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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나눔 NEWS] 지하철좌석 세대갈등

    서울메트로가 지난달부터 지하철 1호선에 노약자석을 12석에서 26석으로 늘려 시험 운행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젊은이들이 노약자석 확대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어 노인들을 한숨짓게 하고 있다. 논란은 한 여성이 지난달 25일 다리에 깁스를 한 언니가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다가 한 할아버지에게 봉변을 당한 간접 경험을 미디어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리면서 시작됐다.‘사과’라는 아이디의 이 여성은 게시글에서 “젊은이들은 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 피곤해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힘들게 가는데 노인들은 배려석을 특권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확대하면 안 된다.”고 썼다.11일까지 모두 4400여명의 네티즌들이 이 게시글에 동조하는 서명을 했다. 이들은 “노약자석은 노인들만을 위한 좌석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좌석이기도 한데 노인들은 자기 권리만 주장한다.”고 동조했다. 대한은퇴자협회(회장 주명룡)는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유가 타당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가야 하는 현실을 크게 개탄하며, 우선 서명운동을 중단하고 부모세대와 대화로 풀어가자.”고 촉구했다.주 회장은 “1호선 열차, 그것도 5분의 1정도의 좌석에만 시범 운행 중인 것을 두고 마치 개인 소유물을 빼앗기라도 한 것처럼 서명운동까지 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신혜원기자 hyewon81@seoul.co.kr
  • “자율 공감대 부족” “서울 집중화 우려”

    대입 전면 자율화를 앞두고 대학가가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이 9일 2009학년도부터 대학별 고사를 자율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지방 대학들은 학생과 재정의 ‘빈익빈 부익부’가 초래될 수 있다며 지나친 자율화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입학처장들은 교육부로부터 대입 업무를 넘겨받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를 향해 제2의 교육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대교협에 전달했다. 서울지역 주요 대학들은 입시자율화를 찬성하며 새로운 유형의 대학별 고사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특히 일부 대학들은 공동 출제 의향도 제시했다.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은 이날 “옛 본고사 형식의 개별과목 문제나 수학풀이식 문제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주요 대학들과 새로운 문제 유형을 함께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황규호 입학처장은 “고교 교과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들을 새롭게 개발할 것이며 다른 대학과 공동연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신형욱 입학처장은 “2009학년도 수시모집부터 본고사 형식으로 외국어능력평가시험을 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내에서도 중위권 대학들은 “자율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다.”면서 내심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건국대 문흥안 입학처장은 “오늘 입학처장 회의에서는 대학의 자율에 대한 공감대가 일치하지 않았다.”며 “대학에 전권을 준 것인 양 대입 자율화를 권력처럼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 처장은 “대학 입시는 초중등 교육과 연계돼야 하는데 대학만 생각하고 자율권을 행사하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며 “공교육을 보호하는 한도 내에서 대학마다 학생 선발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의 대학들은 사립대를 중심으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대학 입시가 완전히 자율화될 경우 서울의 대학들이 인기 중심의 입학정책을 자유롭게 펼 수 있고, 학생들이 서울로 더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남대 이청규 입학처장은 “수도권 대학들은 학생들을 악착같이 긁어모을테고 지방 대학들은 이에 맞서는 전형방법을 택할 것”이라면서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간 부익부 빈익빈의 심각한 불균형을 우려했다. 이 처장은 “대학교육협의회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 끌려가는 경향이 있는데 수도권 대학에 유리하게 되는 자율화가 되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경상대 강석환 입학계장은 “대학 입시가 자율화되면 아무래도 서울이 유리할 것”이라면서 서울 집중화 현상을 걱정했다. 그는 대입 자율화가 학생들에게는 좋을 수도 있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약간 당황스러운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부경대 입학처 관계자는 “본고사 부분은 다른 대학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갈 수만은 없는 입장”이라고 털어놨다. 수능 등급제의 경우 상위·중위권 대학 등간의 이해가 달라 ‘2009학년도부터 당장 폐지하자.’는 의견과 ‘3년 이상 폐지를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 등이 엇갈리면서 대교협 차원의 합의 또는 정책 제안이 이뤄질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단독]‘e쇼핑+금융사기’ 주의보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빼낸 뒤 위조 카드를 만들어 마구 사용한 새로운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사기단은 상품을 유명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려놓은 뒤 ‘더 싼 값에 사고 싶으면 우리 사이트를 방문하라.’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개설한 유령 직거래 사이트에 가입해 개인정보와 신용카드정보 등을 기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카드정보 기입과정에서 오류가 나도록 사이트를 조작한 뒤 ‘카드가 계속 오류가 나니 가까운 은행을 방문해 계좌이체로 대금을 납부하라.’고 권했고, 피해자들은 직접 은행을 찾아 계좌이체로 돈을 지불했다. 사기단은 카드기입 오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카드정보를 빼냈고 이를 통해 카드를 위조해 현금서비스와 카드대출 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이 물품을 구입한 뒤 해당 사이트는 폐쇄됐고, 거래를 위해 피해자들이 기록해 둔 연락처도 경찰 수사결과 대포폰으로 밝혀져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피해자들은 처음에는 물품이 오지 않아 단순 쇼핑몰 사기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카드정보까지 빼낸 사실을 알게 되자 적지 않게 당황했다.지난해 겨울 이 사이트에서 수십만원 어치의 건강식품을 구입한 A씨는 경찰에서 “처음에 구입한 물품이 오지 않아 단순 쇼핑몰 사기로 신고했으나 올해 초 수백만원의 카드사용 내역이 결제돼 추가로 신고를 접수했다.”면서 “동일범의 소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런 신종 사기 피해자가 20여명에 이르고 피해액도 2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 쇼핑몰 결제에 미숙한 40∼50대를 대상으로 이런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이경원 장형우기자leekw@seoul.co.kr
  • “불 끄려니 소화전 물 안나와”

