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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통신문 철수 담임 선생님이 보낸 첫 가정통신문은 다음과 같았다. “철수는 똑똑하고 생각이 깊으며 유능합니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에게 알랑거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복안을 이용한다면 앞으로 이 버릇을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철수의 어머니는 가정통신문의 답신란에 다음과 같이 덧붙여서 선생님에게 보냈다. “선생님의 복안이 주효하면 제발 알려주십시오. 철수 아버지에게도 그걸 써봤으면 합니다.”●남자가 약한 것 10대:여자 친구의 애교에 약하다. 20대:애인의 눈물에 약하다. 30대:우리 아기 우유값에 약하다. 40대:마누리 주먹에 약하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형제간 분쟁에 휩싸이는 등 재계 일각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친족간 지분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잡음없는 형제경영은 박인천 창업주 회장이 생전에 그룹경영 원칙을 세우고,2세들이 이를 충실히 따른데서 비롯됐다. 박 회장은 2세들의 지분 분배와 관련해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이 생기기 쉬우므로 남자들에게만 상속하고 ▲4자(5남 가운데 4남 종구씨를 제외한 성용·정구·삼구·찬구씨)합의 경영 형태로 형제간 합의아래 회장을 선임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4자 합의가 최우선이지만 합의가 안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르고 그래도 결정나지 않으면 가장 손윗사람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동생에게 물려주겠다” 1984년 그룹 총수에 취임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형제경영 실천의지를 보였다. 박 명예회장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는 실제로 65세가 되던 1996년 그룹창사 50주년을 맞아 동생 정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이후 정구 회장이 65세이던 2002년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3남인 삼구 현 회장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결국 그룹의 두 형제는 65세에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이 우연히 만들어진 셈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61세인 삼구 회장이 65세가 되는 2009년에 회장직을 4남인 찬구(58)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에게 넘겨줄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룹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동생 찬구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이양하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10대 기업으로 키워내 성용 명예회장은 박인천 창업회장의 49재를 지낸 1984년 8월3일 제2대 그룹 회장으로 조용히 취임했다. 선친이 타계한 지 얼마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성격대로 요란한 취임행사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경영전략 발표도 일절 갖지 않았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던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그룹 경영을 자문해 왔다. 그러다가 1973년 10월 부친의 ‘명령’에 따라 교단을 떠나 금호실업 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참여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10월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만에 그룹 총수를 맡게 된 것이다. 성용 회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영이론에 밝은 ‘총수’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당시 3회 이상 논문 게재시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던 세계적인 논문 권위지인 ‘인터내셔널 이코노믹 리뷰’에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이 실리는 등 미국에서 계량경제학자로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해외 고급두뇌 유치정책에 따라 1968년 귀국행 보따리를 쌌다. 성용 회장은 부친의 권유로 정부에 몸담게 된다. 창업주 회장이 버스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요금인상 문제로 당시 알고 지내던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학렬 경제수석을 만나 성용 회장을 소개했고 그 자리에서 비서관으로 채용케 했다. 그는 대통령 경제비서관, 부총리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하다 1971년 평소 원해 왔던 학계로 다시 옮겼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학계의 탄탄한 학맥인 ‘서강학파’를 형성했다. 이 때 교단에서 만난 제자들을 회사에 입사시키기도 했다. 박상환 금호생명 부사장 등이 박 명예회장의 ‘애제자’들이다. 이러한 박 명예회장의 독특한 경력은 당시 재계의 2세 경영인 중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이 오히려 그룹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 광범위한 인맥들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이 취임한 1984년 그룹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980년 초 일어난 삼양타이어 분리파동과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불황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이론의 대가로서 현실 경영인으로서는 결심하기 힘든 단안을 내린다. 한보철강의 전신인 극동철강과 금호섬유를 매각하고,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통합해 상호를 ㈜금호로 바꿨다. 흑자기업인 광주고속은 금호건설을 합병했고, 금호화학과 한국합성고무를 합쳐 금호석유화학으로 재탄생시켰다. 취임 당시 9개사인 계열사를 4개로 줄이고, 비주력부문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 경영내실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 석유화학분야를 그룹 주력 업종으로 성장시켰다. 당시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말 대신 ‘합리화’라는 표현을 썼다. 박 명예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였던 구조조정의 선구자인 셈이다. 박 명예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대로 끌어올리는 등 금호아시아나를 국내 10대 그룹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세발 먼저 앞서간 이상적인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현실에 치우치기보다는 이상적인 경영관을 실현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집앞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회사의 성공을 예견했다. 장성지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는 “명예회장님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지시사항을 보내놓고 답신 시간을 일일이 확인하셨다.”면서 “어떤 전자서류는 새벽 2,3시에도 결재하셨다.”고 회고했다. 박 명예회장의 이상적인 경영스타일은 음악, 미술 등 문화사업으로 이어졌다.1990년 금호 현악4중주단을 창단하고, 고가의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사들여 한국을 빛낼 가능성이 높은 연주자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비수익사업에 힘을 쏟는 박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 기업도 미국의 카네기재단이나 일본의 소니그룹처럼 사회문화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당장은 돈이 부담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과 2002년 통영 국제음악제 이사장을 맡는 등 문화·예술 사업에 전념했다. 199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02년에는 기업메세나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박 명예회장의 예술사랑 덕분에 지난 5월 장례식에서는 예술인들이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더 애통해 했다. 박 명예회장의 친구인 이승윤 전 부총리는 “박 회장은 단순히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기업인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지닌 뛰어난 전문경영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발로 뛰는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1993년부터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미국 CEO들은 환갑만 지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동생에게 총수직을 맡아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형의 요구를 고사하던 정구 회장은 1996년 그룹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 박 명예회장이 “65세에 회장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히자 회장직에 올랐다. 순조로운 경영권 이양에 대한 보답 차원이었는지는 몰라도 정구 회장의 형에 대한 예우는 남달랐다. 성용 명예회장은 그룹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화·예술 사업 등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곧잘 제기했다. 수요와 공급 원칙에 철저히 따르는 동생 정구 회장으로선 형의 제안이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시죠.”라며 무조건 따랐다. 그러나 정구 회장은 형과는 사뭇 다른 경영스타일을 보였다. 경제 이론을 중요시했던 형과 달리 본능적인 감각과 불도저식 추진력을 발휘하는 현장중심의 경영방식을 택했다. 이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22세에 광주여객 영업과장으로 회사에 몸 담으며 철저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정구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아주생명을 인수, 금호생명으로 변경해 보험업에 진출했다. 강원 설악과 전남 화순, 경남 충무, 제주 남원에 잇달아 콘도를 개장, 미래의 유망분야인 관광·레저사업 부문을 확대했다. 정구 회장이 재임때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중국 진출이었다.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정구 회장의 불도저식 경영은 1997년 이후 IMF 위기에서도 발휘됐다. 계열사간 합병·지분매각·청산 등을 통해 한계사업과 비주력사업부문을 과감히 접었다.1997년 당시 32개였던 계열사를 2001년 15개로 축소했다. 자본유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97년 말 966%에 달했던 그룹 부채비율을 2001년 말 360%로 낮추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시켰다. 대부분의 그룹 임직원들은 3대 정구 회장이 풍부한 경험과 의리를 앞세우며 선 굵은 경영을 펼쳤던 경영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폭탄주’를 즐기던 정구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IMF 파고를 넘었지만 2002년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셋째아들 정구 회장에 이어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5남3녀중에서도 아버지 박인천 회장을 가장 닮은 아들로 꼽힌다. 수리에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젊어 ‘영원한 39(삼구)세’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높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해 한번 결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원칙론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룹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내는 업적을 이뤄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약관 22세의 나이에 한국합성고무를 차릴 정도로 경영인으로서의 ‘끼’를 발휘했다. 