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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하르토 7선 연임 확실/인니 내일 차기대통령 선출

    【자카르타 AFP 연합】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5년 임기의 7번째 대통령직 연임을 위한 대통령 후보지명을 8일 공식 수락했다. 76세의 고령인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센다나 공관에서 헌법상 최고 권력기관인 국민협의회 5개 분파 대표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후보지명 수락의사를 밝혔다. 군부가 주도하고 있는 국민협의회는 수하르토의 연임을 승인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국민협의회는 지난 1일부터 대통령 선출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 오는 10일 수하르토 대통령을 7선 연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대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한편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8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 조건이 인도네시아의 헌법 정신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일곱번째로 5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하기 위한 후보 지명을 수락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IMF는 자유경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협동조합과 ‘가족 주의’에 근거를 두도록 규정한 헌법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국영안타라 통신이 보도했다. IMF는 최근 인도네시아에 대해 4백30억달러의 지원 프로그램중 2차 전달분 30억달러의 지급을 연기했다고 발표했다.
  • 어떤 2인자 자리… 그런 운명일까(박갑천 칼럼)

    고화자전.기름불은 사방을 밝히지만 스스로를 태워 마침내 없어진다.재능때문에 화를 입는 경우를 이르면서 쓰는 말이다.담비가 아름다운 털때문에 죽는 이치와 같다할까. 이같은 인생의 기미를 두고 여기저기에는 쓸모없는 것일때 수명이 길다는 말이 나온다.그 가운데 인간세편을 보자.목수석이 엄청나게 큰 신목을 보면서 “재목으로 쓸수없는 것이기에 저렇게 오래 살수 있었다”고 시뻐한다.그날밤 그 신목의 영이 석의 꿈에 나타나 하는 말에도 비슷한 대목이 비친다.“저 풀명자나무·배나무·귤나무·유자나무… 등은 과일이 익으면 사람들에 의해 가지가 꺾인다.훌륭한 능력을 지님으로해서 오히려 제생명이 괴로움을 당한다.그리하여 천수를 못다하고…”.그래서 천수를 다하고자 재주를 묻어두고사는 처세술도 세상에는 있다.특히 동양쪽이 그러하다. 굳이 재주를 숨기진않지만 맨앞장은 서지않고 버금자리에서사는 처세술도 더러본다.앞장서는 우두머리는 “모난돌 정맞는다”는 경계심이었을까.아니면 자신의 재능에 대한 한계를 느낌이었을까.가령 은의 이윤이나 주의 주공단이 그런 사람이다. 이윤은 탕왕이 죽고 왕위를 이은 태종이 법을 지키지않자 추방하고서 자신이 섭정한다.그러나 3년후 태종이 뉘우치자 정권을 돌려주고 그를 도와 은나라 4백년의 기틀을 다진다.섭정하는동안 정권을 뺏을수도 있었다.한데도 보좌역으로 살손붙이면서 5대 임금을 섬기고 천수를 다한다. 주공단도 그랬다.무왕의 아우로서 형을 도와 나라를 이룩했고 형이 돌아간 다음에는 조카인 성왕을 보필하여 주왕조의 터전을 튼실하게 쌓아올린다.인망이 두터웠으므로 마음만 번드치면 왕위를 차지할 기회가 있었으나 뒤에서 북돋우는 구실에 만족했다.공자가 이상적 인물로 존경하는 까닭도 그런데 있는 것이리라. “그는 영원한 2인자인가”.‘국민의 정부’ 김종필 총리서리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아닌게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따져 생각하자면 대권에서는 4대째의 2인자 역정이다.행적을 살펴볼때 이윤이나 주공단과는 달리 자의에 따른 결과는 아닌듯하다.그렇다면 그는 그런운명일까.며칠전에 토로한 상선여수란말이 옛날에 했던 사무사란 말과 함께 떠오른다.
  • 북,안기부에 계속 강한 거부감

    ◎“남붇대화 개입… 절대권력 행사” 격렬비난 북한이 오래 전부터 철폐를 주장해왔고 최근들어 국가보안법과 함께 남북대화재개 전제 조건으로 계속해서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 국가안전기획부를 북한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한의 대중 월간잡지 ‘천리마’는 최근호에 게재된 기사를 통해 안기부가 남북대화에 개입,절대 권력을 행사해 왔다고 격렬히 비난하면서 “안기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이 잡지는 안기부의 ‘남북대화 개입’을 크게 문제삼으면서 안기부원이 남북대화의 대표,대변인 또는 수행원으로 남북대화에 끼어들어 북한을 반대하는 정보모략 활동을 하거나 회담진전에 제동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또 안기부가 대북 전문방송인 사회교육방송을‘직접적인 지휘 통제’ 아래에 두고 북한에 대한 비방중상을 일삼아 왔다고 지적했다.이 잡지는 이어 안기부의 정보수집활동도 비난하면서 “안기부가 합작기업 회사 영업소 문화교류센터 종교단체 등으로 위장,주변국가들에 침투해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사회 문화를 비롯한 각 분야의 실태에서 부터 주민동향에 이르기까지 정보수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공격했다.
  • 격동의 대한제국 이면사/철없는 임금(비록 남가몽:1)

    ◎고종 첫 어명 “계동 군밤장수 처형하라” 대원군은 미친 사람 행세를 해가면서 와신상담 집권의 기회를 노리다가 1863년 마침내 둘째 아들 재황을 왕위에 올려 놓는데 성공하였다.이 분이 바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다.고종의 즉위식 날이 음력으로 12월13일이었으니 양력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취임식 날인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의 나이는 열두살 철없는 어린아이였다.만으로 따지면 10살 밖에 안되는 아이였으니 요즘 같으면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다.그러나 고종 앞의 철종이 18살이었고 그 앞의 헌종이 8살,그 앞의 순조도 11살 나이로 등극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대원군 둘째 아들… 12세 즉위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계속해서 왕위에 올랐느냐 하면 순조,헌종,철종 등 3대 60여년에 걸쳐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 김씨가 의도적으로 어린 왕을 세워 권력을 전단하려 했던 탓이라 한다.그런 세도정치하에서 흥선군(흥선대원군은 고종 즉위 후에 부른 존칭)처럼 난처한 사람은 없었다.흥선군은 영조대왕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었으니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다.그러니 그는 안동 김씨들의 일급 요시찰 인물이었다.까딱하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죽는 몸이었다.말이 세도정치지 사실상 군사독재보다 더한 공포정치였다.그러니 철종 14년간은 대원군으로서는 살얼음 밟듯 조심하여 살아야 했던 눈물의 재야시절이었다. 흥선군의 사저는 최근 복원된 운현궁이다.말이 궁이지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흥선군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던 초가 삼간이었다.이 초가 삼간에 왕기가 서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집터 때문이었다.터 좋은 데를 명당자리라 하지만 운현궁 자리는 그보다 더 좋은 왕후정승이 나는 터,대지였다. 운현궁 터에는 본시 관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관상대는 일명 서운관이라 했으므로 서운관의 구름 운자를 따서 운현궁이라 했다는 것이다. 관상대라면 천기를 엿보는 기관이다.왕이 되는 것은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천기를 엿보는 고개마루의 초가집에서 왕이 났다.운현궁에 왕기가 서린다느니 또 성인이 난다느니하는 소문은 벌써 철종 초년부터 났었다.그러면 그럴수록 흥선군의 처신이 더 어려워져 마침내 탁질양광,옛날 양녕대군이 그랬듯이 온갓 미친 짓을 다하며 정신병자처럼 행세하여 안동 김씨의 눈을 속였던 것이다. 고종이 왕좌에 오르게 된 데에는 집터 말고 고종의 관상이 좋았다는 설도 있다.경상북도 청도에 사는 박유붕이라는 애꾸눈 관상쟁이가 있었는데,어느날 운현궁에 와서 고종 얼굴을 보더니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난 뒤 “왕이 될 관상이니 이 말을 절대 누설하지 마십시요”라고 했다고 한다.이 사람은 그 공으로 고종이 즉위하자 이듬해 경기도 남양부사와 수사로 임명되었다고 하니 관상보는 것도 출세의 한 방편이었다. 1863년 말 강화도령으로 이름난 철종이 나이 32살의 젊은 나이에 후사도 없이 죽게 되니 흥선군은 극비리에 조대비와 내통하여 전격적으로 후계자를 자신의 둘째 아들로 결정해 버렸다.즉위식은 지금의 창덕궁 안에 있는 인정문에서 거행되었다. ○“운형궁에 왕기 서린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누가 대통을이을 것인지 논란이 많았다.중론이 분분하여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사슴(대권)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이와같이 의론이 분분하게 갈려 있는 시점에 조대비가 특별히 처분을 내려 운현궁의 흥선군 제2자 재황으로 대통을 잇게 한다는 명령을 내리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그리하여 12월 길일 양신에 고종이 보위에 오르니 만조 백관들이 모두 축하하고 만세를 불렀다.한쪽에서는 철종의 장례를 치르고 한쪽에서는 즉위식을 거행하니 조정의 백관들은 눈코뜰새가 없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철없는데다가 평소 굶주리며 자라온 고종이었기에 옥좌에 앉자마자 제일성으로 하는 소리가 계동에 사는 군밤장사를 잡아다 죽이라는 것이었다. 놀란 대신들은 황급히 제지하였다. “전하가 지금 보위에 오르시어 성선의 덕으로써 정치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해서 주살의 위엄을 먼저 보이십니까” 이에 고종은 반박하여 말하기를 “다른 이유는 없다.내가 여러 번 군밤 하나를 달라고 하였으나 한번도 주지 않았으니 이 어찌 인심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같이 이익만 알고 의리를 모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다.어찌 내가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그를 죽이려고 하겠는가.” 이 말을 듣고 대신 한 사람이 아첨하여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시여.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는다는 교를 내리시니 과연 임금의 도량에 알맞습니다.그러나 일개 하찮은 군밤장사를 효수하라는 것은 전하께서 처음 등극하신 자리에서 혹 국가의 화평한 기운에 미안한 일인 듯 생각됩니다.” 이에 수렴청정을 하게 된 조대비(신정왕후)는 교를 내리기를 “대신이 말씀드린 것은 금석과 같은 말입니다.그 효수하라는 명령은 거두어 들이시는 것이 타당할 것 같으니 짐짓 그만두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했다. 이 말을 한 대신이 다름 아닌 안동 김씨 핵심인물이었는데 그 아첨하는 말솜씨는 후세의 정치인들에게 으뜸 가는 귀감(?)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DJ “자율적 언론 개혁” 강조