    “급히 소화전을 찾아 물을 뿌리려고 했는데 정작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형 참사가 빚어진 ‘코리아2000’ 물류센터 냉동창고의 소화전은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점검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였다. 불이 난 냉동창고의 바로 옆 창고를 임대해 쓰는 김모(36)씨는 7일 화재 발생 직후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사고 창고의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김씨의 창고 외부 소화전에서 호스를 끌어다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이 남자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 함께 소화전을 작동했지만 물은 5∼6초 동안 찔끔거리다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할 수 없이 소방차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평소 창고 안에 소화전과 소화기 등 소방장비가 잘 갖춰져 있는 것처럼 보여 안심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코리아2000’은 겉보기에는 창고의 전등 하나까지도 일일이 교체해 줄 정도로 관리를 잘했다.‘코리아2000’ 홈페이지에도 완벽한 소방시설과 철저한 화재보험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내실은 형편없었던 셈이다. 소방서의 점검 소홀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1∼2년에 한 번씩 소방점검을 하고 있으며 소방전이나 소화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점검해 보고 시정이 필요하면 사업주에게 보완명령서를 보낸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하반기에 소방서에서 나온 사람들이 실제 작동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한 번 둘러보고 서명만 하고 돌아갔다.”고 털어놨다. 서울신문이 확인한 결과 지난 10월 화재 창고의 안전 점검을 한 것은 소방서가 아니라 하청업체인 S전기컨설팅이었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소방서가 이권에 개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민간시설의 소방점검은 민간업체에 맡긴다. 소방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민간업체의 점검 보고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이천시 관계자는 “대형 공장의 경우에는 소방서에서 감독해야 한다.”고 말해 소방서와 이견을 보였다.이재훈 이경주 이경원기자 kdlrudwn@seoul.co.kr
  • 독기오른 힐러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힐러리 클린턴(사진 아래) 상원의원의 대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3일 아이오와 주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에게 밀려 3위로 처졌던 클린턴 의원은 두번째 경선 지역인 뉴햄프셔 주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급해진 클린턴 캠프는 선거운동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그동안 유지해온 ‘점잖고 안정된 힐러리’ 이미지 심기 전략을 버리고 오바마 후보를 직접 공격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클린턴 의원은 5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주에서 열린 민주당 후보 합동 토론회에서 오바마 의원이 상원에 등원하기 이전에는 반대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애국법’과 이라크 전비 관련 법안에 찬성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클린턴 의원은 6일 뉴햄프셔 나슈아에서 열린 유세에서는 오바마 의원이 내세운 ‘변화’라는 구호를 겨냥,“변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오바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힐러리 캠프는 현재 오바마를 공격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지지율 반등 전략이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지지율 상승에 큰 역할을 해왔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마력’도 뉴햄프셔에서는 시들해진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또 이날 CNN이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남편 빌을 대법관에 임명할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보도를 해 힐러리 캠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클린턴 의원은 지금까지 민주당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있다. 선거인단을 뽑는 경선은 지금까지 아이오와에서만 열렸지만 상원의원, 하원의원 등 당연직 선거인단 가운데 클린턴 지지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확보한 선거인단은 165명으로 66명을 차지한 오바마보다 훨씬 많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202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dawn@seoul.co.kr
  • “남편이 말한 나눔의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남편이 말한 나눔의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남편이 5년 전에 말했던 나눔의 기쁨을 이제야 알겠어요.” 경남 고성군에 사는 김미숙(48)씨는 지난 3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환자를 위해 신장이식 수술을 했다.2003년 말 남편 강태선(49) 목사가 신장을 기증한 지 5년 만이다. 당시 강 목사의 신장을 받았던 환자의 남편은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자신의 신장을 또 다른 환자에게 기증했고, 이것이 이어져 그동안 다섯 쌍의 ‘사랑의 신장이식릴레이’ 수술이 이어졌다. 김씨는 “남편이 신장을 기증하고 난 뒤에도 건강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나도 건강할 때 신장을 나누고 싶었다.”면서 “이렇게 기쁨이 클 줄 알았으면 남편보다 먼저 기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아내의 신장 기증 결심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 우리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이 부부는 남편과 아내가 모두 장기를 기증한 16번째 사례”라면서 “신장이식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기증자와 이식자 모두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1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이 시작된 이래 지난해 10월까지 총 30만 5254명이 장기기증을 희망했으며, 이중 3083명이 실제로 장기기증 수술을 받았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조정선 MBC 라디오PD 인터뷰

    조정선 MBC 라디오PD 인터뷰

    조정선(48) 프로듀서는 요즘 밤 10시 MBC ‘붐의 펀펀라디오’를 맡고 있다. 아닌 밤중에 박명수의 ‘호통진행’으로 유명했던 프로그램이다. 라디오편성기획팀 부장에 24년차 PD가 고농도의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비결을 묻자, 조 PD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다.“철이 없는 거죠, 쉽게 얘기하면. 저는 정말 철딱서니 없이 죽을 거예요.” 1984년에 입사해 ‘별이 빛나는 밤에’‘배철수의 음악캠프’‘두시의 데이트’‘이종환의 디스크쇼’ 등 40여개의 프로그램을 제작한 조 PD는 ‘나서기’ PD로도 유명하다.DJ 대타는 물론, 자신의 코너도 여럿 꾸렸다. 지금 생각해도 뱃속이 서늘해지는 순간도 있다. 이제 막 1년차에 접어들던 1985년.“당시 이종환 선배가 DJ였는데 방송 중에 선배가 정부비판적인 발언을 했어요. 그런데 바로 전화가 온 거예요.‘여기 정부 기관인데 당신 말 똑바로 하라´고. 종환 형이 어찌나 당황했는지 콘솔의 주 전원을 꺼서 몇초간 방송이 안 나갔어요.” 중증 장애인을 초청한 14년 전 ‘별밤’ 공개방송 현장에서는 참가자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춤 추던 조 PD를 진행자 이문세가 못 알아봐 ‘DJ가 PD를 찾지 못한’ 웃지 못할 소극도 있었다. 20년간 그에게 쌓인 방송 경험만큼 라디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라디오를 일차적으로 공격했던 비디오매체 사이에도 경쟁이 심해지며 DJ는 물론, 초대손님 섭외가 어려워진 것. 청취자들은 더 공격적·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게 됐다. 청취율은 줄어든 대신 이같은 ‘팬덤’, 라디오 마니아층의 형성이 또 다른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펀펀라디오’만 해도 하루 평균 3000∼1만개의 문자가, 컴퓨터로 들을 수 있는 미니 라디오로는 1000여개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조 PD는 요즘 공중파 라디오가 스스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했다. “라디오에서 TV스타들을 기용해 단번에 빛을 보려는 게 제일 문제죠. 라디오는 라디오만의 스타들이 탄생해야 되는데 TV에서 데려와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니 더 나락에 빠져요.” 라디오만의 구성도 그의 고민 중 하나다. 예전에는 라디오 구성을 TV쪽에서 가져갔는데 요즘은 TV의 아이템을 라디오에서 활용하는 추세다. 그에게 라디오는 ‘추억의 매체’가 아니다. 인간미 있는 진행자와 방송이 만드는 ‘따뜻한 매체’다.“이 매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배신하지는 말아야죠. 최근 들어 이를 역행하는 일들이 꽤 있어요.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돈 줘서 억지로 데려다 진행을 맡긴다는지 하는…. 서민 매체인 만큼 살기 녹록지 않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려는 노력도 해야죠.” 최근 ‘펀펀라디오’에서는 청춘모니터요원을 뽑아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청취자 대부분이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라디오가 좋았다.”고 답했단다. 사람을 향하는 라디오. 라디오는 쭉 현재진행형이다. 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대운하 밀어붙이기’ 불붙는 논란

