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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李容弼(서울대 명예교수·전 한국국민윤리학회장)씨 별세 恩載(이화여대 강사)씨 부친상 22일 오후 8시30분 서울대병원,발인 26일 오전 9시 (02)760-2014 ●郭光秀(서울대 교수)光先(이베스트카드 상무)씨 부친상 朴恩正(서울대 교수)鄭惠心(부명정보산업고 교사)씨 시부상 23일 오전 2시37분 서울대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760-2022 ●朴慶緖(전 국민카드 감사)씨 별세 贊憲(전 국민카드 차장)씨 부친상 吳明勳(한라콘크리트 상무)金相敦(LG전자 상무)씨 빙부상 22일 오후 9시1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1 ●金河哲(대한출판 관리이사)씨 별세 聲雨(한양증권 차장)聖翰(동일빌딩 관리총무)씨 부친상 金燾鎭(서버클릭 대표)씨 빙부상 22일 오후 1시30분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4일 오전 10시 (02)2290-9458 ●尹珍秀(동운컴퓨터 대표)賢秀(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교수)根秀(아울렛DC백화점 대표)씨 부친상 22일 오후 7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24일 오전 7시 (02)958-9546 ●錢吉源(법만사 주지)幾源(자영업)씨 모친상 23일 오전 5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958-9552 ●李有斌(호롱무역 대표)讚斌(대우건설 부장)씨 부친상 22일 오후 10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30분 (02)392-1099 ●韓白三(백삼관광 사장)씨 모친상 23일 오전 1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10시 (02)392-2099 ●李昌燮(전 국민은행 지점장)明燮(주일본 한국대사관 공보관)昇燮(헤럴드경제 생활경제부장)씨 모친상 23일 오전 8시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590-2557 ●秋碩煥(자영업)明煥(미국 거주)씨 모친상 權起遠(성균관대 교수)朴任東(신세계건설 상무)씨 빙모상 22일 오후 4시 서울대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 (02)760-2035 ●朴琮煥(대우증권 동래지점장)씨 부친상 22일 오후 7시 부산 대동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51)550-9951 ●李忠善(전 쌍용 사장·전 효성물산 사장)씨 상배 河元(쌍용건설 차장)씨 모친상 李柱益(보람영화사 대표)씨 빙모상 23일 낮 12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8 ●張埰一(서울신문 문화사업국 팀장)埰燮(대전의료소년원 직원)珉準(박범계법률사무소 사무장)씨 부친상 鄭鍾根(자영업)씨 빙부상 23일 오후 4시5분 대전 중촌동 평화원장례식장,발인 25일 오전 6시30분 (042)221-4068 ●金在斗(서울신문 총무국 시설관리부 전기팀 주임)在石(자영업)씨 부친상 23일 오전 9시 전남 보성군 용산리 침동마을 자택,발인 25일 오전 10시 (061)853-6224 ●車光雄(전 서울지법 부장판사)씨 별세 朴光範(SBS 아나운서)金榮錫(삼성전자 해외영업부 과장)씨 빙부상 23일 오전 5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10시 (02)3410-6903
  • [부고]

    ●李容弼(서울대 명예교수·전 한국국민윤리학회장)씨 별세 恩載(이화여대 강사)씨 부친상 22일 오후 8시30분 서울대병원,발인 26일 오전 9시 (02)760-2014 ●郭光秀(서울대 교수)光先(이베스트카드 상무)씨 부친상 朴恩正(서울대 교수)鄭惠心(부명정보산업고 교사)씨 시부상 23일 오전 2시37분 서울대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760-2022 ●朴慶緖(전 국민카드 감사)씨 별세 贊憲(전 국민카드 차장)씨 부친상 吳明勳(한라콘크리트 상무)金相敦(LG전자 상무)씨 빙부상 22일 오후 9시1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1 ●金河哲(대한출판 관리이사)씨 별세 聲雨(한양증권 차장)聖翰(동일빌딩 관리총무)씨 부친상 金燾鎭(서버클릭 대표)씨 빙부상 22일 오후 1시30분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4일 오전 10시 (02)2290-9458 ●尹珍秀(동운컴퓨터 대표)賢秀(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교수)根秀(아울렛DC백화점 대표)씨 부친상 22일 오후 7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24일 오전 7시 (02)958-9546 ●錢吉源(법만사 주지)幾源(자영업)씨 모친상 23일 오전 5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958-9552 ●李有斌(호롱무역 대표)讚斌(대우건설 부장)씨 부친상 22일 오후 10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30분 (02)392-1099 ●韓白三(백삼관광 사장)씨 모친상 23일 오전 1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10시 (02)392-2099 ●李昌燮(전 국민은행 지점장)明燮(주일본 한국대사관 공보관)昇燮(헤럴드경제 생활경제부장)씨 모친상 23일 오전 8시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590-2557 ●秋碩煥(자영업)明煥(미국 거주)씨 모친상 權起遠(성균관대 교수)朴任東(신세계건설 상무)씨 빙모상 22일 오후 4시 서울대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 (02)760-2035 ●朴琮煥(대우증권 동래지점장)씨 부친상 22일 오후 7시 부산 대동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51)550-9951 ●李忠善(전 쌍용 사장·전 효성물산 사장)씨 상배 河元(쌍용건설 차장)씨 모친상 李柱益(보람영화사 대표)씨 빙모상 23일 낮 12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8 ●張埰一(서울신문 문화사업국 팀장)埰燮(대전의료소년원 직원)珉準(박범계법률사무소 사무장)씨 부친상 鄭鍾根(자영업)씨 빙부상 23일 오후 4시5분 대전 중촌동 평화원장례식장,발인 25일 오전 6시30분 (042)221-4068 ●金在斗(서울신문 총무국 시설관리부 전기팀 주임)在石(자영업)씨 부친상 23일 오전 9시 전남 보성군 용산리 침동마을 자택,발인 25일 오전 10시 (061)853-6224 ●車光雄(전 서울지법 부장판사)씨 별세 朴光範(SBS 아나운서)金榮錫(삼성전자 해외영업부 과장)씨 빙부상 23일 오전 5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10시 (02)3410-6903˝
  • [길섶에서] 光海를 논죄함/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수상한 시절,남양주 광해군묘 어름을 지나다 문득,그의 죄를 생각한다.그는 강상(綱常)의 규율을 범한 패륜 군주였다.대북파의 비호로 등극해 형제인 임해군과 영창대군,능창군을 차례로 죽이고 인목대비까지 폐위시켰다.나중에 인조반정으로 복위한 인목대비는 이렇게 광해를 논죄했다.“…위로 하늘에 죄를 얻고,아래로 만백성에게 원수를 맺어,죄악이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 백성의 부모로서 왕위에 거하여 종묘사직의 신령을 받들 수 있으랴.” 그러나 그가 저지른 정말 치명적인 죄는 ‘대국’ 명나라를 올곧게 섬기지 않은 일이었다.중립외교라며 오랑캐인 후금에 손을 내밀고,굶주린 백성을 살려내자며 대동법까지 시행했으니 사대주의와 축재에 찌든 당대의 기득권자들이 어찌 그를 용납했을 것인가. 오늘,새삼 광해를 논죄하는 것은,그가 자초한 반정이 삼전도의 치욕을 낳았기 때문만은 아니다.조선 역사를 능히 100년은 거꾸로 돌렸다는 그 반정이 임진왜란으로 피폐한 백성의 가슴에 얼마나 아픈 못으로 박혔겠는가.역사는 원형대로 되풀이되지 않는다지만,그때와 너무 흡사한 탄핵정국을 보며 절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 儒林(52)-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1519년 11월 17일. 마침내 죄인 조광조의 유배행렬은 황급히 한양을 출발하였다. 조광조를 능주까지 압송하는 나장들은 의금부 소속의 사령들이었는데,그 숫자가 여섯 명에 이르는 삼엄한 행렬이었다.이들의 임무는 조광조를 유배지 능주까지 압송한 후 고을수령에게 인도하는 일이었다.특히 의금부 소속의 나장들은 납패( 牌)를 차고 있었는데,이들은 다른 나졸들과는 달리 군기가 세고 권위를 갖고 있었다. 조광조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책에 둘러싸여서 이송되고 있었는데,조광조를 알아본 수많은 백성들이 다투어 다가와 통곡하였으며,이때마다 나장들은 손에 든 주장으로 이들을 쫓아 버리곤 하였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조광조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그들은 조광조가 실시하였던 향약(鄕約)에 대한 소문들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약은 문자 그대로 동네주민들 사이의 생활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향약은 주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증손여씨향약(增損呂氏鄕約)’에서 비롯되었다.중국 북송말기 남전(藍田)에 살고 있던 여대방(呂大防)형제가 가문의 약속으로 만든 ‘여씨향약(呂氏鄕約)’이 그 모체였다.이 향약의 약조는 대충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그 하나는 덕업상권(德業相勸)으로 효도와 미덕 등 덕 있는 일을 서로 권하는 것과 그 둘째는 과실상규(過失相規)로 잘 못하는 일을 서로 바로잡는 것이며,셋째는 예속상교(禮俗相交)로 예절을 다하여 서로 사귀기를 가르치는 것이며,그 넷째는 환난상휼(患難相恤)로 화재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서로 돕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이는 백성들의 풍속을 순화시키고 상호부조하게 하는 일종의 지방자치단체의 협약이었던 것이었다.조광조가 향약을 실시한 것은 이와 같이 작은 규모의 풀뿌리 자치행정에서부터 그가 생각하는 혁신정치를 실현시킴으로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기풍을 불러오기 위함이었다. 