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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은, 보라카이 저택 ‘화이트 3층집+대리석 거실’ 으리으리해

    임성은, 보라카이 저택 ‘화이트 3층집+대리석 거실’ 으리으리해

    그룹 영턱스클럽 출신 임성은의 보라카이 저택이 공개됐다.최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는 청춘들이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이날 방송에서는 임성은은 자신의 보라카이 저택으로 청춘들을 초대했다. 임성은의 집은 보라카이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에 있었다. 3층으로 된 흰 저택은 하늘에서 봐도 한눈에 띄었다. 임성은은 “1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2층과 3층은 내가 사용하고 있다. 1층은 남자들 숙소로 쓰고 2층은 여자들 숙소로 쓰자”라고 말했다. 사전 답사를 왔던 김광규와 임재욱을 제외하고 모두 집 구경에 신이 났다. 김완선은 대문에서부터 “으리으리한 대나무 대문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칭찬했다. 이어 깔끔하게 정리된 1층과 2층 대리석 거실을 구경한 청춘들은 “정말 좋다”라며 감탄을 이어갔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학의 숨비소리, 제주’ 문학 대잔치

    ‘문학의 숨비소리, 제주’ 문학 대잔치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이 오는 13∼15일 제주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제주시가 주최하고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문학의 숨비소리, 제주’라는 슬로건으로 제주목관아와 오리엔탈호텔 등 제주 일원에서 진행된다.강연과 발표, 토론자, 국내외 초대작가 50여명이 참여한다. 포럼 첫날인 13일에는 오후 2시부터 오리엔탈호텔에서 2개의 문학 세션과 이어 개막식이 진행된다. 제1세션에서는 ‘한국문학, 한국문학, 외연과 경계를 말하다-재일제주인 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김길호, 평론가 곽형덕·김동현·조은애가 발표자로 참석해 재일제주인 문학의 특수성과 한국문학과의 관계를 고찰한다. 제2세션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미래 ’란 주제로 시인 문효치 ·김원욱, 희곡작가 강용준, 수필가 지연희가 인문학의 위기 속 문학의 나아갈 길에 대해 주제발표, 토론 등을 진행한다. 개막식에서는 제42회 오사라기 지로상, 제41회 다카미 준 문학진흥회 문학상을 받은 김시종 시인이 ‘시는 현실인식에 있어서의 혁명’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둘째날에는 제주 목관아에서 3개의 문학 세션과 문학콘서트·제주시민 문학백일장·목관아 토요북카페가, 마지막 날에는 포럼 참여 작가들과 함께 4·3 평화기념관, 서귀포 시비공원 등 제주문학 관련 현장답사가 진행된다. 이외에도 사전 프로그램으로 ‘문학수다 콘서트’, ‘詩월, 詩詩한 낭독’, ‘북콘서트-평화를 말하다’가 열린다. 문학인 제주포럼은 시민과 관심이 있는 관광객도 참여할수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힐링하러 가고픈 곳… 옛 수려함 볼 수 없어 아쉬움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힐링하러 가고픈 곳… 옛 수려함 볼 수 없어 아쉬움

    양화대교 위에서 쪽빛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북한산 자락의 모습은 한강 선유도공원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선유도가 예전에는 섬이 아니었으며 40m 높이의 봉우리였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사진과 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곳이 정수장에서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약품 침전지를 재활용한 수질정화원으로 향했다. 초입에 세워진 온실에서는 부레옥잠, 물배추, 물채송화, 물양귀비 같은 수질정화 식물과 선인장 등을 볼 수 있었다. 온실을 나오자 커다란 세 개의 물탱크에서 나온 물이 온실과 수생식물이 식재된 계단식 수조를 따라 아래쪽 물놀이장까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선유정 정자에서 가을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한강을 바라보았다. 최서향 해설사가 준비한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며 선유봉과 한강의 옛날과 지금의 모습을 실감나게 비교해 보기도 했다. 예전 한강의 수려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시간의 정원은 상생의 치유와 회복을 느낄 수 있었던 신비한 공간이었다. 시간의 정원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수직 이동을 자유롭게 하며 정원을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며 다양한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강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인 취수장을 재활용한 카페테리아 나루에서 휴식을 취했다. 전망 데크에는 선유도 공원화 사업에서 살아남은 세 그루의 미루나무가 있었는데 서걱서걱 바람 부는 소리를 눈 감고 들으며 사색하는 것이 좋았다. 녹색기둥의정원에 도착했다.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걷어 낸 자리에 규칙적으로 남아 있던 기둥들을 담쟁이 넝쿨이 감싸 조각품처럼 나열돼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했을 때 그것을 회복시키는 것도 결국 공원을 가득 채운 물과 나무와 자연임을 깨달았다.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재활용해 재탄생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마음의 치유가 필요할 때 방문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편안하고 안전한 프리미엄 타운하우스 코트야드 블루, 17세대 분양

    편안하고 안전한 프리미엄 타운하우스 코트야드 블루, 17세대 분양

    도심에 위치한 아파트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삶에 개성이 없다는 느낌을 받기 쉽고, 층간소음 등 이웃 간에 분쟁을 겪을 소지가 크다. 이런 까닭에 많은 이들이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자녀 교육이나 보안 같은 부분을 생각하면 막상 떠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수요를 고려해 근래 등장한 것이 ‘코트야드 블루’와 같은 단지형 타운하우스(전원주택)이다. 단지형 타운하우스는 정원과 테라스가 딸린 독립된 단독주택끼리 단지를 구성해 세대별 사생활은 보호하는 동시에 보안적인 면은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주변으로 마트나 교육시설 같은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쾌속 교통망 덕에 도심으로의 접근도 용이하다. 용인시 기흥구 부동산 관계자는 “총 17세대의 코트야드 블루는 이 같은 단지형 타운하우스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며 “편리함과 힐링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족할 만한 매물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코트야드 블루는 마치 여행지에서의 풀빌라처럼 독립된 정원과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전 세대 남향 배치돼 있어 볕이 잘 들며, 높은 층고로 개방감을 살렸다. 개방적인 독일형 통창호를 통해 야외 풍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데다 목재 외벽 마감 테라스 끝에 처마를 아전통 한옥의 느낌도 살렸다. 아울러 이곳의 조경 디자인은 일본의 유명디자인업체인 이디자인(E-Design)과 협력해 탄생했다. 세대 전체에 개별 상징목(Symbol Tree)을 심는 한편 정문과 단지 곳곳에는 파고라 가든을 설치했다. 청명산 자락이라는 입지적 조건을 살린 이곳의 조경은 마치 단지 전체가 한의 잘 가꿔진 식물원을 연상케 할 정도다. 내부 디자인은 화이트를 메인 컬러로 모던함과 미니멀리즘을 강조했고 자기류의 타일과 원목, 철 같은 친환경적인 소재를 마감재로 택해 새집증후군의 걱정도 덜었다. 이와 함께 단지 내 사각지대가 없도록 CCTV를 설치해 전원주택의 단점으로 꼽히는 보안성은 강화했으며, 원격제어 홈오토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에 집밖에서도 보일러와 거실 등 조절이 가능하다. 집 내외부를 스마트폰으로 상시 감시할 수도 있다. 교통 및 생활 인프라도 훌륭하다. 용인서울 고속도로 청명 IC와 경부고속도로 수원신갈 IC와는 3분 거리에 위치해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용이하며, 지하철 분당선과는 5분 거리다. 초중고와 대형마트는 반경 1~2km 내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단지 뒤편으로 1,600세대 대단지 아파트와 레저 기능을 겸비하는 국내 최대 규모 복합자동차매매단지까지 들어서고 나면 생활이 보다 편리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 프리미엄 상승에도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한편 코트야드블루는 구매자의 취향에 따라 지하 1층 지상 3층에 연면적 60~90평의 A타입과 C타입, 그리고 지상3층에 연면적 41평의 B타입 3가지 중 고를 수 있다. 현재 분양이 진행 중으로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하면 현장 답사 및 방문 상담이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대 교사에 활 쏜 인천 갑질 교감…직원 폭행 전력도 있어