    ◎청와대 기자실 운영 백악관식으로 변경/현안 브리핑 정레화… 정책 퉁명성 확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언론개혁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사회 각 분야의 과감한 개혁을 주창하고 있는 김당선자는 13일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의 입을 빌어 ‘자율적인 언론개혁’을 주문했다. 박대변인은 이날 기자실을 찾아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한다는데 언론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으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을 언론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로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하지만 당의 한 관계자는 “김당선자는 자신의 대권 4수를 거치면서 언론개혁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해 왔다”며 “그러나 언론의 특수성을 감안,과거 정권처럼 무리한 방식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봐 역시 자율에 무게를 실었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 기자실의 운영방식도 종래와 상당히 바뀔 전망이다.주요 모델은 미국의 백악관 출입기자단 운영이다.예전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씻고 투명성을 최대한확보하겠다는 생각이다. 대통령도 정례 기자회견 방식이 아닌 현안 회견을 통해 자신의 구상을 밝히게 될 것 같다.국정 전반에 대해서는 지난달 중순에 선보였던 국민과의 TV대화처럼 국민을 설득하는 ‘직접 민주주의’ 형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변인은 물론 각 수석들도 기자실을 찾아 설명하는 현안 브리핑을 정례화시킨다는 복안이다.즉 정책의 입안과정을 투명하게 집행하겠다는 의지표현이다. 따라서 기자들이 수석실을 찾는 취재 관행은 없어지게 될 것 으로 보인다.
  • ‘경제 틀’ 다지기 전력투구를/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시론)

    ○고개 든 정치판 기싸움 “권력처럼 솔직한 것이 없다. 잃는 순간 자식마저 내게서 떠나가고 손에쥐는 순간 온 세상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선거에 잔뼈가 굵은 어느 정치인이 지난 가을에 들려준 말이다. 참담한 그한마디가 지금은 평범한 삶의 이치처럼 느껴진다.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다보면 정권교체는 이미 끝난 상태이다. ‘비대위’가 통화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인수위’가 사정까지 논하는 실정이다. 김대중 당선자가 대통령을 대신하여 국정을 살피고 대권을 행사하는 직무대행체제가 이미 한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조순 총재가 차기 총리의 자질에 대해 던진 한마디로 정치권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김종필 명예총재가 ‘책임총리’로서 국정 전반에 화려하게 복귀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생각에서 던진 말인 만큼 온 동네가 시끌시끌한 것은 당연하다. 김종필 명예총재한테 발을 거는 것은 ‘시한폭탄’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일 수 있다. 만년 2인자로서 ‘팽’만 당한 그가 자신을 총리직에서 아예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한다면 정국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방향을 잃고 정치는 갈등만이 확대되는 악순환에 놓일 수 있다. 신여권과 신야권이 총리에 대한 인선 문제로 대치상황에 내던져진다면 언젠가는 그 책임을놓고 신여권 내부에까지 갈등이 확산되고 공방이 벌어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없다. 게다가 그러한 ‘다툼’이 수면 밑에 잠복해 있는 내각제 갈등에 불을 당긴다면 정국은 헤어날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지도 모른다. 조순 총재가 이렇게 민감한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역시 차기 정부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사실 신여권은 서로에 대한 호감보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서 모인 느슨하고 이질적인 세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분을 챙기고 ‘공신’의 반열에 서기 위한 경쟁이 신여권 내부에 잠복해 있다. 조순 총재가 던진 한마디는 바로 그러한 신여권 내부의 상황을 꿰뚫어보고 차기 정부를 마비시킬 ‘힘’이 거대 야당에게 있음을보여 주려는 경고성의 발언이다. 역시 권력은 ‘솔직한 것’인가 보다. 국민이 금반지까지 긁어모아 경제를 구하려는 위기상황에서 조차 권력은 수면 밑에서 꿈틀거리며 국민을 볼모로 삼는 기싸움을 정파 사이에 부추긴다. 국민은 그러한 기싸움을 반대한다. 차기 정부 하에서 총리직을 맡을 인사가 누구인가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물며 정권교체의 신화를 창조한 신여권 내부에 포진해 있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얼굴에 더 이상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만큼 주어진 총리에 대한 선택의 폭에 만족하고 뒤죽박죽인 신여권 내부의 상황을 인정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커진는 정국불안 우려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오늘날 새로운 ‘사건’이 터져 정국을 더 한층 불안한 사태로 끌고갈 지 모를 위험성이다. 지금은 경제에 전념할 때이다.차기 정부에게 발을 거는 일체의 행동을 삼가는 ‘위선적밀월’의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그러한 국민의 걱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무조건 정치권의 ‘선처’를 기다릴 수는 없다. 오히려 언젠가는 한바탕 큰 소동이 일 것을 두려워하면서 미리 준비하는 편이 낫다. 신여권이 논공행상과 안배원칙을 놓고 갈등하고 신야권이 거기에 끼어들어 ‘훈수’를두려고 할 정부출범기 이전에 경제재건을 방해 해온 장애물을 치워버리고 공평한 고통분담의 사회계약을 체결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 인수기를 찬스로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김대중 당선자는 그 날이 오기 전에 미리 국제통화기금 한파를 자신의 후원자로 삼아 부실은행에 손을 대고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불어넣는 동시에 투명한 재벌경영을 보장할 ‘틀’을 임시국회에서 마련하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정권인수기인 지금이 오혀려 큰 일을 벌이고 끝내야 하는 황금같은 기회이다.
  • 설악산 백담사/눈꽃 만발한 산사엔 만해의 체취(테마 탐방)

    ◎계곡 곳곳엔 작은연못·기암괴석 즐비/폭설잦은 2월이후가 설경 즐기기에 제격/대청봉까지 영산담·황장폭포 등 절경 연속 【백담사=임태순 기자】 아무리 심산유곡의 산사라도 속세와의 인연을 끊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전세계에 기상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엘리뇨는 설악에서 가장춥다는 백담계곡에도 찾아왔다. 예년 같으면 낮에는 영하 7∼8도,밤에는 영하 12∼13도까지 떨어지던 수은주가 올해는 낮기온이 영하 2∼3도,밤기온이 영하 7∼8도로 누그러졌다. 여전히 영하권이지만 살을 에는 추위와는 거리가 있다. 그 때문인지 신년 연휴인 지난 1,2일 조용하던 산사는 갑자기 붐볐다. 정초를 맞아 설악을 찾은 나들이객들이 자녀 또는 연인들의 손을 잡고 백담계곡을 찾았기 때문이다. 백담분소에서 백담사,수렴동 계곡을 지나 대청봉에 이르는 백담계곡은 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다. 그래서 가을이면 단풍에 취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백담은 설악계곡 가운데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야영장,가계가 없는데다 여름에 계곡에 뛰어들면 벌금을 물릴 정도로 철저히보호 되고 있기 때문이다. IMF의 한파는 백담사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은 한기가 느낄 정도로 썰렁하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도 내방객의 요청이 있으면 문을 열어 주지만 평상시에는 굳게 닫혀 있다.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백담사 큰스님은 “나라에 돈이 없다는데 우리라고 호광스럽게 지낼수 있어”라며 “어째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됐어”하며 혀를 찬다. 백담계곡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이 다 좋다. 제격으로 치면 불타는 단풍이 울창한 수림과 철철 넘쳐나는 계곡,기암절벽과 어울리는 가을이 으뜸이다.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요란스럽게 물이 흘러 가면서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알리는 봄,무성함으로 무더위를 느낄수 없게 하는 여름의 청량감도 빼놓을수 없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의 영광을 뒤로 하고 알몸으로 다가오는 겨울의 스산한 정경도 만만치 않다. 백담분소에서 백담사까지는 7㎞의 완만한 산길. 왕복 3시간 거리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중턱까지 마을버스가 운행되지만 겨울에는 쉰다. 마을버스로는 응달진 곳의 빙판길을 다닐수 없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들어서면 온 산을 빽빽히 채워주던 수목들은 모두 옷을 벗었다. 나목의 골짜기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할퀴고 지나간다. 계곡 곳곳에는 흰 눈사이로 듬성듬성 낙엽이 무성하게 쌓여 있다. 못(지)이 100개나 된다는 이름그대로 계곡을 끼고 두태소,거북바위,청룡담,은선도 등 조그만 소와 기암괴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난다. 가쁜 숨을 고르고 나면 수심교를 배경으로 백담사가 보인다. 만해가 입산한 곳이다. 좌우측에 만해 기념관과 교육관이 서 있다. 여름이면 교육관에서는 만해 시학교가 열린다. 그 사이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 화엄실이라는 간판으로 서 있다. 조선시대의 시인 김시습이 시를 써서 흘려보냈다는 관음암 앞에는 선원이 들어섰다. 바로 무금선원이다. 말 그대로 현재가 없으니 과거가 있을리 없다. 봄이 되면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인데 입방하면 6년간 나올수 없다고 한다. 물론 득도를 하면 더 빨리 나올수 있고 반대로 깨닫지 못하면 늦게 나올수도 있다. 백담계곡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백담사까지만 둘러본뒤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계곡의 진수는 바로 백담사부터다. 백담사 큰스님은 대청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은 백담까지는 반석위로 흐르지만 백담사를 지나면 바위 밑으로 흐른다고 말한다. 하류로 갈수록 자갈이 흘러내려 쌓이기 때문이다. 백담에서 대청으로 향하면 영산담,황장폭포,구융소,사미소,옥녀봉 등이 줄지어 늘어선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목과 바위 등은 묘한 흡인력으로 사람을 끈다. 대청으로 가까와지면 바람도 얼어붙어 나무에는 눈꽃이 핀다. 백담에서 설경을 즐기려면 2월 이후가 안성마춤이다. 먼 남쪽에서 봄이 기지개를 켜는 2월∼3월에 며칠씩 폭설이 내리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 백담은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계곡의 얼음장이 쩍쩍 갈라지고 바람도 심해진다. 겨울백담은 이렇게 봄을 맞는다. ◎탐방포인트/수심교아래 돌탑 새명물로 각광/연인·친구끼리 찾아와 사랑·우정 확인/계곡물 불어 무너져도 금세 다시 쌓여 백담사로 통하는 수심교아래 개울에는항상 돌탑이 서 있다. 백담사를 찾은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 놓은 것들이다. 돌탑을 영상에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찾아올 정도다. 연인 또는 친구와 한장 한장 쌓아 올린 돌탑이 절이라는 분위기와 어울려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곳 스님들은 여름철 장마비가 퍼부어 냇물이 불어나면 돌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돌탑은 곧 또다시 생겨난다고 말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한장 한장 정성들여 돌탑을 쌓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성황당에 돌을 얹어 놓았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돌을 얹어 성황당 주변에는 항상 돌탑이 서 있게 됐다. 성황당에 돌을 얹는 것은 앞서 간 사람과 뒤에 올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정표라고 할수 있다. 서로 얼굴을 모르지만 두사람은 돌을 하나 얹으면서 따뜻한 정을 나눈다. 이러한 풍습은 백담사의 돌탑으로 이어졌다. 백담사의 돌탑은 마음의 정을쌓고 싶은 현대인의 소외,고독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백담사의 돌탑은 오늘 무너져도 내일 또다시 쌓아진다는 것이다. ◎전두환씨 부부 머물던곳/이불·촛대 등 당시 가재도구 보본/호기심 많은 관광객 눈길 끌기도 백담사는 만해와의 인연을 강조하지만 이 곳을 찾은 일반인들은 전두환 전대통령부부가 생활했던 만해당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 전,노태우 두전직 대통령이 수감생활을 하다 풀려난 것을 감안하면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유배’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두사람이 생활했던 조그만 방은항상 붐빈다. 아마 호기심과 현장확인 욕구 때문일 것이다. 즉 한때 절대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을 했고 그 현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두사람이 2년1개월 동안 지냈던 방은 잘 보존돼 있다. 이불,촛대,빛 바랜 서랍장 등 가재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마루에는 백담사에서 지낼 때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과거에 비해서는 적어졌지만 침을 뱉거나 벌을 더 받아야 한다는 등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부류가 있다. 전직 대통령이 저런 곳에서 생활했구나 하며 무더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의 풍화작용 때문인지 후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백담사측은 잘못된 것도 역사이기 때문에 현장을 보존,공개하고 있다고 말한다.
  • 러 작가마을 페레델키노/‘문학의 산실’ 명성회복 나섰다

