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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덕도 신공항·메가시티… 與 “부산 잡아라” 선물 공세

    가덕도 신공항·메가시티… 與 “부산 잡아라” 선물 공세

    박형준·김영춘 지지율 8.4%P차 좁혀져대선 전 PK민심 가늠해 볼 마지막 기회주호영 “도도한 민심의 흐름 앞 역부족”부산시장 보궐선거가 4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당정청이 25일 부산에 총출동해 ‘선물 공세’를 펼치면서 남은 기간 선거 판도를 얼마나 뒤흔들지 주목된다. 여당 내에서는 가덕도 신공항과 동남권 메가시티 등 지역의 숙원사업이 표심을 자극할 것이란 기대와 함께, 가덕도신공항특별법 제정 이후 후속 조치에 얼마나 진정성을 보여 주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치러지는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열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KBS부산과 부산MBC가 공동으로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지난 21~22일, 부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 대상,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 포인트)에 따르면 국민의힘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26.1%로 1위, 민주당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이 17.7%로 2위를 차지했다. 다만 김 전 총장은 1월 2~3일 같은 기관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에서는 지지율이 13.2%였지만 이번에는 격차를 좁혔다. 당 차원의 대대적인 가덕도 신공항 띄우기 전략이 먹혀 들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여당 입장에서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다음 대선 전에 부산·울산·경남(PK)의 민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번 연속 승리했지만, PK에서의 성적은 처참했다. 전체 180석 거대 의석을 얻었지만 부산 의석은 6석에서 3석으로 반 토막이 났다. PK 전체는 40석 중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32석을 차지해 압도적인 보수 우위 지역으로 돌아섰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은 압승했지만 PK에서는 분명히 진 것”이라며 “대선 전에는 양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당내에서도 가덕도 신공항 등이 ‘필승 전략’일 순 없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사업인 데다 이미 선거 때마다 반복된 이슈인 만큼 의미 있는 후속 조치가 있어야만 민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가덕도는 매번 여야가 다 한다고 한 거 아니냐”면서 “이거까지 해 주고 선거에서 지면 뭐가 되나”라고 털어놨다. 국민의힘은 이날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이 선거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비상대책회의에서 “재난지원금 공세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면서 “열세에 몰린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도도한 민심의 흐름 앞에 역부족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포토] 김정은, 대대적 군 승진 인사 단행

    [포토] 김정은, 대대적 군 승진 인사 단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군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신임 해군사령관에 김성길,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공군사령관)에 김충일이 임명됐다. 2021.2.25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詩랑 동백이랑, 붉게 물들어볼까

    詩랑 동백이랑, 붉게 물들어볼까

    어디에선가 시 한 편을 접했다. 제목은 ‘숙희이야기’. 이른바 ‘라떼 시절’에 경북 포항의 구룡포에서 벌어진 애사가 담긴 시다. 한데 시에선 여태 알던 구룡포와 다른,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향기가 났다. 시를 쓴 이는 권선희 시인. 쉰여섯 생애 가운데 장성한 이후 20년 세월을 구룡포에서 살아온 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구룡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룬 시집이 벌써 두 권째다. ‘구룡포로 간다’(2007)가 앞서고 ‘꽃마차는 울며 간다’(2017)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펴낸 산문집 ‘숨과 숨 사이 해녀가 산다’까지 포함하면 세 권째다. 어느 곳엔들 저마다의 속사정이 없을까만, 이 마을엔 대체 무슨 사연이 이리 많은 건가. 주민이라야 7000명을 헤아리는 동네에서 말이다.“구룡포발 대구행 아성여객 차장이었을 때 숙희는 한 마리 비둘기였다지요 빨간 명찰 말년 병장 숙박계 날려쓰던 겨울 밤 싸나이 팔뚝에 머리 파묻고 처음 날개를 벌렸다지요 헐거운 여인숙 그 방을 두고 머리채 질질 반장 손에 끌려간 새벽은 세찬 바람으로 오래 울었다지요 태광호도 중심 잔뜩 부풀어 돌아오는데 아무튼 포장치고 회 뜨는 쉰 살 숙희 세꼬시 썰리듯 살아도 첫차처럼 올라탔던 싸나이는 여적 내려오지 않는다지요 명치끝에 아예 눌러 붙었다지요” 시 ‘숙희이야기’의 전문이다. 초봄의 갯마을로 발걸음하게 만든 시. 실제 아성여객에 근무하던 차장(안내양)의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권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시들이 대부분 이랬다. 구룡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시가 됐다. 어찌어찌 권 시인과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귀동냥이라도 해서 새로운 느낌의 구룡포를 만날 요량이었다. 사실 여행자에게 동해 바다는 늘 낭만과 포용의 공간이어야 했다. 삶이 무료해질 때마다 그 바다 앞에 나를 세우려는 이들이 모험과 충전을 위해 찾는 무대였다. 하지만 낭만 너머에는 누군가의 고단한 삶이 있다. 권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구룡포’는 그런 다양한 생의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다. 시인은 구룡포 여정의 들머리로 선소(船所)를 권했다. 선소는 배를 만들거나 수리, 해체하는 곳이다. 배의 일생이 시작되고 끝을 맺는 자리란 뜻이다. 문제는 선소의 분위기가 여행자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예전과 다르다고는 해도 선소는 여전히 걸걸한 사내들이 많은 일터다. 자칫 사진을 찍다 으르딱딱대는 선주와 마주칠 수도 있다. 될 수 있으면 눈으로만 살피며 빠르게 지나길 권한다. 선소 위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용의 대가리’ 용두산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언덕에 서면 구룡포항 일대를 얼추 굽어볼 수 있다. 구룡포항엔 위판장이 세 곳이다. 항구는 하나지만 위판되는 어종에 따라 구역이 나뉜다. 주민들은 이를 ‘판장’이라 부른다. 선소가 있는 남쪽부터 트롤선, 대게를 포함한 잡어선, 그리고 활어선(주로 오징어잡이배) 판장이다. 선소에서 잡어선 판장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구룡포 읍내다. ‘매월여인숙’부터 찾는다. 시 ‘숙희이야기’의 배경이었던 곳. 읍내 구룡포노인무료급식소 바로 옆에 있는데도 찾기가 쉽지 않다. 햇볕 한 줌 겨우 드는 골목을 지나야 나온다. 예전엔 이 일대에서 명자깨나 날리던 숙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여인숙’은 사라지고 낡은 건물만 남았다. “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여인숙(‘매월여인숙’)은 이제 기억 속에 박제되고 만 거다. 읍내 고래고기 음식점에 전시된 고래 생식기처럼 말이다. 마을 골목골목엔 이 같은 사연들이 수없이 흐른다. 손 없는 집에 들어가 자식을 여섯이나 낳은 첩과 그 첩이 낳은 자식들을 모두 받아낸 뒤 부산으로 가 광주리 장사로 먹여 살린 본부인 이야기(‘누가 더 불쌍한가’), 술추렴하다 “시발 문디 지랄 같은 기마 화딱 디비 엎어 뿔고 에이 시벌컥벌컥벌컥벌컥컥 컥”대던 사내 이야기(‘돌림노래’), “새끼 내삐리고 소식 는 둘째 놈” 탓에 “고래 새끼만도 몬한 내 손주 놈 가여버”하던 할아버지의 이야기(‘사램이 고래만 같으믄’)들이 항구 뒤편 골목에 가득 채워진다. “산 사람 덕분에 죽을 수 없는 개”(‘목포집 덩실이’)와 뭇 사내들에게 해체되던 고래(‘끝내주는 것’) 등 동물과 자연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강원 춘천 출신의 시인이 채록한 사투리들이 토속적 정취의 시어가 되어 주는 건 물론이다. 사실 구룡포 하면 TV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벌써 두 해 전에 끝난 드라마인데도, 촬영지를 둘러보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하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로 촬영된 곳은 일본인 가옥거리(근대문화역사거리)다. 옛 다이토 여관이었던 동백(공효진 분)의 가게 ‘까멜리아’ 등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일본인 가옥거리가 해안가 평지에 있다면, 한국인들이 살던 집들은 그 뒤의 비알에 있다. 일본인 거리가 방구석 1열, 한국인 거주지는 방구석 3열쯤 되려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살았던 우리나라 해안 도시 어디나 비슷한 모양새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 비알에도 사연들은 빼곡하다. 우선 사라진 것부터. 권 시인에 따르면 비알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건 용왕당이다.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고 옮겨간 것이다.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이었을 텐데, 그 사연이 씁쓸하다.예전 용왕당은 드라마 속 ‘동백이네 집’ 옆에 있었다. 일제 때는 일본 사찰이 이 자리를 차지했고, 일제가 물러난 뒤에는 가톨릭 공소로 쓰였다. 현재 텃밭 가운데에 성모 마리아상이 어색하게 서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용왕당을 허문 이들은 인근 충혼탑 뒤에 크고 번듯한 용왕당을 새로 지었다. 그 탓에 조상 대대로 전해지던 기억의 공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충혼탑 주변으로 볼거리가 많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사진이 촬영됐던 계단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동백이네집’, 과메기문학관, 아라예술촌 등에도 관심 두는 이들이 많다. 단층 폐가 위에 희망을 담아 세운 조형물 블루 프린트, 동백꽃담 등 거리 예술 작품들도 볼만하다.구만리도 찾았다. “청보리 수런대며 익어가는” 그 마을에 가면 “그렁그렁 차오르던 봄”(이상 ‘다시, 구만리’)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키 낮은 집들만 있던 시절엔 아마 청보리밭 끝이 바다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푸른 보리밭이 파란 바다로 풍덩 자맥질하는 모습이었겠지. 밭과 바다의 경계 어름에선 아마 아지랭이도 스멀스멀 피어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와 더불어 푸르렀을 청보리밭의 정취는 이제 찾기 어렵다. 키 높은 건물, 얼기설기 난 차도에 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구만리 마을 초입, 공군부대 쪽에 있는 보리밭이 그나마 넓고 상쾌하다. 구만리에서 ‘호랑이 꼬리’를 넘어가면 풍경이 휙 바뀐다. 가수 최백호의 친구가 살았다던 영일만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위로 ‘철의 도시’ 포항이 신기루처럼 떠 있다. 여기부터는 다른 공간, 다른 세계다. 글 사진 포항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사설] 진정된 ‘신현수 파문’, 국정난맥 재발해선 안 돼

