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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 (59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2)

    儒林 (59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2)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2) 율곡의 답안지를 읽어 내리던 정사룡은 이 부분에 이르러 다시 ‘옳거니’하며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다. 답안지의 내용은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자께서 심한 우레 소리(迅雷)에도 얼굴빛을 변하셨다.’라는 말은 논어의 ‘향당(鄕黨)편’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승께서는)천둥이 치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반드시 정색을 하셨다.(迅雷風烈必變)” 공자의 이러한 태도는 하늘에 대한 공자의 공경에서 나온 몸가짐이었다. 하늘은 말이 없지만 ‘사철을 운행하게 하고 만물을 생성케 한다.’고 믿었던 공자로서는 자연계의 이변에 대해 본능적으로 긴장과 엄숙한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중용에서 ‘정성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말하였던 공자였으므로 도덕 그 자체는 하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도덕을 실천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공자의 ‘천도(天道)’사상을 나타내고 있음인 것이다. 공자는 언제나 하늘에 기도드리는 자세로 살아 온 사람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공자가 마침내 심한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자로가 하늘에 기도를 드리기를 요청하였을 때 공자가 자로에게 ‘그런 선례(先例)가 있느냐.’하고 물었던 데서도 드러난다. 이에 자로가 ‘뇌문(文)에 그에 관해서 위의 천신(天神)과 아래의 지기(地祇)에게 기도드려 빌었던 선례가 있다.’고 대답하자 공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나는 그렇게 빌어 온 지 이미 오래이다.(丘之禱久矣)” 이러한 공자의 태도를 인용하여 율곡은 인류가 낳은 성인 공자를 ‘심한 우레 소리에도 반드시 얼굴빛을 변하여 정색을 하였다.’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르지 못한 사람을 하늘이 친 예를 들어 무을(武乙)과 이백(夷伯)의 고사를 인용하였던 것이다. 무을은 상나라의 25대 임금으로 매우 무도하여 하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폭군이었다. 그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그곳을 천신이라고 부르게 하고 우상을 섬겼다. 그 허수아비를 대신하여 자기와 장기를 두게 하고는 허수아비가 지면 온갖 모욕을 다 하였으며, 또 가죽주머니에 피를 담아 공중에 매달아 놓고 활로 그 주머니를 쏘아 맞히고는 하늘을 꿰뚫었다고 자랑하곤 하였다.‘사기’에 보면 무을은 뒤에 하(河)와 위(渭)나라 사이에서 사냥을 하다가 벼락을 맞고 죽었는데, 이는 하늘의 도를 거스른 죄 때문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백은 노나라의 대부로서 희공(僖公) 15년, 이백의 사당에 벼락이 쳐서 불이 나 다 타버렸는데, 이는 예에 벗어나는 행위에 대한 하늘의 재앙이 내렸기 때문에 사당에 불이 났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공자의 원견지명(遠見之明)에서 비롯된 고사였던 것이다.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이다.” 정사룡은 감탄하며 말하였다. 마음대로 길게도 짧게도 할 수 있고, 그것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신통력을 발휘하듯 거자는 적재적소에 적합한 고사를 이처럼 절묘하게 인용하고 있음인 것이다.
  • 儒林(59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1)

    儒林(59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1) 정사룡은 다시 답안지의 내용을 정독하여 읽어 내려갔다. “…안개란 것은 음기가 새어나가지 못해 김이 서려서 된 것입니다. 만물의 음기가 모인 것도 또한 능히 안개를 만들어 냅니다. 다 산천의 해로운 기운인데, 그것이 붉으면 병혁(兵革:무기)이 되고, 그것이 푸르면 재앙이 되는 것은 모두 음기가 성해질 징조입니다. 역적 왕망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자 누른 안개가 사방을 둘러쌌고, 천보의 난(당 현종 때 일어난 안록산의 난) 때에는 큰 안개로 낮이 어두웠으며, 한고조가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와 문산(文山)이 시시(柴市)에서 죽을 때에는 모두 캄캄한 흙비가 내렸습니다.” 답안지에 나오는 왕망(王莽)의 황무(黃霧)는 서한의 역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왕망이 제위를 넘보고 참람한 행동을 하자 누런 안개가 사방에 끼었다고 한서(漢書)가 기록한데서 비롯된 말이며,‘신당서(新唐書)’를 보면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무렵 ‘한겨울 석 달 동안 항상 짙은 안개가 끼어 10보 밖의 사람이 안 보이고 대낮이 한밤중처럼 캄캄하였다.’는 기록에 의거한 내용이었다. 또한 사기에는 한고조가 스스로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를 치러 갔다가 평성의 백등에서 도리어 묵돌에게 7일 동안 포위당하였는데, 그때 7중의 달무리가 삼성(參星)과 필성(畢星)을 에워쌌다는 기록이 나와 있으며, 문산은 송나라 최후의 충신이었던 문천상(文天祥)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나라의 군사와 끝까지 싸우다 패전하여 포로가 되었으나 세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굴복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기의 충절을 드러내었던 의인. 문산이 마침내 북경의 시시에서 교수형을 당하던 날 바람이 크게 불어 모래를 날리고 대낮이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말이었다. 율곡의 답안지는 다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혹 신하로서 임금을 배반하거나,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거나 하면 이 같은 일로 다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갈 수 없으면 분격하여 우레와 번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레와 번개는 반드시 봄과 여름에 일어나는데 그것은 천지의 성난 기운입니다. 빛이 번쩍번쩍하는 것은 양기가 나와 번개가 되는 것이며, 소리가 우렁우렁하는 것은 두 기운이 부딪쳐 우레가 되는 것입니다. 옛 선비들이 말하기를 ‘우레와 번개는 음양의 바른 기운이다. 혹은 숨은 벌레를 놀라게 하고, 혹은 바르지 못한 것을 친다.’고 했는데, 사람도 원래 바르지 못한 기운이 모인 사람이 있고, 만물도 바르지 못한 기운이 붙은 것이 있으므로, 바른 기운이 바르지 못한 기운을 치는 것은 또한 그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공자가 심한 우레 소리에 반드시 얼굴빛을 변한 것도 참으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마땅히 벼락을 칠 것을 친 것으로는, 상(商)나라의 무을(武乙)과 노(魯)나라의 이백(夷伯)의 사당과 같은 것이니, 어찌 이런 이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까.”
  • 儒林(59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0)

