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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義烈 독립투쟁](5)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자 일제는 이를 ‘암살’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자신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공격, 처단했다고설명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향반(鄕班)집안에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안 의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있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로 이사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두 학교의 교장이 된 안 의사는 애국교육과 신학문 교육을 통해 애국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안 의사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설치하여 자신이 지부장을 맡고 부인과제수의 패물까지 모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다. 1907년 7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의병부대를 조직,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등 연해주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300여명의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煙秋·노보키에프스크)에서 의병부대를편성한 안 의사는 당시 이 부대의 실질적 통솔자였다. 안중근부대는 모두 세차례의 전투를 치렀다.1908년 4월 초순 두만강 최하단인 함경북도 경흥군 일본군 수비대 진지를 공격한 안중근부대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는 귀환하였다.이어 1908년 7월 제2차전투에서는 함경북도 신아산(新阿山) 부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수 차례 기습공격,10여 명의 일본군 병사를 생포하였다.청년 휴머니스트였던 안 의사는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에 의거,무기만 빼앗고 석방하였는데 이것이화근이 돼 제3차 전투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기습해온 때문이었다.겨우 목숨을 건진 안의사는 부하·동지 몇 명과 연추로 돌아왔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포신문 ‘대동공보’의 연추지국장으로 일하고있던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분할 협의차 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도모하였다.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장실에서는 총무 유진율(兪鎭律),주필 정재관(鄭在寬),기자 윤일병(尹日炳)·이강(李剛)·정순만(鄭順萬),연추지국장 안중근,회계원 우덕순(禹德順) 등 7명이 모였다.이자리에서 안 의사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토를 처단하겠다”고 자원하였고 우덕순도 자원하고 나섰다.특공대는 2개조로 나뉘어 안중근·유동하(劉東夏)조는 하얼빈에서,우덕순·조도선(曺道先)조는 채가구(蔡家溝)에서 거사키로 하였다.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통과함으로써 결국 거사임무는 안중근조에게 넘어갔다. 거사당일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안 의사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취재차 나온 신문기자’라고 속이고는일본인 환영객 집단 구역까지 깊숙이 진입하였다.이날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 의사는 여섯발의 총탄을 날렸는데 그 중 세 발이이토에게 적중하였다.거사에 성공한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창하였다. 안 의사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거사는 ‘암살’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특공작전을 전개한 결과라고 누차 밝혔다.안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만주침략은 장기간 지연되었다.중국인들이 만주·중국 관내에서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임한 것은 바로 안 의사와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안중근 의사 직계후손 근황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장남 분도(芬道)는 6세때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분도보다 3살 위인 장녀 현생(賢生)씨는 백범 김구 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작고)씨와 결혼,은주(恩珠·71)·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 자매를 두었다.은주씨는 남편 이용문(李容文·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남편 작고후 귀국,경기도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후손이다. 항주(杭州) 호강대학을 졸업한 차남 준생(俊生·1951년 45세로 작고)씨는 부인 정옥녀(鄭玉女·91년 작고)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안 의사의 장손격인 준생씨의 장남 웅호(雄浩·67)씨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간호대학 출신인 장녀 선호(善浩·70)씨는 한국인 2세와 결혼,4남매를 두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차녀 연호(蓮浩·65)씨는 시애틀에거주하고 있다.정운현기자*白凡과 안중근家의 인연 19세의 청년 김창수(金昌洙·김구의 아명)는 1894년 양반사회를 타도하고자 황해도 동학농민전쟁의 해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참여한다.그런데 당시 황해도에서는 반농민군 세력으로 의병이 조직되는데,그 대표적 인물이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박영효(朴泳孝)가 모집한 해외파견 유학생 70명에 선발되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출세의 길을 버리고,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淸溪洞)으로 들어갔다.1894년 황해도 동학군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안태훈은 안중근 등 그의 아들과처자들까지 편입시킨 의병을 일으켰다.그 위력과 명성이 자자하여 황해도 동학군은 안태훈 부대를 두려워하였고,김창수 부대 역시 청계동을 특별히 경계하였다. 그런 안태훈이 청년 김창수에게 밀사를 보냈다.그 결과 두 진영 사이에는서로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까지 성립되었다.즉 안태훈은 비록 동학군을 토벌하는 입장이었지만 인재를 아끼고 있었고 개화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청일전쟁 전후의민족적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 부대는 점차 토호화하고 있던 같은 동학접주 이동엽(李東燁)부대에의해 해체되었다.얼마간의 잠적 이후 이듬해 김창수가 찾아 간 곳은 청계동의 적장 안태훈 집이었다.청계동에서 ‘적장(敵將)과의 동거’는 청년 김창수에게 중요한 인연과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안태훈의 각별한 후원으로 김창수는 부모님과 더불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안태훈가(家)의 식객인 고능선(高能善)은 동학의 꿈이 깨진 청년 김창수에게 새로운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또다른 식객 김형진(金亨鎭)은 같이 의기투합해 청국원정을 떠나사선을 넘나드는 동지가 되었다. 김창수는 청계동에서 스승과 동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안태훈가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안중근의 아우 공근(恭根),조카 우생(偶生)은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측근이 되었으며,질녀 미생(美生)은 백범의 맏며느리가 되었다.또한 안태훈과의 화해,고능선의 교도로 백범은 양반이냐,상놈이냐 하는 계급의식 이상의 차원,즉 조국·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都珍淳 창원대 사학과 교수*安의사 5촌조카 民生씨 편지 발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꼽힌다.그러면 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은 해방후 어떻게 살았을까.지난 8월말 학술행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본사 김삼웅(金三雄)주필이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입수한 두 통의 편지에 따르면,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해방된 조국에서 대접은 커녕 분단과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많은 일생’을 마친 것으로드러났다. 