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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海洋행정 이렇게 개편하자(上)-조직정비

    한·일 어업협정 재협상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해양수산행정의 난맥상이 한눈에 드러난다.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다.앞으로 새로운 한·일,한·중 어업협상에 대비,해양수산부의 체제정비와 수산전문인력의 확보 등시급한 과제를 연재한다. 한·일 어업협정 실무협상 실패를 계기로 정부 조직개편과 맞물려 해양수산부의 존폐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폐지론자들은 해양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점과,‘작은 정부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폐지하고 관련부처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다.해운항만청과 해양경찰청은 건설교통부로,수산은 농림부,환경오염은 환경부로 각각넘겨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치론자들도 과감한 변신을 주문한다.경영진단을 한 가립회계법인의 金奎永회계사는 “21세기 해양국가의 역할을 감안해 존치가 바람직하다”면서도“조직 및 인력의 추가감축을 하는 동시에 주요 보직에 외부전문가를 과감히 영입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해양부가 존속한다 하더라도 대폭적인 기능의 재조정과조직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이 주축이 된 경영진단조정위원회(위원장 吳錫泓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지난 11일 해양부의 조직개편 방안에 대해 폐지 후 기능별로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것을 1안으로,현행 조직의 재조정을 2안으로 정부에 최종 건의했다. 아직 17일의 경제장관 간담회와 18일 당정협의 등의 절차가 남아 있어 해양부의 운명을 섣불리 점치기는 어렵다.지금까지는 ‘기능상 폐지가 마땅하나정치적 변수에 좌우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해양부의 문제점은 지난 2년여 동안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데서비롯되고 있다. 문민정부 당시 해양정책의 일원화와 전문성을 고려해 11개부처에 분산된 업무를 한데 모아 출범한 해양부는 지금까지 부처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우선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이라는 물리적 통합이 당초 기대한 화합적 결합으로 이어지지 못해 시너지효과를 낳는 데 실패했다.덩치는 커졌지만 공무원들은 직급 상향에 만족한 채 어민을 위한 정책개발과 예산확보,이익대변에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해양부가 출범 3년째를 맞는 초년 부처인데도 전문성과는무관한 정치인 출신의 장관을 기용,현실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해양부는 아직도 반성의 기미를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그래도 부처가 됐으니 이만큼이나마 한 것’이라는 태도로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다. 결국 해양부의 기능 재조정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는지적이다. 朴先和 psh@
  • [제2공화국과 張勉] (6) 尹潽善과의 갈등(上)/장면·윤보선

