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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국가 핵심 기능 집결… 2000년 역사 헤쳐온 ‘한국의 얼굴’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국가 핵심 기능 집결… 2000년 역사 헤쳐온 ‘한국의 얼굴’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차 탐사가 지난 17일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세종대로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면서 진행됐다. 답사단은 세종문화회관 돌계단을 출발해 세종대왕·충무공 동상~대한민국역사박물관~종로구청~비전~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 방공호까지 두 시간의 일정을 빠듯하게 소화했다. 해설을 맡은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세종문화회관의 전신 시민회관 화재사건부터 요즘 방영되는 사극 ‘칠일의 왕비’의 주인공 단경왕후 신씨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역사의 씨줄과 날줄의 세계로 30여명의 답사단을 끌어들였다.“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도시를 창조했다”라는 말이 맞는다면 도시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걸작이다. 그중 한국인이 세운 최고의 도시는 서울이다. 서울은 의심할 여지 없는 대한민국의 종주(宗主)도시이자 의사(擬似) 이상향이다. 2000년의 생성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도이며,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메갈로폴리스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크빌이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표현한 것에 빗대 한때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고리 핸드슨은 “서울은 단순히 한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이후 ‘서울’이라는 도시명은 ‘코리아’라는 국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 브랜드가 됐다. ●정치·행정·사법·문화예술의 원조 역할 수도 서울이 한국의 얼굴이라면 서울의 얼굴은 어디인가? 한국인 열에 여덞, 아홉은 주저 없이 광화문을 꼽을 것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을 포함, 국가의 중추기능이 총집결된 수도 서울의 1번지이다. 한국인과 서울사람의 삶과 꿈이 교차하는 역사무대이다. 역사는 발-글-발의 순서로 쓰여진다. 발로 쓴 글을 본 이가 다시 발로 현장을 밟았을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 움직인다. 답사단은 광화문 구석구석을 발로 밟으면서 ‘도시 중의 도시’라고 쓰여진 광화문의 역사를 재확인했다. 광화문은 정치, 행정, 사법, 교육, 언론출판 그리고 대중문화와 예술의 ‘원조’였다. 이 나라 모든 사회담론과 문화현상의 생산지이자 소비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본거지화하면서 왜곡된 배치와 구역 조정이 이뤄졌고 현재의 광화문이 이를 이어받은 것이 현실이다. 건국 이후 왕조와 식민시대의 잔재 일소 정책 때문에 국적 불명의 현대화가 진행됐다. 최소한 강점기 이전 대한제국기로의 회복을 시도했어야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 비록 행정과 공론이라는 최소한의 핵심 기능만 남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를 존재하도록 떠받치는 광화문 뒤 경복궁과 청와대 그리고 백악(북악)의 위엄은 여전하다. 광화문 동쪽 전면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KT빌딩, 교보빌딩이 청진동과 수송동, 종로길로 이어지고 서쪽 전면부 정부청사와 세종문화회관이 도렴동, 당주동, 내수동을 거쳐 새문안과 정동, 서대문까지 펼쳐진다. 이곳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광화문의 주인이다. 서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삶과 추억의 많은 부분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와 ‘대~한~민~국’을 외쳤고, 촛불을 높이 들어 암흑을 밝혔는지도 모른다. ●광화문광장, 삶의 새 방향 제시할 수도 광화문이 재조명되고 있다. 부활이 회자되고 있다. 왕조시대 절대왕권의 상징이었고,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시대 체제의 선전장이었던 곳.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2.2㎞ 구간에 횡단보도가 단 하나도 없던 그 시절, 광화문은 국가독점의 공간이었다. 30년 전 6·10항쟁 때도, 15년 전 미선·효순 추모집회 때도, 9년 전 광우병 파동 때도 광화문사거리는 금역이었다. 제2의 ‘명박산성’이 등장할 수 없는 연원이 있다. ‘민의의 분출지’라는 유전자가 내재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선비와 유생들의 상소 시위지였고, 동학교도들이 교조 최재우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면서 사흘 동안 곡을 한 장소였다. 광화문의 조선 개국 당시 지층은 무려 8m 아래에 있다. 1394년 한양천도 이래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과 사고가 8m 깊이로 쌓이고 쌓여 현재의 지표를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종로의 4m보다 갑절 깊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들어섰고, 덮거나 뜯고, 또 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광화문의 땅켜는 증언한다. 육조거리는 너비 50m의 보기 드문 한마당이었다. 현재의 광화문광장 자리가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라고 보면 된다.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광화문 앞 광장을 제후국의 상징인 ‘칠궤(七軌)도로’가 아니라 황제의 수레 9개가 지나갈 수 있도록 ‘구궤(九軌)도로’로 만든 일이다. 박정희 정권이 1962년 50m 너비의 세종로를 현재의 100m로 넓힌 것도 그 이상의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답사단은 8m 깊이의 광화문에 또 하나의 지층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 앞에서 이날의 그랜드투어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면모를 일신한 광화문광장이 한국인과 서울사람의 삶을 바꿀 방향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잘 만든 도시가 다시 인간을 만드는 선순환의 원리 때문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우주 에너지면 충분” …일주일에 세 번만 식사

    “우주 에너지면 충분” …일주일에 세 번만 식사

    매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배고픔이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렸다는 한 커플은 9년 동안 일주일에 고작해야 서너 번, 한 줌의 과일이나 야채 수프만 먹고 살아왔다. 영국 데일리메일, 더썬 등은 15일(현지시간) 기수련을 하는 부부 아카히 리카도(36)와 카밀라 카스테로(34)의 독특한 삶을 공개했다. 부부의 평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부부는 남미를 여행하면서 한 친구를 통해 ‘브리더리어니즘’(breatharianism)을 접하게 됐고, 21일 동안만 진행되는 기수련가 과정을 들으면서 음식 없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단 점을 알게 됐다. 그 과정 동안 부부는 처음 일주일 간 공기 이외에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았고, 다음 14일에는 약간의 물과 묽은 주스만 마셨다. 그러면서 사람이 공기와 햇볕, 자신과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만으로도 견딜 수 있음을 깨달았고 생식과 채식, 과일만 섭취하는 식단으로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제 부부는 친목을 나누어야 할 상황이나 단순히 과일을 맛보고 싶을 때만 음식을 먹는다. 아내 카밀라는 2011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9개월 동안에도 기수련가의 식단을 적용해 5번만 고형식을 먹었다. 두 번째 임신에서도 과일 몇조각과 야채 수프로 일반 산모의 권장 섭취량보다 훨씬 적은 양을 섭취했다. 호흡을 통해 또는 모든 사물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한 음식 없이도 지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제 사랑이 아들에게 충분한 자양분이 될 거란 걸 알았어요”라며 “공복은 제게 이절적인 느낌이었죠. 먹고 싶은 욕구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빛에 의존했어요. 임신 혈액 검사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고, 결국 건강한 남자 아이를 낳았어요”라고 출산 당시를 설명했다. 현재 음식 대신 햇빛과 공기만으로 연명하는 ‘브리더리어니즘’(breatharianism) 과정을 가르치는 부부. 그들은 음식 없는 생활 방식이 건강을 증진시키고 식료품 비용을 절약해 다른 열정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편 아키히는 “확실히 우리 생활비가 다른 가족들보다 더 적게 든다. 덕분에 여행이나 가족 답사처럼 정말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다. 누구든 기수련가의 생활을 추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혜택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을 절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자양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인생에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극찬했다. 앞으로도 이 식습관을 지켜 나갈 부부는 의외로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강요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아카히는 “아이들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을 거다.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먹게 내버려 둘 생각이다. 서로 다른 맛을 경험하고 자라면서 음식과의 건강한 관계를 가지길 원하기 때문이다”라며 이유를 밝혔다. 사진=더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강북 “딱딱한 근현대사, 그림으로 쉽게 배워요”