이미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건국하면서 이 향약을 중시하여 태조 주원장 때부터 전국을 200∼300호의 가구로 분할하여 향약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조광조는 미신타파와 아울러 백성들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향약의 점진적 확대를 주장하였으며,그리하여 지난 10월에는 향약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할 것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광조가 실시하였던 향약은 백성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백성들은 향약을 통해 자신들이 국가의 주체이며,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자부심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김육(金堉)은 그가 쓴 ‘기묘록(己卯錄)’에서 조광조의 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송하고 있다. “조정암이 정치를 맡았던 1년 동안에 향약을 통해 시중소민들은 그 부모를 잘 섬기고,자식을 정성껏 기르며,장사(葬事)에는 깊이 애통하여 3년 복을 입고,군졸이나 천한 사람들까지 시묘(侍墓)하고 제사에 위패를 모시고 묘에 비를 세우게 되었다.만약 조정암의 행적이 수년간 계속되었더라면 풍속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이 대동법을 만들어 충청도에서 이를 시행하여 지방자치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김육의 표현대로 시중소민(市中小民),즉 백성들은 조광조가 펼친 향약에 대해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따라서 조광조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조광조가 하루아침에 죄수가 되어 유배를 떠난다는 소문이 떠돌자 너나할 것 없이 수많은 백성들이 조광조의 행렬을 찾아 울며 애통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광조를 호송하는 나장들은 격리시키기 위해서 주장을 들고 위협하거나 때리기도 하였지만 구름처럼 모여드는 백성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광조의 유배를 슬퍼한 사람들은 백성들 뿐만이 아니었다. 성균관도 들고 일어선 것이었다.조광조 등이 옥에 갇혔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제일 먼저 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이 바로 성균관의 유생들이었던 것이다.˝
  • 儒林(52)-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52)-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1519년 11월 17일. 마침내 죄인 조광조의 유배행렬은 황급히 한양을 출발하였다. 조광조를 능주까지 압송하는 나장들은 의금부 소속의 사령들이었는데,그 숫자가 여섯 명에 이르는 삼엄한 행렬이었다.이들의 임무는 조광조를 유배지 능주까지 압송한 후 고을수령에게 인도하는 일이었다.특히 의금부 소속의 나장들은 납패( 牌)를 차고 있었는데,이들은 다른 나졸들과는 달리 군기가 세고 권위를 갖고 있었다. 조광조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책에 둘러싸여서 이송되고 있었는데,조광조를 알아본 수많은 백성들이 다투어 다가와 통곡하였으며,이때마다 나장들은 손에 든 주장으로 이들을 쫓아 버리곤 하였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조광조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그들은 조광조가 실시하였던 향약(鄕約)에 대한 소문들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약은 문자 그대로 동네주민들 사이의 생활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향약은 주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증손여씨향약(增損呂氏鄕約)’에서 비롯되었다.중국 북송말기 남전(藍田)에 살고 있던 여대방(呂大防)형제가 가문의 약속으로 만든 ‘여씨향약(呂氏鄕約)’이 그 모체였다.이 향약의 약조는 대충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그 하나는 덕업상권(德業相勸)으로 효도와 미덕 등 덕 있는 일을 서로 권하는 것과 그 둘째는 과실상규(過失相規)로 잘 못하는 일을 서로 바로잡는 것이며,셋째는 예속상교(禮俗相交)로 예절을 다하여 서로 사귀기를 가르치는 것이며,그 넷째는 환난상휼(患難相恤)로 화재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서로 돕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이는 백성들의 풍속을 순화시키고 상호부조하게 하는 일종의 지방자치단체의 협약이었던 것이었다.조광조가 향약을 실시한 것은 이와 같이 작은 규모의 풀뿌리 자치행정에서부터 그가 생각하는 혁신정치를 실현시킴으로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기풍을 불러오기 위함이었다. 이미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건국하면서 이 향약을 중시하여 태조 주원장 때부터 전국을 200∼300호의 가구로 분할하여 향약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조광조는 미신타파와 아울러 백성들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향약의 점진적 확대를 주장하였으며,그리하여 지난 10월에는 향약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할 것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광조가 실시하였던 향약은 백성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백성들은 향약을 통해 자신들이 국가의 주체이며,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자부심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김육(金堉)은 그가 쓴 ‘기묘록(己卯錄)’에서 조광조의 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송하고 있다. “조정암이 정치를 맡았던 1년 동안에 향약을 통해 시중소민들은 그 부모를 잘 섬기고,자식을 정성껏 기르며,장사(葬事)에는 깊이 애통하여 3년 복을 입고,군졸이나 천한 사람들까지 시묘(侍墓)하고 제사에 위패를 모시고 묘에 비를 세우게 되었다.만약 조정암의 행적이 수년간 계속되었더라면 풍속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이 대동법을 만들어 충청도에서 이를 시행하여 지방자치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김육의 표현대로 시중소민(市中小民),즉 백성들은 조광조가 펼친 향약에 대해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따라서 조광조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조광조가 하루아침에 죄수가 되어 유배를 떠난다는 소문이 떠돌자 너나할 것 없이 수많은 백성들이 조광조의 행렬을 찾아 울며 애통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광조를 호송하는 나장들은 격리시키기 위해서 주장을 들고 위협하거나 때리기도 하였지만 구름처럼 모여드는 백성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광조의 유배를 슬퍼한 사람들은 백성들 뿐만이 아니었다. 성균관도 들고 일어선 것이었다.조광조 등이 옥에 갇혔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제일 먼저 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이 바로 성균관의 유생들이었던 것이다.
  • [盧탄핵안가결-국정운영] 본회의장 시간대별 상황

    ●12일 새벽 3시50분 탄핵안 가결의 단초는 새벽에 마련됐다.3시50분쯤,한나라당 홍사덕,민주당 유용태 총무는 ‘와’ 소리와 함께 소속 의원 20여명을 이끌고 본회의장으로 돌진했다.의장석 주변에서 모포 등을 깔고 자고 있던 여당의원 20여명을 제치고 의장석 주변 자리의 절반을 차지했다.잠에서 깨어난 우리당 의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으며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6시 불안을 느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찾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할테니 탄핵안을 철회해 달라.”라고 요청했다.최 대표는 “이미 시한이 지났다.”라고 거절했다. ●9시5분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11시5분 박관용 의장이 정문을 통해 본회의장에 등장했다.질서유지권을 발동,경위들을 대동했다.동시에 본회의장 쪽문으로 다른 20여명의 경위들이 입장했다.순간 의장석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경위 3명은 의원 1명을 담당했다.이해찬,임채정,김덕배 의원 등이 속속 본회의장 밖으로 끌려나왔다. 이종걸,유시민 의원에게는 최대 7명이 동원됐다.김희선 의원은 휴대전화 카메라에 이 장면들을 담다가 단상 아래로 옮겨졌다. ●11시20분 이때부터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맡았던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됐다.박 의장은 바로 투표를 선언했고,야당 의원들은 줄지어 기표소에서 향했다.여당의원들은 야당의원들이 2겹으로 쳐놓은 ‘인간 바리케이드’에 봉쇄됐다.여당 의원들은 책상에 올라가 기자들을 향해 “쿠데타를 중지시켜달라.국민은 거리로 나와달라.”라고 외쳤다. ●11시50분 박 의장이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이에 3∼4분 앞서 종료를 하려 했으나 야당쪽에서 투표점검을 마치지 못해 이를 말렸다.5분쯤 개표작업이 끝나고 결과를 보고받은 박 의장은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습니다.”라고 선언했다.한편 몸싸움 와중에 누군가가 던진 구두는 본회의장 전면에 새겨진 대형 ‘국(國)’자를 때렸고,태극기봉은 몇차례 넘어졌다 다시 세워졌다. 이지운 박정경기자 jj@˝
