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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판다 외교/구본영 논설위원

    역사적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1972년 2월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연회장. 군악대가 미국 민요 ‘오! 수재너’를 연주하는 가운데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마오타이 주로 취기가 오른 닉슨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판다 두 마리를 선물하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판다는 중국 쓰촨성과 티베트 등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저우가 닉슨에게 판다를 선물로 안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미국 사회의 TV 보급률이 정점으로 향하던 상황에서 재선을 앞두고 외교 치적이 아쉬운 닉슨에겐 안성맞춤형 그림이었다. 더군다나 죽순 등 대나무(竹)가 판다의 주식이 아닌가. ‘죽의 장막’이란 부정적 굴레를 쓰고 있던 중국으로서도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판다 외교’(Panda Diplomacy)는 중국의 독특한 외교술이다. 1957년 옛 소련에 판다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상대국과의 관계 개선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임대 형식으로 세계 10여개국에 분양된 판다는 이미 30여 마리에 이른다. “멸종위기 동물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하는 국제법을 준수한다.”며 한 마리당 연간 100만 달러의 임대료를 받지만, 중국 정부가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25일 중·일 정상회담에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중국 측에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센다이 동물원을 위해 자이언트 판다 두 마리를 임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흔쾌히 수락했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일본으로부터 상당한 선물을 받은 터였다. 위안화와 엔화의 상호결제를 확대하기로 합의한 데다, 중국은 노다 총리로부터 중국 국채를 사겠다는 언질까지 받은 마당이었다. 판다를 1년간 대여하는 데 운반비를 포함해 약 30억원이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해도 중국으로선 남는 장사다. ‘판다 외교’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즉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하는’ 실용적 외교술이다. 상대국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깨는 ‘트로이의 목마’처럼 판다를 보내는 대신 짭짤한 실리를 챙기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 특유의 스마트 외교가 유독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인상이다. 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 조업이나 중국 정부의 북한 편향적 자세를 보면서다. 이런 태도야말로 중국의 장기적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하는 게 우리 외교의 과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그린건설대상] 건축대상 - 포스코건설

    [그린건설대상] 건축대상 - 포스코건설

    포스코건설이 인천 송도국제신도시에 세운 ‘송도 더샵 센트럴파크 2’(지하 2층, 지상 42∼49층, 3개동, 98∼400㎡ 총 632가구)는 춤추는 듯한 외관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바람에 움직이는 대나무 가지를 형상화한 휘어진 굴절 입면 디자인을 통해 마치 건물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모델로 한 40만 5024㎡(12만평) 규모의 중앙공원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중앙공원과 송도국제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가 각 동 최상층에 설치돼 있다. 탁월한 공원 조망권뿐 아니라 공원 내 생태관, 박물관 등 문화시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단지 내 중심 보행로에 수경시설과 조형벤치, 잔디광장, 생태비오톱(생태서식공간) 등을 설치해 입주민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끼도록 꾸민 점도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친환경 건축물에 수여되는 LEED 인증을 획득할 예정이다. 주거동에 자연적 이미지를 담게 된 것은 인근 산들이 바다로 이어지는 송도 신도시만의 지리적 조건들이 바탕이 됐다. 시각예술적인 지역 특성에 부응해 주거동을 단순한 집이 아닌 예술적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자 한 의도가 돋보인다. 유려한 외관뿐 아니라 거주민들의 편리성과 안전성 또한 배려했다. 단위 가구는 ‘전문가를 위한 독특한 공간’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공간에 감성적인 요소를 더했으며 유비쿼터스 라이프 구현을 위해 첨단 디지털 설비를 구축했다. 아울러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해 3~4일 간격으로 1개층씩 타설, 최대한 공기를 단축하는 동시에 중앙집중형 코어 설계로 지진이나 강풍에도 끄덕없는 안전한 건축물로 탄생했다. 한편 포스코건설은 1996년 국내 최초의 철골조 아파트를 준공하는 등 앞선 철골조 기술을 선보였으며, 최근 브라질에서 43억 달러 규모의 일관제철소 사업을 수주하는 등 글로벌 건설사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조선왕조 자취 서린 ‘99칸 고택’을 가다

    조선왕조 자취 서린 ‘99칸 고택’을 가다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는 고장 충남 보령. 특히 대천 해수욕장의 머드 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보령의 삼곡 마을에 쇠퇴해 가던 조선 왕조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고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아리랑TV의 데일리 매거진쇼 ‘아리랑 투데이’는 16일 오전 7시와 낮 12시에 전형적인 시골마을 한복판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한옥 이광명 고택을 소개한다. 이광명 고택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딸과 혼담이 오가자 왕가에서 거금을 내려보내 집을 짓게함으로써 왕가의 품격을 세우려 했던 곳이다. 이 고택은 모양 자체가 정사각형에 가까워 빈틈이 없는 ‘입 구’(口)자로 돼 있다. 왕실과 혼담이 오간 집답게 99칸의 대저택이다. 외양부터 대단히 화려하다. 사각의 건물은 빙 둘러 복도가 나 있고 그 옆으로 여러 개의 방들이 나란히 들어앉아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처럼 전통가옥 단지에 있지 않고 논과 대나무 숲 사이에 있어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전통가옥의 멋과 집 주위에 펼쳐져 있는 논과 노란 은행나무 등에서 무르익는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이광명 고택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한옥체험 숙박시설로 지정돼 숙박체험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택 주변에는 시비와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는 ‘시와 숲길’ 공원이 있어 깊어 가는 가을을 사색하기에 제격이다. 서해를 끼고 있는 보령은 머드 축제가 열리는 대천해수욕장 외에 소박한 항구들이 있다. 항구에 인접해 있는 시장에서는 보령의 유명한 향토 음식 간재미회를 맛볼 수 있다. 제작진이 직접 그 현장을 찾아가 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각질 제거법, 샤워타올부터 신경 써야…

    각질 제거법, 샤워타올부터 신경 써야…

    가벼운 샤워와 스파를 하는 타국에 비해 한국에는 목욕 단계에 ‘이것’을 빼놓고는 무언가가 허전하다. 한국 고유의 목욕 문화, ‘때밀이’를 이름이다. 네이버 웹툰 ‘목욕의 신’은 때밀이, 목욕관리사에 대한 내용을 위트 있게 풀어놓으며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다. ‘목욕의 신’이 업데이트되는 요일이 ‘목요일’인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때밀이 습관이 좋지 않다고 한다. 각질을 억지로 제거하게 되면 피부의 보호력이 떨어지고, 수분이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단, 때를 밀고 난 후에는 불투명층인 각질을 제거한 상태기 때문에 피부가 투명해 보이고 모공이 축소되며, 피부 호흡이 증가한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하루의 피로를 씻는 상쾌한 목욕과 피부 미용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기능성 샤워타올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친환경 펄프사 사용, 아토피·민감성 피부도 OK 주성산업의 위버(Weaver) 샤워타올은 특수한 천연섬유 가공을 통해 목욕할 때 힘들이지 않고 피부의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 자연에서 얻어진 친환경소재 펄프사를 특수가공하여 제조된 루프형식의 표면층을 가진 미용타올이 피부 모공을 가볍게 자극하여 피부의 블랙헤드와 노폐물을 자연스럽게 녹여서 제거해주는 미용타올이다. 특히 친환경소재 펄프사는 환경호르몬이나 기타 외부환경에 민감한 민감성피부, 아토피피부에도 적합하여 순한 샤워타올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 스파 샤워타올·나염 이태리타올 용도별 종류 다양 목욕 방법도 다양하다. 스파 전용으로 제작된 스파 샤워타올은 내구성이 뛰어나며 부드럽고 상쾌한 피부의 터치감을 느낄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졌다. 특히 사용 후 헹굼이 간편하다. 다 똑같은 초록색, 노란색, 분홍색 이태리타올은 이제 그만. 까슬까슬한 소재의 이태리타올도 나염을 입었다. 손에 끼는 글러브형, 긴 등밀이 타올 등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뷰티미용샤워 선물세트, 녹차 담은 샤워타올, 자연기능성미용퍼프, 대나무 샤워타올, 허브샤워타올, 황토 기능성미용타월, 참숯 기능성미용타올, 베이비 거품타올 등 다양한 친환경 미용샤워타월이 있다. 주성산업 위버 샤워타올은 현재 다이소, 메가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킴스클럽, CJ홈쇼핑, 샤바스 등 유명 대형 할인마트에 PB상품으로 찾아볼 수 있다. ※ 주성산업 위버샤워타올은? ‘베 짜는 사람들’ 위버(http://www.weaver.kr)는 21세기 섬유산업을 리드하는 주성산업의 고객감동브랜드로써 고객과의 상호교감과 감성이 묻어나는 브랜드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출처: 주성산업 ※본 콘텐츠는 기업 제공 자료로 서울신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옷차림만 봐도 한·중·일 국적 구분할 수 있죠”

    “옷차림만 봐도 한·중·일 국적 구분할 수 있죠”

    “옷차림만으로 100m 앞에서도 국적을 구분할 수 있어요. 일본 사람이 가장 쉬운데 크레이지하거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 많죠. 한국 사람은 약간 미묘한데 검정이나 흰색 옷을 주로 입어요. 쇼핑백을 잔뜩 든 사람은 중국인 관광객인데, 차이나타운의 중국인 차림새는 그리 세련되지 못하죠.” ●“한국 사람들은 옷을 정말 좋아해” 오는 22일까지 서울 대치동 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리는 2011 서울패션위크에 초청되어 패션쇼를 여는 미국 브랜드 ‘유나이티드 뱀부’의 디자이너 뚜이 팜(43)은 옷차림만 봐도 한·중·일 국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유나이티드 뱀부는 베트남 태생인 뚜이가 일본 출신 미호 아오키와 함께 만든 브랜드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미호는 임신 중이라 한국에 오지 못했다. 1998년 뉴욕에서 탄생한 유나이티드 뱀부는 일본 등지에 매장이 있다. 국내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뚜이는 “뉴욕에서 샘플제품 세일을 하면 한국 여학생들이 많이 와 한국 사람들은 옷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와 버지니아에서 자란 뚜이의 원래 전공은 건축이었다. 건축학교에 다닐 때 같이 방을 썼던 친구들이 파슨스 같은 유명 패션학교에 다녔다. 룸메이트들이 새벽까지 하던 숙제를 돕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며 뚜이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 기간 건축을 공부했는데 건축의 핵심은 디자인이죠. 건축, 패션, 가구 등의 디자인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배운 디자인을 패션으로 전환한 셈이죠.” 덕분에 그의 작품은 패턴이 혁신적이며 건축적인 선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유나이티드 뱀부란 이름은 홍콩 삼합회 조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 현상이었던 갱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뚜이는 아시아 출신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손님으로 온 중국인들은 대나무는 한데 뭉치면 결코 꺾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는 말을 해주고 갔다. ●과감한 ‘프레피 룩’ 추구 그가 추구하는 브랜드 정신은 ‘과감한(dirty) 프레피 룩’이다. 프레피 룩은 미국 드라마 ‘가십 걸’에 주로 나오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옷차림새다. “모든 미국 패션 브랜드는 백인 중심의 프레피 룩인데, 우리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세상의 가식에 반항하는 주인공이 입을 법한 옷을 추구한다.”는 것이 뚜이의 설명이다. 단정함과 더러움이란 대치되는 주제로 만들어낸 그의 옷은 음악인, DJ 등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한 국빈 만찬에서 한국 디자이너 두리정의 드레스를 입어 화제를 모았다. 뚜이는 “오바마 여사가 신진 디자이너의 옷을 입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그런 옷을 입기는 어렵다.”며 “우리는 실용적 부분에 집중한다. 오바마의 딸들이 유나이티드 뱀부 옷을 입으면 잘 어울릴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글 사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파주 三善…평화·역사·예술을 한번에 즐기는 가을 근교 여행지

