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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朴 ‘유시민 국가론’ 쏠린 눈

    국회에는 작은 서점이 있다. 국회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이들이 많아 이 서점이 하루에 파는 책은 모두 합쳐도 50권 남짓이다. 서점 주인은 19일 “유시민씨의 새 책 10권을 어제 처음 갖다 놓았는데, 하루에 다 팔렸다.”고 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의 새 책 ‘국가란 무엇인가’가 여의도 정가에서 베스트 셀러가 될 조짐이다. 특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권을 위해 뛰고 있는 친박계 의원 및 보좌진의 관심이 높다. 유 대표가 책에서 박 전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인 ‘국가’와 ‘애국’을 강조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 전 대표가 ‘복지’를 화두로 들고 나왔을 때 야권이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유 대표의 책은 국가주의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등을 소개한 개론서 성격이 짙다. 그러나 유 대표는 책에서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애국심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지만, 이런 태도가 국가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다수 국민이 고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애국심의 사용권을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하는 등 자신의 견해를 적극 밝혔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유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쓴 것 같다.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중도에게 다가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비슷하다.”면서 “하지만 애국은 말이나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전 대표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는 이한구 의원은 “그동안 진보진영은 국민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면서 “유 대표가 국가에 관심을 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히 “박 전 대표가 생각하는 국가의 역할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 따른 양극화를 극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토목경제를 강조한 지금 정부와도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여론조사로 본 4·27 재보선 판세분석

    여론조사로 본 4·27 재보선 판세분석

    ‘분당 대접전, 김해 김태호 추격, 강원 엄기영 우세.’ 4·27 재·보선이 종반전에 진입한 18일 현재 주요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결과다. 하지만 섣불리 승패를 예단하기 어렵다. 총선과 달리 산개전이라 여야의 집중 강도가 높은 데다 막판 변수의 향배를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분당을의 여론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중앙일보 지지율 조사에서는 손학규 민주당 후보가 43.8%로 강재섭(35.4%) 한나라당 후보를 8.4% 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한겨레 조사에선 강 후보(43.0%)가 손 후보(38.8%)를 오차 범위에서 제쳤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수도권은 조직 프리미엄이 없어 여당에 우세하지 않다. 정권심판 구도라 하기에도 ‘숨어 있는’ 불만이 많다. 갈수록 혼전”이라고 내다봤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분당을이 손 후보의 대권 실험장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손학규 인물론’이 뒷심을 발휘한다고 보고 조용한 선거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다. 강원도는 현재 ‘엄기영 안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48.5%로 최문순(28.5%) 민주당 후보를 따돌렸다. 한겨레는 엄 후보와 최 후보가 각각 45.5%, 33.7%의 지지율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엄 후보가 최 후보를 12~20% 포인트 앞서고 있다. 삼척 원전과 고성 금강산관광 등 영동지역 이슈가 막판 쟁점으로 꼽힌다. 최 후보가 인지도 상승세를 탈 것인지, 이광재 전 지사의 동정론이 확장력을 보일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한나라당은 ‘힘 있는 여당 후보론’을 내세워 판세 굳히기에 들어간다는 전략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춘천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오는 27일은 강원도가 평화 속에서 번영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의 위협 속에 살 것인가를 결정짓는 날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해을의 경우 중앙일보 조사에서 이봉수(41.4%) 국민참여당 후보가 한나라당 김태호(37.1%) 후보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 한겨레 조사는 이 후보와 김 후보가 각각 46.8%, 38.9%로 나타났다. 한때 이 후보가 김 후보를 20% 포인트 정도 앞섰다. 김 후보의 인물 우위론이 추격세를 뒷받침하지만 자신할 순 없다. 당세가 약한 지역인 데다 김해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노풍에 단일화 효과를 기대하지만 중량감 있는 인물 경쟁에서 다소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리서치 심재웅 상무는 “이번 주 후보 공보물이 도착한다. 결국 블랙박스(선거결과 공표금지, D-6) 기간 내에 일어나는 표심 변화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4·27 재보선 판세

