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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재다능 시인 둘 새 작품집 선보여

    다재다능 시인 둘 새 작품집 선보여

    이채로운 경력의 두 시인이 각각 새 작품집을 내놓았다. 함성호(48) 시인과 강정(41) 시인이다. 건축평론가 직함을 갖고 있는 함 시인은 사진이 있는 산문집을, 밴드 멤버로도 활동중인 강 시인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네 번째 시집을 들고 나왔다. ■산문집 낸 건축평론가 시인 함성호 시로 지어낸 거유의 뜨락 철학을 품다 지방을 돌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옛집들과 만난다. 한 칸의 초가부터 90여 칸에 이르는 저택까지, 크기와 모양, 위치, 건축 자재 등이 닮은 듯하면서도 제각각이다. 한결같은 것도 있다. 그 집 건물과 뜨락에 간과할 수 없는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 문제는 집이 품고 있는 철학을 모르면 누구에게든 그저 ‘낡은 집’에 불과할 뿐이란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가 지은 ‘철학으로 읽는 옛집’(열림원 펴냄)은 집 지은이의 마음과 집 안에 깃든 뜻을 읽어내는 데 제격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학자들이 지은 옛집 9곳을 답사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만났다.’가 옳겠다. 그리고 그는 옛집들에서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읽어냈다. 이를테면 회재 이언적의 ‘독락당’(獨堂)은 ‘시로 지어진 집’이었고, 정약용의 ‘다산 초당’은 ‘철학의 정원’이었던 것이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이언적은 조선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가로 꼽힌다. 그가 경북 경주 양동마을에 지은 ‘독락당’에선 역설이 돋보인다. 반대파의 탄핵으로 40세에 벼슬자리에서 밀려난 뒤 낙향해 지은 집이다. ‘독락’의 뜻 그대로 남 들일 생각이 없었는지 폐쇄적인 대문을 세웠다. 솟을삼문은 없앴고, 중문은 두 개를 세웠다. 이 같은 건축특성은 그의 정치·사상적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저 희한한 공간일 뿐이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송시열은 충북 괴산 화양리 금사담의 바위에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은거한다. 하지만 그곳은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암중모색의 집이었다. 이황은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안동에만 다섯 채를 지었다. 집이 많았던 것은 그의 학문적 추이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 9명의 집을 ‘만나서’ 그들의 철학을 ‘읽어낸다.’ 저자는 무엇보다 옛집과 옛집을 둘러싼 ‘이야기’에 마음을 둔다.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 무엇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집이 가진 맨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유(巨儒)들이 직접 집을 지었다는 것도 생경하지만, 여기에 선인들의 학문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역사책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믿음은 “우리 건축은 건물 자체만이 아닌 자연과 함께 계획된다.”는 것이다. 집의 건축 방식보다 집이 지어진 위치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을 할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새 시집 낸 밴드 출신 시인 강정 청춘 끝나니 비로소 들린 팽팽한 적막 당기고 있는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도 한 단어로 말해야 한다. 언뜻 생각이 나지 않을 터. 그렇다면 시 한 편을 들여다보자. ‘팽팽하던 힘을 놓아버리면/하나의 점이 수천만 배의 면적을 갖는다/스스로 공간이 되면서 스스로 지워진다’(사물의 원리 중에서) 시인 강정은 ‘활’(문예중앙 펴냄)이라는 시집을 통해 언어라는 화살을 당기고 있는 순간의 팽팽한 적막을 노래한다. 당기고 있는 그때의 긴장, 그때의 몰입, 그때의 적막, 삶의 절정의 순간이 늘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절정의 팽팽함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시편들을 마음껏 보여준다. 빈자리의 적막 속에서 태어난 시들은 그 빈 곳을 메우고 있는, 사라지지 않은, 사라짐을 준비하기에 더욱 강렬한 정념을 표출한다 ‘활’은 2008년 ‘키스’를 발표한 후 3년여 만에 선보이는 네 번째 시집이다. 20대 초반인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에 ‘항구’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은 지난 20년 동안 시, 소설, 음악, 문화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그래서일까. ‘활’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루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다른 세계로의 비상을 예비하고 있는 것 또한 시편 곳곳에 담겨 있다. 이 시집의 특징은 ‘고별사’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두개의 내가 있다고 합니다/둘은 하나의 상대어일 뿐/알고 있는 모든 수의 무한 제곱일 수도 있습니다’(고별사 첫부분)에서 보듯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아 돌아 고별사가 아닌 시편의 무한한 출발을 알린다.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적막을 장전한 키메라’라는 해설제목을 통해 “강정의 새 시집은 시적 언어의 혁신을 모티브로 한 트릴로지의 완결편이자 새로운 자유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두개의 모멘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이 시집의 언어는 한 정념이 완결될 때의 적막과 새로운 자유가 꿈틀댈 때의 카오스적 에너지를 동시에 지닌 키메라에 비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이 기미와 예감으로 가득한, 새로운 말을 기다리는 느낌이라면, 그리고 세번째 시집 ‘키스’가 폭발과 파국의 현장에 대한 사후(事後) 술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때 ‘활’은 앞선 두 시집과 더불어 하나의 트릴로지를 구성하며 대미를 장식하는 느낌을 던져준다. 청년 시인과 성년 시인이 교차하는 정거장이라고나 할까.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책꽂이]

    ●가위주먹(구광렬 지음, 화남 펴냄) 알려지지 않은 남과 북의 소규모 전쟁에 대한 보고서이자 실화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1967년에 있었던 북측의 도발에 대한 남쪽의 작전 배경과 경과를 뒤쫓고 있다. 1만 2000원. ●남왜공정:일본 신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펴냄) 저자는 왜침(倭侵)이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욕망으로 1620년 동안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 침략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란 음모를 세세한 증거를 들어 설명한다. 1만 6500원 ●세계적인 마술사 최현우의 러브매직(최현우 지음, 넥서스 펴냄) 마술사 최현우가 실생활에서 자주 쓰는 마술을 책을 통해 가르쳐 준다. 상세한 과정 설명 사진과 동영상도 첨부되어 있다. 1만 5000원. ●김창환 교수의 DMZ 지리이야기(김창환 지음, 살림터 펴냄)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이자 DMZ 미래연합 전문위원을 맡은 저자가 10년간 접경지역에서 시행한 답사보고서. DMZ에 대한 참지식을 전달하고 훌륭한 여행안내서 몫도 한다. 1만 5000원. ●땅의 마음(윤흥기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한국의 전통 풍수에서 마오리 족의 지오멘털리티까지, 세계를 가로지르는 문화지리학과 전통 생태학의 새 지평을 선보인다. 저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문화지리학 교수로 한국의 풍수 등 전통 지리 사상을 세계 학계에 소개하고 있다. 2만원. ●YOU YOU YOU(조준억·이혜선 지음, 동방의빛 펴냄) 오바마 대통령부터 지강원까지 세계 유명인들의 일화와 어록을 통해 소중한 삶의 지침을 일러주는 자기계발서. 저자는 행정고등고시 출신으로 해양경찰학교 교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1만 9800원. ●한국의 빈곤(김교성·노혜진 지음, 나눔의집 펴냄) 빈곤의 세대 간 이전 등 요즘 화두인 복지 문제를 다뤘다. 임금 노동과 돌봄 노동이 상충할 때 발생하는 ‘시간 빈곤’ 등의 개념이 흥미롭다. 소득 측면에서 빈곤하지 않더라도 장시간 임금노동에 종사할 경우 돌봄의 부족을 도우미 고용 등으로 보완하다 보면 실질소득이 줄게 된다는 지적이다. 2만 2000원.
  •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톤 외교’ 정동창 阿 세이셸 공화국 명예총영사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톤 외교’ 정동창 阿 세이셸 공화국 명예총영사

