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盧대통령의 ‘후퇴’
노무현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로 ‘김혁규 카드’를 접고,대신 이해찬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명한 것은 일종의 정치적 ‘후퇴’로 볼 수 있다.그러나 그 후퇴는 여러 측면에서 노 대통령의 집권2기 국정운영 스타일이 지난 1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리라는 예감을 주고 있다.
좀처럼 자신의 소신이나 고집을 꺾지 않는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으로 내세운 ‘김혁규 카드’를 접은 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를 가져온 6·5 재보선의 민심도 한몫했을 것이다.남들이야 뭐라든 ‘김혁규 카드’를 붙들고 있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 유권자들 눈에 유아독존식 국정 운영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혁규’를 버리고 ‘이해찬’을 선택한 데는 노 대통령의 향후 행정부와 여당,청와대와 집권당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의중이 읽혀진다.우선 당정 관계는 협조 속에서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되 당·청 간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여권 운영의 구상도 엿보인다.
‘이해찬 지명’으로 나타난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용인(用人) 특징은 ‘후퇴’와 ‘견제·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앞으로 노 대통령에게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대통령은 앞으로 이번과 같은 ‘후퇴’를 좀 자주 하라고 권하고 싶다.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여당 지도부,의원 총회 등 공식 기구의 조언과 건의를 그야말로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재·보선 직전인 지난 4일 고위 당·청 협의에서 노 대통령은 천정배 원내대표가 일부 의원들이 ‘김혁규 카드’에 반대한다고 전하자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대화한다면 당과 대통령 간에 진정한 언로가 열릴 수 없다.그동안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을 전후하여 분당,탄핵,총선 등 정치적 갈림길이 있을 때마다 승부사적 기질로 정면 돌파했다.그러나 시중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치 게임에 행운을 잡은 것은 ‘運 7,技 3’이라며 계속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지는 것은 허물이 아니다.때때로 한발 물러서는 것은 결코 후퇴가 아니라,정치 지도자로서 포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더욱이 ‘개혁 대통령’에 같은 코드의 ‘돌파형’총리로 라인업이 되는 마당에 대통령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까지도 품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매우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둘째,여권 내부의 역학 관계를 ‘견제와 균형’을 통해 조정해 나가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여기에는 늘 갈등 증폭이라는 부작용이 있음을 십분 감안해야 한다.여당 원내대표직을 놓고 천정배 의원과 경합해 패배했던 이해찬 의원을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천·신·정’ 체제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감안한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과 청와대 관계에서도 예우상 ‘수석 당원’의 지위만 가진 대통령이 정무수석직을 없애고 최근 정치특보까지 철폐한 것을 보면,당내 특정 인사가 대통령의 권위를 이용하여 세력을 키우는 일은 용납치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여당의 독자 생존력을 키우기 위해 ‘젖을 떼려고’하는지,아니면 임기 중반까지는 일절 대권 예비주자들이 클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젖을 안 주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중요한 것은 국회 의석 과반수 여당을 통해 과거와 같은 제왕적 통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실증해 보이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여당 의원은 물론 야당 의원들까지도 ‘청와대의 대화틀’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