    1960년 8월19일 오후 1시24분 ‘張勉총리 인준’투표를 막 끝마친 민의원 본회의장에는 긴장과 흥분이 감돌았다.두번째로 총리 지명을 받은 장면이 인준에 성공해 취임할 것인가,아니면 그마저 실패해 정국이 계속 표류할 것인가. 1시37분 郭尙勳 민의원의장이 결과를 발표했다. “총투표수 225,가(可)에 117,부(否)에 107,기권 1.가가 정족수인 과반수이상이므로 가결된 것을 선포합니다.”4·19가 일어난 지 딱 4개월 만에 민주혁명 수행의 대임(大任)이 장면에게맡겨지는 순간이었다.총리가 된 장면은 곧바로 그를 지명해준 尹潽善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취임인사를 한다. 장면과 윤보선의 이날 만남은 유쾌해야 마땅한 자리였다.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한 지 5년 만에 ‘李承晩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치의 주역이 된 두 사람이었다.같은 당의 오랜 동지인 총리와 대통령은 ‘4·19정신’을현실정치에 구현하고자 서로를 격려하고 협조를 다짐했을 법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다.‘총리 지명’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민주당 신·구파간 갈등이 앙금으로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4월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유일했다.민심도 이를 인정해 7월29일 치른 민의원·참의원(상원)선거에서민주당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은 무려 172석(78.5%)을 차지했다. 문제는 민주당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의석 분포를이룬 사실이었다.따라서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려고 암투에 들어갔다. 그즈음 민주당 지도층의 면면을 보면 장면이 단연 으뜸이었다.그는 56년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선출됐고,‘3·15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부정 탓에 낙선했지만 민주당의 대표주자였다.게다가 59년 11월부터 당수인 대표최고위원을맡아왔다. 반면 구파쪽은 조병옥 서거 후 명확한 리더가 없었다.당시 구파였던 高興門(국회부의장 역임,98년 작고)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조병옥이 없는 민주당은 곧 신파인 장면의 천하가 될게 분명해 보였다.민주당 내에서 국민적 인기로 보아 그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평소 말이 없는 윤보선과 고집이 센 金度演이 있었으나 장면의 맞수는 아니었다.”국민 여론이나 당내 인식이 이같았는데도 구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김도연을 총리로 밀어 두 자리를 독점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그 까닭은 국회 부의장선거에서 표대결로 신파를 누른 적이 있어 자신을 가진 데다 구파 내 세력이 윤보선·김도연으로 양분돼 양쪽을 함께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추대해 구파에게 일단 한 자리를 준 뒤 총리는 자파의 장면이 차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8월12일 열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은 208표(재석 259명)를 얻어당선된다.이제 관심은 윤대통령이 누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인가에 쏠렸다.신파의원들이나 국민 대다수는 ‘설마 구파가 총리까지 차지하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고 구파 내에서도 鄭憲柱·閔寬植의원 같은 이들은 정치 도의를 내세워 독점에 반대했다. 8월16일 윤대통령은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한다.통보를 받은 민의원의장 곽상훈은 장면을 지명하리라는 믿음이 깨지자 즉시 청와대로 쫓아가 항의한다.윤대통령의 해명을 들은 그는 “아마 김도연씨는 안 될거요” 라고 말하고는물러나와 김도연의 총리 인준을 적극 방해한다(회고록에서 발췌). 김도연은 다음날 총리 인준 투표에서 정족수보다 3표 모자라게 득표해 인준에 실패한다.8월18일 윤대통령은 장면을 총리로 2차 지명했고 장면은 다음날 인준을 받는 데 성공한다. 60년 8월 민주당의 선택은 마땅히 장면이어야 했다.그런데도 당내 파벌의 이익을 앞세워 김도연을 1차로 총리 지명하는 바람에 신·구파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렇다고 신·구파 갈등이 장면총리와 윤보선대통령에게 그대로 옮겨갈 이유는 없었다.내각제 하에서 대통령은 당적(黨籍)을 떠나 국내정치에 초연하게끔 자리매김돼 있었다. 하지만 윤대통령은 이후에도 구파의 지도자처럼 행세하며 장면총리와 팽팽한긴장관계를 유지한다.그리고 그 긴장은 정치불안의 주요소로 작용한다. 이용원- 張勉과 尹潽善 장면과 윤보선은 제2공화국의총리와 대통령으로 만날 때까지 외형상 비슷한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둘 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해외유학을 다녀오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서 차근차근 위상을 높여나간다.그러나 그같은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장면은 인천세관 간부인 張箕彬의 맏아들로 출생해 21살때 카톨릭측의 주선으로 도미,뉴욕 맨해튼대에서 교육학·종교철학 등을 공부한다.귀국해 잠시카톨릭 평양교구 일을 보다 서울 동성상업학교에서 교직을 시작,그 학교 교장으로서 광복을 맞는다. 윤보선은 구한말 중추원 의관을 지낸 尹致昭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다.본인말고도 6촌 이내에 집권당 당의장서리,장관,서울대총장 등 장·차관 이상만 13명이 나온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이다.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고고학을 배웠다. 둘은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장면만 당선된다.윤보선은 54년 3대 의원 선거때 비로소 국회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출범하자 장면은 UN총회 한국수석대표,초대 주미대사,제2대 국무총리를 잇따라 하며 건국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을 세운다.이 기간 윤보선은 4대 서울시장,2대 상공장관을 지내지만 각각 재임기간이 1년도 안돼 물러난다. 두 사람은 55년 출범한 민주당에서 한식구가 된다.장면은 처음부터 최고위원 5명 가운데 하나였고 신파의 지도자였다.56년 부통령으로 당선된 데 이어 59년 전당대회때는 대통령후보 경쟁에서 조병옥에게 지지만 대표최고위원 선출에서는 조병옥을 누른다.윤보선은 이 대회에서 조병옥의 구파 몫을 이어받아 처음으로 최고위원이 된다. 60년 8월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 정치적인 경력에서 장면은 단연 윤보선을 앞선다.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다른 데 있다. 장면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 무슨 일을 했건 ‘성실하고 근면했다’는 점에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반면 윤보선은 달랐다.이는 66년에 발표한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술하다’에 수록)에서 스스로 밝힌 심경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윤보선은 상공장관에 취임해 “업무를 거의 파악한 서너달 후엔 벌써 입맛이 떨어져 버렸다”고밝혔으며,국회에 진출해 원내총무를 맡고는 “사임을 해도 안받아줘 병 난 것을 기화로 부산에 내려가 요양하며 겨우 수리시켰다”고 회상했다.심지어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찾은 민원인들로부터 들은 여러가지 하소연 내용을 설명하고는 “이같이 되풀이되는 고통은 하루빨리 청와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굳혀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던 그가 5·16쿠데타 후에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열달 동안 대통령직을유지한다.청와대를 떠난 뒤 반(反)朴正熙 투쟁의 선봉에 서지만 박정희 사후 또 한차례 변신한다.全斗煥정권을 인정하고 87년 대선에서 盧泰愚를 지지한 것이다. 이같은 윤보선의 정치역정을 두고 학자들은 ‘명사(名士)정치’의 한 행태로 풀이한다.劉載一 대전대 정외과교수는 “명사정치의 특징은 시대적 과제를고민하기 보다 권력 획득,품위유지에 더 집중하는 데 있다”면서 “따라서명사 정치인들은 종종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궤적을 걸은 듯한 장면과 윤보선의 삶에는 이처럼 본질적인 차이가있었다.이는 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 재조명할 때 필히 고려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용원
  • 대대적 대륙붕 탐사…EEZ협상 대비 소유권 근거 확보

    앞으로 있을 한·일,한·중 배타적 경제수역(EEZ)협상을 앞두고 우리의 해양 소유권 확대 주장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 주변 대륙붕에 대한 대대적인 지질탐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최근 한·일 어업협상에서 쌍끌이어업 등에 있어 소홀한 대책으로 인해 물의를 빚었던 것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지난달 말 해양수산부의 의뢰를 받고 법률적 검토를 한 결과,한반도 주변 대륙붕에 대한 과학·기술적 자료조사를 조만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14일 밝혔다.이는 宣晙英 외교차관이 참석한 지난달 말 열린 ‘한·일,한·중 EEZ경계협상 대책 관련 당정회의’에도 전달됐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곧 한반도 대륙붕 탐사를 실시,이 결과를 국제위원회인 ‘대륙붕 외측 한계위원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양법에 따르면 대륙붕이 자국 EEZ(연안에서 200해리)에서 시작돼 이를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경우,자국 EEZ를 넘어선 부분까지도 자국 소유로 인정받도록 돼 있다.따라서 우리 EEZ를넘어 이어지는 서해 및 남해 대륙붕의 존재와 규모를 조사,이를 국제위원회에 통보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한·중,한·일EEZ경계협상에서 우리의 권한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의도이다.
  • 北, 자본주의 배우기 ‘열의’

