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대동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 4월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22
  • ‘퇴계원산대놀이’ 60년만에 복원

    일제의 탄압으로 소멸됐던 ‘퇴계원 산대놀이’가 60여년만에 완전 복원돼선보인다.25일 오후4시 예술의전당 야외극장.(02)580-1132. 예술의전당이 마련한 ‘전통예술 기획 시리즈-한강’프로그램의 하나로 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 민경조 회장과 회원 29명이 출연,전체 12마당(과장)중 5마당을 선보인다. 산대놀이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발생,전승된 탈놀이로 발생지역에 따라 퇴계원·송파·양주 별산대놀이로 나뉜다. 내용과 춤사위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탈모양이 지역에 따라 확연하게 다르다.퇴계원 산대놀이에는 19종류의 탈이 등장한다. 파계승놀이와 양반놀이,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놀이로 크게 나눌 수 있다.파계승,몰락한 양반,만신,사당,하인의 등장을 통하여 현실폭로와 풍자,호색,웃음과 탄식을 보여준다. 길놀이로 시작,팔먹중놀이(제6마당)노장놀이(제7마당)신장수놀이(제8마당)취발이놀이(제9마당)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제12마당)를 선보이는 공연시간은 2시간이 조금 넘는다. 길놀이는 산대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출연진이 가면과 의상을 갖춰입고 풍물을 연주하면서 동네를 돌아 관중을 공연장으로 인도하는 구실을 한다.팔먹중 놀이는 중들이 인가로 내려와서 불도를 이탈하는 내용을 담아 파계승들을 풍자한다. 노장놀이는 노장이 본격적으로 파계하는 마당으로 팬터마임 형식의 춤을 보여준다.신장수놀이는 유일하게 동물이 등장하는 마당으로 원숭이의 행동과춤이 해학적인데 극적인 연출이 많다. 취발이놀이는 노장과 여인들이 놀아나는 것을 풍자한 마당으로 걸쭉한 재담과 야한 부분이 많다.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는 죽음을 위한 굿.또한 놀이전체의 마무리 마당으로 축원굿,화해굿,대동굿의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송파·양주 별산대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퇴계원 산대놀이가 유독 일제탄압을 받은 까닭은 당시 퇴계원 산대놀이 연희자들이 3·1 만세운동 등 일제 저항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여 반일 감정이 확산되는 것을 꺼린 일제가 탈과 의상,악기 등을 빼앗아 불태우면서 완전히 소멸됐다.지난 90년 산대놀이 연희자중 생존자인 백황봉옹(89)의 제보로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지난 97년 남양주문화원에 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가 설립됐고 같은 해 열린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으면서 점차 알려지게 됐다. 강선임기자 sunnyk@
  • 서이석 前경기은행장 돈 어떻게 건넸나

    임창열 경기지사의 부인 주혜란씨가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가 확인됨에 따라 돈을 건넨 시기와 방법,액수,사용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나온 얘기를 종합해보면 서전행장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후 일주일쯤 지난 10일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에 있는 임지사 거처이자 장인 소유의 별장으로 주씨를 찾아갔다. 주씨와 안면이 전혀 없는 서 전행장은 이때 서울 한남2동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는 민영백씨를 대동했다.민씨가 ‘퇴출 저지 청탁’ 중매에 나선 셈이다. 건축전문가로 건축전을 자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펴온 민씨는 역시 마당발인 주씨와 십여년 전부터 알게 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 서전행장은 주씨에게 ‘경기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말과 함께 1만원권이 가득 든 골프옷가방을 슬며시 놓고 먼저 자리를 떴다.액수는 4억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씨는 한때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씨를 통해 곧바로 돌려줬다고 주장해 ‘배달사고’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15일 조사를 받으면서돈의 사용처를 모두 밝혔다.자신이 운영하는 ‘주클리닉’ 운영비 등 순전히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것. 검찰은 현금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고 있으나 주씨 진술에 별로 신빙성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검찰은 주씨가 받은 돈의 일부가 임지사에게 전해졌고,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주씨가사용처를 작위적으로 만들어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별도로 서 전행장이 인천의 중견건설업체인 D업체 대표로부터받은 5억원 중 1억원을 임지사에게 도지사 선거운동 기간인 작년 5월 쯤 선거자금조로 주었다가 경기은행 퇴출 후 돌려받았다는 진술을 확보,조사하고있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임지사 부부는 경기은행으로부터 모두 5억원이라는거액을 받은 셈이 된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청소년 캠프-해양·항공·어학등 다양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캠프가 방학 중에 열린다.항공,문화탐방,영어체험,부모와 함께 하는 캠프 등 그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전국 청소년 장보고선발대회 및 해양역사캠프’ 8월 6∼9일 전남 완도군 청해진유적지및 명사십리 해수욕장.초등학교 5∼6학년,중학생 대상.고무보트 카누 카약 수영 등 해양훈련 체험.지적능력 체력 해양능력을 테스트해 청소년 장보고 대사 선발.(02)886-8522 한국해양소년단연맹 ‘99 여름항공캠프’ 8월 11∼13일 포항 해군제6항공전단 및 칠포해수욕장.중고교생 대상.항공 기초이론·비행원리 학습.모형로켓 제작및 발사,초경량 항공기 체험과 열기구 헬기 탑승.(02)511-0222 월간항공 ‘여름항공캠프’ 7월 26∼28일 항공대학 및 포천수련원.초·중·고생 대상.항공이론교육 및 헬리콥터·열기구 탑승,한탄강 래프팅 체험,종이비행기·모형항공기 제작 등.(02)3663-3011 두레민족생활문화원 ‘장애인과 함께 하는 여름 들살이’ 7월 28∼30일 강원도 춘천 오월리 산림휴양지.초·중·고생 대상(장애인 학생 포함).풍물 우리춤 택견 민요 등 우리문화 체험,발표.장애인과 함께 하는 촌극및 대동놀이.(02)3676-0518 열린배움터 ‘강원문화 체험캠프’ 7월 19∼22일 강원도 평창 정선 영월. 초·중·고생 대상.동강 탐사,월정사 견학,평창5일장 체험,열목어서식지·대관령목장 견학및 동굴탐험.(02)542-1088 따로또 같이 만드는 학교 ‘청소년 문화탐험캠프’ 7월 26∼29일 충남 공주 일원.중·고교생 대상.무령왕릉 민속극박물관 공산성 견학.가면극 가면무도회 별자리 탐험.(02)745-8968 JSPC ‘한여름밤의 즐거운 파티’ 7월 24∼25일 경기 화성군 라비돌 리조트.중고교생과 학부모 대상.자녀·부모간 대화,춤추기 등으로 짜여진 가족캠프.(02)761-4300 민간외교클럽 ‘외국인과의 영어체험캠프’ 7월17일부터 8월29일까지 당일,1박2일,3박4일 코스로 12차례.초등학교 3∼중학교 2학년 대상.설악산 제주도 강화도 경주 변산반도 부여 등지에서 외국 성인들과 동행하는 여행 답사. (02)757-2496
  • [대한광장] 노벨평화상과 한반도 냉전 해체