김 주필이 중국서 입수한 편지는 지난 88년 한국에 거주하던 안 의사의 5촌조카인 민생(民生·생사불명)씨가 중국 연길(延吉)에 있던 사촌여동생 경옥(京玉)씨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경옥씨는 70세였다. 88년 1월 27일자 첫 편지에서 민생씨는 “지난 (87년)11월 15일 독립기념관장 춘생(椿生)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며 연락이 닿은 경위를 밝혔다.두 사람은 안 의사의 삼촌인 태건(泰健)씨의 손자녀들로 46년 7월 민생씨가 귀국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었다. 민생씨는 편지 서두에서 “해방후 형제·자매들이 귀국하였으나 모두 전재민(戰災民)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며 해방후 집안 인척들의 이산을 안타까워 했다. 특히 민생씨는 “1961년 5월(‘5·16’을 지칭함) 조국의 평화통일 이념을주장했다는 이유로 나는 반국가범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근(敬根) 당숙도 7년형을 선고받아 일제때 명근(明根) 당숙이 옥고를 치르시던 서대문형무소 특감(特監)8사(舍)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며 “해방,독립된 내조국에 돌아와서 또 감옥살이를 치러야 함으로써 우리 안씨 가문은 이역과조국에서 선후대(代)에 걸쳐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고 통탄해 했다. 안 의사 집안 가운데 안 의사의 사촌동생 경근과 5촌 조카인 민생씨는 해방후 유달리 험난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장면(張勉) 정권 하에서는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준비위원회(민자통)에 참여하기도 했었다.5·16후 군사정권의 혁신세력 탄압 때 두 사람은 반국가범죄 혐의로 투옥됐으며 경근은 출옥 직후 작고했다. 민생씨의 경우는 ‘최악’이었다.1933년 만주에서 만주군에 붙잡혀 혹독한고문을 당한 후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양쪽 발끝을 작두로 절단당한 민생씨는 그 몸으로 감옥살이를 한 데다 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년에는 지팡이와 의족에 의존해야 했다. 편지를 쓸 때 이미 70고개를 넘긴 민생씨는 “헤어진 동료들과 형제들이 그리울 때면 저 머-ㄴ 북녁(만주땅을 지칭한 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가슴 쥐고 나무밑헤 쓸어진다 혁명군/가슴속에 솟는 피는 푸른 풀에 절벅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적은 뒤 “가마귀도 우름을 멈추고 바람만 스치고지나갈 무덤없는 그들의 핏자죽 위에 한 송이 들꽃이라도 받쳐들고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며 눈물지었다.현재 민생씨는 생사가불명이다.광복회·국가보훈처·안중근의사기념관은 물론 사촌형인 안춘생씨마저 민생씨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5월 28일자 두번째 편지에서 민생씨는 “과거 우리들은 안중근의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왜놈들에게 죽어야 했고,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해방후에는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들의 피해는 여전했다”며 역대 권력자 가운데 친일경력자들의 면면을 거론하였다. 정병학(鄭秉學·79)안중근기념관장은 “안 의사 집안의 인사 가운데 민생씨처럼 해방후 불우한 삶을 보낸 인사가 적지않다”며 “이는 해방후 친일·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정운현기자* 안중근家의 독립운동가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 의사를 포함,모두 9명이 독립유공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몇 명이 포상 심사중이다.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안 의사는 독립유공훈장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으며,안 의사의 두 친동생 정근(定根)·공근(恭根)은 각각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또 사촌동생 가운데 명근(明根)은 ‘105인사건’으로,경근(敬根)은 임시정부 활동으로 각각 독립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조카뻘인 ‘생(生)’자 항렬에서도 여러 명이 훈장을 받았다.대표적으로는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 출신으로 해방후 육사교장·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춘생(椿生·87·독립장)을 비롯해 춘생과 친형제로신민부에서 활동한 봉생(鳳生·애국장),그리고 안 의사의 첫째 동생인 정근의 장남으로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원생(原生·애족장)과 둘째 동생공근의 차남낙생(樂生·애족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납북이나 공적서류 미비 등으로 서훈이 보류된 인사도 여럿 있다. 우선 공근의 장남 우생(偶生)은 중경 임시정부 시절 임정 편집부 과원으로활동했으며 해방후에는 백범의 대외담당비서로 활동했으나 그 후 납북돼 포상이 보류돼있다.또 안 의사의 사촌 봉근(奉根)의 자제인 민생(民生)과 그의형 호생(鎬生)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후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나 서류미비 등으로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 인간존재 의미 되묻는 日 희곡 ‘친구들’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아베 고보의 ‘친구들(友達)’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지난 93년 예순아홉의 나이로 타계한 아베 고보는 생전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될만큼 탁월한 소설가이자,연극집단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거점으로 독자적인 연극활동을 편 극작가로도 이름높다. 이번 무대는 국립극단이 올 한해 의욕적으로 기획한 ‘한·중·일 동양3국연극 재조명시리즈’의 하나로,‘아Q정전’(중국)‘무의도기행’(한국)에 이은 마지막 작품.일본 신극협의회,베세토 일본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친구들’은 67년 발표이후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브로드웨이,유럽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광받는 일본의 대표 희곡이다. 국내에서는 70년대초 영역본을 중역해 간이극장에서 잠깐 공연된 적이 있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겨 정식 무대에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국립극단이 일본 작품을 공연하는 것도 처음이어서 의미가 더욱 새롭다. ‘친구들’은 실제 일어나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얘기를 통해 인간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블랙코미디.어느날 밤 결혼을 앞둔 독신 샐러리맨 아파트에 아홉명의 낯선 일가족이 들이닥치면서 극이 시작된다.이들은 공동체의식과 휴머니즘이란 ‘선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침입’을 정당화하는가 하면,‘친구’라는 미명하에 집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한다. 폭력을 쓰지않는대신 ‘미소’와 ‘딴소리’로 일관하는 이들에게 경찰도 별 도리가 없다. 다수의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주의 혹은 공동체의식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우스꽝스런 현실에 대한 신랄한 조롱인 셈이다.연출을 맡은 임영웅씨는“웃으면서 보지만,보고나면 소름끼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극중 공동체의식은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임씨는 “공동체의식은 군국주의,제국주의의 광기와도 연결된다”며 “일본 우익이 한반도 침략을 ‘내선일체’‘대동아공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립극단 단원으로 지난해 TV드라마 ‘홍길동’에 캐스팅된 이후 ‘흐린날에쓴 편지’‘토마토’등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탤런트 김석훈이 주연을 맡았다.“대사가 많은데다 주로 고성을 질러야 돼 체력소모가 많다”는 그는갑자기 스타가 된 이후 점점 본래 모습을 잃고 있는 듯한 요즘의 자신과 극중 주인공간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예진흥원장인 차범석씨가 원작에 충실한 번역을 했으며,‘명성황후’에서진가를 발휘한 박동우(무대미술)최보경(무대의상)이 스태프로 참여한다.15∼24일 국립극장 소극장.(02)2274-1151∼8. 이순녀기자 coral@
  • [대한시론] 경제학을 다시 써야 하는가

