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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제개혁특위」 구성 하자”/이홍구 대표 국회연설

    ◎선거법·정당법개정 제의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는 19일 『정치권의 부실한 위기관리와 대처능력 부족이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의 개정 및 공직자 재산공개법과 의원윤리규정의 강화를 제의했다. 이대표는 이날 상오 임시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 『정당의 운영이 오로지 총재 일인과 몇몇 측근들에게 집중된 한국정당의 운영행태는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붕당정치의 폐해를 비판하고 당내 민주화 실현 및 국회운영선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대표는 한보사태와 관련,『정부는 이번 한보사태와 관련,정책상·행정상 잘못한 것이 있다면 솔직히 그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가 정격유착과 검은 돈의 씨앗』이라며 국회내 「규제개혁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공식 제의했다.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불,반이민법 제정 강행/쥐페 총리

    ◎“증명서 발급… 불법이민자 감시·추방” 【파리 AFP 연합】 프랑스 정부는 17일 지식인들과 인권 운동가,좌파 정치인들의 항의 및 시민 불복종운동에도 아랑곳없이 문제의 반이민법 개정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제안자인 장 루이 데브르 내무장관의 이름을 본 따 데브르법안으로 불리는 반이민법은 투숙 이민자들의 도착은 물론 출발도 당국에 신고토록 하는 것으로 하원에서 곧 두번째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알랭 쥐페 총리는 적절한 서류를 갖춘 이민자들이나 이들을 투숙시켜주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대신 불법 비밀이민조직에 대해서는 타격을 가할 것이라며 반이민법을 옹호하고 『이민자들의 프랑스 도착을 감시하기 위한 증명서 발급은 지난 82년 사회당 집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나 대학강사와 예술인 등 지식인들과 인권운동가,좌파 정치인들은 보수당정부의 반이민법 추진 계획이 인종차별은 물론 경찰 통제력을 마구 확대하는 것이라며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시민 불복종운동 청원서에 서명한 수천명의 지도급 인사들 중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부인인 다니엘 미테랑과 여배우 장 모로,카타리느 드뇌브,영화감독 장 루크 고다르와 베트랑 타베르니에,가수 자크 히겔렝 등이 포함돼 있다.
  • 해고요건 강화/당정,노동법 보완

    정부와 신한국당은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사업주의 근로자해고요건을 강화하기 위해 작업환경이 산업재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장시간작업을 중지 또는 대피한 근로자에 대해 해고 등 불이익조치를 내릴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당정은 또 결혼·출산 등을 이유로 퇴직한 여성을 5년이내에 재고용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임금의 일정비율 또는 장려금을 지급키로 했다. 당정은 또 노사안정을 유도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사협력우량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세제·인력 등 각종 우대시책을 부여할 방침이다.
  • 여/황장엽 망명 다각 대책 모색

    ◎대공수사 강화·원만한 망명 등에 초점/금주 임시국회·당정협의서 본격 논의 신한국당은 북한 황장엽 비서의 망명사태에 대해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다음주 열릴 임시국회와 당정협의를 통해 황비서의 안전한 한국행을 위한 대책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동시에 황비서의 「남한내 고정간첩 5만명 발언」에 따른 대응방안을 조속히 마련한다는 것이다.특히 후자는 경우에 따라 대대적인 간첩 색출작업과 공안정국으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이와 관련,신한국당은 15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지체할 여유가 없는 안보상의 급박한 과제로 대공기관이 즉각 수사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공식 방침을 정했다.서청원 원내총무는 『내주 임시국회에서 보안당국과 정부측에 빨리 손을 쓰도록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김종호 국회 정보위원장이 『체제수호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철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취약해진 대공수사체제를 긴급히 재건할 것 ▲대공적 각도에서 의심나는 부문의 효율적인 사찰과 수사에 착수할 것 ▲과거 정치적 타결로 봉합된 것으로 보이는 간첩사건이나 증거부족,수사력 부족,수사환경의 문제점 때문에 미제로 남게된 간첩사건에 대해 즉각 재수사에 착수할 것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특히 「과거 정치적 타결로 봉합된 간첩사건」은 김대중총재가 조사받았던 89년 서경원의원 밀입북사건과 92년 대선 당시 간첩 이선실사건으로 김총재의 비서가 구속된 사건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어서 향후 정국의 흐름을 가늠케 했다.이에 대해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여권핵심의 보안점검』과 『권력층 내부의 철저한 점검』을 주장,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 대공수사체계 강화 추진/당정