    북한이 올 들어 생산력 증대를 위해 시장경제제도와 자본주의적 법체계 등에 대한 학습을 강화하면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요소를 확대 도입중인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북한은 지난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체제를 연구하기 위해 당정(黨政) 중견간부 110명을 호주·싱가포르 등에 파견했다”면서 “금년에는 아예 유엔개발계획(UNDP)과 세계은행측 인사들이북한에 들어가 집체교육을 실시하고,북한 간부들과 해외여행도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북한 헌법 개정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조항들이 다수 신설됐다”면서 “북한 헌법의 농업 현대화 조항이 무엇을뜻하는지 지켜볼 만하다”고 밝혔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이 지난 2월 주체농법을 ‘농민들의 의사와 자체 실정에 맞게 농사짓는 과학농법’이라고 재해석했다”면서 북한 농업정책에도 이윤동기 등 시장경제적 요소가 확대될 가능성을 점쳤다. 북한의 洪成南내각총리는지난 2월24일 고 金日成주석의 사회주의 농촌체제 발표 35돌 중앙보고대회에서“金正日동지는 최근년간 우리나라(북) 농업의실체를 깊이 헤아리고 주체농법은 농민들의 의사와 자체 실정에 맞게 농사짓는 과학농법이라고 그 본질을 밝혔다”고 보고했었다. 통일부관계자는 洪成南의 보고와 관련,“농민들의 농업관리자 선출권 부여,분조관리제 등 북한의 농업제도개선 조치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며“텃밭,뙈기밭과 같은 개인경작지 확대 등으로 집단영농질서의 해체가 우려됨에 따라 金日成주석의 농촌체제를 찬양하면서도 현실적 추세에 맞춰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수치로 본 대북 포용정책 1년의 성과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은 올해 주요 국정목표의 하나다.12일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 재확인됐다.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화해협력시대를 열자는 취지다.金大中대통령의 지론인 3단계 통일방안중 일단 ‘남북연합’ 단계로 가자는 얘기이기도 하다.그런 차원에서 이미 희망적인 싹은 보였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지난 1년간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를 구체적 수치로 볼 때다. 경제협력분야와 민간교류분야에서 성과가 이를 말해 준다.98년 한해 방북자 수(3,317)가 민간인 방북이 허용된 지난 88년부터 97년까지의 2,407명을 넘어선 사실이 그것이다. 여기에 금강산 관광객을 포함하면 과거와 비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지난해 11월18일 금강산행 첫 배가 뜬 이래 관광객이 현재 무려 3만5,000명을돌파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수정 침투,미사일 발사 등 악재 속에서 나온 결과다.일관성 있는햇볕정책이 굳게 닫혔던 북한의 빗장을 상당부분 연 셈이다. 지난해 남북교역량은 재작년에 비해 다소 줄었다.IMF체제하 우리 경제의 어려움 탓이었다.하지만 지난 한해 정부는 14건의 경협사업을 승인했다.88∼89년의 9건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그만큼 향후 남북경협의 활성화를 예고한다. 다만 남북교류가 현재로선 남쪽만의 ‘일방통행’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없지 않다.그러나 정부측은 “어차피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를 일거에 개방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시각이다. 康仁德통일부장관은 금강산사업도 시간이 가면 쌍방통행식 교류로 발전할것이라고 단언했다.앞으로 이 사업이 심화될수록 남북 주민간 접촉면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낙관론이다.관광객을 위한 야채·고기·달걀 등을 북한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합의한 사실이 그 조짐이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대북 포용정책은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국민의 정부’ 1주년에 맞춰 4개 언론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70% 이상이었다.
  • ‘국민연금 혼선’ 우여곡절끝 정리

    우여곡절 끝에 국민연금의 확대실시가 예정대로 강행될 전망이다.그동안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권 내부에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金鍾泌총리는 12일 고위당정회의를 통해 “예정대로 4월에 실시한다”는 최종방침을 확인했다. 11일 국민회의 경제사령탑 金元吉정책위의장의 돌연한 ‘연기 검토’ 발언이 터져 나온 직후라 여권 내부의 갈등과 마찰이 예상된 상황이었다.하지만金총리는 金慕妊 보건복지부 장관의 4월 확대실시 방침을 보고받고 “강력한 실천의지를 갖고 보완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로 논란을 매듭지었다. 金의장도 회의 도중 “내가 실수했다.개인 의견을 (언론에) 이야기한 것뿐인데 이것이 국민연금 확대실시 연기로 와전됐다”며 승복의 뜻을 분명히했다.자칫 공동여권의 갈등 증폭으로 이어질 우려 때문에 서둘러 진화에 나선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확대실시를 놓고 여권은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다.특히 공동여권의 ‘한계’를 여과없이 노정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주로 여권 내부의 정책결정 ‘메커니즘’이 제대로작동하지 않아 정책혼선의 주원인이됐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여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정협의와 국정운영협의회 등 당정은물론 여여간의 사전 조율 기능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어렵사리 국민연금 확대실시 방침을 정했지만 정부는 ‘사회안전망’과 실업대책에 유효한 수단을 확보하게 됐다.200만명에 육박하는 실직자를 150만∼160만명 선으로 묶으면서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4대 개혁을 본격화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면서 ‘복지사회’로 한발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마련한 것이다. 이에따라 정부의 보완대책 마련도 본격화될 듯하다.최우선적으로 ‘홍보전’에 돌입할 방침이다.1만2,000명의 공공근로요원을 투입해 ●국민연금의 필요성 ●소득신고 중요성 및 신고요령을 중심으로 3단계 홍보전략을 수립,실시하고 있다.특히 사랑방 좌담회를 통해 대민 접촉을 늘리면서 개인연금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공격적 홍보전략’도 수립한 상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내부에서 아직 반발기류가 완전히 잠복한 것은 아닌 듯하다.“내년 총선에 악재로 작용된다”는 이유다.국민회의 鄭東泳대변인도이날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완전합의가 아님을 간접으로 시사했다.
  • 정치개혁 태풍 오나/청와대 의지·선거법 협상 전망