    검찰 고위간부 인사 과정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고 잠행하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어제 정상 출근해 직무에 복귀했다. 신 수석은 문 대통령에게 자신의 거취를 일임한 뒤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겠다”며 사실상 사의를 철회했다. 이제 지난주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현수 파문’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만류를 여러 차례 뿌리칠 정도로 완강했던 신 수석이 극적으로 사의를 철회한 것은 여권 고위 인사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적극적으로 업무복귀를 설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으며 물밑 접촉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월성원전 등 주요 사건 수사팀 책임자들이 유임된 것은 박 장관 측과 신 수석 간 협의의 결과물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문 대통령과 민정수석·사정비서관으로 연을 맺어 대선 후보 시절에도 법률전문가로서 힘을 보탠 신 수석 역시 자신의 이탈이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신 수석이 사의를 철회하고 잔류함으로써 파국을 피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번 파문으로 문재인 정부의 제1과제인 검찰개혁 추진의 강도에 대해 이견이 노정된 만큼 재발 가능성은 상존한다 할 수 있다. 특히 박 장관 등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나는 오는 7월 이후 대대적인 검찰 간부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어 검찰 조직의 안정에 방점을 두는 신 수석과 인사권 조율 과정에서 마찰이 재발할 수 있다. 장관과 대통령의 참모인 청와대 수석이 업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견이 공개적 충돌로 드러나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처를 입히고, 국민에게 국정의 난맥상 인식을 심어 줘서는 곤란하다. 문 대통령이 50여일 전 윤 총장과도 각별한 검찰 출신의 신 수석을 참모로 발탁한 것은 지긋지긋한 법무·검찰 갈등 관계를 청산하고, 신 수석 중재하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힘을 합쳐 조화롭게 검찰개혁을 마무리하라는 뜻 아니었는가. 여권 내 검찰개혁 강경파들은 검찰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도 강행할 태세다. 장관과 수석도 이견을 참지 못해 충돌하는 판에 국가 주요 정책을 공론화 과정도 없이 밀어부친다면 제2의 신현수 파문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임기 마지막 후반기의 국정난맥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 朴 ‘절반의 후퇴’… 윤 총장 퇴임 이후 하반기 ‘대폭 물갈이’ 예고

    朴 ‘절반의 후퇴’… 윤 총장 퇴임 이후 하반기 ‘대폭 물갈이’ 예고

    법무부가 오는 26일자로 단행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주요 수사팀을 모두 유임한 ‘소폭’ 인사를 내면서 윤석열(61·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과의 추가적인 마찰을 피했다. 윤 총장 퇴임 전까진 현 체제를 유지하고, 하반기 인사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로 검찰 진용을 새로 갖추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대규모 인사를 해 달라’는 윤 총장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절반의 후퇴’만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법무부는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검찰인사위원회를 개최한 뒤 부·차장검사 18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김욱준(49·28기) 차장검사의 사표 수리로 공석이 된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자리에는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파견됐다가 복귀한 나병훈(54·28기) 검사가 부임한다.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로는 이진수(47·29기) 청주지검 차장검사가 새로 오게 됐다. 대검찰청 감찰2과장 자리에는 당초 거론됐던 친정부 성향의 임은정(47·30기)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아닌 안병수(48·32기) 인천지검 부부장검사가 전보됐다.당초 교체 가능성이 제기된 주요 수사팀은 모두 자리를 지켰다. 특히 채널A 사건을 두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충돌했던 변필건(46·30기)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유임됐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이상현(47·33기) 대전지검 형사5부장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수사하는 이정섭(50·32기) 수원지검 형사3부장도 계속 수사를 이어 가게 됐다. 법무부와 대검은 중간간부 인사 조율 과정에서 이견을 보였지만 최종적으로 법무부가 대검 측 요구를 일부 수용한 인사안을 냈다. 앞서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는 이날 인사위에 출석하며 기자들과 만나 “애초 대검에서는 인사 정상화를 위해 광범위한 규모의 인사를 단행할 것을 요청했는데 법무부가 소규모 인사 원칙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앙금은 남아 있다. 주요 권력 비리 수사팀은 유지됐지만 대규모 인사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대검 측은 추미애 전임 장관 시절 좌천된 이들은 복귀시키고 윤 총장 징계 과정에서 적극 역할을 한 간부들은 교체해 달라는 건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 인사를 계기로 틀어진 박 장관과 윤 총장의 관계도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 연구관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이 나 수사 및 기소 권한을 갖게 된 것도 석연치 않은 점이다. 대검 감찰부 검사의 경우 총장의 판단에 따라 직무대리를 내줘 수사와 기소를 하도록 할 수 있다. 그간 임 연구관은 윤 총장과 조 차장검사에게 직무대리 발령을 요청했지만 ‘정치적 중립성이 우려된다’는 이유 등으로 반려되자 법무부가 아예 총장을 건너뛰고 겸임으로 정식 발령을 낸 셈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임 연구관이 한명숙 전 총리 수사팀의 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한 검사들을 기소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In&Out] 왜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계속되는 것일까/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

