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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인구 쇼크... 타개책은 다이어트?

    공인구 쇼크... 타개책은 다이어트?

    롯데 자이언츠의 거구 이대호(38)가 지난달 28일 이석환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 취임식에 홀쭉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팬들을 놀라게 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 선수들이 몸집을 불리는 ‘벌크 업’ 대신 체중을 줄이는 ‘다이어트’로 선회하고 있다. ‘공인구 쇼크’에 따라 급격히 떨어진 타율에 대한 대처법으로 보인다. 지난해 KBO는 공인구 반발력 계수를 0.4134∼0.4374에서 일본프로야구(NPB)와 같은 0.4034∼0.4234로 줄였다. 그 결과 2018년 1756개에 달했던 홈런은 지난해 1014개로 무려 742개(42%)나 줄었다. 2014시즌부터 2018시즌까지 5년 동안 리그 타율은 평균 0.286이었는데 지난해 타율은 0.267로 주저앉았다. 3할 타자는 34명에서 18명으로 줄었다. 공인구 반발력 감소가 ‘타고투저’의 시대를 저물게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집을 키우는 벌크 업 경쟁을 벌여 왔다. 공의 반발력이 좋아 어느 정도만 힘이 좋으면 홈런으로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의 반발력이 줄면서 아주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면 담장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일반화됨에 따라 체중을 줄여 순발력을 키우는 식으로 정교함을 배가시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 호주에서 전지훈련 중인 롯데 자이언츠 코칭 스태프 관계자는 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손아섭이 “벌크 업 없이 지금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좀더 공이 맞는 순간에 강한 힘을 실을 수 있는 타격 기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전준우는 “벌크 업보다는 흉추, 골반 등 회전력을 낼 수 있는 곳을 단련하고 있다”고 했다. 민병헌은 “공인구 반발계수를 이겨내기 위해 방망이를 짧게 잡는 식으로 타격 자세를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 이글스는 선수 전원이 한용덕 감독으로부터 체중 감량 지시를 받았다. 한화 이글스 관계자는 “공인구 반발력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스윙 궤적과 스피드를 정교하게 측정하는 블래스트라는 장비를 도입했다”며 “급격한 체중 감량보다는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1년간의 공백으로 바뀐 공인구를 경험하지 못한 한화 이글스의 주장 이용규도 7~8㎏을 감량했다. 이용규는 “기량이 가장 좋았을 때의 몸 상태로 돌아가고 싶었고, 도루 등 주루에 신경 쓰기 위해서”라고 체중 감량 이유를 밝혔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인천 ‘마을주택관리소’ 확대 설치…아파트 관리사무소 역할

    인천 ‘마을주택관리소’ 확대 설치…아파트 관리사무소 역할

    인천광역시가 단독주택이 많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불편을 덜기 위해 시범 추진해온 ‘마을주택관리소’를 올해 부터 확대 운영한다. 인천시는 2015년 부터 시범 운영해온 마을주택관리소를 올해 11개 마을에 추가 설치하는 등 시 전역으로 확대 운영한다고 29일 밝혔다. 마을주택관리소는 ‘아파트 관리소’ 역할을 한다. 마을주택관리소는 관리소장 1명과 자원봉사자 또는 공익근무요원 1명 등 2명이 상주하면서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 등 주거 약자 및 취약 가정에 도배·장판·창호 교체, 보일러 수리 등의 각종 지원을 한다. 일반 주민들에게는 스스로 집수리를 할 수 있도록 공구를 빌려 주고 맞벌이 가정을 위한 택배 물건 보관소 역할도 한다. 관할 구청 도움을 받아 자원봉사자·마을공동체·재능기부자·지역 전문업체와 함께 마을꽃길 단장, 담장허물기 등의 마을환경정비 사업도 주도한다. 관리소 별로 연간 4000~5000만원씩 지원하기 위해 올해 총 9억원의 예산을 세웠다. 인천시가 전국 최초로 2015년 부터 4개 자치구에서 시범운영 해온 이 사업은 지난 해 관련 조례가 만들어져 시 전역으로 확대 설치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현재 7개 자치구 등에 13개소가 설치돼 있고 올해 11개소가 더 설치된다. 올해 부터는 2명씩 상주 인원을 고정 배치하고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직접 찾아가 돕는 등 역할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효근 인천시 주거재생과장은 “마을주택관리소의 주거환경개선 사업이 노후한 원도심을 살기 편하고 정이 넘치는 행복공동체로 탈바꿈 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전세기 귀국 중국 우한 교민, 충남 천안 격리키로 하자 주민들 반발

    정부가 중국 우한시 체류 국민을 전세기로 귀국시킨 뒤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연수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 격리하기로 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28일 우한에 거주 중인 교민 철수를 위해 30~31일 전세기를 보내기로 했다며 귀국 후 격리 장소로 이같이 두 곳을 발표했다. 주 우한 한국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모두 693명이 전세기 탑승 의사를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두 시설 주변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우정공무원연수원 주변에 사는 전모(46)씨는 “연수원과 인접한 안서동에 상명대, 단국대, 백석대, 호서대 등 4개 대학이 몰려 있다. 직선거리로 200m밖에 안되는 대학과 중학교도 있다”면서 “방학이지만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이 수없이 오간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격리자들을 피해 일시 피난까지 가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수원은 태조산 밑이라 등산로가 나 있고, 맛집과 카페가 밀집돼 유동인구가 엄청나다”며 “전파력이 큰 전염병을 막는다며 인구 65만명이 넘는 도시에 격리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앙청소년수련원이 있는 목천읍 주민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 수련원은 독립기념관과 같은 담장 안에 있고, 두 직원 숙소는 붙어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기념관 전시관과도 가깝다”고 했다. 지난해 독립기념관 관람객은 179만명이다. 수련원 앞 목천읍 서리 1구 주민 이원영(62)씨는 “우리 집과 50m 거리이고, 정문 앞에도 서너 가구가 있다. 목천초도 100m밖에 안 떨어졌다”며 “주민들이 모두 불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읍소재지인 서리1구는 주민 150명, 인접 교촌리에는 100명 안팎의 주민이 산다. 이길원(60) 목천읍이장단협의회장은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이장들과 협의해 집단항의에 나설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이날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청주공항은 (천안과 가깝지만) 활주로가 짧아 대형 항공기 이착륙이 어렵고 검역인원이 적다”며 “우한시 체류 국민 귀국 전세기가 청주공항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미리 경계심을 드러냈다. 한편 충남도 관계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 곳은 국가 소유 시설 중 우한 귀국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고, 국가격리병상이 있는 의료시설과 접근성이 좋다”며 “격리기간에 시설이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전세기 귀국 교민, ‘충남 천안 격리’ 알려지자 주민들 반발

