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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캠프 구성에서 종료까지

    박근혜 경선 캠프에는 공천 헌금 의혹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도 포함될 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전 의원은 이성헌·김선동 전 의원 등 낙선한 친박(친박근혜)계 인사 몇몇과 함께 합류할 계획이었지만 막판 박 후보가 캠프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해 의원 출신들을 제외했다는 것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만약 그때 현 전 의원이 빠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며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박근혜 경선 캠프에는 시종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규모를 놓고 지난 7월 10일 출범 이전부터 설왕설래가 일었다. 당초 캠프는 20여명으로 구성된 초미니·실무형으로 짜였다. 현역 의원의 참여는 최소화했고 대부분 국회의원 보좌관들로 구성됐다. 그러나 소외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핵심 몇 명으로 폐쇄적인 조직을 꾸렸다.”는 등 불평이 터져나오면서 캠프 규모가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중량감 있는 의원들이 포진해야 한다거나, 대선급 캠프로 매머드형으로 구성하자는 안 등이 제시됐다. 결국 친박계 좌장 격인 홍사덕 전 의원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됐으나, ‘총괄’을 둘러싸고 묘한 긴장감이 표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권영세 전 사무총장이 캠프에 합류하지 못했다. 당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당내 쓴소리를 자임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이 막판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임되며 캠프의 크기가 커졌다. 6개 분야의 특보직이 생겨나고 재외국민본부장으로 쟈니윤씨가 영입되는 등 ‘깜짝’ 인사가 단행되기도 했다. 그간 캠프는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이 총괄본부장을 맡으면서 공보와 기획, 메시지, 일정 등 철저하게 실무 중심으로 움직였다. 홍보 및 네거티브, 조직, SNS팀 등은 여의도에 있는 캠프 사무실 외부에서 게릴라식으로 운영됐다. 캠프는 대과 없이 경선과정을 지나왔다는 평가를 받지만 종종 엇박자도 드러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대표적인 예다. 최 본부장은 지난 16일 “청와대가 포퓰리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박 후보도 그런 입장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박 후보는 이튿날 경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외교)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의 최대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 관점을 놓고선 김종인·홍사덕 양대 선대위원장들끼리 서로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보수대연합론을 놓고는 이상돈 정치발전위원과 홍사덕 선대위원장이 각각 ‘중도층 포용론’과 ‘집토끼 우선론’으로 각을 세웠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12세기 금나라 시조는 신라·고려인…여진족 역사도 한국사 편입시켜야”

    “12세기 금나라 시조는 신라·고려인…여진족 역사도 한국사 편입시켜야”

    여진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만주 지역에서 생성과 성장·소멸을 거듭했던 종족의 역사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에 편입됐는데 동일 지역에서 활동한 여진족의 역사는 애매하게 처리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2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적·문헌적 범위’를 주제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 ‘한국사의 확대과정과 여진사(女眞史)의 귀속 문제’를 발표한다. 그는 부여 등이 한국사에 편입된 시기는 10세기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 편찬한 ‘구삼국사’부터라고 했다. 13세기 이승휴(1224~1300)가 지은 ‘제왕운기’에 나온 ‘단군본기’는 ‘구삼구사’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의 편입은 고구려 시조의 계보 때문인데, 그 결과 북부여·동부여 등이 자연스럽게 한국사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진족이다. 여진은 숙신(肅愼)→읍루(邑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만주족으로 이어진다. 이 여진족은 12세기 금을 세우고, 17세기 후금이 됐다가, 다시 청나라가 된다. 이 교수는 “(여진족이 세운) 후금(後)이 산해관 이남으로 진격해 중원 대륙을 제패하고 청(淸)이 되었을 때는 중국사인 것이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그 이전의 여진사는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로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이 교수는 “12세기 금나라는 국가의 기원이 신라 또는 고려와 연결됐다.”고 주장했다. ‘고려사’는 물론 중국 문헌인 ‘이역지’(異域志)와 ‘신록기’(神麓記) 등도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인’ 또는 ‘고려인’이라고 기술했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여진의 역사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의 역사 인식을 해방 직후 손진태(1900~1950?)가 이어받았지만, 한국전쟁 때 그가 납북되면서 이런 역사인식이 남한에서 계승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민족주의자로서 손진태는 한국사를 구성하는 족속으로 남북 9개 부족 즉, 부여, 예맥(고구려), 숙신, 조선, 옥저, 말갈, 진한, 마한, 변한 등을 말했다.”면서 “여진 등 일부는 한국사의 조역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장백산 문화론’을 내세워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여진사의 한국사 편입은 왜곡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방안이 된다고 덧붙였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태풍 ‘카눈’ 북상

    태풍 ‘카눈’ 북상

    17일 밤부터 제7호 태풍 카눈(KHANUN)의 영향으로 18~19일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리겠다. 기상청은 “17일 오전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오다가 태풍 카눈으로부터 고온다습한 공기가 공급되면서 장마전선상의 비구름대가 활성화되겠다.”고 16일 예보했다. 발달된 비구름대는 17일 밤 서울, 경기를 비롯한 중부지방에 비를 뿌리겠다. 18일 오후에는 제주도와 남해안 및 지리산 부근에, 밤늦게는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오겠다. 18일부터 19일 오전까지 내린 비는 최고 200㎜ 이상으로 예상되는 데다 서해안지방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과 함께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겠다. 기상청 관계자는 “카눈이 18일 오후 제주도 부근 해상까지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태풍의 강도와 이동 경로가 매우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태풍 카눈은 이날 오전 9시 현재 중심기압 1004h㎩, 최대 풍속 16㎧의 소형 태풍으로 괌 북서쪽 1210㎞ 부근 해상에서 시속 52㎞의 속도로 북서진하고 있다. 카눈은 태국의 열대과일 이름이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맥주이야기②]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맥주는 과학이다’

    [맥주이야기②]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맥주는 과학이다’

