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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깎이 춤꾼 김현옥씨/日에 한국정원의 美 전파

    ◎도쿄 테아터 카이 국제페스티벌 참가 ‘무용수가 되려면 무용을 전공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해뵈는 이 명제가 현대무용에 와서 조각나고 있다. 데시카와 사부로는 조각을 공부했고 호세 리몬은 미술에서 돌아섰지만 지금은 현대무용가 이전 경력이 흐릿해질 만큼 ‘전향’에 성공했다. 바다건너를 더듬느라 애쓸것도 없다. 중견안무가 김현옥씨(44)는 대학 불문과 졸업후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을뿐 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시 진학한 서울예전 선생의 매서운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한국 현대무용계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샘 하나를 놓칠 뻔했다. 지난 5월 베를린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은 김씨가 이번엔 일본무대에 나선다. 8월5일부터 열리는 동경 테아터 카이 국제 무용페스티벌에 초청된 것. 96년 2회때 ‘윤이상추모작’으로 참가한뒤 또다시 초청장을 받았다. 베를린에서 북채로 장독을 두드려가며 죽음이라는 존재론적 문제에 한국적 화법으로 접근했던 김씨,이번엔 정원,특히 한국정원이 키워드다. “파리에서 늦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우연히 충남 외암리민속마을 한식정원에 들렀는데 경이롭더군요. 툇마루에 앉았자니 대나무 서걱이는 소리,물소리가 귀를 간지르며 한 우주가 숨쉬는 듯했지요. 이를 프랑스 특유의 후원(後園)에서 받은 느낌과 접붙여 제 내면의 ‘정원’을 풀어내고 싶어요” 올해 ‘테아터…페스티벌’의 기획은 외국 무용수와 일본 다른 장르 예술과의 만남. 무용가마다 과학자,서커스단장,작곡가,가부키 연구가,건축가 등을 하나씩 붙여줘 장르와 국경을 초월하는 ‘스며들기’를 시도한다. 김씨는 건축실내 디자이너 미키 하야시와 8월5일∼7일 3일간 공연할 계획. “전통 와당무늬 의상과 윤이상 현악4중주 배경음악으로 한국색을 물씬 선보이게 될듯” 싶단다. 초청받은 8팀 명단엔 라인힐드 호프먼,수잔 크리스너,다니엘 나그린 등 주목받는 이름들이 보인다. 공연 끝나면 김씨는 이들과 함께 워크숍 강사를 맡고 2000년의 대규모 공연 ‘불가사의한 중국 관리인’ 오디션 심사위원도 겸하게 된다. 얼마전 한국인 처음으로 유럽의 유명 발레잡지 ‘발레 탄츠’ 표지인물로도 뽑혔던 김씨. 창무회와 손잡고 ‘영상과 춤의 만남’이란 대주제로 무용영화도 찍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는 11월말∼12월초쯤 공개될 듯.
  • 白凡 재조명:2­2(정직한 역사 되찾기)

    ◎백범 사상/“민족만이 영원할 뿐”/열린 민족주의 바탕 인류의 평화 역설/문화의 힘 드높은 ‘아름다운 나라’ 소망 백범이 바라는 한국의 미래는 아름다운 문화국가였다.그는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높은 문화의 힘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의 힘과 가치를 강조했다.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사랑의 문화평화의 문화로 우리와 인류전체를 잘 살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범사상은 이러한 문화주의와 민족주의 자유주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백범연구가들은 분석한다.그의 사상은 ‘백범일지’ 끝부분에 있는 ‘나의 소원’에 잘 나타나 있다.동학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을 두루 포용했다.그의 종교·사상은 민족애로 수렴됐다.백범일지에서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민족만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백범은 독립운동과 해방후 민족통일 노력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독립운동 과정에서의 민족주의는 저항 민족주의였다.그러나 저항 민족주의는 식민통치라는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난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민족과 민족관계,국가와 국가관계는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그는 “민족주의의 최대 과업은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 건설이다.피압박 국가의 독립이 궁극적으로 세계평화의 기본적인 전제다”라고 말했다.백범의 민족주의는 이 때문에 유럽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다르다.자유의 존중과 독재의 배격을 강력히 내세운 민주적 성격을 담고 있다.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열린 민족주의다.백범의 민족주의를 종족관념 또는 저항 민족주의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백범 민족주의의 원류는 열린 민족주의다. 백범은 보편성을 갖는 민족주의와 함께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했다.그는 백범일지에서 “나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다”라고 표현했다.백범이 말하는 자유는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야 한다’는 주권재민 사상과 연계된다.“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을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렸다.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온다”고 백범일지는 강조하고 있다.자유 아님의 대표적 예는 계급독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독재로 보았다.소련식 공산당을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는 극단적인 독재정치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는 독재를 막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범의 민족주의·자유주의·문화주의는 각각 별개의 사상이 아니다.큰 틀속에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백범 사상의 이상은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모든 나라의 자주독립과 문화의 힘을 통한 인류의 평화라 할 수 있다.그 이상을 실현하는 열쇠는 자유의 보장이다. 세계는 그의 이상대로 문화의 힘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백범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中國 피난처·臨政청사 복원 金九 선생이 일본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어있던 중국의 자싱(嘉興)은 우리에겐 잊혀진 도시였다.그가 일본의 눈을 피해 숨어 있었듯이 자싱은 우리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망각의 도시가 아니다.金九 선생이 숨어있던 집이 유적으로 복원되며 우리곁으로 돌아왔다. 백범은 1932년 李奉昌·尹奉吉 의사의 의거이후 일본경찰의 추적이 집요해지자 상하이(上海)에서 서남쪽으로 80㎞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자싱으로 피해왔다.그는 자싱에서 추풍청(저보성)씨가 마련해준 집에서 은신했다.그곳은 추씨의 수양아들 별채였다.백범은 일본 정탐꾼이 자싱까지 오자 하이옌(海鹽)으로 피신했다. 중국정부는 96년 백범이 약 2년간 숨어있던 두 곳을 복원해 유적지로 지정·관리하기 시작했다.자싱에 있는 백범 유적지는 메이완 거리에 있다.2층 건물 현관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 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한자로 쓴 녹색간판이 붙어 있다.백범이 당시 접견실로 썼던 1층 벽에는 백범과 그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추씨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2층에는 침대와 옷장 등이있다. 하이옌에 있는 피난처는 주쟈루이씨 집안의 별장이었다.주쟈루이씨는 백범을 하이옌으로 피신시킨 추씨의 장남 펑장(鳳章)의 부인이다.펑장씨는 자신의 부인을 백범의 부인으로 위장시켰다.대나무숲 속에 단장돼 있는 유적지에는 백범의 흉상과 함께 ‘김구 피난처’라는 한자 간판이 있다.전시실에는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추풍청,주쟈루이 등의 경력과 활약상을 담은 각종 사진과 자료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金九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해외독립운동 구심점이었던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도 93년 복원됐다.청사는 26년부터 7년동안 사용했던 3층 연립주택이다.삼성물산 등의 지원으로 61년만에 복원된 청사는 1층 회의실·접견실·부엌,2층 국무령 집무실과 직원사무실,3층 요인숙소 및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회의실과 집무실에는 당시 사용했던 책상·의자 등 집기와 비품이 갖춰져있다.3층 전시실엔는 尹奉吉 의사의 의거장면 등 독립운동관계 사료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임시정부는 32년 李奉昌·尹奉吉 의사의 의거후 일제의 탄압과 추적공세가 강화되자 상하이를 떠나 유랑하다 40년 충칭(重慶)에 정착했다.임시정부는 충칭에서 광복을 맞았다.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충칭의 청사도 95년 복원됐다.중국은 백범이 경계한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그의 독립운동과 민족사랑을 높이 평가,그의 발자취를 복원했다. ◎국민의 힘으로 기념관을/과거 집권층 왜곡­평가절하 탓/애국혼 깃들일 곳 없이 반세기/26일 종합계획 발표… 내년 기공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다.그러나 사후 반세기나 지났지만 그의 국내 발자취는 여전히 망각의 역사속에 묻혀 있다.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후 머물렀던 경교장(京橋莊)은 병원의 일부로 사용되고 기념관도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의 鮮于鎭 상무이사는 “기념관 건립과 발자취 복원이 제대로 안되는 것은 그의 위업을 왜곡하고 평가절하했던 집권층과 잘못된 사회풍토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협회는 그러나 기념관 건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金泳三 전 대통령 집권때인 96년 8월14일에는 발기인대회도 열렸다.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金九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金泳三 전 대통령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 담당 비서관까지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기념사업협회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이후 기념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金대통령은 金九 선생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어 기념관 건립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鮮于이사는 말했다. 그러나 건립기금과 장소선정 등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鮮于이사는 “국민성금과 정부지원으로 기금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러나 IMF시대의 경제난 때문에 성금 모금운동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장소도 문제다.金九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을 선정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기념사업협회측은 말한다.기념사업협회는 金九 선생 서거 49주년인 6월26일에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며 서거 50주년인 내년에 기공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기념관은 총건평 1,200평의 지상 3층 건물로 구상되고 있다.1층은 유물 전시실,2층은 자료실·도서실·사무실,3층은 국제회의장·소회의실·영사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념관 건립은 金九 선생의 사상이나 업적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민족교육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실현돼야 한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그들은 범국민운동을 펼치고 정부도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金九 선생의 애국혼이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쥬라기의 사람들/孫靜淑 기자(객석에서)

