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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축의 날 박병남씨 등 610명 포상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박병남씨 (63·대원자동차공업대표)가 최고영예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등 모두 6백10명(단체 88개 포함)이 포상을 받았다.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민훈장 동백장 ▲박병남 ▲윤린학(주택은행 수신부장) ◇국민훈장 목련장 ▲이경수(한덕연료대표) ▲권석곤(제일은행 여의도광장지점장) ◇국민훈장 석류장 ▲한기영(외환은행 충무로지점장) ▲이윤복(농업) ◇국민포장 ▲손영식(대동은행 영업부장) ▲이병원(인쇄업) ▲김상호(신한은행 안양지점장) ▲이승국(상업) ▲한영진(장기신용은행 대구지점장) ▲최정례(상업) ▲이준호(국민은행 평화지점장) ▲정경득(한미은행 신설동지점장) ▲이진곤(상업) ▲이정호(한일은행 영업1부장) ◇대통령표창 ▲지세환(세일공업사 대표) ▲이배현(대구은행 본리동지점장) ▲정옥순(상업) ▲서중석(동화은행 무교지점장) ▲권쌍주(상업) ▲이주석(서울신탁은행 삼풍지점장) ▲김중옥(상업) ▲박덕실(외환은행 서초남지점장) ▲최진실(연예인) ▲이기원(한일은행 서교동지점장) ▲윤원규(조흥은행 주안지점장) ▲김태병(한일식품 대표) ▲임영건(상업은행 세종로지점장) ▲이택수(상업) ▲이인식(한국은행 저축부과장) ▲윤옥현(국민은행 금호동지점장)
  • 대북방교역 흑자로 전환/2억6천만불/수교이후 대중국 수출 급증

    한·중무역협정 발효와 수교에 힘입어 대중국 수출이 크게 늘면서 올해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8월말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이에 따라 대북방 무역수지 흑자도 8월말까지 2억6천4백만달러로 늘어났다. 28일 상공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가 늘어난 26억5백만달러에 달했고 수입은 16%가 증가하는데 그친 25억5천5백만달러에 머물러 무역수지가 지난해 같은 기간 7억4천7백만달러 적자에서 5천만달러의 흑자로 반전됐다. 또 베트남의 경제개혁 진전으로 대베트남 수출이 지난해 동기보다 1백45%가 늘어난 2억4천7백만달러에 달해 무역수지 흑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에 가까운 2억9백만달러에 이르렀다. 반면 대동구 수출은 수입장벽 강화로 크게 줄어 지난해 동기대비 53%가 줄어든 1억9천8백만달러에 그쳤고 무역수지 흑자도 지난해 같은 기간 2억6천9백만달러에서 6천1백만달러로 축소됐다.
  • 안중근의사 최초 전기­추모집 발견

    ◎의거 83돌 앞두고 중국 흑룡강성 도서관서 “햇빛”/박은식선생 주도… 1913년 출간/양계초 등 중국 저명인사 공동집필 민족사학가 박은식선생이 1913년 중국 상해대동편집국에서 펴낸 안중근의사의 전기및 기념문집 「안중근」이 중국 흑용강성 하얼빈시 흑룡강성도서관에서 발견됐다. 이 책은 32절지크기,1백20쪽분량으로 안의사의 전기와 그를 추모하는 31편의 글과 사진,그리고 휘호등이 실려 있다.안의사의 하얼빈역의거 83돌인 26일을 맞아 발견된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안의사관련 자료가운데 제일 먼저 출판된 가장 정확한 사료성격의 책자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백암 박은식선생(1859∼1926년)은 신채호,장지연등과 함께 한말의 대표적 사학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지사.당시 안의사의 의거에 공감하던 양계초 장태염등 중국 근대사의 저명한 문인,정치가들이 안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지 불과 3년만에 백암과 공동으로 이 책 저술과 편찬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져 주목을 끌었다.이를 통해 백암의 위치와 안의사의의거를 대하는 중국저명인사들의 태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특히 백암이 상해 망명생활중「청구한인」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확인됐다. 안의사 전기부분은 1970년 일본에서 발견된 「안중근자서전」내용이 그대로 담겨져 출간당시 박은식선생이 자서전을 사전에 읽고 수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서문에는 중국민주혁명의 선구자인 장태염이 필명 「대동」으로 「아주제일의협」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하얼빈현지로부터 국제전화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정신문화연구원 박성수교수는 『이 책의 출판연도인 1913년은 박은식선생이 상해에서 자신의 역저 「한국통사」를 집필하던 시기』라고 지적했다.또 『남·북한은 물론 일본,중국등지에서 안의사에 대한 연구가 어느때보다 활발한 이때 이러한 자료발굴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반가워 했다.
  • 승용차,트럭과 충돌/경관가족 5명 사상

    【여천】 24일 하오5시10분쯤 전남 여천시 해산동 해산마을앞 국도에서 여수경찰서 정보과 소속 유재일경장(39·여수시 국동 주공아파트 106동 206호)이 운전하던 전남2나 3639호 프라이드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마주오던 오동중기 소속 전남 06­5592호 덤프트럭(운전사 한홍희·24·순천시 대대동 697)과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경장과 승용차에 함께 타고 있던 유경장의 차남 경태군(10)등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허정숙씨(39)와 장녀 옥희양(14),장남 경완군(12)등 3명이 중상을 입고 여수 성심병원에 입원,치료중이나 중태다.
  • 한·일 정상회담/새달 8일 교토서

    노태우대통령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간의 양국 정상회담이 오는 11월8일 교토(경도)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노대통령은 11월8일 상오 서울을 출발,교토에 도착한뒤 곧바로 미야자와총리와 정상회담및 확대정상회담을 겸한 오찬을 가진뒤 하오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11월3일 실시되는 미대통령선거결과가 동북아정세에 미칠 영향에 관해 논의하는 한편 11월5일과 6일 북경에서 열리는 일·북한수교교섭결과에 관해 일본측의 설명을 듣고 공동대처방안을 협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이번 일본방문때 이상옥 외무부장관과 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비롯한 20명 안팎의 각료및 실무자만을 대동하며 대한항공 특별기가 아닌 대통령전용기를 이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은행 기부금 52억/재무부,국감 자료

    올들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이 학교·연구소등에 출연한 기부금이 52억8천7백만원에 이르고 있다. 22일 재무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은행들의 기부금은 시중은행이 47억2천8백만원,지방은행이 5억5천9백만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상업은행이 부산의 동남경제연구원에 10억원을 지원하는 등 모두 11억5천2백만원의 기부금을 출연,가장 많았으며 신한은행이 재일본국인투자협회에 3억1천만원·영남대학교 2억5천만원등 10억6천5백만원을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제일 5억5천4백만원,동화 4억5천9백만원,조흥 4억9백만원,서울신탁 3억2천4백만원,동남 2억1천4백만원,대동 1억6천5백만원,외환 1억1천만원이다.
  •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전연구:5)

