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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與 연합공천’ 여·야 반응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8일 KBS 대구방송총국과 개국기념회견을 갖고 16대 총선에서의 공동여당간 ‘연합공천’을 밝힌 데 대해 여야 정치권은 ‘득실(得失)을 저울질하느라 바빴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안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반응이 엇갈렸다.반면 한나라당은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시하는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공동여당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16대 총선에서 압승을 하기위해서는 연합공천이 불가피하다”고 일단 환영했다.정세균(丁世均)의원도“공동여당간 공조체제가 확인돼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주게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공천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합공천을 할 경우 공천을 받는 사람에게는 유리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면 정치생명이 끊긴다”고 우려했다.특히 지구당 관리를 소홀히 해온 의원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서울 지역의 한의원은 “수도권 지역은 국민회의의 텃밭인데 연합공천을 하게 되면 자민련에 몇석을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소 불만을 토로했다.전북 출신의 한 의원도 “호남 지역에서 연합공천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이 지역에서는 연합공천의 의미가 없고 누가 공천을 받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민련 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은 “16대 총선에서는 양당 공조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반겼다.특히 수도권과 TK 지역 등 비충청권 세력은 연합공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데 반해 주류인 충청권 의원들은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지난달 30일 치러진 서울 구로을,경기 시흥 재·보선에서 연합공천의 위력을 실감한 터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특히 수도권 의원들이 크게반발했다. 김문수(金文洙)의원은 “연합공천은 현행 선거법에도 저촉되며 정당의 존립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지역감정을 이용하기 위한 구정치인의 간교한 술수”라고 비난했다. 정문화(鄭文和)의원도 “명백한 탈법이지만 현재로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우리 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다각적인 투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경재(李敬在)의원은 “합당한 것도 아닌데 안될 말”이라며“특히 정략적인 발상으로 수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오풍연 최광숙기자 poongynn@
  • 국정실천과제 이행률 91%

    정부는 15일 세종로 청사에서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주재로 이세중(李世中)정책평가위원장과 70명의 정책평가위원,전 국무위원,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과제 점검관련 합동보고회를 열었다. 이 평가위원장은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910개 국정 실천과제 가운데 334개가 완료되고 494개가 정상추진돼 91.0%의 이행률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국정과제는 정부가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공약과 취임사,지시사항 등을 토대로 국민에게 제시한 종합적인 실천 프로그램이다. 정책평가위는 IMF경제난을 모범적으로 극복한 것과 일관성 있는 대북포용정책 추진,초고속 정보통신망 확충,교육발전 5개년 계획 추진을 성공적인 정책수행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82개 과제의 추진상황이 부진하다고 밝혔다.부진한 과제는 ▲사회부문의 국민연금 실시,의약분업,통합방송법제정 등 25개 ▲경제부문의 금융기관 구조조정,실업대책,사회간접자본(SOC)확충 등 22개 ▲정부부문의 공직자의식개혁,사법제도 개혁 등 19개 ▲미래부문의 댐건설사업,교육개혁 일부 등 16개로각각 집계됐다.정책평가위는 국회의 입법지연과 경제 및 재정여건,관계부처간 협의 미흡을 과제 추진의 지연 요인으로 꼽았다. 김총리는 “불가피하게 추진이 늦어지고 있는 과제라도 범정부적인 협조와당정회의를 통해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김총리의 이날 회의 주재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국정의 방향을 제시하면그 집행과 평가는 김총리가 책임지는 식의,이원집정부 형태의 실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평가는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정책평가위와 국무조정실 합동으로 지난 2월말부터 4월초까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현장위주로 실시했다. 이도운기자
  • 3黨지도부 ‘釜山 민심잡기’ 총출동

    국민회의 자민련 한나라당 등 여야 3당 지도부가 15일 대거 부산을 찾았다.MBC 창립 40주년 기념식행사 참석에 맞춘 방문이었다.하지만 여야는 나름대로 시·도지부 개편대회,기자회견 등 다양한 행사를 갖는 등 영남권 공략에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이었다.마치 16대 총선을 겨냥한 여야 지도부의 각축장같은 분위기였다. 국민회의 한달만에 영남권 공략을 재개했다.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은 이날 대행에 지명된 뒤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다.조세형(趙世衡)전총재권한대행이 지난 2월9일 대구,한화갑(韓和甲)전총무와 김원길(金元吉)전정책위의장이 같은달 22일 울산을 차례로 방문한 뒤 한달만이다.김대행의 이날 부산방문은 서막에 불과하다. 서석재(徐錫宰)·노무현(盧武鉉)부총재는 16일 이곳에서 당정책위 주최의신발산업육성 공청회를,20일에는 부산시지부 후원회를 연다.또 23일에는 당정의 최고위 인사들이 대거 부산선물거래소 개장식에 참석하는 등 본격적인민심잡기에 돌입한다. 김대행은 이날 시지부 소속 위원장,당직자들과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발해 내년 총선에서 필승 거두자”는 말로 이들을 위로했다.YS의 부산 발언을 의식,“이제 우리 국민들은 지역감정을 해소할 때가됐다.지역감정에 의해 형성된 정치구도는 국민들에게 불행만 안겨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지역감정 해소에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김대행은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치개혁 목표는 바로‘정치구도를지역성에서 탈피시켜 모든 지역에서 3당이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것’이라며 개혁 홍보를 하기도 했다.김대행의 남행에는 안동선(安東善) 지도위의장,이만섭(李萬燮) 상임고문,김옥두(金玉斗) 지방자치위원장등이 동행했다. 자민련 경제로 승부를 걸었다.부산시지부 개편대회를 세몰이장(場)으로 활용했다.행사장인 부산시민회관은 중앙당을 옮겨놓은 듯했다.오는 8월까지 내각제 논의중단으로 여유가 생긴 당력을 모았다.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도 함께 했다. 중앙당 당직자들과 현역의원들도 대거 남하했다.국민회의에서는 김운환(金운桓)의원 등이 여여(與與)공조에 힘을보탰다. 박총재는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겨냥 “요새 전직대통령께서 이 지역을 방문하시고 여러 말씀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한 말과 행동이지역주의의 골을 더 깊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는 “자민련은 경제를 이끈 이 나라 개발연대를 주도한 세력”이라고 강조했다.또 “자민련의 경륜과 경험은 우당(友黨)을 비롯한 어느당도 갖고 있지않다”며 경제에 관한 한 ‘비교우위론’을 폈다. 행사에서는 김동주(金東周)의원을 새 지부장으로 뽑았다.‘부산경제살리기결의대회’도 겸해 ‘부산경제살리기추진위’를 발족시켰다.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수성(守城)이다.이회창(李會昌)총재는 15일 부산에이어 16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텃밭’ 점검을 한다. 김영삼(金泳三)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부산경남·대구경북 방문과 여권의 영남권 공략에 따른 견제 차원이다.16대 총선을 앞두고 부산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정체현상을 보이는 반면 무소속 군단이 뚜렷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현상도 이총재의 잰걸음을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부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유흥수(柳興洙)의원 출판기념회에는 부산출신 의원을 빼고도 권익현(權翊鉉)양정규(梁正圭)부총재,김종하(金鍾河)지도위의장,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안택수(安澤秀)대변인 등 30여명의 의원이몰려 세(勢)를 과시했다.서상목(徐相穆)의원까지 방문단에 포함됐다. 이어 이총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현안을 거론하며 ‘부산사랑’을 유난히 강조했다.부산지역 어민의 정서를 감안,한·일어업협정 등현 정권의 실정(失政)도 꼬집었다.이날 두 여당 지도부의 부산방문 일정을의식한 듯 ‘누가 뭐래도 부산 경남은 한나라당의 아성(牙城)’이라는 점을부각시키는 모습이었다. 부산지역 지구당 위원장과 당직자 등이 참석한 만찬에서는 16대 총선 승리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당부했다.‘제2의 창당’과 ‘문호개방’ 등 이회창식(式)새정치 구상도 설명했다. 부산 박대출 박찬구 추승호기자 ckpark@
  • [제2공화국과 張勉](14)분출하는 욕구(中)/교원노조