    일본인은 그동안 8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1949년,핵력의 정체를 밝히는 등 물리학 3명,의학 1명,화학 1명,문학상 2명,평화 1명 등이다.노벨상은 인류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에 있어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인정되는상이며,인류 전체 감사의 표징이다.그러나 74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평화상 수상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문제가 됐다.“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적극동조했고 중공(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반대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등. 73년 노벨위원회는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레둑토 월맹 정치국원에게 파리합의의 공로로 평화상 수여를 결정했다.그러나 당시 뉴욕 타임스는 ‘노벨전쟁상’이라고 비꼬았다.워싱턴 포스트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사람을 잘 웃긴다”고 했다.우방 일각에선 “미군을 무책임하게 철수시키기 위한 구실 마련”이라고 비난했다.“주변 국가를 침공하고 지키지도 않는 휴전협정에 동의했다고 평화상을 주다니…”라고 했다.레둑토는 수상을 거절했다.파리합의후 미군철수를 기다려 일거에 무력통일을 계획하고 있던 월맹으로서는 위장외교 전략으로 평화상을 받기에는 국가의 품위와 양심이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한 TV가 키신저와의 회견에서 파리합의는 결국 ‘사기’가 아니었느냐고 추궁했다.회견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의 착잡하고 부끄러웠을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노벨평화상은 전쟁을 예방하고 민족간·이념간 분규를 해소하는 데 역사적 공헌을 한 인사에게 주어진다.수상자 몇 사람을 살펴본다. 1971년 대동독 강경노선 할슈타인 정책을 수정해 동구권 화해의 동방정책을 과감히 추진,독일통일의 초석을 놓은 브란트 서독총리,78년 네 차례의 중동전쟁후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그후 극우파에 의해살해당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50년간 계속돼온 인종차별정책 철폐를 위해 27년 동안 옥고를 치르며 이를 이룩한 만델라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과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64년 흑인 비폭력운동가로 후에 암살당한 킹 목사,94년 3,000년 이상 지속돼온 민족갈등을 지속하고 이스라엘 재건국이후 분쟁을 거듭해 왔던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정착시키고 결국 후에 반대 강경파에 의해 암살당한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PLO의장 등 모두 거시적인 안목을 가진 용기있는 지도자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냉전구조를 해체하겠다고 했다.그러나 서해교전과 베이징 차관급회담 결렬 등을 우리는 보고 있다.분단은 우리민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외세에 의해 주어졌다.5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책임을 마냥 외국에만 돌릴 수는 없다.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반대로 작은 새우가 고래를 마구 끌고 흔들어 서로 등 터지도록 싸우게 했다.6·25가 그렇고1894년 청일전쟁,1904년 러일전쟁이 그렇다. 우리 역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다.소의 꼬리에 안주하기보다 닭의 머리로 떳떳하게 살려고 했다.광개토대왕의 웅지가 있었고 살수(薩水)의 용맹이 있었다.왕건의 통일 포용력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살신성인이 있었다. 김구의 민족자주 의식이 있었고 항일투쟁의 빛나는 전통이 있었다. 지도자는 대중의 뜻을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다.자기신념에 남이 따라오도록 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말한다.인구팽창,자원고갈,식량부족,환경오염,이념·민족분쟁의 새 천년에서 남북 가릴 것 없이 지금의 분단상태로는 자랑스런 국가로 살아남을 수 없다.2,500년전 철학자 플라토는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봤다”고 했다.남북한이 그럴 수는 없다.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다.같은 민족으로 세계의 멸시와 조롱을 더이상 참을 수는 없다.오늘날 남북이 안고 있는 어려움의 큰 원인이 분단 사실에 있다.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해야 한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 높은 문화의 나라.’김구의 나라상이다.민족을 위해,세계 평화를 위해 노벨평화상이 우리 민족에게 수여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손장래 前 말레이시아 대사
  • 日열도 총체적 보수화 急流/보수화 움직임들

    일본 열도가 총체적 보수화로 치닫고 있다.곧 탄생할 보수 3당 연립정권,개헌을 다룰 헌법조사회 설치,국기(國旗) 국가(國歌) 법제화 추진 등 보수 우경화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이런 보수화 흐름은 일본내 어떤 세력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을 형성,21세기 초 일본을 규정짓고 해석하는주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일본의 보수화가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의 급격한 보수화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내각 때 단초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자민 사민 사키가케 연정이 무너지고 98년 여름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경제실정(失政)으로 참패하면서 ‘헤쳐 모여’가 가속화됐다. 참의원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자민당은 ‘체질’이 비슷한 자유 공명등 야당을 끌어들여 안정적 국회운영을 노렸다.첫 열매가 올 1월 자민 자유연정이었다.늦어도 올 가을전까지는 공명당이 가세한 3당 연립정권이 출범할 것 같다. 새 연정은 중·참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보수연정은 장기적으로는 제1야당 민주당과의 연합까지 상정하는 ‘보수대연합’의 구도를 그리고 있다.보수를 견제할 대칭축으로는 군소야당인 사민 공산당 밖에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보수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풀이가 있으나 거품경제 붕괴후 시작된 10년가까운 장기 불황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불황이 보수화를 촉진하고 있는 특이한 경우다. 불안한 미래에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기성 정치,특히 이념정당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게다가 유권자들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속속내놓는 자민당의 인기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의 지지도 추이는 보수화의 일단을 엿볼 수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98년 7월말 출범 당시 바닥세였던 내각 지지율은 보수연정을 추진하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2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최근 50% 전후로 뛰어올랐다. 정치의 이런 보수화는 다른 한면으로는 국가의 통합을 급속히 강화하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국회통과 이후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운신을 넓히는데 더욱 애쓰고 있다.일장기(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국기 국가 추진,교과서 검정기준강화,개헌론 등은 보수화와 더불어 나타난 움직임이다. 민족주의를 바탕에 깐 국가체제강화는 국수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중국 등 주변국들이 경계하는 점도 바로 이런 대목이다. 20세기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보수화를 고리로 국가체제강화,군사대국화로연결돼 자행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주변국들의 우려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보수화 움직임들 일본의 보수화 움직임과 관련해 올해 눈에 띄는 일들이 유난히 많았다.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가능케한 미·일안보협력지침이 제정됐다.헌법조사회 설치법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됐고 국기와 국가 법안도 국회 심의가 진행중이다. [헌법조사회 설치]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교전권을 갖도록 한다는게 개헌론의 골자.일본 헌법은 미 군정시절인 46년제정됐다. 자민당은 55년 ‘자주성을 갖춘 헌법개정’을 정강(政綱)으로 채택,개헌논의를 주도해왔다.내년 국회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되면 45년만에 자민당 뜻대로 개헌논의가 공식화되는 셈이다. 초점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9조의 개정.주변국들이 개헌론에 끊임없이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바로 교전권을 가지려는 일본의 속내에 대한의심 때문이다. [국기·국가 법안] 6월11일 일본 정부는 일장기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하는 법안을 각의에서 통과시켰다.일본교원노조등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심볼로 삼으려는 저의가 있다”고 맹반발했다.일장기와 기미가요는과거 군국주의 일본에게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종전직후 미 군정이 일장기 게양을 허가제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여당인 자민 자유당이 법안에 찬성하고 있고 민주 공명당도 동의하고 있어 심의만 끝나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문화분야] 극우 사관이 공공연히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대표적이다.지금의 역사책이 미국의 강요로 기술됐다며 ‘새로운 사관’에 서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미 군정하전범재판을‘날조극’이라고 비판한다.96년 결성돼 지난해와 올해 부쩍 회원을 늘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신 대동아공영을 부르짖는 책자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나 4월 지방선거에서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선전포고,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경제’ 등은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 다시 불붙은 ‘화랑세기’ 眞僞논쟁