    儒林(59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0)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0) 율곡의 답안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면서 뭉게뭉게 보기 좋게 일어나 곱게 피어올랐다가 깨끗이 흩어진다면 홀로 지극히 환한 기운을 얻어 성왕(聖王)의 상서가 되는 것이니, 그것이 곧 상서로운 구름(慶雲)인 것입니다. 참으로 백성의 재물을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고 노여움을 푸는 덕이 없으면 이것에 이르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찌 물과 흙의 가벼운 밝은 기운이 한갓 백의창구(白衣蒼狗)가 되는 것에 견주겠습니까.” “백의창구라.” 숨을 죽이고 답안지를 읽어 내리던 정사룡은 이 부분에 이르러서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번 자신의 무릎을 내려쳤다. ‘백의창구’는 ‘백운창구(白雲蒼狗)’라고도 불리는 고사성어로, 직역하면 ‘흰 구름이 한순간에 푸른 개로 변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이 급변하는 것을 비유하는 문장으로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712~770)가 친구인 시인 왕계우(王季友)를 위해 쓴 시 ‘가탄(可嘆)’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인 것이다. 두보의 벗 왕계우는 가난하였지만 학문을 열심히 하고 타고난 성품과 행실이 매우 바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어려운 살림살이를 참지 못하고 이혼하고 떠나버리자 집안 사정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왕계우를 매우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왕계우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두보는 품성이 단정한 왕계우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분하게 여기어 탄식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흰옷 같은데(天上浮雲似白衣) 잠시 푸른 개 모양으로 바뀌었네(斯須改幻爲蒼狗) 세상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데(古往今來共一時) 인생만사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人生萬事無不有)” 두보의 시에 나오는 ‘백운창구’란 고사성어를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답안지의 내용을 본 순간 정사룡은 다시 모골이 송연하여 중얼거렸다. “천재다. 이는 하늘이 주신 재능이다.” “어떻습니까, 대감어른.” 정사룡이 연방 신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리자 옆자리에서 다른 답안지를 관별하고 있는 양응정이 넌지시 물었다. “군계일학이 아니겠나이까.” “일학(一鶴)이 아니라 국사(國士)일세.” 국사는 원래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나라 안에 둘도 없는 선비’를 가리키고 있는 내용이었다. 일찍이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던 한신을 가리키던 대명사로 정사룡은 감히 그 성어를 빌려 답안지를 작성한 율곡을 ‘마땅히 온 나라가 섬겨야 할 높은 선비’로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 儒林(593)-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9)

    儒林(593)-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9)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9) 정사룡은 잠시 고개를 들고 읽던 것을 멈췄다. 답안지에 나오는 ‘탱자나무 굽은 가지에 새가 집을 짓고 빈 구멍에서 바람이 온다.’란 구절은 중국의 고대문학가인 송옥(宋玉)의 ‘풍적(風賊)’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굴원(屈原)의 제자였다고도 알려진 송옥은 특히 미인의 자태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 전통적인 중국시에 나타나는 통속적인 풍류재자(風流才子), 즉 비추문학(悲秋文學)의 개조로 알려져 있는데, 거자는 고금의 시들을 이처럼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일까. 순간 정사룡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시험지의 맨 끝 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답안지를 접수한 수권관이 받는 순간 종이를 붙여 이름을 가렸고, 등록관 역시 받는 순간 도장을 찍어 그 가운데를 잘라 따로 보관하였으므로 도저히 누구의 답안지인가를 가늠할 수 없음이었다. 신원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과거시험을 본 사람은 틀림없이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있는 젊은 유생. 그러나 그 젊은 유생은 이미 정사룡의 식견을 뛰어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정사룡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다시 답안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정자(程子)의 말에 ‘올해의 우레는 일어나는 곳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저는 또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기운에 부딪혀 일어났다가 기운이 멈추면 그치는 것으로 처음부터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다스려진 세상에는 음양의 기운이 커져 맺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지는 것이 반드시 화하여 불어도 나뭇가지를 울리지 않고 세상의 도의(道義)가 이미 쇠하면 음양의 기운이 엉기어 퍼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지는 것이 반드시 격하여 나무를 꺾고 집을 쓰러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순한 바람은 화하여 흩어지는 것이요, 회오리 바람은 격하여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왕(成王:주나라 무왕의 아들)의 한번 잘못된 생각으로 큰바람이 벼를 쓰러뜨리고 주공(周公)시대 때에는 여러 해의 덕화로 바다의 파도가 일지 않았으니, 그 기운이 그렇게 된 것은 또한 사람이 한 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산천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 구름이 된 것이니, 좋고 나쁜 징조를 이로 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옛 임금은 영대(靈臺:문왕이 세운 일종의 천문대로 천문과 기상을 살피던 곳)를 만들어 운물(雲物:구름의 빛깔)을 살펴보고 그로써 길흉의 징조를 살폈습니다. 대개 좋고 나쁜 일은 갑자기 그날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올 징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희면 반드시 떠나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치는 벌레가 있습니다. 검은 구름이 어찌 수재(水災)의 징조가 아니며, 붉은 구름이 일어난다면 어찌 전쟁의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누른 구름은 풍년이 들 징조이니, 이것은 곧 기운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 儒林(59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8)

    儒林(59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8)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8) “천재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정사룡은 율곡의 답안지를 읽으며 연방 감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반(班)과 장(張)의 유(流)다.” 정사룡이 감탄하였던 반은 ‘반고(班固)’를 가리키고, 장은 ‘장형(張衡)’을 가리키는데, 두 사람은 모두 후한(後漢) 때 도읍을 노래한 도부(都賦)를 지음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설적인 문장가로 알려져 있던 사람이었다. 정사룡은 이미 기러기의 발자국처럼 점점이 찍혀 있는 답안지 위에 자신도 모르게 비점을 찍으면서 정독해 내려갔다. “…만물의 정기가 올라가 뭇별이 되었다고 말하는 따위에 저는 적이 의심을 가집니다. 별들이 하늘에 있는 것은 오행의 정기로서 자연의 기운입니다. 나는 어떤 물건의 정기가 어떤 별이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여덟 필의 명마가 방성(房星)의 정기가 되고, 부열(傅說)이 열성(列星)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종류의 말은 이른바 ‘산과 강과 땅이 그림자를 하늘에 보낸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것은 선비들이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옳거니.” 정사룡은 다시 무릎을 내리치며 탄식하였다. 답안은 비록 짧은 문장이었으나 거자의 높은 식견을 알아볼 수 있는 명문장이었다. 답안지에 나오는 방성(房星)은 ‘천자의 수레를 끄는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찍이 주나라의 목왕(穆王)이 쓰던 팔준마가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고, 은나라의 어진 재상 부열이 하늘에 올라가 열성이 되었다는 장자(莊子)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설이나 신화는 일찍이 왕안석(王安石)이 노래하였던 ‘달 속에 무엇이 있는 듯한데, 이는 산하(山河)의 그림자’란 시의 내용처럼 선비로서는 믿을 수 없는 한갓 소문에 불과하다는 거자의 냉정함이 정사룡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정사룡은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별의 기운됨은 속이 텅 비어 엉긴 것으로, 그것이 혹 음기가 맺히지 못해 혹은 떨어져 돌이 되기도 하고, 떨어져 언덕이 된다는 것을 나는 소자(邵子:송나라의 유학자. 소강절을 말함)의 말에서 보았었으나, 만물의 정기가 별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하늘과 땅 사이에 차 있는 것은 기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음기가 엉기어 모여 있어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오지 못하면 돌고 돌아서 바람이 됩니다. 만물의 기운이 비록 ‘간(艮:東北方)에서 나와 곤(坤:西南方)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나, 그 음기가 모이는 것이 일정한 곳이 없는 만큼 양기가 흩어지는 것도 또한 방향이 없습니다. 큰 덩어리(大塊:땅덩이, 또는 하늘과 땅 사이의 자연)가 내뿜는 기운이 어떻게 한 방향에만 얽매여 있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르는 바람’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동쪽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을 ‘만물을 죽이는 바람’이라 하는데, 그것이 서쪽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탱자나무 굽은 가지에 새가 집을 짓고, 빈 구멍에서 바람이 분다.’라고 했으니, 그것이 빈 구멍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儒林(59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7)