그룹 총수이면서도 재무·관리·세무회계 등에 정통해 그룹의 세세한 재무상태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은 “회장님이 업무면에서는 섬세하고 치밀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지만 형님들을 모시거나 동생들을 보살피는 데는 넓은 포용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형들을 생각하는 박 회장의 정성은 극진했다.2004년 박성용 명예회장이 세계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으로부터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자 밤 11시에 형에게 달려가 깜짝 축하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웬만한 주요 행사에는 바로 아래 동생인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을 반드시 동행토록 해 사소한 의사결정때도 동생의 의견을 듣는다. 삼구 회장은 잔정이 많다는 게 그룹 임직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1998년 당시 아시아나 사장이던 삼구 회장은 IMF를 맞아 전년도 입사자들이 1년간 무급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행사장에서 5분간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린 사실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룹 제2의 중흥기 맞아 2002년 9월2일에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IMF 이후 2004년까지 4조 9961억원의 구조조정 실적을 이뤄내는 자구노력으로 기업을 회생시켰다. 이 구조조정 기간에 공적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직원 감축없이 그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004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인 매출액 8조 5447억원, 경상이익 8140억원을 달성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도 항공·고속 등 운수분야와 타이어, 석유화학 계열, 관광·레저, 금융 등의 기존 사업분야는 경영합리화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물류·레저사업을 상호 연계,2010년까지 재계 5위에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뒤에서 묵묵히 보좌하는 4남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해 수치에 밝고 경제의 맥을 잘 짚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혹시 형인 삼구 회장에게 누가될까봐 뒤에서 묵묵히 돕고 있다. 전공을 살려 회사내의 재무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왔다. 찬구 부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는 비전경영실의 사장을 겸직하며 그룹에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 사안들을 일일이 챙겼다. 그는 유연한 조직체계 및 관리체계를 구축해 금호석유화학을 합성고무부문에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문 CEO 아시아나항공 박찬법(60) 사장은 2001년 1월 대표이사직에 취임해 대규모 흑자 전환, 세계 최대의 항공제휴망인 ‘스타얼라이언스’ 가입 등의 성과를 올렸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금호타이어 오세철(58) 사장은 1974년 금호타이어 입사 후 연구·생산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현장중시’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신훈(60) 사장은 지난 2002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2004년 상장사 중 최고의 주가상승률을 이뤄냈다.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이원태(60) 사장은 그룹내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통한다.1993년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북경대표처에서 근무하며 타이어, 항공, 고속 등 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끌었다. 금호석유화학 김흥기(59) 사장은 1973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한 뒤 재무담당임원을 두루 거친 그룹내 재무전문가다. 금호피앤비화학 류명렬(59) 사장은 비상경영을 통한 획기적인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속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흑자로 전환시켰다. 금호폴리켐 기옥(56) 사장은 재무통으로 금호타이어 경리부에서 출발해 회장부속실 근무중 아시아나항공 설립과 함께 직원 1호로 발탁되기도 했다. 금호미쓰이화학 김성기(61) 사장은 오랜 기간 미국 법인과 금호 미국 현지법인에서 수출·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미국 전문가다. 금호렌터카 김성산(59) 사장은 1960년 광주고속에 입사하여 40년간 장기근속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산증인이다. 금호페이퍼텍 이삼섭(55) 사장은 종합무역상사인 금호실업에 입사, 금호건설을 거친 후 비전경영실부사장을 지냈다. 타이어, 항공, 고속, 건설, 화학 등 그룹 전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아시아나IDT 박근식(59) 사장은 IT출신이 아니지만 2003년부터 그룹 IT전문회사인 아시아나IDT대표를 맡고 있다. 사이버대학 IT관련 학과에 다니는 노력 끝에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복합물류 김종호(57) 사장은 외국어에 능통해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등 타이어 해외수출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인천공항에너지 류병률(59) 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서울지점장과 여객담당 임원 등 영업에서만 10년이상 근무한 영업통이다. 금호생명 박병욱(58) 사장은 한양대에서 ‘회사 시책이 보험설계사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이론과 실무에 능한 수재형 CEO다. 금호종금 이기수(56) 사장은 30여년간 경리·자금분야에서 실무와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아나CC 김창규(52) 대표이사 상무는 금호산업 레저사업부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그룹 전략경영본부 오남수(57) 사장은 현재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그룹 전략경영본부의 실무 총괄 책임자다.1997년 시작한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에 줄곧 몸담아 왔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와인 애호가 및 전문가로 최근에는 ‘어너더 와인, 어너더 테이스트(Another Wine,Another Taste)’란 제목의 와인 가이드 포켓북을 발간하기도 했다 jrlee@seoul.co.kr ■ 재벌 혼맥의 허브… 삼성·LG등 사돈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와 2세인 5남3녀는 자식들의 혼사에 각별히 신경써 화려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家)는 2,3세들의 혼인을 통해 삼성,LG, 대우, 대상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재벌가 혼맥의 허브’로 부상했다. 박 창업주 회장의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아들 재영(35)씨를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문정(30)씨와 결혼시켰다. 재영씨의 장인인 구자훈(58)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손밑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3남이다. 박 명예회장과 구 회장이 자식들의 혼사로 인해 ‘사돈’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가의 장손인 재영씨의 처고모부인 박용훈(63)씨는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산그룹과도 혼맥으로 연결돼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박 부회장은 박우병 전 두산산업 사장의 장남이다. 2남 정구 회장의 장녀 은형(35)씨도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36·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혼인해 일가를 이뤘다. 금호아시아나가의 혼맥은 뭐니뭐니해도 3녀 현주(52)씨를 통해 빛을 발한다. 현주씨는 임창욱(56)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시집갔다. 또 큰 딸인 임세령(28)씨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37) 삼성전자 상무와 결혼시켰다. 세령씨와 이재용 상무간의 결혼은 호남 집안인 금호아시아나가와 대상그룹, 영남집안인 삼성가가 사돈을 맺었다는 점에서 재계의 화제가 됐다. 또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그룹이 혼맥으로 합쳐졌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세령씨는 시어머니인 홍라희(60) 여사가 보광그룹의 장녀여서 홍석현(52) 전 중앙일보 회장과 홍석규(49) 보광그룹 회장을 시외삼촌으로 모시고 있다. 특히 박현주씨는 금호아시아나가가 남자들에게만 지분을 상속한다는 대원칙을 고수해 친정에서는 경영참가가 원천 봉쇄됐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하고 있다. 박씨는 대상그룹 계열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활발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어 9월13일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등기임원에 선임될 예정이다. 옥중에 있는 남편 대신 시댁의 회사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여 이목이 쏠리고 있다. jrlee@seoul.co.kr ■ 3대째 이어지는 원칙금호아시아나그룹의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장자승계 원칙이 일반적인 다른 그룹과 달리 창업 2세 가구별로 똑같은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 등 금호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공교롭게도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달 4일 고 박 명예회장이 보유해온 계열사 지분 전량을 장남인 재영(35)씨가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박성용-정구-삼구-찬구로 이어져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경영 체제가 3세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분구조는 특이하다.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을 기준으로 창업 2∼3세들의 지분구조가 9.24%로 똑같다.2세 경영인 중 회사 경영과 무관한 5남 종구(국무총리실 경제조정관)씨를 빼고는 4명의 형제가 동일한 지분을 갖고 있다. 2세들이 작고하면 이 지분은 고스란히 3세 경영인들에게 상속돼 지분구조를 둘러싼 분란이 생길 틈이 없다. 재영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의 보통주 136만 2512주와 우선주 8만 3251주, 금호산업의 보통주 35만 5000주, 금호종합금융의 보통주 3만 9070주, 금호페이퍼텍의 보통주 2585주와 우선주 4만 1087주를 받았다. 이로써 재영씨는 금호석유화학 지분 9.24%를 소유하게 됐다.2002년 작고한 정구 회장의 장남 철완(27)씨도 부친 지분 9.24%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이로써 사촌지간인 재영씨와 철완씨는 나란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주주로 떠올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최대 주주는 자사주 19.8%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고 재영, 철완씨는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들은 금호산업과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똑같이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 지분은 42.49%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 최대 주주로 있으며 재영, 철완씨가 1.87%씩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1%씩 보유했다. 이처럼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창업 2세 형제들이 그룹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갖고 형제경영을 하는 것처럼 3세도 이같은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에서다. 금호아시아나가(家) 3세들의 경영참여 시점도 관심거리다. 재영씨는 미국 LA에서 경영과는 동떨어진 영화 공부를 하고 있고, 철완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관계자는 “재영씨와 철완씨가 지분 승계로 대주주가 됐지만 당분간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깔깔깔]