    4·27 재보선 판세

    4·27 재·보선을 열흘 앞둔 17일 여야는 공식 선거운동 첫 주말 유세전에 집중하면서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나라당은 지역일꾼론으로, 야권은 정권심판론으로 승부수를 띄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안상수 대표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선거는 지역과 서민경제를 살리는 선거”라면서 “몇몇 정치인의 대권 야망을 채우기 위해 악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4월 국회 회기 중에 의원 53명을 총동원했다.”면서 “이번 재·보선은 서민 경제를 죽인 이명박 정권 심판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여야의 판세분석 결과 강원도는 한나라당이, 경남 김해을은 야권 단일후보가 각각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성남 분당을은 ‘초접전’이다. 전남 순천은 김선동 민주노동당 후보와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 6명의 난립 속에 대혼전 양상이다. ●강원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최문순 민주당 후보를 10% 포인트 정도 앞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나라당 측은 “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엄 후보가 최 후보를 10% 포인트 이상 꾸준히 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측은 “초반 지지도 격차가 25% 포인트 정도나 됐지만 이제 7~9% 포인트로 좁혀졌다.”고 말했다. 선거는 이광재 대리전으로 치닫고 있다. 엄 후보 측은 “최문순은 이광재 그림자냐.”라며 이광재 동정론을 차단했다. 이 전 지사는 18일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정권의 ‘이광재 죽이기’를 부각할 예정이다. ●경남 김해을 야권 단일주자인 이봉수 참여당 후보가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를 10% 포인트 이내에서 우세를 보이는 데 여야의 이견이 없다. 이 후보 측 천호선 대변인은 “여론조사상 앞서고 있지만 재·보선 현실을 감안하면 박빙이라고 봐야 한다. 젊은 층의 출근 전 투표율이 당락을 가를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나라당 측은 “김 후보가 열세지만 선거 경험이 많고 중량감 있는 인물이라 곧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남 분당을 여야 모두 판세를 쉽게 가늠하지 못하는 살얼음판 승부가 전개된다. 한나라당 측은 “오차 범위에서 약간 앞선다.”며 당세를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탄탄한 부잣집에 살림 차리기가 쉽겠는가. 손학규라는 인물로 추격 중”이라고 말했다. 적극 투표층에서 10% 포인트 정도 뒤졌지만 현재 5% 포인트 안팎으로 따라잡았다고 분석했다. 구혜영·허백윤기자 koohy@seoul.co.kr
  •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

    억만장자인 미트 롬니(64)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공화당 대권 경쟁에 도전장을 던졌다. 재수다. 2008년 공화당 대권 경쟁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했던 롬니가 4년 만에 공화당 경선 출마를 다시 선언했다. ●“경제성장·고용창출로 美회복” 공화당 대선 후보군 중 여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롬니는 11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대선 출마를 위한 준비위원회 구성 방침을 발표하며 대권 레이스에 시동을 걸었다. 롬니의 출마 메시지는 간단하다.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 그는 2분 30초짜리 동영상에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재정 건전화를 통해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시킬 때가 됐다.”고 밝혔다. 롬니는 1947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재벌가에서 태어났다. 부친 조지 롬니는 ‘아메리칸 모터스’ 회장으로 큰돈을 벌었고, 미시간 주지사(3선)를 거쳐 196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다. 롬니의 인생은 아버지의 판박이인 셈이다. 브리검영대학을 거쳐 하버드대를 졸업한 롬니는 투자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여세를 몰아 2002년 리버럴 성향의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나서 당선된 뒤 재선에 성공했다. 보수 성향임에도 주지사 재임 시절 건강보험 개혁을 성공시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롬니의 건강보험 개혁은 역설적이게도 공화당이 사력을 다해 반대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뤄낸 건강보험 개혁과 상당히 유사하다. 롬니의 재산은 최대 2억 5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각종 여론조사 선두 ‘정치자금 왕’ 롬니의 최대 장점은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지난주 실시된 NBC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1%를 기록하는 등 최근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연 선두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가상대결 조사에서도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다. 실탄도 두둑하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 잠재 후보 중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모았고, 앞으로 두둑한 정치자금을 내놓을 후원자 명단도 확보해 놓고 있다. 취약점이라면 모르몬 교도라는 종교적 배경이 꼽힌다. 최대 업적인 건강보험 개혁이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는 롬니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아시아 출신 FIFA 회장 나올까

    아시아 출신 FIFA 회장 나올까

    아시아가 세계 축구의 절대권력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모하메드 빈 함맘(62·카타르)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은 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더 윤리적이고, 더 투명한 FIFA를 원하는 이들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나의 출마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큰 꿈을 펴게 될 것”이라고 출사표를 내밀었다. 함맘 회장은 오는 6월 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FIFA 총회에서 4선을 노리는 제프 블라터(75·스위스) FIFA 회장과 4년 임기의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격돌한다. 한국은 함맘 회장의 강력한 지지자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사무총장 17년에 회장 13년까지 모두 30년을 FIFA에서 일한 블라터는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가 됐다.”면서 “재정 규모와 시청자 수, 영향력을 비교할 때 FIFA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보다 큰 성공을 이뤘지만 FIFA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FIFA 회장은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 “함맘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FIFA 개혁의 적임자”라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함맘 회장은 ▲FIFA 집행위원을 24명에서 41명으로 늘리는 의사결정 기구의 확대 ▲투명성위원회 설립 ▲각종 의사 결정권한을 각 대륙연맹에 주는 FIFA 행정력의 분산 ▲월드컵 수익금의 공정한 분배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까지 블라터는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놓고 표심을 끄는 방식으로 재선과 3선에 성공하며 생명 연장의 꿈을 이뤄 왔다. 선거 뒤 약속을 내팽개치는 그의 행태와 연일 불거지는 FIFA의 비리·부패사건으로 각 대륙연맹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터지기 직전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함맘이 블라터의 유일한 대항마다. 부패한 권력을 갈아엎기에 최적기인 셈. 정 명예회장은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예전처럼 싱겁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아시아 축구의 도전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6選 노리는 ‘TK 엘리트’ vs 대권 노리는 ‘수도권 엘리트’