    ◎“간첩 대거 암약” 발언계기 대책 마련 정부와 신한국당은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남한 권력내 북한 고정간첩 암약」 발언에 대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후속조치 마련에 착수했다. 당정은 특히 이번 발언파문이 과거에도 고정간첩 「깐수」와 박홍 전 서강대총장,이양호 전 국방장관 등이 제기한 문제였던 점을 감안,정부내 유관기관 합동 상설 수사본부의 설치도 적극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 한보수사 마무리 판단… 내부 검토 착수

    ◎여,정치제도 개선 조심스레 타진/「한보」로 문제된 정자법 중점 정비키로/선거법도 포함될 듯… 야 의식 시기 고심 한보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신한국당이 정치제도의 개선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나섰다.신한국당의 구상에는 한보사태로 가장 문제가 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뿐 아니라 선거구제 개편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신한국당은 14일 고위당직자간담회를 열어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김철 대변인이 밝혔다.이와 별도로 서청원 원내총무는 『돈 안드는 선거를 위해 현행 소선구제및 지구당 체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홍구 대표도 13일 춘천을지구당개편대회에서 『과연 지금의 소선거구제나 지구당 운영방식이 바람직한 지 의문』이라고 말해 정치관련제도의 대폭적인 정비방침을 시사했다. 신한국당은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3단계의 수습방안을 구상해 왔다.한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사법적 처리에 이어 당정개편 등을통한 분위기 쇄신,그리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는 차원에서 관련제도를 정비하는 수순이다.신한국당이 관련제도 정비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이번 사건의 사법적 처리가 마무리 단계임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신한국당의 정치제도 정비구상은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복안을 담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서총무는 『한보사건이 마무리된 뒤 본격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야권 역시 『여당이 제도개선문제를 꺼내는 것은 한보의혹을 서둘러 덮자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따라서 본격적인 논의는 다음달 초 수원 장안등 2개 선거구의 보궐선거가 끝난 뒤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제도개선의 폭과 수위 역시 현단계에서는 가늠하기 힘들다.다만 「떡값」으로 불리는 음성적 정치자금을 근절하고 「정치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거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일정 등을 감안할 때 대폭적인 정비대신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을 일부 보완하는 선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그러나 향후 정국상황에 따라서는 소선거구제의 개편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까지 논의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새 내무장관 서정화 의원

    김영삼 대통령은 13일 한보사건으로 구속된 김우석 내무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신한국당의 서정화 의원(서울 용산)을 임명했다. 윤여준 청와대대변인은 『3월5일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어 선거관리와 긴밀한 당정협조를 위해 신한국당의 서정화 의원을 신임내무장관에 임명했다』면서 『서장관은 내무행정경험이 풍부하고 원활한 당정협조를 이끌 수 있는 인사』라고 장관발탁배경을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서장관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서장관 약력=▲경남 통영(64세) ▲서울대 법대졸 ▲사천·김해군수 ▲충남지사 ▲내무차관 ▲내무장관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총장 ▲12·13·14·15대 의원
  • 이 총리 사의 반려/김 대통령/당정개편 3월후로 늦어질듯

    2월말 단행될 가능성이 점쳐지던 당정개편이 3월 이후로 늦어질 전망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3일 하오 이수성 국무총리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총리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데 대해 이를 반려했다고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총리에게 『책임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사태수습과 당면한 임시국회 준비에 성실하게 임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사의를 반려했다. 윤대변인은 『김대통령의 사의반려의 뜻을 이총리도 따르기로 했다』고 말해 가까운 시일안에 전면적인 당정개편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오는 17일부터 임시국회가 열리므로 당정개편은 임시국회가 끝나는 3월 중순이후에나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창작과 비평사간 「역주 백호전집」 1,2권

