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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軍독극물방류자 인도 거부

    한강에 독극물을 무단 방류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0개월째재판을 거부하고 있는 주한미군 용산기지 영안실 부소장 앨버트 맥팔랜드에 대해 법원이 구인에 나섰으나 미군측이 다시 거부했다. 법무부는 27일 최근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맥팔랜드의 신병 인도를 공식 요청했으나 미군측이 지난 24일 법무부에“신병 인도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내왔다고밝혔다. 법원은 미군·미군무원을 구속하기 전에 별도의 심문 절차를 거치도록 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오는28일 맥팔랜드를 심문하기로 했으나 미군측의 거부로 재판재개가 어려워졌다. 이동미기자 eyes@
  • 청와대 통치사료 1,302점 발굴·공개

    1968년 북한 도발에 의한 ‘1·21사태’ 및 푸에블로호납북사건 직후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을 강력히 주장,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미국측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음을 확인해 주는 청와대 통치사료등이 9일 공개됐다. 발견자료는 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대통령 당시의 서한철과 공식 외교문서철 123점,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공식행사 녹음테이프 719점,김영삼 전대통령 관련 기록물 460점 등 모두 1,302점이다.이날 공개된 통치사료 중 중요한 대목을 사안별로 정리한다. [1·21사태 당시 박정희의 대북응징 요구] 68년 1월21일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청와대 습격사태 및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발생 직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B존슨 미 대통령간에 오간 편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북한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공격을 취할 것을 주장한 반면존슨 전 대통령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귀환을 위해 북한과 비밀협상을 진행시키면서 외교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인 2월5일 존슨 전 대통령에게보낸 친필서한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선 그들의 침략행동이 반드시 적절한 응징(due punitive action)을 받게된다는 교훈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2월9일자서한에서는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열어 북한으로부터 시인과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다짐받아야 하며,북한이 불응할 경우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즉각 보복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존슨 전 미 대통령은 2월9일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낸서한에서 사이런스 밴스 전 국방차관을 개인특사로 서울에 파견했다는 사실만을 밝힌 채 대북 군사응징 요구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또 2월28일자 편지에서 “밴스는 평양정권의 위협과 침략행위로 야기된 사태에 대한 각하의 우려와 견해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했다”면서 “본인 역시이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으나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며 대북 군사행동에 대해 우회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5·17 전후 최규하의국정장악력 상실] 80년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인사들을 체포한 ‘5·17 사태’를 전후해 최규하 전 대통령의 의전일지가 거의 공란으로 남아 있어 당시의 국정공백 상황을 짐작케 한다. 당시 의전일지에 따르면 최 전 대통령은 원유가 폭등에대처하기 위해 5월10일 출국해 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를 방문하고 5월16일 오후 10시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그러나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7일부터5 ·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18일은 물론 21일까지 닷새 동안 행사 참석은 물론 정부 요인이나 군 관계자 등의접견 기록이 전혀 없다.다만 5월22일에 이르러서야 박충훈(朴忠勳)전 총리서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50년대 북한의 ‘핵보유설’] 미국측이 57년 당시 북한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제기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 보고서’도 관심을 끈다. 미측 군사전문가가 작성해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되는이 보고서는 북한이 공군기지 건설,초현대식 제트기 및 기폭탄,박격포 및 대공포 도입 등으로휴전협정을 어기고 있으며 “북한 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측의 월남전 참전 요청] 존슨 전 대통령은 65년 월남전이 본격화되자 박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친서를 보내 한국군 전투병력의 월남전 파병을 줄기차게 요구했고,박 전대통령은 경제적 이득과 한반도 안보 등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존슨 전 대통령은 그해 7월25일자 서신에서 “현재 월남에 있는 병력 8만명을 배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해야 된다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군의 참전을우회적으로 요청했다.