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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평양 낙랑군 유물을 가는 곳마다 발견한 ‘신의 손’ 일제 학자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평양 낙랑군 유물을 가는 곳마다 발견한 ‘신의 손’ 일제 학자

    제국주의 고고학이란 말이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서기전 205~180)에 대해서 기록한 로제타스톤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에 있어야 할 스핑크스와 수많은 미라들도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 있다. 제국주의 시대 강탈해 간 유물들로 제국주의 고고학의 산물들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제국주의 고고학을 수행했는데, 앞의 나라들과도 사뭇 다르다. 영국, 프랑스 등은 유물은 강탈했지만 그 나라들의 역사를 바꾸지는 않았다. 반면 일본은 고고학을 한국사 조작의 용도로 악용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고고학자 니시카와 히로시가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조선고고학의 형성’(1970년)이란 논문을 쓴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이 한국 고고학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조선총독부에서 시작한 한국의 고고학 교토대 교수인 고고학자 요시이 히데오는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일본인의 고고학적 조사’(2005)라는 강의를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만들기 위해서 만든 용어인 ‘원삼국’(原三國)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강의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의 고적 조사사업’을 세 시기로 나눈 것은 음미할 만하다. 첫 시기는 ‘일본인에 의해 본격적인 조사 사업이 시작된 시기’(1900~1908)인데, 두 명의 고고학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명은 조선왕실의 유물을 보관하던 이왕직박물관에도 근무했던 도쿄제국대학 인류학연구실 소속 야기 소우사부로(1866~1942)이고 다른 한 명은 지금도 한국고고학계에서 크게 높이는 세키노 다다시(1868~1935)다. 세키노는 원래 도쿄공대에서 조가학(造家·건축학)을 전공한 건축학도였다. 그러나 고대 야마토왜(大和倭)의 수도였던 나라(奈良)의 고건축들을 연구하고, 평성경(平城宮) 유적을 발굴하면서 고고학자를 겸하게 되었다. 그는 백제인들이 망국 후 서기 665년 후쿠오카 북부에 쌓은 조선식 산성인 기이성(基肄城·기이조)도 발굴했으므로 고대 야마토왜가 백제인들의 담로(擔魯·제후국)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키노는 1902년부터 한국에 여러 차례 와서 유적들을 발굴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한나라 및 낙랑 유물을 ‘우연히’ 발견하는 ‘신의 손’이 되었다.●‘조선고적도보’를 마구 나눠 준 군인총독 요시이가 분류한 ‘식민지 시기 조선의 고적 조사사업’의 두 번째 시기가 ‘조선총독부 주도의 조사체계 확립’의 시기로 세키노가 조선총독부의 자금으로 한국 각지의 고적을 조사하고 다녔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개관하고 이듬해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내의 유적,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는 사업처럼 보이지만 요시이가 “한반도의 고고학적 조사는 조선총독부와 관련 있는 일부 일본인들로 제한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의,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을 위한’ 고고학이었다. 세키노는 가는 곳마다 낙랑 유물을 발견하는 ‘신의 손’이 되고, 일본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까지 받게 된다. 세키노는 1915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총독부 간행으로 초호화판 ‘조선고적도보’(1915~1935)를 발간했다. 여학교 교원들에게도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가게 했던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총독실에 ‘조선고적도보’를 쌓아 놓고 국내외의 내외빈들에게 마구 뿌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군인이었다는 육군대장 데라우치가 고고학을 얼마나 중요한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삼았는지를 말해 주는 일화이다.●검증받지 않은 정설, 세키노 다다시 세키노의 발굴 결과에 대해서 남한 학계는 아직 단 한 번도 본격적인 검증 작업을 하지 않고 이른바 ‘정설’로 떠받들고 있다. 낙랑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썼다. “낙랑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함께 구체적인 역사상이 정립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인데, 여기에는 고고학 발굴 조사 자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낙랑고분 발굴 조사는 1909년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 세키노에 의해 개시되었다.”(오영찬, ‘낙랑군 연구’, 사계절, 2006년, 16쪽) 2016년쯤에는 이른바 젊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비평’에 조선총독부를 계승한 강단의 기존 학설을 열렬히 옹호하고 나서서 조선일보로부터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칭찬을 받았다. 이들은 그 내용을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2017)이란 책으로 묶어냈는데, 위가야는 “이후 192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세키노의)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과 유물들은 낙랑군의 중심지가 평양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핵심적인 증거로 인정받았다”(124쪽)고 서술하고 있다. ‘낙랑군=평양설’의 뿌리가 세키노의 고고학이란 논리다. ●세키노 다다시의 양심고백? 그런데 세키노가 한국에서 이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에 흡족해할지는 미지수다. 세키노는 조선총독부에서 심혈을 기울인 ‘조선고적도보’의 편집책임자였으면서도 이 책의 내용에 의문도 제기했기 때문이다. ‘조선고적도보’는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강면 토성동을 낙랑군을 다스리던 조선현의 군치(郡治)가 있던 ‘낙랑군지치’(樂浪君治址)라고 표기했는데, 세키노는 그 뒤에 물음표를 달아서 의문을 표시했다. 황해군에 있었다는 대방군지치에도 마찬가지 물음표를 달아 놓았다. ‘조선고적도보’의 두 핵심 내용은 ‘낙랑군=평양설’과 ‘대방군=황해도설’인데, 왜 굳이 ‘과연 그럴까?’ 하는 물음표를 붙여 놓았을까. 세키노는 또한 ‘낙랑=평양설’의 결정적 증거라는 ‘효문묘 동종’(孝文廟銅鐘)을 비롯해 자신이 발견한 낙랑군의 주요 유물들마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꼬박꼬박 덧붙여 놓았다. 게다가 우연이 거듭되면 필연이라는 속설을 입증하는 내용을 ‘세키노 일기’(關野貞日記)에 남겼다. 문성재 박사는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2016)에서 세키노의 일기를 몇 대목 공개했는데 1918년 북경에서 쓴 일기에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①대정(大正) 7년(1918) 3월 20일 맑은 베이징, “(베이징) 유리창가의 골동품점을 둘러보고,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위하여(朝鮮總督府博物館ノ爲メ) 한대(漢代)의 발굴품을 300여엔에 구입함” ②대정 7년 3월 22일 맑음, “오전에 죽촌(竹村)씨와 유리창에 가서 골동품을 삼. 유리창의 골동품점에는 비교적 한대(漢代)의 발굴물이 많고, 낙랑 출토품은 대체로 모두 잘 갖춰져 있기에(樂浪出土類品ハ大抵皆在リ) 내가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수집함” 세키노는 베이징의 골동품 거리인 유리창가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위하여’ 한나라 유물들과 낙랑 출토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세키노는 왜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의 유물을 베이징에서 사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보냈을까. 낙랑군 유물은 왜 평양이 아니라 베이징에서 거래되었을까. 낙랑군은 평양이 아니라 중국 사료들이 말하는 것처럼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재의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지역에 있었기에 베이징 골동품가에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낙랑군 유물을 평양이 아닌 머나먼 베이징에서 사서 조선총독부로 보냈다는 세키노의 고백이야말로 ‘만들어진’ 제국주의 고고학의 실체를 증언해 준다.
  • 日 법원도 “신동주 일본 롯데·상사 등 이사직 해임 정당”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의 롯데와 롯데상사, 롯데물산, 롯데부동산 등의 이사직에서 해임된 것이 부당하다며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이 29일 밝혀졌다. 도쿄지방재판소 민사8부는 지난달 29일 신 전 부회장이 제기한 6억 2659만엔(약 59억 5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신 전 부회장이 추진한 ‘풀리카’ 사업에 대해 “해당 행위는 경영자로서의 적격성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해임한 이유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고 판시했다. 풀리카 사업은 소매점포에서 상품 진열 상황을 촬영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다. 롯데 측은 “풀리카 사업은 사실상 점포에서 도촬을 하는 것으로, 위법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데다 롯데그룹과 소매업자 간 신뢰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해임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또 신 전 부회장이 이메일 시스템 제공업체에 롯데그룹 임직원 등의 전자메일을 부정하게 취득하게 한 점도 인정된다면서 “준법의식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신 전 부회장에 대한 롯데 등의 이사직 해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일본 법원이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신 전 부회장은 법원이 롯데 측의 이사직 해임이 부당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이를 토대로 그룹 경영권 다툼을 벌였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월 13일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뇌물공여 혐의로 법정구속된 이후 롯데그룹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물밑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 구속 직후에는 일본 고준샤(光潤社) 대표 자격으로 입장문을 내고 신 회장의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직 해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달 21일 열린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는 신 회장이 제출한 홀딩스 대표 사임안을 의결하되 이사직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정리가 됐다.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롯데홀딩스의 주요 주주는 고준샤(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등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완전한 비핵화 확인”… 노동신문, 판문점 선언 전문까지 공개