    졸고 있는 청나라 아이로부터 러시아 소년이 만두를 훔치자 일본 어린이가 돌려 달라고 당차게 저항한다. 만두는 만주(滿洲)를 상징한다. 서양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한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풍자화다. 1936년 일본에서 발행한 화첩에 실렸다. 조선 어린이는 일본의 다리에 매달려 두려움에 떨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일본을 서양 열강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이자 한국의 보호자로 묘사해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청소년 역사체험교육 ‘풍자화로 보는 근현대사 기막힌 한 컷’ 교실을 마련했다고 15일 밝혔다. 복잡하고 딱딱한 근현대 역사를 그림 한 장으로 쉽게 배워 보는 자리다. 오는 18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근현대사기념관 2층 강의실에서 열린다. 강북구에 거주하는 청소년 15명이 대상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복잡한 사건을 압축한 풍자화들을 통해 개항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상과 이에 맞서 일어난 민초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있고 알찬 역사교육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번동 소재 강북문화정보도서관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딱딱한 인문학을 재미있는 강연에 탐방, 체험을 결합해 흥미롭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권오준 생태동화작가가 ‘사람이 되고 싶은 새’를 주제로 18일 고양 백로마을을 답사차 방문한다. 탐방은 15가족을 선착순 모집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美의원 총격범은 샌더스 지지자… 反트럼프 ‘정치혐오’가 부른 참극

    범행 전 정당 물어보고 답사까지… 피격당한 스컬리스 수술 후 중태샌더스 “비열한 행동” 범인 비난 미국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인 스티브 스컬리스 의원 등에게 총기를 난사하다 사살된 범인은 공화당 정책에 반감을 품어 온 일리노이주 출신의 제임스 호지킨슨(66)으로 확인됐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실망감을 드러냈으며 범행 전에 장소를 미리 답사하고 총격 과정에서도 의원의 소속을 물어본 뒤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호지킨슨은 지역신문에 미국의 조세제도와 연방정부 리더십, 보수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이 담긴 글을 수년에 걸쳐 꾸준히 기고했다. 또 월가 점령 시위에 참여하는가 하면 페이스북에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샌더스 의원은 호지킨슨이 지난해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한 바 있다고 확인하면서 그의 행동을 “비열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공화당을 끝내자’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했다. 페이스북에 “트럼프는 반역자. 트럼프가 우리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트럼프와 일당을 파괴해야 할 때”라고 썼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청원하는 사이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71번째 생일날 스컬리스 병문안 스컬리스 의원은 이날 야구장에서 동료 의원들과 연습하던 중 피격당했다. 현장에 있던 제프 덩컨(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한 남성이 다가와 이 경기가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느 당 의원들의 경기인지를 묻고 사라졌다”고 밝혔다. 호지킨슨은 범행 장소인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야구장 근처 YMCA회원으로 등록한 뒤 야구장을 수차례 방문했다. 그가 범행 전 언제 어떻게 사전 답사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연방수사국(FBI)은 호지킨슨의 행적과 교류한 인물, 온라인 게시글 등을 통해 잠재적인 범행 동기 등을 살펴보고 있다. 또 범행에 사용한 소총과 권총도 회수했다. 그는 지난 3월 자택 뒷마당에 심어진 나무를 향해 50차례 이상 소총 사격을 하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일리노이와 미주리주 일대에서 주택점검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11월 주택점검원 면허가 만료된 뒤 지난 4월 집을 나왔으며 버지니아로 이주해 온 뒤 차에서 생활하며 사실상 부랑자 생활을 해 왔다. 엉덩이에 1발을 맞은 스컬리스 의원은 위중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드스타 워싱턴 병원은 “스컬리스 의원은 왼쪽 엉덩이에 1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탄환이 골반을 관통해 뼈가 골절되고 장기 손상으로 인한 심각한 출혈이 있었다”며 “긴급 수술을 받았고 추가적인 수술이 필요해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날 71번째 생일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스컬리스 의원이 입원 중인 병원을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물류창고서도 총기 난사 한편 이날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포드레도 애비뉴의 물류운송업체 UPS 서비스센터 겸 창고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UPS 전 직원 지미 램(38)은 오전 9시쯤 정문을 통해 들어와 말도 없이 권총을 7~8발 발사했다. 직원 3명이 숨졌고 범인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숨졌다. 범인은 과도한 초과근무에 대한 불만을 공식 제기한 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군함도’ 류승완 감독 “조·단역까지..모든 배우들이 다 좋았다”

    ‘군함도’ 류승완 감독 “조·단역까지..모든 배우들이 다 좋았다”