    4월혁명후 활발해진 각계의 움직임 가운데 노동운동은 특히 두드러졌다.이승만(李承晩)정권에서 체제유지의 첨병 노릇을 한 대한노동총연맹(대한노총)등 기존의 노동관련 단체들은 급속히 그 힘을 잃어갔다.반면 노동조합을 비롯한 새로운 노동조직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고 쟁의도 크게 늘어났다. 4·19직전 전국의 노동조합은 621곳,조합원은 30만7,000여명이었다.하지만다섯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60년 9월1일 현재 조합 수는 821군데로 32.2%,조합원 수는 33만3,000여명으로 8.6%가 각각 늘어났다. 노동쟁의도 1958년에 50건,59년에 109건이던 것이 60년에는 218건으로 급증했다.노동운동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활력을 보인 것이다. 그 격렬한 흐름 속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것이 교원노조 운동이었다.교직(敎職)이 갖는 가치지향적 성격에,학생·학부모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도 컸지만 무엇보다 교원노조가 합법성을 얻고자 벌인 투쟁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이다. 교원노조 운동은 4월혁명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다.대구에서는 4월29일 경북여고에 중고교 교사 60여명이 모여 학원 자유화와 교사의 권익옹호를 위해 ‘교원조합’을 결성키로 합의한다. 이어 ▲5월1일 동성고에서는 ‘서울시 교원노조결성 준비위원회’가 ▲5일에는 전주고에서 교원노조가 ▲12일에는 부산 동광초등학교에서 교원노조 결성준비위가 각각 출발한다.5월 말이면 학교 단위로,또는 시·군 단위로 교원노조가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진 지 한달만에 이처럼 교원노조가 전국적으로 자생하게된 토양은 무엇일까.그것은 ‘속죄와 책임의식’이었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독재권력에 항거하여 용감하게 싸우는데 그들을가르친 교사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그리고 ‘역사의 비극을 또다시 저지를지도 모르는 권력 앞에 무방비로 있을 수는 없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사실 ‘3·15부정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정권이 교육계에 저지른 만행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교육감·교장들이 나서 교사들을 자유당 비밀당원으로 입당시킨 일은 기본이었다. 환경미화를핑계로 이승만·이기붕(李起鵬)의 사진,업적을 교실에 장식토록해 그 결과로 교사의 근무성적을 평가하거나 ▲교장·교감이 가정방문에 나서 자유당후보 지지를 직접 호소하고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시켜 이승만을찬양토록 하는 일들이 예사로 벌어졌다. 교육계 지도자들도 총동원되다시피 했다.60년 1월26일자 서울신문 1면에 난자유당의 ‘정·부통령선거중앙대책위원회’공고를 보면 지도위원에 백낙준(白樂濬)김활란(金活蘭)임영신(任永信)김연준(金連俊)유석창(劉錫昶)등 사학(私學)의 거물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교원노조 운동은 60년 7월17일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총련)’를결성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통일된 체제를 갖춘다[별표 참조].이때 노조에 참여한 교사는 이미 1만9,883명이었다.교조총련은 위원장 자리를 당분간 공석으로 두는 대신 서울지구 부위원장인 강기철(姜基哲)을 대표로 지명했다.얼마전 타계한 재야인사 계훈제(桂勳梯)도 서울지구 중앙위원으로 참여했다. 교원노조 결성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정부측 대응도 곧바로나왔다.허정(許政)과도정부의 이항녕(李恒寧)문교차관은 “교원노조 결성을 권장하지도 막지도 않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곧이어 이병도(李丙燾)문교장관은 5월19일 “교원노조를 불허한다”고 신문지상에 발표했다. 교원교조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쟁이 곧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교사들은 53·57년 법무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합법’을 주장했고 대한변호사회도 이를 지지했다.‘7·29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장면(張勉)주요한(朱耀翰)조재천(曺在千)등 신파 지도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교원노조와 행정권의 정면충돌은 60년 8월 대구에서 발생했다.조준영(趙俊泳)경북지사가 대구·경북의 노조간부 25명을 산간벽지로 전근시킨 것이다.대구·경북 노조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8월25일 오후6시 조합원 8,000명 전원이 퇴직한다’는 마지노선을 확정한다. 조합원들은 11일부터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한편 16일에는 경북지사의 부당한 인사조치를 중단시켜 달라는 ‘행정처분 집행정지명령 가처분신청’을 대구고법에 냈다. 이 와중인 8월23일장면내각이 정식 출범한다.교조총련의 강기철 대표를 비롯한 수뇌부는 오천석(吳天錫)문교장관,윤택중(尹宅重)문교부 정무차관과 협의를 계속한다. ‘교사 8,000명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는 그러나 의외로 손쉽게 해결된다. 교조가 정한 시한인 8월25일 대구고법이 경북지사의 인사가 잘못됐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그 이유는 ▲교원노조 결성이 합법이며 ▲경북지사의 인사권 행사는 재량권의 범위를 넘은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태후 장면정부는 ‘노동조합법 개정’‘교직단체법 개정’을 통해 교원노조 운동의 흐름을 바꾸려고 애쓴다.그렇지만 교원노조는 9월 말 단식투쟁에 돌입해 결속을 과시한다.교원노조 운동은 1960년 당시 한국 노동운동을대표했다.이 운동은 ‘5·16쿠데타’후 사실상 사라졌다가 결국 1980년대 ‘전교조운동’으로 되살아난다. 이용원- 교사40%가 자발적 참여 교원노조 운동에서 노조를 대표한 인물은 강기철(姜基哲·74·전 평택대교수)씨.강씨는 1960년 7월17일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총련)’가 발족할 때 대표를맡았다.그는 ‘5·16쿠데타’로 교조총련이 용공·불법 단체로 낙인 찍힌 다음에도 지금까지 그 대표직을 유지해 왔다. 강대표는 교원노조가 설립될 당시 한양대 강사였다.그는 “‘3·15부정선거’당시 교육자는 독재권력의 하수인 내지는 시녀 노릇을 해왔다”면서 그 당시를 “정신적인 노예상태”라고 기억했다. “교원노조는 자주적인 힘으로 탄생했다”고 강조하는 그는 “당시 전국의교사가 10만명이 채 안됐는데 그 가운데 4만명 가량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강교수는 허정(許政)과도정부 당시 이항녕(李恒寧)문교차관,김학묵(金學默)보사차관 들이 처음 교원노조 결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음을 기억했다. 그런데 그들이 입장표명을 한 지 며칠만에 현직에서 쫓겨나더라는 것. 강교수는 “장면(張勉)정부는 교원노조 운동에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래도 쿠데타 세력보다는 장면정부의 죄가 엷다”고 말했다. - 노조측 쟁의권 자진포기 교원노조 설립 당시 윤택중(尹宅重·86)옹은 장면내각의 문교부정무차관이었다.윤옹은 전북 학무국장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장면내각에 문교부 정무차관으로 들어갔으며 나중에 문교장관을 지냈다. 그는 교원노조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강대표 등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 간부들을 만나 장면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인물이다. 윤 전장관은 “당시에도 교사들의 노동운동은 일반 노동자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깊었다”고 회고했다.교사들에게 단체행동권 등을 인정하는 것은 좋으나 굳이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반감이 있었다는 것. 윤 전장관은 “교원노조 대표들과 상의할 때도 일반 노동조합과는 다르다는사실에 뜻을 같이했다”고 공개하면서 “그들도 파업 등 쟁의권을 실제로 포기했다”고 밝혔다.그는 교원단체 명칭을 ‘교원노조’가 아니라 교원연구단체나 교원친목단체로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다 ‘5·16쿠데타’를 당했다”고도 기억했다. 장면내각에 들어올 당시 신·구파 어느쪽도 아니라 중도파로 인정받은 윤 전장관은 “다만 민주당원으로서 새 정부 출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신·구파 갈등이 혁명을 불렀다는 주장은 쿠데타세력이 조작한 명분”이라고 단정했다. 이용원기자
  • 대한변협 ‘인권법안’ 공청회