    6選 노리는 ‘TK 엘리트’ vs 대권 노리는 ‘수도권 엘리트’

    “예전엔 집값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종종 왔는데, 정치부 기자가 들른 것을 보니 이번 선거가 중요하긴 한 모양이네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 부동산’ 대표 이모(47)씨는 “총선 때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엔 흥미진진해졌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아들 집으로 가기 위해 32평(105㎡) 아파트를 전세가 4억 5000만원에 내놓으려고 부동산에 들른 장향선(59·여)씨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투표할지가 관건”이라며 거들었다. ‘부동산 1번지’ 분당이 4·27 보궐선거를 맞아 ‘정치 1번지’로 변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고,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가 4일 당 후보로 확정되면서 여야의 전·현직 대표가 사상 처음으로 맞붙는 ‘빅매치’가 성사됐다. 지하철 정자역 3번 출구 앞에 들어선 강 전 대표의 선거사무실과 4번 출구 앞에 포진한 손 대표의 사무실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정통 엘리트들의 승부수 강 전 대표와 손 대표는 대한민국 엘리트의 전형이지만 정치적 지향점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강 전 대표는 보수정당에서 잔뼈가 굵었고, 당 대표까지 지냈다.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당의 정신을 확 바꿔 놓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보수적 가치를 중시한다. 손 대표는 비록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줄곧 개혁 노선을 견지해 왔다. 손 대표는 출사표에서 “중산층이 이끄는 개혁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 분당을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강 전 대표는 경북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다. 32살의 젊은 검사였던 1980년 청와대 정무·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일각에서 ‘5공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시절의 경력 때문이다. 그러나 강 전 대표 측은 “민주화 이후인 1988년 13대 때 비례대표로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면서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6·29 선언이 나오기까지 청와대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반박한다. 이후 강 전 대표는 17대까지 내리 5선을 하면서 부총재, 최고위원, 원내대표, 대표 등을 두루 거쳤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 불출마 선언을 한 뒤 ‘야인’으로 지내다 이번에 6선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경기 시흥 출신의 손학규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수도권 엘리트’다. 고교·대학 동창인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됐으며, 1980년 민주화의 봄 당시 홀연히 영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서강대 등에서 진보 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민자당에 입당한 손 대표는 1993년 4월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된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정동영·정세균 등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승리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확실히 뗐고 민주당으로부터 ‘적통’을 인정받았다. ●14년 한솥밥 먹었지만 결이 달랐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손 대표가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되면서 시작됐고 14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강 전 대표는 손 대표 등원 당시 민자당 대변인을 맡아 입심을 자랑했고, 손 대표는 1995년부터 1년여 동안 민자당과 신한국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강 전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 총재일 때 비서실장을, 손 대표는 1997년 12월 조순 총재의 비서실장을 잠깐 지냈다. 강 전 대표는 이회창 대선 후보의 정치특보를 맡았고, 손 대표는 반(反)이회창 노선을 걸었다. 직접적인 충돌은 2007년 3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손 대표는 경선 룰에 반발하며 강원도 산사에 칩거 중이었고 당 대표였던 강 전 대표는 손 대표의 경선 참여를 설득하려고 했다. 강 전 대표는 그해 3월 17일 회동을 위해 손 대표가 칩거한 것으로 알려진 낙산사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손 대표 측의 거부로 도중에 서울로 차를 돌려야 했다. 이틀 뒤 손 대표는 야권으로 투신했다. 각각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대표로서 선거를 지휘한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은 반면 민주당은 81석에 그쳤다. ●강한 후폭풍이 몰려온다 전·현직 당 대표가 보궐선거에서 맞붙은 경우는 한국 정당사에 처음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오차 범위’ 내 혼전을 보인다. 한나라당의 경우 박희태 전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가 2009년과 1999년에, 민주당의 경우 정동영 최고위원(전 당의장)이 2009년에 각각 보궐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지만 선거구가 자신들에게 확실하게 유리한 ‘텃밭’이었고, 상대 후보와 ‘체급’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두 ‘거물’ 모두 우여곡절 끝에 후보가 됐고, 판이 커진 만큼 승패에 따라 정치 지형이 출렁거릴 게 뻔하다. 강 전 대표는 당 지도부와 청와대,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정운찬 전 총리를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를 뚫고 공천을 따냈다. ‘이 장관이나 안상수 대표 등에게 서운하지 않으냐.’고 묻자 강 전 대표는 “그들과 싸울 ‘군번’이 아니다.”면서 “지금의 ‘봉숭아 학당’ 같은 당의 모습으로 정권 재창출은 어림도 없다.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야당 대표와 맞붙는 만큼 당선된다면 자신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당내 거부세력이 많은 강 전 대표와 달리 당의 요구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승리한다면 당내 입지는 물론 야권의 확실한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손 대표는 “민주당에 의석 하나 더 얹어주겠다는 차원에서 출마한 것이 아니다. 분당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추구하자는 뜻인 만큼 분당선거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분당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분당을, 강재섭 vs 손학규 오차범위 접전

