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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對北 외교 한반도로 옮기면 정상회담 성공”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대북(對北) 외교무대의 중심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워싱턴에서 한반도로 옮겨질 수 있다면 정상회담은 성공한 것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미국의 아시아문제 전문가 로버트 매닝(사진)이 4일 밝혔다. 대외관계협의회 아시아연구소장인 매닝은 이날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외부에서 지켜보는 두 김씨의 만남’이라는 기고문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책동의 일대 전환이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뛰어난 업적일 뿐 아니라 미국으로서는 7년만에 한반도 정치역학의 중심에서 빠져나올 기회라고 평가하고,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적대관계였던 양측이 평화의 필수요건인 7,000만 한민족의 화해라는 힘든 과정을 시작할 수있게 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상회담의 성패 여부는 김 위원장이 김 대통령의 회담 제의를 수락한배경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며 단순히 북한의 새로운 경제원조 추구책일 수도 있고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 효과일 수도 있지만 솔직한 해답은 김위원장의 수수께끼같은 철학 속에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으로서는 페리 구상의 요구사항들을 받아들이느니 위험이 있더라도 남북 정상회담이 더 구미 당기는 대안으로 비쳤다는 게 설득력이 있다고분석했다.특히 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해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정권이 출현하거나 2002년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덜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설 때에 대비한 충격완화 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매닝은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과거 호전성을 감안할 때 남북한이 외교무대의 중심을 워싱턴에서 한반도로 옮길 수 있다면 정상회담은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결론지었다.
  • 스크린쿼터 수호등…‘자유 2000’페스티벌

    해마다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도적인 장벽을 테마로 ‘자유’공연을 펼쳐온 한국대중음악 작가연대(대표 김명곤)가 올해는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이사장 문성근)와 손잡고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제) 수호와음악 저작권 보호를 기치로 한 공연을 펼친다. 오는 6월 3일(오후7시)과 4일(오후5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자유2000’에는 안치환과 자유를 비롯,정태춘 이정선 엄인호 이은미 크래쉬 들국화 등 중견가수와 위퍼 크라잉 넛 닥터코어 911 펄럭펄럭 X-CLAN 어어부프로젝트 외에 최근 경찰비하 노랫말로 파문을 일으킨 DJ DOC 등이 무대에 선다. 4일 오후5시부터는 마이 안트 메리 등 인디밴드들이 노개런티로 라이브를 펼친다. 당초 섭외했던 조용필,시인과 촌장 등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고사했다. 국악과 재즈쪽에선 황병기 강태환 박재천 김용우 타악그룹 푸리 등이 출연한다.영화배우로는 박중훈 임창정 홍경인 장동건 김민종 명계남 안성기 박상면 등이 나와 몇몇은 연주테이프를 배경으로 노래를 들려준다.(02)538-3200작가연대관계자는 “이번 페스티벌에 일본의 ‘Mr Children’ 등과 중국의펑크록 그룹들을 초청,동아시아 라이브페어로의 발전을 모색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가연대측은 1년동안 차분히 준비해 내년에는 꼭 라이브페어의 면모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연대가 당초 4일 연대 학생회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표절 심포지엄’도 작가연대 창립일인 10일 이후로 미뤄졌다. 임병선기자
  • [사설] 가정윤리 붕괴는 사회위기다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윤리가 무너지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나 요즘 드러나고 있는 사례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가정의 달이 무색할 정도로날마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자녀학대와 부부폭력 등은 가정의 의미를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전하고 국가가 안정된다는 점에서 가정해체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위기현상이다. 최근 보도된 사건만으로도 가정의 위태로운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난다.선천성 심장병을 앓던 7살 여아가 30대 계모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계단에서 굴러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한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주었다.더욱이 인공심장기로 생명을 유지해온 여아가 치료는커녕 거액의 보험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보험금을 노린 의도적인 학대살인 혐의를받고 있다. 주벽이 심한 아버지로부터 하루가 멀게 야구 방망이로 맞아 정신분열증에걸린 10세 어린이,가정파산으로 어머니마저 가출해 고아가 된 자녀들,남편의폭력을 참다 못해 흉기로 살해한 주부 등 가정이 반인륜적인 사건들로 인해깊게 병들어 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50만명의 어린이가 학대받고 있는 현실은 하루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급속한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기존의 가정윤리가 퇴색하고 구성원간에 개인주의가 우선해 가정이 해체되는 것은 시대조류라 하겠다.우리 사회가 외환위기를 겪은 뒤 파탄가정이 급속히 늘어나고 가족간 애정보다 경제논리가 우선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핵가족에서는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도 약해 한번 금이 가면 유대관계를 회복할 수 없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가족간의 유대로 역경을 딛고 위기를 넘기는 전통을 자랑한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家和萬事成)는 전래의 미덕은 오늘날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가정문제는 도덕과 윤리로 해결해야지 가정범죄처벌법 등 법에 의존할 문제가 아니다.어려울수록 서로 참고 부부간의 애정,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자녀간 형제애로 풀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사회적으로도 가정윤리되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제도적인 가정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산업화의 물질적 풍요로움은 정신적 공허감을 보상하지 못한다.힘들고 외롭고 아플 때 우리는 가정으로 돌아가 위로를 받고 힘을 키운다.그곳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마침 오늘부터 가정폭력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열려 대응책을 논의한다.일주일 남은 가정의 달에 우리 모두가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생각하고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을돌이켜보자.
