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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댁’ 메르세데스가 사는 법

    ‘나주댁’ 메르세데스가 사는 법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일품인 ‘나주댁’ 메르세데스. 그는 연예인 못지 않은 전남 남평읍의 스타다. 아리따운 페루 아가씨였던 그는 지구를 반바퀴 돌아 전라도의 남평 도서관에서 지금의 남편인 김철종씨를 처음 만났다.28일 오후 7시30분 KBS 1TV ‘러브 인 아시아’가 낯선 타국땅에서 어느새 넉살 좋은 아줌마로 변신한 메르세데스의 활력 넘치는 일상을 비춘다. 메르세데스는 대전에서 일하는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낸다. 그러나 혼자서도 거뜬히 아이 셋을 챙긴다. 요즘은 시부모님과 멀리 계신 친정어머니 생각에 노인요양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미 요양복지센터 노인들에게 딸처럼 살갑게 대해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그다.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로 이웃들의 관심도 한몸에 받는다. 김장철에도 인기를 독차지한다. 맡겨진 일을 척척 마무리해 내는 야무진 일솜씨가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다. 제작진은 그녀가 나고 자란 곳,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 찾아간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그곳의 가족들에게 따뜻한 영상편지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열 남매 중 아홉째인 메르세데스. 그의 대가족들은 잉카 전통춤과 노래로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성대하게 맞아준다. 한국에서 3년을 살다와 여전히 한국에 대한 정이 깊은 동생 라파엘도 만나고, 메르세데스를 한국으로 이끈 선교사도 만난다. 한편, 한국 최고의 모델을 꿈꾸며 네덜란드에서 온 최데이나의 사연도 소개된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DJ, 메이크업, 광고기획 등 전방위로 활약하는 그녀의 도전과 속내를 들여다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궁리궁리] 시아버지와 며느리

    [궁리궁리] 시아버지와 며느리

    우리 집 울안에 날아온 작은 새 완고하기로 소문난 우리 고장에서 어머니는 열다섯 살에 열두 살짜리 아버지에게 시집온 맏며느리였다. 대청마루에서 베를 짜는 모습을 서른네 살의 시어머니가 장죽을 물고 지켜보다가 어린 며느리가 한 올이라도 놓치면 불같이 일어나 가위를 들고 짜던 베를 모질게 툭 끊어버리더란다. 끊긴 베폭을 종일 다시 이으며 몰래 울던 서러웠던 시집살이를 어머니는 아내에게 들려주곤 했다. 주변의 인생 선배들이 며느리를 맞게 되면 처음 몇 해는 대가족 생활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는 충고를 하기에 처음엔 나도 솔깃했다. 그런데 아내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신혼 초부터 30년 넘게 어머니를 모시고 대가족 생활을 해온 아내의 단호한 소신이고 보니 말릴 재간이 없어 아들 내외를 첫 보금자리부터 분가시켰다. 그 대신 나는 아들 내외와 아직 미혼이었던 두 딸에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주말 식사만은 전원 참석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까다로운 시아버지라고 흉을 보건 말건 일주일 중 엿새는 저희들 마음대로 보내지만 하루 저녁만큼은 꼭 온 가족이 함께 앉는 시간을 갖도록 요구하고 바쁘게 사는 나도 그걸 꼭 지켰다. 가정에서 평소 내가 먹이고 입히는 것 못지않게 가장 마음을 쓰는 건 의사소통이다. 누구나 제 뜻을 말할 자유를 맘껏 휘두르게 해주고, 최대한 이해해주려 애썼다. 온 식구가 언론 자유만은 넉넉히 누리고 살았기에 반강제로 시작한 주말 가족 회식은 항상 무성한 토론장이었다. 일주일간 축적된 세상 잡사 뉴스거리는 물론, 직업 전선에 첫발을 내민 네 젊은이가 각기 다른 직장에서 일주일 동안 겪은 파란만장의 일화들, 인터넷 정보, 음악, 영화, 드라마 본 논평에다 나와 아내가 읽은 책의 정보까지 보태져서 언제나 신나는 화제는 줄을 이었다. 시간을 아끼며 떠들다 보면 새 식구가 들어왔다는 어색함은커녕 그 젊고 싱싱한 수다들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원래 세 아이가 떠들던 집에 아이 하나가 더 보태져 떠든다는 느낌이 들 만큼 경계선이 없어지는 데 몇 달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아래로 여동생 둘을 둔 아들이 장가를 들어 며느리를 데려올 때, 내 마음가짐은 무조건 며느리가 마음 편하게 우리 가정에 진입하게 해주자는 것 정도였다. 공부와 직업을 병행하는 아이라 연령까지 비슷한 두 딸과 외양, 사고방식,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남의 식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우리 딸들도 시집가면 저렇게 조신할 수 있을까, 감탄스러울 만큼 매사가 딱 부러져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너무 완벽하다는 건 그만큼 조심한다는 것이며, 긴장하고 사는 당자 편에선 즐거운 생활일 수가 없을 테니까. 나는 며느리에게 ‘아가’니 뭐니 그런 간접호칭 대신 이름을 부른다. 나란히 앉아 TV를 보다 가끔은 시아버지란 걸 깜빡 잊고 어깨에 방아를 쪄도 상관없다. 고울 땐 예쁘다고 칭찬하고 잘못할 땐 야단도 친다. 아예 딸인지 며느린지 구분 안 하기다. 첫 생일 선물을 받은 며느리가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저희 회사에 아버님 팬 카페 생길 것 같아요.” 아뿔싸, 딸들 성화에 못 이겨 회사로 보낸 장미꽃 다발이 일을 쳤나 보다. 아직도 며느리 앞에 서먹한 시아버지가 있다면 권하고 싶다. 인간과 인간이 마음을 잇고 친해지는 데 인종이나 국경도 문제가 안 되는 세상에 시집과 친정이 무슨 담이 될 것인가. 우리 집 울안에 날아온 작은 새, 네가 행복하다면 우리 집 행복 눈금도 그만큼 올라갈 게 분명하거늘. 임헌영_ 며느리 생일날 나이 수만큼 장미꽃을 보내는 로맨티스트 시아버지입니다. 중앙대 국문학과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입니다.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비롯해 20여 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아버님, 달려요! 20여 년 전 처음 시집왔을 때 나는 아버님이 무섭고 어렵기만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호남형의 얼굴이라 소싯적엔 인기가 많으셨다는데 내 눈엔 왜 그렇게 무섭게만 보였는지…. 그러다 차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논이 멀어서 아버님은 자전거를 타고 일을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꼭 나를 뒤에 태우고 다니셨다. 지금 생각하면 신랑보다 아버님이 나를 태워주신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느 때는 죄송해서 걸어간다고 해도 “아직은 문제없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어머님과 같이 들에 갈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어머님은 오시거나 말거나 나만 태우고 가시고 어머님은 걸어오게 하셨다. 그보다 더 먼 작은댁에 가실 때는 자전거에 리어카를 매달고 거기에 나를 태우셨다. 아버님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시고, 나는 리어카에 가만히 앉아 꽃구경도 하고 아버님 들으실까 작은 소리로 콧노래도 불렀다. 엉덩이가 안 아파서 자전거보다 훨씬 더 좋았다. 어찌나 좋았던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가 싫을 정도였다.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다 아버님의 사랑이었음을 알겠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아버님이 지금은 편찮으셔서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신다. 언제나 아범보다는 당신이 낫다고 무거운 것을 들 때면 힘자랑을 하셨는데, 이제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셨다.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신나게 페달을 밟으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너무 그립다. 한련화_ 평택에서 농사를 지으며 남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둘째 며느리인데도 지금껏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 몇 년 전 시댁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이사했습니다. 꽃을 무척 좋아해서 남의 집들이에 가도 집 구경은 안 하고 꽃구경만 하고 옵니다.
  • [14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8시20분) ‘샬롯’이라는 이름 대신 “야야“라고 부르는 경상도 토박이 시어머니 뒤를 쫓아다니며 살림공부를 하는 여자 샬롯. 하지만 지금도 산과 들에서 나는 온갖 나물들로 못하는 음식이 없는 살림꾼 시어머니의 그림자도 쫓아가지 못한다. 시어머니의 뒤를 잇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캐나다 며느리 샬롯의 하루.   ●타짜(SBS 오후 9시55분) 지리산 작두가 아귀가 찾는 대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니는 충격을 받는다. 고니는 대호가 3년 동안 어머니께 연락도 하지 않았다며 불효를 꾸짖자 아버지 죽음의 이유조차 모르고 지낸 불효보다 더 큰 것이 있겠냐고 말한다. 한편 최소장을 찾아간 영민은 비밀장부를 건네지만, 불곰이 나타나 진짜 장부를 건넨다.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하빌이 시장을 보는 사이, 경선씨는 아이들을 챙기고 마트 문을 연다.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가족들. 부부를 꼭 빼닮은 세 아이에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아주버님, 조카들까지. 방글라데시에서 온 10명이 넘는 대가족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하빌과 경선씨 부부를 만나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멕시코 툴룸에서는 최근 역사와 문화, 환경을 지키면서도 관광산업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기에 분주하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800년 역사의 툴룸 유적지. 이곳은 멕시코의 가장 중요한 마야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여행산업은 이곳 경제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다큐프라임(EBS 오후 11시10분) ‘문명의 교차로´ 스페인. 수백 년에 걸친 이슬람과 가톨릭 간의 전쟁은 오래도록 이 땅을 긴장과 대립으로 몰아넣었지만, 결과적으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류문화를 남겼다. 알함브라 궁전과 이슬람 대사원, 플라멩코와 투우가 있는 문화 공존의 현장을 역사기행전문가 권삼윤과 함께 누벼본다.   ●창사47주년 특별기획 에덴의 동쪽(MBC 오후 9시55분) 한국으로 들어온 지현은 병원에서 동욱과 마주치고, 동욱에게 지현은 이제 그만 민주화 운동은 포기하고 학업에만 열중하며 편히 살라고 말한다. 동욱은 자신이 진짜 힘들었던 건 지현이를 마음속에서 몰아내는 거였다고 고백한다. 한편 기순을 납치한 왕건은 동철에게 전화를 하는데….
  • 한가족이 77명