    ‘대운하 밀어붙이기’ 불붙는 논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측이 제1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대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환경단체 등 시민운동 진영은 반발하고 있다.“민주정권이 들어선 뒤 이렇게 몰아붙이기식으로 일을 추진한 정권이 없었다.”는 말도 나왔다. 반대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인수위측 이야기는 “내년부터 공사를 착공한다.”거나 “임기 안에 완공 하겠다.”는 장밋빛 전망에 가려졌다. 국내 5개 건설사는 사업 검토와 함께 컨소시엄 구성을 서둘렀고, 관련 주식은 연일 상승세다. 지자체는 국책사업이 될 대운하 사업 유치에 나섰고, 이 당선인측을 제외한 사회 주체들이 예측한 대로 예정지 주변 땅값은 들썩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4일 라디오에서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다는 것은 ‘운하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여론 수렴이 아니라 보완하고 검토해야 할 점을 듣는다는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특히 반대 여론에 대해 “사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말하면 백번 해도 해답은 안 나온다.”면서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만날 말로만 ‘어렵다.’,‘안 된다.’고 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반대하는 의견에 따라 모든 사업을 안 하기로 한다면 국가가 미래지향적인 그 어떤 사업도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이 이 당선인의 의지를 대변했다면,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개발이익 환수 등 여러가지 수단이 있다.”며 착공을 전제로 한 방법론 모색을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대운하는 이 당선인의 대표공약일 뿐만 아니라 ‘연 7% 성장’으로 요약되는 경제살리기 공약의 첫걸음이라는 게 당선자측의 시각이다. 국내 건설업에서 시작되는 경기 부양이 경제와 사회 활성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이 당선인측은 서울시장 시절 했던 ‘청계천 복원’에서 얻은 자신감을 동력삼아 움직이고 있다. “솔직히 당황했다.”는 환경단체의 망연자실함도 인수위에 호재가 됐다. 단체들은 “이 당선인이 여론이 좋지 않자 대선 과정에서 대운하에 대해 슬그머니 언급하지 않다가, 당선되자마자 강행하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이어 “한나라당 경선 때에는 특정 후보 공약만 집중 비판할 수 없어서, 본선 때에는 선거법 때문에 비판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환경단체들은 오는 10일 인수위 앞 항의방문과 소송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주환경운동연합 이항진 집행위원장은 “인수위는 특별법 제정을 부르짖으면서도 제대로 된 설계도 하나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추석을 즈음해 대운하 구간을 탐사하던 중인 이재오 의원과 자정까지 대화했다고 했다. 그는 “이 의원이 당시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 신중하게 진행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영표 홍희경기자 tomcat@seoul.co.kr
  • [베이징올림픽의 해 밝았다] 개최국 中 준비상황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베이징올림픽의 해 밝았다] 개최국 中 준비상황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태릉선수촌에 입촌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은 국내외 대회나 전지훈련 참가 등으로 들쭉날쭉하지만 하루 평균 350∼400명선. 이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150명을 넘나드는 직원들이 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나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이들이 많은데….”라고 손사래를 치는 선수촌의 대표 일꾼들을 만나봤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혀끝으로 金메달 식단 완성 “식사예절 바른 선수들이 금메달도 따요.” 1984년 2월 태릉선수촌에 조리원으로 입사해 23년을 한결같이 대표선수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데 헌신하면서 터득한 일종의 금메달 감식법이란다.98년부터 검식관이란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직함으로 일하고 있는 신승철(47)씨. 청와대와 함께 공식 직함으로는 선수촌밖에 없다고 소개한 신씨는 대표선수들에게 배식하기 전 맛을 보는 것은 물론, 선수식당의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총감독 역할이다. “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형주·김진호 선수가 조리원 아주머니들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며 당시에는 귀했던 14인치 컬러TV를 갖고 왔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반면 이런 선수도 있다. 배식시간에 아랑곳 않고 새벽운동했다며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거나 배식 집게를 조리원 보는 앞에서 툭툭 던지는 선수도 있다. “그런 선수들 보면 대개 성적도 좋지 않아요. 반면 조리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잘하고 예절 지키는 선수들일수록 성적도 좋지요.” 현재 대표선수들의 식단은 아침 5000원, 점심 1만 1000원, 저녁 8500원, 간식 1500원. 감독이나 코치들은 “집에서도 못 먹는 호사를 누린다.”고 감격하지만 일부 젊은 선수들은 “물린다. 성의가 없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해외 나갔다 돌아오면 어김없이 “선수촌 음식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신 검식관은 1명의 영양사와 7명의 조리사,18명의 조리원과 함께 많을 때는 400명이나 되는 입촌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진다. 신씨에게 안타까운 것은 종목별로나 세대별로나 선수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한달에 한번 급식평가를 하는데 젊은 선수들은 피자, 스파게티 등 퓨전음식을 바라고 영양탕 등 이른바 보신식품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신승철 검식관 ●태극낭자 생활돕는 ‘선수촌 엄마’ “아이고,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지난달 21일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가 태릉선수촌 여자숙소의 리모델링 계획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여자숙소장 서문옥(48)씨는 탄성부터 질러댔다.“남자숙소 4층에 더부살이하는 선수가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편하게(?) 돌아다니는 남자선수와 마주쳐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여자숙소 목욕탕은 반지하 형식으로 창문이 외부에 노출돼 이만저만 신경 쓰였던 게 아니었다. 서씨가 선수촌에 몸 담은 것은 15년 전. 식당 등 여러 부서에서 일하다 여자숙소를 책임진 지 4년 반이 됐다.‘금남의 집’ 침구 정리하고 전구 갈아끼우고 화장실과 실내외를 청소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많을 때는 200명이 넘는 여자선수들이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없도록 거드는 ‘엄마’ 같은 존재인 셈. 