    오늘날 우리가 양질의 맥주를 사시사철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된 데에는 자연 과학과 과학 기술들의 발전에 기인한다. 맥주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들 맥주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맥주를 만드는 양조 원리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5세기 말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겨울철에 맥주를 저온에서 장시간 발효, 숙성하면 맛 좋은 맥주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맥주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유해한 미생물들에 오염될 수 있지만, 겨울에는 미생물이 억제되기 때문이었다. 냉각 장치가 없던 시절이라 추운 겨울에는 유해 미생물로 인해 술이 부패되거나 변질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맥주의 품질을 위해 바이에른 지역에서는 맥주 양조 기간을 9월 23일부터 이듬해 4월 23일가지로 엄격하게 정해 놓기도 했다. 산업혁명시기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1765년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물과 원료를 이송, 분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어 맥주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1871년 독일의 칼 린데(Carl von Linde)가 냉동기를 발명한 이후 겨울철에만 만들 수 있었던 하면발효 맥주를 일년내내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880년 프랑스 루이 파스테르(Louis Pasteur)는 오늘날까지도 큰 업적으로 평가 받는 연구성과의 하나인 효모에 의해 알코올이 생성된다는 사실과 저온살균법을 밝혀내어 맥주의 품질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1883년 덴마크 칼스버그 연구소에 근무하던 에밀 한센(Emil Hansen)은 효모의 순수배양 방법을 개발했다. 120여 년전 파스테르와 한센의 연구는 현재까지도 미생물적 문제없이 양조를 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됐다. 덴마크 맥주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1847년 야코프 야콥센(Jocob Jacobsen)이 칼스버그 양조장을 설립하는데 독일의 하면발효 맥주가 인기를 끌자 1865년 독일에서 효모를 몰래 갖고 나와 코펜하겐으로 돌아온다. 당시만 해도 술이 효모의 작용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야콥센은 칼스버그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덴마크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할 뿐 아니라 1883년 이 연구소에 근무하던 한센이 효모의 순수배양법을 정립함으로써 맥주의 품질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맥주에 있어 야곱센은 덴마크의 ‘문익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맥주 품질의 기본은 기초과학에서 출발한다 맥주의 원료 선택과 공정 관리, 품질 관리 등은 근래에 와서 맥주 제조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객관적인 과학적 연구로 이루어 진다. 먼저 좋은 품질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원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우수한 원료를 선택하고 구매하기 위해서는 그 이외의 중요 분석항목을 빠른 속도로 분석하고 정확한 정량적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한정된 곡물 중에 품질 좋은 원료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곡물의 화학 분석을 통해 품질을 확인하고 빠른 분석을 통해 구매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곡물은 해마다 기후 조건에 따라 같은 품종이라도 품질과 생산량이 달라지고 가격도 달라진다. 곡물을 수출하는 캐나다, 미국, 호주, 유럽들의 국가는 국가차원에서 전세계의 곡물 생산량과 기후 조건 등을 자국의 위성을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료 중 맥아의 경우 기본적으로 수분, 단백질, 효소의 활성 등이 중요하고 홉의 경우에는 맥주의 쓴맛에 관여하는 알파엑시드(α-acids)와 호프 특유의 향미를 주는 호프 오일 등의 함유량 이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액체 또는 기체 크로마토그래피등의 정밀 분석 장비를 통해 이루어 진다. 맥주의 성분 중 가장 많은 구성비를 차지하는 물은 수돗물 또는 먹는물관리법에 의거 미생물을 포함해 총 57항목에서 적합해야 사용할 수 있다. 분석항목 역시 미생물을 포함해 유해 영향 무기물질 및 유기물질, 심미적 영향물질등이 이화학적으로 분석되고 있고 이는 국민건강상의 위해를 방지하고 음용수의 합리적인 수질관리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먹는 식품으로는 매우 중요한 법률이기도 하거니와 국민 건강을 위해 맥주 제조자가 꼭 지켜야 할 의무이다. 맥주 알코올의 생성은 효모에 의해 이루어 진다. 효모가 포도당을 이용하여 에탄올, 탄산과 열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맥주 제조사는 얼마나 우수한 효모를 보유하는지에 따라 품질 좋은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려진다. 그만큼 맥주 효모는 극비에 부쳐 연구되고 있다. 효모에 대한 연구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분석해 그 특성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면역학적 기법으로 효모의 메커니즘을 확인 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기본적으로 맥주의 원료만으로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이 총체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원료의 품질 규격 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여 관리하고 있다. 또한 세계 맥주 보리의 재배량ㆍ기후변화ㆍ품종변화ㆍ품질 평가 결과 등을 미리 분석하여, 품질 좋은 원료만 선정하여 구매하고 있다. 일관된 맥주 맛은 과학 기술과 공학의 힘 맥주의 원료 분석이 기초 과학이라면, 맥주 제조공정은 공학의 역할이 강조된다. 맥주의 제조과정은 크게 담금, 발효, 저장, 여과, 포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형 맥주 생산 공장에서는 대부분의 제조 과정이 컴퓨터로 제어된다. 이는 각 공정의 온도, 시간, 스팀 양 및 냉매 조절과 공정간 맥주 이송 등 맥주의 주질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들을 최적의 조건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또한, 제조 공정 중에서 발생되는 폐열을 재활용하고, 발효 과정에서 효모에 의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부분까지도 이러한 맥주 생산 시스템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많은 맥주회사들이 맥주를 생산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을 농가의 사료로도 활용하는 환경 친화적 노력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대의 맥주 제조 공정에는 맥주 맛의 안정성과 인체에 무해를 보장하는 제품 안전성뿐만 아니라, 잉여 부산물과 공정 폐수 및 폐기물의 처리의 친환경성까지 보장하기 위해서 모든 공학적 요소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유기적으로 접목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다양한 맥주만큼이나 현대 맥주 산업은 다양한 전공의 기술자를 요구한다. 우리 연구소와 생산 공장의 실무진만 봐도 단순히 식품을 전공한 사람뿐만 아니라 화학, 미생물, 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환경공학 등의 전공자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는 양조전문가(Brewmaster)만으로는 운영할 수 없는 다양한 기술자를 요구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도 최고의 맥주 분석기는 사람 현대과학의 놀라운 발전은 맥주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의 품질관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맥주가 사람이 마시는 음료인 만큼 사람의 오감을 통한 분석도 무엇보다 중요시 여겨지고 있고 꼭 필요한 과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관능’검사라고 한다. 관능검사는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느끼고, 입으로 먹어봄으로써 품질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람의 눈, 코, 입, 손은 현재 어떠한 계측 기계보다도 더욱 정확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는 맥주를 보다 맛있게 음미하면서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진제공 = 하이트진로
  • “힉스 존재확률 99.99994%”…4일 현대물리학 운명의 날

