. 왜구가 해적짓을 일삼자 세종이 대마도를 정벌한 후 1420년 사신으로 파견된 송희경은 일왕 신하들로부터 명나라 연호를 일본의 연호로 바꾸라는 위협을 받고 “내가 죽음을 당하더라도 우리 임금의 글월을 고칠 수 없거니와 어찌 왕명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부했던 위인이다. 그후 노송당이 조정을 떠나 담양에 정착해 궁중에서 맛보았던 진미 중 하나를 전하게 된다. 소갈비에서 살과 뼈를 분리해 갈빗살을 다지고 양념장을 발라 둥글게 만든 뒤 다시 뼈에 갈빗살을 붙여 석쇠에 구워내는 궁중 방식을 계승한 게 담양 떡갈비다. 담양 떡갈비는 조선시대 어른들이 먹기 편하도록 만들었다고 하여 ‘효갈비’로도 불렸다.오늘날 떡갈비 하면 담양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해진 비결엔 자연환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와 그 사이를 스치는 청량한 바람으로 재워낸 담양 떡갈비는 숙성도를 으뜸으로 쳐준다. 음식의 고상한 맛 또한 조선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전통이 깊다. 1960년대 말부터 광주 인근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뜨게 됐고 1970~1980년대에는 남도음식의 대표적인 맛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7년 제4회 남도음식 대축제 향토식당 부문에서 담양에 있는 ‘덕인관 떡갈비’가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 흉내를 내는 식당들도 늘어났다. 우선, 담양 떡갈비는 다진 쇠고기살을 쓰지 않는다. 처음부터 쇠고기 갈빗살을 골라 등심 부위에 잔 칼질을 한 후 3번에 걸쳐 양념을 고르게 바른다. 양념한 갈빗살을 채치듯이 다지고 동그랗게 다듬어서 갈비뼈 위에 올려놓고 굽는다. 기름기를 골라낸 후 갈빗살이 떨어지지 않게 빗살처럼 잔 칼집을 적당히 하고 나서 다진 양념을 버무린 다음 본 양념을 해 알맞게 구워내는 게 숨은 노하우다. 귀찮을 법하게 손이 많이 가지만 대신 “갈비는 뜯는 맛”이라는 말처럼 부드러운 쇠고기맛과 갈비 뜯는 재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크기도 아이들 손바닥만 해서 먹기 편하며 모양이 곱고 정갈하다. 가스 불 대신 참숯 향으로 구워 더 제 맛이 난다. 설탕·마늘·양파·배즙·정종·생강을 물에 넣어 끓인 후 장을 섞어 만든 양념장도 자랑거리다. 최근엔 소갈비살로만 만들어서 가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돼지떡갈비도 판매하고 있다.●놓아 먹인 흑돼지 최상급만 써 육질 부드러워 순천시청 앞 골목에는 떡갈비로 유명한 금빈회관이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입소문을 타고 외지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려지면서 주말에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예약을 해야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떡갈비는 조리법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갈빗살을 곱게 다져서 양념해 치댄 후 갈비뼈에 도톰하게 붙여 양념장을 발라가며 구워먹는다. 또 갈비뼈에다 다진 살코기를 붙여서 구워내지 않고 살코기만을 납작하게 다져서 굽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이 방법을 사용한다. 다진 고기를 뼈에다 둘러서 구우면 안팎이 골고루 익지 않기 때문이란다. 인근 광양에서 놓아 먹인 흑돼지 중 최상급만을 쓰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다. 갈치속젓 등 전라도 특유의 깔끔한 밑반찬 20여가지가 곁들여져 밥상을 받으면 호강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서 만든 쇠고기 떡갈비와 돼지고기 떡갈비는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맛이 좋다. 어지간한 미식가가 아니면 쇠고기로 만든 것과 차이를 알 수 없다. 시루떡처럼 넙적하고 두툼해서 먹기도 좋거니와 씹히는 고기 맛이 일품이다. 촉촉하게 살아 있어 고급스럽게 보인다. 여주인은 “양념한 고기를 사흘 동안 숙성한 후 구워 만들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더 맛있다”고 자부심을 보였다.●녹차 이용한 대표 음식… 덥힌 돌 위에 얹혀 나와 보성은 항암 효과와 알러지 억제, 충치 예방 효과를 지닌 녹차의 고장이다. 차에 함유된 카테킨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해 노화 방지에 좋다. 보성은 이러한 녹차를 먹인 녹돈으로 떡갈비를 만들고 있다. 아울러 녹차 한우를 이용한 떡갈비를 특화시켜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건강까지 더했다. 녹차를 이용한 대표 음식이다. 보성 녹차 떡갈비는 참나무 숯을 사용해 맛이 더 뛰어나다. 녹차의 효능을 가득 담았다. 잎은 고기 잡내를 없애고 맛을 단백하게 해준다. 녹차의 카테킨 성분이 기름기를 잡아줘 느끼한 맛을 지우고 지방 흡수를 적게 해 비만 걱정도 덜어 준다. 보성 녹차 떡갈비엔 한우떡갈비, 돼지떡갈비, 모둠떡갈비, 돼지갈비가 있다. 한우떡갈비와 돼지떡갈비를 절반씩 맛볼 수 있는 모둠떡갈비가 가장 잘 나가는 메뉴다. 떡갈비는 옆 기계에서 미리 초벌해 둔 후 주문을 받은 만큼만 숯불 위에 옮겨 불향을 넣어 굽는다. 주방장 손길로 세심하게 익힌 떡갈비는 오래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익힌 돌 위에 올려져 나온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따뜻한 떡갈비를 먹을 수 있다. 꼬막이 유명한 곳답게 꼬막 반찬부터 다양한 계절 반찬으로 이뤄져 있다. 떡갈비와 궁합이 잘 맞는 양배추 겨자 소스도 특별한 맛을 준다. 양배추 겨자 소스에 듬뿍 찍어 양배추까지 얹어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담백함이 더 살아나 즐거움이 배가 된다. 담양·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부산은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즐길 수 있는 휴양도시다. ‘제2의 도시’다운 화려함과 오랫동안 지켜온 역사가 공존한다. 15개 자치구와 1개 자치군을 두고 있는 큰 도시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친다. 바다 위를 오가는 케이블카, 해변을 환하게 밝히는 마천루의 조명에 부산의 바다는 더 특별해진다. 해수온천에 몸을 담갔다 옛날 시장을 구경하고 구석구석 특색 있는 골목을 하나씩 거닐다 보면 몇날 며칠도 짧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가 2시간 40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도시를 머릿속에 그리면 꽤 멀게 느껴지는데 기차에서 딴짓을 좀 하다 보면 금방이다. 커다란 역사를 빠져나오니 북적한 도시 한복판이다. 도시의 소음 사이로 바람을 타고 온 짭짤한 바다냄새가 뒤섞인다. 광장의 팔각 비둘기집이 과거의 시간 한 토막을 떼어놓은 것 같다. 이곳에서 부산 여행을 시작했다.부산의 바다를 발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2017년 6월 문을 연 송도해상케이블카는 ‘국내 제1호 근대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1913년 7월 문을 연 송도해수욕장은 처음에는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한 휴양시설로 개발됐다. 오랫동안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었지만 해운대, 광안리 등의 부상으로 한동안 옛 명성을 잃었다. 1964년 건설됐던 해상케이블카가 1988년 운행을 중단한 것은 시설 노후와 이용객 감소 때문이었다. 29년 만에 재개장한 해상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부활의 상징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암남공원까지 1.62㎞를 운행한다. 옛 케이블카보다 운행거리가 4배 가까이 늘었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크루즈’에 오른다. 불투명 바닥의 ‘에어크루즈’도 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출발한 케이블카는 이내 거북섬 위를 지나 바다 위로 나아간다. 등 뒤로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남항대교, 영도 풍경이 펼쳐진다. 바닥창 밑으로는 에메랄드빛 물결이 넘실댄다. 부산 바다가 이렇게 맑았나 싶다. 8분 30초간 위로 오른 케이블카는 암남공원 내 전망대에 멈춘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돌아오는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송림공원 앞에 내린다. 바로 앞바다 거북섬은 2016년 5월 해수욕장에서부터 이어지는 구름산책로로 연결됐다. 바다 위 고래조각상 등을 감상하면서 구불구불 난 산책로를 걸으면 작은 암초인 거북섬에 이른다. 바다로 삐죽 솟은 산책로 끝까지 가면 알록달록 방파제 위로 갈매기 떼가 새하얗게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과자를 꺼내 공중에 손을 휘휘 저으면 시력 좋은 갈매기들이 냉큼 날아와 먹이를 입에 문다. 한창 변신 중인 해수욕장 뒤로는 호텔 등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부산의 바다 하면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상전벽해의 아이콘이 된 해운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 부산에 놀러온 여행객들로 겨울바다가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한편에는 빼곡한 고층빌딩이 화려한 대도시의 면모를 자랑하지만 해변 모래사장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한가로운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급변하고 있는 해운대에는 공사 중인 인근 새 아파트를 홍보하는 아주머니가 “모델하우스를 보고 가라”며 이른 아침부터 전단지를 돌린다. 홍콩을 닮아가는 해운대 야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는 것이 좋다. 달맞이언덕 아래 자리잡은 ‘미포끝집’은 유명인들의 사인이 빼곡한 이름난 횟집이다. 야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몰린다.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린시티 쪽 형형색색의 빌딩 조명과 밝게 빛을 내는 광안대교가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바다 전망을 실컷 즐겼다면 바닷속 여행을 떠나 봐도 좋다.