    한가족이 77명

    상주(尙州) 박(朴)씨 중형(重衡)영감님하면 전남승주(全南昇州)군내에서 그 기록적인 다산성(多産性) 가문의 장노(長老)로 명망이 높다. 75년전 외톨박이 독자로 태어난 박옹은 56년전 첫아이를 본후로 1년에 1명이상씩 무성하게 자손을 퍼뜨리고도 그 자손을 대부분을 한 부락안에서 살게끔한 부족사회적「리더십」을 훌륭히 발휘한 것. 즐거운 새해 세배 가족을 찾아가 보면-. 구랍 22일 밤늦게 박옹은 논산(論山)에 살고 있는 4남 남석(湳錫)씨(46)로부터「아들출산」이란 반가운 전보를 받았다. 박옹은 서둘러 가족부난에 적어넣고, 새끼를 꼬아 대문앞에 금줄을 달아 걸었다. 자손들이 출산할 때마다 대문에 금줄을 거는 것이 박옹의 최대의 행사이자 기쁨이다. 『이번 금줄이 예순번째여라우. 아직도 10번쯤은 내 손으로 걸 수 있을 것이오』 믿을 수 없게 건강한 박옹은 찬바람을 맞받으며 씽긋 웃는다. 새해를 맞으면 박옹은 걱정스런 행복에 잠긴다고도 했다. 20살이하의 어린 자손들만 30명(외손은 제외)이니 세뱃돈을 작년엔 1백원균일로 하고서도 3천원. 금년에는 15살이상된 아이들에겐 인상해줄 작정이라했다. 『그러니께 내가 14살에 장가들었는디 첫애가 올해 쉰여섯이지요잉. 19살에 아들을 보았것지 않았소? 그 뒤로 지금까지 예순녀석이 태어난 셈이라우. 여기다 외손허고 외손손까지 합하면 77명이 될것이오』 「외손손」이 뭐냐고 물었더니 허허 웃고 난 박옹은「외증손」을 뜻한다고 대답. 까닭인즉 그의 3대조 할아버지 이름에 증(曾)자가 들어 있어서「증손」「외증손」의 증자는 기자(忌字)로 간주, 증자를 사용하지 않고 외손손·손손으로 표기한다는 설명이다. 세뱃돈 올릴 행복한 걱정 박옹 일가가 살고 있는 곳은 전남 승주군 상사(上沙)면쌍지(雙之)리부락. 순천(順天)시에서「택시」로만 1시간20분. 궁벽하기 짝없는 노령산맥 휘어지는 산골동네다. 박옹 선조대대 2백년전부터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 그래서 쌍지리부락 52호 가운데 40여호가 박씨문중이다. 이중에서 박옹의 가족만 8호. 박옹의 자손을 보면 1남 창석(昌錫)씨(56), 2남 동석(東錫)씨(54), 3남 민석(玟錫)씨(49), 4남 남석(湳錫)씨(46), 5남 종석(宗錫)씨(35), 장녀 순심(順心)씨(39). 모두 5남1녀로 돼있다. 2대 3대 4대 이르는 동안 별표와 같이 늘어나 박옹의 자녀가 5남1녀, 손자가 13남15녀, 증손이 10남6녀로 모두 59명(며느리·손부9명·본인제외)이 된것. 이들의 거주지를 보면 고향을 떠나 있는 가족은 박옹의 4남 남석씨가 논산에서 농업을, 5남 종석씨가 인근부락인 낙안(樂安)동국민학교 직원으로 2남 동석씨의 두아들과 딸1명이 서울에서, 장증손인 현모(玄模)군(18)이 역시 서울에서 각각 직장을 다니고 있고, 창석씨의 4남 홍용(烘龍)씨와 5남 홍춘(洪春)군(19)이 현재 군에 복무중이어서 총18명이 객지로 나가 있다. 『지금까지 한 녀석도 세상에 태어나 병을 앓거나 죽어본 일이 없는 것이 자랑이면 자랑이지요. 작년에 마누라(양낙유(梁洛囿)여사)를 먼저보낸일 외에는 아직까지 제 후손의 장례는 한번도 치르지않았지라우』 작년 6월6일 박씨 가문의 장로인 양여사가 노환으로 사망하자 그 장례식이 화젯거리가 됐다. 직계자손은 물론 사위와 손자사위까지 동원돼 실로 70여명의 대가족이 장례행렬을 이루었고 어른들만 입은 삼베옷이 자그마치 50필(4백50m). 그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 2일동안「미싱」5대를 10사람이 밤낮으로 돌려서야 간신히 끝냈다는 것. 막걸리만 70말, 소주가 2상자, 쌀이 10여가마 축났다는 것이니 시골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대사였다. “적령 20살전”의 조혼가풍(早婚家風) 며느리 환갑잔치 베풀고 40살에 증조부(曾祖父) 소리들어 『금년 2월에 며느리(창석씨 부인 신선업(申善業)여사 환갑잔치를 했당게요. 아마 며느리 환갑을 보는 것도 드물 것이오』이토록 이해할수 없는 신기록 수립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간단하다. 조혼을 가풍으로 존중해온 덕. 박옹 자녀들의 결혼적령기는 20살전으로 돼있다. 창석씨가 15살에, 동석씨가 17살에, 민석씨가 18살에, 남석씨 역시 18살, 종석씨가 19살. 다음 창석씨의 자녀들 가운데 홍기(洪基)씩 17살에, 홍난(洪爛)씨가 20살에, 홍민(洪玟)씨가 역시 20살, 홍용(洪龍)씨도 20살. 이렇게 조혼을 하다보니 갖가지 웃기는 사건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즉 박옹의 장증손인 현모군이 3살때 종석씨는 19살. 종석씨는 말하자면 총각할아버지가 된셈인데, 그때 종석씨는 현모군이『할아버지』하면 창피하다고 도망치기 일쑤였다는 것. 『내 손으로 고손자녀석 금줄을 달아 볼라우. 이렇게 건강하니 5년은 충분히 살것지 않것소?』 박옹의 말하는 품으로 미루어 보면 18살인 현모군을 20살까지도 기다릴 필요없이 장가보낼 심산인듯 하다. 박옹의 가족들에 대한「리더십」은 거의 절대적이다. 모든 수입·지출이 박옹의 명령에 따른다. 40~59대 아들들도 절대로 박옹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박옹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농사일을 돌아보고 설치는 통에 가족중 아무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박옹은 이곳에서 상당한 부농, 25마지기 정도의 논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식을 얼마든지 낳아도 먹이고 키우는데는 걱정이없다.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흔든다. 『잘먹고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지요. 담배·술 모두 다하고, 고기도 잘 먹지요. 못먹는 것이 없어라우』 박옹의 생일이 1월 하순께. 그래서 이집의 가장 큰 잔치는 설맞이를 미뤘다가 그날에 한다. 76살 기념잔치를 위해 흩어진 가족들까지 다 모이면 흔한말로「민박」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순천에서 박안식(朴安植)·오정묵(吳亭默)기자> [선데이서울 72년 1월 2일호 제5권 1호 통권 제 169호]
  • [부고] ‘두산家 어머니’ 명계춘 여사 별세