  • ‘정치인 총리’ 기대반 우려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2일 이한동(李漢東) 자민련 총재를 신임 국무총리로 지명하자 관가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한동 총리의 등장으로 민주당과 자민련간의 공조가 복원돼 정부의 정책추진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 기대감이다.반면,경제 불안 등 국가적으로중요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치인 총리가 국정을 얼마나 잘 이끌어나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이한동 총리지명자가 지난 88년 내무부장관을 맡았을 때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서 “행정경험도 있기 때문에 내각을 통솔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는 정치색을 완전히 탈피하고 행정에 주력함으로써 경제현안 해결에 힘을 보태왔다”면서 “이한동 지명자가 스스로 대권후보임을 의식한다면 총리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는 “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정국안정이필요하며,신임총리 지명은 이런 점을 충분히 감안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이 간부는 그러나 “총리 지명이 인물의 적합성 여부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재경부측에서는이한동 총리가 경제에 밝지 않기 때문에 행정부처간 조율에 치중하고,주요경제정책은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이 전면에 나서 담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유대관계가 복원될 경우 2단계 금융·기업구조조정과 각종 경제개혁관련 법안 처리 등이 순조롭게 이뤄져 정치는 물론 경제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그는 특히 “구조조정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에서 여당측이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보통신부 고위관계자는 “이 신임총리가 자민련 총재가 됐을 때 장·차관 등 고위간부들이 인사차 당사를 방문,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면서 “이 신임총리는 디지털 시대라는 문명사적 변화의 흐름에 상당한지식이 있었고 정보화에 대한 의지도 강했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남북정상회담/ 합의서 어떤 내용 담을까

    18일 판문점에서의 남북 5차 준비접촉에선 정상회담 실무절차 합의서가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양측은 기자단 수에 대한 이견을 절충한 뒤 준비접촉을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도 17일 “북측이 기자단 수와 선발대 일정에 대해 무리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타결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의제/ 7·4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의 정신을 명기한다.민족의 화해·단합,교류·협력,평화·통일을 위해 협의한다는 포괄적인 표현의 ‘수위’에도 의견을 모았다. 이에따라 두 정상은 적대관계 해소 및 평화정착 등 한반도 현안문제 전반에 대해 제한없는 논의를 진행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의제 명기에는 빠졌지만 양측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문제는 정상회담에서논의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핵심 합의사항/ 두 정상은 두차례 이상 단독회담을 갖는다. 기록원 1명을 포함,3∼4명이 배석하기로 했다.방북에는 항공과 육로를 모두이용할 수 있도록 명기하고 북측 지역에선 북측 자동차를 이용한다는 데도 의견을같이 했다. 기자를 제외한 대표단 수는 130명.모두 합의서에 명문화된다. ◆기타 명기사항/ 총리 명의의 신변안전보장서 전달,남측 대표단의 편의보장을 위해 남측과의 행낭 운반 보장 및 휴대품에 대한 불가침 보장도 합의서에 포함된다.생중계를 위한 북측의 시설지원 등도 명문화되고 기타 절차 문제들은 남북 고위급회담 등의 관례를 따를 것도 명문화된다. ◆쟁점 및 이견/ 기자단 수와 생방송 여부는 막판까지 합의를 가로막는걸림돌이었다.보도진 숫자에 대해 북측은 40명,남측은 80명을 주장했다. 양측은 50∼60명선으로 절충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생방송에는 북측도 원칙적으로 동의한 상태.그러나 위성 생방송장비인 SNG 반입문제 등 장비문제에걸려 합의가 지연됐다. 남측은 생방송 기자재를 갖고 들어가겠다는 입장인 반면 북측은 북측의 시설·기술진을 이용하라며 실랑이를 벌였다. 실무자의 현장점검을 위한 방북시기와 관련한 줄다리기도 있었다.남측은 최소 한달전에는 경호·의전,통신·보도 등 실무 전문가들을 방북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은 1주일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이견을 보였다. 또 남측은 베를린선언의 4대 과제에 대한 논의 명기를 희망했으나 결국 구체적인 표현 대신 포괄적인 명기로 만족해야 했다. 이석우기자 swlee@. *실무 초점… 국가 연주 않기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절차가 세부적으로 진전되고 있다.남북간에 의전절차에 대한 의견이 구체적으로 오가고 있고 나름대로 법적 절차도 매듭지어지고 있다. ◆의전 절차/ 정부는 평양에서 대규모 환영행사는 불필요하다고 보고 있다.‘실무방문’형식으로 불필요한 의전 행사를 축소하고 정상회담 이외의 행사는피하겠다는 것이다. 국기게양,국가 연주도 생략된다.남북간 이념적 갈등을최소화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대통령의 일정은 분 단위로 철저하게 짜게 되며 ‘김일성 묘소’,‘단군릉 방문’ 등 북한의 이념적 조형물 방문 행사는 없을 것”이란 게 정부 당국자들의 지적이다.그러나 북한내 고구려 유적지 방문 등 역사 유적지 방문은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가 절차/ 남북 정상회담을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통일부의 정식 승인절차를 받아야 한다.일반 국민보다 간소하긴 하지만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반인이 북한을 방문하려면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 등에 따라 통일부로부터 방북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먼저 방북 20일전에 통일부에 방북증명서 발급을 신청한다.본인이 작성한 신원진술서와 사진,북측의 신변안전 보증서 등을 첨부한다. 통일부는 이들 서류를 토대로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방북증명서를 발급한다. 통일부는 그러나 이번 방북이 정상회담이라는 특수성을 띠고 있는 점을 감안,장관 직권으로 특례를 만들어 절차를 간소화할 방침이다.남북교류협력법제20조는 ‘통일부장관은 남북 당국간 합의가 있는 경우 특례를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통일부는 92년 남북고위급 회담 때와 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의 특례조항 중 하나를 참고하기로 했다. 92년 때는 당시 정원식(鄭元植) 총리 이하 대표단 모두가 신청서를 작성했지만,신원진술서 등 나머지 서류는 생략했다.금강산 관광은 신청서 작성마저도 생략하고 관광객의 주소 등 간단한 인적사항만 제출하면 통일부가 승인공문을 내주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97년 발표 통일지침 ‘8·4노작’소개. 북한 언론매체들이 최근들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방안 등 통일관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17일 “평양방송 등 북한 언론들이 이달초 일주일동안 김국방위원장의 이른바 ‘8·4 노작’의 논문 전체를 소개하고 별도 해설도 곁들였다”고 밝혔다. ‘8·4 노작’은 김 국방위원장이 97년 8월4일 발표한 통일지침.‘위대한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제목의 논문으로북한의 대남정책 및 통일방안을 담고 있다. 김 국방위원장은 논문에서 “남북 사이의 관계개선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절박한 요구”라면서 “불신·대결을 신뢰와 화해 관계로 전환해 민족의단합된 힘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고 남북간 화해와 대화를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은 김일성의 통일 유훈을 실현하려는 김정일의결단으로 이뤄지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한다.형식은 김일성의 유훈을 받들자는 것이지만 내용은 김정일을 민족통일의 선도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어제까지의 주적(主敵)인 남한의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을 준비를 하며어리둥절해 할 북한주민들에게 관계개선의 급진전이 북한 정부의 주도 아래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김정일의 지도력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란 해석이다. 김 국방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통일의 실현방안으로 자주·정치대결의 해소·남한사회의 민주화문제 등 기존의 북한측 주장을 강조했다.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이같은 북측 언론들의 움직임은 최근 ‘조국통일 3대헌장’등 통일노선 선전강화와 맥을 같이한다”고 지적했다. 오는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을 맞는 북한과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남북 관계개선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최대한 알리고 설득하면서 국내외적으로북측 통일노선의 정당성을 선전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풀이다. 이석우기자. *생중계 쟁점 뭔가. 남북정상회담을 안방에서 생중계로 볼 수 있을까. 남북 양측은 아직 방송장비 반입 등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진 않았으나 최소한 몇몇 주요 장면을 생방송한다는 데는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도착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첫 대면,정상회담 오프닝 장면 등은 역사적인 순간인데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중계에 이견이 없다는 것. 문제는 생중계의 질(質)이다.남측은 가급적 위성 생중계 장비인 SNG를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북측 중계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화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한 방송 전문가는 “유럽식 PAL방식인 북한의 방송 시스템과 달리 우리는 미국식 NTSC방식이라 시스템 전환과정에서 화질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북측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실제 전송 과정에서 약간의 시차를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 경우 약간의 ‘편집’을 통해 북측에 유리한 화면을 내보낼 수도 있다. 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김일성(金日成) 주석만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우리대표단은 “예”,“예”하는 장면만 방송돼 마치 김 주석이 훈계하는 듯한인상을 준 적 있다.94년 카터 전 미 대통령이 김 주석을 만날 때는 카메라각도와 자리 배치에 교묘히 차이를 둬 카터 대통령이 김 주석보다 왜소하게보인 화면이 나간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우리측은 곧 있을 평양 사전답사에서 카메라 각도는 물론 양 정상을 카메라에 담는 횟수까지 세세하고 공평하게 협의한다는 방침이다.특히 SNG반입이 끝내 거부되고,북측 장비를 이용할 경우 화면 송출 과정에 우리측 전문가를 반드시 입회시키도록 할 계획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기고] 가슴을 열고

