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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서해 충돌 유감”

    북한은 25일 6·29 서해교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경의선 연결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전격 제의했다. 북측은 이날 오후 김령성 남북 상급(장관급)회담 대표가 정세현(丁世鉉·통일부장관) 남측 장관급회담 수석대표에게 보낸 판문점 전화통지문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 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쌍방이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은 이어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이른 시간내에 서울에서 제7차장관급회담을 갖자.”면서 “이를 위해 금강산에서 8월초 실무접촉을 갖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북측은 또 제7차 장관급회담의 의제와 관련,“임동원(林東源) 특사의 4월5일 합의한 공동보도문의 이행문제와 경의선과 경원선 등 남북철도연결,이산가족의 상봉문제 등 그밖의 관심있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밝혀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에 따라 남북장관급 회담이 이르면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장관급회담 개최를 계기로 지난달 서해교전과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철회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복원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선숙(朴仙淑)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의 제의를 충분히 검토해서 정부 입장을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기(金炯基) 통일부차관은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북한측의 명백한 사과와 유감 표시”라면서 “진척된 입장 표명이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김 차관은 “26일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통지문에 대해 검토한 뒤 우리 입장과 대표단,구체적 의제,일자 등을 결정해 답신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대화제의에 대해 한나라당은 남경필(南景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진정한 사과로 보기 어렵지만 유감을 표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그러나 장관급회담은 무력도발에 대한 북한의 시인과 사과,책임자 처벌,재발방지 약속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남북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북한측의 태도표명과 제안을 수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민련 유운영(柳云永) 대변인은 “북한의 유감표명은 책임회피용으로,결코수용할 수 없다.”며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전에는 남북장관급회담을 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록삼 홍원상기자 youngtan@
  • “韓·칠레 자유무역협정 급진전”

    한국과 칠레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지난 2월 우리측이 제시한 ‘FTA 양허안’에 대해 칠레 쪽에서 답신을 보내왔다.”면서 “아주 전향적인 내용으로 연내 타결을 기대할 만하다.”고 밝혔다. 칠레 정부는 지난 8일 품목별 관세철폐 계획을 담은 ‘FTA 양허안’을 보내왔으며,양국은 오는 8월 중순 칠레에서 제5차 한·칠레 FTA 실무협상을 갖고 협정안 마련을 위한 본격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는 칠레측 양허안을 검토한 뒤인 지난주 비공개 대외경제조정회의를 갖고 이번 5차 한·칠레 실무협상을 FTA 협상 타결의 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잡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과수 농가의 피해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 99년 9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한 한·칠레 FTA협상은 칠레산 과일의 국내시장 잠식을 우려한 우리 농업계의 반발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해왔다. 지난 8일 일본과 첫 산·관·학 FTA회의를 개최한 정부는 올 연말까지 멕시코와 FTA 체결을 목표로 나서는 등 각국과의 FTA 협상에도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 김태균기자 crystal@
  • 이번엔 인터넷 韓流열풍

    월드컵 이후 한국에 매료된 전 세계 네티즌이 한국 바로 알기에 나서는 등 인터넷에 한국 열풍이 불고 있다. 그동안 외국 인터넷 사이트에는 ‘동해’가 ‘Sea of Japan’으로 표기되는 사례가 많았지만,최근 캐나다 최대 지도제작사인 ITMB사는 인터넷 지도에서 ‘동해’를 ‘East Sea’로 정정했다.미국의 대표적 검색사이트(www.excite.com)도 ‘한국인이 개고기를 즐겨먹으니 한국을 방문하는 서양인들은 주의하라.’라는 글을 삭제했다. 인터넷에서 한국 알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한국바로알리기사업 범국민운동 민간기획단(VANK·www.prkorea.com)’에는 회원에 가입하려는 네티즌이 폭주하고 있다.월드컵 이전보다 신규회원 가입수가 4배 가까이 늘어 월평균 400여명에 이른다.외국 네티즌들도 하루에 수십건씩 글을 남기고 있다. VANK 연구원 박기태(29)씨는 “예전에는 외국의 사이트 관리자에게 잘못된 한국 정보를 고쳐달라는 이메일을 보내면 답신이 거의 오지 않는데 요즘은 오히려 한국을 알고 싶다는 이메일이 폭주하고 있다.”고 기뻐했다.국정홍보처의 해외홍보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한국인 이메일 친구를 찾는 외국인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 네티즌 ‘피터’는 “한국의 노래,축구,영화,음식,예술가 등을 알고 싶다.”며 채팅 대상을 찾고 있다. 외국 네티즌과 채팅을 시작한 남승미(ID·nangirl2)씨는 “채팅 사이트에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수많은 외국인들이 몰렸다.”면서 “채팅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들에게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과 최신 가요 등을 소개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 장세훈기자 shjang@
  • 精文硏 오늘부터 1회 세계한국학대회 개최, 한국학 지평 넓히기 집중 모색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주요 한국학 연구기관 및 단체들이 참가하는 ‘제1회 세계한국학·조선학·코리아학 대회’가 17일부터 20일까지 성남시 분당에 있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20세기 한국학의 성과를 점검하고 21세기 한국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는 자리.국내외 다수 연구단체가 공동 주최하는 최초의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로,규모에 있어서도 역대 한국학 관련 학술대회중 최대다.23개국에서 140여명의 한국학 전공자들이 참여해 주제발표를 한다. 정문연·국제고려학회·유럽한국학회·오스트랄아시아한국학회가 공동주최하는 이 대회의 주제는 ‘타자에 대한 포용-한국인과 외국문화의 대화’.세계 각지에서 300여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논문 발표를 신청해 이 가운데 144명에게 130개 주제발표 기회를 제공했다. 발표자 중에는 에드워드 슐츠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소장을 비롯해 저명한 학자도 포함돼 있으나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학 전문가들에게 발표기회가 많이 돌아갔다. 지정 패널은 △언어 △역사 △문학△사상·종교 △예술·민속 △사회·문화 △정치·경제 △교육 △북한 등 9가지로 나눴다. 17일 등록 및 리셉션에 이어 18일 베르너 사세 유럽한국학회 회장과 정해창정문연 대학원장이 기조강연에 나선다. 사세 회장은 ‘한국학의 지평확대-내적 시각에서 세계문화적 시각으로’란 주제발표를 통해 “과거 한국학이 한국문화를 외부 문화와 비교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면,현재 한국학은 한국문화와 외부문화의 상호작용에,미래의 한국학은 세계문화의 한 예(例)로서의 한국문화에 포커스를 맞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 대학원장은 ‘현대에 있어서 상호성과 세계화-자아와 타자 사이에서’란 주제 강연에서 한국학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일원주의와 다원주의 양쪽 모두 편협한 국수주의 또는 천박한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오판의 가능성을 경계하면서도 대세인 세계화 흐름에 맞설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그는“세계화는 지역·인종·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라며“‘이성’,곧 학자들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패널별 발표에서 프랑스 리옹3대학 이진명 교수는 프랑스의 척박한 한국학연구의 현주소를 알린다. 