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대동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4급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낙인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22
  • [지방자치5년 현주소와 문제점](3)亂개발…무너지는 상수원

    지방자치 5년은 난개발 광풍(狂風)이 거세게 분 5년이었다.상수원은 흘러드는 폐수로 신음하게 됐고,93년 개발이 허용된 준농림지역에는 아파트와 러브호텔이 어지럽게 들어섰다.지자체들의 앞을 다투는 개발로 산과 갯벌은 벌레먹은 과일처럼 병들어가고 있다. 2,0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젖줄인 팔당호가 마구잡이 개발로 깊은 병이 들고있다. 주변 산들은 뭉텅 잘려 전원주택과 러브호텔들이 자리잡았고 논과 밭은 메워져 크고 작은 카페들과 음식점들이 빼곡히 들어찼다.이들이 무단방류한 오폐수로 상수원과 인근 하천은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단속이 선거와 세수입에 영향을 미칠까 눈을 감아버린 자치단체장들의 나태함까지 달갑지 않은 조화를 이루면서 상수원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4일 오후 경기도 광주읍 목현리 경안천.남한강 지류로,상수원과 곧바로 연결돼 팔당호의 대동맥에 비유되고 있는 이 하천은 정화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짙은 갈색의 방류수가 거품을 머금은 채 하류인 상수원으로 흘러들고 있다. 하천바닥은 붉게 변했고 30∼50㎝ 깊이의하천 하류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탁해 공장밀집지대로 착각할 정도다. 100여곳이 넘는 이곳 업소들은 대부분 200㎡ 이상의 자가하수처리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호화업소들인데도 처리시설을 찾기가 어렵다.규제면적 이하로허가를 받고 무단 증축됐기 때문이다. 인공 낚시터도 눈에 띈다.상수원 1급대책지역인 이곳에 야산과 논 밭 수천평을 밀어 물을 채운 이색 인공낚시터가 자리잡았다.하수처리시설을 갖추는조건으로 허가가 났다지만 처리시설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광주군에서만 하수처리시설 부족으로 경안천을 따라 하루 2만여t의 하수가 상수원으로 무단방류되고 있다.이곳에서 1㎞ 가량 지나면 곧바로 팔당상수원이다. 오른쪽으로 탁트인 팔당호가 한눈에 보이면서 서서히 음식점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팔당댐 못미쳐 500여m 떨어진 도로 오른쪽에는 상수원 취수장이 자리잡고있다.낚시와 취식을 금한다는 표지판 바로옆에는 매운탕집이 업소 밖으로 팔당호를 경관삼아 돗자리 등을 깔아놓고 손님을 받고 있다.취수장 코앞으로뻗어있는 하수관에서는 검붉은 하수가 쏟아져 나온다.음식점과 접한 팔당호수변 끝자락은 이들 업소들이 방류하는 하수로 군데군데 검은띠를 형성하고있으며 함부로 버린 라면봉지와 생활쓰레기 등이 떠다닌다. 팔당댐 남쪽지역인 광주군 퇴촌면은 수려한 경관 덕에 별장지로 이름을 날렸으나 최근엔 러브호텔과 호화음식점들이 난립해 전원속 환락가라는 또다른 명성을 얻고 있다.45번 국도 초입인 이곳에는 1개면에 무려 233개소의 음식점과 러브호텔이 자리잡았다. 천진암계곡으로 알려진 퇴촌면 우산천 하류쪽은 검은색의 퇴적층과 기름띠가 엉겨붙어 썩으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하천곳곳에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하천변에는 작은 공터 하나 남기지 않고 음식점이 들어서 한결같이 하수를 우산천으로 내보내고 있다. 상수원 동편지역인 양평군 강상·강하면은 강변에만 모두 31군데의 러브호텔이 자리잡았고 상수원이 지척임에도 이른 여름부터 강에서는 모터보트와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식수를 기름손으로 젖는 모양새다.스핑크와 피라미드형 음식점도있고 중고 여객기도 카페로 사용된다.강변엔 빈땅이 단 한곳 없다. 강가에 대형 온천도 보인다.이 온천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온천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있었으나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 탓인지 목욕탕으로 갑자기 상호명를 바꾸어 영업을 하고 있다.상수원 인근 강가에 온천허가를 내준 자치단체의 과감성에 혀를 내두르는 주민들도 있다. 팔당 지역은 상수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임에도 자치단체 태동이후개발이 집중되고 있다.하수관로가 없어 강가에서 음식점들을 올려다 보면 수초사치로 군데군데 하수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죽어가는 낙동강. 영남지역의 상수원인 낙동강이 인근에 마구 들어서고 있는 대규모 공단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장 폐수로 인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다. 대구시 서구 비산7동 대구염색공단.100여 입주업체는 BOD(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1,500ppm COD(화학적산소요구량) 550∼600ppm의 악성 염색폐수를 매일 8만여t씩 쏟아낸다. 이곳의 염색폐수는 자체 폐수처리장과 대구 달서천환경사업소에서 1,2차 정화과정을 거쳐 BOD 20ppm 이하,COD 20ppm 이하로 오염수치가 낮아져 금호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경북 칠곡군 석적면 구미시환경사업소에도 구미 1·2·3국가산업단지 내 600여 입주업체로부터 하루 30만6,000t규모의 공장폐수 및 생활하수가 흘러든다.환경사업소는 BOD 77.2ppm COD 60.7ppm인 폐수를 정화,BOD 3.9ppm COD 10.4ppm로 낮춰 100m 떨어진 낙동강으로 쏟아낸다. 이곳에서 낙동강 하류 쪽으로 불과 10㎞ 떨어진 곳에 칠곡취수장이 위치해있다.주민들은 겨울 갈수기 구미공단에서 나오는 30만t의 공장폐수가 충분한자정 과정을 거치지 못한채 이곳에 그대로 유입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낙동강 상류인 경북 북부지역에는 공단뿐 아니라 대규모 산업폐기물매립장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낙동강에서 불과 400m 떨어진 경북 안동시 수하동에 97년 2만7,950㎡ 부지에 총 매립량 40만3,800㎥ 규모의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섰다. 이곳에는 주로 대부분 독성성분이 많은 합성 고분자화합물과 폐촉매제,오니,폐내화물,폐석면 등이 반입된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성부리 일대에도 매립량 21만4,000여㎥ 규모의 대형폐기물 매립장이 96년 세워져 전국의 각종 산업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낙동강 상류지역 자치단체들이 산업폐기물 처리장을 줄지어 세우는 이유는수억∼수십억원대의 폐기물 처리 수익을 거둘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집중 호우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로 인해 매립장이 붕괴되거나 침출수가 넘치면 낙동강의 모든 수역이 오염되는 등 돌이킬수 없는 환경재앙을 맞을 것”이라며 불안해 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가뭄까지 겹쳐 낙동강의 수질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대구지방환경관리청이 지난 5월 낙동강 주요 지점의 수질오염도를 조사한결과 고령군 성산면 고령교 지점의 경우 BOD가 6.9ppm(환경기준치 3ppm)으로 지난 4월 6.2ppm 보다 악화됐다.지난해 5월의 3.9ppm에 비해서는 두배 가까이 나빠졌다. 대구지역의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흘러드는 낙동강지류인 금호강 강창교지점의 오염도도 7.5ppm으로 환경기준치 6ppm를 훨씬 넘어섰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徐旺鎭 환경정의연대 사무처장 인터뷰. “팔당호 수변지역이나 용인지역의 경우 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총력을 기울여도 난개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서왕진(徐旺鎭)사무처장은 “부족한 도로,학교 등 공공시설을 확충하고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데도 여전히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수도권지역 난개발의 원인은 93년바뀐 국토이용관리법의 준농림지 규정과 토지공사 등의 공영개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토의 26%를 차지하고 있는 준농림지는 ‘보존해야 되지만 개발이가능하다’는 애매한 규정에다 도시계획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개발의가장 큰 원인이었다”면서 “정부도 문제점을 깨달아 준농림지를 계획구역에 포함시키고 폐지방침을 밝히는 등 개선 방향을 찾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 사무처장은 “현재 정부는 난개발을 막기 위한 개선 방향의 하나로 소규모 용도지정제를 도입할려고하는데 미진한 개선책이 될 것”이라면서 “용도지정제를 폐지하고 유럽방식의 상세계획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상세계획제는 세부적인 계획이 없으면 어떤 개발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심지어 지붕 색깔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해야 한다. 또 그는 “도시기본계획을 세울 때도 공무원에게만 맡기지 말고 시민단체나 전문가 등이 참여해 투명한 계획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개발의 다른 원인으로 서 사무처장은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토지공사,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대규모로 택지를 개발하는 공영개발을 지적했다.용인의 경우 민간개발이 250여만평인데 비해 공영개발은 560여만평이나된다는 것이다. 서 사무처장은 “토지 소유권은 사적인 것이지만 개발권리는 공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이젠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新 김정일 연구](8)정보통신 중시정책

    “내가 직접 콤퓨터(컴퓨터) 기술을 연구하고 이 부문 과학연구사업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첨단과학기술개발을 독려하며 이같이 말했다.이 말에는 정보통신기술(IT) 분야에 쏟는 그의 열정과의욕이 어느 정도인가가 잘 나타나 있다.실제 김위원장의 컴퓨터 조작기술과지식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위원장은 첨단기술로 경제살리기의 활로를 트기 위해 자신이 먼저 디지털시대의 지도자로 변신했다.“콤퓨터를 안하면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기술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이와 함께 벤처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김위원장이 지난 5월 중국방문길에 실리콘밸리인 중관춘을 시찰한 소식을 전하면서,그가 정기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컴퓨터전문가라고 소개했다.김위원장은 그가 머문 조어대의 숙소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전자우편 프로그램까지 깔아 달라는 주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위원장이 IT분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도’를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북한은 그의 컴퓨터중시 지침에 따라 지난해 11월 전자공업성을 신설하고 주요 컴퓨터센터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했다.현재 북한에서운영중인 큰 컴퓨터센터는 조선컴퓨터센터,김일성종합대학 컴퓨터과학대학,김책공업대학 컴퓨터정보센터 등 5곳이다.북한은 또 각 도마다 컴퓨터연구센터를 신설,전문기술인력 양성에도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위원장은 최근 평양 대동강 인근에 대규모 정보산업단지인 ‘대동강밸리’ 조성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금강산특구에도 첨단기술연구단지를 만들자고 현대 방북단에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위원장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소프트웨어 개발이다.