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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건 불출마’ 정가 반응

    ‘고건 불출마’ 정가 반응

    고건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청와대와 여야,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대선정국의 유불리를 가늠하느라 분주했다. 한때 고 전 총리를 겨냥해 각을 세웠던 청와대는 16일 그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이런 때일수록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예비 후보였던 고 전 총리에 대해 청와대가 논평을 하는 것 자체가 자칫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열린우리당은 통합신당 논의 등 향후 정계개편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상호 대변인은 “여당으로서는 잠재적 연대 대상으로 생각했고 인품이나 능력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분이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은 “대통합의 중요한 한 축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와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을 공유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의 한 측근은 “정 전 의장이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며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전했다. 당분간 함구하겠다는 자세다. 한나라당은 고 전 총리의 중도하차로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여당 지지자들을 결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유기준 대변인은 “고 전 총리가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며 “국민을 위해 계속 봉사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도 일제히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고 전 총리의 불출마에 따른 대선구도의 격변이 그다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2005년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목포대의 재경 동문회 초청으로 신년회에 참석,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과 관련,“나에게는 선임 시장이기도 하고 훌륭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인데 당황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앞서 오전 서울 등촌동 서울신기술창업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을 전해 들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캠프 대변인인 한선교 의원은 “아쉽다. 비록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나지만 국민통합과 이 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동아시아 미래재단의 신년 인사회에서 “훌륭하신 분인데 앞으로 나라를 위해 하실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계개편의 밑그림’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유종필 대변인은 “고 전 총리가 평소 내세웠던 중도개혁세력 결집의 목표는 민주당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인데 아쉽다.”고 밝혔다. 이종락 구혜영기자 jrlee@seoul.co.kr
  • K리그 구단들의 ‘반기’

    프로축구 K-리그 전 구단이 올림픽대표팀 선수 차출에 불응하겠다고 결의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14개 프로구단 단장들은 1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개최된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21일 개막되는 카타르 8개국 올림픽대표 초청축구대회에 소속 선수들을 일절 내보내지 않기로 결의했다.이에 따라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16일까지 특단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날 밤 10시35분 카타르행 비행기에 아마추어 선수들만 태워 떠나야할 상황에 몰렸다. 이같은 파국에 이르게 된 데는 ‘히딩크 신화’에만 젖어 프로 선수들을 ‘곶감 빼먹듯’ 차출하는 협회의 일방적인 행태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2005년(본프레레호)과 지난해(아드보카트호) 연초에도 대표팀은 전지훈련을 다니면서 프로팀들이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기회인 동계훈련을 ‘반쪽짜리’로 만들어버렸다. 한 구단 단장은 “선진적인 프로구단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홍역”이라고 이번 사태의 의미를 함축했다. 그는 “협회가 K-리그 단장들과 선수 차출 문제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 있는데 스스로 어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단장이 “협회는 항상 ‘이번만….’이라고 했지만 대회가 끝나면 딴소리였다.”고 항변한 것도 그만큼 협회에 대한 앙금이 쌓여있었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11월 이란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예선전 원정을 앞두고는 베어벡 감독과 성남, 수원 두 구단이 힘겨루기를 하다 한밤중 선수들이 대표팀 소집에 응하는 소동을 빚었다. 베어벡 감독은 이때 어렵게 데려간 김두현(성남)을 정작 경기에 내보내지 않아 구단들의 감정을 악화시켰다. 축구협회는 또 지난해 11월 베어벡 감독이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협력하면서 구단들이 카타르 대회에 힘을 보태기로 구두합의했다고 주장하지만 구단들은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카타르 대회는 월드컵, 올림픽과 달리 강제차출 규정이 없고 구단과 합의될 경우에만 72시간 전 선수를 소집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구단들의 단호한 대응에 축구협회는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김호곤 협회 전무이사는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전력 점검 차원에서도 카타르 대회 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16일 오전 11시 열리는 프로축구연맹 대의원 총회에서 원만한 타협을 호소했다. 막후 설득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축구계 안팎에선 어떤 식으로 이번 사태가 매듭지어지든 다시는 대표선수 차출을 앞두고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도록 큰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협회도 ‘국가 대사’만 내세우기보다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하고 구단들도 힘겨루기보다 상생의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나온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법따로 현실따로] (4) “학교폭력 추방 우리손으로”…제천 의림여중 사례

    [법따로 현실따로] (4) “학교폭력 추방 우리손으로”…제천 의림여중 사례

    ‘또래상담’이 있었다면 안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예요.”13일 충북 제천시 의림여중에서 만난 강유진(16·3학년)양은 안산 여중생폭행 사건소식을 안타까워했다.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학교폭력이 왜 일어나느냐고 묻자 여중생들은 “우리끼리는 사소한 일로 싸움이 시작돼요. 기자 아저씨는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라면서 자신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 “또래끼리 고민 상담… 폭력 40% 줄었어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하루종일 지켜보지만 중학교에서 선생님은 자신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자신들 끼리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의림여중은 학생끼리 잘 통한다는 데 착안해 ‘또래상담’을 실시하는 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9월 전국에서 최초로 자체개발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인 또래상담을 실시한 이후 폭력이 40% 가량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래상담은 30여명의 학급의 학생들을 10명씩 묶고,1명의 ‘또래 리더’를 뽑아 일주일에 한 차례씩 또래들과 학교폭력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는 것이다. 이재희(가명·16·3학년)양은 또래상담으로 폭력을 모면한 케이스. 재희는 같은 반 친구 선영(가명)이 등 10여명과 함께 잘 어울려 다녔는데, 선영이는 장난으로 친구들 앞에서 재희를 무시했다. 재희와 선영이는 감정싸움을 벌이다 욕설과 신체적인 충돌까지 생겼다. 선영의 친구 장민경양은 “사소한 오해에서 불거진 재희와 선영이의 갈등이 자칫 폭력으로 확대될 지경에 이르자 우리는 두 친구를 각각 달래면서 서로의 입장을 대신 전달해줬어요. 이젠 재희와 선영이는 다시 친해졌답니다.”고 설명했다. 학생회장이자 또래리더인 이지영(16·중학교 3학년)양은 “상담을 원하는 친구와는 수시로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아 약속을 잡는다.”고 말했다. 지영이는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성적과 이성문제, 외모, 부모님과의 관계 등 소재도 다양하다.”면서 “대화를 해보면 폭력 사건의 원인이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해지는 문제와 말투 같은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 김성희(16·중학교 3학년·가명)양은 “학교폭력이 예전보다 40%는 준 것 같다.”고 밝혔다. 또래리더 하호정(16·중학교 3학년)양은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세세한 행동을 파악할 수 없지만 또래끼리는 친한 친구가 서로 갑자기 어울리지 않거나, 옆 친구가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인 이용식(30)씨는 “또래상담 프로그램으로 교사는 하루 동안 반에서 이뤄진 일을 파악할 수 있고, 미리 학교폭력에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김석호 의림여중 연구부장은 “또래리더는 교우관계가 좋아서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고, 입이 무거워 민감한 사항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학생을 뽑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또래들로부터 추천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학업 성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래리더는 상담 뒤 일지를 간단하게 정리해 담임교사에게 전달한다. 교사는 학생끼리 해결하도록 가능한 모른 체하다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개입한다. 학생끼리 자율해결이 원칙이라는 얘기다. 학교폭력 예방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어른 중심의 문제해결 보단 또래 친구 활용이 더 효과적” “학생은 교사나 부모보다 함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주변 친구에게 고민을 잘 털어놓습니다.” 의림여중의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연구부장 김석호(45) 교사는 “학교폭력은 친구끼리는 다 아는 일”이라면서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와는 상대적으로 폭행당한 학생과 대화가 적어 눈치를 채지 못해 학교폭력이 은폐되기 쉽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른이 나서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른이 아닌 학생이 중심이 돼 교내 폭력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중에 교육부의 학교폭력예방교육 영상물에서 또래 리더의 상담을 착안했다. 김 교사는 “어린 학생들이 속으로만 끙끙 앓지 않고 속시원히 밝히게 하는 게 사건을 미리 방지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또래상담이 시행 초기여서 여전히 미진한 점이 많다.”면서 “또래리더들이 전문 교육기관에서 1박2일간 상담기술을 배웠지만 어려서 아직은 상담에 서투르고, 학생들을 재교육시킬 만큼 전문성을 갖춘 교사도 적다.”고 말했다. ■ “진단서 등 증거 확보… 전문가와 상의를” 학교폭력 피해학생은 기 죽지 말고 가해자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경기도 안산경찰서 강달원 여성청소년계장은 “학교폭력은 말다툼과 친구 사이 오해 등 작은 원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결국 폭력 사태로 번져 피해자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정희 상담사는 “피해자는 속으로만 앓지 말고 가해자에게 받은 고통과 부당함을 설명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을 적극적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주변 친구 혹은 어른과 상담하거나 청소년 상담실을 찾는 게 현명하다. 그래도 처리가 안 되거나 집단 폭행과 따돌림 등을 당하는 경우 부모님과 교사의 상담이 필요하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장맹배 사업국장은 “만일 학교폭력 피해를 다시 당할 위협을 느낀다면 부모님과 친구들과 반드시 동행하고 위협의 정도가 더 심해지면 전문경호업체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심한 피해가 우려되는 학생에게는 무료 경호 서비스를 해준다. 학부모는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사실을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봉혜경 사무국장은 “창피해 말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최대한 먼저 안정시켜라.”면서 “나중엔 기억을 못 할 수 있어 처음 들을 때 녹음이나 기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국민대책협의회 조성희 간사는 “외상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진단서나 의사소견서 등도 증거 확보 차원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 측과 만날 때 개인적으로 만나기보다는 ‘학교폭력 대책 자치위원회’등에서 공식적으로 만나라고 조언한다. 봉 국장은 “흥분된 상태에서 만나면 일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시행령이 법 못따라 첫 단추 잘못끼워져” 유명무실한 학교폭력예방법은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잉태됐다.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 등의 정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이 심각해지자 2002년 국가청소년위원회와 시민단체가 법률 초안을 마련했고,2004년 의원 발의 형식으로 법률이 만들어졌다. 교육부가 시행령을 만들었다. 당시 법률 초안 작업을 주도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교육부가 외부기관의 개입을 피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에서는 외부기관 개입이 가능하게 했지만 시행령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심리상담과 일시보호, 치료를 위한 요양, 학급 교체, 전학 권고 등의 법 규정이 있지만 시행령에는 시행방법이 정해지지 않아 교육현장에선 실천이 불가능했다는 게 신 위원장의 지적이다. 동국대 박병식 교수는 “2002년에 청소년위원회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청예단은 교육위원회에 각각 법률안을 제출했는데, 결국 교육위에서 일괄적으로 통합 처리키로 결정됐다.”면서 “교육부가 외부기관인 청보위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상임위 지정에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효성을 잃은 이유에 대해 지금도 네탓 공방이 계속된다. 시민단체 등은 “학교 문제를 독점하려는 교육부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교육부는 “교육 현장과 법을 잘 모르는 시민단체가 어설프게 법을 만들었다.”고 떠넘긴다. 교육부 관계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이 법을 적용한다’는 조항으로 학교폭력 사건이 경찰서로 넘어가면 법은 무의미해졌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연구관을 지낸 김학일 경기도 평촌고 교감은 “학생의 성폭력 사건을 자치위원회서 다루면 사건이 학교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성폭력이 제외된 배경을 설명했다. 시민단체는 현장에서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허술하게 이뤄지는 이유가 시행령에서 필수 교육시간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특별법 지위 부여해서 교내 모든폭력 대응을” 사문화되다시피한 학교폭력예방법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의 범위가 확대돼야 하고, 피해 학생에 대한 보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학교폭력이 형법·성폭력범죄처벌법 등 다른 법률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학교폭력예방법 내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특별법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교육 당국과 시민단체·정치권 등은 현행 법을 이처럼 손질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학교폭력예방법과 시행령에서는 A학생이 폭행과 협박, 집단 따돌림, 모욕 등으로 B학생에게 신체와 정신, 재산에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학생과 일반인 사이에 발생한 폭행은 포함되지 않고, 최근 급속하게 늘고 있는 성폭력·사이버폭력도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학생인 경우로 규정한 법 내용을 학생을 상대로 한 폭행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처리한 조치에 피해학생 측이 만족하지 않고 경찰에 고소하면 자치위 결정사항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정치권과 교육부, 시민단체 모두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특별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학생의 보호’ 규정 강화도 검토대상이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가해학생 측에 치료비를 청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치료비를 우선 부담하고, 나중에 가해학생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장이 자동으로 교내 자치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규정도 개정대상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신순갑 위원장은 “학교의 관리가 소홀해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과연 자치위원장(교장)이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냐.”면서 “위원들의 직선으로 위원장을 뽑는 게 옳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기피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평촌고 김학일 교감은 “교육부가 수당을 자체적으로 높일 수는 없기 때문에 승진 가산점을 주면 충분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박병식 교수는 “자치위원회가 내린 조치에 대해 가해 학생이 불응할 때에 대책이 없다.”면서 “이런 경우 자치위를 다시 열어 가중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거나 정학이나 퇴학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근거를 폭력예방법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폭력피해 체크리스트 1. 아프다거나 학교가기 싫어한다. 2.‘전학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3. 상처 혹은 멍자국이 생긴 이유를 물어보면 운동 등의 이유를 둘러대고 자세한 이야기는 피한다. 4. 소지품와 운동화, 옷 등이 자주 망가져 있거나, 잃어버렸다고 한다. 5. 노트 등에 욕설과 폭언, 협박,‘죽고 싶다.’는 낙서가 있다. 6. 용돈을 요구하는 횟수가 늘거나 몰래 돈을 가져간다. 7. 풀이 죽어 있거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다. 8. 친구나 선배한테 전화오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9. 잘 때 식은 땀을 흘리거나 잠꼬대를 한다. 10.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다. <출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기획탐사부 이창구 강혜승 유지혜 박지윤기자 tamsa@seoul.co.kr ●5회에서는 범죄피해자구조법·금융기관직원 생활안정지원 법률과 자전거 이용 관련법, 임의동행의 문제점과 실태 등을 다룹니다. ●기획탐사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02)2000-9261∼9263 또는 tamsa@seoul.co.kr
  • [2007 이들을 주목하라] (8) 끝 악바리 연습벌레 김민희

