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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기 억제·혼란 최소화” 지시/김 대통령 2대원칙 제시

    ◎부동산투기 절대 안된다/토초세법 당장폐지 않도록/홍 재무 보고/새법 재정·종토세에 반영 추진 정부는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가 사실상 위헌이라는 판결에 따라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한 새로운 입법을 추진하거나 ▲토지초과 이득세의 투기억제 취지를 종합토지세에 반영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그러나 토초세법을 당장 폐지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30일 과천청사에서 김태연 경제기획원 차관보 주재로 재무 및 건설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대응방안을 검토했다. 홍재형 재무부장관은 이날 청와대를 방문,「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과 향후 대책」을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했다.홍장관은 현 단계에서 토초세법을 폐지할 경우 부동산 투기의 재연과 땅값 급등세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당장 이 법을 폐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또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한 사항들을 충분히 검토해 위헌 시비가 없도록 현행 토초세법을 전면 개정한 뒤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토초세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라는 점에서 조세마찰의 요인이 상존하기 때문에 종합토지세를 강화하고 양도소득세를 합리화하는 등 여타 토지관련 세제를 통한 보유과세 기능을 높여 투기 억제와 땅값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정착됐다고 판단되면 장기적으로 토초세법을 폐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후속대책 만전을 김영삼대통령은 30일 상오 헌법재판소의 토지초과이득세에 대한 사실상의 위헌 결정과 관련,종합적인 후속대책을 수립하는데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홍재형재무부장관으로부터 관련대책을 보고받은뒤 『부동산투기의 재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안되는 만큼 이에 필요한 대책을 마련토록 하라』면서 『토초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관련한 대책을 빈틈없이 갖추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또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따라 국민의 경제활동에 큰 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아울러 강구하라』고 강조했다.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은 29일 토초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관련,홍재무장관에게 이에대한 후속보완대책을 즉각 강구하라고 지시한바 있으며 30일 이에 대한 대책을 보고받았다』면서 『김대통령은 이 지시에서 부동산투기의 억제와 국민생활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등 두가지 원칙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토초세 후속대책 새달초 당정협의 정부와 민자당은 헌법재판소의 토지초과이득세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오는 1일 가지려던 당정협의를 보다 신중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3일 또는 4일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손학규부대변인이 30일 밝혔다.
  • 거래·가격“미동”…투기재연은 없을듯/토초세 효력정지…헌재결정 파장

    ◎부동산경기 예상/종토세과표 현실화… 「보유세」 강화해야/불안심리 추방… 국민적 감시체제 필요 토지초과이득세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결은 최근 3년 동안 하향 안정세를 보인 부동산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 일각에서는 부동산 투기의 재연을 우려,법은 존속시키되 문제되는 부분만 손질하는 선에서 파장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그런가 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법의 완전 폐지를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가 아예 발붙이지 못하도록 현재 부동산 시가의 0.04%에 불과한 토지보유 세율을 선진국과 같은 0.15% 수준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것은 시행된 지 4년 밖에 안 된 토초세의 위력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89년 중 무려 32%나 폭등했던 전국의 땅값은 토초세가 시행되면서 90년 20.6%로,91년에는 12.8%로 수그러든 데 이어 92년 마이너스 1.3%,93년 마이너스 7.4%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따라서 투기심리를 짓누른 공포의 대상이 사라지면투기가 다시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사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투기에는 실물의 움직임보다 심리적 요인이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과거의 경험을 감안하면 단기적인 혼란기를 틈타 투기가 되살아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토지관련 법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투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또 토초세란 땅값이 급등하는 비상시에나 필요한 극약 처방으로 지금과 같은 안정기에는 있으나 없으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안정기에는 토지거래 전산망이나 토지거래허가제·양도소득세·종합토지세 등 기타의 법제가 투기에 대한 「안전판」 구실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특히 투기우려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는 토지거래 허가제가 투기를 차단하는 데는 토초세보다 오히려 위력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법제가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더라도 토초세의 공백이 쉽사리 메워지기는 어려우리라는 의견도 만만찮다.최소한 신경제 5개년 계획에서 예시한 대로 세율을 낮추더라도 작년 말 현재 공시지가의 21% 수준인 종합토지세의 과표현실화율을 96년부터 1백%로 끌어올리는 등 보유과세를 강화해야 투기나 부동산 과다보유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본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토초세와 함께 제정된 택지초과소유 상한제나 개발이익 환수제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이 두 법률은 실현되지 않은 이득에 대해 과세하는 토초세와 달리 종토세나 양도소득세처럼 보유과세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건설부의 홍철 1차관보는 『정부의 투기억제 의지가 확고하고 제도적인 장치 역시 완비된만큼 심리적인 불안감만 해소되면 부동산 투기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환경문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투기문제도 앞으로 전 국민의 감시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반응/“부분위헌판결 합당한 조치” 환영일색/“존립가치 상실” 여야일각 폐지론 제기 헌법재판소가 토지초과이득세의 위헌판결을 내린데 대해 정치권은 환영일색이다. 그동안 토초세의 징수에반발해온 지역구민들의 민원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여야는 헌법재판소가 완전위헌이 아니라 부분적인 위헌판결을 내린 것은 합당한 조치라고 받아들이고 있다.완전 위헌이 되면 이미 3∼4년동안 시행해온 법질서가 무너지고,그동안 거뒀던 세금도 되돌려 주어야 하는등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재판에 계류중인 토초세 징수문제는 백지로 돌릴 수 있지만 이미 거둔 세금은 반납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민자당은 정부측이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온 데 대해 불만이다.미실현 소득에 대한 과세및 양도소득세와의 이중과세의 문제에 대한 위헌판결에 따라 토초세를 폐지해야한다는 소리도 나온다.토초세의 근본 취지가 투기억제에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위헌판결이 난 이상 존립자체가 어렵다는 풀이이다.이에 대해 재무부는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이세기정책위의장은 『앞으로 토지관련세법의 개정이 불가피하며 당정협의를 통해 신속한 사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자당은 이 법을 폐지하더라도 큰 문제가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토초세가 그동안 많은 문제점을 야기해온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데 사실상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해왔다고 판단하고 있다.민자당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조세·재정소위의 나오연위원장은 『토초세의 과세대상이 전체 과세토지의 0·36%에 불과하다』고 효율성에 이의를 제기했다.나위원장은 『이 법이 투기꾼들의 투기심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전문투기꾼들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자당은 그동안 토초세에 대한 과세대상자들의 거센 반발등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자 정부측을 설득해 토초세 시행령가운데 10여개 항을 개정,과세기준을 상당부분 완화하기도 했다.농민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는 80평이상에서 2백평이상으로 과세대상을 줄이는등의 조치로 과세대상을 24만2천여건에서 9만여건으로 축소했다. 민자당은 현행 종합토지세등 토지관련세법을 보다 현실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토초세의 위헌소지를 없애고 과세에도 효율을 기할 수 있을것으로 생각하고 있다.종토세의 과세표준은 공시지가의 25%에 불과하므로 60%까지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89년 이 법의 제정에 찬성했던 민주당은 상황론을 들어 헌재의 판결을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89년 제정때는 위헌소지를 감안하면서도 부동산 투기의 이상과열을 눌러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상당부분 진정됐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김병오정책위의장은 『재산세,양도세,종합토지세,토지개발부담금등 8개 관련세법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장기적인 입법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입과정과 공과/「투기열풍 잠재우기」 일등공신/명분에 밀려 일사천리 입법… 일부 조세저항도 헌재의 판결로 토지초과이득세법의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형식적인 법논리를 초월해 도입됐던 토초세법은 시행 4년반만에 「사유재산권 보장」에 밀려 무력한 「종이 호랑이」가 됐다.법에 대한 평가도 「경제안정과 형평을 위한 개혁의 상징」에서 「무리한 졸속입법」으로 뒤바뀌었다. 이 법은 그동안의 위헌시비에도 불구하고 땅값 안정에는 최상의 특효를 발휘했다.때문에 헌재 판결로 지난 88∼89년 전국을 휩쓸었던 투기열풍이 재발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법의 제정 과정과 집행실적 및 집행 과정에서의 조세마찰 등과 앞으로의 정부대책을 정리한다. ▷도입과정◁ 지난 89년 말 정기국회에서 「택지초과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과 함께 토지공개념 관련 3법이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했다.조순부총리 시절 경제기획원의 이형구차관,김인호차관보,한리헌기획국장 등 개혁라인과 청와대의 문희갑 경제수석이 입법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이 3법은 개혁의 대세와 부동산 투기억제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제대로 축조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법 제정에 참여한 재무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입법 자체에 대한 반대는 물론,세부 내용에 대해서조차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거의 역적행위로 여론에 매도당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당시의 위기적 상황은 합헌성 여부나 다른 법률과의 균형 등에 관한 법리논쟁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85∼86년에 7% 수준이던 전국의 평균 땅값 상승률은 88년 27.47%,89년 31.97%로 치솟았다.큰손과 복부인들은 방방곡곡을 휘저으며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한편에서는 전세값이 치솟아 거리에 나앉은 가장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집행실적·조세마찰◁ 90년분 지가상승이익에 대해 91년에 첫 과세(예정과세)가 이뤄졌다.2만3천2백81명의 유휴토지 소유주들에게 모두 4천6백30억원이 부과됐다.당해년도에 예정대로 징수한 실적은 1천9백2억원에 그쳤고 수천명이 국세청에 이의신청을 냈다.이들 중 1천2백41명은 국세청 재심에서 구제되지 않자 국세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다. 연도별 토초세 부과인원과 금액은 91년에 이어 92년(예정과세)4천1백3명에 3백41억원,93년(정기과세) 9만4천1백47명에 9천4백77억원으로 모두 12만1천5백31명에게 1조4천1백47억원이다. 징수 실적은 91년에 이어 92년 1천2백18억원,93년 3천2백26억원,94년 1천9백95억원(추정치) 등 모두 8천3백41억원이다.전체 부과액의 59%만 걷힘으로써 조세마찰이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지가안정◁ 땅값과 집값의 안정에는 크게 기여했다.법 시행 이전에 연 32%까지 치솟던 땅값 상승률은 91년을 고비로 급격히 떨어져 92년과 93년에는 하락세로 반전했다.집값도 90년에 21%가 올랐으나 91∼93년까지 3년 연속 하락행진이다.
  • 농지 소유·거래 완화/농지법안 입법 예고

