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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교일 “무희들 춤 봤지만 완전한 나체 아니었다”

    최교일 “무희들 춤 봤지만 완전한 나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 최교일(경북 영주·문경·예천) 국회의원이 2016년 미국 뉴욕 출장 중 현지 가이드를 대동하고 스트립바에 갔다는 주장에 대해 다시 반박했다. 최교일 의원은 가이드가 두 번째 인터뷰를 한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트립쇼를 하는 곳으로 안내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편하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보좌관이 저를 말렸다고 하는데 보좌관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보좌관이 말렸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마치 가서는 안 될 곳을 간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자신을 20년 이상 경력의 미국 현지 가이드라고 소개한 대니얼 조씨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당시 보좌관이 ‘이런 데 가도 되냐’며 만류했지만 최 의원이 ‘이런 문화도 체험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맨해튼에서 식사하고 차를 32가쪽 코리아타운 맨해튼으로 돌려서 33가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트립바에 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총 10여명되는 일행과 이른 저녁에 ‘상하이몽’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도보로 약 2~3분 거리인 해당 주점까지 걸어갔다. 같이 갔던 일행들도 분명히 걸어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 의원은 “미국 변호사에게 확인한 결과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뉴욕 맨해튼에서 술을 파는 곳에서는 옷을 다 벗는 스트립쇼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무희들이 한쪽에서 춤을 췄던 것은 맞지만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와서 춤을 춘 사실은 없다. (무희들의) 노출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옷을 완전히 벗는 곳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의원은 “현장에는 지금도 현직인 한국계 미국인 판사와 변호사가 분명히 있었다. 당일 계산은 사비로 나눠냈으며 공금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폭로자 조씨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는 내용의 제보가 의원실로 들어왔다면서 “조씨는 이 사건을 제보하기 전에 민주당 인사와 연락한 사실이 있는지, 누구와 연락했는지 분명히 밝히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최교일 방문 ‘파라다이스’…미국 사이트엔 ‘성인 유흥업소’

    최교일 방문 ‘파라다이스’…미국 사이트엔 ‘성인 유흥업소’

    자유한국당 최교일(경북 영주·문경·예천) 국회의원이 2016년 미국 뉴욕 출장 중 현지 가이드를 대동하고 스트립바에 갔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 의원은 “스트립바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반박했지만 당시 가이드는 클럽의 주소와 상호명을 대며 상세한 기억을 전했다. 자신을 20년 이상 경력의 미국 현지 가이드라고 소개한 대니얼 조씨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시 보좌관이 ‘이런 데 가도 되냐’며 만류했지만 최 의원이 ‘이런 문화도 체험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맨해튼에서 식사하고 차를 32가쪽 코리아타운 맨해튼으로 돌려서 33가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트립바에 갔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그렇게 한 개인을 이름까지 밝히면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먼저 그렇게 자수하듯이 먼저 반박자료를 내고 한 거에 대해서 참 조금 의아스럽다”고도 했다. 앞서 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 법에 스트립바는 술을 팔 수 없어서 우리가 갔던 곳은 스트립바가 아니며 팁을 준 기억도 없다”고 해명했다. 최 의원은 “2016년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지역 내 모 오페라단의 요청으로 오페라단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뉴욕 카네기홀 공연 홍보를 위해 뉴욕에 갔고, 가이드에게 식사 후 술을 한 잔 할 수 있는 주점을 알아봐달라고 한 사실은 있다. 하지만 스트립쇼를 하는 곳으로 가자고 한 사실이 없다”면서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최 의원은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해당 주점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고 공개된 합법적인 장소이며, 술 한잔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조씨는 “‘파라다이스’라는 미국의 전형적인 스트립바였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무희들이 춤추는 주변에 앉아서 술을 시켜먹는 그런 곳”이라면서 “최 의원은 같이 간 8명의 의원에게 1달러짜리를 바꿔주면서 1달러씩 직접 팁으로 주라고 했다”고 반박했다.검색 결과 조씨가 말한 파라다이스 클럽에 대해 미국 ‘클럽 존(Club Zone)’ 사이트는 “당신의 판타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맨해튼에 위치한 유일한 판타지 성인 테마파크”라는 설명과 함께 샴페인 거품목욕, 탑리스 당구(Topless Billiards·상반신 누드 당구) 등의 이벤트가 열린다고 적혀 있다. 장소 정보 사이트 ‘옐프(YELP)’에도 ‘성인 유흥(Adult Entertainment)’이라고 분류됐다.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로 같은 장소에 ‘릭 캬바레(Rick Cabaret)’라는 스트립 클럽이 새로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조씨는 “자기 돈으로 와서 스트립바를 가든지 더한 것을 가면 저는 상관하지 않겠지만 분명히 국민이 낸 그러한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일정에 없는 것들을 하는 것 자체가 마음 속에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제보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민주평화당은 같은날 논평을 통해 “무희는 있었지만 스트립쇼인지는 모른다는 낯부끄러운 일에 변명까지 하고 있는데 후안무치”라면서 “검사장 까지 지낸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가짜단식, 실없는 대선불복주장, 청와대 의총만 하지 말고 윤리위 제소 등 당 차원의 신속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예천 지역구 최교일 의원, 美서 ‘스트립바’ 방문 여부 논란

    예천 지역구 최교일 의원, 美서 ‘스트립바’ 방문 여부 논란

    가이드 “최 의원이 ‘팁’도 주라고 했다” 최 의원 “스트립바 아니다” 강력 반박최근 경북 예천군 의회 의원들이 해외연수기간 가이드를 폭행해 물의를 빚은 가운데 자유한국당 최교일(경북 영주·문경·예천) 국회의원이 2016년 미국 뉴욕 출장 중 현지 가이드를 대동하고 스트립바에 갔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최 의원은 “스트립바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자신을 20년 이상 경력의 미국 현지 가이드라고 소개한 대니얼 조씨는 3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2016년 가을 무렵 미국을 방문한 경북 지역 C 의원이 보통 뉴욕 맨해튼에서 저녁을 먹게 되는데 식사 후 자꾸 미국 여자들 (나오는) 스트립바에 가자고 굉장히 강요했다”며 “강압적인 분위기에 못 이겨서 그분들을 그쪽으로 안내하고 스트립쇼가 끝나는 두세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호텔로 모시고 간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제가 스케줄 표와 그분들의 명함을 갖고 있다”며 “원하시면 보여 드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진행자가 ‘스트립바라고 하면 옷 다 벗고 춤추는 곳이냐’고 묻자 조씨는 “맞다. 1달러짜리를 바꿔주면서 1달러씩 직접 팁으로 주라고 했다. C 의원이 그렇게 하라고 주도했다”고 말했다. 조씨가 언급한 C 의원은 최교일 의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 의원은 해명자료를 내고 “2016년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지역구에 연고가 있는 모 오페라단의 간곡한 참여 요청으로 오페라단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및 오페라단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 홍보를 위해 뉴욕에 간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10여명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가이드에게 식사 후 술 한잔할 수 있는 주점을 알아봐 달라고 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스트립쇼 하는 곳으로 가자고 한 사실은 없고 실제 스트립쇼 하는 곳으로 가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해당 주점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고 공개된 합법적인 장소이며, 술 한잔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 법에 스트립바는 술을 팔 수 없어서 우리가 갔던 곳은 스트립바가 아니며 팁을 준 기억도 없다”고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트럼프 G20서 또 통역사 없이 푸틴 몰래 만나”

    “트럼프 G20서 또 통역사 없이 푸틴 몰래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통역사나 보좌관 없이 따로 만났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러시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30일 G20 저녁 행사를 마친 뒤 따로 만나 15분간 대화를 나눴으며 미측 통역사나 보좌관이 동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측 통역사까지 4명만 있었다. 이 관계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두 정상은 약 15분간 시리아 내전 상황과 우크라이나 함정 나포 사건 등을 논의했다”면서 “향후 두 정상 간 공식적인 만남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논했다”고 말했다. 당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G20 회의가 열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푸틴 대통령과 따로 비공식 대화를 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기간 중인 지난해 12월 1일 푸틴 대통령과 공식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함정 나포 사건을 이유로 아르헨티나로 가는 도중에 회담을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사 없이 푸틴 대통령을 만난 사실을 FT가 보도한 것은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선거캠프가 러시아측과 공모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로버트 뮬러 특검 조사를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 측은 푸틴 대통령과 만날 때마다 의혹의 눈초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미측 통역사와 보좌관을 대동하지 않고 푸틴 대통령과 1시간 동안 비공식 회동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 민주당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때 다른 배석자 없이 통역사만 참석한 가운데 2시간 가까이 비밀스런 대화를 나눈 것에도 의혹을 제기해왔다. 민주당은 당시 통역을 맡은 국무부 직원 마리나 그로스를 의회로 소환해 당시 대화 내용을 알아내고자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왕이 된 남자’ 여진구, 美친듯이 빠져드는 절정의 연기 “역대급 엔딩”