    달린다는 것은 ‘생각’이다. 생각하기에 인생이 달라진다. 아름답고 숭고한 땀방울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또 달린다. 신영복 교수가 말했다. “달리는 것은 명상이며, 사색이며 육신을 뛰어넘는 비약이며 환희다.”라고. 맞다. 미치도록 달리다 보니 행복해졌고 비약하듯 인생이 확 달라졌다. 달리는 도중에 신영복 교수도 만났고 고(故) 법정스님과도 친해졌다. 산악인 엄홍길, 한복디자이너 김혜순과의 인연도 달리면서 맺어졌다. 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달리기 전도사’라고 한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달리면 행복합니다. 건강해져요!”라고 구호처럼 늘 외친다. 정동창(51)씨. 지난 10여년 동안 마라톤 완주만 무려 70회나 했다. 아마추어로서는 보기 드물게 뉴욕,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등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대회에 참여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도전이라고 하는 그랜드 슬램을 상상하면서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이것이 진짜 마라톤이다.’ ‘달리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책도 펴냈다. 정씨의 ‘달리기 인생’ 중 가장 큰 인연은 뭐니뭐니 해도 아프리카의 섬나라 세이셸 공화국이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위쪽 인도양 바다에 위치해 있다. 인구 8만여명(1인당 국민소득 1만 8000달러)에 불과한 이 나라는 영국 BBC 방송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천국’으로 선정했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한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대선 전) 등이 즐겨 찾았을 정도로 최근들어 휴양지의 새로운 로망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정씨는 어떻게 세이셸 공화국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우선 내년 2월 이 나라에서 제5회 세이셸 국제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2008년 2월 처음 시작한 이 대회는 국민들의 건강, 단합, 해외 관광객 유치, 국가 브랜드 이미지 고양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국제육상연맹이 공식 인정한 대회이기에 천혜의 자연 경관 속에서 달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내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토너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세이셸의 많은 사람들이 더운 나라에서의 마라톤대회는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한국, 미국, 프랑스, 남아공, 독일,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참가할 만큼 세이셸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이 대회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정동창 세이셸 명예총영사다. “2004년 초 세이셸 공화국 외교부에서 메일이 한 통 도착했습니다. 명예영사 신청을 받고 있으니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메일이 잘못 왔나 싶어 신경을 안 썼지요. 그런데 얼마 후 케냐에 주재하는 이석조 대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세이셸 공화국은 우리나라에 외교공관이 따로 없어 케냐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대사는 제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항률 화백과 친한 사이였지요. 그래서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인연의 끈은 또 있다. 당시 정씨는 마라톤 전문여행사를 운영하면서 해외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한국 참가자들의 수속을 대신해 주는 일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들을 우리나라 국제마라톤 대회에 초청하는 일 등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 국내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케냐 선수들을 알게 됐다. 초청된 케냐 선수들은 대회가 끝나고 나서 항공편이 원할하게 연결되지 못해 발이 묶여 있었다. 이때 정씨가 선수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항공편이 연결될 때까지 3일 동안 숙식을 제공하면서 매일 아침 함께 남산을 달리고 별도의 시간을 내서 서울 관광도 시켜주었다. 본국으로 돌아간 케냐 선수들은 한 모임에서 케냐 외교부 사람들을 만나 한국에서 참으로 고마운 분을 만났다는 사연을 얘기하면서 정씨의 명함을 건넸다. 이런 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명예영사 추천을 받게 됐던 것. “생각지도 못했던 명예총영사가 된 후 여러 차례 현지에 가서 세이셸 공화국의 외교부 장관과 제임스 미셸 대통령 등을 만나면서 향후 할 일에 대해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때 제가 마라톤 대회를 열자고 제안했지요. 처음에는 반대를 했습니다. 아시아의 멀고도 생소한 한국에서 온 사람이 마라톤 대회를 열자고 하니 황당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연평균 22도에서 32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기에는 무리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요. 하지만 국민 건강과 단합,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스포츠라고 여러 번 설득했습니다. 뉴욕과 런던,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 대한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수차례 설명을 했더니 결국 받아들이더군요.” 정씨는 수도 빅토리아 해변을 출발하는 5㎞, 10㎞, 하프마라톤과 42.195㎞ 풀코스 구간을 직접 개발해 국제육상연맹의 인증을 받아냈다. 국제마라톤대회 심판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가 코스별로 몇 번을 직접 뛰어 보고 답사한 끝에 드디어 2008년 2월 제1회 세이셸마라톤대회가 열렸다. 한국인이 해외에 마라톤을 수출하는 첫 쾌거를 이루어내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350여명 정도가 참가했으나 해마다 참가자 수가 늘어 지난해에는 내국인 1000여명, 외국인 400명(28개국)에 이를 만큼 세이셸 최대의 이벤트로 발전했다. 내년 2월 대회에는 31개국에서 12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그는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 점은 달리는 데 다소 회의적이었던 세이셸 국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라고 회고한다. 수도 빅토리아 시내에 아침, 저녁으로 조깅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해변을 달리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정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문화행사를 열었다. 첫해에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첼리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김영호 교수 등 유명 연주자들을 초청해 세이셸 국민들에게 차원 높은 문화를 느끼도록 했다. 2009년에는 이강소, 박항률, 금누리, 이용수, 김재민, 권기동 화백 등 우리나라 유명작가들의 초대전을 개최했다. 2010년에는 한복패션디자이너 김혜순의 패션쇼를 열어 우리의 아름다운 한복의 멋을 한껏 맛보게 했다. 이 같은 정씨의 노력에 힘입어 2009년 10월 세이셸 공화국 미셸 대통령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고 이때 정씨의 숨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외교통상부에서도 정씨를 세이셸 공화국의 유일한 외교연락 창구이자 준외교관 자격으로 인정했다. 정씨는 2009년 6월 한·세이셸 경제기술협력(ETCA) 체결, 2010년 3월 대전광역시와의 자매결연, 2010년 7월 한·세이셸 항공운송협정체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세이셸에 가면 외교부 장관 등 정부 관리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때마다 저를 ‘미스터 마라톤’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세이셸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해변 중 1위로 지목될 만큼 빼어난 해변경관을 간직한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 12배의 광활한 영해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고 참치는 세계 2위의 어장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참치 전쟁이라고 하는데 세이셸을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씨가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대 후반.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체중이 90㎏을 훌쩍 넘었다. 과중한 업무와 잦은 술자리 등으로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라는 진단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뛰는 것이 힘들어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점차 속보로 끌어 올렸고 어느 정도 체력이 붙자 조금씩 뛰기 시작했고 이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점차 여유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 요즘도 그는 달린다. 달리면서 그날과 그달에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정리한다. 더러는 명상을 하면서 자신과 진지한 대화를 한다. 고민이 생길 때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 남산 산책로나 북악스카이웨이 코스를 후련하게 달린다. 그에게 왜 달리느냐고 물었다. “땀 흘린 만큼 돌아오는 정직한 보람과 행복의 참맛이 있기 때문이지요.” 편집위원 km@seoul.co.kr ■정동창은 1961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86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경희대 관광경영학과 석사(1994),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박사과정(2002)을 수료했다. 경원대, 배재대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 및 아주관광 부장(1986~1996)을 역임한 뒤 마라톤 전문여행사 여행춘추(1997~2011)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 세이셸 공화국 명예총영사이며 세이셸 관광청, 투자청, 에어세이셸 한국사무소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틈틈이 마라톤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호주, 뉴질랜드 100배 즐기기’(2001), ‘이것이 진짜 마라톤이다’(2002, 번역), ‘달리면 인생이 달라진다’(2011) 등이 있다. 특이사항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70여회 완주했으며 이 가운데 35회 이상을 보스턴, 뉴욕, 런던 등 세계 유명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외국어대 산악회, 100회 마라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라톤 전도사’ ‘미스터 마라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 영종지구 용유·무의관광단지 개발 가시화