  • [임영숙 칼럼] 폭설의 추억

    충돌할 듯 마주 보고 질주하는 열차 같은 여야 정치권과 폭설로 마비된 국가 시스템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국가란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인가. 눈발이 흩날리는 아침이었다.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인 두 아이가 학교에 간지 1시간쯤 지나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폭설예보가 내려져 하굣길이 위험해질 것 같아 수업을 중단하니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라는 것이다.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보니 벌써 많은 학부모들이 모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먼 곳에 집이 있는 학생들의 부모에게 먼저 연락이 간 모양이다.함박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신나게 내달리는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며 국가 시스템과 삶의 질을 생각했다.10여년 전 뉴욕에서 연수 중에 겪은 일이다. 지난 주말 내린 폭설로 고속도로 등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과 공포에 떨며 밤을 지새웠거나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 속을 10㎞나 걸어 음식물을 구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었다.국가의 대동맥인 고속도로가 무려 30여시간 동안 마비된 사태의 전말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기상청은 고속도로 마비사태가 이미 시작된 다음에야 대설경보를 발령했고,도로공사는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 다음에야 차량 진입을 차단하기 시작했다.폭설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장관회의는 눈이 멈추고 사태가 종료된 다음날 오전에야 열렸다.한마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실종된 상태였던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발생한,기상관측사상 최대인 100년만의 이번 폭설에 완벽한 대처는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기존의 재난대비 지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또 기상이변이라든가 기상관측사상 최대라는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2001년에도 20년만의 폭설이 내렸고,2002년에는 사상최대의 비를 쏟은 태풍 루사가,2003년에는 사상최고의 순간최대 풍속을 기록한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갔다. 루사와 매미의 피해지역은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됐고 이번 폭설에도 특별재해지역이 선포돼 3년 연속 특별재해지역이 선포되고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같은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것이다.그러나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지금의 탄핵정국에서 이 나라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는 존재가 된 우리 정치인들에게 지난 주말의 폭설은 정치적 쇼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오로지 총선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국가혼란은 아랑곳하지 않고,충돌할 듯 마주 보고 질주하는 열차 같은 여야 정치권과 폭설로 마비된 국가 시스템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국가란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인가. 지난 가을 독일의 한 방송사가 시청자 설문조사와 토론을 통해 선정한 ‘우리의 최고’ 인물 10명 중 1위를 한 사람은 정치인 아데나워였다.역시 정치인인 비스마르크와 브란트도 각각 3·4위로 선정됐다.바흐(2위) 아인슈타인(5위) 괴테(6위) 구텐베르크(7위) 루터(8위) 마르크스(9위) 숄 남매(10위,나치 저항 희생자) 등과 함께.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유태인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사죄했을 때 독일 작가 호르스트 크뤼거는 이렇게 말했다.“그렇다.이것은 우리들의 국가다.그렇다.이것은 나의 국가다.” 우리 정치인이 이처럼 국민을 감동시킬 수는 없을까.아니 감동까지 시키지 않아도 된다.속수무책으로 폭설에 갇힌 끔찍한 기억을 잊게 하고 최소한 국민이 마음 놓고 숨쉬고 살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이 나라가 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다행히 한달 여 지나면 총선이다.우리 정치에 질린 사람일수록 꼭 투표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임영숙 주필 ysi@˝
  • 경제 5단체장 대검 방문 “혼자오니 힘없어 같이왔다”

    경제계 대표 6명이 다시 검찰을 찾아 기업인 수사를 빨리 끝내고 선처해줄 것을 요청했다.‘압박성’ 단체 방문인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 회장단 6명은 5일 오후 3시쯤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방문,대선자금과 관련한 기업수사의 조속한 종결과 기업인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등 회장단은 이날 송광수 검찰총장과 청사 8층 접견실에서 30분간 면담을 갖고 대선자금 수사의 장기화에 따른 기업활동의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기업 관련 수사를 조속히 마무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11월19일과 지난달 18일에 이어 이번에 세번째로 송 총장을 찾아왔다. 강 회장 등은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수사로 인해 투자 및 사업시행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업의 국제 신뢰도에도 큰 문제가 있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당부를 했다고 국민수 대검 공보관이 전했다. 이에 대해 송 총장은 “여러가지를 고려해 신중히 판단하겠지만 기업의 어려움 뿐 아니라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을 대동하고 대검청사를 찾은 강 회장은 면담에 앞서 취재진에게 “앞서는 혼자 왔지만 이번에는 ‘힘있는’ 분들을 더 데리고 왔다.”면서 “두번 세번 오면 더 잘 봐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 회장은 기업체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 면제를 부탁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수든 아니든 기업을 일으킨 분들이니 일을 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것”이라고 답했고,‘잦은 방문에 검찰이 부담을 느끼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사람끼리 만나는 것인데 부담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 5단체 중 회장이 해외출장중인 대한상의와 한국무역협회는 김효성 부회장과 이석영 부회장이 대신 찾았다. 강충식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9)한국의 찻그릇 문화-신현철의 참새다기(茶器)

    ‘참새다기(茶器)’라고 부르는 매우 독특하게 생긴 찻그릇 세트 하나를 두고 중국과 한국의 차인(茶人)들 사이에 미묘한 논쟁이 일고 있다.참새다기는 한국,타이완,중국,미국,홍콩의 차인들 세계에서 이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그 ‘불법 복제’의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것은 또한 중국과 한국의 차문화에 걸린 자존심과,예술작품에 대한 권리침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논란의 핵심은 한국의 작가 신현철(申賢徹)씨가 중국에서 먼저 만든 참새다기를 불법 복제하여 한국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는 것.이 논쟁의 한 가운데 서있는 신씨로부터 진실을 알아보기 위하여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방도리 272번지,참나무 숲이 울창한 산기슭 응달진 곳에 차려진 그의 가마를 찾았다.그는 상투를 틀어 올리고 수염을 기른 육척장신 거구였다. 문:한국 차인들이나 찻그릇 가게에 나도는 소문으로는 신선생이 중국 참새다기 세트를 복제하여 유통시키고 있다는데,사실입니까? 이 문제는 중국 차문화가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매우 민감한 사안입니다.또한 도자문화의 국가적 자존심과도 관계됩니다.사실을 확인해주실 수 있습니까? 申: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피해자는 오히려 저 자신인데요. 문:참새다기가 중국 물건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申:저의 창작품입니다.1987년도에 개발했고,특허청 ‘의장등록 226383’으로 대한민국의 법률아래 보호받고 있는 저의 작품입니다. 문:그럼 개발 이후 한국이나 중국에서 참새다기를 공식 발표한 적이 있습니까? 申:1988년 경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참새다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1998년 성곡미술관 ‘한국도공정신-전통에서 현대로’전시회에 천한봉,김정옥,윤광조 선생을 비롯한 10명의 작가들이 초대되었고 저도 감히 맨 끝자리에 끼어서 참새다기를 내놓았습니다.