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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공천 후폭풍 부른 ‘여의도식 정치’ /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공천 후폭풍 부른 ‘여의도식 정치’ /구본영 논설위원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른 아침 출근길에서 들은 가곡 ‘4월의 노래’의 첫 소절이다. 영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땅의 4월은 박목월의 이 시구처럼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하는 계절이었다. 목련꽃 향기 속에서 치러질 ‘4·9 총선’이 박두하면서 여의도가 대혼돈에 빠져 들었다. 국민적 축제를 앞둔 설렘은 없고, 날선 공방만 남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공천 책임론에 불을 붙이고, 강재섭 대표가 총선 불출마 카드를 빼들었다. 여야의 경쟁적 ‘공천 물갈이 쇼’를 지켜보던 국민들만 어리둥절해졌다. 통합민주당이 호남에서 ‘박재승의 난’으로 선수를 치고 한나라당이 ‘안강민의 영남 대학살’로 맞설 때까지도 관객들이 눈치 못챈 반전이다. 그러나 양철 지붕처럼 달아오른 건 중앙정치 무대뿐이다. 투표일이 보름 남았지만, 지역 표밭은 썰렁하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지역구 후보가 누구인지, 그들이 4년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변변한 대표 공약 하나 내놓은 게 없다. 후보등록에 임박해 ‘무더기 공천’과 전략 공천이 횡행해 후보를 검증할 겨를도 없었다. 몇몇 실세 명망가들이 주역을 맡고 주권자인 국민은 들러리 서는 게 한국정치의 고질이었다. 권력게임 양상으로 번진 한나라당의 공천 후유증을 보면서 그런 ‘여의도식 정치’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깨닫는다.2004년 총선 때 여야는 정당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지역구별 경선을 앞다퉈 실험했다. 하지만 그런 ‘상향식 공천’은 이번에는 아예 종적을 감췄다. 당외 인사 위주의 공천심사위를 통한 이번 공천도 ‘하향식 공천’에 불과하다.‘제왕적 총재’가 공천을 좌지우지하던 때보다는 세련되긴 했지만…. 정당정치 선진국 미국에선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를 상향식 경선으로 뽑는다. 중앙당의 일방적 후보 낙점이나 공천 불복은 상상하기 어렵다.1970년대 도회지의 담벼락에 나붙었던 극장 쇼 포스터가 기억난다. 당시엔 남진이니 나훈아니 하는 인기가수들의 얼굴만 보고 관객들은 레퍼토리가 뭔지도 모른 채 몰려들었다. 곧 거리마다 이름 모를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나붙겠지만, 중앙정치의 열기만큼 지역구별 투표율이 높을지는 의문이다. 안강민, 박재승 두 주연배우를 캐스팅해 연출한 여야의 공천 드라마는 막판 파열음을 내며 대단원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흥행몰이 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엔 한나라당의 실세들과 거기서 밀려난 인사들이 주·조연이다. 서청원·홍사덕씨 등 친(親)박근혜계 인사들이 주도중인 ‘친박 연대’도 그 하나다. 박 전 대표의 대중성을 흥행에 활용하려는 심산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빠지는 바람에 “나훈아당이 아닌, 너훈아당”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각당의 공천 몸살이야 그들의 사정일 뿐일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구경꾼으로만 내몰리게 된다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4월이 잔인한 달이 안 되려면 그런 공급자 중심 정치부터 끝장내야 한다. 그러려면 유권자들이 객석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후보자들이 내놓는 온갖 약속을 꼼꼼히 따져보고 유세장까지 발품을 파는 수고도 감수해야 한다.‘유권자 혁명´이 ‘여의도식 정치´란 구습을 깨는 마지막 처방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안양유괴살해범 자백 이끌어 낸 심리수사 48시간

    안양유괴살해범 자백 이끌어 낸 심리수사 48시간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피의자 정모(39)씨는 환각 상태에서 두 어린이를 성추행했고, 가족들에게 알릴까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2004년 군포에서 실종된 40대 여성도 자신이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검거 이후 진술이 오락가락하던 정씨가 범행의 전모를 털어놓게 된 데는 범죄심리분석 수사관(프로파일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인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 권일용 경위는 지난 19일 수사에 투입되면서 정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작업에 착수했다. 20일 오후. 권 경위는 경기경찰청의 프로파일러 한종수 경사와 함께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권 경위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만만해했다.