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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아덴만 영웅’들 청와대 초청 격려

    MB ‘아덴만 영웅’들 청와대 초청 격려

    “우리 국민은 작년에 있었던 상처를 여러분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이제 우리 군은 어느 때 어디서든지 생명을 위협하는 곳에서는 ‘여명작전’과 같이 완벽하게 우리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 영웅’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고 격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지난 1월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청해부대 최영함 소속 특수전(UDT/SEAL) 대원 등으로 최근 수개월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무공훈장과 무공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여해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원들의 공로를 평가했다. 이에 대원들은 최영함 모자와 군함의 취역기를 이 대통령에게 선물로 증정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우리 군은 새로운 군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도 새롭게 신뢰받는 군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조영주 대령을 위시한 전원이 우리 군이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는 것에 기여했으며, 300여명 모두가 다 훈포장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1진에서 5진까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고 7진도 여러분의 전통을 이어받아 국제사회에서 가장 용감한 부대로 인정받고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최영함 함장인 조영주 대령은 “군인으로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과분한 환영을 해 주신 대통령께 감사한다.”면서 “앞으로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적이 넘볼 수 없는 부대로, 싸우면 이기는 부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에 대해서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후 따로 일정을 잡아 격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에는 김관진 국방장관과 한민구 합참의장, 임태희 대통령실장, 이희원 안보특보, 정진석 정무수석, 홍상표 홍보수석 등이 참석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軍, 준장급 서북사령부 부사령관 신설

    다음 달 15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되면서 해병 장성 한 자리가 늘어난다. 29일 국방부와 군 소식통 등에 따르면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 기본계획 11-30에 따라 창설되는 서북사령부는 해병대사령관이 사령관직을 겸직하는 대신 장성 직위의 부사령관 자리가 신설된다. 부사령관은 서북사령부에 소속된 해병대와 육·해·공군 지원단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국방부는 당초 국방개혁안을 소개하며 서북사령부는 사령관 예하에 해병대를 중심으로 각군 지원단을 두는 형식의 지휘구조를 갖는 것으로 발표했다. 편제상 부사령관이 없어 대령급 영관장교로 구성되는 사령부 참모와 지원단장들이 직접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체제인 셈이다. 하지만 군은 서북사령부 창설로 해병대 병력이 수천명 증원되는 만큼 부사령관이 필요하다는 해병대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방개혁안을 미군 측에 비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에서 미군 고위 관계자가 “3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으로부터 영관장교가 직접 지휘를 받고, 보고하는 모습은 맞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 점도 부사령관 자리 신설에 힘이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해병대는 부사령관에 해병 소장을 정원으로 새롭게 편제해 줄 것을 합동참모본부에 건의했지만, 군은 현재 해병대사령부의 부사령관이 소장인 점과 장성 직위를 축소하고 있는 국방개혁안에 따라 준장 자리를 늘리는 선에서 절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해병대 왜 이러나…사병 구타·상관 음해 이어 현역 중대장이 성추행까지

    같은 부대의 사병을 성추행한 혐의로 해병대 6여단의 현역 중대장이 군검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해병대 관계자는 24일 “김모 대위가 부대원들을 성추행했다는 신고를 지난달 말 접수했다.”면서 “이달 초 자체조사를 거쳐 김 대위를 보직해임하고 군검찰이 최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같은 부대의 부사관 4명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부대원 여러 명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들도 보직해임했으며 곧 징계처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해병대에 따르면 김 대위는 입과 손으로 부대원 5명을 깨물거나 쓰다듬는 등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에도 해병대 2사단 참모장 오모 대령이 운전병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또 부사관 4명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일부 부대원의 뒤통수와 정강이를 때리거나 팔굽혀펴기를 약 30분간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다. 해병대 측은 “피해 병사들과 가해 간부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고 김 대위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면서 “부대 자체적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92년 美보고서 따르면 고엽제는 없었다”

    “92년 美보고서 따르면 고엽제는 없었다”

    폭스 미8군기지관리 사령관은 고엽제 매몰 장소를 정확하게 확인한 후, 한국 측과 대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군 측도 도움을 얻기 위해 현역 대령 3명을 미국 본토에 파견했다고 덧붙였다. 일문일답 내용을 정리했다. 주로 존 D 존슨 미8군 사령관이 화학물질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적절하게 반출 처리했다는 내용이 있던데. -적절하게 반출 처리됐다고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처리했는지 계속 조사 중이다. →40~60t은 무엇인가, 반출은 어디로 했다는 얘긴가. -1978년에 41구역에서 토양오염 화학물질을 발견, 그 흙과 화학물질을 D구역으로 옮겼고, 1980년에는 그 양을 다시 파내서 처리했다. 통상적으로는 미국으로 보내는데 언제 어디로 보냈는지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조사 중이다.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가 없었던 것이 확인된 것인가. -1992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에이전트 오렌지는 없었다. 하지만 역사적인 자료에 의한 것이고, 퇴역 군인 주장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계속 조사를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미국 본토로 반출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회의자료나 기록이 있나. -1992년 연구조사 결과다. 언제 어디로 반출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에이전트 오렌지가 없었다는 기록은 정확하다. 혹시라도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1992년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가. -미 육군 공병대 연구 보고서다. 인근에 건축물을 짓기 위해 조사한 것이며 한국 환경부와 국방부에도 이 자료를 제공했다. →1980년 오염물질 반출 시 한국 밖으로 한 것인가. -국외로 나갔는지 한국 내로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으로 갔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 장소(D구역)에서 빠져나간 것은 확실하다. 칠곡 공동취재단
  • “美 대북 식량지원 재개, 6者 직결 아니다”

    “美 대북 식량지원 재개, 6者 직결 아니다”

    한반도 전문가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대북인권특사의 방북과 관련,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식량 지원 재개가 6자회담 재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신중론을 폈다. 지난 18일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프리처드 소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권력승계 속도도 다소 늦춰지고 있지만 북한 내부 상황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킹 특사의 방북 결과에 따라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이 재개되나. -킹 특사의 방북 결과에 따라 지원 방법과 시기, 전제조건, 규모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인권특사 방북을 처음 허용한 것이 주목된다. 미국이 요구하는 식량배급시스템에 대한 감시 관련 전제조건들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재개와 6자회담 재개와의 연관성은. -두 가지 사안이 직접 연계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에 적기인가에 대한 한국 정부의 평가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3단계 방안에는 이견이 없지 않나. -북한의 비핵화를 주제로 한 남북대화→북·미 대화→6자 예비회담 순의 3단계 방안에 대해 관련국들 간에 원칙적으로 이견은 없다. 하지만 남북대화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북한은 1단계 남북 대화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형식적인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북한은 남북대화에 나와 2시간 정도 보낸 뒤 2단계인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을 충족시켰다고 강변할 것이다. 중국도 북한을 거들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형식적인 남북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핵문제에 대해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나오길 기대하고 있고,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보여야 할 진정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핵문제를 다룰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한국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여러 차례 열고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등 다양한 현안들을 다뤄야 할 것이다. 설사 공동성명이나 결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북한이 천안함·연평도사건에 사죄하지 않더라도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지킨다면 의미 있는 새로운 신호로 평가될 수 있다. →6자회담 재개 및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6자회담 재개와 성공 여부는 북한 내부의 정치상황 및 후계승계 진행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권력 승계가 진행되는 과도기에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놓고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약해졌다는 신호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돌파구가 마련되거나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지속적으로 내실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과 미국의 목표를 충분히 이해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누구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으로 믿지 않지만, 무기류의 이전과 같은 심각한 위반은 막아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북한은 궁극적으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핵화와 관련한 협상에 진지하게 나올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6자회담 관련국들이 유엔 결의 1874호를 너무 엄격하게 준수하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완화하거나 후퇴시키지 않는 선에서 합법적인 이행과 북한과의 대화 재개라는 이중 트랙을 모색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중 트랙이 가능한가. -중국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협조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잭 프리처드는 ▲1950년생 ▲하와이대 국제관계학 석사 ▲육군 대령 예편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 보좌관, 4자회담 미 부대표 ▲2001~2003 미 대북 특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지난해 11월 영변 핵시설 방문 포함, 11차례 방북
  • “1999년 영관급 장교4명 北에 납치”