이 교수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한국학 연구 교수나 연구원 수는 일본학이나 중국학의 10분의1에 불과하다.게다가 한국어 교육도 이들 두 나라는 물론 아랍어 히브리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등에도 크게 못미친다.2002월드컵 이후 한국학을 배우는 학생 수가 약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지만,일시적 현상일 뿐이다.이 교수는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지만 이게 곧 한국학 연구자 증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며 “장기적으로 세계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증대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조금씩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문연측은 당초 이번 대회에 앞서 북한측 인사들을 초청하려고 북한을 방문,사회과학연구원 관계자들과 협의했으나 ‘서해교전’이 터진 뒤 북측으로부터 답신이 없는 상태다. 장을병 정문연 원장은 “5년마다 세계 한국학대회를 열 계획이지만 북한측이 개최를 원한다면 내년이라도 제2회 대회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편법 스팸메일 오늘부터 금지

    11일부터 ‘광-고’‘광 고’‘광*고’’등 변칙 표시된 스팸메일이 전면 금지된다. ‘re:보내주신 의견에 대한 답신’‘안녕하세요’‘안부여쭙니다’등의 변칙 표기도 마찬가지다.1차 위반하면 시정명령을,2차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정보통신부는 10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개정된 시행규칙에 따르면 일반적인 광고성 전자우편은 제목란 맨앞에 (광고)표시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음란하고 선정적이거나 폭력행위·약물남용·범죄를 자극하는 등 청소년 유해 내용에 대해서는 (성인광고)를 표시해야 한다. 광고성 전자우편의 전송자는 이름과 e메일 주소,전화번호 및 주소를 반드시 본문에 명시해야 한다. 박대출기자 dcpark@
  • 美국무부대변인 문답 “”북한 답신없어 특사방북 취소””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2일 대북특사 파견을 철회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당분간 대화노력은 없다는 뜻인가.북한이 대화일정을 제시한다면. 이미 내놓은 방북 제안은 유효하지 않다.대통령이 지난해 6월 밝힌 대화제의는 여전히 유효하다.정기적이고 일상적인 북한과의 뉴욕 접촉은 유지되기를 기대한다.대화 일정을 재조정하는 것은 나중 문제이며 사태의 진전을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사과하면 용납못할 분위기가 바뀌는가. 향후 사태를 봐야하겠지만 서해교전은 분명한 무력도발이며 북한의 행동과 이같은 상황이 초래된 것에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그러나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한다는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 ◇서해교전이 없었더라도 방북은 취소될 예정이었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현 시점에서 특별한 처방을 내놓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사태진전을 주시할 것이고 북한이 장래 무엇을 하고 어떤 시점에서 대화일정을 다시 생각하는지 두고 볼일이다. ◇당초 대화의 의제는. 지난해 6월 대통령은 북한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싶은 쟁점들을 밝혔다.미사일 개발과 판매,핵 개발,테러리즘과의 연계,재래식 무기 등에 관심을 표명했다.지금도 우리가 논의하고 싶은 정책사항들이다. ◇북한은 협상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시간을 벌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시의적절한 답신을 기다린다고 말했고 북한도 아무 날짜나 선택하라고 했다.독립기념일이 다가오면 구체적인 일정을 짜기에 시간이 부족해 빠른 반응을 기다린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북·미 대화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두고봐야 한다.현시점에선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다.우리는 이번 사태를 우려한다.면밀히 계속 관찰할 것이며 남한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그러나 방북을 철회한 가장 실질적인 요인은 북한의 답신이 없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미국이 서해교전을 조종했다고 비난했다. 거짓말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미치는 영향은. 논의할 대상이 아니지만 합의사항은 미국이나 북한이 계속 지킬 것으로본다. ◇북한의 응답기간을 1주일로 정한 것은 너무 짧지 않으냐. 앞서 말했듯이 북한이 원하지 않는 날짜를 미리 물었다.방북에 앞서 대표단을 구성해야 했고 대표들의 준비도 필요했다.
  • 美, 北선제공격 위성촬영

    (워싱턴 백문일특파원·김수정기자) 미 국방부는 2일(현지시간)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한국 해군에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every reason)’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한국이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함정이 이미 남쪽으로 상당히 넘어왔고 먼저 공격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증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북한측의 공격이 의도적이었는지,아니면 우발적이었는지 말할 입장이 아니지만 유엔군과 한·미 연합군에 영향을 미칠 ‘정전협정 위반’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고위관계자는 “미 국방부가 1일 오후부터 위성촬영 판독 등을 통해 서해교전의 정밀분석 작업에 들어갔다.”며 “북한이 한국 해군을 공격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친 것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부는 서해교전으로 대화의 분위기가 불가능하고,북한이 시의적절한 답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대북특사 파견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성명을 통해 “1일 밤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에 특사 파견을 더 이상 계획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며 “한국과 일본에도 이같은 방침을 전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미국측에 대북 특사를 예정대로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 데 대해 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특사 파견계획을 취소함에 따라 한·미간 대북 정책을 놓고 갈등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바우처 대변인은 10일로 예정된 특사(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 파견을 준비하기 위한 북한의 ‘시의적절한(timely)’답신이 없었으며,서해 무력충돌로 대화를 수행하기에 맞지 않은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철회배경을 설명했다.그는 현 시점에서 방북 일정과 관련한 재조정은 없으며,사태가 진전되는 것에 따라 나중에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9월 의회가 개회될 때까지 북·미 대화 재개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미국 특사 제의 철회가 완전무산이 아닌 지연으로 보고 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한 중재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정부는 한·미간 협의를 위해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4일) 이후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mip@