    분당을, 강재섭 vs 손학규 오차범위 접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내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 격인 4·27 재·보선의 후보 공천을 4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격돌에 나선다.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간 빅매치가 사실상 확정됐다. 한나라당은 3일 오후 여론조사를 거쳐 4일 공천심사위 회의에서 공천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강재섭 전 대표의 공천 헌금 수수설을 제기했던 박계동 전 의원은 여론조사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달 30~31일 실시된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강재섭 44.3%, 손학규 42.7%, 시사저널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는 손학규 46.0%, 강재섭 40.6%로 나왔다. 또 지난 1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손학규 34.6%, 강재섭 33.6%로 두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초박빙 승부가 예상되면서 양당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에 수도권 최고 노른자위인 분당을의 패배는 치명타나 다름없다.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감이 극대화되면서 당 지도부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야권의 대권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는 손 대표가 진다면 상당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도 자칫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구심점이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선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를 조기 강판시킬 수 있다는, 민주당으로선 한나라당의 수도권 텃밭을 공략할 수 있다는 각각의 이점을 노리고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통 강세 지역에서의 재·보선이라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 특성을 살려 장년층 이상 중산층의 결집에 노림수를 두고 있다. 민주당은 빅매치로 달아오른 분위기를 이용할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강한 30~40대 젊은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강원지사 보궐선거는 엄기영·최문순의 ‘MBC 전 사장 선후배’ 간 대결 구도가 예고됐다. 한나라당은 4일 당원과 강원도민이 포함된 4만 3000여명의 경선인단 투표결과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후보를 공개한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경선을 통해 MBC 사장 출신인 최 전 의원을 후보로 확정했다. 접경지역이라는 특성상 보수성향이 강해 한나라당의 우세지역으로 분류되지만, 6·2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전 지사를 당선시킨 민심의 반향이 여전해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한나라당 평창올림픽유치특위 고문을 맡은 박근혜 전 대표와 민주당 이 전 지사의 장외 지원 영향력도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 김해을은 가장 먼저 대진표가 짜였다. 지난 2일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합류하며 민주당 곽진업 후보,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와 함께 3파전 구도를 완성했다. 다만 곽 후보와 이 후보 간 단일화 성사 여부가 최대 변수다. 홍성규·강주리기자 cool@seoul.co.kr
  • 朴, MB와 차별화… 절충 여지도