    지난 20 세기를 살아온 우리 민족은 역사 속에 많은 아픔을 안고 있다.국권의 침탈과 국토의 분열,동족간의 참혹한 전쟁과 적대관계는 아직도 아물지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5,000년의 민족사에서 가장 한 맺힌 이 고난의 역정은 나라의 안보를 소홀히 한 필연의 산물이었다.20세기,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데올로기 싸움은 공산체제의 무너짐으로 종언을 고했으나,한반도는 21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인류의 역사는 귀족이 노예를 지배하고 독재자가 백성을 유린하며,심지어신(神)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던 국가·사회의 계층구조로부터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오랜 세월을 딛고 그렇게 사람은 조금씩 인간다워진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땅,북녘에는 한 핏줄을타고 난 2,200만의 동포가 독재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1,000만의 이산가족은 대책없이 50년을 목메어 했으며,10만의 탈북자는 만주와 중국,시베리아동토에서 난민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강제송환의 불안 속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남북은 애초에우리가 원해서 갈라선 게 아니다.동북아의 한 가엾은 식민지를 놓고,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강자의 논리에 따라 어느 날 지도의38도선 상에 줄을 그어놓음으로써 잘려진 강토요 통치권의 분할이었다.남들이 쪼개놓은 영토인데 이제는 우리끼리도 합치지 못하는 땅덩이가 되어 버렸다.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고자 함이다.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일깨우기 위함이다.나라를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기에,1,000년전 만주대륙을 지배하고 동북아를 호령하던 배달족은 좁은 나라 땅 마저 두 갈래로 나눠,서로가 먹느냐먹히느냐의 무시무시한 싸움판을 벌려놓고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새 천년에는 다르다.역사가 변하고 정세가 바뀌고 있다.21세기에 한반도는 동방의 빛이 되는 세계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명운을 열어갈 것이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되살리고 아시아의 용으로 다시 부상할 진운의 길에들어섰다.국가 부도위기를 2년만에 복원시켰으며,주변 강대국과 4강외교로한국이 주도적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펴나가고 있다.정부는 남북 간에 평화공존을 실현하고 민족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포괄적이고 호혜적이며 포용성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남북경제 협력을정부차원에서 구체화하고,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하며,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과,대북경수로사업을 약속대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한편,포용정책은 무조건 주기만 하고 얻는 게 없는 정책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북측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면서 그들을 이롭게 해주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귀담아들으면서,온 국민이 장기적 비전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대내적 결속을 다지는데도 큰 비중을두어야 한다.대북 포용은 안보와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공산주의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과,북한의 대남 무력적화 통일전략의불변성에 대해서는 철저한 안보태세만이 대응방법이라는 전제 하에 세워진정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군(軍) 은 포용정책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다.포용은 가슴이 넓고 힘이 센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것.그래서 우리의 국군은 튼실한 거인의 모습이어야 한다.믿음직하고 강한 군대 말이다.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분단 55년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날이다.국민의 염원을 담아 국민의 정부가 노력한 결과요,세계의 진운이 우리를 돕고 있는 소치이며,민족적 자각이 움트기 시작했음이다.모처럼의 귀한기회다.조급하지 않고,변덕부리지 말며,지혜와 인내와 정성으로 가슴을 여는남북의 만남이길 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예비역 육군 준장 정영휘
  • 남북정상회담 앞으로 한달/ 전문가 3人의 제언

    ●황태연(黃台淵) 동국대 교수. 남북 정상회담의 근본적 과제는 적대관계 완화 및 종식이다.6·25가 가져온민족의 아픔을 이번 기회에 치유할 경우 남북 화해와 협력은 순풍을 탈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이산가족문제를 반드시진전시켜 대내적으로 대북 협상력을 강화하고 추진력을 이어가는 것이 앞으로 남북대화 성공의 지름길이다. 북한은 생각보다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것 같다.북한이 관영매체를 총동원,“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남북한 모두가 잘 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북한은 지금 경제적 측면에서 하부구조가 와해돼미국과의 벼랑끝 외교나 강성대국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정상회담을 계기로 활로를 찾으려는 북한의 의지가 감지된다.모처럼 찾아온 호기로 봐야한다. ●이장희(李長熙) 외국어대 교수 . 회담 전망은 국내외의 확고한 지지와 북한의 적극적 자세가 어우러져 무척 밝다.북한 지도부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있는 동안 생존권을 확보한 뒤 평화의 연결고리를만들려는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처음 만났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하고 김대통령에게 너무많은 짐을 주면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난다.민족 화해와 평화적 무드가 지속되도록 정상회담을 정례화·지속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위기를깨지 않도록 초당적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언론도 갈등지향적 보도보다는화해지향적 보도에 치중,정상회담의 성공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및 냉전종식,경제협력과 이산가족문제 해결 등 남북 사이의 주요 현안들을 폭넓게 제기하고 논의할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합의가 된 부분은 문서로 담아내고 견해차가 있는 부분은 차이를 확인해 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많은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우선 경협과 이산가족문제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또 최소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도모할 수있는 계기도 마련됐으면 한다.평화정착과 냉전종식문제와 관련해선 적어도 인식의 공유가 이뤄지고 이후 이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화기구의 상설이 바람직하다.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6)라빈 아라파트 회담