    ◎희곡­연출의 불화 모든 연극은 재해석의 속성이 있다.희곡이란 일차 질료 위에서 있기 때문이다.입체화 과정에서 이걸 일부 넘어서거나 배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희곡이 그어놓은 문자공간의 금밖으로 아예 도망치기란 불가능하다.희곡을 대하는 연출은 그래서 대화적이어야 한다.주도권은 쥘 수도 넘겨줄 수도 있다.하지만 밀고 당기며 희곡을 탐색하고 육화해 가는 과정을 건너뛴다면 안이하게 달아오른 연인처럼 불화와 파경으로 치닫기 쉽다. 예술의전당 이강백 연극제로 공연된 ‘쥬라기의 사람들’(∼2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희곡과 연출의 불화를 나쁘게 보여준 예라고 할 수밖에 없다.불화라고 다 나쁜건 아니다.때론 거짓 화목보다 훨씬 정직하다.또 불화와 파탄으로 밖에 보여줄 수 없는 불모지경도 삶엔 분명 있다.희곡과 치열한 말싸움 끝에 귀결할 수밖에 없는 불화라면 그 연출은 희귀한 개성,더욱 고통스런 비타협의 몸짓일지 모른다.하지만 이번 불화는 아무리 봐도 희곡의 밑바탕 정서와 따로 놀아버린 연출의 ‘일탈’로밖에 보이지않는다. 탄광의 폭발사고를 빌미로 사회의 그물망속에서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고 버둥대는 인간군상을 포착하는 희곡의 언어는 양파껍질 벗기듯 중층적이다.죽은 자가 “석탄을 파 나가다 파 나가다 보면 언젠가 한줄기 빛과 만날 수 있잖겠느냐”고 희망을 토로하는 대목은 역설적으로 은폐적이다.이기심만이 삶의 추동 원리가 된 곳,그 고리를 끊을 방법도 뵈지 않는 세계….그런데 이같은 희곡의 고민은 연극 속에서 대나무 부러지듯 부러져 버렸다.작가의 문제의식을 함께 고민한 연출이라면 이처럼 쉽고 편한 해피엔딩에 유혹될 수 없다.본질을 장악하지 못한 끌과 정이 인물들의 대립을 적절하고 날카롭게 부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할 터.강약도 유기적 연관도 없는 기계적 입장의 나열들 뿐이었다. 연인을 사랑하면 그 고통의 외침을 소홀히 뭉개지 못하는 법.연출가가 희곡을 사랑하지 않는 건 단지 게을러서인가,아니면 사랑할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 가정의 달/가족과 손잡고 고향의 봄을…

    ◎아련한 추억 되새기며 가족애도 다지고/근교 한적한 곳 나들이로 찌든 심신 ‘훌훌’ 【양산·마산=任泰淳 기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동문학가 李元壽씨의 동시 ‘고향의 봄’이다.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동요지만 동요의 차원을 넘어 전국민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다.굳이 고향이 남쪽이 아니라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고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그래서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자위가 붉어 진다.그만큼 고향의 정겨운 모습이 간단하고 평이한 언어로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또 ‘고향’과 ‘봄’의 절묘한 배치도 이 노래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李元壽는 1911년 경남 양산읍 북정리 660에서 태어났다.그가 이 노래를 지은 것은 15살이던 1926년.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명정같은 마음이 이 노래말을 탄생시켰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고향의 봄’ 무대는 어디였을까.그의 생가터는 아직 북정리에 남아 있다.아파트와 연립주택을 지나 꼬불꼬불 샛길로 접어들면 제일 뒤편에 기와집이 나타난다.기와집 너머로는 낮은 야산이 있고 집좌우측으로는 대나무,감나무가 휘감고 있다.넓직한 마당 한켠에는 텃밭과 꽃밭이 있다.5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김복남씨(71)는 “옛날에는 마을 초입의 교리에 복숭아꽃,양산천 제방에 수양버들이 가득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택지로 개발이 되고 도로가 뚫리면서 그 옛날 고향의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대신 양산천 너머 강서동의 춘추공원에 그를 기리는 시비만이 남아 그와의 인연을 말해준다. 李元壽는 김해,창원,마산 등을 옮겨 다니며 소년시절을 보낸다.그는 생전인터뷰를 통해 “창원에서 서당다니던 시절을 생각하며 고향의 봄을 지었다”고 회고했다.그러나 김해,창원 등지에서도 고향의 봄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서당과 그가 기거하던 집은 없어져 버렸고 그가 다니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학교)도 현대식 건물로 바꼈기 때문이다.양산과 마찬가지로 마산 산호공원에 그의 시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다.가정의 달을 맞아 자녀들을 이끌고 한번 고향집 뒷산을 찾아 보자.고향집이 사라졌으면 고향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근교의 한적한 곳을 찾아 보자.
  • 30년 이어온 장애 어린이 사랑/건국대 사회봉사 동아리 죽순회

    ◎불우 아동 돕기·낙도 어린이 초청행사도 “신체장애아 등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대나무처럼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사랑을 펼치겠습니다” 건국대 ‘죽순회’는 올해로 창립 30년을 맞는 사회봉사 동아리다. ‘대나무의 어리고 연한 싹이 곧고 큰 대나무로’라는 뜻을 지닌 죽순회는 지난 69년 창립됐다.이후 30년째 장애아동과 결손가정의 아동,생활보호가정의 어린이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동아리 회장 노시현군(21·공업화학2년)은 “우리 주위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불우한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꿈을 잃어 가고 있다”며 “우리들의 조그만 사랑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기쁨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죽순회는 6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불어닥친 IMF 한파와 취업난으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기피하는 풍조가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봉사활동 기금마련과 봉사활동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다. 회원들은 매년 3월 도봉산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음료 판매를 비롯 어버이날 카네이션 판매,대학 대동제의 주점마련,11월 일일호프집 운영 등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이들의 봉사활동은 정신지체아동과 뇌성마비 장애아를 돌보는 일부터 생활보호가정의 불우아동 돕기,낙도 어린이 서울초청행사 등 다양하다. 이들은 격주로 토요일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우성재활원에서 장애아동의 목욕시키기와 화장실 청소,아이들과 놀아주기 등의 봉사활동을 7년째 하고 있다. 또 구랍 29일에는 서울 수서지역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생활보호가정 아동 20여명을 초청해 2박3일동안 경기도 포천군 산정호수에서 ‘겨울캠프’를 열었다.충남 대천군 효자도의 어린이를 서울로 초청하는 등 19년째 낙도 오지 어린이의 서울 수학여행도 주선해 주고 있다.
  • 무서워하며 신성시한 ‘산중영물’/호랑이해 호랑이 이야기