이에 박 전 대통령은 7월29일자 답신에서 “월남을 공산침략으로부터 수호해야겠다는 각하의정의로운 결의는 공산침략의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수억명의 자유애호 약소민족에게 큰 고무와 용기를 줬다”며파병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승만의 ‘원조 정상외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 종전직후인 54년 당시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과 교환한 수차례의 외교서신은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살리고북한에 비해 열등한 군사력을 만회하기 위해 애국심을 바탕으로 ‘굴욕에 가까운 정상외교’를 펼쳤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12월8일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미국에 대해 경제·군사적인 원조를 요청했다.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3월11일,11월5일,11월29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 “서울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100만명 이상의 중국 인민군과 수십만명의북한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지원을 호소했다. [육영수 여사 관련자료] 74년 8월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이 쏜 총탄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陸英修)여사가 사망한 후 각국 사절이나 외교관이 보낸 조전과 우리정부의 답신, 육 여사가 생전에 각국 정상 부인들에게 보낸 서한도 포함돼 있다. 육 여사는 67년 7월7일 사토(佐藤) 당시 일본 총리의 부인으로부터 장난감 선물을 받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내줘 우리 지만이(박 대통령의 외아들)가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답신을 보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독자의 소리/ 빙판 전철역 승강장 대책을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로 기분좋게 첫 출근을 하던 나는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난감해졌다.염화칼슘을 뿌린 차로를 제외하고는 온통 길들이 빙판길이 돼 있었다. 그 사정은 지하철역도 마찬가지였다.국철 도봉산역의 청량리 방향 승강장에는 약 50m가 지붕이 없다. 눈을 치우지 않아 이곳이 빙판이 된 것이다.작년 여름 노천승강장의 불편함을 철도청장에게 신고했더니 연말까지 모든노천 승강장을 없애겠다는 답신을 받았던 터라 더욱 기분이나빴다. 모든 승강장에 지붕을 설치하는 것이 재정 문제로 여의치 않다면 다음날 출근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생각해 눈을 치우든지,빙판에 모래라도 뿌리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시민을배려하는 행정이 아쉽다. 우승남 [서울 노원구 상계동]
  • “최종길 교수 타살됐다”中情수사관이 7층서 떠밀어

    지난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과관련해 조사를 받다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서울대 법대 최종길(崔鍾吉·당시 42세)교수는 조사 도중 스스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는 당시 발표와는 달리 수사관에의해 떠밀려 떨어졌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에 따라 최 교수가 고문을 피하기 위해 또는 모욕적인수사에 항의해 투신했을 가능성보다는 수사관들에게 ‘타살’됐으며 중정은 이를 알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김형태 제1상임위원은10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시 최 교수를 조사했던 수사진의 핵심 간부인 A씨를 조사한 결과,최 교수가 타살됐다는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A씨는 “당시 부하 직원 B씨가 ‘최 교수를 조사하던 차모씨 등 2명이 조사실 옆 7층 비상 계단에서 최 교수를 밀어 건물 밖으로 떨어 뜨렸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했다는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은 B씨 등 3명을 추적해 조사했으나 “B씨는 이미 사망했고,국내에 있는 차씨와 미국에 있는 C씨는혐의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진상규명위 조남관 조사 1과장은 “B씨가 사망해 진술의 신빙성이 배척될수도 있지만,특별히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망자의 진술도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특히 “최 교수 조사 및 사망과 관련해 중정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 등 5건 모두가 허위로 작성됐다”면서 “특히 현장검증 조서의 경우 검증참여자로 기록된 인사들 중 실제로 검증에 참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형태 위원은 “당시 중정부장이던 이후락씨와 차장 김치열씨에게 지난 4일 소환장을 보냈으나 건강상의 이유를들어 둘다 거부했다”고 전했다.그러나 규명위는 이 전 부장과 김 전 차장을 소환해 중정의 조직적인 조작 여부를조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규명위는 남아공,영국,일본 등 3개국 법의학자에게최 교수의 사인 규명을 의뢰,이 중 2개국 법의학자로부터답신을 받아 분석 중이며 이달말쯤 조사를 마무리 해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창구 이영표기자 tomcat@
  • NGO/ “테러방지법은 제2의 국가보안법”