이때 출품한 참새다기는 부산여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지요. 2001년 4월25일부터 ‘중한(中韓) 다구(茶具) 도예명품전’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는데,중국에서 자사호라는 중국 찻그릇을 만드는 무형문화재 5명과 한국에서 천한봉,김정옥,신현철,오순택 등 다섯 명이 초청됐지요.그때 저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참새다기를 출품했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참새다기라는 작품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중국 차인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거든요.결국 출품한 참새다기를 ‘의흥(宜興)자사호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그 초청전시회 때 저의 창작품인 ‘연잎다기’도 출품했는데,타이완에서 찻집을 18개나 운영하는 중국인이 30분에 걸쳐 저의 연잎다기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큰 화젯거리로 만들었습니다. 2001년 5월29일∼6월10일에는 ‘중국의흥국제다구도예전’이 열렸습니다.이때도 참새다기가 출품되었고,그 작품은 ‘황주다엽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지요. 문:약간 혼란스럽군요.대략 정리하자면 2001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한다구도예명품전’이라는 전시회 때까지만 해도 참새다기는 중국에 존재하지 않았고,그 이후 어느 시기부터 참새다기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지요? 申:일단은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문:순서가 좀 헝클어졌습니다만 참새다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만들게 된 동기,가능하다면 재료와 이 찻그릇이 지닌 다른 정보도 좀 공개하실 수 있습니까? 申:참새다기라는 이름은 작설차(雀舌茶)의 작(雀) 글자에서 참새의 모습을 떠올린 데서 시작됐지요.차를 마실 때마다 참새를 생각했는데,시험삼아 참새모양의 찻주전자를 만들었지요.처음엔 별로였습니다. 꼬리 부분을 쳐들어봤지요.생동감이 느껴지더군요.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생동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구도를 실험한 끝에 한 형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지금의 작품을 낳은 모체가 결정된 것입니다.그뒤부터 옷,즉 색깔을 입히는 작업에 또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처음엔 옥색이었고,그 다음엔 쥐색이었다가 세번째 시도에서 지금의 참새깃털 색깔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장석유(長石釉) 계열의 유약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것이어서 복제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문:그렇다면 어찌해서 신선생이 중국의 참새다기를 복제했다는 말이 퍼졌을까요?혹시 짐작가는 데라도 있습니까? 申:구체적인 이유는 저도 알기 어렵습니다.다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국인으로서 저한테 직접 참새다기를 구입해간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이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현명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그 얘기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申:2001년 8∼10월 열렸던 제 1회 세계도자엑스포(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저도 참여했는데,그동안 몇 차례 보완하여 나름의 완성도를 지닌 참새다기를 출품했습니다.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그런데 저의 작품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이 있었습니다.미국시민권을 가진 중국인이었는데,이름은 그냥 허(許)씨라 는 점만 밝히겠습니다.그분은 IAC,즉 세계도자협회 정회원으로서 중국 현대도예작가의 대부라는 명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분이 참새다기를 구입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지만 응답하지 않았지요.그런데 그날 오후 그분이 중국 도예작가 10명을 대동하고 저의 작업실로 찾아왔더군요.엑스포 관계자에게 주소를 물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저의 전시실에 와서도 참새다기를 유심히 살피면서 함께 온 작가들과 의견을 나누더군요.결국 한벌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더는 사양하기가 어려워서 100만원을 받고 작품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석달 뒤였어요.중국에서 만들어진 참새다기가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확인했더니 사실이더군요. 그런지 얼마 안 지나서 서울 조계사 부근 어느 찻그릇 상점에서 참새다기를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즉시 그 가게로 달려가 보았습니다.사실이더군요.가게 주인에게 저의 신분을 밝히고,참새다기가 법률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자료로 사용하려고 하니 한벌만 사겠다고 했지요.어차피 법적 제재를 가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자 가게 주인은 낯을 붉히면서 고백하더군요.중국 의흥에서 생산된 것인데,사실은 타이완의 도자기 공장에 하청을 주어서 대량을 찍어내어 중국과 동남아 일대,한국,일본,미국 등지에서 헐값으로 팔고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중국에서 만든 것이 신선생 작품을 그대로 복제한 증거가 있습니까? 申:(증거물로 가져다 둔 연잎모양의 둥근 그릇 안에 얹는 연밥모양 깔판을 뒤집어보이면서)여기 보다시피 물방울이 바닥으로 잘 굴러 떨어지도록 하기 위한 홈을 파놓았지요.모두 홀수로 처리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이 앞면의 물 구멍 숫자도 모두 홀수로 처리되어 있지요. 중국은 짝수문화여서 차문화에 사용되는 차 도구들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짝수개념이 통용됩니다.그런데 참새다기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문화의 차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원래의 견본 그대로 흉내낸 것으로 보입니다. 참새다기는 연잎다기와 달리 그림으로 그리거나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복제가 불가능합니다.결국 씨암탉(종자) 한 마리를 사가지고 가서 달걀을 낳아 대량 번식한 셈이지요. 문:그렇다면 한국 차인들이나 찻그릇 상인들이 왜 신선생에게 그런 불명예를 겪게 할까요? 무슨 피치 못할 갈등이라도 있기 때문인가요? 申:제가 개발하여 특허청에 실용신안,의장등록 등의 법적 절차를 마친 연잎다기,연꽃다기,무궁화꽃다기 등 우리나라 역사와 민속의 문양을 찻그릇 형태로 형상화시킨 작품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여러해 동안 고심끝에 디자인을 개발하여 발표하고 나면 한달이 채 안 지나서 복제품이 쏟아져 나옵니다.일일이 법적 대응을 하기에도 지쳤습니다.참새다기에 관한 소문은 국내의 복제자들이 만들어 퍼뜨린 것입니다.자신들의 비열함을 은폐하기 위한 술수겠지요.아무리 예술에서 모방의 가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창조를 위한 모방이 아닌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모방과 복제는 한국 찻그릇 문화의 파멸을 앞당길 뿐이라고 봅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9)한국의 찻그릇 문화-신현철의 참새다기(茶器)

    ‘참새다기(茶器)’라고 부르는 매우 독특하게 생긴 찻그릇 세트 하나를 두고 중국과 한국의 차인(茶人)들 사이에 미묘한 논쟁이 일고 있다.참새다기는 한국,타이완,중국,미국,홍콩의 차인들 세계에서 이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그 ‘불법 복제’의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것은 또한 중국과 한국의 차문화에 걸린 자존심과,예술작품에 대한 권리침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논란의 핵심은 한국의 작가 신현철(申賢徹)씨가 중국에서 먼저 만든 참새다기를 불법 복제하여 한국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는 것.이 논쟁의 한 가운데 서있는 신씨로부터 진실을 알아보기 위하여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방도리 272번지,참나무 숲이 울창한 산기슭 응달진 곳에 차려진 그의 가마를 찾았다.그는 상투를 틀어 올리고 수염을 기른 육척장신 거구였다. 문:한국 차인들이나 찻그릇 가게에 나도는 소문으로는 신선생이 중국 참새다기 세트를 복제하여 유통시키고 있다는데,사실입니까? 이 문제는 중국 차문화가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매우 민감한 사안입니다.또한 도자문화의 국가적 자존심과도 관계됩니다.사실을 확인해주실 수 있습니까? 申: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피해자는 오히려 저 자신인데요. 문:참새다기가 중국 물건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申:저의 창작품입니다.1987년도에 개발했고,특허청 ‘의장등록 226383’으로 대한민국의 법률아래 보호받고 있는 저의 작품입니다. 문:그럼 개발 이후 한국이나 중국에서 참새다기를 공식 발표한 적이 있습니까? 申:1988년 경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참새다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1998년 성곡미술관 ‘한국도공정신-전통에서 현대로’전시회에 천한봉,김정옥,윤광조 선생을 비롯한 10명의 작가들이 초대되었고 저도 감히 맨 끝자리에 끼어서 참새다기를 내놓았습니다.