선수들이 간식거리를 찾기에 식당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줬다가 나중에 체중이 갑자기 불어 코칭스태프가 이유를 찾겠다며 나섰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여자종목 중 가장 우악스러워 보이는 역도 선수들이 가장 섬세하고 여성적이며 정이 많다고 소개했다. 선수촌 사상 첫 여성촌장인 이에리사 촌장 얘기도 빠질 수 없다. 이 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강단이 어우러져 새 기풍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약간 흥청대고 느슨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숙소와 식당 등을 카드로만 출입하게 하고 폐쇄회로 카메라도 곳곳에 있어 술, 담배는 꿈도 못 꾸지요.”한창 배고플 나이의 선수들이 ‘철가방’들을 호출하거나 ‘개구멍’으로 음식을 반입하는 것도 철저히 통제해 대표선수들이 검증된 음식으로 체력을 관리하도록 했다. 또 간식을 안 먹고 모아뒀다 외출 때 들고 가던 풍경도 사라졌다. 여자숙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그렇게 조신하던 양반(이 촌장)이 투사처럼 강단있게 나설 줄 누가 알았겠어요. 호호홋.” 서문옥 여자숙소장 ●상담으로 불굴의 정신력에 일조 퀴즈 하나.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 210명, 중국 100명, 일본 80명, 한국 5명이었던 선수단 직책은? 답은 심리상담사. 이 숫자는 그대로 메달 숫자로 직결됐다고 대표선수들의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장덕선(50·한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단정했다. 젊은 시절 사격 선수로 활약하던 장 교수는 군산대와 한체대(석사)를 거쳐 90년대 초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이 분야에 눈을 떴다.2002년 1월 체육과학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수촌과 인연을 맺어 일주일에 하루 대표선수들의 어깨에 걸쳐진 정신적 짐의 무게를 덜어주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소속 5명의 심리상담사가 종목별로 할당된 반면,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이성교제 같은 민감한 상담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태극마크를 다는 과정에서 걸러진 것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대표선수들의 고민은 자신의 목표에 집중된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이쪽에 관한 인식이 부족해 찾아오는 데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자발적으로 찾는 경우는 하루에 적을 때는 한두 명, 많아야 서너 명이라고 했다. 대신 코칭스태프가 앞장서 선수들의 집단상담을 의뢰, 이미지트레이닝 등 정신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짜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물론 종목에 따라, 선수가 얼마나 진지하게 따르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엇비슷한 전력이나 실력이라면 분명 정신력은 무시못할 변수라고 장 교수는 못박았다. 4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스포츠 심리상담사 자격증 제도 때문에 현재 장 교수와 이에리사 촌장 등 30∼40명의 1급,80∼90명선의 2급,200명 안팎의 3급들이 배출돼 있다. “한 명도 상근직이 없는 태릉선수촌에 적어도 20명 정도의 상근직이 근무하는 날이 오면 진정한 스포츠 강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장덕선 심리상담사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내년 공무원시험 늦출수 없다”

    2008년 국가직 공무원시험은 예정대로 치러지되, 응시연령 제한은 내년 2월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는 대로 없어질 전망이다. 중앙인사위원회 권오룡 위원장은 28일 “국가공무원 응시연령을 철폐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추가공고를 통해 응시연령 제한을 없애겠다.”면서 “채용 공고를 늦추면 수십만명의 수험생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이어 “시험 일정은 이미 수십만 수험생들과 약속한 내용이다. 제도가 변경되면 다양한 검토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시험은 불가능하지만 접수단계의 시험은 반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한구위원장 “내년채용 연기” 권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이날 오전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한 말에서 비롯됐다. 이 위원장이 “공무원 채용시 연령제한 철폐안이 연말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는데, 여야가 거의 합의를 한 사항이니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내년 채용 공고를 미뤄달라.”고 인사위에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이 발언에 인사위는 물론, 수험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미 지난달 2008년 채용계획이 발표된 데다 연령제한 철폐는 늘 수험생들에게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 더구나 당장 1월부터 원서접수가 시작되고 2월에는 행정고시와 외무고시 1차 시험이 있어 수험생들은 황당해했고 항의도 빗발쳤다. 한 수험생은 “9급 시험이 100일 남아 있는데 갑자기 이런 얘기가 나와 당황스럽다.”면서 “새 정부가 조직을 통폐합한다는데 채용 규모도 줄이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불안해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상당한 혼란을 빚었다.”면서 “지금에 와서 시험을 미뤄달라고 하다니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험생들 “너무 무책임” 비판 결국 권 위원장이 오후에 직접 이한구 정책위원장을 방문, 사정을 설명하고 “채용 일정에 혼선을 빚어선 안 된다. 제도가 바뀌면 반영되도록 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알을 낳는 개/한스 페터 베크 보른홀트 등 지음

    시시각각 밀려나오는 정보들 속에 도사린 현대과학의 크고 작은 속임수들. 이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미혹시키는 정보들이 무수하며, 그들을 ‘불신’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 ‘알을 낳는 개’(한스 페터 베크 보른홀트 등 지음, 염정용 옮김, 인디북 펴냄)이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책이 혐의를 둔 대상은 넘쳐나는 통계와 연구조사 결과이다. 통계학 이면에 숨겨진 현대과학의 오류와 궤변은 이런 재미난 비유를 통해 문제제기된다. 소시지 7개와 계란 3개가 있다. 그런데 개가 소시지 5개를 먹어 치워 소시지 2개와 계란 3개가 남게 됐다. 이제 계란의 비율은 처음과 달리 60%로 껑충 뛰어올랐다.‘개가 알을 낳은’ 꼴이다. 퍼센트 수치를 교묘히 조작하면 이처럼 상황은 전혀 다른 결과로 연결된다는 신랄한 유머이다. 현대사회의 정보를 대면하는 데 ‘불신이 곧 힘’이라고 주장하는 책은 발상 뒤집기 제안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도 한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110년 동안 대기의 온도는 0.7도가량 올랐다. 그런데 이를 ‘기온이 혹한기에서 점점 회복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왜 없었을까. 또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양성판정을 받고 나면 심각한 상황에 대한 확률을 지나치게 높게 잡고 불안에 떤다. 실제 발병률은 1000명에 1명꼴인데도 검사의 정확성만 믿은 나머지 보통 사람들은 양성판정에 필요 이상으로 당황하는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선거에 이기는 방법, 병원에서 새 의약품을 효과적인 약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세태, 기업이 직원들을 노련하게 재배치함으로써 매출신장을 달성하는 일…. 진실인 줄 알았던 생활 속 과학의 속임수들을 시시콜콜 파헤친다. 현대과학이 얼마나 ‘단순’하고 ‘무식’한지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정보소비자들이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요지이다. 저자들은 독일 함부르크 대학병원에서 법의학과 일반의학을 연구하고 있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천재소녀‘ 윤송이 SKT 상무 돌연 사표 왜?

