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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B를 열다] 1967년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유세장 찾은 촌로

    [DB를 열다] 1967년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유세장 찾은 촌로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노인의 모습은 1960년대 농촌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사진은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남 산청의 운동장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 모인 지역민들의 모습이다. 갓을 쓰거나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촌로(村老)들이 군중 속에 섞여 있다. 갓은 삼국시대 때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사진 속 노인이 쓰고 있는 일반적인 흑립은 조선시대 때부터 양반층에서 쓰기 시작해 서민들까지 쓰게 되었다. 갓의 용도는 비나 햇빛을 가리는 것이었으나 의관정제(衣冠整齊)라는 말이 있듯이 외출할 때 단정한 옷과 함께 갓을 갖추어 쓴다. 갓은 쓰지 않을 때는 태극무늬 등 문양이 있는 갓집에 넣어 보관한다. 주로 장롱 위에 얹어 놓아 방안 치레의 구실도 하였다. 일상생활에서 농민들이 입는 옷은 주로 무명 한복이었다. 남자들은 바지저고리를, 여자들은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한복은 세탁해서 입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다. 풀을 먹여 빳빳한 상태로 입는다. 풀을 먹이면 오래 입고 때도 덜 탄다. 풀을 먹인 한복은 다듬이질을 한다.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이 다듬이질이다. 잘 다듬어진 옷감은 다리미로 다린 것 이상으로 매끈하고 잘 구겨지지도 않는다. 다듬이질을 하려면 옷감에 물을 축여야 하는데 대개 물을 입에 넣고 뿜는다. 농사일도 하얀 무명 한복을 입고 했다. 외출할 때는 한복 위에 두루마기를 입는데, 두루마기는 서양의 코트처럼 방한용도 되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당시 시골에서는 일할 때나 외출할 때나 거의 흰 고무신을 신었다. 1919년 우리나라에 ‘대륙고무’라는 고무신 회사가 처음 생겼고 이후 다른 공장들도 잇따라 생겨 농민들이 신던 짚신을 대체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많은 농촌 지역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흰색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일도 하고 학교에 다녔다. 노인이 쓰고 있는 우산은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지(紙)우산으로 보인다. 지우산은 질긴 성질 때문에 부채에도 쓰이는 한지에 기름을 먹여 만든다. 종이우산은 비닐우산이 나오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제는 전통 공예의 하나로 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대한민국 행복발전소(KBS1 밤 7시 30분) MC 이윤석이 주얼리 예원을 입양하고 싶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메인코너 스타 아빠들의 육아를 다룬 ‘용감한 아빠들’에서 이윤석은 배우 윤용현과 딸 다임이의 사랑이 넘치는 애정 표현을 부러워하며, 주얼리 예원을 향해 거침없이 입양하고 싶다는 발언으로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이리스 2(KBS2 밤 10시) 중원은 미스터블랙(김갑수)의 지시로 핵을 탈취한다. NSS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수연은 유건에게 도움을 청한다. 날이 갈수록 유건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돼 가자 연화는 그런 유건이 걱정스럽다. 한편, 장철에게 백산의 계획을 전해 들은 유건은 백산이 목숨을 걸었음을 직감한다. ■여성이 미래다 2부(MBC 오후 6시 20분) 21세기는 여성의 시대, 여성의 리더십이 강조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대다수 여성들은 유리천장, 일, 육아, 가사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과연 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실제로 어떠할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와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내게만 일어나는 것 같은 안 좋은 일들은 단지 운이 없어서 일어나는 머피의 법칙인 걸까. 식빵이 땅으로 떨어질 때 잼을 바른 쪽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통해 머피의 법칙에 숨은 과학을 배워본다. 또한, 사람이 되고 싶어 환웅을 찾아간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통해 쑥과 마늘의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5분) 최고 품질의 죽염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대나무의 분량은 약 220다발이다. 대나무에 빈틈없이 죽염을 채우고 나서 섭씨 1500도 가마에서 꼬박 12시간을 굽는다. 그렇게 대나무에 소금을 넣고 가마에 굽기를 8번.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9번째 공정인 용융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데…. ■OBS 뉴스&이슈(OBS 오후 4시 45분) 봄 개편을 맞아 오늘의 주요 뉴스를 보다 신속하고 깊이 있게 전달한다. 김용재·김하나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경인지역 뉴스와 정치권 뉴스, 국제뉴스, 증시현황 등 다양한 핫 이슈를 신속하게 전한다. 아울러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와 정치인을 초대하여 대담을 나누는 시간도 마련한다.
  • [씨줄날줄] 지혜의 숲/서동철 논설위원

    고창 선운사의 동백꽃을 두고 이 고장 출신의 시인 미당 서정주는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라고 노래했다. 가수 송창식은 ‘선운사’에서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것’이라고 돌아선 연인에 읍소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운사 동백꽃에 얽힌 진한 사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500년 전 동백을 심은 스님은 짐작이나 했을까. 절이 산중에 자리잡으면서 늘어난 걱정거리는 산불이었다. 숲이 우거진 산비탈에 세워진 절집은 산불이 일어나면 무방비 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나무숲은 대표적인 내화수림대(耐火樹林帶)의 하나이다. 대웅전 바로 뒤편에는 나무를 베어내 화소(火巢)를 조성했다. 산불이 절에 칩입하는 것을 막고, 절의 화재가 산으로 번지는 것도 방지하는 완충공간이다. 동백숲은 화소 뒤쪽에 띠를 이룬다. 잎이 두껍고 수분이 많은 동백은 불에 잘 견디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선운사와 함께 나주 불회사는 아름다우면서도 효율성이 뛰어난 불막이 숲으로 꼽힌다. 아래서 위로 올라가며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의 띠가 차례로 층을 이룬다. 모두 불에 강한 나무들이다. 구례 화엄사도 자생하는 소나무숲을 밀어내고 동백나무와 참나무로 산불 저지선을 구축해 큰 법당인 각황전을 보호하고 있다. 숲이 가진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옛 사람들의 노력은 불막이 숲에 그치지 않는다.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은 강풍과 해일을 막아 마을과 농작물을 보호하고자 300년 전 조성한 것이다. 물고기가 회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역할도 한다. 안동 임하의 개호송(開湖松)은 풍수지리적으로 모자라는 땅의 기운을 보충하고자 조성한 비보림(裨補林)이다. 조선 성종 시대 처음 숲을 조성했다니 500년이 훨씬 넘었다. 마을의 의성 김씨 문중에서는 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규약을 만들어 가꾸고 있다. 한결같이 정성을 기울여 재앙을 피해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액막이 숲이다.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던 한국이 남부럽지 않은 조림 모범국으로 발돋움했다. 숲의 경제성은 벌써부터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지만, 다양하게 ‘목적 식목’을 했던 조상의 지혜도 되살렸으면 좋겠다. 꼭 방재림일 것도 없이 우리 시대에 맞는 숲 가꾸기면 족하지 않을까. 장성 ‘치유의 숲’처럼 피톤치드가 많아 ‘힐링 시대’에 맞는다는 편백나무를 많이 심는 것도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DB를 열다] 1971년 등굣길에 바람에 뒤집힌 비닐 우산

    [DB를 열다] 1971년 등굣길에 바람에 뒤집힌 비닐 우산

    망가진 비닐 우산이 집집이 몇 개씩은 굴러다녔던 때가 있었다. 비닐우산을 처음 만든 사람은 경남 진주에서 종이우산을 만들던 사람이라고 막연하게 전한다. 비닐우산은 대나무, 철사, 실, 비닐만 있으면 비교적 간단히 만들 수 있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 근처의 대도시인 진주나 전북 전주에서 많이 생산했고 서울에서는 미아리 등에서 가내공업으로 만들어졌다. 한 공장에서 한 해에 50만 개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돈벌이가 없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감이 되기도 했다. 비닐우산은 값이 싸 한 번 쓰고 버리더라도 크게 아깝지는 않았다. 1956년 창립한 국산 원단우산 제조업체 ‘협립’이 만든 우산은 열흘치 봉급을 줘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비닐우산은 재료비를 아끼느라 헌것을 수거해다가 고쳐서 재생품을 팔기도 했는데 그 때문인지 비닐우산의 품질은 점점 조잡해져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낙하산처럼 뒤집혀서 하루라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좋은 원단 우산을 쓰게 되었고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값싼 중국산 우산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비닐우산은 완전히 사라져서 추억의 물건이 되었다. 그런데 이 비닐우산이 낭만적으로 보였거나 유용한 일회용 물품으로 보였던지 유럽이나 일본으로 수출도 되고 무역박람회 전시 품목이 되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130번 과정 거쳐 탄생하는 전통화살

    130번 과정 거쳐 탄생하는 전통화살

    22일 밤 8시,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에서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경기 파주에 있는 ‘영집 궁시박물관’을 찾아갔다. 궁시박물관은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영집 유영기(78)씨가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활(弓)과 화살(矢) 전문 박물관이다. 아직도 ‘화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장인 유영기씨. 공장에서 카본 화살이 쏟아지는 시대에 그는 아직도 전통방식으로 화살을 만들고 있다. 화살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30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나무를 고르는 것부터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 자랐느냐에 따라 화살의 품질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화살촉을 끼우는 부분에 물에 불린 쇠심줄을 감는 일이다. 그대로 살촉을 끼우면 목표물에 맞는 순간 대나무가 산산이 쪼개지기 때문이다. ‘질기기가 쇠심줄 같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감아준 화살은 철판도 뚫는 힘이 생긴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스마트 큐레이터’를 카메라에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작년 4월부터 시범 운영해 온 ‘스마트 큐레이터’를 평일까지 확대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의 공간적 한계를 태블릿PC로 보완해 전시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복안이다. 김홍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평생도’를 전시 해설사에게 듣고, 전시되지 못한 남은 다섯 작품은 태블릿PC로 볼 수 있다. 벽에 가려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 백자는 가상공간에서 360도 회전한다. 또 손가락 움직임 한번으로 천흥사의 은은한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노원구 월계동의 ‘참빛야학’에도 다녀왔다. 38년 동안 만학도들에게 배움의 등불이 돼 온 참빛야학은 인근 주민뿐 아니라 의정부·상계동 등에서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매년 15~20명의 중고등검정고시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노원구에는 이곳을 포함해 교육시설 10개가 지원 신청을 했지만, 지난해 국고와 지자체에 책정된 지원 예산은 2400만원이 전부다. 모두 지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야학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지난해만 9곳이 문을 닫아 29곳만 남았다. ‘2013 구정을 말하다’에서는 도전과 탐험은 역사를 진보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하는 박홍섭 서울 마포구청장을 만났다. 박 구청장은 올해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박영석 기념관’ 건립 등 구정의 포부를 밝혔다. 또한 ‘톡톡 SNS’에서는 새 정부 인사 잡음, 방송·금융사 전산망 마비 사태 등과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를 전한다. 성민수 PD globalsms@seoul.co.kr
  • 말레이시아의 앨리스