    정부가 지난달 30일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 인권법안에 대해 시민단체 및 국제인권단체들이 반발,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현재 인권법안으로는 정부의 통제 때문에 인권침해에대한 감시·구제 역할 등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법무부는 이같은 주장에 “국가 기능의 본질과 국민인권위원회의 성격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비롯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공추위)’는 지난달 31일 “인권법안은 법무부의 밀실에서 태어난 것인 만큼 철회되어야 한다”고 비난했다.또 인권운동사랑방 등 18개 인권단체 소속 간부 20여명은 지난 7일부터 명동성당에서 ‘인권법안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중이다.11개 국제 인권단체들도 연대서명을 통해 국내 인권단체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대한변협이 12일 ‘인권법안,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조용환(趙庸煥) 변호사는 공추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이날 ‘공추위의 성명,과연 옳은가’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공추위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졌다.법무부는 먼저 ‘인권법안은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은 밀실타협의 산물’이라는 공추위의 주장에 대해 “인권법안이 확정되기 전까지 10개월 동안 공청회 4차례,토론회 20여차례,당정협의 6차례 등을 거쳤다”고 반박했다. 법인의 형태에 대해서는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공추위는 인권위가‘특수법인’인 만큼 법무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국가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법안에 규정된 인권위는 법무부의 통제·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기구라고 단언한다.인권위는 인사·예산·구성·업무 등 모든 면에서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이 때문에 법무부의 인권위 통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 勞總 “노사정委 시한부 탈퇴”

    한국노총(위원장 朴仁相)이 노사정위원회 시한부 탈퇴를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9일 서울 여의도 노총 대강당에서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중앙위원회를 열고 노사정위법이 시행되고 노사간에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노사정위를 탈퇴키로 결의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서에서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자율성 보장 등 ‘6대 정책 요구사항’의 완전쟁취를 위해 노사정위를 조건부 탈퇴키로 했다”면서 “노사정위 재참여는 노사정위법 제정과 노조 전임자 임금 자율성 보장 이행여부를 지켜보면서 집행부가 결정키로 했다”고밝혔다. 이날 중앙위는 정부가 오는 2002년부터 사용자의 노조전임자 금품지원 행위를 부당 노동행위로 규정,처벌토록 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을 연말까지 개정키로 하는 등 한국노총의 요구에 대한 입장 전달로 노사정위 참여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일부 산별 노조의 반발에 따라 朴위원장이 ‘조건부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앞서 정부와 여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국민회의 張永喆,자민련 車秀明 정책위의장과 李起浩 노동부장관,金元基 노사정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회의를 갖고 연내에 법정근로시간 단축 및 휴일·휴가제도 등 근로시간제도 개선책을 마련,관련법을 개정하고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국민기초생활보장법’(가칭)도 제정키로 했다. 당정은 이를 위해 4월 중 노·사·정 공익대표로 ‘노조전임자제도 개선위원회’와‘근로시간제도 개선위원회’를 각각 구성키로 했다. 당정은 이와 함께 공기업과 금융기관 등 공공기관의 경영혁신을 추진하는과정에서 고용 및 근로시간을 변경하고자 할 때는 노동조합과 사전협의,단체협약 갱신,취업규칙 변경 등 필요한 적법절차를 이행토록 적극 지도키로 했다. 또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등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산업경제정책은 노·사·정 3자가 사전협의토록 하고 관계공무원의 출석 및 자료제출 협조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노사정위 설치·운영 등에 관한 법’(가칭)을 4월중제정키로 했다.
  • ’부결파동’후 與與공조

    金大中대통령이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파동에 따라 국민회의 지도부를 인책하고 곧바로 ‘DJP 단독회동’을 갖기로 하는 등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수습에 나선 것은 공동정권에 대한 국민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또 당내 안정을 꾀하지 않고서는 정치개혁입법 등 산적한 정치현안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나아가 공동정권의 결속력을 다잡지 않으면 대야관계를 포함,원활한 국정운영을 보장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수순은 책임정치에 기초하고 있다.집권 2차연도인 올해초부터 보이기 시작한 인사스타일의 변화에서도 읽혀진다. 金正吉정무수석도 “이런 일이 있고도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앞으로 어렵다고생각한 것 같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현 수습책은 단기적인 처방의 성격이 강하다.당장 공동정권의 기본 틀이 무너질 경우,안정적인 정국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태생적·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결과로 분석된다.다시 말해 우선은 당을 안정시키고,동요하는 공동정권의 틈새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는 상황인식의 발로인 셈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이 여러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동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번 파동으로 느낀 金대통령의 장기구상은 무엇일까에관심을 쏠릴 수밖에 없다.아직 ‘20표의 반란표’가 조직적인 반발인지,아니면 개인차원의 불만표시인지 파악되지 않았으나 이대로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정국운영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국회가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사사건건개혁의 발목을 잡지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더욱이 내년 4월 총선 이후 정치권은 ‘3金 이후의 정국구도’로 급격히 변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당내 일각에서 내각제에 대한 조기 담판론이 제기되고,정치개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특히 국민회의 金令培총재권한대행 지명자는 대표적인 국민회의·자민련 합당론자로 그의 지명배경과 맞물려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내각제 개헌’이 공동정권의 기초를 흔드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까닭이다. 따라서 내각제 문제에 대한 金대통령의 구상이 정리되면 정치개혁입법 추진과 국민회의 전당대회,그리고 대규모 당정개편 등도 덩달아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朴智元대변인이 “이번 파동은 국회의 사명과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불신을 가중시키는 것”이라면서 “본격적인 정치개혁을 위해 적극적이고 강력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金대통령이 조기봉합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정국구상을 근본적으로재검토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게 틀림없다.
  • [제2공화국과 張勉](13)분출하는 욕구(上) /사형수 편지