     현대 물리학 ‘운명의 날’이 밝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이 추적해 온 ‘신의 입자’ 힉스의 존재 여부가 4일부터 11일까지(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고에너지학회에서 발표되기 때문이다.<서울신문 6월 25일자 6면> 힉스 입자를 찾았다는 승리의 선언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표준모형’의 마지막 퍼즐이 드디어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힉스 검출 실험을 진행해 온 ATLAS와 CMS팀이 학회 첫날인 4일 각각의 연구성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사전에 공지했다. 4일 오후에 힉스 존재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 표명이 예상된다.  물리학계와 주요 외신들은 CERN이 힉스 입자 존재 가능성에 대해 ‘확실’ 또는 ‘거의 확실하다.’고 선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네이처는 “CERN 핵심 관계자가 ‘우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발견을 했다’고 말했다.”면서 “ATLAS와 CMS가 추산한 힉스 존재 가능성이 4.5~5시그마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5시그마는 힉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99.99994%에 이른다는 뜻이며, 500만번에 한번 정도 오류가 발생하는 확률이다. 5시그마는 일반적으로 실험을 통한 과학적 발견이 공인받는 데 필요한 최소 요건으로, 이를 충족하면 곧 힉스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 2일 미국 페르미연구소가 지난해 가동을 멈춘 초대형 가속기 테바트론의 10년간 운영 데이터를 종합해 발표한 힉스 입자 존재 확률인 99.82%를 크게 뛰어넘는 쾌거다. 네이처는 “CERN의 ATLAS팀이 지난주 125Gev(기가전자볼트) 영역에서 힉스로 확실시되는 흔적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힉스의 질량이 양성자의 125배 정도 된다는 뜻으로, 지난해 CERN이 발표한 115~127Gev 영역 내에 있으며, 힉스의 질량이 매우 클 것이라는 기존의 예측과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논란에 시달려온 CERN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CERN 대변인인 제임스 길리스는 “이번 학회에서 힉스와 관련된 내용이 발표되겠지만, LHC가 여전히 가동 중인 만큼 학문적인 차원의 최종 결론은 연말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CERN의 힉스 발견이 미국이 주도해 온 거대과학의 구도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학·정보기술 전문 와이어드는 “미국이 10년 넘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찾지 못한 힉스 존재 확인의 영예를 유럽이 수행하는 것은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용어설명] 힉스입자는 현대물리학은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1960년대부터 ‘표준모형’으로 답해 왔다. 모든 물질은 6쌍의 구성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4개의 매개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 16개 입자는 이미 실험을 통해 검출됐지만, 각 입자의 성질과 질량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1964년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물리학과 교수는 “137억년 전으로 추정되는 ‘빅뱅’ 직후 이들 입자들에 질량과 성질을 부여한 또 다른 무거운 입자가 있었다.”는 가설을 제시했고, 고 이휘소 박사가 그의 이름을 따 ‘힉스’로 명명했다. ‘신의 입자’ ‘창조의 천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힉스가 발견되면 최종적으로 표준모형은 17개의 입자로 완성되지만, 힉스가 없는 것으로 입증되면 물리학계는 새로운 이론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영화프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프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길은 할리우드에서 꽤 팔리는 시나리오 작가다. 돈벌이에는 관심 없던 그는 시나리오를 접고 통속소설도 아닌 순수문학으로 전업을 결심한다. 때마침 ‘된장녀’인 약혼녀 이네즈와 미래의 장인·장모와 함께 파리여행을 간다. 쇼핑과 관광에만 몰두하는 그들과 달리 길은 위대한 예술가의 도시 파리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뿐. 어느 날, 자정을 알리는 종이 열두 번 울리자 거리를 홀로 산책하던 길 앞에 클래식한 푸조 승용차가 멈춰 선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1920년대 파리. 평생 동경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F 스콧 피츠제럴드, T S 엘리엇, 루이스 부뉴엘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을 만나 친구가 된다. 그리고 헤밍웨이와 피카소를 동시에 애타게 했던 여인 아드리아나와 묘한 감정에 빠진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뤘다. 그렇다고 공상과학(SF) 영화는 아니다. 지적이고 재치 있으며 로맨틱하고 귀여운 판타지다. 시니컬한 풍자와 조소를 즐기던 뉴욕 깍쟁이 앨런의 영화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정점에 서 있는 듯하다. 앨런이 헌사를 바친 파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매력적인 도시다. ‘파리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는 극 중 길의 대사가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여든 살을 눈앞에 둔 노감독(77세)의 한 수 가르침도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약혼녀와 그 가족들에게 질린 길은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하지만 1920년대 파리 사교계에서 ‘만인의 여인’이던 아드리아나는 툴루즈 로트레크, 폴 고갱 등이 활약했던 1880~1890년대 파리야말로 진정한 ‘벨에포크’(황금시대)라며 추앙한다. 이 대목에서 길은 깨달음을 얻는다. 과거로 회귀하고픈 욕망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과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했도 그때의 사람들은 ‘대과거’를 동경한다는 것을, 결국에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다. 지난해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작품을 배우들이 튀지 않는 연기로 품격을 더했다. 길 역의 오언 윌슨과 아드리아나 역의 마리옹 코티아르가 최적의 캐스팅인 것은 물론이다.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살바도르 달리)와 케시 베이츠(거투루드 스타인)를 비롯해 로맨틱 영화의 단골 여주인공 레이철 맥애덤스,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카를라 브루니(박물관 가이드) 등이 조연에 머문 건 우디 앨런의 영화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터. 해외에서는 지난해 5월 개봉했다. 불과 1700만 달러(약 19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미드나잇 인 파리’의 흥행수익은 1억 5111만 달러(약 1737억원). 앨런 감독의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인 셈. 평점을 취합하는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영화의 신선도를 93%로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5일 개봉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공직열전 2012] 교육과학기술부 (중)국장급

    [공직열전 2012] 교육과학기술부 (중)국장급

    교육과학기술부의 국장급은 행정고시 31~28회, 기술고시 21~26회로 다른 부처에 비해 폭이 넓다. 연공서열과 순환보직보다는 발탁인사를 즐겨하는 이주호 장관의 독특한 인사스타일에서 비롯됐다. 실제 현 정부 들어 교과부 간부의 나이와 고시 기수는 크게 낮아졌다. 이근재 대변인은 옛 과기부 사무관 시절부터 공보업무를 경험하면서 언론홍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언론통이다. 7급 공채 출신으로는 드물게 기초과학정책과장, 거대과학정책과장 등 과학 분야 주무과장을 두루 거쳤다. 박준모 감사관은 부장검사로서 개방형 직위의 공개모집 절차를 거쳐 임용됐다. 검사 재직 때 특별수사 분야 사정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과부내의 온정주의와 대학의 불합리한 제도 및 관행을 깨는데 앞장섰다. 박춘란 정책기획관은 대학원 체제 개편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고등교육 정책통이다. 법률 지식이 해박하고 격무를 마다하지 않는 교과부 내 대표적인 여성 간부 가운데 한 명이다. 서유미 국제협력관은 대학행정과 연구개발정책업무를 두루 관장하고 있다. 낯선 업무에 대한 적응이 빠르고 업무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종철 미래인재정책관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전문가로 알려질 만큼 대입제도과장 등 대입 관련 업무를 적잖게 맡았다. 지식정보정책과장, 주 뉴욕총영사관 교육문화관 등도 거쳤다. 이진규 창의인재정책관은 구 과기부 출신이지만 부처 통합 이후 줄곧 초·중등 교육 분야에서 일하면서 교과부의 업무로 발빠르게 변신, 입지를 굳힌 사례로 꼽히고 있다. 김영철 평생직업교육관은 구 산자부 산업기술인력과장, 교육분권화추진단장, 유네스코사무국 파견관 등을 역임했다. 오석환 학교지원국장은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인 학교폭력을 근절·예방하는 총책임자다. 기획·예산·홍보·국제·대학 등 주요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고영현 교육복지국장은 국장급 가운데 유일하게 교육전문직이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주요 화두인 ‘다문화 교육 선진화 방안’과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맞춤형 교육 지원’ 안착을 주도했다. 신익현 교육정보통계국장은 젊은 국장이다. 하지만 학교선진화과장, 교육정보기획과장,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 행정관을 거쳤다. 정확한 판단력과 신속한 추진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노경원 전략기술개발관은 사교육대책팀장, 행정관리담당관, 장관비서실장을 거치면서 교육현안뿐 아니라 주요 정책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강영순 과학기술인재관은 대학지원과장 및 대학구조개혁팀장을 역임한 대학행정통이다. 오승현 대학선진화관은 1998년 공보처가 폐지되면서 교육부로 자리를 옮겨 왔다. 이른바 정통 교과부 출신은 아니지만 대학선진화관으로서 고등교육정책과 대학 현장과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송기동 대학지원관은 구 과기부 시절에는 과학기술 정책 및 국제협력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지만, 부처 통합 이후 교육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다. 용홍택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획단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과학벨트를 총괄한다.윤대상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건설추진단장은 구 소련, 헝가리, 중국 등과의 우주항공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 [서울광장] 희망이 보여야 한다/최용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희망이 보여야 한다/최용규 논설위원

