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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마이 God 연기자 윤계상

    오! 마이 God 연기자 윤계상

    티끌 하나 묻지 않은 해맑은 웃음부터 날카로운 눈매의 섬뜩함까지. 윤계상(26)의 얼굴에 그렇게 많은 표정이 숨어있는지는 그를 마주하기 전까지 미처 몰랐다. 사실 영화 ‘발레교습소’를 보는 내내 깜짝 놀라긴 했다. 스타 윤계상이 아닌, 영화 속 어수룩한 청년 민재가 스크린 속에서 자연스러운 청춘의 날갯짓을 보여줬으니까. 그를 몰랐다면 ‘어쩜 저렇게 평범하게 생겼을까.’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우리 시대 고3의 자화상을 담아낸 윤계상. 한국영화계의 대단한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는 단숨에 ‘배우’의 대열에 올라섰다. # 생각 또 생각하면서 캐릭터에 푹∼ 빠졌죠. 그의 숨겨진 ‘배우의 끼’를 먼저 발견한 건 신혜은 프로듀서. 방송 토크쇼에 나와서 딴 짓을 하는 엉뚱한 모습에 반해 “특이한 캐릭터”라며 2년전부터 ‘찜’해두었단다.‘발레교습소’의 민재 역을 찾으면서 신 프로듀서는 윤계상을 떠올렸고,‘혹시 만나보고 아니면 3일만에 바꿔버리자.’며 변영주 감독과 그를 찾았다. 그런데 반응은? “제가 너무 민재랑 비슷해서 놀라셨대요.”(웃음) 그는 자연스러운 연기의 공을 모두 감독에게 돌렸다.“뭘 물어봐도 ‘글쎄, 민재라면 어땠을까.’라며 질문만 던지시죠. 그러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캐릭터에 빠져 있다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와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이모네 집에서 온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울컥 감정을 쏟는 장면. 암에 걸린 친구의 동생이 보기 흉하다며 아파트에서 쫓겨나자 민재의 감정이 갑자기 폭발한다.“처음엔 시비조로 ‘이모, 연판장에 서명했어?’라고 연기를 했죠. 감독님이 ‘과연 민재라면 그럴까?’라고 묻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민재의 캐릭터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짝사랑하던 수진(김민정)과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도 처음엔 ‘뽀뽀’정도를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이건 키스신이 아니라 섹스신이야.” 감독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결국은 작품의 의도대로 순박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청춘의 솔직한 사랑을 연기해냈다.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연기를 터득하는 이번 과정이, 그에게는 스스로를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확고한 계기가 되었던 것. # 10대땐 민재와 정반대인 문제아였어요. 실제 그의 10대는 어땠을까.“민재랑 정반대였어요. 오히려 침 뱉고 때리는 양아치쪽에 가까웠죠. 고2때는 가출한 적도 있어요.” 가수활동을 할 때는 이 모든 걸 감추고 싶었는데 이제는 “연기자로서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는 그. 이젠 이를 포용할 만큼 성숙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10대 시절엔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단다.“제가 하두 말썽만 피워서 god 활동을 할 때부터 아버지께서 ‘저런 끼가 있었나. 어허 참’이라며 신기해하셨어요.” god 3집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을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네가 내 아들인게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들어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두웠던 청춘의 긴 터널을 통과한 지금,10대들에게 할 말도 많을 듯싶다.“고교 시절엔 말하지 않고도 부모가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자신을 닫아버리지 말고 대화로 벽을 허물었으면 해요. 부모님들도 전체를 다 경험한 건 아니니까 자식들에게 보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으면 하고요. 영 아닌 길이라고 생각돼도 그 길이 그 아이에겐 행복일 수 있잖아요.” 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연기는 내사랑~ 그는 god 활동을 하면서도 “내 것을 가지고 싶었고 그게 연기였으면…”이란 생각을 막연히 해왔다. 무명시절때 혁이형(장혁)이 3∼4시간동안 연기에 대한 열정을 뿜어내며 말하는 걸 보면서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는 그는 그 때부터 연기의 꿈을 남몰래 품어왔는지도 모른다. 가수에 대한 미련은 안 남았을까.“god의 명예에 금가는 일은 안 할 거예요.” 그럼 god라면? “군대 갔다와서 불러주면 또 모르죠. 그래도…연기가 너무 좋아요.” 모든 스태프들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볼 땐 왕자가 된 기분이었고,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돼가는 과정에선 “내가 예술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는 그. 첫사랑의 설렘처럼 들뜬 모습을 보니, 그는 정말 연기와 사랑에 빠진 듯 했다. ■ 저 군대가요~ 영화 ‘발레교습소’는 새달 3일 개봉하고, 윤계상은 그로부터 나흘 뒤 군대를 간다.1급 현역 판정을 받고 춘천 102보충대대로 입소할 예정. 이번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주인공 이영애의 상대역으로 캐스팅이 거의 확정된 때라 더욱 아쉬움이 클 듯.“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 영장이 날아왔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을테지만 “시간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단다. 군대가기 전날까지 영화 홍보로 스케줄이 빽빽히 차 있다. 그래도 오히려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 군대에 가는 편이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가수였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제 연기를 좋게 봐 주셨지만,2년 뒤에는 아니겠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연기 공부를 해서 놀랄 정도로 변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정부, 연말연시 ‘선물 주고받기 운동’ 추진

    이해찬 국무총리는 3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연말연시를 맞아 이웃간 따뜻한 마음과 온정을 나누는 미풍양속 차원에서 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적극 펼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과도한 선물은 곤란하지만 통상적인 미풍양속 차원의 선물 주고받기는 좋은 일”이라며 “특히 정부는 내수 부진과 쌀 시장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을 생각해 이웃돕기 물품 등을 구입할 때 우리 농산물을 적극 이용토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 총리는 또 “정부는 민간부문과 함께 사랑나눔 실천운동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각 부처는 연말연시를 맞아 이웃돕기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순균 국정홍보처장은 “중앙부처가 선물 주고받기와 우리 농산물 구입에 앞장서면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따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초 설 연휴를 앞두고 감사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공직자 암행감찰을 벌이는 등 공직자들의 선물 주고받기를 대가성 있는 금품수수행위로 간주해 적극 차단해 왔다. 그러나 기나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정부도 손을 든 것으로 보인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儒林(232)-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32)-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어쨌든 사면초가에 빠진 공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외교술에 능한 자공을 소왕에게 보내어 실정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자공을 통해 연금 상태에 빠진 공자의 입장을 알게 된 소왕은 곧 군사를 보내어 공자의 일행을 구해준다. 이때 소왕은 서사(書社)의 땅 7백리 봉토를 떼어주는 조건으로 공자를 초빙하려 했다. 서사는 25가(家)를 1리로 하고 1리마다 25인의 인명을 기록해 간직하는 서고였으므로 7백리는 2만여호의 인구들이 사는 제법 큰 영지였는데, 이 말을 들은 재상 자서(子西)가 소왕에게 반대하고 나서 말하였다. “대왕마마께서 공구를 초빙하려 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나이까.” “그렇다.” “공구에게 7백리의 봉토를 주려 하신다는데 그 또한 사실이나이까.” “역시 그렇다.” 소공이 대답하자 자서가 말을 이었다. “하오면 묻겠나이다. 대왕마마께오서는 제후들에게 보낼 사신으로 자공만한 신하가 있습니까.” “없소.” “대왕마마의 신하 중에 안회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소.” “대왕마마의 장수 중에 자로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소.” “대왕마마의 신하 중에 재여(宰予)만한 행정가가 있습니까.” 집요한 자서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소왕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역시 없소.” 그러자 자서가 말을 이었다. “지난날 초나라의 조상께서는 주나라로부터 자남(子男) 작위 아래 50리의 땅을 봉해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자는 옛 삼왕의 법도를 계승하고 주공과 소공의 유업을 밝히려 하고 있습니다. 대왕마마께서 만약 그들을 등용하신다면 초나라가 어떻게 대대로 수천 리의 땅을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옛날 주나라의 문왕이 풍(豊)에 있을 때나 무왕이 호(鎬)에 있을 때는 백리 넓이 땅의 임금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침내는 온 천하를 통일하였습니다. 지금 공자가 땅을 차지하게 되면 현명한 제자들이 공자를 보좌할 것이니 이는 초나라의 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 처마 끝을 빌려주었다가 안채를 빼앗기는 꼴이 되고 말겠지요.” 재상 자서의 말은 의미심장한 뜻을 갖고 있었다. 즉 초나라도 초기에는 50리의 영토밖에 갖지 못하였고 문왕이나 무왕도 백리 넓이밖에 안 되는 작은 봉토 내에서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는데, 소왕이 공자에게 7백리의 넓은 땅을 봉토로 떼어준다면 공자는 이 땅을 통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 초나라의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공자에게는 그를 보좌할 현명한 제자들이 있지 않은가. 외교술에 뛰어난 자공, 용감한 장수로서 으뜸이었던 자로, 탁월한 행정가였던 재여,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지휘할 수 있는 안회가 공자를 보좌할 수 있다면 공자가 초나라를 능가할 권력을 잡는 것은 손쉬운 일이며, 마침내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계기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니 공자를 절대로 초빙해서는 안 된다고 자서는 간언했던 것이다. 소왕은 이 말을 듣고 오랜 망설임 끝에 공자를 초빙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게 된다. 그리고 그해 가을(기원전 489년) 군막 안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공자의 마지막 희망도 한 순간의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때가 공자의 일생 중 가장 고통스럽고 비참했던 형극의 계절이었다.
  • “고혈압 인줄 우연히 발견”