    ‘천재소녀‘ 윤송이 SKT 상무 돌연 사표 왜?

    ‘천재소녀’‘29세에 SK텔레콤 상무’ 온갖 화제를 몰고 다녔던 윤송이(31·여) SKT 상무가 최근 사표를 냈다. 윤 상무는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나비아트센터 관장과도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사표 제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T는 24일 윤 상무가 최근 정기임원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SKT 관계자는 “사표가 아직 수리는 안 됐지만 당분간 쉬고 싶다는 뜻을 경영진에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의 이유에 대해선 개인적인 이유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3월 SKT에 발을 들여놓은 윤 상무는 이듬해인 2005년 ‘1㎜’ 서비스를 선보였다. 휴대전화에 일종의 비서, 도우미를 두고 일정 등을 관리하는 통신 서비스다. 하지만 그녀의 첫 작품은 저조한 가입자로 인해 지난해 말 서비스가 중단되는 등 실패로 끝났다. 윤 상무는 올해 커뮤니케이션 인텔리전스(CI) 본부장에 오른 후 지난 4월 ‘T인터랙티브’를 출시했다.T인터랙티브는 휴대전화 대기화면에서 무선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 뉴스, 날씨 등을 확인하는 서비스다. 윤 상무의 사표 제출에 대해 내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다.SK의 한 관계자는 “윤 상무는 최 회장이 직접 심은 사람”이라며 “외부행사 때 최 회장이나 노 관장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상무는 안팎의 시선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사실과 다른 결혼설과 학력 위조설 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내성적인 성격의 윤 상무가 온갖 루머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면서 “갑작스럽게 사표를 내 회사로서는 무척 당황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한국인의 질병] (15) 백내장

    [한국인의 질병] (15) 백내장

    인터넷에 범람하는 수많은 의학 정보 가운데 ‘백내장’이라는 병명이 종종 눈에 띈다. 여러 번 들어 익숙하지만 ‘눈 속 수정체의 혼탁으로 시력이 감소하는 질환’이라는 설명은 생소할 뿐 뇌리에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병마가 찾아왔을 때 느낄 막막함을 상상한다면, 예방 수칙 하나쯤 알고 있어야 하겠다. 안개가 서린 듯 온통 뿌옇게 보이는 시야에다 1m 앞의 버스 번호판 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떨어졌을 때 당황하지 않을 ‘강심장’은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과장 차흥원 교수를 만나 백내장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백내장을 ‘달걀 요리’에 비유했다. ●교정시력 0.3 넘지 않으면 의심 “눈에 빛이 들어오면 각막 바로 뒤의 수정체에 의해 초점이 조절됩니다. 백내장은 수정체 속의 단백질이 마치 달걀 흰자가 익듯이 서로 응집해 뿌옇게 변하는 증상을 뜻하죠. 이 때문에 시야가 희미해지고 흐려지거나 물체가 겹쳐 보입니다. 초기에는 정밀 검진을 통해 혼탁해진 환부를 관찰할 수 있지만 증세가 악화되면 육안으로도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 상태를 관찰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이름이 백내장(白內障)입니다.” 백내장의 대표적인 증상은 시력의 감소이다. 백내장 환자의 시력은 교정 장치를 통해 강제로 높여도 최대 0.3을 넘지 않는다. 백내장 등의 안과 질환이 없는 정상인은 교정 시력이 통상 1.0을 넘기 때문에 큰 격차가 있는 셈이다. 또한 밝은 햇빛 아래에서 시력이 더 감소하거나 반대로 어두운 곳에서 시력이 감소하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색의 대비가 명확한 시력 측정표의 검은 글씨는 읽을 수 있지만 주변 물건의 색깔은 탈색돼 보이거나 같은 색깔로 뭉쳐 보일 수도 있다. 유아에게 주로 나타나는 ‘선천성 백내장’은 증세가 매우 심하지 않을 경우 육안으로 수정체의 이상을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력 저하로 사시(斜視)가 발생할 때까지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규칙적 수면·생활습관이 신체 나이 줄여 백내장이 발병하는 가장 큰 원인은 ‘노화’이다. 대한안과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60대의 50%,70대 이상 노인의 87%에서 백내장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뇨병 등의 내분비계 질환이 있을 때 발병 위험은 급격히 높아진다. 대한당뇨학회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50대 당뇨 환자의 60%,60대 당뇨 환자의 68%,70대 당뇨 환자는 100%가 백내장을 경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30세 이하 당뇨 환자의 12%,30∼40대 당뇨 환자의 30%가 백내장을 경험해 젊은층의 백내장 발병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백내장을 유발하는 원인은 노화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당뇨병 등의 전신 질환이 있는 환자, 눈에 직접 외상을 입은 환자,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투여한 환자에게도 발병할 수 있습니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듯, 수정체 중심부에 혼탁만 없다면 시력에는 영향이 없으므로 백내장으로 진단됐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백내장 환자와 노인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 가운데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금연’이다. 흡연이 노화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수정체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백내장을 예방하려면 규칙적이고 적절한 식습관 및 수면습관을 통해 신체 리듬을 항상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50세 넘으면 선글라스 착용으로 자외선 막아야 물론 주기적인 운동을 통해 당뇨 등의 내분비계 질환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당뇨 환자에게는 백내장뿐만 아니라 합병증으로 ‘당뇨병성 망막증’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건강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백내장은 자외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50세가 넘으면 백사장이나 스키장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다. 