    ‘군함도’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했다. 2년 전 군함도의 항공사진을 처음 접한 류승완 감독은 그 기괴한 이미지에 압도됐다. 그곳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 그 안에 있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 영화는 시작됐다.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端島)섬을 일컫는다. 섬 전체가 탄광으로 돼있으며 해저 1,000m가 넘고 평균 45도 이상의 고온인 것으로 알려졌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이들이 이곳에 징용돼 강제 노농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팩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류승완 감독은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에서 집단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황정민은 딸 소희(김수안 분)과 함께 군함도로 오게 된 악단장 이강옥 역을, 소지섭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돕는 경성 최고의 주먹 최칠성 역을 맡았으며 송중기는 임무를 받고 잠입한 광복군 박무영으로, 이정현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인 만년으로 분했다.15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류승완 감독은 “이 배우들을 데리고 블루스크린에서 연기하게 하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가 처음 군함도를 직접 방문했을 때 가졌던 그 느낌을 배우들에게 그대로 주고 싶었다”고 초대형 세트를 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군함도’의 세트는 실제 군함도의 3분의2에 달하는 규모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약 3개월의 디자인 과정과 6개월의 시공을 거쳐 강원도 춘천에 6만6천 제곱미터의 초대형 세트를 만들었다. 군함도 답사와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지옥계단과 탄광지대, 주거지역과 유곽 등 군함도 내 각 공간을 완벽히 재현해냈다. 류 감독은 “현재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도전해서 자부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서는 “황정민은 영화배우면서 뮤지컬 배우기도 하다. 화려한 생활을 하는 악단장이었다가 지옥같은 곳으로 떨어졌을 때의 극단적인 대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밝혔다. 그의 딸로 분한 김수안에 대해서는 “강옥의 딸이면서 음악적 파트너다. 오디션을 봤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치어리딩을 하는데 춤도 잘 추고 연기도 잘하더라”고 칭찬했다. 또 “소지섭은 팬이어서 여러번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처음 하게 됐다”며 “육중한 무게감을 살려보고 싶었다. 잘 나가던 건달이 무릎을 굽혀야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궁금했다. 만족스럽게 잘 표현해줬다”고 말했다. 이정현에게는 “현장이 힘들고 무거운 분위기인데 항상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컨디션을 챙기고 분위기를 띄워줬다. 본인도 굉장히 힘들었을텐데 고맙게 생각한다”며 “회식을 한번 했는데 본인의 부채를 펼치더니 ‘와’를 불러줬다”고 밝혀 웃음을 안겼다. 송중기에 대해서는 “보기와는 너무 다르다. 깍쟁이 같고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솔직히 말해 우직하다 못해 촌스럽더라”며 “꾸밈이 없고 스태프들과 조단역 배우들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송중기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류 감독은 “윤경호라는 배우는 무려 30kg을 감량했다. 영화 촬영 초반과 중반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덧붙여 놀라움을 안겼다. 류 감독은 “촬영 때 항상 80명~100명의 배우들이 떼로 움직였다. 화면에 잘 잡히지도 않는데 화면 끝 구석에서도 디테일하게 연기하고 있더라”며 “모든 배우 한 사람, 한사람이 실제 징용자가 돼서 별다른 디렉션 없이도 잘 해줬다. 작은 역할의 연기자까지 몰입해서 연기해 준 현장에 제가 있었다는 것이 감사한 경험이었다”고 배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배우들 또한 류 감독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드러냈다. 황정민은 “사실 제가 하지 말자고 말렸었다”며 “이렇게 큰 작품에 도전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고 소지섭은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류승완 감독과 하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했다. 함께 작업을 해보니 영화에 완전 미쳐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송중기는 “평소에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고 존경하는 감독님이었다. 저도 감독님의 작품이 ‘촌스러워서’ 좋아했다”고 응수한 뒤 “이 영화를 선택한 것에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1945년 일제강점기,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오는 7월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촌, 사람을 품다’ 편이 지난 3일 서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투어 참가자 30여명은 이날 10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출발, 통의동 백송터-동양척식주식회사 관사-겸재 정선 생가터-청와대 무궁화동산-우당기념관-벽수산장터-노천명 가옥-윤동주 하숙집-수성동 계곡-이상의 집-통인시장-이상범 가옥-배화여대 캠벨기념관-필운대 등 순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촌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이번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청와대 무궁화동산, 우당 이회영선생기념관, 노천명 가옥, 이상의 집, 통인시장, 캠벨기념관 등 모두 6곳이다.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지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찍힌 빨간색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쓴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나 손목, 가방에 스카프를 맵시 있게 장식하며 멋을 냈다. 해설자 한세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구수한 입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스는 길고 시간은 짧다 보니, 한 해설자는 지름길을 찾아 꼬불꼬불한 서촌 골목길을 내질렀고, 일행은 선두에 따라붙느라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부부, 친구, 자매 등 젊은층이 주를 이뤘고, 일본인 여성도 동행해 ‘장안의 핫플레이스’ 서촌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고 갈파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집이 그 사람을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이 이전처럼 그리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촌의 형성사를 알면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서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을 좀 아는 사람은 ‘북촌보다 서촌’이라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작위적인 북촌에 비해 격은 좀 떨어지지만 서촌의 편안함에 점수를 더 얹는 식이다. 서촌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중류사회의 서울토박이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봐도 화려한 삼청동, 가회동보다 소박한 옥인동, 통인동에서 오히려 ‘한국을 더 많이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골목마다 만갈래 사연과 곡절 숨어 서촌의 이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투어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니 북촌은 사대부와 벼슬아치 같은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퇴락한 선비들이 산 반면, 인왕산 아래 서촌에는 궁이나 관청일을 보는 아전(衙前)계층이나 고관대작의 일을 봐주는 겸인(?人)같은 중인 이하 서민층이 산 동네로 알고 있었다. 서울 걷기 열풍이 불면서 해설자들이 알려준 판에 박힌 답변이기도 하다. ‘오래 묵은 도시’서울의 정체성을 단숨에 설명하기 쉽지 않고, 뾰족한 답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의 역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주는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도시가 안고 있는 기억이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거대한 실타래’ 같다. 골목골목마다 천 갈래 만 갈래의 사연과 곡절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서촌의 모습 바뀌어 인왕산 기슭 서촌에 대대로 서울의 서민층이 살았을 것이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해다.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최고 권력의 핵심 배후지였다. 북촌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월남한 피란민과 일거리와 학교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지방민이 무작정 정착한 결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촌의 또 다른 지명인 웃대(상촌·上村)는 경복궁 서쪽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백운동과 청풍계의 물줄기가 수성동천, 옥류천과 합류하는 위쪽을 말한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왕족 이외엔 거주가 불가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의 잠저가 통인동(옛 준수방)에 있었다는 얘기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태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방원과 왕위를 다툰 배다른 동생 무안대군 방번의 옛집도 자수궁터(옥인동 군인아파트)였다. 퇴위한 정종은 사직단 근처 인덕궁에서 머물렀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수성동 계곡에 있었고, 효령대군이 비운에 간 조카의 집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린 뒤 세도가와 중인층이 야금야금 틈입했다. 서촌은 광해군의 잊혀진 영토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왕기가 있다’며 경덕궁(경희궁), 인경궁(사직동과 내자동 일대), 자수궁 등 인왕산 아래 3곳에 3개의 왕궁을 짓느라 민가 수천채를 허물고 공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누각동, 누상동, 누하동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궁궐의 누각에서 비롯됐다. 답사단이 처음 찾아간 통의동 백송터는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간 무려 247번 이곳을 참배, 바느질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 인왕산이 백악산과 이어지는 기슭인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 궁정동은 장동 김씨의 옛 터이다. 안동 김씨 서울파인 장동 김씨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누린 세도정치의 산실이다. 답사단은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겸재 정선의 옛 집터와 그 집터에 세워진 자화상 ‘독서여가도’ 동판비를 둘러보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렸다. 300여년전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앵글이다. 한 지도사는 인쇄해 온 한성부 지도와 인왕제색도를 일행에게 나눠줘 이해를 도왔다. 장동 김씨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장동팔경첩도, 인왕제색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다음 코스 궁정동 무궁화동산은 장동 김씨의 영화를 있게 한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집터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새겨진 시비와 궁정동 안가, 효자동에 살았던 시인 박목월의 연애담으로 귀가 즐거웠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 터에 세워진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지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만났다.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 필운대의 주인 백사 이항복의 직계 11대손이다.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독립운동을 떠난 우당과 육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촌 신교동에 자리잡은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촌 분위기를 깨는 유리건물 GS남촌리더십센터 고갯길을 내려가면 옥인동47번지 옛 벽수산장이 나타난다. 한때 이 땅의 주인이 서촌의 주인인 시절이 있었다. 장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고종 대의 외척 여흥 민씨에 이어 순종 대의 외척 해평 윤씨 등 조선 말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정하려던 무학대사를 물리친 정도전의 후예들이 지향한 신권(臣權)정치의 무대였다. 왕의 산, 인왕산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권을 윽박질러 당파정치, 외척정치, 세도정치를 일삼는 바람에 사화(士禍)와 반정(反正)이 되풀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조선 권력의 배후지, 매국노가 삼켜 인왕산 기슭에서 사직단 북쪽을 일컫는 서촌은 조선초기부터 권력의 배후지이자 왕족의 세거지로 금역이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잠룡들의 사저이자 왕위에서 배척당한 왕족의 도피처였다. 성종 이후 사대부 세력이 조금씩 틈입해오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통제가 풀렸다. 장동 김씨, 남양 홍씨, 기계 유씨를 비롯한 경화사족들이 청풍계와 백운동, 옥류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천수경을 위시한 중인들이 필운대와 인왕산동을 오가며 송석원시사를 열었다. 이들이 이룬 중인문화가 서촌의 한 축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독무대였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고,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4000평을 매집해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둘 다 팔지 못할 것(나라)을 팔아서 갖지 못할 것(서촌)을 차지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옥인동 윗동네는 윤덕영, 아랫동네는 이완용이 나눠 지배했다. 중인문화가 꽃피었던 옥류동 계곡 전체가 개인 사유지가 됐다. 지금의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두 집의 필지를 분할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송석원의 역사는 곧 서촌의 역사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 세도정치를 편 장동 김씨에게서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여흥 민씨에게 넘어갔다가, 순종효황후의 큰아버지 해평 윤씨 윤덕영이 벽수산장을 지어 소유했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을 점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사로 사용됐고, 미군과 유엔청사로 차례로 쓰였다. 프랑스풍 조선 최대의 건물,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불탔고, 1973년 철거됐다. 유일한 증거가 박노수미술관이다. 청전 이상범의 제자 박노수는 집과 작품, 소장품 1000여 점을 종로구청에 기증했다. 진정한 서촌사람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무 계단 오르며 떠난 100년의 근현대 여행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무 계단 오르며 떠난 100년의 근현대 여행