    고혈압 환자 10명 중 8명은 자신이 고혈압인줄 모르고 지내다가 다른 질환을 치료하거나 우연히 자신의 병증을 알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고혈압학회(이사장 배종화)는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인 40∼69세 고혈압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70%가 다른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고혈압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 밝혔다. 반면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고혈압 진단을 받은 경우는 22%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8%는 ‘혈압 체크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고 응답했다. 또 환자의 15%는 평균 2회 정도 의사와 상의없이 임의로 치료를 중단한 적이 있었으며 4∼5회 이상 치료를 중단한 환자도 13%나 됐다. 전체 환자의 21%는 한달 평균 4∼5일 정도 고혈압 약 복용을 잊은 채 지나쳤다고 답했으며,‘한동안 먹지 않다가 한꺼번에 복용한 적도 있다.’고 답한 환자도 4%나 됐다. 배종화 이사장은 “고혈압은 뇌출혈, 협심증, 심근경색증, 신부전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40세 이상 성인의 경우 특이증상이 없더라도 반드시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며 “특히 고혈압 합병증은 겨울철에 10∼25%까지 급증하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고혈압학회는 2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를 ‘제4회 고혈압주간’으로 선포하고 무료 진료상담 등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 특히 올해에는 부산지역에서 행사를 열어 기념식과 함께 고혈압 홍보대사인 이만기 인제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고혈압 예방 캠페인을 갖기로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2)순천만 갈대숲의 교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2)순천만 갈대숲의 교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아는가.“무진(霧津)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고 없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같다.” ●사람과 동식물 공존하는 평화의 낙원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안개를 그렇게 묘사했다. 소설 무대를 순천만에서 빌려온 이유를 알 만 하다. 만추(晩秋)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간 순천만의 아침도 온통 물안개에 젖어 있었다. 안개는 노천온천의 김처럼 연신 올라와서 카메라의 렌즈를 적셨다. 아침 6시50분. 해가 뜨려면 족히 30여분은 더 있어야 한다. 대대포구 선착장에서 배에 오른다. 모터의 굉음이 퍼지면서 물살을 가르자 오리떼가 갈대밭에서 물을 박차고 난다.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사람을 경계하며 저만치 물러서 있다. 망원경이 아니라 육안으로도 얼마든지 새떼들이 잡힌다. 새떼들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으며 오로지 갯골로만 다닐 수 있음을. 갈대밭으로 배를 들이밀지 않는 한 한가롭게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래서 순천만의 일상은 사람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평화’ 그 자체다. 순천만이 이토록 ‘낙토’가 되기까지는 굴곡도 많았다. 시청부터 사태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보호습지 지정으로 재산권 불이익을 염려한 주민 반발도 뒤따랐다. 역시 세월이 필요했다. 수많은 이들이 순천만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렸다. 드디어 순천시의 결단이 내려졌다. 최덕림 주민과장은 ‘시민들도 서서히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만금이나 시화호 같은 실패작만 봐오다가 모처럼 순천만 같은 성공작을 만나는 것은 ‘기쁨’ 그 자체다.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하구습지로 알려졌기에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외국에서까지 찾아온다. 생태관도 만들었다. 대대포구 바로 옆에 갓 개관한 ‘순천만비지터센터’가 그것이다. 잠깐, 한마디 하고 넘어간다면, 그냥 순천만 ‘생태문화관’ 정도로 이름 지으면 될 것을 하필이면 비지터(visiter)란 말인가! 하여간 순천만은 뜨는 중이다. 충분히 뜰 만한 자격도 갖추고 있다. 생태보존의 본질적 측면에서 본다면야 이른바 생태관광조차도 허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만한 정도의 평화를 확보해낸 것만 해도 대견할 뿐이다. ●갯벌 200만평 중 20여만평 정도가 갈대밭 순천만 갯벌은 줄잡아 200만평. 개략적으로 20여만평 정도가 갈대밭이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자 갈대밭은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짝지어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새들, 새꼬막 맛 낙지 짱뚱어 갯지렁이 숭어 뱀장어 같은 주인공들이 번성한다. 갈대는 과다한 유기물질을 뽑아올려 나날이 건강한 펄지대로 정화, 갱신해 내고 있다. 1인당 5000원을 내면 대대포구에서 작은 유람선을 탈 수 있다. 왕복 30여분 뱃길, 선장은 이따금 배를 세우고 새소리를 듣게 한다. 바닷바람이 갈대에 부딪치면서 전투라도 벌이듯 사각거리는 소리는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그 묘미를 이해할 길이 없다. 유람선은 일단 성공적인 것 같다. 양동의 문화관광과장의 말로는 “주말에는 순번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철새들도 유람선이 갯골로만 다닐 수 있음을 잘 아는지라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새와 인간의 영역이 적절하게 균형잡혀 있다. 만의 생태계가 차츰 안정화되는 증거이리라. 허남채 비지터센터장을 길라잡이로 내세워 해룡면의 용머리산에 올랐다. 농로로 이어진 데다 간판도 없어 외부인이 홀로 찾기란 불가능하다. 얕은 산이기는해도 일단 정상에 오르면 일망무제다.“혼자 보기는 정말 아깝다.”고 했더니 “조만간 갈대밭에서 바로 넘어오는 환경친화적인 조망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귀띔한다. 순천만 관해의 으뜸 절경이니 시가 절로 나온다. 옛 시인들이 이런 풍경을 보면서 절경(絶境)보다 차라리 절창(絶唱)으로 표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치자 칠면초가 한결 붉은빛으로 타든다. 일곱 색깔로 변한다고 하여 이름조차 칠면초라는데, 진홍빛 낙조 앞에서는 아예 단풍잎처럼 갯벌을 물들인다. 봄에는 갈대의 초록빛 새순이 햇솜같은 꽃과 대비를 이루며, 여름에는 초록의 섬처럼 무리지어 회갈색의 갯벌 위에서 피어난다. 가을 노란빛이 짙어져 가면서 눈발이라도 날리면 순천만의 사계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다가서 있다. 바다에 물감을 풀어놓은 수채화라고나 할까. 통상적으로는 갈대밭 우거진 기수대를 순천만, 열려진 바다쪽은 여자만이라고 부른다. 지도에는 여자만으로 올라있으나 특별히 순천만을 떼내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 고흥반도가 펼쳐져서 여자만은 흡사 호수 같은 인상이다. 옛 사람들은 여자만 내의 여자도 주변에서 잡은 고기를 싣고서 순천만을 거쳐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대대포구는 물산이 넘쳐 흘렀다. 그들은 짚줄로 엮은 전통어법 ‘방’으로 고기를 잡아들였다. 근자에까지 남아 있는 전통어법으로는 ‘덤장’과 ‘발’을 꼽을 수 있거니와 지금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 깊은 곳에는 길게 덤장을 설치하여 봄·여름에는 칠게, 가을에는 민물장어를 잡는다. 비교적 얕은 내만 쪽으로는 V자형의 발을 설치하여 숭어 새우 문절어 등을 잡아낸다. 물이 썰면 낚시로 짱뚱어를 잡는다. 짱뚱어는 말뚝망둥어와 유사하다. 작은 갑각류나 규조류를 먹으면서 기수대에서 서식하는 짱둥어는 눈딱부리 머리꼴이 재미있게도 생겼다. 남도의 별미 짱뚱어탕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짱뚱어야말로 갯벌의 주인공이다. 어느덧 겨울 냄새를 맡았는지 놈들은 모두 갯벌로 숨어들었다. ●강·바다 오가는 왕복성 어류의 천국 강과 바다를 오고 가는 왕복성 어류의 천국이기도 하다. 숭어나 뱀장어들이 그곳의 주인이다. 한때는 장어들이 갈대밭마다 그득 차서 시쳇말로 ‘물반 고기반’이었다. 수중보 따위를 막지 않아 어로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전주천과 더불어 관리를 잘하여 천의 오염도도 낮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의 황선도 박사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이댔다.“갯벌은 자동차로 치면 범퍼지요. 범퍼가 사라진다면 조금만 스쳐도 큰 상처가 나겠지요.” 육지와 바다의 점이적 완충지대로서 갯벌의 중요성은 온갖 생물종들의 보육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는 “만이 유치원이라면, 유치원이 잘 되어야지만 바깥 바다인 초등학교도 잘되겠지요.”란 비유법도 썼다.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탐조객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경관 가치를 새삼스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척하면 오로지 땅의 부가가치, 아니면 고작해야 어획물의 경제적 이득부터 계산하기 마련이고 여기에서 경관가치 계산법은 누락되기 십상이다. 만약에 지금의 순천만이 매립되어 아파트나 공단이 들어섰다면? 아름다움 자체가 사회적 재산이란 생각을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돈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니면 아름다움을 모르거나, 그도 아니면 둘 다 모르는 것 아닐까. 순천만의 교훈은 ‘불이(不二)’이다. 연기법에서 말하는 인간(正業)과 자연(依報)은 둘이 아니라 큰 생명체라고 하는 의정불이설(依正不二說)이 아니더라도, 어찌 바다와 강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랴. 갯벌에 의지해서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짱뚱어라거나 갈대밭, 온갖 새들은 갯벌 그 자체와 떼어놓을 수가 없다. 하구 갯벌은 바다도 강도 아니고, 육지도 바다도 아니며, 모든 것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인간이 발을 딛고 서 있을 만한 공간이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불이이며, 아름다움 조차도 ‘경계의 미학’ 그 자체다. 경계는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경계는 그 긴장감으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지켜낸다. 온갖 물고기와 패류, 조류, 심지어 순천만의 사람들까지도 생명으로 엮여 하나가 되고 있다. 갯고랑으로 노를 저어가는 유장한 물살만큼이나 순천만 사람들의 삶도 유장하다. 그래서일까. 순천만이 빚어내는 먹을거리들은 쩍쩍 입에 붙는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 높이 2m를 넘는 순천만 갈대숲은 더운 지방의 망그로브숲에 비견된다. 망그로브숲도 경계에 서 있다. 갯벌이 드러나고 숲의 뿌리도 드러난다. 물이 차고 빠지기를 거듭해 오면서 조간대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망그로브숲이 사라지자, 전 세계적으로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졌다. 숲 보존 비용보다 조성 비용이 훨씬 많이 먹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갈대밭이나 칠면초 등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인공으로 만든다면, 계산해볼 것도 없다.‘있을 때 잘하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독일 북해의 홀슈타인주에 있는 갯벌국립공원에서는 늘상 ‘문화적 경관’을 내세운다. 홀슈타인 갯벌의 새와 어민, 잡초류가 모두 동참하는 경관을 내세워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들에게 갯벌은 당연히 국립공원이다. 우리는 국립공원은커녕 ‘막느냐, 마느냐.’를 두고 멱살잡이가 한창이다. 갯벌에 입장료 내고 들어가라면, 한국의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순천만도 조금은 위태로워 보인다. 생태보존정책 속에서도 조금씩 인공적으로 가꾸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한사코 누르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순천만의 미래를 담보하는 최선의 원칙이자 해답이 아닐까.
  • 답안 ‘피라미드식 중계’ 가능성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부정 의혹을 둘러싼 ‘빙산’의 전모가 드러날 것인가. 인터넷 등에서 흘러나온 각종 ‘설(說)’들의 진위가 일부 확인되면서 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제2,3조직의 존재 ▲대물림 확인 ▲학부모 묵인 ▲브로커 존재 ▲폭력서클의 가담 ▲여학생 연루 등이다. ●제2,3조직 존재하나 경찰은 지난 26일 인터넷 제보 추적을 통해 제2,3조직을 적발해 냈다. 제2조직은 같은 학교 학생 7명이 모의했으나 ‘선수’(정답을 문자 메시지로 송신하는 사람)를 모집하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중 K군(18)의 휴대전화를 추적한 결과 또 다른 ‘제3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다.K군을 포함, 모두 5개 고교 25명(중계 도우미 12)이 이미 적발된 제1조직으로부터 휴대전화를 통해 답안을 전달 받았던 것이다. 제3조직 역시 같은 이유로 모의 단계에서 실패했다.K군은 1조직의 구속된 같은 학교 친구(18)에게 사후 뒤풀이를 해 준다는 조건으로 ‘중계조’를 통해 답안을 전송받은 뒤 이를 10만∼30만원씩 낸 같은 조직 13명에게 전달했다. 제3조직이 제1조직의 ‘하부조직’으로 변한 셈이다. 이처럼 20∼30명이 가담한 ‘소그룹’ 추가 존재 여부가 수사의 초점이다. 그동안 가담자가 ‘200∼600명에 이른다.’는 제보가 쏟아졌던 만큼 반드시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여고생 5∼6명의 가담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J여고 B양(18)이 제1조직의 남자 친구인 A군(18)으로부터 휴대전화 메시지로 답안을 전달 받았다. 나머지 5명의 여학생도 도우미(중계조)로 참여 또는 메시지를 수신한 흔적이 나타났으나 “당일 휴대전화를 집에 놓고 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1조직에서 파생되긴 했으나 부정행위에 연루된 여고생 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대물림 의혹 경찰 관계자는 “극소수 부유층 여고생이 대물림으로 부정시험을 치러 왔다는 제보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구속되거나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도 “선배들로부터 수법 등을 배웠다.”고 진술했거나 비슷한 소문이 허다하다. 경찰은 도우미 관리를 맡은 대학생 7명에 대해 ‘보은’ 차원의 도움이 아니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이들의 통화내역 등을 추적 중이다. ●일진회 및 브로커 개입 의혹 지난 2002년 대대적인 ‘조폭소탕 작전’때 고교내 ‘폭력 조직’은 대부분 와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일부에서 제기한 조직적인 폭력서클이 이번 부정시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브로커 개입 여부도 학부모 등의 계좌 추적 결과에 따라 확인될 전망이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광주 최치봉 이재훈기자 cbchoi@seoul.co.kr
  • 자위대, 유엔결의시 30일내 파견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방위청은 평화유지활동(PKO)이나 다국적군 지원에 관한 유엔의 결의가 있을 때 30일 이내에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자위대 개편 보고서를 마련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5일 보도했다. 방위청 ‘방위력검토회의’가 마련한 보고서는 신설되는 ‘중앙즉응집단’ 사령부가 자위대 해외파견과 테러 등 긴급사태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지휘를 맡도록 했다. 또 육ㆍ해ㆍ공 자위대의 통합운용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을 5방면으로 나눠 편성한 육상자위대 방면관구제를 바꿔 ‘육상총대제’ 도입을 검토하도록 했다. 일본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전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가 이미 제출한 보고서와 방위청 보고서를 토대로 다음 달에는 새로운 ‘방위계획대강’을 확정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육상자위대의 전차와 화포는 줄이되 테러와 대규모 재해발생시 자위대를 신속히 파견할 수 있도록 병력 4000∼5000명 규모의 중앙즉응집단을 신설토록 했다. 육상자위대 정원은 상비자위대원 15만명, 예비자위대원 1만명 등 16만명으로 편성토록 했으나 재무성은 현행 정원 16만명보다 1만명 정도 감축을 요구하고 있어 1만명 안팎 줄이는 선에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해상자위대 호위함대는 현재 8척인 부대편성단위를 4척으로 줄이고 초계기부대는 8개대대 80대를 4개대대 75대로 축소토록 했다. taein@seoul.co.kr
  • 롯데마저 ‘감원한파’