    “제2의 국가보안법이 저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한 여성이의원회관 쪽에서 뛰어왔다. 김홍신 의원 사무실을 찾아 ‘테러방지법안’ 폐기 청원서를 제출하고 나오는 참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류은숙(柳銀淑·34) 사무국장.잠시 숨을 고른 그는 ‘테러방지법 결사반대’라고 적힌 피켓을들고 1인 시위에 들어갔다.벌써 1주일이 넘었다. 국가정보원이 테러방지법안을 입법예고한 지난 달 12일부터 밤을 새는 날이 많아졌다.68개 시민·사회단체와 일일이 접촉,‘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이란 연대체를 꾸려 매일 항의 집회를 여는 일도 류국장이 주도하고있다. 법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된 지난 달 27일에는 시위대와 함께 국정원으로 달려갔다.4일부터 정기국회가 끝난 8일까지 닷새 동안은 노동·농민단체와 국회주변에서 24시간 밤샘농성을 했다. “국정원이 법 제정을 서두르는 바람에 우리도 눈코뜰 새가 없어요.인권과 직결된 법을 만드는데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는 것은테러방지라는 미명으로 국정원이 권한 확대를 꾀한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통상적인 입법예고 기간인 20일을 10일로 단축했다.공청회도 생략했다. 차관회의,당정협의,국무회의 의결은 불과 이틀만에 일사천리로 끝났다. 그나마 법안에 있는 테러의 개념 가운데 ‘사회적 목적’ 등 모호한 문구를 일부 삭제했다.또 ‘국정원이 터레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는다’고 명시했던 부분을 고쳤으며 참고인 강제구인,구속기간 연장 조항을 삭제했다. 그러나 류 국장은 “겉모습만 살짝 바꾸었을 뿐 본질은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국가안보·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행위’를 테러범죄로 규정한 것은 언제든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설명했다. “테러 수사를 전담할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에 두고,국정원장이 센터의 장을 임명하며 조직·정원을 결정할 권한까지 갖고 있습니다.테러를 저지를 것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을 출국조치할 수 있다는 조항은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될수 있습니다.불고지죄,허위사실 신고·유포죄를 보면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습니다.”류 국장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법 조항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렇다고 테러 방지대책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테러 대응책을 마련하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문제는 인권침해,국정개입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국정원이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기존 법률을 면밀하게 따져 활용하거나,경찰 등 대테러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을 보강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류 국장은 국정원보다 국회에 더 큰 실망을 느끼고 있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모든 의원들에게 두 차례나 요구했지만 단 4명만이 답신을 보내왔다. “국정원은 조만간 법안을 통과시킨다고 호언장담하는데의원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산적한 민생법안은 내팽개치고 모순투성이의 이 법안을 졸속 처리한다면 의원들은또다시 비난을 받을 겁니다.” 92년 대학 졸업 후 인권운동사랑방 창립 멤버로 인권운동에 뛰어 든 류 국장은 휴일마다 식당 설겆이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원래 인권교육 개발이 전문 분야인데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 이 고생이랍니다.” 결혼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맹렬 여성이 피곤에 치쳐 충혈된 두 눈을 부릅떴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동대문구 3~11일 주민화합 잔치

    주민 화합의 한마당이 될 ‘동대문구민 큰잔치’가 오는3∼11일 구민회관 등 구 전역에서 펼쳐진다. 행사 첫 날인 3일에는 구민회관 대운동장에서 기념식과동대문구민상,동대문신지식인상 시상식이 있으며 동별 경로잔치,체육대회,우수상품 전시회 등이 열린다. 4일에는 구청 강당에서 남녀노소가 참가해 기량을 겨루는 동대문구청장배 바둑·장기대회가,5일에는 답신리동 고미술상가 거리축제가 개최된다.무료 골동품 감정과 고미술품전시 및 판매도 이뤄진다. 7일 구민체육센터(YMCA체유관)에서는 경희대 의대 및 한의대의 지원으로 구민 무료진료가,8일에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KBS 전국노래자랑이 이어진다. 최용규기자 ykchoi@
  • CDMA 로열티 재협상 난항 거듭

    미국 퀄컴과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간에 연간 수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로열티 재협상과 관련,정보통신부와 퀄컴이 정면으로 맞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양승택(梁承澤) 정보통신부 장관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퀄컴측이 한국업체들에게 제시한 한국식(내수 5.25%,수출 5.75%)과 중국식(내수 2.65%,수출 7%)의 양자택일 방식으로는 한국업체가 보장받은 최혜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 장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의뢰한 연구내용을 토대로 법률검토한 결과 수출과 내수부분 로열티를분리 적용해야 최혜대우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그러나 퀄컴의 제이콥스 회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김형오(金炯旿)위원장에게 보낸 답신에서 “한국식과 중국식의 양자택일 방식은 최혜대우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김의원측이 말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주민자치센터 다시 ‘뒷걸음’