    20대 교사에 활 쏜 인천 갑질 교감…직원 폭행 전력도 있어

    20대 여성 교사를 과녁 앞에 서도록 하고 활을 쏴 논란을 빚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50대 남성 교감이 과거 행정실 여성 직원을 폭행한 전력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당시 징계위원회는 징계 대신 경고 조치만 하고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감인 A(52)씨는 약 10년 전인 2005년 4월 다른 초등학교에서 부장교사로 근무할 당시 행정실장 B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B씨를 폭행한 사실이 있다고 연합뉴스가 25일 전했다. 당시 업무비의 회계 처리 문제를 놓고 B씨와 마찰을 빚은 A씨는 B씨에게 “야”라고 소리치며 반말했고, B씨가 “왜 반말을 하느냐”며 항의하자 A씨는 손으로 B씨의 목을 세게 잡고 복사기 뒤쪽으로 밀쳤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A씨는 이외에도 수차례 B씨의 직위를 비하하거나 협박하는 발언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B는 A씨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뒤 한동안 육체·정신적으로 후유증에 시달렸다. 당시 사건이 알려진 뒤 인천시교육청 행정직원연합회와 인천교육행정연구회 등은 A씨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근무하는 행정실 여직원을 폭행했다”면서 “고귀한 인격을 유린했고 장기간에 걸쳐 행정직 전체를 비하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시 인천시교육청은 행정직원연합회의 청구에 따라 A씨를 감사하고도 징계 대신 ‘불문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해당 지역교육장이 감봉이나 견책과 같은 경징계를 요구했고, 시 교육청은 불문경고를 했다”면서 “과거에 받은 표창 공적이 고려됐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된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 등이다. 법률상의 징계 처분이 아닌 불문경고는 견책에 해당하는 비위에 대해 징계위원회가 감경을 의결해 경고만 하는 조치다. 이에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수학여행 답사를 다녀온 후 언쟁이 있었으나 사적인 일로 벌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A씨는 지난 6월 자신이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20대 교사에게 종이 과녁 앞에 서보라고 한 뒤 ‘체험용 활’을 쏜 사실이 최근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피해 교사는 이후 심한 충격과 급성 스트레스장애로 정신과 병원에서 4주 진단을 받았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B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지만, 당시 대화를 나눈 녹취록이 공개되며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현재 A씨가 근무하는 해당 초등학교 인터넷 홈페이지는 지난 22일 언론 보도 이후 방문자가 폭주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순천시산림조합 ‘묘지벌초대행’ 호평

    순천시산림조합 ‘묘지벌초대행’ 호평

    전남 순천시산림조합이 추석을 맞아 묘지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민들의 벌초를 대신해주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조합원과 임업인, 산주, 출향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순천시산림조합이 매년 실행하고 있는 묘지벌초 대행서비스는 묘지소유자가 방문하거나 전화 등으로 신청을 하면 현지답사를 통해 작업방법과 비용 등을 협의해 결정한다. 접수가 완료되면 조합에서 운영하는 작업단을 활용해 이전 모습과 작업 모습, 벌초 후 사진을 신청자에게 발송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묘지 110기를 관리했다. 묘지대행 서비스는 연중 접수 받고 있다. 조정록 조합장은 “임직원들 모두가 조합원들의 사회 경제적 권익신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자립기반 조성과 상호 금융활성화에 매진해 누구나 부러워하는 조합이 되도록 할 것이다”고 밝혔다. 문의 순천시산림조합 (061-725-3812~5), 산림경영지원센터 (061-755-3307)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K리그 뛰었던 파탈루의 평양 원정 “호텔 위로 미사일 날아가더라”

    K리그 뛰었던 파탈루의 평양 원정 “호텔 위로 미사일 날아가더라”