    빌게이츠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정보통신기술이 ‘생각의 속도’(speed ofthought)를 초월하여 발전하고 있다고 하였다.인간의 생각의 속도는 흔히 일컬어지는 광속의 속도보다 더욱 빠르다.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하는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은 종래의 속도의 개념을 완전히 파괴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디지털 경제에서는 과거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불과 4∼5년전에 무일푼으로 시작한 인터넷기업의 주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아메리칸 항공사보다 인터넷에서 그 항공사의 티켓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회사인 프라이스 라인(Price Line)의 시가총액이 열배 이상 높다. 대동강 물을 팔아 먹은 봉이 김선달이 가상공간에서 개념조차 잘 잡히지 않는 듯한 상품을 파는 기업의 주가가 엄청나게 비싸게 형성되는 현상을 보면무슨 생각을 할까? 경제적인 부가가치 창출 및 경제성장 과정에서 지식과 정보의 역할이 점증하는 지식기반 경제에서의 경제법칙은 기존의 그것과 판이하여,“경제학을다시 써야 한다”,“기존 경제 예측모델 무용지물 된다”등과 같은 주장이제기되고 있다. 지식이 생산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었고,지식없는 노동이나 자본 등의 생산요소는 생각할 수없기 때문에,지식에 기반을 둔 경제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다만 부의 창출과정에서 지식과 정보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졌으며,다양한경제활동에서 이용되는 지식의 범위가 확대되었고,특히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 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전세계적으로 개방된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 범위를 확장시키고 그들의 권한을 강화하며,가치창출 체계상의 모든 구성원간의 상호작용과 정보의 교류를 용이하게 하여 지식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제이론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계기는 수년째 안정 속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경제의 예상밖의 성과 때문이다.높은 성장률을추구하면 물가가 흔들리고,물가를 잡다보면 실업이 늘어날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필립스 커브 이론에서는 미국경제가 현재 누리고 있는 ‘고성장 저물가’를 설명할 수가 없다. 정말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현상에 대한설명이 불가능한 것인가? 전통 경제학자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미국경제가 누리는 고성장 저물가 현상이 필립스 커브에 기초한 전통이론의 예측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지식정보 경제의 특징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경제호황에 따른 노동시장의 초과수요와 그 결과에 의한 임금인상이 지식정보 투입에 의한 생산성 향상으로 보완되어 물가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낮은 인플레 하에서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경제원리와 지식기반 경제를 지배하는 경제원리의 차이는 “새로운경제학이 필요하다”라거나 “경제학의 기본원리는 변하지 않는다”등의 차원에서 논의될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상이한 경제법칙이 작용하는 두 종류의 경제영역이 존재하고,두 종류의 경제영역이 지식과 정보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점에 주목해야 할 문제이다.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우리 앞에 전개되는 새로운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위한 정책대안을 준비하는 일이다. 지식기반 경제를 앞서 가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디지털 경제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하여 새로운 환경을 준비하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였으며,지난 5월말에는 상무성 주관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인터넷과 전자상거래가 미국과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고,전자상거래세계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그들의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답을 찾아야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지식정보의 생산성 향상효과,전자상거래의 규모 측정,지식정보산업 육성을위한 지적재산권 보호,전자상거래의 과세,네트워크 외부효과와 표준화와 같은 과제에 대해서 활발히 논의하여 이를 정부 정책에 체계적으로 반영하어야할 때이다. [金孝錫 정보통신정책 연구원장]
  • 경부고속도 회덕-비룡 6차선 확장개통

    건설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회덕(대전 대덕구 신대동)∼비룡(대전 동구 비룡동) 14.7㎞ 구간을 6차로로 늘려 6일 낮 12시에 개통한다. 이와 동시에 대전 남부순환고속도로 비룡∼판암(대전시 동구 판암동) 3.3㎞구간(4차로)도 새로 개통한다. 회덕∼비룡 구간은 지난 95년 12월 확장 공사에 착공,총 사업비 2,464억원을 들였으며 비룡∼판암 구간과 동시에 연결되면 회덕분기점 주변의 교통체증이 크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대전시 남부지역 주민들은 판암 인터체인지를 이용할 경우 고속도로 진입시간을 30분 정도 절약하게 된다.한편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과 호남고속도로 서대전분기점을 연결하는 총연장 20.8㎞의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4차로)는 내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박건승기자 ksp@
  • [데스크칼럼] 누가 거짓말을 시키는가

    국회 ‘옷 로비 의혹’청문회는 TV를 지켜본 시청자들에게 ‘거짓말 경연장’이라는 씁쓸함만 남기고 막을 내렸다.많은 사람들에게,불리하면 ‘잡아떼고 볼 일’이라는 자조만을 남겼다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도대체 누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일까. 이형자,배정숙,연정희,그리고 정일순씨 등 핵심 증인들은 쟁점 사안마다 진술을 달리했다.개개인의 증언때는 모두 그럴듯해 보였다.증인들이 다소곳하게 차례로 나서 책상을 치고 눈물을 보이고 때로는 간절한 호소의 눈빛을 보일땐 한점 숨김없이 가슴을 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잠시 후 다른 증인이 나서 앞 사람의 증언을 뒤집는 것을 보는 순간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없었다.일부 증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강조했다.“건강이 도저히허락하지 않지만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만큼 죽을 힘을 다해 증언하겠다”고 다짐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범부의 시각에서 보면 이들의 행태에 대해 갖가지 의문 부호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핵심 증인들은 왜 변호사를 대동했을까.변호사와의논해서답변한다는 것은 진실과 관계없이 유리하게만 증언하겠다는 뜻이 아닌가.어떻게든 법망은 피하고 보겠다는 심산은 아니었을까. 증언의 쟁점은 대충 이런게 아니었나 싶다.김태정 전검찰총장의 부인인 연정희씨가 호피코트를 언제 입어보고 돌려줬나,연씨가 신동아그룹 최순영씨에 대한 수사 내용을 흘렸는지 여부,배정숙씨가 이형자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했는지,그리고 이형자씨는 남편 구명을 위해 로비를 했는지 등.증언은 물론 크게 엇갈렸다.연씨와 정씨의 진술은 대체로 비슷했는가 하면 동생들의진술을 등에 업은 이형자씨는 이들과는 천양지차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이들의 상반된 증언중 어느 쪽이 옳다 해도 결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연씨가 옷을 받고 돌려준 날만 해도 그렇다.옷을 받은 날이 이씨등의 주장대로 지난해 12월 19일이고 그것을 반환한날이 1월 5일 이후라 하더라도(본인 주장은 12월 26일∼1월 5일) 결국 그것을 반환했다지 않는가.물론 보유한 기간이 길면 뇌물을 받을 의사가 있었던것으로 간주된다는게 야당의 주장이지만 옷 값을 대납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수사기밀 누설도 그렇다.언니 동생 하는 사이에 그런 정도 얘기를 주고받았대서 탓할 사람은 없을성 싶다. 