    행정구조 축소 및 경쟁력을 불어 넣기 위해 도입한 주민자치센터가 본격적으로 시행된지 1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상당수의 자치구들이 최일선 현장행정의 필요성 등 현실론을 앞세워 구청으로 끌어 올린 동직원들을 다시 동사무소로 인사발령하는 등 사실상 구 업무를 동 업무로 환원하고 있다. 정부는 99년 7월 서울 성동구를 대상으로 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하는 ‘동기능 전환’을 시범실시한 뒤 지난해 3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7∼20명에 이르던 동직원들은 주민자치센터로전환되면서 인구와 지역기준에 따라 6∼18명으로 줄었고 이들이 맡고 있던 업무도 대부분 구로 이관됐다. 실제로 주민자치센터 조직은 동장을 비롯해 주무·서무주임·사회복지사·기능직 운전기사·민방위 및 민원서류발급담당 등 11∼12명 정도의 단순업무직원들로 짜여 있다.특히 재해발생이나 현장민원을 최일선에서 처리해 오던 청소·세무·교통·건설·토목(하수·주택 포함) 담당은대부분구청으로 철수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불편이 갈수록 가중되자 자치구에서는 재난에 신속히 대처하고 민생업무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구청으로 끌어 올린 직원을 다시 동으로 내려보내는실정이다. 관악구는 대형폐기물을 마구 버리고 골목에 각종 쓰레기가 방치되는 등 청소민원이 잇따르자 지난해 12월 동사무소에서 구청으로 흡수한 인원 가운데 27명을 지난 4월 다시 동사무소로 인사발령했다.동대문구는 지난 2월부터 신설·용두2·제기2·답신리4·휘경1·이문2,답신리5·이문3·휘경2동 등 간이빗물펌프장이 있는 9개 동에 각 1명씩 기동근무라는 명목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이들은 구청 하수과와 토목과 소속이지만 동사무소로 출·퇴근하는 사실상 동직원이라는 게 구청측의 설명이다. 자치구 관계자들은 “주민자치센터 조직과 인력으로는 재난 및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고 신속성도 떨어진다”며“주민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가고 있는 만큼 민생업무강화를 위한 탄력적인 조직운영과 인원 재조정이 필요하다”고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
  • “중국은 美에 우호적”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한 미국 관광객이 보낸편지에 대해 직접 쓴 정감어린 답신이 화제다. 장 주석은 지난 5월 이 미국인이 중국 대륙을 여행한 뒤감상을 적은 편지에 대해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자신이 직접 쓴 답신을지난 1일 보냈다고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이 27일 1면기사로 보도했다. 뉴욕주에 사는 이 관광객은 중국 여행으로 얻은 좋은 경험과 몇가지 건의 사항을 편지에 적었다.장 주석은 답신에서“두나라 국민들간의 왕래는 두나라 관계를 양호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기초가 된다”며 “미국 친구들이 좀더 많이중국을 보러 오기를 희망한다”고 적어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갖고 있음을 보였다. 그는 “중국에는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百聞不如一見)는 속담이 있다”면서 “당신이 중국에서 경험한 것처럼 중국인민은 미국인들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고 중·미관계가 우호·협력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4)식민지 저항적 지식인

    근대 여성작가 중 가장 치마폭이 넓었던 최정희는 유파와연령을 초월하여 문우들과 교유했는데 그 중 소중한 것으로는 국제 입찰에 부칠만한 중량급 서간문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김사량(金史良,본명 時昌,1914∼1950)의 편지이다.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사량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를 일깨워 준 근대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한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평양에서 1914년에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 재학 중 배속장교와 일본인 교사 및 그들에 동조하는 조선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해 퇴학처분을 받고는 형 시명(時明,교토제대 법학부 졸업 후 사법·행정 양과 합격,홍천·평창 군수,조선인 최초의 전매국장,8·15 후에는 중앙산림조합연합회 이사장 등을 지냄)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학창시절에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 신협(新協)극단과 연계,장혁주(張赫宙)가 각색한 ‘춘향전’의모국 순회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펼치다 여러이유로 경찰에 자주 구금 당했다. 결혼 직후 하이네에 관한 논문으로 도쿄제대 독문학과를졸업(1939)한 그는 잠시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서울의 하숙집에서 출세작 ‘빛 속에서’를 썼다.이 무렵에 아마 서울의 잡지사와 문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것인데,최정희와의 인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도쿄제대 대학원 입학허가를 받은 그는 6월 아내와 도일,일본과 한국 문단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편지에서 김사량은 매우 조심스럽게 최정희의 ‘지맥’을 추천했으면 싶었으나,이미 일본의 다른 출판사(赤塚書房)가 추진하고 있던조선문학 선집에 관여하는 장혁주가 손을 댔기에 ‘흉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몇 차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최정희가 자신의 소설을 일본에 소개되기를 희망한데 대한 답신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혁주는 누구였던가.김사량보다 먼저 등단한 그는 잡지사,문인 등을 후배에게 소개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재일조선인 문단의 대선배였다.1905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은중(恩重),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첫 창씨명은 野口이었음)로,불륜사건에 연루되어 도일,본처와 이혼,일본여자와 재혼,8·15후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 버린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민족적인 성향과는 달리 친일화 정도가아니라 아예 혈통까지도 일본인화 해야된다는 각오로 일본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친일문학인 가운데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었다.1952년 10월,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변장한 채 일본 ‘부인구락부’ 특파원 신분으로 입국하여 취재활동을 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을 힐난하는 글을 써서 당시 문학단체가 법석을 떨게 했던 장본인이다.