    *93년 이스라엘 - PLO 오슬로협정 체결. “이미 너무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전쟁터에서 죽어간 동료와 가족들을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1993년 9월13일 미백악관.역사적 오슬로협정 테이블에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과 마주앉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축사라기엔 엄숙한 한마디를 던졌다.이날 양국 정상이 체결한 오슬로협정은 결코화해할수 없을듯 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랜 적대감을 끊고 이끌어낸 평화 총론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그러나 협정시효가 훨씬지난 지금까지도 그 각론이 합의되지 않은채 유혈충돌 역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동평화의 가시밭길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평화의 청신호는 80년대 후반부터 찾아왔다.국제사회 압력과 극심한 경제난이 옥죄는 가운데 90년대초 소련의 붕괴는 그 지원에 의존하던 아랍 투쟁기구들로 하여금 노선 수정을 불가피하게 했다. 70년대 내내 반이스라엘 테러의 선봉에 섰던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88년 임시 유엔총회 연설을통해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과 테러 포기를 선언,국제사회의 요구에 발맞췄다.이스라엘에도 92년 선거에서 라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강경 리쿠드당을 대체,화해분위기가 무르익었다.오슬로 협정은 양국정상의 평화의지 외에도 이같은 유화정세의 산물이기도 했다. 양국 대표단이 노르웨이 오슬로에 모여 오랜 물밑회담끝에 선보인 협정문은당시까지의 중동관계로 미뤄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협정원칙(Declaration of principles;DOP)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된 문서는 △99년 5월까지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의 이스라엘 철군△이 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자치 3년내 독립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지위 논의 등을 규정하고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돌려줄 뿐만 아니라 향후 독립국 건설까지도 인정하겠다는 것.협정문이 제시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 정신은 향후중동협상의 대원칙이 됐다. 오슬로협정 규정에 따라 라빈과 아라파트는 94,95년 1,2차 자치협정에 나란히 서명했다.양국 정상간에 직통전화가 놓이고 총선거를 거쳐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됐다.94년엔 요르단이 이스라엘과의 46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평화협정에 조인,중동평화 도미노에 대한 예감으로 지구촌이들떴다. 그러나 94년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사회 갈채의 안쪽에서라빈과 아라파트는 국내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려 진땀을 흘려야 했다.점령지에 정착중인 이스라엘인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역시 잊을만하면 폭탄테러를 자행,평화일정을 지연시켰다.결국 95년 11월라빈 총리가 반대파에 암살당하면서 한축을 잃은 중동평화호는 일탈이 불가피해졌다. 곧이어 집권한 강경 네타냐후 정권 아래서 오슬로 플랜은 19개월가량 정지되기도 했다.98년10월 와이리버 협정이 가까스로 체결됐으나 오슬로 시계에의하면 이미 이뤄졌어야 할 요르단강 서안 완전철군,팔레스타인 최종지위협정 등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이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또한번 정상간 회담에 의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손정숙기자 jssohn@. *라빈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 힘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그의 오랜 군경력 때문에 ‘철권을 쥔 평화의 병사’,‘미스터 안보’로 불렸다. 1922년 예루살렘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카두리 농업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곧바로 하가나부대, 팔마치 부대를 돌며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32세의 나이로 소장에 오르고 40세에 참모총장으로 진급, 67년의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68년에는 2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이끌어 내 대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73년 귀국,74년에는 골다메이어 총리정부에 노동장관으로 입각했으며 같은해 6월 메이어의 사임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자란 최초의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77년 부인의 미국내 은행 불법계좌가 드러나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84년에는 국방장관으로 복귀하여 레바논 전쟁을 종식시켰다. 92년 다시 총리가 된 뒤 주변 아랍국들과 평화협상에 힘을 기울여 93년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원칙에 합의하고 오슬로평화협정에 조인했다. 이공로로 페레스,아라파트와 함께 9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으나 95년 11월 4일 평화집회를 마친 직후 극우파 유태인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송하기자. *아라파트 당시 PLO의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는 1929년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4살 때 모친이 죽고 예루살렘의 삼촌 밑에서자랐다. 그러다 46년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무기밀매를 하며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아랍과 이스라엘의 첫 전투 이후 UN은 팔레스타인에게 자치 정부를 약속하지만 이행되지 않고 갈 곳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박해를 받는다.이후 팔레스타인 동료들과 연계하여 64년 군소 저항단체들을 통합해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를 창설한다. PLO는 게릴라전과 테러를 이스라엘에 행하여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길들이기에 나선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으로 요르단 본부를 빼앗기고 레바논으로 거점을 옮긴다.계속되는 테러와 마찰로 아라파트의 PLO는 세계의 불한당이 되었지만 72년 UN 옵저버 자격을 획득한다. 88년 모든 테러를 중지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 그해 70개국의 승인을 얻었다. 90년 걸프 전쟁으로 신뢰도에 위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93년 평화를 위한 기초 합의를 이스라엘 총리 라빈과 이루었다.96년 자치 수반으로 취임하여 98년 중동 평화의 결실이자 상징인 와이 리버 합의를 이끌어냈다. 황인철기자
  • 조선시대 宗親府건물 제자리 찾을 가능성 높다

    지난 81년 국군기무사령부 뒷마당에서 해체된 뒤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세워진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건물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국방부가 경복궁 동쪽의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기무사 건물을 새로 짓는 계획을 재검토키로 함에 따라 그 자리에 종친부 건물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친부는 조선시대에 왕실 일가친척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궁궐안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경복궁 건춘문 바로 앞에 자리했다.고려시대제왕자부(諸王子府) 이후 명맥을 이어오던 종친부는 1907년 폐지됐다. 1913년에는 일제가 그 자리에 경성의대 부속건물을 세웠고,해방 이후 수도육군병원으로 활용되다 1971년 기무사가 홍릉에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종친부 건물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대로 서 있었다.81년 해체될 당시에 이미 서울시 지방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상태였다. 종친부 건물은 1894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63.45평 짜리 주건물(中堂·중당)과 건물에서 바라보아 왼쪽의 32.84평 짜리 부속건물(左翼廊·좌익랑)이 아직도 위세가 당당하다.다만 오른쪽에 왼쪽과 같은 규모로 서 있었을부속건물(右翼廊·우익랑)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기무사는 8,000여평에 이르는 부지 안쪽에 대형건물을 신축하되 삼청동길에면해 있는 옛 경성의대 부속건물 자리 700여평에 미술관을 짓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예술인들로 이루어진 사간동 문화거리추진위원회가 지난 96년부터 종합문화센터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기무사 이전 및 문화공간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공감대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이제 국방부가 기무사령부를 이전키로 결론내릴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곳을 문화공간화하는 방안은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 기무사 부지에 세워져있던 건물까지 남아있는 만큼 문화공간을새로 조성하기에 앞서 역사성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목소리도 높다. 일부에서는 소격동 일대가 종친부를 비롯하여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과 왕의 사위인 부마들을 위한 관청인 의빈부(儀賓府) 등 왕실 관련기관이 밀집한지역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무사 부지 안쪽의 제자리에 종친부 건물을 먼저 복원하고 주변을 사적공원으로 조성한 뒤 여유공간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해야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나아가 덕수궁 안에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은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그 자리에 조선왕조역사박물관으로 확대되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경복궁을 완전복원하려면 기존 박물관 건물은 언젠가는 철거할 수 밖에 없다.결국 조선왕조박물관의 역사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위치는 종친부 주변이 아니겠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동철기자
  • 충주호리조트 23평형 240만원에 판매