    儒林(59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7)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7) 정사룡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내리치며 감탄사를 발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 때문이었다. 정사룡은 숨을 죽이고 답안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드디어 답안지는 본론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치의 떳떳함(常道)과 이치의 변함(怪變)을 한결같이 하늘의 도에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어리석은 저는 이 점에 대해서 답하고자 합니다. 홍몽(鴻:혼돈)이 처음으로 갈라져 해와 달이 번갈아 밝으니, 해는 태양의 정기가 되고 달은 태음(太陰)의 정기가 되었습니다. 양의 정기는 빨리 움직이는지라 하루로서 하늘을 돌고 음의정기는 더디 움직이는지라 하룻밤에 다 돌지 못합니다. 양이 빠르고 음이 더딘 것은 기운이요, 음이 더디게 되는 것과 양이 빠르게 되는 것은 이치입니다. 저는 그것을 누가 그렇게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而然爾)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해는 임금의 상징이요, 달은 신하의 상징입니다. 그 가던 길을 같이하고 그 모이는 도(度)를 같이하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日蝕)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月蝕)이 됩니다. 저 달이 희미한 것은 오히려 변이 되지 않지만 저 해가 희미한 것은 음이 성하고, 양이 약하며, 아래가 위를 업신여기고,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현상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두 해가 함께 나오고 두 달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그것은 비상한 변괴로 모두 어지러운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옛날 일을 살펴보니 재난과 이변은 임금이 덕을 닦은 다스려진 세상에는 나타나지 않고 일식과 같은 변괴는 모두 말세의 쇠한 정치에만 나타났으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함께하는 관계를 곧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저 하늘의 푸름은 기운이 쌓인 것으로 정말 색은 아닙니다. 참으로 별의 찬란한 이치를 말할 수 없으면 천기(天機)의 운행을 이미 밝혀낼 수 없을 것입니다. 저 밝게 반짝이며 각각 자리와 차례가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원기(元氣)의 운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뭇별은 하늘을 따라다니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날(經)이라 말하고 다섯 별은 때를 따라 각각 나타나며 하늘을 따라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씨(緯)라 말합니다. 하나는 떳떳한 차례가 있는데, 하나는 떳떳한 도수가 없습니다. 그 대강을 말하면 하늘은 날이 되고, 다섯 별은 씨가 되지만 그 자세한 것을 말하려 하면 한 자쯤 되는 종이에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별의 상서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거니와 별의 변괴도 또한 아무 때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서로운 별은 반드시 밝은 시대에 나타나고, 요괴스러운 혜성은 반드시 쇠한 세상에만 나타납니다. 우순(虞舜)의 시대가 문명(文明)해지자 좋은 별이 나타났고, 춘추의 시대가 혼란해지자 혜성이 나타났습니다. 우순 같은 다스림이 그 한 시대만이 아니고, 춘추시대 같은 어지러움이 그 한 시대뿐이 아니니 어떻게 일일이 밝혀 말할 수 있겠습니까.”
  • 儒林(590)-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6)

    儒林(590)-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6)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6)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정사룡은 자신도 모르게 붓을 들어 그 곁에 비점을 찍었다. 일찍이 시문과 음률에 뛰어나고 글씨도 잘 써서 호음잡고(湖陰雜稿)란 문집을 내고 ‘조천록(朝天錄)’이란 책을 지어 지나치게 탐학하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던 정사룡이었으므로 그는 본능적으로 율곡의 문장에 매료당하였던 것이다. 특히 정사룡이 감탄하였던 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음양의 두 기가 진실로 조화가 되면 저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 그 정도를 잃지 아니하고 땅에 내리는 것이 그 알맞은 때에 순응하고 바람, 구름, 우레, 번개가 모두 조화로운 기(和氣) 속에 있는 것이니, 이는 곧 이(理)의 떳떳한 것입니다. 음양이 조화하지 않으면 그 행하는 것이 절도를 잃고 그 발산하는 것이 때를 잃어서 바람, 구름, 우레, 번개가 모두 어그러진 기(乖氣)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이(理)의 변함입니다.” 그러나 정사룡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은 것은 그 다음 문장이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사람은 곧 천지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또한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또한 순하게 되는 것입니다.(然而人者天地之心也 人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 人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矣)” 그 문장을 본 순간 정사룡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내리치며 옳거니, 하고 중얼거렸다. 천도책의 과거시험을 출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정사룡. 그런데 정사룡이 바라던 주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답안지가 작성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동중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의 현상을 이(理)와 기(氣)의 개념을 빌려서 설명한 이기론은 한나라 무렵의 원시 유교사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전개시킨 송나라시대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북송의 주돈이(周敦 )가 주창한 그 유명한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부터 확립된 유가적 우주론이었다. 즉 만물의 존재는 태극에서 음양의 기운이 생성되고, 음양이 변하여 ‘불, 물, 나무, 쇠, 흙(火水木金土)’의 기운을 지니는 오행(五行)으로 발전한다. 오행은 모여서 하늘(乾)과 땅(坤)이 되고, 건곤은 각각 남성과 여성을 낳으며, 이 남성적인 것(陽)과 여성적인 것(陰)이 곧 만물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돈이에 의해서 그 기틀이 마련된 송 대의 성리학은 마침내 이기론의 논리로 진화하게 되는데, 즉 우주만물은 곧 기가 모여서 구성된 것이며, 이 기는 곧 이의 원리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이기론이 정립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론 위에 답안지는 마침내 ‘사람은 곧 천지의 마음’이란 핵심을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이란 최고 지도자인 ‘임금’을 말하는 것으로 ‘천지를 안정시키고 모든 자연현상이 순조롭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정치가 잘 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최고지도자인 임금의 덕이 잘 닦여야 한다.’는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음이었던 것이다.
  • 儒林(588)-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4)