    ‘왕이 된 남자’ 여진구, 美친듯이 빠져드는 절정의 연기 “역대급 엔딩”

    ‘왕이 된 남자’ 여진구가 클래스 다른 절정의 연기로 완성한 역대급 엔딩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지난 28일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 (극본 김선덕, 연출 김희원,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8화에서 여진구는 죽음의 끝에서 살아 돌아온 하선의 각성과 광기에 휩싸인 외로운 왕 이헌의 죽음을 밀도 높게 그려내며 흡인력을 높였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진짜 왕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각성한 하선, 한때는 강성한 새 세상을 꿈꾸기도 했던 왕 이헌의 외로운 죽음은 가슴 먹먹한 울림을 선사했다. 울분과 슬픔을 토해내는 하선과 이헌의 대비되는 감정선을 빈틈없이 그려낸 여진구의 연기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이날 자신을 대신해 왕 노릇을 하던 하선이 대동법의 초석을 닦고 중전 소운(이세영 분)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는 사실에 이헌의 광기가 폭발했다. 간신 신치수(권해효 분)을 중용하겠다는 뜻까지 밝혀 이규(김상경 분)를 낙담시킨 이헌의 위험한 행보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됐다. 이규는 이헌의 폭주를 보며 앞날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층 더 심해진 광증으로 분별력을 잃은 이헌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그사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하선이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죽음의 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하선의 분노는 그의 각성과 함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이규를 향해 “억울해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진짜 임금이 되고 싶다”며 악에 받쳐 외치는 하선의 모습은 절절했다. 몰래 암자로 보내진 이헌을 대신해 다시 임금 노릇을 하게 된 하선은 신치수와 그의 일당들을 완전히 도려내는 등 차근차근 잘못을 바로잡으며 백성을 위한 군주의 권위를 재정비했다. 하지만 하선의 또 다른 위기도 암시됐다. 과거 놀이판을 전전하던 하선의 얼굴을 기억한 진사가 용안과 꼭 닮은 광대가 있다는 사실을 신치수에게 고한 것. 여기에 김상궁마저 이헌의 귀에서 보았던 상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의아해하는 모습까지 포착돼 불안감을 조성했다. 한편, 하선은 망설이지 않고 소운에게 성큼 다가갔다. “보고 싶었다. 간밤 내내 중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두려었다”는 하선의 애틋한 진심은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와 함께 설렘을 증폭했다. 방송 말미 이헌의 죽음은 역대급 충격 엔딩을 선사했다. 이헌이 그렇게 바랐던 새로운 세상을 선택한 이규. 독을 탄 탄신주를 올리는 이규의 눈물은 보는 이들을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총명했고, 강성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했던 이헌. 하지만 정치 싸움에 휘말려 미쳐간 이헌의 쓸쓸한 최후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죽고자 했는데 살고, 살고자 했는데 죽는다. 살고 싶다”는 이헌의 마지막 말이 묵직하게 가슴에 박혔다. 광대에서 진짜 임금이 된 하선이 새 세상을 열 수 있을지, 그 앞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새 국면을 맞은 ‘왕이 된 남자’에 쏠리는 기대가 뜨겁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갓진구 연기가 미쳤다”, “진구 고백에 내 심장도 터졌다”, “괜히 연기천재가 아니다”, “직진남 하선 기다렸다”, “이헌의 비극적인 운명도 안타까웠다”, “오늘 연기는 진짜 역대급” 등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왕이 된 남자’는 임금(여진구 분)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보다 더 닮은 광대 하선(여진구 분)을 궁에 들여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매주 월,화요일 밤 9시 30분에 tvN을 통해 방영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아직도 신경안정제 없인 잠 못 자… 공포는 여진으로 남았다