    농림수산부는 농업경영체의 육성과 농지의 소유 및 거래에 대한 제한을 대폭 완화한 농지법안을 30일 입법 예고한다. 예고기간인 오는 8월19일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당정협의·경제장관 회의·국무회의를 거쳐 정부안을 확정,정기국회에 올릴 예정이다.국회에서 통과되면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96년1월부터 시행한다. 농지법안의 주요 내용은 ▲10∼20㏊인 농업 진흥지역에서의 소유상한 및 20㎞의 통작거리 제한 폐지 ▲농업회사 법인의 도입 및 농지소유 허용(주식회사는 제외) ▲상속 및 이농자의 경우 1㏊가 넘는 농지의 1년 이내 처분 의무화 등이다.
  • 김정일·김영주 “권력 암투”/북경 서방소식통

    ◎김영주측,주석직 할애 요구 【북경 연합】 북한은 현재 당총비서와 주석선출을 둘러싸고 김정일과 김일성의 실제인 김영주부주석겸 당정치국위원간에 심각한 권력투쟁을 빚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난 20일 김일성추도대회가 열린 직후 소집될 예정이던 노동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개최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북한 최고지도부내의 이같은 권력암투는 핵심지도부는 물론 중간엘리트층과 하부구조에서도 김정일지지와 김영주지지로 양분되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사정에 밝은 이곳의 한 서방소식통은 『당초 김일성의 장례식이 끝난뒤 당사업총괄담당비서,인민군최고사령관,당중앙군사위원,국방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정일의 당·정·군 3권 장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주석직 할애를 요구하는 김영주 지지세력의 부상으로 권력승계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에 주재하는 북한정부인사들의 말을 인용,이같이 말하고 『중국에서 활동중인 북한외교관 등 관변인사들도 겉으로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북한권부의 복잡한 속사정 때문에 초조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특히 권력투쟁 양상과 관련,『김정일이 핵심지도부내에서는 김일성의 사망으로 당서열 2위로 올라선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 강성산정무원총리의 지지를 받는 등 유리한 위치에 있으나 일부 원로세대와 당·정·군내의 중간엘리트계층,많은 인민들사이에서는 김정일당총비서­김영주주석으로 하는 권력분담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어 『김정일과 김영주간의 힘겨루기 양상은 내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쌍방간 갈등과 대립이 더욱 심화될 경우,다음달초로 예정된 미·북한간 고위급회담 성과와 남북한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북한내부에서 중대한 정변이 돌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토초세법 대폭 개정/당정,정기국회서/과세범위 축소·세율인하 역점