    ‘섹시한’ 말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안철수의 부산대 강연은 다소 싱거울 수 있다. 안 교수는 이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정의·평화라고 규정했다. 시대정신이라 하지 않고 굳이 시대과제라고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구애하는 쪽이나 비난하는 쪽이나 안 교수는 여전히 유력한 대권 주자다. 좋든 싫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임팩트는 다소 떨어진 것 같다. 안 교수가 시대과제로 규정한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권에 뜻을 둔 정치인치고 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은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박근혜·문재인·손학규가 지금 복지를 말하고 있다면,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를 부르짖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은 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안철수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교수가 정의한 시대과제가 지금 우리 현실에 맞지 않거나 잘못 봤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승만 시절부터 쭉 들어왔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말하는 것과 변화를 이끌어낼 힘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건국 후 60여년이 지나도록 난다 긴다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이 간명한 과제를 풀지 못했을까. 안 교수가 됐든 누가 됐든 우리 현대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명확하게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를 극복할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 오늘의 시대과제는 내일의 시대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다. 원수 대하듯 하는 동서(東西) 상쟁의 정치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상대가 잘되는 꼴을 죽어도 보지 못하는데 제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비전이라도 어떻게 뿌리를 내리겠는가. 이런 정치구조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그래서 새로운 정치구조를 창조하지 않고서는 복지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것들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사 정권을 잡는다 해도 성공한 정권이 될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 성한 데가 없는 역대 정권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정책으로 다투는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한 진보와 보수의 갈등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질곡의 굴레 속에서 안 교수가 믿음을 주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어떻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안교수가 제시한 시대과제는 집으로 비유하면 설계도와 같다. 어떤 집을 짓겠다는 것은 집에 대한 집 짓는 사람의 철학이다. 지난해 가을 상식과 비상식이란 잣대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집이 자신의 생각대로 될지, 즉 안철수식 정치의 요체가 실현될지 여부는 이제부터 본인 하기 나름이다. “정치는 싸움이고 나는 나이브하지 않다.”는 말이 지금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 증명된 바가 없지만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통의 방식도 이젠 바꿀 때가 됐다. 한때 신선해 보였던 강연정치도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실증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출마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떻게 지을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평가를 받아야 할 때가 됐다. 뜸도 적당히 들여야 한다. 너무 오래 두면 밥이 탄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젊은이, 은퇴를 앞둔 세대, 노인 또한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안 교수가 말하는 시대과제도 결국 불안을 제거하고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것일 게다. 안정된 사회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선(善)이며, 이는 희망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다. 지금의 정치구조로는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 정계구조의 재편이 필요한 까닭이다. 안 교수의 말대로 안 교수에 대한 지지는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답이 궁금하다. ykchoi@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원시의 삶·현대가 공존하는 파푸아섬

    원시의 삶·현대가 공존하는 파푸아섬

    남태평양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파푸아. 사라져 가는 미개척지 중 하나로,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연과 전통을 지켜온 인간의 공존, 나체의 원시적 삶과 서구 기독교의 조화, 해양스포츠의 명소가 된 산호색 바다와 인도네시아 최고봉의 만년설 등이 그것이다. 7일부터 10일까지 매일 저녁 8시 50분, EBS ‘세계테마기행’은 ‘마지막 원시, 파푸아’를 4부작으로 방송한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최명재 소아과 전문의가 제작진과 함께 석기시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한 원주민 다니족, 센타니 호수에서 벌어지는 부활절 축제, 산홋빛이 녹아든 바다가 아름다운 환상의 섬 퍼다이도를 거쳐 인도네시아 최고봉이 있는 발리엠 밸리로 향한다. 7일에는 원시 부족의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석기시대로의 여행, 다니족’을 방영한다. 첫 여정은 파푸아의 오지, 와메나에서 시작한다. 이 지역 한복판에서는 ‘코테카’라고 불리는 성기 가리개만 걸친 다니족의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 다니족은 깊은 산 속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돼지기름에 숯을 으깨 몸에 발라서 체온을 유지하는 원시시대 삶을 유지하고 있다. 돼지잡이 축제에서는 돌을 구워 땅 속에서 채소와 돼지고기를 익히는 전통요리 ‘바라크 바투’, 독특하게 생긴 열대과일 등을 맛볼 수 있다. 2부 ‘마음의 고향, 센타니 호수’(8일)에서는 파푸아의 주도 자야푸라 근처에 있는 타블라누수 해변을 찾는다. 발아래 부서지는 산호와 돌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때문에 ‘웅는 돌’(Crying Stone)이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휴양지인 아름다운 산호초 해안은 사진작가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은다. 센타니 호수는 파푸아인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호수에는 전통 주거지인 수상가옥이 평화로이 떠 있다. 민속예술 ‘바크 페인팅’(나무껍질 회화)을 감상하고 기독교 부활절 축제 ‘파스카’를 경험한다. 새벽 3시에 횃불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돌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축제는 종교적 경건함과는 거리가 먼, 정신을 쏙 빼놓는 흥겨운 시간이다. 이어 3부 ‘천상의 바다, 퍼다이도 섬’(9일)에서는 전통춤 ‘요스판’을 즐기고,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에메랄드빛 바닷속을 누비는 시간이다. 섬사람들은 소박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지만 병을 앓아도 치료를 받기 힘들다. 섬에 있던 유일한 병원이 몇 달 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최명재 의사는 섬사람들에게 진료를 하며 짧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시간 ‘원시와 현대의 공존, 발리엠’(10일)에서는 파푸아 섬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받는 광대한 계곡, 발리엠 밸리를 찾는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주목 받는 신설 중부청 조사4국

    국세청이 부산국세청의 1급 승격과 인천시등 을 담당할 중부국세청 조사4국 신설 등의 조직개편에 따라 2일 고위공무원 승진 등의 인사를 단행했다. 국장급 3자리, 과장급 7자리 등이 신규로 늘어나 1999년 중부국세청의 1급 승격 후 최대 규모의 승진 인사로 평가된다. 청장급 인사는 오는 6월 대대적 고위인사를 단행한다는 원칙 아래 현 이전환 부산청장(2급)이 유임됐다. 대신 ‘인천지청’으로 주목받은 중부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에는 임경구 중부국세청 조사3국장을 고위공무원으로 승진, 임명했다. 부산청 승격에 따른 부산국세청 조사 1국장에는 김형중 청와대 파견 국장, 부산국세청 징세법무국장에는 하영표 부산국세청 세원분석국장이 각각 승진, 임명됐다. 송도·청라지구 개발 등 세금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중부청 조사4국이 신설된 것이다. 중부국세청 조사4국 과장 라인업으로는 권도근 천안세무서장, 허명재 중부국세청 조사2국3과장, 김지훈 중부국세청 과장을 각각 1·2·3과장으로 임명했다. 신설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조직의 조기 연착륙을 이끌 수 있도록 베테랑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젊은 피’도 수혈했다는 평이다. 임경구 신임 중부국세청 조사4국장은 행정고시 36회 출신으로 기획력과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정식 직제로 편입, 서울국세청 산하로 이전하는 첨단탈세방지담당관에는 현 첨탈방지센터장인 남판우 과장을 그대로 임명했다. 한편 3일 46년 만에 1급청으로 승격한 부산국세청은 대국(大局) 대과(大課) 체제인 4국 17과로 개편한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한국 빵 맛있어요”… 젊은이들 장사진