    영종지구 용유·무의관광단지 개발 가시화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영종지구가 최근 각종 개발 호재를 만난 덕분에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해 인천경제자유구역 중 가장 기대를 모았지만, 각종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하는 탓에 송도국제도시에 비해 개발이 더디다는 지적을 받고 속앓이를 해오던 터였다. 6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영종지구에는 부동산투자이민제가 시행된 데 이어, 영종하늘도시와 용유·무의관광단지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일자로 ‘영종하늘도시 복합리조트지구’ 및 ‘운북복합레저단지’에 부동산투자이민제를 시행한다고 고시했다. 이 제도는 콘도, 리조트 등 휴양 목적의 체류시설에 15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국내 영주권을 주는 것이다. 이로써 중국 등 해외자본 유치의 길이 열리게 돼 관광·레저산업 활성화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홀딩스코리아, 4조5000억원 투입 일본에 본사를 둔 오카다 홀딩스코리아는 지난달 말 인천경제청과 영종하늘도시 3699㎢에 세계적 수준의 복합 리조트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홀딩스코리아는 4조 5000억원을 투입해 외국인전용 카지노, 호텔, 테마파크, 쇼핑몰, 컨벤션센터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종철 인천경제청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경제자유구역 사상 최대 규모의 외자유치로, 사업부지에 복합 리조트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단지 등을 단계적으로 조성해 영종지구를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기간 답보 상태였던 용유·무의관광단지도 중동 재벌이 관심을 보임으로써 개발을 향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카타르의 알파단그룹 회장 일행은 지난달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 용유·무의도 현장 답사를 마친 뒤 용유·무의관광단지 건설사업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개발대상은 용유도와 무의도 전체(21.65㎢)이다. 영종지구 최대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사업은 인천시가 1989년 기본계획 수립 후 2007년 독일 캠핀스키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지정됐지만 지금까지 성과 없이 표류해 왔다. ●증동 알파단그룹, 사업 참여 표명 아울러 한류문화의 파급 효과를 관광산업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한류문화리조트’ 조성 사업도 추진된다. 리조트 부지(100만㎡)는 밀라노디자인시티(MDC), 운북복합레저단지, 국제업무지구 가운데 MDC 부지가 유력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인천시가 3조 7000억원을 들여 영종하늘도시 370만㎡에 디자인·전시산업의 메카를 조성하는 MDC 사업은 사실상 무산됐다. 인천지방법원은 최근 MDC 사업 시행사인 피에라인천전시복합단지(FIEX)의 신청을 받아들여 법인 파산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영종하늘도시(1931만㎡)의 전체적인 개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업비가 8조 2000억원에 달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 여파로 아파트 분양은 물론 해외 투자유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는 인천도시개발공사가 갖고 있는 개발사업권을 인천경제청으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운북동 260만㎡의 부지에 2017년까지 4조 5000억원을 들여 국제학교, 국제헬스케어단지, 재미동포타운, 쇼핑·레저타운 등을 조성하는 운북복합레저단지(미단시티) 개발사업도 투자 유치가 부진한 데다 돈줄이 막혀 애로를 겪고 있다. 기반시설 조성공사는 마무리됐지만 자금난에 봉착해 사업자인 미단시티개발㈜이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은 5000억원에 대한 리파이낸싱(차입금 상환기간 조정) 협상을 하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고향의 봄 부르며 졸업식 하니 눈물 더나요”

    “고향의 봄 부르며 졸업식 하니 눈물 더나요”

    “Na A Sal Thon Ko Hi Yang En Koth Pee Nun San Kol(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지난 2일 오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룸비니 칼리지 내 강당. 정겨운 노래가 들려 귀를 의심했다. 하얀 교복 상의에 넥타이를 맨 5학년 졸업 예정 여학생들이 알파벳으로 한국어 발음을 옮겨 쓴 ‘고향의 봄’을 능숙하게 불렀다. 이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 가사를 현지어인 신할리어로 번안해 합창했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송사와 답사도 이어졌다. ●졸업행사 없는 현지에 첫 ‘한류졸업식’ 국내에서 2월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졸업식 장면이지만 스리랑카에서는 처음 열린 졸업식 행사였다. 스리랑카는 초등부터 고교 과정까지 12년을 내리 마친 뒤 수료증만 받고 졸업을 한다. 졸업을 기념하는 행사는 없다. 이른바 ‘한류 졸업식’이지만 강당 곳곳에서는 졸업생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눈가를 훔쳤다. 룸비니 칼리지는 초등 과정의 마지막 학년인 5학년을 마친 학생들을 위해 처음으로 졸업식을 마련했다. 지난해 10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스리랑카 현지 학교들에 한국의 졸업식 노래가 저장된 디지털 피아노 3000대와 교육용 칠판 3만개를 기증한 것에 대한 답례였다. “한국의 졸업식 문화를 전파하고 싶다.”는 이 회장의 제안을 스리랑카 교육부가 받아들여 이루어졌다. ●교육기자재도 전달… 베트남 등서 확산 부영그룹은 2003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캄보디아·스리랑카·동티모르 등 아시아 14개 국가에서 초등학교 600여곳을 무상으로 세웠다. 2006년부터는 교육용 칠판 56만여개, 디지털 피아노 6만여대를 기증하는 등 국제 문화교류와 민간외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5월 베트남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으로 한국의 졸업식 문화와 졸업식 노래가 확산되고 있다. 글 사진 콜롬보(스리랑카)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기획부동산 땅 사기분양 주의!