    파주 三善…평화·역사·예술을 한번에 즐기는 가을 근교 여행지

    때로는 사람이 몰리지 않는 호젓한 북쪽으로 발길을 돌릴 일입니다. 단풍 행락객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 가을엔 더욱 그렇습니다. 경기도 파주는 은근히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최전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그곳에 전쟁의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율곡 이이의 고향 마을이 있고, 예쁜 현대 건축물들이 늘어선 언덕, 헤이리도 있지요. 평화와 상생의 공간이 된 임진각 평화누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오가며 기러기 등 철새들의 군무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이만하면 가을 근교 여행지로 제격이지 싶습니다. 전쟁 상흔 지운 임진각 평화누리 예전 임진각은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던 곳이었다. 굳은 표정의 초병이 지키던 ‘자유의 다리’와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 등에선 늘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새 단장한 임진각 평화누리는 평화롭다. 그리고 밝다. 주말엔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번다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분단과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형 야외공연장 ‘음악의 언덕’과 수상카페 ‘카페안녕’,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있는 ‘바람의 언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말이면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주차장에서 시민들의 메시지를 새겨 넣은 조각 작품을 지나면 연못 한가운데에 찻집 ‘카페안녕’과 만난다. 코르텐이란 녹슨 철강 마감재로 외벽을 마감한 모습이 마치 100년도 넘게 서 있었던 느낌을 준다. 연못을 건너면 바람의 언덕이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연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언덕에선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바람의 언덕 옆으로는 인상적인 대나무 작품 네 점이 서있다. ‘통일부르기’란 이름의 조형물로, 점점 키가 자라는 모습에서 점점 다가오는 통일의 그날이 연상된다. 임진각은 옛 콘크리트 건물을 철거하고 현대적인 건축물로 새로 태어났다.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던 곳이 하릴없이 스러져 간 것에 아쉬움도 남는다. 전망대와 식당, 커피숍,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여행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임진각 앞에는 전쟁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자유의 다리’는 1953년 6·25 전쟁 포로 교환을 위해 설치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포로들은 차량을 이용해 경의선 철교(임진각 철교)까지 온 뒤,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자유의 다리 끝은 굳게 닫힌 철문이다. 그곳부터 민간인통제구역이다. 철문엔 통일을 염원하는 메모 리본과 깃발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자유의 다리 초입엔 경의선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6·25 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기차다. 녹슨 기관차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 12월 말 평양으로 가던 기차는 파주 장단역 어름에서 심한 공격을 받았고, 파괴된 채 반세기 넘도록 비무장지대에 방치되다가 2009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031)953-4854. 360살 느티나무 그늘아래 율곡 유적지 파주는 조선시대 대표적 경세가 중 한 명인 율곡 이이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외가인 강원도 강릉이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자신의 호 또한 파평면 율곡리 지명을 따 지었다고 전해진다. 6세 때인 1541년 처음 파주 땅을 밟은 이후, 그는 주로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시기에 파주를 찾았다. 그만큼 그의 숨결이 머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법원읍 동문리 율곡 유적지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 한곳에 모여있다. 율곡 유적지에 들면 가을 무르익은 너른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단풍 든 느티나무 아래 너른 풀밭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여느 유적지들과 달리 풀밭에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관리인이 없어 좋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건물의 크기를 뛰어 넘고도 남는다. 특히 강인당 양 옆에 버티고 선 느티나무의 위세는 대단하다. 360년을 살아온 나무의 밑둥치는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둘러야 맞닿을 정도다. 자운서원 옆은 가족묘다. 율곡의 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합장묘 등 13기가 조성돼 있다. 아울러 율곡 신도비와 자운서원 묘정비 등 여러 문화재도 주변에 함께 들어서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031)958-1749. 율곡이 시상을 즐겼다는 화석정도 둘러 보는 게 좋겠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화석정에 오르면 임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물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엔 율곡이 8세 때 처음 지었다는 시 ‘팔세부시’(八歲賦時)가 걸려있다. 화석정 주변의 밤나무는 2005년 파주시에서 일본산 리기다 소나무를 베고 새로 심은 것들이다. 당시 파주시는 율곡의 탄생설화에 맞춰 999그루의 밤나무와 한 그루의 나도밤나무를 식재했었다. 예술이 흐르는 문화공간 헤이리 임진각 평화누리, 율곡 유적지 등 옛것을 두루 살피고 자유로 주변으로 나오면 현대식 건물과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헤이리와 만난다.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갤러리와 카페, 공방, 서점, 레스토랑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곳이다. 헤이리는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문화비즈니스맨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이 1998년 탄현면 50만㎡(15만여 평) 부지에 자연과 사람, 문화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로 건설하기 시작한 마을이다. 문화가 창작되고, 동시에 향유되는 공간이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인들의 힘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다. 마을 규정에 따라 집의 60%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또한 높이 12m를 넘는 건 없다. 담도 없고, 인위적 재질의 페인트를 칠한 건물도 없다. 집이 곧 미술관이고 카페고 공연장이다. 또 마을 전체의 75% 이상은 자연 그대로 둬야 한다. 오래된 굴참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외벽에 12개 구멍을 낸 갤러리가 있고, 마을 가운데 작은 시냇물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를 5개나 만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다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대가로 지갑을 열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글 사진 파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파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승용차는 자유로를 기준 삼는 게 편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자유로 끝자락에 있다. 율곡 유적지는 당동 나들목을 이용한다. 헤이리는 성동 나들목에서 지척이다. 서울역~임진각을 오가는 경의선을 이용해도 된다. ▲맛집 적성면 두지리의 원조두지리매운탕은 민물고기 매운탕을 잘한다. 959-4508. DMZ 해마루촌(www.haemaru.org)에서는 장단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 “옷차림만 봐도 국적 알수 있어..한국사람 패션 관심 대단”-‘유나이티드 뱀부’ 디자이너 뚜이 팜

    “옷차림만 봐도 국적 알수 있어..한국사람 패션 관심 대단”-‘유나이티드 뱀부’ 디자이너 뚜이 팜

     “옷차림만으로 100m 앞에서도 국적을 구분할 수 있어요. 일본 사람이 가장 쉬운데 크레이지하거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 많죠. 한국 사람은 약간 미묘한데 검정이나 흰색 옷을 주로 입어요. 쇼핑백을 잔뜩 든 사람은 중국인 관광객인데, 차이나타운의 중국인 차림새는 그리 세련되지 못하죠.”  오는 22일까지 서울 대치동 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리는 2011 서울패션위크에 초청되어 패션쇼를 여는 미국 브랜드 ‘유나이티드 뱀부’의 디자이너 뚜이 팜(?사진?·43)은 옷차림만 봐도 한·중·일 국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유나이티드 뱀부는 베트남 태생인 뚜이가 일본 출신 미호 아오키와 함께 만든 브랜드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미호는 임신 중이라 한국에 오지 못했다.  1998년 뉴욕에서 탄생한 유나이티드 뱀부는 일본 등지에 매장이 있다. 국내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뚜이는 “뉴욕에서 샘플제품 세일을 하면 한국 여학생들이 많이 와 한국 사람들은 옷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와 버지니아에서 자란 뚜이의 원래 전공은 건축이었다. 건축학교에 다닐 때 같이 방을 썼던 친구들이 파슨스 같은 유명 패션학교에 다녔다. 룸메이트들이 새벽까지 하던 숙제를 돕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며 뚜이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 기간 건축을 공부했는데 건축의 핵심은 디자인이죠. 건축, 패션, 가구 등의 디자인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배운 디자인을 패션으로 전환한 셈이죠.”  덕분에 그의 작품은 패턴이 혁신적이며 건축적인 선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유나이티드 뱀부란 이름은 홍콩 삼합회 조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 현상이었던 갱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뚜이는 아시아 출신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손님으로 온 중국인들은 대나무는 한데 뭉치면 결코 꺾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는 말을 해주고 갔다.  그가 추구하는 브랜드 정신은 ‘과감한(dirty) 프레피 룩’이다. 프레피 룩은 미국 드라마 ‘가십 걸’에 주로 나오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옷차림새다. “모든 미국 패션 브랜드는 백인 중심의 프레피 룩인데, 우리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세상의 가식에 반항하는 주인공이 입을 법한 옷을 추구한다.”는 것이 뚜이의 설명이다. 단정함과 더러움이란 대치되는 주제로 만들어낸 그의 옷은 음악인, DJ 등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한 국빈 만찬에서 한국 디자이너 두리정의 드레스를 입어 화제를 모았다. 뚜이는 “오바마 여사가 신진 디자이너의 옷을 입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그런 옷을 입기는 어렵다.”며 “우리는 실용적 부분에 집중한다. 오바마의 딸들이 유나이티드 뱀부 옷을 입으면 잘 어울릴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판다가 대나무를 먹을 수 있는 이유는?