배정숙씨가 중간에 서서 도움을 주려 했다고 해도 그렇고,더구나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려 한 흔적이 있더라도 법률적으로큰 흠이 없다면 인지상정으로 치부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외화도피 혐의를 받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이 무혐의로 풀려났다면문제가 달라진다. 아니면 이형자씨가 ‘남편이 구속됐으니 대납해 준 옷값을 돌려달라’며 고발했다면 첨예한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이형자씨가 ‘옷 값 대납’을 거절했다는 데서 출발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나라가 시끄러웠고 지금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관부인들과 고급 옷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가 언론의 선정주의와 야당의 정략이 결합해 몇 사람의 여성을 마녀로 몰았다.그리고 ‘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체가 없는 사건을 도마에 올려놓은 이번청문회는 말들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여기서 사소한 오류라도 잡히면 ‘마녀’로 몰리기 쉬운분위기였다.바로 이런 분위기가 증인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한 셈이다. 이번 청문회가 여야 국회의원이 아닌 전문 카운슬러에 의해 진행됐다면 그결과가 어땠을까.보다 진실된 답변과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확실히 모르지만 상대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또 “동생은 총장부인이고 교우는 어려운 처지에 있어 중간에서 도와주고 싶었다”라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을 구하고 회사를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백방으로 로비 했는데 실패했다” 이런 진솔한 대답이 나왔을 법도 하다. 金在晟 편집부국
  • 강준만교수 이번엔 이규태씨에 쓴소리

    조선일보 소속 언론인들을 집요하게 비판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그동안비판대에 올리지 않던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고문을 겨냥해 처음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18일 발행된 ‘열린전북’(발행인 송기도·전북대 교수) 창간호의 ‘전북인물탐구’에서 강 교수는 “그간 조선일보 주요 논객들을 해부하는 글을 써왔지만 이 고문은 정치적인 글을 거의 쓰지 않아 내 비판 그물망에서 저만큼비켜나 있었다”며 “그의 전공이라 할 ‘한국학’은 나의 역량 밖에 있는것이어서 그저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강 교수는 이어 “이 고문의 자료수집과 관리는 거의 광기 수준의 정열로이루어졌다”며 “학계는 이 고문의 그런 눈물겨운 노력을 먼저 인정하면서그에게 무릎을 꿇는 게 옳다”고 이 고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뒤이은 글에서 강 교수는 본연의 ‘비판의 칼날’을 드러냈다.이 고문이 매주 금요일자 조선일보에 연재중인 ‘이규태 역사 에세이-100년의 뒤안길에서…’의 기사 가운데 이미 25년전에 쓴 기사와 대동소이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침묵으로 대응하자 강 교수는 “앞으로도 계속그런 문제 제기에 침묵으로 대응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학계의 푸대접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또 이 고문의 여성차별 의식을 드러낸 글에 대해서는 직격탄 대신 부산대 역사교육과 정용숙 교수의 글을 인용,‘일간지의명칼럼에서 조차 여성을 물화(物化)한 상식 밖의 글’이라고 꼬집었다. 후반부 글은 이 고문에게는 ‘아픈’ 대목이다.지난 97년 조선일보 창간 77주년 특집때 이 고문이 자사 후배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불의-부정에 대한비판정신은 영원한 기자의 덕목”이라고 한 것을 두고 강 교수는 “이 말은이 고문이 감히 감당하거나 책임질 수 있는 몫은 아니다”며 오히려 “‘한가지 일에 미치는 탐구정신은 영원한 기자의 덕목’이라고 얘기하는 걸로 만족했어야 했다”고 비꼬았다.끝으로 강 교수는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들에비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 신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기 분수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고문까지 그래서야 쓰겠는가”고 점잖은(?) 한 마디를 던졌다. 정운현기자 jwh59@
  • ‘F3대회’11월 한국서 첫 팡파르

    속도의 미학을 뽐내며 질주하는 자동차 경주.바람을 가르는 스피드와 넘치는 힘은 아슬아슬함 속의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우리는 세계적인 카레이서들이 연출하는 모험적 즐거움의 ‘스피드 축제’를 그동안 영화나 TV에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도 마침내 최고 수준의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를 현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축제인 ‘국제포뮬러3(F3) 코리아 그랑프리’가 오는11월 26일∼28일 경남 창원시 두대동의 일반도로를 활용하여 만들고 있는 경주장(3km)에서 열린다.경상남도와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는 18일 기자회견에서 포뮬러3 월드 챔피언을 결정하는 F3 코리아 그랑프리 개최를 공식 발표했다. 포뮬러3 월드 챔피언은 그동안 마카오 대회에서 결정돼 왔다.그런데 코리아 그랑프리가 새롭게 등장함에 따라 세계 챔피언은 두 대회의 성적을 합산하여 한국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코리아 그랑프리는 마카오 그랑프리일주일 후에 열리며 2003년까지 5년동안 매년 개최된다. 올해 F3 마지막 이벤트인 이번 대회에는 17개 외국에서 30여명의 정상급 드라이버가 다이나믹한 스피드 경쟁을 벌인다.우리나라 대표팀의 참가는 현재협의중이다. 배리 블랜드 국제F3조직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모터스포츠잠재성을 인식하고 아시아지역 활성화를 위한 교두보로 한국개최를 결정했다.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의 모터스포츠가 국제무대로 도약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F3 코리아 그랑프리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대회는 140여개국에 생방송이나 녹화로 중계되어 10억명 이상의 세계인들이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장을 단순한 일과성 행사장이 아니라 국제적인모터스포츠 관광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다이나믹한 코스를 만들고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조직위원회는 또 코리아 그랑프리를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F3 경주차 퍼레이드,공연,콘서트,선수와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프로그램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여행사도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마카오의 경우 3일간의 경기기간중 1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수준 높은 세계적 대회가 열릴 경우 높은 관심을 나타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그러나 우리나라 모터스포츠계의 실상은 세계7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현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많은 관계자들은 F3 코리아 그랑프리가 모터스포츠 문화를 한 차원 높이고새로운 관광자원을 창출하는 모터스포츠 축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창순기자 cslee@
  • 홍명희·김일성 뱃놀이 사진 공개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발자취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다큐가전국의 시청자를 찾아간다. 지난해 10월 청주MBC(남윤성 PD 제작)가 자체제작,방영한 특선 다큐 ‘벽초홍명희’가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24일 오전11시 방영된다.이 다큐는 벽초출생 110주년과 타계 30주년을 맞아 제작됐다. 이 다큐에는 특히 벽초가 김일성과 함께 대동강 주변 호수에서 뱃놀이하던사진과 서울 종로구 익선동 자택의 모습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뱃놀이 사진은 벽초 연구가로 이름 높은 강영주교수(상명대 국어교육과)가 보관하던것으로 강교수는 창작과비평사에서 10월말 홍명희 평전을 낼 예정이다. 1888년 충북 괴산읍 동부리에서 태어난 벽초는 1929년 일제하 항일단체인 신간회를 조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45년 매일신보가 서울신문사로 사명을 바꿀 때 벽초는 초대 고문에 취임한 바 있다.당시 두 아들도 편집국장과문화부장으로 근무,3부자가 대한매일 가족이다. 그러나 그는 48년 월북,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한 뒤 내각 부수상을 2번이나지내면서 남한에서는배척받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 다큐는 벽초가 남북지도자 연석회의에서 연설하던 모습과 황장엽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증언도 담아 눈길을 끈다. 소설 ‘임꺽정’은 다양한 삽화를 처리하는 서사적 기법과 풍부한 토속어를맘껏 구사,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해냈다는 문학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지난해 세운 문학비의 뒷면이 잘려나가는 수모를 당한 데서 알 수 있듯이,삶 자체에는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린다. 임병선기자 bsnim@
