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답사
    2026-08-01
    검색기록 지우기
  • 담보
    2026-08-01
    검색기록 지우기
  • 일본
    2026-08-01
    검색기록 지우기
  • 7월 12일
    2026-08-01
    검색기록 지우기
  • 라마
    2026-08-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54
  • [법률시장 빅뱅온다] 외국로펌과 짝짓기·전문화로 활로 뚫는다

    [법률시장 빅뱅온다] 외국로펌과 짝짓기·전문화로 활로 뚫는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로펌과 개인변호사 업계의 문화와 지도가 확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로펌은 외국로펌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고, 중소형 로펌은 외국 로펌과 합병을 추진하는 생존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로펌의 해외 진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변호사들이 전문 송무분야를 특화하면서 작은 규모의 로펌을 만드는 추세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제휴로 윈-윈 나설 듯 법무법인 율촌의 우창록 대표변호사는 24일 “각 분야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외국로펌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으면 율촌과 외국로펌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 로펌은 여러 외국 로펌과 제휴관계를 맺고 사건의 특성별로 경쟁력 있는 외국 로펌과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로고스의 백현기 대표변호사는 “최소한 미국로펌과 연대를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법학과 김성용(변호사) 교수는 “로펌들은 대부분 개방을 반대하지만 오히려 개방을 바라는 중소로펌도 있다.”면서 “이는 외국로펌과의 합병을 통해 대형로펌으로 거듭나겠다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은 한국·중국·일본·호주 등 4개국 로펌간 제휴를 추진해 개방파고를 넘는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최근 중소로펌들이 대법관이나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것은 외국로펌과의 합병에 앞서 자체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외국로펌과 합병을 해도 전문성을 못 갖추면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다. 법무법인 화우의 윤호일 대표변호사는 “화우엔 전문성이 있다고 자부하는 공정거래 분야에 25명의 전문 변호사가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로펌엔 한 전문 분야에만 50∼300명의 전문 변호사가 있다.”면서 “대형사건일수록 전문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로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국내로펌의 대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변호사업계에선 대형화를 이루기 위해 일본처럼 토종로펌끼리 합병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해외로 눈을 돌려라 국내로펌들은 베트남·중국 등지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한화그룹 법무실 김중원 변호사는 “영·미계 로펌은 세계 각국에 네트워크가 있어서 다른 나라의 법률지식과 관계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서 “우리나라 로펌도 글로벌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평양은 5년전 도쿄에,3년전에는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었고 상하이 사무소 개설도 준비중이다. 로고스는 지난해 7월 베트남에 사무소를 열었고, 캄보디아 시장까지 맡길 계획이다. 내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개최 이전에 베이징 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백현기 대표변호사는 “우리나라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늘고 있기 때문에 시장성은 확실하다.”면서 “첫해엔 적자를 봤지만 올해엔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과 지평도 베트남에 현지 답사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의 한 변호사는 기존 변호사의 마인드에 변화를 촉구했다.“외국변호사들은 고객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를 연구한다. 하지만 국내변호사는 의뢰인이 오기를 기다린다.”면서 “법률시장 개방 되면 이런 식의 변호사 마인드론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광장의 한 변호사는 “현재 대부분의 로펌 변호사들은 각자가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사건을 받거나 자문을 해 전문성과 상관없이 여러 종류의 일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로펌이 직접 일을 챙기고 업무를 그 분야의 전문 팀에 일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외국로펌한테 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변호사 뭉쳐 로펌 구성 붐 일듯 법률시장 개방의 1차적 피해는 로펌이,2차적 피해는 개인변호사가 될 것으로 전망돼 왔으나 최근 들어 개인변호사가 1차적 영향권 내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위기가 많아 주목된다. 법무법인 KCL의 임희택 대표변호사는 “최근 대기업마다 법무실이 많이 생겨나 로펌의 기업자문이 줄고 있다.”면서 “각 로펌마다 송무를 강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사실상 로펌과 개인변호사의 업무영역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성용 교수는 “로펌들이 외국로펌에게 기업자문을 뺏긴 만큼 송무영역을 늘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개인변호사는 “나중에 로펌한테 일을 뺏기고 법무사나 부동산이 하는 일만 할지도 모른다.”면서 “결국 한 송무 분야에서 전문 분야를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최근 들어 서초동에선 개인변호사들 몇몇이 모여 규모가 작지만 전문화된 로펌을 만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 법무법인 홍윤을 설립한 박준선 대표변호사는 “요즘 일반 의뢰인들도 개인변호사보다는 로펌 변호사를 선호하고 있어 변호사도 차별성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우리 법인은 틈새시장으로 부동산과 해외투자, 이민투자, 국제비즈니스를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빗장 연 외국선 무슨 일이… 법률시장을 개방한 외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독일에서는 외국로펌이 시장을 잠식했고, 일본에서는 외국로펌과 토종로펌이 공존하고 있어 판단 유보상태다. 스페인에서는 로펌 발전의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가 어떤 모델을 좇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독일 1998년 독일 로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 다임러벤츠사와 크라이슬러사의 합병은 독일법으로 진행됐고 합병 후에 ‘다임러-크라이슬러 AG’라는 독일 회사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독일 회사인 다임러벤츠사가 미국 로펌에 자문을 맡기면서 독일 로펌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충격을 받은 독일 로펌은 국제화를 앞다퉈 진행해 영·미계 대형로펌들과 제휴·합병을 했다. 결국 토종 로펌은 초토화됐다. 법무법인 세종의 김범수 파트너 변호사는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변호사의 공익적 성격을 중시하고 개인변호사 중심구조였던 점이 패인”이라면서 “독일 변호사들은 학자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고 대형화하려는 마인드를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10위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토종로펌도 있다. 작지만 강한 로펌인 ‘헹겔러 뮐러’는 규모 면에서 경쟁하지 않고 질 높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사안에 따라 가장 적합한 팀을 구성해 대응하는 게 철칙이다. 헹겔러 뮐러의 변호사 수는 300명을 밑돌지만,2000년 ‘올해의 유럽 로펌’으로 ,2001∼2004년까지 ‘올해의 캐피털 마켓 및 금융 자문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 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법률시장을 20년동안 점진적으로 개방해 지난 2005년에 완전 개방했다. 현재까진 자국의 로펌을 보호하는 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법무법인 태평양 황보영(대한변협 전 국제이사) 변호사는 “현재 일본 토종로펌들이 1∼5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영·미계 로펌이 따라가고 있다.”면서 “토종로펌들은 자체 합병 등을 통해 오랜 기간 경쟁력을 키웠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변호사는 “일본은 미국·영국과 언어와 문화가 달라 외국로펌에 경쟁력이 있다.”면서 “같은 영어권이고 문화도 비슷한 유럽연합(EU) 소속인 독일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성공적인 방어를 했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황보영 변호사는 “일본은 2005년부터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어 일본로펌과 외국로펌이 모두 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개방한 지 2년밖에 안 돼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로펌은 영국로펌과 합병 논의를 하면서 내부 정보와 핵심인재들이 외국 로펌에 모두 노출되기도 했다. 합병 협상이 깨지면서 정보만 유출된 꼴이 됐다. ●스페인 개방을 계기로 오히려 토종 로펌들이 발전했다. 스페인 로펌들은 개방하기 전 20년 동안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형화와 전문화를 추진해 왔고 개방한 뒤엔 영국계 로펌들과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맺었다. 로펌인 ‘우라 안메헨데스’는 각 서비스 부문에 따라 필요한 영·미계 대형로펌들을 잘 골라 제휴 관계를 맺어 성과를 거두었고 개방한 뒤 오히려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문학기행 열차’ 타고 춘천 가볼까

    “‘문학(文學) 열차’ 타고 춘천 김유정 문학촌으로 떠나자.”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서 열리는 김유정 문학제를 위해 서울∼춘천간 ‘문학기행 열차’가 운행된다. 김유정 문학기행열차는 2005년부터 운영돼 호평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24일 춘천시에 따르면 문학열차는 오전 9시45분 청량리를 출발해 춘천까지 운행된다. 객실에서는 유인순 교수와 함께 풀어보는 김유정 퀴즈, 삼행시 짓기, 점순이의 마음으로 불어보는 버들피리 등의 이벤트가 펼쳐진다. 열차가 춘천 김유정역에 도착하면 김유정 문학촌을 시작으로 움막 야학터, 봄봄의 봉필 영감네 집터, 주막터, 금병의숙, 수아릿골, 동백꽃의 산국농장, 산골 나그네의 물방아터 등을 둘러보는 문학현장 답사를 한다. 김유정 작품 속의 주인공 점순이를 찾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당차고 야무진 소설 속의 점순이를 빼닮은 미혼 여성을 뽑는 행사로 간단한 면접과 문제 풀이를 통해 현장에서 선발한다. 김유정 문학촌 앞 논에서는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닭싸움이 펼쳐지고 닭 멀리 날리기, 닭잡기 등 다양한 놀거리가 진행된다. 김유정 소설을 춘천 사투리로 낭송하는 ‘김유정 소설 입체낭송대회’도 열린다. 총각과 맹꽁이, 산골 나그네, 소낙비, 안해, 땡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대화의 묘미를 살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학촌이 있는 춘천 신동면 증1·증3리 실레마을 주민들은 풍물장터를 운영, 방문객들에게 춘천 향토음식도 제공한다. 올해는 ‘봄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 선생 타계 70주년 행사로 예년보다 더 다채롭게 펼친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부동산투자 철칙은 ‘눈·발 조사’ 토지이용계획서 확인도 필수