    “완전한 비핵화 확인”… 노동신문, 판문점 선언 전문까지 공개

    포옹·악수 장면 등 여과 없이 보도 “미국식 민주주의 허황” 美견제도북한 매체들은 남북 정상회담 하루 뒤인 28일 정상회담 개최 소식과 판문점 선언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자 6개 면 중 1~4면을 정상회담 소식으로 채웠고 총 61장의 다양한 사진을 게재했다. 조선중앙TV도 이날 약 30분 분량의 녹화 영상을 방영했다. 신문은 1면 기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은 소식을 전하면서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사진을 가장 위에 배치했다. 또 의장대 사열, 남북 공식수행원과 남북 정상의 인사 등 환영 행사 사진도 1면에 담았다. 2면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 및 기념식수 행사를 소개했고 양 정상이 도보다리에서 수행원 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실렸다. 특히 3면에는 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포옹하는 사진과 함께 판문점 선언 전문도 게재했다. 북한 매체에 실린 판문점 선언 전문에는 “북과 남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조선반도(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문구가 그대로 포함됐다. 북한 매체가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대내적으로 공개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4면에는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웃고 있는 남북 정상 부부 4명의 모습, 만찬 건배 사진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담았다. 신문은 이날 만찬에 대해 “시종 혈육의 정이 넘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표현했다. 조선중앙TV 영상에는 김 위원장이 탑승한 차량이 27일 판문점으로 통하는 도로에 설치된 대전차방호벽과 ‘72시간 다리’ 등을 거쳐 판문점 북측 지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남북 정상의 첫 대면부터 작별까지의 핵심 장면이 포함됐다. 특히 리춘히 아나운서는 방송에서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비롯한 선언문 전문을 일일이 낭독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 매체들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대한 견제를 이어 갔다. 노동신문은 29일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황성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긴장완화에 역행하는 위험한 움직임’ 등 정세 논설을 통해 미국식 민주주의를 ‘반인민적인 체제’라고 비난하고 지난 16~20일 진행된 주한 미군의 ‘비전투원 후송훈련’(NEO)을 ‘사실상 전쟁 시사 카드’라고 비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북한 노동신문, 남북 정상회담 대서특필...사진 60여 장 실어

    북한 노동신문, 남북 정상회담 대서특필...사진 60여 장 실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과정을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신문은 이날 총 6개 면 중에서 1~4면에 걸쳐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다루며 비중있게 보도했다. 특히 61장의 다양한 사진을 게재하며 남북 정상의 첫 대면부터 환송까지 전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1면 톱으로는 김 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은 사실을 전했고,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사진을 가장 위에 배치했다. 또 의장대 사열, 공식수행원들과 양 정상의 인사 등 환영 행사 장면을 담았다. 2면에서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 및 기념식수 행사를 소개했다. 특히 양 정상이 오후 수행원 없이 산책을 하던 중 도보다리에서 ‘밀담’을 나누는 사진도 실렸다. 3면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 전문을 싣고 양 정상이 포옹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양 정상이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 그림을 배경으로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 서명하는 모습, 책상 앞으로 나와 악수를 하는 모습, 손을 잡고 위로 치켜 올리는 모습 등이 다양하게 실렸다.특히 북한은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마찬가지로 노동신문에 실은 판문점 선언 전문에도 “북과 남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조선반도(한반도의 북한식 표기)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문구를 그대로 포함했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매체인 노동신문에도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넣은 것은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대내적으로도 공식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4면에는 만찬과 남북 정상 부부의 작별 소식을 배치했는데, 김정숙 여사와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웃고 있는 남북 정상 부부 4명의 모습, 건배 사진 등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부각했다. 신문은 이날 만찬에 대해 “남측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여러 가지 요리들을, 우리측에서는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연회상에 올려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며 “시종 혈육의 정이 넘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묘사했다. 한편, 북한의 대외선전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이날 ‘불멸의 통일장정을 전하는 판문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과거 판문점 방문을 소개하며 이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신문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원수님(김정은)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 비범한 영도에 의하여 민족화해와 단합의 새봄이 시작되고 자주통일의 밝은 동이 터오고 있다”고 선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하, 5월 1일 입대 “신체검사 1등급..육군 현역 복무”

    동하, 5월 1일 입대 “신체검사 1등급..육군 현역 복무”

    배우 동하가 5월 1일 현역 입대한다.27일 소속사 매니지먼트AND는 “배우 동하가 오는 5월 1일 경기도 연천 5사단 열쇠부대 신병교육대대로 입소한다”며 “신체검사 등급 1급을 확정 받아 육군 현역으로 복무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동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성실하게 마치겠다”며 “항상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모두들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며 저 또한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다.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 계속해서 많은 사랑과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동하는 지난해 KBS 드라마 ‘김과장’, SBS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 등을 통해 맡은 역할을 200% 소화해내며 ‘신스틸러’, ‘엔딩 요정’ 등의 호칭을 얻는 등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았다. 이어 지난 1월 종영한 SBS 드라마 ‘이판사판’에서는 첫 주연을 맡아 검사 역할뿐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 연기까지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7일 정상회담, 한국은 ‘흥분·기대·촉각’ VS 북한은 ‘잠잠’

    27일 정상회담, 한국은 ‘흥분·기대·촉각’ VS 북한은 ‘잠잠’

    ‘2018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북한 매체들은 정상회담과 관련한 구체적인 보도 없이 잠잠한 모양새다. 이는 정상회담과 관련된 특집 기사를 실시간 쏟아내는 남측과 대조적인 모습이다.이날 오후까지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주요 매체들은 정상회담의 의제와 준비상황 등에 대한 구체적인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반면 남측은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메인프레스센터(MPC)가 차려진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내외신 기자 3000명 가량이 각각의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대남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만이 ‘통 큰 결단과 뜨거운 동포애에 의해 마련된 민족사적 사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세계의 수많은 언론은 오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개최되는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회담 날짜와 장소 정도를 언급했다.노동신문의 경우 ‘겨레의 지향에 도전해 나서는 반통일적 망동’이라는 제목의 정세논설에서 “이번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신 절세위인(김정은 위원장)의 통이 큰 결단과 뜨거운 동포애, 우리의 적극적인 대화평화노력에 의해 마련되는 민족사적 사변”이라며 정상회담을 언급했을 뿐 회담 의제 등 구체적인 회담 관련 보도는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활동에 대한 보도를 빼놓지 않는 중앙통신도 이날 정상회담과 관련된 보도를 전혀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들의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기 위해 전용열차 편성을 지시하고 평양역에 직접 나가 열차를 떠나보낸 내용을 보도했다.앞서 통신은 지난 9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언급한 사실을 하루 지난 10일 보도한 이후 회담과 관련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는 평소 대형 행사를 앞둔 최고지도자의 행적을 잘 보도하지 않는 북한 언론의 관행이 이번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의 방중과 남측 예술단 공연 관람 등 최고지도자의 일정에 대해 즉각 보도를 한 것에 비춰볼 때 27일 정상회담이 시작되면 진행 경과나 합의 결과에 대해선 상세히 보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녹화사업으로 미세먼지 잡는다...10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 추진 .