    롯데그룹에 ‘감원 한파’ 주의보가 내려졌다. 최근 롯데그룹 계열사 중의 하나인 롯데호텔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정년을 보장하는 몇 안 되는 기업으로 손꼽히는 롯데그룹의 희망퇴직 방침이 전해지자 그룹안팎에서는 “향후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롯데호텔의 정책본부장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대내외적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처하고 조직의 효율화를 위해 조직 재정비 작업을 벌이고 있는 때와 맞물려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5일 “경기침체로 인해 서비스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현재 호텔에 한해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상은 서울 소공동, 잠실, 울산, 제주 등 4개 호텔에서 10년차 이상의 임직원이다. 희망퇴직은 이달 31일까지 접수한다. 회사측은 ▲기본급 기준 20개월 추가 지급 ▲연차별 새출발 격려금 차등지급 ▲창업 및 취업 지원·알선 ▲한 직급 승급 퇴직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롯데호텔의 희망퇴직 시행은 IMF시절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이다. 롯데그룹은 다른 기업에 비해 ‘보수적 경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식 스타일로 사람을 귀하게 여겨 다른 기업에서 “힘들고 어렵다.”며 대대적인 임원감축을 할 때도 노동고용 안정을 내세우며 인화로 조직을 다독거려 왔다. 노조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 관계자는 “희망퇴직이 단순히 희망자에 한해 이뤄지지 않고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면 준법투쟁 등 단계별로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희망퇴직 이후 구조조정이란 ‘숨은 그림’이 있는지에 대한 회사측 입장을 들은 뒤 향후 행보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측은 “호텔업계의 전반적인 침체와 인력구조의 노화 개선 때문이지 그룹차원에서의 구조조정과는 관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中 공산당원 30만명 사상조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 공산당이 비밀리에 당원 30만명에 대한 사상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공산당 조직부는 지난 2000년부터 장쩌민(江澤民) 당시 당총서기와 후진타오(胡錦濤) 상무위원의 공동지시에 따라 30만명의 당원을 선별해 사상조사를 실시했다고 주간지 랴오둥팡(瞭望東方)을 인용, 관영 신화사가 24일 보도했다. 공산당 중앙 조직부의 당원 사상조사 결과, 적지 않은 당원들이 사상과 신념이 동요되고 있으며 조직규율 체계가 상당부분 이완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보고서는 2002년 11월에 열린 공산당 16차 전대에서 ‘당원 선진교육’의 주요 근거로 채택됐다고 신화사가 전했다. 당 중앙은 후진타오 당총서기 지시에 따라 지난 10월 당원들의 사상교육을 전담할 ‘당원선진성 교육판공실’을 설립, 내년 1월부터 대대적인 당원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신화사가 전했다. 이에 앞서 2003년 1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허궈창(賀國强) 조직부장을 중앙당 건설사업영도소조 조장으로 임명했으며 1월 실시될 사상교육에는 12개 성시와 7개 중앙 국가기관 등 5만 2000개 하부조직의 총 103만 5000여명의 당원이 대상이다. 사상 교육은 ‘3개 대표론’을 중심으로 당의 집정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신화사가 덧붙였다. 한편 30만명 당원 사상 조사 결과를 토대로 충칭(重慶)시는 “일부 공산당원의 신념의 동요는 엄중하다.”고 보고했고 쓰촨(四川)성 당 건설연구소조는 “많은 당원들은 정치이론학습에 관심이 없고 모든 정력을 상부 지도자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oilma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1) 완도 송징당산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1) 완도 송징당산제