    ◎소신으로 섬기며 호환의 두려움 달래/죽림맹호 경제난 쫓는 ‘벽사의 몫’ 기대/호랑이 살상 민족성정 안맞아 사냥 엽사들 중국옷 판 올해 1998년은 호랑이 해 무인년이다. 동물을 상징으로 한 열두 개의 지지에 따라 호랑이 해는 12년만에 한 차례씩 돌아온다. 그러나 열개의 천간을 하나씩 떼어 그 해의 지지에 앞세워 붙이기 때문에 무인년은 60년만에 맞는 호랑이 해다. 이를 갑년이나 회갑,또는 주갑이라 한다. 그 호랑이는 한민족 마음속에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단군설화에 곰과 함께 호랑이가 등장하니까 꽤나 오래되었다. 곰과 호랑이는 모두 인간으로 변신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야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뛰쳐나와 결국 맹수로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단군설화에 나온다. 렇듯 인간과 쉽게 동화할 수 없었던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곰과 함께 단군설화 등장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동이전에도 호랑이가 기록되었다. 동이는 중국쪽에서 본 우리 한민족이다. 그 사서는 산천을 떠받드는 우리민족의 풍속을 소개하면서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고 또 신으로 섬긴다는 대목을 적어놓았다. 호랑이가 그만큼 두려워 제사로 달래준 옛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885년 2월에 호랑이가 궁궐마당으로 뛰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호환이 분명하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백과사전식으로 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호랑이를 진군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그 진군은 무당이 진산에서 올리는 도당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능은 급기야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그래서 산신은 호랑이로 상징되었거니와 그 별칭도 산군 말고도 산군자,산령,산신령,산중영웅등 숱하게 많다. ○호랑이 신앙의 이중성 한민족은 호랑이를 신성시했고,때로는 무서운 가해동물로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이를 학문적으로 말하면 호랑이 신앙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신성시하면서도 무서운 가해동물로 여긴 한민족의호랑이 신앙은 매우 지혜로운 민족의 성정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지극히 인위적인 생태보존운동을 버금하는 지혜인 것이다. ‘후한서’동이전의 기록처럼 산천(자연)을 떠받들었던 민족의 심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환경친화의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민족의 자연관은 호랑이 번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다른 동물에 비해 번식력이 그리 왕성하지 못한 동물이 호랑이다. 그 호랑이가 민족의 마음속에 신성하고도 무서운 영물로 자리잡은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 우리 마음이기도 하고,호랑이를 마구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웬만한 심산에는 호랑이가 서식했던 모양이다. ○백두대간 심산에 서식 한국의 호랑이는 유명했다. 1953년 1월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요시다(길전)일본 수상의 대화속에도 호랑이가 화제로 떠올랐던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요시다수상이 “한국에는 지금도 호랑이가 많은 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일본인들이 다 잡아서 없소”라는 대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냥한 호랑이를 마치 전리품인양 내놓고 찍은 일본인들의 옛 사진첩이 지금도 돌아다닌다. 그 호랑이가 1946년 북한땅인 평북 초산에서 한 마리가 잡혔다는 풍문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민족에게도 호랑이 사냥이 물론 있기는 했다. 고려 공민왕이 그렸다는 이른바 전공민왕필 ‘음산대렵도를 보면 호쾌한 호랑이 사냥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사냥에 나선 엽사들의 입성은 모두 호복차림의 변복이다. 호랑이를 잡는 일이 민족의 성정이나 생활습관에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엽사들 옷 차림새를 중국옷으로 바꾸어 그렸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왕정의 중요행사였던 정렵만을 보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았을 뿐 더러 기껏해야 매사냥 정도였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적혀있다.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벽화 ‘수렵도’에도 박진감 넘치는 호랑이사냥이 나온다. 말을 탄 기사가 힘껏 시위를 당기는 참인데,호랑이 꽁무니를 명중할 수 있는 위치다. 시위에서 손을 떼기만 하면 화살이 호랑이 꽁무니를 꿰뚫을 찰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살을 들여다 보면 살상용이 아니다. 호랑이를 겁주어 기절을 시킬 요량으로 살상용 화살촉대신 명적을 썼다. 석류모양을 한 명적은 그저 소리만 요란하여 맞는다 해도 호랑이가 기절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산신탱화에 의레 등장 그 호랑이는 살상을 금하는 불교와도 연결되었다. 우리 고유의 산신신앙을 받아드린 불교의 산신탱화에는 의례히 호랑이가 들어있다. 탱화에 나오는 신선은 호랑이가 모습을 달리한 변화신이다. 그리고 탱화의 산신 곁에는 실제 호랑이가 늘상 자리를 같이하여 따라붙는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 소장 산신탱화의 호랑이는 평퍼짐한 자세로 앉아있는 산신을 감싸았다. 호랑이 꼬리를 S자로 그리며 하늘을 향했다. 그러니까 호랑이는 여러 모습으로 민족 앞에 다가왔다. 호랑이는 그림의 소재로도 자주 응용되었다. 정초 세화나 부적에 호랑이를 그렸다. 그리고까지 호랑이에는 까치와 함께 호랑이가 등장했다. 대나무숲속의 호랑이 죽림맹호같은 호랑이 그림도 있다. 그런데 대나무숲의 호랑이 그림은 요사스러운 잡귀를 물리친다는 벽사의 뜻을 담았다. ‘담문록’이라는 책에 대나무를 잘라 불속에 던져 큰 소리로귀신을 쫓아버렸다는 내용과 상응하는 그림이다. 올 오랑이 해 무인년에도 호랑이가 벽사의 큰 몫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경제위기를 물리쳐주는 그런 벽사를 호랑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 ‘환상의 선율’ 세계피리 한자리에/11∼14일 서초동 국립국악원

    ◎6개국 참가… 제작과정도 소개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누구나 한번쯤 불어봤을 피리.무수한 애호인구를 거느린 이 피리가 각국에서 어떤 선율을 낳았는지 한 자리에 모아보는 97 세계피리축제가 국립국악원 주최로 열린다.11일∼14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지난 해에 이어 2회째인 올해의 주제는 ‘비단길을 타고 오는 낭만의 선율,환상의 소리’.한국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등 실크로드(비단길)인근 6국의 전통 피리들을 초청,연주를 들어보고 워크샵도 갖는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11일 하오3시 예악당 광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전 행사 ‘악기와의 만남과 대화’.대나무에서 피리가 만들어져 나오기까지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이벤트다.국악기 제작의 명장 김용남·김현곤·이용성·서남규씨 등이 직접 피리를 만들어가며 오죽·황죽·쌍골죽·암죽·갈대 등 재료 다루는 요령부터 명기 만드는 ‘비법’,좋은 악기 감별법 등을 들려주고 질문도 받는다.평소 제대로 된 악기하나 탐이 났다면 이 자리를 놓치지 말자.다 된 악기를 하오 5시부터이어지는 길놀이 풍물공연에서 선보인 뒤 저렴한 값에 판매할 예정이기 때문. 본행사인 축제공연은 11∼12일 하오6시,13일 하오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동물뼈로 만든 중국의 ‘골초’,목소리가 섞여나오는 카자흐스탄의 ‘스□즈리’를 비롯,터키의 ‘네이’‘메이’,몽골의 ‘비쉬그르’ 등 전통 피리들의 그윽한 소리에 젖어볼 기회다.우리도 풀피리,쌍피리 같은 토속피리 연주를 준비했다. 각국 음악학자들의 강의로 짜인 피리워크샵(12∼13일 하오2시 205호 강습실)에서는 우석대 국악과의 윤명원교수가 마련한 단소실기강습회가 눈길을 끈다.그윽한 국화향기속에 국악박물관에서 열릴 민속풍물전(11∼14일)에선 각국 피리악기와 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초대권 무료 배부.문의 580­3054∼3057.
  • ‘성녀의 마지막 길’ 세계가 애도/테레사 장례 이모저모