    아직도 신경안정제 없인 잠 못 자… 공포는 여진으로 남았다

    “지진도, 대처도 모든 게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규모의 재해가 닥친 유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일상은 사라졌습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30분.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 사는 박형철(39·가명)씨는 그날 오후가 지금도 생생하다. 꿈에서도 그의 가슴을 옥죈다. 그날을 기점으로 박씨의 건장했던 인생은 통째로 달라졌다. 점심 직후였다. 자영업을 하다 새 일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맑은 하늘 어디선가 거대한 천둥소리를 들었다. 순간 전쟁이 났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땅이 흔들렸다. 지진은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역에 5.4 규모로 찾아왔다. 한반도에서 역대 두 번째로 큰 지진이었다.무의식적으로 네 살짜리 조카가 있는 근처 영일어린이집으로 냅다 뛰었다. 선생님들이 그나마 아이들을 대피시킨 뒤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우는 아이들이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조카는 삼촌을 보더니 환히 웃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나오는 순간, 바로 옆 건물 빨간 벽돌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어린이집 차량을 덮쳤다. 1m 차이로 화를 면했다. 경림뉴소망아파트 1층인 집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배낭에 급한 짐을 구겨 넣고 어머니, 동생 내외를 수소문해 근처 흥해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사이렌은 울렸지만 그때까지도 대피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학교로 가면 뭔가 안내가 있을 거라고만 짐작했다. 동네 사람들 800여명이 뒤엉켰다. “작년 경주 지진이 더 심했다는데 어째 우리 동네가 더 무너진 것 같아”라며 옆에서 웅성거렸다. 한참을 기다려 구호품 키트를 받았다. 당장 잠을 잘 데가 없는데 지급된 텐트도 모자랐다. 그날 밤 가족 5명은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승용차에서 쪽잠을 잤다. 대피소는 어느 정도 질서정연했지만 밤이 되면 달라졌다. 구호품과 텐트를 받아 급식만 먹고 사라지는 이들, 술 먹고 남의 텐트에 쓰러지는 이들, 사생활이 없었다. 지진 후 사나흘이 지나자 “22일까지 피해 사실을 동사무소에 접수하라”고 했다. ‘집합건물은 전파, 개인주택은 반파’ 이상 판정받아야 이주시켜 준단다. 부서진 건물이 워낙 많은데, 대개 육안으로만 관찰하고 판정을 내렸다. 박씨 아파트도 처음엔 전파 판정을 받지 못했다. 90가구 중 65세 이상 어르신이 35%가량 사는 곳이다. 전기 스파크 튀는 소리, 벽 갈라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27일, 조심스레 지하실에 내려가 기둥을 만졌다. 콘크리트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철근이 다 드러났다. 시청은 이튿날 전파 판정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면증이 찾아왔다.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창문 소리, 휴대전화 진동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극도의 공포감에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5분 거리인 동사무소를 가는 데 동생의 부축을 받고서 한 시간이 걸렸다. 숨이 차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일상은 사라졌다. 2018년 2월 11일 새벽, 규모 4.6의 여진이 또 찾아왔다. 대피소 15곳도 철수하고 주민들도 일상에 서서히 복귀하려던 시점이었다. 그날 이후 증세가 더 심해졌다. 박씨는 다음달 갑자기 찾아온 가슴 통증에 결국 119에 실려갔다. 4월,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흥해보건소에 새로 생긴 재난심리센터에서 상담과 심리치료를 받긴 했지만, 전문의가 없어 약 처방은 받지 못했다. 그는 “지진보다 트라우마가 100배는 더 무섭다”고 했다. 박씨는 지진 감지 애플리케이션 3개를 동시에 쓰고 있다. 행정안전부 재난 안내문자의 속도가 가장 느리다며, 2월 여진 당시 문자 전송 시간을 보여 줬다. N사의 재해 발생 속보보다 7분이 늦었다. 그는 “흥해 사는 분들은 대부분 N사 앱을 쓴다”고 했다. 11월, 한동대에서 하는 지진 트라우마 극복 심리상담교육을 1주일에 2번 받기 시작했다. 항우울제 처방과 병행하니 다행히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게 처음인 탓에 주민도, 공무원도 헤맸다”고 했다. 정작 지원받아야 할 주민들이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이 봤다. 역대 2위급 지진에다 현재까지도 운영 중인 대피소 관리부터 이재민 구호, 건물 파손 판정, 이주계획, 재난심리지원 등 모든 것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야 했다. 반면 건축·재난 관련 전문가는 모자랐던 데다 주민 의견 수렴이 현장에서 잘 안 되다 보니 복구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지진 대피·구호소 운영 매뉴얼은 있지만 사후 현장과는 괴리가 컸다.신순옥(69·여)씨는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2층 2평(6.6㎡) 남짓 하는 텐트에서 남편과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딸과 아들이 있지만 “폐를 끼치느니 죽겠다”고 했다. “컴퓨터와 냉장고, TV, 세탁기, 세간살이가 다 산산이 부서졌는데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고 했다. 그가 살던 흥해읍의 한미장관 맨션은 C등급으로 ‘소파’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벽체에 여기저기 금이 간 집에 차마 들어가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씨와 비슷한 200여가구가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고, 상주인구는 30명가량이다. 주민들은 2월 재정밀 안전점검 당시 현행 건축기준 전파 판정에 해당되는 D, E등급이 나왔는데도 시가 준공 당시인 1988년 건축기준으로 C등급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또 개정된 시설물안전특별법에 따르면 이 아파트가 ‘3종 건축물’로 지정 고시돼 현행 법규에 따른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데도 시가 고시를 하지 않아 현행법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공기업에 다니던 남편 퇴직 후 아파트를 팔아 귀농하려 했지만, 노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병원 가서 진료받고 친구들과 동네 사우나에서 만나 수다 떨고 점심 먹고 산책하던 일상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저기 쑤시는 통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만 새로 찾아왔다. 한의원에서 침 맞고 돌아오면 하루 종일 텐트에 누워 지낸다. 병원을 전전했지만 뇌와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신씨 웃옷 주머니에는 약봉지가 가득하다. 신경안정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1년이 넘었다. 신씨 텐트 앞 조그만 어항에는 싸구려 열대어 ‘구피’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귀하게 키우던 놈들도 어항이 깨지는 바람에 다 죽었네. 얘네라도 들여다봐야 위안이 되지….” 딸에게서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김치했다니 가서 맛봐야겠네.” 얼마 전에 찾아온 손녀는 집 현관 앞에서 안을 들여다볼 뿐 망부석이 됐다. “할머니 무서워서 들어갈 수가 없어….” 올해도 혹한의 추위가 찾아왔지만, 누전 염려 때문에 전기요를 쓰지 못한다. 두꺼운 매트 2개를 겹쳐 깔았지만 한기는 사방에서 올라온다. 지병인 암 진료를 위해 남편과 고속버스를 탔는데 선잠이 들었다가 혼비백산해 깼다. 버스 진동이 여진인 줄 알았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심리상담 같은 건 받을 생각들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역시 “시에서 한다는 얘기만 들었지 상담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다 필요없이 그냥 예전 집으로만 돌아가고 싶네.” 신씨가 혼잣말로 읊조렸다. “주민 주도형 복구, 그리고 단순한 ‘도시 풍경의 재생’이 아니라 주민 마음·터전의 재구성이 절실합니다.” 포항시 북구 환호동의 대동빌라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설립 추진위원회를 맡고 있는 김대명(49) 위원장은 1년 넘게 휴직 중이다. 새 보금자리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보니 생업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전파 판정을 받은 대동빌라는 지난해 11월 철거가 시작됐다. 아침에 들른 빌라 입구 한복판에는 죽은 쥐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힘없이 바스라진 벽체와 엿가락처럼 휘어진 창틀, 널브러진 깨진 유리창들이 고스란히 그날의 충격을 말해 준다. 개인 주택과 달리 공동 주택 주민은 내부 수리도 이웃 동의를 얻어야 하고 재건축 의견 수렴 과정 역시 기나긴 진통의 연속이다. 이런 이유로 지진 피해를 입은 공동주택 대부분이 아직 철거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반면 대동빌라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부영주택㈜, 포항시와 함께 재건축 등 주택정비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합의했다.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주민 상생을 우선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같은 동 주민끼리 시비가 붙었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청와대 제도개혁비서관을 어렵게 면담했다. “지원 법규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선 국토교통부의 재해주택복구기금은 여지껏 공동주택을 지원한 사례가 없었다. 우리은행을 통해 ‘20년간 1.5% 장기 저리 지원’ 등 내규를 만드는 데만도 몇 개월이 걸렸다. 다들 “이런 규모의 지진과 피해가 처음이라 전례가 없어 그렇다”고만 반복했다. 포항 지진을 계기로 이재민에게 주는 재난지원금 기준도 ‘전파 900만원→1300만원, 반파 450만원→650만원’으로 상향됐지만, 정작 소급이 안 돼 포항 시민들은 지원받을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 지진 재해로 인한 재난복구·지원특별법 통과 등을 장담했지만, 주민들 피부엔 와닿지 않았다. 재건축만 확정됐을 뿐 분담금, 이주 기간 협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철거 판정을 받은 아파트는 대부분 1억원 이하인데 재개발하려면 1억 6000만원씩 내라는 게 시의 입장이었다. 이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주민은 많지 않다. 분담금을 낮추는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임시 주택 거주 기간도 당초 6개월이었다가 2년으로 연장됐다. 재건축 완료까지 앞으로 최소한 3년 이상 걸리는데, 올해 말에는 여기서 나가야 한다. 포항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과 계속 협상 중이니 올봄까지 기다려 보라고 한다. 재난 피해 지역을 특별재생지역으로 복구하는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 특별법’이 지난해 4월 개정돼 포항이 특별재생지역으로 포함된 것 외, 포항 지진 관련 지원법은 지난해 국회서 통과된 게 전무하다. 예산 역시 올해 국가 지진 방재 교육관 용역비 1억원(전체 사업비 1000억원)이 반영된 게 전부다. 임시 이주한 주택은 포항시 반대편 끝에 있어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매일 새벽 등교를 한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왕복 3시간 통학 거리를 감수하는 아들이 안쓰럽다. 김 위원장은 “주민들은 그저 새집이 아니라 삶을 지탱한 터전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월드피플+] 하루 25번 심장마비에도 살아남은 아기의 기적

    [월드피플+] 하루 25번 심장마비에도 살아남은 아기의 기적

    하루 25번의 심장마비를 겪고도 살아남은 아기의 강인한 생명력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언론 미러는 태어나자마자 30번의 심장마비와 17번의 수술을 치른 테오 프라이의 사연을 조명했다. 테오 가족의 시련은 아기가 태어난지 꼭 8일째 되던 날 시작됐다. 갑자기 축 늘어진 테오는 몸이 시퍼래지더니 급기야는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테오의 아빠 스티븐 프라이(35)는 “아기의 상태가 심각해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료진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테오는 맥박과 혈압 모두 불안정한 상태로 리버풀에 있는 아동전문병원에 이송됐고 4일 후 첫 심장수술을 받았다. 주치의는 “테오의 심장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으며, 대동맥궁 분리증을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대동맥궁 분리증은 보기 드문 심장의 기형으로, 생후 1~3개월 이내에 심부전, 저산소혈증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테오는 의료진의 노력에 부응하듯 수술을 잘 견뎌냈고, 3개월 후 퇴원했다.퇴원의 기쁨도 잠시, 테오는 한때 심장이 12분가량 멈추는 등 위기에 빠졌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작은 몸으로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긴 테오는 생후 9개월째에 인생 최대의 위기와 맞닥뜨렸다. 하루 25번의 심장마비가 발생한 것. 테오는 그렇게 죽음과 가까워지는 듯 했다. 테오의 엄마 포브 사이어스(30)는 “테오의 심장은 멈추고 또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 아들이 더이상 버티지 못할 거란 걸 직감했다”고 울먹였다. 그녀는 “의료진이 아들의 작은 가슴을 계속 누르는 걸 보면서 제발 마지막이 아니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테오의 주치의 라마나 다나푸네니는 긴급 수술을 결정했다. 테오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적었지만, 숨이 꺼질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장장 10시간의 대수술 끝에 테오는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포브는 “테오는 정말 강했다. 그 작은 아기가 보여준 강인한 생명력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고 회상했다. 의료진에게 무언가 보답할 길을 찾던 테오의 부모는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을 돕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수술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자선단체 ‘힐링 리틀 허트’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스티븐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은 테오처럼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며 “훌륭한 의사들이 테오의 목숨을 구한 것처럼 그들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수술 후 꼭 1년이 지난 지금, 테오는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또 테오 부모의 모금을 받은 엘더 헤이 의료진은 지난주 100번째 어린이를 살려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와우! 과학] 이빨이 우주선 갤러그 모양…고대 신종 상어 발견