    전세기 귀국 교민, ‘충남 천안 격리’ 알려지자 주민들 반발

    정부가 중국 우한시 체류 국민을 귀국 후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연수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 격리할 것으로 알려지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체류 국민 귀국 전세기가 청주공항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 지사는 28일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천안과 가깝지만) 청주공항은 활주로가 짧아 대형 항공기 이·착륙이 어렵고 검역소도 1개 뿐이어서 귀국 전세기가 들어오기가 힘들지 않겠느냐”며 이 같이 말했다. 정부는 이날 우한시에 거주 중인 교민 철수를 위해 30~31일 전세기를 보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주 우한 한국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모두 693명이 전세기 탑승 의사를 밝혔다. 두 시설 주변 주민들도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우정공무원연수원 주변에 사는 전모(46)씨는 “연수원과 인접한 안서동에 상명대, 단국대, 백석대, 호서대 등 4개 대학이 몰려 있다. 직선거리로 200m밖에 안되는 대학과 중학교도 있다”면서 “방학이지만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이 수없이 오간다. 격리시설로 정해지면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잠시 피난까지 가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수원은 태조산 밑이라 등산로가 나 있고, 맛집과 카페가 밀집돼 유동인구가 엄청나다”며 “전파력이 큰 전염병을 막는다며 인구 65만명이 넘는 도시에 격리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앙청소년수련원이 있는 목천읍 일대 주민도 마찬가지다. 이 수련원은 독립기념관 담장 안에 있고, 직원 숙소는 붙어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건물이 붙어 있고, 전시관과도 가깝다”고 했다. 지난해 독립기념관 관람객은 179만명이다. 수련원 앞 목천읍 서리 1구 주민 이원영(62)씨는 “우리 집과 50m 거리다. 정문 앞에도 서너 가구가 있다. 목천초도 100m밖에 안 떨어져 있다”며 “주민들이 모두 불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읍소재지인 서리1구는 주민 150명, 인접 교촌리에는 100명 안팎의 주민이 산다. 이길원(60) 목천읍이장단협의회장은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지정되면 이장들과 협의해 집단항의에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난 저, 해방 75주년 맞아 다시 찾은 이유”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난 저, 해방 75주년 맞아 다시 찾은 이유”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 3개월이 됐을 때 어머니는 조국 헝가리에서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지요. 어머니가 워낙 심각한 영양 실조라 간수들도 어머니가 임신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임신 3개월 때도, 9개월 때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대요.제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는 453g 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전 앙겔라 오로츠 라이트라고 하고요, 제 생일은 1944년 12월 21일(이하 현지시간))입니다. 이제 75세가 됐어요. 아우슈비츠가 옛 소비에트 군대에 의해 해방된 것이 이듬해 1월 27일이었으니 한달 조금 넘게 수용소에서 살았어요. 지금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살고 있어요. 27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 기념 행사에 초대돼 다시 이곳을 찾은 200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랍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유럽에서 600만명 정도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 대학살에 희생됐는데 그 중 110만명이 이곳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아메리카와 유럽 모두 반유대 혐오 발언이나 폭력이 급증하고 있어요. 전 그게 모두 한때의 일이었다고 안심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어요. 해서 제가 여기 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제 믿기지 않는 얘기가 교훈이든 경고든 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요. 어머니는 1944년 5월 25일 수용소에 처음 끌려왔는데 저 악명 높은 조지프 멩겔레 박사가 있는 막사에서 생활했대요. 그는 죽음의 천사로 불렸고, 쌍둥이들을 데리고 실험한 것으로 악명 높지요. 어머니는 임신한 사실을 끝끝내 숨겨 극심한 영양실조에도 온갖 노역을 다 해냈대요. 절 감추기 위해 모든 종이를 끄러 모아 가렸대요. AFP 통신과 인터뷰하면서도 제가 철조망 담장과 붉은 벽돌 막사 옆을 빠르게 걷는 것도 다 두려움 때문이지요. 어머니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밖에 나가거나 점호에 임했을 때 쥐들이 절 먹어버릴까 걱정하셨대요. 기적처럼 제 젖을 물리셨어요. 물 밖에 마시지 않으니 젖이 나올 리가 없는데 말이죠.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전년에 비해 2018년에 경찰에 신고된 반유대 공격 행위가 74%나 급증했답니다. 저도 손자들을 키우는데 손자들이 정말로 걱정돼요. 증손주들도 있는데 내가 여기 나와 우리 어머니 얘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해요. 어쩌면 그네들이 뭔가 배웠으면 좋겠네요. 교육은 우리가 반유대주의와 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얘기를 듣는 아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집에 돌아가 ‘이봐, 홀로코스트란 게 있었대. 난 생존자랑도 얘기해봤어. 그녀가 거기 있었다대. 그녀가 거기를 빠져나왔다더군’이라고, 한 꼬마라도 집에 가 그렇게 얘기하면 우리는 승리한 거라고요.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울산시 중동 무역사절단 파견

    울산시는 오는 3월 중동에 무역 사절단을 파견한다. 21일 울산시에 따르면 지역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오는 3월 14일부터 7일 동안 요르단 암만과 터키 이스탄불에 무역 사절단을 파견한다. 대상은 기계·플랜트 관련 중소기업 7곳 안팎이다. 참가 접수는 오는 30일까지 진행한다. 무역 사절단이 현지에서 상담할 품목은 기계와 장비, 설비, 부품류, 플랜트 설비, 기자재 등이다. 다른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도 현지 무역관의 시장성 조사를 거쳐 참가할 수 있다. 참가 기업은 편도 항공료와 현지 상담장, 단체 차량, 통역 등 상담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지원받는다. 또 사전 시장조사에서 섭외된 유망 바이어와 1대 1 수출 상담을 진행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기업은 울산경제진흥원 누리집 공지사항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울산통상지원시스템에서 신청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이번 무역 사절단 파견으로 울산시의 기계·플랜트 제품 우수성을 알리는 등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광주시, 5·18행불자 찾기 위해 옛 광주교도소 추가 발굴