    ◎부랑자서 대통령까지 추모객 운집/이 눅기 장식 포가로 ‘수녀의 집’ 이송/군경 2만5천명 배치 각국 귀빈 경호 전세계인의 애도속에 13일 거행된 테레사 수녀의 장례식에는 ‘빈자의 성녀’ 장례식답게 걸인·부랑자·장애자·나환자 등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서부터 왕족,나라야난 인도 대통령 등에 이르기까지 약 1백50만명이 참석,고인을 추모했다.특히 이날 장례식에는 존 포렛스콧 영국 부총리,힐러리 클린턴 미 대통령 부인,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누르 요르단 공주,소피아 스페인 공주 등 각국의 주요인사들도 참석,고인의 넋을 기렸다. ○150만명 고인 넋 기려 ○…캘커타 시내 성토머스성당 유리관속에 안치됐던 테레사 수녀의 시신은 13일 상오 군운구병 8명에 의해 인도국기가 장식된 포가로 옮겨진 뒤 흰꽃으로 장식된 운구차에 실려 상오 8시50분(한국시간 12시20분)쯤 성토머스 성당을 출발. 장례 행렬이 빅토리아기념관,미들턴 로드,파크 스트리트,자와할랄 네루가 등을 거쳐 1시간 후인 상오 9시57분쯤 네타지 경기장에 도착할때까지1백여만명의 추모객들이 모여들어 길에 꽃을 뿌리며 테레사 수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인도당국은 이날 장례식의 질서유지와 주요인사 경호를 위해 시내 주요도로 변에 대나무 장벽을 세우고 2만5천명의 군·경찰을 배치했으며 하늘에는 헬기를 띄웠다. ○…테레사 수녀의 시신은 이날 상오 성토머스성당에서 장례식장인 네타지 경기장으로 운구됐는데 유해 운구에 사용된 포가는 지난 48년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64년 인도 초대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장례식 당시 시신운구에 사용됐던 것. ○…테레사 수녀의 시신이 영면할 곳은 사랑의 선교회 본부인 ‘수녀의 집’ 식당으로 사용되던 길고 좁은 방.이 방의 벽은 노란빛을 띤 베이지색으로 칠해졌고 바닥은 갈색 리놀륨으로 덮여 있었으며 방안에는 흰 대리석 석판과 시멘트로 된 상자가 준비돼 있었다. ○…테레사 수녀의 장례식에서 캘커타 대주교가 기도문을 낭독할때 뭄바이 대주교는 시신에 성수와 향을 발랐으며,그녀의 영혼을 신에게 맡긴다는 기도문 대목에서는 사랑의 선교회수녀 100여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내곁에 머무소서’라는 찬송가를 합창. 이어 테레사 수녀의 계승자인 니르말라 수녀는 추도사에서 테레사 수녀가 자신에게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며 사랑의 선교회를 이끌어나가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회상. ○교황,빈자위한 삶 찬양 “평화의 천사”라고 호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대리참석한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대신 읽은 메시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가난의 대처 방법을 토론하며,이 토론에 테레사가 참여하지 않는 것을 비난할 때 그녀는 묵묵히 빈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찬양. 교황의 메시지는 그녀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가난한 사람들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곁에 무릎을 끓을 것”이라면서 “그들은 토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추모. ○…이날 네타지 경기장에는 가톨릭신자인 테레사 수녀의 장례식에 힌두교도,불교도,회교도,기독교도 등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6천명의 빈민들이 참석해 사랑 앞에서종교의 벽을 허물었다고.
  • 조선후기 조영우의 ‘노승헐각’(한국인의 얼굴:112)

    ◎지친 노승이 노송뿌리에 풀석/마른 얼굴·광대뼈 탁발승 묘사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관아재 조영우(1686∼1759)은 인물화를 잘 그리기로 정평이 나 있다.숙종과 영조때에 활약한 선비화가다.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후기의 선비화가 삼재로 꼽혔다.그의 인물화 솜씨는 뛰어나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을 그리는 일에 추천될 정도였다고 한다.그 스스로도 “산수는 정선이 한수 위이나,인물은 내가 낫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그린 인물화 가운데 ‘노승헐각’은 빼어난 작품이다.비단천에 먹물로 그린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했다.늙은 스님이 땅위로 솟아 난 노송 뿌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화제에는 아픈 다리를 쉰다는 뜻이 들어있다.노구를 이끌고 암자로 오르는 산길을 접어 들었던 스님은 마냥 지쳤다.동냥한 곡식이 서너줌 들었을지도 모를 걸망을 내동댕이 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지친 모양이다.앉기는 했어도 숨이 하도 가빠 헐떡거리고 있다.얼굴은 아주 깡말랐다.그래서 광대뼈가 불쑥 튀어 나왔다.이빨도 다 빠져 입이 합죽한 노승은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표정이다.오죽 지쳤으면 동냥 걸망을 벗어 던졌을까.탁발승으로 살아온 온갖 풍상을 얼굴에 가득한 주름으로 새겼다.걸망 하나를 달랑 걸머메고 구름따라 바람따라 떠 돈 늙은 운수납자다.간밤을 잔 절을 나와 또 다른 암자를 찾아 다니기를 몇 수십년을 하는 사이 어느덧 늙어버린 것이다.노승은 앉고 나서도 몸을 온통 지팡이에 내맡겼다.그래서 굽은 등이 더 굽었는데,목에 걸어놓은 굵은 알 염주조차 무거워 보인다.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는 눈매에도 기운이 없다.그래도 눈꼬리가 처진 노승의 눈에는 무슨 생각이 분명히 어렸다.그것은 우주만물이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제행무상의 마음일 것이다.큰 소나무 장송 앞에서 덧없이 흘러간 풍상의 세월을 곱씹고 있는 노승은 이제 초조할 것이 없다는 눈치다. 수염은 서너가닥,고행으로 살아온 노승의 삶 만큼이나 빈약했다.광대뼈에 가린 귀 역시 실하지 않다.대나무 살을 엮어서 만든 모자를 썼다.가진 것이라고는 몸에 걸친 회흑색 먹물옷과 염주,지팡이와 걸망이 있을 뿐이다.도를 닦는데 마음을 기울인 이판이란 말로 자신을 내세울만한 스님도 아니다.그렇다고 절의 살림을 맡았던 사판은 더욱 아니다.어디 한군데 집착하지도 않았거니와 무소유로 살아온 터라 지금 탈속의 경지에 들었다.〈황규호 기자〉
  • 전주 전통부채/단아한 선비의 멋 부채살마다 가득

    ◎한해 합죽선 5만·태극선 50만개 생산/살 많고 고른것이 좋아… 가격 천차만별 ‘단오 선물은 부채,동지 선물은 책력(24절기가 표시된 지금의 달력에 해당됨)’ 단오가 되면 더운 여름철이 가까워지는 만큼 부채가 선물로 제격이고 동지가 가까워오면 새해에 쓸 책력이 선물답다는 뜻의 옛말이다. 부채가 다른 어느것보다 친근한 성하의 계절이 돌아왔다.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기의 폭발적인 증가로 부채시장이 크게 위축됐지만 ‘전주 전통부채’가 나름대로 활로를 찾고 있다. 워낙 멋과 품위가 있는데다 옛 것을 되찾자는 최근의 복고적인 분위기도 부채사용 인구를 점차 늘리는데 한몫하는 셈이다. 부채와 관련된 기록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사기다.이 책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에게 공작선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흥미로운 것은 당시 후백제의 수도가 지금의 전주인 완산이란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전주는 국내의 부채산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당시 전라도 전역을 관할하던 최고행정기관인 전라감영에 부채를만드는 선자방을 별도로 두고있었으며 최고행정책임자인 관찰사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최고품질의 부채를 궁중에 진상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전주의 부채가 옛부터 전국적으로 높은 성가를 얻어온 것은 이 지역의 특산품인 한지와 질좋은 대나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인 냉방기기가 폭넓게 보급되면서 부채산업은 지난 80년대 이후 한동안 판매량이 절반이하로 뚝 떨어지며 쇠락했다. 결국 전북도와 전주시는 지난 90년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전통문화보존대책의 하나로 전주지역의 부채 제작자들이 한 곳에 모일수 있도록 공예품협동화단지를 주선해주고 조합도 결성했다.공예품을 전시,판매할 수 있는 70여평규모의 공간도 지원했다. 현재는 전주지역에서 합죽선과 태극선을 수십년씩 제작해온 장인 8명이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전주∼남원간 국도변의 협동화단지에 보금자리를 틀고 부채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단지에서 연간 생산되는 부채는 합죽선이 4만∼5만개,태극선을 비롯한 각종 부채는 40만∼50만개에이른다.합죽선은 국내 유통량의 거의 전부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태극선 등은 국내전체시장의 80∼90%에 해당되는 물량이다. 이밖에 남원지역과 전남 담양지역에서 태극선 등이 약간 생산되고 있으나 미미한 양이다. 다만 요즘엔 값싼 중국산 대나무로 만들어진 부채들이 국내에 상당량 유입되고 있으나 대와 종이의 질,접착상태등 전반적인 솜씨가 전주의 전통부채를 따라가진 못한다. 지난 90년부터 협동화단지에 입주해 작업중인 국내합죽선제작의 1인자 이기동씨(68·전북도 무형문화재)는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기 보급이 늘어났다고 해서 부채의 용도가 완전히 페기된 것은 결고 아니다”면서 “일부에서는 냉방병 걱정도 없고 전력도 아낄수 있는 부채사용을 적극 권장하고있으며 어떤 이들은 아예 부채를 장식용으로 구입해 수요는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선과 접선으로 나눠 ▷종류◁ 부채는 모양이 둥근 단선과 접었다 펼 수 있는 접선으로 나뉜다.단선은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오엽선과 연엽선·태극선·까치선·공작선·파초선·대금선·중원선·대원선 등이 있다.또 접선에는 합죽선과 백선·칠선 등이 있으며 아동들을 위한 아동선과 민화가 그려진 민화선도 있다.물론 전통 전주부채로는 태극선과 합죽선을 제일로 친다. ○손잡이 재질은 소나무 ▷제작 과정◁ 태극선과 합죽선의 제작과정은 다소 다르다.우선 태극선은 2년이상 묶은 왕대나무를 겨울철에 베어내 1㎜ 두께로 부채살을 만든다.이어 고급비단인 양단을 부채살에 잘 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응달에서 24시간 가량 말리고 각종 모양으로 끝을 오려낸 뒤 한지로 테두리를 친다.소나무를 재질로 하는 손잡이를 끼우면 마무리된다.합죽선은 이보다 제작과정에 훨씬 복잡하다.합죽선은 대나물를 양잿물에 삶아 진을 뺀 뒤 약 보름정도 말리고 칼로 부채살을 만든다.부채살의 아랫부분에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넣는 낙죽과정을 거친뒤 종이를 부채살에 붙이고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음 부채살의 끝을 고리로 꿰어 사용한다. ○살 많고 간격 일정해야 ▷좋은부채 고르는 법◁ 일반적으로 부채는 대나무살의 간격이 고르고 가급적 살의 수가많을수록 좋다.태극선은 살 위에 붙은 태극무늬가 정교하고 옆에서 봤을때 구김이 없고 반듯해야 한다.또 부채의 두께가 너무 두껍지 않고 한지를 이용한 모서리의 마감상태가 좋아야 한다.합죽선은 대살이 가급적 많고 가지런해야 하고 대나무와 한지의 접착상태를 잘 보고 구입하면 된다. ○합죽선 최소 2만원선 ▷가격과 구매방법◁ 태극선은 크기나 모양등에 따라 2천원부터 약 5만원까지 매우 다양하다.합죽선은 이보다 비싸 최소 2만원선이며 크기나 부채안에 그려진 그림·글씨에 따라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의 화랑에 가면 유명화가나 서예가들의 그림이나 글씨를 붙인 각종 크기의 합죽선과 태극선을 손쉽게 구할수 있다.전주∼남원간 도로변인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의 전주공예품특산단지(0652­87­7975)에 가면 전국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진품전주부채를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 순천 권애임 주부 음식쓰레기 줄이기 실천사례