    ‘혁명은 독한 술과 같다’던가. 4월혁명 후 한국사회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다.李承晩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시민은 제각각 품고 있던 기대와 욕구를 마음껏 뿜어냈다.남자나 여자,노인과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시위에 나서 목청을 높였다.그것은 어쩌면스스로 자유를 쟁취한 자의 권리행사였다.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고들 말한 張勉정부 8개월여.그때일어난 데모 중에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교사전근 반대’를 내세워,또 ‘어른들은 이제 데모를 그만 하라’고 요구하며 각각 데모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은 국회의원이 경찰관의따귀를 때렸다고 시위를 벌였다.군인도 예외는 아니었다.논산훈련소에서는정훈부 사병들이 “宋모중령이 우리를 머슴처럼 부려먹는다”고 항의데모를벌이려고 해 장교들이 가까스로 저지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데모가 모두 무절제하고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많은 부분은 자유당 독재정권의 유산을 청산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6·25 때의 양민학살사건 진상을 밝혀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예다. 1960년 5월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는 주민 70여명이 朴모씨를 불태워죽이는 처참한 사건이 일어났다.51년 이 지역에서 양민학살이 있었는데 당시 면장이던 朴씨가 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유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사건발생 후 경찰이 출동했지만 오히려 주민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곳곳에서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요구가빗발쳤고 이에 따라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직접 조사에 나섰다.그결과 신원면에서는 51년 봄 3개 부락 주민 600여명이 빨갱이로 몰려 金宗元이 지휘하는 화랑부대에게 학살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 국회조사반이 파악한 6·25 당시의 양민 피살자는 경남 2,892명,경북2,200명,전남 524명,전북 1,028명,제주 1,878명 등이었다. 張勉정부 하에서의 가장 충격적인 시위사태는 60년 10월11일 발생했다.‘4월혁명유족회’회원을 비롯한 시민·학생 수천명이 민의원에 난입한 것이다. 그 원인은 4·19 때의 발포자,3·15 부정선거 관련자,정치깡패 등 4월혁명을 불러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는 피고인들에게 1심 형량을 선고했다.발포건과관련해서는 柳忠烈 당시 서울시경국장에게만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언도했을 뿐 역시 사형이 구형된 洪璡基내무장관에게는 징역 9월이,郭永周 대통령경호관에게는 징역 3년이 각각 떨어졌다.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무죄 또는 징역 8월∼5년이 언도됐다. 민심은 크게 격앙했다.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데모가 잇따르다가 급기야는 10월11일 내각책임제 권력의심장부인 민의원을 강타한 것이다. 국회 난입에는 환자복에 목발을 짚은 4·19 부상자 50여명이 앞장섰다.이들은 본회의장으로 몰려가 의사진행을 중단시켰다.그들은 “하루빨리 혁명입법을 완성하라”고 요구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신·구파가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고 강요했다.이에 구파의 金度演과 신파의 林文碩,구파의 徐範錫과 신파의 李哲承이 억지로 악수를 나누는해프닝이 벌어졌다. 그 상황을 郭尙勳 민의원의장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부상학생의 위세가 당당하여 마치 부상학생들의 천하와 같은 감이들었고 아무도 감히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정권을 우리가 주었는데’하는 생각은 ‘부상학생 천하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국회에 경호권을발동하여 한번 크게 호령을 해줄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그들의 항의방법이너무도 졸렬하여 그만 자신을 잃어버렸다”거듭되는 데모로 사회는 불안정하고 정부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진 듯한 이같은 상태,훗날 ‘무능하다’는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 이 상황을 張勉정부는어떻게 판단하고 있었을까. 張勉의 뜻은 “국민이 열망하던 자유를 한번 주어보자”는 데 있었다(회고록에서 인용).그는 “오랫동안 자유당정권 하에서 억눌렸던 국민이 자유가허락된 이때에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한번은 마음껏 발산시키고 나서야 가라앉을 것은 어쩔 수 없는 뻔한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작용했음도 물론이다.張勉은 “귀와 입으로배운 자유를 몸으로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이는 “이론과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었다.결국 張勉은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스스로혐오를 느낄 때 비로소 진실한 자유를 얻는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었다. 張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李泓烈(77)은 4·19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한사건 직후 비서관들이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건의했다고 기억했다.자신을 비롯해 宋元英공보비서관,정보담당인 해군尹대령 등이 시국을 걱정하다 張총리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별도기구를 직속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에 자신이 비서진을 대표해 말했더니 張총리가 “泓烈군,무슨 소리야.민주적인 행정을 하자고 투쟁을 해서 총리가 된 것 아닌가.비상수단을 꼭 써야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거야”라고 안색을 바꾸며 꾸짖더라는 것. 張勉과 그의 정부가 믿은 것은 시간이었다.세월이 지나 혁명의 흥분이 가라앉으면국민은 무절제한 자유가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깨닫겠지,그리고그 자각(自覺) 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꽃필 것이라고 기대했다.실제로 1961년에 접어들자 데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5·16의 총성이 울려퍼지기전까지 張勉정부의 교과서적인 민주주의는 꽃망울을 맺어가고 있었다. - 張勉 저격 共謀 사형수 편지 첫 공개 張勉의 인품과 인간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편지 2통이 8일 공개됐다.그의맏아들인 張震 서강대 명예교수 부부가 최근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편지들은 한때 그의 목숨을 노린 崔勳이 1965∼66년에 걸쳐 보낸 것이다. 崔勳은 1956년 9월28일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張勉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3명 가운데 하나이다.현장에서 張勉에게 직접 권총을 쏜 金相鵬과,金에게 권총을 마련해준 李德信(당시 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사이를 연결해준 것이 崔勳이었다. 65년 7월27일자 소인이 찍힌 첫 편지에서 崔는 張勉에의 존경심과 고마움을 절절히 토해냈다.그는 “진작 편지를 올릴 마음 간절하였으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박사님의 쓰라린 상처를 위로해드리는 일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은혜를 못잊어 조석으로 박사님을위해 기원하는 한 생명이 이 땅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점만은 알려드리고싶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張勉총리가 60년 10월1일 감형을 해줘 사형을 면한 일,그해 12월에는 직접 교도소를 방문해 털내의를 건네준 덕에 따뜻하게 겨울을 난 일들을 기억했다. 崔는 “박사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상을 시범하신 사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박사님이 ‘그대의 죄를 전부 사해주노라’라는 말씀을 친히 들려주실 날이 오기를 간망(懇望)한다”고 기원했다. 張勉은 崔勳에게 바로 답장해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여러차례 오갔고,그 편지에서 張勉은 가톨릭에 귀의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현재 남아 있는 두번째 편지(66년 1월9일자 소인)에 이를 알려주는 구절들이 나온다. 새해인사를 겸해보낸 이 서신에서 崔勳은 “박사님의 편지를 받은 후 반년 이상이나 신중히 생각한 결과로 근방의 주임신부님을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톨릭에 입문할 결심임을 알렸다.이어 “영세를 받기까지는 자주 편지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오해 마시기 바라며 그러는 것이 박사님의 심경에 위로를 드리는 것이라는 졸렬한 생각에서”라고 밝혔다. 張勉과 崔勳 사이에 오간 편지는 이 두 통밖에 남아 있지 않다.둘 다 우편봉함엽서이며,‘대구시 삼덕동 82의 1’에 사는 崔勳이 서울 명륜동 張勉의자택으로 보낸 것이다. 崔勳이 편지를 보낸 시점은 張勉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탈취당한 지 4년이 지난 때였다.張勉이 정계에서 완전 은퇴해 자택에서 가톨릭 서적을 번역하는 데 몰두한 시절이다.따라서 崔勳의 편지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존경심과 그리움을 담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국무총리로서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았던 정치가,한때 그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사형이 확정됐던 사형수.역사의 현장에서 벗어나 둘만이 나눈 대화는 張勉을 가까이서‘모신’ 어느 누구의 증언보다도 張勉의 인간적인 면모를 진솔하게 들려준다.그 귀한 ‘증언’이 가족도 모르게 30여년을 숨어지내다 올해 ‘張勉 탄신 100주년’을 맞아 세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張勉에게 총을 쏜 金相鵬은 복역을 마치고 나와 목사가 되었다.金목사는 지난 87년 張勉의 셋째아들인 張益주교(춘천교구장)를 만나 ‘위대한 인격자 張勉’을 함께 회고했다. 李容遠
  • 민간단체 취업프로그램 지원