뿐만 아니라 과일과 채소류는 노화를 억제하는 ‘항산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나이를 어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백내장을 발병 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50세가 넘으면 1년에 최소 1회 정도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당뇨병은 백내장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환자는 세밀하게 눈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초음파 수술 후 당일 퇴원 가능 병원에 온 백내장 환자에게 의료진이 ‘항산화제’와 ‘눈 영양제’ 등을 투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증세를 완화시키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안약도 안구가 편해지는 느낌을 들게 할 뿐 눈에 띄는 치료 효과는 없다. 따라서 대다수 중증 백내장 환자가 수술로 치료를 받게 된다. 과거에는 안구를 절개해 수정체를 직접 빼내는 ‘낭내적출술’이 사용됐지만 회복 기간이 다소 길어 최근에는 초음파로 수정체를 분쇄해 1.4∼2.5㎜의 대롱으로 흡입하는 ‘초음파 흡입술’을 사용한다. 이 수술은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과정까지 모두 당일 수술로 마치고 퇴원이 가능하다. 다만 당뇨가 있거나 백내장이 심해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에는 2∼3일간의 입원 기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환자는 수술 다음날,1주일,4주 간격으로 검사를 받다가 회복이 되면 6개월 간격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금·찬물로 눈씻는 민간요법은 증상악화 백내장 환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또 있다. 소금물이나 찬물로 눈을 씻어 내는 등의 민간 요법은 눈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제해야 한다. “죽염으로 눈을 씻는 환자가 많은데 이는 삼투압에 악영향을 주고 자극을 일으키기 때문에 눈이 충혈되거나 만성 결막염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 무조건 수술부터 하자고 달려드는 환자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백내장 수술은 여느 수술과 마찬가지로 안구 내 출혈이나 각막 및 황반이 부풀어 오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명의(EBS 오후 10시50분) 여성의 20%, 남성의 10%를 괴롭히고 있는 우울증.21세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최대 요인으로 심장병, 교통사고와 함께 우울증이 꼽혔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우울증 환자들의 고통을 연구하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의 이민수 교수를 만나본다.   ●낭독의 발견(KBS2 밤 12시45분) 무대 위에서 온몸을 던져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연극배우 손숙이 낭독 무대를 찾았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중, 리빙스턴 박사의 독백으로 낭독 무대를 연다. 이어 낭독하는 시는 도종환의 ‘가을비’와 마종기의 ‘꿈꾸는 당신’. 쓸쓸함과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가득한 시를 솔직한 음성으로 낭독한다.   ●로비스트(SBS 오후 10시5분) 장태성 의원은 제임스가 장부를 찾지 못하자 초조해하다 마담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안도한다. 살인누명을 쓴 해리는 경찰이 펜션으로 닥치자 당황하고, 마리아가 시간을 끄는 동안 펜션을 나온 해리는 성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검찰에 출두한 마리아는 7년 전 에바의 차량폭파 사건을 기자들 앞에서 발표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30분) 겨울철 촉촉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으로 사랑받는 가습기.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간편한 가전제품이지만 자칫 관리를 게을리 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가습기 종류에 따른 장단점과 올바른 사용법, 위생적인 관리방법 등을 알아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0분) 태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태국인 교사들이 새로운 교육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였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태국의 한국어 교사들, 한국에서 온 강사가 전하는 새로운 한국어 교육 지침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받아적는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열의만큼은 꺾을 수 없다.   ●뉴하트(MBC 오후 9시55분) 혜석의 대답을 기다리던 강국은 은성과 함께 가버리고, 김정길과 마주 앉은 혜석의 표정은 어둡다. 병원장이 교환 수련의 제안을 한 것을 안 혜석은 정신이 멍해지고, 은성의 말을 떠올리다 벌떡 일어선다. 혜석은 강국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며 자신을 흉부외과 레지던트로 써달라고 하고, 마침내 강국은 승낙한다.
  • 속 타는 예술의 전당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내년 1∼2월 예정된 퍼포먼스극 ‘브라케티쇼’와 뮤지컬 ‘위 윌 록 유’의 내한 공연이 취소됐다. 예술의전당측은 지난 18일 공연 기획사 관계자들과 회의를 갖고 오페라극장을 부분 보수하더라도 최소 70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공연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으며, 동시에 각 예매처에 연락해 티켓 판매를 중지시켰다. ‘브라케티쇼’는 1월23일∼2월14일,‘위 윌 록 유’는 2월19일∼3월9일까지 예술의전당 대관이 잡혀 있었다.화재로 인한 공연 취소라는 전례 없는 일이 발생, 두 공연 기획사는 물론 예술의전당측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공연 기획사들은 향후 공연 일정을 조정 또는 취소하거나 피해 비용을 산정하는 문제로 고심 중이다. 두 공연은 예술의전당 공연에 앞서 나란히 성남아트센터 대관 공연도 예정돼 있었다. 계약 조건과 공연 강행시 수익률을 감안하면 현재 성남 공연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피해 비용을 둘러싸고 공연 기획사와 예술의전당이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법적 논란이 예상된다.두 공연은 기업들의 단체 판매가 많아 ‘위 윌 록 유’의 경우 초반 6회분이 매진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까지 들어간 마케팅 비용과 공연에 대한 선지급금 처리 문제 등도 걸려 있다.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0)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0)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우여곡절 속에 조선이 후금과의 관계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을 무렵 명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후금의 위협이라는 커다란 외환(外患)을 앞에 두고 명은 이런저런 내우(內憂)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극복은커녕 망하는 길로 확실히 접어들고 있었다.1630년 9월, 원숭환(袁崇煥)이 북경의 저잣거리에서 처형된 것은 명이 자멸의 길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홍타이지, 명의 허를 찌르다 1629년 10월2일, 홍타이지는 몽골의 코르친(科爾沁) 부족을 길잡이로 앞세워 북경 공략에 나섰다. 