    [와우! 과학] 이빨이 우주선 갤러그 모양…고대 신종 상어 발견

    지금으로부터 약 6700만년 전 우주선 모양의 이빨을 드러내고 강 속을 휘젖고 다닌 고대 상어의 신종이 발견됐다. 최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과 필드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사우스다코타 주 헬크리크 층에서 고대 신종 상어의 화석을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민물에 사는 이 상어는 길이가 30.5~45.7㎝로 추정될 만큼 작은 덩치며 현대 얼룩상어의 조상뻘로 보인다. 연구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화석화된 이빨이다. 일반적으로 상어의 뼈대는 연골로 이루어져 오랜시간 보존되지 않아 이빨을 제외하고는 연구자료가 거의 없다. 이번에 연구팀은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고대 상어의 이빨을 현미경으로 분석해 전체적인 모습을 추론했다.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빨은 폭이 1mm가 안될 만큼 모래알처럼 작지만 전체적인 모양이 삼각형 형태로 가운데 윗부분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에 연구팀은 상어의 이빨이 1980년대 인기 오락실용 게임인 '갤러그'(갤러가·Galaga)의 우주선과 닮았다고 해 '갤러가돈 노드퀴스테'(Galagadon nordquistae)라는 재미있는 학명으로 명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피트 마코비키 박사는 "갤러가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티라노사우루스인 수와 같은 공간에서 발견됐다"면서 "이는 두 고대동물이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수’(Sue)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으로 현재 시카고 필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어 "왜 두 고대 동물이 함께 잠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갤러가돈이 티렉스의 먹잇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갤러가돈은 우주선처럼 생긴 이빨로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왕이 된 남자’ 폭군 여진구, 저잣거리 한복판 출현 “소름 작렬”

    ‘왕이 된 남자’ 폭군 여진구, 저잣거리 한복판 출현 “소름 작렬”

    폭군 여진구가 속세로 돌아온다. 광기 어린 눈빛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긴장감을 수직상승 시킨다. 뜨거운 입소문과 함께 인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tvN ‘왕이 된 남자’(극본 김선덕/ 연출 김희원/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측이 22일, 6회 방송을 앞두고 폭군 이헌(여진구 분)의 모습을 담은 현장 스틸을 공개해 시선을 강탈한다. 지난 5회 방송에서는 임금 노릇을 하고 있는 광대 하선(여진구 분)과 도승지 이규(김상경 분)가 백성의 구휼의 일환으로 대동법을 추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중전 소운(이세영 분)은 지아비(사실은 광대 하선)에게 연모의 마음을 고백, 잠든 하선에게 입맞춤을 하며 시청자들을 설렘으로 잠 못 이루게 만들었다. 이 가운데 공개된 스틸 속에는 암자를 떠나 도성으로 돌아온 폭군 여진구의 모습이 담겨 있어 극의 대 파란을 예고한다. 여진구는 머리에 갓도 쓰지 않은 채 흐트러진 모습으로 저잣거리 한복판을 거닐고 있다. 수많은 군중을 뚫고 나오는 살벌한 아우라를 통해 단박에 그가 ‘이헌’임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여진구는 무언가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모습. 창백한 낯빛과 형형한 눈빛이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다. 무엇보다 극중 이헌은 환청과 환각에 시달려 자해를 하는가 하면 맥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던 상황. 이에 그가 어떻게 암자를 빠져 나온 것인지, 비로소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것인지 호기심이 증폭된다. 뿐만 아니라 도성으로 돌아온 이헌이 이대로 궁으로 돌아갈지, 이로 인해 하선-소운-이규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편 이날 오랜만에 ‘왕진구’로서 촬영에 나선 여진구는 걸음걸이 하나에까지 광기를 불어넣으며 신들린듯한 연기로 현장을 압도했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카메라 앵글을 뚫을 듯 강렬한 눈빛은 또 하나의 ‘레전드 장면’ 탄생을 예감케 했다는 후문. 이에 6회 본 방송을 향한 기대감이 수직 상승한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임금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보다 더 닮은 광대를 궁에 들여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 오늘(22일) 밤 9시 30분에 6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하루 25번 심장마비에도 살아남은 아기의 기적같은 이야기

    하루 25번 심장마비에도 살아남은 아기의 기적같은 이야기

    하루 25번의 심장마비를 겪고도 살아남은 아기의 강인한 생명력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언론 미러는 태어나자마자 30번의 심장마비와 17번의 수술을 치른 테오 프라이의 사연을 조명했다. 테오 가족의 시련은 아기가 태어난지 꼭 8일째 되던 날 시작됐다. 갑자기 축 늘어진 테오는 몸이 시퍼래지더니 급기야는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테오의 아빠 스티븐 프라이(35)는 “아기의 상태가 심각해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료진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테오는 맥박과 혈압 모두 불안정한 상태로 리버풀에 있는 아동전문병원에 이송됐고 4일 후 첫 심장수술을 받았다. 주치의는 “테오의 심장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으며, 대동맥궁 분리증을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대동맥궁 분리증은 보기 드문 심장의 기형으로, 생후 1~3개월 이내에 심부전, 저산소혈증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테오는 의료진의 노력에 부응하듯 수술을 잘 견뎌냈고, 3개월 후 퇴원했다.퇴원의 기쁨도 잠시, 테오는 한때 심장이 12분가량 멈추는 등 위기에 빠졌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작은 몸으로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긴 테오는 생후 9개월째에 인생 최대의 위기와 맞닥뜨렸다. 하루 25번의 심장마비가 발생한 것. 테오는 그렇게 죽음과 가까워지는 듯 했다. 테오의 엄마 포브 사이어스(30)는 “테오의 심장은 멈추고 또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 아들이 더이상 버티지 못할 거란 걸 직감했다”고 울먹였다. 그녀는 “의료진이 아들의 작은 가슴을 계속 누르는 걸 보면서 제발 마지막이 아니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테오의 주치의 라마나 다나푸네니는 긴급 수술을 결정했다. 테오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적었지만, 숨이 꺼질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장장 10시간의 대수술 끝에 테오는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포브는 “테오는 정말 강했다. 그 작은 아기가 보여준 강인한 생명력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고 회상했다. 의료진에게 무언가 보답할 길을 찾던 테오의 부모는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을 돕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수술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자선단체 ‘힐링 리틀 허트’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스티븐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은 테오처럼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며 “훌륭한 의사들이 테오의 목숨을 구한 것처럼 그들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수술 후 꼭 1년이 지난 지금, 테오는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또 테오 부모의 모금을 받은 엘더 헤이 의료진은 지난주 100번째 어린이를 살려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박원순 “김정은 답방 안내하면 서울역·한강 보여줄 것”

    박원순 “김정은 답방 안내하면 서울역·한강 보여줄 것”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측 답방을 직접 안내할 경우 서울역과 한강 등으로 이끌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박 시장은 2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한 외신기자들과의 신년 간담회에서 “가이드를 한다면 보여줄 게 너무나 많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박 시장은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서울역이 앞으로 유라시아로 가는 출발역이자 종착역이 될 것”이라며 “서울역과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바꾼) 서울로 7017 프로젝트를 안내하고 싶다”고 했다. 또 “(북측이) 대동강 수질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며 “한강의 정비된 모습이라든가 한강 물을 이용해 수돗물을 생산하는 서울시 정수장을 안내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제게 대동강 수질 개선에 협력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가 (서울시 남북 교류의) 하나의 화두로 등장했다”며 “중앙정부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김 위원장) 가이드를 할 역할을 맡겨주면 맛있는 식당도 안내할 수 있고, 아주 비밀스러운 일반 시민이 잘 모르는 그런 곳도 안내할 수 있다”며 “제가 단골로 가는 곳들”이라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강신도시 ‘디원시티’ 7월 김포도시철도 개통 등 교통 수혜 넘쳐