    지난 89년 부산에서 필사본이 발견된 이래 사학계에서 줄기찬 진위논쟁을벌여온 ‘화랑세기(花郞世紀)’가 완역,출간됐다.서강대 이종욱 교수는 5일한문 원문에 한글 번역본을 붙여 ‘화랑세기-신라인의 신라이야기’ (소나무펴냄 1만3,000원)를 출간,필사본 ‘화랑세기’를 둘러싼 진위논쟁에 새로운도전장을 던졌다.만약 이 교수의 주장대로 필사본 ‘화랑세기’가 진짜일 경우 신라사는 물론 화랑·고대 한일관계사 등을 새로 써야할 상황이어서 국내사학계에 일대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화랑세기’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김대문이 680년경 편찬한 것으로 화랑들의 전기(傳記)다.이 책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후대 문헌에서 인용되고 있지만 조선초에 멸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진위논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 89년 부산에서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되는 32쪽짜리 필사본 일부가 발견된데 이어 95년 노태돈 서울대교수가 보다 완전한 모습의 162쪽짜리의 또 다른 필사본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이 두 필사본들은모두 일제당시 일본 왕실도서관에 근무하던 조선인 박창화(65년 사망)가 필사한 것으로 많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그동한 사학계에서는 이 필사본들을 두고 필사자인 박창화씨가 소설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만든 허구라는 조작설과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 맞다는 진본설로 팽팽히 맞서왔다. 이 필사본을 두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측은 우선 필사본의 내용중 화랑들과관련한 내용이 종래의 학설과 너무 딴판이라는 것.그동안 화랑은 ‘세속5계’로 상징되듯 충효를 바탕으로 한 청년 무사집단으로 인식돼 왔다.그러나필사본에 등장하는 화랑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관(神官)의 보조역할자로나와 있다. 특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난잡한 섹스집단 정도로 묘사된점도 의외다. 이에 대해 완역자 이 교수는 “신라사를 유교적 도덕관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그런 식이라면 ‘화랑세기’와 유사한 내용이 포함된 ‘고려사’에 대해서도 진위논쟁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반박했다.이 교수는 특히 필사본에 등장하는 남여 400여 명의 계보가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봐 원본을 보고 베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사본‘화랑세기’는특히 가야 멸망시기 등을 기존 사서(史書)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가야가 562년에 멸망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561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를 멸망시킨 후 세운창녕순수비는 561년에 건립됐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이 책은 또 김유신이 김춘추와 몰래 정을 통해 아이를 밴 문희를 불태워 죽이려 할 때 문희를 구해준 사람이 ‘선덕여왕’이라고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달리 ‘선덕공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뒷날 문무대왕이 된 문희의 아들은 선덕여왕이왕위에 오른 것보다 6년전에 태어났으므로 ‘선덕공주’라는 표현이 맞다.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서 비교적 중립적 견해를 보여온 이도학한양대 강사는 “신라시대의 역사를 후대의 사서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전제하고 “기존상식이나 선입관에 위배된다고 해서 모두 가짜라고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본 가능성 쪽으로 견해를 폈다.현재 학계에서는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본론보다는 가짜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번 논쟁으로 어느 한 쪽은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매주 금요일 학술 발표회

    고려말 성리학으로 이 땅에 처음 도입된 이래 유교는 통치이데올로기는 물론 전통사회의 대중규범이자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자리매김돼 왔다. 성균관대 부설 대동문화연구원(원장 김시업 어문학부 교수)은 ‘유교와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지난 6월25일부터 연5주 계획으로 매주 금요일 학술발표회를 열어 오고 있다.주제 발표자만도 31명에 달하는 이번 행사는 기간이나 규모면에서 해방후 치러진 학술행사 가운데 최대 규모다. 지난 2일 제2차 학술발표회에서는 ‘유교적 전통과 현대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유교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았는데 발표자들은 현대 한국사회에 미친 유교의 영향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통해 해방이후 정치엘리트의 의식구조·정치행태와 유교문화와의 함수관계를 따졌다.서 교수는 “그의학력,오랜 미국생활,여자·부부관계,기독교 관계 등을 감안하면 이승만처럼서양화된 사람도 없지만 실상은 그는 왕족이나 군주처럼 행세하고 군림했다”며 “이는 유교사회인 유년시절의 체질이 강인하게 남아 있었던 탓으로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승만 권력의 전제성(專制性) 강화가 더욱 두드러진형태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당시 그의 생일을 군주의 생일 규모로 성대하게 치르거나,‘서울’의 명칭을 그의 아호 ‘우남’으로 바꾸려했던 사례 등도 모두 그의 유교·봉건적 잔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유교와 한국의 시민사회’라는 주제발표를 통해근대 사회발전의 핵심적 요소인 시민사회·시민의식에 유교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김 교수는 “현대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협조주의·비주체성·가족주의·연고주의에 입각한 배타주의 등은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발전에 심각한 질곡이 돼 왔다”고 진단하고는 “국가에 대한 순응적자세,권리의식에 입각한 시민운동 참여 기피현상 등은 공공윤리,민본적 가치관 등을 강조해온 유교의 합리적 측면을 계승하지 못한 때문이다.이는 식민지적 경험과 파행적 근대화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성보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은북한사회의 유교적 전통의 실태와 관련,“사회주의적 발전을 지향하며 전통적 요소와의 단절을 추구했던 북한에서도유교적 전통은 여전히 잔존·강화·고착되고 있다”고 밝혔다.김 연구원은“북한의 체제·사상과 유교적 전통과의 관계는 단절·지속·동원이라는 세가지 측면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혁명과정에서 가족주의 등 유교적 전통이 상당부분 단절되었으나 80년대 후반이후 ‘충효’를 강조하는 등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이승희 성공회대 교수는 ‘남한과 북한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유교문화’에서 “남북한 모두에서 여성들이 산업화와 체제유지에 중요한 역할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낮은 지위와 전통적인 성역할을 맡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해방을 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유교적 덕목에 기초한 성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전통적 유교질서에 길들여진 여성의 예속성·종속성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서울 6차 동시분양, ‘묻지마 청약’ 삼가라