  • 美 특사철회와 서해교전 분석 안팎/ 韓美·北美관게 ‘1년전으로’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 국방부는 서해교전을 북한의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공언했다.이 증거의 존재가 앞으로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한 관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와 함께 미 국무부도 특사파견을 철회하게 된 주 책임을 북한의 무성의에 돌렸다.미국의 대북 시각이 다시 1년 전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북한 도발 증거=미 국방부는 1일 오후부터 위성촬영 사진과 한반도 상공에서 활동 중인 정찰기로부터 수집된 각종 정보 등을 토대로 정밀 분석작업에 들어갔다.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NLL)보다 남쪽에 있었고 선제공격을 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분석의 결과로 보여진다. 아직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으나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를 대표하는 국방부가 북한의 무력도발을 입증하는 증거를 머지않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워싱턴 고위관계자는 전했다.이 관계자는 누가 공격지시를내렸는지는 가려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전 준비를 거쳐 의도적인 공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이번 분석결과를 토대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모종의 조치를 준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워싱턴의 군사전문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불신감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못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은 서해교전에 대한 분석작업이 끝나는 대로 결과를 한국에 통보할 예정이며,한국과 함께 누가 지시를 내리고 작전을 지휘했는지 여부도 가려낼 것으로 전해졌다. ◇철회 배경은=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서해교전이 대화를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특사파견 철회의 주된 이유는 북한의 답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10일 평양행 비행기를 띄우려면 대표단 구성 등 준비상황이 필요했고 최소한 독립기념일인 4일 이전에 북한의 답신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주어진 시간이 이례적으로 짧았던 점을 감안하면 답신 운운은 옹색한 주장에 불과하다.그보다는 서해교전이 철회의 직집적인 계기가 됐고 그 이면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북·미 대화 재개를 마뜩해하지 않는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정부가 서해교전 이후에도 특사를 파견하라고 요청했지만 미 행정부는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북·미 관계뿐 아니라 한·미관계도 사실상 1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mip@
  • ‘교전 암초’ 평양길 또 좌초/美 對北특사 어떻게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서해교전 사태로 북미간 대화재개가 다시 오리무중에 빠져들고 있다.지금으로서는 이달 중순 미 특사 파견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 관리들은 2일 비록 익명을 요구했으나 미국의 대화제의에 대한 북측의 답신이 없고 서해교전이 발생한 점을 들어 대북 특사 파견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리들은 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가 당초의 제의와 달리 10∼12일 평양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미국측이 1일 북한측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내 대표적 온건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이날 ‘특사파견 재검토’ 입장을 밝혔는데 이 정도라면 강경파의 입장은 더 강할 것으로 여겨진다. 파월 장관이 말한 ‘재검토(review)’는 북한의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다면 특사 파견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설득으로 햇볕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처럼 대북 강경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북·미간대화 분위기는 당분간 냉각기를 거칠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미국이 서해교전의 진의를 파악하고 북한의 답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미국의 외교정책은 실무선의 검토를 거쳐 담당 차관보,차관,장관 및 관계부처 회의 등 다단계를 거친다.지난 4월 말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백악관이 발표한 뒤 2달이 지나서야 미국이 대화일정을 제시한 것도 이같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때문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미간 대화를 위한 걸림돌이 해소되는 듯하더니 갑자기 새로운 변수들이 생겨났다며 북한의 반응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북한이 미국측 제안에 이의를 달거나 서해교전에 대한 한마디 해명도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은 북한이 여전히 미국과 진지하게 대화하려는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며 온건파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북한이 서해교전을 미국의 배후조작으로 간주하는 성명에 대해 강경파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강경파들은 북한측의 이같은비난 방송이 북한내 군부가 미국과의 대화를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특사파견이 늦어지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북한과 대화한다는 미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 조야와 한반도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오히려 이번 사태로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하는 방법이 쉽지 않음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mip@
  • [사설]‘대북특사’ 이럴수록 보내야 한다

    서해교전으로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이 재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미 국무부의 파월 장관은 물론 바우처 대변인은 대북특사의 파견은 북측의 최종 답신을 받고난 뒤 결정하겠다는 매우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아직 북측의 답변이 도착하지 않았지만,특유의 이중성을 드러낼 공산이 클 것으로 보인다.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서해교전은 미국의 비호 밑에 일어난 것”이라는 비난 성명이 그 반증이다.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어렵사리 마련된 북·미대화의 성사가 불투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9·11테러사태 이후 그러잖아도 북한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터에 서해교전까지 겹쳐 미국의 특사파견 재검토 방침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또 이는 미국이 최종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그러나 한·미 양국은 대북문제에 있어 일본과 함께 철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왔다.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군사동맹이라는 기초 위에 세계 각국의 지지와 공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이번 대북특사 파견도 한·미 공조의 틀 속에서 결정되어야한다고 본다.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지난 1일 정상회담을 통해 서해교전에 냉정하게 대응하기로 합의한 것은 공조의 기본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김 대통령이 어제 귀국 대국민보고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따라서 미국은 특사파견을 유보하는 것과 예정대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파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숙고해주길 바란다.우리는 그 답이 ‘이런 때일수록 파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제에 북한에도 ‘남한의 선제공격에 의한 자위적 조치’라고 강변하거나‘남조선 군당국자들의 도발’이라는 식의 억지주장을 즉각 거둬들이길 당부한다.남북 당국자회담을 수용해 진상규명에 나서는 동시에 미국과도 협력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더이상 평화와 협력 말고는 북한이 나아갈 공간과 취할선택이 없음을 직시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 韓·中 “탈북자 현안 일괄타결”