    ◎조선중기 문인 임제 작품 집대성/칠언절구·산문·소설 등 3년여 걸쳐 정리/「청등론사」·「유여매쟁춘」 등 발굴작도 실어 조선 중기의 문인 백호 임제(1549∼1587)가 남긴 한시와 산문,몽유록계열의 소설 등 문학작품을 집대성한 「역주 백호전집」(신호열·임형택 옮김,전2권)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다. 백호는 방외의 경지까지 넘나들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품을 지녔던 시인이자 문신.20세가 될 때까지 주사청루를 배회하다 28세에 알성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그러나 백호는 이내 동서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전국명산을 떠돈다.평안도 도사가 돼 송도를 지날때,황진이의 무덤가에서 『청초 우거진 골에…』라는 시조를 짓고 제를 지내 조정의 탄핵을 받았던 일은 백호의 호방한 기질을 보여주는 생생한 일화다.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백호는 스스로 자만을 지어 남겼다.『강호상에 풍류 40년 세월에 맑은 이름 얻고도 남아 사람들 놀래었네/이제 학을 타고 티끌세상 벗어나니 천도복숭아 또 새로 익으리』 이번에 나온 「역주 백호전집」에는 「증별」 「고한」 등 칠언절구 200여편,「만흥」 「영회」 등 오언절구 40여편,「몽선요」 「행로난」 등 칠언고시 10여편 등 다양한 장르의 한시가 실렸다.원래의 백호문집에는 누락돼 있던 글들을 모아 속집형태로 꾸민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 속집에는 백호의 유고로 역자들이 새롭게 발굴해 낸 글들이 적잖게 실려있어 시선을 끈다.초패왕 항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한 「청등론사」,봄을 다투는 버들과 매화를 의인화한 「유여매쟁춘」,계절변화의 순리를 노래한 「전동군서」 등이 그것.또 제주도 기행문인 「남명소승」과 의인체 한문소설인 「화사」는 오서와 낙자로 원문이 크게 손상돼 복잡한 교감작업을 거쳐 정본을 확정했다. 백호의 문학유산은 몇몇 시조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있어 일반독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역주 백호전집」은 그런 점을 감안,충실한 주석을 달아 백호의 호한한 문학세계를 한층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역자인 임영택씨(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백호는 중세의 어둠속에서방황하던 인물이다.그의 자유와 해방의 인간정신은 「근대」와 아울러 「탈근대」의 진수를 담고 있다.그런만큼 백호의 문학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새롭게 읽혀질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 제2의 도약 이루자/김석준 이대 정보과학대학원장·정치학(시론)