    주택시장 침체로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최근 들어 ‘기획부동산’으로 인한 피해가 늘자 국토해양부가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30일 국토해양부는 개발 가능성이 거의 없는 땅을 사 필지분할을 한 뒤 마치 개발 호재가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유인해 고가에 팔아넘기는 기획부동산이 활개를 치고 있다며, 피해를 막기 위한 요령을 제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용도지역이 보전녹지지역인 토지나 간척지 일대의 토지는 개발행위를 할 수 없는데도 마치 개발이 가능한 것처럼 속여 시세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팔아 폭리를 취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런 사기분양을 당하지 않으려면 토지이용규제정보시스템, 한국토지정보시스템, 산지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토지 정보를 확인하고, 공적장부 등을 통해 개발이 가능한 토지인지도 짚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획부동산의 단골 상품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평창 등지와 행정중심복합도시 인근, 새로 길이 뚫리는 강원도 지역 주변 땅이다. 이 일대는 기획부동산이 최근에 사들인 땅도 있고, 몇 년 전에 샀다가 팔아먹지 못한 땅을 최근 동계올림픽 유치로 들뜬 분위기를 이용해 처리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반드시 대상 토지의 정확한 지번을 파악해 지자체에 개발계획을 문의해 보고, 현장 답사를 통해 접근성, 수익성 등이 과장되지 않았는지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자신이 산 땅과 실제 지번이 맞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를 데리고 현지에 가서 입지가 좋은 땅을 보여준 뒤 실제로는 다른 땅을 넘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투자하려는 토지가 공유지분일 경우에는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많은 만큼 계약 시 소유관계를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분양 회사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지 등도 살펴봐야 한다. 법인등기부등본을 열람해 신생법인이거나 법인 소재지가 수시로 변경된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김성곤기자 sumggone@seoul.co.kr
  • 조선후기 산수화展-정선 ‘우화등선’ 등 첫 공개

    조선후기 산수화展-정선 ‘우화등선’ 등 첫 공개

    “뭐랄까…. ‘박연폭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었어요. 소장가 집에 가서 보는데 포장이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드러나는 그림에서 폭포 소리가 고스란히 나는 것 같아 그 앞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오죽했으면 임진강을 직접 답사해 사진 찍어서 이 그림하고만 같이 전시해 둬도 충분하다고 말했을까요.”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흥분해서 말하는 작품은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이다.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이 임술년(1742년) 늦가을 무렵 연천현감 신주백, 관찰사 홍상공을 모시고 연강(지금의 임진강)에서 유람한 모습을 비단 위에 그려 놓은 ‘연강임술첩’(蓮江壬戌帖)이다. 이렇게 제작돼서인지 화첩치고는 무척 크다. 일단 화첩 자체가 보통 화첩의 두배 크기인 데다 펼친 양쪽을 한개의 화면으로 모아 썼다. 일반적인 화첩에 비해 4배나 큰 셈이다. 작품은 모두 세 벌이 만들어져 정선, 신주백, 홍상공이 나눠 가졌다. 따라서 존재 자체는 이미 학계에 보고된 상태. 한 벌이 실물 그 자체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조선후기 산수화전-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전이다. 그러니 이 교수가 흥분할 법도 하다. 임진강 사진을 찍어 대조하자는 것도 진경산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서다. 그는 “겸재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가 바위와 산을 그린 대표작이라면 이 작품은 강에 대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림에는 시종들이 관찰사를 모시고 나오고, 참가자들이 관찰사에게 인사하고, 같이 배를 타고 나가는 과정이 시간순으로 배열돼 있다. 전시에서는 겸재 작품 외에 김명국, 심사정, 강세황, 이인문, 김득신, 허련 등 23명의 작가가 그린 산수화 4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 삼성리움미술관의 ‘조선화원대전’에 이어 또 하나의 고서화전인 셈이다. 박우홍 동산방 대표는 “겸재 작품을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은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면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우리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수집가들을 일일이 설득해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 만큼 차분한 마음으로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733-58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Weekend inside] 한국 관광산업 반세기 어제와 오늘