    “부동산 업자들은 이 땅을 온천수가 나오는 광천지라고 소개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평당 30만원 매물로 나왔지만 10만원이라도 절대 사면 안 되죠. 눈과 발로 직접 확인하는 게 부동산 투자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지난 20일 제주도 서귀포시 사계리의 한 빈땅 앞. 남녀노소 30여명이 신한은행 부동산재테크팀 고준석 팀장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 대부분 예치금 30억원, 자산 500억원 이상의 ‘부자’들이다. 좋은 땅 고르기 현장 수업인 ‘부동산 필드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땅을 고르는 첫 원칙은 눈과 발로 현장을 꼼꼼히 조사하는 것. 땅을 파는 게 목적인 부동산업자들은 입지나 가격 등의 요건만 맞으면 좋은 땅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그러나 지방일수록 현장 답사의 중요성은 훨씬 커진다. 지적도상 땅 옆에 도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자투리 땅이 도로 진출을 막고 있거나 땅 안에 묘소가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되면 토지 매입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심하면 땅을 활용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 토지 경사도가 15도 이상인 곳은 일단 피해야 한다. 아무리 가격이 싸도 땅값만큼 성토 비용이 들어가기 일쑤다. 땅 밑에 암반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토목 공사 때 평당 20만∼30만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풍수지리학 상의 배산임수(背山臨水) 기준은 땅 투자 때만큼은 잊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하천과 강, 계곡 등과 500m 이상 떨어진 곳이 낫다. 산처럼 나무가 울창하거나 30년 이상 된 고목이 있는 땅은 전용허가를 받기 어렵다. 경치는 좋지만 투자 대상으로는 ‘0점’이다. 땅을 살 때 토지이용계획서를 확인하지 않고 땅을 사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인 신상정보 없이 덜컥 결혼하는 격이다. 특히 제주도는 투자 전 현장 답사의 중요성이 더욱 큰 곳이다. 제주도는 최근 특별자치도로 지정되면서 이곳 땅을 매물로 한 ‘기획부동산’이 범람하고 있다. 제주도 땅의 특성은 현장을 확인하기 어렵다. 땅값도 육지보다 저렴한 편이라 기획부동산 업자의 말만 듣고 ‘묻지마 투자’를 하기 딱 좋다. 하지만 제주도의 65% 이상은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해발 200m 이상의 관리보전지역에서는 필지분할도 불가능하고, 해안도로에서 20m 이내에 있는 지역과 해안 쪽 토지에는 건축을 할 수 없다. 고준석 팀장은 “제주도 등 섬 지역에 부동산 투자를 할 때는 뭍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면서 “리스크는 크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훌륭한 펜션용 토지 등을 발견할 수 있어 상당한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글 제주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5) 부석사의 절묘한 건축미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5) 부석사의 절묘한 건축미

    오랜만에 부석사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쓸모가 있을 듯하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침반도 하나 준비했지요.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특히 건축가들이 깊은 애정을 갖는 절집입니다. 서양건축사를 배우며 주눅들었던 건축학도 시절, 부석사를 알게 되면서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았던 기억 때문이겠지요. 불교 교리의 상징체계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절이 부석사입니다.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중생을 선행의 정도에 따라 아홉 단계로 나누는 아미타신앙의 3품3배관(三品三輩觀)을 반영하고 있음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잘 소개되어 있지요. 아미타신앙은 보살급 공력을 쌓은 상품상생(上品上生)은 물론 일자무식의 하품하생(下品下生)이라도 한결같은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간절히 부르면 극락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부석사를 지은 사람들은 천왕문에서부터 크게 세단씩 나눠진 모두 아홉 단의 돌계단을 만들어 놓아, 절에 들어선 뒤 극락정토 세계를 상징하는 무량수전에 이를 때까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정화시켜 가도록 배려했습니다. 무량수전의 부처가 남쪽 정면을 향하지 않고 서쪽에 앉아 있는 것은 조금 생소합니다. 이 또한 아미타부처가 동쪽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서방정토에 상주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부석사에서 가장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대목은 굴절된 축인 듯합니다. 천왕문에서 중품단(中品壇)이 끝나는 여섯째 계단의 범종각까지 일자로 곧게 뻗은 축이, 상품단(上品壇)이 시작되는 일곱째 계단부터는 왼쪽으로 방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지형에 순응한 결과라는 해석에서부터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중첩되면서 이루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라는 해석, 여기에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맥과 형국의 생김새가 건물 배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풍수지리적 해석까지 갖가지 상상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축의 굴절이라는 건축계획 과정의 중대한 결정이 아미타신앙의 교리적 상징과 무관하게 이뤄졌다면 부석사는 위대한 절일 수 없습니다. 나침반은 천왕문에서 범종루에 이르는 직선축이 240도 방향의 서쪽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배치입니다. 하지만 직선축을 연장해 무량수전을 짓는다면 아미타불은 330도 방향의 ‘북방동토’에 앉게 되니 고민스러웠겠지요. 그래서 일곱번째 계단인 상품하단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두번째 축의 방향을 타원형에 가깝게 크게 틀었을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무량수전도 최대한 남쪽을 향하도록 안양루와도 각을 조금 두어 마당은 사다리꼴을 이룹니다. 이렇게 해서 무량수전은 195도 방향의 남향집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석사의 굴절된 축 또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서방정토에 머물고 있다는 교리적 상징을 살리고자 고안한 건축적 장치입니다. 그럼에도 일관성을 훼손시키기는커녕 신비감을 오히려 배가시키는 효과를 거두었으니 부석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dcsuh@seoul.co.kr
  • ‘스포츠 주식회사’ 강진군

    ‘스포츠 주식회사’ 강진군

    ‘이제는 스포츠 마케팅이다.’ ‘남도답사 1번지’인 전남 강진군이 유적지 관광으로 불을 지핀 뒤 체육행사를 통해 열기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강진군이 각종 국내 대회를 유치해 벌어들인 돈은 줄잡아 200억원. 이는 강진군 전체 농가(7765가구)에서 일년 동안 쌀농사로 올린 매출액(795억원)의 4분의1 수준이다. ●스포츠 행사는 블루오션 17일 강진읍내 공설운동장 잔디구장에서는 제43회 춘계 한국중학교 축구 연맹전 결승전이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보름 동안 144개팀이 예선과 결선을 거쳐 두팀이 자웅을 겨뤘다. 이번 축구대회로 강진에 온 선수단과 학부모는 연인원 5만 4000명. 이는 팀별 선수단 40명에 예선전을 거친 팀들이 일주일 이상 머문다는 것을 가정한 숫자다. 군은 지난해부터 올까지 내리 2년 동안 대회를 치렀다.2005년에는 전국 유소년축구 왕중왕전(48개팀)을 열었다. 이로써 강진은 축구선수들 사이에 ‘축구메카’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래선지 지난해와 올 초 동계훈련(12월1일∼2월28일)을 위해 강진에 온 선수단은 138개팀 3200여명이었다.10개팀 중 9개팀이 축구팀으로 평균 12일 동안 머물렀다.. 강진읍내 숙박시설은 90개팀을 소화하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일부 선수는 큰 식당에 딸린 방이나 마을회관에서 생활했다. 이마저 없어 인근 군으로 가서 잠을 자기도 했다. 강진읍 보금모텔 여주인 이복순(71)씨는 “올 초까지 축구선수들이 방 20개를 다 채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선수단이 강진군 인구의 3배 강진군에는 천연잔디구장과 인조잔디구장이 6개나 있다. 따뜻한 날씨, 입에 붙는 먹거리(한정식), 친절과 인정미, 공무원들의 뒷바라지 등 뒷받침도 든든하다. 다음 달에는 도내 22개 시·군에서 8000여명이 참가하는 도민체전이 4일 동안 강진에서 개최된다. 앞서 지난달에는 3·1절 전국 도로사이클대회(41개팀·500여명), 제18회 전국 춘계여자역도대회(800여명)가 잇따랐다. 군이 지난해와 올 초까지 스포츠 마케팅으로 벌어들인 돈은 200억원대에 이른다. 이 액수는 강진에 온 선수단과 학부모 등 연인원 14만 8000여명이 쓰고 간 직·간접적인 효과를 계산한 것이다. 강진군 인구는 5만명 안팎이다. 선수 1명이 하루에 숙박·음식·목욕·간식비 등으로 5만원을 쓴다. 이는 직접 파급효과이다. 여기다 지역 이미지 제고와 연계관광, 특산품 구매, 홍보 등 간접 파급효과는 1인당 8만원으로 잡았다. 군은 2005년부터 기존의 체육시설관리사업소에 새로 대외유치팀을 더해 스포츠기획단(18명)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신기은 군 대외유치직원은 “군청 6급 이상 직원들은 저마다 팀별로 원스톱 평생담당자로 선정돼 선수단이 오면 불편함이 없도록 뒷바라지에 나선다.”고 말했다. 황주홍 군수는 “스포츠 마케팅은 자치단체의 블루오션으로 개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면서 “스포츠 대회로 지역민들에게 선의의 경쟁과 화합, 단결심을 심어주는 것은 덤”이라고 강조했다. 강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딸자랑] 홍병식씨 막내딸 미숙양