    한강신도시 ‘디원시티’ 7월 김포도시철도 개통 등 교통 수혜 넘쳐

    고강도 부동산 규제로 수익형 부동산이 풍선효과를 누리는 가운데, 다양한 세제 혜택을 받는 지식산업센터가 틈새 투자처로 급부상 중이다. 올해 말까지 정부는 지식산업센터 입주 기업에 취득세 50%, 제산세 37.5% 등 세금 감면을 제공한다. 서울 및 수도권 과밀억제권에서 이전 시 취득세, 법인세가 4년간 100% 감면된다. 국가 정책에 따른 중소기업 육성자금으로 5~70억 한도 내에서 다양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김포 한강신도시에 들어서는 ‘디원시티’가 분양 중이다. 경기도 김포시 구래동 외 2필지에 지하 4층~지상 10층, 지식산업센터 397실, 상업시설 90실, 기숙사 180실 규모다. 시공은 1군 건설사 대림산업이 맡았다. 김포 한강신도시는 최근 대규모 교통망 확장으로 주목받는 지역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편리한 교통 인프라를 꿰찬 지식산업센터는 주변 지역으로 쉽게 이동해 물류 이동 비용과 시간이 절약되고, 협력 업체와의 교류 또한 수월히 이뤄져 수요자들의 선호가 높다.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공실 위험이 적고, 기업 대상 상품이라 장기 임대로 꾸준한 수익도 가능하다. ‘디원시티’ 도보 4분 거리에는 김포도시철도 양촌역이 자리한다. 이용 시 김포공항역까지 29분대로 이동 가능하다. 5·9호선, 공항철도로 환승하면 홍대입구역 45분, 여의도역 47분, 광화문 59분 등 서울 주요지를 1시간 내로 이동 가능하다. 구래역, 복합환승센터와도 가깝다. 김포도시철도는 현재 차량과 지상설비간 연계 동작시험을 시작으로 개통을 위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7월 개통할 예정이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대곶IC와도 인접해 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을 기점으로 송산, 인천, 김포, 파주, 포천, 양평 등 12개 구간을 원형으로 이어 수도권 물류의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인천~김포 구간은 이미 개통한 상태다. 김포~파주 구간은 오는 2월 착공 예정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연장안인 ‘김포 한강선(가칭)’ 소식도 들려온다. 인천 지하철 2호선 김포연장사업도 추진 중이다. 인천 2호선 독정역에서 검단신도시를 거쳐 불로지구까지 연장한 뒤 인천시계에서 김포도시철도 걸포북변역~고양 킨텍스까지 연장해 GTX와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김포~계양 고속도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앞뒀다. 조사와 실시설계 등 과정을 조속히 거칠 경우 내년 착공도 가능한 상황이다. 타당성 검토 결과에 따라 연장 건설(계양~김포~강화, 31.5km)될 가능성도 있다. 한강신도시 유일의 중심상업지구와 인접해 생활 인프라 시설 이용도 편리하다. ‘디원시티’는 입주 기업과 종사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업무, 상업, 주거, 문화공간을 한 건물에 집약했다. 먼저 업무 편의를 위해 사무 공간 ‘디원시티 타워’는 내부 중정, 접견실, 회의실, 로비 등 다양한 시설을 설계했다. 상업시설 ‘디원시티 몰’을 함께 구성해 건물 밖을 나서지 않아도 생활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다. 기숙사 ‘디원시티 스튜디오’는 전 호실 발코니 및 복층형 설계로 서비스 면적을 극대화했다. 문화공간 ‘디원시티 컬쳐라인’은 호수공원부터 이어지는 특화문화거리로 조성돼 기업체의 쾌적한 휴게 공간이자 상업시설에 풍부한 수요를 견인해줄 수 있다. 한편 ‘디원시티’ 홍보관은 김포시 김포한강9로에 마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미시의회 해외연수 보고서 카피(copy)…“딱 걸렸네”

    경북 구미시의회가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다른 시의회 연수보고서를 그대로 베껴 냈던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구미YMCA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구미시의원 13명과 사무국 직원 9명이 4박 5일 동안 일본(도쿄·오사카 일대)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구미시의회가 일본 도쿄소방청을 다녀온 후 작성한 연수보고서는 이보다 2년 전 같은 곳을 방문한 전남 광양시의회 보고서와 토씨와 쉼표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특히 현장을 방문한 구미시의원들의 질의와 도쿄소방청의 답변마저 광양시의회 연구보고서와 똑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미YMCA는 “지난 4년 6개월간 구미시의회 해외연수 보고서는 사무국 직원들이 인터넷과 다른 지자체 해외연수 자료를 표절해 작성했다는 내용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7대 구미시의회(2014~2018)는 4년간 해마다 중국·일본·캄보디아·몽골·러시아·뉴질랜드·호주·베트남을 다녀왔다. 구미시의원 공무국외 여행 규칙에는 해외연수를 가기 전 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돼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 9명 중 4명이 시의원으로, 심사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현욱 구미YMCA 부장은 “해외연수 보고서 문제점은 구미시의회뿐 아니라 경북 다른 시·군의회가 대동소이하다”고 주장했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항일운동 구심점이던 고종 ‘日 독살설’ 백성들 공분… 장례일 계기로 3·1운동 당시 황제에게만 사용했던 경칭 ‘만세’ 국호와 더불어 ‘대한독립 만세’ 외친 것“올해는 고종 황제 승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개 3·1 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도화선이자 기폭제가 된 고종황제 승하 100주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잇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역사 교육이 부족한 점이 정말 안타깝다.”고종의 증손자인 이원(57·본명 이상협)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종 사망 100주년 소회를 묻자 “만감이 든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인 이구 황태손(皇太孫·황제의 적장손)이 타계한 이후 양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맡았다. 또 조선시대 왕이 직접 참여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 조선왕릉 제향의 ‘초헌관’으로도 참여한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0분쯤 사망했다.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채 안 돼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해 일부 역사학자와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됐다. 이런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고종의 후손인 이 총재는 이 독살설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는 “고종 황제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 식혜, 커피를 마신 지 30여분 만에 시해됐다”며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이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다”고 견해를 밝혔다. 고종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의 공분을 일으켰고, 고종 장례일을 계기로 3·1 만세운동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고종을 어리석은 군주로 묘사했지만, 최근에는 재조명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구호에 대해 그는 “요즘은 만세가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다며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21일 오전 11시 30분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서 ‘고종황제 100주기’ 제향을 거행한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한 무덤이다. 그는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처럼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고종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의 후손들을 설득해 작년에 다 돌려받지 못한 유물들을 환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황사손’ 이원이 말하는 고종 승하 100주년“올해가 고종광무태황제 승하 100주년입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고종 황제의 붕어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사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오전 6시30분쯤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마다 이날 정오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 가서 제향을 봉행합니다. 고종 황제가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는데, 나라를 잘 못 이끌었다는 오해를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이 잘 못된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21일 정오 고종 왕릉인 남양주서 ‘홍릉제향’ 봉행 그를 만나면 무엇부터 질문할까 고민했다. ‘군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황위 계승자 제1순위로서의 삶’을 먼저 물어볼까하다 ‘고종 사망 10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황실의 적통을 잇는 후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겸하고 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어땠나요. -> 고종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은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든 겁니다.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식혜·커피를 드시고 30여분만에 시해되셨습니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황제는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사후에 보니 혀와 치아가 타 없어지고,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으며,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살됐다는 확실한 증거 기록입니다. “고종, 21일 아침 6시 한약·커피·식혜 마시고 승하심한 경륜 후…혀·치아 타 없어져 독살 시해 증거고종 시해 이유…항일독립 망명정부 차단하려고”- 고종 승하에 백성들은 왜 ‘만세(萬歲)’라고 외쳤을까. -> 만세가 요즘이야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렸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의 수장이었던 황제가 억울하게 독살당하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킨 것입니다. 고종의 항일 투쟁의 뜻을 기리는 백성들이 인산일(因山日·왕과 왕가의 장례일)인 3월 3일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여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인산일에 맞추려다 국장날 소요는 예가 아니다고 미루고, 전날인 3월2일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늦췄다고 합니다. 결국 1일로 날짜가 맞추진 것이 3·1독립만세운동입니다. - 고종의 독립운동 가운데 일반인이 잘 모를 법한 이야기는. ☞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한 것도 지금보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1894년 갑오개혁때 공식적인 국문 즉 ‘나랏글’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된 겁니다. 한글을 이용한 잡지와 신문 발간도 적극 권장했지요.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도 출간도 가능했던 겁니다. 또 일본보다 2년 빠른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와 협약해 창덕궁에 전기등소를 설치하고 종로에 전차를 도입했습니다. 종로를 아시아에서 가장 번쩍이며 화려한 명소로 탈바꿈시키셨던거죠. 친일역적 매국노들이 고종 황제를 철저히 암군(暗君·어리석고 아둔한 군주)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학자들에 의해 개명군주(開明君主)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종, 한글 공식 나랏글 선포…개명군주 역할 많아대한광복군정부 수장…항일 구국 독립운동 구심점- 대한광복군정부에 대해 설명하면. ☞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황위에서 강제로 퇴위되셨습니다만 1914년 이상설(1871~1917)을 중심으로 설립된 첫 망명 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의 수장이 되어 항일구국 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다시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됩니다. 간접적인 독립활동에 한계를 느끼신 황제는 이상설과 이회영(1867~1932)의 계획 아래 중국에 망명해 항일구국 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망명 계획을 첩보로 입수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민병석·송병준·이완용·윤덕영·한상학이 고종의 망명을 차단하려고 암살을 한 겁니다. -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에서 황사손의 역할은. ☞ 가장 대표적인 직무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대제(대한제국 황실 선포 및 국태민안 기원 제사)·조경단대제(조선왕실 시조 즉 전주이씨 시조묘 제사) 그리고 연중 66회의 왕릉제향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연간 70번 거행되는 제사에서 왕과 왕비 신위에 술잔을 처음으로 올리는 제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왕실 초헌관은 조선시대 때부터 국왕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만 이구 황태손 저하를 이어 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의 그 유구한 역사·문화적인 유산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황실이 그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 황제 계승자라는 직위는 다른 분들에겐 사실 설명하도 이해를 잘 못하는, 그래서 외로운 면이 있습니다. “황사손 역할, 연중 70회 대제·제향 초헌관 맡아유구한 역사 계승…대한민국 정통성 뒷받침 자부”- 황실 최고령인 이해경씨 환국은. ☞ 제게는 고모님이 되시는 해경 황녀님은 1930년 태어나셨서 올해 구순이 됩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왕자이신 의친왕(1877~1955)의 5녀입니다. 조선왕실 법도로 보면 의친왕의 공주가 되고, 대한제국 황실 법도로 보면 황녀가 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발굴해 내셨습니다. 1996년 정년퇴직하신 이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주요 행사에 참석하시며 교민들에게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황녀라는 호칭보다 ‘한국 공주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독립한 조국이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더 늦기 전에 환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국시 친모이신 의친왕비가 생활하셨던 안동별궁이나 사동궁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황실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구 황태손 저하와 영친왕비, 그리고 덕혜옹주께서 기거하셨던 창덕궁 낙선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황사손으로 보람을 느꼈던 일은. ☞ 2017년과 작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오하이오주에 사는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소개되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들은 저를 ‘His Imperial Highness’(저하)로 경칭해 놀랐습니다. 또 알렌 박사의 고향에선 ‘한국의 황태자가 온다’는 소문에 알렌 박사의 증조카 며느리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만나려 몰려왔습니다. 그들도 저를 ‘Your Highness’로 높여 불러주었습니다. 한 이웃은 오찬 음식점까지 자신의 자녀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면서 “오늘 한국의 황태자를 알현하는 것은 저희 가족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서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한 큰 위로도 받았습니다. 황사손에 대한 마땅한 영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해외왕실교류수석위원이신 김영관 박사는 제1위 황위 계승자이니 영어로 ‘The Crown Prince His Imperial Highness’(황태자 저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현재 영어로는 그렇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알렌 후손들로부터 환수된 문화재는 서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황실 최고령 이해경 황녀, 늦기 전에 환국해야사직대제·환구대제·왕릉제향 유네스코 등록 추진”-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 올해는 특히 국민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문화 융성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즉, 민주공화정에서도 종묘에 모셔진 역대 왕과 왕비의 직계손이 제향에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뿌리와 원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직대제와 환구대제 그리고 왕릉제향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올해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뉴욕한인축제나 에딘버러축제에서 어가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이나 어가행렬은 단순한 제례의식의 절차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역사·종교·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우리의 역사문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알렉 박사의 후손들을 올해 직접 방문해 작년에 환수하지 못한 나머지 유물 환수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런 여정을 영상으로 남길까합니다. 그는 황사손이라고 하지만 궁궐이 아니라 서울 성북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황사손이 되기 전에는 그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상문고와 뉴욕공과대(NYIT)를 마치고 미국 케이블사 홈박스오피스(HBO)의 PD로 일하다 1990년 귀국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PD, 현대홈쇼핑 디지털방송본부장으로 있다가 황사손으로 선정됐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했는데, 미련이 많겠다’고 하자 그는 “하늘의 부름이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서울광장] ‘캐슬’의 독서, 개천의 책/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캐슬’의 독서, 개천의 책/황수정 논설위원