    말레이시아의 앨리스

    말레이시아의 앨리스 영하 10℃를 밑도는 서울의 한파를 등지고 도착한 말레이시아는 그 온도차만큼이나 다른 세계였다. 어떤 끌림이 있었는지, 회중시계를 손에 든 흰 토끼를 따라 알지도 못하는 굴 속으로 졸래졸래 따라간 앨리스처럼, 낯선 듯 평화롭고, 평범한 듯 해맑은 ‘말레이시아’를 만났다. 겨울날에 도착한 여름나라 앞으로 여섯 시간 후 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는다. 여느 때와 달리 떠오르는 혹은 기대하게 되는 그림이 불분명했다.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속으로 옹알옹알. 입에 익긴 한데 막상 고개가 갸웃한다.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을 지나쳐 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본능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겨울날의 여행.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영하 10℃를 밑도는 겨울날과 영상 30℃를 웃도는 여름나라를 동시에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해가 떴는데도 바닥이 젖어 있다. 이 나라에서는 매일 오후 네다섯 시 즈음엔 어김없이 비가 쏟아진다고 했다. 오늘도 방금 전까지 비가 내렸다고. 공항을 나서니 바깥 공기가 그리 습하지 않았고,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까지 가는 차 안에서도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기에 아직 서울에서의 차림 그대로다. 하나둘 옷을 허물처럼 벗어낸 것은 공항과 쿠알라룸푸르 중간 즈음에 위치한 신행정도시 푸트르자야Putrajaya의 풍경이 차창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레고 블록으로 만든 모형처럼 군더더기 없는 도시를 울울창창한 야자수 정글이 포위하고 있었다. 서울과 쿠알라룸푸르 사이 한 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오른 나는 그제야 여름나라에 들어온 것을 실감했다. 호텔방에 대충 짐을 밀어 넣고 낯선 거리로 나섰다. 하늘은 어둑하게 물들어 가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번화한, 서울로 치면 명동에 비견되는 부킷빈탕Bukit Bintang 거리와 그 지척에 노천 음식점이 즐비한 잘란알로Jalan Alor는 낮보다 더 환하고, 더더욱 북적였다. 여행 첫날의 긴장과 피로는 서울과 다르지 않은 도심풍경 때문에 잔잔해졌지만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이 아직 부담스러운 이방인은 두 거리 사이, 트렌디한 펍과 레스토랑이 늘어선 잘란창캇Jalan Changkat으로 살짝 발을 들여 놓았다.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펍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공기, 낯선 도시, 차가운 맥주, 관망적 자세. 취取하거나 취醉하거나. ▶travie info 잘란알로alan Alor와 잘란창캇Jalan Changkat | 잘란알로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요리 사테Satay를 추천. 얇게 썬 고기를 양념해 대나무 꼬챙이에 꽂아 구운 꼬치요리이다. 달큼하고 고소한 땅콩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잘란창캇에서는 부러 핫한 곳을 찾기보다는 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2층 테라스가 있는 공간에 자리를 잡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다. 위치 부킷빈탕 거리에서 모노레일이 가로지르는 대로 변 오른쪽 방향(도보 5~10분). 영업시간 늦은 오후부터 새벽녘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 Masjid Negara┃주소 Jalan Perdana, 50480 Kuala Lumpur 방문객 입장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3시~4시, 오후 5시30분~6시30분(단, 금요일은 오전 입장 불가) 입장료 무료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주소 Jalan Hang Kasturi, 50050 Kuala Lumpur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30분(건물 밖 노점은 오전 11시~밤 11시) 홈페이지 www.centralmarket.com.my 차이나타운China Town┃위치 Jalan Petaling, Kuala Lumpur 영업시간 오전에 문을 여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점심 무렵부터 밤 10시까지 One for All, All for One 아무리 피곤해도 늦잠은 아까운 여행자의 아침, 좀 걷자. 걷다 멈춘 곳이 목적지가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여름의 날씨인지라 자연스럽게 차도르Chador를 두른 여인들에게 눈길이 간다. 말레이시아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다.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겠지만 “안 덥나?” 결국 입 밖으로 뱉고 만다. 모스크에 가봐야겠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피해 택시를 탔다.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 Masjid Negara에 가자고 했다.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보라색 가운과 히잡Hijab을 둘렀다. 아무도 없는 기도실 앞에 서자 안내원인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대답을 듣자 지긋한 눈빛으로 <본성(피뜨라)과의 만남>이라는 한국어 책자를 건네 준다. 천장까지 닿은, 수십 개의 흰색 기둥으로 빼곡한 기도실 앞 대리석 바닥에 앉아 책자를 폈다. 맨 첫 장과 마지막 장은 같은 문구로 시작해 같은 문구로 맺어지고 있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따라 읽는 사이 작지만 야무진 아이 모모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시간을 훔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회색 신사들에게 홀려 잿빛이 된 모습으로 내 말만 하는 어른이 돼 버린 내 앞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중략)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미하엘 엔더의 <모모> 中 지난밤 잘란창캇의 펍에서 마셔 버린 시큰둥했던 첫날밤이 뜨끔했다. 그럼에도 선뜻 털고 일어나 기도실을 나서지 않고 조금 더 게으름을 피우다 못 이기는 척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다 뒤를 돌아봤다.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맑고 파란 하늘과 그 아래 새하얀 모스크. 종교와 교리를 떠나 그곳에 잿빛을 걷어낸 나의 뽀얀 마음 한 조각을 묻어두었다. 그리곤 천천히 초록 잔디가 카펫처럼 펼쳐진 메르데카 광장Merdeka Square까지 걸었다. 딱히 구경거리가 없는 고가도로변인데도 길이 참 싱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르데카는 말레이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8월31일 이 광장 국기게양대에 걸려 있던 영국 국기를 걷어내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광장 너머로 우뚝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과 함께 광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고건축물들이 독특한 도시경관을 그려낸다. 식민지 역사의 흔적을 상당수 지워낸 우리와 달리 쿠알라룸푸르는 도심 가운데 이를 그대로 남겨두고 오늘날까지 이용하고 있다. 광장 북측, 1894년에 지은 세인트메리 성당을 시작으로 유럽과 이슬람식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룬 구 시청사, 술탄압둘사마드 빌딩, 구 중앙우체국, 국립섬유박물관, 구 차터드은행 등이 시계방향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들이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오랜 세월 다양한 인종이 각기 다른 언어와 신을 믿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살아왔기에 관용의 미덕이 배어 있다고.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 ‘1 Malaysia, truly Asia’라는 말레이시아의 캐치프레이즈를 형상화한 조형물 앞에 서 있자니 이번엔 달타냥과 삼총사가 떠올라 그들의 구호를 외친다. “One for All, All for One” 메르데카 광장에서 켈랑강Kelang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과 차이나타운China Town까지 다다르는데, 이곳에서 ‘1 Malaysia, truly Asia’가 허언이 아님을 체감했다. 역시나 건물 자체가 100여 년이 넘은 마켓 안에는 말레이, 차이니즈, 인디아 구역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었고, 역사문화도시 말라카와 페낭을 모티브로 한 거리까지,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오밀조밀하다. 아시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마켓 2층의 푸드코트와 마켓 바깥 골목에 위치한 예술가의 거리도 시장구경의 재미를 더해 준다. 중국계가 중심이 되어 상점가를 형성하고 있는 차이나타운China Town 언저리에서도 불교 사찰과 식민지 건축물, 힌두교 사원이 자연스레 한 컷에 담긴다.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사진기를 들었다놨다 한다. 여행의 순간은 눈에만 담아두기 참 아쉬울 때가 많다. 찍고 싶은데 면박을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몰래 찍는 것도 내키지 않는.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한다. “그냥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하면 완전 좋아하면서 반가워할 거예요.” 새삼 놀라운 ‘참말’이다. 무표정하게 있다가도 사진기를 보이며 눈인사를 할 때마다 꽃보다 환하게 피어나는 그들의 얼굴빛.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마저 꽃 같은 포즈를 취해 주는데 그 덕에 내 잿빛 마음이 부끄럼을 타며 조금씩 희석된다. 1 메르데카 광장에서 센트럴 마켓으로 가는 길에 만난 동화 같은 거리. 초고층 빌딩숲 아래 파스텔톤의 유럽식 건축물이 독특한 도심경관을 만든다 2 쿠알라룸푸르에 대한 모든 것을 미리보기 할 수 있는 곳, 쿠알라룸푸르 시티갤러리에 가면 말레이시아 여행이 더욱 촘촘해진다 3 강요하는 사람 없지만 열대 기후에서도 히잡을 벗지 않는 여인들. 그러나 색색 고운 히잡을 보며 여인의 마음을 짐작한다 빨간 구두 신고 램프의 요정을 따라서 쿠알라룸푸르가 다민족이 내뿜는 전통적인 색채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질릴 틈 없이 신상품으로 넘쳐나는 도심의 빼곡한 쇼핑몰이야말로 쿠알라룸푸르의 현재다.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마술을 부린 듯 새롭고 반짝이는 것들에 현혹되기 시작했다. 쿠알라룸푸르 쇼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부킷빈탕 거리의 파빌리온에서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와 수리아 쇼핑몰이 위치한 KLCC까지 구름다리 형식의 통로KLCC-Bukit Bintang Pedestrian Wailkway가 연결되어 있어 주요 쇼핑 스폿을 쾌적하고도 수월하게 오갈 수 있다. 정유회사 페트로나스의 사옥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88층의 쌍둥이 빌딩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에 올랐다. 쌍둥이 빌딩 한쪽 타워에서 보이는 맞은편 타워는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솟아 있었다. 멀고도 높다. 물리적인 거리와 높이만큼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돌아갈 수 있을까. 우선 내려가자. 호텔 방에 들어와 가방에서 가장 예쁜 옷을 꺼내 갈아입고 스타힐 갤러리Starhill Gallery와 파빌리온Pavilion의 명품 매장 사이를 모델처럼 걷기 시작했다. 명품 매장에서 나오는 차도르 두른 여인들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촌스럽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말레이시아와 우리나라의 쇼퍼들은 선호하는 디자인과 색감이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아이템을 찾아 최근 말레이시아를 찾는 쇼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주머니 가벼운 까막눈도 마냥 즐거운 윈도우 쇼핑. 걷다가 힘이 들면 쇼핑몰 곳곳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식도락을 즐기기도 하고, 쇼핑몰 안팎에서 진행되는 버스킹 공연에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 나오는 아가씨처럼 춤추듯 걷자니 지치기는 했지만 시간은 지겨울 틈 없이 흘러갔다. 램프의 요정을 따라 말레이시아의 머리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반도 최남단으로, 싱가포르와 맞닿은 도시 조호바루Johor Baharu에 도착했다. 말레이어로 조호바루는 ‘새로운 보석’이라는 뜻. 그곳에 앨리스도 혹할 만한 새로운 보석이 있었다.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동화풍 색채의 레고 랜드LEGO LAND에 제대로 빨려 들어갔다. 오전 10시, 오픈시간이 가까워지면 레고 랜드 사람들이 나와 오매불망 가지런히 줄서 있는 아이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10, 9, 8……3, 2, 1” 문이 열림과 동시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레고 랜드 안으로 돌진. 레고 랜드를 둘러싼 자연과 그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레고 블록이 빚어낸 세상이다. 아이들의 쨍한 웃음이 화수분처럼 솟아난다. 아이들을 핑계 삼아 어른들 역시 수북 쌓인 레고 블록 조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이 모자랐다. 조호바루에도 쿠알라룸푸르 못지않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아웃렛과 쇼핑몰이 즐비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행자의 시간은 좀더 색다르고도 익숙한 풍경을 더듬는다. KSL 리조트 앞으로 펼쳐진 난전은 우리나라의 오일장을 떠올리게 했다. 땅의 기운을 머금고 고운 색을 발하는 식재료와 튀기거나 굽거나 볶아낸 군침 도는 먹을거리에 자꾸만 손이 간다. 여기저기 “한국에서 왔어요?” 말하며 아는 체하는 현지인들이 우리네 시장 사람들의 인심과 다르지 않았다. 싱싱하고 건강한 어투. 그들 손으로 기르고 거둔 곡물로 만든 주전부리를 오물거리며 시장 한 바퀴를 어슬렁댄다. 부디 12시를 알리는 신데렐라의 종이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런 걸까. 천천히 빨간 구두를 벗고, 램프의 요정과도 안녕을 고했다. 한 시간만 뒤로 돌리면 말레이시아의 앨리스는 사라지고 나는 다시 영하를 밑도는 나의 현실세계, 서울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나의 말레이시아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일 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반대편 타워와 함께 쿠알라룸푸르 도심 전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2 쿠알라룸푸르 도심의 주요 쇼핑 스폿 간의 이동을 더욱 편리하게 해주는 페데스트리안 워크웨이 3 레고 왕국에 들어서자 순식간 동화 속 인물이 되고 만다 4 최고급 명품은 물론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을 내세운 쇼룸에 이르기까지 쇼윈도 하나하나가 발걸음을 늦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말레이시아 관광청 www.mtpb.co.kr ▶travie info 말레이시아 항공 하늘 위에서부터 말레이시아의 환대Malaysian Hospitality를 경험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의 국적기 말레이시아 항공을 이용하면 매일매일 인천과 쿠알라룸푸르 사이를 쾌적하게 오갈 수 있다. 특히, 오전 11시 출발이라는 스케줄은 출발과 도착에 있어 허둥대거나 허비할 수 있는 있는 여행 시작 당일의 일정을 여유롭게 해준다. 여행 후 도착 시간 역시 오전 7시 전으로 도착한 당일 바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최상의 스케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12년 7월 30일부터 에어버스사의 신규 A333 항공기가 인천-쿠알라룸푸르 노선에 도입되어 여유 있는 좌석 공간과 전원 공급 장치, 개인 스마트 스크린, 한국 영화와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등 한국 여행객들에게 보다 개선된 기내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한항공을 비롯한 타 항공사와 코드쉐어를 통해 다양한 노선에 공동 운항을 하고 있어 다양한 국가로 보다 편리한 여행이 가능하다. 2013년 2월부터는 One World Alliance 회원국의 일원으로 등록되어 보다 다양한 항공사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스마트한 여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02-777-7761 www.malaysiaairlines.com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 스카이 브릿지 투어┃위치 Jalan Ampang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화~일, 월요일 휴무) 입장료 성인 RM80, 어린이 RM30 홈페이지 www.petronas.com.my 파빌리온Pavilion┃위치 168 Jalan Bukit Bintang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0시(파빌리온 옆 카페거리는 새벽까지 운영) 홈페이지 www.pavilion-kl.com 스타힐 갤러리Starhill Gallery ┃위치 Jalan Bukit Bintang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0시 홈페이지 www.starhillgallery.com 레고 랜드LEGO LAND┃위치 Gelang Patah, Johor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주말과 국경일은 밤 20시까지) 입장료 성인 RM140, 3~11세 어린이와 60세 이상 RM110 홈페이지 www.legoland.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내 ‘정체’가 궁금해? 난 線 가지고 노는 놈!