    ‘이번만큼은 무작정 청약은 삼가라.’ 부동산 전문가들이 7월 5일 청약이시작되는 서울지역 6차 동시분양 아파트의 입지를 분석한 뒤 내린 결론이다. 이번 6차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 재개발·재건축·조합주택의 일반 분양분이라는 점이다.모두 8개 사업장에서 2,927가구를 지어조합원 분양분 1,430가구를 제외한 1,517가구를 일반에 공급한다.분양 지역은 강남과 강북이 각각 3곳,한강 인근이 2곳이다.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金榮進)사장은 “이번 물량이 모두 조합주택의 일반 분양분이어서 로열층은 조합원이 먼저 차지하고 비로열층만 일반분양되는 경우가 많다”며 “청약지역에 로열층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사장은 “시세차익과 교통수단,주변 편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본 뒤 마땅치 않을 경우 8월 이후로 청약을 미루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권고했다. 행당동 한신 행당 1-2 재개발 구역에 들어서는 역세권 아파트로 지난달 치열한 청약률을 기록한 대림아파트와 접해 있다.국철 응봉역이 걸어서 10분걸리며 지하철 5호선 행당역은 걸어서 5∼7분 거리에 있다.지하철 2호선과국철 5호선,분당선 등 수도권 지하철이 교차할 왕십리역의 상권이 가까워 시세상승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이미 분양된 대림아파트,하반기 청약예정인 동아아파트와 함께 3,000여가구의 대단지를 이루게 된다.광회중,행당초등,무학여중고와도 가깝다. 자양동 현대 재건축아파트로 주변에 우성·현대·삼성이 단지를 형성하고있어 편의시설이나 주거환경이 좋은 편이다.일부 동(棟)에서는 한강을 볼 수 있다.신양초등학교와 자양중고교가 가까이 있다. 지하철 2,7호선의 환승역인 건대입구역까지 걸어서 10분 걸린다.잠실대교나 영동대교를 이용하면 강남진입이 편리하다. 삼성동 삼부 삼성빌라의 재건축아파트.올림픽대로변에 들어설 예정이어서승용차편은 편리하지만 대중교통편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지하철 2호선 삼성역까지 마을버스를 타야 하며,버스를 이용하려면 영동대로까지 나가야 한다. 단지 앞쪽이 트여 있어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잠실종합운동장과 한국종합전시장(COEX),현대백화점이 가깝다.주변에 단독주택이 많이 들어서 있다. 번동 현대 번동 금호타운 옆에 건설되는 조합아파트로 단지 뒤쪽에 산과공원이 있다.길 건너편에 주공아파트단지가 있으며 번동초등·중학교가 가깝다.그러나 교통편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흠이다.버스는 길건너 한천로까지걸어서 5분정도 나가야 이용할 수 있다.지하철을 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4호선 수유역까지 가야 한다. 방이동 금호 올림픽공원 남2문 맞은편 방이초등학교 뒤에 건설되는 조합아파트.주변이 연립·단독주택단지여서 주거환경이 괜찮은 편이다.5호선 방이역과 8호선 몽촌토성역까지 걸어서 10분 걸린다.남부순환도로와 올림픽도로를 이용하면 잠실·강동지역으로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다.시장과 백화점이멀리 떨어져 있는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녹번동 진로 지하철 3호선 녹번역에서 걸어서 1분거리에 있는 역세권아파트.녹번시민아파트를 재건축한다.단지 옆으로 대림아파트,뒤쪽으로는 북한산이 있다.주변은 일반 주택가가 밀집해 있다.통일로에 인접해 있어 버스를이용하기가 편리하다.은평초등학교,녹번구청,녹번시장이 가깝다. 증산동 중앙 증산동 연립주택을 재건축한다.주변은 일반 주택단지이며 단지 뒤로 산이 있다.성산대교를 통하면 목동으로 가기가 편리하다.그러나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이 아직 없다.지하철을 타려면 신촌까지 나가야한다.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는 상암지구까지는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풍납동 대동 경당연립주택을 재건축하는 것으로 단지 옆에 이미 1차 120가구가 들어섰다.주변은 대부분 단독·연립주택단지이고 풍납초등학교가 가깝다.동아아파트가 앞면을 가로막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에서 한강을 바라 볼수 있다.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이 걸어서 5∼7분거리다.천호대교,올림픽대교가 가까워 강북 진입이 비교적 수월하다. 박건승기자 ksp@
  • 기준시가 주요내용 문답풀이/아파트기준시가란

    국세청이 28일 고시한 올해 공동주택의 기준시가에 대한 주요내용을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올해 기준시가를 올리지 않은 이유는.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의 가격상승이 완만하게 이어져 시가의 70∼80%를 반영하고 있는 기준시가 적용가능 범위 내에 있다.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준시가를 인상하면 세부담 증가가 우려된다. 신규 고시아파트의 기준시가는 어떻게 반영되나. 올 3월 시세를 기준으로 전용면적기준 국민주택규모(85㎡ 이하)는 실거래가액의 70%,일반주택규모(85∼165㎡)는 75%,고급주택규모(165㎡ 이상)는 80%가 각각 적용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기준시가를 알아보려면. 전국 모든 세무서 민원봉사실이나 재산세과에 문의하면 된다.또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nta.go.kr)에서 쉽게 조회할 수 있다.책자로 만들어 7월 중순쯤 배포할 예정이다. 신규 고시지역은. 그동안 고시대상에서 빠져있던 42개동을 새로 고시했다.주로 재개발지역이거나 조합아파트 등이 새로 들어선 지역이다.▲서울=중구 예장동,마포구 신정동,성북구 삼선동4가,서대문구 현저동,종로구 효자동,성동구 송정동▲인천=서구 공촌동,중구 관동▲광주=광산구 신가동,서구 풍암동▲대구=중구 달성동,서구 중리동과 원대동2가,북구 팔달동▲부산=동구 수정동▲수원=권선구서둔동·탑동·입북동·고등동·망포동▲부천=원미동▲오산=갈곶동·운암동·탑동·가수동▲시흥=장곡동·하상동▲평택=군문동▲청주=남주동·북문로3가▲공주=금흥동▲서산=예천동·장동▲천안=대흥동▲군산=송풍동▲정읍=구룡동▲목포=무안동·해안4가동▲구미=구포동·진평동▲진해=용원동▲창원=안민동 등이다. 노주석기자 - 아파트기준시가란 국세청이 전국 아파트나 연립주택(고급빌라)에 대해 양도소득세나 상속·증여세를 부과할 때 기준으로 삼기 위해 고시하는 평가금액이다.양도소득세는원칙적으로 기준시가에 의해 과표를 계산하되 납세자가 실거래가액으로 신고한 경우와 단기양도 또는 투기거래 등은 예외적으로 실거래가액을 적용한다. 상속 및 증여세는 원칙적으로 시가에 의해 과표를 계산하되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울 때는 기준시가를 적용한다.취득세·등록세 등 지방세에는 기준시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시가표준액이 적용된다.
  • [대한매일 발간 白凡 金九 全集](下)새로 발굴된 자료들