    朴, MB와 차별화… 절충 여지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31일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비판하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재추진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히자,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한 대권 주자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신뢰의 정치’를 앞세워 정치적 기반인 영남권 민심을 확실하게 다졌지만, 신공항 건설에 다소 부정적인 수도권 민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백지화에 반발하는 영남권 친이계와 박 전 대표가 입장을 함께하면서 친이·친박 구도가 재편될지도 관심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일단 그동안 박 전 대표의 행보를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일부 의원들은 “예상보다 발언 수위가 높았다.”고 했다. 현기환 의원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책이 지속될 수 있다는 신뢰성을 높여 준 것으로, 영남권 민심 이반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8월 청와대 회동 이후 유지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화해 무드가 끝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당장 충청권과 대구·경북이 경합 중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한 여권 인사는 “과기벨트 입지를 대구·경북으로 전격 결정할 경우 박 전 대표는 지역민심과 약속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세종시에 이어 잇따라 정부 결정에 반대하면서 결과적으로 국정 운영 동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면서 “지역 민심만 고려하고, 국정 운영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양측 모두 확전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박 전 대표도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아 절충의 여지를 남겼다. 청와대도 “일일이 코멘트할 사안이 아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일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반발 여론을 충분히 설득하고, 박 전 대표가 추가적인 반발에 나서지 않으면 갈등이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인천공항 외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정책에 대한 입장”이라면서 “국가 경쟁력과 미래를 얘기하는데 대결 구도로 보는 것은 지나치며, 복선이나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여권 내부가 갈등과 분열의 프레임에 갇힐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거센 후폭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모두 갖고 있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세훈·허백윤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영남 정치권 신공항에만 매달릴 건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영남권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의원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백지화 방침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독자적으로 김해공항을 가덕도로 옮기겠다고 공언했고, 김범일 대구시장은 민자 등을 유치해서라도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국회의원들은 백지화는 2년만 유효할 뿐이라며 내년 총선과 대선 때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한나라당 공약으로 내세우겠다고 결의했다. 시민단체 등은 내년 선거 때 공약 불이행을 표로 심판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도 “지금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미래에는 분명히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며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사실상 공약으로 제시했다. 우리는 그동안 대선 공약이라 할지라도 경제성과 타당성 등을 엄격히 따져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지금 영남권 정치인들의 반발은 납세자들의 권익은 아랑곳없이 내 표만 지키면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면 이처럼 막무가내식으로 우기겠는가. 정확한 수요예측 없이 공약을 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신공항 건설만이 살 길인 양 부추긴 지역정치인들의 잘못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전문가들의 예측대로라면 김해공항은 2027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 공항건설 소요기간이 10년인 점을 감안하면 2018년에 임기가 끝나는 차기 대통령은 임기 중 신공항 건설이나 김해공항 확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동남권 공항을 ‘허브화’할 것인지 ‘거점공항’으로 할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거품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앞으로 고속철 중심으로 짜여질 전국의 간선도로망 역시 신공항 건설 필요성 여부의 변수로 감안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오늘로 예정된 기자회견에서 잘못된 공약으로 갈등을 유발한 데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치유책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2009년 국토연구원 용역결과 동남권 신공항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가름났음에도 그동안 공표하지 않은 이유도 밝혀야 할 것이다.
  • 박근혜 “국민과의 약속 어겨 유감···신공항 계속 추진할 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31일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관련, “국민과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면서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동남권 신공항은 필요한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대구 달성군에서 열린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 취임식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신공항 건설은) 제 입장에서도 계속 추진할 일”이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과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예측 가능한 정치가 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제 입장에서도 계속 추진할 일”이라고 밝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차기 대권공약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7월26일 대선 경선후보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동남권 신공항 조기 착수를 대권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지난 해 7월에도 영남권 5개 시도가 이용할 수 있고, 대구 국가산업단지가 성공할 수 있는 위치에 국제공항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한나라 “손대표, 지역구 옮긴 철새”… 내심 당황

    한나라 “손대표, 지역구 옮긴 철새”… 내심 당황

    한나라당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 출마를 선언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배은희 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대권야욕에 눈멀어 당을 바꾸더니, 이제 지역구마저 옮긴 손 대표는 전형적인 정치 철새”라고 맹비난한 것도 한나라당이 손 대표를 버거워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무조건 필승의 카드를 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는데, 여의치 않다.”면서 “분당을 패배는 재·보선 전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당연히 이기는 지역이라는 안이한 판단으로 당내 세력 재편을 위한 도구로 분당을 선거를 활용하려했다가 괜히 판만 키워놓고 패배를 걱정하게 됐다.”며 안상수 대표와 원희룡 사무총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손 대표의 대항마로 강재섭 전 대표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여전히 유력하다. 특히 그동안 본인의 불출마 의사와 ‘신정아 파동’이 겹쳐 정 위원장 영입론이 힘을 잃는 듯 했지만, 손 대표 출마가 현실화되면서 다시 대두되고 있다.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손 대표와의 여론조사 가상 대결에서 정 위원장이 비교적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경원·정두언·서병수 최고위원 등이 정 위원장 전략공천에 반대해 영입을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강재섭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당이 밀실에서 계속 음모를 꾸민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후보 탈락시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옥임·조윤선 등 여성 비례대표를 전격 투입하는 방안도 소멸한 것은 아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당 대표가 전략공천을 결단할 때가 됐다.”면서 “여성 비례대표가 후보가 되면 내가 나서서 손 대표의 ‘저격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민주 ‘손학규 출마’ 내분 가열

    민주 ‘손학규 출마’ 내분 가열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 출마 여부를 놓고 민주당의 내분이 가열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와 대표 특보단 간사인 신학용 의원이 공개적으로 출마 반대 입장을 밝힌 반면, 김영환·안민석 등 수도권 의원들은 출마 지지 입장을 트위터와 이메일을 통해 밝혔다. 이는 민주당 수도권 의원들이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느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손 대표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을에 출마, 선거판을 흔들어달라는 것이다. 경기 오산을 지역구로 둔 안 의원은 “손 대표가 대권 주자로서 지도력과 파괴력을 선보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출마를 주장했다. 그러나 특보단 소속인 신 의원은 최근 국회 기자회견에 이어 라디오방송 등을 통해 손 대표의 분당을 출마 4대 불가론을 펼치고 있다. 노영민·강창일 의원 등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신 의원은 “역대 최저 투표율이 예상되는 데다 여론조사에서도 분당을은 누가 나가도 다 진다고 나왔다.”고 비관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손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측근들은 다른 지역 선거운동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낙선했을 경우 대선을 겨냥한 정치생명에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날 손 대표는 재보선 선거지원 운동에서 벗어나 하루종일 서울에 머물렀다. 31일 결단시한을 앞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씨줄날줄] 사지(死地)/박대출 논설위원