    부산시가 최근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를 줄이고자 1000만그루 나무심기에 나선다 부산시는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시 전역에 1000만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시민과 기업체 참여를 유도해 자투리 공간을 녹색 공간으로 바꾸는 등 4개 중점 시책을 추진한다. 내 집 앞마당 등 정원 사업,옥상 정원화 사업,산업단지 등 녹색 공간 조성,시민 나무 심기,학교 숲 조성 등으로 5년간 500억원을 들여 461만 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건물·구조물의 실내·외 녹화사업도 확충한다. 이 사업은 공공기관이나 지하철 역사 등의 실내 공간에 녹화사업을 벌여 실내 공기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가로수 복층화,국공유지 도시 숲 사업,민간아파트 녹화사업 유도 등으로 5년간 1000억원을 투입해 605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산불피해지,무단경작지,임도변 등에도 5년간 98억원을 들여 화목류 등 19만 그루를 심어 숲 터널을 조성한다. 이밖에 도시공원을 새로 조성하거나 리모델링 때에도 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도시 숲 기능을 회복하도록 했다. 부산시는 연간 100억원 수준인 도시녹화 예산을 앞으로 3배 늘려 연간 300억원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도시 숲의 경우 초미세먼지 농도를 평균 40% 이상 줄이고 약 47그루의 나무는 경유차 1대가 1년간 유발하는 미세먼지를 해결한다.큰 나무 한 그루는 연간 36g(에스프레소 한잔 분량)의 미세먼지를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은 항만도시로 컨테이너선 한 척이 트럭 50만대 분의 초미세먼지를 발생시키고 있다”며 “대대적인 나무심기로 부산의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뿔난 서울시 공무원들 “아리수 안 마시면 감사 대상?”

    뿔난 서울시 공무원들 “아리수 안 마시면 감사 대상?”

    서울시가 자치구와 공공기관 공무원들이 수돗물인 ‘아리수’가 아닌 정수기 물이나 생수를 사서 마시는 지 감시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시 내부게시판에는 ‘먹는 물 제한은 행복추구권 침해’라는 취지의 글에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직원들의 반발이 작지 않다.2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이달 중순 공직사회 아리수 음용 확대를 위해 ‘서울시 및 자치구 등 공공기관 아리수 음용환경 개선계획’을 내놨다. 이 계획은 서울시가 아리수를 매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정작 공무원들은 잘 마시지 않는다는 일부 매체 보도가 나오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여기에는 공공기관에 아리수 음수대를 설치하고 일반 정수기는 철거하며 정수기나 생수 구매에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상수도사업본부 경영관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아리수 음용 추진 TF’를 꾸려 6월 말까지 운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문제는 상수도사업본부가 총무과와 감사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공공기관 정수기 등 사용실태 합동점검’을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된 점이다.시는 올해 상반기 중 별도 계획을 세워 ‘정수기 철거 현황’과 ‘먹는 샘물 이용실태’를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추진 기간은 이달부터 6월까지로 예정됐다.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 수돗물 음용 촉진 조례’를 만들어 공공기관 음용 음수대 사용을 권장하고, 공원이나 위탁시설 등에서 생수 판매를 자제시키겠다며 아예 공공기관에 ‘일회용 병입수’ 반입을 제한한 경기도 조례를 예시로 들었다. 시 감사위는 서울시 본청과 소속 기관, 투자·출연기관, 민간위탁시설, 자치구 등을 들여다보는 공직사회 감사 기관이다. 이곳에서 산하·관련 기관을 점검하는 것은 직원들에게 사실상 ‘아리수 외에는 마시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서울시 내부 직원 게시판에는 ‘아리수 외 다른 물 자제령’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고,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청사 내 정수기를 설치하지 않거나 일반 생수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생수를 반입하지 말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감사 일정은 감사위원회와 협의 중”이라며 “감사는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해서 아리수를 이용하자는 취지에서 정수기를 이용하는지, 아리수를 마시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시 직원은 생수를 마시면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이 아니라 되도록 아리수를 이용해달라고 요청하는 수준”이라며 “일선 부서에서 반발도 만만치 않고, 개인의 물 먹는 권리까지 박탈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생사고락 함께하고 전사한 황하삼… 이름 석 자 가슴 깊이 새겨”