  • 제주도·판교·서해안고속도 주변 유망

    한동안 활황세를 보이던 부동산경기가 최근 분양시장의 열기가 식으면서 침체국면을 맞고 있다.여기에다 대우 쇼크로 급등락을 거듭하던 주식시장이 최근 수익증권 환매사태로 비틀거리고 있다.한동안 유행하던 ‘고위험(High Risk) 고수익(High Return)’방식의 투자기법도 열기가 가시고 있다.이러한 때 여유자금이 있다면 부동산으로 눈을 돌려 볼만하다.올 하반기에 투자,2000년대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동산 투자 유망지역을 김양석(金暘錫) 중앙부동산연구소(02-538-8284) 소장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2000년대의 부동산은 과거처럼 일제히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개발개념과 접목돼 국지별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따라서 이 시점에서 가장 투자전망이 밝은 지역은 제주도,판교일대,서해안고속도로 주변이 손꼽힌다. 제주도는 최근 정부가 ‘제2의 홍콩’을 목표로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뒤 꾸준히 땅값이 오르고 있다.김 소장은 “제주도에서 투자의 승부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주말이면 줄을 잇는다”며 “지금이라도 한뼘의제주도의 땅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밝은 미래를 사들이는 셈”이라며 제주도 투자를 적극 권하고 있다. 서울 근교의 황금 투자지역은 이제 판교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판교는 입지로 봐 수도권 최후의 전원도시,첨단도시로서 투자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비록 최근 건교부가 판교 택지개발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지만 성남시가 판교를 첨단전원도시로 만들 계획을 확정짓고 추진 중에 있기 때문에‘제2의 강남’‘제2의 분당’이 될 가능성은 아직도 많다.장년층을 중심으로 서울 근교의 마지막 투자처로 인식되면서 땅값이 오르고 있다.그렇지만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우리 국토개발의 신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동안국토 동쪽으로 치중돼 왔던 개발이 처음으로 서쪽으로 이동해 삽질이 한창인 것이다.서해안고속도로는 인천에서 목포까지 장장 400km를 4시간에 주파하는 ‘서해안시대’의 대동맥이다.그래서 부동산전문가들은 2000년대는 서해안시대라고 말한다.서해안고속도로가놓이는 아산·당진·군산·장항·목포주변은 이제 해가 떠오르는 동쪽의 눈부신 해돋이에 투자하던 발길을 석양의 장엄한 노을에 투자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주변은 대부분 미개발지역이어서 자연 그대로보존돼 있다.값싼 땅을 널찍하게 사들여 갯벌에서 꼬막줍는 광경이 가득한바다가 보이는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고 위락시설을 세울 수도 있다.김 소장은 “서해의 낮은 파도소리는 아직 분양가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서해안고속도로변의 서해안 일대를 과감히 추천한다. 충남 아산만,한보철강이 자리한 당진일대는 벌써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이종열(李鍾烈)회장은 “당진일대는 영종도가 뱃길로 1시간 정도 거리밖에 안돼 만약 인천국제공항이 2001년 개항하면 신공항과 연계한 주요 관광,교통거점도 될 수 있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김포 사우지구,일산 인근,인천국제공항 배후지구 등을 손꼽을 수 있지만 가장 좋은 투자처를 고르라면 이들 3개 지역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소장은 투자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에 대해 주저없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전염병처럼 투자 열기가 퍼졌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밝힌김 소장은 “부동산 투자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판단과 남보다 한발앞서 투자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박성태기자 sungt@
  • 洪외교 22일 일본 왜 가나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장관의 지론은 ‘실사구시(實事求是)외교’다.불필요한 격식은 줄이되 효율성은 최대한 높이자는 취지다. 홍장관은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기간동안 자신의외교노선을 본격 선보일 예정이다.방일 기간 중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후속 조치 추진현황을 점검하고 대북 미사일 공조체제를 강화할 생각이다.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외상과의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저지대책 및 미사일 발사시 대응책을 집중협의할 예정이다. 이어 ▲한·일 투자협정 체결 ▲무역불균형 시정문제 등 경제현안과 10월제주도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한·일 각료간담회 준비문제를 논의한다. 특히 홍장관은 이번 일본 방문에서 몇가지 ‘파격’을 선보일 예정이다.외교부의 관계자는 “외교장관의 공식 해외방문 사상 처음으로 비서진을 대동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수행인원들도 조중표(趙重杓)아태국장 등 3명뿐이다.과거 장관 해외 나들이에 수행했던 5∼6명선과 비교하면 절반에불과하다.불필요한 ‘예산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홍장관의 지론 때문이다.여기엔 ‘국민의 세금을 아껴써야한다’는 홍장관의 숨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방일 기간 중에 이뤄질 ‘일본 외무성 간부진 초청 오찬’도 처음으로 시도하는 행사다.가와시마 유타카(川島裕)사무차관을 비롯,차관보와 국장급 등핵심 간부 10여명이 참석한다. 정책결정이 실무진에서 대부분이 이뤄지는 일본 특유의 ‘관료문화’에 착안한 것이다.식사를 곁들여 자유토론을 하면서 서로의 이해 폭을 넓히자는 취지다. 오일만기자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3)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598년 2월 영양왕이 이끄는 1만명의 고구려와 말갈 혼성부대가 요서지방의중심지였던 영주(營州)를 공격한다.이어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이끄는 30만 대군이 고구려를 수륙양면으로 침공한다.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나라를 바꾸어가며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다가 거의 80년만인 676년에 이르러 대단원의막을 내린다.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이 전쟁에는 모든 종족과 국가들이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국제대전이었다.전쟁의 목적도 영토확장이나 단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이 지역 양대질서의 대결이었고,문명의 충돌장이었다.특히 숱한 해양전이 벌어졌으며,해양질서가 본격적으로 작용한 동아지중해의 국제대전이었다. 3단계로 이루어진 이 국제대전의 서막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었다.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이후 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 중부이북,동해와 황해의 중부해상권을 장악하였다.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분단된 중국을 대상으로 실리추구를 하는 세련된 등거리외교를 추진하였고,백제 신라 가야 왜 말갈 등 주변의 국가들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등 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충실히 수행하였다. 또 경제적으로 요동을 중심으로 만주의 동부지역과 흥안령 산맥 등 북부지역,요서지역 등을 이어주면서 북방교역망을 형성하였고,해양을 통해서 일본열도,양자강유역의 남조정권과 교역을 하는 등 해상교역망을 운영하였으며북방과 남방을 이어주는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계무역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수나라가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면서 세계질서는 뿌리채 변화하기 시작했다.