    ◎서열4위 김형직을 회장으로 날조/조선국민회 실제 주도자 이름 삭제/“일제에 투옥” 주장 사실 아닐 가능성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의 우상화에는 조선국민회가 불가결이었다.그는 조선국민회의 결성자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일제의 경찰기록을 보면 조선국민회의 조직경위는 다음과 같다. …1914년 9월에 장일환이 하와이의 박용만을 찾아 가 같이 싸울 약속을 했다.그는 귀국하여 총독정치의 상황과 민심을 살피고 이를 박용만에게 통보하여 청년단체를 조직하며 국권회복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장일환은 1915년에 조선으로 돌아와서 1909년에 먼저 돌아와 있었던 전하와이 국민회회원 강석봉과 만났다.이해 겨울 그는 또 만주 안동현의 백세빈을 만나 조선국민회를 조직하도록 합의하였다.이들은 간도에 이주할 계획까지 하였으나 그 계획은 실현하지 못하였다. 1917년 2월.배민수,김형직이 조선국민회에 가입하여 장일환의 자택에서 회합하였다.거기서는 평양 장로파신학교에 조선각도 청년들을 모아 국민회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였고 3월23일 13명이 모이도록 결정되었다. 그러나 결성 당일에는 6명이 결석하였다.이 때문에 9명이 이보식의 집에서 회합하고 장일환을 회장,배민수를 통신겸서기,백세빈을 외국통신원으로 선출하여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장일환이 우두머리 1917년6월,회원 배민수,김형직,노선경 등은 각기 자기의 식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고 혈서를 썼다.다른회원들 중에는 「결사」라고 혈서하는 이도 있었다.이 때 배민수는 중국의 무관학교에 입학할 뜻을 밝혔다.또 국민보를 발간하여 회원에서 보내는 계획도 있었다. 17년 7월,노선경은 간도의 동지들과 연락하는 통신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서간도로 갔다.그리고 김은현,조옥소는 양경수에게 돈 일만원을 내게 하며 그 일부로 권총을 구입하려고 하였다. 그후 조선국민회 회원은 일제경찰에 체포되었다.평양의 회원은 1918년 2월 장일환 이하 12명이 신병송검되고 기타 13명은 석방되었다…. 이상이 일제 경찰기록의 요지이다.이기록을 보면 조선국민회는 2년반동안 갖은 고생을 다한 장일환이 17년 3월 23일에 세운 결사이다. 그는 조선에서 강석봉,백세빈,배민수,김형직,이보식 등을 차례로 동지로 삼아 그중 백세빈,배민수를 간부로 뽑았다.나머지는 회원이 되어 각각 자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일제자료를 입수한 후 착수한 것은 김형직을 제외하고는 자료에 나오는 인명을 모조리 은폐하는 작업이었다.은폐하기 위해서는 일본측 자료를 개찬하여야 하는데 개찬한 결과는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전사16에 사진 판으로 실려 있다. 이를 참작하면서 변조과정을 밝혀 본다. 일제자료에는 조선국민회 회원의 본적·주소·직책·이름을 회장 장일환(32세)외국통신계 백세빈(25세),서기 배민수(22세),서당 교사 김형직(34세),회원 서광조의 순으로 밝히고 있다.그러나 조선전사16은 이 일제기록 중에서 순번 제4위인 김형직의 본적과 주소,이름만을 사진판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책에 실었다. 일,회원씨명 본적‥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주소‥평안남도 강동군 정읍면 동삼리 서당교사 김형직 당삼십사년… 이와같은 기록은폐작업으로 당시 강동군 고읍면 동삼리 내동부락이란 시골에 있었던 김형직은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다른 간부를 제쳐놓고 일약 「회장」으로 「출세」하는 것이다. 동지들을 없애 치운 이유는 그들이 기독교신자이고 대부분이 후에 상해임정과 연계를 가지게 되는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김일성체제의 의사와는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는 여태까지 그렇게도 철저하게 삭제하고 은폐한 이름을 일부 복원시키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는 장일환 배민수 백세빈 등 애국적인 독립운동자들과 함께 1917년 3월 23일,평양 학당골에 있는 리보식의 집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였다.조선국민회에 망라된 청년투사들은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결사」라는 혈서를 썼다』 일본기록에 의하면 김형직은 「대한독립」을 혈서한 인물인데 이 혈서는 아마도 회장 장일환 앞에서 썼을 것이다.그러나 김일성은 맹원 김형직의 입장을 은폐하고 이상과 같이 그를 장일환을 지도하는 인물로 올려 놓았다.그러나 김일성이 한 말의 내용은 일본경찰기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그는 지금도 여전히 경찰기록 이상으로는 조선국민회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제기록 이상 몰라 조선국민회 회원은 1918년 2월 이전의 어느 날,25명이 일제경찰에게 체포되어 그중 12명이 감옥생활을 하였다.북한에서는 이것도 체포자가 백여명이었다고 과장하고 있지만 문제는 감옥에 간 12명중에 김형직이 들어 있었는가 어떤가이다.필자는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52년 전기에서는 김형직이 3·1운동이후에 평양감옥에 들어갔다 하였다. ②1961년에 발간된 「조선근대혁명운동사」로부터 3∼4년은 그가 1916년에 투옥되었다고 변경하고 있었다. ③그랬던 것이 조선국민회 자료를 입수한 후부터는 투옥이 1917년 가을부터 18년 가을까지로 다시 변경되었다. 김형직은 만경대에서는 그 부친 보현의 장남이었다.따라서 그 「혁명적가정」에서는 많은 일가친척들이 그의 일거일동에 주목하고 있었다.그런데도 그들은 김형직이 3·1운동 이후에 투옥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그들이 그의 투옥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된다.투옥의 해가 세번이나 변경되는 추태를 보면 김일성 자신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사자료25,37면 같은책 38면 같은책 동면 조선전사16,22면 같은책 동면 세기와 더불어1,26면 1952년 4월 20일자 로동신문의 「김일성장군의 전기」참조 「조선근대혁명운동사」,북한 과학원역사연구소간 일본번역판,2백92면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15면
  • PC통신이 맺어준 신랑·신부·주례(컴퓨터생활)