    영관급 장교 4명이 10여년 전 북한에 납치됐다는 제보가 있었다는 전 북한전문기자의 법정 증언이 나왔다. 20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기소된 ‘흑금성’ 박채서(57)씨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 북한전문기자 정모씨는 이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지난 19일 열린 공판에서 박씨의 변호인이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중령이 1999년 중국 국경에서 납치되고 이모 대령이 북한에 체포됐으며 또 다른 이모 대령과 박모 대령이 북한에서 납치·체포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정씨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북에서 그 사람들을 통해 작전계획을 입수했으며, 2004년 북에서 공개적으로 공표하기도 한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정씨는 이 내용을 취재하다 중단했는데, 보도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대북 공작원 활동을 했다. 2003년 3월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공작원에게서 “남한의 군사정보와 자료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해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작계 5027과 군사 교범 등을 넘겨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됐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 내용은) 정보 사안이고 관리도 다른 정보기관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확인해 주기 어려운 부분”이라면서 “4명이 납치됐고 대령이 포함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인원이 적을 수 있거나 다른 계급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혀 사건 자체는 존재했었음을 시사했다. 오이석·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알카에다 임시지도자에 사이프 알아델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오사마 빈라덴의 후임으로 이집트 특수부대 대령 출신의 사이프 알아델을 임명했다고 파키스탄 일간 ‘더 뉴스’와 미국의 CNN방송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발행되는 ‘더 뉴스’는 알카에다가 최근 모처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알아델을 ‘임시’ 최고책임자로 선출했다고 전했다. 리비아 무장조직 ‘리비아전투그룹’ 지도자 출신인 노만 베노트만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알카에다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알아델이 ‘최고책임자 대행’으로 임명됐다고 확인했다. 4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알아델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테러현상범’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이집트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1980년대에 빈라덴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대소련 항쟁에 참여했고, 19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테러사건과 2003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폭탄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2001년 탈레반 실권 이후 이란으로 도망친 뒤 사우디에 알카에다 지부를 세워 활동해 오다 지난해 파키스탄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더 뉴스’는 빈라덴 후임자로 지목돼 온 알자와히리는 알아델의 후원자로서 해외 네트워크를 총괄하게 됐다고 전했다. 알아델의 알카에다 차기 지도자 임명 보도에 대해 테러리즘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양하다. 베노트만은 먼저 알아델의 임명에 예멘과 사우디 등 알카에다 내 아라비아반도 출신들이 반발할 가능성을 꼽았다. 베노트만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알아델을 ‘관리형’ 지도자로 표현하고 “알카에다 재건을 위해 일종의 ‘빈라덴 대행’으로 일정기간 활동하면서 아라비아반도 출신이 아닌 지도부에 대한 조직 내 반응을 점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아델이 북아프리카, 예멘 등 세계 각지의 알카에다 지부조직 책임자들로부터 ‘바야’(충성서약)를 받아낼 수 있을지가 그의 지도력을 판단하는 첫 번째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파키스탄 언론들의 보도가 맞다면 알자와히리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자와히리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라크와 예멘의 과격 성향 알카에다 조직과 알아델을 지지하는 세력 간 내분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라크 국방부는 18일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지도자 미클리프 모하메드 후세인 알 아자위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영화프리뷰] ‘마이 원 앤 온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전 세계 노처녀들의 아이콘이었던 르네 젤위거가 철없는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마이 원 앤 온리’는 두 아들을 둔 변덕쟁이 철부지 엄마 앤(르네 젤위거)이 새 남편을 찾는 여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린 영화다. 미국 뉴욕 최고의 재즈 밴드 리더인 남편과 결혼해 풍족한 삶을 살던 앤은 남편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를 참지 못하고 결국 10대인 두 아들과 함께 집을 뛰쳐나온다. 대책 없이 긍정적 생각의 소유자 앤은 매력적인 금발과 우아한 외모를 무기로 곧 완벽한 남편감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사업에 실패해 돈을 빌려 달라고 구걸하는 옛 애인, 매너 좋은 척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성질 사나운 육군 대령, 무려 11명의 여자에게 청혼한 결혼 중독자 등…. 급기야 수중의 돈은 점점 떨어져 가고, 둘째 아들 조지(로건 레먼)가 여행 동참 거부를 선언하면서 앤은 위기에 봉착한다. ‘마이 원’는 1950년대 초를 배경으로 앤이 두 아들과 보스턴,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 등의 도시를 옮겨 다니는 여정을 뒤쫓는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시카고’, ‘콜드 마운틴’ 등을 통해 다양한 변신을 선보인 젤위거의 한층 풍부해진 연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귀엽고 엉뚱한 매력부터 아들을 감싸안는 모성애까지 원숙해진 연기를 펼친다. 할리우드 배우 조지 해밀턴의 10대 시절 경험에서 소재를 얻은 영화는 ‘아들을 둔 엄마의 새 남편 찾기 프로젝트’라는 설정도 무난하게 그려 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캐딜락 승용차와 당시 유행했던 의상 등 시대극 분위기를 풍기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다만 초반의 에피소드 전개에 힘이 쏠린 나머지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진정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앤의 심리와 캐릭터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앤의 바람둥이 남편 역의 케빈 베이컨과 남편 후보로 등장하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크리스 노스 등 연기파 매력남들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리처드 3세’, ‘윔블던’ 등을 연출한 영국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의 2009년 작품이다. 19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5·16 50돌] 5·16을 말한다