    ‘장사의 뼈는 진작 초목과 더불어 썩었어도/의연한 그 혼백 노여움 머금어 바람 우뢰 사나우니/귀신이 영웅되어 이 땅에서 받들어지며/신목에 꿩털 꽂고, 나무로 형상을 만들었도다/저 어떤 사람인가?/신당을 괴이하게 비웃으며/부수고 망가뜨려 강가에 던지다니!/백년 풍상에 한 간 당집이 쓸쓸하고/철 따라 복날이고, 섣달이면 마을의 북소리/뉘엿뉘엿 해 질 무렵이면 무당이 굿을 하는데/하늬바람에 갈가마귀 춤을 춘다.’ 당대의 문인 임억령(1496∼1568)이 해마다 송대장군을 받들고 굿을 하게 된 내력을 읊은 장시 ‘송대장군(宋大將軍)’의 한 대목, 시에서 ‘신당’이 있는 곳은 우리에게 청해진 유적지로 잘 알려진 완도 장좌리의 장도(將島). 이곳에는 전설의 인물 송징(宋徵)이 마을신으로 좌정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정월 열나흘 밤이면 풍물굿이 열린다. 모두들 일렁이는 횃불을 들고 물이 빠진 바닷길을 걸어서 섬으로 들어가 장군을 모신 신당 앞에 자리를 잡는다. 굿은 밤새도록 이어진다. 새벽녘 동이 훤하게 터올 무렵에야 신당에서의 굿은 파한다. 여명이 들 무렵이면 들물이 차올라 장도는 다시 물길에 갇히고 만다. 아낙들은 아무런 속이 없이 그냥 흰 밥을 둘둘 만 굵직한 김밥을 하나씩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김치를 곁들인 흰 김밥을 새벽 바다에서 먹는 맛이라니! 그 김밥으로 허기를 때운 사람들, 이제 마을로 돌아갈 행장을 꾸린다. 굿패는 신당을 몇바퀴 돌면서 굿거리 장단을 펼친다. 올 때는 걸어왔지만 돌아갈 때는 배를 타야 한다. 배에서도 요란하게 풍장을 치면서 굿판의 여흥을 사른다. 아침 바다에 울려퍼지는 풍물소리의 매혹스러움을 어찌 글로 다 옮길 수 있으랴. ●매년 정월 열나흗날 섬에서 밤새 풍물굿 지금부터 꼭 20년 전인 1984년. 그 때 머나먼 이곳 장도로 답사를 왔었다. 그 때만 해도 차편이 드물었던 시절이라 어쩌다 시골버스가 다닐 뿐 너무도 조용하여 굿장단에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동네 구멍가게에 자리를 잡고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렸다. 마침 마을 장정 몇이서 됫병 소주를 맥주컵에 그득하게 따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나그네에게도 컵 가득 소주를 부어 권하였다. 그러면서 그 사내들은 송징 장군을 모시게 된 내력을 신명나게 풀어냈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오래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의 말 어디에도 유명한 장보고 이야기는 없었다. 물이 빠지자 그대로 200여m를 걸어서 장도로 들어갔다. 바다에 에워싸인 언덕배기에는 푸른 밭이 펼쳐져 있었고, 섬 정상부는 유난히 푸르른 동백나무숲이 무성했다. 반짝이며 생기가 도는 동백나무 잎에서 생명의 기(氣)가 무한히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그곳에 조그마한 당집이 있었다. 금줄이 쳐진 당집 문을 열자 송징 장군이 기다리기라도 한듯 좌정하고 우리를 맞았다. 그로부터 10여년쯤 뒤. 다시 한번 그곳 장좌리를 찾았다. 불과 10년 사이에 그 때의 초가 당집은 기와집으로 바뀌어 한 눈에도 근엄해져 있었고 당집 문을 열자 예전에는 없었던 장보고의 영정이 마중하였다. 어느 노인이 들려주었다.“원래는 송징인데, 문화재에서 장보고래요.” 노인이 말한 ‘문화재’란 문화재를 다루는 관계 공무원이나 학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20년 전 조사할 당시만 해도 분명히 송징으로만 전달되었고, 임억령의 시에도 송징이 주인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빚어졌을까. 변모 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임억령은 앞의 시를 통해 송징을 모신 굿당을 무시하며 이를 음사(淫祠)로 치부하는 유생들의 고루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송 장군의 영웅성을 노래했다. 그의 고향이 해남 땅이니 완도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지냈으렷다. 시에서 송 장군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위력을 보여주는 영웅,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천험의 요새에 진을 치고 민중을 도와주었던 출중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송 장군을 둘러싼 다양한 ‘설’만 있을 뿐 아무런 입증자료가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 송징이란 뛰어난 인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가 완도민들을 위하여 무언가 선한 일을 했을 법한데 영웅으로서 피를 흘리며 비장하게 죽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바다의 영웅,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모셔지게 되었고, 임억령의 시에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듯 오랜 세월을 모셔지던 바다영웅 송징이 주인 자격을 잃고 느닷없이 장보고로 바뀌었다니…. 송징은 원래 장보고인데, 신라에서 장보고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기에 내놓고 장보고를 모실 수가 없어 송징으로 이름을 바꿔 모시게 된 것이라는 희대의 궤변도 등장했다. 송징은 분명 실존인물이었을 것으로 비정된다. 민중의 입장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영웅답게 당신(堂神)으로 신격화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 송징의 의미는 격하되고 장보고라는 ‘새로운 신화’가 느닷없이 그 자리를 넘보기 시작하였다. 장보고의 시대적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오랫동안 숭배되어 온 민중영웅은 끝내 쫓겨나고 거짓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송징장군 10여년 전부터 장보고로 뒤바뀌어 그동안 제 대접을 받지 못하였던 장보고의 인물사적 조망이나 유적지 발굴 등 현양사업의 필요성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헌이 남아 있지 않으니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어도 문화재청의 발굴 결과 장도는 청해진의 진지로 비정되며, 학계에서도 대략 이를 공인하는 분위기다.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법화원 터도 발굴되었다. 일찍이 미국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E.O.Reischauer) 교수가 ‘해양 상업제국의 무역왕’으로 표현하고 그의 직책을 총독(Commissioner)으로 지칭했듯 장보고는 백가제해(百家濟海)하던 해상국가 백제의 전통을 이어받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해양의 원대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현양사업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장도의 주신은 엄연히 송징이다. 역사적으로 장보고가 남해안의 신으로 좌정한 적은 없었다. 왜구를 물리친 최영도 남해안의 신이 되어 있다. 억울하게 죽은 민중의 영웅이라면 대개 민중의 신으로 좌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상하게도 장보고만은 민중의 신이 되지 못했다. 참으로 이상한 점이기는 하나,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에게서 다양한 증언이 나오고 있다. 송징 장군, 정년 장군, 혜일대사는 예전부터 당제로 모셔졌지만 장보고 장군을 모신 것은 10여년 전부터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1982년 남도문화제 출전 이후부터라고 아예 못을 박는 이들도 있었다. 장보고 장군을 모시자는 마을 유력자들의 건의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바움(E.Hobsbawm)이 이론화시킨 ‘만들어진 전통’의 개념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효할 것이다.‘전통 만들기’로 인하여 반허구적 조작이 이루어지고, 역사적 연속성을 초월하여 과거가 새로이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역사적인 연속성조차 새로이 만들어진다고 그는 설파하였다. 장보고를 되묻는다.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혹시나 박정희 시대의 이순신 장군, 전두환 시대의 세종대왕, 김대중 시대의 장보고 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하면서 ‘정치적’으로 귀착한 것이나 아닌지. 장도가 청해진이라는 발굴 성과가 제시되자 사람들은 한층 ‘전통 만들기’의 욕망에 허덕이는 듯 보인다. 장보고와 송징은 섞여서 해석되고, 장보고의 ‘만들어진 전통’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송징은 마땅히 죽어야만 한다는 듯. 송징의 옷을 빼앗아서라도 새롭게 갈아입은 장보고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우리들 시대가 펼치려는 온갖 장중하고도, 때로는 불필요한 일까지 포함하는 장보고 현양사업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모든 길은 장보고로 통한다.’는 식에 가까운 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온갖 추정과 가설이 정설로 둔갑되고 마침내 확고부동의 진실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유력 일간지는 아예 ‘천년 넘게 이어져온 장보고 당제’라는 특집도 내보냈으며,TV도 ‘장도와 청해진, 장보고, 마을신앙’의 연결을 공식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적 근거가 없으니 안타깝거니와 사실은 ‘아둔한 짓’ 아닐 것인가. ●천년 넘게 이어져온 장보고 당제라니… 송징은 조만간 완벽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훗날에는 장보고의 ‘만들어진 전통’,20세기 초기나 말기의 행위들이 당당히 사서(史書)에 기록되고, 새로운 구전(口傳)으로 이어져서 새 전통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인 즉, 민중신앙사의 장기 지속에서 연이어 온 송징만큼은 훗날을 위해서라도 온전히 보존해 두어야할 것 아닌가. 매우 하찮은 일 같지만, 이렇듯 역사적 뿌리마저 뒤범벅해 놓으면서 어찌 후대의 역사적 평가 운운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으랴. 한학자 임형택(성공회대) 교수도 이를 경계하여 ‘민중영웅의 형상이 또 한번 훼철당한 사례’로 비판한 바 있다. 장보고를 핑계삼아 희생양처럼 훼철된 송징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늠름하게 좌정해야 하지 않을까.
  •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실전논술 지상강의 2회 제시문