    6월의 첫 주말인 지난 3일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탐방단은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해설을 따라 대학로길 100년의 근현대 역사문화여행을 떠났다. 먼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샘터사옥’, ‘샘터 파랑새극장’ 등 대학로의 상징인 붉은 벽돌 건물군을 만났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4채의 건물은 붉은 벽돌 외양은 물론 내부 역시 골목을 건물이 품에 안는 듯한 특이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마로니에 공원 안 옛 서울대 본관(예술가의 집)은 경성제국대와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사로 사용됐으며 2010년 사적으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다. 표면의 오차를 막기 위해 줄이 그어져 있는 스크래치 타일이 인상적이었는데 일행들은 스크래치 타일의 독특한 촉감을 직접 만지고 느껴 보았다. 방송통신대 역사기록관으로 사용되는 중앙시험소 청사 건물을 만났다. 근대 유일의 현존하는 목조 양식 건축물은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910년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와 중앙시험소를 거쳐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로 개편되었으며 해방 후 서울공대가 되었다고 한다. 투어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옛 흥덕동천을 복원한 개울가에서 휴식을 가진 뒤 대학로를 건너 또 다른 서울미래유산인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서울의대 본관 뒤편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경모궁이 숨어 있었는데 본래 함춘원 경모궁 터 한편을 차지했던 서울대병원이 이제는 함춘원과 경모궁을 포위하고 있는 모양새가 가슴 아팠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대한의원 건물은 고색창연했다. 신바로크 양식의 기계식 시계탑과 태극문양이 격조 있었다. 박물관을 견학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배분 덕분에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따라 박물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학림다방 앞에 멈춰 섰다. 낡은 나무계단과 시계 태엽을 되감은 듯한 색바랜 내부였지만 우리는 이곳을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서울미래유산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코스는 혜화동 로터리의 혜화동 성당이다. 등록문화재인 이 성당은 서울에서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다음 세 번째로 오래됐다고 한다. 이날 코스는 교육과 예술, 건축과 의학의 근대사가 한데 어우러진 코스였다. 평소 스쳐 지나갔던 건축물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경험한 자만이 느끼는 작은 사치’를 만끽했다. 오늘 경험한 100년이 100년 뒤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유산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기계문명과 생물의 결합…‘사이보그 잠자리’ 탄생

    기계문명과 생물의 결합…‘사이보그 잠자리’ 탄생

    살아있는 잠자리에 초소형 센서와 태양열 패널, 내비게이션 등을 탑재시킨 ‘사이보그 잠자리’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이 사이보그 잠자리는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와 연구개발 전문업체인 ‘드레이퍼’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작은 곤충에 사이버그 기술을 접목한 것으로, 뇌에서 잠자리의 감각기관 및 근육과 연결돼 있는 특정 뉴런을 빛에 반응하는 광섬유와 연결하는 기술을 현실화 했다. 이를 통해 마치 드론을 조종하듯 잠자리를 조종하거나 혹은 스스로 비행하게 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 여기에 사용된 광섬유는 매우 얇고 유연한 신소재로 제작한 것이며, 뇌신경 세포에 세밀하게 빛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연구진은 센서와 내비게이션 등이 들어 있는 ‘백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가 아닌, 태양광 패널을 탑재했다. 곤충에 첨단 기술을 접목시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사이보그 잠자리는 지금까지 공개된 곤충 사이보그 중 가장 크기가 작고 가볍다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이보그 잠자리는 자연에서 스스로 먹거리를 찾고 에너지를 보충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특별한 ‘충전’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태양열 패널과 센서, 그리고 네비게이션 등 백팩에 탑재된 다양한 부품이 초소형으로 구현됐으며, 몸집이 작은 곤충의 미세한 뉴런과 광섬유가 원활하게 연결됐다는 점에서, 연구진은 이번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했다. 첨단 기술이 접목된 사이보그 잠자리는 드론처럼 식물과 식물을 오가며 수분을 돕거나, 사람이 갈 수 없는 지역의 답사를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처럼… 해설 따라 그 시절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처럼… 해설 따라 그 시절로