    ●사랑고백 몇 년 전 문자 메시지가 한참 유행할 때였다. 나도 유행에 발맞춰 여자친구에게 보낼 이런저런 문자를 고민하던 중 정말 괜찮은 것을 찾아냈다. “나 어제 한강에 500원짜리 동전을 떨어뜨렸는데 우리 그거 찾을 때까지 친구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괜찮은 문자였다. 나는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그 문자를 보냈다. 다 보내고 나니 왠지 모를 만족감에 스스로 뿌듯해졌다. 문자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신이 왔다. “감동받아 얼른 문자 찍었군. 그럼 그래야지.” 그러나 휴대전화를 열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까무러칠 뻔했다. 그 답신은, “내가 천원 줄게 꺼져!”
  • [뉴스플러스] 장성급 실무회담 20일 서울서

    국방부는 제3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위한 실무 대표회담이 20일 서울에서 열린다고 12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1년여 만에 군사당국간 접촉을 재개하게 됐으며, 군사 신뢰 구축작업도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남측은 제15차 장관급 회담 합의에 따라 이달 26일부터 29일까지 백두산에서 제 3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하자고 지난 5일 제의했으며, 북측은 11일 답신을 통해 장성급 군사회담에 앞서 실무 대표회담을 20일 남측지역에서 열자고 수정제의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회담에서는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 일정과 군사분계선(MDL) 일대 선전물 및 선전수단 제거문제 등이 협의될 예정이다. 실무 대표회담의 수석대표는 남측에서 문성묵(대령) 국방부 대북정책과장이, 북측은 유영철(대좌) 인민무력부 부국장이 각각 맡게 된다.
  • [낮은소리] “장애인 눈높이로 세상보기 나섰죠”

    [낮은소리] “장애인 눈높이로 세상보기 나섰죠”

    ■ ’장애인 주권알리기 활동’ 김주영씨 “하고 싶었던 것은 나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 나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만나기로 한 그 날, 하필이면 늘 다녔다는 그 길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약속장소에서 직선거리 10m를 남긴 채 잠시 난감해하던 그는 전동휠체어를 이내 돌렸다. 인터뷰는 그렇게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시작됐다. 지체 1급 장애를 지닌 김주영(26)씨.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다. 휠체어가 아니면 외출은 꿈도 못 꾼다. 장애가 심한 그가 지난해 직접 주인공으로 나서고, 내레이션은 물론,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도맡으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외출 혹은 탈출’.11분 54초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다큐는 지난 5월 KBS 1TV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인 ‘열린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전파를 탔다. 또 최근 각종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덕분에 이제는 유명인. 동네 지하철역 직원에서부터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까지 그를 알아보고 “잘봤다.”며 말을 건넨다. 그럴 때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자기를 알아봐줘서가 아니라 “내가 만든 작품을 보고 장애인에게 한발 더 다가오는 비장애인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안에만 있으면 악순환만 계속되는 것 같아요. 장애인이 편하게 나다니기에는 너무도 열악한게 우리 현실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시각을 바꾸면 안 나오려고 해도 결국 나서게 되더군요.”그가 다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여름. 비장애인과 함께 하는 미디어교육이 광화문 미디액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말 그대로 ‘무작정’ 갔다. 아니 작정은 하나 있었다. 어려서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 달랑 그거 하나였다. 김씨 역시 취직을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수술받아 몸을 추스린 뒤 전문학사를 따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역시나 어느 곳에서도 답신은 오지 않았다. 보통의 장애인처럼 그에게도 ‘밖’이라는 단어는 ‘공포’나 ‘두려움’일 뿐이었다. 어려운 길일수록 이것저것 고민하면 안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아닌가. 그냥 무엇인가 해보자며 나섰다. 그 첫걸음이 그의 삶을 차츰 바꿨다. 말이야 쉽지, 처음에는 광명 집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간다한들 강의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카메라를 만져야 하는데 김씨에게 그나마 자유로운 손은 오직 오른손 한쪽뿐. 처음에는 카메라 만지기조차 무서워 멍하니 쳐다만 봤다. “그만 둘까도 했는데 이럴거면 왜 나왔나 싶은 오기가 생기더군요.”오기는 무서웠다. 촬영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의 손길도 뿌리쳤다.“직접 해보고 싶다.”, 정말 그거 하나였다. 아예 6㎜ 비디오카메라를 휠체어에 달았다.“내 눈높이에서 세상을 그대로 담기로 했죠.”한시간짜리 테이프는 어느새 6개나 쌓여갔다. 물론 온전히 혼자의 힘은 아니었다. 저시력장애인 김언식씨와 비장애인 홍승아씨와 함께 작업했다. 처음에는 참 많이 다투기도 다퉜다.“돌이켜 보면 장애와 비장애를 뛰어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지요.” 김씨는 내친 김에 한발 더 나아갔다. 다큐 찍은 인연으로 지난 3월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인턴으로 취직했다. 맡은 업무는 장애인 관련 방송 모니터링. 매주 20시간에 월급은 30만원, 기간은 6개월이다. 그래도 김씨는 즐겁다. 제 힘으로 번 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보처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여기에다 이번 가을 두번째 장애인미디어교육 때는 ‘조교’로 나선다.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하지만 장애인의 하루가 마치 48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비장애인이 아직도 많아요.‘외출’이 ‘탈출’이 아니라,‘진정한 외출’이 될 때까지 영상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서글프게 웃긴’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김씨가 휠체어를 타고 가면 꼬마들이 엄마를 붙잡고 물어본다.“엄마, 저 누나는 왜 저래?”어머니는 뭐라 대답했을까.“엄마 말 안들어서 그래.”장애인의 진정한 외출을 위해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찍고 또 찍어야 할 이유다. 광명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현실의 벽’ 깨는 장애인단체들 김씨는 사실 예외적인 경우다. 현실의 벽은 여전하다. 장애인 4명 가운데 3명은 한 달에 한 번 외출할까 말까다. 여기다 장애인들은 대부분 실업자다. 당장 생계문제가 급하다. 이런저런 문화행사가 있다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김씨처럼 나 스스로의 힘으로 나 스스로를 표현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극 영화 노래 등 장르도 다양하다. 고생해가며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한다. 그들도 표현욕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제 장애인들도 “문화 즐기기”에서 “문화 만들기”로 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카메라 들고, 마이크 잡고… 비장애인들이 장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3회대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장애인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들이 출품됐다. 김씨처럼 장애인 작품이 퍼블릭액세스 채널을 통해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장애인단체들이 서서히 문화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에서는 서서히 미디어교육이나 영상워크숍 등을 꾸리고 있다. 이 가운데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끼판은 연극에서 영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 연극을 통해 인정받은 연출력과 연기력이 자산이다.2003년부터 연극팀 ‘춤추는 허리’를 결성해 활동하는 장애여성공감도 있다. 중증 장애인이 중심이되 비장애인과 함께 활동하는 극단 휠도 단발 공연에서 순회공연으로 슬금슬금 영역을 넓히고 있다. 노래도 인기다. 2003년 장애인노래패 ‘시선’을 앞세워 공연을 열었던 장애인문화공간은 올 가을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 공연을 다시 열 생각이다. ●우리 얘기는 우리 입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얘기한다는데 있다. 기존 문화나 매체들이 장애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 문화 매체들이 나빠서라기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시선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왜곡된 모습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잡고 싶다는 욕구, 그것이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다.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 대표는 “왜곡을 고치려면 직접 말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이제는 장애인 스스로 느껴서 만든 문화를 비장애인과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혹, 먹고 사는 문제와 이동권마저 보장이 안된 상황에서 조금은 사치스러운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정영란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들처럼 문화에 대한 재능과 끼가 있다.”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것이 이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직은 일부 장애인들의 얘기들일 뿐이다. 그래도 희망은 접지 않는다. 누군가 통로를 열어두면 다른 장애인들도 적극적으로 문화 활동에 뛰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박성준 장애인문화센터 팀장은 “아직 바깥 세상과 단절된 장애인들이 더 많다.”면서 “이들을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문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장애인 창작활동 애로점 장애인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산넘어 산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실제 공연 무대도 마련하기 어렵다. 장애인 입맛에 맞는 영상 기자재도 없다. 그 중 으뜸은 역시 재정 문제다. 최근 늘고 있는 장애인 주체 문화 창작 활동은 대부분 비영리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있다. 회비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단체는 사무실 유지 등 기본 운영비를 마련하는데도 헉헉 거리는게 현실이다. 그러니 의욕적인 출발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못한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때문에 이들 단체들은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이나 기금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서울시 장애복지계정이나 여성발전기금, 사회복지기금 등이 내건 이런저런 사업 공모에 지원서를 내는 것이다. 이것도 거의 각개격파식이다. 각 개별 기관에서 따로 추진하는데다 정례화된 것도 아니고 단일화된 창구조차 없다. 노리고 있다가 재깍 신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기금이, 어떤 예산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다 보니 이름이 덜 알려진 소규모 단체들은 지원서 한장 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박성준 장애인문화센터 팀장은 “예산이나 기금이 급격하게 늘어나기를 바라기가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예산·기금 등을 다루는 곳과 장애인 문화창작단체 사이의 정보를 한꺼번에 공유할 수 있는 센터나 인터넷사이트 등 허브축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올해 정부 예산 가운데 장애인 복지재정은 7393억원. 지자체 소관으로 이전된 부분이 있어 지난해보다 9.5% 줄었다. 내역을 들여다 보면 창작 활동과 관련된 예산을 찾기 힘들다. 최근 정부는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강화하기 위해 공연 관람을 지원하는 ‘문화바우처’ 제도를 도입했지만, 걸음마 수준. 창작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까지는 범주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 올해 문화예술진흥기금 가운데 장애인 문화예술 사업을 위해 약 6억원의 예산이 그나마 책정됐다. 하지만 실제 장애인 창작 활동으로 연결된 부분은 1억 7500만원(13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창의 한국’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발표했다. 그 가운데 장애인 창작 공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센터 건립 등 관련 내용이 있어 기대를 모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태성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분단 60년만에 첫 남북작가대회