    ◎고리키 등 한때 작가 200명 거주/마구잡이 개발 자제 등 보존운동 지난 60여년 동안 러시아 문학의 산실로 알려져 온러시아의 작가마을 ‘페레델키노’가 옛 명성을 다시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수백년된 청송과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숲,그림같은 오솔길로 문학인의 발길을 멈추게 한 이곳은 50∼60년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 한때 유명작가 100여명이 몸소 밭을 일구며 시상을 떠올리던 곳이다.모스크바시에서 서쪽으로 20㎞쯤 떨어져 있어 평소에도 유럽 여러나라의 문학예술인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명소가 ‘페레델키노’다. 페레델키노는 러시아 ‘노동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심 고리키가 1930년대 초반 스탈린정권 아래서 땅을 불하받아 전원주택을 지어 살면서 시작된다.당시 스탈린 정권은 공산 이데올로기에 때때로 반기를 들어 골치를 썩이던 문학인들을 이곳 한지역으로 몰아넣었다.감시체제가 용이했기 때문이다.당시 공산정부가 ‘러시아작가동맹’ 소속 작가들에게 헐값에 이곳 땅과 주택을 특혜분양해주면서 페레델키노는 작가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탈바꿈한다. 50∼60년대를 거치며 페레델키노는 200여명의 시인,소설가,극작가가 모여사는 명실상부한 작가마을이 됐다.시인 파스테르나크나 불라트 아쿠자바같은 이들이 오솔길에 산책을 나오면 문학팬 수십여명이 이들의 집앞에 모여있다 함께 산책길에 나서며 시를 읊기도 했다. 70∼80년대.이른바 20세기초 러시아문학 거장들이 거의 사라지자 이 ‘작가마을’은 그 빛이 조금씩 퇴색한다.후손들간에 재산다툼의 장이 되는가 하면 후손이 끊긴 작가주택의 경우 소유권분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90년대 공산정권이 붕괴되자 변화의 시기에 한몫 거머쥔 ‘뉴러시안’(신흥부유층)들이 이곳 유명문학인의 주택을 통째로 사들이기 시작한다.페레델키노 주변 땅들이 이들에게 팔려나가고 호화별장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페레델키노는 역사 속으로 묻히기 시작했다. 이에 국제작가동맹과 러시아문학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작가마을 보호’를 최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200여개 전원주택(러시아에서는 ‘다차’라고 부름) 가운데 아직 소유권이 일반인에게 넘어가지 않고 보존돼 있는 54곳의 작가다차 임대권에 대해 엄격한 새 입주기준도 만들어졌다.작가들에 대한 임대료는 ‘시대에 맞게’ 30만루블(약 50달러)정도로 다시 결정됐다. 러시아작가동맹 등 문학단체들은 일반인들에게도 입주의 길을 텃다.월 3천달러 이상의 임대료를 내면 일반인들도 임시입주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이 돈으로는 오래된 다른 다차들을 수리하기 위해서다.
  • “50년만의 정권교체” 여야 중진 명암 교차

    ◎이종찬·한광옥 부총재 등 DJ맨 실세로 부상/자민련 김용환 부총재·TK 출신 의원 상한가/한나라·국민신당 소속 중진 대부분 입지 흔들 ‘50년만의 정권교체’가 말해주듯 97년은 여야 중진 정치인 간의 명암이 확연하게 갈라진 한해였다.DJT단일화를 이룬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청와대’ 접수일을 기다리며 집권당으로서 부푼 꿈을 키우고 있고 한나라당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야당으로서 새 출발을 해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국민회의·자민련◁ 국민회의에서는 이종찬 부총재가 단연 돋보인다.이번 대선에서 대선기획본부를 이끌며 자타가 공인하는 ‘일등공신’으로 떠올랐고 여세를 몰아 대통령직 인수위위원장을 움켜 쥐며 실세로 등장했다. 야권단일화를 총지휘했던 한광옥 부총재는 막판 ‘마무리 미숙’으로 역공에 시달렸지만 DJ(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내년 1월 출범하는 노·사·정 3자협의체 위원장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한다.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당분간 DJ의 공백을 메우며 당을 이끌 전망이며 내년 지자제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꿈꾸고 있다. 당의 안방 살림을 챙겨온 김충조 사무총장은 대임을 무리없이 소화,연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박상천 원내총무는 TV선거의 총 산실인 방송선거 대책단을 이끈 공로로 앞으로 ‘여당’의 중심축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DJ의 분신 권노갑 의원은 올해 초 한보비리 사건에 연루,옥고를 치렀고 결국 대법원 확정 판결로 금배지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당내 비주류를 이끌었던 김상현 의원도 ‘한보 파편’을 맞아 주춤했고,정대철 부총재는 파랑새 유세단을 이끌며 수도권 공략에 분전,재기를 노리고 있다. 자민련에서는 단연 김용환 부총재가 빛을 발하고 있다.JP(김종필 명예총재)의 대리인으로 야권단일화 협상을 주도,유리한 ‘전과’를 얻었고 대선승리 이후엔 12인 비상대책위에서 당선자측 대표를 맡아 명실상부한 실세임을 과시하고 있다. 자민련 TK(대구­경북)출신 의원들은 동서화합의 당위성과 희소가치로 인해 연일 상한가다.김부동 수석부총재와 박철언 부총재와 이정무 총무 등은 차기정권에서 비중있는 자리를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패배 이후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 중진들에게는 정치적 암운이 깃든 한해였다.정계 입문한지 2년도 안돼 대권에 도전한 이회창 명예총재는 정치 이상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낀 한해였다.여권분열에 기인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명예총재는 여야간 정권교체를 가능케 한 장본인이라는 멍에를 안게 됐다.이명예총재는 그러나 차분한 연말을 보내면서 ‘깨끗한 정치’로 상징되는 ‘이회창식’ 정치실험의 실현을 위해 정치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 이전부터 이명예총재를 지원했던 김윤환 고문도 이명예총재에 못지 않은 상흔을 입었다.‘킹 메이커’를 자처하던 김고문은 당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지도체제 개편 문제를 둘러싸고 다른 중진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위기를 맞게 됐다. 조순 총재나 이한동 대표도 정치적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현재 당내 위상을 고려할때 이명예총재나 김고문에 비해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다.특히 대선패배 인책론에서 한발 비켜서있는 이대표는 거대야당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 한해였다.조총재는 지난 1년동안 서울시장과 대통령후보,여당 총재,거대야당의 총재를 두루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엄청난 도약을 이뤘다.김덕룡 의원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하긴 했지만 경선결과에 승복해 이명예총재를 측면 지원하는 등 정치적 명분을 쌓아둔 터여서 재도약의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됐다. ▷국민신당◁ 이인제 고문은 경기지사직을 버리고 대선에 출마,3위를 했어도 4백90여만표를 득표,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반면 이만섭 총재는 신한국당에서 국민신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전국구 의원직을 상실했다. 문민정부의 주도세력이었던 민주계도 사분오열,명암이 갈렸다.대선정국에서 주도권을 잃고 전면에서 물러서야 했다.최형우 고문은 지난 3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평생의 꿈이던 대권도전이 좌절됐다.특히 국민신당을 선택한 서석재 의원은 민주계 좌장으로서의 입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 김대중시대­성장기와 정치철학(하의도에서 북악까지:하)