    『이 애는 걱정을 안 끼쳐주는 아입니다』-유실물(遺失物)찾기봉사「센터」대표 홍병식(洪秉寔)씨(65)가 막내따님 미숙(美淑)양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하는 첫마디. 건강한데다가 공부도 잘 하고 무엇이든 시키면 척척 해내는 솜씨이니 단연 최고가 아니냐는 것. 피아노 잘치는 미술학도 만능 스포츠 선수이기도 집안일 잘 돌보아 걱정 끼친일 없어 서울大 미대(美大) 서양화과 4학년에 재학중인 미술학도 홍양은 1남6녀중 막내. 오빠 언니들이 모두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재롱동이(?)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해방전에 낳았는데 얘만 해방 후에 얻었읍니다. 막 낳아서 이름을 지으려고 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뭐라 말 할 수 없이 예쁘잖아요? 그래서 언니들이 이름자 돌림인「숙」위에「아름다울 미」자를 얹어 주었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쁜 따님은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정숙하게 자라 귀엽고 마음이 착한 미대생(美大生)이 되었다고. 아무래도「미」와 인연이 많은 모양이라고 아버지는 싱글벙글이다. 『자식에 대한 걱정이란 건강과 공부가 아니겠어요? 그런 뜻에서 이 애는 부모의 속을 안 썩이는 아이죠. 별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고, 또 공부도 잘 해서 소위 1류학교라는 데만 척척 합격했으니 말이에요』 67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집안 식구들은 모두 좀 쉬운 데를 골라서 가라고 했지만 한사코 본인이 고집, 서울대 미대를 지망했다는 이야기. 『발표 하루 전 날이었어요. 아는 분을 통해서 알아보았더니 아, 글쎄 떨어졌다는 거예요. 하늘이 캄캄해지는 것 같더군요. 어떻게 얘한테「쇼크」를 주지 않을까 궁리하면서 넌지시 물어 보았죠. 너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절대로 자기는 떨어질리가 없다고 자신만만이에요』 본인의 자신대로 발표를 보니 당당히 홍양의 이름이 들어있더라고. 미리 알아본 것이 잘못된 정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합격한 홍양이 서울대학교 여학생회 주최 신입생 환영「페스티벌」에서 육영수(陸英修)여사가 준 시계를 타오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고. 행운권 추첨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1등 상을 차지한 것.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보통 집안 일은 통 모르고 그저 예술입네 하고 체하기가 십상인데 얘는 집안 일도 잘 할줄 알아요. 시키면 무엇이든 할 줄 알죠. 그리고 다방면에 취미가 많은데다가 모두 극성일만큼 열심이에요』 운동이라면 무엇이든 할 줄 안다는 만능 운동선수이기도 한 홍양이 요즈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테니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우표도 상당히 모은적이 있고 또「피아노」솜씨도「아마추어」의 경지를 넘어선 실력이라고. 사위감에 대해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생각을 않고 있지만 본인만 좋다면 아버지로서 무조건 OK하겠다고. 지금까지 자식들 결혼을 시킬 때 모두 그런 식으로 본인의 의사에 맡겨 왔다는데 똑똑한 따님이 골라 잡는 신랑감일 테니 부모로서 무슨 반대할 말이 있겠느냐는 것. 이번 여름에는 학교의 교수님들과 함께 홍도와 경주 문무왕릉을 답사하고 왔다는 홍양은 졸업하면 둘째 언니가 있는 미국에 건너가서 그림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란다. 서울 서대문구 부암동에서 엄마 朴南順(63)여사와 함께 세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8월 23일호 제3권 34호 통권 제 99호]
  • [Let’s Go] 전국의 고택명소

    [Let’s Go] 전국의 고택명소

    컴퓨터는 물론 TV도 없다. 푹신한 침대에 익숙해진 허리는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고택체험에는 이처럼 약간의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하루쯤 양반 집 사랑채에서 잠을 청하고, 장닭의 울음소리에 단잠을 깰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불편은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전국의 명소를 소개한다. 하회마을과 퇴계 종택 등 조선시대 생활양식과 문화를 잘 보여주는 고택들이 즐비한 안동지역은 표로 정리했다. ●만산고택 조선 말기의 문신 강용이 고종 15년에 지은 건물. 작가들의 문화 탐방이나 건축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고택체험을 원하는 방문객에게는 칠류헌과 서실을 개방하고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1박(5인 기준)에 칠류헌 10만원, 서실 5만원. 종가댁 아침상 5000원.(054)672-3206. ●송소고택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99칸짜리 한옥.1880년 송소 심호택이 지었다. 안채, 사랑채 등 건물마다 마당이 딸려 있고, 내부를 반쯤 가려주는 헛담이 설치되어 있다. 주왕산국립공원, 주산지와 절골계곡, 달기약수탕 등 관광명소들이 자동차로 5∼30분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승합차가 청송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나간다.1박(2인 기준) 4만∼9만원선. 별당독채는 18만원. 식사 5000원. 취사는 불가.www.songso.co.kr,(054)873-0234. ●개실마을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이 40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살아오는 곳. 주요 볼거리로는 점필재 종택과 지역 유림들이 학문을 연마하던 도연재 등이 있다. 떡메치기, 엿만들기 등 전통체험도 가능하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1박 3만원.www.gaesil.net,(011)810-5936. ●윤증고택 구조가 간결하면서 견실해 신선한 맛을 풍기는 조선 후기 한옥. 후손들이 고택에 그대로 살고 있어 깨끗하게 보존됐다. 담장과 행랑채 대문이 없는 독특한 모습. 사랑채는 전체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1박에 6~8만원.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등도 판매하고 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041)735-1215, www.yunjeung.com ■ 그 밖의 가볼만한 고택 ●한개마을 낙동강 지류인 백천과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은 성산 이씨 집성촌.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이석문(李碩文)이 평생을 은거한 북비고택과 TV 등의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한주종택 등 100여 채의 고택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총 3300여m에 달하는 마을 돌담길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054)930-6063. ●주실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일월산 자락에 자리잡은 한양 조씨 집성촌.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80년 가까이 양력설을 쇠고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워낙 심심산골에 자리잡고 있어 ‘육지속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문향(文鄕)이다. 시인 조지훈의 생가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학초정 등이 주요 볼거리.5월18∼20일까지 ‘지훈 예술제’가 열린다.(054)680-6067. ●운조루 섬진강과 지리산의 따뜻한 품이 느껴지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자리잡고 있다.‘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구름 위로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의 이름만큼 아름답다. 사랑채 내부의 마루 공간, 거기에 이어지는 누마루, 중간에 기둥을 생략한 과감한 구조의 사랑방 등은 건축주의 집에 대한 자존심이 엿보인다.1776년 건축됐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선교장 천상의 향기를 담은 맑디맑은 곳.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한다.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최초의 민간주택이기도 하다. 건평만도 300평이 넘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연못, 정자까지 갖춰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으로 손색이 없다.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033)640-4543. ●닭실마을 ‘닭이 알을 품은 모양(金鷄抱卵)’을 하고 있어 이름지어졌다. 조선중기의 문신 충재 권벌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전통 마을. 한과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총재고택과 청암정 등이 둘러볼 만한 곳. 부석사와 청량사 등 봉화·영주 일대 문화유산 답사를 겸할 수 있다. 닭실마을 부녀회 (054)673-9541. ●양진당 풍양 조씨(氏)의 선조 조정(趙靖)이 1626년 지은 가옥. 집 전체가 땅 위에 떠서 2층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상식(高床式·기둥 아래에 주춧돌을 놓은 방식) 고택이다. 땅 기운이 습해 건물 전체를 들어올린 발상에서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99칸짜리 저택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작아졌지만, 조선 중기 건축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054)537-6063. ●외암리 민속마을 입구에서부터 5㎞에 걸쳐 마을 전체를 돌아나가는 돌담길의 우아하고 소박한 곡선과 그 사이를 잇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낸다. 다른 민속마을들이 어설픈 관광지로 변해가는 것에 비해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영암군수댁과 예안 이씨(氏) 종가인 이참판댁. 충남 아산시 송악면.(041)544-8290. ●김동수 가옥 창하산(蒼霞山)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동진강(東津江)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터에 세운 가옥. 나지막한 건물과 군더더기 없는 마당,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건축 자재로 쓴 행랑 등 보기 드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보수, 개조되지 않아 거의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1784년 건립.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정읍시청 문화관광과 (063)535-5141∼7. ■ ‘신비의 왕국 대가야’ 고령 ●‘현의 노래´ 가야금 12줄의 비밀 역사는 분명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대가야처럼 500년 가까운 역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경우는 흔치 않다. 남아 있는 기록도 대부분 전성기는 생략된 채 왕국의 쇠락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미스터리가 많은 것이 오히려 대가야의 왕도(王都) 고령 여행의 장점이 된다. 여행객들이 마음껏 역사적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가야의 역사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가야금을 만든 우륵. 그는 왜 하필 가야금을 12줄로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기록은 역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 낀 당시 상황에서 대가야 주변 12국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할 필요를 느낀 가실왕(몇대 왕인지조차 불분명하다)이 우륵에게 주변국들을 상징하는 12줄의 가야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 우륵은 왜 자신을 총애한 가실왕을 버리고 신라로 갔을까? ‘귀화설’‘망명설’‘밀사설’ 등 논란이 분분하지만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충북 충주시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타며 통한의 세월을 보낼 바에야 차라리 조국의 명운과 함께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이 또한 여행자의 상상에 맞겨질 부분. ●20m~50m 이름모를 봉분 200여기만 가실왕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던 562년. 저 유명한 ‘신라장군 이사부’는 화랑 김사다함과 기병 5000명을 선봉으로 세우고 대가야를 침노했다. 신라의 급습을 예상치 못했던 대가야 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갔고, 대가야의 성지 가야산은 이들의 피로 물들여졌다. 망국을 예감한 대가야의 도설지왕이 신라에 항복하면서 ‘철의 제국’ 대가야는 어느 왕의 묘인지도 모르는 지름 20∼50m의 거대한 봉분 200여기만을 남긴 채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대가야 군사들의 철검은 고령땅 아래서 그렇게 1500년 가까이 녹이 슬어가고 있었다. ●9일까지 대가야 체험축제 그리고 오늘. 역사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왕국은 볼품없는 시골도시를 살리는 관광자원으로 되살아났다. 고령 여행의 첫걸음은 지산리 고분군에서 시작된다. 거리는 5㎞남짓. 최초로 순장풍습이 확인된 44호 고분 등 주산 능선을 따라 형성된 고분군을 둘러보는데 2시간쯤 걸린다. 대가야 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을 둘러본 다음 고분군 산책에 나서는 게 좋다. 고분의 주인과 순장자들에 대한 궁금증이 산책길에 즐거움을 더해 주기 때문. 1977년 44호 고분 발굴 이후 총 7기의 고분이 발굴됐다. 가장 큰 47호 고분만이 ‘금림왕릉’이라 구전될 뿐, 나머지 고분들은 번호로만 존재한다. 4월6∼9일까지 고령읍내 일대에선 ‘2007 대가야 체험축제’가 열린다. 철과 관련된 각종 체험행사와 함께 역사공부를 하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여행수첩 ▶가는 길 자동차:서울→경부고속도로→88고속도로→고창 나들목, 또는 중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88고속도로→고창 나들목. 시외버스: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고령행 버스. 하루 5회.4시간30분 소요. 기차:동대구역→서부정류장(지하철 1호선 성당못역)→고령행 버스 ▶문의 대가야 체험축제위원회 fest.daegaya.net (054)950-6424 고령군청 문화체육과 (054)950-6111∼2 배재대 관광이벤트연구소 (042)520-5790
  • [고위공직자 재산공개/행정부·자치단체장] 고위공무원 55% ‘버블 지역’ 부동산 보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행정부·자치단체장] 고위공무원 55% ‘버블 지역’ 부동산 보유