    지금까지 관(官)주도로 이뤄졌던 실업 대책에 민간사회단체(NGO) 위탁 방식이 도입된다. 정부와 국민회의는 6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張永喆정책위의장 등 정책관계자와 환경·국방부 등 10개 비경제부처 기획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를 갖고 실업대책의 다각화를 위해 NGO가 실업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정부가 이에 대해 인력과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당정은 또 압축천연가스(CNG) 시내버스를 내년부터 도입,오는 2002년 월드컵 개최 8개 도시에 5,000대를 운행하고 2007년까지는 6,000억원을 들여 2만대를 운행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20여개의 민간단체를 한데 묶은 가칭 ‘대북지원 민간단체협의회’를 발족시키고 남북협력기금을 중소기업 위주로 저리대출하기 위해 ‘남북협력기금지원지침’을 제정키로 했다.
  • [사설] 추곡가 결정 너무 늦다

    국회의 추곡가 결정이 너무 늦어지고 있어 농사철 앞둔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작년말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할 올해 추곡 약정수매값과 수매량에 대한 국회동의가 3개월이상이나 지연되면서 농민들의 영농계획 차질과 선도급 지급지연으로 인한 영농의욕 저상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3일 당정협의를 갖고 정부가 제시한 추곡 약정수매값 3%를 5∼6%로 인상하도록 요구,정부안 수용을 사실상 거부했다.벼 못자리가시작되는 이달까지 당·정간에도 추곡값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지난해도 뒤늦게 결정되기는 했지만 벼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어 영농에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정부가 지난 3월 10일에야 추곡약정수매값 동의안을 국회에제출했고 지난주에야 당·정간 첫번째 협의가 시작됐다.그러나 가격 인상률을 둘러싸고 이견(異見)을 보여 수매값 결정이 표류하고 있다.정부가 추곡가 인상률을 3%로 결정하기까지도 많은 곡절이 있었다.농민단체인 농협은 5%,한농연은 13%, 전농은 19.9%를 인상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형편·올해 물가상승률(3%)·현재 쌀값동향 등을 감안,추곡가를 3% 인상키로 하고 이 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여당은 추곡가 인상률을 5∼6%,한나라당은 8.5%를 주장하고 있어 국회동의안이 어떻게 결정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이다.약정수매제도는 정부가 보장하는 최저 가격을사전에 예시함으로써 농가의 자율적인 판단아래 영농계획을 수립케하고 약정 농가에게 선도금을 영농기전에 지급함으로써 농가의 자금난을 덜어 주자는의미에서 지난 98년부터 도입된 것이다.정부는 선도금을 지급함으로써 정부비축 물량을 사전에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농민들은 추곡수매값 동의안이 모내기가 시작되는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자 정치권이 정쟁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민의 주곡인 쌀 생산마저 관심을 갖지않고 있다며 국회처사를 비난하고 있다.국회의 추곡가 늑장 결정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비단 농민만이 아니다.농민들이 영농의욕을 잃게 되면 쌀자급도가 낮아지고 그렇게 되면 쌀값 상승으로 도시근로자의 생계비 지출이 늘어나고 전체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그러므로 정부와 여당은 조속히 추곡가 인상률을 합의하는 동시에 국회에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정부는 국회동의가 계속 지연된다면 못자리 설치전에 정부가 결정한 인상률을 토대로 선도금을 지급하고 국회동의가 나오면 그 가격으로 정산하여 지급하는 등 특별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 與“올 추곡수매가 5-6% 인상”

    여당은 정부가 제시한 추곡수매가 인상안이 다소 미흡하다고 보고 예산당국과 협의해 수정안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정부와 여당은 3일 낮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당정간담회에서 6일 소관 상임위를 열어 정부측 수정안을 놓고 의견 절충을 벌이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물가인상분을 감안,지난해보다 3% 오른 올해 추곡수매가 인상안(정곡 1등급 80㎏ 기준,14만9,950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당은 IMF 상황에서 농민들의 고충을 덜어 주기 위해서는 최소 5∼6%는 인상해야 한다며 정부안 수용을 사실상 거부했다. 또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4대 협동조합 통·폐합 작업을 여당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金泳鎭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은 “오는 20일 농림부의 협동조합 통·폐합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이에 각 당의 의견을 반영하고 각계 대표를 초청한공청회를 거친 뒤 통·폐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金위원장은 또 “경영합리화와 운동성 제고라는 협동조합 설립의 당초 목적을 되살려 생산자의 이익이 증대되도록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 변호사등 전문직 소득 캔다/8개 전문자격사 보수실태 조사

    정부는 2일 金鍾泌국무총리 주재로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열어 자영업자에게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등의 보험료가 적정하게 부과되도록 정확한 소득파악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정부 관계자는 “지난 1일부터 국민연금제도가 도시지역까지 확대적용된데다 내년 1월부터는 지역·직장간 의료보험도 통합되므로 자영자 소득파악 방법의개발이 중요한 과제”라면서 “변호사,의사,연예인 등 전문직 고소득 자영자에 대한 소득파악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오는 10일 안에 정부 및 민간 전문가 20인 정도로 구성되며,우선올해 안에 자영업자 보험료 부과시 국세청의 과세자료를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정부의 모든 과세관련 자료를 국세청에 통보한 뒤,정보를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8개 전문자격사 보수실태 조사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8개 전문자격사의 보수실태에 대한 조사가 이달중공정거래위원회와 민간단체 합동으로 실시된다.이는 카르텔 일괄 정리법 제정으로 전문자격사의 보수결정 카르텔이 폐지됨에 따라 야기될 수 있는 전문자격사의 보수 인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정부와 국민회의는 2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당정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하고 조사결과를 다음달 발표하기로 했다. 당정은 또 연대보증제도 폐지 원칙을 확인하고 그 보완책으로 1,000만원 이하 소액대출에 한해 연대보증제도를 존속시키는 방안과 선진국에서 이용되는‘조력서(Support Letter)’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 「정치개혁 어떻게 돼가나」여야협상 진척도-각계 제시案 점검