    [In&Out] 왜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계속되는 것일까/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

    충분히 분노하고 애도할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또 다시 발생하는 사건들로 앞서 사망한 아동의 이름조차 잊게 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거듭되는 아동의 죽음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기는 한 것일까. 작년 10월 양천 입양가정에서 아동학대로 사망한 생후16개월 아동의 소식을 접했을 때 ‘은비’사건이 떠올랐다. 2016년 은비는 대구 입양가정에서 지낸지 7개월 만에 두 차례의 아동학대 신고 끝에 심정지로 사망했다. 학대 신고가 있었는데도 아동을 구하지 못했던 점, 입양가정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양천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은비사건의 민간 진상조사단으로 참여하여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했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은비’사건 때 제대로 입양제도와 학대 시스템을 점검했다면 양천 사건에서 참혹한 결과를 막을 수 있었을까. 작년 겨울 책임감과 절박함으로 국회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진상조사를 요청했지만 흔쾌히 나서는 곳이 없었다. 진상조사 할 계획이 있는지 관련 부처에 직간접적으로 확인했으나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양천 사건 발생 한 달 전에는 인천에서는 돌봄 공백 중 일어난 화재로 형제 중 한 아동이 사망했다. 2020년 6월 천안에서는 9살 아동이 여행용 트렁크 가방 안에 약 13시간 이상 감금되고 학대당한 끝에 사망했다. 2019년 9월 인천에서는 5살 아동이 목검으로 100여 차례 구타당하고 손발을 뒤로 묶인 채 학대당한 결과 사망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잔혹한 아동학대 소식 앞에서 우리는 슬펐다가 분노했다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번번이 정부는 긴급 대책을 내놓았고 국회는 아동학대 관련 법을 수차례 손보았는데도 왜 아동학대사망사건은 끊이질 않는 것일까. 정부와 국회는 매번 앞다투어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건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어디를 고쳐야하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졸속 대책은 정작 해당 사건에 대한 해법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번번이 제시되는 ‘가해자 처벌 강화, 신고의무자 확대, 미신고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아동학대 업무 담당자의 권한 강화, 가해자의 조사 불응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같은 대책들은 법조문 한 두 개의 개정만으로 가능한 해법들이다. 예산과 인력의 추가 확보는 필요하지 않다. 손쉽게 실행할 수 있는 대책들로 시민들의 공분을 진정시켰고, 이제는 괜찮겠지 싶으면 또 다른 아동학대사망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2021년 2월 5일 여야 국회의원 139명이 제안한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진상조사 특별법) 발의가 너무나도 반갑고 고맙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있어야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천사건 발생 직후 20여건이 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으나 근본적인 처방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더 늦기 전에 양천사건, 인천사건, 천안사건이 어떻게 수사·조사 처리되었고 아동학대 업무에 관여하는 기관 간 협력과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동의 의견은 어떻게 청취·반영되었는지, 분리된 이후 아동과 가정에 대한 지원과 개입은 어떠했는지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누수지점을 찾아 구멍을 메우고, 끊어진 연결고리를 잇고,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 곳에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한다. 이러한 진단과 대책은 아동학대대응책에 국한될 수 없다. 입양제도를 포함한 아동보호정책과 한부모 등 위기가정에 대한 지원 및 돌봄 정책이 망라되어야 또 다른 학대사건으로부터 아동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40여명의 아동이 학대피해로 사망하고 있으나,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 진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2014년 ‘서현이 사건’과 2017년 ‘은비사건’ 때 진행된 두 차례의 민간조사가 전부이다. 양천사건 발생 후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진상조사를 요청했으나 어느 곳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진상조사의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는 조속히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 특별법을 제정하여 아동인권 감수성과 전문성을 가진 위원들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충분한 예산과 인력, 활동기간을 보장해 철저한 진상조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아동의 죽음으로부터 배워야할 의무가 있다. 한 아동에 대한 죽음에 대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냄비뚜껑처럼 울분을 터뜨리길 반복하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
  • “인도 히말라야 협곡 물난리, 미국이 1960년대 심은 원자력 관측장비 탓”

    “인도 히말라야 협곡 물난리, 미국이 1960년대 심은 원자력 관측장비 탓”

    이달 초 인도 북동부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히말라야 협곡 일대를 휩쓸어 5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물난리의 원인으로 1965년 미국이 난다데비(해발 고도 7816m) 정상에 묻으려다 잃어버린 원자력 관측 장비를 주민들이 지목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0일(현지시간) 전했다. 일부에서는 기후변화 때문에 산 위 날씨가 따뜻해져 빙하가 떨어져나간 것으로 봤는데 색다른 분석인 셈이다. 우타라칸드주의 250가구가 모여 사는 라이니 마을 사람들은 인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난다데비 자락에 있는 관측장비가 폭발해 산사태가 촉발됐고, 빙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물난리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이장인 상그람 싱 라왓은 “우리는 이 장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빙하가 겨울에 절로 떨어져 나가겠느냐? 우리는 정부가 조사해 이들 장비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이들의 두려움은 예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간직해 온 것이었다. 미국과 인도는 1964년 중국이 처음 시도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도를 관측하기 위해 이듬해 히말라야 산자락에 원자력 동력의 관측 장비들을 숨겼다. 1965년 10월 미국과 인도 등반가들이 난다데비 정상 부근에 일곱 개의 플루토늄 캡슐이 달린 정찰 장비를 묻기 위해 무게가 57㎏이나 나가는 것들을 들고 올라갔다. 그런데 눈보라가 심해 정상 직전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들은 1.8m 길이의 안테나, 두 개의 무전기 세트, 배터리팩 하나, 플루토늄 캡슐들을 거기 버리고 하산했다. 그 중 한 명이며 중국 국경 순찰대원으로 오래 활동해 유명한 만모한 싱 코흘리(89)는 “내려와야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많은 산악인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등반가들은 이듬해 봄 다시 그곳을 찾아 장비들을 정상에 묻으려 했지만 사라져버렸다. 그 뒤 50년 넘게 여러 차례 탐사대를 꾸려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 온 미국 잡지 ‘록 앤드 아이스(Rock and Ice)’ 편집자 피트 다케다는 “냉전의 망상이 절정에 이른 시점이었다. 어떤 계획도 너무 이상하다 할 수 없었고, 어떤 투자도 너무 크지 않았고, 어떤 수단도 결코 정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그는 “오늘에 이르러 잃어버린 플루토늄이 빙하 속에 떠밀려와 아마도 먼지로 분쇄돼 갠지스 강 입구로 기어왔을지 모른다”고 적었다.그러나 과학자들은 과장된 분석이라고 말한다. 플루토늄 배터리는 원자폭탄과 달리 플루토늄 238이란 다른 화학물질을 사용하며 반감기가 88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잃어버린 플루토늄을 되찾아오겠다는 탐사대의 발길은 이어졌다. 영국 여행작가 휴 톰프슨은 책 ‘난다데비- 마지막 실락원을 찾는 여정’에다 현지인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미국인 등반가들이 얼굴에 선탠 크림을 바르고 고산병의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탐사 목적을 둘러대곤 했다고 적었다. 이들의 짐을 나르던 이들은 “마치 보물 찾기, 아마도 황금 찾기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미국 잡지 ‘아웃사이드’에 따르면 이들 등반가들은 미리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중앙정보국(CIA) 기지인 하비 포인트를 찾아 이들 장비를 찾는 방법을 교육받고 나머지 시간은 배구를 즐기고 향응을 즐겼다고 했다. 1978년 워싱턴 포스트(WP)가 이 잡지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할 때까지 인도에선 비밀에 부쳐졌다. CIA는 그 얼마 전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한 산악인 등을 고용해 중국을 엿보기 위해 히말라야의 두 봉우리에 이들 장비를 은닉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1967년 두 번째 시도에 나서 한 전직 CIA 요원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해 난다데비와 붙어 있고 훨씬 등반이 쉬운 난다콧(6861m)에 새로운 장비 세트를 심는 세 번째 작업에 성공했다. 모두 14명의 미국 산악인이 3년 동안 매월 1000달러씩을 챙겼다. 같은 해 4월 모라지 데사이 인도 총리가 미국과 협력해 난다데비에 원자력 관측장비를 심었다는 점을 인정했는데 얼마나 임무가 성공적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등반가 중 한 명인 짐 매카시는 “그래, 장비가 산사태를 일으키고 빙하에 처박혀 있을지 모른다.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하느님만 알 것”이라고 다케다에게 말했다. 라이니 마을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강물에 방사성 물질이 함유됐는지 정기적으로 조사한다고 등반가들은 전한다. 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전주대대 이전 원안대로 추진-익산·김제 반발