    고위 공무원의 으뜸 재테크 수단은 역시 부동산이었다. 참여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억제정책 속에서도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들은 부동산 가격 급등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배우자 명의로 여러 채의 부동산을 서울 강남 등 ‘버블세븐’지역 등에 보유하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일부 재력가들은 본가나 처가에서 상속받은 재산이 상당수 있었다. 30일 정부가 공개한 재산변동사항 공개목록을 분석한 결과, 재산 공개자 625명 가운데 55.2%인 345명이 강남·서초·송파·분당·과천·목동 등 6개 부동산 급등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지역 외에 용산구 동부 이촌동이나 용인 수지 일산 평촌 등지까지 포함하면 부동산 급등지역의 부동산을 보유한 고위 공직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靑 19명 과천등 버블지역 부동산 보유 청와대의 경우는 이병완 비서실장이 송파구 오금동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고, 변양균 정책실장은 과천시 문원동과 갈현동에 단독주택과 상가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등 모두 19명이 이들 지역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의 경우, 권오규 부총리가 용인시 구성면에 본인 명의로 142평 규모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고, 모친 명의로 강남구 일원동에 13평의 아파트를 갖고 있다. 재경부 소속 전체 재산공개자 8명 중 7명이 6개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건설교통부는 공개대상자 4명 가운데 이용섭 장관(서울 송파구 가락동)과 이춘희 차관(경기 과천시 별양동), 강교식 중앙토지수용위 상임위원(서울 강남구 청담동) 등 3명이 급등지역에 재산이 있다. ●이철 철도公사장 배우자 명의 103억 신고 신현확 전 부총리의 아들로 정부 부처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신철식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경기 광주·양평·화성 등 수도권의 주요 요지에 31건의 임야와 논·밭, 대지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용산구 이촌동, 충남 태안, 경기 양평군 등에 아파트와 단독주택도 신고했다. 본인과 배우자 등의 명의로 8억 3456만원의 예금과 106억원 상당의 유가증권도 포함돼 있어 부동산, 예금, 유가증권 등에 구애받지 않고 골고루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103억여원으로 지난해 3위에서 2위로 한계단 오른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재산이 주로 재혼한 배우자 명의로 돼 있다. 이 사장의 부인은 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와 상가 1채 등 모두 112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13억원대의 유가증권도 모두 부인 명의다. 지난해 54억 9656만원을 신고해 행정부 재산순위 7위를 기록했던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은 경기 평택시와 서울 장충동·등촌동에 보유한 부동산의 공시지가 상승으로 무려 40억 2092억원이 증가한 95억 1748만원을 신고,3위를 기록했다. 청렴위는 “오래전에 처가에서 상속받는 부동산의 공시지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홍수 농림 -2941만원 ‘가장 가난´ 반면 국무위원 중 박홍수 농림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치범 환경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386세대이거나 재야 운동가 출신 장관들의 재산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농민운동가에서 농림부 장관으로 변신한 박 장관은 본인과 배우자, 자녀 등 온가족의 저축으로 1억 3512만 2000원이 늘었지만 전체 재산은 마이너스(-) 2941만 8000원으로 국무위원 중 가장 가난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보유재산 왜 늘었나 고위 공직자 A씨는 지난 2000년에 5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값이 계소 오르더니 공시 가격으로 10억원이 됐다. 지난해까지는 매매나 증여 등 거래가 없다면 재산변동 항목에 넣지 않았다.5억원으로 유지돼 온 것이다. 신고 재산과 실제 재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올해는 달라졌다.5억원이 늘었다고 신고해야 한다. 처음으로 부동산과 상장주식, 골프회원권 등의 시세를 반영해 재산공개가 이뤄진 것이다. 사실상 재산 재공개로, 지난 1993년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도입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변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직자 윤리법 시행령을 개정, 올해부터는 거래가 없었더라도 전년 말 기준 변동된 공시가격으로 신고토록 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6월부터 이렇게 달라진다 오는 6월부터 직계존비속 소유의 재산 공개를 거부하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 공직자 윤리법은 공직자 자신은 물론, 직계존비속의 재산도 공개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거나, 타인이 부양하는 직계존비속에 대해서는 ‘고지 거부’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행정부의 공개 대상자 625명 가운데 33.1%인 207명이 고지 거부했다. 올해 신규로 고지 거부한 공직자는 31명이다. 이처럼 고지 거부할 경우 전체 재산내역을 파악할 수 없는데다, 공개 검증도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6월부터는 현행 사후심사제인 고지거부를 사전허가제로 바꾼다. 고지 거부를 하려면 법 시행 후 15일 이내에 관할공직자윤리위원회에 허가를 신청해야 하며, 위원회는 1개월 안에 허가 여부를 통보하게 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색 재산’ 공직자들 공직자 중에는 부동산이나 예금자산 외에 회원권, 예술품, 저작재산권 등 이색 재산 보유자도 눈에 띄었다. 191억 1172만원을 신고해 정부공직자 가운데 재산총액 1위를 차지한 신철식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신고 당시 기획예산처 정책홍보관리실장)은 모두 5억 900만원 상당의 골프·헬스·콘도 회원권 6개를 가지고 있다. 김청 함경북도 지사도 골프회원권 5개를 포함, 모두 7개의 회원권으로 12억 34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감사원 이석형 감사위원은 골프 3개, 헬스 2개, 콘도 2개 등 7개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다. 금액으론 9억 1600만원가량이다. 예술품 애호가도 있다. 박종구 과학기술혁신본부장(신고 당시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황주리 화백의 작품을 비롯해 회화 8점과 조각 1점을 신고해 가장 많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동연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영사대사는 중국 작가의 작품 3점을 포함해 도자기 등 총 4점을 공개했다. 서덕모 기획예산처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장은 김기창 화백의 동양화 1점, 위성락 주미국정무공사는 미당 서정주·김상학 화백의 시화 1점을 배우자 소유로 신고했다. 김중근 외교통산부 본부대사는 아이보리코스트산 높이 100㎝지름 15㎝의 천연상아를 공개목록에 넣었다. 저서 16권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유흥준 문화재청장 다음으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유시민의 경제학 까페’ 등 5권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교육사회학 등 4권의 재산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경재 교육인적자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은 1985년식 쏘나타2를 신고해 22년된 ‘골동품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공직자로 기록됐다. 박 실장은 쏘나타 외에도 마티즈, 모닝 등 1000㏄이하의 경차만 2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16개 자치단체장 재산 현황 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16명의 자치단체장 가운데 12명의 재산이 증가했다. 시도지사의 경우 재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으로 나타났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산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또 단체장보다는 지방의회 의원들 가운데 자산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오세훈 시장 금융자산 33억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7월1일 취임 당시(24억 8473만원)보다 19억 8171만원이 늘어난 44억 6644만원을 신고했다.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은 선거 전에 쓴 비용(13억 3600만원)이 부채로 처리됐다가 취임 이후 선거 규정에 따라 15억원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보유주식 매각대금과 봉급이 쌓여 4억원가량이 증가했다. 오 시장 재산의 특징은 다른 단체장과 달리 금융자산이 많다는 점이다. 재산 가운데 집과 임야 등을 포함해 부동산은 17억 4151만원으로 전체의 38.8%에 그쳤다. 반면 예금(31억 9643만원)과 유가증권 등 금융자산이 32억 9643만원이나 됐다. 빚은 6억 5000만원이었고, 골프장 회원권과 콘도미니엄 이용권을 부친 명의로 각각 1장씩 보유하고 있다. 헬스클럽 회원권(3500만원)은 팔았다. 김흥권 행정1부시장(5억 8633만원)은 건물의 평가액 증가 및 부채 상환 등으로 3억 3570만원의 재산이 늘었으며, 최창식 행정2부시장(12억 6773만원)도 건물 평가액 증가 등으로 1억 9827만원이 늘었다. 권영진 정무부시장(2억 8333만원)은 연금합산반납금 납부 등으로 1621만원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의회 의장단 가운데 박주웅 의장(35억 6463만원)은 토지 평가액 및 예금 증가 등으로 25억 9230만원, 김기성 부의장(62억 7880만원)은 건물 매각과 예금·채권 증가 등으로 11억 4033만원, 이종필 부의장(67억 3100만원)은 토지. 건물 평가액 증가로 15억 1916만원이 늘었다고 각각 신고했다. 재산이 가장 많은 사람은 이종학 시의원으로 161억 9899만원이었다. ●10억원 넘는 자산가 7명 단체장 가운데에는 정우택 충북지사가 49억 4200만원의 재산을 신고, 최고 재산가로 등재됐다.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 이완구 충남지사(27억 6000만원), 박광태 광주시장(19억 3800만원), 김범일 대구시장(18억 1400만원), 안상수 인천시장(12억 1100만원) 순이었다. 단체장 가운데 10억원이 넘는 재산가는 7명으로 나타났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9억 8800만원으로 10억원대 자산가에는 들지 못했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3800만원으로 재산이 가장 적었다. 김문수 경기지사(2억 2900만원), 박맹우 울산시장(2억 8000만원), 박성효 대전시장(4600만원) 등도 재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분류됐다. 전국 종합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유홍준청장 예금만 16억 8795만원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예금만 16억 8795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해 ‘현금부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술사학자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의 재산총액은 30억 5000만원. 장남과 차남을 제외한 본인과 배우자 명의의 예금 총액은 15억원이다. 이 가운데 12억원가량은 배우자 이름으로 각 금융기관에 예치되어 있다. 대부분은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3권짜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비롯해 3권짜리 ‘완당평전’과 2권짜리 ‘화인열전’같은 저서의 인세로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 청장은 예금 대부분이 배우자 명의로 되어 있는 데 대해 “문화단체 등에 기부를 많이 할까봐 아내가 1996년쯤 인세가 들어오는 통장을 ‘압수’했으며, 아내에게 ‘부동산과 증권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통장을 넘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성원 문화재청 차장은 7억 3000만원,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은 4억 9000만원을 신고했다.
  • 20세기 초반 한국의 모습