    ‘정치개혁’에 대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까지나서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여기에 선관위도 자체 안을 마련,불을 지피고 나섰다. ■국회 거의 합의를 이끌어낸 상태다.이번 임시국회에서 국회 관련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나 ‘인사청문회’ 대상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청문회 대상을 현행대로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받아임명하는 공직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이 대상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대상자의 폭을 넓혀 국정원장,경찰청장,검찰총장,국세청장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여당을 몰아붙이고 있다.정치개혁시민연대는 나아가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참여연대측도 “인사청문회 대상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으로 정치개혁이지지부진하다”면서 “국회의 임명동의를 필요로 하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되,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장 등에 대해서는 중립적 인사로 구성된‘고위공직자인사위원회’를 만들어 검증하면 된다”고 대안(代案)을 제시했다. 국회의장 당적 이탈,국회 상시 개원,예결위 상설화 등은 지난해 말 합의를본 상태여서 인사청문회 문제만 남은 셈이다. ■선거 각 정당,개개 의원의 정치생명과 직결된 만큼 신경전이 대단하다.여야(與野)뿐 아니라 여여(與與) 사이에도 입장 차이로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공동여당이 ‘단일안’을 아직 도출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은 선거제도를 논의하기 전에 ‘대통령제냐,내각제냐’의 권력구조문제를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고 두 여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다.최대한 틈새를 벌려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속내다. 여야 3당이 소선구제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중·대선거구제의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대안으로 거론될 공산이 크다.선관위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소선거구제 쪽으로 기운다. 국민회의측이 ‘전국정당화’를 위해 내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한나라당이 적극 반대하고 있어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하다.시민단체들은 순수 독일식이라면 좋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또 국회의원 정수는 270명선으로 여야간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그러나 선관위와 시민단체는 250명선이 적당하다는 주장을 편다. ■정당 ‘돈 안드는 정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로 불리는 정치권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기 위해 반드시 ‘메스’를 댈분야다.방만한 지구당을 정비하고 ‘검은돈’의 유혹을 받기 십상인 정치자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자금제도에 관한 여러 안 가운데는 선관위의 안이 특히 눈길을 끈다.후원금 상한선을 개인의 경우 연간 1,000만원으로 묶으면서 기업의 정치자금기부도 금지했다.대신 기탁금제도를 개선,1억원 이상 법인세를 내는 법인은법인세의 0.5∼1%를 의무적으로 선관위에 내 국고보조금 배분비율로 각당에지급토록 하고 있다. 오풍연- 여야‘말로만 개혁’ 1999년 4월13일.선거법에 따라 여야가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안을 마련,국회의장에 제출해야 하는 시한이다.총선 직전 선거법을 급히 뜯어고치는 후진적전례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 정치권이 만들어놓은 법이다. 여야 정치권은 그러나 또 이 법을 어기게 됐다.열흘 안팎 남은 기간 안에국회가 선거구획정안을 완성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새 정권 출범 후 지난 1년간 여야는 당쟁(黨爭)만 일삼으며 정치개혁 현안을 뒷전으로 미뤄왔다.이것이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켰고 유권자들은 ‘3·30재보선’에서 30%대의 ‘최악의’ 낮은 투표행태로 반응했다.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여기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여야 총재는 지난해 11월10일에 이어 지난달 17일 만나 발표·합의문을 냈다. 모두 정치개혁 입법을 본격 추진키로 합의했으나 진전은 없다. 정치개혁을 하자는 것은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얘기다.정치무대인 국회의 효율성을 높여 생산적인 정치토대도 구축하자는 것이다.정치인의 지갑이 투명한 ‘유리지갑’이 되고 돈을 많이 들여 선거를치러도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저비용고효율’구조를 만들라는 압력이다. 정치개혁 필요성은 ‘3·30선거’에서도 드러났다.안양시장과 시흥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듯 국민은 개혁적이고 참신한 후보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아직 신진세력 수혈을 막는 구조다.비례대표 의석을 받으려면 최소득표율이 높아야 하고 정당 설립때는 ‘지구당의무’조항이 만만치 않다.정당구조를 들여다보면 공직선거 후보를 결정하는 대의원 선출 과정 또한 반(反)민주적이다.당직 경선이나 상향식 공천제는 찾을 수 없다.전당대회에 수십억원을 쏟아붓는가 하면 국고보조금에서 정책개발비로 나가는 돈은 쥐꼬리만 하다.이런 것들이 개혁 대상이다.돈을 많이 써야 하는 선거제도도 문제다.돈을 많이 쓰면 표도 많이 받는 게 현실이다. 현행 전국구제도가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구조라는 지적이 있다.88년 13대 선거때는 제1당이 전국구 의석의 반을 가져갔고,96년 15대때는 전국구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했으나 전국구는 15%에 그쳤다.15대때 여당인 신한국당은 34.5%의 득표를 하고도 46.5%의 의석을 가져가기도 했다.이런 불합리한 구조개선을 위해 여권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당론화했다.야당은“여당에 유리하다”며 반대하고 있다.여야를 떠나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에 불이익을 주는 배분 틀을 만드는 것 또한 정치개혁의 중요한 테제다. 유민- 정치개혁 걸림돌은 뭘까 국회·정당·선거법 개혁 등 정치제도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당리당략이다.정치권은 정치개혁이라는 총론에는 합의하면서도 각론에서는 모든 것이상충된다.선거제도의 당리당략은 첨예하다.선거제도만 합의하면 정치개혁의80% 이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여권 단일안을 만들기 위해 8인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했으나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여권 단일안이 마련되더라도 첩첩산중이다.한나라당은 구체적 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다.시간을 늦추면서 최대한 당리를 챙기려는 속내다.당내에 주류·비주류,그리고출신 지역에 따라 의견이 달라 쉽사리 합일점을 찾기 힘든 측면도있다.현역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도 개혁의 걸림돌이다.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비례대표제,중·대선거구제 등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검토해야 한다.그러나행여 내 선거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현역 의원들의 몸조심은 선거판의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의원정수를 줄이기 쉽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흑색선전 방지,정경유착고리 끊기 등 이밖의 난제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강동형- 시민단체“더이상 두고 못보겠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압력이 커지고 있다.급기야는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작업을 보다 못해 ‘협상파트너’로 나설 것을 선언했다.정치개혁을 가로막거나 대(對)국민 약속을 어기는 의원과 출마자들에 대한 ‘낙선캠페인’도 검토중이다. 정치개혁시민연대,시민개혁포럼,행정개혁시민연대 등 39개 단체로 구성된‘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최근 실무위원회를 갖고 정치개혁을 위해 시민단체의 ‘직접 참여’를 선언했다. ‘정치개혁 연대회의’ 孫鳳淑공동대표는 2일 “당리당략 등 첨예하게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로는 문제해결이 안된다”면서 “민간인이 참여해 정치개혁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정치권에 맡겼다가는 정치개혁작업이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위원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국회 정치개혁특위24명에 시민단체 대표 24명이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국회·선거·정당정치개혁 현안을 포괄 논의하는 것이다. 정개연은 오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제안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여야 3당 총재를 직접 방문,‘정개위’ 구성을 촉구할 계획이다.정치개혁시민연대 金石洙사무처장은 “이제 정치권은 스스로 정치개혁을 할 자정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고 말했다. ‘정치개혁 연대회의’는 오는 14일 공청회를 거쳐 ‘시민단체의 단일안’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정개연은 우선 ‘시민단체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계획이다.시민단체도 지지후보를밝히는 ‘구체적’인 형태로 정치권에 ‘압력’을 넣겠다는 취지에서다.정치개혁을 위한 각종 캠페인과서명운동 등을 통한 여론 확산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金令培부총재는 “시민단체가 직접 정치개혁 협상에 나서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그러나 “시민단체의 안이 나오면 정치권에서반영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안이 정치권에 수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그러나 외면하기도어렵다.정치권이 개혁과 구조조정의 ‘사각지대’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최광숙
  • 2만弗이상 환전땐 국세청 통보