    “생사고락 함께하고 전사한 황하삼… 이름 석 자 가슴 깊이 새겨”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창립과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윤중기 인터뷰 일시 1997년 11월 6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윤중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1950년 12월 18일 황하삼과 인천을 출발 6·25 사변 때 나는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이었으며 살던 곳은 동구 인천극장 건너편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할 때는 앞집에 살던 황하삼(黃夏三·인천해성중학교 3학년)과 함께 출발했다. 함박눈이 많이 내린 그 날 깊은 밤에 도착한 곳이 안양이었고 안양에서 새벽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걸어서 도착한 곳이 수원이었다. 수원에서부터 터벅터벅 걸어서 남하하여 대구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그날이 1950년 12월 24일 성탄절 전날이었다. 대구에서 삼랑진을 거쳐 다음 집결지인 마산까지 가게 되었다. 1951년 1월 3일 황하삼과 내가 17일 동안 걸어서 내려와 마산에 도착해 보니 마침 마산에서 해병 6기 신병 모집이 있어서 중학교 4~6학년들이 신병모집에 응했는데 나는 황하삼이 어려서, 황하삼과 같이 움직이려고 해병 신병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때 나와 인천공업중학교 같은 반이었던 문병하, 한경희, 임석주를 포함한 4~6학년 중학생 600여명이 해병 6기로 입대하였다.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황하삼과 함께 입대 해병 6기 신병모집에 나이가 어려서 지원도 못 한 중학교 1~3학년 학생들과 탈락한 중학교 4~6학년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1500여명은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3주 훈련을 마치고 군인이 된 우리들은 부산 동래온천에 있었던 육군보충대로 갔다.5사단 35연대 1대대에 황하삼과 함께 배속 육군보충대에서 드디어 트럭을 타고 하루 종일 걸려 강원도 전방으로 가게 되었다. 최전방이 가까워져 오면서는 포성 소리가 은은히 들리더니 점차 그 소리는 커지고 화약 냄새도 났다. 그렇게 화약 냄새가 나는 골짜기를 지나 도착한 곳이 5사단 사령부였다. 여기에서 각 연대로 배치되고 나와 황하삼은 함께 35연대 1대대로 배치받았다. 1대대 보급과 탄약소대에 황하삼과 함께 배치 나와 황 하삼은 5사단 35연대 제1대대 보급과에 있는 탄약소대에 남게 되었다. 당시 내가 배치받았던 탄약소대는 1대대 전 지역에 탄약을 보급하는 곳이었다. 5사단 35연대 1대대 CP에서 출발하여 나는 황하삼과 탄약 실은 트럭 위에 앉아 전방 대대 OP 쪽으로 보급 물자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보급물자를 실은 트럭을 타고 대대CP를 출발하여 트럭 위에서 보니까 콘크리트 다리 옆으로 큰 바위산이 있고 그 다리를 지나서면 왼편으로 샛길이 나타나면서 그 길로 우리 탄약차가 들어서면 그곳이 바로 대대 OP가 있는 풍기국민학교였다. 대대OP·CP를 설명하자면 대대OP는 대대전방지휘소를 말하며 대대전방 전투지역 가까운 곳에 위치를 잡아 대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곳이고, 대대CP는 대대의 후방에서 행정과 보급을 맡아 전투지역을 지원해 주는 곳이다.동네 친구 황하삼의 전사 인천학도의용대 화수분대에서 나하고 같이 활동한 황하삼이 살던 집은 인천극장 앞 우리 집 건너편이었다. 황하삼은 인천에서 남하할 때부터 나하고 같이 걸어서 내려갔고,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도 같이 입소했고, 부산 동래 임시보충대에서 같이 지냈고, 5사단 35연대 1대대 보급과 탄약소대에도 같이 배치되어 생사고락을 같이한 유일한 친구이며 전우였다. 황하삼은 나와 같이 최전방에 있을 때 적 포탄이 떨어지면서 파편에 뒤통수를 맞아 내가 보는 앞에서 즉사하였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던 첫 휴가 1951년 6월 중순에 대대장이 나에게 첫 휴가를 가라고 배려해 준 것은 인천부터 나하고 같이 전쟁터에 온 내 친구 황하삼이 며칠 전에 전사했기 때문에 대대장이 나를 위로해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고향 인천의 내 집을 떠났을 때는 1950년 12월 18일, 그때로부터 불과 7개월 만이었지만 몇 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막 집에 가까이 갈수록 부모님과 형제들 보고 싶었던 감정은 사라지고 갑자기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황하삼 얘기를 어떻게 꺼내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황하삼 어머니 통곡의 눈물 어느덧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좀 있으려니까 황하삼 어머니께서 오시더니 “우리 하삼이도 잘 있지?”라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 어머니, 하삼이는 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귀대 날짜는 다가오고 해서 할 수 없이 황하삼이 전사했다고 실토하고 말았다. 그러자 황하삼 어머니는 “왜 내 아들만 죽었냐”라고 통곡의 눈물을 흘리셨고, 황하삼 식구들은 온통 울음바다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52년 7월 5일 상이용사로 제대 나는 가칠봉 전투에서 괴뢰군의 집중 포격으로 전신에 파편상을 당해 부산 1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8개월 동안 내 몸 안에 박혀있는 파편을 빼내는 긴 입원 치료를 받은 후 1952년 7월 5일 상이용사로 명예제대를 하였다. 한 형제같이 함께 자란 황하삼! 조국과 고향을 지키려 전쟁터까지 같이 가서, 나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는 죽어서 고향에 오지 못하고, 그래도 항상 네 이름 석 자 황하삼은 내 가슴 속 깊이 있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1회 계속참전기 10회를 마치며 같이 한 동네서 자란 중학생 황하삼과 윤중기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같이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한 후 한 부대에서 같이 참전하였습니다. 먼 훗날에도, 나라를 위하여 전사한 인천학생 황하삼의 애국심을 기억해주기 바라며 이 참전기를 기록합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윤중기 ▲공립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인천학도의용대 화수분대 소속 1950년 12월 18일 :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생으로 동네 친구 황하삼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서 도보로 남하 시작함. 1951년 1월 10일 :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도착하여, 동네 친구 황하삼과 같이 자원입대함. 1951년 6월 4일 :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윤중기 옆에 있었던 황하삼이 전사함. 1952년 7월 5일 : 상이용사로 명예제대.
  • 양양공항, 하루 2대 난다

    양양공항, 하루 2대 난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대비해 300억여원을 들여 대대적인 시설 확장에 나섰던 양양국제공항이 올림픽 이후 ‘유령 공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KTX 강릉선(경강선) 이용객도 올림픽 기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올림픽 이후 경기장뿐 아니라 철도, 항공 등 교통 인프라 역시 ‘하얀 코끼리’(큰돈을 들인 쓸모없는 투자)가 되지 않도록 사후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2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현재 양양공항에서 국내·국제선을 운항하고 있는 항공사는 국내 소형 항공사인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뿐이다. 이날 기준 양양공항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의 부산·김해행 및 제주행 항공편 2대다.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단 수용 등 올림픽 관련 178편 2314명을 비롯해 총 342편 8963명이 이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3500억원의 건설비를 들여 2002년 문을 연 양양공항은 개장 이후 이용객 부족과 만성 적자에 시달려 왔다. 이후 평창올림픽의 ‘하늘 관문’으로 주목받으면서 ‘유령 공항’이라는 오명을 벗는 듯했다. 정부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양양공항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예산 300억원을 투입해 보잉747이나 에어버스330 등 E급 대형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활주로와 유도로를 확장했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의 운항이 끊기면서 이러한 시설 역시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양양공항 이착륙 항공기에 대해 착륙료, 정류료 등을 50% 감면해 주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유인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원주~강릉 철도 건설에만 총 3조 6905억원이 투입된 KTX 강릉선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국토부와 한국철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림픽·패럴림픽 기간 직후인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강릉선 승차 인원 수는 하루 평균 1만명으로 집계됐다. 운행 횟수가 축소(매일 102회→주중 36회, 주말 52회)되면서 이용객 역시 2월 한 달(하루 평균 2만 6000명)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특히 운행 횟수가 같은 올림픽 기간 직전(2017년 12월 22일~2018년 1월 25일) 1만 4000명에 비해서도 승차 인원 수가 크게 줄었다. 코레일은 강릉선과 연계한 다양한 여행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윤 의원은 “올림픽에 대비해 투자한 교통 인프라 시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관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文·金 동시 입장…심리적 거리감 줄인 ‘타원 테이블’ 앉는다