    전주대대 이전 원안대로 추진-익산·김제 반발

    전북 전주시가 송천동 전주대대를 도도동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원안대로 추진할 방침이어서 인접 시·군과 갈등이 예상된다. 전주시는 익산·김제시가 반대하고 있는 전주대대(예비군훈련장) 이전사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당초 계획대로 밀고나갈 방침이라고 20일 밝혔다. 전주시는 전주대대 도도동 이전을 반대하고 있는 인접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2024년까지 부대 이전사업을 마무리 한다는 방침이다. 전주대대 이전은 도심에 있는 32만 2575㎡ 규모의 예비군훈련장을 시 북쪽 끝 도도동으로 이전하는 사업이다. 전주시는 전주대대를 완주군 봉동읍 106연대로 옮기려다 완주군의 반발로 무산되자 2018년 도도동 일대 31만여㎡를 새 후보지로 확정했다. 현재 국방시설본부와 합의각서를 체결하고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준비하는 등 절차가 진행 중이다. 시와 국방부는 올해 행정절차를 마무리 짓고 올해 공사에 들어가 2024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현 예비군 훈련장 부지는 택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이에 익산시, 김제시, 완주군 등은 ‘전주대대 이전 결사반대’를 외치며 공동대응에 나섰다. 군부대 이전 부지가 행정구역상 전주시지만 소음피해는 인접한 지자체가 떠안게 된다며 전주시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형국이다.이들 3개 시군은 “전주시가 군부대 이전 결정을 하기 전에 피해발생이 뻔한 인접 지자체들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이전 계획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 지자체는 지난해 1월 도도동으로 이전한 206항공대대의 헬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어 예비군 훈련장까지 옮겨오려는 계획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3개 시군 단체장은 “항공대대 이전으로 이미 발생한 막대한 피해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군 시설의 추가 이전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완주군 이서면 주민들은 지난해 항공대대가 옮겨온 이후 소음과 진동으로 TV 시청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라고 호소하지만 국방부, 전주시, 전주항공대대 등은 대책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주민들은 전주대대까지 도도동으로 옮겨오면 사격장 등으로 인해 소음 피해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인근 지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으로 묶여 땅값 하락 등 재산권 침해도 크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주시는 지역 안에 군부대를 이전하는 만큼 인접 지자체와 협의가 필요 없고 국방부도 동의해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원안대로 간다는 방침이다. 박영봉 전주시 생태도시국장은 “도도동 예비군훈련장은 2024년부터 통합대대로 편성돼 전주, 익산, 군산, 완주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훈련장이다”면서 “지원대책을 발굴해 연내에 익산시, 김제시와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들이 우려하는 소음은 260m 사격장이 임실 35사단 내로 이전했고 25m 사격장은 반지하로 조성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고 해명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금요칼럼] 코로나 시절 돌아본 타조법과 도조법/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코로나 시절 돌아본 타조법과 도조법/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코로나 사태가 1년을 넘었다. 다음주부터 백신접종을 시작한다지만, 순조롭게 진행돼도 올해 안으로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상공인의 삶은 힘들기 그지없는데, 건물주는 월세를 꼬박꼬박 챙긴다. 세계적인 고통의 시간을 나 몰라라 하며 분담하지도 않는다. 월세 10%를 두어 달 깎아 준 건물주 이야기가 큰 배려인 양 인터넷에 떠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비정하다. 피도 눈물도 없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건물주의 쥐꼬리만 한 한시적 선심에 고마워해야 할까? 조선 시대에 자기 땅이 부족한 농민은 남의 땅을 소작했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수확량에 비례해 일정 액수를 소작료로 지주에게 바쳤다. 대개 산출량의 50%였다. 이게 타조법(打租法)이다. 이런 계약하에서는 지주가 소작농의 영농과정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소작료를 더 많이 챙기기 위함이다. 하지만 소작농으로서도 자기가 흘린 땀방울에 비례해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었다. 특히 흉년이 일상이던 19세기에는 타조법이 지주와 소작농의 고통 분담 장치로도 일부 기능을 했다. 이런 타조법은 대한제국까지도 소작농의 50%를 상회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새로운 소작료 산출 방식이 적잖이 유행했다. 일정액을 소작료로 미리 정하는 방식이었다. 예상 수확량은 평균적 데이터가 있었으므로, 대체로 30~50% 선에서 정액화했다. 도조법(賭租法)이다. 예년보다 대풍이라면 소작농에게 유리하고 흉년이라면 소작농은 빚더미에 앉는다. 코로나 팬데믹 같은 상황이 장기화하면 소작농은 몰락하는 계약 구조인 셈이다. 정액이 예상 수확량의 30%까지 낮아진 이유 중에는 조선 후기에 번성한 동성 촌락도 한몫했다. 아무튼 농민 스스로 영농 방법을 고민하고 수확량 증대에 힘쓸 동기가 커졌으므로, 현재 학계에서는 도조법의 등장을 발전으로 보는 추세가 강하다. 지주는 풍흉과 상관없이 고정수입을 보장받아서 좋고, 소작농은 노력에 비례해 소득을 올릴 수 있었고 풍년이라도 드는 날이면 태평가를 부를 수 있었다. 나라가 망하면서 일제는 ‘근대식’ 토지소유권을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토지 소유자를 명시해 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른바 1910년대의 토지조사사업이 그것이다. 이제 지주의 권한은 천정부지로 강해졌고 소작농은 경작권마저 빼앗겼다. 농지라는 게 발이 달려서 어디로 이동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므로, 지주와 소작농이 인근 마을에 함께 사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저기 산 넘어 밭뙈기는 김 서방네가 대대로 부쳐 먹는 땅”이라는 인식이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도 편만했다. 그런데 일제가 배타적 소유권을 법제화하면서, 소작농은 대대로 부쳐 먹던 땅에 대한 법적 권리 곧 경작권을 상실했다. 이제는 지주의 눈 밖에 나면 ‘대대로 부쳐 먹던 땅’마저도 박탈당할 수 있는 처지로 내몰렸다. 비유하자면, 정규직 소작농이 비정규직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몰(mall) 문화가 대세인데, 입점업체의 계약 방식은 타조법에 가깝다. 기본 액수를 정해 놓고 나머지는 총매출액에 비례해 최종 월세를 정한다. 1년이 넘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미국이나 일부 유럽에서 소상공인의 월세 문제가 그다지 시끄럽지 않은 이유는 타조법에 가까운 이런 계약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상가 월세를 현재의 25% 정도로 고정하고 나머지는 타조법 방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매출액을 좀더 투명하게 하는 과세 효과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상가건물의 채권자인 은행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의 조치가 시급하다. 건물주 가운데는 사실상 은행에 목이 꿰인 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ㆍ건물주ㆍ상인의 연결고리를 고민할 시점이다. 타조법은 중세적이고 도조법은 근세적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 훈장은 부하, 식량은 고아에게… 전쟁 끝나고 영웅은 더 빛났다