    1일부터 은행에서 건당 2만달러를 초과해 원화로 바꾸거나 같은 금액 이상을 해외에서 송금받으면 국세청에 즉각 통보된다. 또 1만달러를 넘는 금액을 갖고 입국할 경우 세관에 신고해야 하며 세관은바로 국세청에 통보하게 된다. 재정경제부는 4월 1일부터 1단계 외환거래자유화를 실시하면서 외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정부는 외환위기가 닥쳤던 97년 12월 12일부터 시민들이 장롱 속에 두고 있던 달러를 매각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해외로부터 외자유입을 촉진하기 위해송금 등에 대한 국세청 통보를 중단했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극복한 상태이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15개월여 동안 중지했던 국세청 감시를 재개한다”면서 “1일부터가동되는 한국은행 전산망과 국세청과 관세청 전산망이 연결되는 만큼 자동적으로 해당정보가 국세청과 관세청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재경부는 지금까지 ▒용역대가 사전지급,수입대금 사전지급이 각각 건당 5,000달러를 초과한 경우 ▒용역대가 지급,전시회·국제회의와 세미나 비용지급,보증계약에 따른 대지급,중개·대리 수수료,본·지사간 지급 등이 각각 건당 5만달러를 초과한 경우 은행이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해 왔으나 1일부터는 이들 금액기준을 모두 건당 2만달러로 통일했다. 한편 해외에서 연간 2만달러 이상을 신용카드로 사용하거나 연간 200만달러가 넘는 영업자금을 해외에 송금할 경우 종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국세청에 통보된다.
  • [대한광장]국민은 의연한 정부를 원한다

    정권이 바뀌기 전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책이 실패해도 몇몇 민주화운동단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언론계와 사회단체가 침묵했다.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정책마다 사사건건 입방아를 찧는다.그만큼 민주화가 성숙됐다고 봐야 할 것인지,언로가 트였다고 봐야 할 것인지…. 국민연금 확대 실시 문제가 시행시기와 방법보완책 시비로 공동정권 당정내부에서도 조율이 잘 되지 않아 삐걱거리기도 했다.그뿐 아니라 야당·언론과 일부 시민단체의 뜨거운 반론에 부닥쳤다.그러나 노령화사회에 복지대책으로 필수적인 좋은 정책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여론수렴과 미비점 보완으로흔들림없이 방침을 확정,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도 심각한 진통을 겪었다.집권초기 1차 정부조직 개편의 실패와 결함을 뼈아프게 경험했는데 이번 2차 개편에서도 참신한 개혁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요망에도 불구하고 46억원이라는 예산만 낭비한 채 용두사미가되고 말았다. 방송개혁안도 그렇다.대통령 직속 방송개혁위가 중지를 모아 입안한 개혁안이일부 여야 정치인들과 방송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자 움츠러들었다.그러나 각계의 의견을 수렴,결함을 보완해 방송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빅딜’이 재벌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관건인가? 정부가 시도하는 재벌 개혁방안으로서 빅딜은 한 가지 방법론일 뿐이다.재벌그룹은 주력기업만 남겨두고 해체돼야 한다.내부거래와 상호 지급보증으로 부채비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때문이다.족벌체제개혁과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재벌개혁과 정치개혁·사회개혁은 국민의 정부의 미룰 수 없는 과제요,소명이다.정치보복과 표적수사란 비판과 이익집단들의 반발에 부닥쳐 개혁과 사정의 칼날이 무디어지고 개혁의지가 약화된 듯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정황과 사회현실을 직시하는 언론이라면 국가부흥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보수세력과 이익집단의 이익수호적 논변을 엄정하고도 합리적 논리로 비판하고 국론화합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일부 언론은 정부시책에대해 사사건건 대안 없는 양비론적 논평으로 여론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통합문제도 이익집단의 성토와 강한 반발에 직면하자정부는 마치 비포장 길을 달리는 포장마차처럼 자신감을 잃고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이다 끝내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정부는 어떤 정책을 세우는 데 엘리트군의 전문적 두뇌와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경제회생과 제2건국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총력을 경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소홀히 했기에 비판과 성토와 강력한 반발에 봉착하는가.국익차원에서 이익집단의 이해를 얻기 위해 대화를 갖는다든가,공청회를 갖는 등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러나 정부의 시책이 국민들의 공익을 위한 길이라면 과감히 밀고 나가야한다.‘소수의 우는 아이 달래다 다수의 울지 않는 아이 굶긴다’는 속담처럼 모든 사람의 욕구를 다 채워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5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고 국민으로부터 국가안정과 부흥의 책임과 의무와 권력,사명을 부여받았다.정권은 과감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추진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익집단의 반발 때문에 공동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흔들리고 눈치만 살피는 모양은 국민들에게 답답함을 준다.국정 운영능력은 국민이 평가한다. 공동정권은 왜 역대정권에 비해 의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힘 있는 정부가 되도록 성원하고 힘이 돼주고자 국민이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보고있다.현명한 국민은 선택의 권리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지혜로운 척도로공과를 가릴 것이다. ‘통치자들은 지혜없이 통치할수 없다’(지혜서 8:9∼16)조비오 광주 가톨릭대 사회교육원장
  • 기초단체 副단체장 국가공무원 환원 추진

    정부는 현재 지방직인 부시장·부군수·부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키로 한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이같은 조항을 삽입시키기로 했다. 이같은 방침은 기초단체장이 부단체장의 인사권을 갖고 있어 상위기관과의인사교류가 단절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기초단체장이 임기 초에 부단체장을 임명하면 바꾸려 해도 적당한 자리가 없어 4년 동안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행자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단체장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는 일부 기초단체장의 반발도 예상된다. 金大中대통령은 지난해 행자부로부터 이같은 방안을 보고받을 때는 “지방자치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광역자치단체장들이 기초 부단체장의 국가직 전환을 요청하는 등 건의가 잇따르자 최근에는 필요성을 긍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자치단체 부단체장은 민선 1기에는 국가직이었으나,지난해 7월1일 민선2기가 출범하면서 지방직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지자제 2기 출범 직전에도 부단체장을 국가직으로 하는 내용으로 지방자치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무산됐었다.
  • 여야 경제협의회 재가동-26일…실업대책등 조율