    중국측의 베이징 한국 대사관 영사부 무단진입 및 한국 외교관 폭행사건과 관련,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한국과 중국의 외교 마찰이 다소 수그러들 조짐이다. 최성홍(崔成泓) 외교부 장관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19일 태국 차암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협력대화(ACD)회의 기간중 별도 만남을 갖고 중국 공안의 외교 공관 진입 파문과 한국대사관에 진입해 있는 20명의 탈북자 문제를 일괄 해결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측은 영사 문제와 관련,깊은 유감을 전하고 중국측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으나 중국측은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잘못이 없다.’는 논리를 되풀이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그는 그러나 “양측은 탈북자문제를 매개로 얽힌 이번 사태의 파문을 조기 진화하는 것이 양측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차분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다뤄 나가자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양측은 이번 사건의 조속하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양국 실무자급 협의를 개최,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리빈(李濱)주한 중국 대사는 베이징 주재 한국 공관 진입 등을 둘러싼 파문과 관련,한나라당이 보낸 항의 서한에 대한 답신에서 서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帝政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4)새로 밝혀진 사실들

    러시아 문서보관소는 구한말 역사의 보고(寶庫)였다.발굴된 문서중에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흥미진진한 사실들이 수두룩했다.특히 고종의 해외망명기도와 헤이그밀사 파견의 좌절,아관파천의 진실 등은 근세사를 새로 고쳐 써야 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헤이그밀사사건의 전말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주권불가침을 인정하며 국제회의에서 상기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하였다.초청장은 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에게 외교문서로 전달되었다.러시아 정부는 이범진 공사를 합법적인 공사로 지금도 인정하고 있다.그곳에있는 고종황제의 밀사에게 이 뜻을 전해도 무방하다.(1905년 11월1일 외무장관이 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 파그딜로프에게 보낸 지시문) 이 지시문은 고종이 서울의 프랑스어학교교사 마르텔을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에게 극비리에 파견,헤이그회의에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토록 요청한 데 따른 러측의 공식 답신이다.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외교적 입장은 대한제국의 독립국가유지였으며 헤이그회의 참가지원이었음을 알수 있다.헤이그 만국평화회의는 니콜라이2세가 주창해 열렸고 러시아는 이 회의의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을사늑약체결(1905년 11월17일)이후 새로운 국제정세가 전개되면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혼선과 모순을 노출했다. 1907년 6월30일 회의가 막상 개막되자 러시아는 대한제국 대표의 회의장 입장을 거부했다.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의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여론의힘을 빌려 국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의 마지막 시도가 무참하게 꺾이는데 러시아가 일조한 것이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이처럼 방향을 튼 이유는 무엇일까.일본과의 비밀협상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양국은 1907년 7월30일 체결한 협약에서 대한제국과 만주,몽골 등 3개 지역에 대한 이해득실을 각각 정리했다.두나라는 ▲만주에서 양국간 분계선을 확정하고 ▲러시아는 일본과 대한제국간에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결속에 대해 간섭과 방해를하지 않으며 ▲일본은 외몽골에서 러시아의 특수권익을 승인한다 ▲쌍방은 협약체결을 비밀로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러·일비밀조약 체결 한달전에 고종이 밀사를 파견하자당황한 러시아 외무부는 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전 파리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부랴부랴 전문을 보내 입장을 거부토록 지시했다.넬리도프도 “한국인들이 왔지만 접견을거부했다”는 보고문을 본국에 띄웠다.뿐만 아니라 러시아 외무부와 주일 러시아대사 등은 대한제국의 헤이그밀사파견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일본측에 흘렸다.밀사들의 회의장 입장이 좌절된 뒤 이토(伊藤博文)가 고종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양위를 요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고종황제의 측근인 윤택영(순종의 장인)과 권신목(영어통역원)이 총영사관으로 찾아와 헤이그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으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설득해보냈다.또 이종호(이용익의 손자)를 위시한 일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지사에게 헤이그에 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 왔다는 주지사의 전보를 받고 저지하도록 조치했다.(1907년 7월25일 플란손 총영사가 헤이그밀사사건과관련,외무부에 보낸 보고서) 국제정세에 어두워 러·일비밀협상이 진행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고종은 니콜라이2세와 러시아의 ‘변함없는우정’만 믿고 3인의 밀사를 파견했던 것이다.결국 밀사들은 황제접견은커녕 외무장관도 만나보지 못했다.러시아 외무부는 밀서를 서류철속에 보관해 놓았을 뿐이다. 러시아는 대한제국에서 포츠머스조약(1905년 9월5일 러·일전쟁후 양국이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을엄격히 준수하려고 한다.이 조약으로 외무부는 대한제국이 러시아의 지원이나 협조를 얻어 일본의 압제를 벗어나려는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때문에 러시아 지방당국은 전고종황제(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7월19일 순종에게 양위)정부의 지시에 의거,러시아 국경안에서 투쟁하는 한인폭도(의병)의 기도를 분쇄하고 있다.…한인들은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독립투쟁을 바란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회의에 갑작스러운 대한제국 밀사의 출현은 서울에무질서를 발생시켰으며 일본은 이 기회를 활용해 분명한 본보기(고종의 퇴위)를 보였다.일본에 구실을 주는 한인들의 항일투쟁 고무발언을 삼가야 한다.(1908년 10월6일 외무장관이 새로 취임한 소모프 총영사에게 보낸 훈령) 니콜라이2세는 이 훈령문 상단에 “공감한다.”는 친필의견을 남겼다.지금까지 러시아가 적극 후원한 헤이그밀사파견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무산됐다는 학설과는 달리 헤이그밀사사건은 대한제국과 만주,몽골을 맞바꿔친 러시아의 냉혹한 국제외교의 부산물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아관파천의 막전막후 1896년 2월2일 전문으로 보고한 바와 같이 신변의 위협을느낀 고종이 밀지를 보내 수일안에 왕세자와 함께 공사관에 피신하겠다는 희망을 밝혀왔다.전임 대리공사 베베르와 함께 고종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보호하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궁중을 떠나는 날짜와 시간을 사전 통보해줄 것을 부탁하고 고종의 밀지를 전해온 이범진에게 궁중에서 러시아공사관까지 오는 도중 예상되는 위험성을 지적해 주었다.