    “(극중에서) 강남의 반포 아파트 한 채 값이라니 입시 코디 비용이 대체 얼마라는 거죠?” “20억~30억원쯤 아닐까요?” “그러면 제 힘으로 설대(서울대) 의대 갔으면 30억 벌었네요.”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대화 내용이다. 인기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텔레비전 앞의 학부모들을 대쪽 가르듯 쪼갰다. 아들딸에게 입시 코디네이터를 붙여 줄 수 있는 부모와 못 해주는 부모. 학생들도 둘로 쪼개 놨다. 다만 몇십만원짜리라도 입시 코디를 받고 있거나, 코디라면 ‘패션 코디’인 줄로만 알고 있었거나. 드라마는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입시 환경의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작두 타듯 넘어 다닌다. 열심히 시청률을 올려 주는 속내들은 까뒤집어 보자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불편’해서다. 장담컨대 이런 거다. 있는 대로 빈정 상해서 빈속에다 소주, 불닭발 안주까지 털어 넣고는 식은땀을 흘리는 상황. 머리를 떠나지 않는 드라마 속 불편한 진실은 캐슬의 독서 모임이다. 기득권 집단인 캐슬 입주자 가족들의 폐쇄된 책 읽기 모임은 교육 불평등의 공고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암시했다.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실력과 재력을 갖춘 부모를 대동한 독서 모임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놓고 토론한다. 극중의 말마따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이 6년을 연구하고도 난해하다는 책”이다. 로스쿨 교수인 입주민 아빠는 학교생활기록부 독서록 기재용의 도서 목록을 직접 짜서 주도한다. 생각 없이 읽었든 말았든 캐슬 아이들의 학생부에는 책 제목이 반짝거릴 것이고, 수시 전형의 입학사정관 앞에서는 독서 내공을 유감없이 뽐낼 것이다. 블랙 코미디 같은 이야기는 결코 웃기는 소리가 아니다. 입시의 열쇠인 ‘기획 독서’가 역량 있는 부모들의 전폭적 지지로 난공불락의 성벽을 쌓는 어마무시한 이야기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은 캐슬 바깥 세상에도 소소하지만 다양한 층위로 펼쳐져 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독서를 책 읽는 일로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은 더는 없기 때문이다. 진로를 최대한 일찍 설정해 놓고 그에 걸맞은 독서 지도를 누가 더 치밀하게 꾸몄느냐가 핵심. 입시의 독서는 기술과 요령과 전략의 영역인지 오래다. 그러니 부모든 사설학원이든 ‘독서 코디’가 되어 따라붙어 줘야 입시 경쟁력은 확보된다. 의도가 순수할 수 없는 책 읽기 부모 모임이 주위에 적지 않다. 난해하고 방대한 책을 골라 내용을 요약하고 독후감까지 대신 쓰는 작업이 무엇을 위해서인지 서로 묻지 않는다. 그렇게 제조된 독서 목록을 학교에서 묻거나 따지는 낭패스러운 일은 더더욱 없다. 얼마 전 서울 시내 유명 대학 안의 대형 서점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원로 작가 윤흥길이 생애 마지막일 대하장편 소설을 냈다고 온통 떠들썩할 때였다. 그 큰 서가 어디에도 체면치레할 책 한 권이 없었다. “찾지 않으니 갖다 놓지 않는다”는 지당한 말을 차라리 듣지나 말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책 읽기의 기술만이 앙상하게 득세하는 교육환경에서는 독서 토양은 편협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보다시피 진로와 엮어 자기소개서에 한 줄 써 먹지도 못하는 문학은 백해무익한 독서 영역으로 나가떨어져 있다. 성찰과 사유를 요구하는 인문·사회 과학서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서점 한복판은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기획한 새털 같은 베스트셀러들이 온통 점령했다. 고교 내신 2등급은 받아야 들어가는 명문대의 서점 풍경이 지금 그렇다. 순수소설 한 권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데, 국어 시험에 ‘화작’(화법과 작문)을 달달 외워 풀어야 하는 사정은 아무래도 코미디다. 기획 독서의 초라한 말로를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 할지 암담한 일이다. 학종 전형이 대세인 현재의 입시제도에서는 어쩌면 더 참담해질 일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능력과 내신 성적이 뒷받침되는 아이들에게는 요령껏 권수만 채우는 ‘속임수 독서’가 변함없이 정답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아이들은 애당초 힘들게 독서를 할 명분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캐슬 안에서도 캐슬 밖에서도 따지고 보면 승자는 없다. 지성이 추락하는 반지성주의의 전조를 보고 있는 것인지, 퇴행을 빤히 보면서도 뭐가 뭔지 모르는 집단 무지의 상황은 아닌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문제다. 미래가 없는 것을 대가로 삼아야 하는 일은 끔찍하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sjh@seoul.co.kr
  • ‘황제 보석’ 논란 이호진 “술집 간 적 없다” 울먹