    광주시와 5·18단체가 최근 법무부가 관리하지 않은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 인근에 대한 추가 발굴 조사에 나선다. 20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기념재단과 공동으로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5일간 옛 광주교도고 무연고자 공동묘지 인근 2800여㎡(870평)에 대해 유골 발굴 조사를 진행한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앞서 지난달 19일 신원 미상의 유골 40여구가 발견되자, 또 다른 유골의 매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해 최근 광주시에 발굴 조사를 요청했다. 5월 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인 광주시는 해당 부지 인근 도로 신축공사를 중단하고 ‘대한문화재연구원’에 발굴을 의뢰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 업체는 2017년과 동일한 방법인 땅속탐사레이더와 중장비를 동원한 기초 굴착 이후 문화재 출토방식으로 전환하는 발굴조사 방법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5·18행불자로 신고된 사람은 242명에 달하지만, 심사를 거쳐 관련자로 인정된 이는 84명 뿐이다. 이들 84명 가운데 지난 2002년 5·18국립민주묘지 무연고 분묘에 매장된 11구의 유골과 행불자 유가족의 유전자 감식결과를 비교해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는 6명이다. 나머지 78명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앞서 5·18기념재단 등은 지난 2017년까지 5·18 검찰 조사 기록과 관련자 진술 내용 등을 토대로 암매장 추정지 약도를 확보하고 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 등에서 발굴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했다. 한편 전남대 법의학교실은 5·18 행불자 신고를 한 130가족 295명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으며, 최근 행불자 가족 등을 대상으로 추가 혈액 채취를 통해 DNA를 확보할 예정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머니게임’ 이성민, 도망자 행색 포착 ‘무슨 일?’ [SSEN컷]

    ‘머니게임’ 이성민, 도망자 행색 포착 ‘무슨 일?’ [SSEN컷]

    ‘머니게임’ 이성민의 도망자 행색으로 시선을 강탈한다. 첫 방송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빈틈 없는 연기로 시청자를 매료시킨 tvN 수목드라마 ‘머니게임’ 측이 2회 방송을 앞둔 16일, 살인범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이성민(허재 역)의 모습이 담긴 현장 스틸을 공개해 본 방송을 향한 기대감을 수직 상승시킨다. 지난 1회에서는 채이헌(고수 분)이 국정감사에서 ‘정인은행 부실 사태’에 대해 현 정책에 반기를 드는 소신 발언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이에 문책성 인사로 금융위원장이 사퇴하고, 허재(이성민 분)가 유력한 차기 위원장으로 떠올랐다. 한편 허재는 ‘정인은행 매각이 최선’이라는 채이헌의 견해에 동조, 채이헌을 자신의 라인으로 삼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극 말미 허재가 오랜 앙숙이자 경제학계의 거목인 채병학(정동환 분)이 자신의 위원장 임명을 방해하자, 말다툼 끝에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려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에 허재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됨과 동시에 채병학의 아들인 채이헌과 허재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 이 가운데 공개된 스틸 속 이성민은 부쩍 초췌하고 까칠해진 몰골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성민은 담장 뒤에 몸을 숨긴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 초조함과 절박함이 공존하는 이성민의 눈빛이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와 함께 이성민은 하늘이 무너진 듯 고개를 떨구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그의 범행이 발각된 것인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에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를 예고하는 ‘머니게임’ 본 방송에 기대감이 폭등한다. 그런가 하면 이성민은 첫 회부터 폭발적인 연기력을 뽐내며 ‘역시 이성민’이라는 말을 되새긴 바 있다. 이 가운데 눈빛만으로도 숨막히는 텐션을 유발하는 이성민의 현장 스틸이 공개됨에 따라, 또 한번 레전드 연기를 경신할 이성민의 활약에 기대가 모인다. 한편 ‘머니게임’ 측은 “‘머니게임’ 첫 방송에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에 감사 드린다”면서 “오는 2회에서는 고수와 이성민의 맹렬한 대립이 시작될 예정이다. 한층 더 스펙터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펼쳐질 예정이니 기대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tvN ‘머니게임’은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최대의 금융스캔들 속에서 국가적 비극을 막으려는 이들의 숨가쁜 사투와 첨예한 신념 대립을 그린 드라마. 16일 오후 9시 30분 방송.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수진초 야구부 윤영하 선수, 예비 거포로 주목

    수진초 야구부 윤영하 선수, 예비 거포로 주목

    수진초등학교 야구부 윤영하(13) 선수가 예비 거포로 주목받고 있다. 학식이나 재주가 놀랄 만큼 향상돼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하는 경우를 괄목상대(刮目相對)라고 한다. 윤영하 선수는 1년 전 6학년 선배가 10명이나 졸업하는 덕에 5학년이 되면서 주전자리에 올랐다. 이후 스스로 준비된 선수임을 입증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수진초야구부 관계자는 “3년 전 좌익수로 처음 그라운드에 섰을 때 공이 자신에게 날아올까 다리가 후들거렸던 야구 초보가 이제는 어엿한 주전 포수로 경기를 리드하게 된 것”이라며, “지난 여름부터 진가가 나타나는 중”이라고 전했다. 윤영하 포수는 34회 협회장기 야구대회를 시작으로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선발전, 2019 경기도의장배 야구대회 등 1년 내내 많은 경기를 소화해 냈고, 대회가 없는 주말이면 수시로 열리는 연습게임에 꾸준하게 출전, 팀 내 비중을 높여가며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특히 지난 7월 29일 국토정중앙 전국 야구대회 방배초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공식 홈런을 시작으로 이후 출전 대회마다 공을 담장으로 넘기며 예비 거포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공식·비공식 13개의 홈런을 친 윤영하 선수의 빛나는 성장 뒤에는 꾸준한 노력이 뒤따르고 있다. 모든 운동의 기본인 체력강화 훈련부터 포수에게 필수적인 캐치볼, 블로킹, 송구, 타격 등 평균 하루 훈련 시간만 6시간 이상이다. 윤영하 선수는 “공격과 수비에 능한 전천후 포수인 NC 양의지 선수처럼 되려면 어지간한 훈련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힘든 역할이라 선수생명이 짧은 경우도 많다고 충고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포수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에 서서 감독님의 작전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너무 좋다. 꼭 지휘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예찬론을 펼쳤다. 이어 “올해부터는 팀 내 최고참 선배로 후배들을 이끌어가야 해서 부담감이 크다. 그러나 졸업하기 전 모교인 수진초에 우승컵을 안기는 것은 물론 개인성적에도 힘을 써 명문 중학교 야구부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윤영하 포수는 각종 보호 장비를 경기 내내 착용해야 하는 고된 포지션인 만큼 매일 수백 개의 줄넘기를 비롯한 각종 체력훈련을 이어가고 있으며 서울의 명문 야구부라고 불리는 ‘대치중 야구부’ 등 상급중학교와 메이저진출(리코에이젼시)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양시. 노후된 3곳에 공공디자인 도입 산뜻한 도시환경 조성