“어깨를 만지자 소리를 질러서 담벼락으로 밀었는데 숨졌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실수였다.”고 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남에게 지탄받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듯 눈빛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프로파일러는 놓치지 않았다. 롤리타(미성숙 소녀에 대해 성적 집착) 동영상과 사진에 대해 묻자 “그건 그냥 내 자료다. 당신도 보다 보면 점점 더 자극적인 거 원하지 않느냐.”고 했다. 왜곡된 성의식을 다른 사람에게 일반화해 비난을 면해보려는 유아적 발상이었다. 첫날 5시간 동안의 탐색전을 바탕으로 프로파일러 5명은 밤샘 분석작업을 했다.“정씨의 인생 얘기를 이끌며 자기 범죄를 객관적으로 말하게 만들라.” 이튿날 전략이었다. 21일 오후 1시. 권 경위가 정씨를 독대했다. 정씨는 대뜸 “당신이 어제 한 얘기를 심각하게 고민해봤다.”고 했다. 이 때다 싶어, 정씨에게 자신의 인생을 얘기하도록 이끌었다.“여자들이 능력과 직업, 돈이 없다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며 피해의식을 드러냈다.“나는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세상과의 고립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를 털어놨다. 오후 5시쯤. 정씨를 다독이면서 “당신이 죄를 뉘우친다고 이해받기 위해선 했던 일을 객관적 사실로 털어놓는 게 도움이 된다.”고 슬쩍 떠봤다. 정씨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몸을 떨며 고민했다. 그러다 “하필이면 내 인생에서 왜 그때 그 순간 아이들을 거기에서 만났나.”며 강한 자기부정을 내비쳤다. 이어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남아 있는 내 어머니는 어떡하냐.”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권 경위는 이때 뒷자리로 물러섰고, 형사들이 들어와 수사 자료를 들고 정씨를 추궁했다. 정씨는 체념한 듯 “술 마시고 본드를 흡입한 상태에서 담배를 사러 가다 만난 두 어린이의 어깨를 만지자 반항해 집에 데려왔다.1시간쯤 성추행했고, 내 얼굴을 알릴까봐 살해했다.”고 했다. 증거가 없어 경찰의 애를 태우던 2004년 7월 군포 전화방 운영자 정모(당시 44세·여)씨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군포 금정동 모텔에서 살해한 뒤 시흥 월곶쪽의 다리에서 시신을 바다로 던져 버렸다.”고 털어놨다. 잠 안 재우고 협박해서 자백받던 수사기법보다는, 고도의 심리전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첨단 수사기법이 범죄를 밝히는 시대라고 권 경위는 설명했다. 한편 두 어린이 유괴·살해사건의 현장 검증이 22일 실시됐으며, 주민들은 정씨에게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이혜진 양의 어머니는 “마스크만 벗겨서 얼굴만 보여달라.”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안양 이재훈 황비웅기자 nomad@seoul.co.kr
  • 성수동 공장지대 ‘천자문거리’로

    ‘공장 담벼락을 한자 학습판으로’ 공단지대인 성동구 성수동에 ‘천자문 거리’가 조성된다. 음습하고 침침한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18일 성동구에 따르면 천자문 거리가 조성되는 곳은 성수2가 성수초등학교 주변 300여m 구간이다. 우리기업·신도리코 등 의 협조를 얻어 가로 150㎝ 세로 120㎝ 크기의 패널 150개를 대로변 업체 담장에 설치하기로 했다. 패널에는 천자문과 글자뜻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 명심보감·소학 문장이 담긴 글자판이 1개월 주기로 번갈아 걸리게 된다. 구는 1500여만원을 들여 패널과 글자판을 제작, 오는 5월 어린이날까지 부착을 마쳐 통학하는 학생뿐 아니라 인근 공장 근로자들과 주민들도 오며 가며 한자를 익힐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김기동 성수2가3동장은 “이 지역의 3분의2가 공장지역으로 근로자와 주민들 사이에 주차·쓰레기 문제로 마찰이 잦았다.”면서 “지역의 구성원들이 학습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 여성이란 성욕의 주체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 여성이란 성욕의 주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욕망은, 존재욕이다. 존재하려는 욕망, 곧 살아 있고자 하는 욕망이다. 존재욕은 다시 두 가지 욕망을 구체화된다.‘예기’는 이렇게 말한다.“음식과 남녀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음식을 먹는 것과 남녀관계, 곧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다. 아니, 그 욕망이 곧 인간이다. 인간은 식욕과 성욕의 구성물인 것이다. 식욕이 없다면, 인간 개체는 소멸한다. 성욕이 없다면 종으로서의 인간이 소멸한다. 그런 까닭에 식욕과 성욕은 인간을 성립시키는,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 욕망이다. 식욕은 음식과 인간 개체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이다. 이에 반해 성욕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이다. 