    (청와대 의지) 金大中대통령의 올 당면목표는 정치개혁과 안정이다.개혁과 안정은 상충된개념이어서 金대통령의 구상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헤쳐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중점을 두고 추진했던 환란(換亂) 극복과 경제개혁 과정에서 드러난난제들이 다른 형태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치개혁과 안정에 관한 정치권의 해법은 여야는 물론 정파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이 접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청와대의한 고위관계자는 “정치개혁이 자칫 실기(失機)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있다”고 우려했다.내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방안에 대한 여야간입장차를 좁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치권 전체를 정치개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급선무다.그러려면 신뢰가 바탕을 이뤄야 한다.집권후 여소야대의 상황 속에서 ‘1년만 도와달라’는 호소가 무위에 그쳤고,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으로 이른바‘방탄국회’가 계속되는 형국이다.내각제는 여전히 정국불안의 주 요인이다.정치개혁의 이면에인위적은 아니더라도,자연스런 정계개편론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출발은 여야 총재회담일 수밖에 없다.관계복원을 위한 신뢰구축과 정치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국민회의 전당대회를 정치개혁 이후로 연기하라는 金대통령의 지시도 같은 맥락이다.즉 정치개혁이 우선되어야 이에 맞게 당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金正吉 청와대정무수석도 “전당대회 연기가 정계개편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일부 시각에 우려를 표시한뒤 이와 비슷한 언급을 한 바 있다. 金대통령은 국민회의 전당대회에 앞서 정치개혁의 큰 틀을 짤 것으로 보인다.이 과정에서 자민련과 내각제 문제도 풀어갈 것으로 관측된다.오는 8월쯤 국민회의 전당대회를 계기로 정치개혁의 큰 틀이 짜이고,대대적인 당정개편이 이뤄지면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이때까지 정치개혁과 내각제 문제가 정리되지 않을 경우,총선을 앞두고 정기국회가 요동을 쳐 정국불안을가속화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치개혁에 주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미뤄볼 때 정치개혁안에 대한 金대통령의 큰 그림은 있는 것 같다.그렇다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선거구 획정 등에 있어 자신의 의사를 고집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합의방식을 선호하는 金대통령의 정치스타일과 ‘여야간 충분한 논의’를 강조한 대목이 앞으로 정치개혁을 풀어가는 방식을 시사한다. (선거법 협상 전망) 선거법은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민감한 내용이 많다.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와 국회의원 정수 문제는 의원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사안이다. 특히 정당명부제 도입 여부는 내년 총선과 그 이후의 여야 권력 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여야간 ‘손익 저울질’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여야 협상이 그만큼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국민회의는 소선거구제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당론이다.지역화합을 위해 정당명부제 도입을 내걸었다.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은 1대 1이다.선거구제와 관련,협상과정에서 야권의 제의가 있다면 중·대선거구제를 논의할 수있다는 ‘유연한’입장이다.국회의원 정수는 현행 299명에서 250∼270명으로 줄이는 안을 마련했다.정치권만이 구조조정의 ‘사각지대’가 될 수 없다는 명분 때문이다. 자민련은 아직까지 당론을 확정짓지 못했다.다만 정당명부제와 중·대선거구제 문제는 내각제 개헌 문제를 매듭지은 뒤 논의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이다.정당명부제와 관련,선거에서 별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의원수를 줄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숫자는 30명선으로 줄인다는생각이다. 한나라당은 정당명부제 도입과 관련,여권의 국민화합책이라는 판단 때문에반대하고 있다.‘해 봐야 득될 게 없다’는 생각이다.당내 정치구조개혁특위(위원장 邊精一)가 원내외 위원장 13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80% 이상이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반대하고 있다. 중·대선거구제 문제에 대해서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공동여당내 내각제 불씨를 잠재우기 위한 ‘절묘한 카드’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과 국민의 관심을 선거구제로 바꾸려는 정략적 책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하지만 당내중진의원과 수도권,호남지역 등 일부에서는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중·대선거구제 문제는 의외로 3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절충이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국회의원 정수는 250∼270명이 적당하다는 것이 당론이다.
  • 2차조직개편 정부안 내주 확정

    정부와 여당은 12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金鍾泌국무총리 주재로 고위당정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정부조직 2차 개편안을 협의했다. 진념기획예산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오는 16일 경제 분야,17일 비경제분야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정부조직 개편 방향을 협의한 뒤 18일 당정간담회를 거쳐 정부안을 확정하겠다”고 일정을 보고하고 “공직사회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민련 의원들은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불만을 쏟아놨다. 정부측 보고가 끝난 뒤 이어진 토론시간에 자민련의 李相晩의원은 “정부의 조직 개편안에 철학이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李의원은 “청와대를 줄이고 내각을 강화한다든지,정부 기능을 민간에 이양한다든지 하는 기본 방향이없기 때문에 추진이 어려운 것”이라면서 “내각이 있는데 청와대 기구를 늘리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鄭一永의원은 “무리한 조직 개편은 나라와 공직사회를 흔들리게 한다”면서 “충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鄭의원은특히“내각제가 되면 어차피 정부조직을 대폭 개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2차,3차 하지 말고 기본 철학을 갖고 임하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정부개혁 과정의 미진한 부분을 일깨워 도움이 됐다”면서 “당의 말을 되새겨 고칠 것은 고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3일 金총리 주재로 국정협의회를 열어 정부조직 개편방향을 협의할 예정이다.
  • 국민연금 대상 확대 예정대로 4월 실시

    정부와 여당은 12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金鍾泌총리 주재로 고위당정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 국민연금 확대방침을 당초 예정대로 4월부터 실시하기로했다. 金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金慕妊보건복지부장관에게 “국민연금 확대 실시는당초 방침대로 4월1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제,“강력한 실천의지를 갖고 보완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당정은 또 대구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6,800억원이 투입되는 ‘밀라노 프로젝트’ 관련 특별법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제정하기로 했다. 당정은 한·일어업협정 체결로 피해를 본 어민들을 위해 2조원 규모의 수산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어업손실을 보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산업진흥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와 함께 농가 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농업관련 정책자금의 금리를 현행 5.5%에서 5%로 낮추고,단순 제조업 차원에 머물고 있는 신발산업을디자인 및 첨단기능을 추가한 선진국형 지식집약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방안을 다음달 초까지 마련할 방침이다.
  • 공공근로 임금 週·月단위 지급