이때 출품한 참새다기는 부산여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지요. 2001년 4월25일부터 ‘중한(中韓) 다구(茶具) 도예명품전’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는데,중국에서 자사호라는 중국 찻그릇을 만드는 무형문화재 5명과 한국에서 천한봉,김정옥,신현철,오순택 등 다섯 명이 초청됐지요.그때 저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참새다기를 출품했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참새다기라는 작품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중국 차인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거든요.결국 출품한 참새다기를 ‘의흥(宜興)자사호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그 초청전시회 때 저의 창작품인 ‘연잎다기’도 출품했는데,타이완에서 찻집을 18개나 운영하는 중국인이 30분에 걸쳐 저의 연잎다기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큰 화젯거리로 만들었습니다. 2001년 5월29일∼6월10일에는 ‘중국의흥국제다구도예전’이 열렸습니다.이때도 참새다기가 출품되었고,그 작품은 ‘황주다엽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지요. 문:약간 혼란스럽군요.대략 정리하자면 2001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한다구도예명품전’이라는 전시회 때까지만 해도 참새다기는 중국에 존재하지 않았고,그 이후 어느 시기부터 참새다기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지요? 申:일단은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문:순서가 좀 헝클어졌습니다만 참새다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만들게 된 동기,가능하다면 재료와 이 찻그릇이 지닌 다른 정보도 좀 공개하실 수 있습니까? 申:참새다기라는 이름은 작설차(雀舌茶)의 작(雀) 글자에서 참새의 모습을 떠올린 데서 시작됐지요.차를 마실 때마다 참새를 생각했는데,시험삼아 참새모양의 찻주전자를 만들었지요.처음엔 별로였습니다. 꼬리 부분을 쳐들어봤지요.생동감이 느껴지더군요.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생동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구도를 실험한 끝에 한 형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지금의 작품을 낳은 모체가 결정된 것입니다.그뒤부터 옷,즉 색깔을 입히는 작업에 또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처음엔 옥색이었고,그 다음엔 쥐색이었다가 세번째 시도에서 지금의 참새깃털 색깔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장석유(長石釉) 계열의 유약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것이어서 복제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문:그렇다면 어찌해서 신선생이 중국의 참새다기를 복제했다는 말이 퍼졌을까요?혹시 짐작가는 데라도 있습니까? 申:구체적인 이유는 저도 알기 어렵습니다.다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국인으로서 저한테 직접 참새다기를 구입해간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이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현명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그 얘기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申:2001년 8∼10월 열렸던 제 1회 세계도자엑스포(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저도 참여했는데,그동안 몇 차례 보완하여 나름의 완성도를 지닌 참새다기를 출품했습니다.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그런데 저의 작품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이 있었습니다.미국시민권을 가진 중국인이었는데,이름은 그냥 허(許)씨라 는 점만 밝히겠습니다.그분은 IAC,즉 세계도자협회 정회원으로서 중국 현대도예작가의 대부라는 명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분이 참새다기를 구입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지만 응답하지 않았지요.그런데 그날 오후 그분이 중국 도예작가 10명을 대동하고 저의 작업실로 찾아왔더군요.엑스포 관계자에게 주소를 물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저의 전시실에 와서도 참새다기를 유심히 살피면서 함께 온 작가들과 의견을 나누더군요.결국 한벌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더는 사양하기가 어려워서 100만원을 받고 작품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석달 뒤였어요.중국에서 만들어진 참새다기가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확인했더니 사실이더군요. 그런지 얼마 안 지나서 서울 조계사 부근 어느 찻그릇 상점에서 참새다기를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즉시 그 가게로 달려가 보았습니다.사실이더군요.가게 주인에게 저의 신분을 밝히고,참새다기가 법률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자료로 사용하려고 하니 한벌만 사겠다고 했지요.어차피 법적 제재를 가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자 가게 주인은 낯을 붉히면서 고백하더군요.중국 의흥에서 생산된 것인데,사실은 타이완의 도자기 공장에 하청을 주어서 대량을 찍어내어 중국과 동남아 일대,한국,일본,미국 등지에서 헐값으로 팔고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중국에서 만든 것이 신선생 작품을 그대로 복제한 증거가 있습니까? 申:(증거물로 가져다 둔 연잎모양의 둥근 그릇 안에 얹는 연밥모양 깔판을 뒤집어보이면서)여기 보다시피 물방울이 바닥으로 잘 굴러 떨어지도록 하기 위한 홈을 파놓았지요.모두 홀수로 처리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이 앞면의 물 구멍 숫자도 모두 홀수로 처리되어 있지요. 중국은 짝수문화여서 차문화에 사용되는 차 도구들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짝수개념이 통용됩니다.그런데 참새다기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문화의 차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원래의 견본 그대로 흉내낸 것으로 보입니다. 참새다기는 연잎다기와 달리 그림으로 그리거나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복제가 불가능합니다.결국 씨암탉(종자) 한 마리를 사가지고 가서 달걀을 낳아 대량 번식한 셈이지요. 문:그렇다면 한국 차인들이나 찻그릇 상인들이 왜 신선생에게 그런 불명예를 겪게 할까요? 무슨 피치 못할 갈등이라도 있기 때문인가요? 申:제가 개발하여 특허청에 실용신안,의장등록 등의 법적 절차를 마친 연잎다기,연꽃다기,무궁화꽃다기 등 우리나라 역사와 민속의 문양을 찻그릇 형태로 형상화시킨 작품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여러해 동안 고심끝에 디자인을 개발하여 발표하고 나면 한달이 채 안 지나서 복제품이 쏟아져 나옵니다.일일이 법적 대응을 하기에도 지쳤습니다.참새다기에 관한 소문은 국내의 복제자들이 만들어 퍼뜨린 것입니다.자신들의 비열함을 은폐하기 위한 술수겠지요.아무리 예술에서 모방의 가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창조를 위한 모방이 아닌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모방과 복제는 한국 찻그릇 문화의 파멸을 앞당길 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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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교통부 ◇서기관 승진 △수송정책과 魚命昭△토지관리과 金明運△도시정책과 金哲興△도시철도과 金鍾旭△기술정책과 金熙洙△도로정책과 朴大淳△수자원정책과 洪吉淳△고속철도과 韓東珉△중앙토지수용위원회 사무국 高應萬△항공보안과 李安燮△감사담당관실 朴墉敎△도시정책과 李元植△원주지방국토관리청 건설관리실 李殷東△신공항개발과 金聖泳△부산지방항공청 항공관제실장 金尙熙△고속철도건설기획단 운영지원과 姜信求 ■ 교육인적자원부 ◇이사관 △인적자원총괄국장 鄭奉根△인적자원개발국장 鄭鍾秀△교육복지심의관 金正基◇부이사관△인적자원관리국장 李鍾甲△감사총괄담당관 卞大龍△정책조정과장 金明薰△고등교육정책과장 朴栢範◇장학관△학교정책심의관 柳永國△교육현장지원단장 李敬馥△과학실업교육정책과장 金永俊 ■ 특허청 ◇과장 승진 △약품화학심사담당관 金成鎬△심판관 吳在鈗 李錦旭 ■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장(iMBA) 金暎圭△국정관리전문〃 金玄九△대동문화연구원장 林熒澤 ■ 덕성여대 △산학협력단장 崔基憲△인문과학대학장 李潤夏△사회과학〃 柳在玉△자연과학〃 李載仁△약학〃 孫英澤△예술〃 張東琳△대학원장 梁玉承△교육대학원장 李容淑△FTB〃 張東琳△정보통신〃 陰斗憲△평생교육원장 林淑子△도서관장 吳敬△박물관장 閔炯源 ■ 매일경제신문 △편집국장 장용성 △이사대우 공무국장 이찬종△〃 판매국장 김삼현△〃 광고담당 임철△논설위원 김세형△주간국장 직대 윤영걸 ■ MBC ◇이사 △부사장 金容喆△정책기획실장 韓貴鉉△편성〃 金世榮△보도본부장 具本弘△TV제작〃 朴鍾△기술〃 文炳樺△경영〃 具榮會△특임이사 嚴基永 ■ CBS △선교국 선교위원 鄭在媛△부산방송본부 기술국장 金淳基△전북〃 〃 李相男△울산〃 기술위원 辛炳善△전남〃 보도제작국장 劉永赫△광주〃 〃 金恩泰△전북〃 〃 崔仁 ■ ㈜두산 ◇승진 △의류BG 대표이사 부사장 鄭世赫 △전자BG 상무 任聲宰 孫鉉徹 