    판다가 대나무를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자이언트 판다를 둘러싼 오랜 수수께끼가 풀렸다. 육식동물의 장을 가진 판다가 어떻게 대나무와 죽순 등을 주로 먹으며 오랜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의 이유다. 지난 2009년 세계최초로 자이언트 판다의 게놈이 해독되었을 때 연구자들은 대나무나 풀 등에 포함되는 식물섬유인 셀룰로오스의 분해와 관련된 유전자를 조사했으나 별다른 특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학자들은 판다의 장 내에 셀룰로오스를 먹고 소화를 돕는 세균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 왔다.    최근 중국 과학원 동물 연구소의 웨이 퓨엔 박사팀은 이에대해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웨이 박사 연구팀은 야생의 판다 7마리와 사육되고 있는 판다 8마리의 대변을 면밀히 조사해 판다의 장내에는 초식동물의 장내에서 발견되는 세균과 닮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웨이 박사는 “연구팀이 확인한 세균 가운데 13종은 이미 알려져있는 셀룰로오스 분해 세균과 유사했지만 7종은 판다 특유의 세균이었다.” 며 “이번 연구로 판다가 대나무를 무사히 소화할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육식동물인 판다가 왜 현재는 대나무를 주로 먹고 있는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에대해 학계에서는 고대 인류에 의해 판다가 고위도 지역으로 쫓겨났으며 반달곰 등 다른 동물과 사냥감을 놓고 싸우지 않기 위해 대나무 등을 먹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태국 치앙라이-시간은 그들의 규칙대로 흐른다

    태국 치앙라이-시간은 그들의 규칙대로 흐른다

    고산족인 아카족 마을의 어느 집 마당에서 조속조속 졸고 있는 빨래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HAILAND CHIANG RAI 시간은 그들의 규칙대로 흐른다 태국 북단의 치앙라이를 다녀왔다. 화사한 정원을 둘러보고 순백의 사원을 방문했으며 구수한 재래시장도 구경했다. 그리고 소수민족인 아카족의 마을에도 잠시 머물렀다. 한나절 잠시 머물렀을 뿐이지만 2박 3일의 일정 중에 그게 제일 좋았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의 무구한 표정이 내 코끝에 걸려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 치앙라이Chiang Rai 여정의 첫머리를 장식한 곳은 도이 퉁Doi Tung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인데, 산의 등줄기들이 중첩된 이곳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대목은 무성한 수목이 아니라 그 넉넉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의 감동적인 변천사였다. 여기에는 현 국왕의 작고한 어머니이자 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리나가린드라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상전벽해의 마을과 순백의 사원 도이 퉁이 자리한 곳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이기도 하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만나는 골든트라이앵글은 익히 알려진 대로 아편 생산 기지로 악명이 높았다. 사람들은 마약을 재배하고 하릴없이 마약에 중독돼 갔다. 사람과 마을과 자연이 모두 피폐해지는 상황을 가슴 아프게 여긴 스리나가린드라 여사는 이른바 ‘도이 퉁 프로젝트’를 공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녹화 사업, 아편 추방 운동, 주민 재활 사업 등을 맹렬하게 추진했다. 그녀는 마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에게 직접 꽃과 나무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 결과 마약이 지배하던 마을은 점차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이 퉁은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도이 퉁에는 커피와 마카다미아 농장이 있다. 1983년부터 태국 정부에 의해 아편의 온상 양귀비 밭이 불태워지자 대체 작물로 이들이 선택됐던 것이다. 특히 커피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태국과 커피의 상관관계에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태국, 특히 북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치앙라이와 치앙마이Chiang Mai는 커피 재배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맛있는 커피 생산을 위한 기본 삼박자인 고도와 기후와 토양 등이 두루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 퉁에서 경험한 커피의 향과 맛은 일품이었다. 맛이 복합적이면서도 각각의 맛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한 채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보통의 커피와는 다른 상큼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도이 퉁에서 내려와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왓 롱쿤Wat Rong Khun을 찾았다. 왓 롱쿤은 화이트 템플, 말 그대로 백색 사원이었다. 사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눈부셨다. 건물의 장식미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외관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어 파란 하늘과 강렬한 색의 대비를 이뤘다. 사원의 흰색은 부처님의 순결을, 사원에 쓰인 흰색의 유리는 우주를 밝게 비추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를 유람하며 수도 없이 많은 불교 사원을 가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증유의 사원을 창조해낸 인물은 찰럼차이Chalermchai라고 하는 지역의 ‘괴짜 예술가’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그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1998년에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삽을 뜬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왓 롱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성품’처럼 보이지만 창조자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의 끝없는 창작욕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과욕인지 알 수 없지만 찰럼차이는 해마다 조금씩 왓 롱쿤의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도 수십년의 공기工期를 더 들일 것이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만일 풍문이 사실이라면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화이트 템플의 완성은 그의 사후에나 가능할 일일 것이다. 고산족 마을에서 보낸 한나절 숙소에서 땀으로 뒤범벅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시내로 나가기 위해 자전거 택시에 올랐다. 지붕이 있는 승객용 삼륜 자전거는 노회한 운전사의 인도 아래 물 흐르듯 막힘없이 나아갔다. 지천명을 넘겼음 직한 사내의 종아리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세 바퀴 택시’에서 내려 재래시장 탐방에 나섰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컬러풀한 열대의 과일들과 푸릇푸릇한 채소들과 다양한 종류의 길거리 음식들이었다. 그중에는 우리의 순대와 비슷해 보이는 먹을거리도 있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부르는 소리,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흥정, 그리고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셈을 치르는 소리로 시장은 들끓었다. 치앙라이의 고산지대는 흔히 ‘살이 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카렌족, 아카족, 리수족, 몽족 등의 소수민족이 촌락을 이루어 곳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아카족의 마을로 향했다. 마을이 산악 지대에 올라앉아 있는 탓에 중간에 사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타야 했다. 아카족은 중국 남부의 윈난성 등지에서 메콩 강을 따라 이주해 온 부족이다. 이들은 화전을 일구거나 야채나 콩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아카족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점은 물을 유난히 무서워하고,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의 영혼을 두려워한 나머지 잘 씻지 않는데, 물에서 말라리아나 박테리아가 나온다고 믿는단다. 일각에서는 이런 미신이 물이 부족한 아카족의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아카족의 남자는 15세, 여자는 13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 결혼식은 보통 여자가 임신을 한 연후에 이뤄지는데,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남자 측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살펴본 아카족 마을은 짐작했던 대로 시간이 정지한 곳처럼 보였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허름한 풍경과 열악한 삶의 조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외부인의 일방적인 시선과 편견에 가까운 기준을 마을 주민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잔주름이 많은 할아버지는 대를 엮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으며, 마을 아낙들은 동전이 주렁주렁 달린 전통 모자를 쓴 채 그늘 밑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까맣게 그을린 사내는 내리꽂는 햇볕에 곡식을 말리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맨발로 동네를 뛰어다니며 들까불었다. 그들은 늘 그랬듯이 고유한 시간의 법칙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일상을 고수하고 있었다. 딱히 밝을 것도, 딱히 어두울 것도 없는 그들의 얼굴은 관광객의 순간으로 규정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면면히 이어지는 일상의 표정이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다. 달걀부침과 나물과 찐 호박이 상 위에 올랐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다음에는 따끈한 엽차도 얻어 마셨다. 안주인의 손맛에 더해 마음 맛이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포만감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왔다. 주민들 모두가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마을 전체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목욕 후의 나른함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유난히 하늘이 높았던 청명한 날, 고산족 마을의 오후가 그렇게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치앙라이Chiang Rai 여정의 첫머리를 장식한 곳은 도이 퉁Doi Tung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인데, 산의 등줄기들이 중첩된 이곳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대목은 무성한 수목이 아니라 그 넉넉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의 감동적인 변천사였다. 여기에는 현 국왕의 작고한 어머니이자 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리나가린드라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1 건물의 외관이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는 일명 화이트 템플로 불리는 왓 롱쿤 2 아카족 마을의 여인들. 악령을 막아 준다는 전통 모자를 쓰고 있다 3 치앙라이 시내를 달리는 자전거 택시와 오토바이들 4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아카족 마을의 아이들 5 도이 퉁 지역의 특산물 중 하나인 마카다미아 6 물 위에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왓 롱쿤 7 아카족 마을의 최고령 할아버지 8 치앙라이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행상 9 먼 길 달려온 손님을 위해 아카족의 한 아주머니가 마련해준 점심상. 누구에게는 소박할 수도 있겠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푸짐한 상차림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상전벽해의 마을과 순백의 사원 도이 퉁이 자리한 곳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이기도 하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만나는 골든트라이앵글은 익히 알려진 대로 아편 생산 기지로 악명이 높았다. 사람들은 마약을 재배하고 하릴없이 마약에 중독돼 갔다. 사람과 마을과 자연이 모두 피폐해지는 상황을 가슴 아프게 여긴 스리나가린드라 여사는 이른바 ‘도이 퉁 프로젝트’를 공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녹화 사업, 아편 추방 운동, 주민 재활 사업 등을 맹렬하게 추진했다. 그녀는 마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에게 직접 꽃과 나무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 결과 마약이 지배하던 마을은 점차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이 퉁은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도이 퉁에는 커피와 마카다미아 농장이 있다. 1983년부터 태국 정부에 의해 아편의 온상 양귀비 밭이 불태워지자 대체 작물로 이들이 선택됐던 것이다. 특히 커피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태국과 커피의 상관관계에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태국, 특히 북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치앙라이와 치앙마이Chiang Mai는 커피 재배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맛있는 커피 생산을 위한 기본 삼박자인 고도와 기후와 토양 등이 두루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 퉁에서 경험한 커피의 향과 맛은 일품이었다. 맛이 복합적이면서도 각각의 맛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한 채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보통의 커피와는 다른 상큼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도이 퉁에서 내려와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왓 롱쿤Wat Rong Khun을 찾았다. 왓 롱쿤은 화이트 템플, 말 그대로 백색 사원이었다. 사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눈부셨다. 건물의 장식미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외관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어 파란 하늘과 강렬한 색의 대비를 이뤘다. 사원의 흰색은 부처님의 순결을, 사원에 쓰인 흰색의 유리는 우주를 밝게 비추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를 유람하며 수도 없이 많은 불교 사원을 가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증유의 사원을 창조해낸 인물은 찰럼차이Chalermchai라고 하는 지역의 ‘괴짜 예술가’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그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1998년에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삽을 뜬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왓 롱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성품’처럼 보이지만 창조자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의 끝없는 창작욕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과욕인지 알 수 없지만 찰럼차이는 해마다 조금씩 왓 롱쿤의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도 수십년의 공기工期를 더 들일 것이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만일 풍문이 사실이라면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화이트 템플의 완성은 그의 사후에나 가능할 일일 것이다. 고산족 마을에서 보낸 한나절 숙소에서 땀으로 뒤범벅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시내로 나가기 위해 자전거 택시에 올랐다. 지붕이 있는 승객용 삼륜 자전거는 노회한 운전사의 인도 아래 물 흐르듯 막힘없이 나아갔다. 지천명을 넘겼음 직한 사내의 종아리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세 바퀴 택시’에서 내려 재래시장 탐방에 나섰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컬러풀한 열대의 과일들과 푸릇푸릇한 채소들과 다양한 종류의 길거리 음식들이었다. 그중에는 우리의 순대와 비슷해 보이는 먹을거리도 있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부르는 소리,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흥정, 그리고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셈을 치르는 소리로 시장은 들끓었다. 치앙라이의 고산지대는 흔히 ‘살이 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카렌족, 아카족, 리수족, 몽족 등의 소수민족이 촌락을 이루어 곳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아카족의 마을로 향했다. 마을이 산악 지대에 올라앉아 있는 탓에 중간에 사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타야 했다. 아카족은 중국 남부의 윈난성 등지에서 메콩 강을 따라 이주해 온 부족이다. 이들은 화전을 일구거나 야채나 콩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아카족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점은 물을 유난히 무서워하고,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의 영혼을 두려워한 나머지 잘 씻지 않는데, 물에서 말라리아나 박테리아가 나온다고 믿는단다. 일각에서는 이런 미신이 물이 부족한 아카족의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아카족의 남자는 15세, 여자는 13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 결혼식은 보통 여자가 임신을 한 연후에 이뤄지는데,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남자 측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살펴본 아카족 마을은 짐작했던 대로 시간이 정지한 곳처럼 보였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허름한 풍경과 열악한 삶의 조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외부인의 일방적인 시선과 편견에 가까운 기준을 마을 주민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잔주름이 많은 할아버지는 대를 엮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으며, 마을 아낙들은 동전이 주렁주렁 달린 전통 모자를 쓴 채 그늘 밑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까맣게 그을린 사내는 내리꽂는 햇볕에 곡식을 말리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맨발로 동네를 뛰어다니며 들까불었다. 그들은 늘 그랬듯이 고유한 시간의 법칙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일상을 고수하고 있었다. 딱히 밝을 것도, 딱히 어두울 것도 없는 그들의 얼굴은 관광객의 순간으로 규정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면면히 이어지는 일상의 표정이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다. 달걀부침과 나물과 찐 호박이 상 위에 올랐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다음에는 따끈한 엽차도 얻어 마셨다. 안주인의 손맛에 더해 마음 맛이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포만감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왔다. 주민들 모두가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마을 전체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목욕 후의 나른함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유난히 하늘이 높았던 청명한 날, 고산족 마을의 오후가 그렇게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치앙라이Chiang Rai 여정의 첫머리를 장식한 곳은 도이 퉁Doi Tung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인데, 산의 등줄기들이 중첩된 이곳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대목은 무성한 수목이 아니라 그 넉넉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의 감동적인 변천사였다. 여기에는 현 국왕의 작고한 어머니이자 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리나가린드라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Travel to Chiang Lai 1 치앙라이 시내의 불교 사원 2 수안팁 바나 리조트의 객실 내부. 침대 옆에 전통 복장을 한 목각 인형이 놓여 있다 ▶가는 방법 방콕 돈무앙 공항에서 타이항공의 국내선을 이용하면 치앙라이까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자동차로 치앙라이 공항에서 도이 퉁까지는 약 1시간이, 치앙라이 시내에서 아카족 마을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볼거리 왓 프라캐오Wat Phra Kaeo는 방콕의 왓 프라캐오에 있는 그 유명한 에메랄드 불상이 있었던 곳이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으나 에메랄드 불상이 발견되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됐다. 옥으로 만든 같은 모양의 불상이 본당에 모셔져 있다. 14세기 지어진 왓 프라싱Wat Phra Sing은 ‘신성한 사자의 사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역시 같은 이름의 사원이 치앙마이에도 존재하는데, 치앙라이에 있던 불상을 옮겨다 놓았다. 산악민족박물관Hilltribe Museum은 고산족의 민예품과 생활 도구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호텔 레전드 치앙라이 부티크 리버 리조트 & 스파(www.thelegend-chiangrai.com)는 치앙라이 시내를 적시고 지나가는 매콕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다운타운에서 차로 수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수페리어 스튜디오, 디럭스 스튜디오, 그랜드 디럭스, 풀 빌라 등으로 객실의 종류가 나뉜다. 울창한 열대림에 싸여 있는 수안팁 바나 리조트(www.suanthipresort.com)는 자연의 호젓한 기운이 충만한 곳이다. 널찍한 객실에는 개별 테라스가 딸려 있다. 아유르베딕 마사지를 받거나 쿠킹 클래스에 참가할 수 있다. 리조트 뒤편의 강에서 대나무로 만든 뗏목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비 “가장 큰 시련은 박진영에게서 독립”

