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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활력의 원천(운남성을 가다:6·끝)

    ◎61만개 「향진기업」이 성장이끈다/「중국판 새마을운동」으로 개방 주도/관광·연초산업 발달… 재정 73% 담당/도로·공항에 집중투자… 골프·레저사업 진출도 『향진기업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미래이다』­중국 운남성 백족(백주)자치주에서 10여명의 종업원과 함께 향진기업을 운영하는 장사신공장장의 향진기업 예찬론이다. 장공장장이 중국의 밝은 미래라고 말하는 향진기업은 말단 지역행정기관이 운영하는 기업들이다.우리나라 새마을 공장이나 농공단지 공장과 비슷하게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이 때문에 향진기업을 중국판 새마을 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2백억 위안 생산 향진기업은 관광산업,연초산업등과 함께 개혁·개방정책으로 경제적 도약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운남성의 「지속적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등장하고 있다.운남성 정부의 유경부성장은 『61만여 향진기업의 총생산량은 현재로선 성의 총생산량 6백억위안(약6조원)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2000년까지는 3분의2 정도로 끌어 올리고 싶다』고 말한다. 백족자치주의 수도 대리시에서 북쪽으로 얼하이 호수를 따라 20분쯤 달리면 대리시 희주진 주성염색공장이 나온다.전통문양과 염색술을 이용한 의류·면직물산업에 힘을 쏟고 있는 백족들의 향진기업 현장이다.지난해 매출액은 8백만위안.상근 근무자가 10여명 정도에 불과한 사실에 비하면 적잖은 매출 규모다. 주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기도 한 이 공장의 장공장장 명함 뒤에는 「백족 염색기술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선전문구가 영문과 한문으로 씌어있다.이곳의 당간부 역시 주민소득향상을 위한 세일즈맨이라는게 그의 말이다.대리석가공과 유가공품 제조등 식품제조업도 백족 대리자치주의 말단지방행정조직인 희주진 공산당조직이 운영하는 향진기업중 하나.인구 8천여명의 마을 전체 연수입의 절반가량을 이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그는 『염색창과 대리석가공업의 성공은 도랑에서 보석을 주웠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유색,디자인 고침 기묘한 바위로 숲을 이룬다는 이른바 석림으로 유명한 인구 20여만명의 노남의향진기업은 3천여개.공예품,대리석가공,관광기념품제작등이 주요 품목이었다.소수민족들의 고유한 색채와 디자인으로 만든 제품들은 새로운 유망상품으로 주민들의 지갑을 두툼하게 해주고 있다. 향진기업은 그러나 최근 그 영역을 시멘트공장과 골프장 및 콘도미니엄형 휴양지건설까지 점차 넓히고 있다.골프장의 경우 싱가포르 환태평양출판공사가 1천만달러를 대고 나머지 30%가량은 노남현정부가 대는 형식으로 올해초 착공,내년말이나 내후년초 쯤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운남성은 담배산업으로도 유명하다.운남은 「홍탑산」·「아시마」·「홍매」·「운연」등 여러 종류의 유명담배를 생산하며 중국의 담배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고급담배 생산량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이 지역 담배산업은 운남 경제의 기둥이다.성 재정의 73%가 연초산업에서 나올 정도이다.80년대초 연해지역 성들이 개방구를 만들어 외국자본을 유입,경제개발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이곳은 담배라는 전략상품에 집중투자,개방이후 지난 15년동안 평균 9.6%의 경제발전을 이룩해 냈다. ○연평균 9.6% 성장 세계적 금연운동으로 담배메이저 필립모리스등이 식품분야로 진출,사업다각화를 꾀했듯이 운남의 담배업체도 본격적 사업다각화 작업에 들어갔다.초웅시 권연창(담배공장)의 납종회 지배인은 『이미 2년전부터 순수입의 30% 가량을 비료공장및 플라스틱가공업,식품공업,호텔건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며 『10년쯤 뒤에는 담배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족 대리자치주 양신전부주장은 올해 10월말 대리시공항이 완성될 예정이라며 지난해 중앙정부가 운남을 주요 관광개발지역으로 결정하면서부터 대이·곤명·노남·초웅·경홍 등을 중심으로 도로,공항등 사회간접자본건설과 호텔건설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아공 「선시티」(아프리카 기행:11)

    ◎밤이없는 「25시의 도시」… 세계 관광명소로/서구문명 태동기에 화려한 왕궁건설/화산으로 잿더미… 「잃어버린 도시」로 전락/91년 다시 개발… “옛영화 되찾기” 열정 불태워 선시티(Sun City)는 보푸타츠와나의 한 가운데 문명의 손길이 빗겨간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선시티에는 이렇다할 경계선도 없고 밤의 적막도 없는 25시의 도시라 할 수 있다.매일 낮과 밤,고대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아프리카의 정열을 분출하고 있는 도시중의 도시다.아주 옛날,한 두개의 돛을 단 배 이상의 해상교통 수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서구 문명이 아직 태동기에 있을 때,아프리카 북부로부터 화려한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한 부족이 이곳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화산의 분출구 주변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 지역을 「태양의 계곡(Valley of the Sun)」이라 이름붙이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땅은 비옥한데다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한복판 답지않게 물도 풍부했다.더군다나 운좋게 금광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여 여기서 캐낸 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용맹과 자비를 겸비한 훌륭한 왕이 거처할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도 지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어느 날 갑자기 다시 시작된 화산활동은 이들이 쌓아올렸던 찬란한 왕궁과 문명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주민들도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 먼 곳으로 도망을 쳐야했다.잡초만이 무성한 옛 영화의 도시의 폐허모습으로 그렇게 버려졌었다. ○금캐내 부를 축적 1991년 문명인들에 의해 다시 햇빛을 보게 돈 「태양의 계곡」은 「선시티의 잃어버린 도시(Lost City at Sum City)」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발되어 오늘 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잃어버린 도시의 옛왕궁 터 옆에 자리잡은 「잃어버린 도시의 궁전(The Palace of the Lost City)」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는 그 엄청난 규모와 호화로움에 한동안 할 말을 잊어버렸다.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이런 도시가 들어서 있다니,호화의 극치를 이룬 이호텔은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귀빈으로 접대하고 있다.이 호텔의 건물은 복원된 옛 왕궁과 함께 찬란했던 왕국의 영화를 되살려 주는 왕관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3백38개의 호화로운 객실과 대형 실외수영장,세계 각국의 일류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다섯개의 식당,골프 코스,초대형 무도장이 갖추어져 있다. 팰리스호텔의 내부는 복원된 옛 왕궁의 모습으로 북아프리카의 문화적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그러한 문화유산을 그대로 본떠 지어서인지 수많은 아프리카의 맹수들과 짙푸른 식물들로 장식되었다.야자수 잎이 정교하게 조각된 벽장식의 라운지가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머리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조각한 의자등받이 장식이 인상적인 식당도 자리잡았다.25m 높이의 망루에는 코끼리 상아와 야자수 잎을 야자줄기로 엮어 덮은 듯한 모양의 지붕이 있다.그리고 그 지붕 바로 아래에는 횃불을 태울 수 있는 등잔모양의 커다란 그릇이 보였다.밤이면 이 등잔에 켜진 횃불이 새벽까지 밝혀준다.아마도 옛날의 그 끔찍한 대지진이 있기 전에 이곳 왕궁에서도 이런 높은 망루에서 왕실의 경비병이 멀리서 오는 국빈의 도착을 알리거나 사냥감의 움직임을 관찰했을 듯하다. ○펠리스호텔… 큰 자랑 이 호텔에서 가장 인상깊은 예술품은 아마도 중앙 홀의 천장화일 것이다.25m 높이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이 벽화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직경이 16m에 달하고 중앙에는 천장이 있으며,모두 여섯부분으로 그림이 나뉘어져 있다.치타,얼룩말,원숭이,영양 등이 아프리카 밀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을 완성하는 데 자그마치 5천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천장 바로 아래 바닥에 깔린 30만개나 되는 대리석 조각 모자이크가 무척 아름다웠다.팰리스호텔 주변 숲의 넓이는 약 7만5천평으로 대략 22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구역마다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열대림을 이루었다.특히 만포기 이상의 야생란이 자라 그 운치는 더욱 대단했다. 옛 왕궁터 안에는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긴 파도의 계곡에 파도풀장이 있다.지진이있기전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그러나 지진이 일어난 후로는 매90초마다 건헐온천이 솟아나와서 마치 바닷가에서 깨끗한 모래사장과 함께 해변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효과를 낸다.이 간헐온천의 파도를 이용해 이곳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도의 계곡을 지나면 시간의 다리(Bridge of Time)가 있다.이 다리는 옛 왕궁터와 대무도장을 연결해 주는데,다리 난간에는 표범과 코끼리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지각운동이 있을 때마다 다리 아래로부터 뜨겁고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다리가 흔들리기도 한다. ○간혈온천 솟아올라 파도의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원숭이 분수광장(Monkey Spring Plaza)은 옛 도시에서 심각한 가뭄이 들었을 때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무열매를 따서 사람들이 가뭄을 견디도록 도와주었다는 원숭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네 마리의 원숭이는 각각 동서남북을 정면으로 향하고 앉아 있으며,그들이 앞으로 내뻗은 팔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목마른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듯 하다.지각운동 때문에 땅이 흔들릴 때면 원숭이들의 머리에 얹힌 커다란 그릇에서 물이 흘러 넘친다고 한다.
  • 아테네의 교훈(외언내언)