    ◎잔반 말려 빻아 화분용 퇴비로/기한지난 우유·쌀뜨물도 식물 영양제로 권애임씨(31·주부·전남 순천시 연향동 금호아파트 4동 107)집에는 음식 쓰레기가 담긴 쓰레기 봉투를 찾아볼 수 없다.설겆이후 나오는 각종 찌꺼기는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사과 등 과일껍질은 잘게 썰어서 병에 담아 발효시킨다.또 생선가시와 반찬 부스러기 등은 잘 빻아서 화분용 퇴비로 쓰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우유도 유용하게 쓴다.윗부분만 살며시 부어서 화분 겉흙을 걷어내고 뿌려준다.잎이 번들번들 해지고 진딧물도 끼지 않는다. 쌀 뜨물도 버리지 않는다.처음 씻은 물은 화분에 준다.두번째는 하얀 와이셔츠 등을 헹굴때 쓰기 위해 그릇에 담아둔다.여름철에 자칫 변질되기 쉬운 두부도 끓는 물에 살짝 넣었다가 바로 꺼내 냉장실에 보관해두면 염려없다. 권씨는 이같은 생활지혜를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오려두고 실천한다.처음에는 지키기가 번거롭고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일년정도 하다보니 이제는 자연스럽다고 한다.또한 가계부상으로 매월 2∼3만원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 화순 운주사·순천 낙안읍성·여천향일암/피서길 가족나들이 안성맞춤

    ◎낙안읍성­선조들의 살던 모습 생생한 민속마을/운주사­사랑의 열병 치유… 천불천탑유래 간직/향일암­아열대 식물 울창… 정상의 일출도 장관 전라남도는 맛과 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고장이지만 그동안 발길이 쉬 닿지 않았다.국토의 서남단에 있는데다 지역감정 등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풍부한 문화 및 관광자원을 고스란히 남겨 놓아 나들이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남도는 최근 지역의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가볼만한 관광지를 추천하는 등 「관광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이에 발맞춰 일선 자치단체도 내고장 관광자원에 대한 안내책자와 기념품을 배포하는 등 「관광전남홍보」에 열성이다.전남의 볼만한 관광자원을 소개한다. ▷화순 운주◁ 사군 관광 안내책자는 마음이 외롭거나 실연 등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을때 이곳을 찾으면 방황의 끝을 보여준다고 소개하고 있다.여기저기 꾸밈없이 흩어져 있는 소박한 석불들이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기 때문인듯 하다. 운주사는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1천개의 불상과 1천개의 탑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곳이다.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현재 91구의 불상과 21개의 석탑이 운주사 계곡 주변에 흩어져 있다.이중 길이 21m,폭 10m의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서울이 이곳으로 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산 중턱에 오르면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의 거리,밝기 등에 비례해 만들었다는 칠성바위도 있다. ▷낙안읍성◁ 마름으로 덮인 한옥과 마당,한켠의 남새밭,대나무로 엮은 사립짝,고샅길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돌담….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은 우리 선조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민속마을이다.40대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는 마치 고향에 온듯한 안온함을 신세대들에게는 조상들의 체취를 엿볼수 있게 한다.지금도 성안에 108세대가 초가집에 살고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달집태우기,성곽돌기 등의 민속행사가 열리고 10월1일부터 닷새동안 남도음식대축제와 전국대학생 풍물놀이대회가 개최되는 만큼 때를 잘맞추면 기쁨이배가된다.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전통혼례식도 구경할 수 있다.평상이 펼쳐진 민속잔치집,민속향토음식점에서 보리밥,빈대떡,녹두전,더덕주,동동주,식혜 등의 전통음식을 맛볼수 있다. ▷향일암◁ 향일암은 말 그대로 해를 향한 암자로 동해 낙산사와 함께 일출광경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해돋이를 한번 구경하고 나면 암자이름을 왜 향일암이라고 지었는지 저절로 느낄 정도로 장관이다.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거쳐 남동쪽으로 25㎞쯤 달리면 여천군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에 닿는다.기암절벽과 동백나무를 비롯한 아열대 식물의 울창한 수림이 장관을 이룬 마을 뒷편 금오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거북의 모습을 쏙 빼 닮았는데 향일암은 이 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가파른 산길과 거대한 바위사이로 난 석문 등 가뿐 숨을 30여분 몰아쉬면 향일암이 나타난다.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향일암 앞마당에 다다르면 평화로운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더구나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염분이 없어 끈적거리지 않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게 한다. 허경만 전남지사는 『전남은 탁트인 해상경관을 끼고 있는데다 역사문화 유적지가 풍부하고 먹거리도 맛깔나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며 『한번 찾아오면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올 대권 누가 잡을까?/정답은 PC게임안에