    글 ㈎ ①“중국이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욕심을 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쳐요.”고구려 연구재단이 공식출범하기에 앞서 지난 주말 서울 고려대 법학관 1층 교수실에서 만난 김정배(64·고려대 사학과 교수·임기 4년)재단 초대이사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중국측이 느닷없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들고 나와 고구려사를 자신의 지방사로 만들려는 데 대한 분노가 역력했다. 교수실은 얘기를 나눈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노학자가 내뿜는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다. ②김 교수는 조목조목 중국 주장의 부당성을 꼬집었다.“그들의 주장대로 우리 반만년의 역사에서 고구려 부분을 빼면 200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민족이 됩니다. 또 단지 역사적인 측면을 넘어 향후 국경이라는 문제까지 비화될 수 있어요.” 중국 주장대로라면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했으므로, 현재의 북한 역시 중국 땅이 된다. 한국은 고작 남한 땅으로 좁혀진다. 노학자의 차분하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톤이 높아졌다.“세계적으로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한 예가 없습니다. 일본도 이보다 심하지 않았어요. 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여기 비하면 양반입니다.”(임나일본부설이란 왜가 4세기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일본측의 주장) ③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동안 책상위를 뒤져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이 사람이 실제 동북공정의 지휘를 맡고 있는 마대정(馬大正)인데, 신강쪽에서 변방문제를 주로 연구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점을 봐도 이들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중국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나라인데 21세기에 이런 패권주의로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④동북공정에는 조선족 문제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진단했다.“국내의 불법체류 조선족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통치기반을 흔드는 중대사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감정적인 측면을 벗어나 법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중국인입니다. 중국으로서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⑤김 교수는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중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포석의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다.“한국이 경제력이나 정치적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⑥따라서 김 교수는 향후 재단의 활동을 연구와 현실참여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들을 지원할 방침이다.“시민단체들은 아무래도 행동을 중시해,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공론화하는데 맞으리라고 봅니다. 외교문제가 걸린다면 상황에 따라 정책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도록 할 예정이에요.” 물론 시민단체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정·관계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계획입니다. 또 북한 학자와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해 통일·외교부 등과 연계해 합동조사나 세미나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중국과 맞부딪히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우리 작업이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비쳐져서는 안 됩니다.마치 영토분쟁의 문제로 발전하는 것은 양국에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⑦그는 역사지키기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연구여건과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국내에서 고구려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겨우 14명 정도입니다. 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고대사 연구를 하는 후학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겁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단숨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없는 만큼 착실히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⑧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예컨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만 보더라도 고구려라는 문헌과 말갈족이라는 것이 공존하는데, 중국은 말갈족이라는 문헌만 택합니다. 발해가 말갈족의 지방정권이라고 중국이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지요. 하지만 고대사는 단지 사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물을 보면 고구려의 것이 대거 발견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한 나라가 갑자기 세워질 수 있습니까. 상식으로 말해야지요.” 비록 중국이 자국에 민감한 사료의 경우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든지 접근을 불허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는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을 모두 뒤져 고구려 관련 자료를 모아 실증적으로 고구려가 한국사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⑨김교수는 이번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외홍보라고 강조했다.“역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알리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외국 연구기관 대학 등에 연구결과를 정기적으로 보내, 고구려사에 대한 세계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입니다.” ⑩아울러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데 특히 북한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북한은 고구려를 뿌리로 삼고 있어요. 심지어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고려로 정통성이 이어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지방사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⑪그렇다고 중국과 담을 쌓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조만간 중국과 대화하기로 돼 있습니다. 앞으로 학술회의나 대담 토론회 등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 등과도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국민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동북공정이란? 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을 약칭해서 부르는 말로 ‘동북 변경지역이 역사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역임을 확인’하려는 이 작업은 지난 96년 중국의 국가기관인 사회과학원의 핵심연구과제로 추진되기 시작했다.‘학술은 대중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등의 원칙 아래 고구려사 등을 연구중이다. 글 ㈏ ①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주도하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동북공정’ 2004년도 연구과제가 서울신문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는‘동북변강연구총서’로 간행된 2003년 과제와 연결된 것으로 고구려, 발해문제를 중심으로 우리민족 기원문제와 명·청 시기 조·중 관계사 등 중국이 동북3성(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지역에 대한 역사적 장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각 연구자 및 관련기구들의 범위와 성격도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②주목되는 것은 동북공정에 참여한 조직이 35개에 달하며 관련인력은 수백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즉, 동북 3성 지역의 모든 사회과학원과 대학, 전문연구소가 중앙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을 정점으로 연결되어 역할 분담을 통해 관련연구를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직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고대사에서 근현대사까지 동북 3성지역과 관련된 중요 쟁점사항들을 다양하게 망라하여 연도별로 진행하고 있음이 실제 확인된 것이다. ③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04년 3월15일에 공포된 ‘동북공정 과제연구지침’내용이다. 이 지침에는 동북공정이 추진하는 6개의 연구항목과 과제목표가 제시되어 이에 근거한 연구계획 수립을 관련 연구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 중 새롭게 ‘고구려발해국문제연구’가 추가되어 나타난 점이 주목된다. 동북공정에서 고구려, 발해가 핵심 연구분야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2003년의 세부연구주제였던 ‘발해유적현상조사’가 2004년 내용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2005년에 헤이룽장성 닝안(寧安)과 지린성 둔화(敦化)지역의 발해유적을 20억위안(약 2800억원)을 들여 중국고대도시로 복원한다는 최근 보도와 연결된 것임을 보여준다. ④결국,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사라고 학술적으로 부각하고 곧바로 그에 대응되는 역사공간인 시안의 고구려유적과 둔화의 발해유적 등을 중국 역사유적으로 복원, 정비하여 명실상부한 중국 역사화 작업을 완수하려는 의도를 이번에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⑤또한 북방지역의 고대 종족, 고조선, 한국민족 및 고대 국가기원을 연구해 중국과 우리 민족의 관계사, 국경문제, 이민문제 등을 중국적 입장에서 정리하여 결국 이들 역사마저도 중국 역사범주에 있음을 강변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4년 연구과제인 ‘조선반도민족, 국가의 기원과 발전’이란 제목의 연구과제는 중국의 연구가 고구려, 발해와 함께 우리민족의 성격까지도 중국측 논리로 파악하려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제의 연구책임자가 다른 연구논저에서 이미 한국민족은 중국계통의 유이민 세력이며 중국문화가 한국문화의 모태라는 식의 철저한 중국중심주의 입장을 피력한 사실을 감안할 때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⑥이상에서 볼 때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추진하는 연구사업은 중국의 역사왜곡과 고구려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과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은 동북지역을 장악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수백-수천년 전에도 같은 상황인 것처럼 호도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존립근거와 역사 문화적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폭거이자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협하는 역사침략이다. ⑦이제 우리는 후손에게 우리 역사를 당당히 지켜내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 무엇을 했고 또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때이다. 특히, 지난 1일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이 중국의 역사왜곡과 한민족 정체성부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자들의 열정과 노력, 체계적인 정부의 지원, 그리고 보다 많은 국민의 관심과 우리 역사 사랑이 요청된다. 글 ㈐ ①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관한 충격적인 보도가 거의 날마다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뒤에서 협공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중국이 저지르고 있는 왜곡의 정도나 수위가 오히려 일본보다 극심하다. 중국은 그동안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우리와 같은 피해자로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었기에 더욱 개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즉시 중국의 역사왜곡의 저의를 파악하고 근본적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②중국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와 수교한 직후부터 정부 산하의 학술기구인 중국사회과학원을 주축으로 역사왜곡을 획책하였다. 그들은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본격화하여 아주 조직적으로 우리의 고대사인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송두리째 가로채려 기도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왜곡에는 대내외적으로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포석이 다양하게 깔려있다는 점을 먼저 간파해야 한다. 우선 대내적으로 볼 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내부에 확산되면서 체제 유지와 안정을 위해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국가주의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동북공정’도 바로 그러한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③동시에 대외적으로 ‘동북공정’에는 중국이 동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하고 나아가 국제무대에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패권주의적인 야심이 담겨 있다. 특히 해양세력인 일본의 확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동아시아에서 리더십을 확립하겠다는 것이 1차적 목적인 것이다. 통탄스럽게도 현 강국들의 힘 겨루기가 과거 우리의 고구려사를 매개로 벌어지고 있는 격이다. ④이렇게 다양한 목적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역사 왜곡을 쉽사리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 그것을 더욱 심화하고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늦은 감은 있으나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엄중히 항의하는 동시에 북한과도 연대하여 공동대응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더욱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특히 아래의 몇 가지 사항들은 반드시 참작하여 대책 수립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⑤먼저 고구려사 왜곡이 정치문제로 불거졌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학문적인 저력을 배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역사의 요체는 문화전통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국가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저변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어학, 고고학 등 주변 인문학을 총동원해 학술적인 면에서 설득력을 강화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국어사적인 측면에서 고구려어의 특성을 밝힌다면 그것이 백제어, 신라어와 동질적 관계이고 중국어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분명히 규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중국이 자행하는 역사왜곡의 허점을 잡아내고 그들의 억지 논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⑥다음으로 고구려사를 포함한 국사교육체제를 전면적으로 강화하여야 한다. 문민정부 이후 제도권 교육에서 국사과목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서는 국사가 교양필수에서 그저 흥밋거리나 제공하는 선택과목으로 전락해 버린 지가 오래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 집단기억’을 담고 있어야 할 국사교과서마저도 문제 투성 이라는 사실이 자주 지적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지구상에 자국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대응이라는 대전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⑦끝으로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 역사를 국제사회에 보급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특히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전이 시급하다. 고구려사가 한국고대사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인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우리는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자국의 역사마저도 타국에 송두리째 강탈당하는 비극적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 [문학이 머문 풍경] 망향의 恨 타오르는 영산강