그는 아예 일본문학보국회에 가입하여 활동에 열을 올렸던 인물로한국을 영원히 등진 조국상실자가 되었다. 최정희의 ‘지맥’은 평론가 한식(韓植)이 번역을 맡은 것으로 드러나며,편지에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김사량은 ‘모던 일본’에다 이광수의 ‘무정’을 번역했는데,아마 이 사실은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김사량은 ‘조광’에장편 ‘낙조’(1940.2∼1941.1)를 연재하면서 모국어 문제에 대하여 매우 겸허하게 최정희의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사실 그는 ‘양국어 작가’로 손색이 없었다.그가 ‘삼천리’에 발표한 글로는 잡문 ‘조선문학과 언어문제’(1941.1)와 소설 ‘지기미’(1941.4)인데,이 두 사실을 편지에 대입해 읽으면 그와 최정희의 교유가 대략 1939∼1941년임을 알 수 있다.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문예춘추’는 1935년 일본최고의 아쿠다가와 (芥川)문학상을 제정했는데,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사량이 이 상의 후보작으로 뽑혀 일약 일본문단의 유망주가 되었다(1940.2).1941년12월 9일 새벽 진주만 기습에 따른 사상범예방구금법으로감금당했고,유명세만큼 그에게 부하되는 역사적인 책무도커서 친일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다. 일본 문학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이듬해 1월29일 석방된 그는 이내 귀향,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강제동원을 피할 수 없었다.이효석(1942년 작고)이 있었던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사가 된 건 1944년 4월.강제 친일에 동원되면서도 일본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격렬하게 식민통치를 비판하던 이투사는 1945년 2월 조선출신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일정을 마친 뒤 탈출,화북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여 떳떳하게 해방을 맞았다.이때의 탈출 투쟁기는 ‘노마만리(駑馬萬里)’란 제목으로 남아있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그의 희곡 ‘호접’이 단성사에서 공연되는 등 광복 후 한국 좌익문단의 정화에 일조했던 그는이듬해 평양으로 돌아가 6·25때 종군작가로 참가,후퇴 도중 원주 부근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낙오된 채 행방불명된 게 그의 최후다(안우식 지음,심원섭 옮김 ‘김사량 평전’ 참고).김사량은 자신의 친일행각이 강제에 의한 것임을 문학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실토했던 점과 모험을 무릅쓴 극적인 탈출로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던 문학인이었다는 점에서식민지시대 저항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세계 저항문학사에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극적인 생애는 한설야(韓雪野)도 마찬가지다.기생 이름 같은 낭만적인 필명과는 달리 1900년 함주(함흥)에서 태어난그는 1976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욕을 두루 겪은 비극적인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인물인데,유명한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의 제자로,홍범도(洪範圖)등의 의병활동을 무마시키라는 일제의 강요를 거절코 고향을 떠나 피신했다.한설야는 경성제일고보에다니다가 서모(庶母)와 불화로 귀향,함흥고보로 전학,3·1운동에 관련되어 구금 체험을 한다.중국,일본 등지를 떠돌거나 유학 한 뒤 ‘조선문단’으로 등단한 그는 서울에 머물렀다가(1925∼1926),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죽자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1927) 귀국하여 카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문학과 사상 연구회,‘한설야 문학의 재인식’).한설야가 조선일보에 입사한 것은 1932년경인데 함남지역에 특파됐다가 본사에 왔을 때는 경영권 문제로 매우 복잡 미묘할 때였다.창간 초기부터 경영진의 시국 순응 성향과 편집진의 민족의식 지향이 갈등관계를 유지했던조선일보는 계속 사주가 바뀌면서도 반일논조 때문에 정간과 필화가 잇따랐다.신간회(新幹會)운동으로 안재홍(安在鴻)사장이 구속되는 등 혼란을 틈타 고리대금업을 하던 채권자 임경래(林景來)가 조선일보 경영권을 주장하여 조병옥(趙炳玉)·주요한(朱耀翰)의 정통 편집팀과 대결,두 개의 조선일보 발행이라는 희극이 연출되다가 방응모(方應謨)가 참여,부사장을 거쳐 발행인이 된 것이 1933년 7월(사장은 조만식).이 혼란 속에서 한설야는 학예부에 근무하며 노동 현장소설의 신기원이란 평가를 받은 이북명(李北鳴)을 발굴하여 ‘질소비료공장’을 연재 중단 당하는 등 카프노선에 충실한 언론인으로 활동한 것 같다. 당시 정황을 한설야는 단편 ‘세로(世路)’에서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여 한국언론사의 충실한 증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소설은 자신이 회사로부터 해직 통고서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자초지종을 회상하고있다.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이지만 사정상 이니셜을 썼는데,쉽게 알만한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새 경영진은 기구와인사 개편을 통하여 그때까지 신문사의 주류였던 M일파(투옥 경력자 등으로 묘사)를 약화 시키는데,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배신감과 사회적인 공분이 폭발한 한설야는 술자리에서 변절한 동료의 뺨을 후려친 게 화근이 되어 권고 사직을 당했다. 