    儒林(588)-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4)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4) 율곡이 답안지를 제출하자 수권관(收券官)은 받는 순간 종이를 붙여 이름을 가렸다. 그리고 수권관은 이를 다시 등록관에게 넘겨주었다. 등록관은 이름을 가린 답안지를 받자마자 시험지의 맨 끝에 자호(字號)를 쓰고 도장을 찍어 그 가운데를 잘라 따로 보관하였다. 자호란 천자문의 순서대로 매긴 순번으로, 수험생의 수험번호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름부분이 잘려진 시험지를 등록관이 다시 베껴서 이를 다시 시관에게 올렸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작업은 시관이 채점을 할 적에 누구의 답안지인지 모르게 함으로써 공평무사하게 시험을 치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 별시문과의 시관은 출제자였던 정사룡과 양응정. 특히 정사룡은 지난해 봄 신사헌에게 시험문제를 누설했다가 파직되었던 아픈 전과가 있었으므로 이번의 기회가 자신의 불명예를 씻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 성균관의 별전에서는 시관들이 밤을 새워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임금이 친림하여 치르는 알성시에서는 시험을 치른 당일에 합격자를 발표하는 즉일방방(卽日放榜)이 보통이었으나 그 이외의 시험에서는 삼일방방(三日放榜)이 대부분이었다. 삼일방방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10장씩 무작위로 작축(作軸)된 시험지를 일단 명관(命官) 앞에 갖다놓고 명관들이 이를 우선 예심(豫審)하였다. 명관들은 일종의 예선심사원으로 이들의 기준에 통과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낙고(落考) 되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일단 명관들의 심사를 통과한 시험지만 시관인 정사룡과 양응정에게 넘겨지는데, 정사룡은 양응정보다 거의 30살이나 많은 노대신이었으므로 우선은 양응정이 먼저 비점(批點)을 치고 관별해낸 시험지를 최종으로 정사룡이 낙점하는 역할로서 분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점이란 시관이 응시자가 지은 시나 문장을 평가할 때 특히 잘 지은 문구에 찍던 둥근 점을 의미하는 것인데, 따라서 명관과 시관을 통과하는 동안 비점이 많이 찍힌 답안지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답안지에 붉은 색으로 줄을 긋거나 점을 찍었는데,‘춘향전’에도 나오는 이몽룡의 과거시험답안지에 ‘붉은 점이 바닷가에 찍힌 기러기의 발자국처럼 많았다.’고 나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채점의 특성을 말한 것이었다. “대감어른” 거의 날이 샐 무렵의 어둑새벽에 양응정이 시험답안지를 들고 정사룡을 찾아와 말하였다. 정사룡은 밤이 깊었으므로 침상에 몸을 기대고 깜빡 잠이 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오.” 정사룡이 묻자 양응정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 시험지를 관별하여 주십시오, 대감어른. 신이 보기에는 군계일학이나이다.”
  • 儒林(58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3)

    儒林(58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3)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3) 한글로 옮기면 오히려 그 깊은 뜻이 반감되는 첫 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만 가지 변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일 따름입니다. 이 기(氣)가 움직이면 양(陽)이 되고, 고요하면 음(陰)이 됩니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은 곧 기이고,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理)인 것입니다.…” 일단 첫머리를 열기 시작한 율곡의 붓은 더 이상 막힘이 없었다. 그는 엉킨 실타래에서 그 첫 실마리를 찾아 낸 사람처럼 일필휘지(一筆揮之)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율곡의 답안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자도 덧붙이거나 한자도 뺀 것이 없는 완벽한 문장이었다. 율곡이 쓴 본론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그 이(理)는 지극히 미묘하며 그 현상은 지극히 드러난다 하는데, 이 말을 아는 사람과는 함께 ‘하늘의 도’를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질문을 하신 집사선생께서 지극히 미묘하고 지극히 현묘한 도리로써 조목별로 깊이 연구한 논설을 듣고자 하시니,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연구한 자가 아니고서는 어찌 더불어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율곡의 문장은 마치 하늘이 내린 옥음(玉音)을 받아 적는 듯하였다. 하나의 망설임도 없었고, 추호의 걸림도 없었다. 그리하여 율곡의 천도책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원컨대 집사께서 천한 사람의 어리석은 말씀을 임금께 올려주신다면 가난한 선비는 움막 속에서도 남은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대답합니다.” 모든 문장을 마친 율곡은 먹이 마르기를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율곡이 납권한 시험지가 세 번째 답안지였다고 전해지고 있을 만큼 속결(速決)이었다. 율곡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시험지 오른쪽에 적힌 자신의 이름과 본관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보았다. 답안지에는 시험보는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등의 품계도 차례대로 적는 것이 명문화되어 있었는데, 이는 시험을 본 사람의 이름을 가리고 채점을 한다고 해도 훗날 급제하였을 때 그가 어떤 집안출신인가, 혹은 역모나 사화에 연루되었던 대역죄인의 후예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한 예비책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김병연(金炳淵)은 향시에서 장원급제하였으나 과거시험에서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투항하였던 대역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스스로 삭과하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삿갓을 쓰고 일생동안 방황함으로써 ‘김삿갓’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방랑시인이었다. 자진 삭과하지 않았더라도 김병연은 삭과되었을 것이니, 이러한 사실은 엄격한 계급사회를 반영하는 산증거라고 말할 수 있음인 것이다. 율곡은 답안지를 작성하여 이를 시관(試官) 앞에 제출하였다. 이로써 율곡은 우여곡절 끝에 과거시험을 무사히 끝낸 것이었다.
  • 儒林(58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2)

    儒林(58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2)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22) 물론 연산군 이후부터 조선 전국에서 농민봉기들이 창궐하기 시작하였던 것은 무능한 관료들과 부패한 양반사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염증 때문이었으나 특히 임꺽정의 난은 몰락한 농민과 백정, 천민들이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 전국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임꺽정이 본격적으로 민란을 일으킨 것은 이듬해인 명종13년(1559년)이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개성의 포도관 이억근(李億根)을 잡아 죽임으로써 한때는 개성까지 점령하였으나 이 무렵 벌써 임꺽정이 일으킨 민란의 불길은 요원(燎原)의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감을 이미 두 차례나 명나라의 사신으로 다녀온 정사룡은 하늘이 자연재해를 통하여 군주를 비롯한 인간에게 내리는 경고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잘 자라나게 될 것인가.’라는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현제판에 걸린 시험문제를 모두 베낀 율곡은 천천히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뜻밖의 시험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는 다른 유생들과는 달리 율곡은 이미 시험문제를 본 순간 집사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스승 퇴계를 통해 주자의 성리학에 정진하고 있었던 율곡이었으므로 율곡은 써야 할 답안의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문장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지만 율곡은 심호흡을 하고 써야 할 문장의 첫머리를 궁리해 보았다. 그 무렵 종이는 매우 귀한 것이었으므로 과거시험을 볼 때에는 거자들이 스스로 준비하여 시관으로부터 ‘과거답안지로 인정한다.’는 표시를 받은 종이만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표시가 없는 종이에 답안을 작성하면 실격 당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므로 거자들은 문장이 틀리거나 첨삭할 때에도 다른 종이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장이 틀리면 붓으로 이를 지우고 다시 고쳐 쓸 수는 있었으나 자연 시험지가 지저분해짐으로써 채점관에게 나쁜 인상을 주어 감점당할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다. 차츰 처음의 떠들썩한 소요도 가라앉고 거장 안은 답안을 쓰는 유생들의 정적으로 숙연해졌다. 아침이 지나자 해가 떠서 날씨가 다소 풀려 따뜻해졌다. 율곡이 앉았던 자리의 은행나무 위에서 사금파리 같은 노란은행잎이 떨어져 내렸다.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율곡은 결심한 듯 눈을 떴다. 그러고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 종이 위에 답안을 쓰기 시작하였다. “竊謂萬化之本 一陰陽而已 是氣 動則爲陽 靜則爲陰 一動一靜者 氣也 動之靜之者 理也” 이율곡 일생일대의 최고의 명문장, 천도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훗날 명나라로 건너가 중국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아 ‘해동의 주자’라고 일컬을 만큼 율곡의 천재성을 드러낸 천도책의 첫 문장이 마침내 시작되었던 것이다.
  • [쪽지통신]