    1992년 14대 대선 후. 김대중(DJ) 후보는 정계를 은퇴했다. 3년 만에 뒤집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정계 복귀의 첫 시험대는 1996년 4·11 총선. 그는 배수의 진을 쳤다.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순번은 14번. 당락의 경계선이었다. 또 고배를 마셨다. 13번까지 당선됐다. 국민회의는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사지(死地)에 뛰어들었다. 1년 뒤 대권을 거머쥐었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 노무현 국민회의 후보는 당선됐다. 2년 전의 패배를 설욕했다. 4·13 총선에서는 실패를 다시 맛본다. 부산 사하을에서 낙선했다. 사지(死地)로 들어갔다. 2년 뒤엔 대선 승리를 따냈다. 4·27 재·보선전이 뜨겁다. 눈치 작전은 그에 정비례하고 있다. 민주당은 사지론(死地論)으로 시끄럽다. 손학규 대표에게 쏠리는 공방이다. 비주류는 경기 분당을에 출마하라고 압박한다. 한나라당 텃밭이다. 손 대표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측근들만 입을 대신하는 모양새다. 특보단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불가론(不可論)을 편다. 당 대표를 사지로 내몬다고 반발한다. 이젠 김부겸 의원은 “사지에 내몰리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한다. 분당을이 사지에서 벗어났다는 분석으로 비쳐진다. 그 분위기의 진원지는 한나라당이다. 유력 후보들이 상처를 입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신정아 파문에 주춤해졌다. 강재섭 전 대표는 박계동 후보의 폭로전에 휩싸였다. 당 지도부의 자충수 탓이다. 거물들에 너무 기댔다. 그러더니 뒷감당을 못해 우왕좌왕한다. 손 대표 측의 변화는 이때부터 감지됐다. 출마 기류가 고조되고 있다. 7부 능선을 넘었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출마를 종용할 때와 다르다. 일관된 모습이 안 보인다. 지도부 희생론은 야당의 단골 메뉴다. 비주류는 늘 흔들어댄다. 야당 대표는 때론 정치적 자폭을 요구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역풍이 거셌다.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대구 출마를 감행했다. 승산 없는 적지(敵地)에 뛰어들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낙선했다. 하지만 7선 의원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현역 의원 중 최다선이다. 손 대표는 이달 말 결론 내겠다고 했다. 어느 길을 갈지는 모른다. 직접 불섶에 뛰어들어도 좀 늦었다. 이미 식은 뒤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출마든, 불출마든 중요하지 않다. 계산하는 모습은 지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용꿈’을 꾼다면 더할 게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지난 2009년 9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인 이 대학 제럴드 커티스 교수의 ‘일본 현대정치’ 강의를 관심을 갖고 들었다. 그는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의 내정 소식을 전하며 “총리를 할 만한 인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일본 내각평을 듣고 다소 놀랐다. 그가 일본통이라고는 해도 일본 정치, 아니 일본 정치인 개개인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소 전 총리는 취임 후 1년이 채 안 돼 중도퇴진했다. 그것도 중의원 선거에 패배해 54년 만에 자민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정권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태평양 건너 멀리 미국에서도 정확한 정보만 있으면 일본 정치인의 리더십을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커티스 교수처럼 미리 알수 있느냐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대통령·총리 같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야 리더십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성군(聖君)은 태평성대 같은 호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백척간두 같은 엄청난 위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자잘한 위기에도 한방에 가는 이가 나오기 마련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그렇다. 일본 대지진 참사를 겪으면서 그의 허약한 리더십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 그가 보인 위기 대응 능력은 아마추어 그 자체다. 문제는 이제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그 나라에만 영향을 주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듯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경을 뛰어넘는 ‘리더십의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환경 문제 이상으로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지구촌 사람들을 급속히 하나의 운명체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웃 나라 총리의 원전사태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 우리 식탁에 오르던 일본산 명태와 같은 먹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각종 부품과 소재 품귀로 공장의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도 있다. 저 멀리 카다피의 독재권력이 촉발한 리비아 사태도 일본 참사와 함께 가뜩이나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을 올려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하고 있다. 중동의 한 국가가 민주화되느냐 않느냐는 그 나라 국민만의 문제를 떠나 당장 우리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최고의 리더라면 위기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쿠바 미사일의 위기를 넘긴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을 보라. 그가 1962년 10월 16일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알고 난 뒤 소련의 미사일 철수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3일이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점으로 행정부의 정책 결정 시스템을 긴박하게 움직인 결과였다. 그는 해상봉쇄령부터 시작해 소련 흐루쇼프와의 비밀협상 등 ‘Presidential Resource’(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를 모두 활용했다. 그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여차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사태를 막은 것이다. 내년에 대선이 있다. 박근혜·오세훈·김문수·손학규·유시민 등 거론되는 대권 후보들이 경제·안보·재난 등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인물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작은 위기에도 맥없이 무너질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큰일이 터졌을 때 정보체계를 장악하고 독자적인 정책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을 가려내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국제관계까지 챙길 수 있는 글로벌 역량을 갖춰야 한다. 남북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자칫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동반성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선진국 반열에 올릴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의 리더,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만한 인물을 바란다면 과욕인가. bori@seoul.co.kr
  • 김문수지사 후원금수사 불만 “6개월 가만있다 이제와서…”