    비 “가장 큰 시련은 박진영에게서 독립”

    “이제 ‘비’란 이름의 인생에서 1막이 끝났어요. 제 인생의 2막은 군 부대에서 시작됩니다. 지금껏 단단한 소나무였다면 제대할 때는 유연한 대나무로 바뀌어 오겠습니다.” 입대 하루 전날인 10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한 가수 비(29·본명 정지훈)는 입대하는 기분을 묻자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앞 영동대로에서 무료 야외 공연 ‘라스트 오브 더 베스트’(Last of the Best)를 열어 입대 전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2만명의 관객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비는 “군대에서 지난 10년간의 내 얘기를 틈틈이 정리해볼 것”이라며 “훗날 ‘20대여 승리하자’란 이름으로 책을 내보고 싶다.”며 웃었다. 지난 10년간 가장 의미 있는 결과물 5가지를 뽑아달라는 주문에는 ▲드라마 ‘풀하우스’를 통해 아시아 전체에 가수 비란 이름을 알린 것 ▲브래드 피트와 함께 피플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뽑힌 것 ▲미국 할리우드 첫 주연작인 영화 ‘닌자 어쌔신’ 개봉 때 미국 코닥극장에서 무대 인사했던 것 등을 꼽았다. 가장 큰 시련으로는 2007년 박진영(현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서 독립했을 때를 들었다. “국내외에서 ‘박진영의 틀에서 정지훈이 벗어날 수 있을까’란 시선이 많아 심적인 압박감이 컸습니다. 홀로 서니 A부터 Z까지 모든 걸 결정해야해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독립하고 낸 첫 음반인 ‘레이니즘’(Rainism)에 대한 애착이 무척 커요.” 연합뉴스
  • 피리연주가 가민, ‘8음 시리즈’ 두 번째 무대 연다

    피리연주가 가민, ‘8음 시리즈’ 두 번째 무대 연다

    피리 연주가 가민(본명 강효선)이 연례 연주회 ‘8음(八音) 시리즈’의 두 번째 무대를 연다. 가민은 오는 25일과 26일 양일간 오후 8시 서울 영등포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에서 실과 대나무를 소재로 한 두 번째 테마 공연 ‘8음 시리즈 Ⅱ-絲/竹’을 선보인다. ‘8음 시리즈’는 국악기의 재료인 금속, 돌, 실, 대나무 등 8가지 재료를 소재로 해마다 2개씩 선보이는 테마 공연으로, 무형문화재(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인 가민이 지난해 첫선을 보여 관심이 쏠렸다. 첫 번째 테마인 금·석(金·石) 공연은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이 한 무대 안에서 조화를 이뤄 “시공(時空)을 초월한 신비감”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사·죽(絲·竹) 공연은 대나무와 실이라는 주제로 각각 1, 2부에 걸쳐 공연이 펼쳐지며, 휴식 없이 총 65분간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전통음악을 배제하고 현대적 음향과 전통악기를 위해 작곡된 다양한 새 음악들도 함께 소개된다. 또 가민 만의 연주와 움직임, 무대 등이 하나로 아우러져 한국의 전통 음악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하는 무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피리연주가 가민의 ‘8음 시리즈 Ⅱ-絲/竹’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고 코리안뮤직프로젝트가 기획했으며, 음향 디자인에 서울대 음대 첫 외국인 교수인 롤란트 브라이텐펠트가 참여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씨줄날줄] 따뜻한 의사/최광숙 논설위원