    “1,490만원짜리 콘도 회원권을 240만원에 구입하세요.” ㈜한국코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1,490만원에 판매하던 충주호리조트 23평형 회원권을 240만원에 내놓았다.다른 콘도의 비수기 이용권 가격에 불과한수준이다.일시불로 지불하면 추가 할인혜택도 받는다. 충주호리조트는 충주호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20층짜리 타워형 콘도를 포함해 수상레저시설,잔디썰매장 등 다양한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간 사용일수는 여름 성수기 3일을 포함해 30일이다.개인은 물론 법인이나단체 명의로 가입할 수 있으며 상속·증여도 가능하다. 한라산·설악산·영랑호·대관령 등 국내 14곳과 사이판 1곳 등 15곳의 콘도를 회원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국코타 관계자는 “종전엔 투자비 명목으로 분양대금을 받는 대신 등기를넘겨주는 주주제 형태로 판매했으나 콘도가 완공됨에 따라 회원제로 전환해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02)597-5591전광삼기자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4)사다트 베긴 회담

    *77년 이집트·이스라엘 정상회담. “20세기 가장 위대한 외교적 승리의 하나이자 역사적 이벤트였다.우리는전혀 새로운 평화에의 여정을 창조했다” 1977년 11월19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외무장관으로 동행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UN사무총장은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남으로 촉발된 화해 기류는 누구도 녹일 수 없을 듯하던 중동의 얼음장 하나를 쩍 갈랐다.양국 정상간 대면은 최초의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져 중동평화 여정에 거대한 초석을 놓게 됐다. 애초에 사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4차례 전쟁을 통해 국토를 강탈해간 이스라엘에 아랍권은 유혈투쟁을 불사해왔다.이집트 역시 67년 전투에서 이스라엘에 시나이반도를 뺏겼고 73년 이를 둘러싸고 또한차례 격전에 휘말리는 동안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에선 초강경 테러리스트 출신 베긴 정권의 탄생으로 세계가 경악했다. 그러나 한편 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30년 무력충돌에 대한 넌더리가 중동 민중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었다.국제사회의 압력도 날로 거세갔다.이스라엘은무력점령한 땅을 반환하라는 UN 결의안 242조를 마냥 무시할수 만은 없었으며 극도의 민생 피폐상에 시달려온 이집트에는 미국이 ‘평화분담금’ 명목으로 제시해온 경제원조가 절실했다.이 시점에서 사다트는 결단을 내렸다.77년 자국 의회에서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어디든 간다.이스라엘 의회까지라도”라고 연설,강한 평화의지를 피력한 것.여기에 이스라엘이 즉각 초청장을 보내 화답했다.그리고 사다트가 무조건 이를 수락함으로써 아랍지도자 최초의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3차례 회담에도 불구,평화조약이 아닌 “평화를원하며 대화를 계속하자” 정도의 원론적 합의성명서 한장을 달랑 내는데 그쳤다.30년간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양국간 입장 차는 클 수 밖에 없었다.베긴 총리는 평화보장을 전제로 한 시나이반도 반환은 받아들였으나 요르단강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위와 관련된 사항에는 한치도 양보할수 없다고 버텼다.양국은 향후 1년여를 무수한 중재회담으로 소모하고서도 접점을 찾지 못해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여야 했다.78년 9월 카터 미 대통령은 양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협상조율에 들어갔다.2주만인17일 천신만고 끝에 역사적인 합의문이 엮어져나왔다.골격은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반환 및 이스라엘-이집트 수교 ▲5년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보장 원칙 등 크게 두가지였다.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그후로도 반년이 흘러야 했다. 어렵사리 싹튼 중동평화였지만 부작용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양국 모두 국내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렸으며 사다트는 동포를 버린 배신자로 아랍권에 낙인찍혀 리비아,시리아 등으로부터 단교당하기도 했다.미국을 불러들인 반쪽정상회담의 한계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자치권 회복까지는 문서에약속된 몇배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이스라엘-이집트 협정의 의미 자체를 희석할 수는없다.미국이 중도개입했으나 협상의 촉발점이 된 사다트의 예루살렘 방문이상당히 독자적 행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중동문제를 자력으로 인식한 최초의사례가 아닐 수 없다.유대-아랍간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 회담이 없었다면 93년 오슬로협정,98년 와이리버협정 등 향후 중동평화의 모든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나올 수 없었다.78년 사다트와 베긴은 그 공로로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러나 81년 사다트는 과격파 총탄에 희생돼 중동평화의 첫 순교자가 됐다. 손정숙기자 jssohn@.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반식민,반봉건주의자에서 중동평화 개척자로.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일생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1918년 영국 통치하 이집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카이로 사관학교에 입교,정치 역정을 시작한다.영국 통치에 저항한 자란,터키 오토만 왕정을 무너뜨린 케멜 아타투르크,비폭력운동의 간디,그리고 히틀러로부터 영향을받았다. 38년 졸업과 함께 배치된 후방에서 후일 이집트 초대대통령이 된 아브델 나세르를 만나 정치적 동지가 된다.52년 나세르가 이끄는 비밀조직이 왕정을무너뜨리고 집권하자 그 밑에서 18년간 홍보장관,집권당 사무총장,국회의장,총리 등을 지내다 70년 나세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72년 소련군 추방,73년 대 이스라엘 반격 등으로 외교적 성과를 쌓아가던중 77년 이스라엘과의 평화계획을 제시,전세계의 관심권 안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이에 대한 내부 반발을 철권통치로 억누르다 81년 자국군 내부 회교원리주의자 총탄에 숨졌다. *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또다른 축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한때 시오니스트 무장단체를 이끌며 테러를 자행,목에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 1913년 옛 소련(지금의 벨라루시) 브레스트-리토브스크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샤바 법대를 졸업했다.2차대전 홀로코스트에 부모형제를 잃은 뒤 과격분자로 변신,예루살렘의 영국군 사령부 숙소였던 한 호텔을 폭격,100여명을 사망케 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원내투쟁으로 선회,20여년간 극우 야당을 이끌다가 73년 리쿠드당을 창당했으며 77년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총리로당선됐다. 그는 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로 중동에 평화를 부른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81년 이라크 핵수로 폭격,82년 레바논 침략 등으로 강경 이미지를 재확인시키며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비난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83년 자진 은퇴한 뒤에는 92년 사망 때까지 정치를 등지고 칩거했다. 손정숙기자
  • 셔먼 美국무부자문관 내한 남북 정상회담 문제 논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자문관이 다음달 하순께 서울을 방문,우리 정부와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30일 “셔먼 자문관이 다음달 한국을 방문,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한·미간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라면서 “셔먼 자문관이 5월 중으로 예상되고 있는 평북 대관군 금창리 지하핵의혹 시설에 대한 미국측의 2차 현장조사와 관련한 사항도 우리 정부에 통보할 것으로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도운기자 dawn@
  • 베트남 전방위 개방 외교 ‘눈길’

    [하노이 연합] 최근 베트남의 전방위 개방외교가 활기를 띠고 있다. 새 밀레니엄을 맞아 과거사에 관계없이 전세계 어느 국가들과도 교류를 한다는 원칙을 세운 베트남은 참전국인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과 박용옥 한국 국방차관의 초청 등 역사적인 의미가 큰 초청과 방문으로 베트남의 외교목표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이달 중순 천득렁 대통령이 쿠바와 몽골을 방문한데 이어 5월초에는 레카피유 공산당 서기장이 프랑스를 방문한다.레카피유 당서기장의 프랑스 방문은54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베트남이 승리한 후 46년만의 첫 방문이어서 상당한 의미를 안고있다. 또 응웬 지 니엔 외교부장관은 연초 외무장관직에 오르자마자 중국을 방문,적대관계에 있던 중국과의 화해 손짓을 더욱 확실히 했고 이어 라오스 캄보디아를 방문,영원한 우방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을 방문해 경제적 지원에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베트남은 지난해 말 중국과의 국경 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화약고로 불리는 통킹만과 황사군도 청사군도 등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실무회담을 14차례나 가지면서 이번 여름에는 중국과의 경계선 문제를 모두 마무리한다는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베트남은 이같은 방문외교와 함께 초청외교도 활발히 전개,3월초 코언 장관을 초청한데 이어 지난 22일부터는 박 차관까지 초청했다. 코언장관과 박차관의 초청은 미국과 한국이 다 같이 베트남전 당시 총칼을맞대고 싸운 상대라는 점에서 베트남의 개방외교가 말뿐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베트남은 이밖에도 지난 3월 백남순 북한 외무상을 92년 한국과의수교이후 처음으로 초청해 전통적인 외교관계를 확인한데 이어 월말에는 일본 방위청 장관까지 초청해 놓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전방위 외교에 대해 일부에서는 베트남이 정작 중요한 경제문제는 소홀히 한 채 정치 국방문제에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하고있다.