    내 ‘정체’가 궁금해? 난 線 가지고 노는 놈!

    이미 숱하게 들어왔을, 그리고 숱하게 해왔을 ‘정체’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건축, 아트, 디자인 모두 하나이고 모두가 동반되는 표현”일 뿐이고 “디렉팅도 마찬가지”라 했다. 뻔한 질문과 대답보다 신관 1층에 있는 대나무 사진을 보는 게 낫겠다. 대나무가 세차게 흔들리는 사진인데, 그냥 사진이라고 말하기엔 수묵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은은한 달빛 내린 밤 같은 분위기에 엷게 번진 무채색 톤의 변주가 인상적이다. “아시다시피 대나무는 대개 군락을 이루죠. 저렇게 하나만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그게 뭐 대단한 거냐 하실 수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모두가, 누구나 물어보는 ‘정체’에 대한 답이다. 설혹 앞으로 더 엉뚱한 짓을 벌여서 남들이 보기엔 휘청휘청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에겐 동양화가 뿌리임을, 오랜 동양화의 소재 대나무에 빗대 말하고 있는 것이다. 3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백선(47) 작가. 정체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달력에 그려진 눈 휘몰아치는 설산(雪山) 그림에 반해 무작정 그렸다. 너무 열중하다 보니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중학교 때 그림 선생님을 정식으로 소개해줬다. 그렇다고 그림으로 뭘 해보겠다 생각한 건 아니었다. 목포상고 시절 반쯤 재미 삼아 미술대회에 나갔는데, 전국에서 붓질 좀 한다던 친구들 다 떨어뜨리고 1등으로 당선됐다. 그게 홍익대 동양화과로 이어졌고 거기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졸업 뒤 일하기 시작한 곳은 건축 스튜디오. 허드렛일부터 새로 배웠다. 그다음부터는 쭉 공간에 대한 작업들이다. 그러니까 건축이다. 옛 장인들의 냄새를 쫓다가 그들의 창살 문양을 확대 복사해 공간을 구성하기도 하고, 이를 여러 장소에다 응용하기도 하고, 아예 국수 가락에 비유해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설치 작업들을 진행한 경과는 전시장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모두 제시되어 있다. 그 맛에 차츰 동조하는 이들이 늘다 보니 불러주는 데가 늘기 시작했다. 홍익대 앞에 대안공간 루프도 짓고, 서울디자인페스티벌아트디렉터도 했다. 문화재청 자문위원도 하고 전주에 문을 여는 국립무형유산원의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모 은행의 강남지역 프라이빗 은행 같은 곳도 설계했다. 지금은 잠실에 들어서는 제2롯데월드 주거공간 디자인 작업도 시작해야 한다. 화선지에나 댔던 붓을 허공에다 자연스럽게 휘두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양화가임에도 건축을 하는 작가의 가장 큰 관심은 ‘동양적인 선’이다. 왜 선일까. 끊어내면서도 이어버리는 묘한 성격 때문이다. “백남준 선생님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한지를 가져다 마음껏 표현해보랬더니 다른 사람들은 그 위에다 무얼 그리고, 찢고, 물에 적셔 뭉치고 했는데 백남준 선생님은 등을 비췄다고 하죠. 한옥이란 일상의 체험이 오래되다 보니 선생님은 한지의 본질이 그 투과성, 그러니까 빛에 있다는 걸 아신 거죠.” 그래서 “아직도 수묵이란 무엇인가가 나에겐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형태이기도 하면서 공간이기도 하면서 생각이기도 한 수묵에 대해 20여 년간 4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해오면서 끊임없이 유희를 하고 있을 뿐”인 작가에게, 동양화가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은 결국 휘청휘청대며 잘 놀고 있는 작가에게 왜 놀고 있느냐 묻는 셈이 된다. 노는 건 잘 놀고 볼 일인데 말이다.(02)720-1524.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간사이-걷고 온천 먹고 온천