    ●2006 서울국제유아교육전이 오는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COEX 1층 인도양 홀에서 열린다. 자녀교육에 관심있는 학부모와 유아교육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다. 국내외 200여개 유아교육관련 기업들이 아동도서, 유아교육 교재교구, 교육완구, 유아학습기자재, 교육용품, 아이들 자녀방, 놀이시설, 교육멀티미디어, 인터넷 교육컨텐츠 등 다양한 교육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게 된다. 15일에는 유아교육에 관련된 주제의 세미나가 열리며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마술쇼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입장료는 3000원. 취학 전 아동은 무료다. 문의는 ㈜세계전람.02-3453-8887.●교육방송(EBS)는 오는 5월 어린이 달에 전시할 어린이들의 그림 작품을 오는 20일까지 공모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제2회 어린이주간 특별전시 ‘상상속으로 - 내가 만일 ㅇㅇ 라면…’이라는 행사다. 작품을 접수할 수 있는 대상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으로 오는 20일까지 8절지(420mm×297mm) 규격의 도화지에 ‘내가 만일 ㅇㅇ 라면…’을 주제로 하여 마음껏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문의는 홈페이지(www.ebs.co.kr)이나 (02)526-2642로 하면 된다.●㈜유웨이중앙교육은 집에서도 논술고사를 볼 수 있는 ‘우편논술고사’를 출시하였다. 에듀토피아 (www.edutopia.co.kr)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논술고사를 신청하면, 논술고사 문제지 세트와 답안지, 논술 자료집 등이 배송된다. 답안을 기입한 후 우편으로 발송하면, 논술 전문가들의 1:1 첨삭서비스와 맞춤형 동영상 강의, 개인별 성적표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가격은 29,000원, 신청 마감은 4월24일까지.
  • 儒林(58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8)

    儒林(58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8)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8) 광혜군의 감성적인 책문은 다음과 같이 어지고 있다. “…왕안석(王安石:1021~1086 북송의 정치가로 정치개혁에 따른 신법을 제창하였던 뛰어난 개혁가)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탄식했다. 소식(蘇軾:1036~1101)은 도소주(屠蘇酒)를 나이순에 따라 젊은이들보다 나중에 마시게 된 서러움을 노래하였다. 이것들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것에 대한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 질문에 이명한(李明漢)은 그 유명한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습니다.’라는 답변으로 급제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과거시험은 현란한 미사여구를 대구형식으로 구사하면서 자신의 시적 능력을 표현하는 문학의 한 장르인 부(賦)나 마치 제갈량이 위나라를 정벌할 때 올린 출사표(出師表)처럼 임금에게 자신의 생각을 건의할 때 쓰인 글인 표(表)가 대부분 출제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표는 시사적인 일을 논하거나 간언할 때 남을 추천할 때, 특별한 공을 세웠을 때, 탄핵할 때도 쓰였으며, 그 이외에는 주로 책(策)이었던 것이다. 원래 책문은 한나라의 무제 때 지방수령의 추천으로 뽑힌 인재를 등용하려고 대책을 물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무제는 지방수령들에게 조서를 내려 품행이 반듯하고 덕행이 있으며 어질고 문장과 경전에 밝고 재능이 뛰어난 선비를 추천하라고 명령했다. 이들 가운데 동중서(董仲舒:기원전170~120)가 있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춘추’의 의리(義理)를 주제로 대책을 올린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현량대책(賢良對策)’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책문은 임금이 직접 출제했든 임금을 대리한 관리가 집사가 되어 출제를 했든 출제의 주체자는 임금인 것이다. 따라서 대책의 최종 독자도 원칙적으로는 임금인 것이다. 그러나 율곡이 본 별시문과의 과거시험은 지금까지는 한번도 볼 수 없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매우 이례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거자들은 대부분 예상 시험문제들을 서너개 설정하고 그에 따른 모범답안지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과는 다른 난해한 철학문제가 출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험장 안이 당황한 유생들에 의해서 술렁거리고 심지어 몇몇 유생들은 붓조차 들지 못하고 일어서서 거장을 나가버려 퇴장하는 결과까지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율곡으로서는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왜냐하면 지난 봄 스승 퇴계를 만나고 강릉 외갓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줄곧 스승이 내려준 화두 거경궁리(居敬窮理), 즉 정신을 통일하여 추호의 흐트러짐 없이 경 속에 살며, 그리고 이(理)를 궁극하여 성리학에 전념함으로써 실제로 줄곧 ‘하늘의 길(天道)’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율곡은 한순간에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 儒林(57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3)

    儒林(57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3)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3) 순간 과장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다. 그러나 그런 정적은 일순간 사라지고 한꺼번에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현제판 안으로 몰려들어 종이 위에 문제를 베끼기 시작하였다. 시험문제를 출제한 시관의 이름은 정사룡(鄭士龍)과 양응정(梁應鼎). 이들은 과거시험의 출제관으로 선택되자 몇날 며칠을 출제하는데 전념하느라 끙끙 앓았으며, 또한 시험문제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격리되기도 했던 것이다. 출제관이었던 정사룡(1491∼1570)은 별시문과의 합격자로서 일찍이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부제학을 지냈으며,1554년 대제학을 지냈던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다. 또한 양응정 역시 식년 문과의 합격자로서 공조좌랑에 이르렀다가 한때 윤형원에 의해서 파직되었으나 다시 복권되어 대사성에까지 이른 대학자였다. 또한 이들은 시험을 치르는 유생들의 직계 선배이기도 했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그해 봄에도 정사룡은 과거시험의 출제자였는데, 그는 신사헌(愼思獻)에게 뇌물을 받고 시험문제를 미리 가르쳐줌으로써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것이다. 신사헌은 당대의 권신이었던 신수근(愼守勤)의 손자였는데, 은밀히 시관이었던 정사룡에게 뇌물을 주고 시제를 미리 알고 차술(借述)케 함으로써 그해 별시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던 것이었다. 훗날 부정행위가 드러나자 대간의 공박과 공론의 압박으로 정사룡은 파직되고 부정행위로 합격한 신사헌은 삭과(削科)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사룡은 곧 복직이 되어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그해 겨울에 열린 별시문과에서도 다시 출제자로 위촉되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신사헌도 당대 최고의 권신이었던 이량(李樑)의 배려로 곧 복과되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처럼 독버섯처럼 횡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의 출제관이었던 정사룡과 양응정은 출제자인 동시에 채점자였으므로 명륜당 계단 위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을 관장하고 있었다. 맨 후미에 앉았던 율곡은 좀체로 현제판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좋은 자리를 선접하고 있던 거자들은 이미 종이 위에 답안지를 작성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진 거자들은 우왕좌왕하였으나 율곡은 제자리에 앉아서 벼루에 먹을 갈고 있을 뿐이었다. 한겨울이었으므로 은행잎들도 모두 떨어져 헐벗은 나목이었으나 몇 점 남은 낙엽이 바람에 실려 침착하게 먹을 갈고 있는 율곡의 벼루 위에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모든 유생들이 문제를 베껴온 후에야 율곡은 일어서서 천천히 현제판 앞으로 다가갔다. 시험문제는 ‘책(策)’이었다. ‘책’이란 과거시험의 한 종류로서 사안을 질문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서술토록 하는 형식 중의 하나였다. 일반 세시에 대해서 기술하는 평소의 시험문제와는 달리 꽤 까다로운 질문 중의 하나였던 것이었다. 특히 이번의 ‘책’은 천문이나 바람의 순행과 이변 등에 대한 책론으로 ‘하늘의 길’, 즉 ‘천도(天道)’에 관한 질문이었으므로 난해하기 짝이 없는 철학시험이었던 것이다.
  • 8일 시험 9급공채 이것만은 주의를