    훈장은 부하, 식량은 고아에게… 전쟁 끝나고 영웅은 더 빛났다

    독립운동가 김순권 아들…미국서 출생2차 대전 발발하자 미군 장교로 입대伊 피사와 로마 해방전에 결정적 공로佛 비퐁텐느엔 그의 공로 칭송 동판도 6·25 때 자원입대 ‘한인 유격대’ 조직전쟁고아들에게 전투식량 등 지원도72년 예편 후엔 정치권 ‘러브콜’ 거절‘건강정보센터’ 등 미국내 한인 지원세상엔 수많은 영웅이 있습니다. 특히 치열한 전투 속에선 영웅이 더 많이 탄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영웅은 많지 않습니다. 부풀려진 전공에 도취해 높은 자리에 앉고,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들이 더 흔합니다. 그런데 이 군인은 좀 달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했고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모두 훈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 전투에선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권력을 쥐기보다 사회봉사에 앞장섰던 휴머니스트. 김영옥(1919~2005) 미 육군 예비역 대령입니다. ●‘피사의 사탑’에 처음 오른 연합군 18일 김영옥평화센터와 일대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에 따르면 김 대령은 독립운동가 김순권씨의 아들로, 1919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병사로 입대했다가 장교가 됐는데, 그가 배치된 곳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100보병대대’였습니다.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군은 이들을 ‘일본놈’이라고 공공연하게 멸시하고 조롱했지만 김 대령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본계 부대원들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우리는 같은 미국인으로, 같은 목표를 위해 싸운다”고 감쌌습니다.1943년 100대대는 유럽을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상륙했습니다. 독일군은 이탈리아 중남부 지역에 방어선인 ‘구스타프 라인’을 치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은 적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포로가 절실했습니다. 당시 대대 작전참모(중위)였던 김 대령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계가 느슨한 아침에 적진을 돌파해 포로를 잡아 오겠다”고 나섰습니다. 실제로 부대원 1명만 데리고 갈대밭을 기어가 적 2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탈리아 주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중장은 그의 초인적인 성과와 낮은 계급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별무공훈장 수여식에서 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어내 김 대령에게 전달하고 직접 진급을 지시했습니다. 그는 피사와 로마 해방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피사의 사탑에 처음 오른 연합군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프랑스·한국에서도 수많은 공적 쌓아 이어 프랑스로 건너가 브뤼에르, 비퐁텐 지역을 해방시켰습니다. 비퐁텐 마을 성당 동판에는 지금도 그를 칭송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동판에는 “100대대 영웅들중 1명인 김영옥 대위, 이 성당 문 앞 왼쪽에서 부상했으나 치넨(의무병 이름)과 함께 성공적으로 탈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는 기관총탄 3발을 맞고 사경을 헤매다 항생제 처치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박갑룡 송원대 교수가 쓴 ‘휴머니스트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의 리더십 연구’ 논문에 따르면 100대대 부대원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의 리더십을 잊지 못해 그를 따랐습니다. 그가 직접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며 달리는 등 늘 선봉에 섰기 때문입니다. 부대원 나베 다카시게는 “그는 항상 전선에 있었고 선봉에 있었다”며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환준 김영옥평화센터 사무국장은 “일본계 미국인들이 훗날 그의 휠체어를 끌며 존중하고 따랐다.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겸손·헌신·용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미국의 인기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리처드 윈터스 소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김 대령은 이런 공로로 훗날 이탈리아에서 최고훈장인 ‘십자무공훈장’을, 프랑스에서도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강력한 포병 화력을 바탕으로 한 전술을 자주 써 미군 전술 교본 변화에도 공헌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예비역 대위로 자원입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보 수집 업무를 맡으며 ‘한국인 유격대’를 조직했습니다.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공세 때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북상한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른 진격으로 ‘캔자스선’(38도선 인근의 전술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끈 부대는 휴전선을 60㎞ 위로 밀어올리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부하에게 주라” 훈장 거부한 군인 진격이 너무 빠른 나머지 미군의 오폭을 받고 부상했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료받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공로로 미국에서 동성무공훈장, 은성무공훈장 등을 받았고, 한국·유럽에서 받은 훈장까지 합하면 주요 무공훈장만 19개나 됐습니다. 한국군은 물론 미군 중에서도 이렇게 많은 훈장을 받은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적을 뽐내지 않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특별무공훈장을 주려는 연대장에게 “훈장은 받을 만큼 받았다. 부하들에게 주라”며 거부했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쓴 한우성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취재차 무공훈장을 몇 개나 받았는지 물어보자 “잊어버리고 세어 보지도 못했다”며 차고 구석 종이상자에 넣어 둔 훈장들을 꺼내 보여 줄 정도였습니다. 김 대령은 수많은 고아를 도운 ‘휴머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 도착한 부산역에서 1000명이나 되는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이에 미군 장교들에게 “나는 한국인 2세다. 여기 굶주린 아이들이 우리만 보고 있다. 우리는 미 육군 장교다. 한두 끼쯤 안 먹어도 굶어 죽지 않는다”며 전투식량을 나눠 주도록 했습니다. 전투 중에도 장병 1인당 50센트씩을 모아 ‘경천애인사’라는 고아원에 전달했습니다. 유엔군 중 특정 고아원에 지원금을 준 부대는 김 대령의 부대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美 한인 동포 돕는 데 여생을 바치다1972년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을 돕는 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미국 최대 소수인종 비영리 보건기관인 ‘한인건강정보센터’와 ‘한미연합회’를 주도했다고 합니다. 또 일본계 미국인을 설득해 캘리포니아주 의회 위안부 결의를 돕고,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조사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김 대령은 늘 “나는 100%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렇게 원했던 ‘참군인’이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귀순 北남성, 軍감시장비 잡혔지만 놔뒀다” 또 뻥뚫린 경계(종합)

    “귀순 北남성, 軍감시장비 잡혔지만 놔뒀다” 또 뻥뚫린 경계(종합)

    “군 감시장비 몇 차례 포착됐으나 조치 없어”“배수로 차단시설도 미흡” 대대적 문책 예상강원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지역에서 붙잡힌 북한 남성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바다로 헤엄쳐 건너온 것으로 밝혀졌다. 군 감시장비가 이 남성을 여러 차례 포착했으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2012년 ‘노크 귀순’ 이후 또다시 뻥 뚫린 경계 태세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 것으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는 17일 “우리 군이 어제 동해 민통선 북방에서 신병을 확보한 인원(귀순 추정)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했다”며 “해상을 통해 GOP(일반전초) 이남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으로 올라와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잠수복을 착용했다고 해도 한겨울 차가운 바다로 월남하는 것은 보통 체력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군과 정보 당국은 이 남성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이 남성은 조사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오전 4시 20분쯤 도로를 따라 북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던 해당 인원을 민통선 검문소 CC(폐쇄회로)TV로 식별해, 민통선 내 미상 인원 식별 시 작전 절차에 따라 작전 병력을 투입해 민통선 북방에서 오전 7시 20분 신병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특히 합참은 “현재까지 해당부대 해안경계작전과 경계 시설물 관리에 대해 확인한 결과, 해당 인원이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우리 군 감시장비에 몇 차례 포착됐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배수로 차단시설이 미흡했던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남성이 CCTV 등 감시장비에 여러 차례 포착됐으나 즉각 출동해 신병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합참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지상작전사령부와 합동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후속대책을 마련하여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해안 경계·감시망이 뚫린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사단장 등 해당 부대의 대대적인 문책이 예상된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부대는 지난해 11월 북한군 남성의 ‘철책 귀순’과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군 초소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한 일명 ‘노크 귀순’이 있었던 곳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민주주의 회복 요구에 발포로 대응한 미얀마 군부