    ‘황제 보석’ 논란 이호진 “술집 간 적 없다” 울먹

    횡령, 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받다 ‘황제 보석’ 논란으로 재수감된 이호진(57)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술집에 가본 적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전 회장은 16일 서울고법 형사6부(오영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두 번째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의 최후 진술에 앞서 “자중하고 건강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데 술·담배를 해 물의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제가 반성 없이 음주가무만 하고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저는 병원에 몇 년을 갇혀 있었다”며 “집을 왔다갔다 한 생활 자체가 길지 않고 술집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 있는 기업가로서 여기 서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며 “세상이 변하는 데 과거 관행을 용기 있게 벗어던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또 “막내인 제가 선대의 ‘산업보국’ 뜻을 제대로 잇지 못해 정말 부끄럽다”며 “국민 여러분께도 거듭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는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모친의 사망을 언급하며 “수감생활 중 병을 얻으셨고 치료 과정에 유언 한 마디 못 남기시고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셨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에 이 전 회장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을 통해 횡령액의 상당 부분이 회사를 위해 사용됐고 유죄로 인정된 액수 이상을 변제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심지어 이 전 회장의 가족사와 간 질환 병력 등을 설명하던 변호인도 함께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검찰은 이 전 회장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장기간 회삿돈을 조직적으로 빼돌려 오너의 재산증식에 악용한 재벌비리”라며 “그럼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모친과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밝혔다. 황제 보석 논란에 대해서는 “재벌이 법을 경시하는 태도가 다시 드러난 것”이라며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 사회에 다시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가 변제됐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반성이 없으므로 선처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400억원대의 배임, 횡령과 9억원대 법인세 포탈 등 혐의로 2011년 구속기소 됐다. 그는 1·2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에서 횡령 액수를 다시 정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내면서 2017년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206억여원을 횡령액으로 다시 산정해 징역 3년 6개월과 벌금 6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사건을 재심리한 대법원은 이번엔 조세포탈 혐의를 다른 혐의들과 분리해 재판하라는 취지로 지난해 10월 다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세 번째 2심 재판을 받게 됐다. 이 전 회장은 구속된 지 62일 만인 2011년 3월 24일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받고 이듬해에는 보석 결정까지 얻어내 7년 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그가 음주, 흡연을 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돼 ‘황제 보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다음 달 15일 오전 이 전 회장의 선고 공판을 열 계획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부고]

    ●민동휘(금융감독원 팀장)씨 부친상 15일 충남대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30분 (042)280-8181 ●오영호(전 코트라 사장)씨 모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7 ●이창희(전 부산은행장)씨 별세 14일 대동병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9시 (051)550-9991 ●이환준(전 DB손해보험 부사장)씨 별세 이은지(페덱스코리아 과장) 유선(한국전력 대리)씨 부친상 정창기(맥쿼리캐피탈코리아 과장)씨 장인상 14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7일 (02)2258-5940 ●최진(래피드어드벤스 대표)씨 모친상 14일 순창 현대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063)653-4444
  • 4월 북한 평양마라톤만의 특별한 점은?

    4월 북한 평양마라톤만의 특별한 점은?

    중국 여행사들이 오는 4월 7일 열리는 평양국제마라톤 참여자 모집에 나섰다. 북한의 대표적인 외화벌이 행사인 평양국제마라톤은 1981년부터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앞두고 열렸으며 2014년부터 외국인 참여가 허용됐다.중국 여행사들은 평양마라톤이 전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마라톤 체험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평양의 곳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선전했다. 또 외국인의 방문은 북한이 세계를 인식하는 기회로 북한 인권과 민생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양마라톤은 수만 명의 현지 시민들이 연도에 나가 선수들을 응원하며 4월 평양 기온은 섭씨 7~9도의 맑은 날씨로 마라톤에 안성맞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5만명의 평양시민들이 경기가 시작하고 끝나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참가자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평양마라톤 참가 비용은 풀코스 1080위안(약 17만원), 하프코스 700위안(약 11만원), 10㎞ 500위안(약 8만원), 김일성 경기장 장내 관전비 280위안(약 4만 6000원)이다. 평양마라톤의 후원사는 독일의 글로벌 물류그룹 DHL과 네덜란드 스포츠 업체 마이랩스 등이 맡았다. 북한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17년 마라톤 대회를 4월과 10월 두 차례 열었으나 대북 제재 여파로 지난해는 한 차례 개최에 그쳤다. 마라톤코스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출발해 대동강변을 따라 왕복한다.중국 여행사들은 김일성 경기장에서 출발하는 평양마라톤 참가와 함께 4박5일 6399위안, 2박3일 4799위안의 여행 코스도 내놓았다. 4월 북한 여행 코스는 단둥에서 평양까지 철도로 이동하며 평양 미래과학자거리 산책, 주체사상탑·김일성 광장·중조우의탑 관람,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 체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메아리사격장에서의 실탄 사냥 체험, 북한의 디즈니랜드로 불리는 개선청년공원 등도 북한 단체관광의 인기 코스다. 외국인들의 북한 관광은 대북 제재에 포함되지 않아 지난해 북·중 관계가 풀리면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대거 북한 방문에 나서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족보도서관 설립,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우리 핏줄의 역사 문제 아닙니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족보도서관 설립, 시장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우리 핏줄의 역사 문제 아닙니까”