    10일부터 그리스 아테네시 도심에서 자동차가 사라졌다.민주주의 발상지 아크로폴리스광장을 비롯한 아테네 중심지 2㎦에 차량전면통행금지가 실시된 것이다.택시도 물론 안되고 오토바이도 안되는 철저한 통금이다.우선 3개월간 실시해본다는 것이긴 하나 오염이 완화 될 때까지 지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에 있어 대기오염 피해는 80년대초부터 심각한 것이었다.아크로폴리스에서 암스테르담 왕궁까지 모든 역사유적들이 누구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만큼 부식되고 있다.그리스의 산성부식연구전문가 스콜리키디스는 이때「아테네의 유적이 그동안 2천4백년에 걸쳐 부식된 정도보다 최근 20년간 오염에 의해 부식된 정도가 더 크다」는 보고를 했다.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코가 없고 귀가 없는 고대 대리석 흉상들이 이탈리아에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인체의 피해도 확대되고 있다.아테네에서만 현재 매년 1백명이상이 순전히 대기오염때문에 숨지고 있다.그래도 아직은 멕시코시티보다는 좀 나을지 모른다.멕시코시티에서는 신생아 10명중 7명이 WHO(세계보건기구)기준치를 넘는 납을 가지고 태어난다. 남의 일처럼 보아서는 안된다.아테네인구는 4백만명,차량수는 1백20만대다.인구 1천만명에 차2백만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서울에서도 지금처럼 별다른 대책없이 지내면 언제 같은 입장이 될지 알 수 없다.지난주 발표된 환경부 토양조사자료를 보면 탑골공원바닥에서 기준치를 훨씬 넘는 카드뮴이 확인됐다.어린이대공원지역에는 비소까지 있었다.기관지염이나 호흡기질환은 사방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89년 미국은 연간사망자중 2%인 5만명이 대기오염물질의 피해자라는 통계를 내놓았다.한마디로 말하자면 아테네의 경우 처럼 마지막단계에서 공해통제를 할일이 아니고 진작에 공해예방을 위해 힘써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항일투사들의 유택(두만강 7백리:7)

    ◎나철·김교헌·서일 선생 묘 새 단장/강양안 마을마다 혁명열사비 우뚝 솟아/한·중수교후 관심 높아져… 모국이장 한창 연길시 사수에서 북쪽 골짜기로 20리가량 올라가노라면 금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이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소나무숲이 나오는데 그안에 유달리 깨끗이 가꾼 묘소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묘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누구도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길이 없다.다만 숨을 거둘 당시 19살이라는 것과 조선족 항일독립군 젊은 전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연세가 높은 이상헌(79)노인은 그 무명의 젊은 전사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정황을 소상히 기억했다. 『꼭 쉰 일곱해전 일입네다.뒷산에서 드문이 총소리가 들려오더니만 일본놈들과 자위단들이 어린애 같이 앳된 새파란 청년을 끌고 마을로 들어왔디요.그 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다 보는 앞에서 청년을 신문합데다.이름을 물으니까 「항일독립군」이라고만 기래요.그 날 왜놈 장교의 군도에 목이 잘려 죽고 말았디요.하도 기막히고 딱해서 유체를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댔습네다』 ○무명열사 묘지는 쓸쓸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는 혁명열사비가 세워졌지만 산 언덕 공동묘지에 임자 없이 쓸쓸히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풍우의 시달림에 자취를 잃었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용정시 삼합진 안미대골로 얼마간 들어 가다가 화선 누비골에 있는 묘지앞에는 돌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고 한다.비석에는 김병덕 지묘라고 씌어있었다.부근 마을 사람들은 독립군 대장의 묘라고 했다.똑같은 항일투사의 묘지이다.하지만 계급투쟁 세월에 그 누군들 감히 돌볼 수가 있었으랴.몇해전 김병덕의 묘지는 파엎어졌고 대리석 비석도 도난을 당했다.오소리가 묘지에 굴을 뚫고 보금자리를 꾸민 것을 발견한 부근의 사람이 묘를 헤치고 오소리를 잡아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 항일열사들의 시신은 일찍 북한으로 이장되었다.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때 친선을 다졌던 터이라 이장이 쉬워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사이에 시신이라도 두만강을 건넜다.이에 비해 한국에 가까운 연고를 둔 항일열사들은 상대적으로 대접이 소홀했다.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항일유적이나 열사들의 묘소가 큰 수모를 겪었다.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항일열사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넋이라도 살아서 가장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을 열사가 있다면 나철,김교헌,서일 선생일 것이다.한국 대종교의 3종사로,또 항일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묘소는 화룡시 삼도구 청호촌에 있다.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항일역사유적지로 지정한데다 한국의 대종교가 묘역을 정화했기 때문에 제법 볼품이 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청산리전투를 총지휘 이 묘역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패거리와 추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비석을 모두 내동댕이 쳐서 청호촌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댓돌로 쓸 정도였다.문화혁명이 가시고 뜻있는 사람들이 묘비석을 찾아내 세웠지만 김교헌선생의 묘비는 끝내 못찾았다.그래서 몇해전에 묘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대종교는 독립군조직 서로군정서를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서안선생은 그 총재로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지금은 일본인들까지 유골을 찾으려 두만강변의 연변땅을 방문하고 있다.물론 침략자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얼마전에 한 일본 여인이 용정시 백금향으로 와서 자기의 오빠 묘를 찾았다.묘지 자리를 상세히 그린 지도까지 들고 온 일본 여인을 마을 노인들이 안내했다.묘가 있었다는 장소는 본래 일본 삼림경찰의 묘역이었다.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본경찰은 둘 뿐이었다는데 목숨을 살려 평정대 마을까지 이르렀다가 그중 하나가 병으로 죽어 그곳에 묘를 썼던 것이다.그런데 봉분이 사라져서 어방으로 묘자리가 짐작은 가도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독립군 김덕형의사는 웅진,나진 등 두만강 연안의 조선을 다니며 군자금을 모았던 사람이다.1921년 경술년 토벌 때 어느날 저녁 군자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흥에 있는 집으로 들어 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포위에 걸려희생되었다.그가 죽은 후 식구들은 군자금을 독립군에 전달할 수 없었다.많은 액수의 군자금은 그 집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김덕형의 아들 두 형제는 시름없이 공부를 하였다.광복이 나고 1947년 토지개혁을 하게 되자 생활이 유족했던 그 일가는 청산을 당해 러시아제 금장표 재봉틀마저 빼앗겼다.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재봉틀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고철로 팔아버렸다.그집 큰 아들은 북한에 들어가 죽고 작은 아들 김성록은 지금 한국에 산다.6·26전쟁 때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에 온 김성록은 중국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북흥의 조선족 친구가 만난 일도 있다.그는 한국군 대좌(대령)군함(계급장)을 달고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보훈처에서는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안화춘 선생의 도움으로 중국내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있다.안화춘 선생은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이 땅을 메주 밟듯 하고 다닌다.이번 두만강 답사길에서 연변 도처에서 희생된 선열들의 자취를 잡을 수 있었다.조창렬노인이 들려준 경신년 대토벌 당시 상황도 그 한토막이다. ○선열들 발자취 곳곳에 부암동에서 독립군 한창준과 이씨가 체포되어 불에 타 죽었댔습니다.시체를 감장하려니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가 없었디요.일제 놈들은 의병대장 최덕균과 남상윤(남풍수로 불림)선생도 모진 고문을 했다고 기래요.눈에다가 고춧물을 부어 넣고 신문을 했으니끼리 죽을 수 밖에….』 선열들의 비장한 최후는 눈물 없이는 들을수 없었고 일제와 주구들의 만행은 의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부르는 독립운동의 무대 연변은 이렇듯 많은 항일투쟁의 사연을 안고 있다.나는 옛 용정 대성중학교(현재 용정시 제2중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 한구절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무수한 선열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다.
  •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걸작 건축감상:13)