수나라는 운하를 파고,남방교역을 활발하게 추진해 국가의 경제를 튼튼히 하고,정치적으로도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권을 회복하고,동남아,동중국해,황해,대한해협을 이어주는 등 교역의 물류체계를 장악하여 강국이 되고자 하였다. 두 강대국간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고,서서히 전쟁의 기운이 싹터가기 시작했다.전쟁을 일으키려는 당사자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수나라였다.강력한 국력을 지닌 고구려는 사절을 파견하는 등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를 하였다. 598년 2월 영양왕은 친히 고구려와 말갈 혼성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넘어 공격을 개시하였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문제는 598년 6월 30만의 수륙군을 발진시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수나라의 육군은 요하를 돌파하지 못한채퇴각하였다.주라후(周羅侯)가 이끄는 6,000명의 수군은 육군과 합동작전을목표로 산동반도 동래(東萊:현재의 래주)를 출발,요동반도를 우회하여 평양성으로 향하였다.그러나 중간에 풍랑을 만나 대부분의 전선들이 침몰하였다고 한다.그러나 그보다 주라후의 수군은 요동반도일대에 구축된 고구려의 해양방어체제에 걸려 풍비박산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수양제(煬帝)는 대 고구려전을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먼저 남방의 임읍(林邑:현재의 베트남 동남부) 유구(琉球:대만)등을 정벌하고,돌궐을분할시켰으며,고창국 등 서역국가들을 지배하에 넣었다.그러는 한편 고구려에 적대적이던 백제와 신라를 끌어들이고 왜와도 외교관계를 맺는 등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국내에서는 대운하를 완성해 남북을 연결시킴으로써 군수물자와 노동력의 징발을 용이하게 했고,해양전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조선공사를 벌였다. 612년 드디어 수양제가 이끄는 세계전 사상 유례없는 113만3,800명의 대군이 북경 근처의 탁군( 郡)을 출발했다.그런데 당시 수양제는 해양전에 많은비중을 할애하였다.원정군을 좌우 총 24군 편제로 구성하였는데,그 가운데 11개 군이 수로군 편제이다.수군의 작전범위를 보면 압록강하구,대동강 하구는 물론,심지어는 한강하구인 황해중부 전체를 작전범위 속에 넣고 있다.이로서 수군은 이제 군량미의 보급뿐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장거리 이동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배후를 치는 독립작전까지도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양제는 적함(赤艦) 루선(樓船)등 수만척의 배들을 건조하였다. 특히 주력전선인 오아(五牙)는 루(樓:다락)가 5층이고,군사 800명을 태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래호아(來護兒)가 이끄는 이러한 군선들의 규모는 길이가수백리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얼마나 해양전을 중시하였는가를 알수 있다. 수의 친정군은 요하전선의핵심 거점인 요동성(현재의 요양시)을 공격하였다.엄청난 군대와 신무기 등을 동원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으나 수양제는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채 퇴각하였다.한편 우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30만명의 별동대는 을지문덕의 고구려군에게 살수(薩水:압록강설과 청천강 설이 있다.)에서 대패,전멸했다.래호아가 이끄는 수군은 황해를 건너는데 성공하고,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갔다.대담하게 수군을 이용해 후방 깊숙이에 있는 평양성으로 직공작전을 감행한 것이다.하지만 평양성 60리밖에서 고구려군에게 궤멸당하였다.결국 고구려와 수나라간에 벌어진 격돌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다음해인 613년과 614년에도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해왔으나 별 소득이 없었고,618년에는 당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동아지중해의 종주권과 교역권을둘러싸고 벌어진 수나라와 고구려의 1차전쟁에서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었으며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만약 고구려가 이 전쟁에서 졌다면 우리민족의 생존권은 이때 상실되었을 수도 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가정치 외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확인시켜 주었고,이미 대규모의 선박이 동원되고,상륙작전이 수행되는 등 본격적인 해양전쟁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준다.이와같은 양상은 수나라를 이어받은 당과고구려의 전쟁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윤명철 동국대겸임교수
  • [대한시론] 8·15와 겨레 손잡기

    올해 ‘8·15’는 민족해방의 환희와 민족분단의 비극이 동시에 교차한 저1945년 8월 15일이 의미하고 있는 ‘광복절’ 반세기이자 1900년대를 마감하는 역사적인 ‘8·15’이다. 한민족에게 있어 20세기,즉 현대사 100년은 수난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이며,이 땅의 모두가 식민지 지배,민족분단,민족대동란을 겪으면서 눈물없이는 보낼 수 없었던 고통스런 삶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이 민족의 수난사를 우리는 결코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가 역동적인 근대문명의 회오리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19세기에도 여전히 봉건문명과 절대왕정을 고집하다가 나라를 잃었고,민족 내부의 다원주의와 민주적 공존의 원리를 체득하지 못함으로써 강대국들이 좌우한 민족분단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분열과 대립의 역사가 21세기에까지 연장되어서는 안된다는 자각들이 이제 국민들 속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음은 참으로 고무적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남북 어느 쪽이나 간에 ‘무력’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되고 화해와 교류의 폭을 자꾸만 넓혀가서 마침내는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의 확산을 우리는 지난 6월의 ‘서해충돌’(필자는 이것을 ‘교전’으로 규정하는 데 반대한다) 당시 국민들의 너무나 차분한 반응에서확인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현 김대중 정부가 일시적 돌발사태에 흔들리지 않고 북쪽에 대해 포용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데 힘입은바가 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해충돌’이후 북쪽의 경계심이 증폭되고 남쪽이 ‘상호주의’를 보다 강화함으로써 남북정부간 대화는 일시적으로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여파였는지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민간인 교류도 뜸해지더니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면서 이제 민간인 방문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미묘한 시기에 남한의 200개가 넘는 민간단체들이 ‘99 민족의 화해와평화통일을 위한 겨레 손잡기 대회’ 추진본부를 결성하고 다가오는 8·15에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서울과 판문점 부근에서 ‘인간띠’를 이으면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사에는 단체들 뿐만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청소년,남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도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져 이 ‘인간 띠’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향한 한 마음을 일궈내는 계기가 되기를….그리하여 이 ‘겨레 손잡기’가 2000년대가 시작되는 내년에도 이어지고 이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남쪽사람들의 기원이 북쪽에도 전달되어 남북이 손을 맞잡을 때,우리의 평화통일은 그 어느 강대국도 저지할 수 없는 민족적 에너지로 결집되지 않을까 한다. ‘방휼지쟁(蚌鷸之爭)’이란 말이 있다.도요새가 큰 민물조개를 잡아먹으려다 조개에 물려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어부가 둘 다 잡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금보다 2,000년도 더 이전 중국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유래한 고사성어인데 내용인즉 소국들이 작은 이해다툼으로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다투다가 강대국들의 개입을 가져온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경고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과거지사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있다.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얼마전 유고연방과 코소보자치주 간의 인종적·종교적 갈등이 내전으로 치달아 국제적 개입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다국적군의 주둔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만약 또 한번 남북이 대결로 치닫는다면 한반도는 다시 국제적 각축장이 될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남북의 화해와 공존,그리고 평화통일로 나아간다면 21세기 한민족은 아시아로,세계로 지금보다 더욱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5개 퇴출銀 前임직원 19명 구속