    [5·16 50돌] 5·16을 말한다

    ■ “8기 JP가 주도했다고? 5기가 핵심 세력이었지” 주역 중 1인 김재춘 前중앙정보부장 ‘삼국지’ 첫 대목으로 기억된다. ‘창장(長江)강은 뒤 물이 앞 물을 밀치면서 도도히 흐른다.’ 역사의 물줄기를 의미하겠다. 꼭 50년 전 오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하루였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물줄기를 확 바꿔놓은 사건, 이른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이다. 최근 50주년을 맞아 5·16 그날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주체세력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필(85·육사8기) 전 자민련 총재가 5·16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재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육사8기생들이 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김재춘(84·육사 5기)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은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참모장(대령)이었다. 그는 거사 전야인 1961년 5월 15일 밤 육사 5기생 출신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영관장교들과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나중에 박정희 소장도 참석,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등의 역사가 있어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그때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혁명의 발상지였어. 15일 밤 10시에 5기생부터 8기생까지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이 많이 모였지. 그때 김 전 총리는 보이지도 않았어. 다들 목숨을 내놓고 온 장교들이라 긴 말이 필요없었지. 침묵으로 긴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 3시 혁명군들이 여러 시설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지.”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에 장교들이 모인 까닭에 대해 그는 “6관구사령부는 수도권을 포함, 전국의 부대를 통신축선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5기생 출신들이 5·16의 주도세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말야. 5사단장 채명신 장군, 12사단장 박춘식 장군,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 대령, 1공수여단장 박치옥 대령 등이 5기생 출신이었는데 병력을 이끌고 앞장서 출동해 말 그대로 일등공신들이었지.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지만 당시 김 전 총재는 민간인 신분인 걸로 알고 있어.” 김 전 총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원된 3700명 병력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혁명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당시 김 전 총재는 하극상 사건으로 민간인 신분인데도 권총을 차고 가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불법무기 소지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허, 아마도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다급하게 권총을 찼나 보지 뭐.”라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하 김 참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긴박했던 그날의 참모장실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재구성했다. 김 참모장은 5월 15일 저녁 9시 30분쯤 시내에서 6관구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특이상황 여부를 묻고 박정희 소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곧장 부대로 향한다. 잠시후 부대정문에 도착한 김 참모장은 대기 중이던 혁명군 장교 20여명과 합류하여 참모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밤 10시쯤 되자 다른 장교들도 추가로 합류했다. 김 참모장은 장교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6관구사령부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도군단의 전신이다. 이 시간 박정희 소장은 경호책임을 맡았던 한웅진 준장(육군정보학교장)과 함께 청진동 소재 서울호텔에서 은밀하게 만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비밀장소를 서울호텔로 정했다. 이날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새벽 3시 6군단 포병단이 육본을 완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기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과 긴장의 시곗바늘만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었다. 특히 새벽 3시 무렵, 참모장실에 영어를 구사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와 긴장과 초조함은 더했다. 백악관인지 미8군 관계자인지 영어가 짧아 되묻지는 못했지만 ‘거사의 주동이 박정희가 맞느냐.’고 묻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김 참모장은 ‘맞다.’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새벽 4시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김 참모장은 박정희 소장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혁명 취지가 담긴 박정희의 친필 서신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인편을 통해 보냈다. 내용에는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전원 자결키로 맹세한다.’는 뜻도 담겼다. 장 참모총장은 육본 군수참모 이·취임식이 있는 날이어서 필동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뒤 나중에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받았다. “5·16 아침 박정희 소장 등과 함께 청와대로 갔어. 윤보선 대통령한테 정확한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였지. 비서관이 먼저 나와 우리들에게 ‘각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 앞으로 잘 모시고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만나게 해줬어. 장면 총리는 수녀원으로 피신해 있어서 금남의 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 박정희 소장한테 거사계획을 언제 들었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박정희 장군은 점조직을 통해 혁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부분 1대1로 만나 가담 여부를 타진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거사일을 5월 12일로 했다가 연기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우리 5기생들은 육사 때 박정희 장군이 구대장과 중대장을 했던지라 거사 제의 같은 것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5·16 관련 내용은 인터뷰나 자료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됐다. 이 중 거사의 발상지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이며 주축세력이 육사 5기생과 8기생 출신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왜 8기생 출신들의 역할이 더 부각됐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아마 김 전 총재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여서 그랬나 보다.”고 하면서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재춘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와 1955년 육군대를 졸업했다. 1957년 연대장을 지낸 뒤 1961년 5·16 당시 5·16 군사정변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을 맡았다. 이후 방첩부대장 겸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지냈으며 1963년 최고회의 문교사회위원장을 맡았다. 그해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이후 무임소장관, 자민당 최고위원 등을 거쳐 1971년 제8대 국회의원(김포·강화, 민중당) 1973년 제9대 국회의원(고양·김포·강화, 민주공화당)을 지냈다. 1974년 축산단체연합회 회장, 1975년 한·중예술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 “5·16前 JP가 찾아와 정치발언 하기에 내쫓아” 反혁명분자 몰렸던 김웅수 당시 6군단장 5·16 당시 육군 6군단장(소장)이었던 김웅수(88)씨. 수도권 요충지에 포진한 6만명의 예하 병력을 법을 어겨 가며 진압군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반 혁명세력으로 몰렸고 1년 뒤 군사정권의 간접적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그레이트폴스시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5·16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에 “쿠데타로 본다.”고 했으나, 답변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5·16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단장급 이상 야전군 지휘관 회의가 5월 17일 강원 원주의 야전군사령부에서 예정돼 있었어요. 16일 열리는 체육행사에도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25~26명의 지휘관들이 15일 원주에 다 모였어. 16일 새벽 4시쯤 잠을 자고 있는데 이한림 야전군사령관이 관사에서 회의를 소집한다는 거야. 그래서 가 보니 이 사령관이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면서 “각자 부대로 돌아가 병력을 장악해라. 병력 이동의 빌미가 될지 모르니 부대에 비상을 걸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6군단은 어떤 조치를 했습니까. -6군단의 작전지휘권은 내가 아니라 미 1군단장이 갖고 있었어요. 불법을 진압하려 불법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 북한군 교신이 급격히 늘어나기에 비상을 걸었지. 비상을 걸면 자동적으로 1개 사단이 완전무장해서 특정지구로 출동하게 돼요. 이 일로 나중에 나는 반 혁명세력으로 간주되게 되었죠. →미군에는 조치를 요구했나요. -18일 나의 매부인 강영훈 육사교장이 육사생도들의 혁명지지 행진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라이언 1군단장한테 “왜 1군단이 갖고 있는 서울 비상계획은 쓰지 않는가.”라고 따졌어. 그날 저녁 라이언 장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매그루더 미 8군사령관이 이한림 장군을 찾아가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이 장군이 “I will do(하겠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실제 그날 저녁 이 장군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 와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 다음날 아침 이 사령관이 소집한 군단장 회의에 가려고 횡성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미군 대령이 “이 장군이 이미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면서 되돌아가라고 하더라고. →결국 미군이 묵인한 건가요. -매그루더 장군이 누구를 진압할 성격이 못 됐어요. 강직하지 않았어. →미국이 5·16을 사전에 감지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17일 마셜 그린 미국 부대사가 ‘군은 헌정에 의한 정통 정부에 귀속하라.’는 서한을 보내 왔거든. →6군단장으로는 언제까지 근무하신 겁니까. -20일 대통령 특사가 온다기에 군단 비행장으로 나갔어요. 도착한 비서 2명이 건넨 윤보선 대통령의 서신에는 ‘대립을 피하고 쿠데타에 협력하라.’라는 취지의 짤막한 글이 있었어. 그날 장도영 장군이 21일 오후 1시쯤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서울로 떠나려는데 집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불길하다는 거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헌병 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중앙청 쪽으로 가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달려들어 막아서기에 내려보니 집사람이더라고. 