    누군가 편작(扁鵲)에게 “당신은 의술에 있어서 신(神)”이라고 하자 편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술에 있어 자신의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이 꼴찌라고 했다. 하지만 돈은 자신이 가장 많이 벌고, 그 다음 둘째형, 그 다음은 의술이 가장 뛰어난 큰형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큰형은 사람들이 병이 나지 않도록 했고, 둘째형은 작은 병이 큰 병이 되지 않도록 했고, 자신은 큰 병이 되어야 이를 발견하고 고친다는 것이다. 중국 주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 괵나라 태자의 급환을 고쳐 죽음에서 되살려낸 편작이건만 자신을 하잘것없는 의사로 낮췄다. 과연 천하의 명의다운 태도다. 편작의 지적처럼 의사도 다 똑같은 의사가 아니다. 실력이 출중한 의사가 있는가 하면, 돈벌이에 급급한 의사도 없지 않다. 실력 있는 의사도 능력만 뛰어난 이가 있는가 하면, 인품까지 갖춘 의사도 있다. 지금 병원에도 서비스 개념이 도입돼 의사들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의사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93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연세의료원이 도입한 ‘환자의 권리장전’에서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첫째 항목으로 명시한 것도 환자들 위에 ‘군림’하는 의사들을 향한 메시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고 이태석 신부가 지난해 선종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펼쳤던 인술(仁術) 때문이다. 그는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본, 가난한 이들의 따뜻한 의사였다. 최근 한 미국의 80대 환자가 시카고대 병원에 “앞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를 많이 배출해 달라.”는 취지로 480억원을 쾌척했다.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태도에 감동 받았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인 시글러 박사는 “의사가 치료과정에서 질병에만 관심을 두고 환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며 “의사와 환자들의 소통이 원활할 때 치료 효과가 커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랫것’처럼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병원에서 한번쯤 경험했다면 정말 공감하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의사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 자체가 의술이다. 성적 순이 아닌 인성(人性)이 꼭 필요한 직업이 바로 의사라는 사실을 의사들만 모르는 것은 아닐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몇 년 전부터 차(茶)를 좋아하는 몇몇 차인(茶人)들이 중국의 남쪽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 꼭 가보라고 했다. 무이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5대 명산(名山) 중의 하나이고, 중국에서 손꼽히는 무이암차(武夷岩茶)와 서양 홍차(紅茶)의 발원지라는 것이었다. 중국차의 근원을 알고 즐기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차의 원산지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조 때의 통치철학으로, 퇴계나 율곡에 의해 크게 발전했던 성리학의 뿌리인 주자학(朱子學)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자 주희(朱熹) 선생이 태어나서 학문을 닦고 대성(大成)한 뒤 세상을 떠나 묻혀 있는 유적지로 그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차인들 권유에 마음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되뇌이고 있을 때, 마침 관심을 가진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적지 않아 동호인의 단체여행으로 현장에 가게 됐다. 국내 여행사들은 아직 무이산을 관광상품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는 가볼 만한 관광지가 워낙 많은데다 무이산은 주로 차(茶)와 주자학 관계의 일부 전문답사팀으로 한정되어 있는 실정에서 그런 듯싶었다. 무이산은 중국이라는 규모로 볼 때 아주 작은 시골이다. 인구는 21만 명. 서울에서 직행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고, 대만의 바로 건너편인 복건성의 항구도시 샤먼(厦門)으로 가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 내륙 쪽으로 40여 분 더 가야 한다. 비행기가 밤중에 도착해서 그런지 그저 그런 중국의 시골 비행장이었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도 어둡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차 관계 일로 무이산에 자주 왔다는 어떤 차인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 10주년과 이곳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차박람회가 전 세계 차인들의 주목을 끌면서 무이산은 구시가지·신시가지로 나뉘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밝은 날에 보는 무이산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국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중국·대만·홍콩 등에서 온 단체가 대부분이었다. 무이산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산 정상(頂上)에 오르는 것과 내려와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대나무 뗏목으로 흘러 내려오는 정취이다.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주저했으나 이곳에는 비오는 날이 많고, 비오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이 더 운치가 있다는 말을 들으며 강행했다. 무이산은 해발 750m밖에 안 되지만 전체가 큰 바윗덩이 하나처럼 보였다. 정상인 천유봉까지는 바위를 깎아 848개의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안개 때문에 멀리 앞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돌 계단을 숨차게 오르며 잠시 잠시 둘러보는 풍광은 신비로운 선경(仙境)이었다. 아래는 산을 휘감고 흐르는 구곡(九曲)의 강이고, 강위에 점점이 흘러내리는 대나무 뗏목, 산능선을 오르는 돌계단 앞뒤로는 안개에 싸인 바윗덩이와 소나무들, 직벽을 타고 내리는 가느다란 폭포줄기가 멋졌다. 이래서 중국의 5대 명산에 들어간 것일까. 중국의 5대 명산은 안휘성의 황산, 산동성의 태산, 강서성의 노산, 사천성의 아미산 그리고 복건성의 무이산이다. 황산의 기이함, 태산의 웅장함, 화산의 험준함, 계림의 수려함을 찬탄하는데 무이산은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 이곳에서는 자랑한다. 걸어서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가마꾼들이 산 밑에 대기하고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400위안(한국 돈 7만 원)을 내라고 한다. 앞뒤로 두 사람이 둘러메는 가마로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편한데, 가마 타는 값이 좀 비쌌다. 한참 전이지만 안휘성의 황상에서는 100위안(한국 돈 1만8천 원) 했었고, 보통 200위안이면 될 듯싶지만 중국에도 인건비가 계속 올라간 느낌이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들을 찍고 나면 다음은 뗏목을 타는 순서다. 굵은 대나무를 통째로 엮어 만든 뗏목 위에는 두 줄로 셋씩 여섯 개의 대나무 의자가 마련됐다. 앞뒤로 사공이 둘, 긴 대나무 막대기로 방향을 잡아가며 흘러간다. 여자 사공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장엄한 바위산 밑으로 푸르게 흐르는 무이구곡을 대나무 뗏목 위 의자에 앉아 유유히 내려오며 맑은 바람이 머무는 바위 사이사이마다 차나무가 자라는 풍취에 잠겨 보라”고 차인들은 말했다. 앞과 뒤의 중국인 사공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로 쉬지 않고 주변 풍물을 설명하고 있고, 그와 상관없이 관광객들은 저마다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현재 300여 개의 대나무 뗏목이 운용된다고 하며, 하류쯤에 도착한 뗏목은 자동차에 실려 상류로 옮겨진다. 이 무이계곡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불교·유교·도교가 성행했다고 하며 송(宋)·원(元) 시대 때부터 이곳에서 나는 차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무이산은 기후와 풍토관계도 있겠지만 차나무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차나무의 품종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여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그 가운데 4대 명차(名茶)로 대홍포·철라한·수금귀·백계관이 꼽히고 4대 명차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흔하게 팔리는 차로 육계가 있다. 차 전문가가 아닌 보통 관광객으로서는 일일이 구별하기 어렵고, 그곳에서 제일로 치는 대홍포(大紅袍)도 여러 층이 있는 듯했다. 무이암차의 대표 브랜드가 대홍포이고, 누구나 대홍포를 찾기 때문에 저마다 대홍포라고 내놓는 것 같았다. 가는 데마다 시음을 시키는데 그게 그것 같을 뿐, 맛을 보고 구분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차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만 자탄하며 다녔다. 대홍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문인이 과거를 보러 상경하다가 무이산 천심사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때 천심사의 승려들이 이를 발견하고 구룡(九龍) 암벽에서 찻잎을 따와 차를 달여 한 잔 주었다. 그것을 마시자마자 온몸이 가뿐해지고 아픈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렇게 해서 그 문인은 무사히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할 수 있었다. 그는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천심사에 다시 갔고, 그때 마시던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똑같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궁중의 어의도 속수무책이었다. 그 문인은 마침 천심사에서 가지고 온 차를 황제에게 바쳤다. 그것을 달여 마시자 황제도 씻은 듯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 다시 천심사를 찾은 문인은 자신이 걸쳤던 홍포를 차나무에 덮어 주었고, 그 홍포를 벗기는 순간 차나무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무이산에는 대홍포의 모수(母樹)가 여섯 그루나 있어서 모두 소중하게 가꾸고 있고, 그 모수를 보려는 차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무이산에는 장예모 감독이 제작·연출한 <대홍포 산수실경 쇼>가 근래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2,0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야외극장으로 관객이 앉아 있는 자리가 360도 돌아가면서 200여 명 이상이 출연하는 대규모 쇼가 펼쳐진다. 레이저빔과 조명으로 무이산의 우람한 실경 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고, 강가 숲으로 말이 달리는가 하면 한쪽의 거대한 무대에서는 무이암차에 얽힌 전설과 남송(南宋)시대의 화려한 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80분 동안 관객의 자리가 두 번 360도 돌아가며 자연경관과 화려한 무대를 앉아서 돌아가며 즐기게 하는 착상이 놀라웠다. 인구 21만 명밖에 안 되는 시골 소도시에서 비싼 입장료(한 사람 218위안(한국 돈 4만 원))에도 불구하고 연일 객석을 꽉 채운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중국이니까 되는 중국적인 것일까. 차산업과 무이산 관광이 나날이 발전해가는 것에 비해 주자학의 주희(朱熹) 선생 유적지 관리에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솔직히 실망했다. 주희 선생의 묘소와 그 어머니 묘소는 작은 자갈돌을 모아 쌓은 봉분으로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풀이 나지 않는 묘역이니까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외양은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주희 선생이 살았다는 주자고거(朱子故居), 무이산 자연공원 초입에 세워진 무이정사(武夷精舍)는 건물이나마 유지되고 있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고, 관리도 썰렁했다. 말년에 강학을 했다는 고정서원은 거의 버려진 것과 다름 없었다. 어린 시절에 수학했다는 병산서원, 홍현서원을 비롯한 유적지는 겉모양만 보일 뿐 주희 선생을 기리며 관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 같이 간 일행 중에는 주자 주희 선생의 32대손인 주덕화(朱德和) 평화사 대표 내외분이 조상의 유적지를 찾은 남다른 감회와 감사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소홀한 관리에는 못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의 신안(新安) 주(朱)씨는 주희 선생의 후손으로,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원(元)나라를 세우고 주자학을 배척하는 바람에 고려 때 한국으로 망명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다. 주희 선생 묘소 근처에는 한국의 신안 주씨 중앙종친회에서 참배하고, 적지 않은 돈을 기증했다는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글·사진_ 김용원
  • [CEO 칼럼] 기본을 바로잡으면 혁신이 된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

    [CEO 칼럼] 기본을 바로잡으면 혁신이 된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1962)라는 명저에서 “과학은 지식의 축적을 통해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과학사에 있어서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창조론이 진화론으로, 뉴턴 역학이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으로 바뀐 것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쿤의 패러다임론은 과학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철학, 역사, 사회과학, 예술, 종교 등 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 신화, 이론, 기술 등에 대한 의문과 탐색에서 시작된다. 중세시대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개량해 끊임없이 태양과 달을 관측한 끝에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했던 지동설을 입증해냈다. 지금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생명과학 등에서도 빠른 속도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한번 뒤처지면 신발 끈을 동여매고 달려도 따라잡기 벅찬 게 사실이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국가나 기업이 기초기술 연구를 지원하고 기본을 튼튼히 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6일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지 불과 5개월여 만의 일이다. 국회 입법사상 이런 유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국회와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1994년부터 시작된 몇 차례의 입법시도가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이다. 특별법의 제정으로 내년부터 전국의 종이 지적도(地籍圖)를 디지털화하는 사업이 본격화된다. 전체 국토의 15%가량 되는 지적불부합지, 즉 지적도상의 경계와 현실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지역은 첨단 기술과 장비로 재측량하고, 나머지 지역은 기존의 지적도를 세계측지계 좌표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2030년까지 1조 2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 사업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국토주권의 회복이다. 현재 우리나라 위치는 지역측지계인 일본 도쿄의 원점을 사용하다 보니 국제기준보다 서쪽으로 400m 어긋나 있다. 국토정보에 관한 한 정보통신 강국의 명성이 무색할 지경이다. 지적재조사는 일제가 100여년 전에 대나무 줄자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의 국토정보를 우리 손으로 정밀하게 재측량해 디지털화하는 사업이다. 둘째는 재산권의 보호와 비용의 절감이다. 그동안 부정확하고, 왜곡되고, 누락된 토지정보 때문에 많은 국민이 불편을 겪어야 했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됐다. 지난 10년간 우리 국민이 부담한 토지 관련 소송비용, 측량비용만도 수조원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지적재조사를 통해서 이런 문제가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 셋째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공간정보산업의 발전이다. 디지털 지적시스템을 구축하면 지형도 해도, 영상정보 등 다른 디지털 정보와 융합이 가능해진다. 이런 식으로 디지털정보가 융합되면 국토정책이나 행정서비스, 공간정보산업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관청에서 관리하는 부동산정보가 토지대장, 임야대장, 건축물대장, 등기부등본을 비롯해서 총 18가지에 이른다. 불편과 중복, 비효율이 너무 많다. 지적재조사 사업으로 분산된 정보가 통합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고부가가치 정보가 민간에 제공되면 공간정보산업이 발전되고 적지 않은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적재조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분산에서 융합으로, 평면의 토지에서 입체적인 공간정보로 패러다임 전환을 뜻한다. 잘못됐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쳐 왔던 불편과 비효율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기본을 바로잡으면 혁신이 된다. 지적재조사는 산업과 기술혁신, 국토정책과 행정서비스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국토와 국민의 재산을 명확히 하는 것은 물론, 소모적인 비용을 줄이고 국민의 삶도 바뀌게 된다.
  • [대구세계육상 D-1] 장대높이뛰기 ‘마의 6m’ 달구벌서 넘을까