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뒤에 위치한 ‘씨라이프 부산아쿠아리움’에는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250종 1만여 마리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열대우림, 심해, 체험존 등 테마별로 꾸며진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면서 신기한 해양생물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카스펭귄, 작은발톱수달 등 귀여운 동물들 앞에서는 아이들이 떠날 줄 모른다. 3000t 메인수조에 투명보트를 타고 들어가 상어를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다. 해운대는 해수온천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온천이 영업 중인데 그중 원조는 1935년 문을 연 ‘할매탕’이다. 류머티즘·관절염·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할머니들이 유독 많이 찾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낡고 허름한 시설일 것 같지만 2016년 최신 시설로 재개장했다. 특히 독립된 온천탕인 가족탕이 있어 인기다.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천을 즐기고 싶다면 할매탕 바로 옆 ‘해운대온천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해운대지만 해운대시장에서는 여전히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좁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은 시장 골목 안에 ‘친구 아이가’, ‘뭐라카노’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머리 위로 빛을 밝힌다. ‘해운대라꼬 빛축제’ 일환이다. 곰장어, 돼지국밥 등 식사부터 어묵, 튀김 등 간식까지 먹거리들이 즐비한 시장을 그냥 지나치긴 힘들다. 설움이 뒤엉킨 미로…단단히 박제된 추억바다를 마음껏 즐겼다면 이제 부산 골목의 매력을 느껴볼 차례다. 국제시장에서 보수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책방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보수동책방골목이 나온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씨 부부가 현재 중구 보수동사거리 입구에 ‘보문서점’을 연 것이 시초다. 손씨 부부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잡지,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을 팔기 시작했다. 그 시절 천막교실로 향하던 많은 학생들의 통학로가 된 이곳에 다른 피란민들도 하나씩 비슷한 서점을 열면서 책방골목으로 거듭났다. 골목 중간 지점에는 책을 한아름 품에 안은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1970년대 70여 점포가 성행했던 골목의 상징이다. 전성기 때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여전히 천천히 책방들을 둘러보면서 헌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부산의 명소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타지에서 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골목 한편에 자리잡은 ‘우진스낵’은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 온 분식집이다. 지금도 처음 문을 연 사장님이 온종일 고로케와 도넛을 튀겨낸다. 부담 없는 가격에 사먹는 ‘추억의 맛’은 빛바랜 사진 같은 책방골목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책방골목 사이로 난 더 좁은 골목의 오르막 계단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 본다. 수십 계단을 올라도 다시 그만큼의 계단이 남아 있다. 낮고 작은 계단이지만 개수 때문에 만만찮다. 계단을 다 오르면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다시 계단이 나온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따뜻한 낮이라 계단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다 보니 땀까지 맺힌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걸어야 한다. 행정구역상 대청동인 비탈진 동네에는 주차장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집들이 많다. 지형을 이용한 공간 활용이 눈길을 끈다. 알록달록한 공영주차장 건물 옆으로 난 60여 계단을 또 오르니 전망대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너머 남항대교, 부산항 뒤 부산항대교 등이 내려다보인다. 여행자들이 찾아도 좋을 전망대지만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더 인기인 것 같다. 전망대 벤치에 둥그렇게 앉은 할머니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공영주차장 전망대에서 영주동 방향으로 난 산동네 주택가 골목에는 예쁜20여점이 자칫 우울할 수 있는 골목 곳곳에 산뜻한 색을 더한다. 고래, 사슴, 호랑이가 뛰놀고 꽃이 만발한 골목 사이로 동네 고양이가 햇볕을 쬐며 한가롭게 뒹군다. 주택가 아담한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길 중간쯤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관광용 모노레일이 아니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힘든 지역 주민들에게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무작정 부산의 골목을 누비는 것도 좋지만 부산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그냥 지나칠 사소한 것도 재미로 느껴질 수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설된 건물은 그 자체가 역사적 건축물이다. 6·25 때는 미국대사관으로 쓰였고 전쟁 후엔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활용됐다. 1999년 한국 정부에 반환됐고 이후 부산시가 인수해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1876년 근대 개항부터 시작된 일제 수탈의 역사를 중심으로 부산의 근대사가 사진, 지도, 책자 등과 함께 흥미롭게 전시돼 있다. 옛 개항장 시가지의 가구점, 과자점, 미곡취인소 등 일본식 건물도 재현돼 있다. 관람은 무료다.부산역 앞 초량차이나타운(상해거리)과 텍사스거리도 이색적인 풍경을 더해 주는 골목이다. 텍사스거리는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 과거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가였다. 한때는 청소년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고 호황을 누렸지만 현재는 쇠락한 모습이 뚜렷하다. 1990년대부터 교역을 위해 온 러시아인들의 방문과 거주가 늘었고 지금은 텍사스거리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러시아어 간판이 빼곡하다. 이런 변화는 이어진 차이나타운에서도 발견된다. 300m 거리 양옆으로 홍등이 쭉 매달려 있는 거리는 빨갛게 빛을 내는 등불과 노란색 불빛 간판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항우와 우희 동상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고 삼국지 벽화가 길게 이어져 있다. 중국 상점·음식점 사이사이로 러시아어 간판들도 보인다. 러시아어로 빨갛고 노랗게 칠해져 있는 게 재미있다.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먹는 콩국과 밀가루반죽튀김 등으로 유명한 오래된 중국집들 사이로 러시아의 보르시(수프), 샤슬릭(꼬치), 빵과 케이크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국제적인 거리의 느낌을 준다.최근 부산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골목으로는 서면 옆 동네인 전포동의 전포카페거리가 있다. 예전에 철공소 등이 밀집돼 있던 동네에 개성 있는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10년 전쯤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대에 300곳가량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부산지하철 2호선 전포역 7번 출구 부근에는 지난해 6월 ‘부산커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김동규(41)씨가 7년 전부터 모은 커피 관련 골동품 420여점이 전시돼 있다. 1850년에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대형 커피분쇄기를 비롯해 각국의 분쇄기, 드립머신, 주전자와 커피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가 없고 커피 판매도 하지 않는다. 김 관장은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거리가 상업화되고 있다”며 “전포카페거리의 특색을 지키고 싶어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떠들썩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다면 기존 카페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전리단길’을 추천한다. 부산진소방서 뒤로 난 골목들에는 전포카페거리가 처음 생길 때의 분위기가 새롭게 피어오르고 있다. 페인트 냄새가 나고 철을 깎는 쇳소리가 울리는 골목에는 예쁜 카페, 디저트 가게 등이 다소곳이 자리잡았다. 그 사이로 들어선 인문학 서점과 사진관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작은 가죽공방, 목공소, 은세공 가게에서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글 사진 부산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수첩 →잘 곳 :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이 지난달 해운대에 문을 열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셀렉트 서비스 브랜드로 지난해 4월 서울 영등포에 이은 두 번째 오픈이다. 지하 2층, 지상 22층 건물에 총 225개 객실이 있다. 23㎡ 크기의 스탠다드룸으로 구성됐다. 10만원 이하의 가격대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풀서비스 대신 필요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작지만 알찬 피트니스센터, 코인세탁실 등이 구비돼 있다. 2호선 해운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바닷가에서 3분 거리로 주변 관광지를 걸어다닐 수 있는 입지가 최대 장점이다.
  • 이필모 “♥ 서수연, 앞으로 함께 걸어갈 사람” 직접 전한 결혼 소식