    줄줄이 딸린 시동생들이며 직공들 뒷바라지하기는 여느 재벌가의 맏며느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직접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는 점에서 ‘두산가(家)의 어머니’는 조금 달랐다.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부인 명계춘 여사가 16일 오전 4시40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5세. 그는 1913년 서울에서 저포전(모시가게)을 하던 명태순씨의 딸로 태어났다. 숙명여고 재학 중에는 정구선수로도 활동했다. 이 무렵 ‘박승직상점’의 박씨 집안과 혼담이 오갔다. 당시 경성고상에 재학 중이던 두병씨는 전국여자연식정구선수권대회가 열린 경성운동장에 몰래 가 ‘명계춘 선수’를 훔쳐본 뒤 혼인 결심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31년 5월 공회당(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결혼했다. 두병씨는 아직 학생(경성고상 3학년), 계춘씨는 숙명여고를 졸업한 지 두 달만이었다. 18살에 30명이 넘는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들어간 그는 이듬해 장남 용곤(두산 명예회장)을 낳았다. 이후 2남 용오(성지건설 회장),3남 용성(두산그룹 회장) 등 6남1녀를 키워냈다. 해방 직후에는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운수업을 하기도 했다.“남자는 더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사업이었지만 명 여사는 사업수완을 톡톡히 발휘, 훗날 두산상회 발족의 토대를 닦았다. 여기에는 시어머니(정정숙)가 사실상 개척한 박가분(朴家粉-국내 화장품 효시) 사업을 뒤에서 도운 것이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1호실)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장무 서울대 총장 등 각계 인사들이 조문을 다녀갔다.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은 조화를 보냈다.2005년 ‘형제의 난’으로 틈이 벌어졌던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가도 모처럼 한자리에 전부 모였다.‘형제의 난’ 이후 두산에서 떨어져나가 성지건설을 인수, 재기를 모색 중인 박 전 회장은 이날 박용성 회장 등 다른 형제들과 함께 상주로서 문상객을 맞이했다. 박용성 회장은 “해마다 1월 어머님 생신때 온 집안식구가 모여 인화를 다졌는데 정신적 지주가 사라졌다.”며 가슴아파했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30분. 영결 미사는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선영.(02)2072-2092.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08 美 대선-공화당 全大 셋째날] 페일린 ‘거침없는 입담’

    |세인트폴(미네소타주) 김균미특파원|세라 페일린(44) 알래스카 주지사가 미국 공화당 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로 화려하게 중앙정치 무대에 데뷔했다. 페일린 후보는 3일 미네소타 세인트폴 엑셀에너지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통해 탁월한 연설 능력과 호소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페일린 후보는 ‘생애 최대의 관객’을 앞에 두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을 거침없이 해내 엑셀에너지센터를 가득 메운 지지자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입증된 개혁주의자’ 이미지 부각 페일린은 후보 수락 연설의 앞부분을 자신의 대가족과 자신의 인생사를 펼쳐보이는 데 할애했다. 알래스카의 소도시에서 성장해 다섯 자녀를 둔 일하는 엄마로, 고교 때 첫사랑과 결혼한 아내로, 알래스카의 소도시 시장과 알래스카 최연소·최초의 여성 주지사로서의 행정경험을 강조하며 ‘준비된 부통령 후보’임을 강조했다.10대 딸의 임신 사실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로 좋은 일과 힘든 일들을 겪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페일린은 2년 남짓 알래스카 주지사로 있으면서 이뤄낸 성과들을 열거하며 경험 부족이라는 언론의 비판을 일축했다. 불필요한 예산 집행을 줄이고, 주지사 전용 제트기를 경매에 부치는가 하면 주지사 전용 요리사를 없앤 사례를 소개했다. 주지사로 성공시킨 최대의 파이프라인공사 계약 사례를 내세우며 에너지 정책에서의 강점을 강조했다. 인격과 선의, 확고한 신념,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워싱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리버럴´ 언론과의 일전도 불사 페일린 후보는 상대 당 대선 후보를 공격하는 전통적인 부통령 후보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오바마 저격수’로서 첫 공개시험을 통과했다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 페일린 후보는 시카고 지역사회 활동가로 일했던 오바마의 이력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그의 경험 부족을 공격했다.‘지역사회’와 ‘조직활동가’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오바마의 전무한 행정경험과 일천한 사회활동 경력을 부각시켰다. 페일린은 미국의 주류 언론들에도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 미국의 주류언론을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는 배타적인 집단으로 묘사하며 각을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4일자에서 “페일린에게 가장 쉬운 도전은 (후보수락) 연설일 것”이라며 앞으로의 강도 높은 후보검증 작업을 예고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면서 페일린 주지사의 예산삭감으로 청소년 미혼모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는 기사를 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페일린이 여동생의 전 남편을 해고하도록 경찰국장에게 압력을 가한 내용의 이메일을 폭로하는 등 검증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일단 합격점을 받은 페일린 후보가 앞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언론들의 검증공세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미국 언론은 페일린을 두고 11월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새로운 ‘정치 샛별’의 출현을 예고했다. kmkim@seoul.co.kr
  • [04일 TV 하이라이트]