    전후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보장한 ‘카이로회담’은 흔히 미·영·중 3국 수뇌들이 전후처리의 일환으로 내린 결정으로만 알려져 왔다.그러나 이같은 회담결과는 회담에 앞서 김구 주석이 중국의 장제스(蔣介石)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강력히 요청한 데 크게 힘입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이는 임정이 중국을 통해 연합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백범김구전집’ 편찬위가 대만에서 입수한 문건(總裁接見韓國領袖談話紀要,1943.7.26)에 따르면 김구 주석은 미·영·중 3개국 거두들이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담개막 4개월전인 1943년 7월26일 중국대표인 장제스를 만나 한국 독립문제를 강력 요청한 것으로 나와 있다.이날 오전 9시 외무부장 조소앙(趙素昻),선전부장 김규식(金奎植),광복군 총사령 이청천(李靑天),광복군 부사령 김원봉(金元鳳)과통역요원으로 안원생(安原生)을 대동하고 장제스를 면담한 자리에서 김구 주석은 장제스에게 “미국과 영국이 전후 한국문제에 대해 국제 공동관리(共管)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이 나서서 한국의 독립을 관철시켜 달라”고요청했다.이에 대해 장제스는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면서 임정측에 정파간 단합·통일을 요청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1943년 11월 하순 카이로회담에 참석한 3국 거두들은 회담을 마치고 11월27일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는데 그 속에는 1914년 이래 일본이 점령했던 모든 영토를 빼앗고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기로 결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이로써 한국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독립을 보장받게 됐다.결국 장제스는 김구 주석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카이로선언으로 시작된 한국독립의 ‘희망’은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대만 총통부 당안관과 국민당중앙당사위원회가 소장중인 장제스의 일기(日記),카이로회담 관련기록에 따르면 회담중 영국의 처칠 총리가 한국의 독립을 반대하자 장제스가 미국의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동의를 구해낸 뒤 다시 처칠을 설득한 것으로 나와있다.그 결과 즉각적인 독립이 아닌 조건부 독립,즉‘적당한 시기’(in due course)라는 단서를 붙여 한국 독립문제에 합의를 이룬 것으로 밝혀졌다.결국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것은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측의외교적 노력과 장제스의 측면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구 주석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최고지도자 장제스를 면담한 것은 1932년윤봉길의사의 의거 직후가 처음이다.이때부터 장제스 정부는 임시정부를 항일운동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김구 주석은 카이로회담에 앞선 면담에 이어 해방 때까지 총5차례 장제스와 면담한 것으로 나와 있다.두 사람의 면담기록은 이번에 대만 국민당 중앙당사위원회에서 전문이 입수돼 대부분 ‘전집’에 수록됐다.내용중 일부가 소개된 적은있지만 전문이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운현기자 - 나석주의사 편지7통 첫 공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金相玉)열사와 함께 대표적인 국내 의열투쟁 독립운동가인 나석주(羅錫疇)의사가 의거 1,2년전 백범과 동지들에게보낸 편지 7통이 처음으로 공개됐다.이 편지들은 모두 나의사가 중국에서 의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쓴 것으로 나의사의 의거에 백범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사진).나의사가 백범에게 보낸 첫 편지는 7통의편지 가운데 가장 시기가 앞선 1924년 9월11일자이며 두번째 보낸 편지는 이듬해 7월28일자로 베이징(北京)에서 보낸 것이다.두번째 편지에는 ‘…부탁사는 이승춘(李承春)군에게 극비말씀을 동봉하여 보냅니다.이 내용은 이곳두 사람과 선생님,이군 외에는 없습니다’라는 내용과 추기로 ‘중국을 떠나는 동시에 또다시 최후로 소식을 드리겠습니다’고 적고 있어 이 무렵 이미백범과 나의사 간에는 모종의 거사가 진행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1923년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한 백범은 당시 임정 첩보전의 총책임자격이었는데,나의사는 백범 밑에서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 첫 편지에서 나의사는 ‘나이(羅李)’라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이듬해 국내잠입계획에 이승춘을 동참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는 석주(石柱)·김영일(金永一) 등의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편지에서 나의사가 백범을 두고 ‘사랑하여 주신 선생님’‘목적을 달성하는 날까지 사랑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등으로 적은 것은 나의사·이승춘 모두 백범의 제자였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편지들은 그동안 소장처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두 나의사가 1932년에 쓴 것으로 정리해 놓은 바람에 혼선을 빚어왔다.김희곤(金喜坤) 안동대사학과 교수는 “겉봉의 소인을 정밀확인한 결과 이 편지들은 모두 나의사의거전인 1924년(1통),25년(6통)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며 1925년 이후“의열단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시점에서 나의사의 의거가 가능했던 것은 백범이 키워 놓은 인물과 의열단의 기존조직,그리고 때마침 심산 김창숙(金昌淑)이 국내에서 자금을 들여온 것이 맞아떨어져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당초 나의사는 1925년 중국인의 배를 구입해 여러 명이 함께 국내로 잠입,의열투쟁을 도모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자 1926년 단신으로 잠입해 그해 12월28일 일제의 경제침략·물자수탈의 본거지인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불행히도 폭탄 두 발이 모두 불발되자 나의사는 권총으로 자결,순국했다. 정운현기자- 臨政, 제주도 거점 국내진입 계획 해방 직전 중경임시정부가 제주도를 통해 국내진입을 계획했던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그동안 광복군이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무위로 끝난 사실은 알려져 왔으나 진입경로를 본토가 아닌 제주도를 우회해진입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진 사실이다. ‘전집’ 편찬위가 대만에서 입수한 중국측 정보자료에 따르면 김구 주석이 미국의 중국 전구(戰區)사령관인 웨드마이어(중국명 魏德邁)장군에게 편지를 보내 ‘미군이 조선 남부의 제주도를 해방시켜 주면 임시정부가 미군의협조하에 제주도에 진입한 뒤 전 한민족을 영도해 미군의 작전을 돕겠다’고 한 것으로 나와 있다.이같은 내용은 당시 중국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 허궈광(賀國光)이 해방 20일 전인 1945년 7월25일자 중국 국민당 비서장 우티에청(吳鐵城)에게 보고한 정보자료(抄韓情近報) 제1항에 나와 있다.김구 주석이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보낸 편지는 찾지 못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측 정보기관에서 이를 ‘비밀’ 정보자료로 보고한 것으로 봐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시준(韓詩俊)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가 제주도를 전략상 중요지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라며 “임정의 국내진입작전의 또다른 계획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임정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정운현기자
  • 종합병원 15곳 시설 불량

    전국의 3차 진료기관 39곳 가운데 15곳이 병원시설이나 의료인력 부족으로평가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18일 3차 진료기관을 대상으로 시설·인력,전공의(레지던트 3년차),환자구성 상태 등 3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 중앙길병원 등 15개 병원에대해 시정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중앙길병원은 간호인력이 595명으로 기준보다 17명, 강동성심병원 15명등 4곳이 기준에 미달했다.또 인공신장투석실,임상검사실 등을 포함한 중앙진료부의 면적이 총건축면적의 10% 이상이어야 하나 부산대병원(7.7%) 중앙길병원(9.2%) 계명대동산병원(9.5%) 등 3곳은 이 기준에 못미쳤다. 내과,해부병리과,마취과 등 8개 전문과목에 3년차 이상 전공의를 두도록 한기준을 충족치 못한 인제대서울백병원 등 10개 병원도 역시 시정명령을 받았다. 한종태기자 jthan@
  • ‘천재는 타고난다’ 천재는 조물주의 작품