    “한국 빵 맛있어요”… 젊은이들 장사진

    “파리바게뜨 씬짜오!(어서 오세요. 파리바게뜨입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시의 최대 상업 중심지 까오탕 거리에 파리바게뜨 현지 1호점이 문을 열었다. 까오탕점은 중국 80개점, 미국 19개점에 이은 파리바게뜨의 글로벌 100호점. 이날 매장을 방문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2002년 해외시장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이뤄낸 쾌거”라며 “글로벌 100호점을 계기로 ‘한국의 맛’으로 세계 경영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호찌민시의 최대 번화가인 응우옌티민카이·까오탕 도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위치한 베트남1호점은 529m²(160평)에 3층 규모로 매장과 함께 빵을 만드는 공장도 들어서 있다. 파리바게뜨의 상징인 파란색 간판이 걸린 이곳은 한국 여느 파리바게뜨 매장의 모습과 똑같이 꾸며져 있었다. 이날 매장을 찾은 응우옌민(23)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한국 연예인들이 먹던 빵을 베트남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어 기대된다.”고 말했다. 80여석의 좌석이 마련된 1층에는 빵과 커피를 즐기는 현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퇴근시간 즈음엔 2000여대의 오토바이가 매장 앞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는 등 개점 첫날부터 한국 유명 베이커리의 빵맛을 보려는 현지인들로 하루 종일 북적였다. 150여종의 빵과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커피와 음료수는 인기를 끌었다. 연유와 설탕을 잔뜩 넣고 얼음을 띄운 달고 시원한 베트남식 커피 ‘카페 쓰어다’와 열대과일인 아보카도·사보체 등으로 만든 생과일 쥬스는 특히 큰 호응을 얻었다. 빵 가격은 ‘햄에그 샌드위치’ 6만동(3300원), ‘스트로베리 케이크’ 33만동(1만 8000원), 아메리카노 3만동(1600원) 등으로 국내보다 다소 저렴하게 책정됐다. 강성길 베트남 법인장은 “연내 호찌민과 하노이에 5개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찌민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총선 격전지를 가다] (3)서울 동대문을…4년 만의 리턴매치

    [총선 격전지를 가다] (3)서울 동대문을…4년 만의 리턴매치

    4년 만의 리턴매치. 2008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민주당 민병두 후보를 15.7% 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두 후보를 만나보니 장단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당 대표까지 지낸 4선의 홍 후보는 “악수만 하고 돌아다녀서 국회의원 되면 10년 하면 대통령도 하게?”라며 관록의 여유를 드러냈다. “인사도 중요하지만 인물과 공약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민 후보는 “홍 후보는 미국에서 공부하다 4년 만에 나타난 아들”이라고 맞받았다. 홍 후보가 지역구를 소홀히 했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30일 현대시장 상인 오귀남(58·답십리동)씨는 “홍 후보가 당대표도 하다 보니 바빠서 들르기가 힘든 것은 이해하지만 서운함은 있지.”라고 했다. 그러나 민 후보는 인지도가 낮았다. 장안동에서 만난 60대 이모씨는 “누구? (민 후보는) 원체 이름이 없어서 홍준표밖에 몰라요.”라고 했다. 약점의 내용은 달랐지만 극복 방법은 비슷했다. 검은색 운동화를 신은 민 후보는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약 30km를 걷는다.”고 했다. 홍 후보도 역시 ‘걷기’를 핵심 선거 전략으로 설정했다. ‘성의와 진심’을 보이고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홍 후보는 “지역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지역구에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 평가에서 1등을 할 만큼 지역구 발전 사업에 신경 쓴 사람이 바로 나다.”라고 강조했다. 민 후보는 “지역민과 밀착된 정치를 통한 강한 정서적 결합도는 홍 후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서로 간의 평가에는 후한 점수를 줬다. 홍 후보는 민 후보에 대해 “전략가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민 후보는 “보수라고 봐도 매력적이고 거물 정치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역은 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경전철’ 개통에도 희망을 걸고 있었다. 고등학교가 더 필요하다는 민원도 간절했다. 다만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했다. 다만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중진의 힘에 한번 더 기대볼 것인가.’ ‘새로운 사람에게 맡겨볼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는 듯했다. 다음 정권이 어디로 갈 것인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의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유권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판세는 여론조사 등을 근거로 언론에 의해 일단 박빙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홍 후보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언론에선 이 지역을 초박빙으로 분류하지만 실제 결과를 보면 상대당 후보와 차이가 많이 날 것”이라고 했다. 민 후보는 “여론조사는 지지도보다는 인지도가 더 크게 반영되기 마련”이라면서 체감도가 중요하다. 바닥 정서에서는 앞서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장담했다. 이범수·이성원기자 bulse46@seoul.co.kr
  • [글로벌 시대] 돌아온 푸틴과 러시아의 강대국 외교/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돌아온 푸틴과 러시아의 강대국 외교/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푸틴이 돌아왔다. 지난 4일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63% 이상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미국과 서방은 그의 승리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태도다. 민족주의와 강력한 러시아를 들고 나서는 푸틴에 부담스럽다는 태도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의)단극 패권을 반대하고 세계질서의 다원화를 주장해 왔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푸틴은 “국제정치·경제질서가 러시아를 배제하거나 러시아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미국이 우월적인 핵 패권 지위를 갖도록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국제문제에서 미국과 서방의 추종자가 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해 왔다. 미국에 의한 단극 세계체제가 전지구적인 안정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새 중심 세력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뜻이 맞는 파트너들과 함께 사안별, 시기별로 공동전선을 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외교적 노력을 통해 러시아의 뜻에 반하는 국제환경의 변화를 막아 나가겠다는 것이다. 푸틴 외교정책의 향배는 중국과 미국이란 두 강대국과의 관계에 상당부분 달려 있다. 중국은 푸틴의 귀환으로 중·러 간 ‘전면적인 협력동반자 관계’가 더욱 착실하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푸틴은 ‘러시아와 변화 중의 세계’라는 글 중에서 처음으로 러시아와 아시아·태평양의 관계를 유럽이나 미국관계보다 앞에 놓았다. 중국을 포함한 아·태 지역을 러시아 외교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푸틴은 “중국의 발전은 위협이 아니라 도전이며, 러시아의 발전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번영되고 안정된 중국을 원하고, 중국은 강하고 성공적인 러시아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푸틴의 러시아가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산들이 있다. 커지고 강해진 중국의 성장을 받아들이고, 중국과의 관계를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재설정해야 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및 러시아 동맹국 등 외부 간섭에 말려들지 않는 일이다. 교류 확대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갈등을 줄이고, 해결 통로를 확대하는 일도 필요하다. 푸틴이 대미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단기적으로 미·러 관계는 개선되기 어렵다. 미국이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과정에 들어섰고, 미국 국내 정치의 필요성에 의해 러시아에 대한 공격과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확대될 것이다. 반면 푸틴은 국내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강한 러시아, 강경한 외교정책을 전처럼 추진할 것이다. 대등한 자리를 요구하는 푸틴의 자세는 이를 꺼리는 미국과 마찰이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푸틴은 미국과 사안별, 단계별로 이익 교환과 타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 나라는 탄도미사일 방위 문제 등을 둘러싸고 ‘늪’에 빠졌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럽에서 건설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방위 시스템을 러시아는 전략적 위협으로 보고 “이 시스템이 러시아를 겨냥하는 것이 아님을 법적으로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거절당하자 푸틴은 미국이 평형을 깨려고 하고, 절대적인 안보상 우위를 확립하려고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두 나라는 이란과 시리아 문제를 둘러싸고도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지정학상 러시아는 시리아가 ‘또 다른 리비아’가 되도록 놔 두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당선자 푸틴이 ‘선거의 언어’로 향후 대미 관계를 처리해 나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핵 전력의 균형 유지와 아프간, 이란, 북한 핵 문제 등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러시아도 경제체제를 국제사회에 더 안정적으로 진입시키기 위해서 우호적인 국제환경과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두 나라의 관계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최소한 미국 대선이 끝난 뒤라야 가능할 것이다.
  • [브레인 리턴500] (하) 기초과학강국을 위한 발걸음