    ◎정부 “법은 존속” 방침에 당선 “아예 폐지” 주장/재무부,“고지된 세중 체납분 계속 징수 할것” 정부와 민자당은 29일 헌법재판소가 토지초과이득세법의 일부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법률의 위헌적인 요소를 제거,합헌적으로 개정 또는 폐지토록 국회에 위임함에 따라 다음주초 당정협의를 갖고 관련법을 개폐하는등 후속대책을 마련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민자당의 이세기정책위의장은 이날 『재무부는 그동안 토초세가 부동산투기억제에 효과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법의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면서 『그러나 헌재에서 사실상 위헌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법개정이 불가피하며 당정협의를 통해 신속한 사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의장은 또 『토초세는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문제와 양도소득세와의 이중과세에 대해 논란이 제기돼왔다』고 말해 토초세법 폐지를 포함해 종합토지세및 양도소득세등 관련 세제를 개편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부는 토초세의 위헌조항에 대한 개정을 추진할 생각인 반면 민자당 일각에서는 토초세의 폐지론도 나와 당정협의 과정에서 개정과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민자당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조세·재정소위(위원장 나오연)는 당정책위에 건의한 세제개편안을 통해 『토초세가 조세부담의 형평,지가 안정,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나 많은 문제점이 있다』면서 『종토세와 양도소득세를 개선함과 동시에 토초세는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위원장은 『토초세는 종합토지세를 보강하는 것을 전제로 폐지해야 마땅하다』면서 『전토지의 0.36%만 과세대상으로 하는 토초세보다는 모든 토지의 90%이상을 과세대상으로 하고 있는 종토세로 부동산투기억제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자당은 이와함께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소급적용되지 않음에 따라 이미 토초세를 낸 사람에 대한 구제방안도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 한편 재무부는 29일 홍재형장관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후속 대책을 논의,초토세법 자체는 존속시키되 헌재가 지적한 사항들은 모두 개정하기로 했다. 주요 개정 사항으로는 ▲대통령령에 전면 위임돼있는 과세표준(공시지가) 산정방식과 기준을 법에 명시하되 조세마찰을 없애기 위해 과세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50%의 단일세율로 돼있는 토초세율 체계를 과표가 커짐에 따라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율 구조로 바꾸되 평균세율은 20∼3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 등이다. 지금은 임대용 토지를 일률적으로 유휴토지로 간주,과세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실질 사용 여부에 따라 과세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등 임대용 토지에 대한 과세범위를 재조정하고 세금을 현물로 대신 납부하는 물납제도의 개선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재무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토초세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재무부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토초세의 신규 과세는 불가능하지만 이 결정 전에 이뤄진 세금부과 및 납부 등의 행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행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강만수세제실장은 『이미 납부한 세금의 환급 여부와,부과됐으나 아직 납부하지 않은 세금의 징수 또는 부과취소 등은 최종적으로 국회의 토초세법 개정 과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본다』며 『그 이전까지는 이미 고지된 세금 가운데 체납세액을 징수한다는 것이 재무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 지하철­버스 환승망 강화/교통당정/1천9백㏄이상 차고지 의무화

    정부와 민자당은 28일 교통당정회의를 열고 지하철및 전철과 버스노선과의 연계망을 강화하는 내용등을 포함한 「대도시 교통종합대책 핵심과제안」을 마련,공청회등을 거쳐 오는 10월 최종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민자당 대도시교통종합대책기획단이 그동안 당정협의를 통해 종합한 이 과제안에 따르면 제2기 지하철및 전철망이 완공되는 오는 97년에 맞춰 대도시버스노선을 직행좌석버스와 일반·마을버스 체계로 2원화,지하철과의 연계망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하철과 시내버스와의 환승요금제도를 시행하기로 하고 단기적으로는 「지하철→버스」의 일방 환승요금제도를 보완,3%인 할인율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과제안은 또 도심교통난의 완화를 위해 지하철·전철역등 대중교통수단이 개발된 지역의 건축물에 대해 반지름 2백m를 기준으로 주차장 설치요건을 완화하되 기존의 무료주차장을 모두 유료주차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거지 이면도로를 정비,유료주차장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차고지 확보제도는 1단계로 1천9백㏄이상 승용차에 대해 실시하고 앞으로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모든 차종및 지역에 확대하기로 했다.
  • 「김정일승계」 발표 왜 늦어지나/북 「전승기념일」 행사와 권력향배

    ◎“권력서열 조정작업 진행” 추측/화려한 「대관식」 앞둔 준비설도 27일 열린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 행사에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발표가 나오지 않아 김일성 사후 북한권력의 향배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이 해마다 휴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치르는 연례행사이긴 하나 이번에는 김정일체제 출범을 알리는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관측이 빗나간 것이다. 물론 이번 행사가 조용히 끝난 게 반드시 김정일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김일성부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요란하게 치렀던 지난해와 달리 소규모 실내행사로 진행되었지만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당정치국위원이자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가 보고를 통해 『전체인민과 인민군 장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우리 혁명의 수호자로 높이 모시고 당의 사상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자』고 충성을 유도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김정일체제의 조기구축 가능성에 의문점을 던지는 몇가지 특이사항이 노정됐다는 분석도 있다.그가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그에 대한 호칭도 여전히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에 그친 것이 그 하나이다.또 군의 최고실력자중 한사람인 최광 인민군총참모장이 군행사에 참석지 않은 사실도 퍽 이례적인 대목이다.더욱이 지난 대회에서 보고서를 낭독했던 권력서열 3위 강성산 총리가 그의 사위의 한국 귀순사실이 밝혀진 이날 불참한 것도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이같은 특이점들은 이날 행사에서 오진우·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한명씩 호명되지 않고 「정치국 후보위원들」이라는 식으로 일괄소개한 것과 함께 권력핵심부간 내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즉 김정일의 권력승계 그 자체에 결정적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권력서열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미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사회저변의 충성서약을 좀더 이끌어낸뒤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즉 핵문제 등을 일괄타결한 뒤 이같은 업적을 이용해 오는 10월 전당대회에서 축제분위기 속에 추대식을 치르려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 중앙부처 과장 복수직급제 도입/당정/육아휴직·가사휴식제 채택키로

    정부와 민자당은 27일 중앙행정기관 중간관리계층을 보강,국가정책능력을 향상하고 승진정체를 완화하기 위해 중앙부처 과장의 복수직급제를 도입키로 했다. 당정은 또 육아휴직제를 도입,남녀 공무원이 한살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려 할때 1년이내의 무급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가족의 질병 간호를 위한 가사휴식제도 채택키로 합의했다.
  • 귀순 강명도·조명철씨 기자회견 일문일답