    이필모 “♥ 서수연, 앞으로 함께 걸어갈 사람” 직접 전한 결혼 소식

    이필모가 서수연과의 결혼 소식을 직접 전했다. 27일 이필모는 커뮤니티를 통해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앞으로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나 조심스럽게 서로간의 약속을 진행해 보려 해요”라며 서수연과의 결혼에 대해 언급했다. 이필모는 이어 “그동안 내가 어디서 뭘하든 끊임없이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며 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한편, 이필모는 TV조선 리얼리티 ‘연애의 맛’을 통해 만난 서수연과 결혼을 약속했다. 지난 25일 그는 뮤지컬 ‘그날들’ 커튼콜에서 프러포즈를 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다음은 이필모 글 전문. 늘 고맙고 그리운 짱돌들.. 부산에서 공연올리고 며칠 지났네요..오늘은 저 멀리 대마도까지 가시거리가 확 나오는걸보니 엄청 맑고 춥기도 한가봅니다..(내가 그간 부산에서 본거중에 거의 역대급인데? 저렇게 확 보인다고?ㅋ) 일절하고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앞으로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나 조심스럽게 서로간의 약속을 진행해보려해요.. (그래도 우리 짱돌들한테 허락받고 응원도 받고싶어 몇자적는거에요~ㅎㅎ) 그동안 음지에서 내가 어디서 뭘하든 끊임없이 관심가져줘서 고맙고 과분한 사랑으로 날 받춰주어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겁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공연장앞이든 드라마속이든 어느 현장이든 또 만날 날을 기대하며~ (옷단디챙기입어라짱돌들ㅋ 엄청춥데이ㅋ)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탄압 거점 부산경찰서 폭파… 의열단 거사 1호 ‘부산의 윤봉길’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탄압 거점 부산경찰서 폭파… 의열단 거사 1호 ‘부산의 윤봉길’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어 단식하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게.” 1921년 5월 5일 대구감옥으로 면회 온 친구 최천택이 가져온 달걀꾸러미를 건네자 박재혁 의사(義士)는 이렇게 말했다. 엿새 후인 5월 11일 오전 11시 20분 박 의사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식음을 전폐한 지 열이틀째, 사형 집행 사흘 전이었다. 며칠 후 의사의 시신은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박 의사의 노모와 친구들, 수많은 시민이 역 앞에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천만뜻밖에 이 지경이 되니 하늘이 무너진 듯합니다.” 노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최초로 의열단 거사를 성공으로 이끈 주인공이자 ‘부산의 윤봉길’로 불릴 만한 박 의사가 순국한 지 97년이 흘렀다.취재차 찾은 부산 날씨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쯤 됐다. 서봉수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장 겸 삼일동지회중앙회장을 만나 박 의사의 생애와 기념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삼일동지회는 해마다 박 의사 추모제를 여는 등 기념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박 의사는 직계 후손이 없다. 박 의사 여동생 명진의 손녀인 김경은(53)씨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인데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아 가슴 아프다”고 말문을 떼었다.●정부·지자체 관심 부족… 담당자도 박재혁 몰라 김씨와 서 회장은 인터뷰 내내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고위층은 물론 현지 담당자 중에도 박재혁이 누군지 모르는 이가 있다고 했다. 1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는 ‘박재혁 거리’를 찾아가 보니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박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동구 범일동 183번지에서 가난한 선비 박희선과 어머니 이치수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생가 복원은 고사하고 아직 출생지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범일동 550번지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550번지는 1919년 이사해서 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현재 ‘183번지’는 공용 주차장이 돼 있고 ‘550번지’에는 민가가 있다. 박 의사는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여동생 명진과 어렵게 살았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다. 교육열 높은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의사는 1915년 부산공립상업학교(부산상고, 현 개성고)를 4회로 졸업했다. 박 의사와 동급생 최천택, 오택(오재영)은 친형제보다 가깝게 지낸 ‘삼총사’였다. 의형제를 맺고 부모상을 당하면 같이 상주 노릇을 하자고 다짐할 정도였다. 최천택이 남긴 글에 따르면 “박재혁, 김인태, 김병태, 김영주, 장지형(장건상 조카), 오택 등 친구들과 매일 만나 독립운동에 대한 전도를 모의하였다”고 한다.●고서적상으로 위장… 서장실 들어가 폭탄 던져 2학년 때인 1913년 박 의사와 최천택 등은 일제가 금서로 규정한 ‘동국역사’를 여러 학교와 학우들에게 몰래 나눠주다 발각됐다. 구한말 역사가인 현채가 지은 우리 역사교과서였다. 이때부터 박 의사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일경의 감시를 받게 된다. 3학년이 된 박 의사는 최천택 등 16명과 ‘구세단’을 결성, 지역 청년들을 규합하려 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탄로 나 1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다. 구세단은 1915년을 전후해 경남 밀양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이 결성한 ‘일합사’와 교류했다. 이는 나중에 박 의사가 의열단에 가입하는 계기가 됐다. 박 의사는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고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1920년 초 박 의사는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김원봉은 “부산경찰서장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는 의열단원 다수를 체포한 악질 경찰로 경남북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인 거물이었다. 박 의사는 김원봉에게서 거사 자금 300원과 여비 50원, 러시아제 원통형 폭탄 한 개를 받아 중국 상하이를 떠났다. ●“모든 책임 진다” 편지 붓대롱에 넣어 친구에 박 의사는 감시가 심한 관부연락선을 타려던 계획을 바꿔 대마도를 거쳐 부산항에 잠입했다. 선생은 상하이 동지들에게 ‘熱落仙他地末古 大馬渡路徐看多’(열락선 타지 말고 대마도로 간다)고 적은 엽서를 보냈다. 검열을 피하려고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부산에 들어온 날은 1920년 9월 6일이었다. 폭탄은 친구 오택의 집에 숨기고 “총독부를 폭파할 것”이라고 거짓으로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경은 오택을 찾아와 박 의사의 입국 경위를 캐물었다. 의사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폭탄을 숨겨둔 오택의 집으로 갔다. 오택은 유고집에서 이렇게 썼다. “박형이 시간이 절박하다며 맡겨둔 물건을 내어달라고 독촉했다. 나는 암실에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나왔다.” 박 의사는 가족을 부탁하면서 붙잡히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홀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박 의사가 중국 고서적상을 가장해 용두산공원 아래 부산경찰서에 도착한 것은 9월 14일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폭탄을 숨긴 짐꾸러미를 들고서였다. 최천택은 용두산공원에서 망을 보았다고 한다. 고서적상으로 위장한 것은 하시모토가 중국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 의사는 서장실로 들어가 서장이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라며 준엄하게 꾸짖고는 폭탄을 던졌다. “꽝” 하고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1층 유리창과 책상을 부수고 천장을 관통할 만큼 강력했다. 하시모토는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의사도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일본 관광객 보기 안 좋다”… 표지석도 안 세워 다친 박 의사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투탄 후 경남 전역에 비상령이 내려졌다. 일경은 경찰서 주변을 지나던 행인 등 수십 명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들였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잡혀와 심문을 받았다. 최천택 등 친구들도 붙잡혔다. 오택은 폭탄을 숨겨준 혐의로 1년 동안 수감됐다. 응급처치를 받은 박 의사는 공범을 불라는 일경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단독범행임을 고집했다. 박 의사는 부립병원 간호원을 통해 유치장에 갇힌 최천택에게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짧은 편지를 붓대롱에 넣어 전달했다고 한다. 망을 보았던 최천택(1897~1962·건국훈장 애족장)은 모진 고문을 받아 의식을 잃은 채 풀려났다. 치안 조직의 핵심인 경찰서장실에 폭탄을 던진 박 의사의 의거는 일본 본토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일본 신문들은 “일선(日鮮) 동화를 단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썼다. 박 의사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2심에서 사형으로 형량이 높아졌고 경성고법 상고심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사형이 선고되자 선생의 홀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대성통곡했다. 방청객 모두 따라 울었다. 폭탄 파편에 맞은 부상과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 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박 의사는 면회 온 사람들에게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의사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유해도 1969년 부산에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그러나 부산에서도 박 의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데는 정부나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동상조차 예산 한푼 들이지 않고 롯데그룹 지원으로 건립했고 그나마도 인적이 드문 부산 성지곡 수원지 맨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산길을 돌아 찾아간 동상 앞에는 등산객 몇몇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을 뿐이었다. 폭탄 의거가 있었던 옛 부산경찰서 자리엔 모텔과 상가가 들어서 있었다.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표지석도 없었다. “개인 땅이어서 안 된다”거나 “일본 관광객들 보기에 안 좋다”는 반대에 부닥쳐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김성곤의 시시콜콜] 약인가 마약인가, 마리화나