    [‘천재는 타고난다’.근·현대 통틀어 세계 제일의 천재로 불리는 유럽출신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보통 사람들과는크게 다른 독특한 두뇌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영국 의학잡지 ‘랜싯’ 최신호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두뇌는 수학적 추론 및 공간사고 능력을 관장하는 정수리(頭頂葉) 하단부가 일반 사람들보다 15% 정도 크다.이같은 사실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맥마스터대학 연구진이 아인슈타인의 뇌와 보통 정도의 지능으로 사망한 91명(남 35·여 56)의 뇌를 비교 분석한 결과이다. 특히 아이슈타인은 대뇌의 앞부분에서 뒤로 길게 뻗어있는 가로 틈새가 상당부분 생략된 매우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이같은 가로 틈새 생략으로뉴런(신경세포)들 간의 연결과 합동작업이 보다 원활해져 생각하고 추론하는뇌 기능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이번 연구를 수행한 샌드라 위텔슨 박사는 이 틈새 생략을 아인슈타인 천재성의 열쇠로 짚고 있다. 위텔슨 박사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형태의 두뇌는 처음 보는 것이어서 해부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환경과 노력 등 후천적 여건이 두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천재는 타고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아인슈타인의 뇌의 무게와 크기는 일반 사람들과비슷한 것으로 밝혀져 뇌의 크기가 지능을 좌우한다는 가설은 더이상 설득력을 잃게 됐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지난 55년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대동맥 파열로 사망한 아인슈타인의뇌는 당시 사체를 검시했던 병리학자 토마스 하비가 보관해왔다. 그러던 중85년 이후 위텔슨 박사가 그의 두뇌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으나,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6)장수왕

    분단된 한반도를 중심으로 4강 외교가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다.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동아질서가 재편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분명한사실은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고 주변 4강은 분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동아시아의 중핵에서 능동적으로 주변국가를 요리한 나라가 있었다.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동서남북으로 전방위 공략을 펼치고,수군과 기마병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한 다음 경기만을 장악하였다.장수왕은 즉위한 후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그 비에서 ‘고구려는 세계의 중심’이며‘하늘과 해의 자손’이라는 성스러운 선언을 국내외에 하였다.그리고 그 의지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한 고구려는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했다.이러한 정책들은 국제질서 및 해양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평양은 대동강과 예성강을 아우르며 평안도와 황해도를 동시에 장악하는 전략적인 거점이다.부채꼴로 펼쳐진 하계망(河系網)을 통해 내륙을 통치하고,바다와 연결되어 해양진출과황해북부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그래서 고조선시대 이래 대외교섭과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장수왕은 북방에서 연(燕) 북위(北魏)등과 전쟁을 하면서 남진정책을 전개하였다.신라를 계속 압박하여 468년에는 실직주성(悉直州城:현재의 삼척지방)을 공격하였다.481년에는 청송지역과 포항밑 흥해(興海)까지 공격하였다.이는 동해중부는 물론 남부지역까지 해양활동의 범위를 확대했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수도를 압박하고,일본열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이곳을 출발하면 해류와 바람을 이용하여 일본열도의 시마네(島根)와 돗도리(鳥取)현 등지로 도착한다. 이 지역은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제기된다.장수왕은 475년에 백제의 한성을 공격해 점령하였다.백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고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다. 이렇게 고구려의 국경선은 아산만에서 충주지역을 거쳐 동해안의 영덕까지이르렀고,이 땅의 패자가 되었다.그리고 황해중부 이북과 동해중부 이북의해상권을 장악하였다. 5세기의 동아시아에는 역학관계가 매우 복잡했다.중국은 남북조시대,즉 분단국가가 되어 전쟁을 하는 등 적대관계에 있었다.북방에서는 ‘유연(柔然)’이라는 유목국가가 북위와 싸우고 있었다.한편 백제와 신라는 성장을 하면서 중국지역과 교섭하며 국제질서에 진입하고자 하였다.왜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모든 나라들을 유일하게 연결시키는 외교통로는 바다였다.육지만 장악해서는 동아시아의 강국이 될 수 없었다.장수왕은 이와같은 지정학적 현실을 인식하고,해양능력을 강화시켰다.20세기와는 정반대로 중국 남북조를 대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 등거리외교를 하였다.양자강 유역에 도읍한 송(宋)과는 해로를 이용한 해양비밀외교를 펼치며 당시의 기갑전력인 군마 800필과 화살,석궁 등을 배에 실어보내기도 했다.또한 북방의 유연과 남방의 송을 외해양(外海洋)으로 연결시키면서 북위를 협공하는 환상적인 포위망을 구축했다. 이러한 해양비밀외교는 양국의 사신선이 산동 해상에서 북위의 수군에게 나포되면서 외교분쟁을 야기시키기도 하였다.고구려는 황해중부의 해상권과 항로를 장악,백제와 신라가 북위와 교섭하는 것을 통제했다.이러한 질서에 도전하던 백제 개로왕은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이후 백제 신라,왜는 남조(南朝)정권만 교섭하는데 그마저도 자유롭지 못하였다.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해양을 장악한 동아지중해의 중핵국가로서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위치를차지하였다. 고대사회에서 정치적 교섭은 주로 교역을 동반한다.고구려는 해양을 경제활성화에 최대한으로 활용하였다.군마 등 갖가지 물품을 송나라에 수출하고,남방의 물자를 수입하였다.고구려는 중계무역도 하였다.예를 들면 흥안령지역에서 생산되는 말과 담비가죽 등을 수입하고,대신 요동의 철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북방의 특산물은 다시 고구려 배에 실려 남방으로 수출된다.뿐만 아니라 섭라(涉羅:제주도로 추정)의 특산물인 가(珂:흰 마노로 된 구슬)라는보물을 북위에 보내기도 하였다.일본서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279년부터 일본열도로 진출한 것으로 돼있다.특히 월(越:현재의 후쿠이현) 지역은 고구려와 호족들간의 교역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능력을 갖게한 고구려의 현실적인 해양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고구려의 항로는 황해와 동해로 다양했으며 어느 지역으로도 항해가 가능했다.황해북부 연근해항로,황해중부 횡단항로,황해사단(斜斷)항로,동해중부사단항로 등 다양했으며,특히 홋카이도(삿포로 근처)까지 이어주는 연해주 항로도 있었다. 선박은 사신선,전투선,민간교역선 등이 있었다.800필의 말을 싣고 황해를종단 항해,양자강 유역까지 들어가는 등 큰 배로 이루어진 대선단이 있었다. 배안에 2개의 돛대를 갖추고,기록으로 보아 50∼100명 내외의 인원을 태웠다.근해 항로를 많이 활용하였지만 동해를 건너거나 황해를 종단하기 위해서는 별과 해를 관측하는 천문항법을 하였을 것이다. 이같이 고구려 장수왕은 활발한 남진정책과 해양활동을 통해 정치,외교,군사,경제,문화적으로 고구려를 동아지중해의 중핵국가로 만들었다.이러한 해양력의 강화와 ‘동아지중해 중핵조정론’은 21세기를 앞 둔 우리에게 의미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수도권 지자체 하수슬러지 처리 곤란