    “청렴하면 영생하고, 부패하면 반드시 죽는다.”(청렴영생 부패즉사) 김문수 경기지사가 23일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밝혔다. 최근 자신의 후원회를 둘러싼 검찰의 ‘쪼개기 후원금’ 수사에 쏠린 삐딱한 시선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여권내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 손상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김 지사는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명사강연에 나와 “나는 피의자도, 피고발자도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말하고, 검찰 수사와의 무관함을 거듭 강조했다. 서울동부지검과 수원지검은 각각 지난해 6·2 지방선거 직전 KD운송그룹 노동조합원이 3억원, 경기신용보증재단 직원들이 6000만원을 김 지사에게 후원한 사실과 관련해 노조관계자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대권 구도에서 김 지사의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기류도 있다. 그러나 김 지사는 강연을 통해 “저는 돈하고는 정말 상관없는 사람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저만큼 재산 없는 사람 없을 것이다. 숨겨둔 돈도 없다.”고 항변했다.. 그의 한 측근은 “경기도가 KD운송그룹에게 보조금 360억원을 지급한 것과 후원금의 대가성을 운운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도내 전체 버스 가운데 KD그룹 소속 버스가 38%를 차지하지만, 지원 금액은 전체의 32.9%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 지사 측은 검찰 수사의 뒷배경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지사는 앞서 한 라디오 방송에서 “검찰이 (선관위 수사의뢰 뒤) 6개월 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지금와서 이렇게(수사) 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또 “(검찰 수사 배경과 관련) 여러 설이 있다.”고도 했다. 그의 측근은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검찰 개혁 방안과의 연관설 등도 제기된다.”고 귀뜀했다. 또다른 측근은 “이번 수사로 여야의 다른 대권주자들이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보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김 지사 측은 당분간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의혹 확산을 차단하는 데만 주력할 계획이다. 한 측근은 “이러쿵저러쿵해도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다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기고] 선(善)의 침묵./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

    [기고] 선(善)의 침묵./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고가 무겁다. 불어나는 가계 빚더미 앞에 과거는 죽어가고 미래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있다. 중산층이 점점 더 무너져 가고 사회계층이 양극단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난’ ‘빈곤’ ‘소외’ ‘포기’ ‘자살’이라는 말들이 일상적 사회용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런 양극화 해결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이 시대의 정신이고 화두다.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없고, 개선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탐욕에 눈이 먼 기득권층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이기주의와 자기 보신에 사로잡힌 거대자본과 지식인, 그리고 고위공직자는 ‘내려놓음’과 ‘나눔’, ‘긍휼’의 정신을 상실했다. 있다 해도 면피용 생색내기요, 이름 알리기요, 전시적이어서 사랑과 감동이 없다. 올바른 문제해결과 상생의 방안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은 자기 성찰의 노력이 없다. 공천과 대권, 지역구의 이익에만 매달려 있다. 정론을 이끌어야 할 언론도 자신의 성향과 구미에 맞는 것에 보도와 편집이 편향돼 보인다. 지금 시민들은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를 수 있다. 거대자본과 권력에 줄을 서서 아부하는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를 짓누르며 다가오는 그 무엇의 실체와 파괴력을 안다. 그 누구도 해결을 위해 선뜻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무능과 탐욕, 인내의 한계를 넘는 시민들의 불만, 그리고 용기 있는 선비들의 등장과 호소가 일치하는 순간 임계점을 넘어 그 무엇은 빅뱅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이와 함께 시민들은 이 사회와 역사의 진정한 주인으로 소용돌이를 이끌어 갈 것이다. 과연 보수는 다가올 변혁의 시대를 맞아 눈부신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보수는 진보와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비겁하고 도망치기에는 너무 뚱뚱하지 않은가? 서민과 중산층에게 포식자(eater)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통합하고 나누는 온전한 미래의 창조자(maker)로 거듭날지를 결단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실종된 정의, 감금된 자유, 그리고 껍데기 평화가 우리 사회에 나뒹굴도록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때를 아끼며 온전한 미래를 위해 맞설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자기부정과 무욕의 결단을 내리는 도덕적 엘리트가 공론과 실천의 최전선으로 나와야 한다. 감세정책으로 회사 청소부들의 과세율이 자신보다 높아짐을 수치스러워한 워런 버핏과 같은 기업가가 감동을 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무엇보다도 가족, 공동체, 종교와 같은 전통적 지혜에 의존하여 정의와 자유를 고취시킨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지혜와 덕의 신중함이 새롭게 싹터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갈망을 우리는 직시하고 역사를 밀고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한다면 역사는 오늘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라고. 마틴 루서 킹의 이 말이 오싹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 손학규-유시민, 김해을 ‘盧心쟁탈’ 제1합