    ◎엔타시스양식의 과학적 설계기법 탁월/착시현상까지 보정… 인간 공학적 건축 완성/내부엔 금·상아로 만든 아테나여신상 세워/기원전 5세기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기둥만 46개 작열하는 태양과 코발트빛 바다.그리스인은 그들의 신(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문명의 역사를 열어보면 무형의 신의 모습을 헤아리며 인간 자신을 신 앞에 봉헌할 때 집회의 장소로서의 종교건축이 무수히 만들어졌다.그러나 인간이 만든 신,그리스인의 영웅이자 그들이 가꾸어 온 우주라는 꿈의 본질을 추구하는 의식에서는 신을 위한 무대가 준비되고 그들 고유의 장소가 마련되었다.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은 인간의 땅에서 축배를 들었다. ○자신들이 신을 만들어 그리스의 신전 건축은 곧 신의 「집」이고 신의 「터」였다.교회에서는 예배를 보는 교인의 무리가 한 지붕 밑에서 신과 교감하지만,그리스인은 신전을 배경으로 노천에 모였다.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굳게 믿었다.그리스인의 신은 그들 자신이 만들었다는 필자의 단언은 그들의 분노를 샀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올림포스산의 주신 제우스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을 때,우리 외지인의 눈에는,제우스의 너무나 재미있는 불멸의 투쟁사가,그리고 디오니소스의 광란이 거대한 한편의 드라마로 펼쳐보인다. 희랍공화국.발칸반도 최남단의 국가로서 알바니아·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와 면하여 있다.무려 1천4백여개의 섬이 한반도의 절반 남짓한 국토의 5분의1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도의 삼면은 이오니아해와 지중해,그리고 에게해가 감싸고 있다.2천9백17m의 올림포스산을 최고봉으로 하여 반도의 척추라 할 수 있는 핀도스 산맥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뻗쳐있다.국토 곳곳의 활화산은 아직도 그 열기를 머금고 있어서 1953년에는 수백명이 사망하는 지진의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기원전 2500년 무렵 크레타 섬에는 청동기문화가 꽃을 피웠다.그들의 청동기시대에는 문자가 존재하였고,금속문화가 단지 계급의 형성과 문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문명의 창조적인 확대를 가져오는 전기가 되었다.이러한 사실들은 20세기에 이르러 건축가에 의해 고대문자의 해독이 가능해짐으로써 알려지게 된 것이다.그들의 문화는 그 문화의 실증적 유물을 수없이 남기고 있지만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문학을 통해서 그리스인이 마음껏 펼쳐보여준 꿈의 정서이다. 그들의 신화가 갖는 독특함의 하나는 신화가 곧 일상의 진리이며 역사적 사실이기도 해서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트로이 전쟁처럼 서사시로 묘사된 유명한 사건이 실재하였는가 하면 여신을 범하려하거나,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신의 특권을 갈취하여 신을 속이는 인간의 죄상이 나타난다.초조함과 안타까움의 끝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찾는 모험이야기나,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현세로 데려오기 위해서 죽음의 땅을 여행한 오르페우스,그리고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투쟁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신과 인간의 공동작품 헬레네의 자손이라고 믿었던 그리스인들은 건축자원이 가장 탁월한 땅에서 살았다.온화한 기후와 풍요한 나무,가공이 손쉬운 석재,그리고 반도라는 지리상의 특성에서 비롯된 산과 바다,군사와 무역이라는 변화있는 환경에서 피어난 그들의 건축은 서양건축의 고전이 되었다.앞서 말한 문화적 깊이와 금속세공의 감각,이집트와의 교류등 다양한 체험과 기량은 목조에서 석조로 이어지는 비례감각과 양식의 발달을 주도하였다.이들은 정열과 재능을 쏟아넣어 우아하고 장중함이 넘치는 걸작인 신전건축을 남겼다.바사이의 아폴로신전,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파이스툼의 헤라신전,그리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그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진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나 여신의 전당으로 아크로폴리스 구릉에 서 있는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작품이다.수많은 신전 가운데서도 특히 「파르테논」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그 뛰어난 예술성과 정통성 때문일 것이다.「익티누스」와 「칼리크라테스」의 설계로 건조된 하얀 대리석의 신전 내부에는 금과 상아로 된 아테나 여신상이 있다.오랜 세월로 조각품과 장식면이 크게 훼손되었지만 기본구조는 원상태 그대로 남아있다.건물의 높이는 31m에 달하며 폭은 70m에 이르고 있는데 직사각형의 주변에동서로 8개,남북으로 17개의 기둥이 열주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파르테논은 그 웅장함과 함께 세심한 벽면 장식에 있어서도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신과 거인,그리스인과 아마존인들간의 싸움을 그린 부조가 치밀한 조소적 외관을 이룬다. ○인간공학적으로 완결 그러나 파르테논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미적요소들,그리고 건축적 웅장함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그것은 우리가 단지 재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파르테논에 집약된 설계기법이다. 이른바 엔타시스 양식이라 불리는 기둥의 「배흘림」을 비롯하여 인간의 눈에서 발생하는 착시를 보정하기 위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기둥을 세웠을 때,균일한 폭의 기둥이 수직으로 반복 배치되어 중앙부가 가늘어보이는 현상에 대응해서 기둥 중앙부를 배부르게 하고,기둥의 상부는 가늘게 뽑아 올림으로써 보는 사람의 위압감을 해소하였다.또한 기둥뒤가 건물외벽으로 막혀있는 곳과 벽이 없이 트여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기둥간격에 대한착각을 고려하였다.기둥사이로 하늘이 보이면 기둥은 가늘고 상대적으로 간격은 멀어보이게 마련이다.그들은 물리적 치수에 집착하지 않고 착시를 보정하여 균등한 간격을 느낄수 있도록 간격을 조절하였다.또한 이러한 고려는 처마면에서도 나타난다.수치적인 수평선은 실제로는 중앙부가 처진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따라서 그들은 거대한 돌을 맞추어 나가면서 중앙부를 미세하게 들어 올렸다.수치로는 중앙부가 배부른 모습이지만 보는 이에게는 수평으로 보이는 것이다.또한 신전앞에 모여드는 군중의 시선 방향을 고려하여 처마길이를 조절함으로써 가까운 곳의 길이가 확대되어 보이는 현상까지를 보정하였다. 이러한 착시(opticalillusion)는 가히 환상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그들은 신전건축을,신을 위해 지으면서,사실은 기적과 같은 인간중심의 배려를 하였고 그것을 인간공학적으로 완결시켰다.현대건축에서도 이러한 착시보정까지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커니즘과 공해에 찌든 우리로부터 어쩌면 고대의 작열하는 태양과 푸른바다는 영원히떠나버렸는지 모른다.하지만 땅과 건물이 오직 경제적 실체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속에서 인간과 신과 함께 즐기는 신전건축에 바친 고대인의 지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은 다시 정리하지 않아도 낭만적 여담보다는 웅변으로 전해져 온다.
  • 알베르 국왕 현관서 국빈 영접(김 대통령 순방여로)

    ◎손 여사 장애인 마을 방문길 총리부인이 안내 김영삼 대통령은 유럽순방 마지마가 나라인 벨기에 방문 이틀째인 13일 장 룩 드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알베르 2세 국왕을 예방,오찬을 나누는 등 두 나라의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다졌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저녁에는 드안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드안 총리는 이날 상오 브뤼셀의 에그몽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통상확대및 과학기술협력증진 방안등에 대해 논의. 두나라 정상은 에드몽궁 2층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한 뒤 회담에 돌입. 이날 정상회담은 우리측의 유종하청와대외교안보수석등 두나라의 외교보좌관과 통역만 배석한 단독정상회담과 주요각료가 참석한 확대정상회담으로 나뉘어 50여분동안 진행.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에그몽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군의장대를 사열. 김 대통령은 이어 드안 총리의 소개로 위르뱅 대외무역장관등 벨기에 각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드안 총리에게 우리수행원들을 소개. 공식환영식과 정상회담이 열린 에그몽궁은 이오니아식 돌기둥과 베르사유를 본뜬 대리석기둥,로코코풍의 화려한 실내장식이 유명한 고궁으로 지금은 외무부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벨기에의 명소. 한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벨기에의 의전관례에 따라 공식환영식에 불참. ▷국왕예방◁ ○…김 대통령 내외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라큰궁으로 벨기에의 알베르 2세국왕 내외를 예방,환담한 뒤 국왕주최 오찬에 참석. 김 대통령 내외는 영빈관에서 승용차로 3분 거리인 라큰궁에 도착,현관에서 알베르국왕 내외의 영접을 받고 「토론메 살롱」에서 나란히 기념촬영. 김 대통령과 알베르 국왕은 이어 「알베르 1세 살롱」으로 자리를 옮겨 20분 남짓 두나라의 협력증대방안및 국제정세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 김 대통령과 알베르 국왕은 환담을 끝내고 접견실로 자리를 옮겨 칵테일을 나누며 양쪽 오찬 참석자들을 소개한 뒤 오찬장으로 자리를 옮겨 1시간30분동안 오찬을 나누며 우의를 다짐. 오찬에는 우리쪽에서 공로명 외무부장관등 공식수행원 11명,벨기에쪽에서 위르뱅 대외무역장관 내외등 8명이 참석. 오찬이 끝난 뒤 양측은 라큰궁에서 외무장관·통상장관·과학기술장관회담을 별도로 개최. ▷손 여사◁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날 상오 브뤼셀 근교 장애인 집단거주지역인 파비올라 마을을 방문,벨기에의 대표적인 장애인 복지시설을 1시간 남짓 시찰. 손 여사는 드안총리 부인을 비롯한 벨기에 사회복지관계자들의 안내로 현지에 도착,인형작업장 주거시설 빵제조공장등을 차례로 돌아본 뒤 방명록에 서명. 손 여사가 시찰하는 동안 파비올라 마을에 거주하는 3백50여명의 장애인들과 1백60여명의 교사,협력요원,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나와 손 여사를 환영.
  • 압쇄·절단 병용… 무진동 해체/총독부건물 어떻게 철거하나

    ◎경복궁 유물 훼손 우려 폭파 않기로/기록영화 제작… 건물실측자료보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조선총독부 건물은 어떻게 철거될 것인가. 문화체육부가 1일 구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식을 가짐으로써 철거방법에 대해 관심이 모이고 있다.일제가 대동아공영권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10여년에 걸친 공사끝에 1926년 완공한 총독부건물은 빠르면 내년 안으로 완전히 철거될 계획이다.계획대로 철거작업이 마무리되면 일제침략 통치의 상징이 약 70년만에 모습을 감추는 셈이다. 구조선총독부 건물은 부지 3만여평에 기초건평 2천2백여평의 지상 5층,연건평 1만1백26평의 르네상스식 석조건물이다.수백억원의 철거비용과 함께 잔해처리에만 15t 덤프트럭 9천대가 동원될 정도의 규모다.정부는 한때 역사현장의 보존차원에서 구조선총독부 건물의 이전·복원문제도 검토했으나 지은지 70년이 지나 노후한 구조물인데다 재활용 자재도 건물표면에 부착된 화강석 등 석재의 15%정도에 불과하고 석재가 풍화돼 금전적인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감정됨에 따라 지난 93년 철거를 최종 결정했다. 철거작업은 지난 2월 비계 설치 등으로 시작돼 1일 철거선포식이 끝난후 본격적으로 진행돼 오는 8월 15일 광복50주년 기념식때 중앙 돔의 상단부를 잘라 들어내게 되며 내년까지 마무리된다. 지난 93년 9월 전문가들로 구성된 철거자문위원회는 철거방식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오다 ▲무소음 ▲무진동 ▲무분진 원칙에 따른 압쇄·분단 병용의 기계방식을 결정했다. 자문위원회는 당초 1백30t의 압력을 내는 고강도 압쇄기로 건물을 위로부터 아래로 부숴가는 압쇄방식과 직경 10㎝·길이 10∼50m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줄톱을 사용해 초당 20∼30m씩 고속회전시켜 두부자르듯 잘라내는 절단방식,남산 외인아파트 철거때 사용했던 폭파식의 3가지 방법을 검토했었다.이가운데 주변 문화재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에 따라 폭파식은 제외됐으며,소음과 분진이 약간 생길 것으로 보이는 압쇄식과 빠르고 부작용이 적은 절단식을 병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이에따라 오는 8월 15일 해체되는 중앙 돔 부분은 절단식으로 하고 그이후 단계적으로 철거될 건물 부분은 압쇄식을 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해체작업 시공업자는 현대건설.문체부는 지난해 7월 국내 9개 건설회사가 참여한 가운데 공개입찰을 통해 현대건설을 시공업자로 결정했으며 조만간 철거자문위원회를 열어 구체적인 철거일정과 부분별 적용방식을 확정할 방침이다. 문체부는 이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철거 이전에 완벽한 실측을 실시하고 기존의 모습과 해체과정을 영상물 등 다양한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또 건물의 이오니아식 원주,중앙돔,중앙홀 대리석,2층계단 등 보존 가치가 있는 10여개 부분의 자재는 용산부지에 건립될 새 국립중앙박물관과 독립기념관 등에 옮겨 전시·교육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 워싱턴 DC(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11)