조선일보 사사(社史)에 의하면,1934년 1월 1일자로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는데,특히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된 M(문석준)의 좌천도 바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미뤄 볼 때 한설야의 퇴직도 이 무렵일 것이다.이 문석준은 1943년 함흥에서 한설야와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설야는 1944년 5월 석방) 당하는 주인공이다.1934년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한 해였다.해직 후 8월 그는 카프 2차사건으로 구속됐기 때문이다.달필인 한설야의 편지는 함흥에서보낸 것인데,아마 1941∼2년초 경 ‘삼천리’가 ‘대동아’로 개제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최정희가 한설야에게 잡지에 재수록할만한 짧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청탁에 대한 회답 형식인 이 편지에서 그는 ‘강아지’와 ‘능금’을 천거했다.앞의 작품은 ‘한설야 단편집’에 실려 있는데,그게 1941년 7월에 나왔으며,뒤의 것은 1940년 간행 단편집 ‘귀향’에 게재된 것으로 볼 때,그리고 ‘대동아’개제가 1942년 3월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 편지가 씌어졌던 시기는 밝혀질 것이다.이 무렵 그는 함흥에서 서점·극장·인쇄소 등에 손을 대는 등 생업과 창작에 전념하면서 해방의 날을 준비하고 지냈다.여담이지만 한설야는 광복 후북한에서 ‘김일성장군 전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쓴 한편 소련(1947),평화옹호 세계대회 참석차 프랑스(1949) 등지를 방문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가 1962년 비판당한 후 불행한 최후를 마치고 작품도 판금,아직도 전면적인 해금이 안된 상태에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이인제, 박근혜에 ‘러브콜’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 향후 대선 정국의 주요변수로 떠오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와의 회동을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심한 것으로 간주되는 TK(대구·경북)지역 공략을 위해서다. 이 위원의 측근은 “최근 박 부총재에게 만남을 제의했으며,답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그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등 TK방문에 앞서 박 부총재를 만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 등을 만나고,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등 심상찮은 행보를 하고 있는 박 부총재가 회동 제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둘의 만남이 정국 판도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특히 ‘이-박 회동’이 성사될 경우 이 위원의 TK 교두보 확보와 박 부총재의 위상제고 효과를 부르면서 이회창 총재의 입지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위원은 이달초 이수성(李壽成) 전 총리와 김윤환 대표도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알려져 ‘TK행’ 보폭이 생각보다넓다는 느낌을 준다. 이 위원의 행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이회창 총재 등 ‘정적(政敵)’들의 아성을 잇따라 파고들며 ‘정면승부’에나서고 있음이 관측된다. 실제 이 위원은 16일 이회창 총재 부친의 생가가 있는 충남 예산을 방문,농가에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어서 이 총재측을 긴장시키고 있다.앞서 지난 7일에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고향인 충남 부여를 방문,자민련의 반발을 불렀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우익교과서 거부… 교류 지속”

    일본 시가(滋賀)현 시가라키(信樂)정은 23일 역사교과서채택과 관련,경기도 이천시에 서한을 보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의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가라키정 이마이 게이노스케(今井惠之助) 정장은 이날유승우(柳勝優) 이천시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교과서 문제로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나쁜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에 대단히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며 “시가라키정에서는 ‘새 역사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시가라키정장의 이 같은 친서는 지난 20일 이천시가 교류관계 유지 여부를 놓고 고심한 끝에 시가라키정 도자기축제에 17명의 참관단을 보내면서 유 시장 명의로 우익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 것을 요청한 데 따른 답신이다. 이천 윤상돈기자 yoonsang@
  • 駐美대사관 “언론 세무조사 정치의도 없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국의 여야의원 8명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우려의 뜻을 담은 서한을 보낸 것과 관련, 금명간 해당 의원들에게 세무조사에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의 답신을 보낼것으로 알려졌다. 주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18일 “서한은 미의회의 일부의원들이 우리나라 세무조사의 실태를 제대로 모르고 보낸것”이라고 전제하고 답신을 통해 세무조사의 배경과 우리나라 언론자유 상황에 대해 소상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독립군 위령탑 신경전 국방부 난색 진척못봐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회장 金希宣)과 광복회(회장 尹慶彬)와 대한매일 등이 만주 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국민의 극일정서가 고조되고있는 가운데 ‘국립묘지 묘지공원 조성 계획’ 이전에라도 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이 건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방부측이 도시공원법에 따라 아직 신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민족정기 국회의원 모임’과 광복회의 건의로 국방부에 “위령탑 건립은 항일 독립정신을 국민정신으로 승화시키고 광복의 초석이 된 무명 독립군을 추모하는 사업”이라며 협조공문을 보냈다.