    [대구세계육상 D-1] 장대높이뛰기 ‘마의 6m’ 달구벌서 넘을까

    스포츠 중에서도 육상은 인간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종목이다. 그런데 장대높이뛰기의 경우 ‘살아있는 전설’ 세르게이 붑카(48·우크라이나)가 1994년 6m 14를 달성한 이래 20년 가까이 세계신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남자 선수 중 6m를 넘은 이는 단 15명. 여자 가운데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가 유일하게 5m를 넘었다. 신체 조건이 향상되고 과학이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장대높이뛰기에서의 6m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는 것일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중 마의 6m를 넘은 ‘6m 클럽’ 선수는 세 명이다. 스티븐 후커(29·호주), 르노 라빌레니(25·프랑스), 브래드 워커(30·미국)가 주인공. 후커가 2009 보스턴 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6m 6의 기록은 붑카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이자 현역 중 최고 기록이다. 후커는 멀리뛰기 국가대표 출신인 어머니의 운동능력을 물려받아 100m를 10초 82에 주파한다. 188㎝, 85㎏의 체격조건도 훌륭하다. 2009년 부상을 당한 뒤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부진한 것이 아쉽다. 현재 가장 컨디션이 좋은 것은 라빌레니. 2009년 6m 01을 기록한 그는 올해 유럽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6m 03을 기록하는 등 기복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워커 역시 2006년부터 3년간 시즌 최고기록으로 챔피언 자리를 지켰지만 2009년 골반 부상 이후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5m 84를 뛰는 등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다. 양치기 소년들이 지팡이로 방목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데서 착안된 장대높이뛰기는 장대의 재질이 변화함에 따라 비약적인 기록 향상을 보여왔다. 1795년 독일의 체육학자 요한 구츠무츠가 나무 봉을 사용해 1m 30을 뛰어넘은 것이 첫 공식 기록으로 인정된 이래 탄력성이 좋은 대나무가 사용된 후 1912년 4m 벽을 넘었고, 19 46년 알루미늄과 1960년대 유리섬유 제품이 개발되면서 5m를 넘어섰다. 탄소로 코팅한 첨단 특수유리섬유로 만들어져 탄성과 내구력까지 보강된 최첨단 장대가 등장하면서 1985년에는 드디어 6m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장대의 규격은 무게나 길이는 물론 공인된 소재라면 재질도 제한이 없다. 일반적으로 길이 4m 50 이상, 지름 3.5㎝ 이상의 장대를 사용한다. 그러나 장대만 좋아진다고 기록이 무조건 좋아지지는 않는다. 장대높이뛰기에 적용되는 ‘후크(Hooke)의 법칙’ 때문이다. 장대가 휘어지는 만큼 다시 펴지는 반발력도 커진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선수들은 탄성이 높은 장대를 충분히 굽힐 수 있는 힘과 탄성을 바탕으로 몸을 거꾸로 솟구치게 할 수 있는 도약력을 갖춰야 한다. 장대높이뛰기는 선수가 달리는 스피드에 의해 만들어진 운동에너지가 장대의 탄성에너지로 전환되고, 다시 높이 솟구치는 위치에너지로 바뀌는 과학적인 운동이다. 따라서 도움닫기 속도가 빨라야 몸이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붑카가 6m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100m를 10초에 달리는 주력 덕분. 도움닫기 단계에서 시속 35.7㎞ 정도의 폭발적 스피드를 낸 것이 세계 신기록의 원동력이었다. 이 때문에 장대높이뛰기의 기록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장대의 재질은 물론 선수들의 기량 향상 역시 꼭 필요하다. 스피드와 파워, 유연성 및 상·하체의 균형적 발달이 필수 요소인데, 이것을 고루 갖춘 선수가 나오는 게 쉽지는 않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호남 정자 문화의 메카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

    호남 정자 문화의 메카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

    절경을 두고 굳이 탐승의 적기를 따지는 것이 부질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배롱나무꽃 흐드러진 전남 담양의 명옥헌 앞에서라면 누구라도 늦여름날의 선경에 마음 뺏기지 않을 재간이 없겠습니다. 담양은 지금 연분홍으로 빛납니다. 나락 익는 길가, 절집 뜰, 그리고 옛 선비의 고졸한 정원에 배롱나무꽃이 무시로 피었습니다. 이 꽃이 세 번 피고 지면 가을이라지요.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여름도 막바지입니다. 배롱나무 붉은 꽃비 맞으며 가을을 맞는 건 어떨지요. ●피고 지길 세 번…이 꽃 지면 가을 담양의 대표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대나무다. 여기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엇비슷한 무게감을 갖는다. 하지만 한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맘때라면 대나무도, 메타세쿼이아도 배롱나무에 한 수 접어줘야 한다. 연분홍 배롱나무꽃이 담양 전체를 더없이 화사하게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이 장하기로는 단연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이 꼽힌다. 명옥헌은 정자의 이름, 원림은 정자에 딸린 정원을 뜻한다. 정자 오른쪽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해서 이름지어졌다. 명옥헌 원림은 예쁘다. 첫 눈길에 정신을 쏙 빼놓는다. 좁은 고샅길을 올라가다 느닷없이 골목 어귀에서 튀어 나오는데, 명옥헌은 보이지 않고, 불그레한 꽃잎과 이를 담담하게 비춰내고 있는 연못이 장관을 이룬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의 주역 오희도(1583~1623)의 집터 위에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정자다. 정자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고 가꿨다. 각진 연못 안엔 원형의 섬을 만들어뒀다. 대지는 네모, 하늘은 둥글다는 당시의 우주관이 반영된 공간이다. 명옥헌 ‘원림’의 한자를 정원의 일반적인 표현인 ‘園林’으로 쓰지 않고 굳이 ‘苑林’이라 표현한 것엔 까닭이 있다. 윤재득 담양군 문화재담당은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담장의 유무”라며 “바깥 공간과 구분짓는 담장이 있으면 ‘園林’, 담장 없이 바깥과 소통하고 있으면 ‘苑林’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명옥헌 원림엔 담장이 없다. ‘숲은 그대로 두고, 주변에 정자를 적절하게 배치한’, 이른바 차경(借景) 형태의 자연순응적인 정원양식이다. 차경은 자연을 경관 구성 재료의 일부로 빌려왔다는 뜻이다. 숲 위쪽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를 세웠다. 가운데 방을 들이고 사방엔 마루를 깔았다.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정원과 배롱나무꽃의 절창을 그윽하게 굽어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100일 붉은 꽃, 백일홍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발음 나는 대로 백일홍, 배기롱 등으로 불리다 배롱나무로 굳어졌다. 독특하고 애처로운 사연이 깃든 다른 이름도 많다. 세 번을 피었다 지면 쌀밥 먹을 때가 됐다고 해서 쌀밥나무, 줄기를 긁으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흔들려서 간지럼나무 등으로 불린다. 자줏빛 ‘자’(紫)에 장미 ‘미’(薇)를 써 자미나무라고도 한다. 이름만큼 평가도 엇갈렸다. 송명숙 문화관광해설사는 “매끈하고 붉은빛을 띤 줄기에서 여인의 몸이 연상된다거나, 꽃이 너무 붉어 집 안에 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며 “귀신을 잘 쫓는다고 해서 묘지나 사당 주변에도 흔히 심었다.”고 했다. 반대로 청렴과 무욕을 상징하기도 했다. 스님들은 100일 동안 매일 번갈아 가며 돋아나는 꽃에서 용맹정진을 배웠고, 선비들은 껍질을 벗은 줄기에서 무욕의 청빈한 삶을 보았다. 배롱나무꽃은 보통 한 가지에서 피고 지기를 세 번 거듭한다. 송 해설사는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8월 초와 하순께 두 번 절정을 이룬 뒤 9월 초~중순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운다.”고 설명했다. 명옥헌 주변엔 4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80~150년 된 노거수(巨樹)가 30여 그루, 2002년 해체 보수 당시 심은 후계수들이 10여 그루 된다. 늙은 몸이건, 젊은 몸이건, 하나같이 연분홍 꽃술을 우박처럼 매달고 있다. 꽃은 지고 난 뒤에도 진한 흔적을 남긴다. 동백처럼 꽃송이째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줄기에 매달린 꽃이나 바닥에 떨어진 꽃이나, 주변을 연분홍으로 물들이긴 마찬가지. 필경 꽃은 분홍빛 카펫을 깔아 함께 붉었던 여름을 배웅하려는 게다. ●자연 위에 흔적 없이 얹은 인공미 명옥헌의 ‘연관 검색어’로 꼭 찾아봐야 할 곳이 소쇄원 등 정자들이다.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의 메카가 경남 함양이라면, 담양은 호남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린다. 그만큼 풍치 좋은 정자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소쇄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세상을 뜨자 자연에 숨어 살겠다며 꾸민 곳이다. 초록빛 대나무숲과 배롱나무들이 둘러친 계곡 안쪽에 광풍각이 있고, 그 뒤로 제월당이 내려다 보고 있다. 송강 정철이 노닐던 식영정과 송강정도 소쇄원에 버금갈망정 뒤지지는 않는다. 특히 소쇄원과 이웃한 식영정은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만큼이나 운치가 넘친다. 정철의 대표작인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으로, 아름드리 노송과 배롱나무, 연못 위 정자 부용당 등이 어우러져 그림과 같은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길 모퉁이에 있어 스쳐가기 쉬운데, 꼼꼼하게 짚어보는 게 좋다. 봉산면 제월리의 면앙정은 송순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 1533년(중종 28년) 건립됐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꼽히는 송순이 퇴계 이황 등과 학문을 논하고 후학들을 길러내던 곳이다. ●느릿한 발걸음에 풍경 걸리고 창평면 삼지내 마을은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등 우리나라에 있는 총 4곳의 슬로시티(Slow City) 가운데 한 곳이다. 16세기 초에 형성된 전통마을로, 옛 멋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과 아름다운 돌담길 사이로 ‘싸목싸목’ 걷는 맛이 각별하다. 마을 내에는 자연을 차용해 건축미가 빼어난 ‘고재선 가옥’ 등 여러 채의 전통 한옥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도 정겹다. 최근엔 복개됐던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등 삼지천(三支川)을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먹거리도 많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다던 창평 쌀엿과 한과는 물론, 막걸리, 약초 등을 직접 만들거나 맛볼 수 있다. 한과(강정) 체험은 1만원을 받는다. 체험 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막걸리는 2시간에 2만원이다. 발효 등의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려 자신이 만든 술을 직접 맛볼 수는 없고, 앞서 다른 체험자가 만든 1ℓ를 선물로 받는다. 쌀엿은 1㎏에 1만 5000원이다. 최근 포장도로를 걷어 내고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간 메타세쿼이아 숲길도 걸어볼 만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중 약 1.2㎞ 구간의 아스콘을 벗겨내고 흙길로 ‘리모델링’했다. 차들이 쌩쌩 내달리던 가로수길 바로 위 88고속도로 또한 멀찌감치 이전시켰다. 담양군은 이 구간에 대해 차와 자전거의 통행을 일절 금지하고 보행자 통행만 허용할 방침이다. 글 사진 담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을 나와 60번 지방도를 따라 고서 방향으로 달리면 왼쪽에 명옥헌(380-3150) 이정표가 나온다. 차는 후산마을 주차장에 두는 게 좋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등을 먼저 보려면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낫다. 담양 시티투어버스 이용은 군 홈페이지(tour.damyang.go.kr) 참조. ▲맛집 삼지내 마을 초입 전통시장 주변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창평시장국밥(383-4424)이 그 중 유명하다. 머리고기·내장·선지 국밥 6000원. 대나무에 밥을 지은 대통밥은 읍내 박물관앞집(381-1990)이 잘한다. 1만 2000원. ▲잘 곳 삼지내 마을에서 한옥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창에 ‘남도민박’을 치면 민박집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한옥에서’, ‘매화나무집’, ‘명가혜’ 등이 알려졌다. 주말 4인 가족 기준 10만원 선.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악대금으로 원형 대금산조 처음 풀어낸 이생강 명인