    대마초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1만년 전 도자기에서 대마의 섬유질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다. 대체로 대마는 우리 삼베처럼 섬유나 기름으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3000년 전부터 중국과 인도에서 의료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로마시대에도 대마로 만든 밧줄의 효용과 진통 효과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게 서양에 전해져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등이 대마 예찬론을 펴는 등 대마 흡연이 증가한다. 그렇지만, 대마에 대한 폐해가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에서는 1914년 아편과 코카 재배를 규제하면서 대마도 끼어들게 된다. 1937년에는 대마초를 불법화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때도 논란이 많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대마를 불법화한다”거나 “대마의 뛰어난 섬유 가치에 위협을 느낀 목화 재배 농가 등이 압력을 넣었다”는 등의 반대 목소리가 거셌지만, 법안은 통과됐다. 이후 전 세계에 대마에 대한 규제가 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월남전에서 마리화나(대마초) 사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부상자들은 물론 군인도 마리화나를 애용(?)했다고 한다. 대마의 의료적인 효능 때문에 의료용으로는 허용하라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인체에 미치는 해악이 술이나 담배보다도 덜한 만큼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캐나다가 지난 17일(현지시간) 0시부터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우루과이에 이어서 두 번째다. 이날 기호용 마리화나 소매점에는 줄지어 기다리던 구매자들이 마리화나를 손에 쥔 뒤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미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 세관은 캐나다에서 반입되는 마리화나는 압수한다고 여행객들에게 고지했다. 연방법과 주법이 따로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기호용 마리화나는 캘리포니아 등 9개 주(州)에서 합법화했고, 의료용 마리화나는 30개 주에서 허용했지만, 미 연방정부는 엄격하게 마리화나 유통·제조를 통제하고 있다. 대마의 유해성 논란은 쉽게 사그라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마가 인체에 해롭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캐나다 몬트리올 연구진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대마가 어린이의 인지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학습능력 저하와 주의력 결핍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마의 문제도 중독성이다. 한번 손을 대면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마가 아편이나 코카인 등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약을 접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마가 천식 등 폐질환과 파킨슨병, 뇌전증(간질) 등 수많은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대마는 술이나 담배보다 훨씬 끊기 쉽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월남전 때 마리화나를 접했던 미군들이 귀국하고 나서 쉽게 대마와 절연한 것을 예로 든다. 이들의 주장이 모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차츰 대마의 의료 효과는 차츰 인정을 받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대마 합법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미약하다. 대신 의료용 허용에 대한 요구는 지속해 왔다. 국내에 마리화나가 본격 상륙은 주한미군과 관련 있다. 이후 히피 문화가 들어오면서 연예인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피워왔다. 그러다가 곤욕을 치른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중현, 조용필은 물론 이장희 등 쟁쟁한 연예인들이 고초를 겪었다. 요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불꽃 송사를 벌이는 김부선씨도 대마와 인연이 깊다. 대마 때문에 5번이나 처벌을 받았다. 최근에는 젊은 연예인들도 대마와 엮이곤 한다. 지드래곤과 빅뱅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지난 9월 대마를 의료용으로 사용할 길을 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뇌전증이나 알츠하이머병(치매) 등에 대마를 활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호용 대마 허용은 언감생심이다. 캐나다의 마리화나 합법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있다면 실망할 일이지만, 우리 국민과 주무 부처, 국회의 정서 등을 감안하면 아주 먼 훗날에나 기대해 봄직한 일이겠다. 김성곤 논설위원 sunggone@seoul.co.kr
  • [금요칼럼] 이선제 묘지와 백제 관음상/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이선제 묘지와 백제 관음상/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펴낸 ‘이선제 묘지(墓誌) 귀향 이야기’라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필문 이선제(1390~1453)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출신 세종시대 문인이다. 호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을 지내기도 했지만, 무진군으로 강등된 광주를 광주목으로 복귀시키고 광주향약을 처음으로 실시해 지역에서 더욱 추앙받는다. 광주역 동쪽에는 그를 기리는 필문대로가 있다.묘지라면 죽은 사람의 일생을 글로 새겨 무덤에 넣는 기념물이다. 이선제 묘지는 위패 모양으로 빚은 분청사기로 특유의 옅은 푸른색 표면에 흰색 흙으로 글자를 상감해 더욱 인상적이다. 1453년(단종 1) 한양에서 세상을 떠난 필문은 이듬해 광주 남촌 만산동에 묻혔다. 묘지는 분청사기를 왕실에 공납하던 무등산 충효동 요지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덤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할 묘지의 ‘귀향 이야기’라니…. ‘불법 반출과 기증, 보물의 탄생’이라는 책의 부제만으로도 묘지가 어떤 역정을 겪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알 수 없는 시기에 도굴되어 1998년 밀반출됐고, 지난 2014년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인 소장가는 이것을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 대가 없이 기증했다.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반출 문화재 가운데, 돌아오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된 백제 금동관음보살상의 환수 협상이 가격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선제 묘지는 운이 좋아도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묘지를 소장하고 있던 도도로키 다다시는 협상을 시작할 당시 병상에 있었다.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본격 협상은 부인 구니에와 이루어졌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품위 있게 결론이 내려졌다. 묘지의 명문에 등장하는 이선제의 다섯째 아들 형원이 1479년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까지 갔다가 풍토병으로 순직한 한ㆍ일 교류의 선구자였다는 역사적 사실도 소장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인연이었을 것이다. 우리 협상 관계자가 2015년 병상의 도도로키와 처음 만나고 헤어지면서 한국식 큰절을 올린 장면도 인상적이다. 도도로키는 그 의미를 궁금해했고, ‘가장 경의를 표하는 한국인의 인사법’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선의의 취득자’이지만, ‘불법 반출 문화재 수장가’라는 불명예가 덧씌워진 상황이다.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협상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다. 협상단을 소장자와 만날 수 있게 연결한 사람이 일본 골동품상이라는 사실은 부럽다. 그는 “불법 반출 문화재를 거래한 사실이 알려지면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고미술상에게도 소장자에게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고미술 업계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백제 관음상과 이선제 묘지의 사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선제 묘지에 기품 있고 수준 높은 수장가가 있었다면, 백제 관음상에는 돈만 아는 사업가 수장가가 있다. 매매를 전제로 공개한 탓이겠지만, 문화재청이나 국립중앙박물관도 수장가와 액수 대 액수로 만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백제 관음상을 국내에 소개한 학자들이 처음부터 천문학적 액수를 거론하며 매매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을 서둘러 봉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6월 보물로 지정된 이선제 묘지는 지금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되새기면서 문화재 환수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 ‘제주도’를 사랑하는 지방의원들…고급호텔에서 호화연수

    ‘제주도’를 사랑하는 지방의원들…고급호텔에서 호화연수

    전국 시군구 기초의회 의원들이 제주도에서 국내연수를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외연수와 달리 국내연수는 보고 의무 등도 없어 그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아 왔다. 지난 4년간 국내연수에 쓰인 국민 세금만 약 118억원이었다, 15일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지난 4년 간(2014년 7월부터 2018년 6월) 212개 시군구 기초의회가 실시한 연수는 총 3097건이다. 이 중 국내에서 1802건, 국외에서는 1295건의 연수가 진행됐다. 정보공개센터는 전체 226개 시군구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데이터가 부실한 14개를 제외한 후 212개 시군구 기초의회의 연수관련 자료를 분석했다. 제주도에서 진행한 국내연수는 전체 국내연수의 30% 가까이 되는 526건이었다. 대표적 관광지인 부산은 121건, 속초는 83건 등으로 뒤를 이었다. 경기도 고양시의회, 경기도 화성시의회, 강원도 고성군의회, 경기도 수원시의회 등은 4년 동안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제주도에서 연수를 진행했다. 특히 경기도 고양시의회 의원들은 바톤 터치를 하듯 상임위별로 제주도를 찾았다. 문화복지위원회가 2014년 9월 1일부터 3일, 환경경제위원회가 3일부터 5일, 의회운영위원회가 11일부터 12일, 기획행정위원회가 한 달 후인 6일부터 8일까지 제주도에서 연수를 했다. 고양시의회는 이런 방식으로 4년간 총 18번 제주도를 찾아 연수비용으로 세금 6457만원을 썼다. 대구 북구의회는 4~5성급 호텔을 투어 하며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4년 8월에는 제주도 칼호텔에 갔다. 2015년 1월과 9월에는 제주도 오션스위치호텔에서 머물렀다. 2016년 1월 제주도 오리엔탈호텔, 2017년 1월에는 제주도 롯데시티호텔을 갔다. 지난 1월에는 제주도 빠레브호텔을 찾았다. 모두 2박 3일이었으며 총 8230만원의 세금이 제주도 연수에 들어갔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에 가서 국내연수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광주 동구의회는 2016년 5월 ‘의원역량 강화를 위한 국내 연수’를 한다면서 부산에 이어 대마도를 들렀다. 전남 곡성군의회, 전북 완주시의회, 경남 창녕군의회 등도 비슷하다. 이는 국내연수가 상대적으로 결과 보고서, 예산 제한 등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해외연수의 경우 형식적으로라도 심의위원회를 열고, 조례를 통해 계획서와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규정한 곳이 많지만 국내연수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연수를 했다고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뭘 했는지도 알기 어렵다”면서 “연수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도록 하고 그 결과인 보고서 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놀기 좋은, 보기 좋은, 쉬기 좋은, 먹기 좋은… 피서철 경남이 추천하는 4色 섬