    분단 60년 만에 남북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는 27일 “북측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가 7월20∼25일 평양 등에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개최하는 데 동의한다는 연락을 해왔다.”고 밝혔다. 남북작가대회는 당초 지난해 8월24∼29일 평양, 묘향산, 백두산 등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무기한 연기됐었다. 이후 남북 양측은 여러차례 실무접촉을 통해 대회 재개를 위해 노력했으나 성사되지 못하다 지난 6·15 5주년 평양행사에 참가한 소설가 정도상씨가 북측 관계자와 만나 행사 재개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6·15행사때 북측과 7월 중순쯤 행사를 열기로 잠정합의한 바 있다.”면서 “서울에 돌아와 7월20일 개최안을 확정해 팩스로 보냈고, 이에 대해 북측이 동의한다는 답신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진행방법 등은 28∼30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실무접촉에서 이뤄질 예정이지만 지난해 합의한 내용은 유효할 전망이다. 남북작가대회에는 문인, 취재진, 공연단을 포함해 남측인사 100여명, 북측인사 100여명, 해외동포 문인 20여명이 참가하며, 평양에서 개막돼 묘향산을 거쳐 삼지연 폭포에서 전야제를 연 뒤 백두산 천지에서 일출시각에 맞춰 ‘통일문학의 새벽’을 여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상반기 결산-취재 뒷이야기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상반기 결산-취재 뒷이야기

    서울신문이 올해 연중기획으로 1월10일 시작한 ‘2005 재계인맥·혼맥 대탐구’가 연재 5개월을 넘기며 ‘4대 그룹’을 소화했습니다.23회 동안 소개된 원고지는 12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동안 해당 기업은 물론 구청으로, 오너일가 주변으로 뛰어다니며 취재에 열을 올렸던 기자들이 방담을 통해 중간 점검을 했습니다. ●수십년만의 ‘진실´ 재벌들의 인맥과 혼맥은 그동안 신문 시리즈 기사나 책으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만, 의외로 잘못 알려졌던 ‘팩트’가 적지 않았습니다. 재계 총수를 3명이나 배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에 대한 오해가 대표적입니다. 지금까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지수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알려졌지만 조 회장은 이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10년생인 이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습니다.1907년생인 구 회장 역시 서당을 다니다 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기 때문에 둘은 같은 학년이었던 셈입니다. 구 회장은 실제 이 회장과 한때 같은 반에서 책상을 나란히 맞대고 공부하던 사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해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고 구 회장도 1924년 상경, 중앙고보를 다녔기 때문에 같이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닙니다. 1906년생으로 이 회장의 형인 병각씨와 동갑인 조 회장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1922년 상경, 중동학교를 다녔습니다. 조 회장은 이듬해 협성실업학교로 옮기는 바람에 1923년 중동학교로 옮긴 이 회장과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 회장의 자서전에도 조 회장과 축구로 교우를 쌓았지만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언제부터인지 선대 회장과 이병철 회장, 구인회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동기동창으로 소개됐지만 조 회장은 지수보통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서 “처음에 어떤 신문사의 기자가 잘못 쓰는 바람에 계속 세 사람이 동문이라고 나와 그 때마다 기사를 고쳐달라고 요구했지만 요즘은 아예 포기한 상태”라고 털어놨습니다. 세 사람이 같은 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사돈관계(이 회장·구 회장)와 동업(이 회장·조 회장)으로 이어진 것을 보면 남다른 교분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출신학교는 물론 이름까지 잘못돼 현대그룹의 경우, 대학 재학 시절 빼어난 미모로 캠퍼스가 떠들썩했다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며느리 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굳혀져 있었지만 확인 결과 숙명여대 졸업생이었습니다. 이화여대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던 맏며느리 고 이양자(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씨도 수도여대를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4남인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의 부인도 그동안 조향아씨로 알려졌지만 사실 조경아씨였습니다. 누군가 한자를 잘못 읽어 빚어진 오기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인을 두고 말이 엇갈렸던 정몽우 회장의 ‘우울증’에 대해서도 현대가측으로부터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등학교때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 우울증으로 번졌다는 관측이 파다했지만 사실 무근이었습니다.‘교통사고다.’ ‘지병이다.’ 등으로 설이 분분했던 정 명예회장의 다섯째 동생 신영씨의 사인도 독일유학중에 얻었던 ‘병’이 악화됐던 것으로 유가족으로부터 직접 확인했습니다.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순간적인 결심’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혈압에 좋다며 집에 와서 순두부를 즐겨 찾았는가 하면 세상을 등진 바로 다음날에 중요한 약속을 잡아놓았던 사실이 드러났으니까요. 모 그룹 오너의 경우, 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학 중 결혼한 탓에 학교 규칙상 더 이상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오너 일가의 딸이나 며느리 가운데는 이화여대 재학중에 결혼한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이대의 과거 학칙때문에 대부분 졸업을 못했더군요. 또 아들과 며느리들이 어머니를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어머니라 하지 않고, 회사 직함으로 불렀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낸 사실입니다. 현대중공업 정몽준 대주주의 차남 예선군의 이름 유래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정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는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친 의미가 더 크다고 밝혀왔습니다. 본지가 이번에 ‘정설처럼 굳어진 오보’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재벌 총수나 2·3세와 직접 인터뷰를 했고 자서전 등 방대한 과거자료를 일일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몇십년전에 모 기자가 잘못 쓴 내용을 후배기자들이 그대로 인용하면서 오보가 사실로 굳어졌다.”며 인터뷰를 자청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룹 홍보실도 비상 민감한 가족사를 다루다 보니 취재는 물론 사진을 구하는 일이 보통 어렵지 않았습니다. 서울신문의 기획 의도와 배경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오너가의 답변은 ‘내가 싫다는데 너희가 왜 쓰느냐.’는 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사생활을 들춰내자는 것도 아니고, 망신을 주자는 것도 아닌 한국 재벌가의 혼맥과 인맥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서울신문의 의도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모 그룹의 홍보임원은 ‘오너’로부터 “내 사진이 실리면 목내놓을 각오를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요. 실제 이 오너의 사진은 언론에 공개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사진을 구해 내보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 홍보임원을 서울신문이 ‘책임’질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모 그룹은 기사 게재 3일전까지 “무조건 빼라.”는 오너의 지시로 홍보실뿐 아니라 회장실에도 비상이 걸렸었습니다. 그룹 회장이 미국에 있는 모친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시로 전화 설득에 나섰지만 돌아온 답은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홍보실 임원은 “내 목은 서울신문에 달려 있다.”며 통사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비서실이나 홍보실에서 오너 일가의 사진을 확보해 두지 않아 회장의 자택을 ‘습격’해야 했습니다. 회장 집무실부터 자료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사진이 나오지 않자 운전기사에게 부탁, 자택에 걸려 있는 액자사진을 다시 찍는 ‘작전’을 감행한 것이지요. 모 그룹을 취재할 때는 오너가 직접 본사 임원에게 전화해 “우리는 빠지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파헤쳐 문제가 될 만한 것도 없는데 오너가 무조건 버티기로 나오니 아래 직원들은 당연히 누구 하나 취재에 협조해주지 않더군요. 가족 사진은 그만두고라도 얼굴 사진을 내주는 것조차 꺼리다가 경영에서 물러난 1세 경영인의 허락을 받아 겨우 가족 사진을 싣기도 했습니다. 모 그룹은 가족사진이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진설명에서 누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말아달라고 ‘읍소’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지, 주간지 등에서 결혼 소식을 집중 추적하고 있는 회장의 ‘고명딸’ 얼굴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밖에 서울신문에 소개된 사진중에는 오너일가나 그룹을 통하지 않고 본지 기자가 과거 취재과정에서 찍어뒀던 사진도 있었고 각사 ‘사사(社史)’를 일일이 뒤져 찾아낸 것도 있습니다. ●“아가, 니 사진은 왜 빠졌냐?” 가족사가 속속들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던 오너들도 일단 기사가 나가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현대가(家) 첫 회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 일가’편이 나간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자필로 직접 ‘사후 교정’을 본 3월14일자 서울신문을 편집국으로 보내주는 특유의 세심함을 보여줬습니다. 예컨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녀 성이(남편은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씨의 맏딸 이름이 ‘선가령’이 아닌 ‘선아영’, 정 회장의 둘째딸 명이(남편은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씨의 자녀 명단에 정유진양과 정준군이 누락된 점 등입니다. 또 가계도에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손자인 창덕군이 빠진 점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고 몽필씨의 맏딸 은희씨가 미국에 머물지 않고 귀국한 지 오래됐다는 점 등도 바로잡아줬습니다. 이는 일가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지요. 가문에 대한 현 회장의 관심과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해줬습니다.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은 지난 2월27일 ‘한솔그룹편’의 서울신문 대장(신문 발행전의 인쇄용지)이 나오자 직원을 보내 ‘사전 교정’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날이 일요일인데도 직원을 통해 장충동 자택으로 대장을 가져오도록 해서 여조카의 이름을 바로잡기도 했지요. 그 조카는 얼마전에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조 회장이 교정을 본 대장에는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읽은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본지 시리즈의 첫 회를 장식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을 통해 본지를 통째로 한남동 자택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도 구조본 팀장회의 석상에서 본인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부분이 잘못 소개됐다고 언급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LS그룹 구자홍 회장은 LG그룹 첫 회에서 자신의 ‘연애결혼’이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소개되자 ‘반대’까지는 아니라며 미국 유학시절 부인과의 ‘러브스토리’를 직접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구 회장의 아버지인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은 ‘LS그룹편’에 막내 며느리 사진만 빠져 있자 “왜 막내만 빠졌냐.”며 경위를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모 그룹 홍보실은 신문 가판이 나온 뒤 미국에 있는 오너에 바로 전달하기 위해 서울신문을 항공 특급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사자도 착각한 사실 독자가 알려줘 독자들의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중간에 이번 시리즈를 접한 독자들이 첫 회는 언제 나갔는지,1회부터 연재분을 모두 구할 수 없는지 집요하게 물어오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언제 책으로 출판되는지 물어오는 ‘성급한’ 독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들도 이미 소개된 그룹만이라도 모아서 책을 내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오너 일가들도 착각한 사진 속의 장소를 독자들이 바로잡아준 일도 있었습니다. 현대그룹편을 소개하면서 현정은 회장이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과 아들과 딸들, 이렇게 온 가족이 호주 시드니로 휴가를 떠난 사진을 실었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사진속의 배경이 ‘캐나다 밴쿠버 같다.’는 독자들의 의견이 잇따랐습니다. 현 회장측에 확인한 결과 호주가 맞다는 답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밴쿠버라는 독자들의 의견이 이후로도 끊이지 않아 재차 확인한 결과 사진 속의 장소는 밴쿠버가 맞았습니다. 현 회장측은 “고 정몽헌 회장이 사진찍기를 워낙 싫어해 몇년전 휴가가 가장 최근의 가족사진이다 보니 착각한 것 같다.”고 해명해왔습니다. ●제발 이것만은…. 오너일가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내용은 가족들의 ‘이혼·재혼’이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탤런트 고현정씨처럼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사실만이라도 막으려고 필사적이었습니다. 아예 “이 부문만 빼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쓰도록 하겠다.”는 협상(?)도 들어왔습니다. 모 그룹 회장은 아내가 사고사를 당해 재혼했는데 그 사실을 막무가내로 빼 달라는 것이었지요. 결국 “독자들이 볼 때 나이 차이가 워낙 커 ‘세컨드’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 밝혀줘야 한다.”고 설득하자 아무 말을 못하더군요. 또 다른 그룹 회장 동생도 부인이 지병으로 사망한 뒤 재혼을 했는데 그룹측에서는 한사코 부인의 나이를 빼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오너 부인이 사망한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전 부인 사진이 그대로 나갈 뻔했습니다. 재혼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나갔다면 현재 부인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지요. 모 그룹 회장의 할머니를 둘러싸고도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이 그룹 회장의 친 할머니는 오래전에 사망했는데 워낙 옛날 분이라 이름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가계도’에는 재혼한 할머니 이름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룹측에서는 아예 할머니쪽은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그룹 회장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친어머니’가 아닌지라 불편했던 것이지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딸 가운데 한명은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취재과정에서 전 남편과 다시 결합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끼리끼리’는 있어도 정략은 없었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는 재벌과 권력층의 혼사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실제 40대 이상 오너 일가들은 청와대, 국회의원, 장관 등 ‘권문세가’를 시가나 처가로 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세로 내려올수록 ‘정략결혼’의 흔적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재벌들이 더 이상 권력에 기대어 ‘혜택’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2·3세들은 유학시절에 만나 연애결혼한 사례도 적지 않았고 유력한 집안이라고 해도 주로 재계쪽에 집중됐습니다. 또 사돈이라고 해서 사업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삼성과 LG,LG와 두산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직접 만나본 2·3세들의 공통된 느낌은 1세들과 달리 어려움없이 자란 때문인지 무척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못다 쓴 얘기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얘기할 날이 오겠지요. 물론 오너일가의 작은 부분이 소개된다고 해서 그룹 임원의 ‘목’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오너들이 ‘황제’처럼 군림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때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목을 내놓고’ 취재에 협조해 준 각 그룹 홍보팀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깔깔깔]