    [2007 이들을 주목하라] (8) 끝 악바리 연습벌레 김민희

    “올해 주니어 탁구 대표에 뽑힌 뒤 만리장성을 넘는 첫번째 주니어 여자 선수가 되겠습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김민희(16·호수돈여중3)는 새해를 맞는 각오가 남다르다. 지난해 고등학생 언니들을 모두 제압하고 3관왕도 차지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중국 주니어 대표에게 번번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 지는 것을 못 참는 ‘고약한’ 성격 탓에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을 못 이룬다. ●악발이 꿈나무 김민희는 올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묵묵히 구슬땀을 흘린다.“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 나가 중국 선수와 겨뤄 보니 실력차를 절실하게 느꼈어요. 중국 선수들은 볼에 회전을 주면서도 실수하지 않고 랠리하는데, 나는 힘으로만 세게 치니 실수가 많아요.”소녀답지 않은 조숙한 면도 있다.7∼8시간의 맹훈련이 끝나도 쉬지 않는다.1시간은 개인 연습을 더 해야 직성이 풀린다. 또래보다 파워가 좋다고 하지만 팔굽혀펴기를 매일 150개는 해야 한다. 집에 가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일지를 쓰면서 하루 연습의 장·단점을 되돌아본다. 컴퓨터로 탁구 경기 동영상을 다운로드, 선배들의 모습을 분석한다. 그것도 모자란다. 거울 보고 스윙연습을 30분은 해야 잠이 온다. ●‘탁구는 내 인생’ 민희는 시작부터 탁구와 ‘찰떡 궁합’을 과시했다. 도마초교 2학년 때 탁구선수인 언니 진희(호수돈여고2)와 처음 똑딱이 볼을 쳤지만 예사롭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도마초교 최홍규 감독이 김민희의 소질을 단번에 알아보고 권유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성격도 잘 맞는다. 자신의 별명이 “다리가 짧다고 ‘숏다리’”라고 시원하게 말해 물어본 사람을 당황하게 할 정도로 활발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 생각한 뒤 라켓을 다시 잡는 침착함도 엿보였다. 김민희는 오른손 셰이크 올라운드형으로, 포핸드·백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장점이다. 체력과 스피드도 뛰어나다. 이건섭 호수돈여중 코치는 “탁구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노력하는 선수다. 기술적인 면에서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체계적인 지원과 구력만 쌓이면 탁구계를 이끌 재목”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김민희 프로필 생년월일 1991년생 4월8일 대전생/ 체격 162㎝,55㎏/ 발사이즈 250㎜/ 가족관계 2녀중 둘째/ 별명 숏다리/ 취미 음악듣기(휘성, 씨야) ‘싸이질’/ 학력 대전 도마초등-호수돈여중/ 존경하는 선수 왕리친(중국·세계1위)
  • [프로농구] OK! SK 홈 6연패 탈출

    ‘베스트 5’가 10점 이상 고른 득점을 올리는 한편,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한 SK가 안방 6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모비스는 가장 먼저 20승 고지를 점령했다. SK는 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경기에서 ‘뱅뱅’ 방성윤(30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의 알토란 같은 활약에 힘입어 전자랜드를 98-95로 잡았다. 전날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선두 모비스의 목에 패배의 방울을 단 SK는 이날도 전자랜드를 제물로 홈 6연패에서 벗어나며 신바람을 냈다.12승18패의 SK는 KTF에 패한 KCC를 10위로 밀어내고 꼴찌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수비에서 허점이 많았던 SK는 끈적끈적한 압박으로 전자랜드를 맞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방성윤. 평소 득점은 많지만 슛을 난사하는 스타일이었던 방성윤은 슛을 무척 아꼈다.1,2쿼터까지 겨우 7개밖에 날리지 않았다. 적극적인 협력 수비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루스볼을 따내기 위해 몸을 날렸다. 공격에선 동료에게 기회를 열어줬다. 팀 플레이에 힘쓰다 보니 공격 집중력이 살아났다.86%에 달하는 야투 성공률로 13점을 쌓아올려 SK가 전반을 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SK는 3쿼터에 전자랜드가 턴오버 4개를 거푸 저지르는 사이 루 로(16점)가 골밑을 휩쓸고 문경은(14점·3점슛 3개)이 3점포 2개를 꽂아 점수를 10점차 이상 벌렸다.4쿼터에서 루 로가 5반칙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상대의 거센 추격을 받아 2점차까지 쫓겼다. 하지만 방성윤이 고비마다 득점에 성공해 승리를 지켜냈다. 한편 원주 경기에서는 양동근(29점 6리바운드 7어시스트), 크리스 버지스(22점 8리바운드), 크리스 윌리엄스(18점 6리바운드 7어시스트)의 삼각 편대를 앞세운 모비스가 동부를 85-66으로 대파했다. 모비스는 20승9패로 단독선두를 굳게 지켰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황수정 “지금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엔…”

    황수정 “지금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엔…”

    “지금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난 2001년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되면서 연예계를 떠났던 탤런트 황수정(36)이 5년 만인 5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오후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열린 드라마 ‘소금인형’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황수정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시종 침착한 모습을 유지했다. 아래위 흰색 블라우스와 바지 차림으로 정갈한 이미지였다. 그는 사회적 물의를 빚은 질문에 대해 핵심을 피해가며 내내 “열심히 하겠다.”로 대신했다. 그 때문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나 당시 사건에 대한 후회의 심경 등을 기대한 취재진을 당황하게 했다. 그는 ‘소금인형’에서 경제적 문제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주부 차소영 역을 맡았다. 지난 2001년 8월 막을 내린 MBC TV드라마 ‘네자매 이야기’ 이후 마약사건으로 연예계를 떠난 그는 지난해 11월 왁스의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연예계 복귀를 준비했다. 지난 1994년 SBS 1기 공채 MC로 데뷔한 황수정은 SBS TV 드라마 ‘해빙’ ‘연어가 돌아올 때’ ‘로맨스’에 이어 MBC TV ‘허준’에서 ‘예진 아씨’를 연기하면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이어 MBC TV ‘엄마야 누나야’와 ‘네자매 이야기’에 출연했었다. 그는 복귀 소감에 대해 “많은 분들이 배려해 주셔서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며 “많은 분들이 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여러분께 ‘차소영’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김미화 5일 성균관대 교수와 결혼