    놀기 좋은, 보기 좋은, 쉬기 좋은, 먹기 좋은… 피서철 경남이 추천하는 4色 섬

    ‘섬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시 ‘섬’의 전문) 무섭게 펄펄 끓는 찜통더위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자 해수욕장, 계곡 등으로 피서객 발길이 몰린다. 북적대는 육지에서 잠깐이나마 비켜 여유와 자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은 다소 불편한 바닷길을 건너 섬을 찾는다. 경남도가 찾아가고 싶은 지역의 섬 18곳을 골라 추천했다. 휴식 유형에 맞췄다. 놀기 좋은 ‘놀섬’이 5곳,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섬’이 3곳, 구석구석 섬 경치를 구경하며 편안하게 쉬기 좋은 ‘쉴섬’이 9곳, 싱싱한 해산물을 먹으며 휴양하는 ‘맛섬’이 1곳이다.[놀섬] 출렁다리·집트랙… 놀거리 다채 24일 경남도에 따르면 18개 시·군 가운데 창원·통영·사천·거제시와 고성·남해·하동군 등 7개 시·군이 바다를 끼고 있다. 해안선 길이가 1554㎞에 이른다. 유인도 77개와 무인도 791곳 등 모두 868개가 있다. 통영시가 570개(유인도 43개, 무인도 527개)로 월등히 많다. 창원시 우도와 통영시 연화도, 욕지도, 비진도, 추봉도 등 5곳은 조용히 놀기 좋은 섬으로 선정됐다. 우도는 면적 0.111㎢인 작은 섬이다. 우도는 음지도와 보도교로 음지도는 연륙교로 연결돼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다. 체육·캠핑 시설을 갖춘 숙박시설 ‘우도 활성화센터’가 있다. 음지도~소쿠리섬 사이 길이 1.2㎞인 해상 공중하강체험시설 ‘진해해양공원 집트랙’이 곧 준공된다. 국내 해상 공중하강체험시설로는 가장 길다.연화도는 통영항에서 24㎞쯤 떨어졌다. 배로 1시간쯤 걸린다. 면적 1.721㎢로 100여가구가 산다. 바다 한가운데 핀 연꽃처럼 생겼다. 연화사와 보덕암 등 사찰 2곳이 있다. 해안 기암절벽과 바다경치가 그림 같다. 동두마을 인근 해안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아찔하다. 동두마을 동쪽 바다에 용머리 모양의 바위절벽(통영 8경)은 연화도 비경의 백미로 꼽힌다. 선착장에서 산길을 따라 동두마을까지 갔다 돌아오는 트레킹 코스(왕복 3~4시간)를 걸으면 섬과 남해 절경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민박과 펜션 10여곳이 있다. 우도와 보도교로 연결됐다. 인천에서 연화도를 찾은 대학생 이모(23·여)씨는 “시간을 들여 먼 길을 달려온 게 아깝지 않을 만큼 자연환경과 경치가 환상적인 섬”이라고 감탄했다. 욕지도는 면적이 23.95㎢로 통영시 전체 면적의 10.1%를 차지하는 큰 섬이다. 1221가구에 주민 2076명이 산다. 천황봉(해발 392m)에 오르면 한려수도 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전체 등산 코스(12㎞)는 4시간 30분쯤 걸리지만 중간중간에 등·하산 길이 있다. 섬 일주 도로가 잘 조성돼 차로 돌아볼 수 있다. 몽돌해수욕장, 흰작살해수욕장, 덕동해수욕장 등이 있다. 특산물인 고구마는 맛 좋기로 소문나 있다. 비진도는 길이 550m 해수욕장을 사이에 두고 안섬과 바깥섬이 아령 모양으로 이어진 섬이다. 통영항에서 13㎞ 떨어졌다. 배로 40분쯤 걸린다. 해수욕장 양쪽이 모두 바다여서 한자리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 선유대로 올라가 해안절벽을 따라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4.8㎞(3시간) ‘비진도 산호길’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환상적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민박집과 펜션이 있다.[미지의 섬]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원시 자연 통영시 추도와 남해군 조도, 하동군 대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고 쉴 곳이 많은 가볼 만한 섬으로 꼽았다. 추도는 면적 1.652㎞로 83가구 156명의 주민이 산다. 통영항에서 21㎞ 떨어졌으며 배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통영 섬 가운데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유일한 섬으로 알려졌다. 민박 10여가구(60여명 수용)가 있다. 후박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협곡과 기암괴석이 줄지어 있다. 조도는 면적 0.327㎢로 52가구에 주민 152명이 거주한다. 섬 모양이 새가 나는 모습을 닮았다. 기암괴석을 비롯해 원시 자연이 잘 보존돼 섬 전체가 자연공원이다. 대도는 하동군 유일의 섬이다. 물놀이 시설과 해양낚시터가 조성돼 있고 갯벌체험을 하기 좋다.[쉴섬] 둘레길 트레킹·해수욕장서 휴식 편안하게 휴식하기 좋은 섬으로 창원시 실리도와 통영시 수우도, 연대·만지도, 우도, 사천시 비토도, 신수도, 거제시 내도, 이수도, 지심도, 고성군 자란도가 선정됐다. 육지에서 500m쯤 떨어진 실리도는 면적 0.218㎢로 56가구에 주민 121명이 어업을 하며 산다. 배로 10분쯤 걸린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해군 주둔지였다. 낚시터가 많고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민박집도 있다. 사량면에 딸린 수우도는 면적 1.28㎢로 27가구에 주민 40여명이 산다. 섬이 소 모양으로 생겼고 동백나무 등 나무가 많아 수우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은박산(해발 195m)에 오르면 아름다운 남해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해벽등반 체험지로 소문난 고래바위와 신선대를 비롯해 해골바위, 금강봉, 암릉길 등 등산길 내내 비경이 펼쳐진다. 숙박 시설 복합휴양센터가 있다. 연대·만지도는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에서 3.8㎞쯤 떨어졌다. 뱃길로 30여분 거리다. 연대도(0.785㎢·51가구 주민 84명)와 만지도(0.232㎢·24가구 주민 34명)가 길이 98m 출렁다리로 연결됐다. 바다 경치를 감상하며 섬을 일주하는 가벼운 등산 둘레길과 해변 데크, 깨끗한 몽돌해수욕장이 있는 휴양섬이다. 연륙교가 있는 비토도는 해안생태 체험 관광지다. 신수도는 2010년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한국의 명품섬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면적 1.01㎢로 160여가구 340명이 있다. 배로 10분쯤 걸린다. 해안을 따라 바다와 숲을 동시에 구경하며 섬을 일주하는 탐방로와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서 300m쯤 떨어진 내도는 면적 0.257㎢로 9가구 12명이 거주하는 조그마한 섬이다. 배로 10분쯤 걸린다. 편백나무·동백나무·대나무 숲길과 멀리 대마도까지 보이는 전망길을 비롯해 섬을 일주하는 트레킹 코스(1시간 30분 소요)가 아름다운 힐링섬이다.[맛섬] 싱싱한 해산물로 1일 3식 이수도는 면적 0.394㎢인 작은 섬으로 거제시 장목면에서 600m쯤 떨어졌다. 시방선착장에서 배로 10분쯤 걸린다. 1시간쯤 걸리는 섬 일주 둘레길이 있다. 섬 주변 바다에서 생산된 싱싱한 해산물로 하루 삼식을 제공하는 ‘1일3식’ 먹고 쉬는 섬으로 유명하다. 지심도는 수백년 된 동백나무·후박나무가 우거진 원시림과 기암괴석 해안절벽이 어우러진 섬이다. 하늘에서 보면 섬이 마음 심(心) 자처럼 생겨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면적은 0.338㎢로 24가구에 39명이 산다. 장승포항에서 배로 15분쯤 걸린다. 일제강점기 건설된 일본군 포대 시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국방부가 섬 소유권을 갖고 있다가 지난해 거제시로 넘겼다. 이삼희 도 서부권개발국장은 “아름다운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펼쳐진 경남 남해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은 하나하나가 특색 있는 보물섬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휴양지”라고 추천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사람이 좋다’ DJ DOC 이하늘 “9살 때, 아버지 낚시하다가 돌아가셨다”

    ‘사람이 좋다’ DJ DOC 이하늘 “9살 때, 아버지 낚시하다가 돌아가셨다”

    ‘사람이 좋다’ DJ DOC 이하늘이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놨다. 26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이하 ‘사람이 좋다’)에서는 DJ DOC 이하늘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DJ DOC 멤버들은 18년 만에 함께 낚시를 떠났다. ‘낚시광’인 이하늘은 대마도로 낚시 여행을 떠났고, 생전 낚시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내가 9살 때 아버지가 낚시하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친구분이 바다에 빠지셨는데 구하러 들어가셨다가 못 나오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로 나는 물 근처에도 못 갔다. 근데 지금 이렇게 낚시를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낚시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내가 잘못한 게 많지만, 내가 온전히 잘못하지 않은 것도 많다. 낚시로 풀고 있다. 낚시 없었으면 진짜 죽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를 들은 김창렬은 “밖에서 볼 때는 강해 보이는데 되게 여리다. 밖에 나가서 약한 모습 안 보이려고 한다. 풀 데가 없으니까 낚시를 가는 것 같다. 형이 한동안 공황장애가 왔다. 그걸 이겨내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람이 좋다’ DJ DOC, 24년차 최장수 힙합그룹 “창렬스러움이란”

    ‘사람이 좋다’ DJ DOC, 24년차 최장수 힙합그룹 “창렬스러움이란”

    - 어서와~ 진짜 ‘창렬스러움’은 처음이지? ‘창렬하다’, ‘창렬스럽다’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신조어이다. 이는 DJ DOC의 김창열이 이름을 빌려주고 계약 한 한 식품 회사 제품의 내용물이 너무 빈약하다는 후기에서부터 시작된 말이다. 본의 아니게 대중에게 오해를 사게 된 김창열은 결국 ‘김창렬’에서 ‘김창열’로 활동 명을 변경했을 정도로 속앓이를 했다. 김창열은 DJ DOC의 멤버이지 결혼 16년 차 가장이다. 중2지만 또래보다 조숙하고 과묵한 아들 주환이(15세)가 걱정스럽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6살 딸 주하만 봐도 행복하다. 그가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결심한 데는 어린 시절 중동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로 인해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을 쌓지 못한 경험이 크다. 가족을 위한 책임감 하나로 13년 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김창열이 무대 위의 악동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의 진짜 ‘창렬스러움’을 공개한다. - 아버지를 잃게 한 낚시, 그럼에도 낚싯대를 놓을 수 없었던 이하늘의 숨겨진 사연 대공개 주옥 같은 명곡을 만들어 낸 DJ DOC의 리더 이하늘은 20년 간 낚시에 빠져있다. 전문 낚시꾼들도 인정할 만큼 실력이 대단하다는 이하늘은 사실 9살 되던 해 낚시로 인해 아버지를 잃었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는 물가에 가는 것조차 극심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늘은 할머니 몰래 낚시를 다녔다. 수많은 사건 사고와 구설수에 오르내려도 묵묵히 버텨야 했던 이하늘에게 낚시는 수면 아래서 열심히 버둥대는 백조처럼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야구에 빠졌던 것도, 볼링에 빠져 지내는 것도, 낚시에 집중하는 것도 숨구멍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이하늘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 18년 만에 떠나는 세 남자 대마도 낚시 여행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DJ DOC의 진솔한 이야기 리더 이하늘을 따라 DJ DOC가 18년 만에 함께 낚시 여행에 나선다. 여행에 함께 한 김창열의 아들 김주환에게 이하늘과 정재용은 낚시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큰소리 치지만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이하늘은 여행 중 주환이를 살뜰하게 보살피며 삼촌으로서 살가운 모습을 보이는 한편, 아들과 함께 다정한 모습을 뽐내는 김창열을 향해 연신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낚시를 마치고 김창열의 부산 처가로 향한 네 사람. 결혼 전 부모님을 모두 여읜 김창열에게 또 다른 부모가 되어준 장인, 장모가 반갑게 이들을 맞이한다. 한편, DJ DOC는 2010년 7집 ‘나 이런 사람’ 이후 8년 만에 새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다. 40대 중후반에 들어서 현실의 벽 앞에 고민도 많지만 불혹을 넘은 DJ DOC가 들려주는 음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이들의 신곡 작업 현장이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된다. 우리가 몰랐던 DJ DOC의 진솔한 이야기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는 오늘(26일) 저녁 8시 55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뭉쳐야 뜬다’ 대마도 패키지, ‘낚시 마니아’ 유시민 작가 합류