    ◎고난의 한평생 용서·화합으로 일관/목포상고 수석입학후 정치에 남다른 관심/엄한 어머니에 바르게 사는 삶의 좌표 배워/73년 납치사건 직후 “이후락씨 용서했다” 15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일 아침.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로 떠나기에 앞서 일산자택의 계단에 잠시 멈춰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고난으로 점철된 40년 정치 역정을 포함한 지나간 생애가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젊은 시절의 정열을 보상받아야 할 시기에 젊은 시절보다 더 큰 역경에 부딪쳐야 했고,능력을 발휘해야할 때 비방과 모략에 대한 해명에 시간을 보내야 했다.그럼에도 ‘잘 못 알려진 것도 내 책임’이라면서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와 처절하게 싸워 온 인고의 세월이 마침내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용서하는 삶이기도 하다.지난 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뒤 그는 이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됐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 “이미 용서했다”며 화합을 역설했다.지난 9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처음 찾았을 때는 ‘이제는 과거를 묻고 그분의 공적만을 생각하겠다’고 약속했다. 80년 ‘서울의 봄’때 사형선고를 받은뒤 그는‘나는 이제 죽지만,이 땅에서 정치보복의 희생자는 나로써 끝나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진술을 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듯 사형선고를 내린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해서도 ‘죄는 묻되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고 당선되자마자 사면을 추진했다. 혹자는 그의 관용을 두고 ‘유권자를 의식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의 일관된 화두는 ‘국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이지 ‘절대권력과의 대결’이 아니었기에 보통사람에게는 어려워 보이는 가해자에 대한 관용이 더 쉬웠을 것 만은 분명하다. 그는 종종 감옥에 갖혔던 시절을 회상하며 ‘토인비나 러셀,종교서적을 읽다가 ‘감옥에 안왔으면 이런 진리를 모르고 죽을텐데’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같은 술회가 대정치인의 풍모를 보여주기위한 스케일 큰 농담이라기 보다는 그의 진심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그는 ‘역사속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가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 또한 ‘국민’의 미래형임에 분명하다. 그는 정치가 국민들로 부터 백안시당할 때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버린 적이 없다. 나아가 ‘위인정치’를 흠모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선생님’이라는 최고의 존칭으로 불리우고 싶어하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의 반영일 것이다. 정치 뿐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도 이같은 자세는 유지된다. 그에게 있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한 ‘평범’이란 아마 ‘참을 수 없는 정도’의 동의어인 것 같다. 그의 일생은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정도’를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일관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의 성장환경이 그만큼 평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목포에서 뱃길로 두시간 남짓 떨어진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섬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그를 낳은 마을 후광리를 두고 풍수장이들은‘물가로 나오는 달팽이의 더듬이’에 해당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고향마을 이름은 훗날 그의 아호가 된다. 그의 아버지(김운식)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농이었다. 이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그는 신문을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고,여덟살 무렵에는 벌써 1면의 정치기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또 육자배기나 쑥대머리가 장기인 한량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정치적 자질과 예능인에 대한 애정은 아버지로 부터 비롯됐다. 그의 어머니(장수금)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어머니는 아들 셋과딸 하나를 낳았지만 어린시절부터 보기 드물게 총명했던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것 같다. 그런 탓에 어머니는 누구보다는 엄하게 자식들을 키웠고,특히 그에게는 더했다. 그는 지금도 어머니를 설명할 때 마다 여섯살 무렵 술취한 방물장수의 담뱃대를 아버지께 드린다며 들고왔다고 회초리로 장단지에 핏물이 배도록 맞았던 일화를 들려준다. 어머니는 또 친지가 그의 총기를 높이 사 일본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했을 때 허락치 않았다. 유일한 희망을 멀리 떠나보낼 수 없었던 탓일 것이다. 대신 어머니는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목포에 나가 끝까지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보통학교 4학년 때 현실화됐다. 어머니는 하의도의 집과 농토를 모두 처분하고 목포로 나가 여관을 운영하며 학창시절 그를 뒷바라지했다. 그는 목포 제일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5년제 목포상업학교에도 수석으로 들어갔다. 상업학교를 택한 것은 실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학한 뒤에는 점차 정치쪽에 관심이 쏠렸다. 학교에서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시국강연회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 한반도와 일본,세계정세를 듣는 일이 신났다. 시국강연회가 열리면 이따금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교관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너는 사리가 분명해 남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언어구사 능력이 정확명료하다’고 학적부에 기록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일련의 일은 그로 하여금 정치가의 길로 나가겠다는 꿈을 더욱 부풀게 만들었다. 그는 3학년이 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 가겠다는 뜻을 세우고 취업반에서 진학반으로 옮긴다. 그러나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었고,여행허가를 받는 일도 어려웠다. 그는 1944년 봄에 졸업할 예정이었지만 전시특별조치에 따라 한해전인 43년 가을에 졸업했다. 그에게 정규교육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지금도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인 ‘대중참여경제론’이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출간된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이희호 여사와 결혼한 것도 아마도 ‘인간 이희호’에 대한 도전이자,이화여전과 서울사대를 나와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학력에 대한 도전이 성공을 거둔 것인지도 모른다.
  • 꺼질듯 다시 타올랐던 ‘민주화 불꽃’(하의도에서 북악까지:상)

    ◎망명·투옥 등 역경의 세월/‘40대 기수론’ 정계 새바람/71년대선 95만표차 석패/신군부에 사형언도 받아/3당합당에 92년 또 패배/‘적과의 동침’ 4수끝 집권 후광 김대중.그의 삶은 꺼질듯 하면서도 이내 다시 타오르는 촛불이자,얼은 눈밭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리는 인동초이기도 했다. 그의 40년 정치역정은 영과 욕,환희와 좌절이 교차한 한편의 드라마다.특히 유신의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 6·29선언이 있은 87년까지는 납치와 망명·투옥·연금으로 점철된 가시밭 길의 연속이었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그에 뒤따른 인고의 세월은 11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먼저 인정 받았고,이제 당당히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국민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다. 정치가로서 김대중의 이력은 해방 직후 몽양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는 당초 좌우익이 망라됐던 건준의 주도권이 다툼끝에 좌익으로 넘어가자 탈퇴한다.그러나 평생 ‘색깔론’의 꼬리표가 따라붙는 뼈아픈 경력이 됐다.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눈을 돌린 것은 해운업으로 여유가 생긴 54년이다.정치지망생 김대중은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이어 59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와 60년 5대 민의원 선거에서도 거푸 쓴잔을 마셨다.그는 4.19혁명으로 다시 치러진 61년 5월 인제보선에서 처음 당선됐다.그러나 금배지는 커녕 사흘만에 5·16쿠데타가 나는 바람에 의원선서도 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그는 군정 기간 동안 모두 3차례나 투옥되는 등 야당정치인으로 본격적인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그러나 장면박사를 만나면서 민주당 신파의 맥을 잇는 계기가 된다. 그는 63년 6대 총선에서 훗날 정치적 고향이 된 목포에서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서 부터 발군의 지략과 달변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6대 국회 초반 6개월동안 13차례나 본회의 발언을 했고,차관도입과 세제특혜·경제개발계획의 문제점 등을 날카롭게 추궁,야당의 경제통으로 명성을 날렸다. 67년 7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된 그는 68년 5월 평생의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 된 김영삼과의 첫번째 대결인 원내총무경선에서 패한다.그러나 71년대선을 앞둔 신민당 대선후보 지명경선에서 2차투표 끝에 결국 김영삼을 꺾는 대역전을 엮어냈다.이때 김영삼·이철승과 함께 내걸었던 기치가 바로‘40대 기수론’이다. 김대중 후보는 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켰으나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95만표차로 석패하고 만다.‘투표에서 이기고,개표에서 진’ 이 선거는 그러나 혼쭐이 난 박정권이 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된다.이때부터 5년반 동안의 투옥과 3년여의 망명,6년반의 가택연금으로 대표되는 그의 험난한 정치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71년말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해기도를 간신히 모면했으나,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도쿄에 체류하던 73년 여름에는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수장당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가택연금중이던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사면복권되어 정치일선에 복귀했지만 ‘5·17’을 주도한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그는 국제여론과 미국정부의 압력에 힘입어 사형에서 무기,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되어 82년말 죽음의 그림자에서 또 한번 벗어나지만 그 ‘대가’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그는 그곳에서 2년2개월동안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고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바쳐 국내에 있던 김영삼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한다.또 85년 2.12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신민당의 압승을 끌어내는 견인차가 됐다.그의 계속된 민주화운동은 87년 6월항쟁을 촉발시켰고,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8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함께 이민우의 신민당을 깨고 나와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그러나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하게 된다.그러나 결과는 노태우·김영삼 후보에 이어 3등이었다.대권 재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평민당은 88년 4.26총선에서 ‘황색돌풍’에 힘입어 원내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그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하지만 90년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입지가 다시 좁아진 결과 92년 14대 대선에 김영삼 후보에게 패해 세번째 도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평범한 시민이 되겠다’는 유명한 정계은퇴 선언은 이때 나온 것이다.그는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활동에 정진하다 93년 7월 귀국했다.그는 이후 순수한 연구단체를 표방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는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조순 서울시장 후보의 연설원으로 정치일선에 재등장하면서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한다.9월5일에는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정치국민회를 창당,제1야당 총재로 정계전면에 공식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96년 4·11총선에서 전국구 14번의 배수진을 치고 내각제 개헌저지선인 100석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79석을 얻는데 그쳤다.‘야권분열의 책임자’라는 비난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40년 정치역정에서 최대 정적의 한사람이자 이념적 좌표가 다른 김종필이 동지가 된 것은 이때 부터다.그는 15대 국회개원과 함께 김종필이 이끄는 자민련과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DJ(김대중) 불가론’으로 대표되는 당내 이상기류를 잠재웠다.15대 대통령선거전이 본격화되자 김종필과는 혈맹의 관계로 발전한다.김대중을 두당의 대통령 단일후보로 하는 이른바 DJP연합이 그것이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결국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었다. □김대중 당선자 연보 ▲생년월일=25년 12월3일 ▲출생지=전남 신안군 하의면 ▲44년=목포상업학교 졸업 ▲48∼50년=목포일보 사장 ▲51년=흥국해운 사장,해상방위대 전남지구 부단장 ▲60년=민주당 대변인 ▲61년=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인제) ▲62년=이희호 여사와 결혼 ▲63년=6대의원(목포) ▲65년=민중당 대변인 ▲68년=신민당 정책위의장 ▲71년=7대 대선출마 ▲76∼78년=3·1민주구국선언사건 등 주도 및 투옥. ▲80년=사면복권(2월),5·18 내란음모 사형언도(9월) ▲81년=무기 감형,미국 망명 ▲85년=민추협 공동의장 ▲87년=평민당 창당,13대 대선출마 ▲91년=신민당 창당 ▲92년=14대 대선출마 및 정계은퇴 ▲93년=영국 출국 ▲94년=아태재단 설립 ▲95년=국민회의 창당 ▲97년=15대 대선출마 및 당선
  • “선거비 줄인 미디어선거 새장”/특별취재반 선거운동 결산방담