그리하여 성욕은 보다 복잡한 욕망이 된다. 또 인간 개체가 소멸해도 인간이 남을 수 있는 것은 성욕 때문이다. 성욕이야말로 어떤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는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것이다. 이제 그림 두 폭을 보자. 혜원 신윤복의 그림 ‘서생과 아가씨’의 왼쪽에 고운 아가씨가 기둥에 기대어 있고, 유건을 쓴 서생은 시선을 한 곳에 모으고 단정히 앉아 있다. 젊은 두 남녀는 서로 아는 사이인가? 선비가 아가씨를 불렀던가. 아닐 것이다. 선비가 아가씨를 불렀다면 저럴 수가 없다. 아가씨가 사모하던 선비를 찾아간 것이다. 또 다른 혜원의 그림 ‘영감님과 아가씨’에서는 몸을 돌린 아가씨를 안경을 쓴 초로의 남자가 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다. 여자의 인기척에 내다본 것일 게다. 둘 사이의 은밀한 사연이야 알 길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 관계라는 것은 쉬 짐작할 것이다.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조합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개인간의 합의의 결과라면, 누가 무어라 할 것인가. 어쨌건 위의 그림에는 성적인 아우라가 감돌고 있다. 때는 조선시대다. 우리는 여자가 흠모하는 남자를 직접 찾아간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과연 그럴까. 잘 알려진 어우동을 생각해 보자. 어우동은 수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로 사형을 당한다. 이것이 죽을 죄가 된다면, 왕이 여러 명의 후궁을 거느리는 것은 왜 죄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탐식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비난할 수는 있어도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우동이 미움의 대상이 된 것은, 직접 나서서 남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어우동은 욕망의 주체였던 것이다. 남성의 가부장적 욕망은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한데 조선 초기의 ‘실록’을 읽어 보면, 어우동과 마찬가지로 성적 주체로 행동한 여성이 적지 않다. 기록에 남지 않은 여성들은 더 많았을 것이다. 흔히 어우동 사건을 똑 따내어, 어우동을 성리학이 강요한 도덕의 억압에 항거한 최초의 여성으로 보지만, 그건 아니다. 어우동의 시대에 성리학의 도덕적 족쇄는 막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이다. 해서 여성은 남성을 찾아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다. 어우동은 그저 그 시대의 사랑의 문법을 따라 과감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어우동은 결코 여성해방론자가 아니다. 이 시기 여성이 사랑에 적극적일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조선은 1392년 성리학을 국가이데올로기로 삼아 건국되었지만, 건국 즉시 모든 인간이 성리학에 의식화되지는 않았다. 양반-남성은 고려의 국가권력을 찬탈하고 성리학을 국가이데올로기로 삼는 국가를 건설하고, 이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 인간과 사회를 성리학으로 길들이고자 했지만, 그 과정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여성과 남성의 위상 조정이었다. 어우동이 살던 시대의 결혼제도는 남성이 여성의 집에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처가살이혼이었다. 남성이 처가에서 살고 아이들이 외가에서 성장하는 가족제도 하에서 가부장적 권력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 있겠는가. 사회는 가부장제 사회인 것은 분명했지만, 가부장제의 관철 강도는 상당히 미약했던 것이다. 처가살이를 시집살이로 바꾸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고,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친 뒤인 17세기 중반에야 본격적으로 시집살이혼이 시작되었다. 여성이 남성의 본격적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랑의 형태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결혼 전에 자신이 바라는 남성을 만날 수 없었고, 결혼 뒤에는 남성의 집안에 유폐되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음란한 일로 치부되었다. 중종조의 인물인 조광조의 경우를 든다. 그의 옆집에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사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과부가 된 여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홀로 지내는데 옆집의 미남 조광조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끓어오른 춘정에 여자는 담을 넘어 그 남자에게 남녀 음양의 이치를 알려달라고 애걸한다. 그 젊은 도덕군자는 절개를 지켜야 할 여자가 음란한 짓을 한다면서 종아리를 쳐서 쫓아낸다. 내쫓긴 여자는 돌아가 수치감에 목을 맨다. 