홍타이지는 원숭환이 굳게 지키고 있던 영원성과 산해관을 우회하여, 영평(永平) 관할의 용정관(龍井關)과 준화(遵化) 관할의 대안구(大安口), 희봉구(喜峰口)를 통해 직접 북경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산해관에서 영원성으로 이어지는 주공로(主攻路) 방어에 집중하고 있던 명군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일찍부터 혼인 정책 등을 통해 몽골 부족을 회유하여, 산해관 동북의 장성 외곽을 돌파하려 했던 후금의 시도가 성공했던 것이다. 그 같은 사태는 원숭환이 이미 예견했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서 산해관을 제외한 장성 외곽지역의 방어 태세가 몹시 취약하다는 것, 후금이 몽골을 회유하여 쳐들어 올 경우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10월26일, 후금군은 황성(皇城) 코앞의 경기(京畿) 지역까지 들이닥쳤다. 영원성에 머물던 중에 홍타이지의 공격 소식을 접한 원숭환은 당황했다. 그는 병력을 끌어 모아 그야말로 미친 듯이 북경을 향해 달려갔다. 원숭환은 산해관에 도착한 직후 참장(參將) 조솔교(趙率敎)에게 병력 4000을 주어 준화를 구원하도록 명령했다.11월4일, 후금군은 준화성 공격에 나섰다. 왕원아(王元雅)가 이끄는 명군은 힘껏 저항했지만 곧 무너지고 말았다. 성안에서 후금군에게 내응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준화를 향해 달려오던 조솔교는 중간에 복병을 만나 전사하고 말았다. 성 함락 후 준화에서는 후금군에 의해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준화 함락과 대학살 소식에 북경은 전율했다. 11월17일,9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온 원숭환은 북경 광거문(廣渠門) 앞에 이르렀다. 병사와 말 모두 굶주림도 잊고 휴식도 없이 달려온 길이었다. 부총병 주문욱(周文旭)은 일단 휴식을 취하고 상황을 보아 북경으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원숭환은 듣지 않았다. 황성이 포위되려는 마당에 휴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11월20일, 원숭환의 명군은 광거문 앞에서 후금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6시간 이상 벌어진 10여차례의 사투 끝에 후금군은 뒤로 물러났다. 무리한 행군과 굶주림 속에서도 정신력으로 버틴 끝에 얻은 승리였다. ●홍타이지 원숭환에 패해 후퇴하다 11월23일, 후금군을 물리친 뒤 원숭환은 숭정제에게 장거리 행군과 전투, 그리고 노숙에 지친 병사들이 성안으로 들어가 휴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다. 숭정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원숭환이 분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숭정제는 이미 원숭환에게 노여움을 품고 있었다. 후금군이 북경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 원숭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숭환 휘하의 병력은 엄동에 다시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11월27일 좌안문(左安門)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원숭환은 후금군을 격파했다. 원숭환이 있는 한 북경을 도모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홍타이지는 병력을 북경 외곽의 남해자(南海子)란 곳으로 철수시켰다. 그는 북경에서 물러나면서 숭정제에게 서신을 보내 화친을 맺자고 요구했다. 일종의 양동작전이었다. 홍타이지는 이후 북경의 상황을 관망하면서 북경 주변의 여러 지역에 병력을 풀어놓았다. 후금군은 영평(永平), 준화, 난주( 州), 천안(遷安) 등지의 성과 촌들을 마구잡이로 겁략했다. 그들은 도처에서 사람과 가축, 각종 물자를 약탈하고 저항하는 인원들을 도륙했다. 황성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명군은, 후금군이 외곽 지역에서 벌이고 있던 약탈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후금군은 통주(通州) 등지에서 1000척 가까운 조운선(漕運船)을 불태웠다. 수만 명의 포로를 획득하고, 후금군 병사 한 사람에게 1필씩 돌아갈 만큼의 우마를 획득했다. 잔혹한 학살과 방화, 그리고 약탈 속에서 북경 주변은 초토화되었다. 비록 황성은 어렵사리 지켜냈지만 명은 심장부가 유린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홍타이지는 원정을 통해 또 다른 명의 장성(長城)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뜨리게 된다. 그 ‘장성’이란 다름 아닌 원숭환이다. 후금군은 광거문 전투에서 원숭환에게 패했지만 귀중한 포로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마방태감(馬房太監) 양춘(楊春)과 왕성덕(王成德)이 그들이었다. 홍타이지는 이 두 사람의 포로를 활용하여 원숭환과 숭정제를 이간시킬 수 있는 반간계를 구상했다. 양춘과 왕성덕을 감금해 놓은 방 바로 옆에서 홍타이지의 부하 고홍중(高鴻中)과 포승선(鮑承先)이 밀담을 나누었다. 밀담은 ‘원숭환이 이미 홍타이지와 몰래 약속하여 북경을 공취(攻取)하기로 했고 곧 함락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겨우 벽 하나로 나뉘어진 옆 방에서 환관 두 사람은 고홍중과 포승선의 밀담 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홍타이지와 후금군 지휘부가 의도적으로 그 같은 상황을 연출했음은 물론이다. 11월29일, 홍타이지의 명을 받은 고홍중과 포승선은 태감 두 사람을 고의로 풀어주었다. 자금성으로 달려온 두 환관은 숭정제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홍타이지가 북경을 기습한 직후부터 명 조정에 있던 엄당(奄黨)의 잔당들은 원숭환을 제거할 함정을 이미 만들어 놓고 있었다.‘원숭환이 오랑캐를 일부러 사주하여 북경으로 끌어들였다.’는 참소가 주된 내용이었다. 또 ‘원숭환이 병력을 이끌고 북경 옆의 통주에 다다를 때까지 후금군과 한번도 접전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도 떠돌고 있었다. ●원숭환, 하옥되다 당시 19세에 불과한 데다, 대국(大局)을 볼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숭정제는 홍타이지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1629년 12월1일, 황제는 원숭환을 황성으로 불렀다. 명목은 ‘군량 문제를 의논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원숭환이 오랑캐와 내통하고 있다.’고 믿었던 숭정제는 혹시라도 원숭환이 낌새를 채고 오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군량 문제’를 운운했던 것이다. 원숭환이 황성 앞에 도착했을 때 문지기들은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오랑캐’에게 북경 주변이 포위된 계엄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는 대신 성 위에서 밧줄에 달린 바구니가 내려왔다. 당시 계요총독(遼總督)이자 병부상서 직책을 갖고 있던 원숭환은 바구니에 실린 채 황성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황성으로 들어선 직후 원숭환은 금의위(錦衣衛)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반면에 그와 동행했던 총병 만계(滿桂)와 흑운룡(黑雲龍) 등은 황제로부터 칭찬을 듣고 승진했다. 내각 대학사 성기명(成基命)이 원숭환을 구명하기 위해 애써 숭정제에게 호소했지만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림당(東林黨)에게 복수하기로 작심했던 엄당의 신료들은 원숭환을 죽이라고 아우성이었다. 원숭환은 동림당 계열의 대학사 전용석(錢龍錫)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원숭환의 ‘죄’를 물고 늘어지면 동림당 계열을 일망타진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홍타이지의 반간계는 완벽하게 성공했다.1618년 누르하치가 무순성을 공격하여 선전포고했던 이래 후금군은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그 승승장구에 제동을 걸고 끝내 누르하치를 비명횡사시킨 장본인이 바로 원숭환이었다. 그가 영원성과 산해관을 막아서는 한, 아니 그가 존재하는 한 중원 정복이라는 목표는 실현될 수 없었다. 원숭환은 바로 명의 장성이었다. 그런데 그 ‘장성’이 반간계 한 방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요컨대 홍타이지는 탁월했고, 숭정제는 암우(暗愚)했다. 지도자의 차이가 후금과 명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여자프로농구] 금호생명, 천적 신한銀 깼다