    ◎부동층 급증… 막판까지 승부 예측불허/비방·폭로 위험수위… 정책대결 아쉬움/소규모 거리유세 새 풍속… 대규모 옥외집회 사라져 개정선거법에 따라 미디어 중심으로 처음 치러진 이번 대통령선거는 3후보들간의 박빙의 접전속에 숱한 기복이 교차했고 곡절도 많았다.이번 선거는 IMF체제 출범과 함께 투표일이 가까울수록 부동층이 느는 선거사상 초유의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지난달 26일부터 17일까지의 공식선거운동 기간동안 숨가쁜 대선 현장을 누벼온 서울신문 대선특별취재반 일선기자들의 체험담을 방담으로 엮어 이번 대선의 의미와 각 후보들의 명암 등을 정리해봤다. -각 후보진영은 박빙의 승부를 펼치느라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신경식 비서실장은 선거일 전날인 17일 유난히 발이 아파서 양말을 벗어보니 발톱이 빠져있었다고 합니다.그야말로 발톱 빠지도록 뛰었다는 말이 실현된 것이죠. -이인제 후보의 버스투어는 수행원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행군이었다는게 중론입니다.워낙 많은 곳을 누비다 보니 취재기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하루에 10여개 시·군을 도는게 예사였죠.끼니도 전부 시장에서 때우다시피 했습니다.때문에 국민신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팔도의 떡볶이 맛은 다 보고 다녔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후보들 하루 10여곳 유세 -후보 유세때 시장상인들이 손때가 묻은 만원짜리 지폐나 건강 상품 등을 후보에게 건네주며 선전을 당부한 일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경우 대구·경북과 충청권의 시장 지역유세때 상인들이 즉석 모금한 만원짜리 지폐들을 비닐봉투에 담아 “깨끗한 정치의 상징”이라며 흔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김대중후보나 이인제후보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지난 12일 강원도 속초 정당연설회에 참석했던 김옥천·최정식 두 전 의원이 여관에서 가스질식 사고로 숨지는 바람에 눈물을 뿌린데 이어 선거 전날인 17일에는 친동생 대의씨가 숨을 거두는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그러나 국민회의와 공동선대위를 구성한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충남 공주의 한 고승이 ‘김대중 총재가 세번 눈물을 흘리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적이 있다“면서 “괌 대한항공기 추락사고로 숨진 신기하 의원까지 포함하면 세번 슬픔을 당한 셈”이라고 승리를 장담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더군요.각 후보진영은 역술가들의 점도 최대한 활용했다는 후문입니다. -미디어선거로 선거비용이 크게 줄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르포취재를 통해 각 정당의 씀씀이가 과거보다 크게 줄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이달 초 강원도의 한 곳을 방문했을때의 일인데그 지역 국회의원을 우연히 만났습니다.방금 서울을 다녀오는 길이라더군요.중앙당에서 한푼도 내려보내 주지 않아 친구들에게 돈을 꾸어 왔다는 겁니다.지구당마다 거액이 지급됐다는 14대 대선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죠. ○TV토론 집착 현안 소홀 -미디어 선거가 ‘돈안드는 선거’에 기여한 바는 커지만 역으로 구체적인 정책비전 등 후보의 진면목 보다는 영상이나 화장술로 가공된 이미지로 표심의 향방을가름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다는 평가입니다.브라운관을 통해서 후보들이 직접 정책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진 점등은 긍정적인 대목입니다.특히 보들의 과거 전력이 낱낱이 공개됨으로써 앞으로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은 20∼30년전부터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도 남겼습니다. 그러나 각 당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개발이나 민생현안에 치중하는 대신 TV광고나 합동토론회 효과를 극대화시키는데 전력의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옥외 군중집회가 폐지되기는 했지만,후보들이 유권자가 모인 곳을 찾아가는 대담,연설회에도 일부 청중동원이 눈에 띄었습니다.어차피 연설회가 열리는 지역의 지구당위원장으로서는 후보가 청중도 없는 썰렁한 상태에서 연설을 하도록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는 유례없이 돈이 돌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과거와 다른 신선함을 선사했습니다.심지어 한나라당은 지역구 위원장 부인들이 후보부인과의 만남에서 정색을 하고 “돈이안돌아 지역에서 곤란하다”고 호소했다는 후문입니다. -미디어선거로 돈안드는 풍토를 조성했다지만 일부 후보들은 TV광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 사례도 있었습니다.이부분은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대선은 여론조사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론조사에 의해 희비가 엇갈렸습니다.특히 이회창 후보의 참모들 사이에는 병역시비로 이후보 지지율이 부진을 면치 못할때 ‘마의 월요일’이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선거 2∼3개월을 앞두고 이후보가 지지율 회복을 위한 이벤트를 시도할 때마다 여론조사 결과가 터져나와 찬물을 끼얹었는데 조사 시점이 공교롭게도 거의 월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결과 간접홍보 -지난달 26일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금지된 뒤 각당은 자기측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비공식적으로 흘리며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간접홍보하기도 했습니다.이같은 현상은 투표일 3일전부터는 실체없는 여론조사 결과의 난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민회의는 이번 대통령선거를 위해 일찌감치 지난해 8월 선거전략을 짜기 위한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그 결과 ‘정권교체’를 윈하는 응답이 33%,‘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갈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답변이 62%로 나왔답니다.국민회의가 이번 대선에서 ‘준비된 대통령’을 주구호로,‘바꿔야 산다’를 양념으로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불안하게 느끼는 응답이 많아 이른바 ‘DJP연대’와 ‘DJT연대’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폭로와 비방이 난무했던 것이 사실입니다.특히 한나라당과 국민회의간의 폭로 공방은 가히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습니다.지난 10일 이회창 후보 장남 정연씨가 고의감량했다고 주장한 병무청 직원의 기자회견이 좋은 예입니다. 이날 아침 한나라당은 급거 귀국한 이후보의 차남 수연의 신장측정을 통해 병역시비를 털어 버리려 했습니다.후보직을 걸고 수연씨 신장조작 의혹을 제기했던 이인제 후보가 궁지에 몰리는 듯 했죠.그러자 이날 밤 국민회의가갑자기 병무청 직원의 양심선언을 들고 나왔습니다.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던 회견이라는 점에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이회창·이인제 후보간의 균형을 이루려는 국민회의 나름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폭로전이 난무한 가운데서도 국민신당은 정보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국민회의가 의혹을 제기하면 이를 물고 늘어지다 거꾸로 곤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이회창후보 차남 수연씨 신장조작 의혹이 한 예입니다.처음 이의혹은 국민회의가 제기한 것인데 이인제 후보가 후보직을 걸고 공세를 펴다 결국 수연씨의 신장측정으로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이인제 후보는 한때 지지도가 30%를 넘었으나 ‘청와대 2백억원 신당지원설’ 등이 터져나오면서 10%대까지 하락하는 희비를 맛보았습니다.물론 지지율 하락은 청와대 지원설외에도 자금과 조직력 열세,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못미치는 의석확보 등 갖가지 요인이 겹쳤지요. ○막판 무리한 성명 봇물 -선거 막바지 각당은 하루에 20건이 넘는 성명과 논평을 쏟아냈습니다.특히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한 한나라당에는 이사철 대변인과 맹형규·권오을 선대위대변인 등 3명의 대변인과 무려 13명의 부대변인이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을 상대로 포격을 해댔습니다.그러나 선거가 막판에 이르자 부대변인단은 ‘무리한’ 성명이나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예를들어 국민회의를 빗대‘서울에 붉은 정권을 세울 수는 없다’는 성명을 낸 것은 심했다는 평가입니다. -이번 선거 역시 큰 틀은 지역대결이었다고 말할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다만 영남지역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영·호남간의 직접적인 감정대립은 완화된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회창 후보가 16일 광주를 방문한 것을 둘러싸고 각당이 ‘자작극 논란’을 벌인 것은 씁슬한 대목 입니다. ○병역·IMF 재협상 쟁점 -이번 선거전의 최대 이슈는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 공방과 IMF재협상 공방이었습니다.이회창 후보는 지난 7월21일 신한국당 대통령후보경선이 끝난뒤 여론지지율 50%가 넘어,그런 추세를 유지했다면 ‘선거를 할 필요도없는 상황’이 됐을 것입니다.그러나 두 아들 병역의혹이 제기되면서 당내 분란이 시작돼 지지율이 한때 15%까지 내려갔고,막판까지 고전한 것이죠. -한나라당은 국민회의 김대중후보의 IMF재협상 주장은 ‘딱 떨어지는’ 공격감이었는데,일반 유권자들이 그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득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와 했습니다.오히려 농촌지역에서는 국민회의측의 농가부채 ‘탕감’이라는 구호가 먹혀 들어가자 “국민회의 공약은 탕감이아니라 경감이며,이는 한나라당의 정책과 똑같은 것”이라고 연설회가 열릴때마다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의 최대 특징은 유권자들이 냉정하게 선거판을 끝까지 지켜봤다는 점을 꼽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경제위기를 능가할만한 쟁점이 없었다는데도 원인이 있지만,각 당의 그 무수한 폭로와 공세에도 유권자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예전같으면 이 정도의 쟁점이었다면 판세가 바뀌도 숱하게 바뀌었을텐데,어느 것도 흐름을 바꾸어 놓은 파괴력은 갖지 못했습니다.
  • 서울/경제정책­TV토론이 판세 좌우(권역별 판세점검:7·끝)