    [김문이 만난사람] 정악대금으로 원형 대금산조 처음 풀어낸 이생강 명인

    조용히 눈을 감는다. 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잔잔하던 가슴을 후벼 판다. 전신을 휘감아 돈다. 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운다. 하여 신적(神笛)이다. 신라시대 설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한 대나무가 있었다.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이때 용이 나타났다.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신기한 대나무는 곧 피리로 만들어졌다. 소리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흩어졌던 민심은 이 소리를 듣고 하나가 되고, 다들 안정이 됐다. 피리는 국보가 됐고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악지에 ‘악기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바람과 파도가 잔다.’는 기록이 남게 된 배경이다. 이후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笒), 단소, 퉁소 등의 악기로 무궁하게 이어졌다. 세월을 뛰어넘는다. 조선 후기 진도의 세습무 출신 박종기(1879~1939) 명인이 대금산조를 창시했다. 이때부터 무속음악으로 발전했고 오늘날 우리의 전통춤 무대에서 90% 이상 배경음악으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원래 대금의 종류에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이 있다. 정악대금은 주로 궁중음악이나 양반들의 풍류음악을 연주하려고 만든 악기로 다른 악기와 합주할 때 적합하다. 관이 길게 돼 있는 것도 다른 악기와의 음정을 고려한 이유이다. 그런데 정악대금은 취구(吹口)가 작고, 손가락을 짚는 지공이 넓어서 다루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호흡 또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산조대금과 같은 꺾기나 깊은 농음(音), 다루치기(순간적인 지공의 개방을 통해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하는 기술)가 어렵다. 반면 산조대금은 대금산조 독주를 위해 만들어진 악기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가락이 많아 손동작을 원활하게 하려고 정악대금보다 짧게 만들어져 손 움직임을 편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정악대금으로 산조를 연주할 수 있을까? 박종기 명인은 당시 산조를 연주할 때 대금의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악대금으로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대금산조 이생강(75·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명인은 박종기 이후 최초로 정악대금으로 산조 한바탕을 최근에 풀어내고 ‘이생강 원형 대금산조’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냈다. 나이도 나이지만 대금인생 70년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내가 아니면 누가 할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을 던지며 만들어냈다고 했다. 우리 국악사에 큰 획을 긋는 일임이 분명하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이 명인을 만났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온 고등학생들에게 한수 가르쳐 주고 있어 잠시 기다렸다. “너무 (대금을) 흔들면 안 돼.” “네.” “호흡을 길게” “…” 제주도에서 온 학생도 있었다. 연습이 끝나자 이 명인은 괄괄한 목소리에다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가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간다. “강원 신철원에서 제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 다시 물었다. “우리 아들(이광훈)이 제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이지요.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철원에 있는 초등학생 700여명에게 단소를 가르쳐 주고 있지요. 학교에서 우리 국악을 하면 아름다운 교육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을까. 이 명인은 지난해 강원 정동진에서 열린 전국 초등학교 교장모임에서 강연을 했다. 대나무의 소리 하나로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더니 감동을 받은 일부 교장 선생의 뜻에 따라 시골 학교에서 조금씩 국악 붐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소로 했지요. 원하는 학교에는 제가 단소를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대금으로 교체해 줄 때가 됐지요. 자금조달은 어떻게 하냐고요. 제가 공연을 하잖아요. 그걸로 담양에서 대나무를 사고 아는 사람한테 찾아가 수공비만 받고 싸게 대금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육용으로 만든 180여 가지 CD와 DVD 등도 보내주고 있지요. 아들은 제주에서 가르치고 저는 틈이 나는 대로 강원 지역에 가서 지도를 해줍니다. 요즘에는 유아용 ‘병아리 단소’도 만들어 어릴 적부터 국악과 친해지도록 권장하고 있지요. 어린애들이 단소를 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명인은 신철원과 제주에서 시작된 단소 불기 운동이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날 때 멋진 공연을 할 것이라며 웃는다. 잠시 얘기를 멈추는 사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 음반을 낸 원형(原形) 대금산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우리 국악에서 원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살아 있을 때 원형 대금산조를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1937년생입니다. 일흔이 넘었고 대나무 소리를 낸 지도 70년이 됐습니다. 살아 있을 때 남겨둬야 합니다. 원형 대금산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 스승(한주환)의 스승(박종기)이 했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그걸 음반으로 제작했지요. 그래야 후배들이나 국악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나무 소리인생 70년을 맞아 정악대금으로 풀어낸 ‘원형 대금산조’ 음반에는 전체 63분 23초 길이에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시나위’ ‘자진모리’를 순서대로 실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악(正樂)은 ‘인쇄체’요, 산조(散調)는 ‘필기체’라는 것. 손가락을 잘 떼서 매끄럽게만 불면 되는 정악대금에 비해 산조대금은 개성 있는 꼴바꿈이 가능하며 선율이 다채롭고 인간 세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고 덧붙인다. 국악계의 한 평론가는 이번 음반을 낸 것과 관련해 “박종기의 탁월한 예술성을 한주환이 극복하며 대금산조의 중시조로 등극했듯이 한주환의 천재성을 극복한 유일한 재비가 이생강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라고 평했다. 이 명인은 반주악기로만 사용돼 온 대금으로 첫 독주를 시도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1960년 4·19 직후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서울에 왔습니다. 거기에 한국민속예술단 소속 무용수와 악사 등 33명이 타고 프랑스 파리에 갔지요. 춘향전을 무용극한 내용으로 공연을 하는데 주인공 안나영씨가 급히 맹장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타로 제가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대금을 들고 무대에 섰지요. 아이러니하게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민속악기 독주회를 처음 갖게 됐습니다. 우리 민속악기는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이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50여개국 순회공연을 갖게 된다. 그의 대금에 대한 사랑과 의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가 낸 음반의 종류만 해도 500여 가지. ‘동백아가씨’ ‘목포의 눈물’ 등은 물론이고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웬만한 노래는 죄다 대금으로 풀어냈다. 얼마 전에는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놔 국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된 우리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단지 대나무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일진대 청아하고 신기에 가까운 뻐꾸기 소리 등을 마구 뱉어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든다. ‘이생강이 아니면 과연 누가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는 앞으로 태교, 명상, 추억, 회상 음악 쪽에 방향을 맞춰 꾸준히 일상으로 파고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리랑’을 현대감각에 맞게 작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악의 원형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이 명인은 다섯 살 때부터 소금을 배웠다. 이후 11세 되던 1947년, 스승 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6·25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 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도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욕심이 커서 어떤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대가들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다. ‘대니 보이’(Danny Boy),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 나갔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아버지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대금의 한주환,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온 명인의 열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이생강 명인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 후 부산에 정착해 살았다. 다섯 살때 아버지에게 단소를 배웠고 이후 이덕희, 지영희, 전추산, 오진석, 방태진, 한주환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혔다. 19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대금반주을 했으며 19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 때 처음으로 대금독주를 했다. 1977년 국내에서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를 가졌으며 이때 원형 대금산조를 처음 연주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등 크고 작은 무대에서 20여 차례 개인발표회를 가지며 독특한 ‘이생강류’의 대금음악을 만들어오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로 주목을 받았고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20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을 제작한 데 이어 지난달 최초로 정악대금으로 ‘원형 대금산조’를 풀어낸 음반을 냈다.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하면서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1978), 신라문화재 대통령상(1984년), KBS국악대상(1984년), 서울시 자랑스러운 시민상(1994), 대한민국 국민상(1997), 한국국악대상(2002년) 등이다.
  • [시론] 세계육상선수권 마지막 준비와 미래를 위해/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시론] 세계육상선수권 마지막 준비와 미래를 위해/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스포츠를 통한 국가 간 경쟁과 국민 건강의 중요성을 느꼈으며,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가 인간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이제 불과 18일 앞으로 다가온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또한 무엇을 느끼고 남길 것인가. 첫째, 우리가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모두 함께 마음껏 즐기기 위해 육상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 활동은 태초부터 달리고, 뜀뛰고, 던지는 동작으로 시작됐다. 근대 올림픽의 원형인 고대 올림픽이 달리기 한 가지로 시작됐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듯, 육상경기는 모든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며 인간 스스로의 내재된 능력만으로 주된 승부를 겨루는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볼 수 있다.’고 하듯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제대로 즐기려면 육상경기를 이해하고 공부해 둘 필요가 있다. 육상경기를 살펴보면 참 재미나고 의문스러운 것들이 많다. 트랙은 왜 왼쪽으로 돌게 됐을까. 투척경기에서 원반·포환 및 해머던지기는 창던지기와 다르게 정해진 크기의 원 안에서 회전과 스텝 동작을 수행해 순간적인 파워로 던지는데, 그 발생 유래는 제각기 어떻게 다를까. 100m나 200m 단거리에서 스타트가 기록에 영향을 미칠 만큼 매우 중요하며 부정 출발을 하게 되면 바로 실격처리되는 것으로 규정이 개정된 뒤 선수들이 출발동작에 매우 민감해졌다. 어떻게 응원을 해야 할까. 선수들을 소개할 때는 열렬히 환호하되, 출발 직전에는 숨을 죽이고 조용히 해야 한다. 카메라 플래시도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선수들이 호흡을 고를 때는 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처음 나타난 역발상의 비밀병기 ‘포스베리 도약’(Fosbury flip)은 왜 높이뛰기의 신기원을 이루게 됐을까. 장대높이뛰기는 양치기 소년들이 지팡이를 사용해 방목장의 울타리나 장애물을 뛰어넘은 데서 착안된 종목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봉, 탄성이 우수한 대나무, 탄소코팅처리한 첨단 특수유리섬유의 장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기록이 변화해 왔을까. 