    ●불만제로(MBC 오후 11시5분) 빵맛이 이상하다며 제조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제보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당일 구운 신선한 빵. 과연 믿고 먹어도 될까? 국내 유명 프렌차이즈 제과점 케이크의 유통기한 변조 현장을 포착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빵을 만들고 교묘한 수법으로 유통기한을 변조하는 현장까지 빵집의 비밀을 파헤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는 초·중등학교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제대로 된 학용품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한국의 한 복지단체가 후원에 나섰다. 이번 기증식에서는 모두 5만 달러 상당의 학용품이 키르기스스탄의 불우한 학생 1000여명에게 전달돼 그들의 학업을 돕게 된다.   ●미스터리 특공대(SBS 오후 11시5분) 도로에서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경기도 하남시의 평범한 고갯길. 터널 속에서 귀신을 목격했다는 영동 고속도로 터널. 사고 다발 지역으로 손꼽히는 암사동의 도로. 도로 주변에 무덤이 늘어선 경기도의 공동묘지길. 귀신이 나타난다는 괴담이 끊이지 않는 무서운 도로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인간극장(KBS2 오후 8시20분) 대가족의 대대적 환영 속에서 새삼 가족의 고마움을 느끼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보는 명희 씨.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딸과의 대화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아버지는 기억의 끈을 거의 놓은 상태임에도 37년 만에 만난 막내딸을 위해 한마디만은 잊지 않았다.“미안하다. 미안하다.”   ●큰언니(KBS1 오전 7시50분) 황씨는 의사가 되어 눈 앞에 서 있는 인수의 모습에 얼떨떨하기만 하다. 인수는 그런 황씨에게 학인과 인옥의 결혼만 막으면 다 잘 될 줄 알았냐는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더불어 황씨는 마흔이 넘은 학인의 나이 때문에 제대로 된 선자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갑작스러운 가슴의 통증을 느낀다.   ●극한직업-고속철도 건설 2부(EBS 오후 10시40분) 지붕 설치 작업이 한창인 신경주 역사에서는 지상 37m 높이에 작업자들이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한다. 기둥과 지붕을 만드는 트러스를 연결하기 위해 고공에 매달려 작업하는 사람들.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오직 안전고리 하나뿐이라 보기에도 아찔할 정도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김홍도의 ‘길쌈’(그림 1)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또 길쌈하는 그림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림 2는 유운홍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길쌈’이란 작품인데, 김홍도의 그림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길쌈하는 그림은 제법 많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제 길쌈이란 말 자체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형편이다. 예순이 넘은 분들만이 이 그림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하의 연배, 그리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길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명 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봄에 목화를 심어 가을에 목화꽃을 거둔다. 목화꽃이 곧 목화솜이다. 목화솜에는 씨앗이 들어 있어서 실을 그냥 뽑을 수가 없다. 씨아를 이용하여 씨를 빼내고, 활로 솜을 탄다. 탄다는 것은, 활줄로 퉁겨서 솜을 부풋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 다음 넓은 판대기 위에 목화를 올리고 수수깡 같은 것을 30㎝쯤 잘라 심으로 삼아 손으로 밀면 기름한 솜덩이가 된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이 실을 막 바로 베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 1의 위쪽을 보면, 실을 길게 메고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키지 않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여자의 오른손 아래쪽에 있는 것은 숯불이다. 풀을 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 한다. ●지루하고 고된 노동 노래로 털고 씻어 베매기를 한 실이 날줄이 된다. 이 날줄을 도투마리(베틀 가장 왼쪽에 실을 묶은 부분)에 맨다. 이제 씨줄을 만들 차례다. 날줄을 둘로 나누어 엇건 뒤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씨줄을 통과시키면 천이 되는데, 이 엇건 공간으로 넣는 것이 곧 북이다. 북에 들어갈 씨줄은 따로 감아둔다.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은 씨줄을 넣는 것이다. 씨줄이 들어가면 바디를 내려 쳐서 천을 단단히 짠다. 조선시대의 피륙에는 비단, 삼베, 모시,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알다시피 고려 말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명은 농사짓기가 쉽고 피륙을 짜기도 수월하며, 또 보온성이 뛰어나 이내 삼베나 모시, 비단을 물리치고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륙이 되었다. 여기서 무명 짜는 것을 예로 든 것도 무명이 가장 일반적인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삼베나 모시, 비단은 실을 얻는 과정이 다를 뿐 짜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림 1과 2에 등장하는 길쌈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수신교과서 ‘소학’은 아예 여성을 조리와 직조(織造)하는 존재로 규정하였고, 특별히 귀한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성은 두 노동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소학’이 아니라 해도 조리와 직조를 여성이 맡았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그 기원의 흔적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9년 조다. 유리왕은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의 딸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게 한다. 그리고 7월16일부터 매일 아침 가장 큰 고을의 뜰에 모여 밤 10시 쯤까지 길쌈을 하게 한다.8월15일에 그 성적을 따져 진 패가 이긴 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진 패의 여자는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구슬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회소곡’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가배’가 뒷날 ‘가위’ 곧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석의 유래는 직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여성 직조의 역사는 역사의 기원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길쌈대회 ‘가배´서 한가위 유래 조선시대 옷감을 짜는 것은, 심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입을 것, 먹을 것,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데 집이야 한 번 지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시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것만큼은 아니지만, 입을 것의 무게란 중세 경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금 값싼 옷이 지천인 세상에서의 입을 것이 갖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옷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옷이 되었고,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었으며,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노잣돈이 되었으니, 한 필 무명이야말로 지금의 현금카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옷감을 짜는 과정은 고되고 지루하였다. 그 노동의 고통을 여성들은 노래를 불러 잊었다. 수많은 길쌈노래, 물레노래, 베틀노래가 그 증거다. 어디 베틀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 전하는 노래다. “시집 갔든 사흘만에/ 과거 빈다 소문 듣고/ 과거 보러 가신 낭군/ 밤낮으로 기다리니/ 밤도 길어 해도 길어/ 길쌈이나 시작하세” 남편은 과거 보러 떠났다. 아내는 기다리기 지루하여 길쌈을 하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으려 한다.“송이송이 따 모아서/ 참나무쐐기에 앗아내어/ 대나무활로 타다놓고/ 수수회기로 비벼내어/ 정데정이 치은 가락/ 버드나무 물레에 미여 넣고/ 당태실 같이 뽑아내어/ 파람파람 뽑아다가/ 앞마당에 날아다가 뒷마당에 매어다가/ 베틀이나 차려보세” 목화송이를 따서 활질을 하고 실을 뽑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그 다음은 베틀을 차리는 과정을 길게 늘어놓고, 그 다음 베를 짜는 과정을 늘어놓는다.“바디집 치는 양은/ 광한루 높은 정자/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장기 바둑 뚜는 듯다/ 북이라고 노는 양은 청학이 알을 품고/ 들락날락 하는듯다/ 잉애라고 바란 양은/ 모시국이 실묵시를/ 놋전반에 받친 듯고” 이렇게 해서 짠 것을 이제 씻어 간직한다.“앞 냇물에 씻어다가/ 줄어 너니 줄 때 묻고/ 손에 드니 손때 묻어/ 고이고이 말라내어/ 은실겅에 얹어 얹고” 남편을 기다린다. “과거 선비 오실까봐/ 동창문을 열어놓고/ 날이 날로 기다려도/ 한양 선비 자취 없네” 아무리 기다려도 한양에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비에게 물어본다.“말 묻기 어려우나 말 한 마디 물읍시다. 한양서 오시며는 우리 선비 안 옵디까?” 어렵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오기사 오드마는 칠성판에 얹혀 와요” 아내는 절망한다.“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암행어사 하실까봐/ 고대고대 바랐드니/ 칠성판이 웬일인고” 남편은 과거를 치러 가서 무슨 사건으로 인해 죽어 시체가 되어 칠성판에 얹혀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가혹한 운명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털고 씻고 잊었다. ●군역 대신 낸 군포… 한과 눈물의 응집물 여성들이 짜낸 무명은 그야말로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었다. 가혹한 노동의 결과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명이 ‘군포’란 말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앓아야 했던 거대한 모순이 되고 만다. 군포는 군역을 지는 대신 내는 무명이다. 조선은 원래 16세에서 60세까지의 장정은 모두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큰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후기에 와서 군역의 의무는 그대로 남지만, 실제 군대는 직업군인으로 채워지기에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양반은 제외)은 모두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1인 당 2필의 군포를 납부해야만 하였다. 조선은 대가족제도다. 따라서 한 집안에 남자 장정이 6명이면 12필을 내어야 한다. 그 뿐인가.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다. 군포를 못내고 달아나면 그 동네 사람에게 받거나(동징), 친척들에게 받아낸다(족징).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자살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급기야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혹하게 거둔 군포 위에 조선이란 국가와 양반체제가 서 있었던 것이니, 저 그림 속에 보이는 여성 노동은 조선 후기의 체제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맹자가 말씀하시길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항상 공경하느니라∼.”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나라 ‘서당교육 1번지’인 지리산 자락 하동 청학동 마을에 충·효·예절 교육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TV·컴퓨터 없어도 재미는 두배 서당 집단촌인 청학동 일대에는 20여곳의 서당이 있다. 여름방학 충·효 캠프에 참가한 수천여명의 어린 학생이 삼복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옛 성현들의 말씀을 되뇌고 가슴에 새기는 일에 여념이 없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청학동서당은 3일 여름방학 예절학교 3차 수련생 130명을 입소시켰다. 지난달 20일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1,2차 교육에는 270명이 수료했다. 수련생들은 주로 초등학교 3∼6학년과 중학교 1∼3학년으로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에서 몰렸다. 오는 30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절학교 캠프에는 모두 7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마감이 임박한 상태다. 교육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입소해 토요일에 퇴소하는 1주일 과정으로 짜여졌다. 생활 방식은 합숙이며 수업은 옛날 서당에서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과는 오전 7시 기상해 밤 10시 잘 때까지 상투를 튼 훈장 선생님의 각종 고전 강의 및 생활예절 교육, 물놀이, 전통놀이체험 등으로 이어진다. 서당에는 TV나 컴퓨터가 없고 휴대전화 사용도 일절 금지돼 있다. 가게도 없어 군것질 또한 불가능하다. 대신 시원한 한옥 대청마루와 앉은뱅이 책상, 풀벌레 소리가 친구가 돼 준다. 수강료는 1주일 기준 22만원. ●6시30분 일어나 10시 잠자도 ‘초롱초롱´ 몽양당 청학동 예절학교 수련원도 오는 23일까지 여름방학 예절교육 캠프를 연다.3,4주짜리 교육과정은 이미 마감됐으며,1,2주,9박10일 과정의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매일 아침 6시30분에 기상해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효·인성·예절·서당식 한문 교육을 비롯해 전통문화체험, 체력단련 등으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 강의는 청학동에서 태어나 전통 서당공부를 배운 훈장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다. 수강료는 1주일 단위 초등학생 28만원, 중학생 30만원. 청학동의 청림·선비·청림·고운원·난야 서당도 이달 말까지 각각 ‘여름방학 충·효·예절’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당들의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여벌옷과 샌들, 자판기용 동전, 페트 물통, 세면도구, 필기도구 등을 지참해야 한다. 청학동서당 2주짜리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A군은 “1주일 교육을 받고 나니 과거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면서 “앞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같은 서당에 다니는 B군은 “집에서는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나 앞으로는 이곳에서 배운 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철(56) 청학동서당 훈장은 “대가족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버릇 없거나 나약하게 자라지 않을까 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서당체험을 찾게 하는 이유”라며 “학생들이 입소 초기에는 ‘지겹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교육이 진행될수록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맹자가 말씀하시길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항상 공경하느니라∼.”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나라 ‘서당교육 1번지’인 지리산 자락 하동 청학동 마을에는 충·효·예절 교육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TV·컴퓨터 없어도 재미는 두배 서당 집단촌인 이곳 청학동 일대에는 20여곳의 서당이 있다. 여름방학 충·효 캠프에 참가한 전국 수천여명의 어린 학생이 삼복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옛 성현들의 말씀을 되뇌고 가슴에 새기는 일에 여념이 없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청학동서당은 3일 여름방학 예절학교 3차 수련생 130명을 입소시켰다. 지난달 20일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1,2차 교육에는 270명이 수료했다. 수련생들은 주로 초등학교 3∼6학년과 중학교 1∼3학년으로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에서 몰렸다. 오는 30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절학교 캠프에는 모두 7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마감이 임박한 상태다. 교육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입소해 토요일에 퇴소하는 1주일 과정으로 짜여졌다. 생활 방식은 합숙이며 수업은 옛날 서당에서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과는 오전 7시 기상해 밤 10시 잘 때까지 상투를 튼 훈장 선생님의 각종 고전 강의 및 생활예절 교육, 물놀이, 전통놀이체험 등으로 이어진다. 서당에는 TV나 컴퓨터가 없고 휴대전화 사용도 일절 금지돼 있다. 가게도 없어 군것질 또한 불가능하다. 대신 시원한 한옥 대청마루와 앉은뱅이 책상, 풀벌레 소리가 친구가 돼 준다. 수강료는 1주일 기준 22만원. ●6시30분 일어나 10시 잠자도 ‘초롱초롱´ 몽양당 청학동 예절학교 수련원도 오는 23일까지 여름방학 예절교육 캠프를 연다.3,4주짜리 교육과정은 이미 마감됐으며,1,2주,9박10일 과정의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매일 6시30분에 기상해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효·인성·예절·서당식 한문 교육을 비롯해 전통문화체험, 체력단련 등으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 강의는 청학동에서 태어나 전통 서당공부를 배운 훈장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다. 수강료는 1주일 단위 초등학생 28만원, 중학생 30만원. 청학동의 청림·선비·청림·고운원·난야 서당도 이달 말까지 각각 ‘여름방학 충·효·예절’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당들의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여벌옷과 샌들, 자판기용 동전, 페트 물통, 세면도구, 필기도구 등을 지참해야 한다. 청학동서당 2주짜리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A군은 “1주일 교육을 받고 나니 과거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면서 “앞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같은 서당에 다니는 B군은 “집에서는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나 앞으로는 이곳에서 배운 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철(56) 청학동서당 훈장은 “대가족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버릇 없거나 나약하게 자라지 않을까 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서당체험을 찾게 하는 이유”라며 “학생들이 입소 초기에는 ‘지겹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교육이 진행될수록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50 세대를 말하다] “우리는 ㅁ 세대다”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50 세대를 말하다] “우리는 ㅁ 세대다”