이범진은 고종이 궁중에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미 모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다음날(2월3일) 고종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2월9일 저녁 공사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이날 결행하지 않고 경비병 증원을 요청해왔다.공사관은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긴급요청,2월10일 해군대령 몰라스가 100명의 수병을 인솔하고 서울에 왔다.고종은 2월11일새벽 7시30분에 공사관에 왔다.(1896년 2월11일 스페이예르 대리공사가 로바노프 외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결심한 뒤 측근 이범진을 통해 밀지를 보내고 당초 결행키로 한 날짜를 어겨가면서 피신하기까지 10일동안의 급박했던 순간을 보고한 비밀전문 내용이다.당시 서울에는 전임 베베르 대리공사도함께 있었다.멕시코 공사로 발령을 받은 베베르가 업무인수인계를 위해 서울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본주재 러시아공사 히토로보가 갑자기 사망하자 러시아는 고종과의 친분을 고려,스페이예르를 도쿄로 보내고 베베르를 유임시켰다. 문서내용에 따르면 아관파천은 대한제국에서의 주도권을노리고 고종과 친러파들의 공사관 피신요청을 모르는 척들어준 러시아의 ‘기획외교’의 결과물처럼 보인다.물론서울에 부임해온 지 한달밖에 안된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의 입장에서는 주재국 국왕의 공사관 피신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맞아 다소 흥분,실체를 부풀렸을 수도 있다.당시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이던베베르는 1903년에 쓴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에서 “뜻밖의 정변이 발생했다.러시아공사관 경비해군은 160명이었으나 서울주둔 일본군 수비대는 1000명이 넘었다.러시아는 이때부터 이전 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하게되었으며 한·러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라고 외교적으로 해석했다.스페이예르는 러시아공사관에 375일동안 피신해 있던 고종이 환궁한 지 1년도 채 안된 1898년 2월21일 전문에서도 “고종에게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권했다.라고 보고하는 등 제2,제3의 아관파천을 꾀했다.이에 대해 베베르는수기에서 “스페이예르가 대한제국 정부와 독립협회,그리고 일본과 자주 충돌하는 경솔한 행동을 해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실됐다.”고 질책하고 있다. ■고종의 러시아 망명기도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은 이후에도 여러차례 거론된다.최근 이범진 공사가 수차례에 걸쳐 고종황제가 친일파의새로운 간계 때문에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필요할경우 다시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하려 한다고 하며 친일파들은 의친왕 이강을 제위에 오르도록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한다.(1902년 5월15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파블로프 대리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고종황제가 위험에 처했다는 어떠한 증후도 현재 포착하지 못했다.(1902년 5월19일 파블로프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답신) 이처럼 러시아공사관으로의 재피신 가능성이 오가는 가운데 러시아망명에 대한 비밀보고서는 1903년에 처음 등장한다. 오늘 고종황제가 신임하는 환관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점령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서울주둔 일본군은 궁정을 포위하고 있고 그들에게 매수된 시위대가 자신을 살해할 것 같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조언을 요청했다.아마 고종황제는 자신이 위기에처하면 공사관이 러시아로 망명을 할 수 있도록 은신처를제공하겠다는 약속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1903년 12월30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황제가 일신상에 위험이 있을 경우 불가피하게러시아공사관에 피신처를 구하거나 아니면 러시아로 탈출하는 문제에 대해 러시아측의 협조가능성을 은밀하게 타진해왔다.고종은 대궐을 빠져나오기 쉽고 피신을 예상할 수없도록 하기위해 대비(1904년 1월2일 서거)의 시신을 이장할때 사당에서 공사관 담장의 샛문을 통해 오겠다는 것이다.(1904년 1월21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서) 하지만 이에 대한 러시아 본국의 답신은 없었다.고종이 헤이그밀사사건으로 퇴위하고 난 뒤인 1908년부터 합병직전인 1910년 사이에 망명설이 집중적으로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전 고종황제가 배편으로나 육로로 러시아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고종이 러시아영토에 출현하면 다시 극동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되어 대한제국 문제를 둘러싼 한·러관계는 긴장이 조성될 것이다.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조치는 극동정세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고종황제의 망명계획을 거부하는 것이 좋다.(1908년 11월20일 도쿄주재말레비치대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전 고종황제가 러시아나 청국으로 피신할 마음을 갖고 있다.이는 황제자신이나 백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권고를 했다.(1909년 1월8일 소모프 총영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당시 고종은 일본의 핍박과 잇따르는 시해기도에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 상태였던 것 같다.심지어 “차라리 해외에나가 죽어도 좋다.”는 말을 소모프 총영사에게 했을 정도였다.의병의 도움을 받아 일본 감시요원을 따돌린 뒤 러시아나 청국국경까지 탈출할 기회를 엿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역사에 ‘만약’이란 가정법은 없다지만한일합병이전에 고종의 러시아 망명이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또 어떻게,어디로 흘러갔을지 자못 궁금한 장면이다. 노주석기자 joo@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3)러 거주 한인들의 수난과 투쟁사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1860년 러시아와 청국이 북경조약을 체결,광활한 우수리지역이 러시아영토로 편입되면서부터였다.이때 비로소 조선과 러시아는두만강유역을 경계로 국경선을 맞댔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러측 극비문서에 따르면 1884년에러시아 거주 한인은 대략 1845가구 9000여명에 달했으며남우수리지방의 포시에트에 15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독신으로 넘어와 품팔이를 하던 것이 점차 가족을 동반한집단이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다.물론 러측 문서에 나타난 이같은 한인이주는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발해유민등 한인 원주민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인이주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863년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시에트지역에 가족단위 이주민이옮겨온 이후 이주민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당시상황은 이와 같은 한인 이주민이 크게 도움이 됐다.(1908년 3월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운테르베르게르가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한인이주문제는 아무르동부지역 총독부에서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주로 등장한다.이주의 원인으로 대한제국 북부의 토질이 나쁘고 흉년이 계속된 데다 관헌의 파렴치한 착취에 따른 탈출로 분석했다.또 대한제국 국경에서 가까운 남우수리 지방은 습기가 많고 해양성 안개가 자주 끼어 러시아 농민들은 농지로 적합치 않다며 떠나 버렸지만 한인들은 이곳의 기후와 토질이 한반도와 유사해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러시아 행정당국에서도 한인 이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러시아군대와 도시민들에게 농산물을 재배,공급하는 한편 도로개설과 보수 및 짐마차 부역노동 등에 동원했다.한인 이주가 급증한 것은 1870년 초 조선에 흉년이 겹쳤기 때문이다.