    안양시. 노후된 3곳에 공공디자인 도입 산뜻한 도시환경 조성

    경기도 안양시가 노후지역에 공공디자인을 도입 산뜻한 도시환경을 조성한다. 시는 14일 장내로 등 3곳에 대한 도시재생 사업계획을 밝혔다. 시는 칙칙한 옹벽에는 벽화를 그리고 오래된 블록을 교체해 도시환경을 새롭게 바꿀 계획이다. 철도변 담장은 새로운 기능과 미관을 갖춘 방음벽으로 교체한다. 개선사업비는 총 11억 8000만원이다. 중앙성당 주변을 명소화하고 미관을 조성하는 장내로(벽산사거리~청수약국) 개선공사는 총 연장 700m 구간 노후블록을 교체하고 안전펜스를 설치한다. 가로등과 신호등, 폐쇄회로(CC)TV 등 지주시설물을 통합해 어지러운 도로를 정비할 계획이다. 버스정류장과 마을버스 표지판, 중앙시장 원형 간판, 수목덮개 등 경관을 해치는 공공시설물도 정비, 교체해 도로를 산뜻하고 깔끔하게 조성할 예정이다. 야간조명도 공공디자인을 적용해 개선한다. 10월 사업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비산 3동 인라인롤러경기장(비산3동) 건너편 칙칙했던 100여m 옹벽은 지역주민의 정서가 담긴 벽화를 그려 경관을 개선한다. 밤길 안전을 위한 야간경관등도 설치할 계획이다. 옹벽 위쪽에는 토사 흘러내림 방지시설을 설치해 안전도 확보한다. 현재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명학마을(안양8동) 철도변 노후담장은 기능과 미관을 갖춘 방음벽으로 교체한다. 150여m의 방음벽에는 안양의 관문을 상징하는 공공디자인을 적용하고 LED조명을 설치한다. 또 시는 올해 6월까지 사업비 2억6천만 원을 들여 주택가와 대로변 일대 완충녹지 지역 경관 개선에도 나선다. 동편마을과 평촌지구에는 오는 5월까지 볼거리가 풍성한 녹지공간으로 가꾸고 관양2동 벌마로는 가로수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양지초교·관양고 앞, 종합운동장 남문일대 등 회전교차로 3곳에는 포인트 조경을 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스쿨존 불법 주정차하면 12만원… 일반도로 2~3배 과태료 더 낸다

    스쿨존 불법 주정차하면 12만원… 일반도로 2~3배 과태료 더 낸다

    횡단보도 신호등 없어도 일단 멈춰야 노상주차장 281개 없애고 보도 조성앞으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불법 주정차를 하면 일반도로보다 2~3배 더 많은 범칙금·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출입문과 직접 연결된 도로의 불법 노상주차장 281개는 연말까지 모두 없앤다. 정부는 어린이가 안전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 교통법규를 더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 대책’을 7일 발표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가운데 절반(56.3%)은 건널목을 건너다 발생했다. 안전운전 불이행 등 운전자 과실로 일어난 사고가 10건 중 6건꼴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고(故) 김민식군 사고도 불법 주정차로 인한 시야 방해가 원인이었다. 사고를 낸 차량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데도 횡단보도에서 일시정지하지 않았다. 정부는 횡단보도 근처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고질적인 안전무시 운전을 근절하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모든 차량이 의무적으로 일시정지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현재 8만원가량인 보호구역 내 주정차 위반 차량 범칙금·과태료는 12만원으로 올린다. 보도와 차도를 분리하지 않아 어린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 초등학교 인근 도로도 정비한다. 정부는 보도가 없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노상주차장을 폐지하고 학교 담장을 일부 안쪽으로 옮겨 그 자리에 보도를 만들기로 했다. 보도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학교 인근 도로는 제한속도를 시속 30㎞에서 20㎞로 더 낮추고 보행자에게 우선 통행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활용한 어린이 등하교 교통안전 계도 활동도 2022년까지 전국 초등학교로 확대한다. 현재 1만 9000명 수준인 계도 인원을 2022년 3만 6000명 수준까지 늘린다. 이와 함께 올해는 교통사고 우려가 큰 지역에 무인 교통단속 장비 1500대, 신호등 2200개를 우선 설치하고, 2022년까지 전국 모든 어린이 보호구역에 무인 교통단속 장비와 신호등 설치를 완료하기로 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동물원 불 타 유럽 최고령 고릴라 희생, 다 큰 모녀들의 풍등 탓

    동물원 불 타 유럽 최고령 고릴라 희생, 다 큰 모녀들의 풍등 탓

    다 큰 세 모녀가 날린 풍등 때문에 독일 서부 크레펠트의 한 동물원에 수용돼 있던 서른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애꿎게 희생됐다. 게르트 호프만 크레펠트 경찰청장은 2일(이하 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60세 여성과 30대 두 딸이 라디오로 참사 소식을 듣고 전날 자수했다며 이들의 실화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모녀는 인터넷으로 구입한 풍등을 지난달 31일 저녁 날렸다가 동물원에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풍등 다섯 개에 새해 소원을 적어 날렸는데 불타 버린 ‘유인원 하우스’ 지붕 위에서 네 개가 발견돼 경찰은 풍등에 적힌 새해 소원의 필적을 채취한 상태였다. 경찰은 세 모녀가 용기있게 진실을 고백한 점을 높이 샀다. 호프만 청장은 대다수 유인원들이 연기를 마셔 숨졌다며 “죽음에 이르러 유인원들도 인간과 매우 비슷하더라”고 말했다.안드레아스 클로스 소방관은 “우리 모두 그 건물이 그렇게 빨리 불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 건물 안에 스프링클러 장치도 없었다고 전했다. 독일 대다수 지역에서 풍등을 날리는 것은 불법인데, 성인들인 세 모녀는 이를 전혀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는 ‘과실 방화’ 혐의가 적용되는데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징역 5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 동물원 정문에는 숨진 동물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랑우탄 다섯 마리, 침팬지 한 마리, 여러 마리의 원숭이들이 희생됐다. 동물원 측은 특히 마흔다섯 살의 웨스턴 로울랜드 고릴라 마사와 암컷 짝을 잃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마사는 유럽 동물원 등에 수용된 고릴라 가운데 최고령이었다.동물원 측은 “함께 슬픔을 나눠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2일까지도 개원하지 않은 이 동물원 담장 앞에는 꽃들과 촛불들, 추모의 글이 적힌 플래카드들이 즐비했다. 독일에서는 지난 2010년 11월에도 칼스루헤의 한 동물원에서 화재 때문에 알파카, 미니어처 당나귀, 셰틀런드 조랑말 등 스물여섯 마리가 변을 당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오랜 풍습인 새해맞이 불꽃놀이의 위험성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독일에서 풍등을 날리는 것은 금지된 반면, 새해 전날 밤에 불꽃놀이를 하는 일은 흔한데, 최근 들어 환경 및 동물 보호 단체들로부터 점점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동물복지협회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동물원, 농장, 동물 보호소 근처에서의 불꽃놀이를 전면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장바구니에 숨어 밀입국 시도한 소년…새해에도 난민문제 계속