    삶을 이루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세대갈등은 화두가 된다. 하지만 ‘갈등은 또 다른 힘’이다. 갈등이 있어 서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세대 소통’이 생기고 ‘화합’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반대로 갈등을 인지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발전의 동력을 꺼버리는 결과를 낳는다.15명의 시민들이 나름의 단어를 통해 자신의 세대에 대해 정의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게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표현했고, 중장년층은 자식세대에게 알아주지 않는 희생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사회 곳곳에 갈등이 넘친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음 속에는 표현하지 못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작고도 큰 세대 갈등이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무한도전] ●김동현(16·황지고 1학년)군 10대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20대부터 100세까지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 우리는 때묻지 않은 하얀 캔버스지와 같은 세대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좋지만 골프·바이올린·만화·컴퓨터 게임 등 무엇이든 목표를 정하고 달려갈 수 있다. 한두 차례 실패도 용인된다. 무한도전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특권이다. 대한민국을 이끌 재목이며,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 주역들인 10대,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실험대상] ●강우주(16·의정부 영석고 1학년)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우리 세대의 교육에 대한 거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사라졌던 0교시가 부활했고 우열반이 생겼다. 우리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교육이 아니라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누구보다 먼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우리 세대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죄수] ●남용우(17·경기상고 2학년)군 대학입시라는 원죄 때문에 학교와 학원에 갇혀 산다. 학교는 학생이 아닌 선생님 중심이다. 수업은 국·영·수 위주다. 고등학생 정도면 0교시 수업, 광우병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웬만큼 안다. 하지만 의견을 개진하면 어른들은 ‘어린 게 뭘 안다고 말하느냐.’며 무시한다. 우리를 ‘어리다.’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있다. 우리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다. 촛불집회도 처음에는 우리를 주목하는 척했지만, 지금은 10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슈퍼맨] ●김지윤(24·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씨 2008년을 사는 20대는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당한다. 학점관리, 영어, 한자, 컴퓨터에서 취업을 위한 스펙(학력·학점·토익 점수 등을 합한 것) 관리까지 뭐든지 다 잘해야만 한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아르바이트 한두 개는 기본이다. 하루 24시간은 짧고 20대의 낭만은 사치다. 하지만 우리를 희망 없는 ‘88만원 세대’로만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는 미선·효순 사건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까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세대다. 취업에 눌려 살지만 불의에는 결연히 나선다. 마치 슈퍼맨처럼.20대, 여전히 희망은 있다! [안습] ●김차준(27·경남대 북한대학원생)씨 경제가 어려워서 학생운동도 못 해보고, 대학의 낭만도 누려보지 못하고, 학점과 외국어에만 몰두했다.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면 쉽게 취직이 될 줄 알았는데, 다시 청년 실업에 직면했다. 비정규직 안 하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그것마저 정규직 세대에게 ‘처지를 모르는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당한다. 이런 우리 세대를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차지 않을 수 있나. 우리 세대는 마음 깊은 곳에 설명하기 힘든 박탈감을 갖고 살아간다. [창조적] ●김혁근(22·서울시립대 경제학부)씨 대졸자가 넘쳐나는 지금 기업들은 창조적 인재를 선호한다. 어려운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창조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창조적이라는 말은 ‘최고’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단어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창조를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 여행 등을 통해 얽매이지 않는 지성을 길러야 한다. 어차피 기업에 들어가면 다시 비창조적으로 변할 테지만. [재테크] ●이복무(35·LG파워콤 대리)씨 좀 진부하지만, 이 말처럼 우리 세대를 잘 나타내 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30대는 한창 가정을 꾸려 갓 낳은 아이와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할 시기다. 지금 세 살 난 아이가 있는데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다. 그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재테크뿐이다. 사실 월급만으로 여유있게 살기란 쉽지 않다. 많은 동료들도 모두 어떻게 하면 재테크를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경쟁도 치열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재테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시스템 트레이딩’이란 것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 ●이정민(35·주부)씨 30대가 아이러니 세대인 이유는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힘든 삶을 사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때 한창 취업을 위해 땀흘렸던 세대다. 취업난, 경제난 등 힘든 시기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세대라는 점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는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로 경쟁에만 몰두했던 세대로서, 번영의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사회에서는 가장 치열하고 가정에서는 가장 행복한 것이 30대다. [샌드위치] ●유환선(39·교원그룹 홍보디자인팀)씨 우리는 직장과 가정이라는 무거운 빵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한다.30대 초반에는 적금·펀드 등에 몰두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결혼 후에는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허리띠를 꽉꽉 졸라맨다. 직장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기 위해 구슬땀, 아니 식은땀을 흘린다. 밤샘 야근도 불사한다. 결국 직장과 가정에서 오는 중압감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게 30대를 잘 보내는 핵심인 듯하다. [동네북] ●이영숙(47·주부)씨 우리 세대에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모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셔도 그냥 꾹 참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들도 부모를 무척 쉽게 본다. 너무 오냐오냐 키운 부모 책임도 크지만 가끔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마치 우리 세대를 마냥 ‘동네북’처럼 여기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 있는 5월이면 그런 갑갑함이 최고조에 이른다. 어린이날이라고 아이들 챙겨주고 나면 3일 뒤 다시 부모님을 챙겨드려야 했으니까.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언제쯤 ‘동네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버림받은] ●이계숙(43·자영업자)씨 40대는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다. 다음 세대가 우리가 늙으면 보살펴 줄지 의문이다. 우리는 대가족과 핵가족의 과도기에 끼여 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과도기 사이에 불안하게 서 있다. 한마디로 외로운 세대다. 홀로 살던 노인이 자살하고 신(新)고려장이 시작됐다는 등의 기사를 가끔 접하곤 한다. 하지만 ‘20∼30년 후에도 독거노인이 기사거리가 될까?’라고 생각한다. 이미 버림받을 것을 알고 살고 있지만 자식에 대한 온갖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비참한 세대인 셈이다. [건곤일척] ●이성호(47·인천 현대유비스병원 원장)씨 인간은 인생을 걸고 한판 승부를 펼쳐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30대에 가정을 이룬 뒤 안정적인 기반 마련과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내달렸다. 레지던트에서 한 병원의 원장이 되기까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환자와 병원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이제야 가정적인 남편,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제] ●우석만(52·KT 파주지점장)씨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참 표현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얘기할 줄 아는 당당함이 보기 좋다. 이번 촛불집회도 젊은이들의 힘이 컸다고 들었다. 하지만 때론 그 표현력이 다소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KT에서 일하면서 인터넷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은 데 절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많이 나와 당황할 때가 많다. 우리는 ‘절제’의 세대다. 쉽게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우리 세대의 장점을 잠시 배워보는 게 어떨까. [기도] ●김정자(56·주부)씨 우리는 자녀를 건강하고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는 못먹고 못 입어도 아이들을 잘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 그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이제 자식들이 사회로 나갔지만 아직도 기도하며 살아간다. 이런 마음을 자녀들이 몰라줘 슬플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어제와 비교할 수 없는 오늘은 우리 세대의 수도자와도 같은 근면함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좁게는 내 자식의 오늘과 미래를 걱정하고 넓게는 그에게 영향을 미칠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기도한다. [거름] ●박정덕(59·주부)씨 우리 세대 특히 여성들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끝없이 희생했다.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땅을 비옥하게 하지만 드러나지 않고, 결국 흔적없이 사라지는 거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희생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사회는 달디단 열매에만 주목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 따 먹는 열매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경주 이경원 김정은기자 kdlrudwn@seoul.co.kr
  • 통속극 통하더라 왜?

    통속극 통하더라 왜?

    ‘유치하고 촌스러워도 괜찮아!’ 안방극장이 통속극에 푹 빠졌다. 최근 TV 전체 프로그램 시청률 1,2위를 휩쓸고 있는 주인공은 SBS ‘조강지처클럽’과 KBS ‘엄마가 뿔났다’. 사극 열풍과 전문직 드라마 붐에 한동안 세를 잃었던 통속극이 안방극장의 최강자로 급부상했다.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콤플렉스, 외도와 복수 등 진부한 소재로 종종 한국드라마 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몰리는 통속극. 그런데 일단 한번 빠졌다 하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력은 대체 뭘까. ●‘통속극’ 뜨고, 사극·전문직 드라마 ‘주춤´ 최근 통속극 열풍의 진원지는 단연 주말연속극.‘조강지처클럽’은 초반에는 남편들의 외도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여성들의 절절한 사연으로 눈물을 빼다가 후반엔 코미디를 가미한 복수극으로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다.‘엄마가 뿔났다’는 전형적인 대가족 드라마의 형식이지만, 매회 이어지는 설득력있는 에피소드와 흡인력 있는 대사로 중독성을 발휘하고 있다. 또 엇갈린 두 자매의 운명과 처절한 복수담을 그리는 KBS ‘태양의 여자’도 초반 시청률의 두배 가까이 뛰어오르며 최근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주로 고부간의 갈등, 불륜을 주제로 한 방송 3사의 아침드라마들 역시 미니시리즈도 어렵다는 두자릿대 시청률을 꾸준히 지켜 내는 게 현실. 반면, 이같은 통속극의 기세등등함에 전문직 캐릭터를 내세우고 호기롭게 출발했던 드라마들은 줄줄이 스러졌다. 당장, 방송기자의 세계를 그린 기대작 ‘스포트라이트’가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지난 몇년간 이어진 사극열풍 역시 ‘일지매’가 선전할 뿐,‘최강칠우’ 등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인간심리 꿰뚫는 통속극의 힘! 통속극이 ‘먹히는’ 가장 큰 배경은 뭘까. 방송가 안팎에서는 개성 넘치는 탄탄한 대본을 첫손에 꼽는다. 뻔한 소재, 평범한 캐릭터라 할지라도 시대흐름을 반영해 인간내면의 통찰력을 제대로 보여 주는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조강지처클럽’의 문영남,‘엄마가 뿔났다’의 김수현 작가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두 드라마의 제작사인 삼화네트웍스의 김현준 사장은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해결책과 치료법을 내놓는 방식에 시청자들이 깊이 공감하는 것”이라면서 “시대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인간관계와 가치관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작품에 반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과거 주부 위주로 형성됐던 통속드라마의 주시청자층에 최근 20∼30대 젊은 세대들이 빠르게 편입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해 볼 대목. 시청률 조사기관 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조강지처클럽’의 30대 여성의 평균 시청률은 13%로 50∼60대보다 오히려 높고,‘태양의 여자’도 20대부터 50대 여성까지 큰 편차없이 고른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고흥식 SBS 드라마 2CP 부장은 “시청자들의 입맛이 워낙 빨리 변하는 데다, 어려운 내용의 전문직 드라마가 부담스러운 시청자들이 멜로를 기본틀로 삼은 통속극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라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는 탄탄한 내러티브가 통속극 인기의 관건”이라고 짚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STX그룹 2012년 매출목표 50조”