    “원정 마지막날 우리 호텔 객실 위로 미사일이 발사됐다. 우리는 그런 일에 결코 준비돼 있지 않아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인도 프로축구 벵갈루루 FC의 미드필더이자 지난해 국내 K리그 전북에서 여섯 경기만 뛰었던 에릭 파탈루(31·호주)가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국가이며 미국과 날선 핵위협 공방을 벌이고 있는 북한 원정을 다녀온 소감을 1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에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벵갈루루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4·25 축구클럽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컵 준결승 홈 1차전을 3-0으로 앞선 상태에서 지난 13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을 찾아 벌인 원정 2차전을 0-0으로 비겨 타지키스탄 FC 이스티콜과의 결승에 진출했다. 스코틀랜드 리그 그레트나와 그린녹 모턴과 호주 브리즈번 등에도 몸담았던 파탈루는 소셜미디어 등에 글을 올려 평양 원정이 안전한지 궁금해 했는데 AFC는 미리 답사팀을 보내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려 원정을 떠났다. 그는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니면 불안정한 지역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듣던 것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고 돌아봤다. 인도 뭄바이를 출발,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지난 11일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계류장에 비행기가 한 대뿐이어서 놀랐다. 원정 키트, 축구화와 축구공 등 수하물이 분실돼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모든 점포와 출입국 사무소 직원도 퇴근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공항에서 벵갈로르 선수들만 남아 있었다.북한 요원들은 손전화나 태블릿PC 등에서 그곳 풍경을 담은 사진이 있는지를 꼼꼼히 점검했다. 파탈루는 “그들이 트위터는 확인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술 한잔 해야겠다고 농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파탈루도 축구화를 잃어버려 호텔에서 짝퉁 축구화를 150~200달러 가격표가 붙여진 것 중 하나를 구입했다. 몇몇은 발 크기에 맞지도 않은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 전화를 이용할 수도, 인터넷을 쓸 수도 없었다. 여느 호텔과 달리 객실에 TV도 없었고 로비에 내려오면 TV가 있었는데 다가가면 김정은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파탈루는 “북한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지만 우리들을 빤히 쳐다보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면 안 보는 척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이들은 우리를 응시하며 친구가 맞느냐고 물었다”며 “그닥 많은 상호작용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녕이라고 말하면 그들도 답례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반응한다는 건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15만명이 들어간다는 경기장 안에는 9000명 정도가 들어와 응원했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조용히 지켜봤다. 파탈루는 “우리가 이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들은 공격을 퍼부었고 우리는 막기만 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온 관중들은 그냥 무승부를 거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1차전 결과를 잘 몰랐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틀 더 선수단은 평양에 머물렀다. 가벼운 회복 훈련을 했고 모든 것이 “꾸며진” 시내 투어를 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화성 12호 미사일이 순안공항에서 발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탈루는 “체크아웃할 때 한 친구가 ‘새벽 6시에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갔더라면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우리끼리는 ‘가능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북한 사람들이 이 모든 상황을 냉철히 인식하고 있는지도 의문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이어 “이번 원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뉴스를 통해 들은 내용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선 안된다는 것”이라며 “미친 짓을 벌이려는 건 한 친구나 얼마 안되는 친구들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 소년들이 미소를 가득 품은 채 공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곳이 (핵전쟁으로) 지워질 수도 있으며 이들이 고통받는다는 게 마음 아프게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경기를 마친 뒤 북한 공격수와 껴안았는데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고 말하더라. 난 ‘네가 미소를 머금은 채 겸손하게 영어로 말할 줄은 미처 예상 못했어’라고 생각했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한 데 묶어준다. 그래서 아름다운 게임”이라고 결론 내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순신 전적지 스토링텔링 테마투어’ 인기

    ‘이순신 전적지 스토링텔링 테마투어’ 인기

    이순신전략연구소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시행하고 있는 ‘이순신 전적지 스토리텔링 테마 투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순신 전적지 스토리텔링 테마 투어’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당일 혹은 1박2일 일정으로 이순신 장군 전적지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으로부터 위탁 받아 전국의 7개 단체가 시행하는 ‘2017 톡톡 이순신 충무공탐험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순신전략연구소 관계자는 “학생들에게는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생생한 체험교육의 기회가 되고 있으며, 일반인들 또한 역사기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28일 이순신 장군 탄신기념일에는 서울 상곡초등학교 학생들이 ‘톡톡 이순신 충무공 탐험대 발대식’에 참가한 후 아산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묘소를 참배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코레일과 협의해 ‘거북선 열차’를 띄워 인천지역 학생 및 일반인 200여 명과 함께 전남 보성의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중학생 자유학기와 관련해서도 인기를 끌어 지난 7월 27일에는 경희중학교 학생 25명이 1박2일로 전남 해남의 명량해전지와 전라우수영지를 답사하고, 거북선 승선과 활쏘기 체험 등을 경험했다. 오는 9월 22~23일에는 중평중학교 학생 28명이 경남 통영의 한산대첩 현장을 찾아갈 예정이다. 일반인들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송파구 부동산 최고위과정 멤버들은 통영과 한산도의 이순신 전적지를 다녀왔으며, 한화그룹의 전직 임원모임인 한화회는 2박3일 일정으로 남해안 이순신전적지를 답사했다. 오는 10월 24일에는 경상북도 교장선생님들이 청렴연수의 일환으로 통영과 남해 노량을 답사할 예정이다. 참여자들은 “출발하기 전 사전 교육을 실시하고,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도 임진왜란과 이순신에 대해 강의를 진행함과 더불어 현장에 가서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역사 교육으로, 재미가 더해졌다”고 후기를 전했다. 한편 테마투어와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은 이순신전략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 이웃 접경지역 : 주민의 삶과 꿈-강원·경기·인천] 걸음마다 통일 염원… DMZ 잇는 ‘한국판 산티아고길’

    [우리 이웃 접경지역 : 주민의 삶과 꿈-강원·경기·인천] 걸음마다 통일 염원… DMZ 잇는 ‘한국판 산티아고길’