    때 이른 더위로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초여름 5월의 마지막 주말인 27일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들이하기에 좋았다.‘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답사단은 북촌길을 따라 걸었다. 집결시간인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출석체크와 함께 ‘서울미래유산’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빨간 손수건 하나씩을 참가 선물로 받았다. 저마다 취향에 따라 가방이나 어깨, 손목 등에 빨간 손수건을 둘러맨 시민 30명은 해설사를 따라 투어를 시작했다. 2명의 사진요원과 2명의 안전요원이 곳곳에서 코스를 안내하고 인원을 파악하고 촬영하는 등 참가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살폈다.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는 역사산책 책을 쓴 정순희 해설사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차분했다. 깊은 내공이 배어 있는 듯했다. 답사길 내내 골목을 울리는 새소리가 음악처럼 감미로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처럼 해설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던 시민들은 아련한 과거 그 시절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듯했다. 그 옛날 심청전을 낭독해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던 전기수(傳奇?)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서울에 수십 년을 살았지만 제 사는 동네를 제외하고는 속속들이 알 길이 없었는데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며 서울의 곳곳을 알아가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지금은 표석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과거 건축물의 터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담 너머로 무거워진 넝쿨을 드리운 장미꽃 무지가 아름다웠으며 현대식 건축물의 느낌을 살린 한옥 처마의 물받이도 인상적이었다. 인원이 30명이나 되다 보니 걷는 속도며 보고 느끼는 시간이 저마다 달랐다. 앞선 일행을 놓칠세라 해설사를 바삐 따라가던 행렬을 두고 관심을 보이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서울미래유산 사이트에서 신청만 하면 관심 지역에 대한 설명을 코스별로 들을 수 있다는 안내에 반가워했다. 한옥마을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한복과 함께 인증샷만을 남길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이 과거의 누구에 의해, 어떤 연유로 오늘날까지 과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아는 데에도 동참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서울신문이 지난 27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총 25회에 걸쳐 진행되는 투어는 서울미래유산 사이트에 접수한 3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426개의 미래보물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참가자들은 역사책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100년 후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미래가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족적을 남기게 된다. 첫 테마는 ‘사방팔방’(四方八方)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을 사방으로, 사대문 밖을 팔방으로 각각 구분해 13회로 구성했으며 첫 회는 그중에서도 북촌 일대를 둘러봤다. 3일은 동촌, 10일은 서촌을 찾아간다. 참가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사이트에서 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당회차 신청을 선착순으로 받는다. 무료다.‘서울미래유산-2017 그랜드투어’의 첫 회는 북촌이다. ‘북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통해 서울의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들여다봤다.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들이 모여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꾸는 나들이다. 답사단은 지난 27일 오전 10시 집결지인 정독도서관을 출발해 김옥균 집터와 조선어학회 터를 거쳐 북촌 한옥밀집지역을 돈 뒤 만해 한용운의 유심사 터를 찾았다. 인촌 김성수 가옥과 중앙고등학교를 둘러보고 개화파 박규수의 집터였던 헌법재판소에서 ‘짧지만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2시간여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답사단의 발길이 닿은 모두 9곳의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북촌한옥밀집지역과 김성수 가옥, 헌법재판소 등 3곳이고 사적(중앙고)과 등록문화재(정독도서관)가 2곳이며 나머지 4곳은 옛터이다. 오래된 도시, 서울의 심장부 북촌의 정체성을 실감케 한다.●호모나랜스들 모여 2시간 짧고 긴 여정 그렇다면 북촌은 어떤 곳인가. 서울을 알아야 북촌을 알고, 북촌을 알아야 북촌에서 부는 바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읊었지만 서울은 2000년 기원전의 도시, 600년 도읍지의 기억이 별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민족 자산을 말살당했고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신생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역사도시라고 하기엔 씁쓸한 서울 서울의 재건은 성공적일까. 서울은 역동적인 현대적 도시로 발전했지만 역사도시라고 자평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처럼 강북 구도심을 올드타운으로 남겨두고 강남 뉴타운을 만들지 못한 게 패착이다. 발상의 전환도 없었고, 한국전쟁 이후 광적인 서울집중이 오래된 것들은 걷어내고, 나머지는 땅속에 묻는 데 정당성의 논리를 제공했다.북촌의 기원은 조선시대 한성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부는 ‘경조 5부’라고 하여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는데 오늘날의 자치구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해서 구분하면 북부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이고 동부는 창덕궁과 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경복궁에서 돈의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에서 청계천 사이 어림이다. 중부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형성됐다. 5부가 곧 5촌이다.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들을 모시는 아전 및 겸인 족속의 주거지였다. 청계천부터 남산 아래까지인 남촌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무반들이 모여 살았다. 다동·무교동·수표동·입정동·주교동·관수동 등 중촌에는 의관, 역관, 율사, 화원, 시전상인, 군인군속이 살았다. 황현은 매천야록(1864~1887년 기록)에서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소론, 남인, 북인)이 섞여 살았다”고 기록했고 황성신문 1900년 10월 9일자에는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다”고 말씨에 따라 지역별 기질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은 신분과 지위, 직업에 따라 사는 곳이 달랐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의 정보가 새겨져 지역색을 형성했다. 지역색이 차별의식과 적대감, 사색당파로 이어졌다. 서울의 심장부인 북촌은 왜, 어떻게 달라졌을까. 북촌은 주거지로서 최상의 입지적 조건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 왕족과 벼슬아치들이 모여 사는 집단거주지였으며 후기 들어 안동 김씨와 여흥 민씨 같은 세도가와 경화사족들이 똬리를 틀었다. 한말에는 교육과 의료의 중심지로 개화사상과 갑신정변의 발상지였으며 이후 신분 상승을 위해 상경한 신흥 지방부호와 지주, 사회지도층이 몰려들어 삼일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진앙지가 되었다. 그러나 외세에 의존하면서 기층 민중과는 유리된 기득권 세력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도 서울의 심장부 북촌은… 북촌에서 잉태, 발화한 삼일운동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촌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300만 신도를 자랑하던 천도교가 경운동 중앙대교당을 중심으로 1920~1930년대 민족운동을 주도했고 일제 패망이후 몽양 여운형의 계동 집과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다양한 정치실험이 시도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헌법재판소는 개화파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이었으며 제중원을 거쳐 경기여고와 창덕여고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해방 직후 당시 경기여고 강당에서 여운형과 박헌영이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북촌만큼 역사가 켜켜이 겹치는 곳도 흔치 않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정글의 법칙’ 유이, 고소공포증 이겨냈다… 47m 번지점프 성공 ‘정글의 여신 등극’

