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갈등 현황과 해법] 진보·보수·지역… ‘갈등 공화국’ 사회적 비용 年300조 낭비
무상급식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결,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약사회와 시민단체,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놓고 한 지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밀양과 가덕도.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이 같은 현상은 한국 사회의 ‘갈등’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이외에도 한·미 FTA의 국회 통과, 검·경 수사권 조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조문 논란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을 보노라면 가히 ‘갈등 공화국’이라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2009년 말 삼성경제연구소는 반대 집단에 대한 관용의 미흡과 불안정한 정당정치 등으로 인한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를 0.71로 산출했다. 사회갈등지수는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개발한 것으로, 소득의 불균형이 낮고 민주주의 성숙도가 높을수록 사회 갈등이 적다는 점에 착안, ‘갈등의 경제모형’으로 풀어낸 것이다.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 0.71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상위 국가들이 이슬람권으로 분류되는 터키와 급속한 경제개혁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동유럽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OECD 평균은 0.44였고, 지수가 가장 낮은 덴마크는 0.24로 한국의 3분의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비용은 해마다 국내총생산의 27%에 이른다. 매년 300조원에 가까운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라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복잡하게 얽혀서 풀기 힘든 문제다. 하지만 유토피아나 무릉도원이 아닌 이상 갈등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갈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집단의 운명이 바뀐다. 슬기롭게 풀어내고 극복하면 사회 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하지만, 양보 없이 대결에 매몰된다면 파국을 맞게 된다. 사회적 갈등은 개인 간의 갈등과는 양상이 다르다. 개인 간의 갈등은 양자의 타협과 양보로 비교적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반면 사회적 갈등은 이해당사자가 많다. ‘정책’ ‘계층’ ‘지역’ ‘세대’ ‘이념’ 등 한국사회에서 중요시되는 모든 갈등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시작됐고, 파급력은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직접적으로 미친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계층 갈등은 혜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뉜 지역 갈등과 다르지 않다. 이는 복지의 문제로 전이되면서 이념 갈등으로도 비화한다.
갈등은 선진국 반열에 완전히 진입하지 못한 한국호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이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다. 특히 사회적 갈등을 적절하게 조절할 갈등 조정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높은 배경으로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꼽는다. 쉽게 말해 국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정부 정책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갈등 해소는 결국 정책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0월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의 한국경제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의 국제회의에서 “GDP 내 사회통합 투자 비중 확대가 한국의 성장 기반”이라고 지목했다. 한국의 사회통합 투자 비중은 유럽 강소국은 물론 동유럽 국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KDI는 외국 사례를 단순히 모방, 응용하는 수준을 벗어나 한국의 체질에 맞는 독자적인 경제사회 분야의 사회통합·동반성장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회통합 정책 과제로는 여성 경제활동 참여, 서비스업 생산성 제고, 사회적 서비스 확대 등 모든 분야의 혁신이 거론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중점 과제로 사회적 갈등관리 강화, 정책결정 효율화 등을 꼽고 있다.
문제는 소통이다. 아무리 효율적인 정책이라도 도입 과정에서 더 이익을 보거나 혜택을 받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갈릴 수밖에 없다.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이 같은 불만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소통은 일방적으로 주장한다고 해서, 또는 특별한 기구를 만들어 댄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소통’을 강조하며 출범했던 MB 정부의 수많은 정책들은 결국 더 많은 갈등만 남기고 말았다. 진정한 소통을 통한 사회 갈등 해소, 한국호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