    장바구니에 숨어 밀입국 시도한 소년…새해에도 난민문제 계속

    새해를 며칠 앞두고 장바구니에 숨어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던 팔레스타인 난민 소년이 적발됐다. EPA 등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모로코 국경을 넘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영토 멜리야로 가려던 팔레스타인 10살 소년이 추방됐다고 보도했다. 브로커의 장바구니에 숨어 밀입국을 시도한 소년은 장바구니가 생각보다 무거운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게 덜미가 잡혔다. 소년은 야채와 과일이 담긴 장바구니 안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국경을 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소년의 밀입국은 먼저 멜리야의 난민보호소에 가 있던 어머니가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경찰은 소년의 밀입국을 도운 30대 모로코 국적 남녀를 체포하고, 보호소에 있던 소년의 어머니와 소년을 추방했다.이에 앞서 26일에도 소년과 같은 경로를 통해 스페인령 멜리야시로 넘어가려던 아프리카 난민이 적발됐다. 스페인 민병대는 이날 기니공화국 출신 29세 남성이 차량 대시보드에 숨어 밀입국을 시도했다가 붙잡혔다고 밝혔다. 1580년 스페인이 점령한 멜리야는 아프리카와 국경을 맞댄 유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영토다. 이 때문에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에게는 ‘꿈의 도시’로 불린다.난민들은 모로코와 스페인 국경의 높은 담장을 기어오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월과 5월에도 자동차 대시보드와 매트리스에 숨어 멜리야로 밀입국을 시도한 아프리카 청년들이 잇따라 적발된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여기는 호주] 남의 가정집서 난투극 벌이는 캥거루 포착 (영상)

    [여기는 호주] 남의 가정집서 난투극 벌이는 캥거루 포착 (영상)

    남의 가정집에 들어와 난투극을 벌이는 캥거루 2마리가 카메라에 포착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데일리메일 호주판과 소셜미디어에는 이들의 싸움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는 중이다. 리즈 맨슨은 성탄절을 맞이해서 딸의 집이 있는 브리즈번 남부 시닉 림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늦은 잠을 자던 가족들은 마당 뒤뜰에서 들리는 쿵쾅대는 소리에 잠을 깨고는 뒤뜰로 나가 보았다. 그 곳에는 놀랍게도 2마리의 캥거루가 야외 탁자가 있는 뒷마당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권투를 연상하게 하는 일명 ‘캥거루 복싱’이라고 불리는 주먹다짐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한 마리가 다른 캥거루를 야외 탁자로 밀어 붙였다. 그리고는 마치 ‘너 한번 혼나 볼래‘라는 듯 앞발로 다른 캥거루의 멱살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탁자에 눕혀진 캥거루가 탁자에서 점프해서는 다른 캥거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어서 한 마리가 담장으로 다른 캥거루를 밀어 부치고는 다시 주먹 다짐을 했다. 한동안 주먹다짐을 하던 이들은 뒷마당을 떠나버렸다. 이들 캥거루 난투극을 보도한 뉴스에는 재미있는 해석을 다는 댓글과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드라이트라는 사용자는 “명절에 흔히 보는 가족간의 싸움”, 다른 사용자는 “명절에 맥주를 마신 오지(Aussie, 호주인을 부르는 슬랭어)에게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일”이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캥거루가 난투극을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암컷 캥거루를 차지하기 위한 숫컷 캥거루의 힘겨루기이다. 난투극의 승자가 ‘미녀 캥거루’를 차지하는 법이다. 캥거루는 발달된 꼬리의 근육을 이용해 직립이 가능해 주먹다짐을 벌이는 자세가 마치 인간의 권투를 연상해 ‘캥거루 복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골목에 대한 오해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골목에 대한 오해

    지난 한 해 공간과 관련해서 ‘골목’만큼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말도 드물 것이다. 최근에는 골목 뒤에 여행 혹은 식당, 카페, 상권, 경제 등을 붙인 복합명사를 많이 쓰고 있다. 과거에 널리 쓰인 그런 말로는 골목대장 정도가 떠오를 뿐이니 요즘 부쩍 높아진 골목에 대한 관심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골목의 정의와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복합명사가 대부분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단어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골목을 찾으면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고 나온다. 집들로 접근하는 길로서 마을의 내부를 수놓는 골목, 그곳에서 양팔을 뻗으면 담에 두 손가락이 달락 말락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골목의 폭은 대개 한 길 남짓, 넓어도 4m 안쪽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도’(Vitruvian Man)가 보여 주듯 사람이 양팔을 뻗은 거리는 키와 같은데 사람 키 정도의 길이를 우리는 ‘길’이라고 부른다. 한 길 너비의 골목은 어른 셋이 나란히 걷기에도 비좁다. 폭 4m 이상을 일반적인 ‘도로’라고 법적으로 정의한 ‘도시계획시설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골목은 도로 축에 끼지도 못한다. 공간의 성격은 그것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말해 준다. 도시여행을 많이 한 사람은 다들 경험했겠지만 가로를 걷다가 한 켜 안쪽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이 나오고 갑자기 도시의 소음이 멀어지며 차분한 분위기가 사방에서 뽀얀 안개처럼 몰려온다. 공간을 도시가로 같은 공적인 공간과 주택 같은 사적인 공간으로 나눌 때 골목은 그 사이에 해당하는 반(半) 사적인 공간이다. 가끔 싸우는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다. 이에 반해 골목 다음에 붙는 식당, 상권 등의 단어는 개방적이고 사회적이며 공적인 성격의 상업 활동을 이른다. 따라서 골목상권 등의 말에서 앞뒤 단어는 다른 성격,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렇게 양립할 수 없는 성격의 공간 이름을 갖다 붙인 새로운 단어가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을을 이루는 집집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외지인이 불쑥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공간이다. 그 골목을 함께 사용하는 대여섯, 많아야 여남은 집의 구성원들이 마치 공동의 현관이나 거실처럼 점유해 사용하는 공동체 공간이다. 그러니 골목에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식당이나 카페를 여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런 상업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순간 그 골목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집들은 거주 기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낯선 사람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곳에서는 주생활에 가장 필요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골목에서 상업과 관광의 활동이 결합되면 그 지역은 더욱 빨리 주거지의 성격을 잃게 된다. 이미 도시 관광지로 유명한 서울의 북촌과 전주의 한옥마을은 물론 대전의 소제동처럼 최근 도시재생으로 인기 있는 지역에서 이러한 거주 기능의 축출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거주는 도시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며 도시의 활성화에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도시의 활기, 자립성, 공동체, 정체성, 어느 것 하나 거주자 없이 생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모습도 도시에 필요하지만 그것은 골목이 엮어내는 마을 안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 곧 마을의 외곽에 한정돼야 한다. 골목은 나지막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조직하는 반 사적인 공간다운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골목상권은 ‘작은 가로 상권’으로, 골목여행은 ‘작은 가로 여행’으로 그 개념과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도시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활기와 상권을 유지하는 길은 도시가로와 골목을 혼동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 “타임머신 타고 30년 전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 따지고 싶어”