    [문학이 머문 풍경] 망향의 恨 타오르는 영산강

    소설가 문순태(文淳太·63)는 고향이 없다? 전라도 전체가 그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그는 일제 말기인 1941년 영산강 상류인 전남 담양군 남면 구산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다. 무등산 자락과 광주호로 이어지는 산골 마을이다. 평화롭던 마을은 한국전쟁과 함께 폐허로 변해 버린다. 봄이면 지천에 진달래가 만발하고 실개천 너머로 아지랭이가 피어 올랐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1년 정부군은 ‘빨치산’ 토벌을 이유로 이 마을 일대 모든 집들을 불태워 버렸다. 당시 어린 작가는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봤다. 정부는 아무런 보상도, 마땅한 설명도 없이 ‘공비토벌’이란 이유만 내세웠다. 그의 가족들은 고향을 뒤로하고 유랑에 나선다. 그 바람에 그는 화순, 광주, 신안 비금도 등 전남 곳곳을 떠돌며 어린시절을 보낸다. 어릴적 경험이나 환경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그런 정서와 기억이 그의 작품 곳곳에 짙게 묻어난다. 토속적인 향수와 한(恨)을 주된 정조(情調)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편협한 지역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땅에서 뼈를 묻은 무지렁이 민초들의 삶과 투쟁이 곧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의 머리말에서 “진정한 의미의 산 역사는 민중(民衆)이 그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댐 수몰민의 삶을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도시빈민 문제를 다룬 ‘징소리’나 ‘흑산도 갈매기’‘걸어서 하늘까지’등의 소설도 그런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타오르는 강’은 구한말 영산포 일대에 정착한 민중들의 삶을 그린 그의 대표작. 영산강은 노령산맥 골짜기인 담양군 용면에서 서남해 끝자락인 목포에 이르는 120여㎞의 물골을 만들며 흐른다. 상류의 황룡강, 극락강, 지석강 등 3대 강을 따라 장성, 담양, 광주, 나주가 위치하고 그 아래 쪽으로 함평, 영암, 무안, 목포가 이어진다. 하구언이 축조되기 이전인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고깃배가 영산포 선창까지 오갔다. 영산포는 동학혁명 직전의 무능한 탐관오리들이 세곡(稅穀)을 한양의 경창(京倉)으로 실어 나르는 물류 중심지였다. 일제 때는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나는 곡식을 일본으로 빼가는 ‘수탈의 관문’으로 자리잡았다. 소설 ‘타오르는 강’은 1886년 노비 세습제가 폐지되면서 종문서를 받아들고 영산강을 건너는 웅보와 대불이 형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주의 양 진사네에서 대대로 종살이를 해온 이들 형제는 구진나루를 건너 ‘새끼내’ 제방 너머에 터를 잡는다. 새끼내는 봉황∼왕곡∼영산포에 이르는 영산강의 작은 지천이다. 지금의 나주시 이창동 정량·진포·운곡리 일대가 ‘새끼내 마을’이다. 웅보와 대불이 형제는 노비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모아 새끼내 일대에 마을을 일궈 나간다. 그들은 이곳 주변에 물둑을 쌓고 황무지를 개간한다. 형 웅보는 새로운 고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동생 대불이는 상전이었던 양 진사를 도와 인근 영산포 선창에서 세곡 운반을 감독하는 목대잡이 노릇을 한다. 양 진사의 계략에 속은 줄 뒤늦게 깨달은 대불이는 장성 입암산으로 들어가 동학교도가 된다. 그는 동학군이 되어 귀향한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소중한 땅을 빼앗아간 박 초시네 집을 습격하고 한을 푼다. 그러나 관군의 반격으로 동학군은 퇴각하고 새끼내 마을 사람들도 보복이 두려워 애써 일군 고향 마을을 불태우고 강변 따라 갓 개항한 목포항으로 떠난다. 다시 고향에 돌아올 꿈을 안은 채… 이는 특정시대, 특정 공간에서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선대가 겪었던 일이다. 새끼내 마을에서 만난 김판길(82) 할아버지는 “일제때 징용에 끌려갔다가 귀향했으나 살길이 막막해 선창가에 나가 짐꾼 등 막노동으로 살아 왔다.”며 “강 양안의 구릉이나 산지에 선대의 뼈가 묻혀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지역 신문기자로 일하던 70년대 초에 나주의 한 종가집을 취재하다가 노비들의 삶을 만난다. 그는 여기에 나주의 이른바 ‘궁삼면 사건’을 보태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이 사건은 1886년부터 3년에 걸친 대한(大旱) 때 지금의 다시·왕곡·세지 등 3개면 주민들이 폐농하고 유리걸식하며 각지를 떠돌면서 비롯된다. 이들이 귀향해보니 그동안 밀린 세금이라며 조정에서 농토를 빼앗아 가버리고, 이 사건은 농민운동의 발단이 된다. 죽음과 고통과 수탈의 현장이었던 영산강은 그대로 흐르고 있다. 자유인으로 변신한 노비들이 강 건너 황무지와 개산(새끼내 마을에 자리한 산으로 개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바라보며 ‘낙원’을 꿈꿨던 구진포 나루에는 지금도 고깃배가 떠있다. 홍어와 젓갈 등 수산물과 곡물을 실어나르던 영산포 선창의 흔적도 선명하다. 강은 상류 댐들과 하구언 축조로 수량이 줄면서 거친 모래자갈을 앙상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그 당시와 다를 뿐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장성 인사’ 서류 전격 압수

    군 검찰단이 지난달 단행된 육군 장성 진급 인사에 대규모 비리가 있었다는 내용의 괴문서와 관련, 육군본부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 파문이 일고 있다. 군 검찰이 육군본부 인사 부서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22일 밤 군사법원으로부터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진을 육군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로 보내 진급 관련 서류를 압수했다고 국방부가 23일 밝혔다. 당초 군 검찰은 지난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육본측에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거부되자, 압수수색 영장을 전격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검찰은 비리 의혹 규명 노력과 별도로 장성 진급 업무 전반의 공정성과 결과의 타당성, 진급 관련 심사 자료의 적절성 등에 대해서도 정밀 확인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이번 조사에서 괴문서에 적시된 의혹들이 일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의지를 강조해 온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문책은 물론 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육군 인사참모부 관계자는 “기존의 진급심사위원회와 별도로 인사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등 4심제에 의한 투명한 시스템 인사를 통해 진급자를 선정했기 때문에 심사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최우수 헬기 조종사·사수 ‘탑헬리건’에 백흥기 소령

    올해 육군의 최우수 공격용 헬기 조종사(탑 헬리건)에 항공작전사령부 예하 501 항공대대 소속 백흥기(41·학군 26기) 소령이 선정됐다고 육군이 23일 밝혔다. 백 소령은 10월11일부터 2주에 걸쳐 육군 비승사격장에서 실시된 ‘2004년 육군항공 사격대회’에서 최고 기량의 실력을 발휘했다. 한편 육군은 이날 오후 경기도 이천 항공작전사령부 연병장에서 ‘탑 헬리건’으로 선발된 백 소령에게 대통령상과 함께 기념 휘장을 수여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철책 구멍’ 경징계로 봉합

    지난달 26일 강원도 철원군 최전방에서 발생한 3중 철책선 절단사건과 관련, 해당 부대 지휘관들에 대한 징계가 최고 ‘감봉’으로 결정됐다. 육군은 이달 20일 징계위원회를 개최, 해당 부대 사단장 박모(육사 31기) 소장에게 견책, 연대장 이모(육사 36기) 대령에게 근신 7일의 징계를 각각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이들은 관할부대에 대한 지휘감독 소홀로 최전방 철책선이 뚫리는 등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육군은 징계 사유를 설명했다. 또 당시 사건 직후 보직 해임된 해당부대 대대장 송모(학군 22기) 중령은 감봉 3개월(월급의 10%), 중대장과 소대장에게는 각각 견책조치가 내려졌다. 직접 경계근무를 선 병사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징계가 내려지지 않았으나, 구멍이 뚫린 철책을 발견한 병사 2명에 대해서는 4박5일간의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수도권in] 애매한 조례 모두 손본다