    2006년 5월 이후 19개월 만의 감격이다. 상대 전적 8연패의 사슬을 끊어냈다. 금호생명이 17일 안산 와동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에서 홈팀 신한은행을 63-58로 제압했다. 앞서 금호생명은 2000년 창단 뒤 그해 여름리그부터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신한은행(전신 현대 포함)을 상대로 10승42패를 기록해 다른 팀에 견줘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장 최근 이겨본 것도 2006년 5월27일. 그동안 금호생명은 신한은행을 상대로 8연패에 빠져 ‘밥’ 노릇을 해왔다. 이날 승리로 8승7패가 된 금호생명은 신한은행·삼성생명에 이어 이번 시즌 세 번째로 전 구단 상대 승리 팀이 되며 3위를 굳게 지켰다. 금호생명이 전 구단 승리를 챙긴 것은 세 시즌 만. 또 이번 시즌 들어 우승 0순위 신한은행을 상대로 승리를 낚은 두 번째 팀이 됐다. 이언주(21점)와 신정자(15점 14리바운드)의 활약이 컸다. 초반부터 금호생명이 치고 나갔으나 신한은행이 단독 1위의 위용을 뽐내며 경기 판도는 안개 속에 빠졌다. 금호생명은 4쿼터 막판 신정자의 슛이 거푸 터지며 58-56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후 신한은행 진미정(6점), 정선민(31점), 최윤아(6점)의 슛이 정확도가 떨어지는 사이 금호생명은 신정자가 자유투로 1점을 보태 3점 차로 달아났다. 신한은행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경기 종료 13초를 앞두고 이언주가 자유투 2개를 꽂아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10시)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는 수없이 많은 신이 존재한다. 그 중 창조주인 브라흐마와 파괴의 신 시바는 힌두교의 가장 대표적인 신이다. 매년 11월 브라흐마의 성지인 푸슈카르와 시바의 성지인 바라나시에서는 신을 맞이하는 독특한 행사와 축제가 벌어진다. 인도인들의 종교와 전통,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들여다본다. ●며느리 전성시대(KBS2 오후 7시55분) 미순은 한약방에 가서 흑염소를 고아 임신에 좋다며 미진에게 주지만, 아기계획이 전혀 없는 미진은 그걸 남편에게 먹인다. 수길은 그 약이 인경이 복수를 위해 지어준 것으로 알고 뺏아 인우에게 준다. 한편 인경은 인우와 복남이 거짓말을 하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되는데…. ●주말연속극 깍두기(MBC 오후 7시55분) 재우는 80년대 수남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뒤 금희를 만나러 간다. 재우는 마정태 선생을 만났다며 자신의 어머니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당황한 금희는 물컵을 엎지른다. 한편 지해는 은호를 만난 뒤 이번 개편 때 프로그램에서 빠져달라고 말하는데…. ●조강지처클럽(SBS 오후 10시15분) 기적이 나미를 껴안고 키스하던 모습을 떠올리던 복수는 속상한 마음에 화신을 찾아간다. 때마침 눈이 내리자 화신과 복수는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린다. 응원군을 만들려는 원수는 지란을 심한과 분자에게 인사시킨다. 분자는 지란이 어머니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하자 모처럼 사람 대접을 받는다며 좋아한다. ●스페이스 공감(EBS 오후 10시) 1999년 18세에 작사, 작곡, 편곡을 비롯해 기타, 드럼, 베이스, 건반 연주까지 전부 맡았던 데뷔 앨범 ‘나는 18살이다’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뚜렷이 각인시켰던 김사랑.10년 남짓한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한 감성과 절제미를 융화시킨 한층 편안한 음악으로 돌아온 김사랑을 만난다. ●생생웰빙테크(YTN 오전 7시25분) 최근 슬로푸드로 떠오르고 있는 발효식품은 오랜 시간 정성으로 만들어져 맛도, 영양도 만점인 웰빙식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발효식품의 대표주자 김치, 청국장, 치즈. 유산균의 보고라고 불리는 서양의 대표 발효식품 치즈. 이들 중에 최고의 발효식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미디어포커스(KBS1 오후 11시10분) 대선 때마다 특정 언론이 특정 후보를 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이 특정 후보의 이념성향을 지지하기도 하겠지만, 언론사 자체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반대 급부의 이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언유착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고,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살아온 전북 남원의 박정임 할머니. 남에게 폐가 될까봐 본인에게 주어진 일은 물론이고 남의 일까지도 그저 묵묵히 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해온 박 할머니의 세상과 만난다.
  • 김명민 “손예진, 베드신 잘하던데”

    13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무방비도시’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배우 김명민(조대영 역)이 베드신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는 상대배우 손예진(백장미 역)과의 베드신에서 “자신의 거친 호흡소리 때문에 손예진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며 “사전에 그렇게 하기로 한 건데, 혼자만 흥분해서 거친 호흡을 내뱉은 이상한 사람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베드신이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며 “예진씨가 한번 붙으니깐 잘해서 약간 당황했다.”고 말했다. 또 “키스신을 앞두고 부담스러워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예진씨는 떡을 계속 먹고 있었다.”며 “(마음속으로)지금 떡이 넘어가니?”라고 말했던 에피소드를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무방비도시’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소매치기 조직을 이끄는 손예진과 그 뒤를 추적해 나가는 형사 김명민의 범죄액션 영화로 내년 1월 10일 개봉 예정이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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