    ◎북군부 오진우·오극렬파 암투 치열/김정일,85년부터 외교 제외 모든 권한 행사/전쟁 대비,마카오·스위스·일등에 외자 예치 27일 귀순 기자회견을 가진 강명도씨와 조명철씨는 『북한 김정일의 정치 체제에 회의를 느껴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귀순동기와 강성산총리에게 알렸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 ▲(강씨)89년 인민무력부 실장으로 있을때 군부고위계층의 권력다툼과정에서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된 적이 있었다.이때 죄없는 3만여명의 죄수들이 구타당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김정일의 정치체제에 불만을 품게 됐다. 부모친척중에 김정일의 측근이 많다.그래서 이들이 석방을 제의해 김의 지시로 석방된뒤 강성산의 도움으로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발령받고 작년 12월 강재수출관계로 중국으로 가게됐다. 그러나 강재를 못 팔아 자금회수가 어려워 1주일로 예정했던 체류기간이 한달로 길어졌다.북한에서는 내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돼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이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게돼 탈출을 결심했다.강성산이나 가족들은 탈출사실을 모른다. ­한달간 머문 행적은. ▲(강씨)중국에서는 겨울이 지나야 강재값이 오르므로 팔지 않고 있었다.돈을 돌리기 위해 심양과 북경등지를 왕래했다.김일성 사후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했다.오늘의 귀순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되면 강성산에 대한 대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군부내 권력다툼이 심각하다는데. ▲(강씨)북한 군부내의 권력다툼은 오진우·오극렬·이봉원파등 3개파로 갈라진다.그 밑으로 1군단과 2군단 출신파로 갈려 있다. 오진우파와 오극렬파가 갈려진 배경은 이렇다.87년에 오진우가 김정일과 함께 만찬에 참석했다가 대형 벤츠 승용차를 직접 몰고 돌아오다 가로수를 받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오진우는 거의 죽을 상태가 돼 후임을 오극렬이 대행하게 됐다.오는 이후 총참모부에 공군사령부 출신을 측근으로 기용하는등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가 무력부장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오진우가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1년만에 회복돼 복귀해 이봉원한테서 이런얘기를 듣고 분개했다.이봉원은 오극렬과 사이가 안좋았다. 원래 오진우는 혁명1세대이고 오극렬은 만경대학원 출신의 2세대인데 오진우는 오극렬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김일성에게 교체를 요구해 결국 오극렬은 물러났고 그의 사람도 다 나가게 됐다. ­김정일의 후배로서 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무원 간부들이 성향은.(강씨에게)김달현의 근황은.강성산이 88년 좌천이후 재발탁된 배경은.강성산과 김정일의 관계는. ▲(조씨)나는 북한에서 풍파를 격은 사람이 아니다.고스란히 자라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남산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고등반 인민반 유치원반으로 나눠져 있고 장차관급이상 자녀들만 따로 교육하는 곳이다.이 곳에서나는 김정일의 동생 김평일,영일과 함께 공부했다. 대학졸업후 김일성대학 교원이 돼 상류생활을 하면서 행복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그러면서 김정일체제와 북한 사회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김정일은 정치적 경제적인 업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남쪽의 소식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나의 행동이 북조선 통치자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김평일과 영일은 공부도 잘했다.김평일은 사람을 많이 끌었다.학교에서는 김정일을 치켜 세우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결단코 제거하자는 운동이 미사여구로 미화됐고 정당성으로도 연결됐다.이런일도 있었다.학생들은 김평일과 영일과는 대면하지 못하게 돼 있으나 어느날 축구를 하고 선생들이 평일 영일과 식당에 가 식사를 같이 했다.서로 불문에 부치기로 했으나 어느 선생이 노트를 두고 나와 탄로가 나 많은 선생들이 물러났다. 정무원 각료들은 파벌은 없다.그러나 이들은 개방을 원하고 있다.정무원의 모든 부장들은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강씨)김달현은 나의 친척이다.할아버지는 강선욱인데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와 6촌형제이며 전부주석 강양욱과 친형제이다.김달현은 강반석의 오빠 강진석의 손녀 사위이다. 김달현은 대외분야를 많이 맡아 92년 12월 강성산이 총리가 되면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에서 같이 승진했다.그런데 김은 강성산이 심장쇼크로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총리를 대행하면서 경제를 책임지게 됐다.그때 군수공장의 전기를 30% 삭감해 탄광등지로 보냈는데 그 때문에 군수생산계획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김일성이 받게됐다.김일성은 대노해 『정신 있는 사람인가』 하면서 질책을 했고 김달현은 사상검토를 받고 도청도 당했다.김달현은 강성산과 때로 맞서기도 했다.강성산이 내놓는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결국 김은 작년 12월 함남에 지도원으로 내려갔다. 강성산은 경제문제등이 꼬여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당뇨병이 심해졌다. 그래서 김일성이 쉬도록 권고해 88년에 함북으로 휴양을 갔다.91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는데 재기는 상상도 못했다.강성산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다.강은 중국 출신이고 아버지 강위련은 빨치산출신으로 김일성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강의 삼촌 강위룡은 아직 살아 있다.강위련은 기관총 분대장을 했는데 강이 죽자 김일성이 몹시 울었다고 한다.강은 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 이근모 연형묵등과 함께 체코에서 유학도 해 체계적으로 키워져 김일성이 등용했다.강은 김정일과도 가깝다.김정일과 사이가 나쁜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비리를 들춰 낸 것이 계기가 됐다. ­북한의 핵 상황은. ▲(강씨)김정일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핵이라 생각하고 있다.인민생활과 경제가 파탄상태인데도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핵이라고 여기고 있다.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민간공장보다 더 많다.핵이 개발됨으로써 군수공장의 투자를 민간으로 돌릴 수 있다는 논리이다.동구권국가가 허물어지면서 공격받지 않으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북한은 5개 정도의 핵폭탄생산을 완료했다.핵을 실어나를 로켓 생산은 실험단계이고 94년까지 완전 생산할 것이다.최소한 10개정도 확보한 다음에는 보유사실을 공개해 남북 대미 관계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핵폭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다만 갯수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이 이야기는 영변 핵단지에 있는 고위 간부가 아들 결혼식 때문에 나와 술과 담배 식료품등을 취급하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은 것이다. ­북한내 지식인이나 고위층주변의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어떠한가. ▲(강씨)북한의 지식인들과 일부 고위층 사이에는 김정일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이때문에 식량난과 경제난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평소 김정일은 지나치게 즉흥적인 정치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일부 원로들에 대해서까지 너무 편견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이러한 내막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나 고위층들은 그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조씨)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이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북한사회를 빠져 나올 경우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뿐 80년대 중반부터 노골화된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체제는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강씨)20년전부터 정치를 해와 권력기반은 튼튼해 수명이 길 것으로 본다.75년부터는 정권기반을 닦았으며 85년부터는 김정일이 외교권 행사를 제외하고는 총지휘했다. 당정의 지시를 받아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유일적 지도체제에서 당정은 사실상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또 기본권력수뇌부인 당정 조직 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 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총비서,주석을 다 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청진시의 화학석유공장이 91년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작년 9월 한달동안 김책제철소가 가동되지 못하는등 경제의 70%정도가 파탄지경이어서 김정일 체제 수명은 주민 불만고조로 짧아질 수도 있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총정치국장을 겸하고 있는가. ▲정치국과 참모부간의 갈등이 많아 오진우가 겸임하고 있다. ­94년을 잘 넘긴다는 뜻은 무엇이고 핵수출 가능성은. ▲지난해 김정일은 북미회담과 IAEA핵사찰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진의,핵사찰에 대한 중국의 입장등을 파악하느라 집에도 가지못하고 청사에서 자면서 북미회담을 지휘했다. 이때문에 김정일은 당시 내년(94)만 잘 넘기면 북미회담및 남북회담에서 유리하다고했다.핵수출여부는 잘 모르겠다. ­외화보유고는 얼마나 되나. ▲대성은행이 전쟁에 대비해 마카오,스위스,일본은행등에 외화유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사로청과 한총련과의 관계는. ▲사로청 산하 조선학생위원회는 사로청의 외곽지도를 받고있으나 사실상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지도하고 있다.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럴싸한 이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왜 남조선으로 오는 귀순자들이 있는지 학생들은 심각히 생각해봐야한다. 또 서강대 박홍총장의 얘기는 약과다.대남정보부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보다는 흥분하기 쉽고 혈기가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의 성격,지식,지도력,건강,가족관계는.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성질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뜻의 「패났다」는 소릴 들을 정도다. 피아노를 전문가이상으로 치는등 예술에 매우 조예가 깊다.매우 건강한편이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서 우는등 눈물도 많다. 김정일이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등 졸렬하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 않는다.83년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는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였다. 또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하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출신의 고영희씨(40)이며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송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 김군은 그러나 김정일 뒤를 이를 후계계승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김군을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을 때 김군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가. ▲(조씨)남산고등중학교 시절에는 남한 신문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가 건설부부장으로 일할 때 장관급 이상 고위직에게 보급되는 국제정세,남조선정세,과학기술정세등에 관한 참고통신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이 통신은 논평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기록돼 있다.또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같은 정보가 비밀히 나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사망으로 집단 통곡하는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조씨)북한의 주체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고 주민들은 세뇌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주민들은 주체사상이 대중과 민중을 위한 이론으로 알고 있어 이를 만든 김일성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또 주민들이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장인 강총리 숙청될것” 괴로운 표정/“북뉴스 접촉기회” 내외신기자 2백명 몰려/귀순자 기자회견장 이모저모 27일 귀순한 강명도씨와 조명철씨의 기자회견이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회견장에는 두 사람이 북한고위인사의 친인척이어서 폐쇄적인 북한 내부의 고급 뉴스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특히 일본의 교토통신과 유럽의 로이터통신등 외신기자가 보도진의 절반을 넘었으며 국내 기자들보다 앞서 질문공세를 펼침으로써 최근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강씨등은 시종 진지하고 또렷한 말투로 취재진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했으며 종래 귀순자들과는 달리 고위층 내부의 비밀스런 활동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 이날 회견에서 강씨는 여유있는 태도와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북한 내부사정을 조리있게 설명.반면에 조씨는 구체적인 답변보다는 학자풍의 원칙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해 대조적. ○…특히 강씨의 경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87년 음주교통사고를 낸 상황을 설명하면서 오의 대형벤츠 승용차 번호인 216­5555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도 해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이날 강씨는 3시간여동안의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나의 귀순과 기자회견으로 단기간내에는 강성산총리의 신변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숙청등 그 대가를 치르고 상당히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도중 땀을 훔치는 등 다소 힘든 모습을 보인 조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동료들은 북한의 모순된 체제를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달아났다고 비난할 것』이라면서 『다만 우리들의 귀순동기가 북한사회에 알려져 북한사회를 바로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인적사항 ▷강명도◁ ▲나이·생년월일:36세,58.12.4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1동7반 ▲직책: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 ▲학·경력 ­70.8∼76.9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6.10∼79.9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79.9∼82.7 중앙사로청 과외교양지도국 외사과 지도원 ­82.7∼85.10 조선인민경비대원,평양시당 39호실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7.6∼92.2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 *외국인 무단접촉으로 90.3∼92.2 평남 북창군 「18호관리소」수용 ­92.3∼ 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대외명칭 「릉라888무역회사)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부사장 ▷조명철◁ ▲나이·생년월일:35세,59.4.2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봉수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1동 8반 아파트 20층1호 ▲직책: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92.8부터 중국 북경언어학원·천진시 「남개」대학 유학 ▲학·경력 ­71.9∼77.8 남산고등중학교 졸 ­77.9∼83.8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자동조정학과 졸업 ­83.9∼87.10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 *기업관리 현대화 전공,준박사학위 취득 ­87.10∼92.7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경제수학·기업관리 현대화 강의 ­92.8∼93.7 중국 유학,북경 언어학원 중국어 연수 ­93.9∼ 중국 천진시 남개대학관리학부 연수 *경영합분야의 정책결정론 과정
  • 북 어제 「전승기념일」 행사/김정일·강성산 불참