    다시 힘을 내자! 힘차게 다시 일어서자! 모든 잘못된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용솟음치는 기개로 시작하자! 설 연휴를 지내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다짐이다.한보사건과 노동법 파동으로 얼룩진 세밑의 묵은 먼지를 털고 서로를 위로하면서,더 높은 곳을 향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나서자는 결의이다.배신감과 분노,실망감과 허탈을 벗어나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국가적인 에너지를 소모하였다.과거청산과 새로운 창조가 조화롭게 추진되어야 하는데,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과 에너지는 너무나 미흡하였다.처음에는 권위주의체제의 해체와 민주사회의 분화과정으로 보아 넘기고자 했다.많은 묵은 쓰레기의 청소과정으로,필요악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이 과정에 사회각계의 힘이 붕괴하고 기가 빠지게 되었다.막힌 기를 뚫어 생기로 바꾸는 힘은 없고,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주저앉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이대로는 안된다. 이제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함께 국가에너지를 모으는 일에 매진하자.정부,기업,가계,그리고 사회 각계가 함께 노력하자.노동자,학생,주부도 참여하자.노사관계의 재정립과 한보사태로 인한 부정부패 청산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국가적 과업에 모두가 긍정적·적극적인 입장에서 노력하자.비판과 질책보다는 관용과 사랑을 통해 국가공동체의 에너지를 생산적인 것으로 함께 모으자. ○국가에너지 한데 모아야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의 대상으로 전락한 「머리숙인 아버지」의 기를 되살려주자.「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들인 이들이 힘과 용기를 되찾도록 가정과 사회는 배려하자.한보사태를 계기로 노동자와 사용자는 서로를 아끼고 공동운명체임을 재확인하는 사랑의 운동을 펴자.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정치권도 다시 힘을 되찾아 무기력과 무책임의 나락을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자.언론과 사회단체도 국가를 되살리는 일에 생산적으로 앞장서자. 우리 모두는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스스로 그 노고에 대해 위로하자.대통령부터 지난 4년간 누구보다 많은 수고와 고통을 함께 겪었음을 위로한다.수도승과 같은 금욕적인 생활과 누구도 못했을 과거청산작업은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받을 것임을 의심하는 국민은 적다.단지 통치능력의 미숙과 통치술에서의 독단과 오만함을 국민들은 질책하였던 것이다.여기에는 정부 여당 상층부의 무기력과 기회주의적 태도,나아가 대통령 참모들의 아마추어적 무능력도 한 몫을 했음을 국민들은 안타까워 했다.그럼에도 이들의 애국심과 순수한 열정에는 큰 위로를 보낸다. 그동안 야당도 고생이 많았다.정계은퇴까지 번복하고 정치일선에 다시 서야할 정도의 야당의 구조적·인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과거에 비해 손색이 없는 무기력한 의정활동을 벌인 점을 국민들은 안스러워 한다.민주노총이 이룩한 투쟁의 성과에 대해 국민들은 놀라워 할 뿐이다.사회 각부문의 추진성과는 달리 민주노총이 보인 최첨단 선진국형의 투쟁전략과 전술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생산현장에서 똑같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 국민들은 새해가 국가적 위기로 확산되기를 원치 않는다.경제파국과 사회혼란이 조속히 수습되어 새로운 재도약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신학기 학생들의 개학과 봄에 있을 노사간 임금협상,남북관계 급진전,그리고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가 모두 위기의 단초가 아니라 재도약의 계기로 되길 염원한다.그리하여 그동안 실추된 국가위상과 국제적인 국가이미지를 되살리고 남북관계도 새로운 국면으로 진전되길 바라고 있다. ○노사 공동운명체 재확인을 설 연휴를 통해 조상과 고향으로부터 재충전한 힘을 앞으로는 더욱 새로운 생산적인 일에 쓰도록 하자.잘못은 서로 감싸주고 위로하며 모두가 함께 잘사는 새로운 국가공동체가 되도록 모두 힘을 내자.국가의 생산,창조,적응,유지,개혁,청산,연구,관리 등의 다양한 기능은 모두가 활발히 균형되게 작동해야 한다. 청산과 개혁기능이 생산과 창조기능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자.그러려면 대통령과 사정기관의 활동만 탓하지 말고,나머지 정부기관,기업,사회,노동자들이 더욱 생산과 창조기능의 활성화에 매진하자.새해에는 모두가 다시 힘을 내어 제2의 도약을 기필코 이루자.
  • 공무원­민간분야 교환근무제 도입/당정 법개정키로

    정부와 신한국당은 10일 최고 3년 범위에서 공무원과 민간분야의 상호교환근무를 가능토록 하는 「공무원·민간분야 교환근무제」를 도입키로 했다. 당정은 이날 하오 여의도당사에서 김기수 제1정조위원장과 윤웅규 총무처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회의를 열어 이같은 방향으로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키로 의견을 모았다.
  • 한보수사 종료후 국정쇄신책 제시/김 대통령의 정국돌파 구상