    ●함장의 착각 해군 군함 한 척이 달도 없는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 중 먼 곳에 있는 불빛을 발견했다. 함장은 빛으로 신호를 보내 우측으로 10도 돌리라고 했다. 그러자 상대편에서도 신호를 보내 왔다. “너희가 좌측으로 10도 돌리도록 하라!” 화가 난 해군함장이 다시 신호를 보냈다. “나는 해군 함장이다. 어서 우측으로 10도 돌려라!” 상대편에서도 즉각 답신이 왔다. “너희가 돌려라!” 해군 함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최후통첩을 했다. “이 배는 해군 전함이다. 절대 배를 돌릴 수 없다!” 그러자 저쪽에서 신호가 왔다. “여기는 등대다. 배를 돌리든 말든 네 맘대로 해 봐라!”
  • 거미줄 쏘는 스파이더맨 부채질 하면서 날아야?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공상과학(SF) 영화에는 어떤 허점이 보일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정재승 교수가 19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기술연구본부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펼친 초청 강연을 통해 해답을 찾아본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 오류를 찾아라 ‘고질라’(1998년 개봉)에서 고질라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약국에서 구입한 임신진단키트를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과학적 오류로 꼽혔다. 정 교수는 “임신진단키트는 임신할 경우 신체 변화를 유발하는 호르몬 유무를 확인하는 것으로, 알을 낳는 도마뱀에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면서 “미국의 제조회사에 이메일을 보낸 결과,‘우리도 궁금하니 고질라를 가지고 방문하시면 테스트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답신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스파이더맨1·2’(2002·2004년 개봉)의 경우 실제 거미줄은 액체 상태로 배출된 뒤 차츰 굳어지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는 거미줄은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 정 교수는 “스파이더맨의 무게를 견딜 수 있으려면 날아다니면서 부채질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거미가 스파이더맨처럼 빠른 속도로 이동할 경우 다리가 꼬이는 현상이 빚어지고, 수천종의 거미 가운데 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거미는 6종에 불과하다. 또 정 교수는 ‘쉬리’에서처럼 나이트 레이저와 야시경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은 자해 행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연에 참석한 한 연구원은 “빛이 전혀 없어도 볼 수 있고, 빛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야시경을 연구중”이라면서 오류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영화적 상상력이 과학 이끈다 ‘어비스’(1989년 개봉)의 특수효과팀은 심해에 존재하는 투명한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응용, 사람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프로그램이 바로 ‘포토샵’이다. 우주로켓을 발사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카운트다운’은 지난 1929년 개봉한 영화 ‘달의 여행’에서 처음 선보였다. 정 교수는 “만일 이 영화에서 복권추첨 장면처럼 ‘준비하시고, 쏘세요.’ 했다면 카운트다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사람 몸속을 여행하는 잠수함의 이야기를 담은 ‘이너스페이스’(1987년 개봉)는 개봉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지금은 이와 비슷한 의료용 장비가 개발되는 등 더이상 과학적 오류가 아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개봉한 ‘아이, 로봇’을 비롯, 최근 영화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인간형 로봇도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소한 장면들은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 및 방향을 설정해 주는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면서 “오는 2030년쯤이면 로봇이 인간의 모든 뇌 기능을 앞지를 것이라는 주장도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올 여름 폭염’ 추적보도 돋보여/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한 일간신문의 편집국 부국장 겸 종합편집부장을 지내다가 지금은 편집·제작 등을 담당하는 그 신문사의 자회사 대표로 있는 후배와 얼마 전에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신문편집이 화제가 되었다. 신문사마다 편집에 대한 색깔이 다르고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서울신문의 편집이 전통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자신이 편집데스크로 있으면서 외부에서 편집기자 스카우트를 할 때, 서울신문 출신이라면 보지도 않고 뽑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 후배의 후임 종합편집부장은 서울신문 출신이다. 또 필자가 재직했던 문화일보 창간 때의 종합편집부장도 서울신문출신이었다. 평소 서울신문의 짜임새 있고 시원한 지면구성에 호감을 갖는 때가 많다. 제목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경우를 많이 본다. 휴대전화 안 쓰는 ‘별종’젊은이들을 다룬 기사(2월16일 25면)는 ‘버리세요…자유가 찾아옵니다’라는 제목과 가위 그림을 곁들인 그래픽이 잘 어울렸다. 또 2월17일자 1면 ‘퇴짜맞는 士’도 한눈에 들어오는 간결한 제목이다. 이러한 서울신문이 지난주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면 편집을 보여주었다.2월15일,16일,18일자 1면 모양이 똑같았다. 기획기사를 왼쪽 위에서 맨 아래까지 박스로 처리하고 오른쪽에 톱기사를 4단제목으로, 중간에 사진을 넣고 그 아래 3단제목기사를 넣은 것이다.2월17일,19일자 신문 역시 박스의 위치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지면구성에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선언한 이후 이와 관련된 기사를 지난주에도 신문마다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신문은 2월15일자에 매우 주목되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 몬테레이국제연구소의 핵비확산연구센터가 발표한 ‘북한 핵보유성명특별보고서’가 그것이다. 이도운 워싱턴 특파원이 단독입수하여 보내온 이 보고서는 (1)북한의 핵개발수준 (2)미국의 군사대응 어렵다 (3)핵수출 사실 아니다 (4)중국 침묵하는 이유 (5)6자회담 계속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관련국 정부당국의 발표가 아닌, 권위 있는 연구소의 분석보고서라 그만큼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또 보고서 내용도 비교적 수긍이 가는 점이 적지 않아 독자들의 ‘북핵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2월15일) 1면에 게재된 ‘올여름 가장 덥나’라는 박스기사도 눈을 끌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르 우주연구소(GISS)의 제임스 한센박사가 지난 10일 발표한 ‘올여름 사상최고의 폭염’전망에 대한 논쟁을 실은 것이다. 이 전망기사는 2월12일자의 모든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다른 신문들이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한 것으로 그쳤으나 서울신문은 2월15일자에 이에 대한 국내학자의 반론과 한센박사의 재반론을 상세히 보도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NASA의 고다르우주항공센터(GIFC)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 박정규 박사는 “7월 이후의 엘리뇨를 예측하는 자체가 어렵고, 태양복사에너지가 거의 일정하거나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므로 올여름 폭염이 올 것이라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반박문을 지난 11일 한센박사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이에 대해 한센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재강조하는 답신 메일을 보내왔다.1면과 6면에 걸쳐 게재된 이 기사는 ‘올여름 최고로 덥다’는 일방적인 보도를 접했던 독자들에게 폭넓은 기상지식을 주었다. 박정규 박사의 재회신으로 이어질 후속기사가 궁금하다. 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 韓·美 전문가 올여름 더위 논쟁