    ‘뭉쳐야 뜬다’ 대마도 패키지, ‘낚시 마니아’ 유시민 작가 합류

    유시민 작가가 ‘뭉쳐야 뜬다’ 대마도 패키지에 전격 합류했다. 오는 7월 방송되는 JTBC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이하 ‘뭉쳐야 뜬다’)는 프로그램 사상 최초 ‘낚시 패키지’를 콘셉트로 대마도 패키지를 떠난다. 유시민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한다. 유시민은 사실 낚시 전문 잡지의 표지까지 장식했었던 소문난 ‘낚시 마니아’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마도 낚시 패키지에 흔쾌히 합류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30년 낚시 경력 베테랑으로서 패키지 멤버들 사이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은 낚시뿐만 아니라 정치-역사적으로 한국과 큰 관련이 있는 대마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것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지식 소매상’으로도 사랑받는 유시민의 ‘알수록 쓸모 있는’ 대마도 배경 지식이 ‘뭉쳐야 뜬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유시민과 떠나는 대마도 패키지여행은 이날(19일) 촬영을 시작한다. 유시민이 출연하는 JTBC ‘뭉쳐야 뜬다’ 7월 중 시청자를 만난다. 사진=JT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봄날 충전 끝판왕 ‘뷰벤저스’ 떴다

    봄날 충전 끝판왕 ‘뷰벤저스’ 떴다

    호수처럼 잔잔한 쪽빛 바다에 크고 작은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남해. 바다, 섬, 하늘이 맞닿아 끝없이 이어지는 다도해 풍경은 사시사철 비경을 자랑한다. 특히 사방이 탁 트인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경치는 아름다운 수채화를 펼쳐놓은 것 같다. 경남 남해안 여러 지자체가 바다 가까이 전망 좋은 산을 활용해 다도해 경관을 조망하는 관광시설을 앞다퉈 설치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3일 경남도에 따르면 사천시 바다케이블카, 거제 계룡산 관광모노레일, 하동 금오산 집와이어, 통영 미륵산케이블카 등은 지역의 지리 여건을 활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바닥 투명한 ‘크리스털 케이블카’ 아찔 “케이블카와 산 정상 전망대에서 보는 주변 경치가 정말 멋집니다.” 지난달 28일 사천 바다케이블카 탑승을 마치고 내린 80대 부부 관광객은 “주변 경치가 너무 좋은 데다 케이블카 흔들림도 거의 없어 안전한 것 같고 탑승시간도 길어 좋다”고 말했다. 사천 바다케이블카는 사천시 동서동과 남해군 창선면을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 옆에 설치해 지난달 13일 개통됐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를 건너 섬을 돌아 육지 쪽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노선이다. 598억원이 들었다. 국내에서 가장 긴 2.43㎞로 한 바퀴 도는 데 25~30분이 걸린다. 바다~섬~육지 산을 오가는 국내 최초 케이블카라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개통하자마자 관광객이 몰린다. 정류장은 3곳이다. 대방 정류장에서 출발해 바다 건너 초양도 섬 정류장을 거쳐 대방 정류장으로 돌아와 각산(해발 408m) 정류장으로 올라간다. 각산 정류장에서 내린 탑승객은 각산 전망대를 구경하고 대방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편도 운행시간은 대방 정류장에서 초양도 정류장까지 5분, 대방 정류장에서 각산 정류장까지 7분쯤 걸린다. 전체 45대 캐빈 가운데 15대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이어서 바닥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면 발밑에 수십m 아래로 출렁거리는 바다가 아찔하게 보인다. 창 밖으로는 해안과 바다, 산 풍경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각산 전망대에 서면 창선~삼천포대교와 삼천포항을 비롯해 멀리 남해·통영·거제 지역, 크고 작은 섬, 금산과 지리산까지 보인다. 요금은 어른 기준 크리스털 캐빈이 2만원, 일반은 1만 5000원이다. 사천시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개통 뒤 하루 평균 탑승객이 평일 5000명, 주말 8000명에 이른다.●기울기 50도 넘는 급경사 모노레일 재미 더해 계룡산(566m)은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 중앙에 있다. 계룡산 자락에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중국군 포로를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다. 거제시는 유적공원에서 정상 부근 통신시설 유적 근처까지 산속을 꼬불꼬불 운행하는 관광모노레일을 77억원을 들여 설치, 지난 3월 3일 운행을 시작했다. 한 대에 6명이 타는 모노레일 차량 15대가 왕복 3.54㎞ 구간을 4분여 간격으로 다닌다. 아래 승강장에서 출발한 모노레일 차량은 1분에 70~80m씩 이동해 25~30분 뒤 상부 승강장에 도착해 탑승객을 내려주고 사람들을 태워 아래 승강장으로 내려온다. 해발 500m가 넘는 산 정상 부근까지 대나무와 소나무, 잡목 등이 우거진 숲속을 운행하는 모노레일이다 보니 레일 기울기가 50도가 넘는 급경사 구간 등이 반복돼 모노레일 타는 재미를 더한다. 상부 승강장에서 데크를 따라 걸어서 330m쯤 이동하면 사방으로 거제도 전체와 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남쪽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과 들판,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전망대까지는 능선을 따라 경사가 완만해 어르신이나 어린이도 편하게 갈 수 있다. 전망대 반대편 통신탑 쪽으로 200~300m 구간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으로 된 자연전망대로 올라가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다. 상부 승강장 주변 능선 지역에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를 관리한 통신대 유적이 남아 있다. 경주 지역 한 경로당 단체관광객으로 온 80대 할머니는 “산속에서 이런 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니 기술이 참 놀랍고 희한하다”며 신기해했다. 김길훈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팀장은 “매일 탑승 예약이 당일 오전에 매진될 정도로 모노레일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849m 금오산 정상서 20분 만에 하산 금오산 집와이어는 공중 높이 한 가닥 줄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아찔함을 느끼며 다도해 경치를 감상한다. 금오산 정상(849m)에서 산 아래 도착 지점까지 3.2㎞를 집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20여분간 탑승자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된다. 정상의 집와이어 출발지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출발을 기다리는 몇 초 동안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이 든다. 안전 관리자가 ‘오~사~삼~이~일~출발’ 하고 카운트다운을 마치는 순간 줄에 매달린 몸이 ‘덜커덩’ 하는 움직임과 함께 시속 120㎞의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 조마조마하던 두려움은 금방 쾌감으로 바뀌고 하늘과 다도해가 편안하게 품 안에 안긴다. 금오산 정상 출발 지점에서 하강한 뒤 두 번 갈아탄 뒤 목적지에 도착한다. 3개 구간 집와이어 길이는 3186m로 아시아에서 가장 길다. 33억원이 들었다. 732m 길이 첫 번째 구간이 시속 120㎞로 가장 빠르다. 첫 번째 환승지에서 다시 도르래를 줄에 걸고 두 번째 구간 1487m를 내려간다. 같은 방식으로 세 번째 구간 967m를 내려간다. 금오산 입구 매표소에서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안전모자와 도르래 등 장비를 받아 25분간 승합차를 타고 금오산 정상 출발 지점으로 이동한다. 최근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를 비롯해 중국대사관 관계자 10여명이 하동군을 방문해 금오산 집와이어를 체험했다. 추 대사는 “평소 모험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금오산 집와이어는 주변 경치가 멋져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고 칭찬했다. 집와이어는 어린이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지난달 경기도에서 온 85세 남성이 최고령 탑승자 기록을 세웠다. 대구에 사는 70대 중반 부부는 처음 집와이어를 탈 때, 출발대에 좀처럼 서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하다 탑승을 끝낸 뒤에는 금오산 집와이어 매력에 끌려 지금까지 6번을 탔다고 한다. 하동군과 집와이어 운영회사 측은 탑승자가 몰리자 지난 2월 하강 장비와 시설을 확충했다. 하루 200명 넘게 탈 수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탑승자가 평일 180여명, 주말에는 250여명에 이른다. 지난달 28일 집와이어 출발지에서 구경하던 40대 남자는 “나와 아내는 겁이 나서 집와이어를 타지 못하는데 75세 장모가 초등학생인 외손자·외손녀와 함께 타겠다고 해서 출발하는 것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여전한 인기 개통 10년을 맞는 통영시 미륵산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의 인기는 여전하다. 한려수도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미륵산(461m)을 오르내린다. 하부역(48m)에서 정상 근처 상부역(385m) 사이 1975m 선로를 8인승 곤돌라 48대(1대는 화물용)가 자동으로 순환하며 시간당 800여명을 수송한다. 상부역까지 10분쯤 걸린다. 상부역에서 20분쯤 걸어 정상에 오르면 한려해상공원 다도해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진 대마도를 비롯해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도 볼 수 있다. 2008년 4월 운행을 시작한 뒤 누적 탑승객 13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천 바다케이블카와 거제 관광모노레일은 새해 첫날 각산과 계룡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도록 새벽 시간에 해맞이 케이블카를 운행할 계획이다.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는 미륵산 정상에서 새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1월 1일 해맞이 케이블카를 운행한다. 글 사진 통영·사천·거제·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5월의 호국인물’ 이천 장군