    김미화 5일 성균관대 교수와 결혼

    ‘쓰리랑 부부’의 김미화(43)가 대학 교수와 재혼한다. 김미화는 3일 오후 SBS TV ‘김미화의 U’ 생방송 직후 기자들과 만나 5일 낮 서울 모처에서 양가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윤승호(48) 교수와 결혼한다고 밝혔다. 가수 홍서범의 친구로 처음 만나 몇년간 편안한 오빠, 동생으로 지내온 두 사람은 지난 2001년 김미화가 윤 교수가 재직중인 성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면서 더욱 가까워졌고 서로 자녀들을 만나며 사랑을 키웠다. 그녀는 “둘 다 처음 하는 결혼이 아니라서 조용하게 치르고 싶었는데 갑자기 알려져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당황스럽다.”면서 “여생을 서로 아껴 주고 사랑하며 예쁘게 살겠다.”며 축하해 달라고 덧붙였다. 둘을 사랑으로 묶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홍서범·조갑경 부부다. 이들과 절친한 김미화가 홍서범의 친구 윤 교수와 친해졌고, 재혼을 결심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김씨는 “그분이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고 저의 딸 둘까지 합치면 아이들이 네명이 된다.”면서 “모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아이들로 키울 것이고 저 또한 성숙하고 좋은 엄마, 방송인으로 남겠다.”며 웃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문득, 멈춰 서서 이야기 하다- monologue Quartet/김정용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병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 잠시 휠체어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사람: (동시에)저기……. 짧은 암전. 명일: 그녀를 처음 본 건 두정: 치악산이었습니다. 신흥: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신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신흥: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명일: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해질무렵이었는데, 지금도 기억나요. 두정: 그날 따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명일: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들이 뭐라하건 전 그때 운명을 느꼈습니다. 두정: 이렇게 될 운명이라 그랬던 걸까요? 신흥: 앞이 깜깜하더군요 신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 모습만 보이는 거 있잖아요. 신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수습해야 할지, 그때만 생각하면……. 두정: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일은. 명일: 그날이 제 생애에서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난 날입니다. 신내: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죠? 신흥: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어떻게 마누라 얼굴을 봐야 할지, 술이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술은 입에도 못 대고……. 두정: 술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산행하는 날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내려와서 마시면 모를까. 명일: 시간 되시면 저랑 술 한 잔 하실래요? 명일 주변이 밝아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명일: 이 말이, 제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어요,‘술 한 잔 하실래요?’ 참 바보 같았죠, 머릿속에 별별 말이 다 떠돌았는데, 막상 나온 말이 그거였어요,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런데 그녀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한잔만요?’(미소) 그렇게 시작 했어요. 우리들. 정말 행복했어요, 너무 행복해서 불안할 정도로,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일만 계속 생기면 왠지 불안해지고 그러는 거. 육상 경기복 차림의 신내 등장. 얕은 숨으로 몸을 푼다. 명일: 하지만 그런 불안도 그녀의 미소 앞에선 힘을 잃고 말았죠.(신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우린 언제나 함께였어요, 몸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마음만은 늘 붙어 있었죠. 신내: 그만해, 더는 못 들어주겠다. 그래서 대학 떨어지면 누구 탓하려고?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많이 놀랐어요, 원래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는 편이시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리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제가 원하는 일에 반대 한번 안 하셨던 분인데, 아빠도 제가 고3이 되는 게 스트레스가 되셨나봐요, 사실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으실 생각조차 안 하세요 명일: 그런 우리를 하늘이 시샘했는지 신내: 그만해 명일: 불안함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신내: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명일: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신내: 낼 모레가 마지막 시합이에요. 오빠가 와 줄까요?(호루라기 소리) 예, 가요! 암튼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급하게 달려 나간다.) 명일: 다 제 잘못이에요, 급하게 달려 나가는 연수를 잡았어야 했는데, 연수가 제 눈앞에서 붕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나뒹굴었어요,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그렇게 몇 바퀴를 굴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더군요. 명일: 수술실 앞에서 내내 기도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두정: 멀리서 누군가 절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떴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얀 천장, 그보다 더 하얀 형광등뿐이었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일: 잠깐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저 세수좀 하고 올게요. 죄송합니다.(나간다.) 두정: 이제 에베레스트는커녕 문턱하나 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고, 설령 잘못 되더라도 열심히 재활하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제 몸은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저는 걷지 못할 겁니다. 이제 에베레스트는 제게 있어 그림엽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일 뿐입니다. 신흥: (통화하며 등장)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내 말을 못 믿어, 다 잘 될 테니까 너무 걱정마……, 나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일로 안 무너져……, 여보 나 믿지? 그래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리고 내 전화 말고는 다른 전화는 절대 받지마……, 알아, 알아 당분간 친정에 가 있어, 애들은……, 그래, 너무 걱정마.(끊는다.) 두정: 너무 걱정마, 모두들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인간이란 동물은 원래,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한 법이니까요. 이렇게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관대함이란 게 무관심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요,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시죠? 그것도 다 여러분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입니다.(사이)저도 며칠 전까진 여러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절망이란 놈은 순식간에 저를 이곳에 앉혀 놓고는 두 다리를 옭아맸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신흥: “너무 걱정 마”,“걱정하지 마세요.” 도대체 이 말을 몇 사람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걱정 말라고 당부하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웃긴 건, 그 어느 누구도 저에게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저인데도 말이죠. 가해자 취급만 당했어요, 물론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저 잘못 했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저만 좋자고 프로젝트 진행시킨 겁니까! 다 같이 잘되자고 한 일인데, 일이 틀어지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로 돌변하더군요, 같이 진행한 동료들까지도 말이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두정: 다 필요 없습니다. 신흥: 다 필요 없어요. 신내: (등장)꽃이 필요할 거예요, 그쵸? 신흥: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두정: 전……, 이곳에서 탈출할 생각입니다. 신흥: (약병을 꺼낸다)저만 없어지면 됩니다. 두정: 제가 없어지면 모두들 걱정하는 척하다가 금세 잊어버릴 겁니다. 다리병신 하나쯤 없어졌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신내: 아니야, 그건 아니야.(두정 나간다.) 여자가 먼저 꽃을 주는 건 좀 그렇겠죠? 신흥: (병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이게 왜 이래. 신내: 어떡하지? 신흥: 어떡하지? 신내: 오빠가 와주긴 할까요? 신흥: 깨버릴까? 신내: 용기내서 말하긴 했는데 대답을 못 들었거든요 신흥: 용기가 깨질 때 유리 파편이 섞이면 먹기 힘들 텐데.(열심히 뚜껑을 돌린다.) 신내: 다시 한 번 말해 볼까요? 이상한 애로 보이면 어쩌죠?(사이) 안 되겠어요. 신흥: 안 되겠어. 수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신내: 무슨 수를 써야지……. 명일, 나가는 신흥과 교차되며 들어온다. 신내: 아하! 다시 말하기는 그러니까, 편지가 좋겠어요. 그렇죠? 좋은 생각이죠? 마지막 시합에 오빠가 와주면 더 힘내서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쓰는 거예요. 역시 솔직한 게 좋겠죠? 그래, 그래야겠어요. 명일: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신내: 편지 명일: 편지 얘기는 아직 안 하지 않았나요? 신내: 우선 펜하고 종이가 필요하겠죠? 명일: 적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듣기만 하시면 안 될까요?(신내,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신내, 나간다.) 그럼 얘기가 나왔으니 편지 얘기를 할게요.(잠시 머뭇거리다) 사귀기로 한 날부터,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연애편지를 쓴 건 아니고요, 일기 쓰듯이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나 써서 메일로 보냈어요.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요, 단 하루도.(웃음)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어느날 술을 잔뜩 마셔서 떡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차 싶은 거예요, 하루도 빼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늦었지만 변명이라도 해볼 양으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죠, 그리고 메일을 쓰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수신 확인 창이 뜨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글쎄 제가 전날 밤에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무슨 말을 썼는지 궁금해서 메일을 열어 봤는데(피식거린다.) 그게,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고 그런 거 있잖아요.fhufhㅈ뎌???ㄷew 이런 거 (웃는다.) 더 웃긴 건, 제목이 뭐였는지 아세요? fhi롤fwqo어ㅈㅇ……. 명일, 말을 잊지 못하고 정신없이 웃는다. 무대 뒤에서 두정과 신흥의 절규가 들려온다. 명일: (무안해 하며)죄송합니다. 신흥, 두정 서로 반대편에서 등장 신흥, 두정: 이럴 순 없어 두정: 병원 정문도 못가서 잡혀버리다니. 신흥: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신흥, 두정: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내가 아무리 이런 꼴이 됐어도 두정: 병원문턱 하나 신흥: 병뚜껑 하나 신흥, 두정: 내 맘대로 두정: 넘지, 신흥: 열지-못하다니, 왜 하필 이런 일이 나한테 닥친 거야, 왜 하필이면 나냐구, 내가 뭘 잘못했게! 내가 바라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명일: 다시 시작하죠. 두정: 그만하자, 그만해,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내 꼴만 더 우스워지지. 두정, 신흥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신흥: (병을 내밀며) 저……, 이것 좀. 명일: 네? 두정: 뭘 봐! 휠체어 탄 사람 처음 봐! 명일: 네. 신흥: 죄송합니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병을 건넨다.) 두정: 씨발.(술병을 꺼내 마개를 따려한다.) 이건 왜 이렇게 안 열려 신흥: 잘 안 열리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명일: 무리라뇨, 전 괜찮아요.(사이) 알겠습니다. 내일 오면 되는 거죠? 같은 시간에 두정: (술병을 집어던진다) 젠장, 젠장, 젠장! 신흥: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사이) 안 열리면 할 수 없죠 뭐(병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아련한 음악 다시 흐른다. 명일, 천천히 무대를 돌고. 신흥 뚜껑을 열기 위해 애쓰며 퇴장, 두정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장, 신내 편지를 들고 등장, 음악이 끝나면 명일과 신내 각자 자리를 잡는다. 신내: 편지 다 썼어요, 들어 볼래요?(편지를 꺼내 읽는다.) 오빠 명일: 연수야, 야! 신연수 신내: 잘 지내고 계세요? 명일: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신내: 전 무지무지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오빠에게 했던 말 기억나세요? 명일: 기억난다. 너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신내: 죄송해요, 갑작스럽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쳐 버려서, 놀라셨죠? 명일: 아니야. 네가 미안할 건 없어, 붙잡아 주지 못한 내가 미안하지. 신내: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제 얘기를 못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편지를 써요. 저, 내일모레 있을 시, 도 대항 육상 대회에 시 대표로 나가게 됐어요, 아마도 제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요, 아빠가 육상을 못하게 하시거든요. 마지막 경기를 오빠가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힘이 불끈 불끈 날거 같아요 어쩌면 한국 신기록을 세울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아빠도 더는 반대 못하시겠죠.-제발 그렇게 됐으면-, 자라나는 한국 육상 꿈나무의 앞길을 열어 주세요, 네 오빠! 우리가 대기하는 곳이 3번 게이트 쪽이거든요, 그쪽 스탠드 앞쪽에 계시면 제가 오빠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꼭 와주셔야 해요, 오빠가 오지 않으면 저는 실망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꼴찌를 할지도 몰라요, 꼭 와야해요, 꼭 꼭 꼭. 명일: 가고 싶어, 그곳에…….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들려온다, 신내 재빨리 편지를 감춘다. 명일: 저 소리 들려? 우는 소리가 괴상하니까 분명 생긴 것도 이상한 새일 거라고, 확인해 보고 싶다고 몇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었잖아. 결국 확인도 못해보고…….(목이 멘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걸어서 등장. 두정: (버럭)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이 있어 없어!(신내 얼른 뛰어 나간다.) 그런 정신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응!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정말 실망이다. 네놈만은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같은 녀석은 에베레스트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 명일: 미안, 그때 널 잡았어야만 했는데. 두정: 에베레스트는 고결한 자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약해 빠지고 결점투성이인 인간에게는 절대로 그 하얀 살결을 허락하지 않아! 명일: 그렇지 않아, 다 내 탓이야. 두정: 그깟 집안일 때문에 술에 절어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말했던 꿈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사이) 그래, 나 이해 못한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지? 얼빠진 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어떤 인간인 줄 알아? 바로 너 같이 환경 탓, 상황 탓 하는 것들이야.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야. 별것도 아닌 일에 주저앉아 버리는 너 같은 놈은 필요없어!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무슨 염치로 훈련장에 나타난 거야, 나타나길. 다른 팀원들이 너 보면 사기 떨어지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명일: 제발 나타나줘,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내 앞에 나타나줘. 암전. 빛 속에 홀로 있는 신흥 신흥: (반쯤 줄어든 약병을 들고 허탈하게 웃으며)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겨우겨우 열어가지고 스무알을 넘게 먹었는데……, 뭐? 고통 없이 갈 수 있다고? 나쁜 새끼들.(꺽꺽댄다.) 이딴 걸 20만원씩이나 주고 산 내가 미친놈이지.(전화 벨이 울린다, 병을 내려놓고 전화를 확인하고는 배터리를 빼버린다.) 미안해 여보. 날 용서하지 마.(사이) 한심하죠? 저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습니다. 하기야 태어날 때부터 한심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보니까,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한심해지는 거지.(사이) 돌아가신 저희 아부지께서 술만 드시면 어린 저를 붙잡고 늘상 하시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두정: (빛 속에서 등장)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사라진다) 신흥: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알겠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아부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넌 어른이 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동물이 바로 어른이란 동물이다.” 백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사이)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수습할 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빌어먹을 죽지도 못하고, 어떡해야 하죠? 신내: (빛 속에서 등장) 그럴 땐 초콜릿을 먹으면 돼요, 그것도 아주 진한 다크 초콜릿, 아무리 우울해도 한두 조각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한두 번 혼난 것도 아니고 뭐. 괜찮아요. 초콜릿 하나면 땡이에요.(사라진다.) 신흥: 그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닙니다. 근데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예? 그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제가 아픈건 딱 질색이라. 