    文·金 동시 입장…심리적 거리감 줄인 ‘타원 테이블’ 앉는다

    출입구서 南 왼쪽 北 오른쪽에 정상 의자엔 독도 포함 한반도기 정면 벽면엔 금강산 그림 걸어 파란 카펫…한옥 모티브 실내 3층 만찬장도 대대적 리모델링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 동시에 입장해 ‘2018년’을 기념하는 2018㎜ 너비의 긴 타원형 책상을 두고 마주 앉는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판문점 평화의집 주요 공간을 정비했다”며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대표단과 함께 열띤 논의를 벌일 책상은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둥근 형태로 제작됐다. 고 부대변인은 “남북이 함께 둘러앉아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남북 정상은 회담장 가운데 있는 출입구로 동시에 입장해 남측 대표단은 왼쪽에, 북측 대표단은 오른쪽에 앉을 예정이다. 양 정상은 팔걸이가 있는 흰색 의자에 앉는다. 등받이에는 독도, 울릉도, 제주도까지 포함된 한반도기를 새긴 문양을 넣었다. 배석자들은 흰색 의자를 기준으로 양쪽에 3개씩 모두 12개가 놓인 노란색 의자에 앉는다. 새로 배치된 가구들은 남북 정상회담 현장의 원형 보전을 위해 뒤틀림이 적은 호두나무 목재를 주로 사용했다. 고 부대변인은 “당초 장관급회담 장소였던 평화의집에는 정상회담에 걸맞은 기본적 가구가 구비되어있지 못했다”며 “정비 과정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꼭 필요한 가구만 신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회담장 정면 벽면에는 남북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을 그린 작품을 걸었다. 서양화가 신장식 화백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다. 신 화백은 금강산을 10여 차례 방문해 ‘금강산 작가’로 불린다.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천경자 화백의 제자인 이숙자 화백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를 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푸른 보리를 통해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시각화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회담장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정상은 12폭 전통 창호문을 배경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푸른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파란 카펫으로 회담장을 단장하고 전체적으로 한옥 내부 느낌이 나도록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는 민중미술 대표작가인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이 걸렸다. 고 부대변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라며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한지 창호문으로 꾸민 1층 환담장에는 서예가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재해석한 김중만 작가의 사진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을 걸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성씨 중 ‘ㅁ’과 김 위원장 성씨 중 ‘ㄱ’을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강조했다. 방명록 서명대와 의자는 각각 ‘해주소반’과 ‘길상 모양’이 떠오르도록 제작했다. 방명록 서명대 뒤로는 김준권 화백의 ‘산운’이 배치됐고 정상 접견실 정면으로는 수묵화가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와 ‘일출봉’을 걸었다.기존 대회의실로 쓰였던 3층은 하얀 벽에 청색 카펫을 깐 연회실로 바뀌었다. 환영 만찬이 열릴 연회실엔 수묵화가 신태수 화백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렸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두무진에서 황해도 용연반도 끝부분인 장산곶까지는 불과 15㎞다. 고 부대변인은 “분쟁의 상징이었던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연회장 밖 복도에는 이이남 작가의 디지털 작품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놓았다. 꽃 장식은 조선백자의 정수로 꼽히는 ‘달항아리’에 화사한 작약과 우정의 의미를 지닌 박태기나무, 비무장지대의 야생화, 제주 유채꽃 등을 담았다. 판문점공동취재단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주얼리 브랜드 가네시, 김태리 팬사인회 성료

    주얼리 브랜드 가네시, 김태리 팬사인회 성료

    지난 21일, 18K 목걸이 전문 브랜드 가네시(GANESHI)가 5주년을 맞아 개최한 고객감사 팬사인회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가네시 브랜드데이를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가네시의 뮤즈 김태리의 팬사인회가 진행됐다. 봄 행사를 기획한 가네시 관계자는 “5주년 기념으로 진행한 고객 감사 팬사인회에 정말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셨다”며 “행사 당일 김태리씨가 직접 가네시 제품을 착용하고 팬사인회에 참석해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셨다”고 전했다. 가네시는 팬사인회가 진행된 21일을 시작으로 오는 5월 2일까지 ‘5주년 기념 브랜드 데이 EVENT’를 통해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실시한다. 해당 기간에는 가네시 전 오프라인 매장에서 김태리 목걸이, 18K 다이아목걸이 등 전 품목을 20~50%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어 여성들은 물론, 여자친구 선물을 구입하고자 하는 남성들에게도 주목을 받고 있다. 가네시의 전 제품은 가네시 공식 홈페이지 및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팬들의 끝없는 사랑… 가왕 50년을 기록하다

    팬들의 끝없는 사랑… 가왕 50년을 기록하다

    비디오테이프·LP 등 수백점 디지털 복원 골동품 가게·日 통해 영상 복원 기기 공수 “1981년 해운대 야외 공연 영상 찾는 중” 1000쪽 분량 대백과사전 개정판 준비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는 ‘가왕’ 조용필(68)의 음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하나가 그의 팬들이다. 요즘 아이돌 가수 팬클럽이 아무리 열렬하다 한들 원조 ‘오빠부대’인 조용필의 팬클럽을 따라갈 수 없다. 강산이 다섯 번씩 바뀌는 동안에도 일편단심을 잃지 않은 이들은 그가 노래를 부르는 원동력이자 그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이기도 하다. ‘조용필 팬덤’은 1980년대 서울신문사가 발간했던 ‘TV가이드’에서 모집한 ‘음악가족’부터 시작해 1985년 자발적으로 꾸려진 ‘새암회’ 등을 거쳐 현재 ‘이터널리’, ‘미지의세계’, ‘위대한탄생’ 등 3대 팬클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화보집이나 굿즈(기념품)를 제작하기도 하고, 조용필 모교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팬클럽 연합 체육대회를 여는 등 조용필 음악을 축으로 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조용필 헌정밴드 ‘미지 밴드’가 결성되기도 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올해 조용필의 팬들은 오래된 비디오 영상들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백과사전을 만드는 등 조용필 50년 음악사를 기록하는 작업들을 추진하고 있다.‘위대한탄생’은 팬클럽 차원에서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과거 조용필이 나왔던 아날로그 영상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 팬클럽 회원인 전대균(52)씨와 백지원(49·여)씨가 주축이다. 최근 서울 양천구에 있는 전씨의 작업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언뜻 봐도 수백 장은 돼 보이는 카세트테이프와 LP, CD, 화보집,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한때 조용필 잡지로 불렸던 TV가이드까지 조용필에 관한 온갖 자료들이 방 하나를 삥 둘러 빼곡히 차 있었다. 여기에 백씨가 들고 온 비디오테이프 30여개를 풀어놓았다. 그중 하나를 재생시키자 1980년대 초반 잠자리 안경을 낀 채 개그 연기를 하고 있는 조용필의 모습이 나왔다. 보관이 잘된 덕분에 화질과 음색이 비교적 선명했다. 백씨는 “이때만 해도 오빠(조용필)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오던 시절”이라며 “어릴 적 음악을 좋아했던 아버지 덕택에 80년대 초반부터 조용필이 나오는 영상을 거의 빠짐없이 녹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일반 가정집에 널리 보급된 VHS비디오가 나오기 전 잠깐 나왔다 사라진 베타 방식의 비디오테이프까지 모두 70개가량의 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복원 영상 ‘디지털 박물관’에 공유 이들이 소장하거나 다른 회원들이 기증한 과거 영상은 대체로 베타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것이 많다. 이 영상을 복원하기 위해 전씨는 올해 초 서울풍물시장 골동품 가게들을 일일이 찾아다닌 끝에 1980년대 사라진 베타 방식 비디오 기기까지 구했다. 또 일본 옥션을 통해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의 영상과 음질을 최대한 살려 복원해 주는 기기도 추가로 구입했다. 전씨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비디오도 귀하던 시절인지라 이때의 영상들을 수집해 기록하는 것은 대중음악사 사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면서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 조용필의 다양한 활동이 담긴 귀한 영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복원한 영상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팬클럽 홈페이지(www.choyongpil.net)의 디지털 박물관에 모두 올리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조용필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CF 광고 등을 비롯해 조용필 정규 1집부터 19집까지 수록된 189곡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 올렸다. 전씨는 “이 영상들을 시간순으로 보면 조용필의 목소리 톤이나 창법, 의상, 머리스타일까지 변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면서 “특히 13집을 분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조용필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인생을 좀더 크게 보는 확장성을 지니고 있어 나이가 들수록 지난 노래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팬클럽에서 가장 절실하게 찾고 있는 영상은 1981년 8월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비치 페스티벌 공연이다. ‘고추잠자리’, ‘여와 남’, ‘미워 미워 미워’ 등이 수록된 3집 앨범을 처음 선보인 자리로 팬들 사이에서는 명품 공연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녹화 영상이 KBS ‘100분 쇼’로도 방영했으나 아무리 수소문해도 방송 영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영상을 찾으려고 일본 NHK방송국까지 다녀왔다는 전씨는 “혹시라도 당시 영상을 녹화한 사람이 있다면 꼭 연락해 달라”라고 당부했다.●조용필 대백과사전 만드는 ‘미지의세계’ 또 다른 팬클럽인 ‘미지의세계’에서는 조용필 대백과사전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미지의세계’ 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순(49·여)씨는 팬클럽 운영진과 함께 2015년 11월에 조용필 대백과사전 ‘더 조용필’을 발간했다. 1000쪽 분량의 백과사전에는 조용필 출생에서부터 각종 앨범과 육필 악보, 어록, 공연 기록과 포스터, 노래연습실 목록까지 조용필의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 이씨는 “조용필 음악의 역사와 업적들은 정말 어마어마한데 제대로 정리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집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팬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50년 가까이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백과사전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팬들이 갖고 있던 스크랩과 메모글, 과거 신문, 잡지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데만 꼬박 2년 반이 걸렸다. 각 앨범과 콘서트에 대한 소개는 물론 리뷰도 정리했다. 그렇게 해서 팬들과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300권(비매품)을 찍어 60권가량을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기증했다. 그러나 처음 조용필 회사 사무실에 들고 갔을 땐 소속사 실장으로부터 “이런 걸 왜 만들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평소 조용필이 자신의 업적이나 기록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이씨는 “나중에는 잘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위안이 됐다”면서 “미숙한 부분이나 틀린 내용들을 보완해 50주년 기록까지 넣어 완성도 높은 개정판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완구, 무죄 확정 직후 “하느님 메시지로 받아들여”