洪元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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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교통부 ◇서기관 승진 △수송정책과 魚命昭△토지관리과 金明運△도시정책과 金哲興△도시철도과 金鍾旭△기술정책과 金熙洙△도로정책과 朴大淳△수자원정책과 洪吉淳△고속철도과 韓東珉△중앙토지수용위원회 사무국 高應萬△항공보안과 李安燮△감사담당관실 朴墉敎△도시정책과 李元植△원주지방국토관리청 건설관리실 李殷東△신공항개발과 金聖泳△부산지방항공청 항공관제실장 金尙熙△고속철도건설기획단 운영지원과 姜信求 ■ 교육인적자원부 ◇이사관 △인적자원총괄국장 鄭奉根△인적자원개발국장 鄭鍾秀△교육복지심의관 金正基◇부이사관△인적자원관리국장 李鍾甲△감사총괄담당관 卞大龍△정책조정과장 金明薰△고등교육정책과장 朴栢範◇장학관△학교정책심의관 柳永國△교육현장지원단장 李敬馥△과학실업교육정책과장 金永俊 ■ 특허청 ◇과장 승진 △약품화학심사담당관 金成鎬△심판관 吳在鈗 李錦旭 ■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장(iMBA) 金暎圭△국정관리전문〃 金玄九△대동문화연구원장 林熒澤 ■ 덕성여대 △산학협력단장 崔基憲△인문과학대학장 李潤夏△사회과학〃 柳在玉△자연과학〃 李載仁△약학〃 孫英澤△예술〃 張東琳△대학원장 梁玉承△교육대학원장 李容淑△FTB〃 張東琳△정보통신〃 陰斗憲△평생교육원장 林淑子△도서관장 吳敬△박물관장 閔炯源 ■ 매일경제신문 △편집국장 장용성 △이사대우 공무국장 이찬종△〃 판매국장 김삼현△〃 광고담당 임철△논설위원 김세형△주간국장 직대 윤영걸 ■ MBC ◇이사 △부사장 金容喆△정책기획실장 韓貴鉉△편성〃 金世榮△보도본부장 具本弘△TV제작〃 朴鍾△기술〃 文炳樺△경영〃 具榮會△특임이사 嚴基永 ■ CBS △선교국 선교위원 鄭在媛△부산방송본부 기술국장 金淳基△전북〃 〃 李相男△울산〃 기술위원 辛炳善△전남〃 보도제작국장 劉永赫△광주〃 〃 金恩泰△전북〃 〃 崔仁 ■ ㈜두산 ◇승진 △의류BG 대표이사 부사장 鄭世赫 △전자BG 상무 任聲宰 孫鉉徹 洪元京
  • [3·1절 기획] ‘한인사회당 참고자료’ 발굴 의미

    새로 발굴된 ‘한인사회당 참고자료’는 ‘죽음의 시대’를 살아남은 한 늙은 독립운동가의 비망록이자 러시아 내전기 재러 한인들의 투쟁사가 담긴 역사 기록물이다. 이 자료에는 1917년부터 1922년까지 만주와 연해주,시베리아 지역을 무대로 펼쳐진 독립군 무장단체들의 활동상,특히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각 분파별 입장과 움직임이 잘 드러나 있다. 필자 리인섭은 1918년 3월 하바로프스크에서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에 대한 조직적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소집된 ‘조선정치망명자회의’의 경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장래 조선민족해방운동에 대한 과업을 토론하기 위하여 중령과 조선 내지에서 많은 인사들이 우리의 초청에 의해 하바로프스크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중령에서 활동하였던 김립 동지가 당도했고,하루빈과 몽골을 중심하고 중국 산군들과 연계를 갖고 공작하던 이동녕,양기탁 일행이 내도하였다.…(중략)…당시 모였던 정치망명자협의회를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하느라고 1개월이나 지내는 어간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즉 조선민족해방운동을 사회주의 운동과 결부시켜서 러시아 공산자들과 합작하자는 일파와 남의 국내전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소비에트 주권에서 물질적 후원이나 받자는 이동녕 일파가 갈라졌다.전자 일파는 하바로프스크에 떨어지고 기타 인사들은 소학녕에 개최된 한족총회대표회로 갔다.” 이에 대해 반병률 교수는 “러시아 혁명후 친볼셰비키 노선을 채택한 한인사회당과 반볼셰비키적인 백위파 군대와의 연대노선을 채택한 한족중앙총회(대한국민회의)로 러시아 한인사회가 양분돼가는 과정이 내부인의 시각에서 기술돼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군과 러시아 적군(赤軍)의 충돌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자유시 사변을 ‘계급투쟁’이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새롭다. “3000명의 조선 빨치산들 가운데 한 번도 적들과 전투한 적도 없고,그리고 하지 않으려고 한 단체는 오직 자유대대뿐이었다.그런 중에도 불과 300∼400명인 자유대대가 국민회의 지도하에서 3000명 되는 한행공산당을 지지하는 빨치산대를 반대하여 음모를 시도하던 사실은 우리 혁명역사에 비참한 것만큼 혁명적 경각성있게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할 사실이다.단순한 종파싸움인 것이 아니라 극심한 계급투쟁이었던 것이다.” 한인들이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 당시 모스크바에서 ‘대동단’이란 조선인 노동자동맹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1919년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홍허적이란 중국마적들로부터 한인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지방대’라는 무장 조직이 존재했고,이 조직이 독립 무장투쟁도 함께 수행했다는 사실 등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세영기자 sylee@˝
  • 서울 교장등 496명 인사

    서울시교육청은 27일 487명의 교원과 9명의 교육전문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인사에서는 교육장 임용에 지역교육청 학무국장이 초등에서 3명,중등에서5명 등 모두 9명이 임용됐다. (초등)◇교장 승진△상수 裵末連△상계 南宮永洙△신학 金德永△중현 李相鉉△이태원 崔泰植△아현 韓光洙△토성 李信枝△면북 金吉成△금천 李昌榮△묵동 朱長完△중동 林忠子△효제 洪淳吉△동구로 趙豊子△장충 李相根△전농 文在昌△고원 趙昌信△당산 金聲濟△망우 鄭哲均△이문 李承直△발산 權赫善△전동 金承植△은천 박재상△명일 金榮子△성산 崔圭鎬△신성 河泰北△고명 李相基△개봉 權龍雄△구암 任五培△염창 李鍾建△군자 金昌玉△녹천 李奎三△신흥 黃明淵△영일 李泰光△보광 閔信子△등양 許輝男△금호 沈春子△목원 陸王戊△옥정 南大鉉△방산 盧楨子△신사 金知姸△신목 金明熙△탑산 金承煥△대조 文明愛△연광 林鍾募△대동 金永錫△신대림 白桂淳△매동 金鎔湳△정릉 金光石△도신 明吉萬△홍은 趙升彙△용곡 南淸子◇교장 전보△자운 高日坤△신중 金永心△봉화 丘仲完△신자 尹常勳△우이 金學應△언북 安供鎬△봉현 胡福順△을지 洪泳模△성수 安長壽△무학 吳炯植△길동 白保億△은로 高英南△천일 李英世△방현 魚惠子△용암 李容馥△유현 孫寬明△광희 宋世煥△청구 徐永源△학동 金鎭燮△거여 金成植△재동 李在重△행림 姜仁成△원효 吳海植△등원 金鍾振△등서 全貴分△용산 崔龍植△영등포 邊炳權△공항 金君子△신석 文榮九△미동 李璥喜◇초빙교장△내발산 崔萬術◇교육전문직에서 교장으로 전직△성내 許日道△대현 金完基△일원 洪秀子△양동 崔五福△가인 金東春△강신 李春惠△창림 金元奎△아주 李美璟△화계 申完燮△등현 許順萬△신현 李殷植◇교육부 교육연구관에서 교장으로 전직△마포 金政序△문성 李相浩△안암 李連玉◇교육전문직(관급)△남부교육청 교육장 吳信根△중부교육청 〃 丁彩東△강남교육청 〃 奇 淸△본청 교원정책과장 具本淳△강동교육청 학무국장 鄭炳洙△강서교육청 〃 吳必桃△성북교육청 〃 郭永和△교육연수원 부장 金東來 朴英順△학생교육원 부장 千奉基 洪順植△본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沈恩錫 文重根△강남교육청 초등과장 劉憙鍾△성동교육청 〃 金泰瑞△성북교육청 〃 신입철◇교사·교감에서 교육전문직(사급)으로 전직△서울시교육청 朴來俊 姜慶華△교육과학연구원 金昌熙 吳美香△교육연수원 姜聲官△서부교육청 姜宗勳 李道甲△남부〃 文明根△북부〃 金正奎△중부〃 曺永範△강서〃 黃圭星 安明一△강남〃 陳炯哲 黃惠淑 洪鎭庸△동작〃 高玉順△성동〃 鄭仙夙△성북〃 許炳勳 崔道炫◇교육전문직(사급) 전보△서울시교육청 柳濟千 崔文煥 安相淑 金正赫△서부〃 朴永愛△북부〃 姜壽日△강남〃 張錫鎭△동작〃 韓哲洙△성동〃 兪英煥◇전출·입△교육부 전출 成耆玉 田秉植 金仁淑 金羅京△교육부 전입 李庸浩(서울시교육청)△서울교육대학 부설초등학교 전출 李仁鍾◇유치원△원장 명일 윤광청△장학사 전직 白正姬△장학사 전보 동부 鄭海男△장학사 전보 강동 金福順 (중등)◇교장 승진△구암중 金京子△방이중 金東雲△한천중 全國鉉△광희중 金春江△청운중 任東元△장위중 崔一煥△송파중 車正子△미성중 尹幸一△신연중 鄭寅寬△서울여중 李華馥△신양중 南昌烈△등원중 金準午△석관중梁明生△양화중 金玟植△삼선중 權寧春△양평중 李載榮△장안중 李正雄△상계중 姜宗植△수유중 安文榮△언남중 朴昭雄△청담중 李永華△가산중 權五作△옥정중 金量中△대영중 鄭炳福△사당중 洪星大△대치중 金榮愛△개봉중 柳錫祚△거원중 嚴榮周△번동중 羅晳基△신명중 李成子△목일중 宋秀男△경일중 周南秀△덕산중 李完紀△수송중 韓相彬△녹천중 金基旭△양천중 陳玉子△용곡중 李相賢△언북중 徐基源△상봉중 李炳日△개원중 朴文永△하계중 朴光助△언주중 鄭基世△관악중 金鍾奎△중원중 趙淸慈△금호여중 尹媛相△장원중 張光鎔△덕수중 李榮珠△홍은중 崔錫容△방학중 劉義植△동원중 金亨培◇교장 중임△서울여고 柳吉子△신림고 申蘭秀△노원고 梁熙△잠신고 吳秀良△관악고 任昶淳△경기상고 任仁弘△삼성고 金東星△창동고 成耆元△신현중 金仲基△중랑중 片光日△상신중 金承根△문성중 桂鳳喆△영서중 李萬珩△당산중 崔秀雄△온곡중 朴和植◇교육전문직(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윤중중 金弘燮△금천고 金丁中△여의도중 李柄好△을지중 李明九△광남중 李載洪△봉은중 姜解宣△언남고 梁東吉△광남고 이형재△경기고 李英萬△중암중 梁基晃◇교장 전보△청량고 趙義衍△명일여고 李台淑△동작고 宋寅浩△강서공고 趙南守△상계고 梁眞弘△석관고 林炳佑△신현고 金貞鎬△등촌고 高弼坤△도봉고 林在洙△자운고 黃華成△경일고 洪淳哲△용산공고 鄭雲茂△성수공고 陳虎男△송파공고 白德鉉△무학여중 洪性武◇교육전문직(관급) 승진△강동교육청 睦昌洙△강서〃 金義藏△성북〃 崔泰洙△중부〃 李秀換◇교장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성동교육청 黃南澤△중등교육과 金永鎰△서부교육청 金東日△북부〃 金將起△교육과학연구원 宋順子△동작교육청 朴東鎬◇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보·전직△교육연수원 金杰△학생교육원 崔五圭△동부교육청 金明奎△평생교육체육과 金福炫△교육정책총괄담당관 鄭鳳燮△강남교육청 李基成△동작〃 申逑泳△중등교육과 李順姬△교원정책과 朴淳晩△북부교육청 辛豪根△성북〃 鄭會台◇교사에서 교육전문직(사급) 전직△강동교육청 成桂淑 李銀淑 金範鏞 金和重△북부〃 鄭德采 林鍾龍 林震洙△성북〃 崔恩珍 李善庚△남부〃 崔鎭興 洪德杓△성동〃 申鉉銘 徐鍾一 朴光勳 李夏敎△동부〃 金昌東 金鍾學△서부〃 宋太永△교육연수원 李俊子 李敬任△학생교육원 李景蘭 李相培 崔廣洛△산업정보교육과 韓美哲△중등교육과 李亘淵△평생교육체육과 金英淑◇교육전문직(사급) 전보·전직△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金基順△교원정책과 林國澤 周英林 吳錫宗△산업정보교육과 閔復基△중등교육과 崔春玉 李英姬 朴仁圭△평생교육체육과 李珍影 元祺承△동부교육청 崔承愛△중부〃 尹敏子△강동〃 申愛顯△강서교육청 金正姬 金南訓△강남교육청 林榮宣 金慶子△동작교육청 李星淑 金泰彬△교육과학연구원 羅澄基 金鎭萬 嚴宗勳△교육연수원 尹汝福 李鎬屯△학생체육관 이동환˝