    [브레인 리턴500] (하) 기초과학강국을 위한 발걸음

    “세계 수준의 대학 사업(WCU)을 통해 해외 학자들을 어떻게 불러 오고,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충분히 쌓였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학자 대부분이 ‘한국에서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아봤기 때문에 인지도도 높습니다. 이제는 협업 수준이 아니라 한국이 기초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단계에 진입해야 합니다.” 김창경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은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브레인리턴 500 사업’과 관련, “한국 과학의 큰 물줄기를 바꿀 것”이라 자신했다. 과거 해외 과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이 부족했다면, 지금은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차관은 “미국 보스턴 등지에서 재외 한인 과학자와 학생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대한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차관이 꼽는 IBS의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막대한 예산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최근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연구개발(R&D) 예산이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저명한 학자들조차 연구비를 따지 못해 연구에 지장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연구단에 매년 10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지급하겠다는 IBS의 정책은 한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연구 중심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인 과학자가 많다는 점이다. 김 차관은 “하버드, 매사추세츠공대 등 세계 최고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연구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한 한인 과학자들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며 “‘고국을 위해 일해 달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연구를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점만 어필한다면 IBS의 성공은 보장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는 한국 기초과학의 잠재력을 꼽았다. 김 차관은 “미국과 유럽의 연구성과가 정체기를 보이고 있고, 아시아가 급부상하는 것이 현재의 흐름”이라며 “중국은 우주 등 거대과학 위주의 기초과학에 강점을 갖고 있어 한계가 있고, 일본은 개방성에 있어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은 물리, 화학, 생명공학 등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가 골고루 성장해 온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벨트와 IBS가 ‘정치적인 고려’로 시작된 만큼,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만큼 더 확고히 갈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김 차관은 “과학기술이 정치적인 고려 대상이 되고, 정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에 모두 공감한다는 뜻”이라며 “특별법까지 만들어 시작된 만큼, 과학자들은 최선의 연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된다.”고 당부했다. 현재 공모가 진행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단장과 관련, “선정위원회가 객관적으로 평가할 일이지만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과학계의 높은 기대치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IBS 연구단장 공모에는 국내외 100명 이상의 석학들이 지원해 현재 1차 후보 11명을 추린 상태다. 11명 중에는 유룡, 현택환, 김빛내리, 신희섭 국가과학자들을 비롯해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이 총망라돼 있다. 김 차관은 “장기적으로 50개의 연구단을 선정할 계획인 만큼, 초창기 단장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면서 “지원자들 모두 역량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기고] 대보름에 맛보는 김 복쌈/오정규 농림수산식품부 2차관

    [기고] 대보름에 맛보는 김 복쌈/오정규 농림수산식품부 2차관

    바닷가의 바위 옷과 같다 하여 ‘해의’ 또는 ‘해태’라고 부르기도 하는 김은 겨울 바다에서 생산되는 천연 건강식품이다. 김에는 각종 비타민 이외에도 단백질과 섬유질, 칼슘, 철분 등 다양한 영양 성분이 함유되어 성인병 예방과 억제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탈모 예방과 구취 제거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이다. 우리 민속에는 정월 보름에 김에 밥을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현대과학이 김에 비타민A를 비롯한 각종 영양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풍습에는 조상의 지혜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김이 양식된 것은 벌써 5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경상지리지 등 15세기의 문헌에도 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우리의 전통 먹거리 중 하나이다. 김은 조선 중기 처음 양식이 이루어진 이후 오랫동안 전남 완도를 중심으로 생산됐다. 근대에 들어 양식 방법을 개량한 일본이 세계 최고의 생산량을 유지해 왔으나, 10여년 전부터는 생산 및 수출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지르게 되었다. 이것은 조미 맛김 등 우리 고유의 김 가공 방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40여개 국에 수출되어 국내 생산 수산물 중 가장 높은 수출 실적을 보이는 김은 2010년의 경우 1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였으며, 2011년에는 1억 6000만 달러를 수출하여 우리 어업인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부는 2010년 김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고자 김 생산, 가공 및 수출 관계자로 구성된 한국김산업연합회에서 ‘김의 날’을 제정하였다. 김의 날은 매년 정월 보름으로 정했는데, 이것은 우리 어촌 지역의 김 복쌈이라는 전통 풍습에 기원을 둔 것이다. 복쌈이란 마른 취나물 등으로 밥을 싸먹으며 한해 복을 기원하는 세시풍습이다. 취나물을 구하기 어려운 어촌 지역에서는 김을 이용하여 밥을 싸 먹으며 행운과 풍어를 기원했던 것이다. 정월 대보름인 6일, 제1회 김의 날 행사가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김 양식 역사를 지니고 오랜 세월 김을 즐겨온 우리에게 김의 날이 단순히 어업인들만의 축제로 그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김의 날이 우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김 주산지 중 하나인 전남 고흥군 일원에서는 김의 날 기념식과 함께 ‘대한민국 웰빙 김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김 페스티벌에서는 김 제품 전시회, 김 품평회, 김 요리 경연대회, 복쌈 퍼포먼스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김 생산자들은 국민이 즐겨 찾는 일반김·돌김·김밥용 김 등의 품평회에 참가하여 자신이 수확한 김의 품질을 뽐낼 수 있고, 일반 관객들은 김 복쌈 만들기 체험을 통해 전통문화를 느끼면서 김 먹고 활짝 웃기 행사에도 나서서 치아에 김을 붙인 동료, 가족들의 익살스러운 얼굴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길 수도 있다. 첫 김의 날을 맞는 이번 정월 대보름날에는 우리 모든 국민이 겨울 바다의 불로초이며, 건강식품인 김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복을 기원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기대해 본다.
  • [저자와 차 한 잔] ‘대각선 논법과 역’ 출간한 김상일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대각선 논법과 역’ 출간한 김상일 교수

