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盧 차별화’를 許하라
TV광고 기법 가운데 브랜드의 차별화 메시지가 소비자 설득에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한다. 선거, 정치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열린우리당의 재선 의원들과 가진 만찬에서 “(대통령과) 차별화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다음 대선을 위해서 당이 (나를) 비판해야 한다면 감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은 ‘차별화 허용’ 등의 확대 해석을 부인하면서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차별화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기본 인식”이라고 토를 달았다.
청와대는 당정 분리 원칙과는 달리 정무비서관을 신설하고, 정무특보단도 설치할 계획이다. 일차적으로는 청와대와 당 사이에 소통을 원활히 하고, 정치적 조율을 다잡으면서, 한편으로는 임기 말의 레임덕을 최소화한다는 의도다. 그러나 그보다는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 작업처럼 보인다. 비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14∼15% 선에 맴돌고 있지만, 합종연횡을 하든, 한판 엎어치기를 하든, 상황 타개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엄밀히 말해, 현행 5년 단임제 헌법체제 아래서 정권을 재창출한 정권은 없었다.6공의 민자당 정권이 김영삼 정권을 탄생시켰다 해도,5공의 연장선상에 있던 노태우 정권이 YS 문민정부를 창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이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으나, 뒤이어 탈당, 창당 수순을 밟은 현 노무현 정권을 민주당이 진정으로 재창출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에 몸담고 있는 인사든, 앞으로 영입될 인사든 간에 후보군으로 나설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노(盧)메뉴’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5공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10항쟁 이후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 수용 등 ‘6·29선언’으로 항복했다. 그 와중에서도 이 선언은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당총재인 전 대통령과 사전 상의 없이 결행한 것으로 정리하여, 모든 공로는 노 대표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전두환이 ‘죽일 X’가 되어도 노태우가 살면 된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여권 후보군이 내세워야 하는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답은 자명하다. 평등보다 경쟁에, 분배 정의보다 성장 동력에, 이념보다 실질 숭상에 좀 더 역점을 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를 일거에 ‘우파 시장주의’로 전환하라는 말은 아니다.
‘노(盧)차별화’엔 노선의 차별화와 못지않게 리더십의 양식, 용인술, 화법의 차별화가 필수적이다. 분열을 통한 지지세력 확보보다는 통합을 통한 사회 전체의 안정을 꾀하고, 코드·회전문 인사보다는 정권지지층의 외연을 두껍게 하는 용인 철학을 가져야 한다. 달변가 노무현 화법은 분명 일품이지만,“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등의 거리낌 없는 직설화법보다는 어눌하지만 진중하고 격조 있는 화법의 소유자라야 차별화가 이뤄질 수 있다.
차별화는 차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비판, 부정, 극복의 수순을 밟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열린우리당에 진정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대권후보들에게 ‘나를 딛고 일어서라.’고 말해야 한다. 정권재창출은 밀알이 썩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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