    이완구, 무죄 확정 직후 “하느님 메시지로 받아들여”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3일 천안 지역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과거 ‘성완종 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뒤 밝힌 심경이 주목을 받고 있다.지난 2015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재판을 받은 이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선고 받았다. 이 전 총리는 대법원 판결 이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2년 7개월 동안 나한테 엄청난 시련을 줬지만 또한 나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하느님께서 ‘너 정치 잘해라. 이 사건에선 결백했지만 그렇게 이 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한테 떳떳하냐’라고 묻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이 전 총리는 충남지사나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설이 도는 것에 대해 “이 시점에서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면서도 “나는 이미 충남지사에 여당 원대대표, 국무총리까지 다 한 사람인데 열심히 하고 능력 있는 정치 후학들이 해야지…”라며 우회적으로 불출마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이 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6.13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접고, 당에서 요청하든 안 하든 단 한표라도 후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가 우리 당 후보에 힘을 실어주겠다”며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국가 책임”…50년을 기다린 진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국가 책임”…50년을 기다린 진실

    “주문.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 제3조에서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등에 관하여 공식 인정하라. (중략) 피고 대한민국은···.”재판장이 판결 주문을 낭독했습니다. 원고의 소송 청구 취지가 모두 반영된 원고 승소 판결이었습니다. 재판이 끝나자 원고석에 앉아 있던 두 베트남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통역을 통해 승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오랫동안 굳어있던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턱 아래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시민평화법정’(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공개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모의재판은 과거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원고는 ‘퐁니·퐁넛 사건’의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58)과 ‘하미 사건’의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61)이었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한국군 해병 제2여단(일명 ‘청룡부대’) 예하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12일 오전 퐁니·퐁넛 마을로 진입해 저지른 학살(74명 사망)로 응우옌티탄(58)은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을 잃었습니다. 당시 자신도 배에 총을 맞았습니다. 또 청룡부대 예하 5대대 26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22일 오전 하미 마을로 진입해 일으킨 학살(135명 사망)로 응우옌티탄(61)은 어머니, 남동생, 작은 어머니, 사촌 동생 2명을 잃었습니다. 자신도 한국군의 수류탄 공격을 받고 왼쪽 귀와 왼쪽 다리, 허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때 입은 상해로 현재까지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재판에 대법관과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재판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을 지낸 이석태 변호사, 과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국제여성전범법정’ 남북한 공동 기소단의 검사 역할을 맡았던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재판관으로 참여했습니다. 재판부는 재판 첫날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시민평화법정은 (중략)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민간인 학살이 과연 존재했는지, 만약 존재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심리할 것입니다.” 형사법정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가해자들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판단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어 재판부는 “참전군인을 비난하고 그들의 명예를 실추하는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라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과거의 불행을 이제부터라도 정직하게 드러내 직시하고, 거기에서 찾게 될 진실을 공유하면서 따뜻한 위로와 함께 온당한 치유책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참전군인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그들의 참된 명예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고는 ‘대한민국’입니다. 앞서 재판부는 소송 서류들을 법무부에 송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률상 대표자가 법무부 장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무부에서는 첫 변론기일이 열리기까지 아무런 답변도 없었습니다. 결국 정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변호사들이 정부를 대리하는 ‘역할’을 위해 피고 측 대리인단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 진상규명, 공식 사과 등의 책임은 베트남 전쟁(1964년 8월~1975년 4월)이 끝난지 4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피고 측 대리인단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증거라면서 베트남 전쟁 당시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이 1968년 6월 4일 주월미군사령관에게 보낸 공문을 제시했습니다. 이 공문은 퐁니·퐁넛 사건이 당시 한국군의 적이었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일명 ‘베트콩’) 세력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단은 하미 사건도 26중대가 학살 가해자라는 객관적 증거가 없고, 당시 하미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많은 관련성이 있었다며 하미 마을 주민들은 보호 의무가 있는 민간인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 등을 내놨습니다.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국방부가 1972년 발간한 공식자료인) ‘파월한국군전사’의 1968년 2월 12일자 퐁니·퐁넛 마을에서의 작전 기록에는, 한국군으로 위장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 퐁니 마을 수십명을 집단적으로 살해한 사실이나 이에 대해 당시 퐁넛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이 사건 1중대가 즉각 대응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서 “특히 (중략) 베트남 주민 수십명이 집단적으로 살해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기록인 파월한국군전사에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퐁니·퐁넛 사건으로 살해된 마을 주민들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거나 그 동조세력이었다는 피고 대한민국의 주장과, 이 사건으로 살해된 마을 주민들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이라는 주월한국군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결국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 그 동조세력을 죽였다는 심히 모순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서 “이는 논리칙과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하미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판부는 “(원고가 증거로 제출한 하미 사건 생존 피해자들의 인터뷰 영상 속) 피해자들은 (중략) 이 사건 26중대 소속 한국군인들이 마을에 찾아와 마을 주민들을 여러 곳에 모아놓은 뒤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였다는 점을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바, 진술의 신빙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서 “또한 베트남 정부에서도 (희생자 명단이 적혀 있는) 위령비를 유적지로 인정함으로서 하미 마을에서 피고에 대한 민간인 학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신빙성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전시에도 전투 행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국제인권규범을 위반한 점도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21일 있었던 당사자 신문 중 일부입니다. “한국군이 총을 쏠 때, 베트남 사람이나 가족 중에 한국군에 대항해서 총을 갖고 있었다든지 칼을 갖고 반격한 사람이 있었나요?” (양현아 재판관) “저희 가족은 (집에서) 나오는 대로 총을 맞았습니다. 저희가 다 이렇게 쓰러져서 누워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이모가 아직도 아이를 안고 있었고 한 한국군인이 집에 불을 지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가 말리려고 했는데, 손 들어서 말리려고 했었는데 옆에서 한국군인이 이모 배를 칼로 찔렀어요.” (퐁니 사건의 응우옌티탄) “저항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당했다는 진술로 보입니다.” (양현아 재판관)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어렵고, 게릴라전을 펼치는 ‘보이지 않는 적’의 저격 등과 싸워야 했던 베트남 전쟁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피고 측 대리인단의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퐁니·퐁넛 사건에서는 70여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는데 (중략) 수십명의 민간인 살해된 사건을 두고 과연 의도치 않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라고 볼 수 있는지 자체가 심히 의심스럽다. 나아가 피해자의 거의 대부분이 노인, 여성, 어린이들이었고, 심지어 한 살 미만의 영아까지 살해되었으며 이들은 비무장 상태였다는 점까지 감안해 본다면, 퐁니·퐁넛 사건이 의도치 않은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된다. (중략) 오히려 의도된 집단 학살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미 사건 역시 “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는데 (중략) 상당수는 아동과 유아였다. 또 이른 아침 하미 마을 주민들을 여러 곳으로 모아놓은 뒤 학살했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그 다음 날 불도저로 시신을 훼손했다. 의도치 않는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들을 종합해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선고했습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 제3조에서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등에 관하여 공식 인정하라. 피고 대한민국에게 1964년~1973년 사이에 베트남 지역에서 피고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살인, 상해, 폭행, 성폭력 등 일체의 불법행위가 일어났는지 여부에 관한 진상조사 실시를 권고한다. 피고 대한민국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포함한 피고 대한민국 군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홍보하고 있는 모든 공공시설과 공공구역에 대한민국 군대가 원고들에게 불법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및 (중략) 진상조사 결과를 함께 전시하고, 향후 대한민국 군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홍보하는 공공시설과 공공구역을 설치할 경우에도 같은 조치를 취하라.” 선고 내용을 들은 응우옌티탄(58)의 말입니다.“제가 너무 기뻐서 지금 온몸이 떨리고 있습니다. 저는 진짜 머나먼 베트남에서 아주 힘들게 이 법정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까 판결 내용 들었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이렇게 기쁜 소식 가지고 이제 베트남에 당당하게 갈 수 있고요. 74명의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많은 생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우옌티탄(61)은 “이번 법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살아남은 모든 생존자들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소감을 전했습니다. 물론 이번 재판은 정식 재판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법정에서의 선고가 구속력을 갖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일어난 국가범죄이자, 전쟁 중에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규범을 위반한 전쟁범죄입니다. 원고 측 대리인단의 임재성 변호사는 “비록 학살을 행한 주체는 한국군이지만, 학살 사건을 50년 동안 은폐시킨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살의 진실이 망각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제가 그 증거입니다”…생존자들의 호소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200억규모 시흥화폐 ‘시루’ 하반기 본격 유통