    “타임머신 타고 30년 전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 따지고 싶어”

    “20년이란 세월은 짧은 게 아니에요. 강산이 두 번 변했잖아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윤모(52)씨는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꽃 같은’ 20대와 30대를 교도소 담장 아래 묻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가석방되면서 바깥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출소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컴퓨터는 낯설기만 하다. 지난 26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씨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죽은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고 따지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도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이 가혹행위를 일부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체 누가 나를 때렸는지 나중에 법정에서 다 물어볼 거다.” ●‘이춘재 범인’ 밝혀준 경찰 사망 가슴 미어져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한다고 했다. 사과는 직접 받기를 원하나. “나한테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당시 경찰들이 나한테만 그랬을까.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본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뿐 고통 속에 사는 그분들을 위해 국민 앞에 나와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라는 얘기다.” 농기구 수리공이었던 윤씨는 1989년 7월 경찰에 붙잡혔다. 10개월 전 윤씨가 살던 동네(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여학생(당시 13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당시 화성에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8차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만 유독 현장에서 윤씨의 체모가 나왔다고 했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면 어땠을까. “때리고 잠 안 재우는데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왔다. “항소심에서 경찰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교도소에 있을 때 법원에 탄원서를 써서 보내도 답변이 없었다.” -항소심에서 진술을 바꾼 배경은.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옆 방에 수감 중인 (민주화·통일 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도움이 컸다. 한 번은 나를 부르면서 ‘누구 아니냐’고 묻더라. 맞다고 하니까 공소장과 판결문을 갖다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문익환 목사 제자가 항소심 서류를 다 써줬다. 돌아가신 문 목사를 잊을 수가 없다.”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수감 도중 20년으로 감형됐다. “출소 날짜가 없는 무기징역을 받았더라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다. 솔직히 그곳(교도소)에서는 희망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종교의 힘에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단기수들이 출소하는 걸 보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장기수들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래도 그걸 참아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으니 꾹꾹 눌러야 했다.” -석방이 최종 목적은 아니지 않나. “감옥에 있을 때부터 수차례 재심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범인이 잡히거나 증거가 새로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출소 이후에는 줄곧 청주에서 살았나. “교도소에서 20년 살고 나왔는데 누가 나를 반겨 주겠나. 이 타이틀 가지고는 어디든 갈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청주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교정위원 덕분에 청주에 살게 됐다. 인근 공장에도 취업해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며 지내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지 않았나. “화를 억제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죽는다. 트라우마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 -이춘재가 자백할 거라고 기대는 했나. “이춘재가 잡힌 줄도 몰랐다. 다른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 DNA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자꾸 모방범죄로 8차 사건이 거론되니까 신경이 쓰여 너무 힘들었다.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더 시끄러워지면 청주를 아예 뜨려고도 했다.” -이춘재 자백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 “잠을 자는데 선배한테 ‘뉴스 봤냐’고 전화가 왔다. 잠이 확 깼다. ‘와, 이게 뭐지’ 싶었다.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셔야겠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30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았다.” -‘자백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맙긴 한데 지금으로선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춘재가 나를 위해 희생한 것도 아니고 내 존재도 모른다.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 그때 가서 무슨 말 할지 들어 보려고 한다.” -재심은 열릴 수 있을까. “재심 사유가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만에 하나 재심을 할 수 없다고 하면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왜 재심이 열려야 하나. “잘못된 건 바로잡자는 거다. 명예는 한 번 떨어지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 명예를 되찾고 싶다. 무죄가 확정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은 내가 벌어서 쓰면 그만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나. “일단 재심부터 끝나고 봐야 할 것 같다.”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 간부가 사망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그날 바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지금도 마음이 미어진다.” -고인과는 특별히 인연이 있나. “10월 첫째주로 기억되는데 그때 나를 찾아왔다. 서류를 많이 들고 와서는 ‘이 서류들이 너무 안 맞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책임지고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경찰, 안 믿는다’고 했는데 지켜봐 달라고 하더니 결국 이춘재가 범인이라는 걸 밝혀 줬다.” ●아버지 기일 영정 앞에서 작년과 달리 웃었다 -누명을 벗기 전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 뵐 면목도 없다고 했다. “진실이 안 밝혀지고 죽으면 죽어서나마 부모님 얼굴을 떳떳이 볼 수 있겠나. 살인자를 반길 부모는 없다. 그래도 지난달 아버지 기일에는 부모님 영정 앞에서 웃을 수 있었다. 지난해와는 확실히 달랐다.” -최근 3개월은 앞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처음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 왔을 때는 도망다녔다. 일주일을 그렇게 전전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도무지 인터뷰를 안 하고는 못 버틸 것 같아 응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마치 2년처럼 참 길었다.” ●‘감정서 허위 작성’ 검경 공방 지금은 지켜볼 뿐 -외가 친척도 만났다. “외삼촌 얼굴에서 어머니 얼굴을 봤다. 40여년 만에 다시 만난 것 같다. 경찰이 우리 가족을 찾아 주려고 나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한자를 대조했다고 들었다.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경찰도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유죄 근거가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허위 작성을 놓고 검경이 대립하고 있다. “검찰에서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했지만 검찰, 경찰 모두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까 지금은 지켜볼 뿐이다. 중간에 낀 입장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어느 쪽이 맞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뭘 하고 싶나.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 조용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솔직히 여행을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웃음)” 글 사진 청주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타임머신 타고 30년 전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 따지고 싶어”

    “타임머신 타고 30년 전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 따지고 싶어”