그래서 “군인의 아내이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잘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는 차에 올랐어.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어. 의사당 앞에 도착하니까 어떤 장교가 다가오더니 권총을 옆구리에 대고 같이 가자고 해요. 차지철이었던 것 같아. 나를 마포 형무소에 집어넣더라고. →박정희 소장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나요. -잘 몰랐어. 하지만 그 사람이 청렴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 그래서 1957년 내가 군수참모부장으로 있을 때 그를 군수기지사령관에 추천했어요. →직접 본 박정희 소장은 어떤 인물이던가요. -강직한 느낌이었어요. 군수기지사령관 취임식 참석차 부산 동래에 내려가 있었는데 박정희가 숙소로 찾아와서는 “각하, 혁명이라도 해야지 나라가 이대로 되겠습니까.”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군인이 혁명한다고 나라가 잘 된다는 보장이 있나.”라고 했지. →김종필씨와는 인연이 있습니까. -5·16 전에 김종필 소령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부패한 장성들은 군대에서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내가 “부패한 장성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소문으로 알지 실제로는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정치적 발언하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 →미국으로 떠난 이후 두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은 없나요. -1972년인가 장모님이 위독하셔서 한국에 갔었어. 그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더라고. →청와대로 갔나요. -청와대에서 박정희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기에 “이제는 사회 문제보다 개인사정이 더 중요하다. 막내 아들이 대학 들어가는데 3년은 더 있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 그랬더니 박정희가 “기업체를 순방하고 군부대도 순방해 달라.”고 그래요. 내가 “장모님 병 때문에 어렵다.”고 했더니 “나이 든 사람의 병이란 늘 그런 것 아니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그래서 포항제철하고 과학기술연구원인가 두 군데 돌아봤어. →김종필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만났더니 “선배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나라가 부패된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했지. →5·16은 필요했다고 보십니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오늘날 국민 전체가 수긍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걸 보면, 5·16이 나라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구나, 국민의 감정에 완전히 반대되는 정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김웅수는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청산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 김조현의 거처로 옮겨 6살 때까지 중국 하얼빈 근처 독립군 부락에서 살았다. 일본 관동군 학도병으로 끌려간 뒤 일본 센다이 예비사관학교에 편입해 장교가 된다. 일본 야마가타 연대 소대장으로 임명된 지 몇 달 뒤 일본 패망으로 해방된 한국에 들어왔고, 국군 장교가 됐다. 5·16 당시 혁명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년 뒤 집행유예로 석방,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밟고 워싱턴 DC의 가톨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일했다. 여동생이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 “김종필, 육사 8기생들이 혁명 주체세력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김종필, 육사 8기생들이 혁명 주체세력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삼국지’ 첫 대목으로 기억된다. ‘창장(長江)강은 뒤 물이 앞 물을 밀치면서 도도히 흐른다.’ 역사의 물줄기를 의미하겠다. 꼭 50년 전 오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하루였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물줄기를 확 바꿔놓은 사건, 이른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이다. 최근 50주년을 맞아 5·16 그날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주체세력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필(85·육사8기) 전 자민련 총재가 5·16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재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육사8기생들이 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참모장(대령)이었다. 그는 거사 전야인 1961년 5월 15일 밤 육사 5기생 출신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영관장교들과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나중에 박정희 소장도 참석,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등의 역사가 있어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이날 김 이사장은 박정희 소장의 지시에 의해 당시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거사의 취지’를 알리는 서신을 전달하는 등 여러 중요 역할도 했다. “그때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혁명의 발상지였어. 15일 밤 10시에 5기생부터 8기생까지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이 많이 모였지. 그때 김 전 총리는 보이지도 않았어. 다들 목숨을 내놓고 온 장교들이라 긴 말이 필요없었지. 침묵으로 긴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 3시 혁명군들이 여러 시설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지.”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에 장교들이 모인 까닭에 대해 그는 “6관구사령부는 수도권을 포함, 전국의 부대를 통신축선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5기생 출신들이 5·16의 주도세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말야. 5사단장 채명신 장군, 12사단장 박춘식 장군,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 대령, 1공수여단장 박치옥 대령 등이 5기생 출신이었는데 병력을 이끌고 앞장서 출동해 말 그대로 일등공신들이었지.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지만 당시 김 전 총재는 민간인 신분인 걸로 알고 있어.” 김 전 총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원된 3700명 병력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혁명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당시 김 전 총재는 하극상 사건으로 민간인 신분인데도 권총을 차고 가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불법무기 소지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허, 아마도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다급하게 권총을 찼나 보지 뭐.”라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하 김 참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긴박했던 그날의 참모장실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재구성했다. 김 참모장은 5월 15일 저녁 9시 30분쯤 시내에서 6관구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특이상황 여부를 묻고 박정희 소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곧장 부대로 향한다. 잠시후 부대정문에 도착한 김 참모장은 대기 중이던 혁명군 장교 20여명과 합류하여 참모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밤 10시쯤 되자 다른 장교들도 추가로 합류했다. 김 참모장은 장교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6관구사령부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도군단의 전신이다. 이 시간 박정희 소장은 경호책임을 맡았던 한웅진 준장(육군정보학교장)과 함께 청진동 소재 서울호텔에서 은밀하게 만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비밀장소를 서울호텔로 정했다. 이날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새벽 3시 6군단 포병단이 육본을 완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기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과 긴장의 시곗바늘만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었다. 특히 새벽 3시 무렵, 참모장실에 영어를 구사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와 긴장과 초조함은 더했다. 백악관인지 미8군 관계자인지 영어가 짧아 되묻지는 못했지만 ‘거사의 주동이 박정희가 맞느냐.’고 묻는 것인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김 참모장은 ‘맞다.’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새벽 4시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김 참모장은 박정희 소장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혁명 취지가 담긴 박정희의 친필 서신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인편을 통해 보냈다. 내용에는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전원 자결키로 맹세한다.’는 뜻도 담겼다. 장 참모총장은 육본 군수참모 이·취임식이 있는 날이어서 필동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뒤 나중에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받았다. “5·16 아침 박정희 소장 등과 함께 청와대로 갔어. 윤보선 대통령한테 정확한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여서지. 비서관이 먼저 나와 우리들에게 ‘각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 앞으로 잘 모시고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만나게 해줬어. 장면 총리는 수녀원으로 피신해 있어서 금남의 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 박정희 소장한테 거사계획을 언제 들었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박정희 장군은 점조직을 통해 혁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부분 1대1로 만나 가담 여부를 타진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거사일을 5월 12일로 했다가 연기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우리 5기생들은 육사 때 박정희 장군이 구대장과 중대장을 했던지라 거사 제의 같은 것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5·16 관련 내용은 인터뷰나 자료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됐다. 이 중 거사의 발상지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이며 주축세력이 육사 5기생과 8기생 출신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왜 8기생 출신들의 역할이 더 부각됐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아마 김 전 총재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여서 그랬나 보다.”고 하면서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군대 성추행 피해자 첫 국가유공자 인정