    미얀마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주요 도시에 장갑차를 배치한 군부가 그제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시위대에 발포해 부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군경은 곤봉과 경찰봉으로 시위대를 공격하고, 새총과 고무탄을 발사했다고 한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구금 기간을 연장하고 인터넷도 차단했다. 민간 정치 지도자의 손발을 묶고, 국민의 정보 통로를 차단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는 쿠데타 세력의 전형적 책동이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심각한 부정이 있는데 정부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면서 지난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런 주장은 최소한의 설득력조차 얻지 못한다. 미얀마 국민은 민간정부 복귀 요구 시위에 그치지 않고 대대적인 불복종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의사와 교사, 공무원, 국영 철도 직원, 항공 관제사 등이 국가 기간산업을 정지시키며 동참한다. 미얀마 국민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열망은 감동적이다. 제1도시 양곤 시민들은 주요 도로에 배치된 장갑차 앞뒤에서 ‘우리는 쿠데타를 용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민불복종을 지지한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마치 중국의 톈안먼 사태 당시를 연상케 하는 결사적 저항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 앞에서도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 군부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임박한 유혈 진압을 피해 보려는 노력이다. 미얀마 쿠데타 과정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감회는 남다르다. 미얀마 군부가 한국의 두 차례 군사정변을 벤치마킹한 듯 닮은꼴로 가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미얀마 군부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총칼로 잠시 권력을 장악할 수는 있지만, 결국 민주주의가 승리하고 쿠데타 세력은 비참한 결말을 맞았음을 한국 역사가 똑똑히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신년 초에 해남에 사는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다. 나도 요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코로나를 염려하며 생업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지인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겨울 한 철 동안은 김장용 절임배추를 주로 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절임배추는 주문량이 오히려 늘었고 김장배추는 약간 줄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니 농촌분들은 코로나 때문에 입는 어려움이 비교적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는 현실에서 귀촌과 귀농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실상사와 인근 마을은 귀촌ㆍ귀농이 제법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98년 이곳 실상사에 장기 귀농학교가 개설되면서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실상사가 자리 잡은 산내면과 이웃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제는 이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돼 실상사에서 세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다.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겸손하고 따뜻한 ‘훈수’를 전하고 싶다. 먼저 ‘나는 왜 삶의 터전을 농촌으로 옮기고자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뜻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많은 돈을 벌고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오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귀촌은 단순히 공간과 직업의 이동이 아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위한 결단과 전환이다. 농촌에서 벌어야 할 것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우정이고 이웃이다. 농촌에는 대대손손 뿌리내리고 사는 선주민이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귀촌자가 선주민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골 인심이 왜 이래?”, “텃세가 심해서 못 살겠네” 이런 하소연과 분노가 섞여 있다. 곳곳마다 갈등과 불화의 사정은 다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점도 있다. 간혹 사람들은 농촌에 대해 미리 어떤 나름의 그림을 그려 놓고 있다. 이른바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도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하나의 확고한 답을 미리 정하고 있는 ‘답정너’다. 분명 물은 좋고 공기는 맑다. 그러나 일방적인 자기 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런 좋은 인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착각이고 이기적인 속셈이다. 사람 관계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농촌에 내려왔으면 기존의 생각과 습관과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유 가치에서 존재 가치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과잉의 소유와 소비의 악순환을 끊고 단순 소박한 일상에 만족해야 한다. 단순 소박한 삶은 단지 돈과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생각도 단순해야 한다. 몸은 부지런하면서도 일과 관계는 줄여야 좋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허둥지둥 사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열 손가락 넘게 헤아릴 게 거의 없다. 당신의 일을 둘이나 셋으로 줄이라. 단순하게, 소박하게, 수수하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오려는 사람들은 또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귀촌한 사람 중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습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상처를 입고 살았든,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고 살았든 그런 기억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비록 몸은 지금 농촌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과거와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자의식과 자만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식이 만들어 내는 인정 욕구는 매우 위험하다. 마지막 당부가 있다. 자칫 과도한 이념과 신념에 사로잡혀 농촌 마을을 개조하고 계몽하려는 열정은 애초부터 접으시라. 농촌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지 자기 잣대로 만들어야 할 운동판이 될 수 없다. 농촌에 오시면 부디 하심과 공경, 배움과 성장의 자세로 살아가기 바란다. 이념과 목적에 사로잡혀 행하는 섣부르고 서투른 짓은 자기도 이웃도 괴롭게 한다. 농촌은 자연이다. 마음도 행동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시선과 몸짓이 자연이다.
  •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신년 초에 해남에 사는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다. 나도 요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코로나를 염려하며 생업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지인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겨울 한 철 동안은 김장용 절임배추를 주로 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절임배추는 주문량이 오히려 늘었고 김장배추는 약간 줄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니 농촌분들은 코로나 때문에 입는 어려움이 비교적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는 현실에서 귀촌과 귀농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실상사와 인근 마을은 귀촌ㆍ귀농이 제법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98년 이곳 실상사에 장기 귀농학교가 개설되면서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실상사가 자리 잡은 산내면과 이웃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제는 이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돼 실상사에서 세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다.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겸손하고 따뜻한 ‘훈수’를 전하고 싶다. 먼저 ‘나는 왜 삶의 터전을 농촌으로 옮기고자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뜻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많은 돈을 벌고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오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귀촌은 단순히 공간과 직업의 이동이 아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위한 결단과 전환이다. 농촌에서 벌어야 할 것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우정이고 이웃이다. 농촌에는 대대손손 뿌리내리고 사는 선주민이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귀촌자가 선주민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골 인심이 왜 이래?”, “텃세가 심해서 못 살겠네” 이런 하소연과 분노가 섞여 있다. 곳곳마다 갈등과 불화의 사정은 다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점도 있다. 간혹 사람들은 농촌에 대해 미리 어떤 나름의 그림을 그려 놓고 있다. 이른바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도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하나의 확고한 답을 미리 정하고 있는 ‘답정너’다. 분명 물은 좋고 공기는 맑다. 그러나 일방적인 자기 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런 좋은 인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착각이고 이기적인 속셈이다. 사람 관계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농촌에 내려왔으면 기존의 생각과 습관과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유 가치에서 존재 가치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과잉의 소유와 소비의 악순환을 끊고 단순 소박한 일상에 만족해야 한다. 단순 소박한 삶은 단지 돈과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생각도 단순해야 한다. 몸은 부지런하면서도 일과 관계는 줄여야 좋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허둥지둥 사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열 손가락 넘게 헤아릴 게 거의 없다. 당신의 일을 둘이나 셋으로 줄이라. 단순하게, 소박하게, 수수하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오려는 사람들은 또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귀촌한 사람 중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습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상처를 입고 살았든,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고 살았든 그런 기억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비록 몸은 지금 농촌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과거와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자의식과 자만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식이 만들어 내는 인정 욕구는 매우 위험하다. 마지막 당부가 있다. 자칫 과도한 이념과 신념에 사로잡혀 농촌 마을을 개조하고 계몽하려는 열정은 애초부터 접으시라. 농촌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지 자기 잣대로 만들어야 할 운동판이 될 수 없다. 농촌에 오시면 부디 하심과 공경, 배움과 성장의 자세로 살아가기 바란다. 이념과 목적에 사로잡혀 행하는 섣부르고 서투른 짓은 자기도 이웃도 괴롭게 한다. 농촌은 자연이다. 마음도 행동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시선과 몸짓이 자연이다.
  • 15세 수감돼 83세에 출소…무려 68년 美 최장수 청소년 수감자