    전쟁기념관은 조선 초기 대마도 정벌의 무공을 세운 이천(1376∼1451) 장군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1402년 무과에 급제한 장군은 1419년 왜구가 충청도 앞바다에 출몰하자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에 나서 적선 109척을 불태우고 20척을 포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던 장군은 1437년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8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여진족 근거지인 파저강 유역을 기습 공격하기도 했다. 오는 3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현양 행사가 열린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멕시코 장관 “관광지만이라도 대마초 합법화하자”

    멕시코 장관 “관광지만이라도 대마초 합법화하자”

    관광지에서만이라도 대마초를 합법화하자고 멕시코 관광부장관이 주장하고 나섰다. 대마초를 합법화해야 치안불안을 잡고 보다 안전한 멕시코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엔리케 데라마드리드 관광부장관은 최근 회의에서 "관광지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선 대마초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마초의 소비뿐 아니라 생산과 판매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보다 안전한 관광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선 지난해 살인사건 2만5339건이 발생했다.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하면서 '치안이 불안한 국가'라는 오명은 굳어졌다. 치안이 불안하면 관광객은 방문을 꺼리는 게 보통이지만 지난해 관광부문 멕시코의 성적은 꽤 괜찮았다. 특히 세계적인 관광지 칸쿤을 끼고 있는 킨타나 로주와 바하 칼리포르니아 수르주는 관광객 유치에서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선전했다. 칸쿤 등 킨타나 로주의 관광지를 방문한 관광객은 전년 대비 12% 늘어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마하 칼리포르니아 수르주를 찾은 관광객도 17% 증가했다. 대마초를 합법화하면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어 관광산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다는 게 데라마드리 장관의 주장이다. 대마초 정책을 180도 바꾸면 정말 치안이 안전해지고 관광객도 늘어날 수 있을까? 데라마드리드 장관은 치안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 요인으로 마약카르텔의 전쟁을 꼽았다. 대마초를 합법화하면 마약카르텔 간 전쟁도 끝나게 돼 치안불안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예산도 보다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데라마드리 장관은 강조했다. 그는 "대마초를 단속하는 데 드는 예산을 학교와 병원을 짓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마초를 합법화해도 대마도 관광이 성행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봤다. 그는 "캘리포니아 등 이미 대마초를 합법화한 곳이 많아 굳이 대마초 때문에 멕시코를 찾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며 부작용은 매우 적을 것이라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김재원 “물고기와 교감하는 중” 갯바위서 두 손 뻗는 모습 포착

    김재원 “물고기와 교감하는 중” 갯바위서 두 손 뻗는 모습 포착

    배우 김재원이 ‘도시어부’에 출연해 물고기와 교감한다.11일 방송되는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에서는 대마도에서 긴꼬리 벵에돔 낚시에 도전한 김재원의 모습이 공개된다. 김재원은 갯바위에 올라 두 손을 바다로 뻗는 등 물고기와의 교감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재원은 진지하게 “물고기와 교감하는 중이다”라고 말하며 ‘4차원 매력’을 뽐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그러다 잠시 후 실제로 입질을 받고 낚싯대를 움켜쥐어 이덕화와 이경규, 마이크로닷을 긴장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져 본 방송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김재원이 출연하는 채널A ’도시어부‘는 이날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사진=채널A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폐하께선 욕심이 습관이 돼”…조선 선비의 ‘돌직구 사직서’

    “폐하께선 욕심이 습관이 돼”…조선 선비의 ‘돌직구 사직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직서를 제출하는 상상을 한 번쯤 해 보지 않을까. 하지만 그 사직서엔 절대 진실은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당신(상사)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거나 이 월급으로는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거나 이런 진짜 이유 말이다. 그래서 쓰는 표현은 대개 ‘일신상의 사유’라는 한 줄이다.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다른 양상이다. 우리가 알 만한 역사 속 선비들 중 목숨을 걸고 최고 통치자인 임금에게 보란듯이 ‘돌직구 사직서’를 쓰고 떠난 이가 적지 않다. 신간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눌민)엔 정치철학자 김준태가 조선 선비들의 사직 상소를 풀어 엮은 주옥같은 사직서 28편이 담겨 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이 인조에게 올린 한성판윤(현 서울특별시장) 사직서는 그야말로 절절하다. “신하가 나랏일을 도모하면서 먼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기 혼자의 신념대로만 과감하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에 이르렀다면, 그 처리한 일은 비록 바르더라도 그 죄를 면할 수는 없사옵니다. 주화라는 두 글자가 신의 평생 허물이 될 것이나, 신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오명을 감당한 그의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조선 후기 의병장으로 대마도에서 순국한 최익현이 고종에게 쓴 ‘의정부 찬정’ 사직서는 그 의기가 날카롭고 높다. 최익현은 국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 고종이라고 봤다. “폐하께서는 욕심이 습관이 되셨다”, “큰 그림 그리는 일엔 어둡다”, “아첨을 좋아하고, 정직을 꺼리며, 안일함에 빠져 노력할 줄 모른다” 등 표현 하나하나가 비수가 돼 왕의 가슴에 꽂히지 않았을까. 이 밖에 임금을 정치적 고아라고 칭하고, 대비를 과부라고 서슴지 않고 쓴 조식의 대쪽 같은 사직서, 선비상을 오롯이 보여 준 조광조의 사직서 등 벼슬을 탐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내놓은 직언들이 세월이 흘러도 빛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日, 국경 인근 섬 외국인 토지 거래 제한 검토

    일본 정부가 국경 인근 도서 지역의 외국인 명의 토지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26일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정부가 국경 인근의 섬 480개에 대해 사유지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 섬들에 대해 소유자가 없는 땅이 어느 정도 있는지, 외국인 소유의 땅이 어느 정도 있는지 등을 조사한 뒤 관련 법률을 정비해 일본인의 토지 등기 촉진과 외국인 거래 제한 등의 제도화를 검토할 계획이다. 교도통신은 “안보와 자원 확보의 관점에서 국경 인근 도서를 조사하는 것”이라며 “소유자가 없거나 외국인이 소유한 도서 지역의 땅은 외국인들이 불법으로 상륙할 수 있고 불법 어로의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국경 도서지역의 토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추진하는 것은 주로 센카쿠열도 등을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경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중국군이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열도 및 동중국해의 무인도를 비롯한 일부 도서들에 대해 전격적인 군사적 탈취는 물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왔었다. 한편으로 일본의 일부 극우 언론과 국수주의 세력들은 최근 한국인들이 한국과 가까운 나가사키현 쓰시마(대마도)의 토지를 구입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계를 높이며 문제를 삼고 있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지난달 쓰시마의 토지와 건물을 한국인들이 속속 사들이고 있으며 쓰시마를 방문한 한국인이 전년에 비해 121.6% 늘어난 26만명에 달한다며 한국 자본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교도통신은 2013년 쓰시마에 한국계 기업이 해상자위대 시설 인근 토지를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여당 내에서 국방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기도 했었다고 소개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성리학의 나라 조선, 왕릉 옆엔 왜 사찰이 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성리학의 나라 조선, 왕릉 옆엔 왜 사찰이 있을까