    간사이-걷고 온천 먹고 온천

    7개의 공동 온천장이 문을 여는 아침 7시. 간사이 효고현 기노사키 온천마을의 아침은 조용하고 또 부산하다. 어둠을 뚫고 벌써 ‘순례’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딸각딸각. 동트는 아침 온천장으로 향하는 게다 소리는 탁발에 나선 스님의 목탁소리 같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묘하게 중독되는 ‘온센 메구리’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온천의 나라다. 전세계 활화산의 10%가 일본에 있고, 유후인, 벳푸, 아리마 등 뜨거운 화산의 기운을 담은 유명 온천만도 수백 개다. 기노사키 온천은 이중 비교적 덜 알려진 후발주자지만, 최근 독특한 분위기와 테마로 주목받고 있다. 교토에서 출발한 기차는 2시간 반 만에 기노사키온센역에 도착했다. 온천 마을의 풍모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느낄 수 있다. 역 앞에는 마시는 온천인 ‘음천’과 마을에서 가장 큰 온천장 사토노유가 있다. 천천히 걸어서 1시간이면 버드나무를 심은 개천과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이 포근하고 소박한 온천마을을 웬만큼 다 돌아볼 수 있다. 이 마을에는 사토노유를 비롯해 7개의 공동 온천장이 있다. 마을 내 료칸에 숙박하면 료칸에 딸린 온천 외에 7개의 공동 온천장이 무료다. 10개의 탕을 갖춘 사토노유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온천장은 노천탕을 포함해 1~2개 탕을 가진 작은 규모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스파랜드식 온천이 좋다면 사토노유를, 열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섭씨 62도가 넘는 야나기유를, 아담한 히노키 욕조에서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고 싶은 사람은 만다라유를 추천한다. 고호리카와 천황의 황자인 안카몬이 다녀갔다는 고쇼노유의 폭포 노천탕, 온천의학자로부터 극찬을 받은 이치노유의 동굴탕도 이색적이다. 당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은 각각의 온천장을 이용하거나 1,000엔을 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7개 온천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목욕하는 것을 이곳에선 ‘온센 메구리온천 순례’라고 하는데, 이 중독성 강한 온센 메구리가 바로 기노사키만의 매력이다. 온센 메구리의 장점은 굳이 오랜 시간 무리할 필요 없이 짧고 다양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온천수는 보통 섭씨 25도에서 65도까지 매우 뜨겁기 때문에 15분 이상 탕에 있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온천장을 돌며 인증 스탬프를 찍고, 온천욕을 하고, 디저트를 먹고, 걷다가 추워지면 다시 목욕을 하는 이 순례식 온천법은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특히 목욕 후 나눠 먹는 바나나 우유의 경이로운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산책의 묘미가 각별할 것이다. 온센 메구리를 할 때는 입고 벗기 좋도록 유카타일본 전통 목욕 가운를 입는 게 필수다. 대부분의 료칸에서 유카타와 게다를 무료로 빌려 준다. 남녀노소,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유카타와 게다, 목욕 바구니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이유도 전혀 없다. ▶travie info 료칸 예약하기 기노사키 온천 료칸협회 홈페이지(kinosaki-web.com/en)에서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하거나 기노사키온센역 앞 안내센터에서 당일 예약하면 된다. 협회 소속 료칸에 숙박할 경우, 다양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7개 온천장 자유이용권을 받을 수 있으며, 역 앞 안내센터에서 료칸까지 무료로 짐을 부칠 수 있다. 12시부터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주요 온천장 사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도 무료다. 역 앞 안내센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1 기노사키는 7개의 온천장을 돌아다니며 목욕하는 온천 순례로 유명하다 2 야나기유의 열탕은 섭씨 60도가 넘는다 3 황자도 다녀갔다는 고쇼노유는 넓은 노천탕과 폭포탕이 특징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돌에서 온천이 솟아나다 기노사키 온천이 알려진 것은 최근이지만 그 역사는 1,4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전설에 의하면 도우치 쇼닌이라는 스님이 717년경 1,000일 동안 기도한 끝에 바위에서 온천이 솟아나게 했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13세기 초 지은 절이 마을 끝에 있는 온천사다. 절 초입에서 실제로 커다란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원천을 볼 수 있다. 최초의 온천장인 코우노유는 원천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인데, 다리를 다친 황새가 상처를 치유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그 이후로도 많은 유명인사들이 기노사키에서 요양했다. 일본에서 ‘소설의 신’으로 추앙받는 소설가 ‘시가 나오야’는 1913년 3주간 기노사키에서 머물렀고, 이를 바탕으로 <기노사키에서>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기노사키 온천에서는 이른 아침과 늦은 밤, 꼭 온천욕을 해보기 바란다. 이른 아침에는 지도도 필요없다. 온천장마다 피어오르는 따뜻한 증기가 이정표다. 온천사 주변을 산책한 후 탕에 들어가 차가워진 몸을 녹일 때의 짜릿함은 비할 데가 없다. 운이 좋으면 가장 먼저 온 손님에게 주는 작은 기념패도 받을 수 있다. 늦은 밤에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며 대나무로 둘러싸인 노천탕에 몸을 담가 보자. 가슴 아래로 느껴지는 뜨거움, 가슴 위로 엄습하는 팽팽한 한기는 자연이 내 몸에 전하는 최상의 상쾌함이다. 기노사키 온천 료칸 협회에 가입된 료칸은 107개에 달하는데,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이중 가장 유서깊고 고급스런 곳으로 니시무라야 료칸(www.nishimuraya.ne.jp/honkan)을 꼽을 수 있다. 1박 1인, 조식과 석식 포함 기준으로 2만8,000~4만8,000엔이다. 정원을 갖춘 전통적인 료칸 구조와 세심한 서비스, 조석식 가이세키 요리가 이곳의 매력이다. 1 기노사키의 타지마 쇠고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베 쇠고기의 원품종이다. 부드럽고 고소한 육질이 일품 2, 3 기노사키에서 잡히는 마츠바 게는 속살이 꽉차 쫄깃하고 담백하다. 대게철에만 생산되는 가니(게) 맥주와 함께 마시면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기노사키 온천에서 먹기 바다에서 가까운 기노사키는 해산물로 유명하다. 특히 11월부터 3월까지는 바야흐로 대게의 계절. 기노사키 인근 바다에서 잡힌 게를 ‘마츠바 게’라고 부르는데, 3년 이상 다 자란 참게를 잡아 굽거나 찜으로 먹는다. 여러 번의 탈피를 반복해 자랐기 때문에 속살이 꽉 들어차 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 마츠바 게 요리는 특히 지역 맥주인 ‘기노사키 맥주’, 대게철에 맞춰 겨울에만 생산되는 ‘가니게 맥주’와 함께 먹으면 일품이다. 역앞 거리에 대게 전문 식당이 많다. 이외에도 기노사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베 쇠고기의 원 품종인 타지마 쇠고기의 원산지다. 타지마 쇠고기는 매우 고소하고 부드럽다. 덮밥 종류는 비교적 저렴하고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온천 후 먹을 만한 시원한 디저트는 유노사토 온천 거리 중간에 있는 키야마치 아케이드에 많다. 글·사진 Travie writer 도선미 취재협조 린카이Rinkai 02-319-5876 ▶travie info 기노사키 온천 찾아가기 오사카, 고베, 교토에서 버스나 기차로 갈 수 있다. 오사카 우메다역 출발 기노사키행 버스는 매일 오전 9시30분, 오후 1시20분, 6시20분에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요금은 편도 3,600엔이다. 고베 산노미야역 출발 기노사키행 버스는 매일 오후 12시30분, 4시30분, 6시45분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요금은 편도 3,200엔이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교토와 신오사카에서 직행 열차가 오전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1시간 1대꼴로 운행된다. 신오사카 출발 요금 3,260엔, 소요시간 2시간 50분이며, 교토 출발 요금 2,520엔, 소요시간 2시간 20분이다. 간사이 지역을 넓게 여행하는 경우는 JR간사이와이드패스JR Kansai Wide Area Pass. 6,000엔를 구입하면 편리하다. 4일 동안 간사이 지역을 기차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며, 관광지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www.jr-odekake.net/global/kr/jwrp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DB를 열다] 1963년 서울 치룽 둘러멘 넝마주이들

    [DB를 열다] 1963년 서울 치룽 둘러멘 넝마주이들

    버려진 폐지나 빈 병 등을 주워서 파는 사람을 넝마주이라고 부른다. 넝마란 원래 낡고 해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이나 이불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싸리나무나 대나무로 엮어 만든 큰 망태기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집게로 폐품을 주워서 담는다. 큰 망태기의 올바른 우리말은 ‘치룽’이다. 아이들은 옷을 남루하게 입고 집게를 휘두르며 다니는 넝마주이를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보채면 “망태기 할아버지 부른다”며 겁을 주었다는 넝마주이를 망태기 할아버지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넝마주이들은 행인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범죄를 저지르기도 해 기피 대상이 되었다. 당국은 밑바닥 계층인 이들의 자활을 유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5·16 이후 넝마주이 직업제도를 만들어 등록제를 실시하고 집단합숙소를 만들었으며, 복장을 지정하고 작업구역도 정해 주었다. 당시 등록한 넝마주이는 882명에 이르렀으며 신분증도 만들어 주었다. 등록하지 않은 사람까지 더하면 서울에 1000명이 넘는 넝마주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지역마다 근로재건대를 만들었는데, 1963년 1월 18일 촬영한 사진에는 ‘근로재건대 남대문지대’라는 간판 글씨가 희미하게 보인다. 근로재건대는 나중에 자활근로대로 바뀌어 1980년대까지 있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남해 외딴섬 ‘추도’의 겨울