    STX그룹이 2012년 매출 50조원, 경상이익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STX그룹은 20∼21일 강원 원주시 오크밸리에서 강덕수 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사장단 등 그룹임원 1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8년 상반기 임원 워크숍을 열었다고 22일 밝혔다. 강 회장은 워크숍에서 “지난해 수립한 ‘비전 2010’에서 2010년 20조원 매출을 목표로 잡았으나 올해 25조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된다.”며 “2012년 매출 50조원, 경상이익 5조원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자.”고 말했다.2012년 매출 50조원을 달성하면 국내 그룹 중 톱 10에 진입하게 된다. ●조선·기계부문 매출목표는 24조원 STX는 노르웨이 아커야즈 인수와 중국 다롄조선소 준공으로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하고 독자기술 확보와 시황대응 능력 강화, 해외투자 확대를 통한 자체역량 강화로 글로벌 톱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또 고유가 위기와 자원고갈 및 환경문제 대두 등 어려운 대외여건에도 중동,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자원부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대할 방침이다. 조선·기계부문은 2012년 매출 24조원을 목표로 세웠다. 한국, 중국, 유럽 등 3대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선박 포트폴리오를 특화해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STX팬오션은 2012년 매출 14조원을 달성, 세계 5대 해운사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주력사업인 벌크선 부문은 선대 확충을 통한 경쟁 우위를 지속하고 LNG선, 초대형 유조선(VLCC), 자동차 운반선(PCTC), 컨테이너선 등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할 계획이다. 항만, 복합물류 등 연관사업에도 진출할 방침이다. 플랜트ㆍ건설 부문은 2012년 9조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국내외 주택단지 조성, 해외도시개발, 해양플랜트, 산업플랜트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계획이다. 에너지 부문은 해외 자원 개발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적극 나서 2조원의 매출을 올리기로 했다. ●그룹출범 7년만에 직원수 2만 4000명으로 강 회장은 “그룹 출범 이후 7년 만에 직원수가 2만 4000명이 넘는 대가족으로 성장했다.”며 “이제 글로벌 톱으로 가기 위한 전략적 과제와 영속기업으로 가기 위한 조건을 고민하면서 혁신적 전략과 실천계획을 도출해 달라.”고 임원들에게 당부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9) 정교회 한국대교구 제2대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9) 정교회 한국대교구 제2대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정교회 한국대교구는 다음달 20일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은퇴하는 초대 대교구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의 뒤를 이어 두번째 대교구장에 임명된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조그라포스(48·그리스) 대주교가 착좌(취임)하는 날이다. 일찌감치 한국 땅에 묻힐 것을 선언한 채 30여년을 정교회 사제로 한국에 살아온 그리스 출신 한국인, 소티리오스 대주교. 그의 뒤를 잇는 한국 정교회의 새 수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다름아닌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간곡한 부름으로 한국에 살게 됐다.‘한국 정교회에 힘이 되어 달라.’는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간청에 한국행을 결심해 한국에 사는, 정교회의 실력자이다. ●소티리오스 대주교 뒤이어 새달 착좌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정교회 한국대교구 성니콜라스 대성당. 최고 수장의 착좌식을 앞두었으니 사제며 신자들이 바쁠 성 싶은데, 성당은 ‘뭔 일 있느냐.’고 되묻기라도 하듯 차분하기만 하다. 찌는 한여름 날씨에 약속 시간을 맞추려 마포경찰서 맞은편 언덕 길을 바삐 올랐더니 온몸이 땀 범벅이다. 땀이 말라갈 무렵 “용인에서 강의를 마치고 막 도착했다.”며 긴 수염의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웃음 띤 얼굴로 기자 앞에 선다. 목부터 발등까지 내려입은 검은 사제복을 보고 있으려니 식었던 땀이 다시 솟을 것만 같다. 길다란 사제복에, 지금은 가평 수도원으로 옮겨 살고 있는 소티리오스 전 대교구장의 모습을 겹쳐 본다. 두 사람이 많이 닮아 있다. 마치 기자의 속내를 훔쳐본 것처럼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전임 대교구장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토록 많은 것을 이룸은 기적이지요.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한국 신자들로부터 ‘영적 아버지’로 통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자신을 버린 고생 끝에 얻은 영예이지요. 같은 사제의 입장에서 존경스러울밖에요.” 한국의 소수종교 사제 대신 좀더 나은 형편의 나라에서 살 수 있었지만 끝까지 어려운 한국 땅을 고집한 선배 대교구장에 대한 공경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정교회를 새로 이끌 이 중년의 대주교는 13년 전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청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1995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 준비를 하던 때였는데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한국에서 전화를 하셨어요. 아무 인연이 없던 한국 정교회에 도움이 되어 달라는 청이었으니 당황할밖에요.” 그때만 해도 아시아 땅은 밟아본 적이 없는 그였다.2년여, 크리스마스 철마다 짬을 내 보름 정도씩 한국을 오가면서 한국, 한국인에게 정이 깊어감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한국을 알고 가까이해야만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커갔다고 한다. 그의 한국행 역시 정해진 소명이었던 것일까. 사도 바울의 역사와 흔적이 절절하게 담긴 아테네 남쪽의 유명한 지중해 휴양지 에기나 섬 출신. 에기나 섬의 웬만한 이라면 다 아는 대가족의 농민 아들로 태어났다.10남6녀중 여덟째.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그 유명한 아페아 신전을 비롯해 사도 바울부터 이어진 그리스도교 교회의 유적들이 널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신앙심이 오죽할까. 어릴 적부터 정교회 사제가 될 생각에 신앙활동을 줄곧 했고 아테네대학교 신학과를 졸업, 사제서품을 받았다. 아테네 서쪽의 항구도시인 니케아-피레아 대교구청서 3년을 산 뒤 이집트 시나이산의 성카테리나 수도원에서 2년간 도서관과 성화갤러리의 관리를 맡았다고 한다. 성카테리나 수도원 도서관은 그리스도교 관련 도서관으로는 로마 바티칸 다음으로 오래되고 각종 성서의 사본이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 성화갤러리도 초대교회 때부터 전해온 수천 점의 성화가 들어 있어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귀중한 성서와 성화들이 가득 들어 있다는 도서관과 갤러리의 모든 관리며 순례객 안내를 맡았으니 정교회의 그를 향한 신뢰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시절 열쇠 50∼60여개를 항상 몸에 지닌 채 살았다고 한다. “성카테리나 수도원 시절, 오랜 세월 숱한 희생을 딛고 살아 남은 성화며 성서들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치 극한 산고를 넘긴 어머니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어려운 고비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한국행은 정해진 소명 이곳에 묻히겠다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느닷없는 전화 통화에 고민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아테네신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로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1998년, 거리마다 성탄의 흥청거림이 절정으로 치닫던 크리스마스 이틀 전. 영국 옥스퍼드대학측의 신학과 학과장 제의와 캐나다 대교구의 대주교 추천을 미련없이 물리친 채였다. “영국, 그리스 같은 곳에선 나 아니어도 일할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사제와 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길을 찾은 것이지요. 물론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영향이 컸고…. 돌이켜 보면 마음은 오래 전에 한국에 쏠렸던 것 같아요.”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대주교.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선 동·서 교회로 갈린 10세기 이전의 그리스도인이 살았던 모습 그대로를 회복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물론 한국에서 그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도 교부들의 가르침이며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의 말씀들을 온전히 전하기 위함이다. ●“강요 않는 믿음” 제대로 인식됐으면 “정교회는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주교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정교회를 한국인들에게 잘 알리기 위해 한국인 주교와 대주교 탄생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그리스 등지서 신학교육을 마친 한국인 사제가 7명 있지만 주교 자리엔 단 한명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청평 수도원 인근에 설립할 정교회 신학교에 쏟는 정성이 각별하다. 용인 한국외국어대 그리스어·발칸어과 교수의 신분도 겸한 사제. 지난 2004년 이 학과가 처음 개설된 이후 줄곧 교수로 재직해 왔다. 신분이 알려지면서 언제부터인가 교수, 학생들 사이에선 ‘교수님’보다 ‘신부님’ 호칭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용인에서 강의에 열중하지만 금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정교회 서울교구청의 사제로 돌아온다. 최근 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신부님’이 학교를 떠날까 걱정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그리스 피를 받고 태어나 미국 시민권도 갖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한국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대주교.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아무 분란없이 한 지붕 아래 잘 살아가는 한국의 종교세계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단다. “해가 갈수록 한국의 종교에 깊숙이 빠져들게 됩니다. 샤머니즘이며 소수의 민족종교가 거대 종교와 허물없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허튼 말이 아니다. 학생들과 함께 떠나는 답사며 여행 때 사찰이나 문화공간을 빼놓지 않고 일정에 꼭 넣는다.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 들여다 보기 위해서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최후의 만찬에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며 섬김의 모습을 직접 보여 주었다는 세족(洗足). 대주교는 성경의 세족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농축된 핵심임을 늘 새기며 산다고 한다. “민족이나 지위, 언어에 차별과 구별을 두지 않는 똑같은 사랑으로 변함없이 봉사, 봉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1960년 그리스 에기나섬 출생 ●1983년 아테네대학교 신학과 졸업, 사제서품 ●1985년 니케아-피레아 대교구청 봉직 ●1988∼1989년 이집트 시나이산의 성카테리나 수도원 도서관, 성화갤러리 관리, 순례객 안내 담당 ●1991∼1993년 미국 보스턴 홀리크로스 정교회신학교서 학업 계속, 뉴잉글랜드·뉴저지 사목 ●1993∼1996년 프린스턴 신학교서 교회역사 전공, 프린스턴 대학교서 ‘예술의 역사’ 관련 석사학위 ●1998년 아테네신학대서 박사학위,12월23일 한국정교회서 사목 시작 ●2004년∼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학과 교수 ●2008년 5월27일 정교회 세계총대주교청 시노드서 대주교 임명 ●2008년 7월20일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착좌 예정
  • [02일 TV 하이라이트]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KBS1 오후 10시) 최근 유리 상판 가스레인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세련되면서 청소하기 편리한 디자인이라는 것이 소비자들의 선택 이유이다. 그런데 구입한 지 6개월 만에 가스레인지 상판의 유리가 깨졌다는 소비자의 제보가 들어왔다. 가스레인지에 쓰이기에는 너무 위험한 유리의 실체를 파헤친다.   ●명의(EBS 오후 11시10분) 뱃살은 부유함과 건강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금 그것은 각종 질병의 위험신호다. 복부비만은 전신비만보다 더 위험하고, 특히 내장지방형 복부비만은 피하지방형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강재헌 교수와 함께 내장비만이 불러오는 성인병, 그에 따른 합병증과 비만 예방법 및 치료법을 알아본다.   ●주말(N)(YTN 오전 10시35분) 5월에 딱 맞는 주말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그런데 펄펄 끓는 찜질방이라니? 이 화창한 봄날, 굳이 찜질방을 소개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곳의 계단을 오르면 천국을 방불케 하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1일 승마 동호회원이 되어 말을 타고 숲을 누비는 이색체험을 해본다.   ●코끼리(MBC 오후 8시20분) 한영을 긴장시키는 엉뚱한 현지의 발상.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며 자꾸만 한영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고, 말하기도 싫은 한영은 현지 앞에만 서면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한편 털털한 무술 소녀 국채아. 그녀의 숨겨진 미모를 찾기 위해 해영은 ‘국채아 여자 만들기’ 대작전에 들어간다.   ●애자언니 민자(SBS 오후 7시20분) 세수를 하고 나오던 범만은 달력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짜를 발견하고는 무슨 날인지 세아에게 물어보지만 대답을 못 듣자 더 궁금해진다. 채린은 커피 차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40대 남자 때문에 불편해 한다. 한편 백화점에 가서 애자를 만난 민자는 애자에게 혹시 범만이 바람피우는 게 아니냐고 물어본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20분) 지난해 시어머니가 담관암 수술을 받게 되면서 은주씨는 서툰 솜씨로 살림을 전부 떠맡아야 했다. 제아무리 씩씩한 은주씨라 해도 버거움에 눈물짓는 날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든 대가족 시집살이는 그녀에게 삶의 장애물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 [일요영화]나의 그리스식 웨딩