    ‘정글의 법칙’ 유이, 고소공포증 이겨냈다… 47m 번지점프 성공 ‘정글의 여신 등극’

    배우 유이가 47m 번지점프를 성공하며 고소공포증을 이겨냈다. 26일 SBS ‘정글의 법칙-와일드 뉴질랜드’에서는 병만족이 번지점프를 통해 생존지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두 번째 생존지인 타우포 호수로 향하던 제작진은 병만족에게 “오른쪽 뒤를 보면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번지점프대가 준비되어있다”고 알렸다. 제작진은 이어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은 편하게 배로 생존지에 입성하게 될 거고, 못 하는 사람은 도보로 가야 된다. 우리가 답사할 때 가봤는데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데만 두 시간 정도 걸리고, 늪을 마지막으로 건너야지만 생존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평소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유이는 번지점프 대신 걸어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번지점프를 택하며 약 오십미터 위로 올라갔다. 유이는 “정글의 법칙 파이팅”을 외치며 호수 아래로 뛰어내렸고 멤버들의 박수를 받았다. 마크와 성훈, 김병만은 모두 번지점프를 성공했다. 하지만 박철민, 신동, 강남은 “걸어가자 우리는. 너무 무서워. 너무 무서워”라며 번지점프 대신 도보를 택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SBS ‘정글의 법칙’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국할랄인증원, ‘코리아 할랄 서미트 2017’ 개최

    한국할랄인증원, ‘코리아 할랄 서미트 2017’ 개최

    오는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한국할랄인증원과 MBN이 2박 3일에 걸쳐 ‘Korea Halal Summit 2017’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할랄 행사는 30여 개국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다. SAARC(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기구), 이슬람협력기구(OIC), 세계이슬람국가 할랄표준기구(SMIIC), 말레이시아할랄인증기관처(JAKIM), 인도네시아할랄인증기관처(MUI), 싱가포르할랄인증처(MUIS), 아랍에미리트연합 할랄인증기관(UAE ESMA), 인도할랄인증기관(Halal India), 태국할랄인증기관(CICOT), 걸프협력회의 표준화기구(GCC Standardization Organization), 세계관광기구(UNWTO), 두바이 할랄전시회 조직위원회(Gulf Halal Center and Middle East Halal Expo & Events), 말레이시아 할랄전시회 조직위원회(HALFEST) 및 세계 할랄 인증기관의 기관장과 임원이 참석하며, 할랄전문여행사(CRESCENTRATING), 사우디아라비아 방송국(IQRAA Media Ltd. Co.) 등이 동행한다. 한국할랄인증원 진재남 원장은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30여 개국 50여 명의 참석자는 세계에서 할랄시장을 이끄는 유력인사들이다. 기본적으로 할랄의 정보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행사지만, 부대행사인 관광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무슬림관광객의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최근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으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1분기 서비스 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 3월 서비스수지 적자는 32억 7천만 달러로 작년 3월(9억 2천만 달러)의 3배를 넘어섰다. 월별로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1월(33억 6천만 달러)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중동과 동남아 등 무슬림관광객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올해 무슬림관광객의 방문 목표를 전년 대비 22.4% 성장한 120만 명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 할랄식당, 할랄제품 쇼핑, 할랄호텔(샤리아컴플라이언트호텔) 등 무슬림 친화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태국의 경우 국민의 95%가 불교를 따르고 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할랄인프라 구축으로 세계 5위 할랄제품 생산 및 서비스 국가로 진입하기 위해 한화 250조원 규모의 5개년 전략계획을 발표하는 등 할랄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한국할랄인증원 역시 1차로 서울을 경유하는 경주 관광 4박 5일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며, 이번 VIP 한국관광 답사 후 9월부터 기구 소속직원 및 가족을 시범으로 년간 최대 100만명 무슬림관광이 시작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재남 원장은 “할랄 인증을 통한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수출 확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며, 10월에 예정된 ‘2017코리아국제할랄산업엑스포’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요청해 세계적으로 블루오션인 할랄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행사는 2020년 260조원에 이르는 무슬림 관광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초석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사방팔방’에 숨은 미래유산을 보다

    서울 ‘사방팔방’에 숨은 미래유산을 보다

    서울시청 앞에 늘 있는 ‘서울광장’은 언제 조성됐을까. 조선시대의 ‘광장’이었던 경복궁 앞 육조거리부터 시작된 서울 ‘광화문 광장’의 역사는 어떤 사연을 안고 있을까. 서울역 고가를 공중정원으로 재생한 ‘서울로7017’에서 돌아보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한양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뛰어넘은 공간을 돌아보는 행사가 다시 마련됐다.서울신문은 서울시와 함께 서울의 주요 미래유산과 역사유적을 둘러보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오는 27일부터 시작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연중기획 행사로 27일부터 매주 토요일에 진행한다. 올해 답사는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진행한다. 참가비는 무료다. 답사 프로그램인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는 서울시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서울의 기억을 담은 근현대 문화유산을 100년 후의 보물로 보존하는 미래유산 사업을 촘촘하게 시민들과 함께 둘러본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광장이나 서울로7017과 같은 장소나 시설뿐만 아니라 서적, 예술품, 시장, 골목, 기술, 음악, 경관, 소설, 시 등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망라한다. 근현대 유산 보존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공부하고 현재를 알아가며 미래를 조망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가 있다. 2012년부터 5월 현재까지 서울시가 선정한 미래유산은 총 426건이다. 올해 답사의 핵심은 사방팔방(四方八方)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을 사방으로, 사대문 밖을 팔방으로 구분해 기원전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시’ 서울 속에 숨은 미래유산을 13회 프로그램으로 훑는다. 또 다른 테마는 사계절이다. 도봉구 창포원(초여름 꽃파랑)~물색이 짙어지는 선유도(물파랑)~초록의 섬 서울숲(신록초록)~붉게 타오르는 정동길(초가을 단풍)~백제의 고향 올림픽공원(가을 은행노랑)~서울의 허파 남산(겨울 흰눈) 등 서울의 풍광까지 만끽할 수 있다. 어젠다 탐방도 투어의 백미다. 서울의 물길(한강, 청계천, 중랑천)과 서울의 근대(정동, 장충동)를 묶어 선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진 않지만 ‘우리 서울’의 뚜렷한 한 축을 이루는 무형유산은 서울의 문학1·2, 놀거리(홍대 일대)와 먹거리(종로 일대)라는 타이틀로 내놓는다. 야간탐방과 청소년용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서울로7017 등 야경이 좋은 곳을 3회에 걸쳐 돌아보고,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청소년을 위한 교육용 프로그램도 5회 진행한다. 해설과 진행, 자료발굴을 위해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소속 박사급 연구원 3명을 비롯해 모두 14명의 연구원이 투입된다. 해설은 노주석, 최서향, 정순희, 한세화, 박정아, 전혜경, 김미선, 김은선 연구원 등 8명이 나선다. 전담 자료조사에도 5명 연구원이 투입됐다. 고홍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서울 사람들이 살아 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 세대 간 공유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견인하는 중심에 미래유산이 있다”면서 “이번 탐방을 통해 그 가치를 알아가고 보존의 중요성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청은 서울 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web/main/index.do).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이스라엘 간 트럼프, 이- 팔 평화협상 재개 모색