    남해 외딴섬 ‘추도’의 겨울

    해마다 겨울이면 전체가 물메기덕장으로 변하는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큰놈들은 얼추 아기 기저귀만 해서 물메기 말리는 풍경이 겨울 추위를 떨쳐버릴 만큼 넉넉해 보인다고도 했지요. 경남 통영의 난바다에 뜬 섬, 추도(楸島) 이야기입니다. 추도 사람들은 물메기 등을 따고, 널고, 말리고, 펴고, 열 마리 한 축으로 묶는 일을 제철 석 달 동안 쉬지 않고 되풀이합니다. 엄동설한을 마다 않는 그 정성은 고스란히 맛이 되지요. 통영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추도 메기를 장독대 등에 보관했다가 설날 제삿상에 올리기도 하고, 곶감 빼먹듯 겨우내 조금씩 꺼내 먹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독에 넣어둔 추도 메기가 바닥을 드러낼 쯤 푸른 봄이 찾아오는 거지요. 거제 외포항에선 긴 방파제 전체가 대구덕장으로 변한 이색적인 풍경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펄떡대는 대구들이 파란 바다 위에 내걸린 모습, 상상이 되십니까. 오전 7시. 해가 뜨는 시각이다. 통영여객터미널은 이때가 가장 번잡하다. 주변 섬들로 향하는 배들이 대부분 이 시간대를 전후해 출발하기 때문이다. 추도는 가깝다. 통영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관광객들에게는 그게 장점이다. 이른 아침, 배를 타고 들어가 섬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오후에 배를 타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숙박하는 것도 좋다. 오후 배로 들어가 하룻밤 잔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올 수 있다. 남해 난바다에 떠있는 섬이니, 날씨만 좋다면 해넘이와 해돋이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여객선에서 마주한 새벽 풍경이 기막히다. 멀리 한산도 등 섬 위로 빠알간 해가 얼굴을 내민다. 바다도 덩달아 붉게 충혈됐다. 배는 새벽이 선사하는 몽환적인 파란빛과 붉은 여명의 경계를 내달린다. 속도는 느리다. 통영에서 14㎞ 남짓 떨어진 추도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니 말이다. 한 시간여 금파(波)를 헤친 배가 미조마을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섬의 첫인상은 평이하다. 불퉁스러운 표정으로 배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섬 사내들과 초점 없는 시선으로 뭍 사람들을 구경하는 촌로들, 그리고 겅중대며 뛰어다니는 검둥개까지, 외딴 섬의 전형적인 풍모다. 한데 도드라진 풍경 하나가 이방인의 시선을 끈다. 물메기덕장이다. 강원도 황태덕장처럼, 물메기를 말리는 곳이다. 한곳에 몰려 있는 황태덕장과 달리 물메기덕장은 마을 곳곳에 퍼져 있다. 게딱지만 한 공간이라도 있다면 어디건 물메기덕장이 된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오르는 고샅길이며 골목 여기저기 물메기로 꽉꽉 찼다. 심지어 집 지붕 위에서도 물메기들이 꾸덕꾸덕 말라간다. 잡아서 널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지, 말리는 일이야 어려울 게 없다. 덕장에 걸어 놓으면 볕과 바닷바람이 알아서 말린다. 섬 주민 박금도(75)씨는 올해 물메기가 최고 조황이라고 했다. 자신을 포함해 4대째 추도에서 물메기를 잡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걸쭉하고 시원시원하다. “미기(물메기)는 (바닷)물이 뜨시면 안 나. 추붜야 나오지. 올겨울에 유난히 추붜가 (물메기가) 마이 났지.” 추도는 물메기의 고향이다. 통영 등에서 판매되는 물메기의 팔할은 추도산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물메기는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서 난다. 그런데 왜 하필 추도일까. 추도 앞바다가 산란지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동중국해 등에서 여름을 난 물메기는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한국 연안을 찾는데, 그곳이 바로 추도 인근 해역이라는 것이다. 한겨울의 물메기가 맛있는 것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물메기 수명은 1년 남짓. 대부분 산란을 마친 뒤 죽는다. 추도 사람들은 물메기란 표현을 내심 싫어한다. 조경렬(68) 대항마을 이장은 “그기 미기(메기)지 왜 물메기고?”라며 마뜩잖다는 표정이다. 오래전부터 섬 사람들에게 불려온 이름이 더 가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주민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게 또 있다. 뭍사람들이 흔히 ‘옛날에는 물메기를 생선으로 취급하지 않아 잡혀도 그냥 버렸다’고 평가절하하는데, 이게 틀렸다는 거다. 조 이장은 “여기선 (물메기를)버리지 않았다고. 묵고 살 것도 없었는데 애써 잡은 걸 와 버리겠노?”라며 아쉬워했다. 지금처럼 귀한 대접은 아닐망정, 몹쓸 생선 취급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추도 어민들은 모두 대나무 통발로 물메기를 잡는다. 플라스틱 통발을 쓰는 다른 지역의 어선들에 견줘 환경친화적인 전통 어법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그 탓에 대나무 통발을 수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11월 말쯤 마을 앞바다에 통발을 내린 뒤, 수선을 거듭하며 이듬해 3월까지 쓴다. 추도 사람들은 물메기가 본격적으로 나는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정도 번 돈으로 1년을 버틴다. 올해는 어장 형성이 다소 늦어 12월 중순쯤부터 본격적으로 물메기가 나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예년에 견줘 훨씬 많은 양이 잡히고 있다는 것. 집집마다 3동(100마리)쯤 수확하는 건 흔하고 5~6동씩 잡는 날도 있다. 이른 아침에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은 점심 무렵 돌아온다. 남정네들이 배에서 물메기를 내리면 아낙들은 마을 우물가에 모여 이를 손질한다. 물메기의 등을 따 내장과 알, 아가미 등을 깨끗하게 발라낸다. 아가미와 알은 젓갈을 담고, 두툼한 몸체는 여러 번 민물에 씻은 뒤 덕장으로 보낸다. 핵심 포인트는 여느 바닷물고기와 달리 민물에 씻어 말린다는 것. 주민들은 “바닷물에 씻으면 짭아서 못 먹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메기 손질은 일종의 품앗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너나없이 돕는다. 품삯은 물메기로 받는다. 이 또한 오랜 전통이다. 섬 사람들에게 물메기는 현금과 다름없을 터. 1동에 두 마리가 묵계다. 물메기는 꼼칫과의 물고기답게 살이 흐물거린다. 섬 주민들은 회가 별미라며 ‘강추’하지만, 쫀득한 살점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에겐 어색할 수 있다. 맑은탕으로 끓인 국물은 더없이 시원하다. 매생이죽처럼 ‘술술’ 넘어간다. 남해 지역 술꾼들이 속풀이 음식으로 즐겨 먹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물메기는 무엇보다 말려서 먹는 게 일품이다. 가격도 생물보다 훨씬 비싸다. 국에 넣어 끓이면 딱딱했던 물메기가 부드럽게 풀어지며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술안주로도 최고다. 굽거나 튀긴 다음 고추장 등에 찍어 먹는다. 말린 물메기는 택배의 경우 한 축(10마리)에 10만원부터 17만원까지 4등급으로 나눠 팔고 있다. 현지에서 사면 훨씬 싸다. 상품의 경우 10만원을 훌쩍 넘기지만, 하품은 4만~5만원짜리도 있다. 추도는 작은 섬 치고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무엇보다 물색이 곱다. 맑은 날이면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파란색 젤리처럼 보인다. 한 술 떠먹으면 입가에 파란 물감이 묻을 것 같다는 식의 농짓거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추도는 ‘큰산’을 경계로 대항마을과 미조마을로 나뉜다. 외지인들이 종종 큰산을 ‘희망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섬 주민들은 이를 영 탐탁지 않게 여긴다. 기암들로 이뤄진 해안은 인적 드문 섬 동쪽, 그러니까 샛개부터 펼쳐진다. 샛개 아래로 내려가 꼼꼼하게 살펴야 기골이 장대한 해안절벽과 만날 수 있다. 샛개는 해돋이 풍경이, 미조마을 용두암은 해넘이 풍경이 멋들어지다. 큰산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다. 다만 3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겨 오르는 길이 녹록지는 않다. 큰산 정상엔 뜻밖에 너른 안부가 펼쳐져 있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친 나무들 사이로 남해의 쪽빛 바다가 얼굴을 내민다. 오르는 길에서 세월의 더께를 걷어 내면 옛 다랑논과 집들의 흔적이 튀어나온다. 조 이장은 농촌체험을 원하는 도시인들에게 작은 다랑논들을 임대한다든지, 큰산을 통해 미조와 대항마을을 잇는다든지 해서 섬 관광을 활성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때쯤 되면 오르기 수월하고 볼 것도 많은 ‘큰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은산엔 무인등대가 있다. 추도에서 오후 배로 통영에 나왔다면 반드시 산양일주도로에 들를 일이다. 맑은 날이면 피보다 붉은 노을과 만날 수 있다. 산양일주도로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달아공원이다. 예서 마주하는 남해 풍경이 장쾌하다. 당포대첩지 인근의 원항마을 해넘이 풍경도 빼어나다. 당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함대가 왜구의 배 21척을 괴멸시킨 전승지다. 달아공원이 웅장하고 서사적이라면, ‘장군봉’ 중턱의 마을 언덕에서 맞는 해넘이는 한결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겨울 남해의 풍성한 맛과 만나고 싶다면 거제 장목면의 외포항으로 향하는 게 순서다. ‘대구의 본고장’쯤 되는 포구다. 대구는 동해안에 서식하다 겨울철 산란을 위해 남해안으로 내려오는데, 장목 앞바다가 그 길목 노릇을 한다. 해마다 12~2월이면 장목 일대에 대구어장이 형성된다. 대구는 수컷이 비싸다. 암컷은 알을 빼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맑은탕이야 익숙한 음식이고, 대구찜이 독특하다. 묵은 김치에 대구를 싼 다음 쪄 낸다. 외포항 주변 대부분의 식당들이 대구찜 2만 5000원, 맑은탕 1만 5000원(이상 1인분)을 받고 있다. 생대구 수컷 최상품은 6만~7만원선, 말린 대구는 2만 5000~5만원 선이다. 외포항에서 가거대교 방향으로 10분 남짓 가면 장목항이다. 적요한 포구에 들면 일부 혹은 전체가 노랗게 칠해진 배들이 눈에 띈다. 잠수기 어선들이다. 일반 어선과 달리 잠수부들이 바닷물 속에서 어패류를 캐는 것이 주업이다. 현지에선 ‘머구리’라고 부른다. 배가 한결같이 노란색인 건 ‘잠수부들이 바닷속에서 작업 중이니 지날 때 조심해 달라’는 경고의 뜻이다. 요즘 주로 나는 건 키조개와 대합 그리고 우럭(조개)이다. 특히 키조개는 관자가 가장 통통해지는 시기여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한 개 1000~1500원. 우럭은 1㎏에 1만 5000원선이다. 대합은 시세 차가 큰 편인데 1㎏에 1만 50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포구 바로 앞의 ‘제1, 2구 잠수기 수협거제지소공판장’에서 살 수 있다. ■ 여행수첩 →가는 길:통영여객터미널(644-0364)에서 한려페리호가 오전 7시, 오후 2시 30분 추도까지 오간다. 오전 배는 미조마을을 먼저, 오후 배는 대항마을을 먼저 들른다. 어느 마을에서 타도 상관없지만, 시간 안배는 잘 해 두는 게 좋다. 어른 편도 7550원. 조경렬 이장(017-566-7115), 미조마을 심춘우 이장(010-9313-2628). →잘 곳:여관은 없다. 민박을 해야 한다. 하루 4만~5만원. 음식점도 없다. 민박집에서 주문해 먹어야 한다. 한 끼 7000원이다. 메기탕은 1만원. 샛개 쪽에 명리의 집(010-4571-7759) 펜션도 있다. 글 사진 통영·거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주자이거우(구채구)에 첫눈 내리던 날