    8일 시험 9급공채 이것만은 주의를

    오는 8일 9급 공무원 공채 1차시험이 치러진다. 이번 시험에는 18만여명의 응시생이 접수, 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시험의 특징은 무엇보다 수험생 편의위주로 시험 관리체제가 개편됐다는 점이다. 답안지에 인적사항이 사전 인쇄되는 것은 물론, 중증 장애인 수험생을 위한 배려도 강화됐다. 반면 부정행위 감독은 훨씬 엄격해져 사소한 실수로 시험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요망된다. 오는 8일 9급 공무원 공채 1차시험이 치러진다. 이번 시험에는 18만여명의 응시생이 접수, 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시험의 특징은 무엇보다 수험생 편의위주로 시험 관리체제가 개편됐다는 점이다. 답안지에 인적사항이 사전 인쇄되는 것은 물론, 중증 장애인 수험생을 위한 배려도 강화됐다. 반면 부정행위 감독은 훨씬 엄격해져 사소한 실수로 시험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요망된다. ●장애수험생 ‘맞춤서비스’ 제공 올해 9급 공무원 공채는 19개 직렬 2900명을 선발한다. 응시생은 모두 18만 7562명. 지난 2001년 9만 306명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경쟁률도 64.7대1에 이른다. 622명을 선발하는 일반행정직은 7만 521명이 응시,113.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직렬은 14명을 뽑는 교육행정직으로 5601명이 지원해 400대1에 이른다. 이번 시험은 서울·부산·광주 등 16개 시도 총 186개 시험장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시험 진행요원도 중앙인사위와 행정자치부를 비롯,34개 부처와 지자체 공무원 등 1만 6000여명이 동원돼 사상 최대 인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양적인 면에서 최대규모를 기록했지만 시험환경 등 질적인 향상도 이뤄지게 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중증장애인에 대한 배려다. 원서를 접수할 때 장애유형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 내용을 신청,‘맞춤형’ 혜택을 제공한다. 일례로 손 떨림이 심한 중증 장애인은 확대답안지를 제공받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휠체어를 탄 채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이런 편의 제공으로 장애인 9급 응시자는 지난해 2557명에 이어 올해 3 534명으로 크게 늘었다. 모든 답안지에는 수험생의 성명과 응시번호 등 인적사항이 사전에 인쇄돼 배부된다. 이에 따라 응시생들이 인적 사항을 잘못 적어서 답안지를 교체하는 불편이 없어질 전망이다. ●부정행위 기준 한층 엄격해져 부정행위에 대한 기준도 한층 엄격해진다. 최근 토익시험에서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한 혐의로 20여명이 경찰에 적발되는 등 경각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우선 시험시간 엄수와 함께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휴대전화를 반납해야 한다. 예년의 경우 시험종료 후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너그러운 편이었지만 이번 시험에서는 엄격히 규제된다. 시험이 진행되는 도중에 화장실 출입 등 이탈이 금지된다. 한편 이번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는 7월21일, 면접시험은 9월8∼18일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거나 부정행위 등에 대해서는 엄격히 관리하겠다.”면서 “사전에 공고한 시험장소와 응시자 유의사항 등을 꼼꼼히 읽어볼 것”을 당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儒林(57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2)

    儒林(57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2)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2) 임금이 친림하였으므로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형편상 고시시간도 짧아서 촉각시(燭刻試)란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촉각시란 고시시간이 짧아 마치 ‘초 한 자루가 다 탈 때까지 답안지를 작성해서 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별명인데, 그런 탓으로 시험문제도 간단하게 채점할 수 있는 주로 세시(歲時)에 관한 상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알성시에서는 실력보다는 운이 작용한다 하여 응시생들이 점점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영조15년에 거행한 알성시에 응시한 거자가 2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양의 성안 인구가 20만에서 30만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해 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서 성균관으로 모여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생들이 선접꾼을 고용하여 현제판에서 가까운 좋은 자리를 확보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또한 남보다 빨리 답안지를 제출함으로써 채점관의 눈도장을 찍어야 할 긴박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즉일방방(卽日放榜). 문자 그대로 ‘시험 당일날에 결과를 공포한다.’는 즉일방방은 하루 만에 모든 시험지를 검토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판이니 속전속결. 따라서 채점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대충 답안지의 앞머리만 훑어보고 채점하는 기현상이 발생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조 실록’에 의하면 일찍 제출한 답안지 중에 합격자가 나오는 확률이 높아서 정조21년 가을 감시(監試)의 이소(二所)에서 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는 먼저 낸 3백장 안에서 거의 대부분 나왔던 것이다. 이는 채점을 하는 시관이 일찍 낸 답안지 약간만 보고 채점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답안지는 채점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산증거인 것이다. 이렇게 일찍 제출한 답안지에서 합격자가 나오자 거자들은 답안지의 서두만 대충 써서 일찍 제출하는 임기응변이 속출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답안지를 빨리 내는 소위 ‘조정의 폐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해 겨울 율곡이 본 별시문과는 알성시와는 달랐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유생들은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명륜당(明倫堂)은 공자를 비롯한 옛 성인들의 정신을 본받아 새로운 역사창조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곳이며, 백성들의 도의정신을 함양하고, 사회정의정신을 뿌리내리려는 유생들의 강학장소였는데, 이번에는 유생들만 따로 응시하게 하는 특별전형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성균관의 유생들과 3품 이하의 조사(朝士)에게만 응시자격을 주었으나 이번에는 지방의 유생들에게도 응시자격을 주었으므로 먼 변방의 강릉에 살고 있던 율곡도 별시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어악(御樂)이 일어났다. 과거시험이 시작된 것이었다. 과거시험 문제를 낸 시관이 문제판을 들고 현제판에 임한 후 홍마삭(紅麻索) 끈을 매어 일시에 올림으로써 만장(滿場)에 시험 문제를 공표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 儒林(57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1)