그 첫째 이유는 첨단부문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강한 의욕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비록 하드 부문은 뒤떨어져 있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은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우수한 두뇌를 활용하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둘째,지난 98년 인공위성인 광명성1호발사로 전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획기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북한의 명성을 날려보겠다는 선전성 의도도 다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셋째, 경제 및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위원장이 IT에 깊은 관심을 보임에 따라 북한의 소프트웨어는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했다.지난달 14일 오후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시찰일정에 따라 북한에서 최고수준인 조선컴퓨터센터를 찾은 우리 경제인들은 음성,지문,문자인식 프로그램의 시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 센터의 한 관계자가 먼저 마이크를 이용해 책을 읽어내려가자 그 구절이 모두 정확히 입력되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북한이 시연해보인 음성인식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바둑프로그램 개발 역시 높은 수준으로,지난해 9월 일본에서 열린 컴퓨터바둑대회에서 조선컴퓨터센터 소속 개발원들이 1등을 차지했다. 이런 추세로 보아 북한의 IT분야는 일부 부문에서 남한과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면서 남북경협을 통해 발전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대동강 철교 사진기자·피란민 ‘감격의 상봉’

    6·25당시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건너던 피란민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인 종군 사진기자가 평양에서 대동강 철교를 통해 탈출했던 피란민을만났다. 6·25 50주년 기념으로 방한한 맥스 데스포(87·전 AP통신기자)씨는 26일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중동 창대교회에 살고 있는 피란민 생존자 안창섭옹(94)과 만났다. 데스포씨와 안옹은 전쟁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진기자와 피란민으로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을 만난다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채 두손을 꼭 붙잡고반가운 첫인사를 나눴다. 데스포씨는 자신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던 끊어진 대동강 철교사진을 안옹에게 보여주며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안옹도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 주어 고맙고 비록 사진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당시 고통을 함께 했던 사람을 만나 감회가 새롭다”고 답했다. 데스포씨는 자신이 가져온 끊어진 대동강 철교 사진에 ‘커다란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과 이름을 적어 처음으로 피란민 생존자를 만난 기념으로 안옹에게 선물했다. 전 AP기자로 6·25때 종군기자로 참전,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사진 촬영해지난 51년 퓰리처상을 받았던 데스포씨는 최근 국정홍보처가 초청한 6개국 33명의 외국 종군기자단의 일원으로 방한,이날 안옹의 집을 찾았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학술 신간

    ◆조선역사 바로잡기(이상태 지음).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조선 팔도를 돌고 백두산을 오른 것이 여러차례”이며 “억울한 죄명으로 죽음을 당했다”고 묘사한다.이어 “김정호의 피땀 어린 지도까지 압수하여 불사르고 말았다”고설명한다.과연 사실일까?국사편찬위원회 고중세사실장인 지은이는 아니라고 단언하며 사료에 근거해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다.그러면 왜 틀린 사실이 여지껏 교과서에 올라 있을까.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만든 ‘조선어독본’을 비판없이 그대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흔히 잘못 아는 조선시대 역사상식 30가지를 골라 이를 바로잡아준다.왜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읽는 재미까지도 쏠쏠한 교양역사서이다.가람기획 9,000원. ◆19세기 중국사회(신승하 등 지음). 오랜 세월 화이(華夷)사상에 젖어온 중국은 19세기 들어 외부세계로부터 큰충격을 받는다.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하자 중국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이후 서양에 관한 인식을 바꿔 그 문명을수용하려고 애쓴다. 이 책은 3명의 학자가 쓴 논문 3편으로 구성됐다.첫 주제는,19세기 중국의변화를 불러온 서구의 충격이 중국인들의 가치관을 어떻게 굴절시키는지를다뤘다(신승하 고려대교수).두번째는 중국이 새 체제를 모색하고 실천하는과정과 이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를 살폈다(유장근 경남대교수).셋째는 수구·개혁·혁명을 추구한 각 정치세력의 계층·사상·현실적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이들과 외세와의 관계를 조명했다.신서원 1만2,000원.
  • [50돌에 되돌아 본 6.25](5.끝)큰변화 겪은 대중가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저 하늘 저산 아래 아득한 천리…생시에 가지못할 한많은 운명이라면/꿈에라도 보내다오’(꿈에 본 내고향)‘목을 놓아 불러봤다/찾어를 봤다/금순아 어데로 가고/길을 잃고 헤매었드냐’(굳세어라 금순아) 전쟁으로 인해 우리 대중가요는 정서적 자양분이 풍족해지는 역설을 경험했다.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가거라 삼팔선)이라고 분단현실을 ‘저주’하고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단장의 미아리고개) ‘님’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두고온 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이 풀어헤친 ‘꿈에 본 대동강’‘한많은대동강’ 등이 많은 실향민의 가슴을 적셨고 전란을 피해 궁핍한 삶을 연명하던 피난지 부산과 기차를 통해 민족의 삶을 연결하던 대전을 주제로 한 노래들도 많이 불려졌다.‘경상도 아가씨’‘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물론 이 와중에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아내의 노래)이고 ‘장부의 꿈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전우야 잘 있거라)라고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눌 것을 강요하기도 했지만 70년대 냉전체제가 와해되자 잊혀졌다. 이 시기에 형식미를 굳힌 트로트가 50년이 지난 지금 테크노와 힙합·댄스가 범람하는 가운데도 ‘끄떡’없이 불려지고 있는 점은 그만큼 분단의 상처가 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외세를 불러들인 전쟁은 트로트 일색의 우리 가요에 팝송과 재즈·솔·로큰롤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했다. 껌과 초콜릿·코카콜라로 상징되는 기지촌 문화는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라디오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에 다층적인 영향을 끼쳤다.흰저고리에 검정고무신이 미니 스커트와 원피스로 바뀌었고 ‘살롱’에서 로큰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대단한 문화적 소양으로 취급하던 때이기도 했다. 핍진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갈망을 담은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유행하고‘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차차차)라고 부추기던 시절도 있었다. 양쪽 모두 전쟁세대가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80년대 전쟁은이제분단의 극복이란 과제로 심화됐다.‘서울에서 평양까지’가 대학가를중심으로 불려지고 실향민 2세의 통일에 대한 정서적 감응을 담은 강산에의‘라구요’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진전이라 할 만하다.‘주먹밥’ 등 전쟁때의 궁핍한 생활단면이 ‘이벤트’로,‘상품’으로 팔리기도 한다. 영화도 ‘돌아오지 않는 해병’류의 반공선전에서 탈피,분단의 의미를 되새기는 ‘남부군’류를 거쳐 구체적으로 남과 북이 만나는 상황을 상정하는 ‘쉬리’‘공동경비구역’으로 발전해 왔다. 전쟁은 분명 화약냄새에 대한 ‘경계의식’으로 존재하지만 이제 훈풍은 불고 있다.북한에서 유행하는 ‘휘파람’‘반갑습니다’를 국내 가수들이 취입하기도 한다.통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화두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맞고 있는 셈이다. 임병선기자 bsnim@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상)현주소와 성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30년의 뿌리’를 갖고 있다.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도 김 대통령이 오랜 준비 끝에 도출해 낸 ‘인고의승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6·15선언과 김대통령의 통일론을 두차례에 걸쳐심층 조명한다. ◆ 3단계 통일론의 전개. 3단계 통일론은 시대별로 발전해 왔다.‘통일론 구상기’인 70년대에 씨를뿌리고 싹을 틔워 갔고 80년대 ‘통일론 발전기’에서 통일의 현실성을 높이며 제도적 접근을 모색했다.이후 90년대부터 ‘통일론 완성기’로 가장 평화적이고 안전한 통일의 길을 찾으며 6·15 선언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김대통령의 지난 30년은 냉전 수구세력으로부터의 온갖 박해 속에서 자신의통일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았던 인내의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여정을 걸어오면서도 스스로 점진적 평화통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실인 것이다. 3단계 통일론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71년 대통령 선거였다.당시 김대통령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4대국평화보장론’과 함께 제시했다.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남북대화를 역설한 것”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그후 김대통령에 대한 용공음해 공작과 덧칠된 ‘색깔론’으로 이용되는 등 정치적 수난의 주요 원인이 됐다. ◆ 3비론(非論)과 통일론. 김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가장 중시했다.평화공존에 이어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될 경우 ‘사실상의 통일’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또다른 통일인식의 주요한 기반은 ‘선(先) 민주화,후(後) 통일론’의 개념이다. 이는 그의 3단계 통일론의 주요 철학인 ‘3비론’(三非論) 즉 비폭력(非暴力)·비용공(非容共)·비반미(非反美)와 맞물려 3단계 통일론의 주요 배경이됐다. 