    북한은 휴전 41돌을 맞아 27일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2·8문화회관에서 「조국해방전쟁승리경축 중앙보고대회」를 갖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 김정일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호칭도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으로 종전과 변함이 없었다. 통일원과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부주석인 이종옥,박성철,김영주등이 참석했으나 권력서열 3위이자 사위가 귀순한 강성산정무원총리와 최광 군총참모장이 참석하지 않아 주목을 끌었다.이와관련,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행사규모 축소로 강성산등이 불참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관측하고 권력서열에 이렇다할 변화도 감지되지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해와 달리 이날 행사를 소규모 실내행사로 치른 것은 김일성장례식과 추도대회등으로 이미 많은 군중들이 동원된 바 있어 주민들을 또 다시 동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이날 행사를 하오 5시부터 녹음실황으로 보도했다.
  • 강명도·조명철씨가 밝힌 「후계자의 사생활」

    ◎“김정일성격은 급하고 저돌적”/「곁가지」 제거에 신경… 도마다 「기쁨조」 운영/세여인 사이 3남3녀… 23살 장남도 방탕 김정일의 성격은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인 편이며 건강도 아주 좋다고 귀순자들은 밝히고 있다.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씨(36)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성격과 관련,『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며,시시때때로 성질이 왔다갔다해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패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김정숙)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 우는등 눈물도 많다고 했다. 전건설부장 조철준의 차남이자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인 조명철씨는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 졸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를 않는다고 강씨는 밝혔다. 83년 강씨의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는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밝혔다. 또 허답의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졸업뒤 선전선동부에 근무했으며 전문가 이상으로 피아노를 잘치는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그녀의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한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또 권력서열 2위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고 밝혔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40)이며 고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정일 후계 승계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를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다는 강씨는 당시 김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특히 전쟁시 사용하기위해 홍콩의 마카오를 비롯,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은행등에 외화를 넣어두고 있다고밝혔다. 강씨는 김정일 체제의 수명과 관련,『20년전부터 정치를 시작,85년부터는 사실상 정권을 총지휘해 온데다 당정의 조직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면서 『사실상 김정일은 총비서와 주석직을 다 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씨는 그러나 경제의 70%가 파탄에 이르러 경제및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주민들의 불만고조로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의 이종… 북 대표적 개방파/「사위 귀순」 강성산은 누구 귀순자 강명도씨(36)의 장인인 강성산정무원총리는 현재 북한 권력서열 3위에 올라있는 실세인데다 두번째 총리를 역임하고있는,김정일의 핵심측근.지난 8일 사망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의 큰 언니 아들이어서 김일성과는 이종사촌관계. 올해 63세인 그는 북한 경제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주자이며 김달현등과 함께 북한내 몇 안되는 개방파 인물.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으로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뒤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체코의 프라하공대에 유학하는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67년 자강도 당책임비서로 임명된데 이어 70년 39세에 평양시당 책임비서로 발탁돼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김일성부자의 각별한 신임으로 77년 정무원 부총리에 전격 임명된 이후 84년 최고인민회의 7기 3차회의에서 제1부총리자격으로 「남남협력과 대외경제활동을 강화하고 무역활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대하여」라는 주요보고를 한뒤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이해 9월 합영법과 외국인소득세법등 개방정책관련법들을 마련하는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개방준비에 박차를 가했다.그러나 경제개혁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86년12월 총리직에서 해임돼 당비서로 자리를 옮긴뒤 88년3월 전직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도 두만강개발계획을 창안하는등 개방을 계속 추진해왔으며 그의 이같은 경제개혁추진능력은 김일성으로부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았고 92년 12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사위의 귀순이 그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 농특세/농업용수 개발 투자/가뭄극복 국민운동 대대적 전개