    수도권 일선 지자체들이 하수나 정화조에서 걸러지는 거품 모양의 최종 유기물질인 슬러지(sludge) 처리방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는 2001년부터 슬러지의 수분 함유량(함수율)을 법정기준치인 70% 이하로 줄여야 김포 수도권매립지에 반입할 수 있지만 기준치 이하로 끌어내릴 수있는 마땅한 방안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전량을 시·군이 자체적으로 구입한 탈수기에 의존해 수분을 제거,함수율을 75∼80%로 낮춘 뒤 고체상태로 김포매립지에 반입해 왔다. 이 때문에 일선 지자체들은 자체 슬러지소각장을 건설하거나 수분함유량을낮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이지만 두가지 방법 모두가 현실적으로 힘든 실정이다. 성남시의 경우 지난 91년 대당 가격이 2억여원대인 탈수기 12대를 들여와하루 150여t의 슬러지 함수율을 80%로 유지해 오다가 96년 고압탈수기 2대를 추가로 구입,5년여만에 함수율을 겨우 5%정도 낮추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외 기술로는 슬러지를 70% 이하로 낮출만한 기술이 없는데다 추가로 소각로건설부지를 찾는데도 주민반대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시는 수정구 단대동 성남쓰레기소각장 가운데 가동이 중지된 하루 100t 처리규모의 소각로가 슬러지 소각로로 전환이 가능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있지만 전환에 따른 80억여원의 추가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성남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광주와 하남시 등 여타 시·군들은 두손을 든 상태다.하루 슬러지 발생량이 3여t인 하남시는 현재 함수율을 74%까지 내려 사정은 좋으나 더이상 함수율을 내리는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광주군도 현재 슬러지 함수율을 75%로 유지하고 있지만 함수율을 법정기준치 이하로 낮출 수 있는 새로운 탈수기계가 만들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현재의 기술로 불가능한 것을 시행하라는 것은 앞뒤가맞지 않는다”며 “일반 가연성 쓰레기소각장 부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지자체들이 슬러지 전용소각장을 건설하기가 쉽지않아 슬러지 처리 대란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印尼집권당 총선 패배 시인

    자카르타 AFP AP 특약 지난 한 세대동안 인도네시아의 집권당으로 군림해 왔던 골카르당은 12일 역사적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고 자신들이 패배했음을 시인했다. 골카르당의 공동 총재인 마르주키 다루스만은 “우리가 졌다”면서 투표후1주일이 지난 현재 40%대에 머물고 있는 개표 결과를 수용했다. 골카르당은 지난해 권좌에서 물러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친위 정당으로지난 30여년간 선거에서 항상 압승을 거둬 왔다. 그러나 지난 7일 48개 정당이 참여한 가운데 40여년만에 실시된 자유 총선에서 골카르당은 현재 두 야당인 인민투쟁당의 38%,국민각성당의 19%에 이어17%대의 득표율에 그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21일 정도가 돼야 개표가 끝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주)대동등 12개사 코스닥등록 취소

    한국증권업협회는 9일 코스닥위원회를 열어 주식 분산기준에 미달된 회사중 주식분산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대동 등 12개사에 대해 영업일수 기준 1개월(6.10∼7.21)의 정리매매기간을 둔 뒤 내달 22일 등록을 취소키로 했다. 등록취소 예정법인은 (주)대동을 포함,동마산업(주),(주)동화상호신용금고,삼협산업(주),유산실업(주),유진산업(주),(주)익산,(주)일신,(주)한국상호신용금고,한양철강공업(주),(주)한일제관,(주)화니백화점 등이다. 김균미기자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5)-광개토대왕의 水軍상륙작전

    ‘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伐殘國軍…取五十八城村七百…’ 광개토대왕이 즉위 6년 되던 병신년에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군을 토벌한 다음 58개 성과 700촌을 얻었다는 내용의 광개토대왕 비문의 기사이다. 삼국사기가 실수(?)로 빠뜨린 대왕의 수군작전을 동양에서 가장 큰 금석문이 새겨놓았다.이 비(碑)의 주인공은 우리 역사상 가장 넓게 영토를 확장했고 군사전략에 탁월했으며,세계국가적인 성격이 강했던 시대의 대왕,왕중의왕인 태왕,즉 광개토대왕이었다. 사람들은 광개토대왕을 군사전략에 능하고 영토확장에만 힘쓴 정복군주 정도로 간단히 이해하고 있다.그러나 4∼5세기의 동아시아와 고구려는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시대였고,그 힘의 중핵에서 자리잡고 있었다.4세기 후반 중국지역은 남북분단과 혼란의 시대였다. 고구려는 요동을 중심으로 북방종족들과 화전 양면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었다.특히 해양을 활용,군사외교를 펼쳤다.이때 백제는 근초고왕이 황해도지역으로 북진하였다.경기만을 장악하고 황해중부 해상권을 획득해 일본열도와한반도 중부이남,그리고 중국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교역망을 구축하고자하였다.그리고 백제 중심의 국제질서로 재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정면 충돌을 하였고,결과는 고구려의 좌절로 일단락 되었다. 이같은 시기에 광개토대왕이 등극하였다.18세에 즉위한 청년군주인 광개토대왕은 첫해부터 왕성한 정복활동을 펼쳤다.북방종족들과는 화전 양면책을구사하였다.그러나 숙군성,요동성을 공격하고,406년에는 3,000리를 행군해온 연(燕)을 물리치면서 요동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이는 요동반도와 서한만,대동강 하구를 잇는 황해동안의 해상로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비문에 의하면 대왕은 즉위초에 비려(碑麗)를 토벌하고,3개부락 6,700영(營)을 공파했으며,수많은 우마군양(牛馬群羊)을 획득했다고 한다.요동과 동몽고지역을 가로지르는 시라무렌강의 상류 초원지대까지 진출했다.410년에는동부여를 친정하여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일대도 영역으로 하였다.북부여의옛땅도 이때 영토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런데 비문에는 백제와 관계 등 주로 대왕의 남진정책에 비중을 둔 듯하다.그리고 해양활동이나 수군작전이 여러번 기록되고 있다.대왕은 즉위 2년에4만의 군사로 백제의 10현을 함락하고,10월에는 최전방기지이자 수군함대사령부가 있음직한 관미성(關彌城:강화도 북부)을 함락시켰다.그 후 6년(396)대규모 수군을 투입해 백제의 58성과 700촌을 탈취했다.기병과 수군을 활용한 선제공격 및 협공의 수륙양면작전이다.관미성 외에도 당시 비성(沸城:김포) 아단성(阿旦城:아차산) 미추성(彌鄒城:인천) 모로성(牟盧城:용인)등이점령된 것으로 보아 육군외에 수군은 3개방향으로 상륙했던 것 같다. 첫째는,대동강유역에서 출발,예성강하구와 한강이 만나는 강화북부에서 한강하류를 거슬러 오면서 김포반도와 수도를 직공하는 것이다.두번째는,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한성으로 진입하는 것이다.그리고 세번째는 남양만으로상륙하여 수원 용인 등을 거쳐 한성의 배후를 치는 것이다. 이런 전쟁양상은 경기만 쟁탈전및 서해안의 해상권 장악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경기만은 해상교통및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통합시키는 내륙수로교통의 요충지였으며,백제의 해양활동 근거지였다.광개토대왕은 한성을 공멸하면서 서해연안의 요충지들을 점령하여 백제의 수군활동을 마비시키고,황해중부연안의 해상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가 해양봉쇄를 통한 차단전략을 꾀하자 외교적으로 고립된 백제는 왜(倭)와 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비문에는 영락(永樂)10년 경자년(400년) 대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파견,백제 가야 왜의 군대를 물리치고 신라를구원했다고 한다. 이는 신라를 복속시키고, 해양을 고리로 부상하는 백제와가야, 왜의 외교질서를 신라를 이용하여 제어하려는 것이었다. 대왕은 이어 가야 영역까지 침범하였다.함안 말산리,고령 지산동,동래 복천동 고분군 등에서 고구려 계통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가야지역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출구이자 교섭 창구였다.고구려가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읽을수 있다.대왕 14년에는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황해도지역인 대방계를 침입했으나 대왕의 친정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궤멸시켰다. 이러한 상황과 동아지중해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고구려는 이미 일본열도에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다.대왕 18년(실성왕 7년),신라는 대마도를 정벌하려다 중지하였다.이같은 사실은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 영내에 주둔해 있을가능성으로 보아 공조체제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렇듯 광개토대왕은 전통적 육지질서를 기반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해양질서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아지중해 내부의 각 국을 연결함으로써 자국 중심의 거대한 망(중핵)을 구성하는 정책을 추진했다.황해 해상권를 확보함으로써 대륙의 남부와 한반도 북부,황해중부 이북의 해양에 걸쳐 있는 동아지중해의 중핵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1,600년 가까이 만주벌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글자 하나하나는 21세기를맞으면서 우왕좌왕하는 후손들에게 해양력의 강화와 국제질서 재편전략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여론 향배·장관 거취에 촉각‘고급옷’ 수사 이모저모