    당정은 기존의 실직자 공공근로사업의 임금 지급체제를 현행 일당제에서 일정 기간을 묶어 일시불로 지급하는 ‘정기급제’로의 전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당정은 또 현행 실업자 직업훈련이 무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해당기업이 필요한 직종과 인원을 노동부에 신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종별 직업훈련 계획을 수립하는 일종의 ‘맞춤식 직업훈련’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당정은 13일 金鍾泌총리 주재로 열리는 고위당정회의를 통해 이같은 방안을 포함,실업대책 보완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11일 “공공근로사업시 현행 일당제가 실직자들의 생활안정과 목돈 마련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있다”며 “일주일 또는 보름,한달 등의 단위로 임금을 지급해 실직자들의 계획적인 생활설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金의장은 또 직업훈련 개선안과 관련,“해당 기업들이 일정기간 후 필요한인원 수급상황을 노동부에 제출하고 노동부는 이들 바탕으로 직종별로 직업훈련을 실시,수요에 따른 공급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 與, 주요정책 黨政협의 강화…실행않는 부처 책임추궁

    여권은 앞으로 주요 정부정책을 결정하기 앞서 반드시 당정협의를 갖도록하며 이를 실행하지 않는 정부부처에 대해서는 책임을 추궁할 방침이다. 여권은 현장을 찾아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현장정치’에 주력할 방침이며 이를 위해 국민회의 산하에 ‘여론청취반’을 구성,운영할 계획이다. 국민회의는 10일 趙世衡총재권한대행 주재로 확대 간부회의를 열어 정책 혼선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이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鄭東泳대변인이 전했다. 鄭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최근 행정부측에서 당과 사전협의없이 사회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요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한뒤 “앞으로 주요정책을 결정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엄중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질책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조직 외형적 통폐합 최소화

    정부는 2차 정부조직 개편은 외형적인 기구 통폐합은 가급적 지양하고 운영시스템 개혁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그러나 민간팀은 대폭적인 부처 통폐합을 내용으로 하는 최종건의안을 마련,정부에 제시할 예정이어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10일 “정부는 부처조직의 외형적 통폐합보다는 일하는 방식과 부처의 기능을 재조정하는 데 개편의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경영진단조정위원회(위원장 吳錫泓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의 최종건의안이 11일 오전 제출될 예정이어서 이를 검토해 정부의 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기구개편의 최소화 방침을 거듭 밝힌 것이다. 鄭海 국무조정실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조직개편은 공직사회를 지나치게 흔들면 안된다는 원칙에 따라 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뤄질 것으로 알고 있으며,부처간 통폐합은 지양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鄭실장은 이어 “기획예산위가 정부부처 및 당정간의 협의를 위해 오는 15일까지 정부측 시안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이어 오는 30일국무회의에서2차 정부조직 개편을 위한 정부조직법을 확정,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말했다. 정부는 그 사이 경제,사회·문화,일반행정·통일외교 분야별로 金鍾泌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관련부처 장관간담회를 갖고 국민회의,자민련 등과의 당정협의를 거쳐 이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한편 경영진단조정위는 정부조직 개편 최종건의안에서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를 합쳐 산업기술부를 신설하고,보건복지부와 노동부를 복지노동부로 통합해야 한다고 우선적으로 제시했다. 해양수산부는 폐지해 기능을 건설교통부로 넘기고,통상대표부 신설은 백지화하되 현행 통상교섭본부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중앙인사기관을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아래에 두고,기획예산위원회와예산청을 합친 기획예산부의 신설방안도 제시했다. 최종건의안은 부처에 따라 1∼3안으로 제시됐으며 정부조직 개편을 우선순위로 조합하면 현행 17부 2처에서 14부 2처로 바뀌게 된다. 朴先和 李度運 psh@
  • 黨政, 정부 직접지원방식…새달부터 北에 비료지원

    정부와 여당은 지난 95년 이후 WFP(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간접지원 방식과 함께 정부 차원의 직접지원 방식도 검토키로 하고 우선 북한의 농업개발 차원에서 비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대북 비료지원은 빠르면 4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며 지원 규모는 한달에 3만∼5만t,연평균 50만t 정도로 추산된다. 당정은 특히 장기수(출소 남파간첩) 교환 문제를 오는 22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55차 유엔인권위 회의에서 洪淳瑛 외교부장관이 공식 거론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과 康仁德 통일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관계 당정회의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고 金의장이 전했다. 당정은 장기수 송환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일방적인 송환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납북자 및 국군포로를 포함한 포괄적인 이산가족 문제 해결차원에서 남북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당정은 남북간 회담 등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되 올 상반기 중 ‘남북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를 통한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고,‘남북이산가족교류협의회’를 통한 교류 창구의 개설도 추진할 방침이다.
  • 삐걱대는 국민회의 정책팀

    국민회의 정책위팀이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金元吉 정책위의장과 南宮鎭 제1,朴光泰 제2,李錫玄 제3정조위원장간에 호흡이 잘 맞지 않는다는 말도 들린다.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갈등설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조직개편안에 대해 南宮鎭 제1정조위원장은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담당 정책위 전문위원들은 지난주 정부측과 실무협의를 해 정부측의 안을 보고받았다. 전문위원들은 병원에 입원중이던 金元吉의장에게는 정부측의 안을 즉각 보고했지만 담당인 南宮鎭 제1정조위원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정책위내 보고체계의 문제와 혼선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사안들도 큰 차이는 없다.국민회의의 실세로 통하는 南宮鎭 제1정조위원장도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할 정도니 朴光泰 李錫玄 정조위원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전문위원들 중에는 해당 정조위원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金의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해당 정조위원장이 소관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정책위 내의 보고체계가 이렇게된 것은 金의장의 업무스타일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金의장은 보통 일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편이다.이러한 스타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金의장은 업무를 모두 직접 챙기려는 경향이 있다. 정책위의장이 실질적으로 전문위원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점도 전문위원들이 보고체계를 무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정간의 협조체제도 물론 중요하고 제대로 이뤄져야 하지만 당내 정책위의 시스템부터 원활히 돌아가야 할 것 같다.그래야 국민연금 파동 등 정책혼선도 생기지 않는다.
  • 黨政, 피해어민 특별법 만들어 지원