    주자이거우(구채구)에 첫눈 내리던 날

    주자이거우(구채구)에 첫눈 내리던 날 오전 6시30분. 성도공항 B1 게이트 앞은 임시 피난소 같은 분위기였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보는 것도 잠시, 기다림이 2시간째 이어지자 체면 따질 것도 없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6시간이 지나자 공항에 딱 하나 있는 카페는 포커에 열중하는 중국 사람들과 빙고게임에 푹 빠진 우리 일행으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8시간째,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항공편을 포기하고 버스를 선택했다. 올해 첫눈, 주자이거우에 15cm 눈이 내린 날이었다. 경해의 물은 모든 것을 비추어낸다. 나뭇가지 액자가 없었다면 어느 것이 진짜 하늘이고 물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하늘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물에 새가 날아다닌다 ”가까이서는 제대로 된 청옥색 물빛을 보여 주지 않았지만 한 발짝 뒤로 갈 때마다, 조금 더 멀어질수록 더욱 아름다웠다. 오채지의 에메랄드 심장으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동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가라앉고, 조그만 금속덩이가 남긴 파문이 그 뒤를 마저 좇다 이내 그 물빛으로 빨려 들어갔다.” ▶travie info 주자이거우 여행정보 비자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비자는 발급까지 넉넉잡아 5일 정도 걸린다.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통화 중국 위안(CNY). 달러도 받지만 거스름돈이 없다는 이유로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공항에서는 한국 돈도 받는다. 전압 220V 항공 사천항공과 아시아나 직항이 2013년 3월부터 주 5회씩 운항한다. 현재는 사천항공 주 2회, 아시아나항공 주 5회 운항 중. 홈페이지 www.jiuzhai.com (영어, 중국어) 기타 -돈을 내고 써야 하는 화장실이 있으니 잔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튜브형 여성 화장품을 가져간다면 잔여량이 적은 것을 추천한다. 해발이 높은 곳에서 뚜껑을 열었다간 끝없이 나오는 내용물이 아까워 눈물을 흘릴지도. 터널 속 역주행, 천하비경으로 가는 길 청두成都,성도에서 주자이거우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청두공항에서 구황공항까지 한 시간의 비행 후 1시간 30분 동안 차로 가는 방법. 짧은 시간이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절경에 엄지손가락이 모자란단다. 두 번째는 버스. 중간중간 쉬는 시간까지 8시간 정도 걸린다. 내년이면 일부 구간의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1시간 30분을 절약할 수 있다지만 아직은 너무나 긴 여정이다. 청두에서 주자이거우로 가는 길은 쓰촨성의 4개의 강(창강长江, 민강岷江, 타강沱江, 가릉강嘉陵江) 중 민강을 따라 이어져 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피해지역을 지나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8도 지진의 흔적과 새롭게 정비되고 있는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대지진의 주요 피해 지역이었던 문천과 모현은 ‘남자는 용맹하고 여자는 천하미색’이라는 ‘강족’의 자치구 지역이다. 19만명으로 집계되던 강족은 대지진 이후 정확한 인구수를 집계할 수 없을 정도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은 집과 도로를 정비하는 등 새로이 탈바꿈하고 있다. 지형을 바꿀 정도로 강력했던 8도의 지진이 50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청두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던 것은 청두의 두터운 모래층 때문이란다. 가는 길은 8시간의 기다림으로 잠이 달아난 것도 있었지만, 차창 밖 풍경과 잘 버무려진 가이드의 맛깔 나는 설명을 듣는 재미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길은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했다. 민강의 줄기와 높은 산 사이의 마을을 피해 도로를 내다보니 대부분이 2차선이다. 근데 이 도로의 중앙선이 그렇게 무력할 수가 없다. 상행 차량이 많으면 상행선이 됐다가, 하행 차량이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2차선이 됐다. 25인승 버스는 제대로 된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 2차선 도로를 제멋대로 달렸다. 터널은 더 짜릿했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감은 듯했다. 어두운 터널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널을 뛰는데, 그 속에서 트럭들을 추월하는 운전기사의 기술은 가히 신의 경지였다. 우리 일행은 차가 아슬아슬 곡예를 넘을 때마다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이러저러해서 거의 뜬 눈으로 8시간을 달렸다. 구황공항은 폐쇄되어 있었다. 내린 눈 때문에 단 한 대의 비행기도 움직이지 못했단다. 비록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했지만 버스를 선택한 건 잘 한 일이었다. 천재지변으로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둠 터널의 심장 내려앉는 드라이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2012년 15cm의 첫눈이 안겨 준 첫 경험은 공항에서 먹는 도시락, 목숨을 건 대륙의 버스 드라이브, 그리고 주자이거우의 숨 막히는 설경으로 이어졌다. 1 나뭇잎들이 솜이불을 덮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답답한지 조금씩 이불을 걷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2 해발과 지도를 보고 등산화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잘 닦여진 ‘잔도’가 있어 신발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인이 손을 잡고 걸으면 딱 좋을 폭이다 ▶travie info 고산병 증상과 대처방법 증상 고산병은 해발 2,000미터부터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상태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 과자나 커피믹스 봉지가 빵빵해지는 것처럼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혈관이 팽창하면서 체내의 산소가 고갈된다. 두통이 있다거나 갑자기 나른해진다거나 속이 울렁거리면 일단 고산병의 초기증상을 의심해 봐야 한다. 예방 고혈압이나 폐질환, 심장병 증세가 있다면 해발이 높은 지역에서는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갑자기 뛰면 위험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산소고갈에 대비해 산소통을 준비고 물을 수시로 마시도록 한다. ‘다이아목스DIAMOX’라는 약도 있는데, 증세에는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 판다해에는 티베트족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사진요청에 기꺼이 응하는가 하면,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원한다면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4 수정구에 있는 수정채 마을입구에 오색 깃발 ‘룽다’가 휘날린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적색은 태양, 황색은 땅, 녹색은 강, 청색은 하늘, 백색은 구름을 상징한다 5 청두 금리錦里거리는 삼국시대를 재현해 놓은 거리로, 곳곳에 스민 풍경이 카메라를 쉬지 못하게 한다. 갖가지 먹거리와 기념품을 살 수 있다 굽이굽이 다가가 숨겨진 보석함을 열다 용감한 산신 달과達戈가 아리따운 여신 색모色嫫를 흠모해, 뜬 구름으로 거울을 만들어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색모가 실수로 그 보물 거울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고, 그 조각들이 108개의 호수가 됐다. 이 거울 조각들은 해발 4,000m의 산들에 숨어 있다 1970년대 삼림벌채에 나선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전설 그대로 하나같이 맑고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가 협곡을 따라 Y자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혼자 두고 몰래 봐야 할 것을 실수로 인간 세상에 떨어뜨린 비취빛의 아름다운 목걸이,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다. 중국 사람들조차도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주자이거우는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고, 1997년에는 세계생물권보호구로도 지정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주자이거우는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하지만 겨울의 주자이거우는 사방이 눈에 덮여 모든 것이 ‘눈꽃’일 뿐이었다. 성수기에는 400여 대의 셔틀버스가 주자이거우의 세 계곡을 순환한다. 입구에서 첫 번째 계곡인 수정구樹正溝를 따라 15분쯤 달리면 낙일랑폭포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은 전죽해와 오화해, 진주탄폭포와 경해가 있는 일칙구日則溝, 왼쪽은 장해와 오채지가 있는 칙사와구則渣漥溝다.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오른쪽으로 간다. 버스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지 않은 경우에는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물빛이 다르다. “우와! 우와! 진짜 예쁘다.” 탄성을 지르는 우리가 재미있는지 가이드는 “뭐 이런 게 예뻐요?”라며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되받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전죽해箭竹海에 도착했다. 키가 작고 줄기가 약한 대나무의 일종인 전죽이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평생 바다 한번 보기 힘든 중국 사람들이 넓게 펼쳐진 호수에 ‘海바다 해’를 붙였다. 호반 주변을 에워싼 대숲이 중국 무협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역시나 중국 영화 <영웅>의 무대였단다. 영화를 찍을 땐 전죽해의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다 한다. 판다해雄猫海로 내려가는 길, 물 속에서 죽은 나무가 썩지 않는 것도 신기한데, 그 나무에서 다른 나뭇가지가 자라고 있다. 민산산맥에서 흘러드는 석회 성분이 죽은 나무의 표면에 붙어 썩지 않는 작품을 만들면 태양빛이 옥색, 에메랄드색, 연초록색, 비취색의 조명을 비추어 수장한 예술품을 빛나게 해준다. 판다해는 팬더가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은 관광객을 무서워해 낮에는 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 일대에 팬더가 산다고 하니 저 멀리 숲의 서걱거림이 그들의 자취가 아닐까 하는 상상에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판다해에는 티베트 사람들이 민속 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며 의상 체험을 권유하거나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불구佛具인 전경통轉經筒, 소리가 예쁜 종이 달린 가죽 열쇠고리도 보인다.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내가 자리를 틀고 앉았다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미련을 버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주를 모아놓은 듯, 누군가가 엄청난 양의 진주를 쏟아내고 있는데, 한 알 한 알이 뿜어내는 그 영롱함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진주탄을 지나 진주탄 폭포로 이어지는 길을 무언가에 홀린 듯 걸었다 방울방울 영롱한 진주와 에메랄드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 위로 눈 폭탄이 쏟아져 내린다. 낮이 되어 날이 풀리면서 삼나무에 소복하게 쌓였던 눈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통 단풍이 드는 9월과 11월 초순까지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어 하루에 많게는 2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다. 하지만 중국의 4대 절경인 주자이거우의 물빛에 집중하려면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눈 내린 겨울이 오히려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1월 중순부터 입장료도 반값으로 내려간 상태다. 삼나무의 녹색이 조금씩 진해지는 산 너머에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의 설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빛이 서서히 방향을 바꾸더니 수줍게 봉긋 솟아오른 설산 발치에서부터 오색의 꽃밭이 펼쳐진다. 오화해五花海다. 지명 그대로 다섯 빛깔의 꽃들이 만발한 바다. 누군가 밟아서 망쳐 버릴까 봐 한 방울씩 채운 호수는 바닥 수초의 작은 움직임까지 생생하다. 두 눈에는 구름 그림자를 따라 수시로 변하는 물빛이 차오르고, 머릿속은 ‘많이 차가울까?’, ‘손을 담그면 내 손도 오색으로 물들까’ 하는 생각에 어질어질하다. 보이지 않는 저 깊은 곳 수초가 만들어 내는 세상에 대한 상상으로 멍해질 때쯤 일행들과 멀어질까 급히 뒤 돌아보니, 그들도 나처럼 넋 나간 표정으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해를 가리려고 칭칭 감았던 머플러를 풀어 버렸다. 주자이거우에 모든 세포를 집중해서인지 살짝 열이 오르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다 내보이는 자연 앞에서 나를 가리는 것이 도리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과연 공기는 살짝 시리면서도 달큰했다. 진주탄珍珠灘의 이끼 융단 위로 드리워진 고드름 커튼 사이사이 수억개의 진주알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암반 위엔 수류에 따라 이끼가 끼고, 그 이끼 위에 석회질이 붙고, 오돌도돌한 표면을 지나는 물은 그 요철에 부딪혀 방울방울 튀어 오른다. 오채지五彩池의 다섯 빛깔이 한 알 한 알 다듬어져 구르는 듯, 200m의 너른 암반을 뒤덮은 진주들은 설산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자 일제히 숨겨 왔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 바닥에 부딪혀 깨어지기 직전까지 영롱한 빛을 잃지 않는다. 더 추운 겨울이면 얼어붙은 진주탄 폭포는 바위 위에 부드러운 명주실을 걸쳐놓은 듯 가느다란 물줄기가 위태롭게 얼어 감히 손댈 수 없는 자태를 뽐낸다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소리를 너무 질렀다. 어쩔 수 없는 여자인지라 작고 반짝이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으나, 구채구가 숨겨둔 보석은 주머니에 넣을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어쩌다 손에 쥐었다 해도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탐이 났다. 색모가 떨어뜨린 거울처럼 하늘과 산을 그대로 비춰내는 경해鏡海도 포기했다. 그렇다 해도 오채지는 포기하기 힘들었다.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혀 있어 샘물을 채워도 겨우내 얼지도 않고 그 빛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 어느 호수보다 맑아서 아름답고, 맑아서 안타까웠다. 주자이거우에 내린 첫눈은 이내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진다. 출출할 때 먹으려고 가방 속에 넣어둔 귤을 잊고 있었다. 셔틀버스 안에서 꺼낸 귤은 냉장고에서 막 꺼낸 것처럼 차가웠지만 미열이 오른 볼에 닿으니 이내 따뜻해졌다.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엄마가 쥐어준 찐빵을 두 손 가득 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따뜻해 보였으리라.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윤희진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주)사천항공, 그린월드투어 1 이름 참 잘 지었다. 넓은 꽃밭이었어도 충분히 멋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맑은 호수가 한 겹 더 들어가니 오화해, 과연 꽃이 만발한 바다다 2 수정구에 위치한 수정채는 주자이거우에서 볼 수 있는 3개의 마을 중 하나다. 판다해에서 파는 기념품을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기도 하다 3 뿔을 직접 썰고, 갈아서 만드는 빗은 튼튼해서 세찬 바람에 제멋대로 엉킨 머리카락도 한번에 빗을 수 있을 것 같다 4 고산에서 나는 메밀로 만든 ‘칭커빙’은 흔히 보는 중국식 호떡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고소하다. 하나에 5위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국악기, 내 손으로 만들어요