    200억규모 시흥화폐 ‘시루’ 하반기 본격 유통

    경기 시흥에서 지역화폐 ‘시루’가 하반기부터 본격 유통된다. 시는 시루 유통규모를 연 200억원으로 잡았다. 22일 시흥시에 따르면 ‘시흥화폐 발행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지난 20일 시의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주민 설문조사와 화폐 이름, 디자인 시민공모전 등 시범사업을 펼쳐 민관협력 지역화폐 도입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시흥시의회는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지역자금 역외유출을 막아 서민경제를 튼튼히 하고 지역공동체를 강화해야 한다”며 “향후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철저히 사전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시흥화폐 조례는 타 지자체와 달리 ‘시흥화폐 발행위원회’를 구성한 게 특징이다. 발행위는 시흥화폐 시루 운영과 관련한 심의·의결기구다. 당연직 위원장에 시흥시장과 부위원장 외 민간위원 중 한 명을 두며 위원 30명 중 18명을 민간에서 뽑았다. 이후 가맹점 모집을 비롯해 판매·환금을 대행하는 금융협력기관과 협약 체결 등 실무 준비절차가 진행된다.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함께 대대적인 구매 캠페인을 벌이고 공무원 복지포인트와 각종 포상·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위폐와 불법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간편결제 지역화폐’를 종이(지류)화폐와 병행해 운영, 검토 중이다. 시관계자는 “시흥화폐 시루의 성패 여부는 사용자와 가맹점 수를 얼마나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살리는 길에 시민과 소상공·자영업자들이 적극 동참해 주시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최장수 북극곰 ‘이누카’를 아시나요? 안락사 위기 처해…

    최장수 북극곰 ‘이누카’를 아시나요? 안락사 위기 처해…

    열대지방에서 태어난 유일한 북극곰, 싱가포르의 최장수 동물로 유명한 ‘이누카’가 최근 사망 위기에 처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싱가포르 언론 더 스트레이츠 타임은 인간 나이로 70에 해당하는 27살 수컷 북극곰 이누카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야생동물 보호구역(WRS)에서 태어난 이누카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정도로 현지 유명 인사였다. 이누카는 귀여운 재롱으로 동물원 방문객들에게 많은 총애를 받았고, 매년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누카도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난 3일 연례 건강 검진에서 그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누카는 3개월 동안 약물 혼합제를 맞으며 관절염 치료를 받고 있었고, 치아 문제와 잦은 이염으로 고생 중이었다. 이누카는 북극곰 평균 수명(20~25세)보다 2년이나 더 살았다. 야생 북극곰 평균 수명(15~18)보다 훨씬 더 장수했다. 싱가포르 동물원은 2006년 전시중인 북극곰 ‘이누카’의 노사 이후 더 이상 북극곰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이누카를 마지막으로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볼 수 없게 된다. 수의사 아브라함 매튜는 “이누카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집중적인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이누카가 호전되고 약으로도 나아질 수 있다고 느끼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의 상태가 계속해서 악화되면 그를 편안하게 놓아주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원측은 “사랑하는 북극곰 이누카의 최근 건강 검진 결과 몸이 많이 쇠잔해졌다. 오는 20일 복지팀이 수의사, 동물학자와 함께 치료방법을 변경해 그를 살릴 수 있는지 평가할 것”이라며 “이누카에게 아낌없는 기도와 지지를 보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현대모비스 자율주행차 전 세계 도로 달린다

    현대모비스 자율주행차 전 세계 도로 달린다

    독자개발 총 25개센서 탑재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자율주행차 ‘엠빌리’(M.BILLY)가 전 세계 도로에서 본격적인 시험 주행에 나선다.현대모비스는 이달 중순부터 미국 미시건주에서 ‘레벨3’와 ‘레벨4’ 자율주행시스템 개발을 위한 엠빌리 실차 평가를 진행한다고 19일 밝혔다. 레벨3는 부분 자율주행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수준, 레벨4는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 단계에 해당한다. 엠빌리는 기아차 K5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한 형태다. 모비스의 기술개발 비전인 ‘New Mobility Experience’(새로운 이동 경험)에서 글자 M을 따오고,미래 자동차 핵심기술에 집중하는 글로벌 부품사로 도약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엠빌리는 미국 외 우리나라와 독일에서도 시험 주행에 나선다. 2016년 미시건주 정부로부터 자율주행 개발용 차량 운행 허가 면허(M-plate)를 받은 현대모비스는 받았다. 국내는 다음 달, 독일은 6월부터 면허를 취득할 계획이다. 엠빌리의 도로주행은 일반 도로와 거의 유사한 ‘프루빙 그라운드’(주행시험장)에서 사전 기능 점검과 안전성 평가를 진행한 뒤 실도로 주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험 차량에는 현대모비스의 독자 센서가 장착될 예정이다. 전방 카메라(1개), 레이더(5개), 라이다(1개), 초음파센서(12개), 서라운드 뷰 모니터링(SVM, 4개) 등 총 8개 종류 25개 센서가 탑재된다. 현재 독자 개발한 전방레이더가 장착돼 있으며 나머지 센서들은 개발 일정에 따라 올해 3분기 이후부터 차례로 탑재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3대인 엠빌리 차량을 연말까지 10대 이상으로 늘려 대대적인 시범 운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우선 독자 센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2022년 독자 센서를 갖춘 레벨3 자율주행시스템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대모비스는 2021년까지 연구개발(R&D) 투자비 규모를 부품 매출의 10%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현재 600명 수준인 자율주행 분야 연구인력도 매년 15% 이상 늘릴 계획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은행 ‘무늬만 유연근무제’