    대검 중수부(李鍾燦검사장)는 11일 지난해 10월부터 경기·동화·충청·대동·동남 등 5개 퇴출은행의 임·직원 비리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결과 전직 임직원 35명을 입건,이 중 19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에는 임창열(林昌烈)·주혜란(朱惠蘭)씨 부부를 상대로 퇴출저지 로비를 벌였던 서이석(徐利錫) 전 경기은행장을 비롯,주범국(朱範國) 전 경기은행장과 이재진(李在鎭) 전 동화은행장,윤은중(尹殷重) 전 충청은행장이 포함돼 있다. 구속자 가운데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은 지난 97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1년3개월여동안 ㈜태화건설 등 9개 부실업체에 총 1,691억여원을 대출해주고 사례금과 인사청탁 명목으로 모두 3억6,8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은행별로는 ▲경기은행 18명(구속 9명) ▲동화은행 12명(〃 7명) ▲동남은행 3명(〃 1명)이며 대동은행과 충청은행 임직원 1명씩 구속됐다. 부실대출 규모는 ▲경기은행이 4,48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동화은행 1,102억원 ▲충청은행 716억원 ▲대동은행 46억원 ▲동남은행 1억8,000만원 등인것으로 드러났다. 이종락기자 jrlee@
  • [발언대] 농·축협 통합조합 명칭‘농협’유지를

    농·축협 통합협동조합법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하는 논의가 뜨겁다. 농협은 농업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신인도가 높으며 학술적으로도 농업안에 축산업이 포함돼 있는 점을 들어 명칭 변경시간판 등 교체에 수천억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농업협동조합’으로해야한다고 하며 축협 등에서는 ‘농축협동조합’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같은 상반된 의견에 따라 농림부는 궁여지책으로 엉뚱하게도 ‘농업인협동조합법’이라는 명칭으로 국회에 상정해놓고 있는 상태다.이에 대해 농촌현장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의 한 사람으로 통합협동조합의 명칭을 무엇으로 하는 것이 옳은가에 말하고자 한다. 모든 결정엔 기준이 있어야 한다.협동조합법 명칭문제도 농민 입장에서 어떤 명칭이 이익이 되고 실리가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런 기준에서 볼 때 우선 농업협동조합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바꿀 경우 간판교체,등기변경 등 비용이 2,000억원 이상 소요된다고 하니 이는 농민 자산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금전적인 이해타산으로만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농촌은 농가부채·농산물값 폭락 등으로 최악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농민지원에 써야할 단돈 몇억원이 아쉬운 지경이다. 2,000억원이란 돈이 순수하게 농민에게 지원된다고 해도 시원치않을 판국에 통합에 의한 불필요한 명칭변경으로 오히려 안 써도 될 곳에 수천억원이 쓰여져서야 말이나 되는가. 그뿐인가 농민조합원들이 수십년간 많은 비용을 들여 구축한 농협의 이름값이 10조원이 된다고 한다.농업협동조합이 아닌 딴 이름으로 할 경우 이름값이 일거에 달아난다고 하니 통합협동조합의 명칭은 ‘농업협동조합’으로 하는 것이 어느모로 보나 타당하며 자명한 일이다.이제 끝 없는 소모적 논쟁을걷어버리고, 모든 농민들이 대동단결해 농업발전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기환[경북 안동시 풍천면]
  • 독립기념관 학술심포지엄 개최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은 제54주년 광복절과 3·1의거 80주년 및 독립기념관 개관 12주년을 기념해 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3·1운동과 국내외 민족운동’이란 주제로 개최된 이날 행사는 3·1의거가 일제하 민족해방 투쟁에 끼친 영향을 처음으로 집중조명한데다 기존의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돼 관련학계의 비상한 관심과 열띤 토론속에 진행됐다. 주제발표자들의 발표내용을 요약한다. 첫 주제발표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3·1운동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3·1의거로 인해 민중들의 정치적 각성이 촉구되고 시위가 독립운동의 새로운 양태로 출현하였다”고 지적하고 “3·1의거는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수립과 20년대의 각종 비밀결사 활동,학생·노동·여성운동,나아가 6·10만세의거,광주학생의거와 같은 민족통일전선운동으로 계승·발전되었다”고 분석했다. 지수걸 공주대 교수는 ‘3·1운동과 국내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에서“국내 공산주의운동은 3·1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계승한 운동이 아니다”고 밝히고 “당시 국내 사회주의자들은 오히려 3·1의거를 실패한 것으로 보고 여기서 사회주의계열 운동의 합법칙성(필연성)을 도출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3·1의거가 국내 대중운동과 사회·공산주의 운동을 활성화시켰다는 종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어서 향후 학계내에서 논란이 예상된다.지 교수는 특히 “해방전후를 막론하고 각 독립운동집단이 자신들의 정치적·도덕적 권위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자의적으로 3·1운동사상(史像)을 만들어왔다”고 지적하고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3·1운동에 대한 무관심과 화석화 된 해석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1운동과 국외 민족운동’을 발표한 반병률 외국어대 교수는 “만주·노령지역의 독립운동이 3·1운동을 거치면서 민족운동의 양적 확대,무장투쟁의 고양,그리고 대동단결과 통합을 촉진한 반면 이 지역에 대한 일제의 첩보할동 강화와 친일세력 침투 등을야기시켰다”고 분석하고 “3·1운동을 주도했던 1세대가 소멸된 후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소련·만주출신의민족운동 세력들은 해방후 이념대립,국토분단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주장했다.반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남북분단의 내인설(內因說)로 규정할 수있는데 이 역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마지막으로 한상도 건국대 강사는 ‘중국 관내 독립운동 세력의 3·1운동인식과 계승’에서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세력들은 3·1운동을 ‘대중투쟁의 효시’‘반제국주의 국제연대의 출발점’으로 평가하였다”며 “이들은 3·1운동의 소산으로 임시정부를 세우면서 자신들이 3·1운동 정신의 계승자임을 자임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세력의 통합노력을 주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이날 행사는 이밖에도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가 사회자로,김호일(중앙대)·오세창(영남대)·노경채(수원대) 교수,임경석 성균관대 강사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국립무용단 ‘한국,천년의 춤’ 7·8일 귀국특별공연