    국악기, 내 손으로 만들어요

    국립국악원은 겨울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을 위한 방학 특강 ‘국악기 제작 체험’을 새달 21~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진행한다. ‘국악기 제작 체험’은 책으로만 국악기를 배운 아이들에게 소리를 만들면서 우리 음악의 원리를 익히고,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 음악의 음은 ‘12율’ 체계로, 한 옥타브를 12개로 나누는 서양 음계와 같다. 서양 음악은 일정하게 12등분을 한 반면 우리 음악은 정교한 수학·과학적 원리로 정한 ‘삼분손익법’을 따른다. 기준 음을 내는 대나무관(율관)을 만들고, 이것의 길이를 삼등분해 차례로 빼기와 더하기를 반복해 음정을 만드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이런 방식에 따라 대나무관에 지공을 뚫으면서 국악기에 담긴 수학과 과학의 원리를 이해한다. 또 지공과 취구를 다듬은 뒤 명주실로 여미는 작업을 거쳐,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단소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참가 대상은 초등학교 3~6학년생. 국립국악원 국악교육 전문사이트인 e-국악아카데미(www.egugak.go.kr)에서 오는 28일부터 2월 1일까지 닷새 동안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는다. 온라인 추첨으로 80명(강의당 20명)을 선발한다. 참가자 발표는 2월 4일 국립국악원 홈페이지(www.gugak.go.kr)와 e-국악아카데미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참가비는 1인당 5000원. (02)580-3356.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탈북여성 TED 선다

    탈북여성 TED 선다

    “모든 사람들은 꿈을 꿉니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사람들만큼 꿈꾸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번 행사는 정말 엄청난 기회입니다. 탈북자와 그 가족들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를 전 세계인이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합니다.” 오는 2월 말 한 탈북 여성이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무대에 서서 자유를 향한 북한 주민들의 열망을 전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18분. 하지만 이 연설은 동영상으로 제작돼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전파된다. ‘퍼뜨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열리는 세계 최고의 지식 나눔 행사 ‘TED 콘퍼런스’에 설 이현서(32)씨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TED는 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됐다. 연설 시간이 18분으로 제한돼 ‘18분의 지식 향연’으로 불린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TED 강연의 재생 횟수는 10억건이 넘고 롱비치 행사장에서 직접 강연을 들을 수 있는 2013년 콘퍼런스 티켓은 7000달러의 고가에도 이미 지난해 봄 매진됐다. 올해 콘퍼런스는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젊음, 지혜, 미지’를 주제로 열린다. 빌 게이츠, 빌 클린턴, 제임스 캐머런, 앨 고어 등 세계 최고의 명사들이 연설하는 무대에 이씨가 서게 된 것은 지난해 TED 측이 도입한 ‘글로벌 오디션’ 덕분이다. TED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은 지난해 “평범하지만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일반인을 무대에 세우겠다”면서 세계 14개국에서 오디션을 개최했다. 서울에서는 지난해 5월 24일에 열렸다. 전 세계 참가자들을 상대로 동영상 투표가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이씨를 비롯해 카네기홀에서 한국인 최초로 시즌 개막 독주회를 연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27·여)씨, 중학생 활(弓) 제작자 장동우(15)군, 디자이너 이진섭(34)씨 등 4명이 최종 34명에 선정돼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가장 많다. 일본은 단 1명만 선정됐고 중국은 2명이다. 이씨는 서울 오디션에서 2007년 탈북해 중국, 한국, 라오스, 다시 한국을 오가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아 여러 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씨는 “깡마른 채 기차역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마와 아기, 국경 건너 보이는 중국 도시의 네온사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곳을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왔지만 가족을 북에 남기고 온 것과 경제적인 문제, 정체성 문제 때문에 힘든 날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서울 신사중학교 3학년인 장군은 컴퓨터 게임 대신 전통 활 만들기를 취미로 하는 독특한 소년이다. 장군은 “어느 날 우연히 아파트 근처 화단에서 대나무 조각을 주웠고 반항심에 구부려 보다가 활이라는 장난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군은 자신이 좋아하는 터키와 미국 원주민의 활을 모티브로 한 자신만의 활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한국의 전통 목궁과 똑같이 생겨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는 “제가 꿈꾸는 최고의 세상은 활의 섬유질처럼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것, 그것이 보토피아(Bowtopia)라는 이상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TED 측은 올해 콘퍼런스에 U2의 보노, 작가 릴로퍼 머천트,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 등 예년과 다름없이 수많은 명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림자놀이/이위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림자놀이/이위발

    당신은 그림자 하나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와 내 가슴에 깊숙하게 드리워 놓고 내보다는 당신 그림자가 더 황홀하다고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려고 하지만 연꽃보다는 연꽃의 그림자가 대나무보다는 대 그림자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그림자는 숲 뒤편에 있고 향나무가 디디고 선 뜰 아래에 있고 강물에 있고 내 마음 속에 있고 그림자 속에 달이 있는데…
  • 사자성어로 본 은행권 신년 화두…‘리스크 관리’ ‘위기극복’

    그 어느 때보다 올해 금융권의 경영환경이 열악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2일 업무를 시작한 각 은행들의 신년사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은행들이 고민 끝에 골라낸 사자성어도 지난해와 다르게 ‘위기 극복’과 연관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운외창천’(雲外蒼天·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을 새해 화두로 제시하며 “어려울수록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하면 희망찬 내일을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실패 등을 염두에 둔 말로 풀이된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임직원들에게 ‘다난흥방’(多難興邦·어려움이 많을수록 서로 단결하고 분발해 부흥시킨다)의 마음가짐을 주문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아문센 경영’을 내세웠다. 인류 최초로 남극에 도달한 탐험가 로알 아문센처럼 잠재적 위험 요인 등을 철저히 분석해 재무건전성을 튼튼히 하자는 주문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우직지계(迂直之計·가까운 길을 곧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병법 지혜)를 마음에 새겨 멀리 보는 안목으로 현재의 역경을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을 낙점했다. 그동안 이뤄온 결실을 발판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한 발 더 다가가자는 뜻이다. 김 회장은 “신속한 의사 결정도 중요하지만 리스크를 철저히 분석하고 검증하는 자세도 생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어 나가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넌다)를 인용하며 “어려운 때이지만 자신감을 가지라”고 독려했다. ‘담합’이 의심되는 곳도 있다. 신동규 농협금융 회장과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나란히 ‘유지경성’(有志竟成·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을 뽑아들었다. 이를 통해 신 회장은 “비상경영으로 위기 돌파”를, 김 행장은 “성장과 고용 지원”을 각각 강조했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따로 사자성어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위험 관리와 고객정보 보호 등을 역설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한겨울을 나는 ‘운근동죽’(雲根凍竹·촉촉한 뿌리의 언 대나무)처럼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주문했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해외시장 공략을 통한 신규 수익원 발굴을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섭씨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에도 얇은 셔츠에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친 채 나타났다. 2007년 겨울 전남 진도 서망항의 꽃게잡이배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편의점과 서초구 서초동 주유소, 충남 아산의 돼지농장과 당진의 자동차부품공장 용역직, 강원 춘천의 오이 비닐하우스까지 거친 그의 이력으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이력에 어울리지 않게 손가락이 하얗고 길었다. 춘천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스물여섯 무렵부터 한 달 죽도록 일한 대가로 100만원 남짓 쥐는 밑바닥 일터들을 맴돌았다. 위장취업의 불온함, 그 흔했던 문학수업,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돈이 필요해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중학생 때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꿈꿨던 것을 편의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던 2008년 가을쯤, 신림동 고시원의 가로 1.2m에 세로 2.3m 방에서 기억해 내고는 농업, 축산업, 제조업 일자리를 모두 거친 뒤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부제로 거느린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을 쓴 한승태(31·필명)씨를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만났다. 그는 서문에 ‘누구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보여주고 싶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힐 게 분명한 사소한 사항들로 책을 가득 메우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의 의도대로 깨알같은 사연들이 넘쳐난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게 지난해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원고를 쓰고 돈이 떨어지면 일하는 식으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도배일을 하고 있고요. 그냥 무거운 것 들어주고 기술 배우는 수준이지요. 일당 5만원입니다.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서 일하는 팀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은 연락이 안 와 놉니다. 일 있는 날 전화 오면 형편 닿는 사람이 일하는 식이지요. 제가 지금 거주하는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도 저와 비슷한 또래,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책은 어떻게 낸 거지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지난해 가을부터 쓰기 시작해 올해 4월 마쳤습니다. 제 책에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출판사를 골랐는데 그게 시대의창이었습니다. 원고 일부를 읽어보시고 곧바로 연락이 와 나머지를 모두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보냈더니 곧바로 일주일이 안돼 책을 내자고 했어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편집자 이정남씨는 “워낙 원고 정리가 잘 돼 거의 손 댈 것이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책의 성격상 정확한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학으로도 읽힐 수 있어 출판사 입장에서 포지셔닝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한씨를 통해서 들으니 출판사는 대통령선거와 새 정부 출범 등의 워낙 큰 이슈에 묻힐까 우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 쓰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홀가분한 느낌이었습니다. 짐을 벗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썼으니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지요. 전 그냥 제가 떠돌던 곳들이, 동시대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기울여주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이 멈춘 듯 공존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느껴지고 했어요. 해서 이쪽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살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다 마친 셈이지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어요. -네, 그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요. 스스로 많이 닮고자 노력했어요.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요. -정말 쓰는 게 즐거웠는데요. 쓰는 동안 제가 갖고 있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지, 쓰는 것은 즐거웠어요. 과연 (독자들이) 받아주기나 할까, 계속 글만 쓸 수는 없어 생계비를 버느라 잠깐 멈추고 그랬지요. 제 머리 속에 들어 있던 거를 다 쏟아냈으니 만족합니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말고는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술도 못 마시면서 배 위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재미있는 게요, 돈 많은 사람들은 막 먹이고 그럴텐데요. 그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입이 하나 줄면 그게 좋은 거예요. 술 마시라고 하는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너 안 먹으면 좋지, 내가 더 먹을 수 있으니’ 이렇게 돼요. →워낙 키가 크니 군대에서 혹시 ‘고문관’ 아니었나요. -네, 키만 컸지.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특히 제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래도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좋게좋게 넘어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책에는 비닐하우스 여주인과 다툰 뒤 하우스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을 때-그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그는 정말 키가 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와 웃다가 짐짓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쩼든 큰 키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특별히 그런 일 구하다 보면 키 큰 사람 좋아해요. 전구 가는 용도(?)로도 쓸모있지만,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이 토익이나 뭐 그런 것들이 스펙이 되듯 제게도 스펙이 되는 거지요. 인력시장에서 전 스펙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한국사람이지, 30대 초반이고 키도 아주 크고, 최고의 스펙이라 할 수 있죠.(웃음)   처음 출판사를 통해 인터뷰를 섭외할 때부터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았다. 두 가지 이유를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었다. 역시나 그랬고 몇번의 밀당 끝에 마주앉기는 했다. 앞으로도 평생 비슷하게 살텐데 취업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사진 촬영을 극구 마다하는 그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돼지농장에서 Belle & Sebastian의 노래들을 흥얼거렸다는 대목에서 지독한 패러독스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던데요. 늘 책보고 음악 듣지요. -예. 배에서도 일기를 썼어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책이 된 거고요. 늘 떠돌아 다녔으니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할 상황도 아니었고. 만난 사람만 만나고 그렇지요. →형님들이나 아저씨들이 뭐라 하지 않나요. -상관 안하세요. 배 처음 탈 때는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는데 그곳 사람들, 의외로 관대해요. 처음엔 한두 번 뭐라 핀잔도 하고 눈치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용납되고. →돼지농장에서 자돈(子豚)을 버리는 끔찍한 경험 같은 것들이 내면화되거나 해 괴롭거나 하지는 않는지요. -물론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 있지요. 누구나 그러는 건데 가끔식 떠오르거나 연상되곤 하지요. 길에서 죽은 고양이 시체를 봤을 때 그런 것들. 굳이 그런 이미지 때문에 생활을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또 워낙 제가 잘 잊는 편이라. 너무 자연스럽게 돼지농장 사람들의 꿈은 다 로또였어요. 사회 초년생들이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을 밟겠지만 그곳 사람들이야 극단적으로, 초월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지요. 그곳을 빠져나오든가 굶든가 둘 중의 하나인 거지요. 혼자인 저야 논외지만 그들은 가족도 있고 아이 공부도 시켜야 하고 부모도 모셔야 하고, 빚도 있으니까. 현재와 미래를 단계적으로 그려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럴 경황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더 공상적이 된다는 그런 느낌으로요. →함께 일했던 분들이 보고 싶거나 그런가요. -연락하고 싶기는 한데, 이를테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일만 하며 어느 곳을 떠돌다 만나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선뜻 연락하기도 힘들고 같이 일할 때에는 제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분들 역시, 멀리 있는 인연을 가까이 끌어 당기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분들끼리는 당장 배 위나 돼지농장에서 닥친 상황,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만 신경쓰니까. 그런 연락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전업작가로 살려면 한달 얼마 정도? 물론 다른 이에 견줘 한참 낮겠지요. -한달에 80만~90만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는 공간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달에 방세 30만~35만원, 식비는 30만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문학 인생의 설계 같은 게 있나요. -당장은 없어요. 제 특성이기도 하지만요. 눈앞의 것만 확 처리하는 게 바쁘니까. 글 쓰며 살아야겠다,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채워넣지 못하죠.. →2권을 생각하나요.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책은 아마 다른 주제일 겁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이 책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슴에 뒀던 것은 사람들이 위로와 위안 받았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생각했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앞에서 얘기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함께 최근에는 존 툴 케네디가 쓴 ‘바보들의 결탁’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미국의 한 또라이 백수가 부모님 재산 축내며 살다가 안되겠다 싶어 직장 구하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워낙 이 친구 정신세계가 독특해 계속 쫓겨나는 일을 실었어요. 얼핏 굉장히 우울하게 들리는 얘기인데 너무 유쾌하게 썼어요. 캐릭터가 특이하고 좋아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1984’나 ‘동물농장’을 보고 오웰이 유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앞의 책을 보면 유머가 충만하죠. 제 나름대로 중점을 뒀던 대목은 이 책에도 진지한 정치적 사회적 성찰을 요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이런 이슈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치밀하고 객관적인 르포르타주와 특이하지만 잘 쓴 문학작품의 경계가 혼재해 포지셔닝이 쉽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겐 후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좋은 읽을거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사회적 성찰은 이미 좋은 책들이 많고 제가 깊이를 따라갈 수 없이 훌륭한 책들이 많아요. 제 책은 아카데믹하기보다 엔터테인먼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비꼬는 글의 맛, 그런 것을 좋아해요.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나 영국 작가들에 그런 게 특히 많은데 그런 걸 살리려고 조금은 했어요. →그러면 앞으로도 알바하고 글 쓰고, 그런 그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겠네요. -네. 새 봄에는 누가 소개해줘 경남 합천의 대나무농장에 가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틈틈이 계속 글 써야죠.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과속 스캔들(KBS1 밤 12시 20분) 한때 아이돌 스타로 10대 소녀 팬들의 영원한 우상이었던 현수. 지금은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은 잘나가는 청취율 1위의 인기 라디오 DJ다. 그러던 어느 날 애청자를 자처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이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현수가 과속해서 낳은 딸이라며 우겨대기 시작하는데…. ●쓰리 킹즈(KBS2 밤 11시 55분) 이렇다 할 전투 한 번 없이 걸프전을 끝내게 된 미군 트로이, 빅, 크리스천은 하는 일 없이 귀국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막바지에 투입되어 총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군인들이지만, 아직 후세인이 잡히지 않아 송환이 늦어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수한 포로에게서 우연히 후세인이 비밀리에 감춰둔 금괴 지도를 얻게 된다. ●TV 속의 TV(MBC 낮 12시 20분) 특별한 매력을 뽐내는 연예인들은 유전자부터 남다르다. 어딘지 모르게 닮은 스타와 그의 가족들. 뼛속 깊이 흐르는 스타들의 우월한 유전자는 한 지붕 아래 살던 부모와 형제에게도 숨어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거침없는 언변과 화려한 외모는 기본, 주체할 수 없는 끼와 재능까지 겸비한 스타의 가족들을 만나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귀여운 애교와 살살 녹는 눈웃음까지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 12개월 쌍둥이 자매 예본, 예진. 그런데 두 공주님이 절대 닮지 말아야 할 살벌한 특기까지 나눠 가졌다고 한다. 다름 아닌 박치기 기술이란다. 문만 닫혔다 하면 사정없이 기어가 문에다가 박치기를 하는 통에 두 공주님의 이마에 멍 자국이 가실 날이 없다는데…. ●명의(EBS 밤 9시 50분)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00~7000종의 희귀질환이 알려져 있으며, 그중 740여종이 국내에 보고되고 있다. 희귀질환은 어릴 때 발병해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흔하므로 환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담을 지게 된다. 희귀질환이란 어떤 질환이며 발병 원인과 치료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는 한국 스타일(OBS 밤 8시 55분) 다문화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총 7팀이 출연해 자신의 끼와 재능을 가감 없이 발휘하는 시간을 갖는다. 필리핀 대나무 전통춤인 ‘티니클링’을 하는 가족을 비롯해 아줌마 부대가 들려주는 장구가락 등 다문화 가정의 한국스타일을 보여준다. 한편 결혼 1년차에 접어든 비앙카만의 독특한 김장 노하우도 공개한다.
  • 장쩌민, 시진핑 시대도 ‘태상왕’ 군림하나