명일: (목소리) 연수야, 연수야 신흥: 쉿! 지금 누가 제 이름 부르지 않았나요? 설마 놈들이 여기까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잡히기라도 하는 날엔……,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명일: (목소리)아! 꿈이었구나. 신흥: 윽!(배를 움켜쥔다.) 아 배야, 갑자기 왜 이러지? 뭐 먹은 것도 없는데. 화장실, 화장실……, 크 아퍼, 먹은 거라곤 이것뿐인데,(무언가 떠올라.) 약! 이 약! 개새끼들.(배를 부여잡고 달려 나간다.) 빛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약병. 빛이 점점 번져 공간을 환하게 만든다. 밝아지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신내. 신내: 이 시간이면 항상 이곳을 지나가는데 (두정 등장) 어! 태령 오빠! 두정: (신내의 맞은편에 앉는다.) 왜 불러낸 거야? 신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드릴 게 있어요. 두정: 뭔데 신내: (편지를 건네며) 이거 두정: (받으며) 이게 뭔데? 신내: 나중에 읽어 보세요(얼굴이 붉어진다.) 두정: (읽은 후) 각서……, 야! 지금 너 장난하냐? 신내: 아니에요, 안 빨개요 두정: 이딴 종이 쪼가리를 어떻게 믿어? 신흥 한손에 휴지를 들고 등장, 처절한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테이블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신내: 전엔 죄송했어요, 제 말만 하고 멋대로 가버려서. 두정: 죄송하다면 다야? 신내: 예, 그치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요. 두정: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신내: 오빠. 두정: 이제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더 이상 난 네 대장이 아니다 신내: 호, 혹시……,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두정: (단호하게) 없어, 추호도. 난 한번 결정한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꾸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널 죽도록 패주고 싶지만 옛정이 있어 참는다. 신내: 다행이다.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두정: 더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훈련중이었거든, 네놈이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그 훈련 말이다. 신내: 그러세요, 예, 가보세요, 편지 꼭 읽어 보시고요, 두정: 두 번 다시 널 만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각서를 구겨 테이블에 던진다.) 신내: 저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신내 꾸벅 인사하고는 떠나는 오빠(두정)의 뒷모습을 눈으로 는다. 두정 나간다. 신내는 오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신흥 허겁지겁 등장, 숨을 곳을 찾는다. 급하게 숨을 곳을 찾고는 몸을 숨긴다. 신흥: (숨을 몰아쉬며)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마주칠 건 뭐야, 그나마 나오는 길에 마주쳤기에 망정이지 들어가는 길에 마주치기라도 했어봐. 아유아유 죽겠네.(두정이 버렸던 병을 발견) 뭐야? 새거잖아.(너무나 쉽게 병을 열고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제자리에 놓는다.) 햐 시원하다.(허탈하게 웃으며) 안좋은 일만 생기는 것 만은 아니구나.(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아부지 말처럼 어른이 돼버려서 이렇게 된 걸까요? 가장 더럽고……, 후후후.(사이) 네? 어른이 되기 전에요? 글쎄요, 어른이 되기 전이라……. 그러고 보니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땐 뭐, 다들 그렇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랬는데, 샐러리맨 따위가 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때의 저한테 미안한 생각까지 드네요,(사이) 그럼요, 뭐였냐면요……, 막상 말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웃지 마세요, 가수예요, 가수 (웃음) 웃기죠? 가수를 꿈꾸던 청년 도망자 되다! (웃음 소리속에 점점 슬픔이 담긴다.) 명일: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 꿈이었어, 꿈. 연수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연수야.(컴퓨터를 켠다, 윈도 시작음악) 언제까지 너한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언제 와서 이 편지 읽어 줄래,(창 뜨는 소리, 몹시 놀란다.) 어, 어! 신흥: 아, 아! (배를 움켜쥐고) 또야? (뛰어 나간다.) 명일: (흥분) 틀림없어요. 그녀가 읽은 거예요. 그녀가 읽은 거라고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메일을 읽어요, 안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게 아니었던 거예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짧은 사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신흥: (등장) 지독한 놈들, 왜 화장실 앞에서 죽치고 있는 거야, 아, 미치겠네.(반대쪽으로 달려 나간다.) 명일: 봤죠, 네 봤어요, 근데 제가 본건 사고 나서 실려 가는 것까지였어요, 죽은 연수를 본 건 아니잖아요. 장례식요? 어……, 그건……, 아 그래그래, 필요했던 거예요 장례식이, 연수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죽지는 않았겠지만 몸이 성치는 않을 거예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영화나 소설 보면 죽은 걸로 하고 숨어서 지내는 거, 그래 그거야, 그거.(짧은 사이) 비약요? 그건 선생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어요, 연수가 살아있어요! 제 우울증 따위는 한방에 끝났다고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수를 데려가지 않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요 살아 있기만 하다면요, 신흥: (퀭한 얼굴로 등장) 살았다……. 두정: (목소리) 야! 야! 신흥: (소리 나는 쪽을 보며) 젠장! (도망친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낮은 목소리로) 거기 서! 뭐 나한테 속이는 거 있지? 틀림없어,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뭐야? 사실대로 말해봐. 뭐야 대체? 명일: 예? 두정: 뭐라고 했어 지금? 다시 한 번 말해봐. 명일: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지금은 연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짧은 사이) 선생님! 왜 자꾸 그러세요? 선생님은 연수가 살아 있는 게 싫으세요? 비밀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연수밖에 없어요, 그런 건 철저한 애였어요, 수신확인이 됐다는 건 연수가 열어 봤단 소리예요.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두정: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이해한다. 알았어, 알았어,(짧은 침묵) 잘 가라, 참 그리고 앞으론 문병 같은 거 오지마라, 훈련에만 전념해, 나 들어간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연수를 찾아봐야겠어요.(나간다.) 두정: (가다 멈춰서) 개자식들! 신흥: (온 몸엔 상처, 옷은 쥐어뜯겨 엉망인 채로 등장) 개새끼들! 두정: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가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 자식을 끌어들여? 신흥: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패냐 두정: 씨발, 씨발 씨발,(거친 웃음) 신흥: 아, 진짜 아프다, 돈 몇 푼에 아주 사람을 죽이려고 환장을 했구먼, 도망치지 않았으면 골로 갈 뻔했네.(어이없다는 듯이 웃다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씨발 새끼들, 아부지, 여보, 나 아퍼.(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두정: 그만해, 그만해!(울먹인다.) 두정과 신흥의 울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신내 허겁지겁 들어온다. 신내: 뭐하는 거예요 대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얼른 일어나요 (두정, 신흥 울음을 그친다.) 자 초콜릿 (두정과 신흥 앞에다 놓는다.) 이거 먹으면 힘나거든요, 씹어 먹지 말고 천천히 녹여 먹어요.(사이) 자 가요, 가서 멋지게 1등하고 돌아오면 되잖아요. 그럼 분명 코치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얼른 일어나세요. 시간 다 됐어요. 우리 몸도 풀겸, 경기장까지 뛰어 가요! 오케이.(나간다.) 두정, 신흥 꾸역꾸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흥은 두정의 자리로, 두정은 신흥의 자리로 간다. 둘은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초콜릿을 발견하고 집어든다. 신흥: 아깐 음료수 이번엔 초콜릿? 두정, 신흥: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초콜릿을 본다.) 뭐야? 둘,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는다. 마법같은 음악 잠깐. 알 수 없는 미소가 둘의 얼굴에 감돈다. 두정, 신흥: 그래, 힘내자, 신흥: 약을 스무 알씩이나 먹고, 그렇게 맞았는데도 안 죽었는대. 두정: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던 거야, 발버둥 쳐 봤자지. 두정, 신흥: 뭔가 길이 있을 거야. 두정: 그렇지? 신흥: 그렇지. 둘, 서로 반대편으로 퇴장, 신내 다른 곳으로 들어온다. 신내: 자! 우리 파이팅하는 거예요! 코치님도 병원에서 틀림없이 우릴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몸을 풀며 두리번거린다.) 아직 안 왔어요, 조금 있으면 시작인데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죠? (관중석으로 손을 흔들며 웃는다.) 엄마, 아빠 여기, 여기.(사이) 차가 막히나?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래, 그래. 오빤 틀림없이 올 거야. 자! 힘내자 연신내. 멋지게 달려서 일등 하는거야, 알았지? (더욱 열심히 몸을 푼다.) 명일 등장. 신내: 어! 오빠! (명일에게) 여기에요, 여기.(환하게 웃으며 인사) 오빠가 왔어요, 오빠가 왔다고요. 좋았어, 아자아자! 명일: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친구들은 모를 테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나? 그래, 일단 아이피 추적부터 해보자, 좋았어, 아자아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소리: 여자 800미터 예선전 참가자들은 본부석 쪽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오빠 쪽을 향해) 꼭 일등 할게요! (나간다.) 두정 등장, 휠체어를 세우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 재활운동을 시작한다. 각자의 일에 열심인 두 사람. 명일: 안 되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두정: 헛 둘, 헛 둘. 한참을 하다 지친 둘. 명일: 아,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야? 두정: (숨을 몰아쉬며) 두고 봐 꼭 해내고 말 테니까. 기다려라 에베레스트, 내 네놈을 꼭 밟아주고 말 테다. 소리: 딩동댕동.601호 특실 환자분 면회객이 와 있습니다. 속히 병실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명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어디서 공사하나?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집중을. 두정: 면회? 누구지? (휠체어에 오른 후 퇴장.) 명일: 도저히 안되겠다. 누구 컴퓨터 잘하는 사람 없나? 아 그렇지! (휴대전화를 꺼내 건다.) 여보세요? 문정이냐? 응, 나 명일인데·…….(통화하며 나간다.) 나가는 명일과 교차하며 신내 등장.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턴다. 소리: 여자 800미터 세번째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선수들은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앞으로 나와 몸을 푼 다음 놓여 있는 병을 들고 마시고는 (두정이 버렸던 병) 출발선에 선다. 소리: 차렷, 준비. 소리2: 거기 서 개새끼야! 소리: (총소리) 탕 출발과 동시에 터지는 응원과 환호성 속에서. 슬로 모션으로 출발하는 신내.“안 서면 죽어!” 소리를 등지고 신흥 슬로로 뛰면서 등장. 신내와 신흥 같은 방향으로 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두 사람. 신흥이 점점 신내를 따라잡아 이윽고 나란히 뛰게 된다. 신흥이 신내를 앞서가려는 찰나. 신흥의 발이 꼬여 중심을 잃고, 그런 신흥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넘어지는 신내. 신흥은 얼른 추스르고 멀리 달아난다. 엎어진 채 그대로 있는 신내에게 빛이 모아진다. 빛은 점점 작아진다. 암전. 다시 서서히 밝아지면 신내의 자리에 서서 홀로 빛을 받고 있는 신흥 신흥: 하하하, 꼴좋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한번은 잡혀도 두 번은 안 잡힌다! 이래 봬도 왕년에 한달리기 한 사람이야 왜 그러셔.(사이) 그나저나 이제 뭘 어떡해야 하지? 집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길거리에서 전전긍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약만 안 샀더라도 좀 더 나았을 텐데 (뒤적거려 지갑을 꺼낸다.) 육 만원. 육 만원이라, 이걸 갖고 뭐해……, 인생 허무하다, 나이 서른여덟에 가족 버리고 수중에 딸랑 육 만원 들고서 고민하는 꼴이라니……, 아니다, 아니다. 돈 한푼 없는 것 보다 낫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육 만원으로 새출발하는 거야! 까짓 인생 대역전이 별거야, 나라고 뭐 육 만원의 신화 만들지 말라는 법 있어? (절규한다.) 젠장, 근데 뭘 하냐구! 세 개의 빛이 동시에 들어온다. 빛 속에 나란히 있는 명일, 신내, 두정, 신흥. 명일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고, 신내, 입 주변이 피에로처럼 초콜릿이 범벅인 채로 무지막지 멍하게 앉아 있다. 두정은 한 곳을 응시한 채 얼어있다. 지하철 환승 멜로디가 경쾌하게 울린다. 소리: 이번 역은 전동차를 갈아타실 수 있는 환승역입니다. 다른 전동차를 이용하실 손님께서는 빠뜨리신 물건이 없나 잘 살펴보시고 다른 열차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넷. 각자의 자리를 떠나 각기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로 이동한다. 두정과 신흥 쪽의 빛이 어두워진다. 명일: 틀림없다니까요, 증거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돼요, 제가 보낸 메일이 수신 확인이 되어 있었다고요, 왜 그게 증거가 안 되는 건데요, 비밀번호는 연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사이) 그러니까 한번만 조사해달라는 거예요, 저기요, 무슨 얘긴 줄 알겠는데요, 사망신고가 됐다고 해서 꼭 죽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사이) 말이면 답니까! 제가 미친놈으로 보입니까? 당신들 시민의 요청을 거절하는거 그거 직무 유기야 알아? 민중의 지팡이라며? 친절봉사라며! 이따위로 일할 거야! (사이) 제발요,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조사해 주세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 살리는 셈치고 아니, 정말로 죽은 사람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네? 한번만요. 신내: 안 돼! 안 돼! 아무리 초콜릿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흐느낀다.)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다시는 달릴 수 없는데……, 오빠가 보고 있었어,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끝이야, 전부 끝장나버렸어. 명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신내: 코치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입원하실 정도로 열심이셨는데. 명일: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신내: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모두들 나한테 손가락질할 거야, 부모님도 친구들도 오빠도 모두들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 내가 전부 망쳐버린 거야. 어떡해. 멀리서 신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손에 낡은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신흥 미친 듯 웃으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신흥: 하하하, 이거야 이거! (기타를 튜닝하며 흥얼댄다.) “나는야 돈 한푼 없이 기는 도망자라네 하지만 나에겐 낡은 기타와 노래가 있어 둥기둥가.”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육 만원으로 어떻게 새 삶을 시작할까 고민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더군요, 이럴 때 의지할 마땅한 친구도 없는 내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갈 곳은 없고 배는 고프고, 그러고 있자니 일단 배라도 채우고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눈에 띄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을 집어 들었습니다. 터진 입술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는데,(웃음) 오백원짜리 오뎅이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 사실 길거리에 서서 쩝쩝거리며 먹는 사람들을 보면 손가락질 했었는데……, 아! 이래서들 먹는 거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막 세 개째 꼬치를 집어드는데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어요, 포장마차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어요, 렛잇비였는데, 너무 유명해서 촌스럽게까지 느껴졌던 그 노래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길거리 오뎅과 렛잇비, 저한테는 그냥 그저그런 뻔한 것들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뭐 암튼, 오뎅을 질겅거리며 노래를 들었어요. 렛잇비가 그대로 두라는 뜻이라면서요? 어렸을 때는 왜 그대로 두라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그 순간에 아! 그런 거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그래서 그길로 곧장 중고 악기상으로 달려가 이놈을 장만했습니다. 지금 제 수중에 있는 거라곤 이 녀석과 단돈 삼천원이 전부입니다. 기타와 삼천원이라 뭔가 고독하기도 하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20년 만에 만들 노래의 제목.“기타와 삼천 원” 하하하,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이런 완벽한 제목을 만들어 내다니, 제목부터 뭔가 확 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명일: 뭐라고요?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세요. 신흥: 기타와 삼천원 명일: 설마……. 신내, 신흥 쪽을 바라보다 ‘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뛰쳐나간다. 신흥: (신내가 나간 방향에 대고) 놀라시긴……, 노래가 완성되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열배는 더 놀라실 겁니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사이) 흥신소요?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둘러 이사를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흥: 일단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노래로 시작할 겁니다. 장소는 뭐, 찾아봐야죠, 설마 서울 하늘아래 제가 노래할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가숩니다. 불행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어릴적 꿈을 이룬 멋진 사람이 된 거죠. 하하하. 자! 그럼 저를 기다리는 무대를 찾으러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흥, 큰 소리로 웃으며 퇴장, 명일 쪽지와 주소들을 확인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두정: (놀람을 감추며) 웬일이냐? 명일: 여기가 16-28번지 맞죠? 두정: 용케도 올 생각을 했구나. 명일: (떨리는 목소리로) 연수네 집 맞죠? 두정: 다 알고 온 거 아니야? 그런 건 왜 물어. 명일: 저는 연수 남자친구 명일이라고 합니다. 두정: 팀을 맡게 됐다고, 축하한다. 