    ◎설연휴동안 관계기관 통해 폭넓게 민의청취/정자법 개정·당정개편 등 민심수습책 나올듯 설연휴를 이례적으로 청와대에서 보낸 김영삼 대통령은 앞으로도 당분간 공식일정을 대폭 줄일 예정이라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한보 난국」돌파를 위한 구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김대통령은 설연휴 사흘동안 김광일 비서실장과 문종수 민정수석 등으로부터 한보수사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또 관계기관이나 믿을만한 지인을 통해 폭넓게 민의를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사태 해법」으로 김대통령이 중시하는 것은 검찰 수사결과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결론이 나올때 정국이 수습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검찰수사에서 한보의혹 연루자가 밝혀지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처리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다지고 있다.가신이든,여야 정치인이든,고위공직자든 성역은 없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검찰수사가 끝나는 시점쯤 종합적 국정쇄신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오는 25일 취임 4주년과 맞물릴 수도 있다.형식은 기자간담회 혹은 담화가 검토되고 있다. 국정쇄신책에 담길 내용으로는 정치자금법 개정을 비롯한 정치권 정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당정의 면모일신,금융개혁 추진,경제난 타개를 비롯한 민심수습책 등이 점쳐진다. 연휴기간동안 김대통령과 통화했던 한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목소리가 담담하더라』고 전했다.그러나 한보사태가 터진뒤 김대통령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김대통령이 마음아파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추측된다. 첫째는 취임후 그토록 척결하려고 노력한 비리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부분.특히 측근 정치인까지 의혹이 거론되는데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다. 두번째로 책임을 떠밀려하는 풍조도 개탄스럽다.당시 정책의 주무선상에 있던 사람들이 책임전가에만 급급,변명만 늘어놓는데 불쾌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오늘 한보당정회의

    정부와 신한국당은 10일 하오 한승수 경제부총리와 이상득 정책위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한보사태와 관련한 비공개 당정회의를 갖고 한보철강의 국민기업화 방안 등 한보대책을 집중 논의한다. 당정은 또 한보철강 부도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보철강을 조기에 정상화시키되 신철강기술인 코렉스설비의 상용화 성공 여부,한보철강에 대한 채권은행들의 자금지원 독려,포철 위탁경영 운영방식 문제 등을 집중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당정 대폭개편” 술렁이는 여권

    ◎시기 “25일 전후”·“새달 보선직후” 양론/당안팎엔 벌써부터 그럴듯한 하마평 검찰의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여권 핵심부는 고민에 휩싸여 있다.한보사태로 이반된 민심을 다시 모으기 위해 당정의 면모를 어떻게 일신할 것인가가 고민의 핵이다. 여권인사들은 면모 일신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민주계 한 초선의원은 『이대로 당체제를 유지시킬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변화를 기정사실화한다. 당내에는 벌써 숱한 설들이 무성하다.구체적인 하마평까지 나돌 정도다.김영삼 대통령의 인사스타일로 볼때 무게가 실린 분석은 아니지만,모두 그럴듯한 논거를 수반하고 있다. 시기는 대략 두갈래로 엇갈린다.하나는 김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을 전후한 시점이다.임기 1년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진용개편이 있지 않겠느냐는 당위론이다.이 때쯤이면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오는 3월5일 인천 서구와 수원 장안 보궐선거 이후다.이홍구 대표가신한국당 창당 1주년인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김대통령이)보선을 잘 치르라고 당부했다』고 밝히고서 부터 세를 얻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들 지역구는 원래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석이었던 만큼 여권이 굳이 정치적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대세여서 「보선이후 개편설」은 여전히 소수론이다. 방향은 청와대 우선론과 당정 조화론이 공존한다.당의 한 핵심인사는 『한보사태는 핵심부의 문제인 만큼 당이 책임질 부분은 그리 넓지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노동법 문제가 변수이긴 하나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하면 전격 처리의 책임만 남을뿐,복수노조 유예와 같은 법안내용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민심수습의 효과면에서 동의하는 인사는 많지 않다.한보사태로 대권구도 자체가 흐뜨려진 만큼 차제에 당정의 면모를 일신,새로운 역학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 한보 수사­“소환 임박” 초조한 정치권