    4·27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의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첫 대결이다. 이번 재·보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향후 대권가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이 지역은 상징성이 큰 편이다. ‘노풍’(風)의 진앙지라는 부분까지 더해지면 김해을 선거는 두 사람 입장에서 대권 전초전으로 불릴 만하다. 손 대표는 21일 김해 현지에서 열린 국회의원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민주당이 앞장서서 노무현 정신을 이루고 민주진보 진영을 하나로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민주당은 전화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을 통해 곽진업 전 국세청 차장을 후보로 확정했다. 이에 맞서 유 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봉수 후보로 단일화하면 무조건 야권이 이긴다. 민주당에는 친노 후보라 할 수 있는 후보가 없다.”고 되받았다. 두 사람의 첫 승부처인 만큼 경선 규칙을 둘러싼 신경전도 치열하다. 이날부터 여야가 4·27 재·보선 후보자 압축 작업에 들어갔지만 순조롭지 않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야권은 난기류가 짙다. 도무지 접점이 모아지지 않자 급기야 시민사회단체가 김해을의 야권 단일후보 선출 방식으로 ‘1차 여론조사→2차 국민경선+여론조사’를 내놓았다. 하지만 민주당 측은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은 본선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참여당 측은 “국민참여 경선은 조직 동원이 우세한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분당을 예비후보 6명과 김해을 예비후보 8명에 대한 면접을 치렀다. 면접에 참석한 강재섭 전 대표는 분당을 지역의 정운찬 전 총리에 대한 전략공천설에 대해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해을 예비후보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야권 단일화가 되면 어려움이 있겠지만, 친노무현 바람이 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심위는 또 분당을과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과 관련, 지역 여론 청취 등을 위해 현지 실사를 하기로 했다. 구혜영·허백윤기자 koohy@seoul.co.kr
  •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선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선출

    국민참여당이 19일 유시민 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을 압도적인 지지로 새 대표로 선출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본격적인 대결도 막을 올렸다. 유 대표는 경기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참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 후보로 단독 출마해 전체 3060표 가운데 2969표를 획득, 97%의 지지를 얻었다. 수락연설과 기자간담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임을 강조하며 “내년 총선에서 원내 20석을 가져오겠다.”고 다짐했다. 노란 넥타이를 매고 등장한 유 대표는 “야권의 연대·연합이 아름답게 이뤄지면 한나라당과 그 아류정당의 의석을 120석 밑으로 누를 수 있고, 야당 의석 180석 중 20석 정도가 참여당이 책임질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참여정부가 남긴 부채만은 승계해 빚을 갚겠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정권교체”를 수차례 강조하며 차기 대권 도전 의지도 피력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친박, 정운찬 싫고 강재섭 밉고…

    ‘누구를 밀어야 하나.’ 한나라당 친박계가 ‘4·27 재·보궐 선거’에서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후보를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유력 후보들이 모두 마뜩잖기 때문이다. 우선 정 위원장에 대해서는 경계감이 크다. 한 친박계 의원은 17일 “(친이계가) 정 위원장을 차기 대권 주자로 키워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경계했다. 친박계인 서병수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재·보궐 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부족국가 시대의 ‘천거’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나타나고, 그 천거를 앞세우려는 시도가 있다.”면서 “기본과 원칙을 파괴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 15일 재·보궐 선거 공천 마감 때까지 신청서를 내지 않았지만,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출마 여부에 따라 전략공천 대상자로 낙점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렇다고 친박계가 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로 돌아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18대 총선 당시 강 전 대표가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는 앙금이 남아있는 탓이다. 지난 13일 강 전 대표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참석한 것과 관련, 한 친박계 의원은 “강 전 대표와의 개인적 인연에 따른 것일 뿐 지지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애써 선을 그었다. 따라서 친박계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수도권의 한 친박계 의원은 “누가 더 나은 게 아니고 누가 덜 밉다는 이유로 지지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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