명일: 힘드시겠지만 저도 어렵게 마음먹고 온 것이니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두정: 너하고 할 얘기 없으니까 그만 가봐. 명일: 그 심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두정: 사실대로 말하지, 네 얼굴 두번 다시 안 봤으면 좋겠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 찾아뵙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두정: 꼴 좋다고 웃고 싶겠지, 웃고 싶으면 웃어. 명일: 연수……, 연수 살아있죠? 네? 두정: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명일: 사실대로 얘기해 주십시오. 사고 이후에도 매일같이 연수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 며칠전 그 메일이 모두 수신 확인이 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 하실 때 도망치듯 떠났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수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두정: 상상력이 풍부하구먼.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워, 보시다시피 난 글러먹었어. 명일: 그렇다면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연수 찾는 걸 포기하지 못합니다. 두정: 내가 그런 소리를 했던가? 그래 그런 말을 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상황 탓, 환경 탓 하는 게 아니야,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 네 놈이 그런 말을 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더 이상 널 마주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조심해서 가라.(나가려 한다.) 명일: 거짓말……, 거짓말이죠? 그럴 리 없어, 저를 포기하게 하려고 하는 얘기죠? 그렇죠? 두정: (멈춰서서 혼잣말로) 고결한 자만이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 고결한 자라…….(쓴웃음) 에베레스트.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나간다.) 명일: (절망적으로) 잘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나가려다 멈춰서서) 연수야……, 너 정말 없는 거야? 명일이 나가자마자, 박수 소리와 함께 현란한 조명이 무대를 훑는다. 무대 중앙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글라스를 쓴 신흥이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서 있다. 신흥: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곡은 지금의 저를 있게한 바로 그 노래입니다.20년 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수의 꿈을 가득 품고 며칠 밤을 새우며 코피를 쏟아가면서 만든 노래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좋은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는 얘기가 있죠, 그게 바로 이 곡을 두고 한 얘기란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 그럼 눈을 감고 제 목소리에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은 “빌어먹을 인생.” 신흥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단조롭고 유치한 느낌의 멜로디. 신흥: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뭔지 몰라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산다는 건 무엇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각각의 빛을 받으며 세 사람 나타난다. 약통을 들고 있는 명일, 휠체어 위의 두정, 경기 중에 쓰러져 있는 신내. 신흥: 그것이 뭔지 몰라도 신내: 이건 아니야, 명일, 두정: 이건 아니야 신흥: 목적도 모른 채 공부를 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순위가 매겨지고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모두: 이건 아니야. 간주. 두정 굳은 표정으로 한곳만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명일: 전부 제 착각이었습니다. 여동생이 혹시나 하고 비밀번호를 쳤는데 열렸대요, 계정을 없앤다고 그러더군요, 그렇다고 앞으로는 메일 보내지 말라고……, 근데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아세요? ‘엠, 와이, 유, 엔, 지, 아이, 엘’이었대요. 명일, 제 이름이었어요.(허탈하게 웃는다.) 연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약병을 바라본다.) 신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어떡하지, 일어날 수가 없어, 오빠, 엄마, 아빠, 코치님……. 일어나 달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모두들 저만 바라보고 있겠죠,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신흥: 이른 아침, 아니 그건 해도 안 뜬 새벽이야. 흔들어 깨우며 하시는 말씀,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늦은 밤에, 아니 그건 달도 지는 새벽이야 지친 나에게 하시는 말씀, 공부 하다 자, 공부 하다 자, 조금만 더 자고 싶어요 제발. 잠도 못 자가며 난 무얼 하는 걸까.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간주. 명일 결심한 듯 약을 꺼내 털어 넣는다. 신내는 여전히 그대로 엎드린 채다. 등이 들썩거린다. 두정,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고 수건을 감은 숟가락을 꺼내 입에 문다. 명일 쓰러진다. 두정, 있는 힘껏 일어나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온힘을 다해 일어나려 한다. 신흥: 귓가에 맴도는 어머니 말씀.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일어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신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일어나려고 애쓰는 두정 신흥: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명일 갑자기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다. 명일: 아 배야! 눈물을 흘리며 일어난 신내, 이를 앙다물고 슬로로 뛰기 시작한다, 두정 간신히 몸을 지탱해 휠체어에 오른다. 신흥을 제외한 나머지 빛이 사라진다. 신흥: 인생이란 그런 거야 이유는 없어, 모두들 다 그렇게 살아 일어나, 일어나.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가 빌어먹을! 일어나, 어서 일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기쁨에 차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여, 여보……. 무대 밝아진다. 신흥 머뭇거리는 사이 신내 천천히 등장한다. 신내: 오빠 신흥: 여, 여보 신내: 어쩐 일이세요? 신흥: 당신이 어떻게 여길……. 신내: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할말 있었는데. 신흥: 그러니까……, 그게 신내: 아무 말 마세요, 부탁이에요, 제가 얘기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신흥: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신내: 사실 저 오빠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아니에요. 신흥: 그게 무슨 소리야? 신내: 말 그대로예요, 이젠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신흥: 여보, 그러지 마, 제발, 응? 내가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신내: 고마워요, 진작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저 꼴찌해서 이런 거 아니에요. 정말 오빠에 대한 마음이 식어 버려서 그런 거예요. 신흥: 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죽는다는 소리는 말아줘, 부탁이야. 신내: 그러지 마세요, 오빠답지 않아요. 신흥: 난 이미 끝난 놈이지만, 당신하고 우리 창신이 수진이는 아니잖아. 남편, 아버지 잘못 만난 죄밖에 없잖아, 여보, 그러니까 그런 소리 두번 다시 하지마. 신내: 괜찮아요? (사이) 저요? 보세요 전 아무렇지 않아요. 신흥: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신내: 그래요, 그렇게 해요. 신흥: 이혼하면 놈들도 더는 못 괴롭힐 거야, 자리잡히는 대로 연락할게,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생활비랑 애들 교육비는 최대한 노력해 볼게. 어떻게든 아빠 노릇은 하도록 할게. 미안해 여보. 신내: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오빠도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 안녕.(자리를 옮긴다.) 신흥: 놈들이 위치추적을 해서 전화기 못쓰니까, 내가 연락할게. 신내: 오빠도 제가 좋대요, 우습죠? 기껏 마음 정리했는데 고백을 받다니……, 조금만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도…….(사이) 저 끝까지 달렸어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목소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이후엔 아무 생각도 안나요, 어떻게 결승점을 통과 했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까 제 방에 덩그러니 앉아 초콜릿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눈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있고, 입 주변은 초콜릿이 번져서 피에로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어버렸어요, 한참을 그렇게 웃고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눈을 감고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들어 봤어요, 자세히 들어 보니까 제 목소리더라고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면 처음엔 자기 목소린 줄 모르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거였어요, 조금 익숙해지니까 알겠더라고요, 제 목소리인지. 신흥: 그랬어? 그거 다행이네. 알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고.(사이) 내 걱정은 하지마, 당신하고 애들이 힘들지 나야 뭐……. 그만 가봐, 수일내로 전화할게, 조심해서 들어가고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든다.) 여보! (사이) 아, 아니야. 애들한테 안부 전해줘.(사이. 혼잣말로) 잘 살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평소에 안해 버릇해서 힘드네. 신내: 근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는 이미 끝나버렸는데, 레이스를 마치라니,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흥: 자! 이젠 나의 무대를 찾아가 볼까,(기타에게) 가자 로시난테, 갈 길이 멀다. 서두르지 않으면 날이 저문다고.(나간다.) 신내: 800미터 경기는 트랙을 2바퀴 도는 거예요, 작전도 중요하긴 하지만 페이스 조절과 순간의 판단력이 그 어떤 종목보다 중요해요,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려도 안 되고 페이스 조절한다고 천천히 출발해도 안 되죠, 작전대로 달리다가도 상황에 따라 작전을 포기하고 감으로 스퍼트하는 경우도 많고요. 생각해 봤어요,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달려온 것보다 달려야 할 트랙이 더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알람이네요. 저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나간다.) 텅 빈 무대. 멀리서 전동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로 들려온다. 소리는 멈추지 않고 무대를 가로지른 후 점점 멀어져 간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빈 휠체어를 끌고 등장한다. 휠체어를 세우고 한두 걸음 떨어져 선다. 두정: (휠체어에 대고) 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위로해 주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잔인하게 들려도 할 수 없어. 다 네 잘못이야, 한 번 더 점검했어야지, 한 번 더 살폈어야지. 그 정신 상태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면 너 때문에 동료들 모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어, 너 이렇게 된 거,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숨과 다리를 바꿨다고 생각해,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거 너한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하는 얘기니까 귀담아 듣는 게 좋아, 휠체어 생활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괜히 재활한다고 힘 낭비하지 말고 그 다리에 적응하는 편이 나을 거다. 나같이 바른 말을 하는 선배를 만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이제 가봐야겠다, 돌아가서 합숙 준비를 해야 하거든, 들어가서 한 숨 자는 게 어때? (휠체어를 밀고 나간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두정이 나간 반대편에서 피골이 상접한 명일이 다리 힘이 풀린 채로 등장 명일: 이렇게, 이렇게 죽는 건가……. 정말 특이한 약이야. 고통스럽냐고 물었을 때 왜 그런 웃음을 지었는지 이해가 돼.(힘없는 웃음) 왜 죽으려고 했는지, 죽기로 결심한 내가 원망스러워지다니……, 아픈 배를 감싸고 변기 위에 앉아 있자니 살려달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다 알게 됐어요, 연수를 잃었을 때보다 변기 위에서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눈물은 줄줄 흐르고 웃음은 멈추지 않고, 아래도 멈추지 않고 (힘없는 웃음) 제가 연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배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아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명일: 저 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까요? (고개를 숙인다.)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오는 신흥, 신내, 휠체어 탄 두정. 각자 자리를 잡고 선다. 네 사람: 요 며칠 정말 힘들었어요. 세상에서 버려져, 혼자 어딘가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든 것 같은 느낌,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 같았죠. 두정, 신흥: 왜 하필 나야? 명일, 신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네 사람: 속으로 원망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 봤습니다. 근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연한 얘기죠, 고민하고 소리 질러서 일이 해결 된다면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신흥: (큰 목소리로) 가수가 되기로요! 두정, 명일: (바로 이어) 받아들이기로요 신내: (이어서) 다시 달리기로요. 네 사람: 많이 겁나고 솔직히 자신 없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일어나야죠, 신흥: (노래한다)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네 사람: 변하는 건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두정: 저, 결국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휠체어를 뒤로 돌리자 자동차 번호판 모양의 판에 ‘에베레스트’라고 쓰여 있다.) 썰렁했나요?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 멈추는 소리, 문 여는 소리. 모두 한발씩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다시.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힘찬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기타를 정성껏 보듬으며 어디론가 간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한다. 네 사람: (동시에) 저기……. 암전. 어둠 속에서 신흥의 목소리 신흥: (목소리) 드디어 완성했습니다.‘빌어먹을 인생’을 이을 평생의 역작.‘기타와 삼천원’ 조명을 받으며 멋지게 등장한 신흥. 노래한다. 신흥: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가수를 꿈꾸는 소년이 살았다네 매일 밤 꿈속에서 노래하던 소년은 매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네 그러나 어느 샌가 소년은 노래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 가수를 꿈꿨던 남자가 살고 있다네 꿈을 잊은 채로 살아가던 남자는 하루가 너무나 힘들었다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노래하던 꿈을 떠올렸다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아, 가진 건 사랑스런 기타와 단 돈 삼천 원뿐이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네, 아, 가진 걸 모두 잃어 남은 것 하나 없어 불행하지만 나에겐 기타와 삼천원 있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세상에 내 것이 하나 없어도, 노래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있어 너무 행복하다네. 너무 행복하다네. 박수 소리에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던 신흥, 키스를 날리며 퇴장한다. 무대 한쪽에서 연수, 차분한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태령,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약장수,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연수가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약장수, 태령,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세사람. 연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약장수: 종로 5가입니다. 태령: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연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약장수: 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고객이죠. 혹시 필요하신가요? 태령: 네, 그녀를 사랑했거든요. 연수: 사랑했어요, 그래서 많이 미안했고요, 혼자 남겨두고 떠나서 약장수: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태령: 그녀는 떠났지만 전 아직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연수: 이제 떠날 거예요, 명일씨를 놓아주려고요,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거예요. 약장수: 그 약을 먹게 되면 죽을 각오로 살게 되죠, 태령: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열심히 달리는 신내를 뒤에서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하고요 연수: 뒤에서 지켜본다는 거 그리 쉽지 많은 않더라고요, 많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약장수: 그것이 문제죠, 부작용이 너무 심해요, 설사가 장난 아니거든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 하하하. 세 사람 모두 정지. 두정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무대 중앙에 휠체어를 놓고 나간다. 휠체어 홀로 빛을 받는다. 휠체어: 전 에베레스틉니다. 제 주인님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전 어디를 가나 주인님과 함께 하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나 할까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주인님이 제게 이름을 붙여주고 난 뒤로 가끔이긴 하지만 웃는 모습을 보이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제 이름이 좋습니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휠체어: 지하철이 왔네요, 못다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저는 지금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거든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암전. ■ 등장인물 명일(25세, 대학생) 신내(18세, 고등학생, 육상부) 두정(32세, 산악인) 신흥(38세, 샐러리맨)
  • [깔깔깔]