    군 복무 중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처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국가보훈처는 해병대 부대 참모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의병 제대한 이모(23)씨를 국가유공자로 판정했다고 13일 밝혔다. 해병대 2사단 운전병이었던 이씨는 지난해 7월 군 휴양소에서 술을 마시고 관사로 이동하던 길에 당시 같은 부대의 참모장 오모 대령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씨가 성추행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점이 인정돼 지난달 27일 공상 군경 7급의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았다.”면서 “이씨는 매달 32만 2000원의 보훈보상금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또 “군에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씨의 경우 가해자의 범행 사실이 명백하고 의학적으로도 피해 상황이 분명하기 때문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트래비 스토리> 버스여행, 그 소소한 즐거움에 대하여

    트래비 스토리> 버스여행, 그 소소한 즐거움에 대하여

    버스를 타고 볼거리를 찾아 다니며, 때가 되면 밥상이 대령되는 국내 여행은 생경하지만 편하다. 밥상과 풍경을 나누다 보면 낯선 이들과도 어느새 친구가 되어 여행의 즐거움에 소소한 즐거움이 더해진다. 봄의 끝자락을 잡은 5월, 창으로 스민 햇살과 함께하는 여정은 더욱 따뜻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 취재협조 하나투어 www.hanatour.com 문화관광부에서 우수상품으로 인증한 하나투어의 내나라 여행상품을 엿보고 왔다. 이번에 다녀온 2박3일 코스는 서부권 일주와 남도일주가 섞인 것으로 실제 상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1st day / 전주 한지산업지원센터 ▶▶ 전주 한옥마을 ▶▶ 목포 토요공연 버스는 종각과 압구정, 죽전, 안성에 정차해 사람을 태웠다. 여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길이라면 어디에서든 버스는 설 수 있다고 한다. 며칠간 여행의 동반자가 될 낯선 이들과 만나고, 가이드의 멘트를 어색하게 경청하다 까무룩 잠이 들길 3시간. 어느 틈에 버스는 전주의 한지산업지원센터에 도착했다. 한지산업지원센터(063-281-1500 www.hisc.re.kr)는 전시관과 체험관을 갖춘 엄연한 박물관이자 연구개발실, 기업지원실, 디자인개발실을 운영하는 연구·개발 목적의 한지 관련 전문기관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이어온 한지의 우수성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현재 한지를 생산하고 있는 24개 업체와 그들의 제품을 소개하며, 한지 산업을 지원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곳에서는, 한지는 ‘옛 것’인 동시에 ‘지금의 것’이라 말하고 있다. ‘신상’ 한지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상품전시실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도, 한지 뜨기와 같은 작은 체험 활동이 비장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한지산업지원센터가 자리한 곳은 전주다. 전주 주변, 한지의 명맥을 이어가는 전통의 업체들은 한지산업센터를 전주에 있게 했다. 전주의 전통은 한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지산업센터에서 떠나 버스가 닿은 곳은 전주 한옥마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종교 성지인 전동 성당 등 문화재와 함께 700여 채의 한옥이 마을을 이룬, 살아 있는 전통의 공간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한옥마을의 동락원(063-287-2040 www.jkhanok.co.kr)에서는 전주 비빔밥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전주 비빔밥은 진주 비빔밥, 통영 비빔밥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비빔밥으로 손꼽힌다.전통 마을에서 만드는 전통 비빔밥에는 그만의 비밀이 있다. 우선 밥이 다르다. 사골 국물을 넣어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25가지 정도의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비벼도 뭉치는 일이 없다. 육회와 함께 계란 노른자를 날 것으로 얹는 것도 특징이다. 화려한 색감의 재료는 눈을 자극하고 식욕을 돋운다. 전주 비빔밥 만들기 체험은 6명이 한 조를 이룬다. 한옥마을에서의 체험은 우석대학교 전주한방문화센터(063-232-2500 www.hanbangcenter.com)로 이어진다. 차 체험, 건강 체험, 만들기 체험 등 한방 관련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만들기 체험의 하나인 향낭 만들기는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소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스트레스 완화와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당귀, 천궁, 백지, 목향, 계피, 정향, 자단향 등 7가지 약재를 전통 첩약식 포장을 해 예쁜 주머니에 넣으면 끝. 향낭은 약재 두 컵 정도로 만들어지는데 그중 한 컵은 그윽한 염주 향의 자단향으로 채운다. 관리만 잘하면 향낭은 1년이 넘게 향기를 잃지 않는다. 전주를 떠난 버스가 내달린 곳은 목포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목포 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는 전남국립국악단(061-375-6928 www.jpg.or.kr)이 선보이는 토요공연이 펼쳐진다. 한 분야에만 몰입하는 기존의 국악 공연과는 달리 토요공연에서는 판소리, 기악, 창극 등 다양한 분야의 국악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진다. 공연 내용은 조금씩이라도 매주 달라, 주말마다 공연을 찾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다. 1시간 30분, 소리와 가락, 입담에 취한 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이 가득하다. ◈ 청해원 회 정식 요리를 선보인다. 신선한 회 이외에 죽, 생선 조림, 튀김 등의 요리가 코스로 나온다. 주소 전남 목포시 상동 1153-1 문의 061-282-6556 ◈ 호텔현대목포 서남권 유일의 특급 호텔이다. 208개의 객실을 지니고 있으며, LCD 티브이, 무선 인터넷 등이 갖춰져 있다. 문의 061-463-2233, www.hyundai-hotel.com/mokpo 2nd day / 보성 차밭 ▶▶ 순천만 ▶▶ 남해 이충무공 전몰유허 보성은 전국 녹차 생산의 40% 가량을 맡고 있는 녹차의 땅이다. 구석구석 이어지는 다원의 행렬은 사시사철 보성을 푸르게 꾸민다. 다원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5월, 조금은 무거웠던 초록빛 찻잎은 상큼한 연초록으로 모습을 바꿔 말갛게 일렁인다. 마음마저 맑게 정화하는 투명한 빛이다. 보성에서도 관상용 차밭으로 알려진 대한다원(www.dhdawon.com)의 차는 재 넘어 율포만의 안개를 맞고 성장한다. 이슬 맺힌 찻잎은 바람을 타고 향긋한 차 향기를 실어 나른다. 입구에 자리한 시음장에서는 차밭의 향기를 마실 수 있다. 곡우 닷새 전에 어린 잎을 따, 덖어 만든 우전차가 저렴하다. 첫물차라고도 불리는 우전차의 맛과 향은 참으로 여리다. 보성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는 순천만이 자리했다. 넓디넓은 순천만의 너른 품에는 갯벌과 갈대밭 등이 안겨 있다. 어류의 80% 이상을 품어 어머니의 땅이라고도 불리는 갯벌. 순천만의 넉넉함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www.suncheonbay.go.kr)의 나무 데크를 걸으면 갯벌을 분주히 쏘다니는 온갖 종류의 바다 생물과 만나게 된다. 흔히 마주치는 짱뚱어는 6개월은 자고, 나머지 6개월은 깨어 있다는 물고기다. ‘잠둥이’라는 별명에서 짱뚱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갈대밭과 더불어 짠물을 머금고 자라나는 붉은 풀, 칠면초도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이들 모두를 한눈에 담으려면 1시간 가량 다리품을 팔아 용산 전망대에 오르는 게 좋다. 긴 여운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다. 버스는 다시 남해로 향한다. 1973년 6월, 하동 노량과 남해 노량을 잇는 남해대교가 완공되며 섬 아닌 섬이 된 남해. 남해대교와 가까운 곳에는 이충무공 전몰유허가 자리했다. 1598년 11월19일, 노량 앞바다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노량해전이 벌어졌다. 이날 400여 척의 전선을 잃고 남해 방면으로 도망가던 왜군을 쫓던 이순신은 일본군의 유탄에 맞아 전사한다. 이충무공 전몰유허는 그의 유해가 가장 처음으로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일명 ‘이락사’라 불리는 이곳에는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의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 옆에 자리한 거북선 모양의 영상관에서는 노량대전과 이순신의 생애에 관한 3D 영상을 상영한다. 최초의 돔 형태 영상관으로 편안한 좌석이 인상적이다. 3rd day 남해 보리암 ▶ 창선삼천포대교 ▶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 해발 681m로 그리 높지 않지만 한려수도가 한눈에 담기는 금산은 가히 남해의 으뜸이다. 금산은 본래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세운 뒤 산 이름 또한 보광산이라 불렸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조선을 일으키게 되자 그 뜻을 높이 사 온 산을 비단으로 덮겠다고 해 금산이라 고쳐 부르게 됐다. 금산에는 보리암이 자리했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관음도량으로 불리는 보리암. 명성 그대로 기도를 드리는 이들로 늘 붐빈다. 보리암은 셔틀버스로 오를 수 있는 복곡 제2 주차장에서 10분 가량 걸으면 닿을 수 있다. 보리암에서 내려와 통영으로 향하는 버스는 죽방렴을 볼 수 있는 창선대교를 천천히 달리더니 삼천포대교에서 아예 정차를 했다. 창선삼천포대교는 남해와 사천을 잇는 3.2km의 연륙교로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향교 등 5개의 다리로 구성된다. 2003년 4월28일에 개통된 다리는 섬과 섬, 그리고 육지를 이으며 여행의 새로운 루트를 제시했다. 남해와 사천 양쪽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바다와 조화를 이룬 다리를 조망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넌 버스는 섬을 벗어나 뭍, 통영으로 향한다. 벌써 3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이 탑승한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이다. 1,975m. 국내에서 가장 긴 관광용 케이블카다. 1번부터 49번까지, 발 아래 전망이 아찔하기만 한 이들은 케이블카 운반차의 번호를 센다. 어라. 4번 운반차가 없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미륵산 정상까지는 15분 가량 거리다.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 이들은 케이블카 상층 전망대나 한산대첩 전망대를 이용하면 된다. 물론 전망은 정상만 못하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일대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려수도를 수놓은 섬들과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의 자태가 그야말로 곱다. 산을 깎아 계단식 논을 만든 어촌 마을의 풍경도 있다. 바다만 먹고 살기에는 팍팍한 탓이겠지만 외지인의 눈에는 아름답기만 하다. ◈ 통선재 멋진 서까래의 한옥. 통영 이순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보인 이순신 밥상을 낸다. 생선찜과 구절판, 회, 각종 나물 등으로 구성된 식단이 생각보다 화려하다. 재료 원래의 맛을 살려 요리하는 곳으로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간이 조금 심심하다.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는다. 주소 경남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 945-23 문의 055-645-6336 ◈ 하나투어로 떠나는 내나라 여행 서부권일주 4일, 진도, 보길도 남도 3일, 한려수도일주 4일, 강원일주 3일, 전국일주 7일, 동부권일주 4일, 남도일주 3일, 한려수도일주 3일 등의 상품으로 운영된다. 3일 39만9,000원, 4일 59만9,000원, 7일 110만원으로 상품가격 자체는 만만치 않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2만원 가량에 해당하는 한 끼 식사와 특급 호텔 숙박, 전용 대형 버스 등 투어 내용을 보면 그 자부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국일주와 서부권, 동부권 일주 여행은 단 1명이 상품을 신청해도 출발이 가능하다. 파격적이다. 지난 3월 말부터 선보인 외국인을 위한 내나라 여행에서 실제 2명의 인원이 출발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1~2명이 출발할 경우에는 대형 버스 대신 미니 밴이 사용된다. 전국의 지정된 경유지에서 자유롭게 승하차가 가능하며, 각각의 내나라 여행 상품을 연계해 이용할 수도 있다. www.hanatou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한국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한국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英 윌리엄 왕자-케이트 미들턴 웨딩마치] 천상의 어머니 핑크빛 금반지에 로열키스