    ◎국회의사당/링컨기념관/재퍼슨기념관/백악관/워싱턴 기념탑 축으로 동서남북 배치/불 건축가 설계… 1792년이후 계속 건설/워싱턴기념탑­의사당 사이엔 국립미술관·스미소니언박물관 자리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중심부에 위치한 링컨 기념관에 대리석 링컨이 엄숙한 표정으로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그 뒤로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이 새겨진 석판이 있다.「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링컨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여기서 1㎞쯤 동쪽으로 링컨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높이 1백69m의 워싱턴 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다.백색 대리석 기념비가 낮에는 희게 빛나고,밤에는 조명을 받아 어둔 밤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기념비 주위로는 미국 50개주를 상징하는 성조기 50개가 펄럭인다.미국 건국의 확고부동한 표상이다. ○나라사랑… 공간초월 링컨의 시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워싱턴 기념비 너머로는 또 약2㎞ 떨어져 미국 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다.국민들의 대표인 상하원 의원들이 모여 밤이 깊도록 쉴 틈 없이 국사를 논하는 장소다.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면 워싱턴 기념비의 그림자가 점점 국회의사당 안에서 국사에 골몰하는 상하원 의원들에게 다가간다.물론 링컨의 엄숙하되 자애로운 눈길도 이쪽으로 향해 있다.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명의 대통령의 나라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토록 계속 이어진다. 링컨 기념관,워싱턴 기념비,국회의사당이 이루는 동·서 직선축을 직각으로 교차하는 남·북 직선축의 남쪽 끝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의 기념관이 있다.제퍼슨은 초창기 미국의 정치제도를 확립한 대통령이다.그는 또한 그가 작성한 미국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삶과 자유와 행복추구의 권리를 지님을 주장하기도 했다.미국 대통령의 귀감이 되는 이 제퍼슨의 입상은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그의 시선 역시 워싱턴 기념비에 닿게 된다.또 이 워싱턴 기념비 너머 북쪽 끝에는 다름아닌 백악관이 있다.오늘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백악관 안의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워싱턴 기념비의 모습이 보일 것이요,제퍼슨 대통령의 지혜로운 눈길이 와닿을 것이다. 이렇듯 워싱턴 기념비를 중심으로해서 동서남북에 각기 국회의사당,링컨 기념관,제퍼슨 기념관,백악관이 놓여 이루는 광장을 「워싱턴 몰」이라한다.이곳이야 말로 미국의 심장부라는 워싱턴시의 핵심부가 된다. 이 광장 주변,특히 워싱턴 기념비에서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지역에는 물론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우리네 상식으로는 이 건물들은 관청건물들이 될만하다.그런데 이들은 모두 미술관 아니면 박물관 건물들이다.국립미술관이 있고,우리 귀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항공­우주 박물관 등이 이 곳에 몰려 있는 것이다. ○V자형 참전기념비 이 워싱턴 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하나 더 있다.미국이 치른 전쟁중 전무후무하게도 패전한 월남전 참전용사비다.이것은 용감무쌍한 군인들의 동상을 나열하게 되는 여느 전쟁기념비와는 다르다.검은 대리석 벽으로 V자를 만들어 놓았는데,이 V자를 우뚝 세운 것이 아니라 땅 위에 뉘어 놓았다.이 대리석 벽에는 월남전에서 전사한모든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용산에 있는 우리네 전쟁기념관에도 이것을 흉내내어 놓은 것이 있다).이곳을 찾는 옛 전우들과 유족들은 검은 대리석 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죽은 자의 이름이 겹쳐지는 것을 보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린다. 워싱턴 몰의 건축·구조물 배치의 공통된 특징은 「시각적 중첩」이다.워싱턴 기념비를 사이에 두고 링컨 기념관은 국회의사당을 건너보고,제퍼슨 기념관은 백악관을 건너보고 있다.초창기 대통령이었던 링컨과 제퍼슨은 미국 국부인 워싱턴을 매개로 해서 나름대로의 애정어린 감시의 눈초리를 오늘의 미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월남전 참전용사비에서는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검은 대리석 벽을 매개로해서 서로 겹쳐지며 만나고 있다. 이러한 절묘한 배치기법이 애당초 의도된 바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두고 이들 건축·구조물들이 각기 들어서면서 자연히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워싱턴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성장해 온 도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 열다섯째 해가 되던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현재의 워싱턴을 미국의 수도로 정하고 도시건설을 시작한다.무릇 새 국가의 시작은 새로운 수도의 건설로 이어지게 마련인가 보다.피에르 랑팡이라는 프랑스인 건축가가 신수도의 설계를 맡았는데 이때 이미 국회의사당,백악관의 위치가 정해졌고 게다가 추후에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광장을 도시 곳곳에 미리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워싱턴 기념비는 1888년에,링컨 기념관은 1922년,제퍼슨 기념관은 1942년,월남전 기념비는 1982년에 완성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로,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의 수도 설계라는 중책을 주저없이 프랑스인 건축가에게 맡겼다는 것이다.잘 할 수만 있으면 누구라도 데려다 쓴다는 미국인의 실용주의는 이미 2백년 전에 「세계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둘째로,프랑스인 건축가 랑팡의 마스터플랜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후로 2백년간 이것을 충실히 따라 각종 기념물의 놀라운 시각적 중첩효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미국인들의 신중함과 철두철미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불과 3∼4년만에 신도시들을 뚝딱 건설해 놓고도 이제와 보니 도시계획이 잘못 되었다느니 원래 계획대로 지어지지 못했으니 뜯어고쳐야 한다느니 말도 많은 우리네 현실이 새삼 낯뜨거워진다. 세계의 대도시는 다 미리 계획된 도시가 아니라 자연히 발생하여 성장해 온 것이 대부분인데 워싱턴만큼은 앞서 보았듯 예외가 된다.또 하나의 예외로서 우리의 수도 서울이 있다.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지금부터 6백년 전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정도전을 시켜 신도시를 건설한다.북악의 줄기가 뻗어내려 온 곳에 경복궁을 짓고 그 앞에 광화문을 세우며 이를 지나 남대문으로 향하는 탄탄대로를 세운다.이것이 오늘의 세종로다.서울의 마지막 백년이 지나는 동안 이 세종로에는 청와대에서 시작되어 경복궁,구 중앙청을 지나 이순신장군 동상에 이르는 일종의 선형배치가 이루어진다.얼핏 보면 워싱턴 몰의 선형배치와 비슷하기도 하다. ○타산지석재고할만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링컨 동상과는 다르다.링컨이 오늘의 미국을 움직이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앉아 애정어린 감시의 눈길을 주고 있다면 이순신 장군은 몇해전까지도 오늘의 한국을 움직이던 중앙청과 현재의 청와대를 아예 등지고 서 있다.링컨의 엄숙함이 미국의 상하원 국민대표들을 향한다면 이순신 장군의 위용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에게만 떨쳐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몰과 세종로의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세종로 주변에는 박물관이 없다.단지 세종문화회관이 하나 있을 뿐이다.나머지는 정부종합청사,보험회사 건물,통신회사 건물,그리고 남의 나라 대사관 건물 등이 있다.또 세종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이 넓은 길이기는 하되,그 길이 모두 아스팔트가 깔린 차도로 되어있다.국민들은 이 길 양쪽으로 걸으려면 여기저기 워키토키를 들고 서 있는 사복의 전경들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어디에서고 잔디가 깔린 워싱턴 몰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조선총독부(중앙청)건물이 지어진지 70년만에 헐린다고 한다.이것이 지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은 슬프다.그래도 남들은 2백년에 걸쳐 원래의 마스터플랜을 따라 차근차근 예술품에 비견 될 만한 건축·구조물들을 자기 나라의 심장부에 세워오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나라의 심장부에 아무런 마스터플랜이 없이 건물을 짓고 허물고 또 짓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그것도 기념비적으로 지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건물들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혼자서 멋진 상업건물들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 여류 조각가 김영희씨 초대전/브론즈·테라코타 등 근작 28점 전시

    ◎오늘부터 다도화랑 여류 조각가 김영희씨(32) 초대전이 3일부터 17일까지 다도화랑(542­0755)에서 열리고 있다.지난 89년 첫 전시를 가진 이래 2회째 개인전으로 최근 3년여에 걸쳐 작업해온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 김씨는 본래 고전적 인체묘사,즉 콘트라포스트(무게)를 기본으로 하는 인체의 중력 또는 볼륨을 탐색해온 작가.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서구적 인체묘법에서 벗어나 인체조각의 무중력(가벼움)과 양감을 제거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특히 구름의 이미지를 최대로 활용,토우적 인체와 융화시키는 등 우리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았다.회화적 요소와 여백의 미를 강조한 것도 이번 전시작품의 특징.『자연과 인간의 일체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형해 봤다』는 김씨는 86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8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의 수상경력을 지닌 작가로 이번에 브론즈,대리석,테라코타 작품 28점을 출품했다.
  • 인도 타지마할(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9)