    이스라엘 간 트럼프, 이- 팔 평화협상 재개 모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방문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을 과시할 예정이나 이스라엘이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에 대해 항구적인 주권을 주장하고 나서 이번 순방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에어포스원을 타고 도착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내외는 물론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 등 주요 정부 인사가 모두 국제공항 활주로에 나가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트럼프 내외를 영접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중동) 지역과 그 국민에게 안전과 안정, 평화를 가져올 드문 기회를 얻게 됐다”며 중동권 지도자들이 평화 구축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방문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게 평화회담 재개를 위한 신뢰 구축 조치에 나서도록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21일 동예루살렘 점령 50주년 기념 축제에서 연설을 통해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점을 전 세계를 향해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앞서 먼저 이곳을 답사했던 미국 관료가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라 이스라엘 점령지 안에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한 대응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동서로 분리할 수 없는 영구적인 수도로 간주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동예루살렘을 장차 세울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팔레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벌이는 단식투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동철 칼럼] 품위 있는 문화국가를 위하여

    [서동철 칼럼] 품위 있는 문화국가를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청와대를 옮기고 그 자리에 서울역사문화벨트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새 정부 인사들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청와대 자리를 박물관과 공원 등으로 조성할 뜻을 거듭 밝혔다.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도 찬반양론이 없는 정책이 없다지만, ‘청와대 터의 문화공간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일찍부터 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 공약 기획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었다니 청와대의 문화공간화 계획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위원회를 이끌었다는 소식이니 실망스럽지 않은 기획안이 벌써 대통령에게 보고된 상태인지도 알 수 없다. ‘박물관과 공원’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도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청와대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선 미래가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문화유산 분야를 오래 취재한 기자라서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기획위원회가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대표 박물관’ 말고 다른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온갖 박물관이 있고,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징적인 자리에는 상징적인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품위 있는 나라라고 믿는다. 국가대표 박물관이라면 당연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중앙박물관이 국가대표 고고미술사 박물관이라면, 민속박물관은 국가대표 민속생활사 박물관이다. 물리적 규모는 중앙박물관이 크지만, 두 박물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선 두 박물관의 상황을 차근차근 따져 보는 게 좋겠다. 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에 자리 잡았다. 용산 박물관은 1997년 기공식을 가졌으니 공사에만 8년이 걸렸다. 기획과 설계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으니 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은 10년이 넘는 대역사였다. 용산에 자리 잡은 이후 중앙박물관은 반듯한 하드웨어만큼이나 전시와 교육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방이 공원과 아파트 단지에 포위된 듯 옹색한 입지는 국가대표 박물관에 걸맞지 않다. 용산에 자리 잡기 이전 경복궁의 중앙박물관은 당연히 외국 관광객의 방문 1순위였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외국 관광객은 경복궁 내부에 있는 민속박물관만 둘러보고, 중앙박물관 방문은 포기하곤 한다. 이런 현상은 단체 관광객에게서 더욱 뚜렷하다. 민속박물관은 2030년 경복궁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기 이전에 지금의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 용산 중앙박물관 옆 공원의 일부를 이전 부지로 점찍었지만 ‘없었던 일’이 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화정책 실행기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짐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민속’에 머물지 않는 영역 확대가 불가피하다.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교육 및 프로그램 공급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노령화하고 있는 마당에 노년층에 문화를 공급하는 역할 또한 당연히 민속박물관의 몫이다. 국가대표 박물관을 짓거나 옮기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천문학적 비용도 수반된다. 하지만 어차피 민속박물관이 옮겨 갈 자리는 새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박물관의 입지를 결정해야 하는 마당에 청와대 자리를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름처럼 중앙박물관이 다시 중심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존 용산 박물관 건물은 민속박물관이 그대로 물려받으면 된다. 하지만 중앙박물관 규모의 시설을 북악산 아래 새로 짓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속박물관을 청와대 자리로 옮기는 방법도 좋다. 기존 청와대 시설을 상당 부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청와대 자리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선다는 뉴스가 기다려진다.
  • 도살 직전 구조된 유기견 토리 ‘퍼스트 도그’

    도살 직전 구조된 유기견 토리 ‘퍼스트 도그’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기견 퍼스트도그’가 탄생하게 됐다. 동물 애호가로도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기르던 고양이 ‘찡찡이’도 유기묘 출신으로 청와대에 입주, ‘퍼스트캣’이 됐다.대통령실은 14일 유기견 ‘토리’를 입양해, 청와대에 데려오는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리는 2년 전 도살 직전 동물 관련 단체에 의해 구조됐으며, 아직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대선 선거운동 때 문 대통령은 당선되면 토리를 입양하겠다고 약속했다. 토리가 문 대통령에게로 입양이 완료되면 대통령이 경남 양산에서 키우던 풍산개 ‘마루’와 함께 퍼스트도그가 된다.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집에 불이 났을 때 가족을 구한 뒤 마지막으로 가지고 나올 것’을 묻는 질문에 “우리 마루”라고 답할 정도로 이 개에 대한 애정이 깊다. 찡찡이는 청와대 입성과 동시에 문 대통령의 작은 근심거리가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찡찡이가 입주했는데, 걱정이 생겼네요. 관저 구석의 유리창문과 미닫이 한지창문 사이의 좁은 틈에 딱새가 새끼 5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제가 당선된 날 부화했다고 합니다”라면서 “찡찡이는 양산집에서 때때로 새를 잡아 와서 기겁하게 했었거든요”라고 글을 올렸다. 토리와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버려진 신세였던 찡찡이는 2012년 대선에서 후보였던 문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유 전 청장은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얼마나 녀석을 사랑해 줬으면, 주인님에게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쥐를 잡아오는 것이었다”면서 “김정숙 여사는 그런 찡찡이의 마음을 아니까, (남편이) 집에 와서 죽은 쥐를 보고 찡찡이를 칭찬해줄 때까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文대통령 반려묘 ‘찡찡이’, 청와대 입성…첫 ‘퍼스트 캣’ 탄생