  • 北 “美 양보하라” 돌출 성명

    |베이징 김수정특파원| 2차 6자회담의 참가국들이 핵폐기와 대북 안전보장,핵동결 선언 등을 담은 공동발표문 구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선 핵폐기를 둘러싼 북·미간 입장 차로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한국과 중국 등은 이번 회담 최대 두통거리였던 고농축 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문제에 대한 북·미 양측의 체면을 살려주는 해법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북한측은 26일 밤 북핵의 폐기·검증이 이뤄져야 상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미측의 입장에 대해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비난하는 ‘깜짝 성명’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강하게 피력했다. ●북한측의 시위 북한은 이날 저녁 9시와 10시쯤 회담장인 댜오위타이와 주중 북한 대사관 앞에서 각각 성명을 발표,북한측이 핵동결 제의에도 불구,미측이 선핵포기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고 밝혔다.그러나 회담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8월 1차 회담이 끝난 뒤 귀국길에 “백해무익”했다고 밝힌 것과 비교해볼 때 “회담을 하자는 쪽”으로 보는 게 맞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판을 깨자는 것보다는,회담에서 한국·중국과 달리 보상은 없다고 나온 미측에 대해 양보를 하라는 차원의 ‘호소성’ 항의란 풀이다.즉 막판 협상을 위한 시위라는 것이다.우리 회담 대표단도 “오늘 북한에 언급한 내용은 회담장에서 발언한 내용과 대동소이하며,새삼스러운 내용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각국 대표단들이 그들의 입장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고 있는 데 따라 북한도 같은 차원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북한은 그동안 ‘말 대(對) 말’로 핵폐기와 안전보장을 약속한 뒤에 1단계 행동조치로 핵동결을 취할 경우 ▲테러지원 해제 ▲에너지 지원 ▲정치·경제적 봉쇄 해제 등 보상을 요구해 왔다.25일 접촉에서 우리측은 북측에 일단 우리 정부와 중국이 먼저 지원해주는 방안을 설명하며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이수혁 차관보는 이날 북한측이 우리 안에 대해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는 언급이 없었으나,우리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중국 “결정적 계기”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은 “6자회담이 핵프로그램 폐기와 안전 보장,경제협력을 논의하는 중심축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탕 위원의 낙관적 전망과 관련,장치웨 외교부 대변인도 이번 6자회담이 성공궤도에 올라섰다는 낙관을 표명하면서도 “현 상황으로 판단컨대,모든 참여국이 이미 합의에 도달했다고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러시아측 수석대표인 로슈코프 외무차관도 “러시아도 자체 임시결의안 초안을 제출했고,결의안 초안은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북 에너지 지원 논란 이날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 조치시 한·중·러가 에너지를 지원키로 했다는 것과 관련,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표현이 달라 논란이 일었다. 이수혁 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의 에너지 지원 방안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하겠다는 용의를 분명히 표했다.”고 밝혔으나,중국 장치웨 대변인은 “각측이 합의를 한다면 관련국과 함께 북한에 대해 ‘지지(支持)’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언급했다.통상 쓰는 원조나 제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영어로는 지원에 동참한다고 표현했다. crystal@˝
  • 어린이대공원 호랑이 풍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맹수 나라’에 경사가 났다. 한 쌍의 벵골산 호랑이 부부가 1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새끼를 11마리나 출산해 국내에서는 드문 진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호랑이뿐 아니라 맹수들은 보통 새끼를 낳아도 출산의 고통 때문에 어미가 물어뜯어 죽이거나 성장과정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점 등으로 자연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이런 탓에 동물원측은 태어난 지 보름정도를 넘겨 공개하는 게 관례다.따라서 실제로 출산한 새끼는 발표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지난 8일 능동 어린이대공원 열대동물관에서는 경남 마산시 돝섬유원지 동물원 출신인 수컷 ‘대두’와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상경한 암컷 ‘건이’ 부부가 4남매(암컷 1마리,수컷 3마리)를 낳아 인공포육을 무사히 끝냈다.아기 호랑이들은 현재 몸무게가 1.5㎏으로 하루 5차례 우유를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공원측은 아기 호랑이 오누이가 재롱부리는 모습을 22일부터 동물원 열대동물관 2층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다섯살배기 동갑인 이들 호랑이 부부는 2002년 9월 처음으로 3마리를 낳은 이후 지난해 6월에도 4마리를 낳아 지금까지 3차례 출산으로 모두 11마리의 2세를 배출했다. 호랑이 임신기간이 약 4개월(112일)인 점을 감안하면 같은 기간동안 2차례 임신에 최대 8마리를 출산하는 게 보통이어서 이번의 경우는 국내에서 매우 보기드문 사례다. 송한수기자 onekor@˝
  • [부고]

    15대 의원과 치안본부장을 지낸 조종석(趙鍾奭)씨가 20일 오후 5시10분 별세했다.향년 72세.유족으로는 주일대사관 참사관인 아들 정원(廷元)씨와 2녀가 있다.하영구(河永求) 한미은행장과 김병묵(金炳默) 육군 중령이 사위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은 22일 오전 9시,(02)3410-6914. ●車洪基(대한주류공업협회 이사)俊(국방부 군무원)垠(현대미디어 이사)洵慶(서울정진학교 부장교사)씨 부친상 尹熙奉(단국대 연구원)씨 빙부상 20일 오전 5시1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921-4899 ●權永翊(공정거래위원회 종합상담실 사무관)씨 모친상 20일 오전 4시 부산 대동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51)550-9952 ●池龍雲(성진기전 대표)씨 부친상 朴裕哲(선진㈜ 부장)尹誠晩(신성통상 과장)씨 빙부상 20일 0시21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64 ●林鍾瑞(해태음료 차장)鍾勳(금천구 직원)씨 부친상 金仙美(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林明花(HIS여행사 직원)씨 시부상 20일 오전 4시5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65 ●吳大成(자영업)大龍(〃)大勳(〃)씨 부친상 徐在奎(〃)金成洙(〃)金韓燮(KTB네트워크 부사장)씨 빙부상 20일 오전 4시 대구 계산성당,발인 22일 오전 8시30분 (053)256-2046 ●金世煥(서천군 새삶교회 목사)씨 별세 周寬(자영업)씨 부친상 奇正勳(YTN 기자)許南斗(자영업)白光欽(서울 노량진교회 목사)씨 빙부상 20일 0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07 ●朴鍾淑(인천지하철공사 전기전자부장)鍾赫(국민대 교수)鍾傑(서울시 건설안전본부 주임)씨 부친상 19일 오후 6시25분 서울대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 (02)760-2016 ●탄홍운(의정부시 성림빌딩 대표)양운(현대차 그린서비스 의정부남부점 공동대표)기협(〃)씨 부친상 장진석(기업은행 이사)이종원(㈜기영 대표)정영규(대영산업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20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10시 (02)760-2014 ●金甫成(오멕스글로벌 팀장)恩鏡(베비라 직원)相鉉(아세아연합신학대 직원)씨 부친상 鄭成泰(세기문화사 직원)趙成勳(형건축 직원)씨 빙부상 20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38 ●金性剛(필립스전자 이사)性哲(농협중앙회 기술역)씨 모친상 尹佑植(두산중공업 차장)씨 빙모상 20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91 ●全載庸(서울 전재용성형외과 원장)씨 상배 20일 오후 1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5 ●강충선(강릉대 객원교수)忠石(대전견직 상무)씨 부친상 20일 오후 3시3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94 ●金基勳(금융감독원 팀장)炯澈(공무원노조 서울본부장)씨 부친상 20일 오후 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10시 (02)3010-2239
  • [부고]