    중국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또다시 관영 언론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를 필두로 한 5세대 지도부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뒤에서 ‘상왕’으로 군림했던 그가 시 총서기 체제에서 ‘태상왕’으로 위상이 오히려 격상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장 전 주석이 최근 출간된 대나무 주제 시 100수를 모은 시집 녹죽신기(綠竹神氣)의 서문을 쓰고, 그가 직접 지은 시 칠율·원죽(七律·園竹)도 시집에 함께 수록됐다고 23일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시집 출판기념회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제 대나무·등나무협회(INBAR) 창립 15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고 전했다. INBAR는 중국 주도로 창립된 국제구호 민간조직으로 장 전 주석 계열인 자칭린(賈慶林) 전 정협 주석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사에는 정치국위원인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 최근 비리연루설이 나돌았던 류치바오(劉奇葆) 정치국위원 겸 중앙선전부장이 참석했고, 관영 중국중앙(CC)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앞서 이달 초 시 총서기가 주재한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정치국위원들이 특정 기념식 활동에 참석해선 안된다는 내용 등을 담은 ‘8개 지침’을 확정한 바 있다.  장 전 주석의 동정이 관영 매체를 통해 소개된 것은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이후 한달여 만이다. 시 총서기 체제에서도 ‘원로정치’가 유지될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장 전 주석은 자신의 장남 장몐헝(江綿恒) 의 심복인 양슝(楊雄) 상하이 부서기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부서기는 ‘2선 후퇴설’이 나돌았지만 최근 상하이 시장에 오를 수 있는 상하이 부서기에 선임됐다.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당서기 낙마 이후 상하이 당서기 및 시장 인사는 공산당 중앙이 결정했는데 양슝 선임을 기점으로 다시 장 전 주석을 필두로 한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세력)의 ‘입김’이 강해졌다고 홍콩 명보는 지적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이번 대선 첫 강화 플라스틱 등장

    이번 대선 투표에서는 처음으로 강화 플라스틱 투표함이 설치된다.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종전의 종이 재질 대신 사용되는 플라스틱 재질 투표함은 덮개 안쪽에 고유 식별번호가 내장된 전자칩을 부착해 스마트폰으로 정규 투표함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투표함 바꿔치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투표함은 선거 초기에는 나무 재질이었다가 1963년부터는 철제로 바뀌었다. 약 20㎏에 달해 옮길 때는 장정 2∼3명이 필요했다. 1991년부터는 조립식 알루미늄 투표함으로 대체돼 무게도 8.5㎏으로 줄었다. 귀퉁이 안쪽에 요철막대기를 대어 투표용지를 끼워넣지 못하게 했으며 이중 잠금장치를 다는 등 당시에는 ‘혁신’으로 꼽혔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골판지 투표함이 등장했다. 투표함 수요가 갑자기 증가해 제작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는 표를 찍는 데 대나무와 탄피가 주로 사용됐다. 구멍이 크고 확실한 ‘○’모양을 가진 데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다. 1970년대부터 플라스틱 볼펜 자루가 사용됐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용구가 사용된 것은 1985년부터다. 모양은 ‘○’을 유지하다가 1992년 제14대 대선 때부터 ‘○’안에 ‘人’을 넣었다. 1994년부터는 ‘卜’로 바뀌었다. 종이가 접히더라도 어느 쪽에 찍은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논란 소지를 없앤 것이다. 인주 없이 찍을 수 있는 지금의 ‘만년기표봉’은 2005년부터 사용됐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2400년된 미라 두개골서 ‘뇌 빼는 도구’ 발견

    2400년 된 미라에서 미라 제작 시 뇌를 제거할 때 쓰는 고대 도구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대 이집트 미라의 두개골에서 발견한 이 도구는 3인치 길이로, 고대 이집트 미라 제작인들이 사망인의 두개골에서 뇌를 제거할 때 사용했다. 이 도구는 야자과 나무, 대나무 등의 식물 나뭇가지로 만들었으며, 미라를 만들 때 값비싼 금속 대신 저렴한 수술도구로 쓰였다. 당시 미라 제작인들은 긴 막대기 모양의 이 도구를 코를 통해 삽입한 뒤 뇌를 제거하는 시술을 펼쳤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있는 두브라바 대학병원의 미스라브 카브카 박사 연구팀은 사망 당시 40대 여성이었던 2400년 전 미라를 연구하던 중 송진으로 가득 찬 왼쪽 두정골과 뒤쪽 두개골 사이에서 이 도구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고대 이집트 미라 제작에서 뇌를 제거하는데 쓰는 도구가 발견된 것은 단 한차례 밖에 없었으며, 이는 이번에 발견한 것보다 200년 더 늦은 2200년 전의 도구였다. 카브카 박사는 라이브사이언스와 한 인터뷰에서 “고대 이집트 인들이 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이 도구를 뇌에 남겨둔 것 같다.”면서 “그들의 ‘작은 실수’가 수 천 년이 지난 현재에 당시의 미라 제작 과정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의학 저널인 북미영상의학회의 라디오그래픽스(RadioGraphics)에 실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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