    ‘통일을 여는 길’은 지구 위에 단 하나 남아 있는 분단국 대한민국의 철조망을 끼고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걷는 길이다.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인 ‘통일을 여는 길’이 접경지역 10개 시·군의 협업으로 닦이고 있다. 내년부터 4년간 준비 예정인 ‘통일을 여는 길’은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이자 60여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인 비무장지대(DMZ)를 걷는 길이다.행정안전부는 강화부터 고성까지 456㎞를 도보 길로 연결해 길의 상징성을 세계에 알린다는 계획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인 여행자만 6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 재작년 4000여명이 찾았을 정도로 인기다. 제주 올레길은 한 해 방문자가 100만명이 넘고, 경제효과는 3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통일을 여는 길’이란 이름을 지은 사학자 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는 부산 오륙도부터 통일 전망대까지 걷는 동해 바닷길인 ‘해파랑길’을 만든 길 만들기 전문가다. 신 대표는 “‘통일을 여는 길’은 세계인이 와서 마음을 열 수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올 수 있는 길”이라며 “휴전선에는 숱하게 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분단 한복판에서의 안전한 답사로 세계의 젊은 여행객들을 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군인이 철저하게 지키는 비무장지대 일대는 태풍의 눈이 오히려 고요한 것처럼 마음 놓고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위치기반시스템을 통해 안전을 보장하게 된다. ‘통일을 여는 길’은 새로 길을 닦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한 길을 잇게 된다. 길이 끊어진 구간은 숲길이나 하천길과 같은 옛길과 연결한다. 또 곳곳에 길과 숙소 안내, 지역 정보 제공 등과 같은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센터를 조성한다. 동촌분교와 같은 폐교나 마을회관 등을 활용해 거점마을 중심에 숙소, 농가식당, 간이매점, 자전거 수리소, 마을기업과 연계한 특산품 판매장을 만든다. 김효정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근거리 무선통신 장치인 비컨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설치해 안전하게 걷는 길을 만들려 한다”고 설명했다. ‘통일을 여는 길’을 걷다 보면 군인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 지역엔 뱀이나 멧돼지가 자주 나타난다는 등의 안내를 이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 위성으로 위치 안내를 받으며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기부문화와도 연계할 계획이다. 탐방객이 몇 걸음을 걸으면 일정 금액의 기부금을 지자체나 기업이 적립할 수 있도록 해 ‘통일을 여는 길’을 걷는 것과 동시에 통일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길이 끝나는 고성 통일전망대 근처에는 ‘통일의 문’을 만들 계획이다. 문에 달린 종을 두드리면서 완주의 의미를 더하고, 문 곳곳에 자유롭게 낙서를 할 수 있어 그동안 걸어온 걸음걸음의 뜻을 남길 수 있다. ‘통일을 여는 길’ 구간 가운데 양구 두타연 일대는 일명 ‘소지섭길’로 유명한 한류 명소로,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배우 소지섭은 군 제대 후 복귀작인 드라마 ‘로드 넘버원’을 양구에서 촬영하며 지역의 매력에 푹 빠져 2010년 ‘소지섭의 길’이란 사진을 담은 수필집을 펴냈다. 강원 양구군 방산면의 두타연 갤러리는 소지섭의 향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놀기에도 좋다. 비무장지대 일대는 2012년 51만명, 지난해 27만명의 외국인이 찾을 정도로 최고 인기의 관광지며, 지난해 1월 45년 만에 개방된 임진강 생태탐방로는 벌써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찾았다. ‘통일을 여는 길’의 경제적 효과는 연간 115억원으로 추산되며, 지역 주민의 일자리도 200여개가 만들어진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일정을 보름 정도로 짜는 데 견주어 ‘통일을 여는 길’은 14박 15일의 체류형 도보여행길로 계획된다. 강화군의 교동도 게스트하우스, 김포시의 평화교육 프로그램, 파주시 숲 치유 프로그램, 연천군 예술가 창작 및 거주시설, 철원군 폐막사 체험장, 화천군 산촌생태체험, 양구군 지뢰 퇴치 프로그램, 인제군 팜마트 등 지역별로 특색 있는 거점센터 운영계획도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옛 공사관 거리서 마주한 선조의 절실한 교육 열망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옛 공사관 거리서 마주한 선조의 절실한 교육 열망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전망대에 올랐다. 청사 마당에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듯 공작단풍 한 줄기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법원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은 전면이 옛 모습 그대로이고 뒤쪽은 헐고 새로 건물을 지어서 연결한 모습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듯 이색적이었다. 줄진 갈색 타일의 외관은 33개의 아치벽돌과 10개의 창문, 모서리를 곡면 처리하였고 벽면 아래에는 90여년 세월의 변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1927년이라고 쓰인 정초석이 무심히 우리를 마주 보고 있었다.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이라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게 전시실도 디지털화돼있었다.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의 친필 일기장과 캐나다 선교사이자 한국어학자였던 게일이 그린 1902년 서울지도 속 한글이 유독 반갑고 고마웠다. 최서향 해설자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과 달리 예전에는 사랑의 언덕길이었다며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의 한 구절을 들려줬다. 모두들 미소를 머금었다. 특히 2009년 세워진 이영훈 노래비 앞에서 ‘광화문 연가’를 들려 주는 세심함에 한 번 더 감탄했다. 미국 대사관저는 100년이 넘은 한옥을 헐고 1976년 전통한옥양식에 따라 신축하여 ‘하비브 하우스’라 불린다고 한다. 다른 대사관저와 달리 미국 대사관저를 처음 한옥으로 정한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곧 떠나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다소 충격이었다. 새삼 누구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한 것인지 확인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동극장을 거쳐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역사의 현장인 중명전을 둘러보았다. 정동거리에서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을 바라보니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심슨홀에서 수업을 받던 추억이 떠올라 한참 발길이 멈춰졌다. 러시아는 1885년에 정동지역에서 가장 높은 상림원 일대의 땅을 확보해, 사바친의 설계로 3층의 전망탑과 공사관을 지었다. 지금은 탑과 지하 통로 일부만 남아 있다. 단풍이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시절, 교육을 통해 출구를 찾으려 했던 선조들의 뜨거움이 빨갛게 전해진 정동답사였다. 이소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장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근대화의 최전선’ 덕수궁·정동, 잊혀진 대한제국이 말을 건넸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근대화의 최전선’ 덕수궁·정동, 잊혀진 대한제국이 말을 건넸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6회 ‘서울의 근대교육’ 편이 9월의 첫 주말인 지난 9일 중구 정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선선해진 날씨 때문인지 가족, 친구 단위 참가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선착순 예약자 30명과 대기자 10명까지 꽉꽉 채운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중·고교 교사를 비롯, 답사 프로그램 단골손님이 대부분이다. 밀도 있는 해설을 원하는 수준 높은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된 해설자’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기가폰을 잡았다.정동과 덕수궁은 슬프다. 우리는 무심하게도 덕수궁을 조선이 남긴 5개 왕궁 중 하나로, 정동은 망국의 한이 서린 근대문화의 일번지쯤으로 여긴다. 두 가지 기억 요소 모두 조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한제국이라는 어엿한 나라의 역사는 간과되고 있다. 정동은 이 땅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궁이 자리한 궁역이요,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 경운궁의 후신이라는 점을 자꾸 잊는다. 정동과 덕수궁을 볼 때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엮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 이어진 대한제국의 역사는 망각의 늪에 빠졌다. 대한제국기를 느끼고, 대한제국의 시선으로 보아야 정동과 덕수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동과 덕수궁은 이 땅의 마지막 왕조, 대한제국의 모든 것이다.개방군주 고종은 북쪽에 치우친 경복궁과 창덕궁 대신 덕수궁의 전신 경운궁을 택했다.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정동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고종은 경복궁으로 환궁하지 않았다. 구미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과 청으로부터 벗어날 작정이었다. 비어 있던 경운궁의 복원을 은밀하게 지시했다. 외국공사관으로 둘러싸여 안전하고, 사방으로 뚫려 근대국가의 궁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왕실 최고어른인 명헌태후와 왕태자비의 거처도 경운궁으로 옮겨 놓았다. 당시 초대 주미공사를 지낸 박정양은 “워싱턴DC의 현대도시적 특징과 바로크식 방사상 도로체계를 서울에 도입해 대한제국의 본궁을 짓고 대안문(대한문) 앞을 결절점으로 삼아 광장을 만드는 등 서울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려 했다”고 말했다.고종이 취한 결정적 조치는 황제국의 상징적 건조물 환구단(원구단)과 황궁우의 건립이었다. 환구단이 자리한 현재의 조선호텔은 중국 사신이 묵던 남별궁 자리다. 영은문을 뜯고 독립문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축조한 것은 중국과의 500년 책봉과 조공 관계의 청산을 의미했다. 중국이 일본이나 러시아 황제국과 동격이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첫 도심궁궐이자 마지막 근대궁궐인 경운궁은 불운했다. 1900년 선원전 화재에 이어 1904년 대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탔다. 갈 곳을 잃은 고종이 덕수궁 밖 중명전에서 머물 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다.우리가 보고 있는 석어당, 즉조당, 중화전은 1906년 복원된 것이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나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동문이던 대한문이 정문이 되었다. 공사관과 교회, 학교 용도로 야금야금 잠식당해 본래의 3분의1 크기로 줄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경운궁과 정동을 떠나지 않았다.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일본은 환구단이 청나라 칙사의 숙소였다며 철도호텔을 지어 새 종주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경운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보다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덕수궁 절반이 중앙공원으로 이름을 바꿔 벚꽃놀이 명소로 둔갑했다. 원구단은 해체됐고 석조전은 이왕가미술관으로 용도변경됐다. 근대의 문화적 향기는 서구 제국주의를 모방한 일본 팽창주의의 그늘에 묻혀 버렸다. 정동의 최고 전성기는 조선이 열강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던 근대의 새벽이었다. 당시 정동은 구미열강 공사관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 배재학당, 이화학당, 구세군 본영, 정동 제일교회 같은 모두 25개의 큰 건물이 들어선 서울에서 가장 화려하고 분주하던 동네였다. 정동에는 서양 신문물의 수용과 극일, 자주독립을 향한 약소국 대한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이 담겨 있다. 지금 덕수궁 바깥 정동엔 근대의 향기만 흐를 뿐 근대의 자취는 대부분 사라졌다. 한국전쟁과 도심재개발 과정에서 옛 미국 공사관저(하비브 하우스)와 옛 러시아 공사관 3층 석탑의 잔재 이외에 모두 땅속으로 들어갔다. 서구 열강의 자존심을 건 건축의 경연장이었던 정동 옛 공사관 거리가 그때 그 모습으로 보전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중국 상하이가 조계지 와이탄(外灘)을 꾸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서 정동의 근대풍경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다음 일정 <서울의 물길:한강 선유도공원> 일시: 16일 오전 10시 선유도공원 입구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서민들 삶의 흔적…철거 대신 보존을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서민들 삶의 흔적…철거 대신 보존을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시장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한데 어울렸다. 기둥 하나 없이 철근과 4만 5000여장의 서로 다른 패널로 구성되어 있는 놀라운 건축물이지만 이 자리에 있던 옛 동대문운동장에서 일어난 역사와 시민들의 희로애락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 아쉬웠다.동대문시장을 대표하는 평화시장은 청계천 복개공사로 철거 위협에 직면했으나 상인들이 단합해 지금의 3층 건물을 짓고 ‘평화시장’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고 한다. 시장 1층에는 띄엄띄엄 21개의 헌책방이 있었다. 양팔을 벌린 길이 남짓한 좁은 문 안쪽에는 빼곡히 책들이 쌓여 있었지만 주인만 보일 뿐 손님은 뜸했다. 10년 내 헌책방 거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한 책방 주인의 말은 우리가 미래유산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 되돌아보게 했다. 일행은 청계천 버들다리 중간에 있는 전태일 흉상을 통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청계천 아래로 내려섰다. 구월의 아침 햇살은 따가웠으나 시원한 바람과 물소리,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 떼가 오간수문에 이르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청계천 7가를 지나 다리 위로 올라서니, 없는 게 없다는 ‘만물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상인들은 작은 돗자리와 낮은 탁자 위에 수십 종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다. 신설동 풍물시장에 들어선 ‘청춘 시장’은 참신한 아이템으로 탐방객의 발길을 붙들고 연신 카메라를 누르게 만들었다. 젊은 상인들의 노력으로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가 만물시장으로 몰려들기를 희망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무학교를 지나자 웅장하나 흉물스럽기도 한 세 개의 콘크리트 기둥을 만날 수 있었다. 딸 경은(10·돌마초 4년)이는 “이렇게 크고 무거운 도로 때문에 청계천이 숨이 막혔을 걸 생각하니 불쌍해요”라고 말했다. 1960∼70년대 청계천 주변에 살던 서민들의 삶을 조명한 ‘판잣집 테마존’을 둘러보고 청계천 박물관 앞에서 탐방을 마무리했다. 맑은 날씨와 달리 마음은 무거웠다. 남아 있는 몇 개의 유물과 유구보다는 해설사의 해설과 옛 기억으로 더듬어본 탐방길이었다. 개발도 중요하지만 옛 흔적을 후세에 잘 전달하는 것이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대표팀 타슈켄트 첫 훈련 밤 10시 30분, 기내서 영상 분석