    15세 수감돼 83세에 출소…무려 68년 美 최장수 청소년 수감자

    술에 취해 폭행과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됐던 15세 소년이 무려 68년의 장기수 생활을 마치고 83세가 되어 출소했다. 뉴욕포스트 등 현지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요셉 리곤(83)은 15세였던 1953년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다른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질렀다. 강도 및 폭행으로 두 사람을 살해하고 여섯 명을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그는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1953년 최종 재판에서는 결국 종신형을 받았다. 요셉 리곤은 미국 내에서 최장수 청소년 수감자로 꼽힌다. 약 70년에 달하는 수감 기간 동안 가석방의 기회가 찾아온 적도 있지만, 리곤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가석방을 받아들일 경우 이동에 제한이 생기는 등 ‘완전한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감옥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자신이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오랫동안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2년 미국 대법원은 청소년에게 선고되는 종신형이 지나치게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라며 위헌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판결이 나온 뒤 펜실베이니아주는 청소년 시기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500여 명의 재소자들의 형기를 대대적으로 감형했다. 이중 한 명이었던 리곤 역시 2017년이 되어서야 35년형으로 감형됐고, 지난해 11월에는 변호사를 통해 제기한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석방을 허가받았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1일, 68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그의 나이는 83세가 됐다. 15세 때 감옥에 들어갔다가 80세가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돼 나온 셈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권투 훈련을 꾸준히 받았다. 힘든 운동을 견뎌내면서 건강을 유지하려 애썼다”면서 “나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교도소에서 글을 배울 수 있었다”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이어 “사건 발생 당시 나는 매우 가난한 가정의 어린 소년이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방인과 같았고, 결국 무리의 희생양이 됐다”고 덧붙였다. 68년 동안 수많은 고층빌딩이 들어선 달라진 필라델피아의 모습에도 감탄을 아꼈다. 그는 “나에게 이러한 풍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됐다“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경기도 아파트 30여곳 리모델링 ‘바람’

    경기도 아파트 30여곳 리모델링 ‘바람’

    정부의 부동산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지역에 아파트 리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다.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규제가 덜한데다 사업 완료 시 집값 상승 효과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 경기도와 한국리모델링협회 등에 따르면 경기도 아파트 단지 가운데 30여곳이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조합설립 인가가 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골조를 유지하면서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재건축은 기준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어도 통과 등급인 D(조건부 허용)나 E(불량)를 받기 어렵지만 리모델링은 인허가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임대주택 공급 의무가 없고, 초과이익 환수제 대상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분당·산본신도시 등 1기 신도시부터 수원 영통, 용인 수지 등 곳곳에서 리모델링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민간 아파트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고 최근 부동산 규제로 인한 집값 상승이 리모델링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현재 사는 집이 낡아 새집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주변 아파트 값이 폭등해 대안으로 리모델링이 떠오르고 있다”며 “지은 지 25년이 넘은 아파트 주민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도에서도 리모델링 컨설팅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한다. 도민의 70%(430만 가구 중 300만 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노후화에 대한 대책이 필요해서다. 대상은 사용 승인 후 15년이 지났으면서 아직 리모델링 조합 인가가 나지 않고 소유자 10% 이상이 공모신청에 동의한 공동주택이다. 공동주택 6665개 단지(300만 가구) 가운데 4144단지(158만 가구)가 대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도는 이 가운데 2개 단지를 선정, 컨설팅 용역비(도비 50%,시비 50%) 등을 지원한다. 도민들의 관심은 뜨겁다. 수원 영통동 D아파트는 도의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사업에 참여를 결정하고 입주민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다. 아파트 주민 김희정(51)씨는 “20년 전에 입주한 아파트가 낡아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한데,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수월할 것 같아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종구 경기도 도시재생과장은 “최근 리모델링을 준비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지만, 입주민 판단기준이나 정보 부족 등으로 막연하게 사업이 추진돼 사업정체 및 주민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 리모델링 컨설팅 지원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안·금 품고… 오세훈·나경원 ‘연대전쟁’

    안·금 품고… 오세훈·나경원 ‘연대전쟁’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중도 표심 공략을 위한 야권 후보들의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서울시 공동운영’을 내걸자 나경원 전 의원은 안 대표뿐 아니라 무소속 금태섭 전 의원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까지 합류하는 연합체를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선거용 단일화를 넘어 대선 전 야권 재편까지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오 전 시장은 지난 13일 “서울시를 함께 힘을 모아 공동 운영하기로 합의해서 그런 형태의 단일화가 된다면 유권자들 입장에서 기대해볼 만할 것”이라며 “저는 중도 우파로 안 후보와 노선이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14일 공약 발표 이후 취재진에게도 “모두 여론조사 단일화 방법만 전제로 두고 있으니 다른 단일화 방안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경선 여론조사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안 대표 끌어안기로 중도 표심을 공략하며 지지도 반전을 꾀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나 전 의원은 한술 더 떠 여권 출신 인사들까지 포함한 연합체를 제안했다. 그는 “안 후보뿐 아니라 금 후보와 넓게는 조 후보까지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진중권 전 교수와 서민 교수 등 합리적 진보도 중요한 역할을 해 주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나 전 의원과 금 전 의원은 이날 서울 남산 둘레길을 함께 걸으며 선거운동을 같이 하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3자 대결은 물론 야권 단일 후보를 내세워도 낙승을 장담하기 어려워지자 후보들이 중도 표심을 자극하는 통합을 자연스럽게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궐선거 이후 이어질 당권 경쟁 및 대선 전 야권 재편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끝나고 본격 대선 국면이 되면 제3지대까지 포함한 야권의 대대적인 전열 정비가 필요하다는 시각에서다.이런 가운데 15일로 예정됐던 ‘제3지대 경선’ 안 대표와 금 전 의원 간 1차 TV토론은 불발될 전망이다. 최대한 변수를 통제하려는 안 대표 측과 활발한 토론회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금 전 의원 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안 대표 측은 “금 후보 실무협상팀은 협상 거부를 철회하고 협상에 임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금 전 의원은 “거부한 게 전혀 없다. 예정일이 하루도 안 남았는데 협상이 진전되지 않아 토론하기 싫은 건가 의구심이 든다”고 재반격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15일 부산, 16일 서울 등 당내 경선 토론 대결을 이번 주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코로나 환자 타액’ 술에 섞어 먹이려 한 터키 직원 살인미수 적용