만주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은 가로 20m,세로 20m,높이 15m의 크기로 국립현충원으로부터 약 500평의 부지를 할애받아야만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방부는 답신을 통해 “도시공원법 제4조에 따라신축이 불가능하다”면서 “국립묘지의 묘지공원 조성 기본계획 수립 이후에나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희선(金希宣) 의원은 15일 “무명 독립군들의 정신을기리기 위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약 5억원의 재원을 활용,국립 현충원 임시정부 묘역 부근에 위령탑을 세우기로 했으나 국방부가 ‘정규군이 아니다’고 난색을 표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는 이날밤 “묘지공원 조성기본계획에 광복회가 요구한 ‘항일무명용사탑’ 건립계획을 반영,추진토록 하겠다”면서 “국방부는 장병정신교육에 독립군과 임시정부의 얼을 적극 교육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北 인권상황 밝혀라”

    장길수군 가족 망명사건을 계기로 탈북자 문제에 관한 국제적 관심이 재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유엔인권기구가 지난해 1월 중국에 의해 강제송환된 탈북자 7인의 상황을 비롯해 강제송환자들의 처우에 관한 북한당국의 입장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최근 북한이 제출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보고서에 대해 29개항에 달하는 질의서를 보냈으며 이 질의서에는 다른 나라에 망명을 신청한북한 주민과 강제 송환자에 관한 처우에 관한 법과 관행을상세히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질의서는 특히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월 중국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탈북자 7인의 지위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해 강제송환된 탈북자 7인중의 한명으로 알려진박충일(23)씨는 재탈북에 성공,제3국을 거쳐 귀국했으며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송 후 혹독한 고문수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질의서는 또한 노동교화소와 수용소내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북한당국의 입장을비롯해 노동교화소의 숫자와 수감인원,수감기간,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접근허용여부 등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줄 것을요청했다. 질의서는 이어 이른바 비밀 강제수용소의 존재여부와 공개처형에 관한 보도내용 확인 및 최근 3년간의 사형언도와 집행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한편 도청을 비롯해 북한주민에 관한 광범위한 내부감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에 관해서도북한의 입장을 요구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을 관장하는 인권이사회는 오는 19일 북한이 제출한 2차 정기보고서를 심의할 예정이며 인권이사회가 북측에 답변을 요청한 질의서의 내용은 북한인권보고서 심의과정에서 핵심 현안으로다뤄질 전망이다. 북한은 현재까지 인권이사회의 질의서에 대한 답신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81년 9월 ‘B규약’으로 불리는 ‘시민적 정치권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했으며 지난 83년 10월1차 보고서와 84년 4월 추가보고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이후 2차 정기보고서 제출을 미뤄오다 인권이사회의 독촉과 경고를 받고 16년만인 지난해 7월 인권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뒤늦게 제출했다. 지난 76년 3월 발효된 ‘시민적 정치권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자의적인 생명박탈,고문 및 잔혹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처우나 형벌,노예취급 및 강제노동,자의적인 체포구금, 자의적인 사생활 침해,전시선전, 인종적 종교적 증오심의 조장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오는 9일부터 2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인권이사회는 북한을 비롯해 아제르바이잔,체코,모나코,네덜란드 등 5개국이 제출한 정기보고서를 심의한 뒤 국별 인권개선 사항에 관한 권고를 채택할 예정이다. 제네바 연합
  • “언론사 세무조사 억압수단 아니다”

    오홍근(吳弘根)국정홍보처장은 15일 요한 프리츠 IPI(국제언론인협회)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현재 진행중인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사에 대한 압력수단은 결코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지난달 29일 프리츠 총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회신을 보낸 것에 대한 답신 성격인 이번 서한에서 오처장은“94년에도 비슷한 규모로 언론사 세무조사가 실시됐으며‘이번 조사규모가 단일업종,단일 세무조사로는 최대’라는 BBC 보도내용도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오처장은 이어 “김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언론자유 보장에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귀하가 주장하는 것처럼‘언론이 민주화 발전을 위협하고 장애가 된다’고 비난한적이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서한’ 공방 막내릴까?