    20세기 초반 근대 전환기 한국인이 스스로를 바라본 시선과 외부인이 한국인을 바라본 시선 사이의 차이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 나왔다.‘충돌과 착종의 동아시아를 넘어서-근대 전환기 동아시아의 자기 인식과 대외인식’(성균관대출판부 펴냄). 성대 동아시아학술원 총서로 발간된 이 책은 근대전환기 한국의 자기인식과 대외인식의 차이를 조명하고 있다. 크게 러시아,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해를 다각도로 분석한 제1부와 근대 미디어에 나타난 한국의 자기인식을 논한 제2부,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외교분쟁이나 내분, 입장 등을 고찰한 제3부로 구성됐다.김성남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중국의 인식’에서 새로 발굴한 중국인의 조선답사기 3부를 통해 당시 중국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봤다. 당시 중국관리 왕양빈이 식민지 조선의 산업발전에 주목하며 낙후한 중국의 현실을 한탄한 대목이 눈에 띤다. 이 밖에 ‘한청통상조약 일부 조문의 해석을 둘러싼 한-청의 외교분쟁’(구범진 서울시립대 교수),‘조선총독부 치안관계자의 한국인식(이규수 성대 연구교수)’,‘식민지 대만과 조선의 대중무역 구조 비교(강진아 경북대 교수)’ 등 모두 17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588쪽,2만 3000원.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中 동북공정’ 허구 입증 나선다

    ‘中 동북공정’ 허구 입증 나선다

    올 여름 고구려 연구자들이 몽골을 찾는다. 이번 발굴과 답사는 한민족의 ‘원형질’을 확인하는 작업의 마무리이자 시작이라고 한다. 몽골에 무엇이 있기에 고구려 연구자들의 발길을 재촉하는 것일까. ●동북공정 깰 ‘열쇠’ 고구려연구회는 6월 초부터 한 달 보름동안 러시아·몽골 연구자들과 함께 러·몽 서부접경 지역, 이른바 ‘몽골 알타이’에서 돌궐시대의 제사터와 무덤 등을 발굴할 예정이다. 러시아측에서는 학술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고고학인류연구소, 몽골측은 몽골과학원 고고연구소가 참여한다. 발굴이 마무리될 즈음인 7월7일부터 열흘간 일반인을 포함한 답사단이 현지를 방문, 발굴성과 등을 돌아보게 된다. 한·러·몽 3국의 연구자들이 돌궐에 주목하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과 무관치 않다. 무분별하게 북방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화문화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음모에 3국 학자들이 공동 대응한다는 차원이다. 돌궐은 6세기부터 2세기 동안 중국의 서북방을 다스렸던 국가다. 당시 중국은 수와 당이 지배했고, 요동과 한반도 북방에는 고구려가 있었다. 고구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들 3국은 힘의 균형을 유지했으며 그 균형이 깨졌을 때 전쟁이 벌어졌다. 수와 당은 돌궐의 세력이 강했을 때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요동을 지배할 때 중국은 돌궐의 융기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다. 고조선 시기에는 흉노가 있었다. 북방의 흉노, 중원의 중국, 동방의 고조선 사이에는 힘이 정립돼 있었다.108년 한이 고조선을 점령하고, 한4군을 세웠으나 흉노가 중국을 침략하자 한4군은 흔들렸다. 이번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동북아 정세는 항상 세 세력의 관계가 좌우했다.”면서 “러시아, 몽골과 함께 최초로 돌궐을 발굴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공동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동안 우리는 몽골을 소홀히 했다.”고 덧붙였다. ●알타이~요서~한반도 ‘문화벨트’ 확인 발굴팀이 단순히 돌궐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몽골 알타이’에서 중국 요서지역, 그리고 한반도로 이어지는 석기·철기문화의 공통점을 확인한다는 계획도 있다. 중국이 자국 문화로 편입시키려는 ‘홍산문화’의 집산지인 요서지역의 경우,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다뉴세문경 등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는데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적석총 고분군도 수십개 산재해 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 무렵의 유물들도 많이 발굴됐다. 고구려연구회는 이미 2000∼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요서지역을 답사했고,2003년과 2005년에는 실크로드와 ‘러시아 알타이’ 지역을 집중연구한 바 있다. 여기서 중국의 원류인 중원문화와는 상관이 없는 유목민족의 ‘뿌리’를 확인했다. 실제 고구려 유적에서 발견되는 ‘활쏘는 무사 벽화’와 비슷한, 말 타고 활을 쏘는 ‘바위그림’이 여럿 발견됐다. 서 교수는 이번 발굴 및 답사의 의미를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했다. 바로 러시아, 몽골, 한국 연구자들이 학술교류를 시작한다는 점과 아시아 균형론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한편 북방민족의 특징들을 확인한다는 사실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현대 영웅호걸은 복지정책 잘 펴는 사람”