    ‘여야 경제협의회’가 26일 재가동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권이 초당적인 협조체제를 갖추자는 金大中대통령과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지난주 합의에 따른 것이다.물론 여야간 경제협력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국회에서 열릴 협의회에서는 실업대책과 수출증진 대책,올해 추가경정예산등 각종 경제현안이 집중 다뤄질 전망이다.한·일어업협정 발효에 따른 어민 피해보상 및 수산진흥 대책과 이에 대한 재원 마련 대책도 논의될 것으로알려졌다. 하지만 여권은 경제협의회가 ‘의결기구’가 아닌 만큼 정부측 관계자들을불러 정책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로 만들 계획이다.정부측에 대해서는 국민연금문제 등 혼선을 빚은 정책을 ‘사전’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정책 토의과정을 통해 야당의 지지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또 민생관련 법안 등과 관련,야당과의 사전 논의를 통해 법안의 국회 처리에 효율을 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국민회의 張永喆정책위의장은 “3당 정책위의장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데대해 국민들이 많은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주요 현안에 대한 조율이 본격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경제협의회를 통해 그동안 대여 강경투쟁에서 벗어나 ‘정책야당’으로 변신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당내 정책위원회 산하 19개 위원회를 가동해 실업문제,한·일어업협정 재협상문제,국민연금문제 등을 집중 부각시켜 대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지난 20일 李揆成재경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실업당정회의결과를 토대로 실업대책에 목소리를 높일 생각이다. 한나라당 李相得정책위의장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 지원 대책보다는 산업정책과 연계,장기적으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육성을 통해고용창출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경제협의회는 3당 정책위의장을 공동의장으로 한다.각당 경제담당 정조위원장 3명도 참석토록 해 모두 6명으로 구성된다.구체적인 사안에 따라관련 국회의원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날 열리는 여야 경제협의회는 지난해 11월 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의 청와대회담에서 협의회 구성에 합의한 이후 두번째다.그동안 11월17일 한 차례 여야 협의회가 열렸을 뿐이다.5개월 만이다. 그 이후 대치정국으로 ‘잊혀졌다’가 여야는 지난 17일 청와대 회담에서다시 가동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국민정치연구회 오늘 출범

    24일 공식 출범하는 ‘국민정치연구회’의 면면과 활동방향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金大中대통령이 최근 제기한 젊은층 수혈론과 맞물려 강력한 ‘대안세력’으로 떠오르고 있기때문이다.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주축이된 이 모임은 현재로선 누가 뭐래도 젊은 개혁인사의 ‘인재풀’이다. 모임의 몇몇 인물들은 프레스센터에서 창립대회를 갖기 하루전인 23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설립 배경과 활동 방향 등을 제시했다. 이사장인 李在禎성공회대 총장,金槿泰국민회의 부총재등이 나서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을 뒷받침하는 다각적인 정치활동을 펴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개혁추진 세력의 형성도 강조했다.16대 총선에서의 ‘인재 풀’역할을 맡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李在禎총장은 “개혁정치가 성공할 할 수 있도록 젊은 세력들을 발굴해 국민회의에 추천하겠다”고 말했다.내년 총선에서 개혁정치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지원하는 사업을 통해 개혁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모임의 한 인사는 “金대통령의 결단은 정당정치에 새로운 기반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면서 “개혁정치를 뿌리 내리게 하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며 젊은층 수혈론을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이 모임의 궁극적 목적은 ‘개혁의 실현’에 있다.이를 위해 여의도에 가칭 ‘정치개혁 연구소’를 설립할 방침이다.정치,경제,사회 등 분야별 개혁 정책을 개발할 계획이다.월례포럼,내부 토론회,공청회,세미나 개최를 통해 개혁과제를 점검한다는 일정을 잡아 놓고 있다. 특히 “내각제등 정치 관련 쟁점 등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정치 현안을 비켜가는 ‘단순 연구 모임’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참여인사의 한 사람인 국민회의 金槿泰부총재는 “우리 사회를 정상화하고구조 개혁을 힘있게 밀고 나가기 위해 믿을 수 있는 개혁세력이 흩어져서는안된다”며 개혁세력의 결집을 강조했다.‘개혁’의 성공을 위해 과거 민주·통일운동을 했던 인사들을 기반으로 정치적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회에는 文東煥전의원,李敦明변호사,李愚貞국민회의고문,咸世雄신부등 원로인사 16명과 張永達,林采正 등 국민회의소속 의원 15명,학생운동출신 국민회의 許仁會당무위원,金賢美부대변인,소설가 柳時春,등 2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 상장사 적자에도 배당금 늘었다

    12월 결산 상장사들의 금년도 배당금 총지급액이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와배당회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42.3% 증가했다. 22일 증권거래소가 12월 결산사중 주주총회에서 재무제표를 승인받은 390개사의 올해 배당현황을 조사한 결과,1주당 배당금이 441원으로 작년보다 10%증가했다.총배당금은 1조3,366억원으로 3,972억원 늘었다. 총배당금의 증가는 발행주식수가 전년대비 26% 늘었고 기업들이 구조조정으로 특별이익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또 소액주주의 권리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이 고배당정책을 폈기 때문으로 증권거래소는 분석했다. 현금배당을 실시한 회사는 250개,64.1%로 지난해 261개보다 4.2%가 줄었다. 무배당에서 배당으로 전환된 회사는 동아타이어공업,데이콤 등 35개사였다. 국민은행과 현대자동차등 46개사는 오히려 무배당으로 바뀌었다. 주당 배당금 상위사는 한국카프로락탐과 조흥화학공업이 2,500원으로 가장많았고 삼영전자공업 신도리코 태광산업 남해화학 등 4개사가 1,500원이었다.10대 그룹의 주당배당금은 SK가 497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 419원,롯데 413원,LG·한진 각 333원 등이었다. 2년 연속 배당실시사는 215개(55.1%)였고 2년연속 무배당사는 94개사(24.1%)였다.98년도에 적자가 났는데도 주주들에 배당을 한 회사는 디아이,동방아그로등 8개사였다. 金均美 kmkim@
  • [오늘의 눈]위험한 여론만능주의

    요즘 동강댐 건설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다.물론 환경단체와 일반 시민단체들의 상당수는 반대론을 제기한다.여론조사 결과,70%가 댐 건설에 반대하는데 굳이 댐 건설을 강행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그러나 여론조사의 허점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댐건설=환경파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수치가 큰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얼마전 국민연금 파동을 봐도 그렇다.金元吉 당시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은국민연금 확대 반대의사를 밝혔다.“국민연금 확대를 반대하는 쪽이 찬성하는 쪽보다 두 배나 많다”는게 이유였다.하지만 이는 국민연금=조세부담 추가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상황에서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였다.金전의장은 이조사를 근거로 한걸음 더 나아가 “국민연금 확대실시를 늦추는 쪽으로 당정간 의견이 최종정리됐다”고 언론에 흘렸다.하지만 이같은 언론플레이가 빌미가 돼 당직을 내놓아야 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국민의 여론을 묻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또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민주국가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댐건설이나 국민연금 확대실시 등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정권교체 이후 요즘처럼 여론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환영할 일이기도 하다. 민주국가의 기본원리중 하나는 다수결원칙이다.하지만 모든 것을 다수결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다수의견을 맹신(盲信)만 해서도 안된다.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야 하지만 찬반의 결과만을 놓고 ‘기계적’으로 정책을 꼭 결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만을 놓고 일을 하다 보면 군에 갈 젊은층도 없고 세금을 낼납세자도 없을 것이다.젊은층에게 ‘군에 가겠느냐’고 물어보면 반대하는의견이 우세할 게 뻔하다.‘세금을 내는 것을 찬성하느냐’는 물음에도 큰차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례는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강조하다 보면 이러한 일까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원리중의 하나가 다수결원칙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다수의 횡포일수도 있다.기계적인 사고와 접근보다는 유연한 사고와 접근이 필요해 보이는시점인 것도 같다. 곽태헌 정치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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