    文대통령 반려묘 ‘찡찡이’, 청와대 입성…첫 ‘퍼스트 캣’ 탄생

    문재인 대통령이 양산 자택에서 기르던 반려묘 ‘찡찡이’가 14일 청와대로 들어오면서 한국 최초의 ‘퍼스트 캣’(First Cat)이 됐다.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찡찡이가 입주했는데 걱정이 생겼다”며 “관저 구석의 유리창문과 미닫이 한지 창문 사이의 좁은 틈에 딱새가 새끼 다섯 마리를 키우고 있다. 제가 당선된 날 부화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찡찡이는 양산 집에서도 때때로 새를 잡아와 기겁하게 했었거든요”라면서 찡찡이가 딱새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찡찡이는 2012년 대선 당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발언으로 유명해 진 바 있다. 당시 유 전 청장은 찬조연설에서 찡찡이가 종종 쥐를 잡아와 양산 집 마루에 갖다놓는다고 전했다. 유 전 청장은 “그 녀석은 유기묘, 그러니까 버려진 고양이였다”며 “얼마나 녀석을 사랑해줬으면, 주인님에게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쥐를 잡아오는 것이었다. 김정숙 여사는 그런 찡찡이의 마음을 아니까, (문 대통령이) 집에 와서 죽은 쥐를 보고 찡찡이를 칭찬해줄 때까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려진 고양이는 길냥이인 셈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유기견 ‘토리’를 입양하는 절차도 진행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전처, 도서지역 투표함 안전 수송 만전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9일 제19대 대통령선거와 관련, 경비함정 34척을 동원해 전국 112개 도서지역 135개 투표함을 수·호송할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해경은 투표가 끝나는 9일 오후 8시부터 투표함을 육지 개표소로 수송할 민간선박과 행정선에 경비함정을 근접 배치해 안전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행정선과 민간선박 운항이 어려운 인천과 군산 지역의 일부 섬에 대해서는 경비함정 9척을 투입해 투표함을 직접 나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투표함 수·호송 함정을 미리 지정해 예정 항로를 답사하고, 수송선박과 경비함정 간 통신망을 점검했다고 안전처는 설명했다. 또 기상불량 시 중·대형 경비함정을 교체 투입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협의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투표함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안전처는 덧붙였다. 이 밖에도 해경본부는 8일부터 투표함 호송이 끝날 때까지 해상경계근무를 강화해 각급 지휘관과 참모들을 지휘통제선상에 배치해 선거 상황을 관리하고 전 직원 비상연락체계를 유지한다. 함정과 항공기를 비롯한 특공대, 구조대 등 현장부서는 긴급출동 태세를 유지하게 할 계획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농협 총기강도 구속… 권총 출처 추적

    범행 한달 전부터 사전 답사도 경북 경산경찰서는 24일 경산의 한 농협 지점에 들어가 권총 강도 범행을 저지른 혐의(특수강도 등)로 김모(43)씨를 구속했다. 김상일 대구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고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경찰이 검찰을 통해 청구한 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지난 20일 경산 자인농협 하남지점에 방한 마스크,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권총을 들고 침입해 1563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검거됐다. 경찰은 또 김씨가 10여년 전 심부름을 갔다가 습득한 총기를 범행에 사용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정확한 출처 추적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김씨가 범행에 사용한 권총 사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총기 분석을 의뢰한 결과 미국 레밍턴 랜드사에서 제조한 45구경 탄창식 반자동 권총으로 1942~1945년에 생산된 80만정 가운데 1정으로 추정된다는 감정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로부터 2003년 4월 대구 모 병원에 근무할 당시 병원장이 집기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켜 경북 칠곡에 있는 병원장 지인(사망)의 빈집에 갔다가 창고에 있던 권총과 실탄(19발)을 습득해 승용차 트렁크에 넣어 두고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의 주도면밀한 범행 계획도 드러났다. 김씨는 범행 1개월 전부터 농협을 털기로 결심하고 범행 도구와 도주 경로 등을 준비했다. 범행 현장인 자인농협 하남지점 주변을 6차례에 걸쳐 사전 답사했다. 그는 답사 과정에서 청원경찰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폐쇄회로(CC)TV가 없는 농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 CCTV에서 자전거를 싣고 가는 화물차를 발견하면서 김씨의 범행은 들통났다. 김씨는 범행을 벌인 이유에 대해 “빚이 많아 그랬다”고 진술했다. 농협을 털어 챙긴 1563만원 중 373만원은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1억원이 조금 넘는 부채가 있었다. 경산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명예기자 마당] # 범죄 분석계의 ‘추추 트레인’

    [명예기자 마당] # 범죄 분석계의 ‘추추 트레인’

    “7번 축구 클럽 티셔츠를 입은 이 사람이다.”지난해 5월 필리핀 타이타이시 지역 한국인 피살 사건 용의자를 찾는 순간이었다. 당시 필리핀에 파견된 대구경찰청 범죄분석관 추창우(45) 경사가 범행 현장을 분석해 용의자의 동선을 역추적, CC(폐쇄회로)TV 영상을 발견한 것이다. “현장을 재구성해 보니 범인은 도둑질을 위해 집에 들어왔다가 피해자와 마주쳐 살해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피해자의 일정을 아는 주민이고, 주변을 사전 답사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인근 CCTV를 범행 전 시간대에 맞춰서 살펴봤습니다.” 범죄분석관들의 특기는 심리학에 기반해 범인의 행동을 분석하고, 범인은 어떤 사람일까 추론하는 것이다. 이때 범인과 피해자의 행동 반경에 대한 ‘일상활동 이론’, 범인의 행동 패턴에 대한 ‘합리적 선택이론’ 등이 활용된다. 추 경사는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왔다가 범죄분석요원 1기(2006년) 특채에 다시 응시해 채용됐다. “범죄분석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필리핀에서도 현장 감식, 영상 분석 전문가들과 팀플레이를 해서 가능한 것이었죠. 앞으로도 함께 배워가고 싶어요.” 그는 24일 국제협력의 일환으로 과테말라에 파견돼 현지 경찰에게 범죄분석기법을 교육하고 올 예정이다. 장광호 명예기자(경찰청 범죄분석기획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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