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현장 읽기] 공정위 단속 효용성 논란
“언론에선 생필품 가격담합 적발 뉴스가 쏟아지는데, 왜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는 없죠?”(주부 김모씨)
시장경제에서 ‘가격 담합’은 소비자의 지갑을 터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기업이 얻는 이익만큼의 막대한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세제, 밀가루, 아이스크림, 휘발유, 의약품, 보험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가격 담합행위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담합을 적발하고 엄청난 과징금을 물려도 ‘가격거품’이 꺼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논리로 보면 기업간 ‘암묵적 담합’이 유지되거나, 실제 가격담합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인 셈이다.
●독과점 구조로 ‘암묵적 담합’유지
가격담합으로 상품·서비스의 가격이 부풀려졌고 경쟁당국의 적발로 제동이 걸렸다면, 소비자가격은 ‘정상 수준’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소수의 기업에 의해 공급이 이뤄지는 독과점시장에서는 이같은 흐름이 불가능하다고 경쟁당국은 분석한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담합사건을 적발해도 가격인하 등 소비자 혜택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국내 시장구조가 독과점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적발 뒤에도 담합의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공정위는 월드콘, 부라보콘 등 아이스크림 가격 담합 사건을 적발, 공개했다. 해당 업체들은 제품가격을 700원에서 800원으로, 다시 1000원으로 올렸다.
그러나 현재 아이스크림 가격은 그대로다. 밀가루, 세제 등에 대한 가격담합 적발 이후에도 소비자자격 하락은 찾아 볼 수 없다.
한 아이스크림 업체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가격을 안 내리면 나머지 업체도 가격을 내릴 필요를 못 느끼는 ‘보이지 않는 담합’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 넣는 기간 중 가격을 인하하면 스스로 가격담합을 인정하는 꼴인데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가격담합이 아니어서 뺄 거품도 없다?
일부 기업들은 애당초 가격담합이 아니어서 가격 인하 여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밀가루, 세제, 설탕 등 담합 사실이 적발된 CJ 관계자는 “독과점 구조 속에서 가격을 안 내리는 게 아니라 원료의 국제 가격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닭고기 가격 담합으로 적발된 ‘하림’의 관계자도 “적발 이후 가격 하락이 있을 수 없었다.”면서 “농축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일단 생산에 들어가면 인위적인 가격 조절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화요금 담합 혐의로 적발됐다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1130억원의 과징금 납부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KT측은 “정통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지, 담합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요금 인상담합으로 적발된 케이블TV협회 관계자도 “위성방송과 경쟁을 하는 사업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담합 적발후 가격 하락 효과 측정할 것”
공정위는 가격담합 행위 적발 후 소비자 후생 효과 측정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대형 가격담합 사건 일부를 대상으로 가격 인하 효과 분석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외부 연구기관에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다른 관계자는 “가격을 부풀려도 ‘정상가격’ 산정 등이 어려워 ‘가격 환원 명령’을 내릴 수 없는 한계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영국 공정거래청(OFT)이 2005년 신설한 ‘평가전담팀’의 분석 모델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곳에선 가격담합 제재 이후 소비자 후생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 사후평가가 이뤄진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한성대 교수)는 “‘독과점 구조’와 ‘암묵적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줄이려면 과징금을 높이는 등 공정위의 법집행이 보다 강력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를 직접적으로 구제받기 위해 선진국에서 활용되는 ‘집단소송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