    ◎대리석과 사암으로 빚은 「꿈의 궁전」/원추형 돔 중심 완전한 「통일체」구도/350여년전 무굴황국 황제,타계한 왕비기려 지은 영묘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도의 건축을 뽑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타지마할이 될 것이다.건물 앞면의 모습이 마치 수면위에 가볍게 놓여 있는 신기루 같은 환영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건물에 접근할수록 그 표면의 세공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이는 건축물이라기보다 거대한 공예품의 섬세한 인상을 받게 된다. 타지마할에 대한 느낌은 사람에 따라 사뭇 다르다.타지마할은 「건축」이 아니라 「기념조형물」이라고 평하는 건축가가 있는가 하면,기적과 같이 완전한 대리석의 걸작이라는 이도 있다.인도인들은 타지마할이 무굴제국의 최고의 걸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자평한다. 타지마할은 일상건축과 달리 제한된 용도를 갖는 이슬람의 영묘이므로 종교와 습속을 달리하는 우리가 건축적 분위기를 교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또한 우리에게는 그 분위기를 잠시 맛보기 위한 충분한 정서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우선 인도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보다 오랜 교류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그러나 조심스러운 전제나 의도를 뒤로 하고,그냥 멍하니 타지마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꿈의 대리석」이라는 세평처럼 그 강력한 몽상적인 매력에 빠져들어가는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안정과 율동감 조화 수백년전 한 제왕의 사랑과 그리움이 장인의 손을 통해서 가시화된 이 거대한 명품에는 굳이 이슬람교도나 인도인이 아니라도 그 그윽한 소리와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선택받은 궁전 서울에서 봄베이까지 11시간,그리고 봄베이에서 델리까지 4시간의 비행후 또다시 4시간여를 육로로 달리면 북부인도의 「아그라」에 도착하게 된다.타지마할은 아그라교외에 있는 야무나강의 남쪽연안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의 「뭄타즈마할」이었으나 후에 발음이 와전되어 「타지마할」이 되었다고 한다.「타지」는 왕관을 뜻하는 이슬람 용어이며 보통 꼭대기가 원추형으로 뾰족한 모자를 말하기도 한다. 무굴제국의 황제인 샤 자한은 22년의 세월과 4천만 루피의 비용을 들여 이 복합건물을 완공하였다.축조이유는 19년간 함께 지내다가 출산중 타계한 아내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고 그리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다.황후가 죽은 1년뒤인 1632년 인도·페르시아·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설계로 축조가 시작되었다.매일 2만명이 넘는 인원이 작업에 투입되어 1643년에 영묘를 완성시켰다.1649년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이 복합건물은 너비 5백80m,길이 3백50m인 직4각형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그 중앙에는 한변이 3백5m인 정4각형의 정원이 있다.건물 외면은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꾸며져서 표면감촉과 색깔에서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전체 높이는 65m에 달하지만 똑같은 디자인의 모서리와 정교한 아치,이중돔의 형태가 어우러져 안정감과 율동감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질서와 혼돈” 상존 당시 무굴제국에서는 한번 지은 건축물은 증축이나 개축을 하지 않는 관행이 지켜지고 있었기에 이 건물의 모든 부분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 구상하고 설계되었고 그 원칙은 오늘날까지도 완벽히 지켜지고 있다. 「세계화」의 이슈가 되풀이되고 강조되는 요즈음에는 누구나가 다른 나라나 민족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하는 일종의 강박관념조차 느끼게 된다.일상의 주장에도 「해외사례」나 지구촌의 모습을 담아내야 설득력을 갖게 되는 분위기다.모두가 서둘러 지식을 구하려 들다보니 지식의 질보다는 습득의 효율성에 집착케 되어 결국 「이 나라는 이렇다」「저 민족은 저렇다」는 식의 무리한 단답형 제명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필자는 제아무리 단답형 정의에 능한 책장수라 해도 「인도」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으리라고 믿는다.「질서와 혼돈」「다양성속의 통일성」이라는 말로 인도를 표현하는 사례는 많이 목격하지만 이것은 인도의 복잡함 자체를 현상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 그 복잡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말은 아니다.그만큼 인도는 정말 추상적이면서 구상적인 수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도에는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인연간 강우량 80㎜이하의 최건조지역이 있는가 하면 연간 1만2천㎜의 세계최대 강우량을 기록하는 지역이 있다.만년설과 섭씨47도의 혹서가 병존한다.이렇듯 극단과 극한을 달리는 물리적 환경에서 생활하는 인도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다. ○인도스러운 멋 풍겨 인도에는 최소한 6개의 인종과 15개의 주요언어가 있다.그 주요언어를 세분하면 6백종이상의 언어로 또다시 구분된다.인도인은 출생과 동시에 카스트제도의 틀에 놓여진다.카스트는 통상 브라만(승려)·크샤트리아(군인·전사)·바이샤(서민)·수드라(노예)등의 4단계 계급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실상은 종교·종족별로 다시 세분되어 특성집단별로 2천수백개의 카스트가 기능을 하고 있다. 인도인의 절대다수인 힌두교도는 복잡한 카스트의 영향으로 결속력이 취약한 반면 이슬람교도들은 카스트에 의한 분열이 없어서 고도의 결속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인도에는 이슬람·힌두교를 비롯하여 불교·배화교·기독교는 물론 무수한 종교가 존재한다.이 인류 최고의 문명국은 1947년 독립이후에도 내부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내외적인 많은 시련을 겪고 있다.그 과정에서 인도의 모습에는 고대와 현대가 뒤섞이고 있다. 핵을 보유하고 초음속전투기를 자체개발,보유한 나라의 거리에는 수많은 인력거가 넘쳐난다.한편 농촌의 풍경에서는 언제나 고대를 만날 수도 있다.인도는 전체가 자연·민족·종교·역사의 거대한 박물관이라 하겠다. 이렇듯 인도의 모습이 갖는 다양성 때문에 오히려 통일성이 쉽게 발견되기도 한다.수천개의 카스트가 말해 주듯,하나하나의 요소에는 매우 엄격한 관습의 룰이 지배하지만 사회전체차원에서 다양성이 잘 수용된다는 사실이 통일성의 모태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인도에는 무질서와 부정합에서 오는 자유의 맛이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결국 그런 자유로움은 사람들을 보다 정신세계에 집착케 하고 현실질서에 대한 저항정신을 갖게 하는 모티브가 사회전체에 흐른다는 것이 인도스러움이라는 통일된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소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인도인의 의식은 인도의 곳곳에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성지와 사원·영묘를 남기는 동인이 된 것이 아닐까. 타지마할에서는 현실적인 삶의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심지어 동화의 나라 궁전 같은 느낌마저 준다.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 독특한 신비로움의 깊이가 더해가는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인도인에 대한 필자의 지나친 선입견 때문인지,아니면 감히 알고자 하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 “영에 뺏긴 문화재 되찾자”/희,범국민 모금운동

    ◎대영박물관 전시 2백53점/고교생까지 반환 요구나서/15년간 기금22억여원 마련 영국·그리스간에 문화재 반환싸움이 한판 뜨겁게 붙고 있다.특히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그리스의 노력은 국민운동 수준에 가깝다. 여야 가릴 것없이 모든 정당들이 문화재 반환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고등학생들도 나서 기금모금 운동을 펴고 있다.이렇게 해서 문화재 반환을 위한 기금인 「멜리나 메르쿠리」재단에 모인 돈은 한화로 22억5천여만원에 이른다. 지난 9월 아테네의 올림픽체육관에서 나나 무스쿠리 등 국제적 가수들을 초빙해 대대적인 음악회가 열렸고 수익금은 모두 기금으로 들어갔다.그리스가 찾아오려는 문화재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문화재 2백53점 가운데 기원전 5세기경에 제작된 대리석관 1점에 집중되고 있다. 이 대리석관은 여배우인 멜리나 메르쿠리가 문화부장관을 맡은 지난 81년 반환 운동을 펴면서 그리스 국민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메르쿠리는 장관이 되기 전인 지난 62년 런던을 방문했다가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이 문화재를 보고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메르쿠리가 사망한 뒤 반환운동은 한때 시들해졌으나 그녀의 남편인 영화감독 줄르 다셍씨가 부인의 유업을 이어받으면서 다시 활발한 운동이 재개됐다. 이에대해 이 대리석관의 소유자인 엘진경(70)은 『돈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콘스탄티노플 대사로 있던 그의 조부 엘진9세는 1806년 당시 그리스를 정복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로부터 2천7백만원정도를 주고 대리석관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스는 오는 2000년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다.그리고 대리석관을 돌려받으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고 나머지 2백52점의 반환계기로 삼고 있는 것같다. 그리스가 대리석관을 물고 늘어지면 영국으로서도 난처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또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이웃의 프랑스 등도 대리석관의 반환 여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 조창호씨 위패 삭제/이국방에 중위진급 신고/보국훈장받고 오늘 전역

    김영삼대통령은 25일 하오 북한을 43년만에 탈출,지난달 조국으로 돌아온 조창호씨(64)를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같이하며 격려한뒤 보국훈장 통일장(1등급)을 수여했다. 보국훈장 통일장은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올해 국군의 날 해·공군참모총장 및 육군 2군 사령관에게 수여됐었다. 조씨는 이에 앞서 이날 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호국영령들에게 헌화·분향한뒤 자신의 위패를 제거하고 국방부에서 이병태국방장관에게 중위 진급신고를 가졌다. 조씨의 진급신고는 26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릴 전역식에 앞서 이루어진 것으로 조씨는 43년만에 소위에서 한 계급 진급한 중위신분으로 군을 떠나게 됐다. ○…북한탈출 후 첫 외출을 나온 조창호씨는 이날 상오10시 소위 계급장을 단 정복차림으로 국립묘지에 도착.조씨는 장태완 재향군인회장등 관계자와 모교인 경기상고 학생등 1백여명과 함께 의장대 사열을 받은뒤 현충탑에 「조창호 소위」라고 적힌 대형 화환을 헌화하고 묵념. 조씨는 이어 현충탑 지하영현봉안관실 검은 대리석에 흰 글씨로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준비해간 검은 테이프로 가리는 것으로 위패삭제식을 대신.
  • 의사당에 조각품 37점 전시/오른쪽 동산에 1년간 선보여