    우주와 자연의 근본원리를 음양오행의 이치로 정리한 주역(周易). 공자가 수레 옆에 항상 가지고 다니며 탐독하고, 가죽 끈이 세 번 닳아 끊어지도록 읽어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고사가 생길 정도로 심취했던 책이다. 동양철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주역의 원리를 서양철학의 논리적 기호로 재해석한 ‘대각선 논법과 역’(지식산업사 펴냄)이 출간됐다. 저자는 신학에서 출발해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한국사상을 섭렵하며 동서고금의 철학을 회통해 온 김상일(72·미 클레어몬트대 과정철학연구소 한국학 디렉터) 교수. 책 출간을 위해 일시 귀국한 김 교수를 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대안연구공동체 세미나실에서 만났다. →대각선 논법이란 무엇인지. -19세기 말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가 실수(實數)는 셀 수 있는 무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고안한 수학적 증명이다. ‘모든 집합을 포함한 집합은 집합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러셀의 역설에 이용되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과 비슷한 개념이다. 현대과학의 알고리즘, 현대 철학이 다루는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의 문제도 대각선 논법을 수용해 설명하고 있다. →대각선 논법과 역을 연결시킨 근거는. -대각선은 가로와 세로가 만난 것이다. 인간사에 대비해 보면 주어진 다양한 조건 속에서 주관이 만난 지점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바로 대각선이다. 항아리 깨지는 시간까지 알아맞혔다는 중국 송대의 역학자 소옹(소강절)이 만든 64괘 방도가 단순기법으로 된 것 같지만 실제는 칸토어의 대각선 정리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기법을 사용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각선에 관한 논증을 거론한 분야가 동양의 역인 것이다. 역은 대각선 논법의 본산지와 같고, 대각선 논법은 역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다. →역도 어렵고, 대각선 논법도 난해하다. 새로운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 이유는. -서양철학이 동양철학을 폄훼하는 주된 이유는 논리적 치밀성에서 뒤진다는 점인데, 역설을 다루는 태도와 방법에서는 동양의 역이 훨씬 정교하고 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서양 철학자들에게 음양오행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대각선 논법이라고 생각한다. →역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철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50여년 동안 가장 매력없다고 여겼던 책이 주역이었다. 단순하고 기계적으로 보이는 언어표현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곁에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 역에 관한 책들이다. 나의 평생 관심사가 역설(paradox)인데 역만큼 역설과 아이러니와 딜레마를 진지하게 다룬 책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만사를 역설로 보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만든 역의 기법은 인류문명사의 금자탑이라고 평가한다. →역의 흐름을 알면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역의 64괘는 우주와 인간과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다. 역을 공부하면 어느 사건이 어느 위치에 있고 앞으로 그 위치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의 다양한 경향성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역을 해석하고 그것을 자기에게 맞게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역리학으로 남의 운명을 알아맞힌다는 것은 역술인들의 생계수단 이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역을 공부하면 할수록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주관의 정립이 필요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신학에서 출발해 동양의 역까지 학문적 지평을 넓힌 배경은. -10대 중반부터 천착해 온 생각이 있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그 신은 과연 누가 창조했을까.”이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신학공부(연세대)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논리적 모순이 너무 많았다. 논리적 해답을 얻기 위해 동양철학(성균관대)을 다시 공부했고 미국 클리어몬트대학에서 서양철학의 논리로 한국불교를 분석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생 관심사인 역설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학문적 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쟁탈전부터 정체성 혼란, 환경파괴와 오염, 전쟁과 살육 등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재앙들은 인간이 야기한 것들이다. 서양적 사고로는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동양적인 해결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철학, 종교, 사고를 조화와 통합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과학기술계 “과기부·정통부 부활” 공개요구

    과학기술계가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통폐합된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의 부활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과학기술계 몫으로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 20%도 요구하기로 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과학기술 관련 단체들이 본격적인 정치조직화에 나섰다. 회원수가 130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연합체를 결성해 과학기술계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등 17개 과학기술단체 대표들은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간담회를 갖고 “오는 13일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련)을 결성해 홀대받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위상 재정립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대과련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국공학한림원·한국엔지니어클럽·한국기술사회·대한변리사회·대한민국의학한림원·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벤처기업협회 등 과학기술 관련 단체가 총망라됐다. 이들 단체의 회원은 현재 128만명을 넘는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등한시하는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조직체 연합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승구 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은 “이공계 출신들이 현장에서 연구에 골몰하느라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공계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라며 “정치권에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 지분을 정당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목 과총 사무총장은 “현재 의사·약사를 포함해 9.7%에 불과한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을 다음 총선에서 최소한 20% 이상으로 높여 달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이들은 대과련을 통해 선거 과정에서 ‘반(反)과학기술계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참석자는 “과학계 예산 증액이나 이공계 출신의 취업 대책 등에 반대하는 의원이나 정당에 대해서는 분명히 문제를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원로 과학자들은 회견 중에 “이명박 정권이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망쳐 놓았다.”는 발언까지 하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과학계의 움직임에 우려감을 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연구와 실무에 몰두해야 할 과학자와 기술인들이 단체의 힘을 빌려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단체의 부회장은 “국회에 진출한 이공계 출신들조차 과학계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행보를 보일 때가 적지 않다.”면서 “그럴 바에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치활동에 나설 수 있는 젊은 이공계 인재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2) 살인사건의 유일한 증거 ‘글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2) 살인사건의 유일한 증거 ‘글씨’