  • 세종문화회관 개관후 첫 기획전

    세종문화회관이 자체 기획전을 통해 본격 미술전시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있다.세종문화회관이 마련한 첫 기획전은 ‘미디어 아트21-버추얼리 유어즈(Virtually Yours)’.세종갤러리에서 열리는 있는 이 전시엔 조혜승 김이진박희준 유비호 김기라 등 젊은 작가 25명이 참가했다.세종문화회관이 자체기획전을 갖는 것은 1978년 개관후 처음.최근 이구열·임은미씨를 전시고문과 큐레이터로 각각 영입한 세종문화회관은 매년 봄,가을 두차례에 걸쳐 기획전을 열 방침이다. 그동안 세종문화회관은 대관 위주의 소극적인 전시장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특히 미술전시의 경우 자체 기획력이 부족해 교통요지에 넓은 공간(320평)이라는 유리한 입지조건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전시를 열지 못했다.그런점에서 이번 전시는 세종문화회관이 본격적인 미술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할지그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무대라 할 수 있다. 전시는 21세기 영상미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국내 미디어아트의 자생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전시작은 조윤주 ‘열린 새장안에 갇힌 새’,박희준 ‘디지털 호흡’,유비호 ‘검은 질주’,김기라 ‘인식공간’등.모두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터액티브한 상황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다.이원곤 전시기획위원은 “그동안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외국작가의 작품이 거의 무비판적으로 국내에 유입돼 온 게 사실”이라고 전제,“미디어혁명의 세례 속에 감수성을 키워온 젊은 작가들에게서 독자적인 가능성을 찾고자했다”고 말했다.전시는 5월7일까지.(02)3991-626. 김종면기자
  • 총선이후 정치권 3대변수

    여야는 16대 총선 이후 정국주도권을 둘러싼 암중모색(暗中摸索)을 계속하고있다. 여권 핵심부는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한나라당도 일단 대화정국 복원에 화답하고 있다.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실패로 새로운 정치환경에 처한 정치권의 흐름과 관련,3대 관전포인트를살펴본다. *국회의장단 구성. 16대 총선 결과에 따라 정국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사실상 양당체제로 재편되면서 무엇보다 전반기 국회를 이끌 국회의장단 구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장단 구성문제를 놓고 여야간 힘겨루기가 예상되는 만큼 향후 정국풍향타의 가늠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이를 반영하듯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신경전이 대단하다. 민주당은 국회의장은 ‘집권당 몫’이란 주장을 일관되게 펼 방침이다. 15대 국회 후반기때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장은 여당이 차지해온 게 관례였다는 점을 들어 ‘양보 불가’를 외치고 있다.극심한 여소야대였던 13대때도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국회의장을 차지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덧붙인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도 불구,원내 과반수를 밑도는 제2당이란 ‘현실’이 민주당으로선 갑갑한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원구성 전까지 자민련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최대한공을 들일 방침이다.총선 전의 공조회복이면 최상이지만 적어도 ‘우호관계’까지는 만들어놓겠다는 생각이다.민국당에도 협조를 요청할 심산이다.이런맥락에서 여당몫의 국회부의장을 자민련에 할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18석이나 앞서는 원내 제1당이 당연히 국회의장을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의석 비율에 따라 국회의장단을 구성하는 게 합리적이고,원만한 국회운영도 여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15대 국회 후반기때 국회의장을 양보,이후 여당의 중요 안건 단독처리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당내 비판이 적지않아 쉽게 물러날 기미가 안 보인다.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자민련에 ‘구애의 손짓’을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으로선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한종태기자 jthan@. ** 선거사범 수사 파장. 검찰이 4·13총선 선거사범에 대한 신속한 수사방침을 밝힘에 따라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당선무효’가 속출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14대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된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그러나 15대에선 7명의 당선자가 의원직을 상실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당선무효’까지 가는심각한 선거법 위반 혐의는 한나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자신감 때문이다.반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표적수사’를 우려하는 눈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싹쓸이’ 현상이 나타난 영남권에서의 ‘역(逆)관권’선거와 흑색선전이 난무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은 “집권당 프리미엄을 완전히 포기하고 최대한 공명하게 치른 선거였다”면서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선거운동을 근절하기 위해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단호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김한길총선기획단장도“흑색선전이 과거 어느 선거때보다 극성을 부렸고 영남권에서 역관권선거가도를 넘는 행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여소야대 극복을 위한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여당 봐주기식’수사를 걱정했다.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은 “법집행이라는 미명하에 작위적인 수사를 하고야당을 탄압하는 시도를 할 경우 대대적인 국민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6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에 국회차원에서 부정선거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입장이다.이와 함께 당 자체적으로 부정선거조사특위도 구성키로 했다. 자민련도 ‘의원빼가기’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수사대상자가 3명에 불과하지만 이 가운데 한 명이라도 당을 떠날 경우 치명적이라는판단을 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16일 사흘만에 외출했다.측근인 김종호(金宗鎬)부총재,조부영(趙富英)선대위본부장등과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했다.총선 참패의 충격으로 한동안 ‘칩거’할 것이라는 항간의 예상을 깨뜨렸다.외견상은 평상심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양당 구도로 재편되는 정국을 정면돌파하고 재기를 하겠다는 신호탄으로도읽혀진다.자민련의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이다.방법은외부에서 당선자를 영입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JP는 전날 청구동 자택을 찾아온 이한동(李漢東)총재 등과 점심식사를 같이하면서 이같은 심정의 일단을 드러냈다.JP는 “의원수가 적다고 할일을 못해서야 되겠느냐”면서 “있는 여건에서 당을 재건하는 기분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동석한 김학원(金學元)의원 등이 “교섭단체 구성을 통해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재기’의사를 분명히 했다. 비록 17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어느 당도 과반수를 획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캐스팅보트’역할은 가능하다는 판단도 한몫했다.하지만 자민련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모자란 3석을 채우기 위해 민국당 한국신당 당선자 3명을 영입하면 계산상으로는 가능하다.호남지역 무소속 당선자 4명과 한시적으로 연대하는 방안도 있다.그러나 당사자들의 반응이 냉담하다는게 고민이다. 때문에 당내부에서는 교섭단체 구성 기준을 15석 정도로 낮춰야 한다는 아이디어성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전체의석이 26석이나 줄었다는 이유를 들고있다.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JP가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칩거기간 동안 청와대관계자로부터 위로전화가걸려온 사실을 들어 공조복원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