    대표팀 타슈켄트 첫 훈련 밤 10시 30분, 기내서 영상 분석

    [타슈켄트 연합뉴스 보도 정리]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노리는 축구대표팀이 결전지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2일(이하 한국시간) 입성했다. 신태용 감독, 주장 김영권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단 전원은 이날 새벽 타슈켄트 국제공항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땅을 밟은 뒤 인터뷰 없이 곧바로 숙소인 하얏트 레전시 호텔에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숙면을 취한 뒤 현지 적응 훈련에 나설 계획인데 첫 훈련은 오후 10시 30분(현지시간 오후 6시 30분) 분요드코르 아카데미 필드에서 진행된다. 분요드코르 아카데미 필드는 6일 0시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0차전이 열리는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의 보조경기장으로 대표팀 숙소에서 차량으로 15~20분 정도가 걸려 거리도 가깝고 잔디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미리 파견된 대한축구협회 답사팀이 파악했다. 빠른 현지 적응과 시차 적응을 위해 첫 훈련부터 결전 킥오프 시간에 최대한 가깝게 잡았다. 타슈켄트는 낮 기온 30도를 웃돌아 한국의 여름 날씨와 비슷하며 다만 오후에 기온이 떨어져 일교차가 심해 감기 등에 걸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앞서 타슈켄트행 비행기 안에서는 대표팀 코치진이 우즈베키스탄의 전력 분석에 열중했다. 김남일, 차두리, 김해운 코치는 이코노미석에 앉아 랩톱 컴퓨터를 이용해 한국 대표팀의 이란전 경기 내용 등 다양한 플레이 장면을 돌려보며 부족한 점과 개선 방향에 관해 간단한 토의를 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코치진도 비즈니스석을 이용해야 하지만 항공좌석이 한정돼 어쩔 수 없었다”며 “세 코치가 비즈니스석을 선수들에게 양보했다”고 전했다. 코치진은 이코노미 맨 앞줄에 앉아 약 7시간 동안 분석을 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선수들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날 낮에 전력 분석 회의를 할 예정이다. 협회는 신태용 감독과 선수단 전원에게 비즈니스석을 제공했고, 코치진과 지원팀 등 협회 직원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지하묘지 통로 통해 빈티지 와인 300병 훔친 도둑들