    65년 족보 인쇄 외길 회상사 박병호 대표가 말하는 ‘족보’“6층에 보관하고 있는 족보 책이 한 3만~4만 권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필름으로도 그만큼 보관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문중의 족보는 여기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족보 인쇄가 사양길에 접어들다 보니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관하는 족보는 개인 재산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핏줄 역사가 담긴 문화재입니다. 대전시가 족보도서관 만들어 영구보관한다고 이야기 나온 게 십수년이 됐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6층 회상문보원 서가엔 900여가문 족보 빼곡히 꽂혀 65년째 족보 인쇄의 외길을 걷는 대전시 동구 중동 회상사(回想社)가 족보 보관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1일 박병호(73) 대표를 찾았다. 회상사 겉모습은 출판사라기보다는 창고와 같아 보였다. 건물 1층 사무실에 석유난로를 켜고 직원 몇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박병호 대표를 만나러 왔다.’라고 했더니 한쪽 책상에 앉아있던 ‘내가 박병호입니다.’라며 일어나 기자를 맞았다. 1층 사무실을 둘러보니 벽에는 철제 캐비닛이 몇 개 서 있고, 책상만 몇 개 놓여 있었다. 박 대표는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더니 석유난로를 옮겨왔다. 족보 책은 보이지 않았다. 족보 전문 출판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족보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나가자고 했다.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갔다.6층엔 회상문보원(回想文譜院)이란 간판 아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서화 냄새가 어우러진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 안에는 금천 강씨(衿川 姜氏)부터 900여 가문의 족보가 가나다순으로 서가에 꽂혀 있었다. 한쪽 벽면엔 각종 문집과 향교지 등도 보관하고 있었다. “199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족보도서관인 여기에 보관된 족보가 한 3만~4만 권쯤 될 겁니다. 2007년 제가 취임한 후로 대동보(大同譜) 500여종, 세보(世譜·일명 파보) 1500여종, 가승보(家乘譜) 900여종 등 모두 600만 부 이상 발간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휘호도…윤보선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납 활자본도 고스란히…희귀 벽자 700여개도 보관“하루 족보 35쪽 입력…족보 한권은 통상 800쪽”5층엔 선친 박홍구의 아호를 딴 춘전(春田)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족보를 받은 문중에서 기념으로 선물한 고서화, 병풍 등이 가득했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화친(和親)’도 보였다. 1983년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해평윤씨 대동보 발간 기념 친필 휘호,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 백자 도자기,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상사 방문 및 친필 실사구시(實事求是) 휘호도 받아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따로 연락이 없었다고 말한다. 4층엔 납으로 인쇄하던 시절의 활자본이 보관돼 있었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은 옥편에도 안 나오는 한자를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는 법은 당사자에게 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한자로 짜잡기해서 글자를 만든 벽자(僻字)도 700개 남짓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선 족보를 만들기 위한 인쇄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여성직원이 기존의 족보 책을 뜯어내 하나하나 컴퓨터로 입력하고 있었다. “몇십 년 전에 납 활자로 인쇄한 족보는 컴퓨터 데이터가 없어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입력합니다. 하루 8시간 작업하면 35~40페이지 정도 입력합니다. 족보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보통 족보 한 권이 800페이지 전후이니 수작업의 번거로움이 짐작된다. 창문 너머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곳엔 족보 필름이 책으로 환산하면 3만~4만 권이 보관돼 있지요.”그가 5층과 6층의 족보도서관과 기념관을 보여주고 나서 문을 자물쇠로 굳게 잠그고 나서 다시 확인했다. “도서관이라면서 왜 이렇게 잠그느냐”라고 물었다. “도둑이 들어서…. 과거엔 사람들이 와서 열람도 하고 했는데 이젠 인력이 부족해 관리가 소홀하니 족보도 훔쳐가고 고서화도 훔쳐가고 해서…. 도난당한 족보만 해도 수천 권에 이를 갑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도 도둑맞은 겁니다. 모사품을 새로 걸어둔 것이지요.” 그리고 보니 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아무렇게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낙관도 어쩐지 흑백이더라. 체계적 보관과 관리가 시급해 보였다. “도난당한 족보 수천권…박정희 대통령 휘호도 도난당해체계적 관리, 영구보존 대책 시급…시장 박뀌면 백지화”“이렇게 관리상에 어려움이 많아도 이 자료들이 나름대로 귀중한 문화재 아닙니까. 소멸하면 혈족에 관한 국가적 문화재가 사라지는 것이니 출판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를 빼고 모든 자료를 대전시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영구보존하려는 것이죠. 회상사가 설립된 1954년부터 출판한 450문중의 대동보와 14문중의 인터넷 족보, 600문중의 전자족보, 800여 권의 한문 서적 등을 기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전시가 족보도서관을 만든다고 이야기가 나온 지 십수년이 됐습니다만 확약서를 쓰지 않은 탓인지 여태까지 잘 안 되고 있단다. “우리 회상사가 대전시에 기증할 족보와 고서화 등의 자료를 보관할 장소가 500~600평 정도 필요하지만 대전시문화원이 제공하려는 공간은 260평 정도로 협소하고, 관리·보존이나 재원 마련 계획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바뀌면 이런 계획마저도 백지화됩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요즘 일거리가 많은지 물었다. “1970~80년대 족보 만들기가 붐이었지요. 전쟁통에 불타거나 잃어버린 집안이 많아서…. 그때는 집성촌을 찾아가 남아있는 족보를 모아서 복원하곤 했지요. 족보 인쇄를 시작하면 문중에서 개판식(開版式)을 성대히 치렀습니다. 특수(特需)를 톡톡히 누렸지요. 그런데 요즘엔 누가 족보 만들려고 하나요. 그래도 제대로 족보 만드는 기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텐데….” 최근에 한글을 병기한 족보에 조상의 사진도 넣는다고 한다. 일부 문중은 전자족보, 인터넷 족보를 운영한다고 귀띔했다. “한때는 디스크나 CD롬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요즘 컴퓨터엔 CD플레이어가 부착돼 있지 않으니 보려면 불편합니다. 첨단기술이라는 게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종이 족보는 보관만 잘하면 수백 년 흘러도 볼 수 있고 편리합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납 활자로 족보를 만드는 기업, 200년 역사의 회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부 문중 전자족보, 인터넷 족보 운영종이 족보 보관 잘하면 수백년 문제 없어”요즘 또 다른 고민은 가업인 족보 인쇄를 맡아갈 아들을 찾는 것이다. “사양 산업으로 돈벌이가 잘되지도 않으니, 아들들이 서로 맡지 않으려 합니다. 아들이 넷이 있는데 서로 상의하고 있겠지요.” 그도 1954년 설립된 회상사를 2007년에서야 맡았다. “선친이 장남인 제게 이 일을 물려줄 생각에 공고에 가라고 해서 대전공고에 들어갔죠. 그때만 해도 족보 만드는 일을 계승할까 했는데, 어느 날 경쟁업체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쳐들어와서 큰 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걸 보고 오만 정이 다 떨어져, 선친의 뜻을 어기고 약대로 진학했습니다. 도립 충남홍성병원에서 약제과장을 지내다 약국 개업도 했지요. 그때도 선친이 회사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저는 뿌리치고 시의원과 초대 및 3대 대전 동구청장을 지내며 제 길을 갔습니다.” “구청장 임기 끝나고부터 회상사 일을 맡았습니다. 선친이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그때가 2007년 1월이었습니다. 직원들 퇴직금도 밀린 상태였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한창 때는 직원이 150명도 넘었는데 …. 이 일대가 한창때 우리가 일거리를 주면서 생겨난 업소들 거리였습니다. 이젠 어엿한 ‘인쇄 골목’이 됐지만.” 족보를 만들면서 봤거나 겪었던 특이하거나 재미난 성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박 대표는 “그 문중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며 한사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어떤 문중에서는 족보가 발간되자마자 이를 받아들고 회상사 건물 앞 계단에서 조상님들께 고하는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또 직원들 한명 한명 붙잡고 감사하다고도 인사했지요.” “한창 시절, 경쟁업체가 도끼 들고 쳐들어와만정 떨어져, 가업 계승 대신 구청장 길 걸어발간된 족보 들고 제사 지내는 문중도 있어”회상사엔 세가지 불문율이 있다. 먼저 족보 내용이 인쇄된 파지는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또 인쇄된 용지는 밟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족보는 ‘모신다.’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족보 유래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왕실의 제왕년표(帝王年表)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 의종 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시초다. 민간 족보는 1423년(세종 5년)에 나온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영락보(永樂譜)인데 기록만 전한다. “회상사에는 선친의 피눈물이 들어있습니다. 이를 가업으로 잘 넘겨주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선친은 충북 제천에서 ‘권학사’라는 서점을 운영하며 돈을 좀 만졌습니다. 6·25때 총부리를 겨누고 협박하는 인민군에게 돈을 빼앗겼고, 다시 방첩대는 인민군에게 돈 줬다고 선친을 불러다 엄청나게 때리고 재산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전쟁 이후 권력 기관에 의해 괴롭힘을 무척 많이 당했습니다. 선친이 한번은 어린 저를 붙잡고 치욕적이라며 부들부들 떨며 우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맨손으로 아무도 모르는 대전으로 나왔던 거죠. 인쇄소에 1년 남짓 다니시다가 족보를 인쇄할 생각을 하셨던 거죠. 그리곤 전국 최대의 족보 인쇄 회사를 일구셨습니다.” 가짜 족보 문제도 많다고 얘기를 꺼냈다. “우리는 족보를 출판하는 인쇄업자입니다. 족보 내용은 문중의 종친회장인 발행인의 승낙 없이는 손대지 못합니다. 문중의 어르신들이 와서 돋보기를 들고 하나하나 다 교정을 봅니다. 족보는 정확성입니다. 그것이 신뢰이고, 우리의 철칙입니다. 요즘 가짜족보 문제는 문중 재산 즉 조상 땅 싸움 때문에 발생합니다. 문중에서 법정 소송이 벌어지면 족보가 증거로 채택됩니다. 검찰에서 우리가 보관한 족보를 복사해 간 적이 몇번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족보에 끼워달라는 부탁을 몇 차례나 받았습니다만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최근 가짜 족보 문제는 문중 재산 싸움 탓우린 출판업자, 발행인 승낙 없이 수정 못해족보는 과거 아닌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그에겐 족보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가업을 승계하는 차원을 넘었다. “고리타분한 핏줄, 즉 혈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족보는 그런 면에서 현재의 나와 조상을 이어주는 네트워크인 셈입니다.” 한편, 2015년 통계청 조사결과 한국인의 성씨는 모두 5582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5인 이상인 성씨는 530여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0년대의 270여개 성씨와 비교하면 급증한 것이다. 다문화의 영향으로 외래 성씨가 급격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삼국시대부터 일부 계층이 성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 모두 성을 갖게 된 것은 110년 전인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대전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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