그는 역대 독재정권과의 끈질긴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만이 공산세력의 침투를 막는 방패”라고 역설,남한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지난 대선에서 50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통일 대통령’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햇볕정책과 통일론 연결. 3비론은 민주화 과정에서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절대 반대, 자주적 민족통일과 주변국들의 협조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북한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북측에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3단계 통일론은 햇볕정책 즉 포용정책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는지적이 많다.포용정책은 30년간 일궈 온 자신의 3단계 통일론과 6·15 선언의 ‘연결 고리’로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남북정상회담장으로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남북연합·낮은 단계 연방제 비교. 남북한이 통일방안에 합의하기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처음이다.남측의 ‘남북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통일에 대한 공동 모색을선언한 것이다.남북 양측이 통일 논의의 접점과 논의의장(場)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유사점]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방·외교권을 보유하며 대등하고 독립된 실체로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다.당장 통일하자는 자세가 아닌 점진적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 민족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가정아래 교류를 추진·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 특징.대외적으론 독립된 실체이자 별개의 국가이지만 내부적으로 보통의 외국관계와 다른 ‘민족내부’란특수관계를 갖는다.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활성화로 사실상 통일 단계인 ‘공동체 형성’을목표로 한다.외국과의 무역관계에선 관세를 물지만 남북끼리는 한 국가안의교역으로 취급한다.남북간에는 수출·수입이란 표현 대신 반출·반입이란 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연합과 연방] 일반적인 연방제는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주종·상하 관계를 뜻한다.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은 국제법상의 연합국가(Confederation),낮은 단계의 연방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Loose form of federation)으로 정리했다.남북연합은 민족이란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두 실체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연방제나 국가연합과는 다르다. [차이점과 전망] 남측이 상정하는 국가연합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기능 통합을 염두에 둔다.평화공존의 전제 아래 교류를 심화시켜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거쳐 제도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남북연합이란 틀 아래서 정상회의·국회·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는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국가통합이 언제든 가능하다. 통일국가 전단계로 남측은 2개 주권의 국가연합 단계를,북측은 단일 주권의연방국가를 거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한민족공동체 통일안과 '대동소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역대 정부가 다듬어온 공식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과 명칭이다르다. 그러나 명칭만 다를 뿐 내용상의 함의는 큰 차이가 없다.남북이 신뢰·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단계적으로 완전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 개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기 때문. 민족공동체 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등 3단계로 통일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다.이에 비해 3단계 통일론은 국가연합-연방-통일국가 등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동체 방안의 남북연합과 3단계 통일론의 국가연합은 사실상 같은개념.공히 정상회담·각료회의·연합의회 등을 두고 있기 때문. 처음엔 양자간 간극이 있었다.하지만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시절 국회 상임위에서 이론적 접목이 이뤄졌다.이홍구(李洪九) 당시 통일부장관이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원류인 공화국연방제가 정부안과 취지가 별반 다르지않다고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인사들도 3단계 통일론의 연방제는 북한의 고려연방제와는전혀 다른 통일국가의 초기단계라고 설명,혼선을 정리한 적이 있다. 물론 통일방안은 통일이라는 큰 목표로 가는 가공의 설계도일 따름이다.김대통령이 집권 후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적은 별로 없다.제도적 통일은 훗날의 일이고 당장엔 화해협력 기조 정착이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본영기자 kby7@. *金대통령 평양회담 소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으로 확신했다”고 털어놨다.역사적인 남북 두 정상간 만남을 햇볕정책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추진과정과 정상회담 협상에 이르는 길에는 숱한 고비와위기가 있었다.지난 98년 6월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과 99년 6월 서해 연평해전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좌초위기로까지 몰고갔다.당시 김대통령은“북한의 태도에 따라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며 홀로 ‘역풍’(逆風)을 막았다. 김대통령은 이번 단독정상회담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두 사건을거론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회담도중 여러차례 절망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위원장과의회담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에 따른 현장 대처가 난제였던 것 같다.김대통령에게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옳다’고 판단되면 즉각 수용하는 합리적인 성품을드러냈으나 그는 거칠 것 없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였다.김대통령이 얘기하는중간에 가로막고 자기 말만 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간혹 내보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김대통령은 그래도 김위원장의 말을 묵묵히 듣곤 했다.우리측에선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인데도 별로 싫은 기색없이 다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대선 4수(修)’라는 정치역정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탁월한 끈질김과 기회포착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이는 1,000여쪽에 이르는 북한 자료 숙지등 그의 철저한 준비자세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또 한번도 김위원장의 주장에 ‘노’(NO)라고 하며 의제에서 배제한 적이없었다.한 수행원은 “김위원장의 웅변조 얘기하는 소리가 회담장 밖으로 흘러나왔으나 김대통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며 설득에 주력했음을 시사했다.공동선언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직접 사인,한밤 서명식 등은 김대통령이 일궈낸 작품들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의료대란/ 진료거부…곳곳서 사고 속출

    70대 노인이 경북 영천과 대구지역의 병원 3군데를 전전하다 14시간만에 숨졌다.또 서울에서는 30대 환자가 병원 폐업으로 12시간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남대의료원에서 우측 대동맥 파열로 일반외과 수술을 기다리던 이환규씨(77·경북 영천시 고경면)는 19일 오후 10시10분쯤 숨졌다. 이씨는 이날 오전 8시쯤 경북 영천 영남대부속 영천병원에서 복막염 진단을 받았으나 낮 12시쯤 대구의료원으로 후송돼 우측 대동맥 파열 진단을 받았다.이씨는 곧바로 영남대의료원으로 이송된 뒤 오후 6시40분쯤 수술실로 옮겨져 수술을 기다리다 숨졌다. 이씨 가족들은 “영천에서 1차 진단을 받은 뒤 정상진료를 하는 대구시립의료원으로 갔으나 대학병원이 아니면 수술이 어렵다고 해 영남대의료원으로옮겨져 수술을 기다리다 숨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서울시내 병원에서는 119차량으로 이송된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거부 사례가 잇따랐다. 서울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현재 119 구급차가 출동,응급환자를 이송한 사례는 모두 430여건에 달하고 있으나 병원에서 ‘진료 불가’를 이유로 입원이나 응급처방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50돌에 되돌아본 6.25](1)비운의 다리들

    우리에게 6·25전쟁은 무엇이었고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50년 세월동안 상쟁(相爭)과 배덕으로 얼룩졌던 한반도에 화해와평화의 여명이 드리워졌다.남북 상생(相生)의 물줄기가 용솟음치고 통일의빛이 어둠을 뚫고 내리비치고 있다.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쟁을 넘어평화로,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야 한다는 뜻에서 6·25특집을 시리즈로 마련했다. 1950년 6월28일 새벽 2시30분.칠흑같이 어두운 한강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고 화광은 일순간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다.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광진교가동강난 것이다.다리를 건너던 피란민 1,000여명도 수장됐다. 전쟁과 다리…. 다리는 땅과 땅을 이어준다.교류와 화해의 통로다.6·25 전쟁사에 등장하는다리는 예외없이 끊기고 찢어졌다. 한국 전쟁사에서 다리는 뺏고 뺏기는 격전의 장소가 아니었다.전진과 후퇴의 기로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작전상’ 끊은 것이 특징이다. 한강의 3개 다리와 함께 임진교,왜관교,금강교,대동강철교,압록강철교,평양승호리철교가 남진과 북진,후퇴 등 전세(戰勢)에 따라 엇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전쟁이 발발하면 도로와 철로는 곧 병참선(兵站線)이 된다.전쟁 초기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폭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쟁통의 다리는 피란민들의 피눈물이 어린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온 몸에 보따리를 이고 메고 들고 한강다리 난간에 매달린 피란민들의 행렬,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피란민이 망연자실해 강 건너쪽을 바라보는 모습들은 우리의 의식 깊숙이 각인돼 있다. 