    “도와주세요. 여, 여기…사람이 죽어 있어요.” 1993년 1월 말 대구 중구의 한 4층 건물. 집주인 모자(母子)가 방에서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집안에선 장판 밑에 숨겨놓은 비상금 12만원이 사라졌다. 범인이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한 후 돈을 챙겨 달아난 것이다. 유일한 목격자는 잠시 외출했다 돌아온 딸. 그녀도 인질로 잡혔지만,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딸은 “셋방을 구한다.”며 집으로 들어온 젊은 남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셋방에 대해 꼼꼼히 묻더니 그냥 집을 나섰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 돈을 요구하며 칼을 휘둘렀다. 여자 2명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작은 방 에서 잠을 자던 아들과 마주 하면서 범행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었어요. 장갑은 물론이고 상하의 모두 검정 가죽이었어요.” 범인은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가족들에게 이불을 덮어쓰게 했지만 딸은 간간이 드러난 모습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게 전부였다. 현장에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지문이나 족적, 흉기 등 쓸 만한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 “반장님, 이거 오래갈 수도 있겠는데요.” 수사팀이 답답한 마음으로 방을 나오는데 방안에 떨어진 노란색 메모지가 보였다. ‘이철동 956-OOOO’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쪽지를 들고 나왔다. 당시엔 이 한 장의 쪽지가 살인범을 잡는 결정적 증거가 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쇄 살인 강도가 남긴 메모 한장 그로부터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3월 중순, 대구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달서구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20대 여직원이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여성의 가슴과 배를 20여 차례나 공격했다. 그는 처음부터 여성을 살해할 작정을 한 듯 심장 쪽을 집중적으로 찔렀다. 사무실에서는 현금 55만원과 10만원권 자기앞수표 5장이 사라졌다. 사무실 통화기록과 여직원의 직장(直腸) 온도 등을 통해 추정한 범행시간은 오후 2시쯤. 사무실 사람들은 평일 오후에 흉기를 든 채 회사로 들이닥친 범인의 대담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 속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간 큰 강도라 해도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평일 오후 2시에 사무실을 털러 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정기적으로 이 사무실에 여직원만 있는 시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지문도 머리카락도 찾을 수 없었다. 용의주도한 범인의 꼬리가 밟힌 것은 며칠 뒤였다. 돈이 궁했던 탓인지 범인은 사무실에서 훔친 10만원권 수표 2장에 이서를 한 뒤 현금으로 바꿔 갔다. 지금처럼 폐쇄회로(CC) TV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돈을 바꿔 간 사람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필적만은 정확히 남아 있었다. ‘대구시 달서구 OO2동 ×××-× 이철동’ “이철동? 잠깐, 1월에 있었던 중구 모자 살해 현장에서도 이철동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았나.” 경찰은 두 사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메모지와 수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넘겼다. 같은 시간 경찰들은 동일수법 전과자들을 뒤져 나갔다. 그 중에서도 여직원이 피살된 사무실을 드나든 적이 있었던 사람들을 추려 나갔다. 이모(당시 28세)씨가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조사를 받은 것은 이때쯤이었다. 전과 3범인 그는 여자만 있는 집을 골라 강도를 하는 수법으로 이미 7년 6개월간 교도소 생활을 했고, 약 1년 전 출소한 상태였다. 경찰은 한때 그가 여직원이 살해된 회사에 업무 때문에 수시로 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스스로 물증이 없다고 자신한 이씨는 자기를 조사하는 경찰에게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느냐.”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제 남은 마지막 희망은 필적 감정. 경찰은 이씨에게 글씨를 쓰게 했다. 고의적으로 필체를 숨길 가능성을 대비해 평소 그가 남긴 낙서와 메모 등도 수거했다. ●자외선 쬐면 잉크 차이도 확연히 드러나 사람의 글씨체에는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생기는 고유한 습성이 반영된다. 어릴 때에는 남의 글자를 흉내내고 베끼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면 필체가 고정된다. 필적은 자획의 기울어지는 각도와 글씨를 쓰는 속도, 글자의 간격과 크기, 자간 연결방법, 펜의 이동방법, 문자의 여백, 오자, 심지어 글씨를 쓰는 압력 등 무수한 습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등 물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정신적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미국의 우편연구소는 일란성과 이란성 쌍둥이 500명을 대상으로 같은 필적을 지닐 수 있는지 연구했다. 6명의 문서감정 전문가 집단이 내린 결론은 ‘비슷한 쌍둥이라도 같은 글씨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글씨를 정교하게 베끼거나 가필(加筆)을 한다고 해도 현대과학은 이를 충분히 가려낸다. 입체 현미경, 적외선 현미경, 고정밀 비교분석기 등을 통해 확인하면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잡아낼 수 있다.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어도 똑같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적외선 장비를 이용하면 문서를 쓴 잉크가 서로 다른 것인지, 가필한 부분이나 덧칠한 부분은 없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과수는 셋 다 같은 사람의 글씨라고 판정했다. 자획의 위치와 각도, 글씨가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 자음과 모음을 연결하는 접필 상태, 필순과 특이한 습성까지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찰은 이를 통해 이씨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결정적 증거 부족’으로 판결나는 등 반전을 겪기도 했다. 2년에 걸쳐 상고와 재상고가 이어진 끝에 결국 대법원은 국과수 문서감정실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는 사형이 확정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기사 내 ‘이철동’이라는 이름은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도와주세요. 여, 여기…사람이 죽어 있어요.” 1993년 1월 말 대구시 중구의 한 4층 건물. 집주인 모자(母子)가 방에서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집안에선 장판 밑에 숨겨놓은 비상금 12만원이 사라졌다. 범인이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한 후 돈을 챙겨 달아난 것이다. 유일한 목격자는 잠시 외출했다 돌아온 딸. 그녀도 인질로 잡혔지만,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딸은 “셋방을 구한다.”며 집으로 들어온 젊은 남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셋방에 대해 꼼꼼히 묻더니 그냥 집을 나섰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 돈을 요구하며 칼을 휘둘렀다. 여자 2명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되돌아온 듯 했다. 하지만 작은 방에서 잠을 자던 아들과 마주하면서 범행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었어요. 장갑은 물론이고 상하의 모두 검정 가죽이었어요.” 범인은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가족들에게 이불을 덮어쓰게 했지만 딸은 간간이 드러난 모습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게 전부였다. 현장에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지문이나 족적, 흉기 등 쓸만한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 “반장님, 이거 오래갈 수도 있겠는데요.” 수사팀이 답답한 마음으로 방을 나오는데 방안에 떨어진 노란색 메모지가 보였다. ‘이철동 956-OOOO’ 경찰은 대수롭지않게 쪽지를 들고 나왔다. 당시엔 이 한장의 쪽지가 살인범을 잡는 결정적 증거가 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쇄 살인 강도가 남긴 메모 한장 그로부터 한달 반 정도가 지난 3월 17일, 대구에서 또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전자회사 사무실에서 여직원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여직원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흉기를 꺼내더니 가슴과 복부 등을 20차례 이상 공격했다. 그는 쓰러진 피해자를 소파로 옮겨놓은 뒤 책상 위에 있던 그녀의 지갑에서 현금 55만원과 10만원권 자기앞수표 5장을 훔쳐 달아났다. 사무실 통화기록과 여직원의 직장(直腸)온도 등을 통해 추정한 범행시간은 오후 2시쯤. 사무실 사람들은 평일 오후에 흉기를 든 채 회사로 들이닥친 범인의 대담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 속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간 큰 강도라 해도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평일 오후 2시에 사무실을 털러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정기적으로 이 사무실에 여직원만 있는 시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지문도 머리카락도 찾을 수 없었다. 용의주도한 범인의 꼬리가 밟힌 것은 몇일 뒤였다. 돈이 궁했던 탓인지 범인은 사무실에서 훔친 10만원권 수표 2장에 이서를 한 뒤 현금으로 바꿔갔다. 지금처럼 CC(폐쇄회로) TV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돈을 바꿔 간 사람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필적만은 정확히 남아 있었다. ‘대구시 달서구 OO2동 XXX-X 이철동’ “이철동? 잠깐, 1월에 있었던 중구 모자살해 현장에서도 이철동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았나.” 경찰은 두 사건의 연관성을 찾기위해 메모지와 수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넘겼다. 같은 시간 경찰들은 동일수법 전과자들을 뒤져 나갔다. 그 중에서도 여직원이 피살된 사무실을 드나든 적이 있었던 사람들을 추려나갔다. 이모(당시 28세)씨가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조사를 받은 것은 이때쯤이었다. 전과 3범인 그는 여자만 있는 집을 골라 강도를 하는 수법으로 이미 7년 6개월간 교도소 생활을 했고, 약 1년 전 출소한 한 상태였다. 경찰은 한때 그가 여직원이 살해된 회사를 업무 때문에 수시로 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스스로 물증이 없다고 자신한 이씨는 자기를 조사하는 경찰에게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느냐.”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제 남은 마지막 희망은 필적 감정. 경찰은 이씨에게 글씨를 쓰게 했다. 고의적으로 필체를 숨길 가능성을 대비해 평소가 그가 남긴 낙서와 메모 등도 수거했다.   자외선을 쬐면 잉크의 차이도 확연히 드러나 사람의 글씨체에는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생기는 고유한 습성이 반영된다. 어릴 때에는 남의 글자를 흉내내고 베끼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면 필체가 고정된다. 필적은 자획의 기울어지는 각도와 글씨를 쓰는 속도, 글자의 간격과 크기, 자간 연결방법, 펜의 이동방법, 문자의 여백, 오자, 심지어 글씨를 쓰는 압력 등 무수한 습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등 물리적 요소 뿐만 아니라 정신적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미국의 우편연구소는 일란성과 이란성 쌍둥이 500명을 대상으로 같은 필적을 지닐 수 있는지 연구했다. 6명의 문서감정 전문가 집단이 내린 결론은 ‘비슷한 쌍둥이라도 같은 글씨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글씨를 정교하게 베끼거나 가필(加筆)을 한다고 해도 현대과학은 이를 충분히 가려낸다. 입체 현미경, 적외선 현미경, 고정밀 비교분석기 등을 통해 확인하면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잡아낼수 있다.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어도 똑같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들어 적외선 장비를 이용하면 문서를 쓴 잉크가 서로 다른 것인지, 가필한 부분은 없는지, 덧칠한 부분은 없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과원은 둘다 같은 사람의 글씨라고 판정했다. 자획의 위치와 각도, 글씨가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 자음과 모음을 연결하는 접필상태, 필순과 특이한 습성까지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찰은 이를 통해 이씨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결정적 증거 부족’으로 판결나는 등 반전을 겪기도 했다. 2년에 걸쳐 상고와 재상고가 이어진 끝에 결국 대법원은 국과원 문서감정실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는 사형이 확정됐다. ※기사 내 ‘이철동’이라는 이름은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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