    어느 결혼식의 주례 주례란 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인가 보다.일본말을 아무리 찾아봐도 주례란 말이 없다.글쎄 영어로는 GodFather(대부)정도일까?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결혼식을 올릴 때 가장 존경하는 분을 주례로 모시고 결혼을 한다.필자도 그럭저럭 주례를 18번이나 했고 이 친구들 모두 잘산다고 듣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어느 교수친구 한분이 약속시간 늦은 변명을 『애프터 서비스』때문에 늦었다고 한다.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랑하는 제자가 장가가는데 주례를 서주고 왔단다.『그게 다 적선이야… 좋은 일이라서 용서해주지…』라고 답변. 3년전에 처음으로 만난 한 젊은이가 있다.컴퓨터통신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전문가였다.영광스럽게도 바로 이 친구가 예쁘장한 아가씨를 대동하고 와서는 『주례를 서 주십시오』란다 『이 친구야,주례만큼은 PC통신으로 요청해와야 서준다는 법칙이야』라고 했더니 그날 저녁에 당장 온라인 신청이 왔다.거기에 『약속한다』라고만 써서 회답을 보냈다.결혼식 전날 『자동차를 보내드릴까요?』라고 문의가 왔다.『그럴것 없네.내차 타고 갈께』라고 회신. 틀에 박힌 주례사,사진촬영까지 포함해서 불과 30분.주례사를 좀더 길게 할걸 하고 후회하면서 나오는데 우루루 젊은친구들이 몰려 들어서 나를 둘러싼다.모두들 자기의 핸들네임(PC통신을 할때 자기가 만드는 자기별명)을 말하면서 인사를 한다.이 나이쯤 되면 『얘들아,나는 얼굴따로 이름따로 기억하는 사람이야』라면서 평소에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이면서 얼굴을 모른다는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 악수를 했다.『너희들도 장가갈 때 주례가 없으면 연락해.PC통신을 하는 사람이면 모두 공짜로 서줄께』라고 익살을 부렸다.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같다.그래서 더욱 신이 났는지 참으로 즐거웠다.신랑 신부도 PC통신으로 맺어졌고 주례도 PC통신으로 맺어졌다. 오늘도 PC를 주시하면서 『신혼여행 잘 다녀 왔어요』라는 메시지를 넣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아직도 며칠 더 있어야 할줄 알지만… 이 친구 랩톱도 없이 그냥갔나?』 아무튼 PC통신은 즐거운 일이다.
  • 한·중 2중과세 방지협정/내년 상반기 체결

    정부는 대동구권 진출기반을 다지기 위해 중소기업 중심의 경협사절단을 연내 파견하는 한편 불가리아 알바니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등과 무역협정,상사중재협정·투자보장협정등의 체결을 추진할 방침이다.중국과도 연내 항공협정과 상사중재협정을,내년 상반기 중 2중과세 방지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또 베트남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양국 관계부처간의 통상협력 채널도 연내에 구축할 계획이다. 13일 상공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대동구권 진출이 대기업에 의한 대규모 프로젝트보다는 중소규모의 M&A(기업인수합병)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오는 11월 중 중소기업 중심의 경협사절단을 헝가리와 폴란드 등에 파견키로 했다.
  • 고교교과서 개편내용을 알아본다(심층분석)