    ◎DJ ‘IMF 재협상’ 영향 약보합세로 반전/이회창 후보 선두다툼… 이인제 후보 추격/경제위기 결정적… 병역문제·건강 핫이슈 못돼 “나라가 절딴날 판에 선거는 무슨 선거…” 서울 유권자들의 표심은 의외로 냉담하다.선거열기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선거운동방식의 대전환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위기심리가 결정적인 것 같다. 만나는 유권자들 마다 ‘국가부도사태’에 대한 걱정으로 일관했다.“상황이 이런데 고생길이 훤한 대통령을 하겠다고 그 난리들이냐”는 힐난도 적지 않았다.선거가 오히려 경제난국 돌파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느껴진다. 때문에 서울 판세의 지렛대는 역시 경제위기 공방과 한번 더 남은 후보들의 TV토론등이 될 전망이다.미디어 선거라는 용어가 실감나게 상당수의 부동층 유권자들은 “마지막 토론을 지켜본 뒤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말하고 있다.선거 전문가들은 선거전 종반에 접어들면서 후보진영간의 폭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서울지역의 판세는 전체적으론 IMF관리체제 직후 지지도가 올랐던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상승세가 약보합세로 돌아섰고,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김후보의 IMF재협상 주장에 따른 금융대란의 심각성을 타고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게 정설이다.그러나 병역문제나 건강은 상대적으로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체적인 판세는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두 후보를 뒤쫓는 형국이다.또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선거 열기와는 관계없이 부동층이 현격히 줄어드는 모양새다. 증권사 대리 한경훈씨(29)는 “IMF재협상 주장으로 금융·외환위기가 가속화되고 있고,IMF의 자금지원 중단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라면서 “환율폭등으로 매일 12조원의 빚이 늘고 있다”고 김후보를 꼬집었다.한씨는 “세후보중 안정 이미지의 이회창 후보를 찍겠다”고 덧붙였다.상계동의 윤경자씨(58·주부)는 “나라가 어려울수록 건강하고 믿음을 주는 후보를 선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회창 후보 지지의사를 피력했다. 택시기사인 김시한씨(35)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말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것 같다”고 ‘거리민심’을 전하면서 “이번에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회사원 강대균씨(34)도 “지식이나 외교력,위기관리능력이 돋보이는 김대중 후보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조래현씨(33·회사원)은 “근대화를 주도했던 박정희 대통령 이후 우리사회의 구심점이 없어졌다”면서 “새로운 세대가 나서 21세기를 여는 국가지표를 마련해야 한다”고 세대교체론을 지지했다.불광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도형씨(37)는 “다음 대통령은 세일즈맨이 되어야 하고,그런 점에서 젊고 역동적인 이인제 후보가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결국 서울은 누가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느냐에 따라 판세가 좌우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쟁점­서울표 특징/정치의식 높아 어설픈 공약 안통해/원색적인 상대 흠집내기는 역효과/주요변수·지역 바람없는 ‘무풍지대’ 수도 서울은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점하는 최대 표밭이다.전국의 지역민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거대한 용광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지역과는 극명하게 다른 대선 표밭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역대선거의 주요변수였던 거센 지역바람도 여기에선 풍향을 가늠키 어렵다. 물론 서울 유권자 개개인은 지역바람을 탈 수도 있다.다만 이들의 총화인 서울표밭은 무풍지대에 가깝다. 특히 서울은 대선흐름을 포함한 각종 여론과 정보가 창출,집산되는 주요공간이다.나아가 이를 전국에 전파시키는 진앙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후보진영은 ‘서울 압승=대권고지 등정”이라는 등식에 사활을 걸어왔다.우선 후보들의 유세빈도도 서울이 가장 잦았다.‘새물결’(한나라당),‘파랑새’(국민회의),‘모래시계’(국민신당)등 유세단들도 연일 서울거리 구석구석을 훑다시피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선 어설픈 지역공약은 통하지 않는다.한나라당의 한 정책관계자는 “강남에 대단위 유통단지 건설을 공약한댔자 강북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진단했다. 국민회의 선거기획본부 이해찬 부본부장은 “서울에선 구태에 물든 인사나 실업자를 선거운동원으로 동원하면 오히려 표를 깎아 먹는다”고 귀띔했다.유권자들의 평균적 정치의식이 높다는 지적이다.원색적인 상대 흠집내기 따위가 역효과를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신당의 한 인사는 “경제 쟁점이 수도권에서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서울표밭이 갖고 있는 복합적 성격때문에 단발적 폭로전이나 인기영합성 ‘깜짝쇼’ 등이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각 후보진영도 처음부터 이 점에 착안했다.5년내 3백만개 일자리 창출(이회창 후보),2천10년대 경제5강(김대중 후보),2002년까지 1가구1주택(이인제 후보) 등 저마다 거창한 공약을 내건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경제문제를 이슈로 한 공방전은 더욱 가열됐다.한때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공세의 고삐를 잡았다.대통령의 탈당전까지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책임론으로 이회창 후보를 압박한 것이다. 이후 김대중 후보가 IMF와의 재협상 발언으로 인해 거꾸로 몰리고 있다.한국의 국제신인도를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가중시키다는 비판론 때문이다. 그러나 IMF태풍에 나부끼는 서울 ‘표심’을 사로잡는 것은 네탓이오 공방보다는 경제회생능력이라는 지적이다.정치권의 영일없는 정쟁도 경제위기를 부른 한 요인이라는데 공감하는 서울 시민도 많은 까닭이다.
  • 클린턴,새 핵작전 지침 시달/WP 보도

    ◎작전관에 핵공격선택권·목표 확대권 부여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미군 핵무기작전 담당자들에게 핵무기 사용에 관한 새로운 작전지침서를 전달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7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익명의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새 지침서가 미군이 장기 핵전쟁에서 이길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오래된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대규모 핵전쟁에 승자가 없음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도의 기밀에 속하는 이 지침서는 군작전관들에게 러시아내 군사 및 정부 목표를 겨냥한 핵공격 선택권을 계속 보유케 하며,중국과 핵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목표대상의 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포스트지가 전했다.지침서는 또한 작전관들에게 미국이 생화학무기 공격을 받을 경우 핵무기 대응준비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지침서는 지난 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침서를 개정한 것이다.
  • ‘판세 변화 분수령’ 첫 토론서 기선잡기/합동토론회 전략