많은 국민이 빠져나가자 조선정부에서자주 항의를 해왔다.1884년 한·러수호통상조약체결이전에이주해 온 한인은 러시아국민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온 조선인은 러시아국적을 소지하고 있으며 정교회를믿었지만 이들이 러시아인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추측이다.남우수리에 거주하는한 한인가족은 40년을 살았지만 조선식으로 살고 있다.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렇다.러시아가 청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하게될경우 한인의 충성심을 믿어서는 안된다.이곳은 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이때문에 일본은 한인의 러시아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상기 문서와 출처동일) 러시아 중앙정부나 지방당국은 한인들의 습관이나 생활풍속이 러시아인에 동화되지 않으며 황인종이 극동지방에 많을 경우 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우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정책의 시행을 차일피일 연기했을 뿐이었다.1891년 두홉스키 아무르 총독은 오히려 적극 정책을 폈다.한인의 러시아 동화를 독려하는 한편 2년간 러시아잔류허가를 받은 한인이 만기를 넘겨도 추방하지 않았고 새로 오는 이민자도 거부하지 않았다.그 결과 1904∼1905년 러·일전 기간중 한인수는 ▲남우수리 2500명▲하바로프스크와 우드스크에 7500명▲아무르에 3만 3500명에 달했다. 카자흐부대가 관리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18명의 가옥 8채를 철거하지 말고 한인이 경작하는 농토를 몰수하지 말 것.15년간 병역의무를 면제해주고 고국의 가족을 초청,러시아국적을 취득하게 해 줄 것.(1897년 8월16일 타반트 마을 촌장 이성삼외 18명이 카자흐부대 사령관에게 보낸진정서).가족을 초청,농업에 종사한다면 러시아국적취득에 동의하며 국적취득후에는 이들을 카자크관할 마을로 편입시킨다(카자흐 사령관의 회답) 카자흐란 15∼17세기 과중한 세금과 압제를 피해 러시아의 중앙부에서 남방변경지방으로 도망친 농노 및 그 자손들을 총칭하지만 주로 카자흐인들로 구성된 비정규군 둔병(屯兵)을 지칭한다.이들은 정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는 대신 유사시에 징집될 의무를 갖고 있었다.한인 이주자들도카자흐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는 한인들에게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뒤 또 다른 미개척지로 밀어내고 개척지에는 러시아인들을 이주·안착시켰다.1937년에는 이민족을 국경지역에서 소개(疏開)시킨다는 명목아래 중앙아시아의 오지(奧地)로 강제이주시켰다.러시아가 추진한 한인 이주정책의 정체를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이범윤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정치 이민자들이 노보 키예프스크(두만강 넘어 남우수리지방에 있던 소도시)를 활동거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지 유보하고 있다.(1908년 4월5일 남우수리지방 국경행정관 스미르노프가 연해주 주지사 플루그에게 보낸 통신문).한인 의병조직에 관심도 갖지 말고 처벌도 하지 말 것.그러나 격려하지는 말 것.(같은해 4월19일 플루크가 스미르노프에게 보낸 답신전문). 러시아 극동지역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이후 러시아혁명정부가 빨치산부대를 해체하는 1922년까지는 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이곳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만주와 간도,연해주 등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한·러·청 3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이와 함께 간도와 연해주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주민들의 풍부한 인적·경제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내 한인들을 한인의용군으로 편성해 러시아에 공헌케 하는 방법으로는 산악지방에서 빨치산활동으로 일본군을 교란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함경남북도에서 6000명의 모병이 가능하며 소총 2300정이 확보가능하다.…부대는 3개 연대로 구성하며 소대장이상 지휘관은 러시아인으로 한다.(1904년 11월3일 코르프 남작이 제안한 러·일전쟁시 한인의용군 편성계획). 일본 외무성이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이범윤은 200명의 동지를 모아 통감부하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이들은 불라디보스토크에서 다량의 무기를구입하고 대한제국으로 침투하기 위해 노보 키예프스크에집결해 있다. 이들중 일부는 육로를 통해 경성(서울)으로 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선박편으로 대한제국 북부로 떠났다.(1908년 7월9일 도쿄주재 러시아대사 말레비치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만주에서는 상인들이 빨치산 대원을 도와 무기와 돈을 지원해 주었다.총대장은 이범윤이며 그는 4000명의 빨치산을 지휘하고 있다.그중 1000명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3000명은 길림과 봉천지방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획책하고 있다.빨치산의 거점지역은 러시아와 청국국경지대에 일부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간도에 있다.(1911년 11월11일 하바로프스크 아무르군관구 참보부가 총참모부 관리본부에 보낸 비밀첩보보고서)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타의에 의해 대한제국에서손을 떼게 된 이후 한일합병을 전후한 시기까지 러시아의비밀문서에는 이범윤과 관련된 항일투쟁활동이 유독 많이거론되고 있다.유인석·홍범도 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러시아는 항일의병을 겉으로는 ‘강도단’‘폭도단’‘빨치산’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활용하거나 일본군의 두만강쪽 국경침범을 저지하는 데 이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이범진·이범윤·이위종 3인의 항일 역정 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발굴된 극비문서에는 이범진(李範晋·1852∼1910),이범윤(李範允·1856∼1940),이위종(李瑋鍾·1887∼?) 3인의 이름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구한말 한·러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세사람의 관계와 비극적인 인생유전에 대해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세사람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였다.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였던 이범진과 헤이그밀사로 파견된 3인중 한명이었던 이위종은 부자지간이었다.만주와 연해주땅을 오가며 평생 항일의병활동을 한 간도관리사 이범윤은 이범진의 6촌 동생이었다.이같은 사실은 이범진의 손자 이원갑(李元甲·65)씨에 의해 확인됐다. 또 고종이 같은 전주이씨인 이범진을 ‘조카’라고 호칭한 점으로 미뤄 이들은 이씨 왕가의 먼 일족이었던 것 같다.이범윤은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던 고종을 연해주로 망명시키려는 시도를 한 사실도 문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종의 측근이었던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친러내각이 무너진 뒤 주미공사를 거쳐 주러공사로 부임했다. 고종은 “짐은궁중에서 일본의 포로로 잡혀있지만 북쪽러시아를 바라보며 짐과 백성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짐의 사랑하는 조카,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곳에 남아 니콜라이2세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라.짐이 운명한 뒤에도 그곳에 남아있으라.일본이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고 있으니 송금할 수가 없다.”(1908년 1월31일)는 서신을 보냈다. 조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끊긴 뒤 이범진은 러시아측이 제공하는 월 100루블의 정치성 생활보조금을 지원받고 연명하면서도 조선정부와 일본의 귀국종용을 거부했다.러시아 외무부차관이 소모프 서울 총영사에게 보낸 1910년 5월의 전문에는 “이범진은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를 떠나지 말라는 고종황제의 어명을 지키느라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한일합병이후 ‘친러파’로 낙인찍힌 이범진이 일본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이었다.그는 1911년 1월16일 “우리의 조국은 이미 죽었습니다.전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처지에 처했습니다.