    ◎용들의 전쟁다룬 「헬로 미스터 프레지던트」/현정치인 등 쏙 빼닮은 캐릭터 8명 등장/선거운동기간 1백일간 치열한 유세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누가 당선할까? 정답은 컴퓨터 게임안에 들어있다(?). 지오마인드(02­874­9935)에서 개발한 「헬로 미스터 프레지던트」(HELLO! MR.PRESIDENT).「대권」을 향한 「용들의 전쟁」을 소재로 만든 정치시뮬레이션 게임이다. 8월초에 출시되는 이 회사의 데뷔작으로,나오기도 전부터 벌써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임에는 이름 한 글자씩은 다르지만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이회창,박찬종,이홍구,이한동,김대중,김종필씨를 쏙 빼닮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김영삼 대통령에 해당하는 캐릭터는 김영웅.「신한국 창조당」 소속으로 보수개혁적인 성향이다.오랜 야당 생활끝에 대통령이 된 것까지는 현실과 같지만 못다 이룬 개혁을 완성하려고 다시 출마했다는 점이 다르다. 김대중 총재를 연상시키는 야당의 대표주자는 김대운.「한반도당」 소속으로 청년기 직업은 의외로 패션디자이너다.호남에서 강세를 보인다. 야권의 또다른 후보는 「의회지지당」소속 김필승.젊어서는 코미디 영화배우였으나 5.16혁명때 정치에 입문했다. 여권에서는 「신세계당」의 이창조 후보가 개혁성향을 띠고 있다.일찍이 대나무 농사를 짓다가 뜻한바 있어 법조계에 투신했다.「청정정치당」의 박찬성은 깔끔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전직 CF모델이다. 여기에 온건 성향의 대학교수출신 이홍익도 가세한다.통일에 관심이 많은 학구파로 정치에서도 조화와 견제를 최대덕목으로 친다. 이한국은 보수개혁파로 청년기 직업은 유도선수다.중부권에서 인기가 높으며 독서광이다. 게임에는 시민 후보 한 명까지 포함,모두 8명이 1차 후보로 등장한다.이중 최종 선택된 4명이 대권을 향해 마지막 경합을 벌인다. 선거 운동기간은 100일.게이머는 후보들의 젊은 모습과 현재의 모습중 한 가지를 선택,서울 등 20개 도시를 돌며 유세를 벌인다. 선거에 이기려면 자원봉사자와 기부금을 적절히 모아야 한다.현수막이나 전단,레이져쇼,인터넷 홈페이지,차량,헬기도 홍보를 위해 빼놓을수 없는 아이템들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공약.후보들은 정치,경제,환경,복지,교통 등 5개 분야에 3가지씩 모두 15개의 공약을 걸수 있다.유세를 할때 그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 공약을 해야 지지도가 올라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대형사고,북한문제,경제문제등 가끔씩 발생하는 이벤트를 유연하게 해결하는 순발력도 요구된다. 재미있는 것은 유세전이 전투로 표현된다는 것.전투에서 경쟁후보의 지지세력을 물리치면 내 편으로 만들수 있다.내 편이 많아질수록 당선가능성이 높아진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상대편의 선거전략을 염탐할 스파이를 고용한다거나 지하조직의 거물한테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겠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때 판단을 잘해야 한다.당선에 눈이 어두워 덥썩 제의를 받아들이면 「도덕성」에 흠집이 생겨 후보를 사퇴해야 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만든 이일승씨(28)는 『승리가 목적인 게임과 대통령 선거는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현실 정치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게임이니까 결과는 전적으로 게이머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 조선중기 이숭효의 「어부도」(한국인의 얼굴:104)

    ◎낚시대와 물고기 꾸러미/허름한 행색에도 초연한 눈매 어부는 고기잡이를 일거리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그런데 옛날에는 격을 높여 어부라 썼다.이 보다 무게를 더 실어 어옹이라고도 불렀다.옛날의 어부라는 말속에는 고기를 낚아가며 고상한 삶을 살아가는 큰 그릇의 사람을 의미했던 것이다.그래서 시조나 가사에 곧잘 나온 것은 물론이고,때로는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 어부를 주제로 한 그림중에는 조선시대 중기를 짧게 살았던 화가 이숭효가 그린 「어부도」가 있다.가는 올의 모시 바탕에다 먹물로 그린 저본수묵화인 이 그림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했다.16세기 작품으로 중국 절파의 화풍이 배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이다.그의 작품은 매우 희귀하다.그래서 「어부도」는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일 수 밖에 없다. 이 그림에는 「어옹귀조도」라는 화제 하나가 더 붙어있다.화제에서도 여느 낚시꾼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그림을 보노라면,실제 그렇게 묘사되었다.낚시질에서 돌아오는 허름한 차림의 어부이기는 하나,범상치 않은 인물이다.그 늙은 어부가 대각선으로 가까이 이어진 길을 비치적비치적 걸어서 그림속으로 들어섰다.그림이 아니었더라면,금새 화폭을 빠져나올만한 자리를 걷고 있다. 어부는 낚시대를 오른손으로 잡아 어깨에 걸머메었다.그리고 왼손에 물고기 꾸러미를 들었다.낚시대는 대각선으로 화폭을 절반쯤 갈라놓았다.그런데 모질게 자란 대나무를 낚시대로 썼던 모양이다.곧은 데가 없이 멋대로 굽었다.그까짓 낚시대가 굽었다고 신경을 쓸리 만무한 노인은 초연한 자세로 길가 어딘가를 굽어보는 눈치다.온갖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얼굴 가장자리를 돌아갔지만,인상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늙은 어부는 대삿갓 보다는 차양이 넓은 모자를 썼다.그 아래로 드러난 눈매가 인자한 노인은 초연한 얼굴을 했다.입가 윗쪽의 수염 수가 아직은 거므스름하지만,살쩍에 난 터럭 빈과 구렛나루는 이미 희게 세어 버렸다.그러고 보면 설빈어옹이라 해도 좋을 흰수염의 늙은 어부인 것이다.갯가 등성이에는 갈대가 어부의 수염만큼이나 아무렇게 자랐다. 설빈어옹은 이현보(1467∼1555년)가 고려때 가사를 고쳐 쓴 「어부사」에 나온다.「설빈어옹」이 주포간,자언거수 승거산이라 하놋다」로 시작하는 가사가 그것이다.
  •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문연다

    ◎「희원」 23일 개원식… 24일부터 일반에 공개/석단·정자·연못·담장 옛 지형 그대로 복원 경기도 용인에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사설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이 전통정원 「희원」을 마련,오는 23일 개원식을 가진뒤 24일부터 일반에게 공개한다. 1년간의 공사끝에 모습을 드러낸 「희원」은 우리의 옛 지형을 복원,석단과 정자·연못·담장 등 한국 전통정원의 멋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게 특징.2만평의 대지위에 호암미술관이 수집해 온 신라시대 석탑을 비롯,이름없는 석공들이 만들어낸 불상,벅수,석등 등 석조물이 배치되는 것과 함께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4군자와 자생 화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며졌다. 바깥마당과 죽림,간정,소원,주정,객정,전통찻집,전시마당,후원 등으로 꾸며져 이 가운데 죽림과 주정,후원,소원 등에 각각 석물이 34점,51점,26점,12점이 전시되고 전시마당과 간정,전통찻집 주변 등에도 미술관 소장품들이 놓여지게 된다. 울창한 대나무 숲인 죽림은 소원으로로 이어지면서 벅수들의 정겨운 표정이 찾는 이들을 맞게 되며 호암미술관앞 중앙에 자리잡은 1천200여평의 넓은 마당인 주정에는 120평 규모의 연못과 함께 이 미술관의 주요 소장 석조물들이 전시돼 있다.이와 함께 미술관 전면에 펼쳐진 500여평의 잔디 전시마당은 전시와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며 후원은 미술관의 옆면과 뒷면을 차지해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서 있다.
  • 이회창 대표 자서전 「아름다운 원칙」 발간/47가지 일화 소개

    ◎곳곳에 소신 담아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7일 「이회창의 삶과 세상이야기」라는 부제의 자서전 「아름다운 원칙」을 냈다. 자서전은 이대표가 지난 35년 황해 서흥에서 태어난 뒤 신한국당 대표가 되기까지 걸어왔던 삶의 과정을 일화형식으로 묶었다.그는 47개의 일화에서 「빛을 발하되 그 빛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하지않고 모가 났으되 그로인해 타인을 찌르지 않는다」는 삶의 원칙을 소개했다. 이대표는 특히 「1백27일 총리」라는 일화에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총리 역할을 수행하려다 청와대측에 불경스럽고 돌출적인 행동으로 비쳐 도중하차 했음을 내비치고 「대나무는 말라죽을 지언정 갈대가 되지 않는다」는 자기의 소신을 담담히 전했다.
  • 제주·여수·하동·구례·사천만/남녘 꽃소식 봄마중 재촉