    ◎이회창­각계전문가 20명 동원… 70개 문항 도상훈련/김대중­이인제는 관심권밖… 이회창 책임 집중공략/이인제­지지 반등 호기… 이회창 잡을 특단카드 준비 ‘1차 토론회에서 기선을 제압하라’-3당 대선후보들은 첫 공식 합동TV토론회를 하루 앞둔 30일 초반 판도 변화의 분수령이 될 대회전의 준비를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토론회에서의 진술형식을 ‘판결문 형식에서 신문기사 형식으로’ 풀어간다는 전략이다.30일 하오 여의도연구소에서 열린 합동토론회 보고회를 통해 TV대책위원회(위원장 박성범)가 이후보에게 제언한 내용이다.답변시간이 제한돼 있어 ‘미괄식’보다는 ‘두괄식’으로 답변해야 핵심을 시청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후보는 특히 이날 자체 리허설에서 각계 전문가 20여명의 조언을 받아가며 사회자와 다른 두 후보의 대역을 정해 70여개의 예상 문답을 주고받는 등 치밀한 도상훈련을 실시했다.이후보는 첫날 토론주제가 경제분야이므로 상대 후보들의 ‘한나라당 경제위기 책임론’을 논박,정치권 공동책임론을 강조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건설적인 대안제시에 주력할 방침이다.이후보는 논쟁때 흥분하면 안정감과 신뢰감,친근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아래 진지하고 차분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이후보는 논쟁방식의 토론회가 2대1 양상으로 흘러 협공을 당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선거전략상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고보고 있다.유일한 여권후보라는 이미지가 부각돼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안정·온건 성향의 표가 이후보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판단이다.윤원중 기획특보는 “3차례의 합동토론회에서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을 5∼6% 정도 떨어뜨리면 이회창 후보가 이를 흡수,김대중 후보를 10%정도 차이로 따돌리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민회의는 첫 3자 합동토론회가 대권고지로 등정하는 최대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그런 만큼 김대중 후보는 하루 전날인 30일부터 모든 유세일정을 비워놓고 토론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김후보는 30일 한 스튜디오에서 실제 토론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가졌다.그러나 심신의 피로가 누적되면 순발력이 오히려 떨이질 것을 염려,이를 취소했다.대신 김원길 정책위의장을 하오 호텔로 불러 금융개혁 문제 등 경제현안에 대한 훈수를 받았다. 이번 경제분야 3자토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집중 공략할 참이다.공식 선거운동 직전까지 이회창 후보의 상승무드가 두드러진 점을 감안한 것이다.문민정부에서 감사원장과 총리를 지낸 점을 강조,현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절반의 책임’을 추궁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이인제 후보에 대해선 가급적 무시한다는 전략이다.경제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안된 후보라는 점을 지적,슬쩍 건드리는 수준에서 공세를 자제할 것으로 알려졌다.일종의 억강부약전술이다. 주요 보좌진은 방송선거대책단의 부단장인 김한길 의원과 토론진행자 출신인 유재건 비서실장,뉴스앵커맨을 지낸 정동영 대변인 등이다.이들은 논리개발과 함께 김총재의 표정관리와 목소리 가다듬기 등 부차적인 문제에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김후보의 답변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 쉽게 전달될 수 있는 표현을 쓰도록 조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민신당은 그동안 하향세였던 지지율의 반등과 당선권 진입 목표를 설정,사활을 건 승부를 건다는 각오로 현 경제위기의 책임소재와 대응방안에 대해 ‘할 말 다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첫 합동토론회인데다 첨예한 경제 분야 주제인만큼 현 경제위기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면서 그 대응방안을 집요하게 파헤칠 계획이다.특히 주가하락과 환율폭등·IMF금융지원에 따른 대량실업문제와 처방에 대해 정·경유착과 기업·언론의 책임 부분을 부각시키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현 정부의 실정을 집중 공략한다.그동안 토론회에서 정책대결 차원을 고집하다 후보의 이미지가 약해졌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 토론회에선 강한 인상을 풍겨 이미지 전환도 노리고 있다.현재의 금융위기가 도래한 시점과 원인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한나라당 이후보를 위기에 몰아넣을 특단의 카드로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에서의 30일 일부 유세 일정도 취소한채 급히 아침 비행기편으로 상경한 이인제 후보는 한이헌 정책위의장·오갑수 정책위 총괄단장과 치밀한 전략을 짠뒤 3사람이 한나라당·국민회의 후보 입장에 앉아 실제상황과 꼭같은 가상 토론회를 갖고 전의를 다졌다.
  • 대선 홍보물 백태/만화·로고송 등 아이디어 불꽃경쟁

    대선후보들의 홍보물에는 후보의 장점을 집중 부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는 아이디어와 기지가 베어있다.얼굴을 맞대지 않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느낌을 전하는 매개물인 만큼 각 당은 그만큼 더 공을 들였다. ▷한나라당◁ 지난 26일 공식선거 운동기간에 들어가기 전 당원홍보용으로 ‘이회창·한인옥 부부의 사는 이야기’와 ‘열린 마음·따스한 가슴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란 제목의 홍보책자를 발간했다.‘…사는 이야기’는 이후보 부부의 결혼과 살림,자녀교육으로부터 감사원장,국무총리 시절의 이야기와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장남 정연씨에 대한 심경에 이르기까지를 담고 있다.올해초부터 여성잡지에 실린 이후보 부부 관련 기사를 정리한 것으로 편안한 문체에 컬러 사진을 곁들여 쉽게 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열린 가슴 …’은 이후보의 가족과 친구,이웃들이 이후보 부부에 대한 느낌을 소개한 책자로 ‘…사는 이야기’와 비슷한 형식이다.이후보의 일생은 만화가 허무영씨가 당의 의뢰를 받아 ‘깨끗한 대통령 이회창’이란 제목으로 엮기도 했으며,개그 작가 장덕균씨는 ‘이회창,대권을 잡아라’라는 제목의 책을 자체적으로 펴내기도 했다.한나라당은 선관위를 통해 가정에 배포되는 4쪽짜리 전단과 16쪽 짜리 책자에는 ‘깨끗한 정치,튼튼한 경제’라는 한나라당의 공약을 담았다.또 이회창 후보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달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고 당관계자는 말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홍보물에서 과거 대선에서와 같은 ‘점잖고 무게있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대신 광고전략을 원용해 철저하게 감성에 호소한다. ‘DJ(김후보)와 함께 춤을’이라는 TV광고는 국민회의의 홍보전략을 그대로 보여준다.이 광고는 전편에서 인기그룹 ‘DJ DOC’의 노래를 개사한 ‘로고송’이 흐르는 가운데 ‘경제대통령’‘든든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중간중간 김종필 선대회의의장과 박태준 선대회의 고문이 등장,다소 코믹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미소를 자아낸다. 법정 홍보물도 철저히 광고전략에 따라 만들어진다.‘든든해요 김대중’이라는 16쪽짜리 홍보책자는 겉보기에는 정당홍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않을 만큼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김대중 총재 한마당’이라는 CD롬을 만든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거홍보매체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한국만화작가가 본 제4의 물결 김대중’이라는 만화홍보물도 젊은층의 흥미를 유도하는 전략의 하나다.국민회의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을 담은 DJ의 저서를 펴내는 것이 직접홍보물보다 더욱 홍보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최근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내가 사랑한 여성’ 등 가벼운 에세이집과 자서전 ‘나의 삶,나의 길’을 집중적으로 펴낸 것도 이같은 전략에 따른 것이다. ▷국민신당◁ 법정홍보물로 현수막 909개와 선전벽보 18만8천40장을 제작,일선 지구당에 배포했다.홍보책자 1천6백여만부와 홍보전단 1천5백여만부는 제작중에 있다.당원용으로는 홍보책자와 홍보논리집 각각 20만부,당보 30만부를 제작,배포했다.이외에 ‘일벌’을 그린 심벌마크 스티커와 당비모금 차량용 스티커도 20만부씩 만들어 놓고 있다.국민신당 홍보물은 이인제 후보의 젊음과 역동성을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김명용 홍보실장의 설명이다.선전벽보에서부터 각종 홍보책자에 이르기까지 기본색조부터가 파란색이다.선전벽보는 ‘젊은 한국,강한 나라’를 캐치프레이즈로 이후보의 웃는 모습을 담고 있다. 16쪽짜리 법정홍보책자는 이후보의 국정수행능력과 참신성,세대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하는데 주안점을 뒀다.벼를 베는 모습과 공장을 방문한 사진을 통해 ‘일꾼대통령’의 이미지를 심었다.30사단에서 병장으로 복무할 때의 사진도 담아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 후보등록 D­1 3당 대선주자 표정

    ◎이회차­중앙당 후원행사 개최… 필승 자신/김대중­무협 등 방문 위기관리능력 부각/이인제­비장한 분위기속 운동조직 발진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25일 각당은 후원행사와 간담회,현장방문 등을 통한 세확산에 온힘을 기울였다. ▷한나라당◁ 이날 하오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주요당직자,국책자문위원,중앙위원,후원회원,직능대표,경제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당 후원행사를 겸한 대선출정식을 가졌다.초등학생인 두아들의 돼지저금통을 대신 들고온 주부와 환경미화원,택시기사들도 눈에 띄었다.행사에는 이회창 후보와 조순 총재,이한동 대표,김수한 국회의장,이승윤 후원회장 등 지도부가 대거 참석,열기를 북돋웠다.이후보와 조총재의 부인인 한인옥 김남희 여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당의 한 관계자는 “1백50억원 안팎이 모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후보는 격려사에서 “오늘 행사로 깨끗한 정치를 위한 또하나의 빛나는 이정표를 세웠다”며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의 이름없는 국민들로부터 꼬깃꼬깃한 마음의 성금을 받았다.깨끗한 선거만이 국민의 참다운 지지를 받을수 있다”고 강조했다.이후보는 특히 “경제를 살리는데 지역과 계층,사용자와 노동자,다수당과 소수당이 따로 있을수 없다”며 “정직하고 책임감있는 정부를 만들고 국민대통합의 정치를 실현해 벼랑끝에 서있는 경제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했다. 조총재는 “이회창 대통령이 나라빚을 갚고 튼튼한 경제구조를 만들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역설했다.이후원회장은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며 분발을 축구했다. ▷국민회의◁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1위 다툼 속에서 국민회의는‘새 출발’의 각오를 다지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김대중 후보는 이날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가 법정관리’ 상황을 맞아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 부각에 맞춘 행보를 거듭했다.서울 삼성동 무역협회를 방문,관계자들과 환율 불안에 따른 무역수지 대책 등을 논의했고 이어 1층 전시장에 들러 외국 바이어들의 한국방문 추이를 점검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는 모습에 공을 들였다.‘구국의 지도자상’을 홍보하기 위해 이번 주 국내진출 외국은행 등을 방문,경제회생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민회의는 26일 후보등록에 이어 여의도 S 증권 빌딩에 위치한 김대중 후보 선거사무소 현판식을 통해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당 차원에서는 27일부터 가동되는 4대권역 6개 유세반의 연사선정 및 조직점검 등 최종 마무리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신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이인제 후보는 비장한 분위기속에서 분주히 움직였다.아침에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국민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만섭 총재)이라는 등의 비장한 결의로 전의를 다졌다.이인제 후보도 이날 ‘애국심’이라는 글자를 새긴 머리띠를 동여매고 기자회견을 갖는 등 임전의지를 내보였다.국민신당은 이날 하룻동안 ‘경제살리기 범국민운동 추진본부’와 ‘국민신당지지 전국청년봉사단’,‘모래시계세대 청년포럼’ 등 선거운동전위기구들의 발대식을 잇따라 갖고 선거운동의 전열을 가다듬었다.이후보는 이들 행사에서 “3김정치와 5·6공의 낡은 정치세력들의 집권기도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절망의 수렁에 빠질 것”이라며 필승을 다짐했다. 이후보는 이와 별도로 이날 새벽 구로동 전동차정비창을 방문,근로자들을격려한 뒤 경기도 군포의 한 중소기업체를 찾아 종업원들과 오찬을 했다.저녁에는 서석재 최고위원 주선으로 구기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에 참석,불심을 공략하기도 했다.
  • “자유시장경제체제는 필요악”/마하티르 말련 총리