    ◎검찰칼날 주시… 의원들 속탄다/여­20여명 관련 풍문… 당사자들 펄쩍/야­5∼6명 소환설… DJ·JP방어 총력 신한국당 홍인길·국민회의 권노갑 의원의 검찰소환이 확정되면서 정치권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벌써부터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설이 꼬리를 문다.여야의 관심은 검찰의 소환조사가 과연 어느 선까지 이어지느냐이다.연루설이 나도는 여야의원들은 숨죽이며 「검찰의 칼날」을 예의주시 하고있다. ○…신한국당의 초미의 관심사는 당내 대선 예비주자군에 인사가 포함되느냐의 여부다.지도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현재로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말한다. 관련설이 나도는 중진의원들도 여전히 『정치적 음해』라고 펄쩍 뛰고있다.야권이 배후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K의원은 이날 외부와 접촉을 피한채 비서진과 함께 근교 등산을 했고,C의원도 생가에서 가족들과 모처럼 휴식을 취했다.반면 이날 하오 검찰소환을 통보받은 홍인길의원은 『내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은 마치 태풍 전야처럼 크게 술렁이고 있다.특히 당내 의원 20여명 관련설이 꾸준히 나돌아 난감해 하고 있다.관측대로 대권예비주자군 중진이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은 그러나 검찰수사가 끝나면 결국 사태수습의 한 축을 담담해야 할 것으로 보고 이번 주부터 고위당정회의 등을 갖고 한보사태 후유증 최소화 대책을 마련하고 임시국회 소집 방안 강구 등에도 당력을 모을 방침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5∼6명 야당의원 소환설이 나돌면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보로부터의 자금수수를 시인한 권노갑 의원은 이날 하오 9시30분 검찰 소환통보를 받았다.그러나 권의원은 전화통화에서 『검찰은 내일 오라고 했지만 공인인 만큼 당과 상의해 모레(11일) 하오 2시 출두해 금품수수 경위 등을 자세히 설명하겠다』며 『11일 상오 11시 국민회의·자민련 합동의총에 참석,당과 나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괴문서에 이름이 오른 김총재의 측근들인 K·C 및 P전의원 등도 한결같이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일이 없다』며『괴문서를 통해 야권의 야권 흠집내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야권은 그러나 검찰 칼날이 결국 김대중·김종필 총재의 흠집내기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차단에 고심하는 눈치다.역공 수위를 높이면서 「정면대응」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야권은 오는 11일 양당 합동의총과 한보합동조사위의 금융권 조사를 시점으로 「청와대·민주계 핵심인사 개입의혹」을 집중 부각시킬 방침이다.필요하다면 TV청문회 주장을 거둬들이고 임시국회 소집에 응하는 문제까지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회의 한관계자는 『청와대­금융권­한보로 이어지는 「삼각커넥션」 의혹을 파헤쳐 여권의 물귀신작전,끼워넣기 음모를 분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극적인 대응의 자민련도 K·H 실세의원들의 자금수수설에 이어 김종필 총재의 의혹설마저 겹치자 공격적인 대응으로 방향선회를 모색하고 있다.
  • 한보철강의 국민기업화(사설)

    10일 하오 열릴 한보사태관련 당정회의는 한보철강의 조기정상화를 위한 당·정간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한보사태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감안,당·정은 협력해서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 당·정회의의 주요관심사항은 한보철강을 국민기업화할 것인가,그렇지 않고 제3자 인수시킬 것인가다.정부는 제3자 인수방식의 경우 은행부채에 대한 기한연장·이자탕감과 조세감면법에 의한 법인세 감면등 각종 특혜조치를 우려해 한보철강을 국민기업화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국민기업화를 하면 국민이 한보철강의 부채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채권은행이 한보철강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부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우선 은행이 자금을 대고 경영정상화가 된 후에야 주식을 공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3자에게 인수시킬 경우 금융지원과 세금감면이 불가피해 국민이 부담하는 결과를 빚는다.국민기업화는 한보철강이 정상화된 후에도재벌에 넘겨 경제력을 집중시키지 않겠다는 정부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다만 한보철강을 포철에 위탁경영할 경우 통상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일부 우려를 유념,위탁경영이 아닌 기업간 전략적 제휴형식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정부가 포철 임원이 한보철강의 경영진이 될 경우 포철에서 퇴임시키고 있어 엄밀히 말해 위탁경영이 아니다.그러므로 위탁경영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한보철강과 관련,제기되고 있는 또 하나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미국 관세법이 규정한 정부보조금지급규정이다.이 문제는 정부가 한보철강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채권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지원하는 것이므로 정부보조금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채권단의 지원은 채권회수를 위한 자구적 조치인 것이다.
  • 김 대통령 청와대서 설연휴/시국수습 구상… 정치권 물갈이 올수도