    [Weekend inside] 한국 관광산업 반세기 어제와 오늘

    우리나라에 관광산업이 태동한 지 반세기 만에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목전에 두게 됐다. 관광의 무한한 가치에 눈을 떠 ‘관광사업진흥법’을 만든 1961년 외국인 관광객은 1만명 남짓에 불과했다. 한국관광은 한마디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낸 것이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했던 관광 불모지에서 ‘관광대국’의 디딤돌을 만든 반세기 역사를 되돌아봤다. 서울관광의 역사가 한국관광사와 다름없다. 1961년 서울시관광협회의 창립이 관광산업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됐고, 지금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80% 이상이 서울을 찾는다. 25일 시관광협회와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연간 관광객수는 1961년 1만여명에서 1981년 100만명을 돌파한 뒤 올해 10월 기준으로 808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3% 증가한 98만 8000명이 한국을 다녀갔는데, 이 추세라면 연말까지 1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체 관광객은 10% 가까이 증가했다. 관광수입도 1962년 135만 달러에서 지난 9월 72억 달러를 넘었다. 연말까지 100억 달러를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관광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관광을 산업화 측면에서 그해 8월 ‘관광사업진흥법’을 제정, 공포하면서 민간 관광의 길이 열렸다. 당시 법안은 주로 외화획득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해 11월 8일에는 서울시관광협회가 설립됐다. 그 이전에는 1958년 주한 미국인으로 구성된 관광단이 주말마다 유명 관광지를 답사하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여행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군사정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입법 대량생산기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관광분야에서는 결과적으로 큰 공적을 남긴 셈이다. 1961년 4월 노스웨스트항공(NWA)의 제트여객기가 서울~도쿄 노선에 취항, 해외 민항기가 처음으로 한국에 착륙했다. 당시 국내에는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있었지만,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관광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설도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2년제 초급대학이던 경기대는 6개월 과정의 관광 및 호텔요원양성소를 설치해 1차로 20명을 선발했다. 이후 1963년 경희대와 경기대학에 관광과가 신설됐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관광산업에 전기를 마련했다. 여행산업에도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다. 자유화가 국민의 삶과 관광산업에 미친 파급력은 그만큼 컸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국내의 해외 여행자수는 72만명에 불과했으나 이듬해 빗장이 풀리자 67.3% 증가한 121만명이 해외를 방문했다. 이후 해외 여행자수는 해마다 10~20%대의 고속 증가세를 보이며 2007년에는 1300만명이 해외로 나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온라인 전문여행사의 발전도 촉발시켜 모든 여행사들이 인터넷을 주요 ‘모객 채널’로 활용하게 됐다. 서울은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0년 가볼 만한 여행지’ 3위에 올랐고, 미국 뉴스전문 채널인 CNN은 ‘서울이 위대한 50가지 이유’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한류와 K팝 열풍이 세계를 휩쓸면서 올해 ‘외국인 1000만명’이라는 벽을 돌파하게 됐다. 서울시관광협회 남상만(63·한국관광협회 중앙회장 겸임) 회장은 “한국관광이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광 인프라 조성과 함께 관광산업 종사자들에게 외국 손님에 대한 깍듯한 예의범절과 적합한 매너를 가르치는 호스피털리티(환대)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면서 “특히 관광산업이 제2의 도약을 하려면 정부와 자치단체들의 법적 규제완화와 세제 지원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인생을 살면서 간이 안 맞으면 섬으로 간다. 그런데 향기가 그립다면 어디로 갈까. 겨울의 언덕을 넘으려는 듯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런 까닭에 쌀쌀했으나 그윽했다. 비탈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고고한 사색의 향기를 뱉어냈다. 이리저리 뒹구는 그것들이 황량하게 비어 있는 마음의 곳간을 조금씩 채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간송미술관은 간송이 33세 때 자신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1966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서화를 비롯해 자기, 불상, 전적(典籍), 와당 등 국보급 문화재 14점과 보물급 고서화 12점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간송은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평생 민족 문화재를 모으는 데 힘썼다. 또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아 오늘날까지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그런 이곳에서 지난달 겸재의 ‘어초문답’, 신윤복의 ‘미인도’ 등 조선시대의 풍속인물 그림을 내걸어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채워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으로 전시 기간 내내 장사진을 이뤄 다시 한번 국민 미술관임을 입증했다. 이렇게 우리 문화의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뭐니 뭐니 해도 최완수(69)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공력이 절대적이다. 지난 45년 동안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매년 두 차례 논문집 ‘간송문화’를 발간하고 이를 통해 ‘추사명품집’ ‘겸재명품집’ 등을 발표하며 미술사 연구의 산실(産室)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연구실에는 박사급 연구원만 수명이 있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층 연구실에서 만난 최 실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칠순인데도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여기에 있으면 세월의 시계가 거꾸로 가느냐고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그는 ‘부지노지 장지운이’(不知之 將至云爾)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에 이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나 보다.”라며 웃는다. 청년의 미소처럼 해맑다.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여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다. “그제는 (연세대) 강의 나갔고 어제는 오랜만에 겸재 만나러 북악산과 인왕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겸재를 만나러? 궁금해하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겸재는 장동팔경(壯洞八景)을 남겼습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 걸친 장동(壯洞) 일대의 경승지 8곳, 그러니까 필운대, 대은암, 청풍계, 청송당, 자하동, 독락정, 수성동, 취미대 등을 그렸지요. 겸재 동호인 몇 명과 겸재를 생각하며 그림 속을 같이 답사했지요.” 그는 겸재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1993), ‘진경시대’(1998), ‘겸재의 한양진경’(2004), ‘겸재 정선’(2009) 등을 펴내 겸재 연구의 종결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가 겸재와 인연이 된 것은 1966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곳에서 겸재의 작품들과 만나면서다. 그는 숙명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를 문화적 정체기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를 뒤집기 위해 조선 문화의 절정기인 진경시대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지요. 조선 전기에는 중국을 닮아보려고 했지만 나중에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주자 성리학을 발전시켜 조선 성리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성리학이 꽃을 피웠고 이를 토대로 진경 시문학과 진경 산수화가 나왔습니다. 겸재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차원 높은 회화미로 표현한 최고의 화가이지요.” 겸재에 대한 찬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84세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경 산수화를 창안하고 절정에 올려놓은 뒤 추상 단계에까지 한꺼번에 통달한 말 그대로 화성(畵聖)입니다. 일부에서는 화원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에는 선비가 아니면 (진경산수를) 창안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주역 등 사서삼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7서에도 아주 능통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주역의 음양조화, 중국 화가들도 감히 흉내조차 못 낸 남·북방 화법을 동시에 표현해 낸 겸재의 그림을 본 중국 사람들은 아주 환장을 합니다. 중국이 우리 문화에 미쳐버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확실한 종결편 때문이지요. 유라시아를 거쳐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온 문화들을 간단 명료하게 융합시키면서 종결 처리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림에서는 겸재, 글씨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최 실장은 “조선 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던 진경시대(1675~1800)에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 의식이 아주 높았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우리 민족은 ‘요점 정리’를 하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 실장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요점 정리의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모으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전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지난달 전시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도 그러한 자긍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전시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최 실장은 “(찾아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웃는다. “2시간 넘게 기다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짜증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무려 7번이나 본 사람도 있어요. 올 때마다 간송미술관 도록을 가지고 가서 친척들에게 나눠 주면 그분들이 다시 간송미술관을 찾고 그랬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왔는데 기다리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여긴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문화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도 했습니다. 관람객 대부분이 찬란했던 진경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즐거운 자리라고들 표현해 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매년 5월과 10월, 봄과 가을 딱 두 차례만 전시를 한다. 1971년 ‘겸재 정선 서화전시회’를 시작으로 그 원칙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특히 이를 통해 겸재와 추사에 관한 연구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의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했다. 겸재와 추사만 연구하는 이른바 ‘간송학파’(30여명)까지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 미술관은 연구 중심의 박물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대중에게 봉사하기 위해 전시하는 것이지요. 문화의 고향에 돌아오게 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전시에 중점을 두다 보면 연구가 안 되고 산만해지고, 그러면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은 ‘괜히 왔나’ 하면서 다리만 아파합니다. 우선 연구에 집중한 다음 일목요연하게 전시를 해야 관람객에게 좋은 느낌을 선사할 수 있지요. 그래서 1년에 두번만 전시하는 겁니다.” 이어 요즘 세상이 쾌속과 안락 위주로 가다 보니 문화의 기반인 의식주마저 우리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들에게 우리의 것, 우리의 고향을 찾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했다. 다음 전시에 대해 묻자 그는 “연구 중”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어떤 것을 연구하는지 물었다. “조선 왕릉에는 석상, 호석 등 조선시대의 문화를 오롯이 표현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간직한 것들이지요. 진경시대의 석인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조각한 덕에 시대적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척됐습니다. 조선 초기의 석상은 명나라와 비슷하다가 점차 조선 스스로의 문화를 표현하고 있지요. 또 거기에는 의궤가 담겨 있습니다. 현장은 물론 자료 조사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걸 발표하면 (기존의 내용들이) 뒤집어질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웃음). 바로 새롭게 쓰는 조선통사거든요.” 최 실장은 겸재에 이어 내년에는 추사의 종결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뒤이어 ‘왕릉 종결편’도 개봉하겠다는 의욕을 내보였다. 사학자로 올곧게 살아온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다음 작품이 사뭇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고교 때 백아 김창현 선생 만나 조선 사대부의 한문·문화 섭렵 ●최완수 실장은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한학과 보학(譜學)의 대가였던 백아(白牙) 김창현 선생을 만나 한학에 빠져 조선 사대부의 한문과 문화를 모두 섭렵했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동국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 오다 지금은 연세대 대학원 강의만 하고 있다. 1965~1966년 국립박물관을 거쳐 1966년부터 지금까지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추사집(1976), 금추사연구초(1976), 그림과 글씨(1978),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1993), 명찰순례 1,2,3(1994),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1998), 조선왕조 충의열전(1998),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1999), 겸재의 한양진경(2004),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2, 3(2007) 등이 있다.
  • 거지·악사… 중세 비주류의 삶

    중세(500~1500년) 유럽의 도시에는 길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 인구의 반을 차지했던 비주류 인생은 거리의 악사, 거지, 사형집행인, 동물 가죽 벗기는 사람, 목욕치료사, 매춘부, 유대인, 똥 푸는 사람, (있지도 않은 가상의) 마녀 같은 이들이었다. ‘중세의 뒷골목 풍경’(양태자 지음, 이랑 펴냄)은 독일에서 22년간 산 비교종교학 박사인 저자가 여러 차례의 답사와 자료 조사를 통해 완성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5만~6만명의 여성이 억울하게 불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바퀴에 매달려 돌려진 채 죽은 ‘마녀 사냥’이다. 중세 유럽에서 마녀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마녀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토속 종교가 그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기 전 유럽에는 자연 종교이자 신비 종교인 ‘비카’ 같은 종교가 있었다. 토속 종교는 당연히 그리스도교 교리와 충돌했는데, 그리스도교 수장들은 무조건 자기들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과 말을 하면 마녀로 몰아붙여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처음에는 종교적인 숙청으로 시작한 마녀사냥이 나중에는 가족, 친척, 이웃끼리 조금만 화가 나도 상대를 고발하는 무기로 이용됐다. 관청에서는 눈물 시험, 바늘 시험, 불 시험, 물 시험 등으로 마녀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마녀 혐의자를 꽁꽁 묶어 물에 넣고는 몸이 둥둥 뜨면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 책은 마녀 사냥뿐 아니라 동성애를 단속한 밤의 관청, 사교의 중심지 목욕탕, 다산의 여왕, 여교황 요한나, 34년간 철가면을 쓴 사나이 등 중세의 각종 사건·사고를 오늘로 되살린다. 저자는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인 김금화 만신에게 신내림을 받았다는 안드레아 칼프라는 독일 여인이 억울하게 죽어 간 중세의 마녀들을 위해 한국의 지노귀굿(씻김굿)을 올려 주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중세 유럽을 냉철하게 비판할 수 있는 안목과 소양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랐다.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옛 터 가보니