    [수도권in] 애매한 조례 모두 손본다

    서울 중구의회(의장 김동학)가 자치법규인 조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제정된 이후 상위법이 바뀌었거나, 시간이 많이 흘러 시대에 뒤떨어지고 주민 실생활과 어긋나게 된 조항을 고쳐 행정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구의회는 10월21일부터 지난 20일까지 한달간 주민 등으로부터 정비해야 할 조례에 대한 의견을 수렴,26건을 접수했다. 앞서 의회는 임시회를 열어 조례정비특별위원회 구성을 위한 위원장, 간사, 위원 선출 및 활동계획서 채택 등 안건을 가결했다. 위원장에 행정복지·투명성·도시계획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조영훈(신당6동) 의원, 간사엔 공직자로 행정경험을 갖춘 유현차랑(장충동) 의원이 뽑혔다. 지난달 20일엔 정식으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추천된 정비대상 조례에 대해서는 앞으로 관계 전문가와 행정담당 실무진, 관내 직능단체, 주민 등 다양한 부문의 목소리를 들어 다듬을 계획이다. ●전문가·실무진·주민 목소리 반영 정비요청을 받은 것들 가운데에는 ‘공중위생 영업허가 등에 관한 수수료 징수조례’에서 공중위생업의 정의를 규정한 제2조가 있다. 현재 규정에는 ‘공중위생법 제2조에서 규정하는 위생접객업ㆍ위생관련영업 및 위생용품제조업을 말한다.’고 돼 있다. 얼른 잘못이 눈에 띄지 않지만 그냥 제2조가 아니라 제1장 총칙의 2조라는 점을 밝혀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다. 구의회 스스로 뼈를 깎는 작업도 들어 있다. 다름 아니라 ‘중구의정회 설치 및 육성지원 조례’에 대한 정비안을 내놓았다는 점이다.2001년 3월 공포한 이 조례에는 현재 전·현직 의원으로 이뤄진 사단법인 중구의정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 및 구의회 의정 발전과 구민의 공공복리 증진에 필요한 사항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번 특별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의정회의 변화를 꾀하는 방안을 마련할 생각이다. 우선 제3조 ‘사업비 보조금의 교부’ 규정을 일부 폐지하거나 뜯어고치기기로 하고 정비대상 목록에 올려놓았다. 현재 제3조 5항은 ‘중구청장은 의정회가 추진하는 사업과 의정회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를 보조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다. 이 밖에도 정비대상 조례의 목록에는 지역정보화 촉진, 재해대책본부의 구성 및 운영, 건강생활 실천협의회 설치 등 주민 실생활이나 행정조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입법자문위원·특별위원별로 할당한 조례에 대한 정비안 수렴을 거쳐 내년 1월20일까지 소관부서 및 관련 단체 의견청취, 정비안에 대한 입법자문위원들의 자문 등 절차를 밟는다. 그해 2월20일 안으로 집행부 국별 정비 대상인 조례를 확정한 뒤 6월쯤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되면 1차 작업은 매듭지어져 곧장 시행에 들어간다. ●4대 임기 끝날 때까지 정비활동 계속 조영훈 특별위원장은 “의정회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집행부 지원에도 명분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면서 “(각종 사업에 쓸 돈을) 주는 입장에서나 받는 쪽이나 모두 꺼림칙한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의정회의 사업 대상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전·현직 의원들의 모임으로 된 규정도 바꿔 전직들의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단체로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현행처럼 전·현직으로 할 경우 민원이 쏟아져 불필요하게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동학 의장은 “120여 종류나 되는 조례들 가운데 법률자문을 거쳐 폐지, 또는 개정해 현실적으로 통폐합하고 법체계를 뚜렷하게 해 생산적인 의회로 거듭나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4대 임기가 끝나는 2006년 7월까지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살신성인’ 김칠섭중령 영결식

    부하 병사를 구하려다 감전사한 고 김칠섭(36·학군 30기) 중령의 영결식이 21일 그의 소속 부대인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사단장(葬)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장에는 김 중령의 부인 박정숙(34)씨를 비롯해 유족과 12사단 장병,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등이 참석,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 후 김 중령의 유해는 춘천화장장에서 화장됐으며,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정부는 부하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고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려, 중령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한편 대대 작전장교였던 김 중령은 지난 19일 오전 9시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적계삼거리 부근에서 4박 5일간의 대대 전술훈련을 마치고 부대 철수를 준비하던 중 무전기 안테나가 고압선에 걸려 감전된 무전병 정모(20) 일병을 구하려다 감전돼 숨을 거뒀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0)동해의 심장 왕돌초의 비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0)동해의 심장 왕돌초의 비밀

    동해는 깊다. 불과 100여m만 나가도 심해의 절벽이다. 그래서 동해 심해저는 서남해에 비해 어족 자원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울릉도나 독도의 의미가 각별하다. 더 동쪽으로 나가면 갑자기 너른 대륙붕과도 같은 대화퇴가 나타나 고기들이 바글거린다. 그러나 이런 곳 말고도 일반에게 덜 알려진 해저 비경이 또 하나 있으니 울진 후포에서 불과 23㎞ 떨어진 왕돌초(王乭礁)가 그곳이다. ‘숨어있는 진주’, 아니면 비로소 자태를 드러낸 ‘수중 금강산’이라고 명명해도 틀리지 않다. 줄도화돔 떼가 줄지어 봉우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봉우리에는 감태와 대황, 미역, 우뭇가사리 등이 자란다. 부드러운 붉은꽃 산호가 꽃밭을 이루는데 수심 40m 지점에는 돌산호도 보인다. 물고기들은 이곳에 알을 낳는다. 양식 멍게가 아닌 자연산 멍게도 곳곳에서 자태를 드러낸다. 성게, 소라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숨 넘어가도록 아름다운 절경. ●울진 후포서 23km 여의도의 10배 ‘산호꽃밭’ 울진군에서는 이곳을 아예 ‘동해의 심장’이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3개의 거대한 수중 봉우리를 거느린 채 동해의 거센 파도 속에 숨을 죽이고 있다. 남북으로 긴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은 급경사, 동측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다. 남북간 54㎞, 동서간 21㎞이며, 면적은 여의도의 10배 정도나 된다. 암반의 퇴(堆·bank)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한상복 박사는 “통상 암초를 뜻하는 초(礁)는 작은 장애물을 말하는데, 이곳은 해산(海山·Sea Mount)의 꼭대기 부분이므로 왕돌해산으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주민들은 ‘왕돌짬’이라 하는데,‘짬’은 튀어나온 돌을 지칭하는 토속어다. 일제시대나 그 이후의 어떤 수로지(水路誌)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돌초’라는 이름으로 등재됐다. 이곳도 전설의 섬 이어도처럼 동해 어민들 간에 구전되어 왔다. 선대부터 왕돌초에서 대구나 임연수를 잡아온 삼창호 선주 오정환(48)씨는 “본디 후포항 위쪽의 거일리 어민이 자망으로 왕돌초를 개척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고 증언한다.‘왕돌’이란 사람이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본격적으로는 1953년 무렵, 바다로 들어간 머구리에 의해 전모가 드러난 이래 1960년 무렵부터 출어가 시작되었다. 동력선으로는 1시간30여분이면 닿지만, 무동력선으로는 2시간 반 이상이 소요되는, 결코 가깝지 않은 곳인지라 뒤늦게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반세기전 머구리에 속살 드러내 좁은 해역임에도 불구하고 수온분포가 복잡하다. 북서쪽은 북한한류, 남동쪽은 동한난류 영향권이다. 좁은 해역에 이처럼 수온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에 한류와 난류어종이 모두 존재한다. 실제로 아열대성 어종부터 한대성 어종까지 생물생산력이 무척 높은 곳이다. 동해수산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이 인근에 출현하는 어종은 모두 40여종에 이른다. 어류는 물론 연체동물류 두족류 갑각류 극피동물류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 가운데 대표 어종은 개볼락 불볼락 임연수어 활놀래기 샛돔 부시리 인상어 자리돔 등이다. 또 미역치 자리돔 인상어 망상어 놀래기류와 쥐치 등은 연중 서식하고 있다. 아열대성 어류인 줄도화돔 파랑돔 거북복은 고수온기에만 나타나 수온에 따른 어종의 흥망성쇠를 말해 준다.2003년 8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수백마리씩 무리를 이룬 난류어종 부시리(방어류)의 회유,1월 조사에서는 한류성 어종인 임연수가 확인돼 난·한류의 계절적 추이가 첨예한 곳임을 증명하고 있다. 종다원성의 보고라는 의미다. 북쪽 봉우리는 북짬, 중간봉우리는 중간짬, 남쪽 봉우리는 남짬이라고 부른다. 북짬은 샛짬, 남짬은 맞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찬 바람인 샛바람과 더운 바람인 맞바람에서 유래했다. 기상변화 양상이 물속에도 똑같이 반영되어 샛짬, 맞짬이 이뤄진 셈이다. 샛짬은 거친 물살 때문에 해초들이 붙질 못해 맨 바위로 남아있는데, 이곳에 내린 그물이 바위에 걸려 쉽게 찢기는가 하면 어족의 종류도 다르다. 그러나 어류의 남획은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어획 강도가 높은 삼중자망과 통발, 잠수기어업 등이 연중 이뤄져 무분별한 남획으로 어족이 급감하는 추세다. ●난·한류 추이 첨예한 종다원성의 보고 울진군 자망협회 소속 어민 오정환씨는 “자망은 45년전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씨알 굵은 임연수와 불볼락이 굉장히 많이 잡혔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한 1990년도에도 임연수어, 쥐치, 방어 따위가 다량으로 잡혔고요.”라고 증언한다. 겨울 김장철만 되면 알 차고 씨알 굵은 임연수가 산란장을 찾아 수심이 제일 얕은 높은봉우리의 수심 6∼30m 지점까지 몰려들었다.1마리에 1㎏이 넘을 정도로 큰 임연수가 잡히곤 했는데 6∼7년 전부터는 높은봉우리까지 고기가 올라오질 않아 수심 30∼50여 m에서 잡아 올린다. 그만큼 어족자원이 대폭 줄었다는 증거이다. 월별 주어종을 설펴 보면,1∼4월은 대게,4월초에는 왕돌초 주변의 수심 얇은 곳에서 참가리와 한치,5∼7월까지는 임연수와 대구 및 잡어,7∼8월에는 쥐치와 방어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간혹 혹돔 능성어 등이 보이며,9∼12월까지는 임연수와 대구 조피볼락(우럭) 가자미류 등이 많이 잡힌다. 삼척에서 영덕까지는 자망 통발 채낚기 등이 이뤄지고 있는데, 특히 왕돌초 중심부에는 울진군의 기성면, 평해읍, 후포면 지선의 어민들이 진출해 조업을 한다. 심각한 문제는 분해되지 않는 합성섬유 그물이 뒤얽혀 바다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 수중 정화사업이 벌어지지만 개인이 제거하기에 역부족인 엄청난 크기의 폐그물이 왕돌초를 뒤덮기 시작했다. 폐그물은 유령고기잡이(Ghost Fishing)를 하게 마련이어서 해양생물이 얽혀들며, 얽힌 생물은 미끼가 되어 다른 생물이 또다시 걸려드는 재앙이 반복된다. 천하의 수중 절경 왕돌초에 서서히 인간이 만든 재앙의 그림자가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는 중이다. 예전 목(면사)그물을 쓰던 시절에는 폐그물이 자연 분해되었으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의 발명과 더불어 값싸고 반영구적인 그물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바다를 휘감기 시작한 것. ●인간이 만든 재앙의 그림자 한발한발 드리워 무분별한 낚시와 스쿠버 다이빙으로 인한 자연경관 및 어족 감소도 심각한 지경이다. 이곳에는 다이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인근에서 손쉽게 다이버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침 답사에 나섰을 때도 후포 연안에서 다이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업으로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과 ‘취미’로 잠수하는 다이버 간의 화해와 바다사랑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라고 주관자인 전재경 박사와 수중세계 이선명 대표는 설명했다. 다이버들이 후포 연안을 자주 찾아오는 까닭은 그만큼 바다생물이 다양하고 풍광이 수려해서이다. 그러나 ‘취미’를 위해 환경훼손이라는 반대 급부를 감당해야 하는 현상에 관해 책임있는 설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다에 관한 ‘무한대의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즐기는 만큼 책임을 지라.’고나 할까. 물론 남획에 몰두하는 어민도 연대책임에서 면죄될 수는 없으리라. 울진군이 바다목장화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많은 예산이 배정돼 바다관광화도 촉진될 전망이다. 왕돌초는 수산과학 관측지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어도해상과학기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동해를 연구·관찰함으로써 바다정보를 집중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현재는 해양수산부에서 세운 부표만이 외롭게 떠있어 장소 표시와 등대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왕돌초에의 열정으로 답사단을 안내해 온 국립수산과학관 동해수산연구소 양용수 박사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왕돌초에 과학기지가 건설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우리가 먹는 어종은 사실 제한적이다. 가령 게불도 과거에는 징그럽다며 전혀 먹지 않았다. 동해 심해저에도 이같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족자원의 보고가 숨어 있다. 양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600∼1000m의 심해저 자원을 탐색한 결과, 청자갈치 분홍꼼치 먹갈치 가시베도라치 등이 관찰되었고, 분홍새우도 다량 어획되었다. 이 가운데 분홍새우는 판매가치가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버리는 물고기’들이다. 버려야 하는 그 물고기들도 양만 많다면 하다못해 어묵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동해 심해저에서 끌어올린 다양한 생물체로 신약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해 심해저연구센터는 직원이라야 고작 2명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후손에 고스란히 물려줘야 왕돌초가 ‘동해의 심장’이니 만큼 그 심장의 박동력으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 또한 무한대다. 그런 만큼 심장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당연히 금물이다. 왕돌초는 더 이상 ‘숨어있는 진주’가 아니다. 이곳의 실태는 방송사와 다이버들의 수중촬영을 통해 전모가 공개되었다. 과학자들의 연구도 집중되고 있으며 해마다 왕돌초 관련 심포지엄도 열리고 있다. 경북도청 김병묵 해양수산과장은 “울진군이나 경북만의 심장이 아닙니다. 동해에 이런 거대한 바다속 비밀지대가 있다는 것을 전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전국민이 왕돌초를 알아야할 이유는 분명하다. 육상에 있었더라면 당연히 천연기념물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육지것’, 심지어는 날아다니는 ‘하늘것’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도 막상 바다 밑에 있는 ‘보물’은 박대하기 일쑤다. 이 아름다운 바다속 풍광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 그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어떤 ‘긴급 행동’을 취해야 할까.
  • 아물지 않은 ‘휴화산 부안’…“쑥밭 됐지라우”