    [일요영화]나의 그리스식 웨딩

    ●나의 그리스식 웨딩(SBS 씨네클럽 밤 1시5분)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겉모습은 로맨틱 코미디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가족영화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주인공 남녀를 통해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스 집안의 딸이자 주인공인 툴라(니아 바르달로스)는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서른살 여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툴라는 가업으로 이어가는 레스토랑에서 매니저 겸 웨이트리스로 일하지만, 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들어 보인다며 15살 때부터 그리스 남자와 결혼하라고 재촉해온 아버지도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용기를 낸 툴라는 가업 잇기를 포기하고 고모가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마침내 새 인생에 도전한다. 삶의 활력을 되찾은 뒤로는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다. 미련스러운 잠자리 안경, 촌티 패션을 벗어던진 그녀 앞에 나타난 운명같은 사랑 이안 밀러(존 코벳). 그리스인 사위를 고대하던 가족들은 정통 백인인 밀러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하지만 툴라와 결혼하기 위해 그리스 정교의 세례를 받고 채식주의자인 식성까지 바꾸는 밀러의 노력으로 결국 두사람은 결혼허락을 얻어낸다. 영화는 두 가족의 상견례 자리에서 절정에 이른다. 미국 청교도인 이안의 부모는 조용한 상견례를 예상했지만,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한 툴라네 대가족은 온 집안을 ‘점령’한 채 ‘그리스식 폭탄주’까지 돌리는 시끌벅적한 축제판을 벌인다. 시종 유쾌한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소소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아주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여러 이유로 사랑에 주눅 든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긴다. 가족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는 미덕도 돋보인다.“우리는 서로에게 침을 뱉지만 내가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툴라의 독백은, 때론 벗어나고 싶지만 영원히 삶의 등대인 가족의 가치를 웅변한다. 코믹드라마의 외피를 쓴 영화가 발산하는 또 하나의 매력. 그리스인 집안인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이(異)문화에 들이대는 편견의 잣대를 한번쯤 자연스럽게 돌아보게도 된다. 툴라를 연기한 바르달로스는 각본과 각색에도 참여했다. 극중 결혼식 피로연 장면에 자신의 가족들을 불러내는 적극성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TV시트콤으로도 기획된 이 영화의 제작에는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가 참여했다. 원제 My Big Fat Greek Wedding.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함양 인구 48%↓ 가구 수 13%↑

    함양 인구 48%↓ 가구 수 13%↑

    70년 전 경남 함양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계자료집 ‘군세요람(郡勢要覽)이 최근 발견됐다. 함양군은 11일 조성재 홍보계장이 부친(2007년 작고)의 유품을 정리하다 1938년 발간된 군세요람을 발견, 군청 자료실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군세요람에 따르면 1937년 말 현재 함양에는 1만 5693가구에 7만 7853명이 살고 있었다. 일본인 396명과 서양인 15명이 포함된 숫자다. 현재와 비교하면 인구는 4만 598명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가구 수는 1만 7750가구로 오히려 늘었다. 이는 당시 가구당 인구가 평균 4.92명인 데 비해 요즘은 핵가족으로 분열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1937년 출생자는 2221명이고, 그해 151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월별 출생자 숫자를 살피면 재미있는 상황이 발견된다.1월부터 7월까지 매월 200명 이상 신생아가 태어났지만 8월부터 줄어들기 시작,9월 181명,10월 151명으로 급격히 줄다가 11월부터 다시 회복됐다. 이는 가구당 7명 안팎의 대가족이 한 집에 살면서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겨울철에는 부모들의 성(姓)관계가 제약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현재 함양군이 주요 특산품으로 개발 중인 곶감을 만드는 감나무가 무려 9만 6133그루나 심어져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미뤄 일제 때도 ‘함양곶감’은 명성을 떨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농·상업 종사자와 쌀·보리 등 주요 식량의 생산량, 소·돼지·양봉 등 가축의 사육 마릿수 등도 꼼꼼하게 조사, 기록돼 있었다. 군 관계자는 “인구통계뿐만 아니라 공산품의 생산량과 종사자, 세금 수입, 교육수준, 금융업, 범법자 등의 숫자도 담고 있다.”며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은 우리나라의 근대 농촌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함안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주말극 전성시대