  • 콘도회원권 지금이 구입 適期

    경기회복에 따른 레저수요 증가로 콘도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없으면불편하고 구입은 망설여지는게 콘도회원권.게다가 금융위기이후 회원권 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회원권 구입은 더욱 망설여질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경기가 살아나면서 신규회원권 분양이 줄을 잇고 있다.또 기존회원권 가격도 봄철을 맞아 가격이 약보합세를 나타내고 있어 기존 회원권구입은 지금이 적기라고 콘도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콘도 신축러시 금융위기이후 국내에서는 단 한채의 콘도도 지어지지 않았다.또 최대치를 기록했던 미분양 회원권도 최근 들어서는 거의 소진된 상태. 이로인해 풍림과 성우 등은 모기업이 떠안고 있던 잔여물량까지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이에따라 올들어 10여개 콘도업체들이 너도나도 콘도건설에 나서고 있다.이들 업체들의 올해 분양물량은 대략 3,300여실 규모.회원권이 객실 하나당 10구좌로 운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3만3,000개의 회원권이 올해 새롭게 공급되는 셈이다. ◆콘도에도 블루칩 있다.기존 회원권 가격은 제법 올랐지만 아직도금융위기이전의 60% 수준에 불과하다.에이스회원권 거래소 김형균(金亨均)씨는 “지난해부터 기존 회원권의 가격이 오름세로 돌아섰지만 금융위기 이전의 60%수준에 불과하다”며 “비수기인 봄철을 맞아 가격이 약보합세로 돌아선 지금이 회원권 구입 적기”라고 말했다. 반면 신규회원권은 금융위기때 인기를 모았던 200만∼900만원대의 저가회원권 대신 1,000만∼3,000만원대의 일반회원권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가격은 스키장의 유무,서울과의 거리,업체의 지명도에 따라 몇배 이상 차이가 난다.용평콘도의 경우 평형에 따라 1,150만∼6,100만원대지만 인근의 H콘도는 400만∼1,000만원대에 불과하다. ◆이색상품 출시 줄이어 콘도회원권 시장이 양극화되면서 콘도업체들 사이의분양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기존의 단순한 시설이용 수준의 콘도만으로는분양이 쉽지 않을뿐아니라 제값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관령 리조트는 480만원짜리 콘도 회원권 구입자에게 벤처기업인 한국CNC기술 주식 80주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금호,하일라리조트,풍림 등은골프애호가를 겨냥,제휴 골프장의 회원자격을 덤으로 부여하고 있다.한솔 오크밸리는 콘도내에 인터넷 게임몰을 설치했으며 마일리지 혜택을 부여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콘도구입 체크포인트. ◆재테크 대상이 아니다.콘도는 회원권 구입직후부터 값이 떨어진다.사용기한(대략 20년)이 줄어들고 시설도 노후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원권은 재테크 대상이 아닌 이용차원에서 실수요위주로 구입하는것이 좋다.한국휴양콘도미니엄협회 최용규(崔用奎)사무장은 “콘도 회원권은앞으로 가격이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재테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실수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말했다. ◆회원권,이용권,리콜제 해당 지자체의 정식 분양승인을 받아 모집하는 것이회원권이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등장한 이용권은 200만∼300만원대이며 회원이 예약하고 남을때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들어서는 일부업체가 이용권 소지자에게도 회원과 같은 대우를 해주는경우가 있기는 하나 회원이나 이용권 소지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금만 낸후 일정기간(3∼7년)이 지나면 원금을 돌려받는 리콜제 역시 분양승인 대상이 아니며 대체로 1,000만원 이내가 많다.원칙적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수 있는 것은 회원권뿐이다. ◆이런점에 유의하자 유사회원권도 많이 나돈다.스키이용권 가운데 이런 상품이 종종있으며 겨울철 성수기에 스키를 즐기면서 콘도도 이용할수 있다고강조하고 있으나 콘도회원권이 아닌 경우가 있다.가격은 400만∼500만원때로콘도회원권에 비해 크게 낮다. 회원권 구입시에도 아파트 분양과 같이 꼼꼼한 주의를 요한다.지자체의 분양승인 서류와 평형과 가격 등 실제 제시조건이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해당회사의 지명도나 안정성 등을 검토해야 한다.콘도회사가 쓰러지면손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회원권거래업소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김성곤기자
  • ‘한반도 평화선언’ 추진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도로·항만·철도·전력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농업기반시설 구축 지원,이산가족 상봉 등 베를린 선언의4개항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남북정상회담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을 받들고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무엇보다 베를린 선언에서 제안한 4개항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베를린 선언 4개항을 정상회담에서 협의할 것이고,(양측간) 합의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여 ‘한반도 평화선언’과 같은 형태의새로운 남북합의서 채택을 구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대통령의 베를린선언 4개항은 ▲차관 및 투자 형태인 정부차원의 SOC 등대북 경제협력 ▲남북화해와 협력 제안 ▲이산가족 상봉 ▲특사교환 등 남북당국자간 대화 등이다. 김대통령은 특히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많은 이산가족이 고령화하거나 세상을 뜨고 있어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로 이번에 노력할 것이고 해결될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강한 의지를 표시했다. 대북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언급,“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동시에 근본적인 경제재건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뒤 “이러한 경협지원은투자와 차관을 통해 남북이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간 오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상호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빠짐없이 협력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면서 “따라서 정상회담 뿐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대화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민·관이 함께 협력해 남북관계를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를 위해 “선거후 각계각층의 의견을 겸허하고 성실히 수렴해국민적 합의 속에 남북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민족문제를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한 것”이라고 평가한뒤 “이제부터 당리당략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정부와 여야,국민들이 협력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분단을 넘어 화해로](2)냉전체제 단계적 해법