    아물지 않은 ‘휴화산 부안’…“쑥밭 됐지라우”

    “정부는 더 이상 부안사람들을 말려죽이려 하지 말고 하루빨리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지난해 7월 14일 김종규 군수의 원전센터 유치신청 이후 장기간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졌던 전북 부안군. 지난 2월 자체 주민투표 결과 90% 이상이 반대, 원전센터 유치가 사실상 어렵게 됐으나 정부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어 반대파나 찬성파 모두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높다. ●백지화 선언하라 최근 부안에서는 거리에 나부끼던 노란 반핵 깃발도 이제 눈에 띄지 않는다. 경찰의 삼엄한 경비도 군청 앞을 제외하고는 구경할수 없다. 매일 반핵촛불집회가 열리던 부안수협앞 광장도 정상을 되찾았다. 반대편 주민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핵폐기장 부안유치 백지화 선언’을 해주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핵폐기장 난리 땜시 죽겄는디 경제까정 나뻐 부안은 아예 쑥밭이 됐지라우.” 읍내 터미널에서 만난 부안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최악의 경제상태에 대해 거침 없이 불만을 쏟아냈다. “하늘이 두 조각 나도 부안에는 핵폐기장 못들어 옵니다. 정부의 사기극에 그만 놀아나고 싶어요.” 부안읍 수산시장에서 만난 변산수산 주인 김봉환씨는 “아침에 어판장에서 받아다 진열한 생선, 백합, 주꾸미, 새우 등이 저녁나절까지 그대로 깔려 있다.”며 울상지었다. 주민들은 “정부가 아직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찾아오지 않아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소비가 위축돼 지역경제가 계속 뒷걸음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하루 빨리 백지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반핵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종성(37) 집행위원장은 “부안 주민들은 이제 핵폐기장 부안유치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오는 12월 1일 대대적인 백지화 선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식 주민투표로 가려야 “원전센터 유치는 정부의 말을 믿고 시작한 일이니 만큼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찬성파 주민들은 정식 절차를 밟은 주민투표만이 설득력이 있고 후환이 없다고 말한다. 원전센터 유치에 앞장서고 있는 국책사업추진연합회 박대규 대변인은 “정부가 부안군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반핵단체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지금이라도 주민투표를 한다고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안군 백종기 문화체육시설사업소장은 “정부에 대해 정말 실망이 크고 배신감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정부를 믿고 국책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헌신짝처럼 내평개쳐진 꼴이 됐다.”며 “부안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정부의 소신없이 흔들리는 정책, 말바꾸기, 고위층의 지휘역량 부족 때문”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속도로 점거, 등교거부, 방화, 촛불집회로 한때 무정부상태에 빠졌던 부안. 겉으로는 정상을 회복했지만 상처투성이인 부안군민들의 민심은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다. 찬반으로 나뉘어 두동강이난 주민들의 갈등과 대립은 언제 아물지 기약이 없다. 부안사람들은 그 해답을 쥐고 있는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 종지부를 찍어줄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글 사진 부안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고압전류보다 강한 ‘부하사랑’

    야외 훈련을 마치고 부대 복귀를 준비하던 육군 소령이 고압선에 감전된 부하 병사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사고가 발생했다. 19일 오전 9시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일대에서 대대 전술훈련을 마치고 철수 작업중이던 육군 을지부대 소속 작전장교 김칠섭(34·학군 30기) 소령이 무전기 안테나가 고압선에 걸려 감전된 통신병 정훈민(20) 일병을 구한 뒤 본인은 감전돼 민간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숨졌다. 사고는 4박 5일간의 야외 훈련을 마친 뒤 부대 복귀를 위해 천막 밖에서 통신장비(AS-992K)를 철거하던 허석환(21) 상병이 2만 2900V 고압선에 감전되면서 발생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허 상병이 마침 손대고 있던 10.7m 높이의 무전기 안테나가 고압선에 닿고 만 것. 고압선이 몸속으로 흐르는 순간 그는 안테나에서 튕겨져 나가 오른손에 가벼운 화상만 입었다. 이후 고압전류는 안테나와 연결된 천막 속 무전기 본체로 흘렀으며, 그때 무전기를 만지고 있던 정 일병이 감전됐다. 천막 안에 있다가 오른손으로 무전기를 잡은 채 몸을 심하게 떨고 있던 정 일병을 발견한 김 소령이 그의 허리를 힘껏 잡아당겨 무전기에서 떼낸 덕에 정 일병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김 소령 자신은 심장 쪽으로 고압 전류가 관통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이후 김 소령은 부대원들에 의해 강릉 아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후송 도중 목숨을 잃고 말았다. 김 소령의 영결식은 21일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임운택(소장·육사 31기) 사단장 주관으로 사단장(葬)으로 엄수된다. 유해는 영결식 이후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1992년 전남 나주 동신대를 졸업한 뒤 학군장교(ROTC)로 군에 입대한 김 소령은 지난 1일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했으며, 부인 박정숙(34)씨와 사이에 7세,5세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한편 김 소령의 대학 은사인 동신대 장성주(47·멀티미디어 통신공학과) 교수는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김 소령이 군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장교 추천서까지 써줬었다.”며 “꼭 내가 그를 죽인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김 소령이 전방에서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꼬박꼬박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으며, 최근에는 ‘소령 진급하면 한번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결국 그 말이 유언이 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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