    15대 의원과 치안본부장을 지낸 조종석(趙鍾奭)씨가 20일 오후 5시10분 별세했다.향년 72세.유족으로는 주일대사관 참사관인 아들 정원(廷元)씨와 2녀가 있다.하영구(河永求) 한미은행장과 김병묵(金炳默) 육군 중령이 사위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은 22일 오전 9시,(02)3410-6914. ●車洪基(대한주류공업협회 이사)俊(국방부 군무원)垠(현대미디어 이사)洵慶(서울정진학교 부장교사)씨 부친상 尹熙奉(단국대 연구원)씨 빙부상 20일 오전 5시1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921-4899 ●權永翊(공정거래위원회 종합상담실 사무관)씨 모친상 20일 오전 4시 부산 대동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51)550-9952 ●池龍雲(성진기전 대표)씨 부친상 朴裕哲(선진㈜ 부장)尹誠晩(신성통상 과장)씨 빙부상 20일 0시21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64 ●林鍾瑞(해태음료 차장)鍾勳(금천구 직원)씨 부친상 金仙美(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林明花(HIS여행사 직원)씨 시부상 20일 오전 4시5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65 ●吳大成(자영업)大龍(〃)大勳(〃)씨 부친상 徐在奎(〃)金成洙(〃)金韓燮(KTB네트워크 부사장)씨 빙부상 20일 오전 4시 대구 계산성당,발인 22일 오전 8시30분 (053)256-2046 ●金世煥(서천군 새삶교회 목사)씨 별세 周寬(자영업)씨 부친상 奇正勳(YTN 기자)許南斗(자영업)白光欽(서울 노량진교회 목사)씨 빙부상 20일 0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07 ●朴鍾淑(인천지하철공사 전기전자부장)鍾赫(국민대 교수)鍾傑(서울시 건설안전본부 주임)씨 부친상 19일 오후 6시25분 서울대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 (02)760-2016 ●탄홍운(의정부시 성림빌딩 대표)양운(현대차 그린서비스 의정부남부점 공동대표)기협(〃)씨 부친상 장진석(기업은행 이사)이종원(㈜기영 대표)정영규(대영산업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20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10시 (02)760-2014 ●金甫成(오멕스글로벌 팀장)恩鏡(베비라 직원)相鉉(아세아연합신학대 직원)씨 부친상 鄭成泰(세기문화사 직원)趙成勳(형건축 직원)씨 빙부상 20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38 ●金性剛(필립스전자 이사)性哲(농협중앙회 기술역)씨 모친상 尹佑植(두산중공업 차장)씨 빙모상 20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91 ●全載庸(서울 전재용성형외과 원장)씨 상배 20일 오후 1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5 ●강충선(강릉대 객원교수)忠石(대전견직 상무)씨 부친상 20일 오후 3시3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94 ●金基勳(금융감독원 팀장)炯澈(공무원노조 서울본부장)씨 부친상 20일 오후 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10시 (02)3010-2239 ˝
  • [14일 TV 하이라이트]

    ●무인시대(오후 10시10분) 최충헌은 3년전 조원정에게 밀정혐의로 추포된 적이 있음을 고하며 이의민에게 목숨을 사정하고,지영과 지광 형제에게 모진 수모를 겪는다.최충수는 형이 치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이의민을 찾아간다.그러나 그 기개에 반한 이의민은 오히려 충성 맹세를 받은 뒤 최충수를 돌려보낸다. ●진주목걸이(오후 7시50분) 갑수에게 끌려가는 난주는 격렬히 저항하지만 역부족이고,난주를 찾아 춘천으로 달려온 기남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난주는 인숙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며 분노하고,인숙은 난주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춘천에서 돌아온 기남은 동생을 내놓으라며 인숙을 찾아간다. ●찾아라!맛있는 TV(오전 11시5분) ‘정원관의 기(氣)찬 요리’는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은 감자로 만든 요리들을 알아보고,‘음식 대 격돌 맛 7’은 영화 속의 맛집을 탐방한다.‘스타의 맛집’은 가수 박미경 부부의 단골집을 찾아간다.‘대동맛지도’는 경남 김해의 달팽이 요리와 갈치요리를 맛본다. ●발리에서 생긴 일(오후 10시30분) 재민은 수정과 연락이 되지 않자 갤러리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찾아가겠다며 끊는다.수정은 재민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한다.재민이 갤러리로 찾아와 수정을 데리고 나가는 순간 송여사와 마주친다.송여사는 수정에게 달려들고,재민이 막는 과정에서 송여사는 모욕감을 느낀다. ●성인가요 베스트 30(오후 10시20분) 이택림과 노래 ‘톡톡 쏘는 남자’의 강민주가 일일 MC로 나선다.‘영원한 애창곡’에서는 이수미,방주연이 학창시절 즐겨 불렀던 ‘여고시절’과 ‘자주색 가방’을 들려주고,김범룡 박상철 배일호 등 출연진들이 학창시절 잊을 수 없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여론광장(오후 7시20분) 일제강점시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가 어려워짐에 따라 친일청산 작업을 벌여온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특별법은 무엇이 문제인지,또 친일청산을 둘러싼 논란은 무엇인지 논의해본다.더불어 독도 망언 등으로 반일 감정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0분) 로빈 섬은 아프리카의 세번째로 큰 펭귄 서식지이나 유조선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펭귄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기름에 무방비로 노출된 펭귄과 오염된 서식지를 복구하는 사람들.기름유출 사고로 환경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아프리카 펭귄 구조작업 현장을 찾아간다. ˝
  • [부고]

    ●중세문헌학 대가 이득수교수 중세문헌학의 대가인 이탈리아 시에나대학 이득수 교수가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시에나 카레디 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66세. ●애국지사 최용덕 선생 애국지사 최용덕 선생이 12일 오전 9시15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84세.빈소는 서울 남해전문장례식장.발인 14일 오전 5시.장지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055)863-5217,016-585-2145. ●金宗範(농업생명공학연구원 연구관)承範(연합뉴스 제주지사 차장)順愛(제주대사범대부속중 교사)英愛(제주체신청 근무)씨 모친상 李秉根(추자중 교사)李聖哲(제일냉동식품 관리과장)씨 빙모상 李怜子(동남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12일 오전 6시45분 제주 한마음병원,발인 14일 오전 7시30분 (064)723-3042 ●趙昇衡(변호사·전 헌법재판소 재판관)仁石(서울용역 직원)씨 모친상 蔣炳昌(전 광주문화중 교장)金順福(전 중앙고 교장)朴鐘南(서울용역 사장)蘇雄永(전 전북대 교수)씨 빙모상 11일 오후 10시15분 서울대병원,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760-2091 ●李尙煥(한국은행 발권국 부국장)씨 별세 12일 오전 4시 경희의료원,발인 14일 오전 9시30분 (02)969-6099 ●康永福(세영ENG 이사)씨 별세 永雲(자영업)永一(〃)씨 형님상 11일 오전 10시3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3일 오전 7시 (02)3010-2264 ●金漢東(고려펜션 감사)漢哲(〃 경리이사)씨 모친상 11일 오후 4시38분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13일 오전 10시 (02)958-9553 ●尹東燮(서울 장학학원 상담실 대리)禮燮(신촌세브란스병원 간호사)智燮(신갈초등학교 교사)京姬(LG애드 대리)씨 부친상 金在山(LG이노텍 연구소 책임연구원)金泰鉉(두레무역 대표)李宰赫(안양대 근무)씨 빙부상 11일 오후 1시25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392-0699 ●尹廷根(전 중소기업은행 본부장)씨 별세 寧彬(서울대 공과대학 교수)寧浚(삼성전기 과장)京愛(서울소아과의원장)씨 부친상 金憲(충북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金圭(ADT 부장)씨 빙부상 12일 오전 2시14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4일 오전 7시 (02)3410-6912 ●金蒼天(자영업)蒼海(전 국방부 법무관리관)蒼龍(자영업)蒼守(수목건설 대표)씨 부친상 李光燮(경영시스템 대표)씨 빙부상 11일 오후 4시30분 울산병원,발인 오전 9시 (052)259-5242 ●李起周(전 대동공업 이사)씨 별세 顯周(KBS 경제부 기자)씨 형님상 12일 오전 3시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2)572-5699 ●全海龍(원로목사)씨 별세 요한(미국 거주)씨 부친상 李慶賠(자영업)吳英益(〃)씨 빙부상 11일 오후 9시1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4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7 ●洪鍾聲(자영업)鍾銀(한나라당 총무국 실장)鍾大(자영업)鍾煥(〃)鍾姬(신기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吳嬉貞(단국대 강사)씨 시부상 金靖洙(극동종합설계 전무)씨 빙부상 12일 0시2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4일 오전 8시 (02)3010-2233 ●趙億東(경기광주시의회 의장)씨 부친상 12일 오후 1시10분 경기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광주장례식장,발인 14일 오전 10시 (031)764-0922 ●鄭驥上(한국일보 부사장)驥春(자영업)驥植(프랑스선급협회 선임검사역)昶林(연합철강 도쿄주재원)씨 부친상 12일 오후 6시20분 부산 동아대병원,발인 14일 오전 6시 (051)256-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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