    “개그맨은 구라쟁이 아닙니까? 저의 구라로 재미있는 삼국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구라 속에도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있으니까요.” 개그맨 전유성(58) 씨가 자료조사와 중국 등 현지답사를 통해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제1~2권을 출간했다. 전씨는 26일 “집필을 위해 삼국지를 20번 이상 다시 읽었다.”며 “삼국지 내용을 바탕으로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덧붙여 썼다.”고 말했다. 책 구성은 ‘한번 첫인상은 영원한 첫인상’‘출세의 키워드, 리더를 파악하라’ 등 주제별로 삼국지 내용이 이어지고, 그 주제와 연관된 전씨의 다양한 경험이 ‘추가 구라’ 코너로 계속된다. 여기에 같은 상황이지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다른지, 영웅호걸들의 행동의 이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등을 분석한 김효창 심리학 박사의 해설이 덧붙여졌다. 전씨는 “삼국지 내용을 살펴보다 보니 옛날에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숱하게 죽인 인물이 영웅호걸이었지만 현대에는 백성이 편하게 살도록 복지정책을 펴는 사람이 영웅호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인, 작가, 개그맨 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개그맨”이라며 “즐거움을 준다면 어느 분야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구라 삼국지’는 10월까지 총 10권으로 소담출판사에서 출간된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Local] 강진에 유배문학관 조성키로

    ‘남도답사 1번지’로 꼽히는 전남 강진에 유배 선인들의 아픔과 발자취를 체험할 수 있는 ‘유배(流配)문학관’이 들어선다. 21일 강진군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 등 지역에 머물렀던 선인의 문화자산을 보존·기념하기 위해 유배문학관을 짓기로 했다. 유배문학관은 다산유물전시관이 있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사업비 40억원을 들여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세워진다. 유배문학관에는 기획전시실, 유배문학실, 유배역사 체험관 등이 들어선다. 이곳엔 유배 중에 사용된 압송용 수레, 형틀 등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진 옛 선현들의 생활들이 현장감 있게 재현된다. 또 지역의 향토문화와 유배문화가 어우러진 무형의 민속유산들도 보존된다.
  • 네번의 깔딱 고개를 넘어라

    네번의 깔딱 고개를 넘어라

    삼각산 우이령 마라톤대회의 완주코스 중 8㎞∼9.8㎞ 지점은 뛰다가 넋을 잃을 정도의 비경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또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굽이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를 안겨준다. 다음달 22일 강북구청과 서울신문사 공동주최로 서울 강북구에서 열리는 ‘삼각산 우이령 마라톤 대회’의 완주 코스를 전문가들과 함께 20일 사전 답사를 했다. 코스 점검에는 강북구육상연합회와 대회진행 전문업체 ‘런114’ 등이 참여했다. ●우이령을 넘으면 천혜의 자연 완주코스(21.0975㎞) 점검에 나선 일행은 20일 오전 덕성여대 운동장을 출발했다. 가로사거리∼삼각산문화예술회관∼국립 4·19묘지를 한 바퀴도는 평지구간 4㎞는 일종의 ‘몸을 달구기 위한 코스’다. 그러나 이 구간이 초보 마라토너에게는 중요하다. 초보가 처음부터 전문 주자들의 힘찬 레이스를 따라가다 보면 후반에 균형을 잃고 기진맥진할 수밖에없다. 페이스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직선도로 코스는 6.0㎞ 지점인 교통광장까지 오르막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하게 오르는 구간이다. 이때는 몸 상태에 따라 속도를 조금 올려도 좋다. 교통광장을 벗어나자마자 첫번째 고비인 가파른 오르막(6.5㎞)이 나온다. 보폭을 좁히고 팔을 경쾌하게 흔드는 게 요령이다. 전투경찰대(7.5㎞)를 지나면 통행이 금지된 지 40년 만에 첫 공개되는 우이령의 속살이 나타난다. 풀 냄새도 상큼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두번째 오르막(8.0㎞) 고비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돌며 언덕을 오르고 나면 잠시후 세번째(8.5㎞)와 마지막(8.9㎞) 오르막이 잇따라 나온다.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왼쪽으로 도는 코스다. 주자들의 순위가 갈리는 절정의 고비다. 우이령(9.0㎞)에 오르면 ‘고생끝 행복시작’이다. 이제는 골인 지점까지 거의 내리막이기 때문이다. 군 유격장(9.8㎞)에 이르면 오른쪽 오봉이 멋진 모습으로 성큼 다가온다. 또 낙하훈련장으로 쓰이는 작은 인공호수에서 쪽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보름 전쯤부터 가볍게 워밍업 대회일 보름 전쯤부터는 이틀에 한번씩 하루 30∼40분 정도 가벼운 조깅을 하며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좋다.3일 전부터는 과음과 밤을 새우는 일을 피해야 한다. 대회 당일에는 오전 9시30분 이전까지 나와 행사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게 된다. 신발은 밑창이 얇은 마라톤화보다 두꺼운 조깅화가 낫다고 전문가들은 권했다. 복장은 가볍고 편하면 된다. 출발선에서는 앞에 서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없다. 발목에 단 속도계측기가 출발선의 매트를 밟고 지나야 본인의 기록이 자동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속도계측기 국제공인 제품이어서 뛰다가 분실하면 본인이 변상(2만 2000원)해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오전 10시 정각에 대포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연막폭죽이 터지면서 풍선이 하늘로 오르면 출발한다. 음료수와 간식은 2∼3㎞ 간격으로 준비됐다. 초보자라도 오후 1시 이전에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북육상연합회 조희용 부회장은 “푸른 하늘과 봄꽃, 맑은 공기까지, 이만한 마라톤 코스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의 벽 조금씩 허물었죠”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의 벽 조금씩 허물었죠”

    “(한국인들이 고집하는) 순수한 혈통이란 없습니다. 한국인 혈통의 40% 정도는 외국인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합할 때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축사-박경태 성공회대 교수) “막연히 한국인들이 외국 사람을 차별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한국어가 서툴러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6주가 흐른 뒤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답사-필리핀 출신 이한나) 18일 서울 구로구 항동의 성공회대 정보과학관. 평소 일요일 오전 한산할 법한 캠퍼스가 이날따라 왁자지껄했다. 몽골, 필리핀, 카자흐스탄, 미얀마, 방글라데시,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온 이주민들과 한국인들이 한 데 모여 아주 특별한 수료식을 열었다. 조그만 강의실에서 열린 ‘이주민을 위한 한국시민사회 이해 교육’ 과정의 수료식은 어떤 졸업식보다 진지하면서도 흥겨웠다. 성공회대 측의 축사와 수료생 대표의 답사가 오간 뒤 필리핀 결혼 이민자들의 민속공연과 참여연대 노래패의 축하공연으로 한껏 흥이 달아올랐다. 마지막엔 모든 참가자들이 흥겨운 풍물에 맞춰 강강술래를 돌며 하나가 됐다. 이들은 지난달 6일부터 6주 동안 일요일 아침 졸린 눈을 비벼가며 성공회대에 모였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홍세화씨 등이 한글과 한자, 영어를 뒤섞어 진행한 강의가 끝나면 이주민들은 어설픈 한국말로 열띤 토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주민들의 마음 속에선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출발은 44명이 했지만 두번째 결석부터 중도탈락시키는 엄격한 학사관리로 23명이 수료의 기쁨을 나눴다. 미얀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지난 1994년 당국의 탄압을 피해온 마웅저(39·‘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는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의식이 너무 강하다. 그 ‘우리’ 속에 이주민들의 자리는 없었다.”면서도 “한국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열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하얼빈 출신의 안영화(39)·윤경전(38) 부부는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차별의식을 이해할 순 없다.”면서도 “서로 이해하면서 벽을 허무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박경태(사회학과) 성공회대 교수는 “김장 담그기나 컴퓨터 교육 등 이주민에 대한 기술 교육은 포화 상태”라면서 “일정학력 수준을 넘어선 이주민들이 직접 뿌리내리고 살아갈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교육과정을 실질적으로 준비한 김애화 한국국제이주연구소 연구위원은 “다문화사회에서 한국인이 이주민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이주민들도 한국 사회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로 기획했다.”면서 “수강생들의 한국어 실력차가 커 100% 이해하기는 힘들었겠지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흐뭇해 했다. 글 사진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문학 ‘희망 밑거름’ 될까 (상)] 위축된 자존심 되살려 ‘다시서기’ 부축