자살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고종에게남기고 목을 매달았다.그의 시신은 페테르부르크 교외 우즈펜스키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범진의 둘째 아들 이위종의 일생은 더욱 기구하다.그는 7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전전하면서 3개 외국어를 익혔다.프랑스 샹생 육군사관학교를 중퇴,러시아로 들어가 주러공사관 참사관으로 일했으며 러시아의 귀족 놀켄 남작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엘리트 외교관이었다.1907년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만국기자협회에서 행한 일본규탄 연설은 세계에 일본의 잔학상을 최초로 알린 쾌거였다. 그는 생활고와 울분 등으로 러시아인 부인과 이혼한 뒤여기저기를 떠돌았다.1908년에는 군자금 1만루블을 관리하던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으며 이범윤과 함께독립운동을 꾀했지만 러 당국에붙잡혀 추방당했다.1차대전때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한 사실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이름을 바꾸고 시베리아일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조선인국제공산당원의 한 보고서에 나와있다.이후의 행적은묘연하다. 이범윤은 1903년 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라는 직책을부여받은 뒤 한때 5개 대대의 무장병력을 거느렸다. 대한제국으로의 진격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그는 니콜라예스크에서 검거돼 이르쿠츠쿠로 추방됐지만 이곳에서도 1925년까지 항일운동을 폈다.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평생을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는 노년에 거의 폐인이 돼 비밀리에입국,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주석기자
  • [6.13 지방선거 누가 뛰고있나] 동대문구, 성북구

    ■동대문구, '일꾼' 對 '경륜' 양보없는 한판 현역 구청장이 경선을 보이콧한 동대문구는 ‘일꾼론’과 ‘경륜론’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후보들은 경쟁자의 ‘치부’를 주저없이 공개,자칫 혼탁선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송차갑(57·민주당) 후보는 “서울의 민주당 25개 구청장 후보중 유일한 영남출신”이라며 ‘서울판 노무현’이라고 강조한다.때문에 핵심 전략도 호남을 축으로 한 민주당 고정표에 영남 유권자를 흡입하겠다는 것. ‘송차갑 삼쌀’로 주부들에게 잘 알려진 송 후보는 “당선되면 경동약령시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브랜드화하고 청량리 윤락가(속칭 588)와 정신병원을 이전,쾌적한 구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했다. 홍사립(57·한나라당) 후보는 24년간 동대문에서 정당 사무국장과 조직부장을 거친 ‘골수 정당맨’으로 탄탄한 인맥을 자랑한다.이 지역 국회의원선거를 ‘8전8승’으로 이끌어 선거귀재라는 별명을 얻은 홍 후보는 “이번에는 주연으로 성공하겠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을 진정한 주민의 공복으로 만들고 배봉,홍릉,답신리산 등을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꾸미겠다.”고 다짐했다. 후보 경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중인 유덕열(48) 현 구청장은 “동대문구에는 경선이 없었다.”며 민주당 후보 결정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지난 4년간 구청장으로 일한 결과를 주민들로부터 심판받겠다는 각오다. 시내 25개 자치구중 동대문구가 공무원 청렴도와 친절도각 1위,시민만족도 종합 1위의 성적표를 낸 것이 유 구청장의 자랑이다. 청량리 부도심권 개발,재개발·재건축 정리,복지시설 확충 등을 공약했다. 최용규기자 ykchoi@ ■現청장·시의원·관료 삼색대결 '성북구' 현 구청장이 낙마하는 서울지역 최대의 이변을 낳은 성북구청장 선거는 민주당 공천 경선에서 맞대결을 펼쳤던 진영호(58) 구청장과 장하운(44)후보,한나라당 서찬교(59)후보 등이 건곤일척의 3파전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의 농간으로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진 구청장은‘경선무효’를 외치며 무소속 출마를 준비중이다.“구정에 최선을 다했으며 마무리도 직접 하겠다.”는그는 개발과 복지를 근간으로 성북의 위상을 바꿔놓겠다는 의욕을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역 재개발사업의 마무리와 정릉·월계지역 도로확장,정릉·장위지역의 지하철 노선화 등과 함께 ‘삶의질’을 높이는 행정을 펴겠다고 공약했다. 재야통의 재선 시의원인 장후보는 “불공정경선 주장을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관료주의를 청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는 “행정에 주민 의사를 투영해 진정한 민선시대를 열겠다.”며 소프트웨어 중심의 구정쇄신과 환경친화적 개발,복지·교육인프라 확충,경제특구 지정을 통한 경제 활성화 등을 약속했다. 정통 행정관료로 서울시와 국무총리실 등을 거친 서 후보는 “성북에는 청렴한 내가 적임”이라며 “40년 공직생활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지역 균형개발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복지시책을 펴겠다.”고 다짐했다. 서 후보는 “갈수록 심각해 지는 교통·환경문제 해결을위해 인근 자치구들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면서 “주민들은 결국 자신의 개혁·청렴성을 선택할것”이라고 자신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짝수해 대형산불 악몽 끝”

    “짝수해의 대형 산불 악몽은 이제 그만,늦은 봄나들이갑시다.” 강원도 동해안지역 공무원들이 짝수해마다 겪어오던 대형산불의 긴장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안도의 숨을 고르고 있다. 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이 종료되는 이달 15일을 앞두고6∼8일에는 강릉시내에 30㎜를 비롯, 동해안 각지에 많은비까지 내려 올 봄 산불은 사실상 막내렸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시 산림과 관계자는 그동안 산불방지를 위해 협조해준 모든 직원들에게 감사편지(e메일)를 보내 “아카시아꽃이 피면 산불도 끝난다고 했는데,마침내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며 “대형 산불을 막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푸른 강릉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결실”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다른 부서 직원들도 “이제 산림녹지과 직원들도 철늦은 꽃구경도 하고 가족들과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보기 바란다.”며 답신을 보내는 등 자축 분위기가 가득하다. 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이었던 지난 2월15일부터 지금까지 강릉시내에서 발생한 산불은 모두 2건으로 피해면적도모두 0.6㏊에 그쳤다. 지난 98년 사천 산불을 비롯, 4건의 산불로 306.9㏊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하고 2000년에는 4월7일부터 연쇄 산불이 강릉 도심까지 위협,1447㏊를 태우면서 숱한 이재민까지낳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역대 최저의 봄 산불피해 기록이다. 대형산불을 막기위해 강릉에서는 지난 3월초부터 공무원460명과 이·통장 156명,유급 감시원 284명이 건조기에 매일 교대로 주·야간 교대근무 및 순찰활동을 폈고 42개 사회단체에서 산불감시 지원 및 격려에 나서는 등 주민들의성원도 줄을 이었다. 강릉시 김용수(金龍洙) 농림수산경제국장은 “산불예방에 불철주야 협조해준 시민들과 공무원들에게 감사한다.”며 “산불 경계기간이 일단락되는 15일이후에는 그동안 고생한 산림녹지과 직원들을 중심으로 2박3일 정도의 휴식시간을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 美의원단 방북희망 편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 여야 의원단이 다음 달 말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2주 전 박길연(朴吉淵) 유엔주재 북한 대표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23일 확인됐다.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공화당 커트 웰던 의원의 명의로 보낸 편지에서 미 의원단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을 갖겠다는 계획을 전달했다. 미 의회가 휴회하는 5월24일을 전후해 평양을 방문할 것이며 앞서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거칠 뜻을 밝혔다.그러나 미의회 관계자는 아직 북한의 답신은 받지 못했으며 북한 방문 계획도 유동적이라고 덧붙였다.
