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시행 2년 빛과 그림자/ ‘藥’ ‘毒’ 엇갈린 평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만 2년이 지났다.의·약분업 제도는 의사와 약사의 역할분담을 통해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민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명분 아래 지난 2000년 7월1일을 기해 시행됐지만 의료계와 약계의 갈등,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증가, 건강보험 재정의 파탄 등 갖가지 문제점이 불거졌다.이 때문에 시행 초기의 분업 형태에도 여러차례 손질이 가해졌지만 문제점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시행 2주년을 맞은 의·약분업의 현주소를 점검,결산해 본다.
◆엇갈리는 평가:의·약분업 실시 2년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다소의 국민불편은 따랐지만 의·약분업 이전 연간 1억 7000만건으로 추정되던 약국의 임의조제가 금지되고 약국에 의존하던 환자들이의사의 전문적인 진료를 받게 됨에 따라 분업 전에는 알지 못했던 질병이 발견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복지부는 ‘의·약분업 2주년의 성과’라는 자료를 통해 오ㆍ남용 약제인 항생제와 주사제,스테로이드제의 사용이 의·약분업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의원의 보험급여 청구건당 항생제 품목수는 분업 이전(2000년 5월) 0.9개에서 올 3월 0.7개로 22.2% 감소했고,의원 총 청구건수에 대한 항생제포함건수 비율도 54.7%에서 49.66%로 5.04%포인트 낮아졌다고 밝혔다.
주사제의 경우 청구건당 주사제 품목수가 분업 이전 0.77개에서 올 3월 0.58개로 24.7% 줄었고,의원 총 청구건수에 대한 주사제포함건수 비율은 60.82%에서 46.51%로 14.31%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다.또 의원 청구건당 스테로이드제 품목수는 분업 이전 0.19개에서 지난 3월 0.16개로 15.8% 감소했다는수치를 내세우며 의·약분업의 성과를 홍보했다.
이와 함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면접 및 전화조사한 결과 의료기관 진료만족도는 2001년 5월의 25.5%에서 2002년 5월에는 32.9%로,같은 시기 약국이용 만족도도 35.2%에서 50.7%로 각각 높아졌다는 만족도 조사보고서도 나왔다.하지만 이같은 수치는 복지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책연구소인보건사회연구원이 자체조사한 것이어서 객관성이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복지부 이용흥 보건정책국장은 “의·약분업 시행으로 약국의 임의조제가 금지되고 의사의 전문적인 진료를 받게 됨에 따라 분업 전에 발견치 못했던 질병이 새로 발견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며 “현 의약분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가 평가하는 의·약분업은 ‘효과는 적고 부담은 늘고’로 요약된다.의·약분업이 국민 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가져왔을 뿐 항생제나 주사제 등 의약품 사용량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실패한 의약분업 강행 2주년을 맞아’라는 성명을 통해“의약분업은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소수의 독선에 의해 자행된 현 정권 최대의 실책”이라고 질책했다.
의협은 ▲약제비 비율은 오히려 증가했고 ▲약물의 오·남용 감소로 건강권이 향상됐다는 자료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분업 이후 국민이 부담하는 국민의료비는 대폭 인상됐고 ▲보험재정은 거덜났다며 의·약분업 2년의 성적을 ‘F’학점으로 평가했다.
◆시행착오로 점철된 2년:정부는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약물 오·남용을 줄인다.’는 취지에 따라 주사제를 분업대상에 포함시켰으나 시행 1년여가 지난 지난해 11월 ‘병원과 약국을 오가는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겠다.’며 대상에서 슬그머니 제외했다.
또 병원 진료시 내는 환자 본인부담금을 환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줄였다가 보험재정 적자가 너무 커진다며 다시 늘리는 등 수시로 정책을 바꿨다.오락가락하는 정책 탓에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된 것은 물론이다.