    신흥무관학교 옛 터 가보니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던 신흥무관학교는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다. 학교가 있던 자리는 옥수수밭으로 변했고 벽돌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흔한 표지석이나 기념비 하나 없었다. 학교가 세워졌던 지린(吉林)성의 고산자(孤山子), 합니하(哈泥河), 추가가(鄒家街) 3곳 모두 사정은 똑같다. 세월 탓이라기보다는 후손들의 무관심 탓이 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달 20~23일 신흥무관학교 창설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진행된 현지 답사에 함께 나서 중국 지린성 일대의 유적지를 찾았다. 첫날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도착해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류허(柳河)현으로 이동, 조선족 완전중학교를 방문했다. 류복현 교장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신흥무관학교터를 차례로 들렀다. 추가가는 이회영·이상룡·김대락 선생의 가족이 집단으로 망명해 1911년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를 열었던 곳이다. 중국 공안은 조선족들의 민족의식 자극을 우려, 답사단의 차량을 따라붙기도 했다. 취재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한 현지 동포는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사관학교의 시초이자 항일투쟁의 핵심”이라면서 한국 정부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주문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4월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선생을 비롯, 양기탁·이상룡 선생 등이 세운 군사교육기관이다.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이자 초대 주필인 양기탁 선생은 1907년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결성했다. 대한매일신보와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양 선생의 혼이 밴 산물이다. 글 사진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눈길끄는 이색 문제

    눈길끄는 이색 문제

    올해 수능 시험에는 최근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활용하거나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지문에 담은 문제들이 여럿 있었다. 독특하고 이색적인 출제 양식으로 창의력과 종합적 사고력, 시사감각을 평가한다는 것이 출제 취지다. 4교시 사회·과학탐구영역에서는 독도 관련 문제가 눈에 띄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교과서 왜곡 시도와 관련해 이례적으로 한국지리·한국근현대사 과목에 중복으로 출제됐다. 한국지리 1번 문항은 독도를 답사하고 나서 작성한 보고서에 들어갈 내용을 물었고, 한국근현대사 4번 문항은 독도를 ‘이 섬’으로 지칭하고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을 가려내도록 했다. 현장 교사들은 “독도에 관한 문항이 수능시험에 출제된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법과 사회 과목에서는 올해 1월 우리 군 청해부대가 펼친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관련 문제가 출제됐다. 이 과목 3번 문항은 우리 군에 생포돼 법정에 선 소말리아 해적 5명에 대한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지문으로 제시한 뒤 법적 판단으로 옳은 내용이 뭔지 물었다. 사회문화 8번 문항은 최근 열풍이 분 가수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깜짝스타’의 사연을 연상시키는 지문을 제시하고 준거 집단과 내집단, 공동사회와 이익사회 등의 개념을 물었다. 1교시 언어영역 6번 쓰기 문제에서는 ‘자기소개서’가 소재로 등장했다. 한 학생이 스스로 묻고 답하는 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항목을 만드는 변형 문제였다. 21~24번 문항의 지문은 이어폰으로 스테레오 음악을 들을 때 두 귀에 약간 차이 나는 소리가 들어와서 자기 앞에 공연장이 펼쳐진 것 같은 공간감을 느끼는 효과가 어떤 원리인지를 설명했다. 2교시 수리 나형의 4번 문항은 유클리드 생수 1병과 피타고라스 김밥 1줄 등 ‘수식으로 표현된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살 때 내야 할 금액을 지수와 로그를 활용해 계산하도록 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광진, 생활폐수 60% ‘쌀뜨물’ 재활용

    광진, 생활폐수 60% ‘쌀뜨물’ 재활용

    “쌀뜨물이 심각한 수질 오염원이라는 사실을 아세요. 3ℓ를 정화하려면 340배인 깨끗한 물 1t이 필요합니다.” 광진구가 9일 오후 2시 구청 대강당에서 구민들을 대상으로 쌀뜨물을 활용한 녹색생활 실천교육을 실시하기로 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생활폐수 60%를 쌀뜨물이 차지한다는 데 착안했다. 구는 이미 쌀뜨물 섞은 미생물(EM) 발효액을 쓰는 경기 동두천시 축사를 답사해 효과를 확인했다. EM발효액을 만들 때 원액에 보통 물을 붓지만, 쌀뜨물을 넣으면 발효액이 부드러워지고 악취 제거와 수질정화에 좋다. 이날 강의에선 전주대 EM 연구개발단 김영규 교수가 나와 지구환경 오염을 개선하기 위한 EM 이해, 환경정화를 위한 EM활용법과 쌀뜨물 발효액을 만드는 방법, 그린스타트 실천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교육 뒤엔 EM 활용액과 EM으로 만든 비누를 무료로 제공, 가정에서 체험할 기회도 제공한다. 내년에는 청소년 그린리더 교육과 연계해 지역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순회교육을 펼치며 동 주민센터와 문화센터 등에도 관련 프로그램을 개설해 쌀뜨물을 활용한 EM 발효액 만들기, 비누만들기, 흙공 만들기 등 현장체험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또 동 주민센터 등 주요지점 8곳에 EM 배양기를 설치해 EM활용액을 무료로 공급하기로 했다. 김기동 구청장은 “각 부서에 EM활용액을 나눠 줘 청사 정화조와 화장실에 시범적으로 사용하도록 권장하기로 했다.”며 “환경부 인증 그린시티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 환경정책을 발굴·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서아프리카 강소국 베냉 왕국을 가다