    ◎검찰수사뒤 국가기강세우기 과제로 6일 청와대는 조용했다.마치 「폭풍전야」같았다.상오에 열린 수석비서관보고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한보사태와 관련,짧은 소회를 털어놓았다.김대통령은 『대통령이 된뒤 호텔에서 식사한다든지,골프를 친다든지,개인적 욕심을 자제하고 역사를 향해 뛰어왔다』고 비감에 젖는 듯 했다.이어 『한보사태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된다.경제를 살리고 부패를 없애고 인생관과 국가관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분위기가 단호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한 고위관계자는 『한보사태를 철저히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굳은 쪽은 야당도,여당도 아니다.바로 김대통령』이라고 말했다.그는 『김대통령은 본인은 물론,직계 가족중에도 한보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그럼에도 밑에는 부패고리가 남아있는데 불쾌감을 갖고,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보사태와 관련,앞으로 국면전개를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검찰수사다.「국민이 납득할만한 조치」가 취해지리라고 청와대관계자는 장담한다.결과적으로 정치권 물갈이나 세대교체,대선후보군 압축 효과가 나올수 있으나 여권 핵심이 의도적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둘째는,검찰수사가 끝난뒤 민심수습과 국가기강을 바로잡는 과제가 남아 있다.오는 25일 김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는다.청와대측은 검찰수사가 그때까지 결말을 맺기를 기대하고 있다.김대통령이 취임 4주년에 즈음해 국민들에게 입장을 표명하고 새출발을 선언하면 모양이 좋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정치9단」이다.시국수습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내부실천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김대통령이 신한국당 일각에서 거론되는 당정 면모일신,대선후보 조기가시화를 수용할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김대통령은 7일부터 시작되는 설연휴를 이례적으로 청와대에서 보낸다.김광일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진들도 서울에서 「비상대기」할 예정이다.김대통령의 「설 구상」이 주목된다.
  • 스웨덴 내년부터 원자로 폐쇄/2010년까지 12기 모두 철거

    【브뤼셀 연합】 스웨덴은 5일 오는 2001년까지 국내 원자로 2기를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웨덴의 집권 사민당정부는 전국 12기의 원자력발전소 폐쇄계획과 관련,민영 시드크래프트사가 보유하고 있는 원자로 2기중 1기를 내년 7월까지 폐쇄할 예정이며 나머지 1기를 오는 2001년7월까지 폐쇄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이에 앞서 사민당정부는 중도계 및 좌파정당들과 오는 98년9월 총선이전에 최소한 1기의 원자로를 폐쇄키로 합의한 바 있다. 폐쇄예정인 원자로 2기는 덴마크에 인접한 남서해안 바르세베크시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수도 스톡홀름의 연간소비량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공급해 왔는데 스웨덴정부는 이에 따른 전력손실분을 가정에너지절약 및 생물체배설물 등에서 생기는 합성연료,풍·수력발전을 통해 보충할 방침이다. 스웨덴은 지난 80년 국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를 없애기로 했으며 당시 의회는 오는 2010년까지 국내의 모든 원자로를 폐쇄키로 시한을 정한 바 있다.
  • “당정개편 3월 보선뒤에”/이홍구 대표 시사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은 6일 정치권 일각에서 나도는 당정개편설과 관련,『김영삼 대통령은 5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인천 서구와 수원 장안 보궐선거를 잘 치르라는 당부를 했다』고 말해 당정개편이 이뤄지더라도 오는 3월5일 보궐선거 이후에나 단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대표는 이날 낮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김대통령이 당정개편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대표는 또 시월회 등 당내 소모임의 각종 건의에 대해 『큰 흐름은 당내 민주화에 대한 요구』라고 전제하고 『그렇다고 당장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며,오는 12월 대선이 새로운 정치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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