    ◎창의적 능력개발·시민생활교육에 역점/학교수업 일상생활에 실제 활용토록/시·소설·수필보다 실용문위주 대체/국어/6개 교과로 세분/영어/공통수학을 신설/수학/공통필수로 지정/예·체능/근대사 배로 늘어/사회/과목별 특징 요약/국어/언어구사 능력·표현력 배양에 중점/수학/기초적 지식활용 문제해결력 제고/영어/대화 능력 향상·생활영어 중심/사회/동양윤리체계 중심 도덕성교육 강화/과학/실생활중심 과학적 탐구생활 위주로/실업/진로·직업과목 신설,건전 직업관교육/예능/예술·정서적 감성개발에 주력/교양/추상적인 이론에서 실생활문제로 교육부가 10일 확정한 제6차 과목별 고교 교육과정 개정안은 사회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개발과 시민생활교육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단편적인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두었던 고교 교육내용을 생활주변의 구체적인 사례위주로 개편,학생들이 실생활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동기 유발의 촉매제로 활용토록 했다. 또 같은 교과목이라도 교과내용의 난이정도에따라 교과서를 다양화하고 학교별 선택과목의 폭을 크게 늘려 학생들의 수학능력과 적성및 진로계획에 따라 다양한 수업이 가능토록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새로운 과목별 개편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어◁ 종래 국어,문학,작문,문법으로 나누었던 것을 새 교육과정에서는 4과목이외에 화법과 독서과목을 신설했다. 국어는 국어사용능력을 균형있게 신장할 수 있도록 말하기,듣기,읽기,쓰기,언어,문학으로 세분하되 각 영역별 특성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편찬된다. 국어 교과서에서 다루게 될 본문의 제재도 작품성 위주의 시,수필등 문학작품에서 도덕,환경,경제,근로정신함양,통일등을 다룬 글로 가급적 많이 대체키로 했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신설된 화법은 국어의 말하기영역을 보다 심화학습시키기 위한 과목이다. 화법의 본질,원리,실제등 세 범주로 짜여질 교과서에서는 대화,연설,토의와 토론등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화법의 유형에 따라 말하는 특성과 절차,말하고자하는 내용의 선정과 표현및 실효성있는 전달방법을 배우도록 했다. 또 화법과 함께 독서과목이 새로 선보인다.그간 독서는 암기위주의 대입시 수험준비에 밀려 소홀히 되어 왔었으나 오는 94학년도부터 통합과정으로 출제되는 새 대학입시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독서교육의 발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문과목에서는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적합한 어휘선택법,문장의 정확하고 효과적인 진술과 표현법,그림이나 도표등을 활용한 효과적인 문체 구사법등이 중점으로 다루어 진다. 문법교과에서는 문장 성분과 구조의 이해,체언 용언등 문법요소들의 기능과 문장의 짜임새에 대한 이해들이 주요 학습내용이 된다. 문학의 새로운 교과서에서는 세계문학작품을 교과내용의 20%이하로 제한하는 대신 한국문학작품 분량을 크게 늘리도록 했다. ▷수학◁ 종전의 일반수학을 다른 수학과목과 중복되지 않도록 내용을 재조정해 공통수학으로 과목명을 바꾸고 수학 Ⅰ,수학 Ⅱ이외에 실업계 고교생용으로 실용수학을 새로 만들었다. 인문계 고교 인문계열 학생들을 위한 수학 Ⅰ은 행렬,수열,극한,미분법,적분법,확률과 통계등을 공부하도록 했다. 인문계 고교의 자연계열이나 과학고교 학생들의 수준을 겨냥한 수학 Ⅱ에서는 방정식과 부등식은 인수분해가 가능한 간단한 경우만 다루도록 했고 벡터의 경우 대수적인 방법만 아니라 해석기하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 실용수학은 실업계고교나 인문계 고교의 직업계열 학생에게 수학적 지식을 실생활의 실용적인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제6차 교육과정에서 신설된 과목이다.계산기와 컴퓨터,수학적으로 분석해본 금융상품의 효용성등이 수학교과에 포함된데서 알 수 있듯 수학 Ⅰ수준의 수학적 지식을 실생활 문제를 수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을 강조했다. ▷영어◁ 언어의 용법보다 언어의 구사에 초점을 맞춰 대화 능력이 체계적으로 향상되도록 교과서를 대폭 개편했다. 독해력,문법등 문장이해위주로 편성돼 있던 영어 Ⅰ과 영어 Ⅱ를 공통영어,영어 Ⅰ,영어 Ⅱ,영어독해,영어회화,실무영어등 6개교과서로 세분해 수학능력,영어학습의 목적등에 따라 다양한 영어학습이 이루어지도록했다. 고교생 모두의 필수과목인 공통영어는 사용되는 어휘가 1천4백개정도로 종전의 영어 Ⅰ보다 내용이 쉽고 기본적인 언어능력을 습득토록 했다. 대신 종전의 영어 Ⅰ 수준으로는 영어독해 과목을 신설했으며 본문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양물로 편찬,상대적으로 수학능력이 뒤떨어진 학생들이 쉽게 소화해 낼 수 있도록 했다. 영어 Ⅰ은 종전의 영어 Ⅰ보다 6백개 단어를 추가한 2천2백개 단어를 활용,인문계고교 학생들의 영어실력 수준을 염두에 두고 공통영어보다 교과내용수준을 한단계 높였다. 영어 Ⅱ는 고교 영어의 최고 수준으로 영어의 이해,표현,의사소통까지 가능토록 편찬된다. 이와는 별도로 영문 독해력보다는 생활영어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영어회화와 실무영어를 각각 신설했다. 영어회화는 인문계고교생들을 겨냥, 교과수준은 공통영어와 맞추되 관광,정치,역사등을 화제로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토록한 생활영어 교과서이다. 실업계 고교에서 영어회화 공부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회화교과서는 실무영어로는 전문직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초생활영어내용을 담게 된다. ▷사회◁ 국민윤리,국사,정치·경제,사회·문화,한국지리,세계지리,세계사로 되어있던 사회교과를 국민윤리는 윤리로 교과목 명칭과 함께 내용도 바꿨고 정치·경제를 정치와 경제로 분리했다. 한국지리를 없애는 대신 한국지리 내용을 골간으로 공통사회 과목을 새로 만들었다. 모든 고교생이 필수과목으로 이수토록 한 공통사회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지리적 현상들을 국토환경및 역사적 발전과 관련지어 종합적으로 다루게 된다. 윤리에서는 종전과 달리 철학적 차원에서 다루었던 윤리를 가정,직장,시민생활,종교생활 윤리등 동양 윤리체계를 줄기로 생활윤리중심으로 전면 개편했다. 또 통일시대에 대비 민주주의 이념과 특징등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함께 민족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통일의 과제와 전망이 대폭 보강됐다. 국사는 세계사와 함께 종전에 전체 학습량의 30%정도였던 근대사 단원이 두배가까이 늘어나는등 역사학습의 초점이 근대이후에 맞춰졌다. 정치과목은 국내외의 자유화와 민주화추세에 부응하여 민주시민의 자질육성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해 신설된 과목이다.종전의 정치·경제과목의 정치단원과 교과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한국의 정치문화등 한국정치단원이 크게 보강됐다. 경제 교과역시 경제교육의 강화 추세에 따라 경제적 사고와 경제문제 해결능력을 기르기위해 정치와 함께 제6차 교육과정에서 신설된 과목이다. 사회·문화에서는 ▲사회변동과 문화적 적응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청소년 문화 ▲지역문화등 현대사회의 문화단원을 새로 설정,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급변하는 사회변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세계지리는 도표,통계,슬라이드,VTR등 시청각 자료 활용을 유도했을 뿐 교과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업◁ 기존의 농업,농업,상업,수산업,가사,정보산업이외에 기술,가정,진로·직업등 3과목을 추가 신설했다. 기술은 크게 ▲기술과 산업 ▲에너지와 수송기술 ▲정보통신 기술 ▲제조기술 ▲건설기술 ▲직업과 진로등 크게 6단원으로 나누어 전문 각 분야의 기초적인 지식을 다루도록 했다. 또 실험·실습을 교과내용에 포함시켜 간단한 기술 습득과 함께 경제원칙에 입각한 각종 재료의 선택·구입요령,공구와 기계를 안전하게 다루는 요령을 공부하도록 교과서를 편찬하도록 했다. 장래 가정주부로서 여학생들이 가정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능을 익힐 수 있는 교과목으로 가정이 신설됐다. 진로·직업은 일과 직업에 대한 정확한 이애와 건전한 직업관,근로정신 함양으 위한 교과목으로 삶과 직업,나의 이해,산업발전과 세계의 변화,직업세계의 이해,진로계획,직업생활등의 단원으로 편제된다. ▷과학◁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이외에 과학의 개념체계보다 실생활 중심의 탐구활동으로 과학에 관련된 문제를 다룬 공통과학을 필수이수 과목으로 새로 만들었다. 과학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등 과학의 탐구,물질의 반응성등 물질,운동의 법칙등 힘,에너지,유전문제등 생명,일기와 기후등 지구,환경,현대과학과 기술등 모두 8개단원으로 과학일반에 관한 기초적 지식을 공부하도록 교과서가 편찬된다. 그밖에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등도 교과서 내용에 구체적인 실생활의 문제를 포함시켜 학교수업내용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활용되도록 개편키로 했다. ▷예·체능◁ 예술·정서교육을 강화하기위해 음악과 미술이 인문·실업고교의 구분이나 인문·자연·직업계열 구분없이 공통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 음악은 각 지역의 민요를 시김새 넣어 부르기와 전통악기 다루기등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와 표현능력, 감상내용이 크게 보강됐다. 미술은 「미술과 생활」단원을 신설,실생활속에서 미적 대상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미적감성 개발영역을 강화했다. 체육에서는 등산,캠핑,하이킹,낚시,수상스키등에 대한 기초지식과 기능을 다룬 야외활동단원과 인내심 보강을 위한 체력단원이 신설됐다. ▷교양선택◁ 최근 생활환경보전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신설된 과목으로 ▲인간과 환경 ▲생태계의 구성과 기능 ▲토양의 오염 ▲대기의 오염 ▲물의 오염 ▲국토개발과 환경보전 ▲산림자원과 환경보전 ▲농업생산과 환경보전등을 다루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철학 논리학심리학 교육학 생활경제 종교등 기존 교양선택과목들의 교과내용도 추상적인 이론중심에서 실생활과 직접 관련된 문제들로 교과서 내용이 개편됐다.
  •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