    [인문학 ‘희망 밑거름’ 될까 (상)] 위축된 자존심 되살려 ‘다시서기’ 부축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어머님” 시를 읽던 K(57)씨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술에 기대던 자신을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보낸 어머니가 떠오른다. 시를 읽고 감상을 말하라는 면접이 영 거북하다.K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이 났지만, 노숙생활에 찌든 습관은 버려지지 않는다.”면서 “돈도 필요 없고, 그저 열심히 공부해 정신을 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결과는 면접통과. 13일 오후 1시 K씨는 서울 용산의 다시서기센터의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 성프란시스대학 예비과정 강의실에 앉았다.K씨처럼 스스로 인문학을 선택한 노숙인들의 수업은 약간의 당혹감을 내비친 의정부 교도소 수용자들의 수업과는 달리 활기찼다. 서울 대방동 여성성공센터 W-ing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도 3개월째 인문학 과정을 밟고 있다. 이날을 시작으로 교도소에 파고든 인문학은 이미 노숙인과 성매매 피해 여성 쉼터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돈을 쥐여 줘도 곧 노숙 대열로 복귀하고, 죄의 대가를 치르고 출소했다가도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직업교육을 받아도 또 성매매를 하는 순환을 끊기 위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길러줘야겠다는 생각이 인문학 과정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인문학 과정은 2∼3년 전 다시서기센터와 성공회대 평생학습센터, 광명시 평생학습센터 등에서 처음으로 시도됐다. 강사는 대부분 박사 학위 소지자로 서울대 김문환 교수도 올해부터 노숙자 대상 강의 하나를 맡았다. 문학과 역사, 철학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가르친다. 노숙인 대상인 성프란시스대학은 두 차례, 성매매 피해여성 대상인 W-ing 인문학 코스는 한 차례 수료생을 배출했다. 지난 학기 성프란시스대학 학생들은 명화를 보러 미술관을 찾고, 선사시대 집터를 보러 답사도 갔었다.W-ing 인문학 코스 강의에서는 소설 ‘제인에어’를 재구성하거나 성매매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도, 학생들끼리 관계를 만들어가는 작업도 쉽지만은 않았다. 임영인 신부는 “인문학을 배우면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돼요. 안 보이던 허물이 보이게 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견디지 못하고 3개월이 채 못돼 과정을 포기한 학생도 많았다. 하지만 인문학은 ‘중독성’이 있었다. 학생들은 강의실로 돌아왔다. 택시기사 일을 얻은 학생은 3시간 동안의 벌이를 포기하고, 수업을 챙겨들었다.W-ing을 뛰쳐나갔던 한 여성도 결국 돌아왔다. 12년 전 ‘클레멘트 코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뉴욕에서 노숙자와 에이즈 환자, 빈민을 위한 인문학 과정을 창시한 얼 쇼리스. 그는 소외된 이들이 밤하늘 별처럼 수많은 희망을 품게 되고, 도망쳤다가도 돌아오게 만드는 이 과정의 원동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문학의 힘은 끈질기고, 가난한 우리 학생들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통하고 있다. 홍희경 김민희기자 saloo@seoul.co.kr
  • [이 한권의 책] ‘결코 작지않은 나라’ 신라의 재발견

    고구려사는 드라마의 인기와 중국의 역사왜곡 시도와 맞물려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됐다. 그렇다면 고구려를 정복한 신라사는 어떠한가. 역사학자가 아닌 지리학자인 저자 이기봉씨는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푸른역사 펴냄)’을 통해 작은 나라로 치부됐던 신라사의 이면을 밝혀낸다. 흔히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는 중국, 일본과 비교한 것으로 조선을 15세기 유럽에 옮겨 놓으면 가장 거대한 나라에 해당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선 정도의 인구 규모에 해당되는 나라가 지방 구석구석까지 지방관을 파견해 다스렸다는 것은 15세기의 유럽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시아를 제외하고 유럽 근대 이전과 비교하면 고구려, 백제를 정복했던 통일신라보다 더 많은 인구를 가진 통일제국은 많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잘해야 로마제국이나 아테네 주도의 그리스, 알렉산더제국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전성기에 경중(京中)에 17만 8936호,1360방,55리와 35개의 금입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호의 구성원을 5명으로 잡는다면, 당시 경주에만 약 120만명이 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도의 인구가 이 정도였다면 신라 전체의 인구는 114만호, 약 570만명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저자는 계산한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 17만 8396호가 살았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잘못 기입한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발로 뛰는 답사로 방증된다. 산간 오지에 남아 있는 신라 때 하층계급이 살았던 부곡을 답사하면서 생각을 굳히게 된다. 포항시 죽장면에 있는 죽장부곡 지역이나, 영양면 수비면에 있던 수비부곡 지역은 정말로 산간오지였다는 것이다. 이런 곳까지 개간되어 사람이 살았다면 통일신라 때 이미 조선 초기 못지않은 개간사업이 이루어졌고, 이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120만명이 넘는 경주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경주와 울산까지의 지형은 매우 평평한데 일단 울산까지 배를 이용해 식량을 가져오기만 하면, 경주까지 운송은 문제가 안되었다는 것이 지리학자의 시각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밥을 짓는 데 숯으로 하지 땔감으로 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17만 8936호나 되는 경주인들이 매일 밥을 짓는 데 나무를 썼다면 경주의 산이란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됐을 것이다. 고대 경주인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숯으로 밥을 했고, 북방지역과 달리 온돌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역사학계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진 신라사는 저자의 발품과 지리지를 자주 들여다 본 노력에 의해 가능했다. 이 책은 그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역사지리학적 시각으로 신라사를 새로 해석하려 한 시도를 담고 있다. 수도는 곧 권력이자 국가라는 수도의 중차대한 상징성에 주목해 경주를 연구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경주를 새롭게 탄생시켰다.384쪽.1만 4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정상회담 추진 대북특사?

    정상회담 추진 대북특사?

    노무현 대통령의 정무특보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7일부터 10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이 6일 밝혔다. 열린우리당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해 초청자인 북측 민화협 관계자들과 동북아 평화와 경제협력 등 남북의 관심사를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방북에는 열린우리당 정의용·이화영 의원과 함께 조영택 전 국무조정실장이 동행할 예정이다. 훈풍기를 맞은 최근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이 전 총리의 방북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사전답사성 방북으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이 전 총리의 정치적 무게감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대북특사 자격이 아니냐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정무특보인데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했다. 게다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인사로 꼽힌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오후 단독으로 DJ를 만나 방북계획을 상의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지난달 13일 보좌진과 함께 비공개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 이미 방북계획이 결정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 동북아평화위원회도 최근 신설된 조직이다. 우리당 고위관계자는 “이 전 총리의 방북일정이 진행된 이후 정세균 의장도 보고를 받았다. 그 뒤 기구가 만들어졌다.”며 사전준비설에 설득력을 더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핵문제의 출구’로 상정해왔다. 이 전 총리의 평양행이 정상회담의 ‘터 닦기’ 차원이라면 노 대통령이 베이징 ‘2·13합의’ 이후 정상회담 성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커진다. 특히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안희정씨와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지난해 10월 장성택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중국 베이징에서 접촉했다는 소문도 남북정상회담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같은 정치권 일각의 반응에 대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측은 한마디로 “정당 차원의 의원외교”라고 일축했다. 구혜영 황장석기자 koohy@seoul.co.kr
  • “문화자치 확산 원년”

    “문화자치 확산 원년”

    청계천에만 있던 거리예술가(서울 아티스트)가 서울광장, 대학로 등에도 진출한다. 오는 10월에는 국내외 거리예술가가 참여하는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처음으로 열린다. 또 매주 넷째주 일요일이 ‘문화와 친해지는 날’로 지정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서울 곳곳에서 진행된다. 서울문화재단은 6일 올해를 ‘시민 문화자치 확산의 원년’으로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채로운 시민 밀착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우선 올해의 3대 전략으로 ▲문화도시 서울의 브랜드 역량 강화(문화 그림) ▲생활 속 문화 향수 확대(문화 나눔) ▲예술이 자생하는 창조적 도시 환경 조성(문화 가꿈)을 꼽았다. 서울을 문화도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올해로 5회를 맞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4월27일∼5월6일)을 다른 행사들과 통합해 서울의 대표 축제로 육성한다. 북촌과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노들섬, 여의·뚝섬·난지 지구 등 서울시 곳곳에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던 청계천 거리예술가는 ‘서울 아티스트’로 명칭을 바꾸고, 활동지역을 서울광장·청계천·대학로 등으로 확대한다.10월에는 서울거리예술축제를 열고, 이를 세계적인 거리예술축제로 키울 방침이다.5월에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와 서울연극제를 서로 연계해 완성도 높은 종합예술축제로 만든다. 또 오는 10월까지 매달 넷째주 일요일에 ‘문화는 내 친구’ 캠페인을 진행한다. 작가의 아틀리에를 찾아가는 ‘나도 미술 애호가’를 비롯해 ▲예술가의 집을 답사하는 ‘화가의 옛집을 가다’ ▲서울 명소를 찾는 ‘2007 서울을 걷는다’ ▲주요 건축물을 배우는 ‘서울의 건축문화 돋보기’ 등을 준비했다.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sfac.or.kr)에서 신청을 받고,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예술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시민 개개인을 문화 생산과 참여의 주역으로 삼고, 문화자치를 실현하는 게 올해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일본 단카이세대 퇴직금 잡아라”