    韓·美 전문가 올여름 더위 논쟁

    1880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올해가 가장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전망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두 NASA 출신 기상학자 사이에 이메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NASA의 고다르우주항공센터(GIFC)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 박정규 박사는 14일 미국 뉴욕 고다르우주연구소(GISS) 제임스 한센 박사의 올해 기상 예측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센 박사는 최근 온실가스와 수증기 증가, 엘니뇨 현상 등으로 올해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적도 부근 태평양상에서 발생하는 엘니뇨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온실효과 때문에 지구에 흡수된 태양복사에너지가 제대로 방출되지 못해 지구의 온도가 가장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과장은 지난 11일 한센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박 과장은 “당신이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의 언론이 제기하는 많은 의문에 대해 대답할 위치에 있어 메일을 보내게 됐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현재 대부분의 우수한 엘니뇨 예측모델들은 올해 6월까지 엘니뇨가 크게 발달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7월 이후 엘니뇨 예측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2005년 기온을 전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10년 동안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복사에너지가 거의 일정하거나 다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2005년 기온이 상승한다는 상관관계를 찾기는 어렵다.”면서 “당신의 견해인 2005년 지구기온의 상승은 지구에너지 불균형 이론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불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센 박사는 13일 보내온 답신 메일에서 박 과장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더 강력히 반박했다. 한센 박사는 “20세기에 강력했던 엘니뇨가 나타난 1998년 기온을 깨기는 어려울지 모르며 태양복사에너지가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최소한 2005년이 1998년 다음으로 지구기온이 높아질 것으로 보며 최근 지구기온의 상승 경향을 보면 2005년 기온이 98년 기록을 깨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태양복사에너지의 감소 추세를 매년 증가하는 이산화탄소량이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이며 지구에너지의 불균형은 기온상승을 초래하고 거대한 화산에 의해 지구가 냉각되는 효과를 능가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결국 두 학자는 이산화탄소와 지구기온의 상관관계, 엘니뇨 예측, 전 지구적 기온상승의 영향 등 핵심 쟁점에서 모두 상반된 견해를 펴고 있는 셈이다. 박 과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구가 가장 더울 때에도 한반도는 오히려 추운 여름인 ‘냉하’(冷夏)인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지구 연평균 기온이 역대 2위와 3위를 기록한 2002년과 2003년 우리나라 여름 평균기온은 각각 23.1도와 22.4도로 예년보다 1∼2도씩 낮았다. 연 평균기온도 각각 12.7도와 12.6도로 가장 높았던 1998년 13.3도보다 낮았다. 이는 여름철 기온이 상승할수록 오히려 수증기 증발량이 늘어나 강수량이 많아지고, 구름이 태양열을 차단하면서 기온과 강수가 서로 상쇄작용을 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박 과장은 “올해 덥다는 것을 사상 최대의 폭염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내친구 홍준…김형오 의원 2번째 ‘광화문 편지’

    내친구 홍준…김형오 의원 2번째 ‘광화문 편지’

    편지는 대개 ‘사적 고백’이다. 그러나 내용이 공개되면 공적 영역으로 넘어온다. 특히 주인공이 정치인 등 유명인사인 경우 파장은 커진다. 최근 ‘광화문 현판’ 문제로 서울대 67학번 동기인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편지 공방’을 주고 받은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유 청장에게 재답신을, 그것도 두 통이나 보내 화제다. 김 의원이 30일 홈페이지에 올린 2신은 첫 편지를 보낸 소회를 담은 것.‘홍준에게’로 시작한 편지에서 김 의원은 “사랑하는 친구에게 고언(苦言)의 글을 드린다.”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음을 털어놓았다. 반면 31일 올린 3신은 유 청장의 답신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 먼저 김 의원은 유 청장이 답신에서 ‘아산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 발언으로 곤경에 처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애정어린 변론도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광화문 복원사업이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박정희현판’이 교체된다면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누구의 글씨체로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고 부단한 고민을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라는 뼈있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유 청장은 “2신 뒤 통화했는데 김 의원이 ‘답장이 필요없는 3신을 보내겠다.’고 말해 재답장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김민영 홍보담당관이 전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유홍준 청장 ‘현충사발언’ 사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충무공 이순신 사당인 아산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가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29일 잘못된 표현이었다고 공개 사과했다. 유 청장은 아산이 지역구인 열린우리당 복기왕 의원이 28일 저녁 인 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를 통해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이 아니라는 요지의 반론을 편 데 대해 29일자 문화재청 홈페이지 새소식란에 ‘복기왕 의원님께 드리는 글’이란 형식을 빌려 자신의 발언은 “부적절한 표현”이었으며 “저의 오류”였다는 사과문을 실었다. 유 청장은 이 글에서 “(복기왕) 의원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정과 멸사봉공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소중한 역사적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청에서는 이곳을 사적으로 지정하여 직접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면서 “문화재청장으로서 저는 앞으로 현충사를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널리 귀감으로 전파하는 공간으로 가꿔 나가는 데 더욱 성심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유 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려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내재된 것이라는 요지의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공개 서한에 대한 27일자 답신에서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아산 현충사, 이것은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저는 이곳을 손보거나 (박 전 대통령 친필인) 현판을 떼 내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40년지기 김형오-유홍준 ‘광화문 현판’ 공방