육상경기의 진정한 의미에 흥미 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대회 이후를 위해서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대구 대회의 성공적 개최의 주요 관건은 완벽한 준비와 경기운영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의 우수한 경기력을 많은 관중들이 함께 즐기는 것과 더불어 국민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우리의 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였다. 우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구 개최를 계기로 그동안 ‘드림프로젝트’, ‘뿌리자 50억’ 등의 구호를 앞세우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많은 노력을 통해서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던 100m와 400m 계주에서 새로운 기록이 수립되는 등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으나 적극성과 체계성은 여전히 다소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육상경기의 발전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집중투자와 관심을 통한 저변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모든 준비는 대회 이후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대회 준비와 개최과정에서 얻어진 효과와 시설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비해야 한다. 대회 개최 뒤 시설은 국제적 육상훈련센터 및 육상아카데미로의 발전적 육성, 생활체육시설, 스포츠과학연구단지 조성, 스포츠건강산업의 육성 등을 위해서 적극 활용토록 하며, 아울러 국제육상대회의 지속적 개최를 시도해 종합 스포츠타운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회 뒤 국내 육상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통한 육상선수의 저변 확대, 세계적 육상스타 발굴, 우수지도자 육성, 육상진흥재단 설립,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으로서 육상 관련 클럽스포츠의 활성화, 국제육상대회 유치와 육상경기를 매개로 한 스포츠산업분야의 개발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우리에게 소식(蘇軾·1036~1101)은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정치가이자 화가, 시인, 서예가였다. 심지어 그는 요리에도 조예가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재능은 자신의 문장을 자평할 때 말한 것처럼, “만 섬이나 되는 샘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용솟음쳐 나올” 정도였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 하루에 천리를 가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산의 돌멩이들과 어울려 꾸불꾸불 흐를 때에 사물에 따라 모양을 바꿔 나간다.”(‘자평문’) 자신의 문장에 대한 드높은 자부심과 거침없는 기개야말로 소식이라는 인간 그 자체이자 그의 문장의 특징이다. ●21살에 과거 급제… 정치 행보는 부침 거듭 21살, 소식은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최고 문장가였던 구양수는 소식의 과거 시험지를 보고,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소.”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구양수의 예언대로 소식은 3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를 대신해서 문단의 맹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소식의 이름이 문장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행보는 부침을 거듭했다. 신법당과 구법당의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소식은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두 차례나 유배를 당했다. 1069년, 신종은 왕안석의 신법을 채택하여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신법은 대지주와 호족들의 토지 겸병을 막고, 관료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한 부국강병책이었다. 대지주와 호족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법당은 시행과정 상의 예상 문제점들을 들어 신법을 반대했다. 구법당은 사마광, 정이의 낙파(洛派)와 소씨 삼부자(소순, 소식, 소철)의 촉파(蜀派)로 나뉘어 서로 신법에 맞섰다. 북송 ‘신고문운동’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소식과 왕안석은 한데 묶일 수 있지만, 정치적인 견해에서는 서로 달랐다. 또한 신법에 대한 정견이 일치했을지는 모르나 유가의 도를 종주(宗主)로 삼는 낙파와 달리, 소식은 노장과 불교를 모두 포괄한 유학자였다. 소식은 신법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세 차례나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일로 신법당의 미움을 사 한미한 관직으로 지방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그의 문학적 활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시, 사(詞), 기(記) 등 호방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체를 형성하게 된다. 소식을 좌천과 유배로 몬 것도 그의 문장이요,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불운과 험난한 인생을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그의 문장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 소식은 “마음속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고 봤다.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은 글에 능한 것을 ‘좋은 글’로 여긴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다.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울창하게 되어야 밖으로 드러나듯이.”(‘南行前集敍’) 작가가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얻은 충실한 사상, 내용을 갖고 있으면 예술적 형식은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이 문장론은 ‘흉유성죽론’(胸有成竹論)이라는 예술론으로 더 잘 알려졌다. 문인화론의 확립자로 알려진 소식은 사군자, 특히 문동의 대나무 그림에 주목했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지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때 급히 서둘러 붓을 휘두른다.”(’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 ‘마음속의 대나무’를 들어 소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과 인격의 관계였다. 일체의 객관 사물이란 모두 작가의 주관적인 색채로 그려지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경(意境)이 조화를 이뤄 감상자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다. 문동이 즐겨 그렸다는 ‘누워서 쳐다 본 대나무‘는 단지 몇 마디의 대나무를 그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만 자가 넘는 화가의 기세가 담겨 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문인의 기세. 요컨대 대나무라는 대상을 얼마만큼 잘 모사했느냐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화가의 고유한 감정과 정신세계를 얼마나 잘 드러냈느냐가 핵심이다. 이 같은 문인의 자부심이야말로 좌천과 유배와 같은 정치적 불운에도 굴하지 않게 만든 ’소식의 힘‘이었다. ●자신의 인연 받아들이고 ‘거사’ 자처 1079년(44세), 신법당과의 악연은 마침내 필화사건으로 터졌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소식이 썼던 시들에 임금과 정부를 모욕, 비방하는 내용이 있다는 신법당의 참소로 일어났다. 136일 동안 어둡고 좁은 감옥 안에서 그는 언제 사형 명령이 떨어질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했지만, 황주(호북성) 유배령이 떨어졌다. “본성이 말을 삼갈 줄 몰라서 남들과 친하건 친하지 않건 가릴 바 없이 마음속의 생각을 다 털어놓아야지 못다한 말이 있으면 마치 목구멍에 음식이 걸린 것 같아서 반드시 토해 내고야 마는” 소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소철은 유배길을 떠나는 형에게 신신당부했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글과 말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호방한 성격의 소식이었지만 충정심이 나라에 죄를 얻은 상황이라, 폄적(貶謫·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 보내다) 초기에 그는 글을 한 줄도 지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닫고 외부와의 출입을 끊은 채 놀란 혼백을 가다듬고 물러나 엎드려 있었다.” 붓을 놓은 일은 외부와의 완전한 관계 단절을 의미했고, 또한 자기 존재의 의의까지 회의하게 만든 일이었다. 폄적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력의 원천인 관직을 잃자 소식의 가족들은 갑작스레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친척과의 이산 및 지인의 죽음은 인생무상으로 엄습했다. 폄적은 소식으로 하여금 다른 경계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어떤 문턱에 서게 만든 경험이었다. 소식은 불교 서적을 읽고, 근처 절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고요히 앉아 묵상에 잠겼다. “깊이 성찰하여, 대상과 자아를 잊고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비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또 소식은 지인의 도움으로 황주성 동쪽 산비탈의 황무지를 사서, 그곳을 ‘동파’(東坡)라 이름하고, 자신을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이름보다 더 유명한 ‘동파’라는 호가 탄생한 시점이다. 이 시기 소식의 두 벗은 ‘도연명집’(陶淵明集)과 ‘유종원집’(柳宗元集)이었고, 그는 스스로를 도연명에 비유하며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저절로 흘러넘쳐 글이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황주성 밖의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지은 ‘적벽부’(赤壁賦)다. “손님도 저 강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이 쉼 없이 흘러가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은 없고, 달도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저와 같으나 결국 줄거나 늘어나지는 않았네. 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네.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중략) 또한 천지간에는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가져선 안 될 것이나,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가져도 막는 이 없고 써도 다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배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라네.” 스무 살 무렵부터 ‘장자’를 애독하며 “이 책을 보고 마음을 얻었다.”던 그는, 이제 어떤 외물(外物)에도 얽매이지 않는 ‘거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사물을 사물로 대하고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사물의 바깥에서 노닌다.”고 말하며,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적벽부’에서도 보이듯, 말년의 소식은 변화와 불변의 경계조차 자유로이 가로지르면서 초월적 경지조차도 초월한 듯이 보인다. 그는 이제 억지로 세간과 출세간을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인연의 오고 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히 내맡길 따름이었다. ‘궁이후공’(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표현대로, 소식의 문장은 궁함을 통해 하나의 궁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유리 천장만큼 높은 ‘대나무 천장’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직장 내 성차별로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유리 천장’에 빗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막힌 아시아계 미국인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유명 대학을 나와 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미 뉴욕 소재 싱크탱크인 ‘워크라이프 정책센터’(CWLP)는 이 같은 내용의 ‘미국 내 아시아인들’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 경영진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기업 내에서 잠재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다른 인종보다 일류 대학 졸업과 취업까지는 상대적으로 쉽게 하고, 성공에 대한 열망도 강하지만 ‘대나무 천장’을 뚫지 못하고 있다. CWLP가 아시아계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시아계 전문직 종사자의 64%가 최고경영자까지 올라가기를 희망한 반면 백인들은 52%에 그쳤다. 아시아계가 미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이나 포천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차지한 경우는 1.5%에 불과하다. 특히 응답자 대부분이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승진하기 위해 인맥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25%는 백인들과 비교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응답자 중 아시아계 남성은 66%, 여성은 44%가 자신의 직장 경력이 정체돼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아시아계 미국인 가운데 37%와 28%가 회사 측에 임금인상과 진급 등을 적극 요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수동적으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임금인상과 진급 등을 당당히 요구하지만, 주위의 편견 탓에 요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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