    ◎아주국들 국제환투기 대처못해 금융대혼란/정부·시장 경제효율성 위해 다각적 협력 필요 【밴쿠버 AFP 연합】 심각한 금융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는 자유시장체제는 과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만큼 극단적인 것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밴쿠버에 온 마하티르총리는 23일 역내 기업대표회의에서 시장원리가 말레이시아와 다른 아시아국가들을 금융혼란으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하고 시장원리는 각국 경제를 이끌 뿐 아니라 망치는 경향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식 및 외환시장에 대한 투기로 아시아에서 “수천억”달러가 사라졌다고 분개하고 “약동하는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요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며 “이것이 자유시장경제가 움직이는 방식”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평판이 떨어진 뒤 “시계추가 점점 민영화와 시장원리의 방향으로 흔들렸다”면서 그러나 “시계추가 지나치게 멀리 흔들려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모든 것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없다는 신조같은 것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아시아 금융위기가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이 서툴렀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진단하고 시장원리가 이같은 상황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그러나 마하티르 총리는 정부도 시장도 서로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절대권력을 가질때 부패할 수 있는 것처럼 시장도 권한이 절대적일 때는 부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선택은 정부와 시장이 효율성과 경쟁에 중점을 두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대구 ‘지하철 시대’ 내일 팡파르

    ◎1호선 진천∼중앙로 구간 11.4㎞ 개통/전구간 특별공법… 소음·분진공해 거의 없어/새벽 5시20분부터 운행… 출근시간 5분 배차 대구 지하철 1호선이 26일 하오 부분 개통,본격적인 지하철시대를 맞는다.서울 부산에 이어 세번째다.지난 91년 12월 착공된 지 6년만이다. 개통되는 구간은 1호선 전체 노선 27.6㎞중 진천역∼중앙로역 간으로 길이가 11.4㎞에 이른다.1단계 구간에는 모두 14개 역이 설치됐다.1호선 2단계인 중앙로역∼안심역 구간은 내년 3월 완전 개통된다. 지난해 말 착공한 달성군 다사면~수성구 고산을 잇는 총 연장 28.7㎞ 2호선은 오는 2002년 개통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첨단 장비인 역무자동화설비(AFC)를 설치하여 승차권의 발매와 집표 등 역무가 자동으로 처리된다.무인운전이 가능한 열차자동운전방식(ATC/ATO)이 도입돼 출발과 정지,운행속도 등을 완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안전성과 승차감이 뛰어난 최신 전동차를 도입했다.특히 전 구간이 지하콘크리트 도상구조로 건설돼 소음,진동,분진 등환경공해가 거의 없다.개통을 앞둔 대구 지하철의 운행시간,이용방법 등을 알아본다. ▷운행시간◁ 상오 5시 20분부터 밤 12시까지 운행한다.상오 7시∼9시,하오 5시∼7시 출퇴근 시간대에는 5분 간격으로 배차된다.평시에는 8분,새벽 및 심야는 1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진천역에서 중앙로역까지는 시속 40∼50㎞(최고시속 80㎞)로 22분(버스의 경우 50분∼1시간)만에 달린다. 1호선 전구간이 개통되면 운행시간을 출퇴근시간대 3분 30초,평시 6분30초 간격으로 앞당긴다. ▷운임◁ 서울의 구역요금제와는 달리 이동구간제를 채택한다.승차지점에서 10㎞까지를 1구간으로 성인 450원,10㎞ 이상은 550원이다.초등학생은 50% 할인요금을 적용하고 정액권은 5천원권,1만원권,2만원권 등 3종류로 1만원권과 2만원권은 일반이 10%,학생은 20%를 추가로 더 사용할 수 있다.장애자,경로우대자,국가유공자에게 발급되는 우대권은 운임전액이 면제된다. ▷이용방법◁ 설치된 승차권 자동발매기는 어린이 훨체어 장애인 등이 사용하기 쉽도록 요금투입과 구간선택,승차권 발급 등 이용승객의 조작부위가 한곳에 집중돼 편리하다.개표기에 구입한 승차권을 투입한 후 게이트를 통과,승차권을 다시뽑아 전동차에 승차하면 된다.자동개·집표기는 서울지하철의 몸으로 밀고 나가는 ‘삼발이·방식과는 달리 승차권 투입과 동시에 신체 접촉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열고 닫히는 방식을 채택,1분에 60명까지 통과할 수 있다. ▷편의시설◁ 송현역을 비롯 교대·명덕·반월당역 등 4개 정거장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됐다.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을 돕기위해 모든 정거장에 훨체어리프터가 가동된다. ◎대구지하철공사 신태수 사장/최첨단 시스템 도입… 안전운행에 만전/역마다 도우미 배치 서비스 제공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구지하철공사 신태수 사장(61)은 “지난 2개월간 시운전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고 서울과 부산지하철의 불편사항도 모두 개선,전국에서 가장 쾌적한 시민의 발이 되겠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의 잦은 사고로 지하철의 안전성에 시민의관심이 큽니다. ▲안심해도 좋습니다.최첨단 운영시스템 도입으로 전동차의 출발과 앞차와의 거리를 고려한 운행속도 가감 및 정지,출입문 개폐 등이 미리 짜여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완전 자동으로 조절됩니다.앞 열차가 이상이 생겨 갑자기 정지할 경우 궤도에 깔려있는 각종 신호장비가 자동으로 다른 전동차의 속도를 제어해 충돌과 추돌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장점이 있다면. ▲모든 시설을 이용객 중심으로 배치했습니다.전국 처음으로 어린이와 노약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요금투입구와 구간선택 등 조작부위를 한곳으로 집중시킨 승차권 발매기를 설치했습니다.승차권 구입시 동전 뿐만 아니라 1천원권 지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안전운행과 함께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도 중요합니다. ▲214명의 역무원을 지하철 도우미로 배치해 전국 최고 수준의 친절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지하철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전용전화(주간 640-2222,야간 640-2114)를 설치했습니다.역무원들에게 수화교육도 실시,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을 돕도록 했습니다.외국인을 위해 영어,일어는 물론 중국어까지 간단한 회화교육도 마쳤습니다.
  • 밖에서 본 대선전(이동화 칼럼)

    지난 한주일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그곳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별견할 기회를 가졌다.짧은 기간의 관찰이었지만 한마디로 말해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21세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주목되는 4강 정상외교 특히 동북아시아와 나아가 세계정세속에서 주도권을 잡기위한 일본의 외교적 노력은 두드러져 보였다.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는 거의 한주일의 일본 방문일정을 갖고있는 이붕 중국총리와 양국간 신어업협정체결을 포함한 경제협력문제와 한반도안정을 포함한 동북아정세문제를 논의하거나 매듭지었다.이 기간중 프리마코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방일해 역시 쌍무적 협력문제를 조율했다. 이런 일본에 비해 한국은 완전히 우물안 개구리꼴이 아닌가 생각된다.잿밥에만 정신이 팔려 서로 저질스럽게 치고받는 개구리말이다.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경제발전과 통일이 가장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이런 중요한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주변4강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있다. 또 최근 강택민 중국주석의 미국방문,하시모토 일본총리의 러시아방문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중국방문이 잇달아 이루어졌고 내년 들어서면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강주석의 일본방문이 계획되고 있음도 알고있다.그런데도 주요정당과 대통령후보들은 우리의 국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4강외교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선진’ ‘21세기’를 위치고 있기는 하지만 구호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의 이목을 끌만한 외교정책이나 비전을 제대로 제시한 후보도 없다.4강 하나하나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 정책을 성안하는 일은 아예 포기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이때문에 열강의 각축에 희생된 19세기말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되고 정도의 차이나 형태의 차이는 있겠지만 20세기말에도 4강에 의한 국익의 침해가 있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진 21세기’ 위한 정책을 귀국해보니 우리는 경제적 국난에 처해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외환위기가 다가오고 경제침체는 가중되고 있다. 일본도 최근의 경제는좋지 않다.외환 주식 채권이 모두 떨어지는 ‘3저현상’에 직면해있다.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세에 있어 한·일간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볼수있었다.금융개혁이라는 같은 처방을 놓고 그 추진방법이 매우 다르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치보기에 국민만 피해 물론 일본의 금융개혁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대규모 은행 증권회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는 야쿠자와 연결된 총회꾼들에게 이권을 준 혐의로 대형금융회사의 회장과 사장들을 사정없이 구속하면서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또 총체적 개혁에는 대장성의 축소라는 자기희생이 포함되어 있어 그 실행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밥그릇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이표 저표 모두 놓치지않으려고 금융개혁법안을 뒤로 미룬 무책임한 우리 정치권과는 접근방식이 다른 것이다. 임기말의 정부정책을 부축해주지 않으면 그 부담은 다음 정권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다.따라서 이 눈치 저 눈치보느라 아무 것도 못하는 정치권,다른 후보의 흠들춰내기와 깎아내리기에 정신없는 대선전은 국민에 대한 무시와 도전이다. 오히려 임기말의 국정을 부축하고 협조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어려운 시기에 대권에 접근하는 자세가 될 수 있다.교민들도 경제와 외교를 잘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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