    정부는 가뭄 극복을 위해 오는 8월말까지 국민성금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국민들이 전기와 물을 스스로 절약하는 「국민생활개선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이영덕국무총리는 26일 담화를 발표,가뭄 극복을 위한 대대적인 국민운동의 전개를 제안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농업용수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현재 공사를 집행중인 1백6개지구의 대·중 규모 농업용수개발사업을 오는 98년까지 조기에 마무리짓고 공무원들에게 특별휴가를 주어 연고지역에서 가뭄극복 지원활동을 벌이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정부와 민자당은 이날 상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이세기정책위원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회의를 갖고 농어촌 구조조정및 지원사업비 42조원과 농특세 15조원의 무자계획을 일부 조정,암반지하수를 다목적 용도로 개발해 농업용수와 농어촌지역 식수를 함께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일사회당 총리에게 주문한다(사설)

    김영삼대통령과 무라야마(촌산부시)일본총리가 어제 청와대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등에 대한 긴밀한 공조협력에 합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김일성사망으로 유동성의 변수가 생긴 한반도정세를 양국정상이 만나서 분석하고 조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만큼 양국관계는 긴밀하다는 과시다.그것은 바로 이지역 정세의 가닥을 안정으로 이끄는 토대가 된다고 우리는 평가한다. 일본으로서는 이례적인 사회당출신 총리가 한일 두나라간의 불변의 유대와 공조체제를 확인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지난 30년이상 북한 노동당과 우당협약을 이어온 일본사회당의 위원장이 총리가 된 상황을 북한이 이용하고 한일 양국관계를 이간질하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신호다. 우리는 무라야마총리가 일본의 전통적인 대한우호협력자세와 정책의 계속성을 확인함으로써 사회당정권에 대한 우리의 불신을 해소하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취임후 최초의 방문국으로 한국을 찾은 것이나 이례적으로 자민당총재이기도 한 고노 요헤이 외상을 동행한 것등은 사회당 총리의 연립정권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하려는 성의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도 그것을 행동화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내용이다.우리는 앞으로의 일본의 실천노력을 주목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일본 사회당의 친북 반한 기질이다.북한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인정하고 한일협정의 무효를 주장했던 과거의 대북편향은 차치하고라도 현재의 남북한 등거리정책도 일본총리가 대표해서 정권에 참여한 정당의 노선인 이상 우리로서는 불안감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다. 사회당의 대북편향노선은 이제 청산이 있어야 할 것이다.그런 바탕에서 북한에 대한 정확하고도 객관적인 인식의 필요성이 요청된다.개혁과 개방으로의 유도 노력은 북한 노동당과의 특수관계를 긍정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과제다.그런 한편으로 한국 중시의 책임있는 자세로의 전환이 있을 때 일본사회당은 우방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태도도 좀더 분명히 해야 한다.북핵문제는 대화로 해결하되 유엔의제재가 불가피한 경우 협조한다는 기본입장을 우리는 믿는다.대북수교와 북핵문제를 연계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대북문제를 놓고 기회주의적인 자세를 보여서는 안된다.북한핵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 대한 위협이기도 한 것이다. 내년은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자 광복반세기이기도 하다.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새로운 차원의 양국협력관계를 발전시켜가는 또 하나의 소중한 디딤돌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 응급환자 신고전화/「119」로 단일화

    정부와 민자당은 22일 현재 119와 129로 이원화돼 있는 응급환자 신고전화를 119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당정은 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언제 어디서나 신고후 20분안에 구급차가 도착할 수 있도록 각 소방서를 중심으로 구급차수를 1천2백대로 보강할 방침이다.
  • “추모열기 식을때 기다려” 해석 유력/김정일 권력승계 왜 늦어지나

    ◎“건강·리더십 문제로 난기류” 관측도 북한 김정일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등 권력승계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과연 언제쯤일까.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의 지속적 김정일 미화작업으로 따놓은 당상처럼 비쳤던 그의 공식 1인자 등극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 22일 상오까지 북한방송들에 나타난 김의 호칭은 여전히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이를테면 북한중앙방송은 21일 저녁 김정일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찬양했으나 그에 대한 호칭은 「장군」에 그쳤다. 20일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사실상 김이 후계자로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각계 인사의 충성다짐만 계속 선전할 뿐 그의 당총비서 및 주석 승계발표를 서두를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다된 밥」처럼 여겨졌던 김의 1인자 공식화에 뜸을 들이고 있는 까닭에 대해 현재로선 누구도 자신있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몇가지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우선 2년 동안의 후계체제 구축작업으로 그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굳이 절차적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북한권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수령의 유일지도체제인 데다 김일성 생전에 이미 김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세뇌시켜온 만큼 당총비서 등 구체적 직책의 승계는 부차적 문제라는 얘기다. 요컨대 다른 「대안」이 없도록 상황조성을 해놓은 마당에 현재 「상주」의 지위에 있는 김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훼손해가면서까지 승계절차를 앞당겨 강행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거에 따르면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에 대한 승계절차를 밟을 시점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김일성에 대한 「추모열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려온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김정일의 건강이나 지도력에 문제가 생겨 완전한 1인 지배체제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이는 미­북 3단계회담 등 북한정권이 운명을 걸고 대비해야할 대내외적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국가주석 등 요직의 장기공백을 방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즉 김이 명목상 1인자 자리에 오르는 데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질적인 권력장악에는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정부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을 외형상의 대표로 내세우되 실제 정책결정과 집행은 당정치국을 핵심으로한 당중앙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북한체제가 변모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불리는 유사 집단지도체제가 그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에 대한 공식 후계선언이 늦춰지고 있는 것도 단순히 선출절차나 시기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당적 지배체제」에 참여할 핵심인사들간의 「파워게임」이 끝나지 않은 탓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 한국의 「사회당정권 불신감」 씻기/무라야마 일총리 왜 방한하나

    ◎「김정일의 북핵」도 심도있게 논의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23,24일 이틀간 한국을 공식방문,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사회당 총리로서는 최초의 한국방문이다. 무라야마총리의 방한은 지난 6월30일 자민·사회당및 신당사키가케의 연립정부 출범 이래 특정국을 방문하는 첫 외유로 일본외교의 계속성과 한국중시정책을 강조하는 중요한 외교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무라야마총리는 지난 7월초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나폴리를 방문했으나 특정국가의 방문은 아니어서 이번이 사실상 첫 공식 외국방문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무라야마총리의 첫 외국방문으로 한국을 선택한 것은 전통적인 한국중시정책의 계속성과 함께 사회당총리 등장에 대한 한국내 불신감을 씻어내고 양국간의 긴밀한 우호관계유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무라야마내각은 사실상 자민당 중심의 연립정부이지만 한국내에는 북한과 가까운 사회당총리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남아 있다. 무라야마총리는 이때문에 김대통령과의정상회담에서 새 정권의 대한정책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무라야마총리의 한국방문에 이례적으로 자민당총재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외상이 동행하는 것도 새 정권의 총리는 사회당이지만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외교의 계속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수 있다. 무라야마총리는 김일성사망 후의 북한핵 문제 등 한반도정세에 대해서도 김대통령과 깊이 있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무라야마총리는 당초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7월16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그는 한반도문제에 일본이 방관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려 했었다.그러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방한이 1주일 연기 됐다.김일성 사망이라는 중대한 변화로 북한문제는 더욱 중요한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총리는 북한핵문제와 관련,「대화를 통한 해결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한국·미국등 관계국과의 긴밀한 연대와 공동보조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양국정상은 특히 북한의 핵의혹은 완전히 씻어져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일외교의 현안으로 남아 있는 종군위안부 등 과거사문제는 무라야마총리에게 더욱 무거운 부담이 될지 모른다.사회당은 그동안 적극적 과거사 청산을 주장해 왔으나 지금은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총리이기 때문이다.총리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사죄발언과 구체적 대응책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무라야마총리의 방한은 아직도 껄끄러운 사회당과 한국정부와의 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과거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당은 냉전붕괴 등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북한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위원장(당시)은 지난해 사회당위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한­일 기본조약을 인정,한국을 방문했다.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무라야마총리가 사회당에 대한 한국내의 불신을 완화시킬 경우 한국과 사회당과의 관계는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갈라지는 논밭/속타는 정·관가/“가뭄피해 확산” 대책마련 부심