    ◎전기마다 다른 “증조부 애국투쟁”/“셔먼호 막으려 강을 가로질러 밧줄 맸다”/「조선전사」까지 언급 안하다 최근에 “창작”/생생하게 본듯 기술… 「혁명적 가정」 선전 「김일성이 자신의 가계를 우상화하기 위해 우리 역사 자체를 날조·왜곡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신당지기로 밝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종전보다 한술 더 떠 허황된 역사를 꾸몄다는 사실이다.김일성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의 묘를 봐주는 신당지기였으나 나라와 향토를 열렬히 사랑하는 분이었다.미제침략선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두루섬에 정박하고 있을 때 증조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집집에 있는 밧줄을 다 모아 강건너 곤유섬과 만경봉 사이에 겹겹이 건너 지르고 돌을 굴리면서 해적선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셔먼호가 양각도 밑에까지 기어들어 대포와 총을 쏘아대면서 주민들을 살해하고 재물들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줄달음으로 평양성에 들어갔다.그때 성안사람들은 관군과 함께 나뭇단을 가득 실은 마상이 여러척을 연결시켜 불을 지르고 셔먼호쪽으로 띄워내려보내며 배도 해적들도 모조리 수장해버리었는데 증조할아버지도 여기서 한몫 단단히 하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이렇게 금방 보고 온 것 같은 임장감이 넘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경대 앞의 곤유섬을 지나 또 그 앞의 두루섬에 정박했을 때 김응우가 촌사람과 함께 곤유섬과 만경봉 사이에 밧줄을 건너 지르는 일을 했다는 말은 분량이 방대하기로 유명한 조선전사에도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다.거기에는 이런 서술이 있을 뿐이다. 「해적선이 대동강에 기어든 이래 그의 동태를 경각성 있게 주시하시던 김응우선생님…」 ○12년후 영웅으로 주시란 지켜 본다는 말인데 해적선이 올라 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김응우가 봉우리와 섬 사이에 밧줄을 치는 영웅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는 이 조선전사가 발간된 후 다시 12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던것이다. 셔먼호가 칩입한 것은 김일성이 이러한 말을 한 1992년부터 계산하면 무려 1백26년이나 되는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그가 태어나기 42년 전의 이야기이기도 하는데 그의 할아버지조차 이 사건이 있었을 때 태어났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증조 김응우는 1878년에 31세로 죽었다.셔먼호사건 당시 그는 19세였는데 가령 조부가 그 이전에 태어났더라도 다섯살을 넘지 못할 연령일 것이다.금방 보고 온 것 같은 김일성의 말은 조부,부친을 제쳐두고 도대체 누구에게 들었겠는가.김일성의 「혁명적가정」이란 그 창시자부터 이 모양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민들은 이러한 날조를 날조라고 분석비판할 권리가 없다.그들은 「김일성혁명력사 연구실」에 가서 혁명전통학습의 일환으로 학습강사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그 강의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가정은 100여년간에 걸쳐 대를 이어 오면서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워온 위대한 혁명적 가정이다」 화제를 김일성의 가계로 돌리겠다. 그의 증조부 김응우는 이상과 같은 「혁명적가정」의 시조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의 최대 관광지인 김일성의 「만경대 고향집」에 살기 시작한 시조이기도 하다. 평양 중성리에 살고 있었던 김응우는 1860년대에 평양 지주 이평택의 묘지기가 되어 만경대에 왔는데 「만경대 고향집」이란 이평택의 상당집이 중심이 되어 증설된 초가집이다. 김응우는 윗대와 같이 계속 독자를 두었다.그러나 김응우의 아들 김보현은 이보익과 결혼하여 6남매를 낳았다.3형제는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과 그 동생 김형록·김형권이고 3자매는 이번 회고록에서 그 이름이 처음 공식적으로 밝혀진 김구일녀·김형실·김형복이다.김보현과 이보익은 만경대의 평범한 농민으로서 해방후까지 살았다. ○만경대집의 시조 김형직의 3형제중 만경대에 남은 것은 차남인 김형록 뿐이었다.회고록에 의하면 그의 처 이름은 현양신인데 이명영교수는 현양심으로 표기하고 있다.이교수에 의하면 이들 부부 사이에는 영주·원주·창실·원실 기타 2명 합계 6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 성원들 중 북한에서 「혁명가」라고 선전하고 있는 인물은 김보현의 3남인 김형권과 김형록의 차남인 김원주 2명이다. 김형권은 모종의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에 대한 객관적인 활동경력이 입수되지 않고 있다.그는 만주에서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이 딸의 이름은 회고록에서 영실이라고 밝혀져 있다.해방후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지만 한국전쟁 때 폭사했다 한다. 김원주는 해방전 강선제강소의 소년공이었고 역시 모종의 사회운동을 한 모양이다.그는 57년에 병사하였다 한다. 이외에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가 있는데 그는 본문에서 다시 연구할 것이다. 이상을 보면 김일성의 소위 「혁명적가정」이란 증조 김응우와 부친 김형직을 빼면 그리 대단한 인물을 배출하지는 않았다. 「조선전사13」 1980년 발행 76면 같은책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 선생」1984년 발행 7면 「김일성원수 혁명력사 학습제강」(상급반용) 1982년 조총련 중앙발행 15면 「4인의 김일성」이명영저 일본 성갑서점발행 235면 「세기와 더불어」92면 「력사사전」참조
  • 94년 서울정도 6백주년 기념/「경평축구」 부활 추진

    ◎“새 청사·박물관 건립도” 이 시장 서울시는 7일 정도6백주년이 되는 오는 94년 서울·평양간 축구대회를 부활하고 한강과 대동강에서 번갈아 조정경기를 펼치기로 했다. 이와함께 경희궁터를 복원하고 시립박물관을 개관,기념사업으로 북한유물전을 갖기로 했다. 서울시는 또 95년까지 새 시청 청사건립을 위한 부지선정과 설계를 완료,착공준비를 모두 마치기로 했다. 이상배서울시장은 이날 서울시정에 관한 기자설명회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21세기의 문턱에서 맞는 오는 94년의 정도 6백주년을 계기로 서울올림픽에서 보인 역사의 저력에 힘입어 지구촌의 거점도시로 웅비하는 제2의 도약을 이룩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에따라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경·평축구대회의 부활과 조정경기등의 정례화를 위해 평양측과 공식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의 새청사 자리로는 지금의 건물을 헐고 새청사를 짓거나 서초동 법원단지 부지와 맞바꾼 대법원자리등이 검토됐으나 정도 6백년기념 사업추진 시민기획위원회등에 의해 97년 이전하는 용산 미8군터가 가장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다. 서울시는 또 정도6백년을 계기로 「우리서울 서울답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급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여러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기본사업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시정과 시민이 새로 나기 위한 「서울 가까이운동」등을 전개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우선 교통난이 서울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 2·3기 지하철을 조기에 건설함과 동시,96년까지 내부순환고속도로 3개노선 40.1㎞와 98년까지 외부순환고속도로 3개노선 1백26.1㎞를 완공하며 일산·분당·부천등 신도시와 연결되는 5개노선 20.8㎞를 96년까지 모두 개통하기로 했다. 시민정신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서울 가까이운동」으로는 누구나 쉽게 서울을 알 수 있게 시정홍보관을 건립하고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정화하며 시정을 안방에서도 알 수 있는 통합민원센터등이 건립되고 현장시청과 구청이 운영된다. 이밖에 서울시민의 결속과 우의를 다지기 위한 「서울 6백년 대동제」와 서울의 일대기를 사진·영상·모형등으로 나타내는 「서울 6백년전」이 94년에 열린다.
  • “총책 이선실 행방 못찾아”/정형근 안기부 제2차장보 일문일답