    지하묘지 통로 통해 빈티지 와인 300병 훔친 도둑들

    프랑스 파리에서 25만 유로(약 3억 3000만원)에 달하는 와인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도둑들은 마치 범죄영화 속 주인공처럼 기이한 방법으로 와인 300병을 훔쳐 달아났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의 지난달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8일 밤부터 29일 새벽 사이, 파리 중심지의 한 와인 지하저장고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들은 파리 지하묘지의 출입제한구역으로 몰래 잠입해 들어간 뒤, 석회암으로 된 지하저장고 벽에 구멍을 뚫고 저장고 내부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저장고 잠입에 성공한 도둑들은 한화로 3억 3000만원에 달하는 빈티지 와인 300 여병을 훔쳤다. 도난당한 와인들은 한 병에 500~1000유로(약 67만~134만 원) 상당의 고급 와인이다. 와인 300병을 훔친 도둑들은 다시 지하저장고에서 나온 뒤 파리 지하의 터널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파리 지하에는 마치 미로와 같은 구불구불한 터널이 250㎞ 가까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터널을 이용하면 파리 시내 곳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행인의 눈길을 피해 몇백 병의 와인을 의심없이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은 “우연히 지하저장고의 석고벽을 발견했다기보다는 미리 현장 답사를 통해 사전에 범행을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도둑들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들이 출입구로 선택한 파리의 지하묘지는 500여 년 전 버려진 채석장을 개조해 만들어진 곳이다. 파리 시민 약 600만 명의 유골이 모여있는 파리 지하묘지는 밤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낮에는 안내자가 동반한 상태에서 2㎞ 터널 구간만 방문할 수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가을의 문턱서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마주하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가을의 문턱서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마주하다

    하늘은 파랗고 시원함도 느껴지는 지난 26일 오전, 주택가 사이 길을 지나 남정현 작가가 살고 있는 가옥으로 향했다. 1965년 필화 사건의 주인공인 작가는 ‘분지’라는 작품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내용이 궁금해졌다. 작가가 대문 밖까지 나와서 우리들을 반겨 주셨다. 곱상한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치열한 삶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일행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쌍문 시장을 지나 함석헌 가옥으로 향했다. 전시관 벽에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선생의 시가 적혀 있다. 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당하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선생의 삶을 시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 같았다. ‘씨알 사상’을 주장하셨던 선생의 방에 걸려 있는 간디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방에 누군가의 사진을 걸어 놓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정말 존경하거나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을 거부하고 독재를 거부한 선생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 김수영 문학관에 들렀다. 문학관 1층으로 들어서니 풀들이 움직이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 쪽에 ‘풀’이라는 시가 적혀 있는데 그 옆에 보이는 화면 속 풀들이 사람이 지나가면 시의 내용처럼 한쪽으로 누웠다 일어났다. 다른 쪽 벽면에는 낱말 자석들이 붙어 있어서 시를 직접 써 볼 수 있었다. 또 김수영의 시를 직접 낭송하고 들어 볼 수 있는 시설도 있어서 문학관을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시 낭송으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들었는데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구절이 찔리듯이 다가왔다. 연산군 묘에는 5구의 묘가 있었다. 연산군 묘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원당샘공원의 600년 된 은행나무가 이 장소의 역사성을 보여 주는 듯했다.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묘를 지나 간송옛집으로 향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기거했던 곳으로 100년 정도 된 한옥이었다. 전형필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사들일 때는 값을 깎지 않고 사들였다고 한다. 그 혜택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고 미래의 후손들도 그 혜택을 누릴 것이다. 도봉구 하면 도봉산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이제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으로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함석헌·전형필·김수영·남정현…삼각산 자락에 곧게 뻗은 예술혼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함석헌·전형필·김수영·남정현…삼각산 자락에 곧게 뻗은 예술혼

    서울신문과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4회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도봉’이 서울 도봉구 일대에서 지난 26일 진행됐다. 수유리에 이어 북서울에서 연속 두 주째 이어진 이날 투어도 성황을 이뤘다. 대부분의 문화유산 답사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그랜드투어는 미래유산이 있는 곳이면 사방팔방 찾아갔다. 공간을 차지하는 유·무형의 유산뿐 아니라, 그 공간을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사람과의 대화를 지향했다. 판에 박힌 해설이 아니라 해설자의 감성이 살아 있는 팔색조 해설을 통해 답사문화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 이날 박정아 서울도시문화 지도사는 시 낭송을 통해 답사를 힐링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투어단을 이끌었다.서울의 삼각산이 으뜸이라면 뒤를 받치고 있는 도봉은 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도봉구는 으뜸과 버금을 더불어 누리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한다. 이날 미래투어단이 찾은 함석헌·전형필·김수영·남정현 등 4명의 문화예술인은 도봉산을 배경으로, 삼각산 자락에 안긴 쌍문·방학·도봉동에 깊은 족적을 새긴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곧을 직’(直)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령한 세 개의 뿔’ 삼각산과 ‘도를 닦은 봉우리’ 도봉산의 정기 때문일까. 오늘의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3개 자치구를 ‘북서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북교’(北郊)라고 불린 이 지역은 서울이 ‘한양’(漢陽)으로 명명되기 이전 통일신라시대부터 ‘양주’(楊州)였다. 고려 현종(1012년) 때 양주와 광주 두 도시가 ‘양광도’(楊廣道)의 주축이 됐다. 오늘의 서울 강북은 양주이고, 강남은 광주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지역중심이 양주에서 한강변과 서해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지금의 지하철 1, 7호선 도봉산역이 옛 양주 누원점(다락원·누원역·덕해원) 자리다. 한반도의 동북방 변경 함경도 경흥으로 가는 북서울의 교통 결절점이자 조선시대 의주대로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길인 경흥대로의 길목이었다. 동대문과 동소문을 나서 되너미고개(미아리고개)와 수유고개를 넘으면 만나는 누원점은 도성의 동쪽 전관원, 서쪽 홍제원, 남쪽 이태원, 북쪽 보제원과 함께 서울 밖 가장 큰 역이자 시장이었다. 양주~포천~철원~함흥~북청~길주~회령~경흥에 이르는 2000여리 행로의 출발점이자 봉화가 오가는 길이었다. 북어와 땔감, 석재를 비롯해 함경도와 강원도의 사람과 물자가 들어왔다. 이 마을의 옛 지명이 ‘해등촌’(海等村)이다. 냇물이 바닷물처럼 깨끗하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지만 도봉이라는 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산골마을에 ‘바다 해’(海)자를 붙였다는 해석이 그럴듯하다.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현재의 노원구를 이루는 노원과, 도봉구를 이루는 해등촌의 앞 두 글자를 합쳐 ‘노해’(海)라고 멋대로 바꾼 게 탈이다. 노원은 이름을 되찾았지만 해등촌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최근 이 지역 도로명 주소에 노해길, 해등길이라는 지명이 재등장한 것이 위안이다.삼각산, 도봉산과 함께 북서울의 정체성을 이루는 또 하나의 상징은 중랑천이다. 삼각산과 도봉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13개의 지류가 서울시계 상류에서 서원천, 우이천, 도봉천을 이루다가 중류에서 한내(한천), 방학천, 송계천과 합쳐지고 하류에서 중랑천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장장 20㎞를 흐르는 한강의 가장 큰 지천이다.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동대문구, 성북구, 성동구 등 6개 구의 자연경계를 이룬다. 서울 사대문의 원류인 청계천도 중랑천의 지류이다. 월계동과 묵동 사이 나루터를 중랑포라고 불렀는데 이는 서해 바닷물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마포나루와 같이 중랑천을 바다의 일부로 생각한 때문이다. 강나루가 아니라 바다의 포구로 본 발상이다. 중랑천은 지금도 동부간선도로와 북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와 수도권 외곽순환도로를 연결한다. 조선시대에는 한강과 중랑천이 합쳐지면서 생긴 서울숲 일대를 뚝섬(뚝도)이라고 하여 섬으로 인식했고, 도성 밖 10리의 동쪽 경계로 정할 만큼 압도적인 하천이었다. 북서울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은 철도건설과 함께 변화했다. 일제강점기 경원선, 경춘선, 금강산철로가 각각 놓이면서 경원선 창동역과 경원선과 경춘선이 만나는 연촌역(성북역, 광운대역), 중앙선이 지나는 상봉역으로 중심부가 이동했다. 북서울은 해방 이후 전쟁피해를 입은 전재민 수용지와 정착지, 한국전쟁 이후 도심 판자촌 주민과 피난민, 월남민의 이주지와 정착지로 너른 품을 내주었다. 이주촌은 미아리, 번동, 공릉동, 상계동, 창동, 쌍문동, 중계동으로 확대됐다. 조선시대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던 삼각산 아래 한적한 벌판은 반세기 만에 아파트숲으로 둔갑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김구 선생 中피난처 안내 간판, 배우 조재현·서경덕 교수 기증