    ◎“최대현안” 인식… 비상근무방안 검토/정부/당직자 현장방문… 종합지원책 모색/민자/피해보상 추진… 농촌의원 지역상주/민주 가뭄이 심해지자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모두가 속이 타고 있다.정부·여당은 재해대비예산의 긴급방출과 함께 군등 가용인력을 총동원하고 있으나 비가 오지 않으면 문제의 근본 해결이 안되기에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각료 휴가계획 보류 ▷정부◁ ○…김영삼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다른 질문에는 거의 답변을 않고 계속 가뭄걱정을 해 가뭄피해에 대한 관심을 반영.김대통령은 가뭄이 계속되자 아직 여름휴가일정도 잡지 않고 있으며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요즘 대통령이 생각하는 최대현안은 가뭄』이라고 소개. 지난 16일 호남의 가뭄피해지역을 다녀온 김대통령은 22일 영남권을 다시 방문할 예정. 이영덕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각료들도 총무처에 휴가계획을 내긴 했으나 제대로 휴가를 떠나게 될지는 미지수.아직 휴가를 떠난 장관은 1명도 없으며 통일원 외무·국방부등 통일·안보 부처장관들은 김일성 사망탓인지 휴가계획을 보류하겠다고 신고하기도. ○…내무 농림수산 건설 상공자원부등 가뭄관련 정부 부처의 관계자들은 철야 당직근무조를 강화하는등 가뭄대책수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가뭄이 더 심해진다면 범정부적으로 비상근무를 하는 방안도 검토중. 정부의 한 당국자는 『공무원들의 여름휴가를 보류하는 방안보다는 휴가를 지역연고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가뭄해소를 돕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 ▷민자당◁ ○…북한의 불확실한 정세,「주사파」학생들의 극렬행위,노사문제,보궐선거등으로 어수선한 여름 정국에 가뭄 피해가 가중돼 통치력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야당이 가뭄피해를 정치공세에 활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 조기비준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당직자들을 총동원,한해지역을 시찰하고 당정협의를 통한 지원방안을 모색하는등 긴박한 분위기. ○묘책없이 발만 동동 21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오는 25일 경제부총리를비롯한 관련부처 장·차관들과 이세기정책위의장등이 참석하는 고위당정회의를 열어 한해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결정. 이날 문정수총장이 전남 영암·해남지역의 가뭄피해를 살펴본 데 이어 22일에는 이세기정책위의장이 전북 일대를 시찰하며 이한동원내총무도 다음주초 전남북,또는 경남지역을 방문할 예정. 이와 함께 부산 경남 광주 전남북지역의 시·도당직자의 휴가를 월말까지 보류하고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도 휴가를 지방연고지역의 일손돕기활동에 활용토록 조치. 또 소속의원및 사무처 요원 급여의 2%(약 2천5백만원)를 한해대책비로 모금하기로 했으며 그동안 전국을 돌며 모금한 재해대책기금 가운데 3억4천1백만원을 이번 가뭄피해지역에 지원할 방침. 그러나 『하늘이 도와야 할텐데』(문정수사무총장) 『농민들과 마음의 아픔을 나누는 것 말고는 하늘이 가장 큰 대책』(강삼재기조실장)이라는 당직자들의 표현대로 뾰족한 수가 없어 애태우는 표정. ○불급예산전용 주장 ▷민주당◁ ○…가뭄피해가 갈수록 심화되자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우물파기 예산지원,피해농가 보상등 대책마련에 부심. 민주당은 우선 재해대책 예비비 지원을 대폭 늘려 말라가는 논에 물대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판단,정부측에 이를 촉구할 계획. 김병오정책위의장은 이와 관련,『올 재해대책비 1백50억원으로는 가뭄을 극복하기 어렵다』면서 『안기부용으로 배정된 일반예비비나 관변단체 지원예산과 불요불급한 예산등을 전용해서라도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 또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돼 벼농사의 대폭 감수가 불가피하면 농가에 대한 피해보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법적인 보상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 민주당은 이를 위해 「농어민재해보상법」을 손질해 올 정기국회에 제출,수확량이 최근 2∼3년 동안의 평년작에 못미치게 되면 정부예산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모든 농촌출신의원들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지역구에 내려가도록 해 가뭄극복작업에 도움을 주도록 조치.하지만 가뭄극복을 위한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 박지원대변인은 다만 『지난해 냉해로 인한 흉년과 대형사고로 일그러진 민심이 올해 가뭄의 연속으로 이어져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라면서 정부측의 조속한 가뭄극복과 피해보상대책을 촉구.
  • 김정일 정권의 5가지 취약점

    ◎①확고부동한 추종세력이 없다/②「김일성후광」 활용∼차별화 상충/③개혁·개방하면 체제동요 우려/④핵카드 효력 거의 소진돼간다/⑤꼬리무는 김정일 건강이상설 20일의 김일성 추도대회를 기점으로 북한 김정일후계체제의 앞날을 낙관하는 쪽보다 비관하는 관측들이 우세해지고 있다.김정일이 안고 있는 취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통일원 등 정부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의 취약요인을 크게 5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우선 그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최대의 약점은 김일성 만큼 확고한 추종세력이 없다는 점이다.이는 20일 김정일의 추대식 성격을 띠었던 김일성추도대회에서 일차 입증되었다는 지적이다.즉 권력서열 8위인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추도사를 한 것은 그의 실세 부상을 뜻한다기 보다 2∼7위의 상위서열 핵심인물들이 추도사 낭독을 꺼린 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김이 명목상의 「수령」으로 옹립되더라도 실제 정책방향은 오진우·강성산·박성철 등 당정치국위원들의 합의,즉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다.따라서 왕조시대에 왕이 허약할 때 몇몇 권신들이 좌지우지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됨으로써 그 만큼 권력투쟁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물론 그는 아버지 세대인 「혁명1세대」와 20년간의 후계수업시 심어둔 만경대혁명학원 및 김일성대학 선후배를 중심으로 한 측근세력들의 지원을 받고 있긴 하다.하지만 이들은 특혜를 나눠 갖는 데는 익숙해져 있으나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와 같은 「혈맹」관계는 아니므로 세불리할 경우 언제든지 등을 돌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김이 당면하고 있는 또 다른 난제는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주체사상과 같은 김일성의 「혁명위업」을 최대한 계승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최대한 우려먹어야 하지만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 등 대내외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선 이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해야 하겠지만 실제 내용 면에선 부분적이나마 대외 개방과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는등 차별화를 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이 경우 대를잇는 혁명의 계승 논리,다시 말해 권력세습의 설득력은 훼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행보를 제약하는 제3의 아킬레스건은 체제유지를 위해 개혁·개방을 해야하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체제동요를 우려해 이를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딜레마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수령의 지위와 함께 유산으로 물려받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최소한 부분적인 경제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이를 위해선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포함한 두만강지역개발 추진의 본격화를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특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어차피 그 지역에 평생 가둬둘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바람과 외부정보는 북한전역에 시간을 두고 확산될 수 밖다.이 경우 김의 통치기반은 발밑에서부터 조금씩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지금까지는 북한이 재미를 본 「핵카드」의 효력이 거의 소진되고 있다는 점도 그에겐 비극적 요소다.즉 김일성만한 카리스마가 없는 그로선 국제적 압력을 자초할 핵개발 강행도,군부내 강경세력의 도전을 야기할 지도 모를 포기도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다 추도대회에서 눈에 띄게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신빙성이 높아진 건강이상설도 그의 운명에 드리워진 불길한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 김정일/입벌린채 넋나간 표정/증폭되는 건강이상설