    ◎“민주당후보 지원” 북 지령 확인/재야단체 연계여부 계속 수사 ­공작총책 이선실의 신병을 확보한 것 아닌지. ▲유감스럽게도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지난 90년10월 황인오를 대동 입북한뒤 『남한에 다시 내려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해 샅샅이 뒤졌으나 남한에 머무르고 있다는 단서를 찾지못했다. ­북한의 지령에 민주당후보를 지원하라는 것이 있다는데.그 후보가 김대중씨를 지칭한 것인지. ▲황인오등의 지령문에 대선에서 민주당후보를 지원하라고 나타나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 김대중씨를 지원하라고 못박아서 내려온 것도 있다. ­이선실이 장기수 이모씨와 문익환목사를 만나고 재야단체에도 손을 뻗쳤다는데 이부분에 대한 수사는. ▲이는 문목사의 모친을 존경하고 부인과도 가깝게 지냈으며 문목사에게도 89년1월 자금을 지원했다는 확증을 잡고 있어 계속 수사중이다.문씨 밀입북의 배후에 대해서도 조사하겠다.재야단체 관련부분에 대해서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수사할 방침이다. 이처럼 이 조직은 곳곳에 연계돼 있고 수십개의 간첩망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어 심각한 지경에 도달해 있다. ­이번 사건에 국회의원 1∼2명이 관련돼 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는데. ▲그런사실은 현재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이선실이 많은 분야와 접촉했으므로 앞으로 계속 수사하겠다.
  • 노 대통령 민자당 고별사/요지

    ◎“체제의 정통성시비 없어져야”/김영삼총재의 공명선거의지 받아들여 9·18선언 민자당은 2년전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맞아,통일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체세력의 대동단합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탄생했다.당리당략과 파쟁의 정치를 끝맺기 위해 우리나라 온건·중도 민주세력이 민자당의 이름아래 하나로 뭉쳤었다.그동안 민자당이 국민의 기대에 못미친 점도 없지 않으나,3당합당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안정과 발전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확신한다. 나와 김영삼·김종필 두 동지가 2년전에 내린 3당통합의 결단에 대해 나는 지금도 그당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나는 지난 9월18일,오는 대통령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르기 위해 중립선거관리 내각을 구성하고,대통령으로서 엄정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민자당의 명예 총재직을 사퇴하고 당적을 떠나겠다고 밝혔다.이것은 공명선거를 이루기 위한 김영삼총재와 민자당의 신념,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받아들인 것이다.우리 헌정사를 돌아볼 때 정치권이 늘 되풀이해 오던 쟁점은 체제의 정통성 논쟁이나 선거의 공정성 시비였다.이 때문에 국민의 일상 생활이나 국가발전의 미래상 설계와 같은 정치의 본질적 문제는 언제나 뒤로 처졌다.이런 상황속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의회정치와 정당정치가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6·29선언은 우리 정치권을 수십년간 지배해 온 정통성 시비와 민주와 반민주 구도를 해소시켰다.그러나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근절되지 않아 선거가 있을 때마다 문제가 제기되고,정치불안의 요소가 되어 왔다.나는 선거문화에 일대 혁신을 이루어,이러한 고질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선거가 공명정대해야만 새로 들어설 정부의 정통성과 도덕성에 대한 시비가 해소되어 정치안정과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통일에 대비하는 길이 된다. 나는 나의 결단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하고,6·29 민주화 과업을 명예롭게마무리짓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대통령이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 중립내각을 구성하고 집권여당의 당적을 떠나는 것은 우리 헌정사에 처음있는 일이다. 내가 주도하여 창당하고 총재직을 맡아 이끌어온 민자당,거슬러 올라가 나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정당의 당적을 떠난다는 것은 정치이전에 인간적 정이의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나아가 그동안 고락을 함께 나누고,국정을 수행하는데 힘이 되어준 당원동지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아닌가 하여 여러날 밤을 번민으로 지새웠다.나의 결심은 궁극적으로 나라를 위하고,당과 동지들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고뇌에 찬 결단임을 동지 여러분은 양해해 주기 바란다. 알렉산더대왕은 그의 참모들이 야습하면 전승할 수 있다고 건의하자 『나는 승리를 훔치고 싶지 않다』면서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민자당 역시 떳떳하고 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아 역사앞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 결실을 거두어 주기 바란다.
  • 방산기술협력 논의/한­러 국방차관회의

    안드레이 아타나시예비치 코코신 러시아 제1국방차관이 국방부의 초청으로 한·러 군사기술협력방안 등을 협의하기 위해 4일 하오 특별기편으로 내한했다. 러시아의 군 고위관계자가 한국을 공식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방위산업담당인 코코신차관은 러시아 국방부의 무기·장비국장 잔체스라프 페트로비치 미로노프 상장 등 현역군인 8명과 항공·전자·탄약산업분야 민간인,전문가 5명 등 모두 13명을 대동하고 우리나라에 왔다. 코코신 차관 일행은 5일 상오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후 국방부를 방문,권령해차관등과 만나 방산기술협력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들 일행은 현대정공·대우중공업·삼성전자등 국내 방산업체들을 둘러본 뒤 오는8일 이한할 예정이다.
  •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