    서아프리카 강소국 베냉 왕국을 가다

    EBS 세계테마기행은 7~10일 오후 8시 50분 ‘작지만 강한 나라, 아프리카 베냉’ 편을 방영한다. 베냉?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아프리카 서쪽, 가나와 나이지리아 사이에 길고 가느다란 형태로 끼어 있는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반 정도. 하지만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왕국 다호메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아보메 왕궁과 아프리카 유일의 청동공예제품 등 눈요깃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부 ‘부두교의 중심, 위다’는 부두교를 집중 조명한다. 대개 부두교 하면 뭔가 신비주의적이고 기괴한 종교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대부분 서구를 거쳐 들어온 경우가 많다. 흑인 노예들이 혹독한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 기댔던 버팀목이 바로 부두교다. 미국으로 팔려가기 전 개처럼 끌려갔던 4㎞ 모랫길 ‘노예의 길’, 두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다 하여 이름 붙은 ‘돌아올 수 없는 문’ 같은 옛 노예무역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부두교에 대한 오해를 걷어 낸다. 2부 ‘사라진 왕국, 아보메’는 다호메이를 조명한다. 다호메이는 베냉 이전의 국호.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국이었다. 호전적이었던 이들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프랑스에 점령되기 전까지 적대 부족들을 미국에 노예로 팔아넘기면서 많은 부를 쌓았다. 그들이 쌓아올린 화려한 궁전이 바로 아보메다. 이 왕궁과 주변 지역의 답사를 통해 왕국의 화려했던 옛 모습을 쫓아가 본다. 3부 ‘전통 그대로의 삶, 솜바족’은 베냉 북부에 위치한 나티팅고를 찾아간다. 이곳에는 송이버섯처럼 생긴 집, 타타솜바를 짓고 사는 솜바족이 있다. 옛 왕국 시절 자신들을 노예로 팔아넘긴 이들은 집권세력 바리바족이었다.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요새 같은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게 타타솜바라는 독특한 집 형태가 됐다. 단순한 원통형 집처럼 보이지만 입구에 들어서면 미로 같은 방과 통로를 거쳐야 한다. 위기감은 종족의 단결을 단단하게 해주는 법. 솜바족은 빗살무늬 문양의 타투를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단단히 한다. 4부 ‘종교와 삶이 하나, 케토우’는 아직도 전통사회 풍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베냉의 속살을 본다. 지금이야 민주공화국이라는 체제 아래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직도 각 지역별, 부족별로 왕이 따로 존재하고, 이 왕들은 자신의 권역에서 문화 관광의 왕 역할을 떠맡고 있다. 주민들도 재판 같은 법적 절차보다는 주술사를 찾아가거나 전통 의식에 기댄다. 케토우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요루바족의 왕을 만나 이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민은 명령한다… 살아서 돌아오라”

    “국민은 명령한다… 살아서 돌아오라”

    “산의 전설이 된 당신의 무한한 개척과 도전 정신을 존중합니다.” 지난 18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산악인 박영석(48) 대장과 신동민(37)·강기석(33) 대원의 장례 절차가 1일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추모 물결이 온·오프라인에서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안나푸르나 산행은 그의 인생 마지막 목표였던 세계 3대 난벽에 ‘코리안 루트’ 남기기를 위한 등반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kre***’은 “박영석님 정말 멋지게 사시다 멋지게 가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년 봄에 그 누군가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발견되어지길 바랍니다.”라며 추모했다. ‘gyung***’는 “박영석 대장은 평소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자주 불렀다. 도전밖에 모르던 ‘아름다운 바보’는 그렇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과 함께 영원히 안겼다.”며 그를 기렸다. 또 박 대장이 생전에 즐겨 표현했던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라는 말도 온라인에서 속속 퍼나르기 되며 누리꾼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박 대장의 모교인 동국대 산악부 ‘동국산악회’ 홈페이지에는 수색 작업 상황을 알리는 글이 여럿 남아 있었다. 그의 생존 소식을 기다리던 지인들의 안타까운 마음들이었다. 동국산악회 회원인 이준형씨가 남긴 “동악의 기상을 14봉 정상에 심어놓고, 끊길 줄 모르는 탐험심은 영석이를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기게 했으니…. 영석아! 보고 싶다. 어서 돌아오너라. 너는 슈퍼맨이야!”라는 글은 박 대장의 지인들을 눈물짓게 했다. 김희옥 동국대 총장은 학교 홈페이지에 “대장은 살아서 돌아오라. 박영석 대장! 무조건 살아서 돌아오라. 선배가, 모교 총장이 명령한다.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명령한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올리기도 했다. 산악인들도 세계 산악계에서 인정받는 걸출한 스타를 잃은 것을 아쉬워했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그는 산에 못 가게 하면 죽는다.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난 것이다.”라며 박 대장을 기렸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 3극점 답사, 7대륙 최고봉 완등 등 ‘산악 그랜드슬램’을 이룩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세계 탐험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인 ‘세계 3대 난벽에 코리안 루트 남기기’였다. 박 대장과 신동민·강기석 대원의 분향소는 1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3일 오전 10시에 합동 영결식이 ‘산악인장’으로 엄수된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산의 전설’ 된 박영석 대장은…

    ‘산의 전설’ 된 박영석 대장은…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에서 실종된 박영석(48) 대장의 인생은 도전 그 자체였다. 박 대장의 소신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였다. 죽음의 공포도 그를 막지 못했다. 박 대장이 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친구 때문이었다. 어릴 때 친구의 집이 강원 설악산에서 산나물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했다. 친구 따라 우연히 대청봉에 올랐다가 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방학 때마다 설악산을 찾았다. 그러다가 1980년 동국대 마나슬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하는 장면을 본 박 대장은 산악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동국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박 대장은 산악부에 들어갔다.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매년 한두 봉씩 오르다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언을 했다. 일년 동안 8000m급 5개 봉을 연속 등정하겠다는 것. 물론 선언대로 박 대장은 실행했다. 한계를 뛰어넘은 박 대장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 완등에도 도전해 2001년 이를 이뤘다. 이후에도 박 대장의 도전은 계속됐다. 2005년까지 3극점을 답사했고,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불가능이라고 했던 ‘탐험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박 대장은 1994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도중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떨어졌지만 몸에 묶은 로프 덕에 살아났다. 1995년에는 에베레스트에서 눈사태로 파묻혔다가 살아났고, 1997년 다울라기리에서는 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박 대장의 삶은 도전으로 시작해 도전으로 끝났다. 이번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은 결과를 중시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가 아니라 험한 길을 고르는 등 등정 과정에 무게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지향했다. 앞서 박 대장은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신루트로 오르는 데 성공해 ‘코리안 루트’를 개척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던박 대장의 도전 의지는 이제 눈 속에 영원히 묻혔다. 한편 박 대장과 함께 실종된 강기석(33)·신동민(37) 대원은 코리안 루트를 개척한 젊은 산악인들이다. 강 대원은 ‘차돌 같은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끈기가 대단했다. 신 대원은 185㎝가 넘는 키에 힘이 세 ‘괴력의 사나이’란 별명을 얻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은은한 빛 감도는 살결 ‘소나무의 유혹’

    은은한 빛 감도는 살결 ‘소나무의 유혹’