    ◎정치예술의 장으로 전환 모색 거창하고 우람한 건물 분위기가 웬지 너무 권위적으로 느껴져 일반국민들에게 거리감을 갖게했던 국회의사당이 여류조각가들의 작품들로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 지난 10월 열린 음악회를 열어 화합하는 정치의 장을 연출했던 국회 앞마당에는 95년 미술의 해를 앞두고 유연하며 개방적이고 조화로운 정치예술의 장으로 전환시켜 보자는 취지아래 국회의사당 오른쪽 동산이 여류조각가들의 작품들로 꾸며진다. 11일 상오에 있을 개막식을 앞두고 마지막 준비작업중인 국회 여류조각가 초청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회장 중앙대 임송자교수)중견회원 37명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37점이 출품돼 1년동안 선보이게 된다. 『이번 여류조각가전에는 화강암과 대리석,청동과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한 고전적인 인물상으로부터 스테인리스 스틸,강철,알루미늄 등으로 제작한 추상조각 및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성조각의 역사와 그 다양함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한국여류조각가회 임송자 회장의 설명이다. 동을 소재로 만든 김효숙씨의 「동그라미」,홍애경씨의 「어떤새의 노래」,배형경씨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색」,유당주씨의 「무제」,이재신씨의 「골통」,진송자씨의「빛·생명」 등이 구상계열이라면 화강석을 주 소재로 이용한 강은엽씨의 「오라 이곳으로」와 김혜경의 「나비」,스테인리스 스틸과 밧줄을 사용한 고경숙씨의 「솟대 94 03」,알루미늄과 철을 쓴 김정희씨의 「사운드 스페이스」가 두번째 모더니스트 범주에 든다고 들려준다.
  • 조씨 국립묘지에 위패 봉안중/「전사자규정」에 따라 77년 사망처리

    ◎생존자로 밝혀져 「위패삭제」 첫 기록 6·25 참전중 포로로 잡혀 납북됐다 43년만에 탈출한 전 육군소위 조창호씨(64)는 지난 77년이후 전사자로 처리돼 동작동 국립묘지 위패실에 봉안돼 있는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이에따라 조씨는 국립묘지에 위패가 봉안된 사람 중 생존자로 밝혀져 위패를 삭제하게된 최초의 인물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국립묘지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6·25 참전 군인이나 경찰·군무원중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전사자 처리규정」에 따라 실종된지 25년이 지나면 전사자로 처리돼 위패를 봉안하게 되는데 위패가 봉안된 사람중 살아돌아온 경우는 조씨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조씨의 위패는 국립묘지 현충탑 지하에 설치된 위패실 좌측 대리석에 「육군 중위 조창호」라는 명단으로 새겨져있다. 조씨의 위패 카드번호는 47­8­052로 이 카드에는 성명과 함께 육군 중위로 추서된 계급,소속 사단,군번,사망일자,유가족 이름과 주소 등이 기록돼 있다. 조씨의 위패카드에는 육군 9사단 소속 육군 중위,군번 211366,사망일자 51년9월10일이라고 적혀 있다. 또 유가족난에는 부친 조영국씨의 성명과 서울 종로구 효자동 165라는 조씨의 당시 주소가 기록돼 있다.
  • 떠나는 모습/문정희 시인(굄돌)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던 며칠전,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마침 옆자리에는 서로가 절친한 친구이며 부부인듯한 네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편하고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대화 내용이 훤히 우리 자리까지 들려왔다. 그분들의 대화 내용은 장차 자신의 비문에 어떤 글귀를 새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그중 유머가 많은 한사람은 자기는 평소에 골프를 너무 좋아했으므로 비문을 골프채 모양의 대리석에다 새겨달라고 부탁하며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나는 속으로 『좁은 국토에 묘지를 쓰는 것조차 황감한데 무슨 비석까지…』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분들의 유머와 밝은 죽음관이 밉지 않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가까운 두사람의 여성의 얼굴이 언뜻 떠올라 홀로 조금 전율했다. 평소에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는 K선생은 아주 감성적인 조각가인데 그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모든 장기를 필요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는 서명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독신의 S교수는가족들이 미리 사놓은 가족묘지 자리를 불쌍한 어느 할머니에게 선물해버리고 자신의 몸은 실험용으로 써줄것을 서명한 것도 나는 우연한 기회에 눈치챘었다. 두사람 모두 깊은 종교인이었기에 가능했을까.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조용하고 부드럽기만한 그분들의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사랑이 나왔는지 진심에서 놀랍기만 하다. 나는 너무 겁장이인 데다가 아직 죽음이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는 철부지이기에 그 두여성에게 진실로 열등감을 느낄 뿐이다. 훌훌 털고 떠나가는 가을 낙엽을 볼때마다 떠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문득 새겨보게 된다.떠나는 모습은 가벼울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래도 너무 괜찮은 친구들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 가을 화랑가/조각전 풍성/민복진씨등 원로·중진 7명 개인전

    ◎“주제 다양” 조각의 흐름 가늠한 호기 가을 화랑가에 조각전이 풍성하다. 인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벌이는 중견 작가 장식씨가 오는 13일까지 갤러리서화에서 새 분위기의 개인전을 열고 있고 원로작가 민복진씨가 오는 30일까지 천안 아라리오화랑에서,한기늠씨는 6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각각 개인전을 갖고 있다.이와함께 자연 소재에 집착해온 황영애씨가 5일부터 예맥화랑(15일까지)에서 개인전을 열며 인간상을 통한 생명에의 외경을 표현하는 이정자씨가 유나화랑(7∼20일),이탈리아에서 작품활동을 벌이는 김창겸씨가 이목화랑(7∼15일),인체 조각에 치중하는 최만길씨가 전남 광주 인재미술관(6∼11일)에서 각각 전시회를 갖는다. 서울과 지방에서 다양하게 마련된 이같은 올가을 조각전은 국내외 조각계의 분위기와 함께 원로 중진들의 경향차를 가늠케하는 것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가운데 발자국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장식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인간문제를 벗어나 자연적 이미지를 강조한 새 작품들을 선보이는게 특징. 맨발 혹은 신발자국들이 새겨진 강철과 알루미늄의 단순한 사각기둥을 세우거나 눕히는등의 작업을 벌여온 장씨는 발자국에서 유추해낸 인간의 흔적을 통해 삶의 의미를 형상화하는 작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의 작품세계에서 벗어나 나무나 돌을 다듬지 않은채 방치해 우연성에서 유추해낸 자연의 이미지를 기계문명과의 역설적인 대비속에 강조하고 있다. 구상조각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원로작가 민복진씨가 86년 이후 8년만에 갖는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작품은 인간 사랑을 주제로 정감어린 삶의 모습을 담은 근작 돌조각 32점.민복진씨의 작품은 율동감있는 균형미를 살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형상을 보이는게 특징인데 그의 작품활동을 결산하는 이번 전시에는 모자상 가족 기쁨 환희등 인간의 삶을 따사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을 주요 주제로 삼아 생명예찬을 담아내는 황영애씨는 이번 전시에서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인 형태를 강조해 내용의 충실함을 살린 작품을보여준다.이전까지의 작품이 육중한 덩어리를 뒤틀림이나 엉겨붙음,솟아오름등의 동적인 형상으로 나타내 생명예찬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들은 열매 잎사귀 새순등 생명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원형이나 삼각형의 형태로 표현해 생명에 대한 축복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이밖에 같은 인체 조각에 치중하면서도 각각 개성있는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정자씨와 최만길씨도 근작들을 선보인다. 인체의 어머니와 모자상등을 비롯해 주로 여체를 간결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이정자씨는 이전 작품보다 더욱 대담하고 함축적인 근작 브론즈 대리석 여인상들을 소개하며 최만길씨는 스테인리스로 인체의 머리와 팔 다리만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기계문명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근작들을 보여준다.
  • 로마/카타콤베(아랍서 지중해까지:18)