    ◎증조부 김응우를 셔먼호격침 영웅화/“불배 뛰우는 화공술창발적 발기”/당시 평양감사의 장계와 큰 차이/실제로는 묘지기… 진두지휘 가능성 의문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제1장은 「비운이 드리운 나라」이다.그 요지는 이러한 나라에 「혁명적가정」이 단 하나만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자기라는 것이다.회고하는 기간은 그 부친이 사망한 1926년까지,즉 그의 나이 15세까지로 되어 있다. ○“애국혁명가 시조” 이 가정에는 김일성 뿐만 아니라 대대로 수많은 애국자·혁명가들이 배출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우선 그의 족보부터 소개하면 전주 김씨인 13대 조상 김계상이 평양으로 와서 정착하게 되었다.그의 조부까지는 3대독자로 내려오다가 그후 자손들이 번창하였는데 애국자·혁명가의 시조로서 증조부 김응우가 등장하였다.김응우는 병인양요에서 미국의 무장상선 「셔먼」호를 격침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셔먼호는 1866년 음력 7월초순 교역을 요구하여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도중에서 한인 2명을 죽이고 중군 이현익을 납치하였기때문에 평양군민이 들고 일어나 평양성 밖의 한와정에서 화공을 맞아 침몰하였다.선원은 전부 죽었고 한인도 열몇명 희생되었다. 미제」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을 심고 있는 북한에서는 이 사건은 구미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민중이 반대한 일련의 싸움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되고 있다.그들은 미제국주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세상에 드문 전투경험을 자기 나라 역사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싸움을 지도한 지도자가 다름 아닌 김일성의 증조라는 것이다.북한이 발간한 최대의 역사서적인 조선전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민대중의 앞장에서 미국해적선 셔먼호를 소멸하기 위한 창발적인 전법을 발기하시고 몸소 투쟁의 앞장에 서신 분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이시었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썰물과 밀물의 차이가 심한 대동강흐름의 특성과 과거 우리 선조들이 외적을 무찌르기 위한 싸움에서 이룩한 풍부한 군사경험,적아간의 무장장비의 차이,그리고 멸적의 기세드높은 인민대중의 불타는 애국심 등을 타산하시고 불배를 띄워보내는 「화공전술」로써 적을 소멸할데 대한 창발적 발기를 하시었다」 ○불멸의 업적 선전 「7월24일 적들의 발악적인 총포사격이 진행되는 속에서 낮 12시경 결사대원들의 화공전이 전개되었다.김응우선생님의 지휘밑에 결사대원들은 여러척의 작은 배들을 한데 묶어가지고 거기에 나무단을 가득 싣고 유황까지 뿌려 불을 지른 다음 상류로부터 셔먼호쪽으로 띄워 보냈다.뒤에서는 평양감영 군인들이 화승총과 활로 맹렬한 엄호사격을 하였다」 「미해적선 셔먼호를 소멸하기 위한 투쟁에서 김응우선생님은 실로 우리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었으며 선생님을 선두로 하여 결사전에 떨쳐나선 인민들은 무비의 영웅성과 애국적 헌신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사건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보면 당시 셔먼호를 불태우는데 평양의 군민이 일치하여 싸운 것은 사실이므로 김응우도 그 속에 끼어들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의 고종실록 제1책,병인3년 7월27일의 조목에는 당시셔먼호사건의 최고책임자였던 평안감사 박계수의 장계가 실려있다.그 해당부문은 다음과 같다. (1)평양부소박이양선,익사창광,굉포방총,살해아인,기소제승지책,막선어화공,일재방화,연소피선…평양부에 정박하고 있는 이양선은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총과 포로 우리 사람을 살해하였습니다.승리를 얻는 방책으로는 화공보다 나은 것이 없으므로 일제히 불을 질러서 그 배를 연소시켰습니다. 이 보고에 의하면 화공전술은 김응우가 평양감사 박규수에게 건의한 것이 아니라 박규수가 화공을 결단한 것으로 되어있다. (2)겸중군철산부사백락연,평양서윤신태정,친창총포,심력구한,필경초멸,가귀전공…겸중군철산부사 백락연과 평양서윤 신태정은 몸소 포연탄우속에 뛰어 들어 심력을 다하여 드디어 적을 소멸하였습니다.그들에게 전적인 공적을 돌려야 옳을 것입니다. 당시의 군대는 상당히 부패하고 있었지만 셔먼호사건에 있어서는 군대는 백락연이 지휘하여 맹렬하게 싸웠다.또 평양성의 백성들도 신태정이 지휘하여 용기 백배하여 싸운 것을 알 수 있다.실제로 이 공적으로 박규수 백락연 신태정 3명은 대원군으로부터 가자의 명예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반각도의 여울에 얹혀 좌초하고 있었던 셔먼호에 대한 화공은 박규수가 백락연과 신태정에게 명령하였다. ○큰칼 찰 자격없어 이 2명은 군민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지휘하였다.「김응우가 화공을 제안하고 그가 지휘한」싸움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경대라는 평양성 서쪽 교외의 일개 농민이었던 김응우가 만약 이 화공에 참전하고 있었더라면 그는 작은 배에 나무단을 실어 나르거나 이양선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할 정도의 역할 밖에 없었을 것이다. 농민이었던 그에게는 화승총도 활도 화살도 없었고 큰칼을 찰 자격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었다.그런데 조선전사는 「지휘권」을 일개 산당집 묘지기가 가지고 있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① 이상 「조선전사 13」,1980년간,76면. ② 같은책,77면. ③ 같은책,79면.
  • 다카야시 동맥염/한국여성도 발병

    ◎가톨릭의대 고용복교수 8년간 환자 27명 조사결과 발표/동맥→뇌쪽 혈관 막히는 경우 많아/심한두통·시력·청력장애 등 생겨/“20∼30대에 발생… 인조혈관 이용한 수술땐 효과” 일본이나 인도,중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 다카야시동맥염이 최근들어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다카야시동맥염은 1908년 일본의 안과의사 다카야시씨가 시력장애를 호소하며 찾아온 30대여인의 병인을 조사해본 결과,눈부위의 경동맥이 막혀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낸 뒤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병명. 최근 가톨릭의대 일반외과 고용복교수가 제6차 국제혈관외과심포지움에서 「한국에서의 다카야시동맥염의 치료」라는 주제를 발표함으로써 이 질환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카야시동맥염은 한마디로 대동맥에서 갈라져나가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혈액공급이 원활치 못한 상태.병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자가면역성질환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동맥성경화증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과는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30대의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이 질환의 초기증세는 몸살감기처럼 온몸에 열이 나고 식욕이 떨어지면서 근육통,관절통,체중감소등을 수반한다. 고교수는 지난 83년부터 8년동안 가톨릭 강남성모병원을 찾아온 다카야시동백염환자 27명(여자 20,남자 7명)을 대상으로 분석·조사한 결과,대동맥궁(궁)에서 뇌쪽으로 이어지는 혈관이 좁아져 막히는 경우가 48%(13명),복부대동맥쪽 혈관장애가 26%(7명),양쪽 함께장애를 일으키는 환자가 19%(5명)였음을 밝혀냈다. 즉 대동맥에서 뇌로 가는 혈관의 분기점에서 발병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경우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이 나타나고 시력·청력장애가 일어난다는 것. 또 복부대동맥쪽의 혈관이 막히면 사지마비와 고혈압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특히 손이 민감한 반응을 일이키는데 손가락끝이 시려 찬물에 손을 담그지못하게 되거나 손이 저리고 쥐가 나기도 하며 심하면 손가락끝이 썩어들어간다. 고교수는 인조혈관인 PTFE나 다크론을 이용한 「바이패스 수술」을 시도해 높은 성공률을 거두었다고 밝혔다.단지 수술받은 환자가운데 5%정도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으로 10년안에 사망하게 되며 고교수의 임상결과에서도 환자3명이 수술받은지 3년만에 뇌졸중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 취임1백일… 이상배시장 특별인터뷰