    주말극 전성시대

    봄이 오는 길목,2월 방송가에 주말극 열기가 뜨겁다. 요즘 주말극은 미니시리즈 못지않은 빠른 전개와 짜임새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다. ‘대가족 중심의 휴먼스토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로 접근한 것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지난 2일 첫방송한 KBS ‘엄마가 뿔났다’와 MBC ‘천하일색 박정금’의 주말극 대결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엄마가 뿔났다’는 김수현 작가가 4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라는 점때문에 첫방송부터 시청률 30%를 넘으며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천하일색 박정금’도 최근 아줌마 형사 박정금(배종옥)과 호적상 새엄마인 사여사(이혜숙)와의 갈등, 변호사 한경수(김민종)를 둘러싼 삼각관계가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 20%대를 넘나들고 있다. 이같은 변화를 시청자들보다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제작진이다.KBS는 지난 16일과 17일에 방영된 KBS ‘엄마가 뿔났다’의 5회와 6회 방영시간을 평소보다 10분 가까이 늘리며,2위와 격차벌리기에 나섰다.‘박정금’도 지난 23일 방영분에 인기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를 카메오로 출연시키는 등 김수현 드라마에 식상함을 느낀 젊은 시청자 눈길 잡기에 분주하다. 시간대는 다르지만 9일 첫방송한 SBS ‘행복합니다’의 초반기세도 만만치 않다. 전작 ‘황금신부’의 인기를 이어받은 이 작품은 재벌딸인 신분을 속인 서윤(김효진)과 평범한 회사원 준수(이훈)의 러브스토리가 첫회부터 시청률 20%를 넘었다.‘행복합니다’의 장용우 PD는 “인물 캐릭터들이 초반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미니시리즈 같은 연출기법을 표방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10시대 방영되는 ‘조강지처클럽’도 시청률 20%대를 유지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측은 이같은 주말극 인기가 무조건 반갑지만 않은 눈치다. 광고단가는 주중이나 주말이나 똑같지만, 사회문화적 파급력면에서 주말극이 주간 미니시리즈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니시리즈는 MBC 수목드라마 ‘뉴하트’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SBS가 ‘로비스트’의 부진을 씻고자 내놓은 ‘불한당’이나 권상우, 이요원 주연의 KBS ‘못된 사랑’도 예상치를 밑도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때 한류드라마의 첨병역할을 했지만, 국내 사극열풍에 밀려 지난 몇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니시리즈의 위기의식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새달 5일 맞대결하는 송윤아, 김하늘 주연의 ‘온에어’나 윤계상, 아라 주연의 ‘누구세요?’ 등은 미니시리즈 부활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정덕현 씨는 “최근 주말극은 가족극의 형태를 지향하지만, 장인작가들의 탄탄한 구성과 디테일을 통해 일상성에서 리얼리즘을 강조한 것이 인기비결”이라면서 “미니시리즈가 기존의 인기 공식만을 답습하고 ‘이야기의 힘’에 있어서 새로움을 주지 않는다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단편 모음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 펴낸 한말숙

    단편 모음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 펴낸 한말숙

    “소설은 쓰고 싶을 때 즐겁게 쓰고 잔인하고 괴기스러운, 즉 남을 해치는 작품은 쓰지 않는다는 게 지론입니다. 문학하는 이유가 나와 독자가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죠.” ‘한국 전후문학의 대표 작가’ 한말숙(77)씨.1957년 ‘신화의 단애(斷崖)’로 등단해 지천명의 세월을 넘긴 그는 여전히 활달하고 유쾌했다.20대를 무색케 하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한다.“문학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앞으로 좋은 소재가 있으면 계속 써야죠.” 작가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11편의 단편을 모은 6번째 소설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창비 펴냄)를 펴냈다. ‘신화의 단애’‘장마’ 등 50년대 3편,60년대 ‘행복’ 등 4편,70년대 ‘여수´ 등 1편, 80년대 ‘초콜릿 친구’ 등 1편,2000년대 표제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 등 2편이다. 이 중 10편은 올해말 나오는 그의 영어 단편선집에 실릴 예정이다. ●“남을 해치는 소설 쓰지 않는게 나의 지론” “작품 하나하나가 제 자식처럼 애정이 가요. 굳이 꼽는다면 ‘신화의 단애’‘장마’‘행복’ 등의 순이라고 할까요. 표제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도 기분이 좋고 희망을 주는 소설이라 애착이 갑니다.” 데뷔를 비교적 쉽게 한 터라 글 쓰는 게 힘든 줄 모른다는 그는 “문학은 인간에게 사랑과 행복을 주는 테마여야 하는 만큼 해악을 끼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강조한다. 수록작 ‘신화의 단애’는 몸파는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뤄 지금도 세련된 퇴폐감이 느껴진다. 유교 정신이 온존하던 당시 상황에서 충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탓인지 소설가 김동리와 평론가 이어령 간에 실존주의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세간의 화제가 됐다.“윤리 도덕을 무너뜨린다는 비난 전화가 빗발쳤죠. 내가 주인공 ‘진영’과 같을 거라 짐작한 몇몇 남성팬들은 집을 찾아와 부유하게 사는 제 모습을 보고는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었죠.” 자연주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장마’는 단벌 옷과 수저 두벌로 시작한 신접살림을 삼키려는 폭우와 맨몸으로 맞서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 미국 의 밴텀북스가 발간한 ‘세계단편명작선’에 수록됐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유부남을 정부(情夫)로 둔 화가가 주인공인 ‘여수’는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해변 호텔의 서정적 풍경과 어우러져 이색정취를 느끼게 한다. 자전적 소설에 해당하는 ‘신과의 약속’은 식중독으로 입원한 어린 딸의 위급한 병세를 안절부절 못하고 지켜 보는 어머니를 실감나게 묘사했다.‘노파와 고양이’는 소외된 노파의 신경증을,‘행복’은 대가족 집안의 조부상에 대한 전통과 현대의 시각차와 세대차를 섬세하게 담아 냈다. ●참된 삶 지향하는 새로운 인간상 창조 미국을 방문한 노부부와 자식들의 일상을 진솔하게 그린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는 9·11테러 직후 미국 방문 여부를 놓고 남편 가야금 명인 황병기(72)씨와 고민했던 일이 모티프가 됐다. 소설가 구인환씨는 “한말숙씨의 소설은 짙은 삶의 현장을 따스한 정감으로 감싸 사람다운 참된 삶을 지향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문단에 한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고 평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8년 동안 창작은 안 했지만 기존 작품을 해외에 번역 출간하는 등 늘상 문학과 함께 했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4월말 출간 예정으로 수필집 ‘사랑할 때와 헤어질 때’(가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작가는 “교육과 일상생활에 관한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배움도 가르침도 기쁨이어라

    배움도 가르침도 기쁨이어라

    취재, 글 이만근 기자. “학교 다녀왔습니다.” 짧은 겨울 해를 뒤로 속속 도착한 아이들이 신선영 씨를 보자 꾸벅 인사한다. “꿈을 묻지 않으면 학교가 아니에요.” 그는 단호하다. 외아들 한전이도 초등 과정 이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대학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하기까지 자신이 직접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도 품었다. 오직 내 자식만 잘되기를 바라는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 그의 품은 유독 넓어 보인다. ‘배우는 것도 기쁨이요, 가르치는 것도 기쁨’이라는 뜻의 ‘조이 스터디’. 그들의 꿈이 영그는 아홉 평 남짓한 작은 집은 신선영 씨 말마따나 ‘진짜 학교’다. 어수선하게 꽂혀 있는 책들 사이 아이들은 들쭉날쭉 제멋대로다. 여드름 가득한 얼굴로 기타를 튕기는 아이 옆에 유심히 신문을 보며 기사를 자르고 붙이는 아이가 있고 또 다른 아이는 동화책을 크게 읽는다. 그리고 여느 학생처럼 문제 풀이에 골똘한 아이 옆에는 곤하게 잠을 자는 학생도 있다. 언뜻 산만한 것 같지만 나름 질서도 있다. 옮겨야 할 짐이라도 있어 손이 필요하면 서로 벌떡 일어나 나르기도 하고 나이 많은 오빠 누나들은 동생들을 챙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모아 무료로 방과 후 수업을 합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홈스쿨링을 택한 아이들까지 합쳐 삼십여 명이 모였으니 대가족이죠. 엄마는 하나인데.” 한전이는 엄마 덕분에 형제가 늘어 외롭지 않게 자란 셈이다. 미국에서 결혼한 신선영 씨는 한전이가 여섯 살 때 이혼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우리 고유문화에 애착이 컸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데도 큰맘을 먹어야만 했다. 집안 망신 말고 조용히 미국에서나 살라는 가족들의 타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귀국해 적잖은 나이에 10년 후의 꿈을 위해 상담과 신학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시작한 소년원 봉사는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불화로 마음이 황폐했다. 아무리 좋은 말을 건네도 차갑게 튕겨져 나오는 반응이 허탈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도 이혼하고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며 솔직하게 얘기하자 그때부터 아이들이 마음을 열더란다. 왜 아이를 버리지 않았느냐는 냉소와 함께. “아이들이 꿈이 뭔지도 모르고 왜 꿈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는 게 가장 마음 아팠어요. 제도권 학교는 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보듬기는커녕 오히려 편견의 희생양으로 만들었죠. 무관심 속에 모두를 똑같이 다루기만 하는 교육은 폭력에 가까운 거예요.” 그는 서울의 한 유명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소년원 아이들이 떠오를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얼마 안 가 그의 기억 속에 ‘달동네’로 남아 있던 서울의 행당동을 찾았다. 학교에 적응 못해 갈 곳 없거나 보살피는 어른이 없어 학습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아이들의 엄마이자 선생님을 자처한 것이다. 진짜 자신이 할 일을 찾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초등학교를 나왔는데도 1분이 60초란 것을 모르거나, 구구단을 이해 못해 369게임을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죠. 일상을 같이하며 관심을 두고 아이들을 알아가는 게 교육의 시작이자 끝이에요. 그러면 아이들은요 신기하게도 영어, 수학은 하지 말래도 붙잡고 해요.” 올겨울 신선영 씨는 고민이 크다. 동네가 재개발될 예정이라 보금자리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 스무 평 이상 공간을 찾아야 하는데 서울시 지원비로는 턱없다. 그래도 아홉 평 공부방에서는 오늘도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따뜻한 밥 한 끼와 함께할 꿈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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