    儒林(57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1) 그러나 자리만을 놓고 보면 율곡은 가장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응시한 셈이었다. 왜냐하면 율곡의 자리는 과장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으로 현제판까지 다가가 다른 유생들이 다 보고난 뒤에야 시험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한 답안지를 다 작성한 후에도 가장 늦게 시험지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답안지를 빨리 내는 것은 조정(早呈)이라 하였는데, 조선후기의 과거관련 사료를 보면 이 조정의 폐단을 수없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왜 거자들은 답안지를 한결같이 빨리 내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모든 과거시험이 주관식이었고, 주관식 답안지는 다 읽어보기 전에는 평가할 수 없으며, 또 채점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기 잡가인 ‘한양가(漢陽歌)’에는 남보다 빨리 시험지를 제출하고 제출한 답안지를 한데 묶어 채점하는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한 장 들고 두 장 들어 차차로 들어간다 백 장이 넘어서는 일시에 들어오니 신기전(神機箭) 모양이요, 백설(白雪)이 분분하다 수권수(收卷數) 몇 장인고 언덕 같이 뫼 같구나 사알 사약 무감 별감 정원사령 위장군이 열 장씩 작축(作軸)하여 전자관(塡字官) 전자(塡字)하고 주문(主文) 명관(命官) 시관(試官) 앞에 수없이 갖다 놓네 차례로 꼰을 적에 비점(批點) 치고 관별(貫別)한다 그 외의 낙고지(落考紙)는 짐짐이 져서 낸다.” ‘한양가’에 나오듯 ‘언덕 같고 뫼 같은’ 엄청난 양의 시험답안지를 꼼꼼히 읽어보고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조금이라도 채점관의 눈에 들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리 납권(納卷)하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시험장을 ‘시위’라 하고, 시험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을 ‘납권’이라 하였는데, 과거시험장 안에서 ‘시위납권’할 때의 유생들은 평소의 안정된 걸음걸이는 찾아볼 수 없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빨리 내기 위해서 경솔하고 천박하게 미친 말 같이 날뛰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유생들이 선접꾼을 고용해서 현제판에서 가까운 자리를 선점하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특히 알성시(謁聖試)의 경우에는 한층 더 심하였다. ‘알성시’는 임금이 성균관의 명륜당 앞뜰에서 직접 보는 부정기적인 과거시험으로 창덕궁의 춘당대(春塘臺)에서 보는 전시(殿試)와 더불어 임금이 직접 친림(親臨)하는 특별 시험이었다. 원래 ‘알성시’란 임금이 성균관을 찾아 문묘에 술잔을 올리고 공자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배알(拜謁)을 하는 ‘알성’의식을 치를 때 그 기회를 이용해서 왕이 직접 참가하는 과거시험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나라의 큰 경사가 겹쳤을 때 시행하는 증광시(增廣試). 심지어는 왕이 온천목욕을 갔을 때 그곳 현지에서 치르거나 정조의 경우 화성 행궁에서 치른 외방별시(外方別試) 등 인재등용이란 과거 본래의 목적보다는 외방유생들에게도 국경(國慶)의 기쁨을 나누어 주고 변방에 있는 유생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 거행됐던 별시였던 것이다.
  • [2007학년도 수능계획] 휴대전화 시험전 제출해야 답안지 늦게 내도 부정행위

    2007학년도 수능에서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고등교육법에 따라 당해 시험은 무효처리되고 1년 동안 수능에 응시할 수 없다. 때문에 미리 부정행위 유형과 주의사항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행위는 크게 10가지다. ▲감독관의 본인 확인 및 소지품 검색 요구에 따르지 않는 경우 ▲시험실 반입 금지물품을 반입했다가 1교시 시작 전에 제출하지 않을 경우 ▲시험시간에 금지물품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지 않더라도 감독관의 지시와는 달리 임의의 장소에 보관한 경우 ▲다른 수험생의 답안지를 보거나 보여주는 행위 ▲다른 수험생과 손 동작, 소리 등으로 서로 신호하는 행위 ▲부정한 휴대물을 보거나 무선기기 등을 이용하는 행위 ▲대리 시험 ▲시험 종료령이 내린 뒤 계속 답안지를 작성하는 행위 ▲4교시 탐구영역 시간에 선택과목 시간별로 해당 선택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의 문제지를 보거나 동시에 두 과목 이상의 문제지를 보는 경우 ▲다른 수험생에게 답을 보여주라고 강요하거나 폭력으로 위협하는 행위 등이다. 시험실에 갖고 들어갈 수 없는 반입 금지 물품은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MP3, 전자사전, 카메라펜, 전자계산기 등이다. 부득이하게 가져왔을 때는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감독관에게 내야 한다. 컴퓨터용 사인펜과 샤프펜, 수정테이프는 시험장에서 지급한다. 컴퓨터용 사인펜과 연필, 수정테이프, 지우개, 샤프심은 개인적으로 가져와도 되지만 개인용 샤프펜은 안된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儒林(57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8)

    儒林(57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8)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8) 아낙네는 신기하게 생각하고 노끈을 잡아당겼는데, 끈은 대나무통과 이어져 있었고 그 대나무통은 과거시험장인 성균관의 반수당(泮水堂)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리 반수당 담장의 밑을 파 지하도를 만들고 대나무통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터널을 파 놓은 것이었다. 시험장 안에서 통 속에 시험문제를 넣어 신호를 보내면 담 밖에 있던 자가 줄을 당겨 시험문제를 확보하여 답안지를 작성한 후 다시 노끈에 묶어 들여보낸 것이었다. 조사를 했으나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는데, 어쨌든 과거시험이 열렸던 반수당은 바로 율곡이 별시를 보던 바로 그 자리. 이런 첨단 기술의 부정방법은 그 당시에도 대리시험을 봐주는 전문가가 있었다는 산 증거이며, 실제로 거벽(巨擘)이라 불리는 전문적으로 과거답안지를 대신 지어주는 전문가가 있었으며, 또한 사수(寫手)라고 불리는, 글씨를 대신 써 주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균관에서 유생들만 모여서 치르는 별시문과는 다른 과거와는 달리 오직 응시자만 출입할 수 있었으므로 자연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며 당사자만 과장 안에 들이는 저승사자, 수협관의 감시가 그만큼 엄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협관은 한사람씩 몸을 더듬어 일일이 확인하였다. 거자들이 들고 갈 수 있는 허락된 문방구는 오직 시지라 불리는 종이와 붓, 그리고 벼루와 먹뿐이었다. 과거시험을 치를 때는 따로 문제를 인쇄한 답지를 나눠주지 않았으므로 거자들은 각자 별도의 종이를 마련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도 있는 명문가의 자제들은 은밀히 복중(腹中)에 적서(積書)를 몰래 감추고 들어가거나 노골적으로 행담(行擔) 속에 자신들이 보던 책들을 넣어 들어가곤 하였다. ‘행담’이란 싸리나 버들로 만든 작은 상자로 책가방과 같은 것인데, 이 가방 속에 자신이 읽던 책이나 예상답안지를 미리 넣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가장 고전적인 커닝 방법으로, 이를 ‘협서(挾書)’라고 하였다. 이수광(李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법이 해이해져서 과장에 드러내놓고 책을 갖고 들어가 과거장이 마치 책가게와도 같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특히 과장의 법이 극도로 문란해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였고, 율곡의 시대에는 비교적 공정하고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족벌과 파벌에 의한 부정행위가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협관은 한사람씩 수색하여 과장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율곡은 순서가 다 되어도 입장할 수가 없었다. 주인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선접꾼들이 눈을 부라리고 서서 행여 율곡이 조금이라도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가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막대기와 말뚝을 손에 세워 들고 서서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태질을 할 듯 잔뜩 벼르고 서 있었다. 그 순간. 시종여일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서 있던 율곡이 갑자기 뚜벅뚜벅 부문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 儒林(57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7)