    ◎추도식서 병색완연… 추측 무성/체중 급격히 감소… 당뇨병설도 김정일의 건강상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일성 장례식장에서 수척한 병색을 보인데 이어 20일의 추도대회에서도 김정일은 입을 약간 벌린채 넋이 나간듯이 서있어 그의 건강에 분명 「이상」이 있지 않나 하는 심증을 굳혀 주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지병이 악화된 것이냐 아니면 11일장을 치른 상주로서 겪는 일시적 피로현상으로 보는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가 이처럼 수척해진 것과 관련,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이후 권력승계에 이상이 있어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는 여러 증언과 외신보도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그중 가장 빈번이 제기되는 병은 김일성이 앓았던 심장질환. 이와관련,일본에서 발행되는 통일일보는 85년2월 「김정일이 2개월이상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것은 심장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연세대의 최평길교수도 19일 신민당정책토론회에서 『김정일은 심장박동기까지 달고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함께 그가 심한 협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83년 북경방문당시 가파른 계단을 오를때 헐떡거렸다는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 19세때부터 간질병을 앓아 왔으며 최근들어선 가끔 의식을 잃어 공식석상을 기피하는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의 보도도 나왔다. 이밖에 김정일은 지난해 9월 사냥터에서 낙마,6개월간 요양을 받았는가 하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설도 있어 이중 한가지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후유증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한편 TV를 통해 김정일의 모습을 목격한 국내 의료인들은 『상주로서의 슬픔 때문에 체중이 그토록 눈에 띄게 빠지기 어렵다』고 전제,『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볼 때 만성질환,특히 당뇨나 지방간등의 대사성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세대 의대 윤방부교수(가정의학)는 『85㎏의 비만형이던 그가 갑자기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몸무게가 줄어든 것을 보는 순간 당뇨병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윤교수는 이어 『급격한 체중감소는 당뇨나 지방간,갑상선기능항진증에서 비롯되지만 그의 복장과 눈상태를 종합 관찰해 볼 때 갑상선질환에 걸린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의대 이홍규교수(내분비내과)도 『김정일이 작은 키에 복부비만형이라는 점에서 당뇨병과 고혈압을 함께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은 체질』이라며 그가 김일성의 급사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로 당뇨병이 급격히 도지면서 고혈당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멍한 표정과 굳은 몸놀림이 고혈당상태의 중기 증세임을 말해 준다는 지적이다. 한방에서도 그가 눈이 붓고 뺨과 복부의 살이 동시에 빠진 점을 들어 당뇨중증환자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하나한방병원 최서영원장은 『그가 평소 호르몬및 신경물질등의 진액은 적고 몸에 해로운 탁기가 많아 당뇨나 지방간등 대사성질환이 생길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이런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상황을 맞으면 십중팔구 체중이 급격히 줄고 얼굴의 윤기가 없어지면서 기억력및 뇌기능저하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대 의대 민성길교수(정신과)는 김정일이 19세때부터 앓아온 간질이 최근 악화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19일 장례식장에서 다리를 절었다는 일부 외신 보도와 20일 추도대회에서 입을 반쯤 벌리고 넋나간 사람처럼 서있는 모습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그러나 전문의들은 심장질환의 경우 체중감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김정일의 심장병 악화설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정오 북전역서 3분 묵념/김일성 추도대회 이모저모

    ◎김정일 「교시」없이 참관만 북한 김일성의 추도대회는 20일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 18분동안 평양 시내 중심부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일을 비롯한 당정군핵심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 북한방송은 이날 추도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행사진행상황을 생방송으로 북한전역에 중계했고 이를 수신한 미CNN이 세계로 송출.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김일성광장과 연결된 모든 대로와 주체사상탑앞 광장,전승광장등 평양시내 곳곳에는 대형스피커가 설치돼 수백만명의 주민들이 이를 청취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보도.또한 평양시내 모든 경기장과 체육관,학교운동장에는 수많은 시민들과 북한군 장병들이 운집해 인산인해. ○…추도대회 참석 규모는 김일성광장에 20만명,대동강 건너편의 주체탑 아래 10만명등 약 30만명에 이른다고 평양주재 한 외교관이 추산.이들 북한주민은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이 외교관은 덧붙였다. ○…추도대회에서는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김정일의 위임으로 대표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이어 근로자대표,농민대표,군대표 김광진인민군차수,해외동포대표등의 순으로 추도사를 낭독. 이들의 추도사는 하나같이 반제혁명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열거,추앙한 데 이어 김정일을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자는 내용.특히 추도사 내용가운데는 과거 「미제국주의」를 극렬히 비방하던 내용이 없어 북·미3단계 회담 등 향후 북한의 대미외교 노선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모습. ○…김정일은 김일성 광장 앞면에 마련된 주석단 단상 중앙에서 검은색 상하의에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차고 선 채로 추도대회에 참석.그는 전날 장례식때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상체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서 있었는데 무척 초췌한 모습.당초 추도대회장에서 김정일이 새 지도자로서 북한 인민들을 향해 추도사를 겸해 「교시」를 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 마디 말 없이 묵묵히 참관. ○…북한 주민들은 이날 김일성참배나 장례식때처럼 광적으로 울부짖는 모습과 달리 비교적 엄숙한 표정으로 대오를 지키며 질서있게 참석.그러나 추도대회가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데다 날씨가 무척 더운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고 자리를 벗어나거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이들은 남자의 경우 검은색 상하의,여자들은 검은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로 동일한 복장이며 군인들은 인민군 제복 차림. 이어 낮 12시에는 북한 전역에서 추모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한주민들은 3분간 묵념을 올렸다. ○…김일성 추도대회는 예정보다 40분 일찍 끝나 참가자들은 11시30분부터 해산하기 시작. 평양 주재 외교관들은 이처럼 추도대회가 예정보다 빨리 끝난 것은 무더운 날씨로 인해 대회장 곳곳에서 여성들이 쓰러지고 대형 스탠드에 있던 일부 초청 손님들도 견디지 못해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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