    소나무만 집중적으로 그려온 홍소안(53) 작가의 소나무 그림이 오는 11월 9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벽원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온 작가답게 전시 제목도 가장 단순하게 ‘소나무’전으로 정했다. ●수십년 전국각지 돌며 소나무만 담아 홍 작가는 의젓한 자태, 꼿꼿한 기상을 지닌 소나무를 수십년간 탐구해 왔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채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작가는 전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실제 소나무를 충분히 관찰하고 공부한 뒤 그림을 그린다. 소나무에 반한 이유는 “꼿꼿한 기백”이다. 해서 작품도 소품이 없다. 대개 100호쯤은 ‘가볍게’ 넘긴다. “소나무의 기백을 표현하려다 보니 대작을 아니 그릴 수는 없어서”다. 그 탓에 전시 한 번 할라치면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그리는 법도 독특하다. 소나무의 두툼한 살결과 뻗어나가는 맛을 살리려다 보니 은은한 빛이 감도는 광목천을 쓰기도 하고, 서양 재료인 아크릴에다 동양 재료인 수목까지 고루 섞어 칼로 작업한다. 이번에는 좀 더 관능적으로 다가간 점이 눈에 띈다. 배배 꼬인 몸통을 여자에 비유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 ‘아름다운 춤을’, ‘아름다운 포옹’ 같은 것으로 정했다. 소나무의 생김생김에 따라 적합한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데, 잘 어울려 보인다. ●꼿꼿한 기백만 있다더냐, 관능미도 넘쳐 작품 전체에는 소나무든 배경이든 붉은 기운이 맴도는데 이것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더 돋운다.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초기 소나무 작업이 실경에 기반한 성실하고 진지한 것이었다면, 후반기로 갈수록 소나무만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소나무 특유의 기세와 기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소나무의 엄격함보다는 피와 살이 있는 소나무를 통해 사람의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02)732-37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마당] 소설 ‘디데이’와 영화 ‘마이웨이’/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소설 ‘디데이’와 영화 ‘마이웨이’/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오는 11월 중순에 발간되는 소설 ‘디데이’(D-DAY)의 작가 김병인과 오랜만에 조우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10년. 질곡으로 점철된 김 작가의 운명적 시간들은 소설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이 소설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연말 개봉을 앞둔 대작 영화 ‘마이웨이’의 시나리오 원작 소설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탄생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책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독일 군복을 입은 채 미군에게 생포되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았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김 작가는 세계대전의 끔찍한 참화 속에서, 또 일본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압제 속에서 어떻게 왜소한 체구의 한국인이 그 머나먼 이국땅, 그것도 아군이라 할 수 없는 독일군의 옷을 입은 채 발견되었는지 커다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김 작가는 책상머리에 앉아 자료만 뒤적이면서는 도저히 글이 써지지가 않아 서울에서 만주를 거쳐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직접 답습했다. 실존하는 그곳의 풍광은 어떤지, 낯선 환경 속에 떨어진 주인공들의 심정은 어땠을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귀국 후 곧장 ‘디데이’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시나리오 구상 단계에서부터 일본 최고의 광고회사인 ‘덴쓰’가 소재만 전해듣고도 선뜻 투자금을 보내 올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즈키 도시오 사장 등 각계각층의 조언을 수렴하고, 다년간에 걸친 자료 조사와 답사, 그리고 고통스러운 퇴고 작업을 거쳐 ‘디데이’의 시나리오 초고가 탄생됐다. 이 시나리오가 할리우드 최대 영화사인 워너 브러더스로 흘러들어가면서 더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워너 브러더스의 가장 아래 단계부터 읽히기 시작한 시나리오가 사장인 리처드 폭스의 테이블에까지 올라갔고, 곧바로 투자가 결정된 것이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의 지원도 없는 무명작가의 처녀작이 이런 과정을 거쳐 영화화가 결정된 것은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워너 브러더스는 김 작가의 동의를 얻어 당시 공상과학영화로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하느라 미국에 체류 중이던 강제규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하며 대본을 건넸다. 고심 끝에 제안에 응한 강 감독은 2007년 8월, 워너 사장의 초대로 김 작가와 워너 본사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한국과 일본 양 시장을 목표로, 한국의 작가와 감독, 한국과 미국의 자본, 워너 브러더스의 세계배급망, 한국과 일본의 배우, 뉴질랜드 특수효과팀이라는 글로벌한 판이 짜여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프로젝트는 해체되고 말았다. 지난해 5월 6일 자로 워너가 투자 철회를 공식통보했다. 투자 철회의 이유는 강 감독이 수정한 대본이 김 작가의 원작 대본과 현격히 달라 수익성이 심각하게 결여될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통지문에 적시하진 않았지만, 김 작가는 워너 측에서 일본 대중이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예측했을 것이라 판단했다. 원작을 각색해 온 강 감독의 수정방향에 김 작가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강 감독은 확신에 차 있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영화에서 배우를 제외한 모든 글로벌한 요소들이 배제되었고, 그 공백을 한국 회사들이 채웠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 모두를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김 작가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김 작가는 강 감독의 역량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쉬리’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로 1000만 관객시대의 도래를 이끌었다. 연출한 작품마다 영화산업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힌, 영화계의 거목이라는 점에서 식견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소설 ‘디데이’는 사진 한 장을 포착한 작가의 10년 여정이 담긴 작품이자 반백년이 넘게 묵었던 기존의 한·일 관계를 동반자적 관점에서 전혀 새롭게 재조명했다. 원작과 각색을 거듭한 영화의 관점을 올해 안에 동시에 비교할 수 있게 됐다. 그 문화적 유희가 은근히 기대되는 이유다.
  • ‘안나푸르나 실종’ 박영석 수색 난항

    ‘안나푸르나 실종’ 박영석 수색 난항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에서 실종된 산악인 박영석(48) 대장에 대한 수색이 시작됐지만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일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박 대장과 신동민(37)·강기석(33) 대원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정상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박 대장은 오후 4시쯤 위성전화를 통해 6500m 지점에서 “눈과 안개가 가득하다. 낙석이 심해 하산한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베이스캠프와 연락이 끊겼다. 연락두절 시간이 길어지자 베이스캠프에 있던 대원들은 19일 구조대를 꾸린 뒤 20일 오전 7시(한국시간 20일 오전 10시)부터 셰르파 4명, 구조장비, 헬기 등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구조대는 4시간여 동안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성과 없이 철수했다. 구조대는 21일 오전 더 많은 헬기와 인원을 투입해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 생긴 틈) 등을 중심으로 정밀 수색에 나설 예정이다. 이인정 연맹 회장은 “구조대로부터 안나푸르나 남쪽 벽면에 로프나 사람이 붙은 흔적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아직은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연맹은 임원 및 후원사, 박영석탐험문화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박 대장의 수색작업을 위해 국내 산악인들로 구성된 전문 구조대를 투입하기로 했다. 네팔 카트만두에 머무는 유학재(휠라스포트) 카조리원정대 대장과 김형일(K2) 대장이 이끄는 촐라체원정대가 21일 날이 밝는 대로 안나푸르나로 건너가기로 했다. 연맹은 또 셰르파를 추가로 동원하는 방안과 네팔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위스 구조대에 도움을 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박 대장은 2001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하고 2005년까지 3극점 답사와 7대륙 최고봉까지 완등해 그랜드슬램을 이루며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적인 탐험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사라지는 전통문화 체험해보세요”

    충남도가 향교나 서원, 순교지 등을 활용한 다채로운 ‘우리 문화즐기기’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도는 20일 주민들이 전통문화를 즐기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기존 문화를 한데 모으고 새로운 것을 발굴한 뒤 공개 운용해 활성화하자는 의도로 구상했다.”며 “사라지는 전통 민속의 보존과 계승은 물론 농촌마을 활성화, 농산물 판매 확대 등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문화유적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충남에 있는 향교와 서원, 전통가옥, 순교지 등 문화유적을 답사·체험하면서 고택에서 잠자기, 붓글씨 쓰기, 전통 예절교육 등을 즐길 수 있다. 무료이고, 공모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전통 민속행사 및 놀이도 재현한다. 마을별로 특색 있는 연날리기, 널뛰기, 쥐불놀이, 성년의식 등을 발굴해 공개적으로 공연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시·군 문화원을 통해 연구, 발굴 작업이 이뤄진다. 동아리들의 공연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있다. 통기타, 국악 등을 연주하는 대학 동아리나 일반인들의 문화예술 취미클럽이 대상이다. 도는 공모와 심사를 거쳐 이들에게 공연비와 공연장 임대료 등을 지원한다. 도는 또 독서토론회를 연다. 주민들이 도서관을 자주 찾고 책을 많이 읽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린이부터 주부까지 연령별로 독서교실을 만들고, 독서토론회와 함께 저자와의 대화도 열어 독서를 생활화하도록 할 계획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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