    ●명절때 속 터지는 일 1. 형편 어렵다며 빈손으로 와서 갈 때 이것저것 싸가는 동서. 2. 한시간이라도 빨리 가서 쉬고 싶은데 눈치 없이 고스톱, 포커 등을 계속 치는 남편. 3. 시댁은 바로 갔다 오면서 친정에 일찍 와서 참견하는 시누이. 4. 잘 놀다가 꼭 부침개 부칠 때 와서 식용유 엎는 조카. 5. 며느린 친정 안 보내면서 시집간 딸은 빨리 오라고 하는 시어머니. 6. 늦게 와서는 아직도 일하고 있느냐며 큰소리 치는 형님. 7. 막상 가려고 하면 ‘한잔 더하자’며 술상 봐오라는 시아버지.●너무 뜨거워서 한 남자가 면도하러 이발소를 갔다. 남자의 얼굴에 이발사가 수건을 올려놓자 화를 버럭 냈다. “여보슈? 뜨거운 수건을 갑자기 얼굴에 올려놓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요?” 당황한 이발사가 하는 말, “뜨거워서 들고 있을 수가 있어야죠.”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채권자들 무서워 파산 신청 못해요

    Q5년째 카드빚과 보험 대출금 5000만원 정도를 못 갚았습니다. 연체 초기에 빚 갚으라는 독촉 전화와 방문에 몇달을 시달렸습니다. 너무 힘들어 이사 가면서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았고, 지금은 말소됐습니다.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법원에 신청서를 내면 채권자들에게 연락이 갈 텐데, 빚 독촉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임정희(37)- A별 걱정을 다하십니다.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빚 독촉도 품위있게 해야 합니다.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채권자들도 그 절차에 의견을 표시할 뿐 추심행위를 더 하지 않습니다. 안심하고 파산이든 개인회생이든 신청하셔서 법원의 보호를 받으십시오. 우선 인가받은 금융기관이나 추심업체 직원들은 채무자들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위력을 보이거나 속임수를 써서도 안됩니다. 채무자가 불편한 시간에 방문해 채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등의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 약한 채무자들은 조직 폭력배처럼 험악한 사람들이 추심인으로 나타나 압박을 가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부질없는 상상일 뿐입니다. 만일 금융기관이나 추심업체가 조직적으로 폭행, 협박에 의한 추심을 장려하는 것으로 판명되면 그날로 간판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생각할 것이 채무자가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고 채권자가 빚 독촉을 늘리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빚 독촉과 소송 등 추심 행위에도 비용이 듭니다. 전화요금, 우편요금, 교통비가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을 고용하는데 드는 인건비와 간접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채권의 가치는 채무자의 변제 능력과 의사에 의존하게 되는데, 채무자가 파산이나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그 절차에 참여하는 것 이외의 방식으로 추심을 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합리적인 채권자라면 비용만 들고 수익이 없는 추심행위는 중단할 것입니다. 미국 연방 파산법은 파산과 개인회생, 회생 절차의 신청이 있을 때 모든 채권자가 서면이나 구두로 독촉하거나 소송과 압류 등의 추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의로 이를 어기고 추심 행위를 한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고 민사적으로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권고한 바 있는 자동추심금지 제도는 이익이 없는 추심 행위를 막고 채무자에게 숨쉴 틈을 주기 위해 적절한 조치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수구적인 입법 태도로 인해 법에 추가되지는 않았지만, 법 조문이 없어도 금융기관의 실무에선 따르고 있습니다. 파산,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실을 법원이 일일이 통지를 하지 않습니다. 또 금융기관 우편물을 받은 사람과 추심 담당자는 동일하지도 않기 때문에 추심 담당자가 채무자의 파산, 개인회생 신청 사실을 모르고 독촉 전화를 할 수는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이런 추심전화를 받게 되면 관할 법원과 사건번호를 추심 담당자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십시오. 파산,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금융기관과 추심업체 직원이 임정희씨를 해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아예 잊어 줄 것입니다. 물론 빚지고 가난한 자는 그 자체로 지치기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마음을 바꿔 먹으면 치유될 수 있습니다. 빚진 현실에 당황하지 마시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법원의 파산보호를 받으십시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특별하區 ★나區] 작은 배려 ‘감동 백배’