    ◎노란 유채향기에 신혼여행의 추억을­제주/꽃봉우리째 반기는 동백­여수/매화구름에 신선이 된듯­하동/무리져 피는 산수유 참맛­구례/하늘 가리는 벚꽃 황홀경­사천만 봄바람을 타고 꽃소식이 올라온다.남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하루하루 꽃소식을 북으로 밀어올린다.제주에는 이미 들판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노오란 꽃밭에서 노니는 신혼부부들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남해안 절벽 바위벼랑마다 동백꽃이 선홍빛으로 화사한 매무새를 자랑한다.지리산 자락에는 샛노랗게 피어난 산수유가 별천지를 이루고 섬진강가에는 매화가 황홀경을 연출한다.봄철 꽃놀이의 대표격인 벚꽃도 평년보다 1주일 가량 빨리 필 것이라는 소식이다.이미 제주 서귀포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은 벚꽃축제로 유명한 진해에서 이달말쯤 만개해 4월8일쯤 서울까지 북상할 것이란다.한번쯤 일상의 때를 훌훌 털어버리고 꽃소식을 따라서 봄마중을 나가 봄직도 하다.꽃향기를 만끽할 만한 곳 몇군데를 소개해본다. ○일출봉서 보면 진경 ◇제주 유채꽃=제주의 봄은 유채꽃에서 시작된다.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유채꽃은 3월 초순에 남제주에서 피기 시작해 5월 초순까지 이어진다.유채꽃은 배추 유채꽃과 토종 유채꽃 두 종류가 있는데 배추 유채꽃은 3월에 피어나지만 토종 유채꽃은 4월 하순에 만개한다.남제주군 송악산·산방산 주변과 성산 일출봉 진입로 일대가 군락지로 유명하다.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유난히 더 노랗고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성산 일출봉에 올라가면 아래쪽의 꽃밭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좋다. ◇여수 동백꽃=반도 남단의 미항 여수에서 7백여m의 다리를 지나 오동도에 이르러 산마루에 서면 여수시의 전경과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한잎 한잎 지지 않고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지는 동백이 봄나그네를 반긴다.오동도는 절개를 지켜 바다 바위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어부 아내의 순정이 전해져 오는 곳.섬 둘레로 2㎞에 이르는 산책로는 동백과 해송,대나무 등으로 뒤덮여 아늑한 멋을 풍긴다.오동도 동백은 연등할머니가 승천하는 날인 음력 2월20일쯤 만개해 4월 초순까지 절정을 이룬다.해삼 우럭 등 해산물도 제철을 만나 입맛을 돋구어준다. ◇하동 매화=경남 하동군 섬진강가 섬진마을과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라 일대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매화의 별천지를 이룬다.이 동네에 매화가 과연 몇그루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저 매화가 피면 또 한해 봄이 왔구나 생각하고 꽃이 지면 봄이 가는구나 생각한다.매화가 활짝 피는 때는 3월 하순 열흘 가량에 불과해 꽃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은게 아쉽다.섬진마을 매화는 마치 뭉게구름을 산자락에 깔아놓은듯 하다. ○4월초까지 꽃세상 ◇구례 산수유=옛부터 「산수유의 땅」으로 이름난 전남 구례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는 온통 샛노랗게 피어난 산수유로 그야말로 「꽃세상」을 이룬다.우리나라 산수유 열매 생산량의 60%가 이곳에서 나며 구례 지방 생산량의 85%가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자리잡은 산동면에서 나올 정도로 산수유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산수유가 이 지방 특산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여년전 쯤부터.지리산 험산준령에 둘러싸여 논이 적고 밭이 척박해 산수유 나무를 심어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산수유의 아름다움은 무리지어 피어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꽃잎 길이가 2㎜ 정도로 매우 작아 꽃송이 하나 하나의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수백 그루씩 무리지어 자란 산수유나무가 한꺼번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 ○3면이 바다로 트여 ◇사천만 벚꽃=벚꽃 하면 우선 진해 군항제를 떠올리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게 흠이다.그러나 남해 사천만 선진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아 벚꽃을 한가로이 즐길수 있다.이 공원은 평소에는 한적한 곳이지만 해마다 벚꽃이 만개하면 하늘을 가리는 황홀경을 연출하는 이색지대이다.공원안에만 700여 그루의 벚꽃나무가 있어 「꽃에 가려 하늘이 안보일 정도」이다.공원입구에서 53계단을 오르면 3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탁트인 공간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 김송죽 소설 「번개치는 아침」(송화강 5천리:17)

    ◎북만일대 조선족 삶과 투쟁 생생히/비적의 약탈에 맞서 결성한 무장지위대/후일 공산군부대 편입… 국민당군 토벌나서/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반동으로 찍혀/중국 문혁시기 혹독한 핍박·고초겪어 흑룡강성 화천면 성화향 성화촌에 사는 김송죽 선생(59)은 퇴직교원이다.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하얼빈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가있다.그래서 두 내외가 넓은 한족식 집을 지켰다.그는 80년대 초에 처녀작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을 발표한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장편실화 「혈전」을 내놓았다.이미 문명을 얻은 그는 요즘 「관동의 밤」이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처녀작 「번개치는 아침」은 그의 부친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광복직후 조선족부대가 비적과 싸운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국민당군 별동대 성격의 비적은 광복직후 북만일대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공산당을 적으로 싸워야했던 당시 국민당에 북경에서 먼 북만은 사실상 통치지역 밖이었는지 모른다.그런 탓에 국민당을 돕는답시고 나선 별동대속에는 만주국시절 헌병이나 경찰관도끼여있었다는 것이다. ○피땀어린 농토 등지고 유랑 그리고 실제 국민당 비호를 받았다.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상장 사문동과 제1집단군 총사령 상장 이화당,국민당 동북 정진군 총지휘 중장 장우신이 별동대를 조종했다.당시 그들의 횡포를 고발한 노래말에 「사(사문동),이(이화당),장(장신우)은 불지르고 살인하니」라는 내용이 들어갈 정도였다.북만일대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공산당이 일찍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이 불타버리고 주검이 들판을 덮었다.더구나 조선족은 늘 사냥의 대상이 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그런 일로 해서 조선족들은 피땀으로 일군 땅을 버리고 다시금 유랑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이 무렵 조선족 선각자들이 일어났다.무장자위대를 만들어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그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산당 군부대에 속속 편입되었다. 그러한 무장자위대 가운데 맨 먼저 공산당 군부대에 편입한 조선독립대대는 1945년 11월25일 연안에서 주덕해와 손을 잡았다.조선의용군 제3지대로 개편한 조선독립대대는 다음해 4월28일 하얼빈에서 국민당군과 싸웠다.하얼빈이 국민당군 손에서 떨어져나오자 당기관과 발전소,송화강철교,비행장 경비를 담당했다가 국민당군 토벌에 나섰다.1946년 9월2일 하얼빈시 향방구 사리툰전투에서는 제3지대 소속 조선족 21명이 전사했다. 김송죽 선생의 부친이자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모델 김병념은 광복직후 동북민주연군에 참가했다.제1연대 조선족대대인 제2대대 5중대 1소대에 배속되었다.소대에서 3반장 직책을 맡은 그는 1946년 가을 대대를 따라 흑룡강성 화남현 발전소로 이동했다.그해 11월6일 주변정찰을 나갔다가 국민당군 병력과 교전이 붙었다.그 전투에서 김병념은 대대참모 김해정 등과 함께 전사했다.그리고 얼마뒤인 11월20일 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사문동이 붙잡혔다.사문동은 12월23일 벌리현에서 총살되었다. 김송죽 선생은 소년시절을 부대에서 보냈다.부친 김병념이 전사한 이후에도 모친이 부대 재봉대에서 군복을 짓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영내에서 살았다.그러다 부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친과 함께 벌리현에 남았다.할아버지 김석길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요,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다. ○소년시절 군부대서 생활 할아버지 김석길은 1884년 평남 수난 태생이었는데,1912년부터 계몽운동에 참여했다.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연고로 지명수배를 받자 제자 9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집안과 휘남을 거쳐 왕청에 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북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1925년 신민부에 들어갔다.1928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파견한 의란현에서 이도강 등에 4개의 학교를 세웠다. 김송죽 선생이 스무살 나던 해인 1958년에 할아버지 김석길은 흑룡강성 화남현에서 세상을 떴다.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민족의사들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항일운동을 했으면서도 공산당이 이끈 투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배제되었다.오늘날 흑룡강성 항일열사 가운데 민족독립운동가는 한 사람도 없다.물론 김석길 같은 분들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손들은 오히려 모진 핍박을 받았다.더구나 문화대혁명시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어야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송죽 선생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유로 반동민족주의자가 되었다.그의 죄목은 반동민족주의자 말고도 역사반혁명분자의 아들,반혁명집단의 두목,반당분자,반사회주의분자 등 10가지에 이르렀다.부친 김병념이 국민당군과 투쟁한 사실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부친이 광복전 강제로 끌려가 철도경호대에 있었다는 사실만 들추어 혁명열사가 계급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김송죽 선생 자신이 써놓았던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원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비적토벌을 내용으로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으나,김동철·김해정이 조직한 조선족부대를 문제로 삼았다.김동철과 김해정은 본래 항일연군 8군에서 일제와 싸웠다.그러다 1939년 군장 사문동이 일제에 투항하자 숨어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조선족부대를 창설했던 것이다.그 뒤에 동북민주연군 제1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던 조선족부대가 1949년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반동으로 몰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북한을 수정주의로 보았던 터라 조선족부대는 반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 틈틈이 습작 그는 옹골진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모진 매를 맞고 이른바 돌림투쟁을 숱하게 당했다.그래도 푸른 대나무처럼 곧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자신의 이름(송죽)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감옥생활 4년을 버티었다.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소설 「번개치는 아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1965년 탈고하고 하얼빈 조선족문화관에 원고를 보내놓은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문학수업은 어떤 의무감에서 이루어졌디요.청소년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리 독립운동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서 그걸 언젠가 정리한다는 생각을 했습네다.할아버지 유언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과 비적의 횡포를 역사로 기록하라는 것이었디요.할아버지한테 듣고,어렴풋하나마 어려서 실제 보아왔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설을썼던 것이외다.1957년 벌리중학을 나와 농사일 틈틈이 그런 꿈을 키우면서 실제 습작을 해왔디요.할아버지 유언과 내 꿈은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졌습네다』 김송죽의 「번개치는 아침」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원고를 탈고한지 꼭 18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그에게는 물론 가족사를 문학적으로 정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한 대서사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요즘 탈고한 장편소설 「관동의 밤」도 북만의 독립운동사를 형상화한 것이다.자그마치 75만자나 되는 작품을 출판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 단백하고 감칠맛“영덕대게”/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대게시장」