    儒林(57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7)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7) 그러한 두 사람의 우정은 바로 별시해가 열렸던 성균관의 부문 앞에서 보여준 정철의 따뜻한 배려에서부터 싹튼 것이었다. 눈을 끔쩍끔쩍하면서 율곡의 유건을 벗기는 뛰어난 임기응변을 통해 율곡은 사면초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문장인 천도책(天道策)을 시지(試紙)를 통해 과거시험의 답안지로 써 올림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철은 율곡의 평생 은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은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을 쌓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되었는가. 문묘에 출입하여도 무방하겠는가.” 정철은 크게 웃으며 유생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하였다. 율곡을 에워싼 유생의 무리들도 이제 더 이상 떼를 쓸 수는 없음이었다. 그러나 패거리의 우두머리였던 파락호는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는 듯 손으로 먼지를 털며 대답하였다. “좋다. 네 놈이 과장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겠다. 하지만 현제판이 가까운 앞자리에 앉아서는 아니 된다. 여봐라.” 그는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선접꾼들을 쳐다보면서 소리쳐 말하였다. “부문이 열리거든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모든 유생들이 출입한 뒤에 이 자를 맨 나중에 들여 보내도록 하거라. 만약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들어가려 하거든 당장이라도 태질하여 쫓아내 보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예에-” 건장한 선접꾼들이 굽실거리며 대답하였다. 원래 계급사회에서 선접꾼과 같은 상민들이 양반집 자제의 행동을 막거나 행패를 부리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엄중한 죄였으나 명령을 내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삽시간에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마침내 부문이 열리고 과장이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유생들이 한꺼번에 부문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문을 지키고 있던 수협관들은 한사람씩 한사람씩 엄격하게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시험에는 부정부패가 따르는 법. 하물며 입신양명을 향한 절호의 기회가 보장되는 과거시험에 있어서야. 인간이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한 방법이 총동원되었는데, 예를 들면 예상답안지를 미리 만들어가는 것, 시험지를 바꾸는 것,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를 주는 것, 입고 가는 옷 안쪽에 사서삼경의 내용을 깨알같이 적어 커닝페이퍼를 만드는 것, 합격자의 이름을 바꿔치는 것, 출제자와 채점자가 공모하거나 서리를 매수하는 것, 특정 정파가 자파세력에게 의도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거나 친인척을 뽑는 것,…. 특히 재미있는 것은 마치 오늘날 수험생들이 휴대전화와 최첨단 전자 장비를 동원하여 부정시험을 치르듯 과거시험에도 첨단기술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는 점이다. ‘숙종실록’에는 당시로서는 이러한 부정방법이 나오고 있다. 숙종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성균관 앞 반촌(泮村)의 한 아낙네가 나물을 캐다가 땅에 묻힌 노끈을 발견한다.
  • 儒林(56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

    儒林(56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 과장은 각각 정해진 좌석이 없으므로 과장에 들어서면 우선 좋은 자리를 잡아야 했다. 좋은 자리는 현제판(懸題板)이라 불리는 시험문제를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곳. 또한 답안지를 빨리 낼 수 있는 곳이 으뜸으로 그 좋은 자리를 확보하려면 남들보다 먼저 입장하여야 하는데, 이때는 자연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장에 입장하는 부문(赴門)에는 각 유생들이 고용한 선접꾼들이 자리잡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서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주로 한양에 사는 세도가의 자제들인 유생과는 달리 율곡은 변방에 사는 서생이었고, 또한 선접꾼들을 고용할 만한 여력도 없었으므로 혼자서 부문 앞에 서서 과장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들이 합세하여 율곡을 에워싼 것이었다. “네 놈은 일찍이 사도에 빠져 석씨를 숭상하던 잡놈이 아니더냐. 그러한 네가 어찌하여 성인들의 신위가 모셔진 문묘에 함부로 드나들 수 있단 말이냐.” 유생의 말은 사실이었다. 원래 성균관의 대성전(大成殿)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처음으로 세운 건물이었다. 그 후 불에 탄 것을 태종7년(1407년)에 다시 세워 공자를 비롯하여 증자, 맹자, 안자, 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의 신위를 모신 거룩한 사당이었던 것이다.‘대성전’이라는 당호도 중국 곡부(曲阜)에 남아있는 공자의 묘당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유교를 국교로 삼고 있던 조선에서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신성한 성전이었던 것이다. 율곡은 이미 2년 전에 한성시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하였으므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나 이번에는 선접꾼까지 합세한 행패였으므로 나아갈 수도 물러갈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형국이었다. 물론 부문 앞에는 수협관(搜挾官)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과장에서는 수협관의 힘이 가장 막강하여 과거를 보는 거자(擧子)들에게는 ‘저승사자’라고 불리던 관리들이었다. 이들은 거자들이 시험장 안에 종이와 붓, 먹, 벼루 이외에는 그 어떤 물건도 갖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였다. 만약 책 따위를 숨기고 들어가다 들키는 경우에는 몇 년씩 응시자격을 박탈하는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또한 수협관은 응시생의 몸수색을 철저히 할 뿐 아니라 과거시험장 안에 응시생과 종사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양반의 자제들은 선접꾼 이외에도 평소에 수종을 드는 하인을 데리고 다녔는데, 특히 이번 별시는 성균관의 유생들만 치르는 특별시였으므로 선접꾼은 물론 하인들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천하의 왈패들인 선접꾼들도 수협관을 두려워하였는데, 왜냐하면 자칫 눈 밖에 났다가는 누구든 즉시 체포되어 수군(水軍)으로 보내어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협관이었지만 그는 부문을 지키고 있었을 뿐 세도가의 자제들인 유생들의 말다툼을 말리거나 참견하여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짐짓 못 본 체 한눈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율곡을 막아 세운 유생이 큰소리로 꾸짖어 말하였다. “네놈이 정히 성균관 안으로 들어가려면 내 가랑이 사이를 개처럼 기어가거라. 그러하지 못한다면 감히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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