    40년지기 김형오-유홍준 ‘광화문 현판’ 공방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을 놓고 친구 사이인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개서한을 주고받으며 한판 공방전을 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광화문’ 한글 현판을 정조대왕 글씨를 집자한 한자 현판으로 바꾸겠다는 문화재청 방침에 대해 김 의원이 26일 밤 재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자 유 청장은 27일 오후 교체의 불가피성을 담은 답신을 보냈다. ●대학동기… 40년 지기 두 사람은 서울대 67학번 동기로, 김 의원은 외교학과, 유 청장은 미학과를 나왔다. 김 의원은 먼저 서한에서 유 청장과 서울대 67학번 동기임을 나타내며 친분을 강조한 뒤 “어떤 경우에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화문’ 한글현판은 당시 매우 파격적이고 혁명적이었다. 그것을 정조의 글자로 집자해서 ‘가짜 현판’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반역사적 발상”이라며 “그 시대의 정신과 아픔이 녹아 있는 것을 외면하고 과거 형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역사의 회복은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1995년 이미 교체 결정” 이에 대해 유 청장은 “김 의원이 내게 공개 ‘연애편지’를 보내 40년 우정을 잊지 않고 애정어린 비판을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뒤 김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1995년 경복궁 복원계획 속에 들어있던 것으로 2003년 공청회까지 거친 사안”이라며 “그동안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건드리지 않던 것을 오는 8월 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리게 돼 불가피하게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왜 정조 글씨냐.’란 지적은 오해이며, 이는 여러 안(案)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광화문 옛 현판이 없으므로 ▲현역 대표 서예가의 글씨 ▲한석봉이나 김정희 등 조선왕조의 대표적 서예가 글씨 집자 ▲임금님 글씨, 이를테면 정조의 어필 등 세 가지 안을 갖고 있다.”며 오는 3월 문화재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심의,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조개혁 배우라는 뜻” 유 청장은 “내가 노 대통령을 정조와 비교했던 일을 언론이 ‘아부쟁이’ 내지 ‘어용학자’로 몰고 있다.”고 분함을 표시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개혁을 기치로 내걸면서 정조 같은 역사적 사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진짜 개혁을 하시려면 정조를 통해 개혁을 배우십시오.’란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아부를 할 줄 몰라 길바닥에서 10년여를 백수로 지낸 시절을 잘 알지 않느냐.”며 “내가 뭐가 아쉬워 대통령에게 아부를 하는가. 아부를 하려면 대통령이 내개 일 잘해 달라고 해야지.”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문세광 사건’은 한·일 관계를 단교 직전 상황까지 내몰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일본의 미온적인 수사협조 등 ‘성의 부족’에 분개했다.8월29일자 외무부 정보보고는 “일본 경시청은 육영수 여사의 저격이 ‘과실 살인’인데도 한국 수사당국이 짜맞추기 수사로 무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日, 對韓접촉 중단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일감정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도 대(對) 한국 상담(商談)을 유보했다. 외무부는 “일본의 지원없이 한국경제가 지탱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오만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외교부는 “외교 최우선 과제로서 (주재국에) 일본을 압박해줄 것을 요청하라.”고 재외공관에 전문을 보낸다. 앞서 주일 한국대사는 8월24일 다나카 총리를 찾아가 일본의 적극적 수사협조 등을 촉구하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정부는 다나카 총리의 답신에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조총련에 대한 철저한 수사 등의 언급이 포함될 것을 기대했다. ●韓, 美에 압력행사 요구 그러나 주한 일본대사는 9월8일 외교부 장관을 예방,“특사를 보내면 사죄 사절이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9월9일 김종필 총리에게는 “사죄특사의 파견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친서에 다른 현안을 언급하는 것이 어떠냐.”고 ‘황당한’ 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9월4일 함병춘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 하비브 차관보를 비밀리에 만난 데 이어 김동조 외교부장관도 5일 에릭슨 주한미국 대사대리를 만나, 일본에 영향력 행사를 부탁한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강경하자 미측은 우려를 표시했다. 하비브 차관보는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한국정부 입장을 브리핑하겠다.”면서도 “미국은 모두 우방인 두 나라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조용히 일본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9월10일 유정회 소속 최영철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일본정부로부터 11일까지 아무 회답이 없으면 12일에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최후 경고를 일본에 발한 뒤 주일대사와 외무장관의 사표를 받든가 하는 조치를 하고, 다음에 단교조치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 “단교땐 한국 안보 위험” 이에 주미대사관 박근 공사는 12일 하비브 차관보를 만나 거듭 같은 요청을 하지만, 하비브는 격앙된 어조로 “미국은 할 만큼 했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박 공사는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정부는 다시 하비브에게 전화를 걸어 “몇시간 내에 요구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예정된 코스’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방위는 일본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만큼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가 돌아왔다. 하비브는 한국의 조총련 규제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며 일본의 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결국 한·일협정의 주역이었던 시나 특사 일행이 방한해 답신을 전달하면서 한달 가까이 지속된 한·일 외교갈등이 봉합된다. 역시 이 과정에도 한·일협정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중재가 있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문서공개로 본 韓日협정] 긴박했던 협정 순간

    17일 공개된 한·일회담 관련 문서에 따르면,4월3일 ‘청구권 협정’이 가조인되기 직전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외무부 본부와 주일대표부,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간에 보고와 답신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전보에 찍혀 있는 ‘URGENT’‘TOP URGENT’‘긴급’ 등의 표시가 당시의 긴박함을 말해준다. 3월28일과 29일만 해도 합의가 안 된다는 ‘우울한’ 보고들이 이어졌으나,31일부터는 합의사항이 속속 보고된다. 당시 군사정부가 국내의 한·일회담 반대 여론을 신경쓴 흔적도 남아 있다.3월27일 정일권 총리는 이동원 장관에게 훈령을 보내 “청구권 문제에 대해 명분이 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또 4월1일에는 “합의문 중 ‘공여’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의 통용어가 아니므로 ‘제공’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을 대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코자 고도의 ‘언론 플레이’를 강구한 기록도 있다.3월29일 이 장관의 비서관이 외무부의 윤찬 공보관 앞으로 타전한 전보에는 “내일 가조인될 것으로 예상되는 청구권 문제에 있어서 각사 데스크와 접촉해 ‘김·오히라 메모 사실상 백지화’라는 표제로서 대대적인 PR를 하시기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무위에 그친다. 이튿날인 30일 본부의 외무차관은 이 장관에게 “국내외에 불필요한 파문 및 오해를 야기시킬 염려가 있음에 비춰,1억달러 이상을 3억달러 이상으로 구체화해 청구권 문제를 유리하게 해결했다는 식으로 PR함이 좋다는 결론이 있었습니다.”라는 전보를 쳤다. 괜히 일본을 자극해 다된 밥상을 엎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교묘해진 e메일 국제 사기