    [英 윌리엄 왕자-케이트 미들턴 웨딩마치] 천상의 어머니 핑크빛 금반지에 로열키스

    ‘웨이티 케이티’(기다리는 케이티)의 기다림은 끝났다. 영국 왕실이 350년 만에 맞은 평민 신부 케이트 미들턴이 21세기 신데렐라로 탄생하는 순간, 전 세계가 숨을 죽였다. 1997년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으로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14년 뒤인 29일(현지시간) 아들 윌리엄 왕자가 오랜 연인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당부했던 다이애나비의 소원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이날 결혼식에서 두 번째 울려퍼진 성가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오, 당신은 나의 위대한 구세주’는 다이애나비의 장례식 때 나왔던 곡이다. 영국 언론들이 “엄마(mom)가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는 제목을 뽑아냈듯,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등장한 반지, 마차 등을 보며 세계인들은 다이애나비를 함께 추억했다. ●웨스트민스터, 슬픔의 장소에서 축제의 장소로 왕실 가족이 등장할 때마다 터져나온 관중들의 함성은 오전 11시 얼굴 가득 미소를 띤 미들턴과 아버지 마이클이 탄 롤스로이스 팬텀Ⅵ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입구로 미끄러져 들어오자 극에 달했다. 시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쓴 신부의 미소는 베일 속에서 환하게 빛났다. 은방울꽃, 수염패랭이꽃 등으로 꾸며진 소담한 부케가 그의 손에 꼭 쥐여져 있었다. 초 단위로 짜인 결혼식은 세인트제임스궁이 발표한 것처럼 철저히 영국 왕실 전통을 엄수하며 진행됐다. 영국 성공회 수장 로언 윌리엄스 대주교 아래 나란히 서서 윌리엄이 미들턴의 손에 핑크빛이 도는 웨일스산 금반지를 끼워 주면서 평생을 약속했다. 이 반지는 엘리자베스 여왕 모후의 1923년 결혼식에 이어 1981년 다이애나비의 결혼식에 쓰였던 금반지로 만든 것으로 다이애나비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품이다. 50개국 정상을 포함해 팝 스타와 외국 왕족 등 1900여명의 하객들이 결혼 서약의 증인이 되어 줬다. 75분간의 예식을 마치고 왕자비가 된 미들턴은 윌리엄 왕자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버킹엄궁까지 런던의 주요 명소를 두루 거치는 퍼레이드에 나섰다. 세기의 결혼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소나기에 천둥까지 예고됐던 이날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게 갰다. 이들이 탄 마차는 30년 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가 결혼식 퍼레이드 때 탔던 것으로, 1902년 제작된 ‘스테이트 랜도’다. 이날 런던은 유니언잭(영국 국기)이 일렁이는 거대한 바다로 돌변했다. 특히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펼쳐질 새 왕실 부부의 키스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십만명에 이르는 군중의 물결이 더 몰 거리를 따라 버킹엄궁으로 향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오후 1시 25분. 버킹엄궁 발코니에 등장해 대규모 인파를 목격한 미들턴의 첫마디는 ‘와우’(wow)였다. 이제 캠브리지 공작부인이 된 아내와 두 차례의 짧은 키스를 나눈 윌리엄 왕자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자 군중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이제 버킹엄궁에 신·구세대 왕실 가족이 나란히 자리하게 된 것처럼, 2차 대전 당시 위용을 떨쳤던 구세대 전투기인 랭커스터 폭격기와 스핏파이어, 신세대 전투기인 타이푼, 토네이도 등이 차례로 런던 상공을 가로지르며 분열식을 펼쳤다. 1923년부터 시작된 왕가 결혼식의 전통이다. ●영국 육군 제복으로 전우애 드러낸 윌리엄 윌리엄 왕자는 네이비 블루의 공군 정복 대신 육군의 진홍빛 코트 제복을 결혼식 예복으로 입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제복은 아프가니스탄전에 참가하고 있는 영국 육군 ‘아이리시 가드’ 보병연대 명예 대령 계급의 복장으로, 지난해 아프간전 참전 도중 숨진 전우 3명을 기리는 전우애가 담겨 있다고 AFP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날 런던은 온통 유니언잭(영국 국기)의 물결로 일렁였다. 도심의 주요 명소마다 결혼식을 눈앞에서 지켜보려는 ‘노숙 관광객’이 수천명이 몰려들어 ‘국제 캠핑장’을 방불케 했다. 영국 전역 5500여곳에서 왕실 결혼을 축하하는 흥겨운 거리 축제가 벌어진 가운데, 1600여명의 육·해·공군과 5000여명의 정복 및 사복 경찰이 도심 곳곳에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이어갔다. ‘짝퉁 신부’들도 등장했다. 윌리엄 왕자의 열성 여성 팬들은 미들턴이 약혼식 발표 당시 입고 나와 화제가 됐던 ‘로열블루 원피스’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리로 몰려나와 웃음을 자아냈다. ●언론 “경제에 눈 돌려라” 쓴소리도 영국 언론들은 역사적인 왕실 결혼에 대해 여러 평가를 쏟아냈다. 텔레그래프는 “새 부부의 관계는 영국 왕실 가족이 먼 길을 여행해 왔다는 증거”라면서 “오늘 일어난 사건은 영국과 영국 왕족의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라고 전했다. 더타임스도 왕실 결혼을 가리켜 “영국 군주 정치에는 새 시대를, 버킹엄궁과 국민들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나라의 암울한 경제 상태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수백만 영국 국민에게는 힘든 시기”라면서 “새 왕자비를 미친 듯이 숭배할 때가 아니다. 현실의 세계로 다시 들어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서린·유대근기자 rin@seoul.co.kr
  • 감사원, 국방연구원장 해임 요구