    ◎전국 미식가들 “군침”/수심 200∼400m 모래바닥서 서식… 지금이 제철/지난해 268t 어획… 그믐때 잡은게가 “최상품”/잡히는 시기따라 맛도 달라… 껍데기 딱딱한건 「홍게」 동해의 겨울 갯바람이 뺨을 에는 이맘때이면 구수한 냄새에 절로 발길이 이끌리는 곳,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일대 대게시장. 강구항은 대게 성수기인 요즘 하루종일 게 익는 냄새가 그치질 않는다.이곳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맛을 보고 싶어하는 국내유일의 「영덕대게시장」이다. 주민들은 겨울이면 「영덕대게」를 사려는 상인들로 하루평균 500명이 넘는 인파가 북적인다고 말한다.주말이면 전국의 미식가들까지 몰려 1주일에 약 5천여명이 이곳 「대게시장」을 찾는다. 강구항일대에는 횟집을 포함해 100여곳의 영덕대게 판매점이 있다.지난해 생산량은 모두 268t으로 30억여원의 소득을 올렸다. 대게시장은 주로 11월초부터 형성돼 다음해 5월말까지 형성된다.6월부터 10월까지는 산란기를 맞은 영덕대게를 보호하기 위해 포획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강구항에서 8년째 대게를 판매하고 있는 박경애씨(37)는 『영덕대게의 독특한 맛이 알려지면서 대게를 찾는 고객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며 자랑했다. 대게는 국내에서는 경북이북 동해안에서 주로 잡히며 함경북도 연안 냉수역에도 많이 서식한다.일본 서남해역,오호츠크해 캄차카,베링해 등에도 분포하나 양은 그리 많지않은 편이다. 이 가운데서도 영덕군 강구면 앞바다에서 축산면에 이르는 3마일 해상에서 잡힌 대게를 최고로 꼽는다.그래서 예부터 대게 하면 「영덕대게」라 통해왔다. 이는 이 일대가 수온 3도이하,수심 200∼400m의 모래바닥으로 형성돼 대게가 서식하기에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덕대게」는 몸집이 크다해서 대게가 아니라 대게의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덕군은 최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대게 판매에 열을 올리자 지역 특산품인 영덕대게의 품질강화에 나서는 한편 대게 아가씨를 선발하고 홍보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구분방법◁ 영덕에서 잡히는 대게는 다른 지역에서잡히는 대게와는 달리 누런 주황색을 띠고 있어 색깔을 보고 고르면 틀림없다. 단맛이 약간 나며 담백하고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며 껍데기가 부드럽고 육질이 약해 껍데기가 딱딱한 일반 홍게와는 큰 차이가 있다. ▷고르는 법◁ 영덕대게는 잡히는 시기에 따라 맛의 차이 뿐만아니라 육질의 양도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그믐 가까이에 잡힌 대게가 맛도 뛰어나고 육질도 많은 반면 보름 가까이에 잡히는 대게는 육질이 적다.이는 게의 무게로 구별이 가능하다. 계절적으로는 주로 2월에 잡힌 대게를 최상품으로 꼽는데 각질이 단단해지고 맛 또한 우수하다. ▷구입방법◁ 강구항에서 형성되는 대게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나 시장 주변의 횟집이나 대게 전문판매점에서 연중 구입이 가능하다. 또 다른 지방에서 구입을 원할 경우 전화 한 통화면 전문판매점에서 영덕대게를 바로 먹을수 있도록 잘 익힌채 포장해 배달된다. ▷영양가◁ 영덕대게는 칼슘·인·철분·아르기닌산 등의 필수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돼 있어 현대인의 건강식으로 인기가높다. 특히 최근들어서는 무공해 식품으로 노약자와 환자·어린이의 이유식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가격◁ 영덕대게는 어획량이 적고 맛과 육질이 뛰어나 값이 비싼 편이다.다른 지역의 대게에 비해 값이 평균 두배이상 높다.이로인해 홍게 등 유사품이 많아 다른 지역 소비자들이 속기 쉽다. 최상품으로 분류되는 몸통(두흉갑장) 20㎝,한쪽 다리길이 30∼40㎝크기의 대게는 생산현지에서도 평균 6만∼8만원에 거래된다. 그러나 서민들이 즐길수 있는 영덕대게는 마리당 3만∼4만원씩이면 충분하다. 또 몸통크기 10㎝내외의 중·하급 대게는 2만∼3만원에 5∼10마리까지 구입할 수 있어 온 가족이 즐길수 있다.
  • 조선 청화백자 낚시동자(한국인의 얼굴:93)

    ◎생머리 옷자란 개구장이 낚시꾼/붕어입질에 긴장한 모습 귀여워 조선시대의 대표적 도자기는 백자다.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기인 조선 전기에는 분청사기가 백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분청사기는 고려청자 전통 위에 조선의 취향으로 재창조되어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그러는 사이 백자에는 짙은 하늘색을 띤 새로운 빛깔의 무늬가 등장했다.바로 청화백자다. 조선의 청화백자는 국초를 얼마만큼 비켜나서 세상에 나왔다.그 시기를 세종때인 15세기 전반이 저물 무렵으로 보고 있다.청화무늬를 그리는 물감은 중국에서 들여온 안료 코발트였다.청화를 백자에 올리는 기법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그러나 모방에 그치지 않았다.조선의 감각이 함초롬한 새로운 도자문화를 개척했다.조선 청화백자의 느낌은 맑은 날 파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 같은 것이었다. 청화백자는 15세기이후 꾸준한 발전을 거듭했다.처음에는 그릇 전체를 무늬로 가득 채웠다.그러다 간결한 회화필치의 그림을 그릇에 그리면서 여백을 남겼다.더러는 청화로 사람과 풍경이들어간 그림을 그렸다.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청화백자조어 떡메병이 그런 그릇이다.18세기 전반 작품인데,떡메처럼 생긴 높이 25.4㎝ 병에 낚시질하는 동자그림이 들어가 있다. 동자는 아직 떠꺼머리도 못 땋아내렸다.생머리가 그냥 웃자랐다.나이 어린 개구쟁이꼴이지만 귀엽게 생겼다.물고기가 벌써 입질을 했는가,잔뜩 긴장한 표정이다.그 사이를 놓칠세라 고기가 무는 쪽으르 허리를 좀 굽힌 동자는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그래서 붕어주둥이마냥 동그랗게 오므린 입보다 눈이 더 켜졌다.통통한 볼과 모나지 않은 코에서도 애티가 풍기는 동자다. 동자의 낚시는 이골이 나서 대나무 긴 낚싯대를 한손으로 잡았다.그래도 고기가 덥썩 물리면 자칫 한손으로만 낚아채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소년은 그 일을 거들어줄 요량으로 왼손을 미리 안쪽으로 끌어들여놓았다.저고리가 가로거쳐 섶을 잔뜩 여미고,바지가랑이는 종아리가 드러나게 강똥 걷어올렸다.낚시꾼 흉낸 제법 다 냈다.그렇다고 대단한 낚시꾼도 아닐 텐데,고기를 담아갈 삼베망태까지 허리춤에 찼다. 이 청화백자는 그릇 생김새로 보아 틀잡힌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 분명하다.사옹원 아래 분원같은데서 만들었을 것이다.그림은 도화서 화원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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