    정부와 여당은 9일 한·일어업협정 체결과 배타적경제수역(EEZ) 선포 등 국제 어업질서 재편에 따른 어민피해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5년 시한의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金善吉해양수산장관,宣晙英외교통상차관과 국민회의金元吉·자민련 車秀明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회의를 갖고 한·일어업협정 후속대책을 마련했다. 金의장은 “특별법에는 한·일,한·중간 어업협정 체결로 인한 어민피해 보상과 어업구조조정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다”며 “어업 손실보상과 실업 선원대책,어선 감척,폐선 처리,신어장 진출 지원 등 어업재편대책,기존 정부의 지원대책과 연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정책亂脈’ 해법은 홍보

    청와대정책기획수석에 현역 의원이었던 김한길 전의원을 기용한 것은 국정홍보에 정치적 감각이 중요한 판단자료로 활용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정홍보에 정치적 감의 적용은 단순히 정책의 ‘대중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정책기획수석의 교체와 수석실의 업무영역 조정이 국민연금확대실시와 한·일어업협정의 쌍끌이 조업 누락,의약분업 실시 등 잇따른 정책 난맥상을 둘러싸고 비판여론이 고조된 뒤끝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있다는 지적이다.다시말해 부처간 이견을 조정하고,입안된 정책을 집중 홍보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은 데 따른 金大中대통령 결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현재 특별한 상설기구가 아니지만,당 고위인사들이 참여하는 고위 당정협의를 구상중이다.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국정협의회와 별도로 앞으로 청와대비서실장과 공동여당 사무총장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관계부처간,당정간 정책협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즉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정책입안 과정에서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감과판단을 참고자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인 셈이다. 그러나 당정협의는 큰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책조정 시스템의 새로운 모색에는 한계가 있다.방향이 정해진 뒤 실무적인 차원의협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청와대 정책기획실의 한 관계자도 “여론수렴이 필요한 정책은 입안과 시행에 앞서 부처간 실무적인 협의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정책혼선 방지를 위해 앞으로 정책기획수석실의 조정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를 위해 대국민홍보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각 수석비서관과 국무총리실,그리고 각 부처 차관 등이 참여하는 상설기구 구성을 검토하기시작했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상설기구의 구성에는 다소 문제가 따른다”면서 “현재 국무총리 국무조정실과 협의를 진행중”이라고 전해,정책조정기능이 강화될 것임을 분명히하고 있다. 梁承賢 yangbak@
  • 집권 2년의 과제

    집권 2년차를 맞아 집권당도 보다 효율적인 체제구축으로 정책혼선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새롭게 정리되는 상황에서 국민회의도 국정운영의 견인차로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준비된 대통령에,준비안된 집권여당’이라는 평가는 국민회의의 현주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지난 1년동안 집권 여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정책 혼선이 잇따랐고,정계 개편은 원칙과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진행돼부작용을 양산했다.입만 열면 개혁을 외쳤으나 정치권은 여전히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있고 노사정 등 정치현안 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金大中 대통령도 안타까워 했듯이 ‘전국민 국민연금 확대 실시’라는 좋은 정책도 당정간 손발이 맞지 않고,홍보 부족으로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국민회의 고위 관계자들도 이같은 지적에 동의한다.“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면서도 “내부 역량이 부족했다””고 시인하고 있다.전문가들의 입장도 비슷하다.서울대 朴찬郁교수는 “당이 개혁중심에 있지못하고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당은 수동적 자세를 보였다”고 꼬집었다.당이 앞장서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당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했다는 설명이다.연세대 文正仁교수도 같은 견해다.文교수는 “공동정권으로서 야당과의 협력관계 등 정국을 풀어나가는데 태생적 한계를 지녔지만 능동적으로 정국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혁정책의 프로그램 부재와 홍보전략 부재를 지적한기도 한다.단국대 張錫權부총장은 “집권여당은 개혁의 전체 적인 밑그림을 그리는데 약했다”면서 “정쟁에 휘말려 적절한 홍보를 하지 못하고 국민통합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다. 국민회의가 집권당으로서 새로운 다짐을 하고,개혁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는 셈이다.문제는 자민련과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집권2년의 개혁 작업을 어떤식으로 진행하느냐하는 것이다.최근 權魯甲 고문의 정치일선 복귀와 당 중진들의전진 배치를 계기로 당의 구심력은 회복되고 있는 느낌이다.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소수당,지역당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현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3·30 재·보선,전국정당의 틀을 갖출 5월 전당대회는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회의는 지난 1년동안을 냉정하게 반성하고 국정을 주도하는 집권여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姜東亨 崔光淑 yunbin@
  • [기고]국민의 정부 정책혼선을 보고