그러나 한강다리 조기 폭파는 국군의 퇴로를 차단,북한군의 포위작전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다.6·25 전쟁사는 대표적으로 ‘실패한 작전’이었다고기록하고 있다.당시 한강다리 폭파임무를 맡았던 최창식(崔昌植·대령) 공병감은 전쟁중이던 9월21일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부산교외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낙동강변의 왜관교 폭파는 인민군의 워커라인(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딴 낙동강방어전선)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이뤄졌다.미군제1기갑사단 호버트 개이 사령관의 “저 놈의 다리를 날려버려”란 한마디명령에 다리를 건너던 수백명의 피란민 대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파됐다. 6·25 전쟁사에는 폭파된 다리만 기록돼 있진 않다.특히 영도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자유의 다리는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되는 전쟁의 교훈’을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1934년 부산항과 영도를 연결하는 국내최초의 연륙교로 세워진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는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였다. “길을 잃고 헤매는 영도다리”란 가사로 전쟁의 아픔을 노래했던 ‘굳세어라 금순아’는 피란민들의 애창곡이었다. 영도다리 곳곳에는 사람을 찾는 벽보로 가득찼고 가족들을 기다리다 못해순간적으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잠깐만’이라는 푯말이 자살방지용으로 나붙어 있었다.다리 아래에는 교하촌(橋下村)이라고 불린 1,000여가구의 판자촌이 진을 쳤다.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 뒤쪽 사천을 가로지르고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경의선상행선 철교의 잔해로 남아 있는 자유의 다리 또한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휴전협정 조인 이후 남쪽과 북쪽으로 송환된 포로들이 건너기만 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던 다리였다.임진각에서 북쪽으로보이는 자유의 다리는 전쟁 와중에 상하행선이 모두 파괴됐으나 포로교환을위해 목조로 급조해 만들었다.1만2,773명의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자유 만세”를 외친 곳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다리들은 지난 50년 동안 다시 이어졌지만 당시 함께 찢긴상처와 안타까움은 아직 치유되지 못했다.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의 만남이전쟁통에 끊어진 남과 북을 연결시켜주는 ‘통일의 다리’가 되길 바라는 까닭이다. 노주석기자 joo@
  • 민족종교 지도자대회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양원)는 20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민족종교 대표와 관계자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민족종교 지도자대회를 갖고종교지도자들이 우리사회의 난국극복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민족종교 대표들은 이날 ‘국난수습을 위한 결의문’을 통해 ▲평화적 남북통일과 통일한국의 새역사·문화 창조에 앞장설 것 ▲국토사랑운동을 적극전개할 것 ▲민족정신을 선양할 것을 결의했다. 협의회는 또 국내외 동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남북간 정상회담으로 통일한국을 향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성숙돼가고 있다”며 “민족화합에 지장을 주는 상극의 분열을 피하고 상생의 대화합을 위해 온 동포가 대동단결해 매진하자”고 다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차범석의 방북 인상기(상)

    대한매일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수행했던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인 극작가 차범석씨(76)의 방북기를 두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원로 예술가의 따뜻하면서도 정감있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14번 차를 타시라우.” 안내원의 표정은 무표정했다.가슴에 단 인공기 배지의 검붉은 색과 나의 가슴에 단 햐얀 태극기 배지와는 대조적이었다. ◆여기가 평양인가=평양의 순안 공항에 내린 것은 6월13일 오전 10시30분.따가운 햇살이 눈부시기는 했지만 500∼600명쯤 되어 보이는 환영인파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봐서 여성들이 태반이었음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저마다 손에 든 진홍색과 분홍색 꽃이 강렬한 햇살에 반사되면서 한층 더 붉게 보였다.나는 그것이 생화가 아닌 조화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것이 엷은 비닐제품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됐다. 여기가 평양인가 싶다.산세도 하늘도 들판도 그리고 꼭같이 생긴 사람들을가까이 보면서 새삼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이 고개를 쳐들었다.하나라도더 보고,더 얘기하고,더 가까이 가리라는 생각에 부풀었다. ◆남남북녀=우리가 탄 차는 외제 고급차,벤츠였다.14호 차에는 나와 이화여대 장상(張裳) 총장,그리고 안내인 김승현씨가 있었다.그녀의 용모는 30대로 밖에 안 보이는 젊음에다 미모와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어딘지 친근감을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대학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말에 그 곱다란 얼굴을 훔쳐보았다.남남북녀(南男北女)가 결코 헛소리는 아닌가 싶다. 출발하기 전에 소양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평양에서 만나게 될 안내원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정보요원인 만큼 말조심하라는 지시가 문득 생각났다.그리고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거나 그쪽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은 자제하는 게 현명하리라는 충고가 머리를 스쳐갔다. 그러나 김여인은 시종 미소와 부드러운 말씨로 우리를 대했다.말할 때마다‘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동지’로 시작되는 유창하고 명료하고 논리적인 화술은 웬만한 연극배우를 능가할 정도였다.뿐만 아니라 우리 동족끼리 힘을합하여 통일을 해야지 않겠는 가 라며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스스럼없이 말하니 나 역시 반대할 이유라곤 없었다.“그럼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닙니까?”◆물결치는 환영인파=연도에 도열한 평양시민의 대열은 강처럼 이어지고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남쪽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을 맞는다는 상투적인인사가 이니라 금방이라도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여인들의 표정이자못 감동적이었다.환호를 지르다가 급기야는 울음보를 터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옷차림은 우리가 보기엔 시대에 역행하는 낡은 패션이었다.치마 저고리 차림이며 그것도 위아래가 한 색깔이었다.남한에서 30여년전에 유행했던 한복이었다.치마 저고리의 동정도 좁고 길었다.그런데 고무신을 신은 여성은 없었다.가끔씩 양장을 입은 여인이 보였지만 소박한 부라우스에 스커트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뜨겁고 억새고 광적이었다.외치는 구호는 ‘김정일’의 연호였다.손에 든 조화를 흔들면서 목이 터져나갈 듯 김정일을 연호하는그 표정이 흡사 예배당에서 광신도가 외쳐대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우리 상식으로는 먼길을 찾아준 ‘김대중’을 연호하는 게 순리일진데 그들은 ‘김정일’을 외치고 있어 의아스럽게 여겨졌다. 위대한 지도자께서 뜻밖에도 이 자리에 납시었다는 현실 앞에서 흥분과 감사와 자긍심에서였을 것이다.그리고 이 역사적인 상봉은 애오라지 김정일 장군의 뜻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6월 12일의 출발 스케줄이 갑작스럽게 하루 연기되었을 때 우리들의 동요와 의혹과 억측이 문득 떠올랐다.수수께끼에쌓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 게 아닌가 라는 기우(杞憂)아닌 기우도 떠올랐다. ◆남북 두 지도자의 역정=그날 밤 일본 NHK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김정일의 정체를 분석하기 위해 각국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방영하고 있었다.그 가운데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분은 철저하게 보통사람이예요.소박하고 자상하고…그러면서 머리가 비상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보통사람인 김정일이 저토록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숭배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고 교육받아왔던 ‘김정일론’은 한마디로 불가사의한 사람 아니면,특별하고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왔다.그 고정관념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란 매우 신중하고도 객관적인 판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 셈이다. 그런 일이 어디 북한뿐인가.지난 날 선거 때마다 색깔론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려가며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던 김대중 대통령의 파란많은 인생 역정도 따지고 보면 꼭 같은 경우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에 손을 잡게 된 두 분 지도자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첫째 성씨가 김(金)씨에다,둘째 잘못된 인식과 평가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셋째 두 분 모두가 정치가로서는 드물게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깊다고 한다면 나의 독단일까. 인구 200만의 평양시민 가운데 60만명이 거리로 나와 우리에게 보내준 그정열.그것도 어린 학생들이 아닌 성인들이었고 설령 고위층의 지시로 동원된 환영 행사였을지라도 그 눈과 입과 손짓에서 발산하는 웃음과 눈물과 힘은진심이었을 것이다.그것마저도 의심한다면 우리는이미 화해와 통일을 의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믿어보자.우리의 믿음이 잘못되었을지언정 그것은 수치도 파렴치도 아니잖는가.지구상에서 가장 먼나라에 들어선 우리는 누구인가.무엇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가 하고 절절하게 읊었던 고은(高銀)시인의 말 그대로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약 40분동안 차창 밖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우측에 자리한 장상 총장은 우측을 향해서,좌측에 앉은 나는 좌측의 평양 시민들에게 그저 힘이 소진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것만이 나의 모든 정성이라고 믿었다. ◆주암산 초대소=우리 일행은 숙소로 안내를 받았다.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4시부터 있을 환영공연과 만찬회에 나가야 했다. 