    한국의 언론상황을 놓고 국정홍보처와 국제언론인협회(IPI )간의 ‘서한’공방이 막을 내릴 전망이다.IPI측은 기세를 접은 반면,국정홍보처는 ‘설명부족’을 이유로 공세 조짐 이다. 양측의 공방은 지난달 16일 IPI가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내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빚 어진 언론과의 갈등해소를 위한 ‘원탁회의’를 제안하면서 비롯됐다. 정부대변인인 오홍근 국정홍보처장은 다음날 즉각 요한 프 리츠 IPI 사무총장 앞으로 6개항의 ‘공개질의서’를 보내, 반박에 나섰다. 오 처창은 질의서에서 “IPI의 서한은 한국 민의 자존심과 감정을 도외시한 무례한 내정간섭행위”라며 사과를 요구했다.오처장은 특히 과거 수십년 권위주의 정권 하의 언론탄압에 대해 침묵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 IPI가 언 론자유가 만개한 현정권 들어 반복적으로 한국언론상황을 폄하·왜곡하는 이유가 뭐냐는 식으로 다소 격한 투로 따졌 다. 국정홍보처는 또 20일 조선일보 진성호기자 앞으로 서한을 보내 “IPI는 5·16이후 127개월만에 한번꼴이던 항의서한 을,현정권 들어 6.5개월만에 한번꼴로 내고 있다”며 IPI의 처사에 의혹의 눈길을 던졌다. 한편 프리츠 사무총장은 오처장의 ‘질의’에 대해 지난달 29일 답신을 보내 “원탁회의 제안은 정부와 언론간의 중 재가 목적이었다.‘무례한 내정간섭’은 아니었다”고 해명 했다.그러나 프리츠 총장은 “이 문제를 놓고 더이상 소모 적인 서신교환을 주저하고 있다”고 밝히고 “귀측(국정홍 보처)이 제 회신을 공식항의로 간주하는 것 같아 더욱 내키 지 않는다”며 ‘서신공방’을 그치고자 하는 뜻을 내비쳤 다. 그러나 국정홍보처는 프리츠 사무총장의 답신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국정홍보처 류동훈 외신과장은 “질문에 적 절치 않은 답변도 있는데다 프리츠 총장이 한국의 언론상황 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설명을 겸해 다시 답신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 北 민족대토론회 제의 배경

    북측은 28일 6·15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금강산에서‘민족통일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의했다.아직 전화통지문등이 정식 접수되지 않았고,민간 차원의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축소되기는 하지만 석달째 교착상태에 놓인 남북관계를 푸는 데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남북 공동행사를 제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하나는 대내용으로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큰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1주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대외적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에 맞서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과시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북측 제의는 지난 23일 우리측 민간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7개 종단으로 이뤄진 ‘6ㆍ15공동선언 실천과 민족의 화해,자주평화통일을 위한 추진본부’가 공동행사를 제의한 데 대한 답신 성격을 띠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 행사를 뒷받침한다는 방침이어서 다음달초민간 차원의 실무접촉이 이뤄질전망이다.민화협 이수언(李秀彦)대변인은 29일 “북측의 제의가 접수되는 대로 실무접촉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강산 토론회가 열려도 당장 당국간 회담재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통일부 당국자는 “민간 차원의 토론회는 현재 북한 당국이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이라고 말했다.그는 “현대와의 금강산 관광 협상이 타결되고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 전까지는 북측이 당국간 대화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사이버 카네이션 감사…김대통령에 답신 쇄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지난14일 전국 초·중등 교사들에게 사이버 카네이션을 보낸 데대해 교사들의 e메일 답장이 쇄도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김 대통령이 보낸 카네이션을 보고e메일 답장을 보낸 교사 수가 하루 만에 1,000여명을 넘어섰다”면서 “교사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이버 카네이션을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가 주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김 대통령은 전날 보낸 사이버 카네이션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애쓰시는 선생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건승하시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이산가족 서신 15일 北에 첫 전달

    오는 15일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전달될 남측 이산가족의서신 마감날인 8일 270여통의 편지가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접수됐다.한적은 편지를 보내오지 않은 30여명에게 서신교환 포기여부를 확인한 뒤 미리 선정해 둔 후순위 후보들에게서신교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오는 12일까지 다시 서신을 접수할 계획이다. 한적 관계자는 “수도권 거주자의 경우 분실을 우려해 직접 서울 중구 한적 본사로 편지를 들고 온 사람도 제법 있다”고 전했다. 한적은 15일 판문점 적십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우리측 편지 300통과 서신교환자 명단을 전달하고 북측의 서신교환자명단과 편지를 받아온다.이날 북측의 명단이 공개되는 만큼북측에서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는 15일 알게 된다. 북한이 보내오는 편지 300통은 일단 한적으로 모아진다.한적은 남북이 합의한 ‘서신 비밀보장’에 의거,봉투를 개봉하지 않고 별도로 만든 서류봉투에 넣어 등기로 발송하게 된다.남측 이산가족들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날짜는 수도권 지역은 16일,지방은 17일 정도로 예상된다.한편 이번 편지교환은 ‘교환’이 아닌 ‘발송’에 그칠 확률이 높다.8일정부 당국자는 “답신여부에 대해 북측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답신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고 밝혔다.대신 상대방측이 편지를 받았는지 여부는 한달 뒤에 양측에 서로 통보하고 만일 받지 못했을 경우는 이유를 알려주기로 남북이 합의했다. 전경하기자 la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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