    은행 ‘무늬만 유연근무제’

    은행원에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여전히 먼 나라 얘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리딩뱅크’를 다투는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이 앞장서서 유연근무제, PC오프제 등을 도입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스마트 재택근무’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2016년 7월 은행권 최초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신한은행은 재택근무 대상자를 공모하는 등 사용을 장려했다. 하지만 지난해 재택근무를 이용한 직원은 단 75명에 불과했다. 신한은행 총직원 1만 4174명 중 0.5%만 이용했다는 뜻이다. 올해부터는 재택근무 대상자를 지정하는 제도도 폐지했다. 지난해까지 재택근무 대상자였던 한 직원은 “올해 초 대상자에서 제외됐지만 회사에서 별도의 공지도 없었다”면서 “재택근무를 할 때에도 노트북으로 은행의 일부 시스템엔 접속이 안 되는 등 불편함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신한은행은 “더 많은 직원이 이용할 수 있게 대상자를 지정하는 대신 자율 신청으로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택근무는 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이용이 거의 불가능해 도입 초기부터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은행원은 정보기술(IT) 부서와 본부 기획부 직원, 기업금융전담역(RM)과 프라이빗뱅커(PB) 등 일부였다. 신한은행의 한 임원은 “실제로 해 보니 IT부서 등 후선에서 업무를 서포트하는 직원들이 많이 이용했고 일반 직원 중에는 가능한 대상이 많지 않아 운영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자율출퇴근제’는 지난해 121만건 이용됐지만 일부 부서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이름처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장기 근로를 막기 위해 도입된 PC오프제도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칼퇴근’ 실험에 나섰지만, PC를 켜지 않은 채 오전 일찍 회의와 교육 일정을 잡는다는 제보가 노조에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일부 지점장이 야근 승인을 반려해 오히려 시간 외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은 “기존엔 시스템상 반려만 가능해 부작용이 있었지만, 등록 시간과 실제 근무 시간이 다르면 추후 수정할 수 있도록 개선 조치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1000여개 지점 중 38개에서만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 말 시범운영을 시작한 뒤 계속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었지만 노조는 “실질적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낮 12시 출근인 직원에게 오전 회의에 참석하라고 강제하고, 오전반 직원이 휴가를 가면 오후반 직원에게 오전 일까지 맡긴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법적으로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되지 않고 지금처럼 노사 합의로만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면 제도가 안착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제가 그 증거입니다”…생존자들의 호소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제가 그 증거입니다”…생존자들의 호소

    여기, 베트남에서 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분의 이름은 응우옌티탄(58)입니다. 베트남 중부 꽝남성(‘성’은 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의 퐁니 마을이 그의 고향입니다. 다른 한 분의 이름도 응우옌티탄(61)입니다. 꽝남성의 하미 마을에서 왔습니다. 퐁니 마을과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이 지난 19일 어렵게 한국 국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왜 한국군은 여성과 어린아이뿐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나요. 어째서 집까지 모조리 불태우고 시신마저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인가요.”두 사람은 이름도 같지만 동시에 베트남 전쟁 시기에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는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 철군하기 전까지 32만 5000여명 규모의 한국군을 베트남 전쟁(1964년 8월~1975년 4월)에 파병했습니다. 장병 5000여명이 전사했고, 1만 2000여명이 지금까지도 고엽제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군은 베트남에 주둔하는 동안 전투 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수천명의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학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들의 가옥, 무덤,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불도저로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일어난 국가범죄이자, 전쟁 중에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규범을 위반한 전쟁범죄입니다.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은 1968년 2월 12일에 발생한 ‘퐁니·퐁넛 사건’의 피해 생존자입니다. 퐁넛 마을은 퐁니 마을 바로 옆에 있는 마을입니다. 당시 한국군의 해병 제2여단(이른바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퐁니·퐁넛 마을로 진입해 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74명이 살해됐고 17명이 다쳤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그는 이 사건으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을 잃었습니다. 자신도 배에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저는 배에 총상을 입었고, 오빠는 엉덩이가 다 날아갈 정도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죽은 남동생은 한국군이 쏜 총에 입이 다 날아갔습니다. 남동생이 울컥울컥 핏물을 토해낼 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배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부여안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어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그날의 잔인한 학살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고 호소했습니다.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도 1968년 2월 22일에 벌어진 ‘하미 사건’으로 어머니, 남동생, 작은 어머니, 사촌 동생 2명을 잃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11살이었습니다. 자신도 한국군의 수류탄 공격을 받고 왼쪽 귀와 왼쪽 다리, 허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때 입은 상해로 현재까지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날 해병 청룡부대 예하 5대대 26중대 소속 군인들은 하미 마을에 진입해 마을 사람들을 네 곳으로 모았습니다. 이후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트렸습니다. 총검을 휘둘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 다음 날 불도저를 동원해 전날 학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매장한 시신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훼손했습니다. 이 학살로 135명이 사망했습니다.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은 “(하미 사건의 충격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안개가 끼거나 사람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학살 현장의 끔찍한 공포가 떠올랐습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남동생의 유해를 지금까지 찾지 못해 가슴이 아픕니다”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역대 대통령들의 발언은 ‘과거에 양국 간에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유감이다’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지 4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대로입니다. 두 응우옌티탄은 국회 정론관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다른 학살 피해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대신하여 묻습니다. 어째서 한국군은, 한국 정부는 그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50년이 넘도록 그 어떤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인가요.”사실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은 이번 방한이 두 번째입니다.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2015년 4월 생애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민간인 학살 사건을 부정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단체들의 반발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당시 응우옌티탄은 또 다른 학살 피해 생존자 응우옌떤런(67)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 나눔의집 역사관 방문을 시작으로 국회 기자회견,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참석, 지역 순회 간담회 등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참전군인 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는 “누군가는 민간인 학살 사건이 없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직접 겪어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는 정부는 침묵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한국에 온 두 분은 두려운 마음으로 ‘제가 증거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은 오빠와 주변 이웃들이 자신의 방한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무서운 곳에 어떻게 가느냐’, ‘가서 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거길 갈 수가 있느냐’는 반응들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조카의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가 반대할 때 제게 한국에 가라고 이야기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제 조카입니다. 조카는 저의 방한이 ‘그 날 죽은 135명의 영령들을 위한 일이 아니냐’면서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한국에 와서 증언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두 응우옌티탄은 “우리는 앞으로도 그날의 일들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이 자리도 많이 떨립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용기를 내는 이유는 50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의 가족 때문입니다.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때문입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지난날 있었던 어둡고 고통스럽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을 세상에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그것은 비단 피해 생존자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오는 21~22일 ‘시민평화법정’(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립니다. 오래 전부터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온 시민사회가 어렵게 마련한 자리입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진행됩니다. 학살의 진실이 망각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의 몫입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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