우리 특별수행원의 숙소는 ‘주암산 초대소’로 모란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거진 노송(老松)에 에워쌓인 곳에서 대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치는 천하에 자랑할 만 했다.화강석으로 구축된 2층 건물로 나의 객실은 1층 35호실로 응접실과 침실이 있는 스위트룸이었다.마루바닥은 융단이 아닌 왕골돗자리가 전면으로 깔려 있어 맨발의 촉감이 시원했다.그런데 그 공간이 어찌나 넓은지 혼자 지내기엔 약간 불안감을 줄 만큼 허전했다.냉장고 안에는과일과 음료수가,그리고 침실 화장대 옆 작은 원탁에는 차(茶)와 북한 특산의 세가지 술이 사이좋게 놓여있었다.마시고 싶으면 마음대로 마시라는 무언의 권유가 역력하니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소낙비 격이라고나 할까.호젓한 산사(山寺)에 들어선 나의 감회는 다시 한 번 술렁거렸다. “정말 내가 평양에 와있는가.이것으로 통일의 물꼬가 트인다고 믿어도 되는건가.55년 동안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지냈던 우리가 이렇게 쉽게손에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도 되는가.”◆신명나는 춤과 노래=오후 4시 우리는 모란봉 만수대예술극장으로 초대를받았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문화성’이 주최하는 예술공연이었다.북한의 음악이나 무용을 이미 여러차례 감상할 기회가 있었던 나로서는 그다지 기대가 가는 편은 아니었다.획일적이며 기계적이어서 한마디로 말해 판에박은 듯하다는 표현이 적당하리라. 그러나 이날 밤의 공연은 지금까지의 그것하고는 다른 모습으로 내 가슴을두들겼다.그 특징의 하나로 전통의 현대화이며 그것을 위한 창작성의 뛰어남이다.그것은 다음날 관람했던 학생소년예술소조 종합공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 있는 일관된 몸짓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만난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작위성이나 의도적인 역점은가시고 전통을 보다 친근하고 애착심을 가지게 했다.그 예가 민속음악의 재인식이다.아리랑,천안삼거리,옹헤야,노들강변,양산도,그리고 고향의 밤 등우리에게 친숙한 민요와 동요까지 재편곡한 연주는 자칫 잘못하면 치기로 전락될 수 있는 것을 성숙시킨 것이이다.전통악기의 개량도 성사시켰고 무용도 최승희의 기법에 바탕을 두되 서양발래나 중앙아시아의 민속무용의 기법을접목시켰다.그래서 그 기법은 체육에 가깝다는 폐단도 있고 춤 예술 이전에곡예적인 요인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예술이 누구를 위해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점에서 그것은 철두철미하게 관객을 위해 있고 관객과 혼연일체가되어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음악이나 춤이 관객에게 신명과 춤을안겨줘야 한다는 극히 상식적이고도 근원적 의미가 북한의 극장에는 뿌리내린지 오래다.정치적 이념도 그러하듯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것’을창작하는 일이다.서양의 그것에 물들거나 모방하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의 장점을 찾아내서 그것을 ‘우리 것’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체예술이 바로그들의 꿈이자 정체성일 게다. 나는 내가 지금껏 해왔던 작품세계와 나의 위상을 되돌아보면서 평양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그곳에도 별은 반짝이고 있었다.서울 하늘처럼 말이다. 車 凡 錫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극작가
  • 남북 화해시대/ 양승현기자 訪北記

    벅차오르는 설레임과 흥분,약간의 긴장감으로 뒤범벅이 된 첫 방북.특별수행원과 기자들을 태운 아시아나 항공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안착한 것은 정확히 13일 오전 10시20분.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내외와 공식수행원 일행보다남과 북을 잇는 ‘하늘길’을 9분 먼저 열었다. ◆순안공항 첫 취재의 행운/ 공항에 도착하자 수행원과 기자들이 항공기에서내릴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취재가 빡빡하겠구나’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가까스로 10인승인 작은 버스를 타고 환영행사장에 도착하니 김대통령의 전용기도 이미 안착해 있었다.그때서야 공항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조화(꽃술)를 손에 든 한복 차림의 수만 환영 인파들,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 바로 그 때였다.평양시민들의 떠나갈 듯한 함성과 함께 손에 든 조화가 세차게 흔들리면서 공항은 갑자기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아주 순식간이었다. 아직 김대통령이 탑승해 있던 전용기 앞문은 채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어,뭐지?’ 공항 입구 저편에서,한 150m 정도 됐을까,갈색 인민복차림에 퍼머머리를한 낯익은 사람의 뒷짐을 지고 카펫 위를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었다.환영인파의 ‘결사옹위,김정일’ ‘만세’ 소리에 느릿한 박수로 화답하는 여유를 보였다.이를 보자 평양 시민들은 발을동동 구르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예상깬 파격 의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생각으로 수첩에 적기 바빴다.혹시나 했지만,정부관계자 누구도 확인해 주지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그 때까지 출영 사실을 알지 못했다.‘기자로서 정말행운이구나’는 벅찬 감회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카펫 중앙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누구도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통상적인 공항 환영행사 때에 흔히 볼 수 있는 의전에 관해 조언하는 이조차 없었다.그는 유일한 중심이었고,그가 결심하고,판단하고,행동하는 그모든 것이 곧 의전이고 격식이며,관행이 되는 듯 했다.김위원장 스스로 표현했듯이 그는 ‘오랜 은둔생활’을 파격(破格)의 방식으로 청산하고 한국기자에게 처음으로 불과 1m50㎝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대중’ 연호는 없어/ 일부 언론에서 환영인파들이 ‘김대중’을 연호했던 것처럼 보도했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했다.그는 조금의 거침도,약간의 막힘도 없이 행동했다.시민들이 외쳐댄 ‘결사옹위’가 독특한 억양으로 ‘김대중’을 연호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켰을 뿐이다. 2박3일 평양 체류기간 내내 기자를 안내한 리윤철씨(38)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제가 담당하는 기자선생이 장군님을 처음 취재하고,악수까지 나눴다고 전해지면서 제가 우리 안내원들 사이에 으뜸이 됐습니다”고 했다.김위원장은 북측에 이러한 카리스마의 지도자다. 김위원장은 뒤에 우리측 인사에게 “내가 공항환영 행사에 나가는 것을 김용순비서가 말렸는데 나갔다.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주변에서 ‘빨간불’을켠다.내가 새 총으로 이 빨간불을 모두 깨트리면서 나갔다”고 말했다.기자의 첫 느낌은 ‘어릴 때부터 받은 지도자 수업이라는 게 정말로 무섭구나’였다. ◆초조한 기다림/ 14일 오후 목란관 만찬은 서울에서 궁중음식 재료를 공수,요리사 20명과 그릇만을 북측의 도움을 받아 김대통령이 초청한 자리였다.공식,특별 수행원들이 모두 와 있었다.이 때에도 오후 3시에 시작된 단독정상회담이 무려 3시간50분 동안 계속됐기 때문에 김위원장이 나올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기다린 지 10여분이 지난 오후 7시 외교부 의전담당자가 “김위원장이 오실 것같다”면서 “두 분이 나란히 여러분을 앞을 지나가시면 박수로 환영해달라”고 요청했다.7시5분 입구가 떠들썩해지면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예상을 깨고 김위원장은 일렬로 기다리던 우리측 수행원들을 보자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회담이 잘됐구나”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김정일위원장과 처음으로 악수/ 재빨리 특별수행원 사이로 끼어들었다.“대한매일 양승현기잡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힘찬목소리로 “반갑습네다”며 악수했다.기자가 서있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의아해하지 않았다.취재현장에서 기자로는 처음으로 그와 악수를 나누는 행운을얻은 것이다. 그의 손은 작은 편이었으나 손마디가 굵고 탄력이 느껴졌다.그는 만찬장도압도했다.‘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계를 설정해 놓고서는 자기식의 자유로움과 격의없음을 거침없이 표현했다.앞테이블에 앉은 양복 차림의 박재경장군 등 군장성들을 헤드테이블로 불러내 김대통령에게 직접 술을 따르게 하고,남측 특별수행원들이 권하는 술잔을 “여러 차례 마셨습니다”면서도 ‘원샷’이었다.옆자리의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고은(高銀) 시인의 ‘대동강 앞에서’라는 즉석 시낭송도 그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양승현 정치팀
  • 남북 화해시대/ 수행원이 전하는 평양소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수행한 130명의 공식·비공식 수행원들도 얘기 보따리를 한아름씩 들고 왔다.수행원들이 전해온 생생한평양 소식을 모았다. ◆만찬장서 자잣기 낭독 고은시인. 시인 고은씨(高銀·67·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는 15일 “북한도 이제까지의 대결구도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각성을 보여준 것 같았다”고 2박3일 동안의 방북소감을 밝혔다.이날 저녁 서울에 도착,청와대 연무관 뒷뜰에서 북한을 함께 다녀온 특별수행원들과 기념촬영으로 해단식을 대신한 뒤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그동안 남북 사이에 몇차례 합의서 작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의‘언어’로만 남았지 진전이 없었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이번 방북에서채택한 남북공동선언은 공존의 인식을 새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해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대동강 앞에서’라는 제목의 장시(전문32면)를 낭독하여 분위기를 숙연케 했었다.“시는 그날 아침에 쓴 것”이라면서 “당초에는 낭독할 계획이없었으나 시를 썼다는 사실을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가 좌중에서 얘기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동명왕릉을 방문했을 때 큰절을 올린데 대해서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우리 시조”라며 자신이 동명왕과 같은 고씨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환히 웃었다.특히 북한에 머무는 동안 사회문화단체를 총괄하는 김영대 민화협위원장 겸 사회민주당 위원장과 만났다고 소개하고 “그에게 ‘통합문학독본’같은 것을 만들어 남북이 함께 공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문학독본’을 만드는 공동작업의 가능성에는 “8·15 이산가족상호방문이 성과를 거두고 양쪽이 공명을 얻으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낙관하는 표정이었다.김정일위원장의 인상은 “처음 만났지만 생각과는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면서 “속에 있는 말을 결코 에두르지도,꾸미지도 않는 허심탄회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98년7월 보름 동안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고씨는 “그 때와 지금은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이번에는 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순간에 동참했다는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최학래(崔鶴來) 한국신문협회 회장. 