    ◎기독교도 숨던 지하무덤… 미로수백㎞/「쿼바디스」의 아피아가도 주변에 산재… 땅굴 곳곳 교인들 수난 흔적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가게를 구경하다 깜박 카메라를 놓고 나왔는데 두어 블록이나 걷고 있을때 『시뇨레! 시뇨레!』하면서 주인이 쫓아왔다.베네치아에서 만들어와 판다는 세라믹 액세서리들의 그 담백한 아름다움에 잠깐 정신을 놓았었던 것 같다.자리까지 비운 채 여기까지 유실물을 갖다주러 오다니 싶어 얼굴이 붉어진 것은 비단 그 가게주인이 예쁜 아가씨였던 때문만은 아니다.잊은 물건 으레 찾으러 들이닥치겠지 싶어 필자 같았으면 오불관언 그냥 버티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아무 것도 아닌 이런 사소한 일이 실은 한 나라의 민도랄까 문화적 수준을 제풀에 측정케 만들고 절감케 한다.이탈리아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곧잘 나서기 때문에 골탕을 먹는 수가 있다고도 하지만(하긴 필자도 그 때문에 엉뚱한 길을 헤맨 적이 한번 있기는 하다),이 아가씨의 친절은 여태까지도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남의 얼굴에다 제 얼굴 디미는 간판들이나 판을 치는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미덕이요 소양이다.피곤한 신경으로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들의 그런 번잡스러움 같은 것까지가 그 나라의 수준을 금세 헤아리게 만든다. ○친절한 시민 인상적 소위 앞서간다는 나라들의 그것은 대체로 그저 눈에 뛸 정도의 글씨로 숨듯이 얌전한 반면 후진 나랄수록 그 요란함과 새치기는 극성스럽다.TV나 신문·잡지의 광고 역시 예외일 리가 없다.잠자리에 들기전 하다못해 잠깐이라도 TV를 켜는 새버릇이 이번 여행중에 붙은 것도 순전히 그 탓이었을 것이다.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책광고·상품광고 같은 것이 우리처럼 허풍스럽고 요란한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겸연쩍고 창피했다.2등은 쓰레기처럼 잊혀지는 존재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1이어야 한다느니,「정복할 것이냐 당할 것이냐」하는 따위 히틀러의 발악이 무색할 지경의 광고까지 태연히 횡행하는 사회이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로마 국립공원 뜰은 장식삼아 여기저기 놓인 세계 유명인사들의 대리석 흉상들로도유명한데 관광온 이쪽의 원로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도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듣고 열심히 그것을 찾아다녔다는 얘기가 있다.결국 찾지 못하자 귀국해서는 그 얘기를 글로까지 썼다는 것이다.이런 얘기의 우스꽝스러움은 「유명인사」라는 그 개념상의 차질에 있다.독재를 했건 뭘 했건 유명하기만 하면 「문화적 인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이 원로는 착각을 한 것이다.인도의 간디수상도 신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는데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일까보냐는 개탄이 나올 법도 하다.이 얘기를 해준 것은 60년대에 이주해서 30여년째 로마에서 살고있는 H씨이다.문청(문청)시절 어울려 다니던 친구로 이번에는 10여년 만의 해후인데 불혹의 연치가 완연한데도 그 유머러스하고 직재적인 사고방식은 여일했다.그 무렵의 친구들이 모르는 새 모두 소원해졌는데도 이 H씨만은 예 그대로 와락 반가운 느낌부터 앞선 것도 그 탓이었을 것이다.끝내 로마에다 뼈를 묻을 작정이냐는 농담에,집과 차와 가재도구를 다 정리해 귀국해봤자 강남에서 몇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되레 역습이다.자녀들이 장성하자 사위만은 모국청년으로 골라야겠다 싶어 몇 차례나 기회를 만들었으나 돈 타령,땅타령,줄리어드다 하버드다 하고 외국유학 얘기만 나오다 대화가 끊겨 끝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사돈될 사람들 간에도,당사자들 새에서도 대화가 그 모양으로 단절돼 내심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데이트 몇번하면 으레 제 소유물로 알고 자질이야 있건 없건 유학물 먹은 일이나 자랑삼으면서 연애 따로,결혼 따로를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이쪽 젊은이들의 그런 사고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근교의 아파트단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모처럼 배불리 먹여주고 그녀가 차로 데겨간 곳은 카타콤베 앞이었다.로마에 와서 뭘 봤느냐는 물음에 실은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다는 필자의 동문서답이 마음에 걸려서 였을까.카타콤베는 옛 로마 서민들의 지하무덤이다.왜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는 그녀도 묻지 않았다.숙소에서 확인한 TV채널만도 20여개가 넘고 인근 지방의 유선방송까지 합하면 천여 채널이 넘는다는 각종 정보홍수에 에워싸여 살다보면 문명이니 문화적인 혜택이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온갖 빤히 눈에 보이는 세계가 되레 지겨워질 나이에 그녀 역시 이르른 것같다.정부 각 기관과 문화관과 대기업의 본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로마의 신시가지 에우르 구역을 도중에 거치면서 필자는 과천을 제풀에 연상하고 있었는데,카타콤베들은 그 너머 구아피아가도 인근에 흩어져 있었다. ○10만명 매장된 곳도 로마제국 때 닦여진 길이다.붉은 언덕과 짙은 색깔의 나무들이 갑자기 사방을 에워싸면서 차량마저 끊기다시피해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이 가도는 아닌게 아니라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을 역으로 연상시켰다.지금은 관광자원이 돼버린 옛 제국의 영화가 하층민들의 무덤까지도 그냥 버려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물론 이 무덤들이 특별히 유명해진 것은 박해를 받던 그 무렵 기독교도들의 지하 은신처요 포교활동의 근거지였다는 까닭이 더 크다.도망을 치던 베드로가 예수의 환영을 만나 저 유명한 대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읊조리던 데가 아피아가도였고 그때 남은 예수의 발자국모형이 보존된 도미네 쿼 바디스교회가 이 인근에 있다.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쿼 바디스」나 「성의」 같은 것에도 물론 카타콤베가 나온다.지하 2·3층,어떤 것은 5층까지 파내려간 이 부근의 수십기 카타콤베들은 복잡한 미로와도 같아서 혼자서는 들어갈 수가 없고,10만여명이나 매장된 곳도 있으며,그 길이를 합하면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에서는 각국 언어별의 가이드들이 여남은명씩 되는 관광객들의 조를 짜고 있었다.어쩌다 네덜란드어 가이드를 무심코 따라들어가 설명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구태여 그런 것이 필요한 것같지도 않았다.사람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만한 흙벽의 좁다란 통로와 역시 흙으로 된 계단을 몇번이나 꼬부라지며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가이드의 랜턴불빛에 기괴하고 참담한 낙서와 그림들이 홀연히 벽에서 나타나는가 하자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샛길들이 곁으로 불쑥불쑥 들이닥치곤 했다. 이런지하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돼버린다는 제풀의 상상은 기묘한 것이었다.나는 왜 여기 있는가,이번 여행은 뭐땜에 떠나왔는가 하는 따위 상투적인 의문들이 그제야 근거를 찾고 입지를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갑자기 천지가 막막했다.초기 기독교도들의 그것뿐 아니라 중세의 여러 종교적인 박해에도 이곳은 피난처가 됐던 모양으로 지상으로 올라오는 중간중간의 작은 방들에는 그 수난의 표상들과 기념물들이 흔적이나 조각들로 새겨지거나 놓여 있거나 했다.화살에 목이 꿰인 성 아무개,칼로 순교당한 누구 하는 식의 그런 전시물들 역시 숭엄한 분위기이기는 해도 청량한 느낌은 아니다.로마시내에는 4천여 승려들의 해골을 수백년에 걸쳐 모아놓은 해골사원이라는 으스스한 곳도 있지만,이런데를 특별히 찾는 사람들 역시 일반적인 심성의 그런 관광객들은 아닐 것도 같다. ○중세에도 피난처로 겨우 한시간 남짓이나 머물다 나온 지하에서 로마라는 한 도시의 허상을 통째로 별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아마 과장일 것이다.사람사는 세상에는 으레 있게 마련인 그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거래와 아귀다툼들이 이를테면 로마라 해서 어떻게 이런 지하세계 같은데로 깨끗이 모두 매몰될 수가 있겠는가.필자가 카타콤베 속에서 저절로 떠올린 로마의 그 허상이란 것도 실은 숙소근처의 가게에서 사흘째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싸구려 골동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돈으로 2만여원쯤 되는 그 놋쇠물병은 연륜이랄 것도 쓸모도 별로 없어 보이는 얄팍한 물건 같았으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떤 곡선형태라는 그 한가지 점만으로도 어딘가 정답고 신선하게 느껴져 값을 깎자느니 안된다느니 하고 며칠째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도무지 무뚝뚝해 보이기만 하는 가게의 뚱보주인은 필자가 들를 때마다 『적당하고 좋은 값』이라면서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이쪽 역시 기어이 에누리를 해서 그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념에 들떠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구태여 따지기라도 한다면 한계가 빤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눈곱 정도로나 허용된 소위 그 「자유」라는 명제나 「자유스럽고 싶다」는 감정을 두고 필자도,그도 사실은 줄다리기흉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콜로세움(세계의 명소 걸작 건축감상:2)