정부는 의약분업으로 국민의료비가 절감될 것으로 예측하고 국민들에게 자랑했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그동안 약값을 인하했으나 처방전 종이까지 의약분업 손실분으로 계산해 건보수가를 네 차례나 잇달아 인상했다.의료기관에서는 처방전이 공개되면서‘싼 약’ 대신 고가의 오리지널 약을 대거 처방,건강보험 약제비는 분업 전에 비해 줄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연대 조경애 사무국장은“약국에서 항생제 등 전문의약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대신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게된 것이 큰 변화”라면서 “이 과정에서 처방전이 공개됨으로써 환자의 알권리도 많이 확보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의·약계의 갈등으로 갈 길 먼 의·약분업:의료계를 비롯,일각에서는 현행의·약분업 제도의 폐지 또는 선택분업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하지만 의약분업 시행에 이미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원점으로 돌릴 경우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특히 현행 의약분업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분업의 주체인 의사와 약사간 갈등이다.의·약분업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여러 보완장치는 의료계와 약계의 협조가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사의 임의조제를 적발하기 위해 의협이 전직 경찰관을 고용하자 약사회는 일간지 광고내용을 문제삼아 의협 집행부를 형사고발할 방침을 발표하는 등 양측의 갈등 양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정부 당국은 ‘먼산보기'로 일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의·약분업의 연착륙을 위한 보완책은:분업 시행후 복병으로 등장한 것이고가약 처방.분업 시행 전에는 의약품 유통과정에서 처방전의 공개로 저질의약품이 퇴출되고 양질의 의약품이 유통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고가약 처방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된 것이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고가약 비율은 의약분업 실시전 36.24%(2000년 5월)에서 분업후인 지난해 1월 53.48%로 크게 늘어났고 올해 3월에도 50.85%로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고가약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동일 성분과 함량,단위를 가진 의약품을 대상으로 대체조제를 활성화하고 동일 효능군별로 정해진 기준가격까지만 건보재정에서 약가를 부담하고 기준가격 초과분은 환자 본인이 부담토록 하는 참조가격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병의원 주변약국에 집중되는 처방전이 동네약국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단골의원과 단골약국제도를 활성화해 환자들이 처방전을들고 거리를 헤매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이 경우 병원과 약국을 상대적으로 많이 방문하는 노약자들에 대한 중복투약 방지와 약력관리 등 양수겸장의 효과가 기대된다.
또 의·약분업의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는 병원과 약국간 담합행위에 대한보다 철저한 단속과 함께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정부의 ‘강력한 채찍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노주석기자 joo@
■건보재정 ‘밑빠진 독' 지난해 적자 2조 4088억원
의·약분업 연착륙의 최대 걸림돌은 거덜난 건강보험 재정문제다.
의·약분업의 효과가 미미하고 부작용과 불만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건강보험 당기 적자는 무려 2조 4088억원에 달했다.올해의 당기 적자 목표는 7600억원이다.
복지부는 올 들어 진료수가 2.9% 인하,감기약 등 일반약의 보험제외,보험약가 인하 등 의·약분업의 기조를 흔드는 극약처방을 내놓았지만 ‘약발’이듣지 않았다.이대로라면 오는 2005년까지 매년 8∼9%씩의 건강보험료 추가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보건당국은 당초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건보재정 적자도 늘지 않고 국민의료비도 절감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의료수가는 해마다 인상됐고 약제비용 역시 증가했다.지난 2년간 네 차례에 걸친 의료수가 인상률은 50%에 달할 정도였다.무엇보다 건강보험 청구금액의 4분의1에 이르는 4조 2000억원이 약품비로 나갈 만큼 고가약 처방이 기승을 부렸다.
복지부는 건보재정의 악화는 기본적으로 선진국보다 낮은 건강보험률(외국은 월급 평균 10%선,한국은 3.64%)에 기인하며 여기에 고가약 처방급증,처방품목수 과다,의료기관의 환자방문 횟수 늘리기,노인 의료비 지출 증가,신규개설 요양기관의 증가 등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한다.실제 올 들어 전년 동기 대비 가입 인구는 1%,의원급 의료기관도 7.7% 늘어나는 등 의료 수요자와공급자가 자연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은 올 상반기 1600억원의 흑자를 냈다.국고와 담배부담금 등 2조 1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된 결과다.하반기에는 국고지원이 5000억원으로 대폭줄어 적자규모가 얼마나 될지 예측불가다.
건보재정을 2006년까지 안정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건강보험료를 8∼9% 인상하고 국고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급여비 지출을 강력 억제하는 방안밖에 없다는 입장이다.복지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으로 재정안정 태스크포스팀을 구성,급여비 상승을 유발하는 과잉·편법 진료행위를 철저히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노주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