    ‘코로나 환자 타액’ 술에 섞어 먹이려 한 터키 직원 살인미수 적용

    코로나19 환자의 타액을 술에 섞어 사장을 암살하려 한 터키 남성이 지명수배됐다. 지난달 29일 터키 최대 일간 ‘휘리예트’는 회삿돈을 횡령하고 잠적한 직원이 사장을 죽이려했던 사실까지 드러나 경찰이 그 뒤를 쫓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터키 중남부 아다나 지역의 한 자동차 대리점 직원이 회삿돈을 빼돌려 달아났다. 대리점 사장 이브라힘 언베르디는 “라마잔 Ç라는 직원이 자동차 판매 대금 21만5000리라(약 3380만 원)를 횡령했다. 3년간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 없었고 그만큼 신임했던 직원이라 충격이 컸다”고 밝혔다. 며칠 후 연락이 닿은 직원은 사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 회삿돈에 손을 댔다고 실토했다. 그의 범행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라마잔이 잠적한 후 다른 직원 한 명은 그가 사장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동료 직원 카디르 칸폴라트는 “그가 회삿돈을 빼돌려 달아나기 전 사장을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고 폭로했다.카디르는 “어느 날 사무실에 가보니 라마잔이 음식을 차려놨더라. 먹으려고 했더니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나가라더라. 무슨 일이냐 재차 물으니 사장 술에 코로나19 환자의 타액을 섞어 마시게 할 거라고 했다”고 밝혔다. 너무 놀라 식탁을 뒤엎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에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라마잔은 500리라(약 8만 원)를 주고 코로나19 환자의 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안 사장은 즉각 경찰에 직원을 신고했다. 사장은 “양친 모두 만성 질환을 앓고 계시다. 만약 내가 그의 술을 받아마셨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가족까지 위험해졌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용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소식에 터키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언론도 해당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잠적한 직원의 협박 문자가 날아들었다. 직원은 사장에게 보낸 문자에서 “비록 바이러스로는 당신을 죽이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머리에 총구멍을 내줄 것”이라고 위협했다.사장 가족은 불안에 떨고 있다. 사장 아내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던 직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무섭다”고 말했다. 사장 역시 “그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늘 커튼을 쳐놓고 있다. 아내는 출근 전 발코니로 밖을 내다보고 나간다. 우리 가족이 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사장의 변호인은 “의뢰인과 그 가족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코로나19 환자의 타액을 마시게 하려 한 행동은 명백한 살해 시도다. 유례없는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그에 합당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사장 가족에 대한 공권력의 보호를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현재 달아난 직원에게 협박 및 살인미수 등의 혐의를 적용하고 행방을 추적 중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경기지역에 아파트 리모델링 붐...집값 상승 기대

    경기지역에 아파트 리모델링 붐...집값 상승 기대

    정부의 부동산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지역에 아파트 리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다. 리모델링이 재건축 보다 규제가 덜 한데다 사업 완료시 집값상승 효과까지 누릴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4일 경기도와 한국리모델링협회 등에 따르면 경기도내 아파트 단지 가운데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단지는 30여곳에 달한다. 조합설립 인가가 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실제 리모델링을 추진중인 단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골조를 유지하면서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파트 재건축은 기준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어도 통과 등급인 D(조건부 허용)나 E(불량)를 받기 어려운 반면 리모델링은 인허가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또 임대주택 공급 의무가 없고, 초과이익 환수제 대상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도내에서는 분당·산본신도시 등 1기 신도시부터 수원 영통, 용인 수지등 곳곳에서 리모델링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정부의 민간 아파트 재건축 사업 규제로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상대적으로 장벽이 낮은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최근 부동산 규제로 인한 집값 상승도 아파트 리모델링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낡아 새집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주변 아파트 값이 폭등해 대안으로 리모델링이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지은지 25년이 넘은 성남 분당, 용인 수지, 수원 영통 등지 아파트 주민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도 오래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리모델링 컨설팅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사업을 희망하는 아파트 단지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도는 도민의 70%(430만가구중 300만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노후화 가속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업 대상은 사용 승인후 15년이 지났으면서 아직 리모델링 조합 인가가 나지 않고 소유자 10% 이상이 공모신청에 동의한 공동주택이다. 도내 도내 공동주택 6665개 단지(300만 가구) 가운데 4144단지(158만 가구)가 리모델링 추진시 지원을 받을수 있다. 도는 이가운데 2개 단지를 선정, 컨설팅 용역비(도비 50%,시비 50%) 등을 지원한다. 도민들의 관심은 뜨겁다. 수원 영통동 D아파트는 경기도 공공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단지 공개모집 참여를 결정하고 입주민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다. 아파트 주민 김희정(51)씨는 “20년전에 입주한 아파트가 낡아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한데, 재건축 보다는 리모델링이 수월할 것 같아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종구 경기도 도시재생과장은 “최근 리모델링을 준비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고 있지만, 입주민 판단기준이나 정보 부족등으로 막연하게 사업이 추진돼 사업정체및 주민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 리모델링 컨설팅 지원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진상 안 밝혀진 40년 전 ‘송암동 학살사건’ 규명한다

    진상 안 밝혀진 40년 전 ‘송암동 학살사건’ 규명한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4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광주 송암동 민간인 학살사건’(이하 ‘이 사건’)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조사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계엄군 간 오인사격 이후 발생한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사건뿐만 아니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후 광주 외곽 지역을 봉쇄하면서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도 조사할 계획이다. 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8일 전원위원회에서 직권 조사 개시를 결정한 이 사건은 크게 1980년 5월 21일과 같은 해 5월 24일 발생한 사건으로 나뉜다. 먼저 1980년 5월 21일 사건 내용을 살펴보면, 공수부대는 이날 오후 1시쯤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오후 4시쯤 광주 상황을 보고받고 공수부대의 광주 시내 철수와 향후 광주 재진입을 위한 외곽 봉쇄를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공수부대들은 전남도청에서 광주 외곽으로 철수했고 광주의 외곽도로를 봉쇄했다. 당시 20사단 61연대는 같은 날 오후 6시쯤부터 광주 송암동에 있는 남선 연탄공장 앞 광주~목포 간 도로를 차단했다.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 발포 소식을 접하고 광주~목포 간 1번 국도를 통해 광주로 진입하려고 한 나주, 영암, 목포 등 지역의 시민군은 결국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군의 공식기록(20사단 전투상보)에는 사망자가 3명으로 적혀 있지만 총격 다음 날인 1980년 5월 22일 오전 사건 현장을 목격한 김복동씨는 1995년 12월 당시 검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도로와 논 사이에 시내버스 한 대가 전복돼 있었으며 나주 쪽을 향해 있었고, 이 버스 운전석에는 운전사 1명이 운전대를 잡은 상태로 죽어 있었다. 또 깨진 유리문에도 죽은 사람이 있었고 조수대 쪽에 1명, 바닥에 1명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논둑에 엎어져 죽은 사람이 2명 있었으며 3명은 논바닥에 누워 죽어 있었고, 당시 논에 물이 어느 정도 차 있었는데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부분 총에 맞은 듯 피를 흘리고 있었다. (중략) 위 버스 말고도 광주 방면 도로 옆에 버스 3대가 전복돼 있었는데 옆 둑에 3명이 엎어져 있었다. 죽은 것으로 보였다.”이재의 5·18 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송암동 지역 봉쇄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은 아무런 사전 예고나 경고조치 없이 갑자기 도로를 차단하여 접근하는 시민 탑승 차량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면서 “만일 김복동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최소 9명의 시신의 행방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 5월 24일 사건은 당시 광주 주남마을에 주둔해 있던 11공수여단이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던 중 당시 광주~목포 간 도로를 차단하고 경계근무 중이던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교도대 병력과 오인사격이 발생했는데, 이 오인사격 전후로 11공수여단이 주변 마을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전교사 교도대는 이날 오후 2시쯤 11공수여단을 무장한 시민군으로 착각하고 사격을 했다. 이 사격으로 군인 9명이 사망했다. 11공수여단은 이 오인사격이 발생하기 약 한 시간 전인 같은 날 오후 1시쯤 광주 동구 주남마을에서 서구 진월동으로 이동하던 중에 근처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린이들을 발견하고 당시 12살이었던 방광범군과 11살이었던 전재수군을 사살했다. 오인사격 이후에는 주변 민가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 연구원은 “계엄군 간 오인사격 직후 마을 주민에 대한 계엄군의 보복 사살은 명백히 군의 자위권 범주를 넘어서는 학살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미라이 사건(미 육군 제23보병사단 제11보병여단 예하 1대대 찰리중대가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미라이 마을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군에 의한 퐁니·퐁넛 사건(‘청룡부대’라 불린 한국군 해병 제2여단 예하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로 진입해 저지른 학살사건)과 흡사하다”면서 “백주 대낮에 벌어진 마을 주민 학살사건의 가해자 역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해자들의 학살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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