    남북정상회담은 50년 동안 지속돼온 적대관계의 고리를 푸는 계기란 점에서무게를 갖는다. 총부리를 겨누는 적대적 대치 상황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과 상호 의존적인공동 번영의 틀을 만들어 나가자는 게 정상회담의 주요 목표다.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이같은 방향의 냉전체제 해체문제는 이산가족상봉,경제공동체 형성방안과 함께 의제의 주요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주변 냉전의 틀을 벗겨보려는 시도가 다각적으로 논의될것임을 뜻한다. 이같은 문제들은 남북 최고 지도자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의 의미는 더욱 강조된다.진정한 화해를 위해선 남북은 내부 법령과상대방에 대한 인식변화를 필요로 한다.따라서 정상간의 만남은 내적 변화의계기와 추진력 제공의 전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은 어떤 결과를 일궈내든 냉전체제 종식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기대된다.정상회담에서 냉전의 틀을 벗기고 평화적 교류의 포괄적인 틀을 만든다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발전도 가속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간경제교류의 경우,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 당국간의 문제를최고위층에서 일괄적으로 논의,해결하는 틀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반도 냉전의 틀은 남북관계와 국제적인 차원에서 함께 접근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주도 아래 이뤄진 북한에대한 한·미·일의 포괄적 접근,‘페리프로세스’도 같은 원칙 아래 진행됐다. 세계 각국이 지역적·기능적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며 공동 번영을추구해나가는 상황에서 국력 소모적인 군사대치의 냉전체제는 타파돼야 한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민족의 자존과 생존을 위협하는 냉전체제는 어떤 형태로든 극복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냉전체제해체 노력은 이미 남북간 화해와 북한의 국제사회 복귀란 두 점을향해 진행되고 있다.냉전시대와 달리,한국이 이 과정을 주도하고 미·일의대북 접근을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제적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미국·일본은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국교수립과 관계정상화를 진행시킨다는 원칙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남북한 차원에선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과 대결상황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자는 것이 큰 방향이다.대화를 재개하고 교류를 확대해 신뢰를 쌓아나가겠다는 것이다.남북기본합의서의이행 등 과거 합의내용의 이행이 주 내용을 이룬다. 우선 과제는 전쟁위협과 불신 감소로 요약된다.첫 단계는 북한이 파기한 군사정전체제를 회복하고 대화통로를 재개하는 것이다.북한은 지하핵시설 등대량 살상무기개발 의혹을 국제적 검증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있다. 두번째 단계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화해·군사·경제교류·사회문화·핵통제 등 5개 공동위원회를 가동해 실질적인 교류상황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 완화 등도 함께 병행된다.셋째 단계는 정전체제가 아닌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美 NYT·WP 잇단 보도 “서울의 접근법 지혜로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화공존’에 대한 신념은 북한이 체제개혁을 하도록 유도하고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줄일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11일 보도했다. 포스트는 ‘평양에서의 약속’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시아에서 드물게 도덕적 권위를 갖춘 김대통령은 취임시부터 햇볕정책을 펴왔다”면서“김대통령의 이 접근법은 이제 돌파구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한국의 얼음 깨기’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김 대통령이 관광사업과 인도적 유대관계 구축으로 꾸준히 추진한 햇볕정책은 군사적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군사분계선 주변의 위험을 덜고 예측가능한새로운 상황을 연출했다”고 보도했다.타임스는 이어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발표는 서울의 접근법이 지혜로왔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東·西獨 하나되기까지

    독일은 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승국들의 분할통치를 거쳐 49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됐다.첨예한 동서 냉전의 상징으로 있던 동서독은 90년10월3일 분단 41년만에 재통일을 이룩해냈다.80년대 후반 소련과 동유럽을 휩쓴개혁·개방의 물결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분단 이후 끊임없이이어진 교류 시도야말로 통일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분단 고착 초기 동서독은 적대관계로 맞서며 분단을 고착시켰다.54년 서독은 나토에 가입했고 55년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55년 서독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하는‘할슈타인 원칙’을 선포했고 61년 베를린장벽이 구축되면서 분단과 대결은절정에 달했다. ◆화해 국면으로 전환 빌리 브란트가 서독 총리에 오르면서 동서독간 대결은화해국면으로 바뀐다. 브란트 총리는 69년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독일에2개의 국가가 존재하나 이는 서로 외국이 아니라는 ‘1민족 2국가’론을 주창,동독과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한편 동독에 정부 차원의 협상을 제의했다. 이같은 브란트의 노력에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가 화답해 70년3월과 5월 두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실무차원의 접촉을 계속하기로 했다. ◆통일의 바탕 마련 동서독간에 꾸준히 계속된 실무접촉은 조금씩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72년5월 민간인들의 상호왕래를 가능케 한 교통조약이 체결된데이어 12월에는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돼 대화와 교류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는 등 통일의 바탕이 마련됐다.73년9월 유엔에 동시가입한 동서독은 이듬해상주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서독은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을 계속하는한편 여행 자유화와 상호방문 기회를 확대하는 등 인적-물적 교류의 확대를일관되게 추진했다.동서독 국민들이 동질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동독 사회를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싹트는 통일에의 열망 서방 TV 등을 통해 서독의 부유한 삶을 접한 동독인들은 점차 경제격차를 가져온 동독의 체제에 저항심을 갖게 됐다.이같은 저항은 85년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의 흐름이 동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절정에 달한다. 89년8월 동독체제에 불만을 품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대탈주하기 시작됐고동독 곳곳에서 반정부집회가 줄을 이었다. 반정부집회는 자연스레 민주화와통일을 요구하는 시위로 변했으며 마침내 호네커의 사임(10월)에 이어 89년11월9일 베를린장벽의 개방으로까지 이어져 동독의 국가 해체와 독일 통일을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통일의 완성 90년5월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동서독이 참가한 ‘2+4’회담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독 재무장관간에 통화-경제-사회 통합조약이 체결되고 7월1일 발효됐다.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이 조인되고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차 ‘2+4’ 회담에서 동서독 통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이조인돼 동서독 의회의 비준을 거쳐 10월3일 통일독일이 재탄생했다. ◆동서독 통일일지◆◆45년7월17일∼8월2일 포츠담회담,독일 분할통치 결정◆49년5월23일 서독 정부수립◆49년10월7일 동독 정부수립◆61년8월13일 베를린장벽 구축◆70년3월19일 동독 에어푸르트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동독 총리간에 첫 동서독 정상회담 개최◆73년9월18일 동서독,유엔 동시가입◆81년12월11일 슈미트 서독 총리,동독 방문.호네커 동독 총리와 정상회담◆89년8월19일 동독인들,서독으로의 대탈주 시작◆89년11월9일 베를린장벽 붕괴◆89년12월19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한스 모드로프 동독 총리,동독 드레스덴에서 정상회담◆90년7월1일 동서독 통화-경제-사회통합조약 발효◆90년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에 조인◆90년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제4차 ‘2+4’ 회담,동서독 통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 조인◆90년9월20일 동독 의회와 서독 하원,통일조약 비준유세진기자 yu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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