    감사원은 최근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구섭 원장의 금품수수 혐의를 적발, 국방부에 해임을 요구했다고 24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김 원장은 2009년 10월 KIDA 직원인 조모 육군 대령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2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김 원장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으며 지난 14일 국방부에 해임 처분을 요구하는 감사 결과를 통보했다. 김 원장의 임기는 다음 달 6일까지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기관장에 대한 해임 요구는 다소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2년 전 장인상을 당한 직후 아내가 집으로 찾아온 조 대령에게서 받은 과일 바구니에 수표가 든 봉투가 있었다.”면서 “다음 날 바로 조 대령을 불러 돌려주려고 했지만 조의금이라며 거부해 어쩔 수 없던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김 원장은 이번 감사내용이 지난해 면직처분을 받은 KIDA 연구원들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한 투서와 같은 내용으로 모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이들은 원내 보고서를 내면서 표절혐의가 드러나 징계받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방부 감사관실은 김 원장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관계자는 “김 원장이 조만간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어떤 식으로 처리하게 될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 원장의 후임 원장 공모절차는 최근 마무리됐으며 12명의 지원자 가운데 2명이 최종 인선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석·박성국기자 hot@seoul.co.kr
  • 軍 법무병과 첫 여성장군 탄생

    국방부는 20일 박남수(54·육사35기·육군 소장) 합참 작전기획부장 등 25명에 대한 장성 진급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중장으로 진급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또 공석인 육군 참모차장에는 김요환(55·육사 34기) 수도군단장이 임명됐다. 군별로는 육군 21명, 해군 4명이며 공석이 없는 공군은 진급자가 없었다. 권태오(55·3사 13기) 연합사 부참모장은 8군단장으로, 류제승(55·육사 35기) 국방부 정책기획관은 수도군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으로 근무하던 방원팔(56·육사 35기) 소장은 인사사령관으로 진급했다. 팽준호 준장 등 15명이 소장으로 진급해 사단장 등 지휘관으로 진출하게 됐다. 또 의무병과 박동언 대령과 육군 인권과장 겸 법무실장 대리 이은수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해 각각 병과장에 임명됐다. 이 대령은 첫 여성 법무병과장이다. 해군은 준장에서 소장으로 모두 4명이 진급했으며 이 가운데 2명은 최근 독립성이 강화되고 있는 해병대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기수·서열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전문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주한미군 해외훈련 일상화될 것”

    “주한미군 해외훈련 일상화될 것”

    “(국방개혁을 통한) 변화는 한·미동맹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존 D 존슨 미 8군사령관(중장)이 20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하텔하우스에서 가진 국방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군의 국방개혁과 관련, “한국군이 지휘구조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 안건에 관해서는 현재 토의가 진행 중이며 결정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미관계를 더욱 강하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존슨 사령관은 이어 “미군은 오는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미 공군과 해군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할 것”이라면서 “(군의 변화는) 6·25전쟁 이후 (한·미가)함께 겪어 왔던 변화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한미군의 전투능력 강화를 위해 해외 훈련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8군은 지난해와 올해 필리핀과 태국에서 다국적군이 모여 실시한 훈련에 참가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의 동향을 묻는 질문에 존슨 사령관은 “지금 한국과 미국 군의 정보공유가 잘 되고 있고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 강력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정보 수집 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계속 고민하고 있으며, 현재 특별히 이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군 전력에 대해서는 “한국에 전개하도록 계획된 증원부대 규모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한국군 중심으로)지휘구조만 바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8군사령부가 군수·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유사시 미 국방부에 전력 증원을 요청했지만 지금은 그 기능이 태평양군사령부로 이관돼 사령부에 직접 요청하면 된다.”면서 “유사시 지원 병력과 장비의 전개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존슨 사령관은 또 주한미군 병력 유지와 관련해 “그간 특기가 있는 장병을 이라크로 파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들이 전개됐을 때 같은 능력을 갖춘 인력이 한국에 들어와 인력 공백은 없었다. 한·미 간 합의된 주한미군 2만 8500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주한미군이 해외 훈련에 참가할 때 한반도 위기 발생 시 즉시 복귀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확보해 놓는다.”면서 “미 8군 병력은 한국에서의 임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배석한 미 8군사령부 참모장인 도널드 잭슨 대령은 “(미8군은)미 태평양군사령부와 태평양육군사령부가 주관하는 훈련에 참가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 내 작전지원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장성 진급 로비 의혹 등 육군내 비리수사 지휘