    ‘한국,천년의 춤’을 해외 순회공연해 큰 성과를 거둔 국립무용단(단장 국수호)이 오는 7∼8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귀국특별공연을 갖는다.오후4시.(02)2274-1173. 지난 6월25일에서 7월9일까지 터키·이집트·헝가리 3나라,4도시에서 펼친공연의 성공을 국내 팬과 주한 외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소개하는 자리이다. 따라서 외교사절과 외국인 상사 임직원들을 대거 초청,국내팬들과 어울려 우리춤을 즐기도록 할 계획이다. 국수호단장은 해외공연에서 거둔 성과를 거침없이 자랑했다.터키는 매년 6∼7월에 열리는 세계적인 문화축제 ‘아스펜도스’에 국립무용단을 초청하겠다고 했고,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대통령의 부인이 관람한 뒤 국영TV로 방영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는 것. 국단장은 “한국무용이 국제적인 문화상품으로 정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립무용단은 창단후 매년 1∼2차례 해외공연을 갖고 있다.지난해에는 프랑스 월드컵 폐막식전에서 ‘한국,천년의 춤’을 공연,전세계 TV로 생중계됐다. ‘한국,천년의 춤’은 국립무용단이 우리 춤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원형을 정립하고자 기획한 시리즈물.지난 97년 시작했다. 첫해는 ‘조선시대 민속춤’,지난해에는 ‘신라의 춤’,올해는 원형이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춤’을 재현해 냈다.내년에는 ‘고구려의 춤’을,그 다음해에는 ‘원시시대 춤’을 되살릴 계획이다. 이번 공연은 지난 5월 정기공연때 무대에 올린 ‘한국,천년의 춤Ⅲ-백제의춤’을 토대로 했다. 1·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종묘제례악무’(佾舞·일무)와 궁중 춤의 백미로 꼽히는 ‘춘앵무(春鶯舞)’등 조선시대 춤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불교 정신을 가득 담은 ‘향(香)’,강강수월래인 ‘대동무(大同舞)’와 농민들의 춤인 ‘탁무(鐸舞)’,‘공후' 등을 올린다. 강선임기자 sunnyk@
  • 미술인들의 축제 ‘아 대한민국’展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1,000명이 참여,단일화랑이 마련한 기획전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아! 대한민국’전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상을 찾은 관람객은 지난 17일 개막 이래 지금까지 7,000여명.평일엔 400명,주말엔 800명 안팎의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는다는 게 화랑측의설명이다. 출품작은 3호 이내의 평면작품으로 각 작가마다 3점씩 내 모두 3,000점에이른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미덕은 미술의 대중화.김흥수 화백의 하모니즘신작이 2,000만원,권옥연 화백의 ‘소녀’와 김기창 화백의 ‘청록산수’가각각 1,500만원에 이르긴 하지만 70∼80%는 50만원대 작품들로 비교적 부담없는 값으로 명품 소장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매머드급 전시인 만큼 관람객들의 반응도 가지가지다.“우리나라에 역량있는 작가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게 화랑협회 권상능 회장의 말.또한 관람객은 “꽃송이가 모여 꽃밭을 이루듯 1,000점의 소품이 모인 전시장은 마치 거대한 예술의 꽃밭을 보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행사가 최근 여러 불미스런 사건으로 위축돼 있는 미술인들의 화합을위한 축제마당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우리 미술계는 지역과 화벌(화閥),그룹,장르별로 분열돼 있다.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장벽을 뛰어 넘었다.한국화와 서양화,구상과 비구상이 한데 어우러져있으며 재료면에서도 유채·수채·아크릴릭·수묵채색·파스텔 등 다양하다. 이와 관련,미술평론가 윤진섭씨(45)는 “미술인들의 단합된 힘을 보는 것 같아 전율이 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 대한민국’전에는 문제점도 없지 않다.무엇보다 1,000점의 작품을 내걸기에는 갤러리 상의 공간(220평)이 너무 좁다.촘촘히 걸린 작품들이 서로 영향을 끼쳐 온전한 감상을 방해한다.출품작들이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느냐하는 것도 의문이다.하지만‘아! 대한민국’전은 관람객과 미술인이 하나가 돼 새 천년의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대동축제의 장이란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주)월간미술세계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주최한 이 전시는 8월 15일까지 계속된다.관람료 일반 2,000원,학생 1,000원.(02)730-0030김종면기자 jmkim@
  • 경기도 평택시 도로 171㎞ 신설·확장

    경기도 평택시는 오는 2009년까지 모두 18개 노선에 총연장 171.7㎞의 도로를 신설 또는 확장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계획에 따르면 2002년까지 오산시∼송북동 구간 5.2㎞에 왕복 4차선 도로를 신설하는 등 모두 4개 노선 37.1㎞를 개설할 예정이다. 또 2004년까지 청북면 삼계리∼서정동 구간 16㎞를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등 5개 노선 48.6㎞,2007년까지는 진위면 야막리∼신대동 구간14.2㎞ 등 6개 노선 51.4㎞를 신설 또는 확장할 계획이다. 시는 2009년까지는 청북면 삼계리∼운정리 구간 5.4㎞를 개설하는 등 3개노선 34.6㎞를 건설할 방침이다. 시는 연말까지 주민공청회 등을 거쳐 세부계획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386세대 세력확산 필요 전국정당화 중심으로 나서야”

    국민회의 인천 계양·강화갑 지구당 위원장인 송영길(宋永吉)변호사가 ‘젊은 전국정당화론’을 강조하며 당내 민주화를 역설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22일 21세기 전략아카데미(李鎬允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가 주최한 월례토론회에서다. 그는 ‘한국정치의 개혁과 젊은 세대 역할’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의 정치과제는 전국정당화를 통해 민주역량의 대단결을 이뤄 통일을 앞당기는것”이라면서 “전국정당화는 기존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이 아닌 ‘386세대’같은 새 세력이 주체세력으로 조직화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386세대들은 기금을 모아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적 확산을 꾀해야 한다”면서 “해외유학파,벤처기업인,시민운동과 노동·농민운동가지역운동세력 등이 대동단결,무한책임성을 갖고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역량강화론’도 시선을 끌었다.6·3재선거에 나섰다 고배를 든 송위원장은 “지난 재선거에서는 중앙차원에서 기존정치와 다른 새로운 세대의정치적 이념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패배했다”고분석했다.그러면서 “각정당에서 젊은 세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당내 민주주의 활성화를위해 자기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서는 정당의 역할론을 강조,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당의 민주화,권력행사과정의 민주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민기자 rm0609@
  • 「그린벨트 ‘대수술’」7개 대도시권 어느곳이 해제되나

    부분 해제지역으로 분류된 수도권과 부산·대구·광주 등 총 7개 대도시권의 해제 1순위 대상은 어떤 곳일까. 지난 7월 1일을 기준으로 주민등록 거주인구가 1,000명을 넘는 대규모 취락지구는 환경평가를 받지 않고 우선적으로 해제된다. 건교부는 인구 1,000명 이상인 대규모 집단취락지는 자족성을 갖는 최소한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배후에 흩어진 소규모 취락들의 중심지가 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해제 경계선은 분쟁 발생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하천·도로 등 명확한 지형지물을 이용토록 하고,임야에 접한 경우 일정 표고를 기준으로 경계선을 확정하기로 했다.건교부는 이런 곳이 전국적으로 30여개 동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인구 1,000명 이상 집단취락지의 해제면적은 기존 주택 바닥면적의 5배까지다.예컨대 취락지구내 건축물 1층 바닥면적의 합이 1만평이라면 해제면적은5만평까지가 된다. 개발제한구역의 경계선이 마을을 관통하는 전국의 52개 취락지구도 환경평가를 받지 않고 우선 해제된다. 이와 함께 경기도 시화공단과 경남창원시 양곡지구 등 개발제한구역 안의2개 산업단지도 해제대상 1순위로 분류된다. 22일 대한매일이 수도권과 6개 광역권역을 대상으로 인구 1,000명 이상의집단취락지와 개발제한구역 경계선의 관통지역 등을 조사한 결과 수도권의경우 서울 은평구 진관내·외동,강서구 과해동,강동구 하일동,성남시 수정구 신촌·고등동,광명시 학온동,고양시 덕양구 덕은·홍도·효자·신도·대덕동이 유력한 해제 예상지역으로 꼽혔다.구리시 갈매동과 시흥시 정왕동,하남시 풍산·감북·춘궁·초이동 등도 해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권역에서는 강서구 대저 1,2동과 강동·가락동,해운대구 석대동,금정구 오륜·선·두구·노포동 등이 대상지역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광주시 북구 장운·용전동과 대구시 동구 둔산·평광·안심3동 등도 후보군에올랐다. [전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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