    최근 이메일을 통해 이른바 ‘나이지리안 419’라 불리는 국제 금융사기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금융감독 당국이 각별한 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28일 해외에서 무작위로 이메일을 보내 거액을 상속받게 됐다거나 자금도피에 필요한 계좌를 제공하면 사례하겠다면서 세금 및 수수료 명목의 자금을 송금하도록 유도, 이를 가로채는 금융사기에 걸려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국제 사기 사건은 대부분 나이지리아와 인접국가인 가나·코트디부아르 등을 진원지로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가 형법 419조를 통해 이를 사기죄로 규정하고 있어 ‘나이지리안 419’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외국환은행에 대해 국제 금융사기로 의심되는 거래와 관련해 해외송금을 의뢰하는 고객이 있을 경우 수취인과의 관계, 송금사유 등을 확인하고 사기 가능성을 주지시킬 것을 요청했다. 또 관련 이메일을 받은 국민들도 송금요구 등에 응하지 말고 금감원과 수사기관에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 조성래 외환조사팀장은 “국제금융사기단이 직접 국내에 들어와 투자자를 접촉하는가 하면 현지 방문을 희망하는 내국인을 초청, 거액의 현금이 예치된 현지 은행의 잔고증명서를 보여주는 등 사기수법이 교묘하고 대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 금융사기는 피의자가 대부분 해외에 거주해 현실적으로 구제받기가 어려운 만큼 어떠한 경우라도 송금요구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피해사례를 보면 대학교수인 C씨의 경우 지난 5월 은닉재산 1000만달러를 해외로 송금하는 데 필요한 계좌를 제공하면 100만달러를 사례비로 주겠다는 외국 여성에게 경비명목으로 8만달러를 송금했다가 이를 고스란히 날렸다. 이 외국여성은 자신을 나이지리아 군 장성의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부친이 사망한 뒤 신변의 위협을 느껴 망명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C씨를 유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C씨는 처음 이메일을 받은 뒤 호기심으로 답신 메일을 보냈다가 사기행각에 걸려들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또 관광사업을 하는 D씨는 지난해 5월 제주도에 관광투자사업의 경영을 맡길 테니 현지 금융기관 수수료와 세금 등 경비를 지원해 달라는 미국 시민권자에게 속아 가나·코트디부아르 소재 은행 계좌로 송금한 40만달러를 모두 떼이고 말았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국제플러스] 日 총리에 미사일방위 권한 추진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국을 방문 중인 오노 요시노리 일본 방위청 장관은 21일 다른 나라가 일본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내각회의와 안전보장회의를 생략, 총리가 방위출동을 발령해 미사일 방위(MD)에 의한 요격을 가능하게 하는 자위대법 개정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오노 장관은 이날 워싱턴 시내에서 동행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탄도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내각 회의, 안보 회의의 수순을 모두 밟으면 늦다. 특별한 규칙을 만들어 문민통제의 관점에서 어떻게 즉각 대응 태세를 취할지 국회에서 심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방위출동과 관련, 자위대법과 무력 공격사태 대처법은 ‘총리가 안보회의에 자문→안보회의 답신→각의 결정→총리 명령’ 등의 4간계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 [클릭 세상속으로] 호텔벨맨이 학력위조 교수로

    [클릭 세상속으로] 호텔벨맨이 학력위조 교수로

    “우리 선생님이 가짜라고요?” 국내 유수의 사립대학이 호텔 ‘벨맨’ 경력이 전부인 고졸 미국인을 영어교수로 임용해 4학기 동안이나 강의를 맡겼다. 그는 위조한 미국 유명대학 석·박사학위로 교수가 된 데 이어 짜깁기한 논문으로 연구비까지 챙겼다. 학생들은 “교수를 채용하면서 해당 대학에 학위수여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았느냐.”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고,‘가짜’를 구속한 경찰은 다른 대학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다른 대학으로 수사 확대 서울경찰청 외사과에 8일 사기혐의로 구속된 H(34)에게는 가짜 학위로 서울 K대 교수로 임용돼 봉급과 연구비를 챙긴 것 말고도 혐의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대마초를 다른 곳도 아닌 교수기숙사의 화분에 심어놓고 상습적으로 피우기도 했다. 뉴욕예술고를 졸업한 뒤 뉴욕 맨해튼의 타워호텔에서 벨맨으로 일하던 H가 이웃한 미용실에서 일하던 김모(34)씨와 한국으로 건너온 것은 2001년 10월. 김씨와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던 H에게 K대의 시간강사 채용공고가 눈에 띄었다. 그는 2002년 9월 태국 방콕의 일명 ‘위조거리’를 찾았다. H는 브로커에게 120달러를 주고 위조한 미국 컬럼비아대 영어교육학 석사학위증서와 성적증명서를 K대학에 제출,2003년 3월 경영학과의 1년짜리 계약직 교수가 됐다. 그는 2학기 동안 3학점짜리 ‘기업영어’를 강의하고 봉급 2400만원을 받았다.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자 간이 부어오른 H는 지난 1월 다시 태국으로 건너가 이번에는 센트럴 미시간대학 영어교육학 박사학위증서를 위조했다. 경영학과 동료교수의 추천서까지 받은 그는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채용시험에 통과, 지난 3월부터 지난달 검거 직전까지 봉급 2900만원을 받고 강의를 했다. H는 유명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 대학측에서 연구비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7월부터 지난달까지 3차례에 걸쳐 다른 학자의 저술을 ‘짜깁기’했다. 그는 유명학술사이트의 주소를 교묘히 바꿔 만든 가짜사이트에 짜깁기 논문을 실은 뒤 학교에 제출, 연구비 1500만원을 챙겼다. ●“3달에 우수논문 3편?” 평소에도 보통 교수들과 뭔가 달라보였던 H가 불과 석달 사이에 유명학술지에 우수평가를 받은 논문을 3편이나 발표한 것은 동료교수들로부터 당장 의심을 샀다. 영문과 교수들은 그의 논문이 사회과학 논문인용색인(SSCI)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학술지의 진짜 사이트에 가서 H의 논문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때마침 1학기 초부터 확인을 요청했던 미시간대로부터도 “우리 대학의 학위수여자 가운데 그런 사람은 없다.”는 답신을 받았다. 영문과 A(46) 교수는 “위조수법이 워낙 치밀해 범죄조직의 일원이 아닌지 걱정됐고, 순순히 시인하고 사임할지도 확신이 서지 않아 곧바로 경찰에 알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H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 대마초 양성반응이 나온 다음에야 범행 사실을 털어놓고 사직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H는 경찰에서 “먹고살려고 이런 짓을 했다.”면서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찰은 H가 지난해 수도권S대학 영문과에서도 3주 동안 강사로 일했다는 진술을 확보하는 한편 허위 학력으로 한국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외국인 강사·교수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결국 피해 보는 건 학생들” H는 모자라는 실력을 만회하려고 과 답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학교생활에 각별히 열성을 쏟았다. 지난 학기 H의 수업을 들은 영문과 3학년 김모(23)씨는 “겉으로는 전혀 수상한 점이 없었다.”면서 “그저 놀랍고 충격적일 뿐이다.”라고 허탈해했다. 같은 학년 김모(22)씨는 “솔직히 배우는 입장에서는 교수님의 실력을 평가하기 힘들다.”면서 “수업이 중단되기라도 하면 결국 피해 보는 것은 학생”이라고 불만스러워했다. ●외국인 해외학위 확인 불가 문제는 현행법상 외국인의 해외학위 취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으며, 외국 대학에 직접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K대는 “외국 대학에 지원자의 학위 여부를 문의해도 답이 오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면서 “H도 해당 대학으로부터 회답을 받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해명했다. 고등교육법에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신고하도록 돼 있으나 외국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학술진흥재단 신숙경(41) 학술정보팀장은 “외국인은 사실상 관리대상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면서 “각 대학이 학위를 취득했다는 대학에 철저히 알아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국민감사청구 대상 확대

    감사원은 국민감사청구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청구대상을 지방자치단체 사무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감사청구에 필요한 ‘국민 300명 이상’ 조건도 ‘100명 이상’으로 문턱을 대폭 낮출 방침이다. 감사원은 국민감사청구제도 개선을 위해 부패방지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최근 이같은 개정 의견을 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정성진)에 공식 제출했다. 국민감사청구제는 20세 이상의 국민이 공공기관의 사무가 법령위반이나 부패행위로 인해 공익을 저해한다고 판단될 경우,300명 이상의 연서를 받아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하는 제도로, 지자체 사무는 제외됐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자치단체 사무까지 국민감사청구 대상으로 포함시키면 국민이 모든 행정사항 전반에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의 국민감사청구 확대 추진은 최근 지방공기업, 제3섹터, 지방기금 등에 대한 특별감사를 통해 지자체의 방만한 예산운용에 제동을 걸겠다는 감사원의 감사 방향과도 관련이 있다. 부방위는 감사원의 개정 의견에 대해 ‘관계기관과의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답신을 감사원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방위 관계자는 “지자체는 물론 관계부처와 충분한 의견수렴이 돼야 한다.”면서 “이미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할 부패방지법 개정안이 법제처 심사과정에 있기 때문에 의견이 반영된다 해도 다음 부패방지법 개정 때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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