    ◎“지하철 확충… 96년엔 교통인구 절반 수송”/“항상 시민과 함께” 「생활행정」 몸소 실천/정도6백년 맞아 국제도시로 새 단장/대선에 공무원개입 있을 수 없는일… 자긍심 지켜야 이상배서울시장이 취임한지 3일로 1백일을 맞았다.전 인구의 4분의1이 넘는 1천1백만명의 시민이 모여사는 세계적 거대도시 서울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의 주요기능들이 집중돼 있어 시정은 곧 국정이라 할 수 있다.수도서울의 시장은 그만큼 언제나 무거운 책임을 지닌 중요한 자리다.30여년동안 내무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이시장은 취임하자마자 「도시행정은 곧 생활행정」이라는 신념으로 일요일이나 공휴일마다 재개발현장과 산동네,공사현장과 동사무소·파출소 등 현장을 직접 시찰하면서 고칠점을 발견하면 그 즉시 지시해 개선하도록 했다. ○시장은 시민의 공업 1백일동안 특히 현장중심의 시정을 펼친 이시장을 만났다. ­취임 1백일을 맞는 소감은. ▲그동안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시민의 생활현장을 다니면서 시민의 바람이 무엇인가를 찾아내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특히 청결하고 쾌적한 거리환경을 조성하고 생활주변의 무질서를 추방하며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시책과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다행히 5만5천여 서울시청 가족들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해줘 고맙습니다.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서울시는 분명히 세계속의 서울로 크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현장행정을 중요시하게 된 동기는. ▲지난 30년동안 직업관료로 근무해오면서 지역의 행정책임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도시행정은 바로 생활행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현장에서 시민들과 만나지 않고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그 중에서도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을 선택해 다닌 이유는 그 곳에 행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항이 많기 때문입니다.시장은 시장실의 장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우리 모든 시공무원들에게도 사무실보다는 어려운 지역을 많이 찾아가 그들의 불편을해결해 주고 시민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현장을 자주 나가는데 대해 일부에서는 앞으로 있을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행동이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 ▲거듭 강조하지만 시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시장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시장뿐 아니라 구청장이나 동장등 모든 책임자들은 반드시 솔선수범해야 하고 자기희생과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그래야만 그 조직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해야할 일을 하는건데 이를 선거와 관련짓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무원의 자세나 당부할 사항은. ▲한마디로 공무원들은 정치문제에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됩니다.우선 우리 공무원들은 우리가 국가발전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지켜나가야 합니다.이와함께 국민들을 가슴에서 우러나는 정과 믿음으로 도와주고 설득해야 합니다.그래야 국민들도 공직자들을 신뢰할 것입니다.우리 국민의 수준은 관권선거를 용납하지 않습니다.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하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당하게 돼 행정을 펴나갈 수 없게 됩니다.앞으로 지켜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은 일체 없을 것입니다. ○교통구조 개선 주력 ­서울시가 안고있는 가장 큰 과제는. ▲그동안 민원실에서 접수처리한 민원내용과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교통 △쓰레기 △환경 △주택 △서민생활안정대책등으로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교통문제가 제일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서울의 교통문제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차는 많은데 시설이 부족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이에따라 2기지하철이 완공되는 오는 96년엔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이 50%가 되며 이어 99년까지 4백㎞의 지하철을 더 건설,대중교통체계를 지하철중심으로 구축하고 2백여㎞에 달하는 도시고속도로를 뚫어 차량통행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데 힘을 쏟겠습니다.이와함께 이면도로를 대폭 정비해 일방통행로를 확대하고 정체가 심한 교차로를 입체화함과 동시에 주차시설도 꾸준히 늘려나가되 외곽이나 지하철 환승주차장 위주로 건설하겠습니다.그밖에 쓰레기·환경·주택등어느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서두르지 않고 작은 일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소각장건설 추진 ­지하도로와 목동·노원소각장을 제외한 나머지 9곳의 쓰레기소각장 건설계획이 무기연기 됐다는데. ▲예산이 한정돼 있으므로 한꺼번에 하지말고 순차적으로 하자는 겁니다.지하도로만 하더라도 2조4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60㎞를 뚫어도 60만대밖에 소화하지 못합니다.그런데다 그 속에서 유조차라도 폭발해보십시오.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하게됩니다.그래서 서두르지 말고 우선 교통량이 많은 도봉과 강남축을 잇는 20㎞부터 만들어 시험운행해보자는 겁니다.소각장 문제도 우선 1천6백t규모의 노원소각장 신설과 목동소각장의 증설공사부터 하고 내년에 강남과 마포소각장에 대한 용역을 줄 예정입니다.11군데를 한꺼번에 건설하는데는 3조원 가까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합니다.또 설치비용도 t당 1억원이 들며 연간 소각처리 경비가 3천7백억원이 소요됩니다.그래서 우선 난지도매립장규모의 7배에 달하는 6백30만평규모의 김포매립장을 활용하면서 차근차근 건설해나가자는 겁니다.점차 소각처리해야된다는 기본 계획에는 변함이 없습니다.시민들도 지금은 반대가 심하지만 앞으로는 점차 이해하실 겁니다. ­94년의 정도 6백주년을 앞두고 서울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중심도시가 되도록 하기위한 중,장기계획이 있다면. ○21세기 사업 추진 ▲21세기의 문턱에서 맞게되는 서울 정도6백주년은 서울시민뿐 아니라 온 겨레의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우선 시정을 시민에 보다 가까이하기 위해 생활행정개선에 노력하고 내년부터 시민들이 스스로 「우리고장서울」을 알고 가꾸는데 앞장서는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세계인과 더불어 꾸미는 「서울대동제」 「서울문화 경진대회」등의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도시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서울21세기구상연구사업」등 여러가지 사업을 펼치겠습니다. ○도약의 계기 삼아야 ­시민의 입장에서 서울시가 고쳐야할 업무절차나 개선점이 있다면. ▲시장으로 취임한 이래 동료 직원들에게 늘 시민의 입장에서 시정을 반성해보고 시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불편한 사항이나 제도가 있으면 개선하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작은 일부터 해결하고 밝은 지역보다 어려운 지역을 찾아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그분들의 불편을 해소하자는 것입니다.그런 차원에서 13시간 민원처리제의 실시와 전화민원신고센터 설치등 개선하고 고칠 것은 과감히 고쳐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소득수준은 6천∼7천달러에 이르렀지만 시민의식은 다소 이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거리에 함부로 침을 뱉는다든가 줄을 서지 않는등 공공의 이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지금은 국가적으로 매우 어렵고 중요한 때입니다.모든 계층간에 오해와 갈등·불신이 있었다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며 신뢰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이시장은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 민선시장에 출마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서울시 행정에 쏟아붓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 대동화학 법정관리 종결/12년만에 경영정상화 성공

    지난 80년 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상장사인 대동화학이 12년만에 기업정상화에 성공해 법정관리상태에서 벗어나게 됐다.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은 1일 대동화학에 대한 법정관리 종결결정을 내렸다. 대동화학의 관리인인 나승렬회장은 지난9월22일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에 법정관리절차를 끝내줄 것을 신청했었다. 이로써 법정관리를 통해 파산위기를 모면하고 경영정상화에 성공한 상장사는 삼성제약(법정관리기간 78년 3월∼87년 4월)과 신호제지(82년 1월∼91년 7월)를 포함해 3개사로 늘어났다. 대동화학은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자본잠식규모가 4백96억원에 달했으나 지난 5월 보유토지와 건물에 대한 자산재평가 실시를 통해 7백55억원의 재평가차액을 발생시켜 자본잠식상태에서 벗어났다.
  • 전교조교사 10명/면직판결은 무효/“징계절차 위배”

    【광주=박성수기자】 광주지법 제5민사부(재판장 구충서부장판사)는 30일 전교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 89년 학교로부터 면직당한 박재성씨(37)등 광주대동고 교사 10명이 학교법인 우성학원(이사장 박헌동)을 상대로 낸 면직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정당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면직처분은 무효』라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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