    김구 선생 中피난처 안내 간판, 배우 조재현·서경덕 교수 기증

    배우 조재현(52)씨와 서경덕(43) 성신여대 교수가 29일 중국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 건물 정문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 안내 간판을 달았다.서 교수는 29일 “김구 선생 탄생일과 경술국치일을 맞아 건물 정면에 가로 40㎝, 세로 140㎝ 크기로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쓴 ‘김구피난처’(金九避難處) 간판을 만들어 걸었다”고 밝혔다. 간판 제작 및 사전답사 등은 서 교수가 맡았고, 모든 경비는 두 사람의 자비로 충당했다. 두 사람이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글 병기 간판을 기증한 것은 항저우(杭州)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上海) 윤봉길 기념관, 창사(長沙) 임시정부청사에 이어 네 번째다. 조씨는 “간판 기증이 한국 관광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일본과 아시아, 미주, 유럽 등의 유적지에도 한글이 병기된 간판을 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구 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폭탄 투척 이후 일제의 수배를 받자 상하이에서 자싱으로 피신해 은신했다. 자싱시는 2001년 김구 선생의 피난처 옆에 ‘김구 전시관’을 신축하고, 한국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선생 관련 사진과 문헌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4·19 詩 낭독할때 ‘그날의 함성’ 느껴져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4·19 詩 낭독할때 ‘그날의 함성’ 느껴져

    서울의 북서쪽 끝, 강북구에 갔다. 더위가 잠시 주춤해진 국립4·19민주묘지는 흐린 하늘이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활짝 펼친 손가락 형상의 양편 조형물 중앙에 4·19 기념탑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자유를 외치고 있었다. 뒤편 묘역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위패와 358명의 영정사진을 모신 유영봉안소로 들어갔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앳된 영정사진을 바라보노라니 목숨까지 앗아가며 누리려는 권력욕과 너무 쉽게 약속을 파괴하는 탐욕의 무서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화강석 벽에 적혀 있는 4·19 시를 참석자 2명이 낭독했다. 1960년 4월 19일 그날의 함성이 느껴지는 듯, 떨리는 음성이 무심히 공중으로 휘 뿌려지는 분수대의 물과 뒤섞여 마음에 와 닿았다.4·19 기념관 옥상에는 작은 정원과 벤치가 마련돼 있었고 북한산과 경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산 둘레길 중 2구간 순례길이 보였다. 강북구에는 북한산 둘레길이 시작하는 3개 코스가 있는데 유입인구가 지나갈 뿐 이곳에서 소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고, 가구별 소득수준은 하위에 속한다고 한다. 자유에 대한 함성이 자본에 대한 열망으로 변질된 듯하여 씁쓸했다. 윤극영 가옥은 옛 풍금에 반달 악보가 펼쳐져 있고 반달노래가 잔잔히 들리는 작고 고운 곳이었다. 대안 교육을 고민하던 부모들이 의견을 모아 탄생시킨 삼각산재미난학교와 자연과 함께 체험하고 숙박하며 수련할 수 있는 강북청소년수련관을 방문했다. 암벽등반을 하는 학생들의 우렁찬 기합소리를 들으니 싱그러운 젊음이 묻어나는 듯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시원한 대동천의 맑은 물소리를 따라 북한산 숲길을 걷다 보니 한편에 아나키즘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 선생 묘가 있었다. 아나키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지배자가 없다는 뜻으로, 주권은 누구나 모든 사람에 있어야 한다는 외침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통일운동의 정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근현대사기념관 앞에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가까이 있으면 그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아름다운 자연과 근현대 위대한 분들의 정신과, 자라는 청소년을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강북구가 정말 멋진 곳이어서 부러웠다. 이소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장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태평성대 누리는 삼각산 아래 명당 순국선열을 품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태평성대 누리는 삼각산 아래 명당 순국선열을 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3차 ‘자유를 위한 함성’ 편이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일대에서 진행됐다. 혹서기를 피해 3차례의 야간답사가 이어진데다, 멀리 서울의 북서단 삼각산 아래까지 사람들이 찾아올지 우려했지만 기우에 그쳤다. 30여명의 ‘미래투어’ 팬덤은 열 일을 젖혀두고 동참했다. 집결지인 국립4·19민주묘지까지 오려면 지하철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 지도사는 젊은 엄마의 감성으로 투어단을 이끌었다.국립4·19민주묘지와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묘역을 품에 안은 삼각산은 고리타분한 옛 지명인가. 그렇지 않다. 삼각산은 서울이 왜 서울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무학을 시켜 도읍 터를 정하도록 했는데 무학이 삼각산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돌비석에 새겨진 ‘무학오심도차’(無學誤審到此·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를 보았는데 이는 도선이 세운 것이었다. 문득 깨달은 무학은 길을 바꿔 정남 쪽 맥을 따라 백악산에 도착했다. (중략) 드디어 궁성 터를 정했는데 고려 때 오얏을 심던 곳이었다”라는 일화를 전한다.●역사적 근거 명확한 ‘오얏 심던 곳’… 현재 ‘번동’ 삼각산과 한양천도에 얽힌 도참설과 풍수설화 중 귀담아들을 만한 부분이다. 떠도는 설화 대부분이 ‘믿거나 말거나’ 식이지만 ‘오얏을 심던 곳’은 역사적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도선대사의 ‘도선비기’에 전해지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씨 성을 가진 자가 나라를 얻는다)의 도참설을 깨고자 고려 조정이 이씨를 상징하는 오얏(李木·자두나무)을 한양땅에 심었다가 자라면 베어버리도록 했는데 이때 윤관 장군이 지휘관으로 파견됐고, 그 직책이 벌리사(伐李使)였으며, 지역명이 벌리(伐李)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벌리는 번리를 거쳐 오늘의 번동이 됐다. 오패산 혹은 벽오산이라고 불리다가 ‘북서울 꿈의 숲’ 공원이 조성됐다. 번동은 우이동, 수유동, 미아동과 함께 강북구의 법정동을 이루고 있다.●910여년 전 고려 중기부터 ‘한양 천도’ 시도 우리는 흔히 한양이 620여년 전 하루아침에 부각된 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자 하는 시도는 910여년 전 고려 중엽부터 끈질기게 이어졌다. 개경(개성)을 수도로 둔 고려는 고구려의 서경(평양), 신라의 동경(경주)과 함께 백제의 옛 수도에 남경(한양)을 두어 삼국의 융합을 원했다. 삼각산 아래 마을은 실제로 고려가 도읍 후보로 검토한 유력지였다. 후보지 4곳은 백악, 용산, 노원, 해촌(옛 다락원, 현재의 도봉산역)으로 노원과 해촌이 삼각산과 한강 사이의 명당지로 꼽혔다.도참서 중의 하나인 ‘삼각산명당기’에 따르면 삼각산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선경으로 산맥이 삼중, 사중으로 등져 명당을 수호하고 있어서 태평성대를 누릴 땅이라고 했다. 도참설대로 이씨가 역성혁명에 의해 왕조를 세웠으니 도읍을 옮기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결국 오얏나무가 무성한 ‘약속의 땅’ 한양으로 천도했다. 다만 좀 더 넓고, 평평하고, 한강의 조운이 편리한 곳을 찾아 이동한 까닭에 백악을 주산(主山)으로 하되 삼각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았다.●북서울 3개구 ‘도봉·노원·강북’은 하나의 뿌리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을 잇는 두 갈래 길이 개성~장단~적성~녹양~노원~안암~제기~동대문 길과 개성~임진~벽제~영서~무악재~서대문 길이다. 벽제 혜음령이 너무 험해 좀 시간이 걸려도 노원 길을 선호했다. 이 일대를 서울의 북쪽 교외를 이르는 북교(北郊)라고 통칭했으며, 도성의 채소 및 땔감 제공지이자 중인 이하 양민들이 죽으면 묻히는 안식처가 됐다. 오늘의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등 3개 구를 북서울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삼각산, 서쪽으로 우이천을 경계 삼아 성저십리(城底十里)에 속했으며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했다. 이처럼 북서울 3개 구는 한 뿌리이다. 1949년 숭신면 전부가 성북구에 속했다가, 1973년 도봉구, 1988년 노원구에 이어 1995년에 강북구가 차례로 분가했다. 서울의 머리인 ‘세 개의 뿔’ 삼각산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고 생뚱맞은 명칭을 붙인 게 옥에 티다. 교통의 요지이자 들판이었던 노원구는 아파트의 숲으로 변했지만 삼각산이라는 압도적 자연경관을 가진 이 지역의 정체성은 바뀔 수 없다. 순국선열과 청소년 수련을 특화하는 생태역사문화특구로 자리매김하는 게 순리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도봉> 집결일시: 26일 오전 10시 쌍문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동호회 엿보기] 도둑 의심받아 ‘작대기 찜질’까지… 그래도 독수리 4형제는 또 떠난다