자초지종을 들은 조광조의 아버지는 어찌 그리 야박한 짓을 했느냐고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지만, 무슨 소용인가. 조광조는 중종조의 사람이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자.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이행하면서 조선 후기의 가부장제는 보다 강고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의 성을 출산과 쾌락으로 분리했으며, 후자에 부도덕의 굴레를 씌웠다. 여성이 쾌락과 관련된 성욕을 추구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다. 아니, 상상하거나 말하는 것도 모두 부도덕한 일이었다. 이제 성욕의 발현 형태로서의 사랑 역시 모습을 바꾼다. 여성은 남성이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춘향을 찾은 것은 이도령이었고 춘향이 아니었다. 옥에서 낭군을 기다린 것은 춘향이고, 그 춘향을 구원하는 것은 이도령이다.‘춘향전’은 불변의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기다리는 여성과 찾아가는 남성, 고난에 빠진 가련한 여성과 그 여성을 구하는 씩씩한 남성의 이야기다. 그 사랑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적 사랑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랑도 여성의 성적 주체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었다.‘기문습유’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서울 용산에서 물건을 수레로 옮겨주는 수레꾼이 있었다. 어느 날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데, 누가 부른다. 보니 젊은 여성이 좀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들어가 수작을 해 보니, 남편은 별감인데 숙직하러 갔단다. 수레꾼이 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남편이 짬을 내어 돌아와 아내를 품으려는 것이 아닌가. 수레꾼은 놀라 숨었고, 여자는 쌀쌀 맞게 남편을 거부했다. 숙직소를 오래 비워둘 수 없는 남편이 떠나자, 여자는 다시 수레꾼을 불러내어 황음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황홀경에서 벗어난 수레꾼은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또 생각해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음란한 여자가 아닌가. 내친 김에 죽이고 말았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그 여자의 남편이 지목받아 죽게 되었다. 수레꾼은 우연히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여자의 남편을 보고, 관에 출두해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다. 관에서는 음부를 죽이고 억울한 사람을 살린 의인이라고 해서 죄를 면하고 상을 내린다. 나는 이 여성의 부도덕함을 말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끌어온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여성 역시 성욕의 주체임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성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성적 주체라고 생각한다. 한데 과연 그럴까. 무엇이든 일반화는 위험한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욕은 인간 자체이기 때문에, 성욕의 봉쇄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성리학은 여성의 자기 성욕과 사랑의 주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담론을 진리처럼 유포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도덕적 담론의 존재가 곧 리얼리티는 아니다. 그렇다 해서 도덕적 담론이 없는 리얼리티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도덕적 담론과 욕망이 맺는 그 관계에 우리가 보고자 하는 성의 리얼리티가 존재할 것이다. 성욕은 윤리와 도덕을 초월해 존재하며, 도덕의 완강한 족쇄에도 성욕은 언제나 틈을 비집고 나온다. 그 모습을 위의 두 그림이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안녕, 스퐁나무/하은경 글·이형진 그림

    어느 날 아빠가 현이에게 캄보디아 여행을 제안했다. 사원을 집어삼키고 있는 ‘아주 커다란 나무’를 보는 게 아빠의 목적이다. 엄마와 별거 중인 아빠는 집을 따로 얻어 살고 있다. 새 애인이 생긴 까닭이다. 아빠와 가기 싫은 캄보디아 여행을 하며, 현이는 아빠에게 묻고 또 자문한다. 새로 사귄 사람이 그렇게 좋은지, 엄마와 왜 결혼했는지, 결혼이 도대체 뭔지, 가족은 뭔지…. ‘안녕, 스퐁나무’(하은경 글·이형진 그림, 문학동네 펴냄)는 가족과 가족제도에 질문을 던지는 동화다. 올해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스퐁나무는 일종의 무화과나무. 사원 지붕이나 담벼락에 뿌리내린 뒤 결국엔 사원 자체를 뚫고 들어가 파괴하는 나무는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캄보디아 여행자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가족의 의미는 스퐁나무를 묘사한 몇 문장에 집약돼 있다. 