    金大中 정부의 집권 1년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하다.경제부문에서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치부문에서의 실정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그 중에서도 정책혼선에서 오는 정부 여당의 권위실추 문제는金大中 정부가 당면한 가장 기본적인 과제 중의 하나다.국민연금 제도의 졸속 시행,한자 병용제의 느닷없는 제안,실업세를 걷자는 발상의 돌출,그리고한일 어업협상에서의 실수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정책혼선이 집권 초기에 벌어졌다면 만년 야당이 처음 집권한데서 오는 운전 미숙의 결과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지만 임기 개시 전부터 국정운영에 간여해 왔다는 저간의 사정을 고려해보면 金大中 정부는 이에 충분한 학습기간을 거친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확보되었어야 할 부처간 이견 조율이나 당정간의 협조와 사회문제의 종합적 검토능력이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상적인 대의 민주정치 체제에서라면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책수용자의 압력과 감시의 통로가 구축되고 그 결과 정책혼선이나 오류가 사전에 방지되기 마련이다.바로 이 점이 자유민주정치 제도의 본질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과정에서는 비록 정책수용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라도 최소한 집권세력의 유기적인 국정관리능력은 과시되어야 마땅한 일이다.더욱이 정권의 학습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서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공동정권이라는 실험적 국정운영 양식으로 인해 국정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길이 처음부터 긴장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불안의 승수효과가 발생하면서 권력에 대한 신뢰 철회가 확대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다시는 이런 종류의 정책실패가 재발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진단하고국정운영 체계를 정비하는 일이 金大中정부가 당면한 최우선적 과제다. 이렇게 볼 때 정책화 과정에서 집권당이 정책 중심축 역할을 다하도록 당정간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집권당의 정책관리 능력을 높이는 일은문제해결을위한 관건 중의 하나다. 부처간의 이견조정이나 협조적 관계 구축 그리고 이런 일들의 촉매라고 할수 있는 국민의 정치적 욕구를 행정과정에 투입하는 일은 결국 집권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집권당이 집권을 책임진 정당이면서도 행정 각 부처의 행정과정을 제대로 관리하고 장악하지 못한다면 일종의 집권 실패라고 할 수있으며 그 결과물이 행정부의 정책실패로 구체화된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으로는 범(汎)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조정기구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데에서 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국정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조정하고 조타하는 장치가 정부 내에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 정부의 정책혼선은 아무런 대체 기구도 없이 과거 정권들이 비공식적으로나마 활용하던 장치들을 없애고 정무장관실을 폐지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국정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조타한다는 일은 분업적 질서를 전제로 하는 현대사회의 관료조직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 과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지금 한창 논의되는 두번째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는 바로 이런 종류의 국무조정기구가 다시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재창 숙명여대교수·의회행정
  • [제2공화국과 張勉](4)경제개발 5개년 계획(中)/아이젠하워