    [동호회 엿보기] 도둑 의심받아 ‘작대기 찜질’까지… 그래도 독수리 4형제는 또 떠난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를 잘 가르치려고 시작한 모임인데 벌써 40년이 됐네요.”(임규식 서울 안평초 교감)# 최근 10년간 3500곳 답사… 책도 2권 발간 초로(初老)의 서울 초등학교 교사 4명은 매달 한 번씩 모여 ‘카니발’ 승합차로 전국을 누빈다. 한국사의 주요 유물과 유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전·현직 교장과 교감으로 구성된 유물 답사 동아리 회원인 임규식(51) 교감, 신명철(60) 서울학생교육원장, 최태규(60) 서울 신정초 교장, 김영철(64) 전 서울 누원초 교감이다. 17년 전 모임에 합류한 임 교감은 “문화재에 관심있는 초등교사들이 1970년대 말 만든 동아리인데 멤버를 바꿔 가며 아직껏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신없이 활동하다 보니 따로 동아리 이름을 짓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교대 출신의 교사들이 처음 모임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학연과 관계없이 우리 역사를 아끼는 교사들이 모여 활동 중이다. 회원 수로만 따지면 ‘초미니’ 동아리지만 활동 성과는 적지 않다. 현 회원 4명이 최근 10여년간 답사한 장소만 3500여곳이고 촬영 사진은 10만장에 달한다. 이 사진들은 교사인 회원들에게는 ‘보물’이다. 신 원장은 “초교 5~6학년 한국사 수업 때 마을 역사 문화재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면 아이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를 가르칠 때는 고인돌 등 유적지 사진이 교육자료로 더욱 힘을 발휘한다. 교사 4명이 카메라 한 대씩 목에 걸고 전국을 유랑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다. 과거에는 시민에게 개방하지 않은 왕릉을 촬영하기 위해 하염없이 때를 기다리다가 벌초할 때 잠시 인부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충청도의 한 사찰에서는 문화재 촬영 중 도둑으로 의심받아 작대기로 맞기도 했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문화재를 돌아볼 때는 슬픈 감정도 든다. 울산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여러시기에 걸쳐 고래, 호랑이, 사람 등의 형상 수백점이 새겨졌지만 풍화작용 등으로 인해 지금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 많지 않다. 또 천연기념물이었다가 낙뢰 피해 등으로 말라죽은 충남 서천군 신송리 곰솔, 서울 원효로 백송 등도 있었다. 임 교감은 “예전에 찍은 사진으로 멀쩡했던 문화재의 모습을 보면 되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조상들 가훈 엮어 책 내고 싶은 게 꿈” 4명의 노교사는 여전히 꿈이 많다. 직접 찍은 사진을 담아 교육용 서적 2권을 함께 펴냈지만 책 몇 권쯤 더 펴내고 싶다고 한다. 신 원장은 “옛 종갓집 한옥이나 향교, 서원 등의 기둥에는 조상의 업적과 후손에 보내는 가훈을 담은 주련(기둥에 써붙인 글귀)이 있다”면서 “이 내용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의 인성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 교감은 “4명만 활동하는 동호회다 보니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마음 맞는 교사라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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