한마디로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왔다.두 정상의 만남은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온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지난 90·98년 방북 때 주민들이 ‘천편일률’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던 반면,이번에는 그들 모두가 남측 인사들에게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대했다는 점에서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개인적으로는 남북간 언론교류의 물꼬를 틀 계기를 마련한 것이 최대의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측 언론 3단체(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가 계획한 남북간 언론교류 제안서를 북측 기자동맹에 전달했는데 곧 답변을 줄 것이라는 전언을 들었다. □이해찬(李海瓚)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국회 회담 재개 문제를 요청했었다.그때는 남북회담 합의문이나오기 전이어서 회담 결과가 나오면 대답하겠다고 했었다. 양형섭 부위원장과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노동당 쪽에서 협의해 회답을 주기로 약속했다.앞으로 의장단 선에서 서로 연락을 할 것이다.이번에 내가 방북한 것도 이만섭 국회의장의 남북 의회교류 당부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신문에 난 것처럼 활달하고 소탈했다.식량난 등 북쪽 사정이한결 나아짐을 느꼈으며 북 인사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성실했다.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 남북한 여성이 갈라진 한반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자고 다짐했다.또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환경운동 협력 등 여성교류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북한의 탁아소시설은 남한에 비해 너무나 잘 돼 있었다.덕분에 여성의 49%가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북한여성들이 너무나 활동적이고 일인다역을 당차게 해내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여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홍선옥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장,천연옥 여맹위원장은 자신의 힘으로 최고위치에 오른 유능한여성지도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 머리로만 생각하다가 직접 가서 보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양을 떠나오기 하루 전날인 15일 자정 청룡호텔에서 친척 2명을 극적으로상봉했다. 사업차 북한을 몇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가족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더라. 방북일정이 빠듯해 고향땅(평북 영변)엔 못갔다. 이제 이산가족 만남이 테이프커팅된 거나 마찬가지다.북한 경제인 대여섯명과 한차례 경제인 회담을 가졌다.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를 보았다. □김민하(金玟河)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머물렀던 2박3일은 감격과 영광의 연속이었다.북측 동포들을 만나보니 남북 통일에 대한 큰 희망과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철학이 가져온 진효(眞效)다.남북한 7,000만 동포는 물론 전 세계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측의 지도자들이 김 대통령의 통일 철학에 신뢰를 가졌다는 확신이들었다.작심하고 회담에 나온 것 같았다.대화 의지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서서히 화해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이완구(李完九)자민련 의원. 이번 평양 방문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내 생애 최대의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독의 브란트 전 총리가 말했듯원래 하나였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순안 비행장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뜨겁게 악수를 나눴던 순간은 마치 정지된 활동사진을 보는 듯했다.회담의 명칭은 남북정상회담이라기보다 가족상봉회담이라고 불렀어야 맞다.한 민족이라는 강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북측 인사들은 우리를 따뜻하고 정성어린 진심으로 환대했다.통일을 바라는 의지였다.그동안 북측에 가졌던 이미지는 모두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차범석(車凡錫) 예술원 회장. 55년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었다.서로 머리맞대면 실마리가 풀릴 일을 왜 그렇게 오래 먼길을 돌아왔는지 돌이켜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방북의 성과물은 ‘통일문학전집’ 발간이다.남북한 작가의 작품100권을 싣는 전집발간은 북측 민화협과 협의를 끝냈다.예정했던대로 2002년까지는 완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방북길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그것은 환영·환송식에나온 시민들의 열광적인 표정들이다.우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나는 그들의 눈물이 모두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이 만난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감격이었다.이번 정상회담은 끊어진 국토와 민족의 핏줄을 잇는 초석이 된 사건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어 파격적으로 환대했다.그동안 알려진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김 위원장은 대단히 이활하고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또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들어 있었다.평양시내는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으며 궁핍해 보인다는 인상은 느끼지 못했다.출발전 북한 역사학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으나 이번 일정이 너무 빡빡해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 □김재철(金在哲)무역협회 회장.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의 확실한 물꼬를 튼 것 같아 경제단체장의 한사람으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투자보장 및이중과제방지,분쟁조정절차 등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경제단체든 기업이든협력할 준비가 다 돼있음을 함께 확인했다.북한 관계자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남북 경협을 통해 강대국으로 거듭나자”고 말했다.특히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정운업(鄭雲業)회장은 남북경제협력공동위를 통해경제협력을 구체화시키자고 강조해 인상적이었다.앞으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구체적인 남북경협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 남북 화해시대/ 손병두 전경련부회장의 ‘평양 2박3일’

    6월13일 오전 9시48분. “지금 38도선을 넘는다”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38선을 넘는 게 사실인가? 꿈이 아니겠지…. 가벼운 흥분이일었다.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렸던 예술공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으나 베이징에서비자가 안나오는 바람에 취소된 적이 있어 이번에도 하루가 연기돼 걱정이앞섰던 터였다.38선을 넘었다는 얘기에 걱정이 일시에 사라졌다. 해안선을 따라 올라갔다.평양 순안공항에 접근할 때는 한창 모내기하는 북녘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경지정리가 자로 잰듯 했다.북녘 땅을 직접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순안공항에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연호하는 인파를보고 “이번엔 뭔가 결실을 맺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시인 고은 선생과 같은 조가 돼 한차를 타고 가며 차창 밖 연도의 시민들을 유심히보았다.그들의 얼굴에서 통일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겹겹이 병풍을 친듯 늘어선 연도의 인파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동승한 안내원은 “옛날 쿠바 카스트로나 캄보디아시아누크가 왔을 때도 이 정도는아니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숙소인 주암산(酒巖山)초대소에 여장을 풀었다.바위에서 술이 나왔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곳.부벽루와 대동강 능라도,을밀대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바로 점심을 먹고 만수대 예술극장을 찾았다.입구에서 ‘평양시 예술인들의 음악·무용종합공연’이라는 대형간판이 우리를 맞았다.아리랑,청산벌에 풍년이 왔다네,천안삼거리를 듣는 일행들의 얼굴은 숙연해져 있었다. 평양의 첫 날은 흥분과 감격속에서 보냈다. 다음날 인민학습당과 만경대소년궁전을 둘러본뒤 옥류관에서 냉면을 배부르게 먹고 ‘조선콤퓨터회사’를 찾았다.북한의 컴퓨터 기술수준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듯 했다.특히 회사를 충실히,샅샅이 보여준 데 감명을 받았다. 모든 것을 다 개방하고 솔직하게 서로 주고받자는 자세로 보였다. 이어 인민문화궁전에서 경제분야 회의를 가졌다.우리측 특별수행원 24명 중경제와 관련해 방북한 우리측 인사 10명과 북한측 경제관계자들이 얼굴을 마주했다.북측에서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 회장을 비롯,박동근 조국통일연구원 참사,정명선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김정혁 조국통일연구원 실장,박세윤 조선콤퓨터회사 총사장,조헌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연구원등이 참석했다.이렇게 남과 북의 다양한 인사들이 한자리에 앉은 것은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역시 처음이었다.북한의 정 회장이 먼저 인사말을 했다. “이렇게 만나게 돼 정말 기쁩니다.그동안 통일이 안돼 상호 재력의 낭비가심했습니다. 이제 사상과 제도를 초월해 각 부분의 발전을 기해야겠습니다. 민족통일을 위한 실제적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92년 기본합의 사항을 아직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민족의 객관적 기대와 요구를 저버린 것입니다.그이후 진행된 민간협력은 일부 시범사업에 불과합니다.세계 모든 민족이 힘을 강화하는 데 대결로 서로의 힘과 지혜를 합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이번 회담을 통해 민족의 교류협력으로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할 얘기가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해달라”라고 덧붙였다.김재철(金在哲) 무역협회 회장,이원호(李源浩) 중소기협 부회장과 참석인사들은 대체로남북 경제협력이 92년 합의한 기본 틀내에서 빨리 이뤄져야 하며 투자보장협정과 남북경제협력공동위 등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답했다. 내가 북측 인사들에게 말했다.