    張勉정부는 집권 직후인 1960년 9월 제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곧바로 미국에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외교문서를 보낸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개혁 비망록’(Aide Memoire on Economic Reform Measures in Korea)이다. 25쪽 분량인 이 문서는 구성상 통상적인 외교문서와는 큰 차이가 있다.張勉정부는 단순히 원조를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실정과 이에 따른 경제개발 필요성,5개년계획의 윤곽,그리고 張勉정부의 개혁의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컨대 한국은 지금 ▒노동가능 인구 940만명 가운데 130만명이 실업자이고 ▒농촌인구의 65%는 가난과 저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3년간(1957∼1959년) 무역적자는 연평균 3억4,800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장기적인 경제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미국이 원조를 해준다면장면정부도 국군 5만명 감축,일본과의 국교정상화,환율 정상화 등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말하자면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개혁을 해나갈 터이니 대신경제 지원을 해달라’는 식이었다. 실무자로서 비망록을 작성한 李起鴻(당시 부흥부 기획국장)은 “외교문서에 공무원 봉급을 현실화해 공직사회 부패를 없애겠다는 다짐까지 했으니 자주독립 정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린 문서였다”고 회고했다.그는 張총리에게 결재받으러 갔더니 힘없이 그러나 인자한 표정으로 몇마디 묻고는 사인하더라면서 “張총리가 그 내용에 공감했다기보다는 金永善재무장관을 믿고 결재하는 듯했다”고 기억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굴욕적이기까지 한 ‘경제개혁 비망록’이 꼭 필요했을까.그 무렵은 국가재정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원조에 의존하는 상태였고 게다가 李承晩정권의 실정(失政)으로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60년 8월6일 許政과도정부가 발표한 李정권의 ‘외화 낭비’규모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낭비액’은 미화 3억3,000만달러,영국돈 286만4,000파운드,일화 1억4,600만엔 등이었다. 이 비망록은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요악이었을 것이다. 金永善장관과 車均禧부흥부 사무차관은 미국을 방문,10월4일 비망록을 허터 국무장관에게 수교한다.이 문서는 국제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유력한 경제지인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윌슨 편집국장이 직접 한국에와 金永善장관과 李起鴻국장·李漢彬재무부 예산국장 등을 인터뷰해 그 내용을 10월27일자 커버스토리로 싣는다. ‘도약을 위한 한국의 탄원’이란 이 기사에서 윌슨은 “일단의 젊은 관료들이 체면불구하고 미국에 매달려 경제적 도약을 하겠다고 공개 탄원했다”고 보도했다.아울러 한국의 사회상이 한심스럽지만 희망을 가지고 경제발전을 지켜볼 만하다고 기대를 걸었다. 나라의 체면마저 저버린,그래서 도리어 張勉정부의 경제개발 의지를 더욱분명하게 보여주는 이 비망록은 1983년 11월에야 외교문서로 정부에 정식등록된다.부흥부에서 작성해 총리의 결재를 받고 재무장관이 미국에 전달할 때까지 외무부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만큼 파격적인 외교문서였다고 할 수 있다. 경제지원에 관한 張勉정부와 미 행정부간의 협의는 순조롭게,그리고 바삐돌아간다.60년 10월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경제회담에서 한국은 4억2,100만달러를 61∼65년에 걸쳐 원조해 달라고 미국에 정식 요청한다.이 액수는‘경제개혁 비망록’에서 한국이 밝힌 5개년계획의 미국측 지원규모 그대로다. 이 회담에서는 또 환과 미국의 달러화 환율을 61년부터 1,000대1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한다.11월26일에는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가 張총리를 방문,비망록에서 밝힌 요청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허터 미 국무장관의 공한을 전달한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는 친한파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관심에도 크게 힘입었다는 사실이 최근 발굴된 미국 외교문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별도기사 참조] 張勉정부는 미국의 경제지원을 얻느라 부단히 애쓰는 한편 국내에서도 기업인과 국민에게 장기 경제개발의 당위성을 알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대표적인 예가 60년 12월5일부터 닷새 동안 열린 ‘종합경제회의’다. 정부가 경제정책에 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자 마련한 이 회의에는 경제·기술·언론·학계 인사들과 각 지방 독농가까지,당대의 오피니언리더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張총리는 “4월혁명의 진정한 과업은 민생안정을 바탕으로 한줄기찬 경제발전 없이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강조하고 “새해부터는 실업과 민생문제에 적극 대응해 나갈테니 온국민이 자조자립의 정신으로 동참할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金永善장관의 발언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金장관은 한국이 경제면에서 북한보다 3∼5년 뒤져 있음을 산업별 수치를들어 솔직히 밝히고 “북한과의 경제전쟁에서 뒤떨어진 현실을 극복하려면땀과 피,희생과 인내,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 ‘반공’을 국시로 내건 李承晩정권 하에서 언제라도 ‘북진통일’이 가능하다고 믿던 국민에게는 이보다 더한 충격이 없었을 것이다.이와 함께 ‘金永善 발언’은 ‘국민에게 사실을 알리고 대화를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張勉정부의 기본방침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종합경제회의에서 간사로 일한 金立三(77·전경련 고문)은 지금도 “張勉정부는 경제발전에 관한 뚜렷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그점에서는 張勉정부가 자유당정권은 물론 5·16 군사정부보다도 월등히 앞섰다”고 평가했다. 1961년으로 해가 바뀌면 민간 경제계도 한국경제협의회를발족하는 등 경제개발에 동참할 채비를 갖춘다.아울러 산업개발위원회가 준비하는 제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 안이 완성 단계에 이른다. 李容遠 ywyi@ - 아이젠하워 한국경제 큰 관심… 개발 적극 독려 1960년 9월은 張勉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공표하고 ‘경제개혁 비망록’을준비하는 등 숨가쁘게 돌아가던 때다.이 무렵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일시 귀국한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국문제,특히 경제개발에 관해깊이 상의한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 정부문서간행처(USGPO)가 발행한 FRUS 18권 691쪽에 수록된 자료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회의록’(A)에서 확인할 수 있다.아이젠하워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52년 12월과 두번째 임기중인 60년 6월 등 두 차례 방한한 친한(親韓)인사다. 9월14일오전 9시 아이젠하워를 만난 매카나기는 “한국에서 많은 진전이있었고,張勉정부는 잘 해나가고 있다”고 보고한다.또 “파벌싸움이 있기는하지만 이는 동양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이어 본인이 이번 방문에서 확실하게 추가원조를 얻어올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기대한다고도 보고한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탄복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면서 “그들 스스로 경제 단계를 끌어올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아이젠하워는 한국인들이 듣기 싫어하겠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는 한 주권국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한국의경제발전이 시급함을 재차 강조했다. 그 무렵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1960년 8월12일 파슨스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가 매카나기에게 보낸 편지(B)에 잘 나타나 있다. 파슨스는 “한국사회와 경제를 자유롭고 안정되게 유지한다는 미국의 기본입장은 적어도 공산주의자들이 줄 수 있는 것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며,크게는 한국에서 사회정의와 경제발전을 실현함으로써 아시아에 자유세계의 이념이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사회에 늘 존재하는 불화와 반목,광범위한 혁명적잔재의 위협을 극복하고 미국 경제학자 로스토가 제시한 ‘도약단계’로 전환하도록 지도와 격려,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우리의 공산주의 경쟁자들에게 그들의 방식을 시도할 기회를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파슨스의 관점에서도 엿보이듯 미국의 대한(對韓)정책 기조는 냉전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러나 張勉정부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까닭은 ‘李承晩독재’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張勉정부야말로 미국이 자유세계의 모범생으로서 키울 만한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전상숙(梨大강사·정치학박사)
  • 黨政 협조 왜 잘 안되나

    국민연금 확대실시 파동,의약분업 실시 연기,한자병용 논란,한일어업 협상파문….최근 드러난 정책관련 난맥상들이다.당·정간,공동여당간 협조체제미흡,홍보기능 부실 등이 원인이다. 여권 인사들은 당정간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요인으로 우선 여당의 힘이 정부에 비해 약하다는 점을 든다.金鍾泌 총리는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한 축이다.그래서 金총리는 지난 정권의 총리와 ‘격’이 다르다.당과 정부의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국정협의회는 실세총리가 주재한다.그래서 자민련은 말한 것도 없고 국민회의도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다.영입파인 국민회의 朴範珍 의원은 “전에는 당정조율이 잘 되지 않으면 당에서 관계장관을 불러 질책했는데 요즘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정부가 잘못했을때 대표가 따끔하게 지적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장관들도 당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중요한 안건인데도 당정협의를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국민회의 李萬燮 상임고문이 최근 당무회의에서 “한자병용과 관련있는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당출신 장관들은 사전에 당과 중요한 안건에 관해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민회의 金槿泰 부총재는 “외교 국방 안보를 제외한 논쟁적인 정책에 관해서는 정부가 적어도 1개월전에는 국회에 제출해 충분한 토론과 공청회를거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은 당정 고위관계자와 실무 관계자들이 각각 참석하는 ‘국정운영전략관리회의’와 ‘국정운영 조정회의’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당정협조를 보다 원활하고 실질적으로 하려는 조치다. 당내 의사소통에도 문제도 있다.국민회의의 당무집행에 관한 최고 의결기구인 당무회의에서는 토론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張石和 당무위원은 “당무회의에서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당무회의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국민회의 李協 尹鐵相의원 등은 홍보강화를 주문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 집권 2년째를 맞아 실질적인 당정협조와 당의 위상강화,홍보강화는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라는게 정치권 안팎의 공통된견해다. 郭太憲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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