    “일본 ‘단카이(團塊)세대’를 잡아라.” 22일 강원도에 따르면 ‘은퇴 후 돈을 쓰며 살겠다.’는 일본 단카이세대를 잡기 위해 다양한 테마관광상품 개발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동안 드라마 겨울연가 특수 등으로 인해 싸고, 가깝고, 짧은 일정의 관광지로 여겨졌던 강원도 관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일본의 단카이세대는 2차대전 직후인 지난 1947∼1949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를 말하며 약 68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올해 대량 퇴직하는 이들의 퇴직금 규모만 해도 50조∼80조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강원도와 일선 지자체, 관광업계는 이같은 단카이세대를 겨냥해 ‘테마형 고부가가치 관광상품’ 개발에 팔을 걷어 붙였다. 지난해말 일본지역 여행상품기획자들을 초청, 단카이세대를 겨냥한 실버상품 팸투어(사전 답사여행)를 실시한데 이어 올들어서도 공격적인 홍보에 나선다. 당장 22일부터 24일까지 니혼료코(日本旅行) 등 일본 여행사 관계자 13명을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달 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긴키니혼투어리스트(KNT) 상품기획자 100명을 대상으로 강원관광설명회를 갖는다. 이어 다음달 2∼3일에는 히노 요시히로 후쿠오카현 스키연맹 부회장 등 8명을 정선으로 초청, 강원랜드 스키장 등 관광지를 답사하고 8∼9일에는 일본 선박회사인 유센크루즈 관계자 4명과 함께 동해안 팸투어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강원관광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강원관광 R&D 파크 조성, 강원관광아카데미 개설·운영, 강원관광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홍기업 환경관광문화국장은 “올해 주요 목표는 강원관광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것”이라며 “엔저 영향으로 국내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대거 빠져 나가는 추세속에 일본 관광객들이 강원도로 발길을 돌릴 수 있도록 다양한 고품격 관광상품을 개발해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누르하치,그리고 만주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누르하치,그리고 만주 Ⅰ

    병자호란은 조선 사회와 민중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 대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학계의 병자호란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 하기 어렵다. 그같은 상황은 병자호란뿐만이 아니라 조·청관계나 만주와 관련된 연구 전반에서 그러하다. 왜 그럴까. 호란 자체가 ‘가슴 아픈 역사’인데다 이후의 조·청관계가 그다지 달가운 연구 주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병자호란, 조·청관계, 만주사 연구는 일본인 학자들이 일찍부터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이미 1930년대에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관련 연구들을 내놓았다. 만주사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병자호란, 조·청관계, 만주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만선사가(滿鮮史家)들의 역사인식 일본인 연구자들이 병자호란과 만주 관련연구를 중시하게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1894년 청일전쟁,1904년 러일전쟁에 잇따라 승리하면서 한반도와 만주에 진출하고,1931년 괴뢰국가 만주국(滿洲國)을 세우고,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대륙 침략에 나섰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일제(日帝)의 한반도와 만주 침략을 옹호하고, 그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두 지역에 대한 역사지리(歷史地理) 연구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도출해낸 것이 바로 만선사관(滿鮮史觀)이라는 역사인식 체계였다. 만선사가(滿鮮史家)들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정치·사회적 변동은 만주를 둘러싼 정세변화에서 촉발되었다고 설명한다. 한반도에는 대륙 만주로부터 정치·군사적 압력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한반도는 그 압박 때문에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다는 것. 조선 국왕이 청 태종에게 무릎을 끓었던 병자호란이야말로 그같은 인식 체계를 설명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례로 거론된다. 만선사가들은 이어 대륙의 압박에 신음하는 한반도를 ‘구원해 준 은인’으로 일본을 부각시킨다.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는 193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대륙에서 한반도로 밀려오던 외력(外力)이 분쇄되었고 조선은 해방되었다.’고 했다. 그에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한 일대 과업’이었던 셈이다. 만선사관은 이렇게 한국사를 ‘만주역사의 부속물’로 치부해 한국사의 자주성을 부정했다.1910년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여 ‘일본 영토’로 만든 이후, 한반도와 만주의 역사를 한묶음으로 취급했던 만선사관이 던지는 메시지는보다 분명해진다. 만주도 이제 ‘일본의 소유물’이라는 것이다.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의 만주 체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자 만선사가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 대표자는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였다. 니가타(新潟) 출신인 이나바는 스물세살이던 1900년 봄, 청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다. 베이징에서 생활하면서 중국사를 공부하고, 현지의 상황과 분위기를 익히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나바의 중국행을 격려했던 기시타(岸田吟香)라는 인물이 이나바에게 건넸던 말이다. 기시타가 이나바에게 중국행의 목적을 물었을 때, 이나바는 ‘정해진 것은 없고 지나(支那)를 알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기시타는 ‘우리가 지나로 건너가는 것은 대륙을 떼어 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이나바를 놀라게 만들었다. 청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 조야(朝野)에서는 이렇게 ‘대륙 진출’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부추기는 풍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청을 ‘중국’이 아니라 ‘지나’로 부르는 것이 관례로 굳어져 있었다. 일본의 우익 가운데는 지금도 ‘지나’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중국에 대한 멸칭(蔑稱)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청이 쇠퇴해가는 모습을 목도했던 일본 지식인들은,‘성인군자국(聖人君子國)’의 의미가 담긴 ‘중국’이라는 호칭 대신 ‘지나’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이나바는 자신의 저술에서 만주족의 ‘청국(淸國)’과 한족의 ‘지나’를 엄격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이나바는 이처럼 한반도와 중국으로의 침략 열기가 고조되고 있던 분위기 속에서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900년부터 1902년까지 베이징 유학을 마친 뒤 1904년 러일전쟁이 발생하자 육군 통역으로 지원한다. 이나바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건너갔던 후비대(後備隊)에 소속되어 봉황성(鳳凰城), 선양(瀋陽), 푸순(撫順) 등 전장을 전전했다. 바로 과거 청나라의 핵심 거점이자 병자호란 이후 조·청관계가 전개되던 현장이었다. 1905년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이나바는 푸순 교외의 허투알라를 비롯한 청나라 초기의 발상지들을 직접 답사한다. 이나바는 좁고 보잘 것 없는 허투알라에서 출발한 누르하치와 그 후손들이 만주를 차지하고 끝내는 중원 전체를 집어삼킨 역사를 회고하면서 경이감을 느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만주를 차지하기 위한 침략전쟁에 동참했던 그의 역사연구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 이미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이나바와 만철 역사지리조사실(滿鐵歷史地理調査室) 1906년 종군을 마치고 귀국한 이나바는 스승 나이토 고난(內藤湖南)을 따라 조선과 만주를 여행하고, 선양의 고궁(故宮)으로 들어가 청조의 사료를 탐사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이어 1908년 만철(滿鐵)에 설치된 만선역사지리조사실(滿鮮歷史地理調査室)에 들어간다. 만철은 1906년, 러일전쟁 승리를 계기로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은 동청철도(東淸鐵道)를 기초로 세워진 일본의 국책회사였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델로 삼은 만철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많은 자본금을 지녔던 회사이다. 만주, 내몽골 등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육성했던 ‘침략의 첨병’이었다. 초대 만철 총재였던 고토 신페이(後藤新平)는 조선, 만주, 몽골 등을 지배하는 철학으로써 이른바 ‘문장적(文裝的) 무비(武備)’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식민지 지배는 단순히 무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교육, 위생, 학술 등 문사(文事)를 활용해야 하고, 그를 통해 식민지인들이 일본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되면 어떤 경우라도 타국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역사지리조사실은 바로 그 ‘문사’를 닦기 위한 핵심이었다. 만철은 학자나 연구원들이 조선, 만주, 몽골, 중국 등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보고서를 간행하도록 지원했다. ‘만선지리역사연구보고(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라는 정기 간행물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나바는 1908년부터 7년 동안 바로 여기서 만선사관의 기반을 닦는다. 그는 당시 ‘만주역사지리(滿洲歷史地理)’ ‘조선역사지리(朝鮮歷史地理)’ ‘문록경장(文祿慶長)의 역(役)’ 등의 저술들을 간행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또 당시의 연구를 토대로 후일 ‘청조전사(淸朝全史)’ ‘만주발달사(滿洲發達史)’ 등의 저서를 내놓게 된다. ‘침략 대상지역의 연구’라는 뚜렷한 목표와 전폭적인 지원 아래서 뛰어난 성과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조사실에서 나온 논저 가운데에는 지금도 한반도와 만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노작들이 적지 않다. 만철 역사지리조사실의 설립 의도는 불순하고, 만선사관은 분명 식민사관(植民史觀)이었다. 그것은 비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문학 연구의 기반이 우리보다 튼실하고, 한국과 중국 등 ‘타자’를 연구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일본을 돌아보는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