“92년 기본 합의사항에 나와있는 남북경제협력공동위를 하루속히 설치해야 한다.투자보장 협정이나 이중과세 방지협정을비롯해 지적재산권 및 신분보장 등 속히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민간차원의 대북 창구문제는 우리측 경제단체들이 상의해서 북측과 대화채널을마련하겠다. 중국이 투자유치를 위해 대만기업을 우대하는 것처럼 남한기업에도 우대조치가 있어야 한다.북측이 지난번에 개정한 외자유치법에서도 남한기업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박동근 참사는 “남쪽에서는 남북관계 특수가 있다고 얘기되는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대통령이 평양에 오실 때 기업인을 많이 대동,구체적인 정리안을 갖고 계실 것으로 보이는데,그게 뭔지 얘기해달라”고 했다.그는 김재철 회장의 글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까지 알고 있을 만큼 우리 방북단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그날 저녁에는 역사적인 남북공동합의문 5개항 합의가 있었다.김정일 위원장은 방북단을 목란관으로 초대했다.국빈 대접을 위해 특별히 지은 곳으로 한쪽 벽에는 동해바다 물결위의 찬란한 일출이,반대편은 삼지연의 불붙는 듯한 일몰로 장식된,대단한 만찬장이었다.이날은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간 요리사들이 남쪽요리를 만들어 내왔다. 만찬은 화기애애하고 파격적인 만남의 장이었다.김정일 위원장이 일일이 잔을 돌리며 우리 기업인들과 건배를 했다. 마지막 날인 15일.오전에 평양에서 50㎞ 떨어진 닭공장 ‘동화협동농장’을찾았다.콤비나트 형태로 돼 있어 농장에서는 옥수수나 콩을 재배하고 사료를만들어 닭,오리,돼지,거위 등을 키우는 곳이었다.특히 최신설비가 갖춰져 사료 제조와 알 부화가 자동 처리되고 있었다.이곳은 김 위원장이 세번이나 와서 현장지도를 했을 정도로 현대화된 공장이다. 점심 때에는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 위원장이 식사를 베풀었다.김 대통령과김 위원장은 나를 비롯한 경제인들을 따로 불러 직접 술을 따라주고 건배를제의했다.“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잔을 부딪쳤다. 역사의 현장,평양의 2박3일은 파격이었다.남북관계가 진전되면 경제협력이한없이 확대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제인으로서 진한 감격을 느꼈고,그것은 햇볕정책이 거둔 결실이었다. 정리 김태균기자 windsea@
  • 남북 화해시대/ 당국간 대화 새달 본격화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남북간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양측경협당국간 대화가 다음달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 전문가들은 15일 남북한이 장관 또는 부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경제협력협의체를 구성,경협 대화를 곧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간 경제협력협의체로는 기본합의서에 따라 92년에 설치된 경제교류공동위원회(위원장 재정경제부 차관)가 있다.하지만 당국간 협의는 곧바로 이중과세방지협정 같은 서명작업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장관급으로 격상될공산이 크다.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서고 관련부처 차관들이 대표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재경부의 북한측 파트너는 계획경제를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 박남기).경제협력협의체 아래는 분야별 실무분과위가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간 경협 논의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로 모아진다.민간의 경협을 활성화하는 정부차원의 제도적 인프라 구축,당국이 직접 나서 해결할 일과 민간협력 활성화 지원방안이다.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 방지협정,청산결제 방식,분쟁조정절차 같은 제도적인프라는 민간차원의 경협을 북돋우기 위해 시급한 과제다.남측이 정상회담과정에서 경협의 양축인 투자보장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의 세부적인 방안까지북측에 제시했고,서로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남북 대표는 빠르면 이달말이나 다음달쯤에는 서울 또는 평양에서협정문안에 서명할 가능성이 높다.협정 체결은 외교부장관의 몫이지만 남북간 특수관계 때문에 재경부나 통일부장관이 맡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조세제도가 없는 북한과 어떤 형태로 이중과세방지 협정을 체결할지도 관심거리다. 정부 당국끼리 해결할 일은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이다.북한의 전력난 해결은 하루가 급한 과제로 꼽힌다.특히 북한의 송배전 시설은 적잖게 상해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로망 건설,경의선 철도 복원 같은 민족경제의 대동맥을 잇는 사업도 벌여나가야 한다.서울과 평양간 항공로와 해로 등의 육·해·공 교통망 연결도협의대상이다. 남북 당국은 남측 기업들이 갖고 있는 투자 프로젝트들이 차질없이 시행되도록 지원하는 일도 맡을 것이다.무분별하고 경쟁적으로 진출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민족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 [마음은 북녘 고향에] (1)평양 경제리 출신

    ‘몸과 마음은 이미 고향에.’북녘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온 응어리는 한순간에 녹아내린다.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실향민들은 대동강변에서 멱감던 시절부터 떠올리며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다.고향땅을 눈앞에 둔 실향민들의 벅찬 감회를시리즈로 싣는다. “이곳이 바로 내가 놀던 을밀대(乙密臺)야.지금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을게야.” 실향민 최선익(崔善翌·83·경기도 일산시 장항동)씨와 나용호(羅容浩·70)씨는 15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지난 세월 고향 방문에 대한 열망과 가슴이 찢어지는 실망이 수없이 오갔으나 이번처럼 마음이 설렌 적은 없었다.남북의 두 정상이 맞잡은 손을 번쩍들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은 ‘이제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이날 서울 마포구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만난 최씨와 나씨의고향은 평양시 대동강변에 자리잡은 경제리.마을어귀에는 대동강이 흐르고뒤편에는 모란봉이 우뚝 서 있다. 두 사람은 13살 차이로 월남하기 전에는 모르는 사이였다.하지만 월남한 뒤 이북도민회 평양시민회 사무실에서 만나 20여년을 형·아우로 지내며 의지하고 있다. 어릴적 대동강가에서 ‘동무’들과 멱을 감고 모래찜질을 하며 모란봉 입구에서 ‘헤이따이 고꼬’(병정놀이)를 하던 추억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두 사람은 모란봉 입구로 향하는 신작로를 건너 평안남도 도청 옆에 있던 평의고등중학교를 다닌 선후배 사이다.나씨는 “일전에 TV에서 동문인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가 나왔는데 북한을 방문,학교를 찾았으나 학교는 흔적도 없고 교정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만 길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고 하더라”면서먼산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최씨는 “그래도 대동강과 모란봉은 옛 모습 그대로 일 것”이라고 나씨를 달랬다. 최씨는 건축기사로 일하던 지난 46년 29살의 나이로 단신 월남했다.나씨는김일성대학 영문과를 다니다 51년 1·4후퇴때 남쪽으로 넘어왔다.두사람 모두 ‘평양에서 살 수 없는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평양시민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나씨는 북에 남았던 부모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른다.그러나 부모 형제보다는 시민회 일을 더 걱정한다.나씨는 “시민회에 등록된 실향민은 10만3,000여명”이라면서 “이번 광복절까지 미등록된 평양시민을 모두 찾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해질 녘 대동강변에서 모란봉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전 마지막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꿈이 이뤄질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고은 시인『대동강 앞에서』

    무엇하려 여기 왔는가 잠 못 이룬 밤 지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리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릿벌을 바라본다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구천을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그때까지는 시퍼렇게 살아날 민족의 엄연한 씨앗이리라 오늘 아침 평양 대동강 가에 있다 옛 시인 강물을 이별의 눈물로 노래했건만 오늘 나는 강건너 바라보며 두고 온 한강의 날들을 오롯이 생각한다 서해 난바다 거기 전혀 다른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한다 해가 솟아오른다 찢어진 두 동강 땅의 밤 헤치고 신새벽 어둠 뚫고 동트는 아픔이었다 이윽고 저 건너 불근 솟아오른 가멸찬 부챗살 햇살 찬란하게 퍼져간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지난 세월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이었고 서로 다른 노래 부르며 나뉘어졌고 싸웠다 그 시절 증오 속에서 5백만의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 시절 강산의 모든 곳 초토였고 여기저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가 천지하고 있었다 싸우던 전선이 그대로 피범벅 휴전선이었다 총구멍 맞댄 철책은 서로 적과 적으로 담이 되고 물이되어 그 울안의 하루하루 길들여져 갔다 그리하여 둘이 둘인 줄도 몰랐다 절반인 줄도 몰랐다 둘은 셋으로 넷으로 더 나뉘어지는 줄도 몰라야 했다 아 장벽의 세월 술은 달디 달리라 그러나 이대로 시멘트로 굳어버릴 수 없다 이대로 멈춰 시대의 뒷전을 헤맬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였다 천년 조국 하나의 말로 말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였다 하나의 심장이었고 어리석음까지도 하나의 지혜였다 지난 세월 분단 반세기는 골짜기인 것 그 골짜기 메워 하나의 조국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아침 대동강 강물에는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내일이 흘러가리라 그동안 서로 다른 것 분명할진대 먼저 같은 것 찾아내는 만남이어야 한다 큰 역사 마당 한가운데 작은 다른 것들은 달래는 만남의 정성이어야 한다 얼마나 끊어진 목숨의 허방이었더냐 흩어진 원혼들의 흔적이더냐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의 민족이란 지난 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온갖 오류 온갖 야만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전혀 새로 민족의 세상을 우러러보며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새로운 통일인 것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눈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 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얼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송이 꽃들고 돌아간다. 고은 시인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 이 시를 14일 밤 평양 목란관의 김대중대통령주최 만찬 석상에서 직접 낭송했다.