    지난 9월 어느 날 오후에 한 대학생이 허겁지겁 여권과 창구에 왔다. 그는 미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는데, 여권을 지금 만들어도 발급까지 날짜가 촉박한 게 아닌지 걱정을 했다. 본인 확인하려고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사진을 행정전산망의 사진과 비교하니까 서로 다른 게 아닌가. 주민등록증과 전산망의 얼굴 사진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당황하는 학생을 진정시키고 주민등록증을 만든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까, 이는 담당직원의 실수로 생긴 일이었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어야 여권 발급이 가능하다. 학생의 거주지가 서울도 아닌 경기도 구리시라 난감한 일이다. 나는 학생에게 “주민등록증을 빨리 다시 만들자.”며 구리시의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전산망 사진으로 새 주민등록증을 서둘러 만들어 학생이 동사무소에 도착하면 바로 전해주기로 했다. 그러면 마감시간까지 여권발급 신청접수가 가능할 듯했다. 구청에서 접수받은 여권신청서는 그 다음날 아침 외교통상부로 보내야 출국일 직전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날 오후 5시30분쯤 그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지금 새 주민등록증을 들고 구청으로 가고 있는데 도저히 마감시간인 오후 6시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같다.”고 걱정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웃으며 업무시간이 끝나도 기다릴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학생은 구청에 도착해 신청을 완료한 뒤 몇번씩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뿌듯하다. 친절은 남을 위한 작은 배려다. 순간의 작은 배려가 두고두고 두배의 감동으로 돌아온다. 잘 했다 싶은 일을 한번 실천하면 그런 일이 자꾸 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강선아 동대문구 민원여권과
  • [독자의 소리] 버스에서도 교통카드 충전을/임은정 (대학생·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1996년 서울시내 전역에서 교통카드 서비스가 시작됐다. 세계적으로도 지하철·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충전된 카드 하나로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불제인 교통카드가 충전 문제로 여전히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거의 매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카드를 사용할 때만 볼 수 있는 잔액을 늘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해서 잔액이 모자란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삐∼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기계음에 당황했던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면 매표소에서 바로 충전하면 되지만 버스의 경우 사정이 복잡하다. 동전이나 1000원짜리를 지니고 있었으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대로 타고 갈 수도 없지만, 버스에서 내린다고 해서 곧바로 충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정 편의점이나 길거리 충전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게 불가피하다. 이 모두가 교통카드의 잔액을 기억하지 못하는 승객만의 잘못일까? 서울시는 지난 5월 교통카드의 잔액이 부족할 경우 1회에 한해 버스 승차가 가능토록 하고 부족 금액은 차후 충전시 차감하는 ‘마이너스 승차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번 기회에 버스 안에 교통카드 충전기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버스 안에 교통카드 충전기가 있다면 승객들이 현금을 내거나 버스에서 내려 충전소를 찾아 해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많은 세금을 들여 굴절버스 등 새로운 형태의 버스를 외국에서 도입하기보다 우리가 처음 도입한 교통카드제도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더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은정 (대학생·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 [깔깔깔]

    ●한명만 남고 학교에 불이 났다. 모두들 운동장으로 대피했다.선생님은 혹시나 해서 인원체크를 했다. 그런데 2명이 없는 것이었다. 당황한 선생님이 반장을 불렀다.“반장, 두명이 없는 데 못봤니?”그때 교실 창문이 열리며 두명이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반장! 주번도 나가야 돼?” 그러자 반장이 “뭐하러 두명 남았어? 한명만 남고 빨리 나와!”●껍질을 벗겨 주세요 어떤 부인이 7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갔다. 이웃집 부인은 아이에게 사과를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받았다. 어머니는 무섭게 호령했다. “어른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하지?”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껍질을 벗겨 주세요.”
  • 분양가개선 민간위원 4명 사퇴

    분양원가 공개의 적절성을 판단해 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난달초 출범한 분양가제도 개선위원회가 ‘반쪽짜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부 위원들이 자진 사퇴한데다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 위원회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들이 정부와 여당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발표되면서 당초 우려대로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춘희 건설교통부 차관은 19일 “(오늘)분양가제도 개선위 6차 회의를 열고 조속한 시일 내에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위원회의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들의 불만은 크다. 한 위원은 “지난 금요일 회의가 끝나고서야 당정에서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 합의했다는 뉴스를 접했고 매우 당황스러웠다.”면서 “애초부터 위원들을 들러리 세우려고 모은 것이란 생각은 하고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할지는 몰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앞서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김남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 등 분양가제도 개선위 민간위원 4명은 지난 6일 분양원가 공개가 어렵게 되자, 사퇴서를 제출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노인·주부 대상 ‘보이스 피싱’ 극성

    노인·주부 대상 ‘보이스 피싱’ 극성

    “○○은행입니다. 당신의 카드가 도용됐습니다. 빨리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불러주세요.”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사는 주부 서모(64)씨는 지난 13일 황당한 사기를 당했다.20대 여성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은행인데 카드로 350만원 쓴 적 있느냐. 도용된 것 같으니 신고해야 한다. 휴대전화 번호 알려주고, 빨리 가까운 은행 현금자동지급기(ATM)로 가서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깜짝 놀란 서씨는 곧바로 인근 은행으로 달려갔고 그 여성의 지시에 따라 한 은행 계좌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02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곧 연락을 준다던 여성은 더 이상 전화가 없었다. 서씨는 그제서야 사기임을 눈치채고 광진경찰서에 신고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이없고 제 자신이 한심했어요.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사기당하고 나서 밤새 끙끙 앓았습니다.” ●은행원 사칭한 전화사기 급증 최근 들어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이 기승을 부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대부분 금융 지식이 없는 노인이나 주부 등이 범인들의 ‘낚시질’ 대상이 됐다. 주부 김모(50·강남구 신사동)씨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지난달 말 중국동포 말투를 쓰는 20대 여성이 외국으로 보이는 발신번호로 휴대전화를 걸어와 “△△은행 고객센터인데 카드가 연체됐더라. 대신 신고해줄 테니 ATM 앞에 가서 부르는 대로 누르면 카드 바코드를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인근 은행으로 내달렸고 속절없이 1500만원을 날렸다. 서울 강남경찰서에도 유사한 사건이 접수됐다. 이 시민은 “카드사 직원인데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냉장고 300만원짜리를 사지 않았느냐.”는 전화를 받고 “없다.”고 말했더니 “당신 카드가 해킹돼 내일쯤 경찰청 특수부나 검찰청에서 연락이 갈 거다. 해결하려면 주민번호 뒷자리가 필요하니 가르쳐 달라.”는 답을 받았다. 이 시민은 결국 주민번호를 알려주진 않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 상담을 의뢰했다. 이 때문에 강남서에서는 “카드사를 사칭하는 신종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으니 수사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자체 지시를 내렸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도 이 기업의 ‘홍콩법인’을 사칭하며 “25주년 이벤트에 당첨되어 현금을 보내줄 테니 주민번호, 주소 등을 가르쳐 달라.”는 내용으로 사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홈페이지에 주의를 당부했다. ●‘보이스 피싱’ 수사 착수 경찰은 전국적으로 공조 지시를 내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데다 발신번호 추적도 쉽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전화 온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안 된다.”면서 “피해가 발생해도 나중에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먼저 카드사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보이스 피싱 ‘피싱(voice phishing)’은 개인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를 합성한 조어. 신용카드 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알아내 범죄에 이용하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여기에 ‘음성(voice)’을 붙이면 전화를 통한 피싱 사기를 일컫는 말이 된다.
  • 中·日·러 벌써부터 반 총장에 ‘견제구’