    “20년이란 세월은 짧은 게 아니에요. 강산이 두 번 변했잖아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윤모(52)씨는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꽃 같은’ 20대와 30대를 교도소 담장 아래 묻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가석방되면서 바깥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출소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컴퓨터는 낯설기만 하다. 지난 26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씨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죽은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고 따지고 싶다”고 말했다.-최근 검찰 조사에서도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이 가혹행위를 일부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체 누가 나를 때렸는지 나중에 법정에서 다 물어볼 거다.” ●‘이춘재 범인’ 밝혀준 경찰 사망 가슴 미어져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한다고 했다. 사과는 직접 받기를 원하나. “나한테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당시 경찰들이 나한테만 그랬을까.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본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뿐 고통 속에 사는 그분들을 위해 국민 앞에 나와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라는 얘기다.” 농기구 수리공이었던 윤씨는 1989년 7월 경찰에 붙잡혔다. 10개월 전 윤씨가 살던 동네(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여학생(당시 13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당시 화성에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8차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만 유독 현장에서 윤씨의 체모가 나왔다고 했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면 어땠을까. “때리고 잠 안 재우는데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왔다. “항소심에서 경찰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교도소에 있을 때 법원에 탄원서를 써서 보내도 답변이 없었다.” -항소심에서 진술을 바꾼 배경은.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옆 방에 수감 중인 (민주화·통일 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도움이 컸다. 한 번은 나를 부르면서 ‘누구 아니냐’고 묻더라. 맞다고 하니까 공소장과 판결문을 갖다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문익환 목사 제자가 항소심 서류를 다 써줬다. 돌아가신 문 목사를 잊을 수가 없다.”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수감 도중 20년으로 감형됐다. “출소 날짜가 없는 무기징역을 받았더라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다. 솔직히 그곳(교도소)에서는 희망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종교의 힘에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단기수들이 출소하는 걸 보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장기수들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래도 그걸 참아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으니 꾹꾹 눌러야 했다.” -석방이 최종 목적은 아니지 않나. “감옥에 있을 때부터 수차례 재심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범인이 잡히거나 증거가 새로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출소 이후에는 줄곧 청주에서 살았나. “교도소에서 20년 살고 나왔는데 누가 나를 반겨 주겠나. 이 타이틀 가지고는 어디든 갈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청주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교화위원 덕분에 청주에 살게 됐다. 인근 공장에도 취업해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며 지내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지 않았나. “화를 억제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죽는다. 트라우마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 -이춘재가 자백할 거라고 기대는 했나. “이춘재가 잡힌 줄도 몰랐다. 다른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 DNA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자꾸 모방범죄로 8차 사건이 거론되니까 신경이 쓰여 너무 힘들었다.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더 시끄러워지면 청주를 아예 뜨려고도 했다.” -이춘재 자백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 “잠을 자는데 선배한테 ‘뉴스 봤냐’고 전화가 왔다. 잠이 확 깼다. ‘와, 이게 뭐지’ 싶었다.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셔야겠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30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았다.” -‘자백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맙긴 한데 지금으로선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춘재가 나를 위해 희생한 것도 아니고 내 존재도 모른다.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 그때 가서 무슨 말 할지 들어 보려고 한다.” -재심은 열릴 수 있을까. “재심 사유가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만에 하나 재심을 할 수 없다고 하면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왜 재심이 열려야 하나. “잘못된 건 바로잡자는 거다. 명예는 한 번 떨어지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 명예를 되찾고 싶다. 무죄가 확정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은 내가 벌어서 쓰면 그만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나. “일단 재심부터 끝나고 봐야 할 것 같다.”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 간부가 사망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그날 바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지금도 마음이 미어진다.” -고인과는 특별히 인연이 있나. “10월 첫째주로 기억되는데 그때 나를 찾아왔다. 서류를 많이 들고 와서는 ‘이 서류들이 너무 안 맞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책임지고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경찰, 안 믿는다’고 했는데 지켜봐 달라고 하더니 결국 이춘재가 범인이라는 걸 밝혀 줬다.” ●아버지 기일 영정 앞에서 작년과 달리 웃었다 -누명을 벗기 전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 뵐 면목도 없다고 했다. “진실이 안 밝혀지고 죽으면 죽어서나마 부모님 얼굴을 떳떳이 볼 수 있겠나. 살인자를 반길 부모는 없다. 그래도 지난달 아버지 기일에는 부모님 영정 앞에서 약간 웃을 수 있었다. 지난해와는 확실히 달랐다.” -최근 3개월은 앞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처음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 왔을 때는 도망다녔다. 일주일을 그렇게 전전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도무지 인터뷰를 안 하고는 못 버틸 것 같아 응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마치 2년처럼 참 길었다.” ●‘감정서 허위 작성’ 검경 공방 지금은 지켜볼 뿐 -외가 친척도 만났다. “외삼촌 얼굴에서 어머니 얼굴을 봤다. 40여년 만에 다시 만난 것 같다. 경찰이 우리 가족을 찾아 주려고 나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한자를 대조했다고 들었다.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경찰도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유죄 근거가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허위 작성을 놓고 검경이 대립하고 있다. “검찰에서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했지만 검찰, 경찰 모두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까 지금은 지켜볼 뿐이다. 중간에 낀 입장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어느 쪽이 맞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뭘 하고 싶나.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 조용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솔직히 여행을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웃음)” 글 사진 청주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20년 청춘 감옥에 묻어…형사님 왜 그러셨어요” 윤씨의 절규