    ◎고대로마 검투장… 1900년간 “우뚝”/역동성 넘치는 둘레 6백m 원형의 4층/각층마다 80개의 아케이드 구조물 방사상 배열… 아이디어 돋보여 고대 로마제국(BC 8세기∼AD 9세기)의 유적에서 느끼는 간격은 2천여년에 가까운 시간만이 아니다. 본래의 모습에 흠이 가고 용도도 바뀌고,어떤 곳은 폐허로 변해 옛모습을 되살리기 어렵고 당시의 사회상도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다만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커크 더글러스역)와 바라바의 검투 장면은 그 처절함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훈련소를 방문한 로마장군 부부 앞에서 오락대상으로 펼쳐지는 검투장면,검투사의 분노·저항·죽음 등을 통해 검투를 주목적으로 건설된 콜로세움의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서기 64년 폭군 네로황제에 의해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몰린 기독교도들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는 참혹한 장면을 볼수 있다. 로마제국은 대중오락을 국가가 제공했다.시민들은 잔인하고피투성이가 되는 경기의 관람을 좋아했으며 수천명이 운집한 원형투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 경기는 가장 인기를 끌었다.검투사들은 관중들의 함성속에 생사를 건 경기를 했다.한 검투사가 쓰러지면 그를 살리느냐 또는 심장을 찌르도록 하느냐는 관중들의 특권이었다.투기마당의 모랫바닥이 피로 범벅되어 질척거리면 새로운 모래로 덮고 경기를 계속했다. 콜로세움은 건축가 라비리우스의 설계로 72년 착공,82년 완성됐으며 공사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동원되었다.부지는 네로황제의 황금별궁안 연못터로서 폭군의 불타버린 저택지에 시민오락시설을 건설한 극히 정치적 상징을 띤 곳이었다.콜로세움의 북서방향은 포름로마눔(핵심적 정치·기념건물군과 광장)에 연계되어 캐피톨언덕의 로마의 수호신 「주피터 신전」과 공화정의 상징인 「원로원」과 직선축을 이루고 있다. ○라비리우스 설계 콜로세움은 투기마당(84×52m 타원형)을 4개층에 걸친 경사관람석이 타원형으로 둘러싼 구조물(둘레 6백m 높이 48m)이며 관람석 아래층은 통로공간으로 여러원형투기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어졌다. 구조체는 아치와 볼트로 되어 있는데 양외면에 벽돌을 쌓고 속은 로마식 콘크리트(화산재 콘크리트)로 채움으로써 매우 강하고, 겉에는 대리석으로 장식 효과를 살렸다. 콜로세움의 건축적 의의를 보자면 일단 구조적 안전성에 있다.현대와 같은 철근 콘크리트도 없던 당시 7층 높이로 지어 2천년 가까이를 버틸수 있게 한 기술이 놀랍고 건물 또한 아름답다.건물 외벽의 아치는 진·선·미에 해당하는 도리스식(1층),이오니아식(2층),코린트식(3층) 기둥양식을 적용하고 3세기에는 코린트식 장식벽을 4층에 증축함으로써 수평과 수직의 위계이다.또한 타월형평면으로 이룬 공간의 역동성과 축,명확한 통로공간이 특징이다. 외벽의 아치중 2,3층에는 석조인물상이 배치되고,1층은 독립된 출입구 구실을 하도록 했다.북동(장축) 중앙에 황제의 출입문이 있으며 로열박스는 2층에 남서향으로 배치되었다.4층 외벽면 상단에는 목제 마스트를 꽂아 깃발을 달고 차양을 쳐 한껏 축제기분을 내며 뜨거운 태양을 가리도록 한 것이다. 건물중앙의 투기마당은 4.5m의 담장을 둘러쳐 구경에 열중해 흥분하는 관람자들의 안전을 기했다.마당밑의 지하에는 검투사 대기실·맹수우리·무기고·경비대숙소·공연보조물 운반기계창고·지하도로 등이 있었다. ○관람객 안전 고려 콜로세움 완공후 1백일간의 준공축제 동안에만도 많은 검투사와 5천여마리의 맹수가 살육되었다고 한다.또한 한때는 초기 기독교도들의 처형장소로도 활용되었다. 검투경기는 407년에 금지되고 맹수와의 싸움도 523년에 금지됨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서로마제국이 게르만민족에게 망하고(476년)로마가 교황국가에 편입된 이후 1천년동안 이 건물은 방치되었다가 15세기부터 3백년간은 건축 석재 채취에 쓰이는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르네상스 시기 로마에 건설된 유수한 건축물인 베네치아궁을 포함한 3개 궁전,성베드로 대성당 신축 등에 쓰인 석재들이 이곳에서 캐내어진 것이다. 그러나 1749년 교황 베네딕트 14세가 콜로세움을 순교자의 피로 성화된 곳으로 선포함으로써 석재 공급 역할은 끝났으며 1800년부터 부분적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콜로세움 주변의 정리는 1933년 파시스트정부가 행한 유명한 로마도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주변의 고적군을 밀어내고 광장과 도로를 넓힘으로써 오늘의 경관을 확보했다. ○현대에도 모델로 현재 건물의 북동벽면은 온전한 상태이나 나머지 벽면은 멸실되고 2개층만 남아있는 곳도 있다.관람석과 투기마당의 바닥슬라브도 벗겨져서 내부의 아치·볼트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로 있다.1973년 이후 부분적인 복원·수리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콜로세움은 경기와 관람을 위한 건물의 한 전형이 되고 있다. 근대 올림픽 시작 이후 세계적으로 번진 스포츠 스타디움의 건설및 대중문화의 상징으로서의 엘리트스포츠와 이의 기업화에 따라 자재와 기술은 새로워져도 건축 원리는 타원형 콜로세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콜로세움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건축의 사회적 기능을 보여준다. 제1기 로마제국(4세기까지)에서는 검투사 또는 동물 투기장,제2기 중세(4∼14세기) 혼란기에는 지진피해,방치,또는 요새,제3기 르네상스기(15∼17세기)에는 약탈수난,제4기 근대계몽기(19세기)에는 순교지 지정,제5기 단일세계권(20세기후반 이후)에서는 세계적 역사관광 순례지로서 기능이 바뀌어 가고 있다. 1천여년의 망각과 3백여년의 약탈 수난과 도괴의 위기를 거쳐 근세에 들어와서 그 가치가 다시 부활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철거 운명에 놓인 우리의 조선총독부 청사(현 중앙박물관)에서 상기하는 아픔은 크다.식민 통치의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라하여 허물어져야 한다면 남아있는 건축이나 역사 유산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콜로세움은 변덕스레 바뀌는 이념과 가치관 때문에 과거의 건축 유산을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낭비와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함을 일깨워준다.
  • 가을의 문턱 실내 꾸미기/값싼 예술용품으로 새 분위기를

    ◎명화 액자·청동조각 등 소품 인기/4만∼5만원으로 고급스런 공간 연출 가을로 접어들며 집안 분위기를 새롭게 꾸며보려는 주부들에게 명화액자와 청동조각품 및 각종 장식소품등 아트용품들이 사랑받고 있다.백화점의 갤러리와 지하상가의 미술코너 등에서 주로 취급하는 아트용품들은 커튼이나 침대시트를 바꾸는 정도의 단순한 변화보다는 나름대로 예술감각을 연출,실내 분위기를 개성 있게 꾸며보고 싶어하는 신세대 주부들과 20대 직장여성들이 주고객. 명화 액자의 경우 유명 외국작가들의 복제품이고 청동조각도 복수 제작된 터라 적은 비용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반응이 아주 좋다. 아트용품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품목은 명화 액자.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외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복사해 액자화한 명화액자는 그림의 대부분이 미국 등지에서 들여온 수입품이다. 명화 액자중 제일 인기가 있는 작품은 모네의 「해바라기」와 르누아르의 「세여인」처럼 비교적 국내에서 잘 알려진 화가들,즉 고갱 모네 세잔 마티스 피카소 르누아르 등의 그림이며 작품의 크기는 엽서크기의 아주 작은 1호에서 10호 이상까지 다양하다. 가격도 크기에 따라 1만원에서 10여만원까지 다양한데 중간 크기인 4만∼5만원대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다.명화액자는 액자가 있는 경우 그림만 구입 할 수도 있어 집에 빈 액자가 있는 경우 활용이 가능하다. 한편 청동조각 및 장식소품은 인조대리석이라 불리는 마블소재의 조각품과 브론즈·주석 및 금속공예 작품들이 주종.집안 어느 공간에나 장식해두면 잘 어울리면서 격조를 높여준다. 조각 작품의 경우는 작가가 작품수를 제한하고 고유번호표를 부착,자신의 작품을 무단복제품으로부터 보호한다.따라서 조각작품을 구입할땐 구입전 반드시 고유번호표 부착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한편 조각의 가격은 작품의 숫자를 20∼30개로 제한 생산 할때는 10만∼30만원 선으로 다소 고가이나 대개는 작품의 대중화 차원에서 1백∼2백점 이상씩 생산,3만∼5만원선이다.
  • 진귀한 그림·조각으로 장식/「예술 호텔」 미서 인기

    ◎「리츠칼턴」·「브렉커즈」 등 “만원사례”/“숙소에서 문화공간으로” 인식 대전환/일부업체선 소장 예술품 선전 열올려 호텔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여행지의 최종안식처」가 종래의 호텔개념이라면 이제는 호텔이 「예술품의 소장장소」 또는 하나의 버젓한 「문화예술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호텔주들은 지금까지 손님들에 대한 종업원의 태도,편안한 침대,호텔이 위치한 자연경관 등을 중요시 여기며 이에 대한 투자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호텔을 중심으로 한 일부 호텔주들은 호텔자체를 예술공간으로 인식하거나 그렇게 꾸미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예술품 전시공간을 늘리는데 열을 올리거나 단순히 「자는 장소」에서 호텔자체를 보여주며 인상을 심어주는 공간으로 가꾸려는 것이다. 일부 호텔에서는 새삼스레 자신들의 호텔이 옛 진귀한 미술품이나 조각품으로 가득차 있다는 광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또 관광객들도 이같은 인식위에 보다 색다는 호텔을 찾아나서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호텔자체가 예술품이거나 예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일부 호텔은 예약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미국의 호텔은 4곳. 샌프란시스코의 리츠 칼턴호텔은 소장예술품이 많아 어느 것이 가장 인상적인 예술품인지 대답하지 못할 정도다.호텔의 벽마다 18∼19세기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주로 꽃과 풍경을 주제로한 유화들이다.프랑스 루이 16세때의 청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금박도자기도 소장하고 있고 19세기 초기의 수정촛대가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끈다.손님들은 이같은 진귀한 예술품들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1909년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3년뒤에 세워진 이 호텔은 그동안 메트로폴리탄보험회사의 본사건물,대학건물로 사용되다 지난 89년 리츠 칼턴사가 인수한 이후「예술호텔」로 각광을 받고 있다. 플로리다주의 팜비치에 있는 브렉커즈호텔도 손꼽히는 「예술호텔」이다.철도왕 헨리 모리슨 플라글러가 처음 지은 호텔로 불에 탄뒤 1925년 재건축되었다.발도프­아스토리아양식으로 유명한 건축가 레오나르도 슐츠가 재건축에 참여했다.입구에서 보면 이탈리아 중세 메디치가의 궁전을 연상케하는 쌍둥이 탑과 우아한 아치양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분수도 이탈리아 보볼디정원 것을 그대로 따왔다.실내장식은 고대 로마시대의 귀족생활 것을 본떴고 15세기 플랑드르양식으로 된 태피스트리(실로 수놓은 벽걸이)는 이 호텔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금박 잎사귀로 장식된 천장,곳곳의 프레스코 등 어느것 하나 옛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미국인들은 이 호텔이 옛 것과 현대조형물을 조화시킨 하나의 예술품으로 여기고 있다. 브렉커즈호텔이 이탈리아식이라면 뉴올리언스의 윈저 코트호텔은 영국식의 「예술호텔」이다.호텔입구에 들어서면 현대 최고의 조각가 존 밀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영국의 전설적인 조지왕이 용을 물리치고 있는 작품이다. 호텔안에는 영국의 왕족이 좋아하는 화가 게인즈보로,레이놀즈,카날레토의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다색석판법을 즐긴 빅토리아왕 작품도 있다.윈저성안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버몬트주에 있는 트윈 팜즈는 방이 9개밖에 되지않는 「여인숙」이다.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가 한때 살았던 방에는 전소유주들의 귀한 소장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데 특히 현대화가 에드 루스차,윌리엄 베그먼,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그림들이 손님들을 사로잡는다.이곳 예술품의 대부분은 미국 1백대 고미술소장가중의 한 사람인 서스톤 트윅스미스씨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술여인숙」 아이디어도 그가 낸 것이다.가정집 같고 프론트데스크도 없다. 조지아주의 콜로웨이 가든,델라웨어주의 호텔 듀폰,뉴욕주의 세인트 레기스호텔 등도 이같은 「예술호텔」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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