    장성 진급 로비 의혹 등 육군내 비리수사 지휘

    군내 여풍(女風)이 거세다. 지난해 육군 전투병과에서 첫 여성 장군이 탄생한 데 이어 법무병과에서도 창군 이래 첫 여성 장군이 탄생했다. 군내 여성 장군은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을 포함해 모두 3명으로 늘었다. ●91년 최초 女법무관 임관 국방부는 20일 이은수(46·법무 56기) 대령을 준장으로 진급시켜 육군 법무실장에 임명했다. 충남 계룡대에 근무하고 있는 이 대령은 진급이 확정된 직후 전화 인터뷰에서 “최초 여성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주위의 관심과 충고를 많이 받았고 열심히 살다 보니까 오늘에 이른 것 같다.”면서 “법무병과원 전체의 기쁨이자 전체 여군들의 희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병과는 그간 남자들의 독무대였다. 특히 10년 이상 장기 법무관으로 구성된 군내 법무 주요 직위자는 모두 남성 법무관들이 차지해 왔다. 1991년 최초의 여성 법무관으로 임관한 이 대령은 동기들 가운데 홍일점으로 20여년간 남성 법무관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군 생활 10년 만에 전역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는 “당시에도 ‘여자 후배 법무장교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에게 본보기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병과 선배들의 말을 듣고 계속 군에 남게 됐다.”고 회고했다. ●“여군들에게 희망 될 것 같아” 20여년의 군 생활 중 4년 전 남편과의 사별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 대령은 “당시 대령 진급을 앞둔 시점이라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면서 “주위에서 많이 도와줘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병기 병과장에 대한 장성 진급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해 현역 준장을 기소하고 육군 내 각종 비리 수사를 지휘했다. 이 대령의 진급은 최근 여군 법무관이 급증하고 있는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올해 선발된 20명의 장기 법무관 가운데 8명이 여성인 데다 지난해에는 임관한 장기 법무관 15명 가운데 무려 11명이 여성 법무관으로 채워졌다. 이 대령은 “엄정히 운영해 군 기강을 확립하고 적극적인 법률 지원을 통해 군내 법치주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비영리단체지원금 두배 인상…보수·관변단체 퍼주기 논란

    정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금이 지난해 49억원보다 2배 이상 오른 98억 7000만원으로 확정됐다. 지원대상 단체도 153곳에서 220곳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지원받는 단체가 국민행동본부, 예비역대령연합회, 애국단체총협의회 등 보수단체 중심으로 구성돼 ‘보수·관변단체 퍼주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 220곳 98억 7000만원 확정 행정안전부는 15일 중앙행정기관에 등록된 1092개 단체를 대상으로 사업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아 455개 사업 중 220개 사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업분야별로 사회통합 관련 57개 사업(26억 5000만원), 국가안보 및 안전문화 관련 49개 사업(22억 9000만원) 순으로 지원비가 많다. 특히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국가 안보 사업 지원이 늘어났다. 하지만 국민행동본부는 단체 대표인 서정갑 본부장이 2009년 6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기습 철거해 폭력혐의 등으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음에도 심사에 통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진보단체, MB정부 이후 빈익빈 1991년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숨진 강경대씨의 아버지인 강민조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은 “유가협 등 민주화 관련 시민단체와 진보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원금이 뚝 끊겼다. 정부가 뜻이 맞는 단체만을 골라 지원금을 퍼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올해 정신대 문제 해결 관련 국내 캠페인 등의 사업으로 지원비를 신청했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반면 최근 여론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이클린연대는 ‘물 사랑·강 사랑 홍보캠페인 및 콘텐츠 공모전’ 명목으로 4500만원을 지원받는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부고]

    ●류철호(한국도로공사 사장)씨 부친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3410-6915 ●우용해(전 경제기획원 차관보·전 쌍용 회장)씨 별세 영목(예비역 해병대 대령)영배(저팬 펄프 앤 페이퍼 회장)정은(미국 버지니아대학 학장)씨 부친상 최상현(남서울대 교수)김한중(전 코렉스자전거 회장)조윤제(전 영국 대사·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씨 장인상 10일 서울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2072-2091 ●하만우(명성악기 대표)봉래(비엠씨 상무)만덕(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사장)만석(법률사무소 행복세상 변호사)씨 부친상 이경규(거제 상동교회 목사)이한섭(연희택시 차장)씨 장인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2)3010-2230 ●장선곤(한국타이어 사외이사)씨 별세 의태(경희대 교수)상태(미국 거주)씨 부친상 호문혁(서울대 교수)씨 장인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03 ●임연규(풍림에너지 회장)씨 별세 문일(방송인·전 미주헤럴드경제 부사장)문성(미국 거주·사업)문철(풍림에너지 사장)문호(선우GSM 〃)씨 부친상 9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2258-5979 ●박주병(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부소장)정병(디알젬 사장)씨 부친상 이광희(법무사)김재식(변호사)씨 장인상 9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30분 (053)956-4416 ●이준성(예비역 육군 준장)씨 별세 박경립(강원대 건축학과 교수·대한건축학회 부회장)씨 장인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410-6912 ●정욱수(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기획조정실장)씨 부친상 9일 진주 경상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55)750-8651 ●강동식(현대자동차 부장·국가브랜드위원회 전문위원)경옥(독일 율리히국가연구소 국가연구원)씨 부친상 정상순(남부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씨 장인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93 ●김태학(두손건축 대표)태웅(현대자동차 대구서비스센터 차장)씨 모친상 이철준(울산과학대 교수)최성환(자영업)송원호(〃)박강섭(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씨 장모상 10일 경산 삼성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53)814-0044 ●정덕환(에덴복지재단 이사장)덕명(전 WHO 약사)태환(미국 조지타운어패럴 대표)씨 모친상 김학수(전 UN에스캅 사무총장)씨 장모상 이순자(에덴선교회 목사)씨 시모상 1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30분 (02)2227-7556 ●김계동(계림메디텍 대표이사)익동(계림메디텍 부사장)씨 모친상 박재용(경북대 의대 교수)박명규(머젠스 부사장)김정성(자영업)최인용(합참 중령)씨 장모상 9일 일산 동국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31)961-9415 ●김훈(농협중앙회 차장)희훈(문화일보 편집부 기자)씨 부친상 10일 강원 양구 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7시 (033)481-4441 010-4462-0516 ●박성호(남도일보 대표이사 사장)성택(한국전력 진도 조도발전소)영섭(전남 진도군청)씨 모친상 10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 자택, 발인 12일 오전 10시 (061)542-5035
  • 육사 -비육사 ‘진급 쿼터제’ 폐지 논란

    군의 진급에서 육사와 비(非)육사 출신 진급자 규모를 차등적으로 할당하는 이른바 ‘진급쿼터제’를 폐지하는 방안에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육사 몇 기에 몇 명, 비육사 몇 기에 몇 명 진급하는 식의 육사-비육사 진급쿼터제를 없앨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 307계획’은 육사를 비롯한 3사와 학군(ROTC), 학사 등의 출신 및 기수, 연차 등을 가리지 않고 자유경쟁을 통한 진급심사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간 군은 소령~중령, 중령~대령 등 계급별로 전체적인 진급자 규모를 판단한 뒤 이를 육사와 비육사 출신으로 분배하는 것이 관례였다. 중령~대령 진급자 중 육사와 비육사 출신 비율은 7대3, 대령~준장 진급은 8대2 정도로 진급 비율이 형성됐다. 논란은 진급쿼터제 폐지의 유·불리를 예상하기 어려운 데서 비롯됐다. 육사 출신의 한 장성은 “진급쿼터제는 사실상 비육사 출신을 배려했던 것인데 출신을 가리고 심사하면 비육사 출신들의 진급 기회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쿼터제를 무조건 적용해 함량이 미달한 군인이 진급하는 경우가 많아 탈락자들의 상대적인 박탈감도 컸다. 전문성을 기르고 그런 군인이 진급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의 계획은 진급심사 때 대상자가 어느 출신인지를 심사위원들이 모르게 한 뒤 자유 경쟁토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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