    법무부와 검찰 관계자들은 1일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과 관련한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의 거취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마무리 수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상당수 관계자들은 김 장관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가 로비에 말려들지 않았기 때문에 결백하다는 이유를 들어 김 장관의 유임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김 장관의 거취문제는 투명성에 바탕을 둔 수사결과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마녀사냥’식으로 처리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자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하지만 정국상황과 연관지어 김 장관의 자진 사퇴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견해도 적지않았다. 검찰 관계자들은 특히 강인덕(康仁德)전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裵貞淑)씨와 라포스사 사장 정일순(鄭日順)씨의 ‘공모’쪽으로 수사 초점이 맞춰지는 데 따른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 장관은 지난달 31일에는 하루종일 집무실에 칩거하며 점심도 간부들과함께 도시락으로 때웠으나 이날은 마음의 여유를 어느 정도 되찾은듯 간부들을 대동한 채 과천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했다.법무부의 한간부는 “김 장관이 오늘은 간부들을 대하면서 간간이 얼굴에 웃음도 띠었다”면서 “그동안 밀렸던 서류도 결재하고 간부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고 전했다. ■법무부 간부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김 장관의 거취문제와 관련,“수사결과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말 외에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데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 간부는 “김 대통령이 김 장관만 지목했다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한다’고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정상외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번 사태에 대해 원초적인 책임을 묻겠다는뜻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검찰과 법무부는 이날 새벽 김 장관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의 사진촬영을 저지하기 위해 ‘대역’을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악재’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해명하라”고 대검 간부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은 “이번 사건은 큰 줄기에서 사실 여부를 판단해야한다”면서 대역 논란은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곁가지’임을 강조했다. ■이날 새벽 배씨가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한 직후 배씨의 사위 금모씨는 “검찰이 장모님을 몰아붙여 사법처리하기로 시나리오를 미리 짜놓은 것같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금씨는 “장모님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혈연·지연으로 맺어져 있어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고언성을 높였다. 임병선 김재천기자 bsnim@
  • 국립박물관 소장 ‘朝鮮全圖’

    국립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전도(朝鮮全圖)가 김정호(金正浩)의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년)보다 100여년 앞선,가장 오래된 근대적 지도로 판명됐다. 국립 중앙박물관은 31일 조선전도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인 결과 조선후기실학자이자 지리학의 대가인 정상기(鄭尙驥·1678∼1752년)가 제작했다는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의 실체(1757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단천에 색칠(絹本彩色)을 한 이 지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작된 가로 139㎝ 세로 271㎝의 대축척 전도(大縮尺全圖)로,100리를 9.4㎝로 환산하는 등 (백리척·약 50만분의 1) 축척법을 사용했으며,종래의 지도가 압록강 및 두만강 유역을 수평으로 표시한 것과는 달리 북부지방의 실제 모습과 비슷한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도는 1740년(영조 16년) 정상기가 8도를 따로 그린 8도분도첩(八道分圖帖)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정상기 문중에서 보존해오다 1757년(영조 33년) 영조가 열람한 뒤 중요하게 여겨 홍문관(弘文館)과 비국(備邊司)에 전사(轉寫)해 비치토록 했었다. 임태순기자 stslim@[-]
  • [특별기고]‘민추협’15년의 불행

    1980년대 ‘암흑기’를 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해본 사람이면 ‘민추협’으로 더 잘알려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억할 것이다.한줄기 빛이자 희망이었고 우리들 자존심의 회복이었다. 민주주의가 질식상태에 빠져 있던 전두환정권의 폭정 아래서 ‘5·18 광주민중항쟁’ 4주년이 되는 날 출범했으니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일이다. 지금에 와서 불행이란 말을 붙여 15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건 아픈 부분을들춰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세력을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민추협을 결성한 목적은 민주세력이 대동단결해 ‘군정’을 종식시키자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민추협의 정치권내 세력은 이른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양대 인맥으로 이뤄졌으며 민주세력의 단결이란 곧 이 양대 인맥의 단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효해 1987년 6월투쟁이 일어났으며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그해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세력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그 결과 직선제로 노태우 군부정권이 성립됐다.민추협의 첫번째 불행이었다고하겠다. 1988년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고 이 때문에 노태우정권은 같은 군부정권이면서 ‘5공청산’이란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전두환 전대통령을 백담사로 귀양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민추협 세력 중 상도동계가 12·12 신군부세력인 전두환·노태우 중심 정당,5·16 구군부세력인 김종필 중심 정당과 합쳐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노태우 군부정권 아래서 여당이 됐으니 민추협의 두번째 불행이었다. 그후 민추협의 상도동계는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은 뒤 문민정부를 자칭했다.그러나 군부정권을 뒤엎거나 선거로 맞서서 이긴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타협에 의해서 성립된 문민정권이었다. 김영삼 문민정권 5년간의 정치적 업적 여부는 그만두고라도 민추협 세력이이제 상도동계의 여당과 동교동계의 야당으로 완전히 나누어지게 됐으니 세번째 불행이었다고 하겠다. 1997년 대통령선거 결과 상도동계의 문민정부에 이어 어렵사리 동교동계의‘국민의 정부’가 성립됐다.선거에 이겨서 성립되기는 했으나 단독으로 이기진 못하고 5·16구군부 핵심세력이 이끄는 충청도 세력과 연합함으로써성립할 수 있었다. 투쟁대상이었던 군사정권 세력과 상도동계같이 합당을 했건 동교동계처럼연합을 했건 민추협은 두번씩이나 정권을 성립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한 정치적 저력을 가진 단체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추협 동교동계 중심 국민의 정부가 성립한 지 1년이 되는 지금 5·16 구군부세력은 정권 핵심부에 건재한 채 다시 내각책임제를 하자며 국민의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정부는 5·16 군사쿠데타 정권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12·12 군사반란후 5·18 광주항쟁을 피로써 탄압해 정권을 잡았던 신군부세력은 국민의 정부가 묵인 내지는 원조한다는 풍문 속에서 정치 현역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민추협 발족 15주년을 기념하는 날 상도동계의 김영삼 전대통령은 민주세력의 재단결을 말하기는 고사하고 동교동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를 4·19전 이승만정권과 같은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했다.민추협의 네번째불행이라 하고도 남을 것이다. 민추협이 걸어온 길은 흔히 권력 획득만이 최고 목적이라는 ‘정치판’에서는 예사로운 일일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역사의 눈으로 보면 크게 비판받아야 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