    “20년 청춘 감옥에 묻어…형사님 왜 그러셨어요” 윤씨의 절규

    “20년이란 세월은 짧은 게 아니에요. 강산이 두 번 변했잖아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윤모(52)씨는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꽃 같은’ 20대와 30대를 교도소 담장 아래 묻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가석방되면서 바깥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출소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컴퓨터는 낯설기만 하다. 지난 26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씨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죽은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고 따지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도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이 가혹행위를 일부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체 누가 나를 때렸는지 나중에 법정에서 다 물어볼 거다.”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한다고 했다. 사과는 직접 받기를 원하나. “나한테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당시 경찰들이 나한테만 그랬을까.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본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뿐 고통 속에 사는 그분들을 위해 국민 앞에 나와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라는 얘기다.” 농기구 수리공이었던 윤씨는 1989년 7월 경찰에 붙잡혔다. 10개월 전 윤씨가 살던 동네(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여학생(당시 13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당시 화성에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8차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만 유독 현장에서 윤씨의 체모가 나왔다고 했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면 어땠을까. “때리고 잠 안 재우는데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왔다. “항소심에서 경찰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교도소에 있을 때 법원에 탄원서를 써서 보내도 답변이 없었다.” −항소심에서 진술을 바꾼 배경은.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옆 방에 수감 중인 (민주화·통일 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도움이 컸다. 한 번은 나를 부르면서 ‘누구 아니냐’고 묻더라. 맞다고 하니까 공소장과 판결문을 갖다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문익환 목사 제자가 항소심 서류를 다 써줬다. 돌아가신 문 목사를 잊을 수가 없다.”−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수감 도중 20년으로 감형됐다. “출소 날짜가 없는 무기징역을 받았더라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다. 솔직히 그곳(교도소)에서는 희망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종교의 힘에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단기수들이 출소하는 걸 보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장기수들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래도 그걸 참아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으니 꾹꾹 눌러야 했다.” −석방이 최종 목적은 아니지 않나. “감옥에 있을 때부터 수차례 재심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범인이 잡히거나 증거가 새로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출소 이후에는 줄곧 청주에서 살았나. “교도소에서 20년 살고 나왔는데 누가 나를 반겨 주겠나. 이 타이틀 가지고는 어디든 갈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청주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교화위원 덕분에 청주에 살게 됐다. 인근 공장에도 취업해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며 지내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지 않았나. “화를 억제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죽는다. 트라우마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 −이춘재가 자백할 거라고 기대는 했나. “이춘재가 잡힌 줄도 몰랐다. 다른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 DNA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자꾸 모방범죄로 8차 사건이 거론되니까 신경이 쓰여 너무 힘들었다.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더 시끄러워지면 청주를 아예 뜨려고도 했다.” −이춘재 자백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 “잠을 자는데 선배한테 ‘뉴스 봤냐’고 전화가 왔다. 잠이 확 깼다. ‘와, 이게 뭐지’ 싶었다.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셔야겠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30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았다.”−‘자백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맙긴 한데 지금으로선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춘재가 나를 위해 희생한 것도 아니고 내 존재도 모른다.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 그때 가서 무슨 말 할지 들어 보려고 한다.” −재심은 열릴 수 있을까. “재심 사유가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만에 하나 재심을 할 수 없다고 하면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왜 재심이 열려야 하나. “잘못된 건 바로잡자는 거다. 명예는 한 번 떨어지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 명예를 되찾고 싶다. 무죄가 확정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은 내가 벌어서 쓰면 그만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나. “일단 재심부터 끝나고 봐야 할 것 같다.”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 간부가 사망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그날 바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지금도 마음이 미어진다.”−고인과는 특별히 인연이 있나. “10월 첫째주로 기억되는데 그때 나를 찾아왔다. 서류를 많이 들고 와서는 ‘이 서류들이 너무 안 맞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책임지고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경찰, 안 믿는다’고 했는데 지켜봐 달라고 하더니 결국 이춘재가 범인이라는 걸 밝혀 줬다.” −누명을 벗기 전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 뵐 면목도 없다고 했다. “진실이 안 밝혀지고 죽으면 죽어서나마 부모님 얼굴을 떳떳이 볼 수 있겠나. 살인자를 반길 부모는 없다. 그래도 지난달 아버지 기일에는 부모님 영정 앞에서 약간 웃을 수 있었다. 지난해와는 확실히 달랐다.” −최근 3개월은 앞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처음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 왔을 때는 도망다녔다. 일주일을 그렇게 전전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도무지 인터뷰를 안 하고는 못 버틸 것 같아 응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마치 2년처럼 참 길었다.” −외가 친척도 만났다. “외삼촌 얼굴에서 어머니 얼굴을 봤다. 40여년 만에 다시 만난 것 같다. 경찰이 우리 가족을 찾아 주려고 나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한자를 대조했다고 들었다.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경찰도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유죄 근거가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허위 작성을 놓고 검경이 대립하고 있다. “검찰에서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했지만 검찰, 경찰 모두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까 지금은 지켜볼 뿐이다. 중간에 낀 입장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어느 쪽이 맞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뭘 하고 싶나.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 조용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솔직히 여행을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웃음)” 글·사진 청주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승객 등 100명 태운 카자흐 여객기 이륙 도중 추락…최소 7명 사망

    승객 등 100명 태운 카자흐 여객기 이륙 도중 추락…최소 7명 사망

    카자흐스탄에서 승객과 승무원 등 총 100명을 태운 여객기가 추락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BBC뉴스 등 외신은 이날 아침 7시 경 알마티 공항을 출발해 수도 누르술탄으로 향하던 여객기가 이륙 도중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사고 여객기는 카자흐스탄 항공사 ‘벡에어’ 소속으로 승객 95명과 승무원 5명이 타고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여객기는 이륙 도중 고도를 잃고 떨어져 추락했으며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 담장과 인근 건물과 충돌했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총 7명으로 확인됐으나 피해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알마티 공항 측은 "현재 구조대가 출동해 사고 여객기 내 생존자 구조작업을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으며 카자흐 정부는 곧바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수사본부를 구성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00명 탄 카자흐 여객기 알마티 추락 12명 사망, 고려인 둘 탑승한 듯

    100명 탄 카자흐 여객기 알마티 추락 12명 사망, 고려인 둘 탑승한 듯

    100명이 탑승한 카자흐스탄의 벡 에어(Bek Air) 여객기가 27일 알마티 국제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추락해 적어도 12명이 숨졌다. 이 나라 내무부는 한때 15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 뒤 기장을 비롯해 12명이 희생됐다고 바로잡았다. 사고 여객기 Z92100 편은 이날 아침 7시 21분(한국시간 오전 10시 21분) 93명의 승객과 승무원 5명을 태우고 이 나라 최대 도시인 알마티 공항을 이륙해 새 수도 누르술탄으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채 1분도 안돼 고도를 잃고 콘크리트 담장을 들이받은 뒤 2층 짜리 건물을 들이받았다. 플라이트레이더 24에 따르면 여객기는 정상 활주보다 조금 일찍 기체 고도를 올렸다가 곧바로 추동력을 잃고 하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나마 기장이 콘크리트 담장과 건물을 들이받으며 피해를 최소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체는 두 동강이 났다. 어린이들을 포함해 60명이 인근 병원들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22명 정도가 중태인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가 더 늘 가능성이 있다.승객 명단이 공개됐는데 9D와 9E 좌석에 나란히 앉은 유리 손(남), 야나 손(여)이 보이는데 고려인이 아닌가 추정된다. 탑승자 숫자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한때 승객 93명과 승무원 5명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승객은 95명으로 정정했다. 성인이 85명, 어린이 5명, 영유아 3명이라고 BBC는 전했는데 이 역시 아귀가 맞지 않는다. 생존자 마랄 에르만은 이륙하는 동안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으며 처음에는 다시 (이륙을 포기하고) 착륙을 시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뭔가와 부딪쳤다. 다만 기내는 그다지 혼란스럽지 않았다. 승무원들이 출구를 열어 나가라고 해 나와서 돌아보니 기체가 두 동강 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까운 곳에 있는 로이터 통신 기자는 추락 현장 주변에 짙은 안개까 끼어 있었다고 전했는데 아직 사고 원인과 관련해 이렇다 하게 전해진 바는 없다. 카자흐 당국은 곧바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수사본부를 차린다고 발표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 대통령은 희생자 친척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명한 뒤 사고 책임이 있는 이들을 엄벌하겠다고 공언했다.  벡 에어 항공은 1999년 VIP 승객 수송을 타깃으로 창립했으며 지금은 카자흐 제1의 저비용 항공사로 일곱 대의 포커-100 소형 여객기를 운용하고 있다. 알마티에서는 지난 2013년 1월 29일에서도 참사가 빚어졌다. 북부 콕세타우를 출발한 경비행기가 추락해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한달 전에도 카자흐 정보국 고위 관리들을 태운 군용기가 이 나라 남부에 떨어져 27명이 희생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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