    유교적 전통으로 조성된 조선 왕릉 무덤 지키는 ‘수호 사찰’과 짝 이뤄 능침사찰·능사·조포사 등으로 불려조선의 왕릉은 모두 42기다. 이 가운데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일괄 등재됐다. 개성에 있는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 제릉(齊陵)과 두 사람의 둘째 아들로 제2대 왕에 오른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厚陵)만 제외됐다. 조선왕조 27명의 왕과 왕비, 추존(追尊)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망라한 것이다. 한 왕조의 무덤이 이렇듯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왕릉 역시 유교적 장례 전통에 입각해 조성했다. 한편으로 전통적인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터를 잡고, 곽(槨)을 앉혔으니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나다. 조선 왕릉은 능침(寢)과 능침을 둘러싼 무덤 영역이 전부가 아니다. 조선 왕릉은 안장된 인물의 명복을 빌면서 무덤을 돌보는 역할도 하는 사찰과 짝을 이룬다. 유교적 이념에 맞게 국가적 공력을 들여 무덤을 조성했다면, 불교신앙을 이어 가고 있던 왕실이 종교적 추모시설을 더한 것이다. 그러니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원찰(願刹)을 제외시킨 것은 개인적으로 유감스럽다. 왕실 무덤의 수호사찰을 원찰이라 하는데 능침사찰이나 능사, 조포사(造泡寺)로도 부른다. 조포사란 ‘두부를 만드는 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두부’란 상징적인 표현일 뿐 제향에 필요한 대부분의 음식을 제공했다. 대신 원찰은 왕실이 제공한 토지로 사원경제를 유지했다. 원찰의 역사는 1397년(태조 6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貞陵)을 오늘날의 덕수궁 주변에 조성하면서 수호사찰인 흥천사(興天寺)를 함께 세운 것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덕수궁 뒤편의 마을 이름이 정동(貞洞)인 것은 바로 정릉이 있던 터이기 때문이다. 이후 정릉과 흥천사는 모두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 땅인 미아리고개 너머로 옮겨졌다, 잘 알려진 왕릉과 원찰로는 호불대왕(好佛大王)이라 불릴 만큼 친불교적이었던 세조의 남양주 광릉(光陵)과 봉선사(奉先寺), 세종대왕의 여주 영릉(英陵)과 신륵사(神勒寺),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의 화성 융릉(隆陵)과 용주사(龍珠寺)가 있다. 그런데 원찰이 왕릉의 전유물은 아니어서, 영조는 파주 보광사(普光寺)를 친어머니 숙빈 최씨의 무덤인 소령원(昭園)의 수호사찰로 삼았다.오늘 찾아가는 서울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그리고 봉은사(奉恩寺) 역시 조선시대 왕릉과 원찰의 관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 선릉은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 정릉은 제11대 중종의 무덤이다. 지금은 서울 강남구에 속한 일대는 과거 경기도 광주 땅이었다가 1963년 서울 성동구에 편입됐다. 한양 도성에서 한강을 건너야 하는 흔치 않은 왕릉이었다. 성종은 재위 26년에 이른 1494년 12월 24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나이 38세였다. 장례는 이듬해인 연산군 1년 4월 6일 선릉에서 치러졌다. 당시 지명은 광주 학당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36년이 지난 1530년(중종 25년) 10월 29일 정현왕후가 선릉의 동북쪽 언덕에 묻혔다. 선릉은 이른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제각을 비롯한 능침 시설은 하나지만 각각 다른 봉우리에 쓴 두 기의 무덤을 이렇게 부른다. 한마디로 합장묘가 아니라는 뜻이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제례가 이루어지는 정자각이 보이고 그 양쪽으로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과 제사 용구를 준비하는 수복방이 있다. 그 왼쪽 언덕에 동남향의 성종대왕릉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언덕에 서남향의 정현왕후릉이 있다. 무덤을 이렇게 쓴 것은 정현왕후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종의 첫 번째 왕비는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 한씨였다. 성종 즉위 5년 만에 세상을 떠난 공혜왕후는 파주 순릉(順陵)에 묻혔다. 계비는 숙의 윤씨였는데, 성종보다 12세 많았던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다. 세 번째 왕비가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후 윤씨다. 중종은 재위 39년 만인 1544년 11월 15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인 인종 1년 2월 3일 당시에는 고양 땅이었던 파주의 장경왕후 희릉(禧陵) 옆에 묻혔다.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反正) 세력은 쫓겨난 임금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이 왕비 자리에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새로 들인 왕비가 장경왕후 윤씨다. 장경왕후는 9년 만인 1515년 세상을 떠났다. 중종의 무덤은 18년이 지난 1562년(명종 1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선릉을 처음 조성할 당시 수호사찰은 견성사(見性寺)였다. 통일신라 시대인 794년(원성왕 10년) 연회국사 창건설이 전하는 사찰이다. 봉은사도 절의 역사가 견성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본성에 곧바로 다가가 부처에 이르는 것’(見性成佛)은 선불교의 종지(宗旨)다. 연산군이 선종사찰을 선릉의 수호사찰로 삼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연산군은 작고 낡았을 견성사를 중창하고자 했다. 신료들은 유교국가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창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 절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연산군일기’에는 이런 대목도 보인다. 1495년(연산군 1년) 12월 7일 기사다. ‘지금 견성사가 능 곁에 가까이 있어 중들이 불경 외는 소리와 새벽 종소리 저녁 북소리가 능침을 소란하게 하고 있으니, 하늘에 계신 성종대왕의 영이 어찌 심한 우뇌(憂惱)가 없으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어찌 사찰은 새로 창설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철거하지 않고 재(齋) 역시 고례(古例)라 하여 굳이 지내십니까. 바라옵건대, 다시 깊이 생각하소서.”유신(儒臣)들은 선릉 영역 내부에 있었던 견성사를 멀리 옮겨 지으라고 압박했다. 그런데 연산군은 1498년 실제로 견성사를 옮겨 짓는 공사를 시작했던 것 같다. 이해 5월 23일 예조판서 박안성은 ‘신은 견성사가 능실과 너무도 가까워 만약 철거를 못 하겠으면 먼 곳으로 옮겨 지어야 한다고 했던 것인데 ‘대신이 주상의 뜻에 영합해서 그렇게 만든다’는 상소가 있었으니 곧 신을 이르는 것’이라면서 사직을 청한다. 신하들의 반대를 연산군은 새로운 절을 짓는 명분으로 역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절이 봉은사다.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의 와중에 파헤쳐지는 참변을 겪었다. 성종과 정현왕후의 관은 왜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중종의 시신 또한 찾지 못했다. 임진왜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에 두 능을 파헤친 자를 잡아 보내라고 가장 먼저 요구했다. 일본은 마고사구(麻古沙九)라는 대마도인을 범인이라며 붙잡아 송환했지만 당사자는 부인했다. 마고사구는 ‘도주 군관의 노비로 나와 부산 선소(船所)에 머물렀을 뿐 서울에는 올라오지도 않았으니 능침을 범한 연유를 전연 알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 또한 웃지 못할 일이었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日방송 안방 침투 못하게 위성안테나 수입 감시”

    “日방송 안방 침투 못하게 위성안테나 수입 감시”

    일본 만화·영화 등 문화콘텐츠는 1998년이 돼서야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졌지만 정부는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막아 왔다. 그러다 1980년대 일본 방송이 국내에서도 수신되는 ‘전파월경’이 나타나자 정부는 이를 차단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사실이 기록된 당시 문건이 19일 공개됐다.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보관한 지 30년이 지난 비공개 기록물 9만 534권을 공개 결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중에는 ‘일본방송관계’, ‘일본TV혼신’ 등 전파 유입으로 방송을 통해 일본 문화가 국내에 퍼지는 걸 막으려는 정부의 대책이 담긴 문서도 포함됐다. ‘일본방송관계’에는 일본 위성방송이 국내 TV에서 잡히기 때문에 당시 수입돼 유통되고 있는 위성방송 수신기를 수입 감시품목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 ‘일본TV혼신’에는 일본 대마도에서 보내는 방송파가 가까운 제주·부산에서도 수신되자 어떻게 이것을 차단할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기록됐다. 김대희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이 기록물들은 당시 정부가 방송문화 자주권을 수호하고자 노력한 사실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비공개 기록물은 30년이 지나면 재분류 작업을 거쳐 내용을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정보공개법 제9조에 따라 국가 안보와 관련되는 등 비공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면 대부분 공개된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들은 홈페이지 작업이 끝나는 오는 12월쯤 국가기록원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으며 당장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열람할 수도 있다. 이상진 국가기록원장은 “실생활과 관련된 기록물을 중심으로 공개 전환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천리안 수명 다했는데… 예보에 한 번도 못 쓴 기상청

    천리안 수명 다했는데… 예보에 한 번도 못 쓴 기상청

    지난 5년간 기상청의 강수예보 적중률이 50%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35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천리안위성 1호를 만들고도 관측자료 활용 기술이 없어 한반도 예보에 한번도 쓰지 못한 채 설계수명(7년)이 다한 사실도 드러났다. 기상청이 지난해 발령한 3차례 지진조기경보에 평균 26.7초가 걸려 같은 기간 일본이 7차례 발령한 경보 소요시간(7.2초)과 20초 가까이 차이가 났다.감사원은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기상예보 및 지진통보 시스템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긴급재난문자(CBS)가 전달되는 데 10분가량 걸려 문제가 되자 감사원은 기상청과 기상산업진흥원, 지질자원연구원 등 8개 기관에 31명을 투입해 올해 3월 20일부터 감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33건의 위법·부당·제도개선 사항을 찾아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기상청의 강수 유무 적중률은 평균 46%에 불과했다. 2012년 47.7%였던 적중률은 지난해 45.2%로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졌다. 기상예보 강국인 영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적중률은 7% 포인트가량 낮았다. 감사원은 “기상청은 강수 유무 정확도가 90%가 넘는다고 발표하지만 우리나라는 비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정확도(ACC)보다는 적중률(TS)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수치 예보에 활용하고자 2010년 6월 천리안위성 1호를 우주로 보냈다. 하지만 정작 한반도 관련 자료를 활용하는 기술은 개발하지 못해 우리나라 기상 예측에 활용하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천리안1호는 한반도 예보에는 써 보지도 못하고 올해 6월 설계수명을 마쳤다. 감사원은 기상청장에게 천리안위성 등 위성관측자료 활용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구하고 천리안위성 2호(내년 5월 발사 예정) 관측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통보했다. 기상청은 2015년 1월부터 지진조기경보 제도를 도입하면서 발령 조건을 ‘최소 15개 관측소에서 20번 이상 P파를 탐지하고 20초 이상 지속될 때’로 설정했다. 하지만 일본 등 외국에서는 최소 2∼6개의 관측소 정보만을 쓰는 등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중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국의 지진조기경보 소요시간은 평균 26.7초인데 비해 일본은 7.2초로 우리를 크게 앞섰다. 감사원은 기상청이 다른 조건은 그대로 두고 ‘15개 관측소 탐지’ 조건을 8개로만 줄여도 소요 시간을 12∼17초가량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진조기경보 구역에서 대마도와 북한 지역을 제외한 게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들 지역도 지진조기경보 발령이 가능하도록 재설정하라고 통보했다. 아울러 감사원은 기상청이 2010년 7월 마련한 ‘지진관측망 종합계획’도 손질하라고 통보했다. 기상청은 지진관측 소요시간을 5초 이내로 줄이기 위해 전국에 총 314개 관측소를 격자망 형태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지진관측소를 신설하고 있다. 그런데 기상청은 당초 취지와 달리 지진 다발지역과 주요 시설물 설치지역에 관측소를 계획보다 촘촘하게 설치해 국내 면적의 약 20% 지역에서 관측 공백이 발생하게 됐다고 감사원은 내다봤다. 공백을 메우려면 82개 관측소(147억여원 소요)를 추가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한국가스공사 등 유관기관 지진관측소를 관측망에 활용해 설치비를 줄이라고 제안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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