  • 월드컵 한국대표팀 오늘 재소집

    한국 대표팀이 12일 다시 소집돼 월드컵대회 개막 때까지논스톱 훈련에 돌입한다. 첫날엔 국내파들만 소집되며 해외파들은 뒤늦게 합류한다.설기현(안더레흐트) 안정환(페루자)은 대한축구협회가 소속구단에 조기 합류를 요청했지만 답신을 받지 못했다.윤정환(세레소) 최용수(이치하라) 유상철 황선홍(이상 가시와) 박지성(교토) 등 일본파는 21일 합류할 예정이다. 대표팀은 오는 20일 대구에서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을 치른 뒤 파주트레이닝센터로 자리를 옮겨 훈련을 계속하며 27일엔 인천에서 중국과 평가전을 치른다.
  • 임특사 김정일 면담 안팎/ ‘남북관계 극적 돌파구’ 기대

    임동원(林東源) 특사가 4일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로 찾아온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한반도 위기의 해법 및남북관계 진전 방안 등에 대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게 됐다. 임 특사와 김 위원장간 면담이 이날 밤 전격 성사되고,임특사의 서울 귀환 일정이 5일 오후로 정해짐에 따라 현안에 대한 남북의 이견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 아니냐는희망적 관측을 낳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전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의 협상을 재개키로 했다고 밝히는 등 유화적 태도를 보인 점으로 미뤄 이른 시일 안에 북·미 대화도 시작될 것으로 점쳐진다. 임 특사는 이날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평화와 남북간 화해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남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자는김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구체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사찰을 수용하고,미사일 개발·수출을 중단할 것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특사는 또 북·미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선남북 관계를 우선 진전시켜야 한다며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금강산 육로관광,이산가족 문제해결 등을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이를 위한 적십자회담,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당국간 군사회담(국방장관 회담) 등의 재개도 촉구한 것으로알려졌다. 이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등이 사실상 북한의 ‘국방체계’에 큰 변화를 요구하는,쉽지 않은 사안들이어서 김 위원장이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북한이 줄곧 요구해 온 전력 및 식량·비료지원 문제,제4차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월드컵과아리랑행사의 연계 협조방안 등도 5일 임 특사와 김용순(金容淳) 비서간 협상을 통해 최종 확정될 공동보도문에 포함될 수 있는 사안들이다. 김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김 위원장의 답신 여부,서울 답방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입장 표명 등도 주목거리다. 정부 당국자는 “임 특사가 김 대통령의 뜻을 김 위원장에게 전한 뒤 이에 대한 좋은 소식을 받아 올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현안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될경우 북측이 다시 서울로 특사를 파견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리빈 주한 中대사 “탈북자 난민 아니다”

    리 빈(李 濱) 주한 중국대사는 20일 한국언론재단 강연회에서 최근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고있는 개인 및 국제기구·단체의 활동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리대사는그러나 “한·중관계는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라는 좋은 환경을 다 갖추고 있는 만큼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중국이 탈북자 지원단체들에 대한 단속에 나선다고 했는데.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25명은 국제법 및 중국의국내법,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 중국의 국내법에위반되는 행동,즉 조사활동,탈북자의 제3국 도피알선 등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이것은 확실히 중 국법을 위반한 것이다. ●중국은 51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할 의향은 없나. 북·중간에는 난민이 존재하지 않는다.한국은 ‘탈북자’라고 하지만 중국은 ‘국경을 넘은 불법 월경자’로 본다. 국제법적 견지에서도 불법 월경자를 난민이라고 할 수는없다.이 문제로 한·중,북·중 관계에 악영향을 주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함께 봐야 한다. ●중국은 최근 한국 의원 4명에 대해 비자 발급을 거부했는데. 오해가 있었다.황우여(黃祐呂·한나라당) 의원 등 4명은양국이 결정한 날짜보다 일주일이나 앞서 대사관을 찾아와하루만에 비자발급을 내달라고 요청했다.중국 본부에 보고,답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황 의원측이 “또 거부당했다.”며 언론에 밝혔다. ●중국산 쌀수출과 관련,경제마찰의 우려가 있다. 중국의 쌀 수출은 미량에 불과하다.중국쌀이 대량 유입돼한국의 쌀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포커스 이사람/ “남북한 언어통일 위한 기초작업”

    “30여년에 걸친 교수생활을 마감하는 책입니다.공동저자인 북한의 노길룡 교수에게도 하루 빨리 ‘남북한언어비교연구’의 출판 소식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이 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서울대 언어학과 이현복(李炫馥·65) 교수는 요즘 오는 4월 출간할 ‘남북한언어 비교연구’의 마무리작업에 여념이 없다.북한의 혜산사범대 노길룡(60) 교수와 함께 한 공동작업의 결실이어서 이 책은남북한 공동학술연구서 1호로 기록될 전망이다. ‘남북한…’은 5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발음·맞춤법·어휘·문법·표현 등 5개 분야별로 남북한의 언어차이를 사전식으로 기술한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90년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의 한국어 교수로 초빙됐다.여기서 같은 과에재직하던 북한의 노길룡 교수를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남북간 언어의 비교가 언어통일을 위한 기초작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했다.이어 남북의 교과서와 사전,학술서적 등을 바탕으로 언어의 차이를 비교한 대조표 작성 등 분석작업에 들어갔다.두 학자는 91년 7월 ‘결과를 공동명의로 출간한다.’는 합의서를 교환했다. 이 교수는 92년 7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서신 교환을통해 공동연구를 계속했다.그후 노 교수가 북한으로 돌아간 뒤에는 연락이 끊겨 이 교수는 혼자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 교수는 “노 교수의 답신을 기다리며 출간 시기를 미루다가 결국 출간 소식을 알리지 못한 채 책을 출간하게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퇴임 뒤 한국음성언어연구소를 열어 사이버 공간을 통한 영어·한국어 표준발음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어 표준발음사전의 편찬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말은있지만 문자가 없는 태국의 라후족에게 한글을 가르친 이교수는 세계 오지를 돌며 한글보급운동도 계속 펼쳐나갈계획이다. 이 교수는 “정년퇴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면서 “앞으로 라후족의 사촌뻘로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태국 오지의 이카,리수 등의 부족에게도 한글을 전파할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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