  • 남북 정상회담/ 북한 접대음식 요리법

    요리솜씨는 남에선 전라도요,북에선 평안도를 최고로 친다.북한음식은 양념을 많이 안써 담박한 맛이 특징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첫날인 13일.영빈관내 숙소에서 김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함께 한 점심식사에는 깨즙을 친 닭고기와 생선전,남새튀김,청포종합냉채,설기떡,풋배추김치,평양온반,맑은국,쏘가리깨튀기,옥돌불고기,새우남새볶음,밤정과,인삼차 등이 나왔다.박준영 대변인은 김대통령이 식사후 “북측이 준비한 음식이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면서 “특히 닭국물에 밥을 말아서 만든 평양온반이 담백하고 맛있었다”고 말했다고전했다. 이날 오후7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만찬은 칠면조 향구이,생선수정묵과 냉채,삼지연 청취말이쌈,쑥송편,약밥,쇠고기굴장즙,칠색송어구이,잣죽,백두산들쭉크림,인삼차 등 모두 15가지 메뉴로 이뤄졌다.이중 메추리완자탕인 ‘륙륙날개탕’은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이 당초예정된 6월12일 남북정상회담을기념하기 위해(6+6=12) 직접 이름을 지은 요리로 알려졌다. 북한의 귀빈음식으로는 이밖에도 우족과 소꼬리,소힘줄 등을 삶아 만든 ‘소발통묵’과 평양 대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숭어에 후추를 넣어 끓인 영양만점의 ‘대동강 숭어국’등이 유명하다.북한의 조선요리협회가 펴낸 ‘이름난평양음식’에서 평양온반과 청포종합냉채를 소개한다. ◆평양온반흰쌀밥에 녹두지짐과 닭뼈,버섯 등의 꾸미를 놓고 따끈한 국물을 부어먹는영양가 높고 입맛이 산뜻한 음식으로 잔치때나 명절에 별식으로 먹는다. ◆재료 쌀 600g,녹두 150g,닭뼈 250g,닭고기 200g,마른버섯 150g,파 50g,마늘 30g,소금 5g,간장 30g,참기름 20g,참깨 2g,돼지기름 10g,달걀지단 실고추약간,양념장 30g◆만들기 ①쌀은 깨끗이 씻어 되직하게 밥을 지어 놓는다 ②냄비에 닭뼈를넣고 1시간정도 끓이다가 닭고기를 넣어 30분정도 더 끓인다.고기는 건져서보기좋게 찢어 양념장에 무쳐 놓으며 국물은 받아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맞춘다 ③마른버섯은 물에 불려 잘게 찢어서 물을 꼭 짠 다음 참기름에 볶다가 엇썬 파와 다진 마늘,간장으로 버무린다 ④녹두는 타개 3∼4시간 물에 불궜다가 껍질을 벗기고 보드랍게 갈아 소금과 다진 파를 넣고 돼지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5∼6cm크기로 노르스름하고 얄팍하게 지진다 ⑤그릇에 따끈한밥을 담고 그 위에 닭고기와 버섯,녹두지짐을 놓은 다음 지단,실파, 실고추를 얹으며 국물을 꾸미가 잠기지 않을 정도로 붓고 참깨를 뿌려낸다◆청포종합냉채청포묵을 쇠고기,미나리,오이와 함께 초간장 양념으로 상큼하게 무친 찬음식이다.비만,고혈압을 막는 건강장수 음식이며 더위를 막는데 특효가 있다. ◆재료 청포묵 400g,쇠고기 100g,오이 100g,녹두나물 100g,미나리 100g,김 3g,간장 10g,참깨 3g,참기름 5g,파 10g,마늘 5g,설탕 5g,식초 10g,붉은고추 40g◆만들기 ①쇠고기는 가늘게 썰어 여러가지 양념으로 밑맛을 들인뒤 기름을두른 후라이팬에 센불로 볶다가 자분자분하게 물을 붓고 간이 들 때까지 한소끔 끓인다 ②청포묵은 납작하게 썰어 초간장에 무치며 오이는 가늘게 썬뒤소금을 뿌렸다가 물기를 짜 살짝 볶는다.붉은고추는 굵게 채썬다 ③녹두나물과 미나리는 5cm길이로 잘라서 데친다음 소금,식초,설탕,참기름,참깨로 무치며 김은 적당한 크기로 썰어 참기름에 살짝 볶는다 ④접시에 준비해놓은청포묵과 나물,붉은고추,쇠고기를 보기좋게 놓은 다음 김과 참깨를 뿌려낸다허윤주기자 rara@
  • [외언내언] 평양온반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주석이 생존했을 때인 90년대 초 평양을 다녀온 인사가 전해준 이야기다.김주석은 남한의 주요인사와 식사를 할 때는 ‘언감자깨국수’라는 ‘특식’을 대접했다.그리고 만주 등지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을할 때 먹던 음식이라는 설명을 반드시 곁들였다.“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보니 들판에 널려 있는 감자가 주식이었다.그러나 추운 날씨 때문에감자가 얼어 먹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궁리 끝에 언 감자를 으깨 가루를내 국수로 만들었다. 여기에 깨를 뿌려 맛을 냈고 이를 언감자깨국수라고 불렀다.옛 생각이 날 때는 간혹 먹는다”이같은 설명에는 빨지산 투쟁 경력을내세워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방북인사는 말했다. 음식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나 생각이 담겨 있다.김주석의 설명처럼 사연 있는 음식도 많다.무엇보다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남한의 음식은 북한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짜다.더운 날씨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14일에는 평양냉면으로 유명한옥류관에서 오찬을 하는 등 다양한 북한음식을 맛보고 있다. 평양음식은 담백한 편이다.대표적인 것으로는 평양냉면과 더불어 대동강숭어국,평양온반과평양어죽 등이 꼽힌다. 평양어죽은 이름만 그럴 뿐,물고기가 아닌 닭고기를끓여 만든다.김대통령은 지난 13일 오찬 때에는 닭고기로 만든 평양온반을들었다.평양온반은 쇠고기나 닭고기를 삶아 만든다.한마디로 곰탕과 비슷하다.그러나 삶은 고기를 건져내 손으로 찢어 양념으로 버무린 뒤 국물에 넣어먹는다는 점에서 다르다.녹두지짐과 버섯볶음, 다진 파와 실계란 등을 꾸미로 넣는다.평양온반에 대한 김대통령의 소감은 “담백하고 좋았다”였다. 정원식(鄭元植)적십자사총재가 92년 국무총리 시절 남북고위급회담 참석을위해 평양을 방문,김주석과 식사를 할 때도 평양온반은 화제가 됐었다.평양이 고향인 정총리는 당시 평양온반을 쇠고기로도 만드는 것으로 기억한다고했지만 김주석은 닭고기로 만든 평양온반만을 얘기했다고 한다.북한에서는이제 평양온반하면 닭고기로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남한의 평양 출신 실향민들은 쇠고기 온반도 집에서 만들어 즐겨 먹는다. 남한에서 평양온반을 취급하는 음식점은 서울 강남의 옥류관이다.김대통령이 맛있어 했다는 보도에 14일 낮부터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 100그릇 이상이 팔렸다는 소식이다.남북정상회담 바람을 타고 ‘북한특수’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모두에게 즐거운 일이다. 김명서 논설위원. @
  • 金대통령 만찬사 요지

    존경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남 위원장,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남과 북의 지도자 여러분!김정일 위원장과 저는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습니다.이제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화해와 협력과 통일에의희망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오늘 역사적인 정상간 합의를 도출하는데 적극적으로 인도해 주신 김정일 위원장과 여러분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출발점에 섰습니다.그동안 쌓였던 불신을 털어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남과북이 전쟁의 재발을 막고,상대방을 해치지 않으며,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3대 원칙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습니다.그것만이 7,000만 우리 민족이통일로 향하는 가장 탄탄하고 효과적인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이래 우리 민족 전래의윤리에 따라 3년상을 치른 그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였습니다.그리고 정치적안정을 이룩하고 대외관계와 경제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고자 서로 힘을 합칠 것을제의하는 바입니다.앞으로 남북간에 협력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우리 두 사람과 책임있는 당국간의 지속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지속적인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 서로 이해를 넓히고 믿음을 쌓아가면 협력 또한확대될 것입니다. 드디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평화가 가득차고 한강과 대동강에서 번영의물결이 넘칠 것입니다.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통일이 올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민족 스스로 열어 나갈 수 있다고말입니다.우리 민족은 이제 불신과 적대감을 버리고 화해와 협력을 선택하는지혜와 용기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한 남과 북에서 애타는 심정으로 재결합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가까운 시일 안에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인도적인 결단도 우리는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6월이라는 달이 민족의 비극이 아닌 내일에의 희망의 달로 역사에기록되어야겠습니다.그리하여 이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우리 후손들에게도 가장 자랑스러운 달로 기억돼야 하겠습니다.
  • 남북 정상회담/ 5개항 합의 전문가 분석

    14일 남북정상들의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졌다.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은 이번합의가 한반도 냉전해체와 남북간 화해·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합의 자체가 포괄적이라 실천 과정에서 문제들이 발생할 수있다”는 일부 우려도 있었다. ■황태연(黃台淵)동국대 교수/ 90년대 남북기본 합의서에 거론됐던 남북간 화해와 통일은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했다.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우리를 환대해주는 수위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문제 접근 방식 등으로미뤄볼 때 과거 합의서의 수준보다 훨씬 진척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은 남북간 화해와 통일을 뒷받침하는 중요 의제다.다른분단 국가의 경우 긴장 문제만 언급되는 수준이나 남·북한은 전쟁을 격은나라인 만큼 평화문제를 근본 문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의제로 합의된 것은 역사적인 전환점의 상징이다.이산가족 상봉은 기타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전제다.남북 양측의 대북·대남 정책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경제 등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은 이번 합의에서 알맹이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전제와 기본 문제들이 원만히 처리되면 지금까지 소규모나 단발적으로 진행되던 남북한 교류가 획기적으로 확대·심화되는 기대를 담을 수 있게 된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부차관/ 전체적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평가하자면 55년만에 남북정상이 만났다는 상징적 의미와 외형적으로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시켰다는 점을 꼽고 싶다.향후 남북협력 사업을 진행하는데 적지않은 자산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이 합의한 4개항은 내용면에서 보면 너무나 ‘포괄적’이며구체성이 결여됐다. 앞으로 이를 실현하는데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예비접촉에서 남북이 합의한 내용과 비교해 대동소이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명기,합의한 것은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측의 뜨거운 영접은 있었지만 앞으로 남북 합의사항을 실천하는데 상당한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리라 본다. ■김재한(金哉翰) 한림대 교수/ 남북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은 지난 91년에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비교할 때 내용과 실현 가능성에서 다소 발전된 형태라고 본다.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의 두 정상이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남북간 화해와 통일은 남북 양측의 공동목표라는 것을 재삼 확인시켜 줬다. 특히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경우 지난 합의서가 소극적 의미의 무력충돌 방지에 머물렀다면 이번엔 평화모색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담겨있다. 또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교류협력의 한 부문이었던 것을 별도 의제로 취급했다.그동안 이산가족문제를 꺼려 했던 북측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입증한다.상호 접촉이 전무했던 과거에는 교류협력이 선언적 의미에 그쳤던 반면 경제협력 등 남북간 민간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에는 실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홍지선(洪之璿)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북한실장/ 두 정상의 합의는체제가 다른 남북한이 경제통합 이전단계인 경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길을 닦은 것이다.남북 경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수송분야에서 우선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전력난을 해결하고 농업기반을 확충하는데필요한 지원도 이뤄져야 명실상부한 경협이 가능할 것이다. 이중과세방지협정 같은 남북간 경협제도를 마련하면서 우리 내부의 많은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복잡하고 이중으로 돼 있는 사업자승인 방식도 고쳐야한다.대북 투자는 그동안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했던 측면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기업체의 판단과 수익성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북한에 동반 진출하는 방식이 바람직스럽다. 북한 특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남북경협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북한 경제재건에 모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