    |뉴욕 이도운특파원|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선서식을 가진 14일(현지시간)부터 유엔 외교가와 언론의 갖가지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반 차기 총장을 ‘입맛’에 맞게 길들여보려는 각종 세력들의 흔들기는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는 이날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반 차기 총장의 역할이 제한돼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왕광야 주 유엔 중국 대사는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반 차기 총장의 개입은 자제돼야 하며, 조용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러시아의 유엔주재 대사들도 반 차기 총장이 다자회담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면서 반 차기 총장이 미국에 지나치게 가까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며 왕 대사의 주장을 거들었다. 반 차기 총장은 공식 취임하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특사도 임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왕 대사 등의 견제적 발언에 대해 반 차기 총장은 6자회담이 열리고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도 이행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지원적 역할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반 차기 총장은 그러나 앞으로 협상의 진전 상황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준비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취임 선서식 직후에 열린 반 차기 총장의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캐나다 CBS 방송의 기자가 프랑스어로 질문한 뒤 프랑스어로 답변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질문 내용도 “유엔 내에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총 6개 공식 언어가 있는데 이 중 영어와 프랑스어만 공식 행사에 쓰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 반 차기 총장은 이 기자가 질문을 할 때 영어 통역의 소리가 갑자기 커져 혼선이 벌어지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프랑스어로 답변을 하다가 잠시 중단하는 등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기자는 회견 뒤 반 차기 총장의 프랑스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을 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또 회견 전에 반 차기 총장측에 프랑스어로 질문하겠다고 사전 통보를 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중동 아랍 국가들의 언론은 반 차기 총장이 이날 회견에서 유대인 홀로코스트(대량학살)나 이스라엘의 핵 보유 등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답변한 발언 내용을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해 보도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반 차기 총장의 인수위원회측 관계자는 이날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대부분 예상했던 일들”이라면서 “이 정도로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dawn@seoul.co.kr
  • 연말 모방범죄 기승

    “아들을 납치했으니 돈을 송금하라.” 최근 거짓 납치 협박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경남 진주와 울산, 제주에 이어 서울에도 유사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15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14일 낮 12시4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정모(53)씨가 운영하는 구둣방에 “아들을 납치했으니 500만원을 보내라.”는 협박전화가 걸려 왔다. 범인은 계좌번호를 불러준 뒤 돈을 입금하라고 협박했다. 정씨가 “아들을 바꿔 달라.”고 하자 전화에서는 “아빠, 친구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빚을 안 갚아 납치됐다.”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중학교 1학년생인 아들의 목소리와는 달랐지만 당황한 정씨는 아들이 폭행을 당하고 겁에 질려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다급해진 정씨는 일단 구둣방 직원에게 수신호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지시한 뒤 급히 인근 은행에서 돈을 찾아 500만원을 송금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곧바로 범인이 불러준 계좌를 지급정지했지만, 이미 현금 260만원이 빠져나간 뒤였다. 이후 정씨가 집으로 전화한 결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은 멀쩡히 집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은 공조수사에 허점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9시쯤 통장 개설 명의자인 A씨(단란주점 웨이터)가 관악경찰서에 붙잡혔지만 “친구 B씨의 부탁으로 명의만 빌려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해 곧바로 풀어줬다. 전북 군산서에서는 B씨를 국세청 환급사기와 관련된 혐의로 붙잡아 조사중이었지만 이 사실이 공유되지 못했다. 앞서 지난 13일 오후에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사는 김모(60)씨가 20대 남자로부터 “아들이 카지노에서 1000만원을 빌렸는데 이를 갚지 않고 있으니 수수료를 포함해 1200만원을 은행계좌로 송금하라.”는 내용의 협박전화를 두 차례 받았다. 같은 날 대전에서도 ‘아들을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2건의 납치 협박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 6일과 11일에는 울산, 경남 진주 등에서도 비슷한 수법의 거짓 협박전화가 잇따랐다. 경찰은 비슷한 수법의 납치 사건이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지만 공조수사를 외면한 채 제 구역 챙기기에만 급급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가수 장윤정 ‘아름다운 마음’

    가수 장윤정 ‘아름다운 마음’

    신세대 트로트 여왕 장윤정(26)씨가 5000만원이란 큰 돈을 선뜻 ‘화곡동 말썽꾸러기 7남매’를 위해 내놓았다. ‘화곡동 말썽꾸러기 7남매’란 지난 12일 방송된 SBS TV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소개된 아이들. 집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31살의 젊은 엄마가 7남매를 어렵게 키우고 있는 가정이다. 생후 9개월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7남매를 홀로 키우는 엄마 노미영(31)씨는 날로 난폭해지는 아이들 문제로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했다. 노씨는 일정한 수입 없이 약간의 정부 보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딱한 처지다. 집은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갈 형편이고 5개월 전 집을 나간 아빠를 찾기 위해 제작진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이 모든 과정이 방송되면서 이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제작진과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폭주하고 있다. 장윤정은 이 방송을 본 후 제작진에게 이 7남매를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는 현재 MC를 맡고 있는 SBS TV ‘도전 1000곡’의 출연료 등을 합쳐 5000만원을 13일 노씨에게 보냈다. 남형석 PD는 “노씨가 전화로 ‘장윤정’이란 이름으로 5000만원이 통장에 들어왔다며 가수 장윤정씨가 보낸 것이냐고 물어와 알게 됐다.”며 “일전에 장씨가 7남매를 돕고 싶다고 해서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큰 돈을 보냈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장씨는 이번 일을 언론에 알리지 말 것을 당부했으나 너무 아름다운 일이라 알리게 되었다고 남PD는 덧붙였다.7남매 엄마 노미영씨도 “너무 거액이고 유명인이 보내와 당황했지만 아이들을 더욱 잘 키우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살겠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정부의 해외부동산 취득 완화조치 이후, 동포들의 주택 구입은 나라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매매시 취득세와 양도세가 없고 대출이 가능한 뉴질랜드의 경우 주택 구입이 늘고 있다. 국민들의 주택을 정부가 공급하는 싱가포르에서는 내국인 위주의 정책과 비싼 가격으로 주택 구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연인(SBS 오후 9시55분) 윤은 세연이 미주와 연애하기로 했다며 짐을 내놓자 비아냥거린다. 세연은 비웃는 윤을 향해 처음부터 네게 내줄 안방은 없었다고 하자 뺨을 때린다. 회장실에 있던 양금은 강재를 불러 양심도 없냐며 회사를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임원회의를 소집한 세연은 백 이사가 강재를 대동하고 나타나자 기분이 나빠진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학교며 학원에까지 보내주는데 왜 알아서 공부를 못하냐는 태도는 이제 그만. 초등학교 입학부터 부모가 차근차근 자녀의 학습지도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부모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평생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의 저자 김강일씨에게 초등 교과별 학습지도 요령도 배운다.   ●90일, 사랑할 시간(MBC 오후 9시55분) 태훈의 외투를 정리하던 미연은 지갑에서 빠져나온 지석의 명함을 발견하고는 놀라 침실 쪽을 돌아본다. 지석이 투자 상담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정란은 태훈의 회사를 찾고, 태훈은 정란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정란은 태훈과의 접촉사고가 생각나 태훈의 얼굴을 보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청춘드라마 일단 뛰어(KBS2 오후 8시55분) 지구대의 하루를 취재하기 위한 취재팀이 한얼지구대를 찾아온다. 팀장과 대원들은 이들을 귀찮아 하면서도 한편으론 설렌다. 나이트 클럽에서 여자친구를 꼬드겼다는 이유로 싸움을 일으킨 현석은 만수와 광태에 의해 지구대에 끌려온다. 그러나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찾아달 라고 떼를 쓴다.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명혜는 우주가 윤후의 아이라면 자신을 며느리로 받아주겠냐는 수정의 말에 당황해 한다. 밤새 앓고 난 윤정은 우경과 함께 병원에 가서 뜻밖에 임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한편, 명혜는 윤후에게 수정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러 사무실로 찾아가고,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된 국화는 큰 충격을 받는데….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황금과녁’ 계속된다

    아테네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임동현(20·한국체대)이 한국 양궁 금메달을 이어갔다. 임동현은 12일 루사일 양궁장에서 열린 도하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와키노 도모카즈(일본)를 108-101로 제치고 황금 과녁을 명중시켰다. 한국은 전날 ‘신궁’ 박성현(23·전북도청)이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남자 개인전도 석권,4년전 부산에서 개인전 금을 모두 놓치며 구겼던 체면을 회복했다. 또 이번 대회 전 종목 석권 전망이 밝아졌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두둑한 배짱을 자랑하는 임동현 개인으로서는 2002년 부산에서 개인전 동메달에 그친 한을 푼 셈. 아시아선수권을 제외하곤 주요 국제대회에서 개인전 금을 목에 걸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고교생이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박경모(31·인천 계양구청) 장용호(30·예천군청) 등 선배들과 함께 단체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날 금은 그가 더 이상 ‘소년 궁사’가 아닌 대들보로 자리매김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앞서 8강전에서 국제양궁연맹(FITA) 랭킹 1위이자 올해 양궁월드컵 초대 챔피언인 맏형 박경모가 세계 116위인 ‘무명’의 라마트 술리스티야완(인도네시아)에 덜미를 잡혀 당황할 만했다.더욱이 아테네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던 선배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대표팀 막내 임동현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임동현은 결승전에서 1엔드 첫 두 발을 거푸 10점에 꽂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세 번째 화살이 7점에 그치는 바람에 3발 합계 28점을 쏜 와키노에 1점 뒤졌다. 그러나 임동현은 2엔드에 10점 두 발과 9점 한 발을 묶어 1점차 역전에 성공했다. 와키노가 3엔드 첫 발을 6점에 맞췄고, 임동현은 8점을 쏴 2점을 더 달아나며 승기를 잡았다.83-79로 앞선 마지막 4엔드에서도 임동현은 25점(8,9,8)으로 22점(9,7,6)에 머무른 와키노를 제쳤다. 임동현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람도 어제보다 약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부산대회에서도 김경호 선수가 일찍 떨어져 부담이 많이 됐지만 이번엔 오히려 기회라고 여기고 끝까지 노력했다.”고 말했다.또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해 내년 세계선수권과 2008년 올림픽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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