스퐁나무는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나무 뿌리가 지붕과 벽을 뚫고 사원을 한 입에 꿀꺽 삼키려 하는 꿈틀대는 구렁이 몸뚱이” 같은 존재지만,“이젠 사원과 한 몸처럼 살게 되면서 베어내면 사원이 무너져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다.“서로를 괴롭히면서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 그게 바로 가족이란 메시지다. ‘안녕, 스퐁나무’는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동화는 가족제도를 건드린다.‘가족’을 이야기하는 어린이문학은 많았지만,‘가족제도´를 다루는 어린이문학은 흔치 않았다. 현실에서 가족 형태는 급격히 분화되고 있으나, 인식에서 가족제도는 모든 사회제도의 근간이자 ‘영원불변의 전통’으로서 굳건하다. 현실과 인식의 괴리는 가족제도를 어린이문학이 접근하기 곤란한 민감한 주제로 만들었다.‘안녕, 스퐁나무’는 아버지의 외도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각을 빌려 어린이문학이 놓쳐온 ‘또 하나의 현실´에 다가가는 징검다리를 놓는다. 반면 작가가 스퐁나무를 작품 중심 소재로 놓는 순간 이야기 결론까지 정해지고 말았다. 가족은 스퐁나무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서로를 떼어 놓지 못하고 끝까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관계’로 귀결된다. 엄마는 전통적 가족제도가 여성에게 강요한 자리를 지키고, 아빠도 마침내 ‘한때의 실수’를 인정한다. 가족의 형태는 ‘n분의1’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아빠-엄마-아들·딸’로 이뤄진 가족만이 ‘정상’일 경우 편모·편부가족, 조손가족은 늘 ‘비정상’이자 ‘결손’일 수밖에 없다는 고민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가족이란 혈연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돼 가는 것이란 자각에 이르지 못한 결말이 아쉽다.”면서도 “향후 어린이문학이 탐구해가야 할 문제의식 하나만은 확실히 던져준다.”고 평가했다. 초등 5학년 이상.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일반인 230명 첫 개성 나들이

    신새벽 어둠을 뚫고 달린 지 세 시간여. 버스가 구불구불 산길을 오른다싶더니 그 유명한 박연폭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살얼음이 낀 탓에, 떨어지는 폭포수의 장엄함은 덜했다. 폭포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북측 남자 관광안내원이 걸쭉한 육담을 던진다. 연못 한가운데에 큰 돌멩이가 하나 박혀 있는데 그 모양을 두고 천연덕스럽게 진한 비유를 던졌다. 남측 관광객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박연’이라는 이름도 이 돌멩이에서 유래됐다. 바가지 모양 같다고 해서다. 박연폭포는 황진이·서경덕과 더불어 송도 3절로 꼽힌다. 고려 475년 도읍지로서의 영광과 조선시대 억압의 역사를 한데 지닌 개성이 5일 남한 관광객들에게 처음 문을 열었다. 새벽 6시 서울 계동에서 출발한 10대의 관광버스에는 총 230명의 일반 관광객이 나뉘어 탔다. 최고령 관광객인 김윤경(87) 할아버지는 북측 영접단으로부터 꽃다발을 전달받고 “살아 생전 고향 땅 개성을 다시 밟아보다니 꿈만 같다.”며 57년만의 고향방문을 감격스러워했다. ●매일 300명출발·요금 18만원 개성관광은 금강산관광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금강산이 내금강까지 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외진 관광지라면, 개성은 비무장지대쪽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명승지를 구경하다 고개만 들면 담벼락 저편의 출퇴근하는 개성시민들,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 등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지척에서 느낄 수 있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북한이 (개성 개방이라는)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줬다.”며 “금강산∼백두산∼개성을 잇는 삼각 축이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겨울철인데도 이달 개성관광 예약자 수는 벌써 7000명에 육박한다. 북측 안내원의 해설을 뒤로 하고 통일관으로 이동했다. 그 유명한 13첩 반상기와 개성약밥이 점심 상에 올랐다. 점심식사 뒤 선죽교를 찾았다. 고려의 아픔이 담긴 또 하나의 장소다.‘명성’보다는 규모가 작다. 고려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철퇴에 맞아 피흘리며 죽어간 곳이다. 정몽주의 혈흔이라는 검붉은 자국은 후세 사람들이 그럴 듯하게 보이는 돌을 옮겨다 놓은 것이지만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개성관광은 하루에 300명씩 매일 출발한다. 요금은 18만원이다. 개성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 만개하니…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 만개하니…

    한 줄기에서 태어났지만, 잎은 꽃을 못 보고, 꽃 또한 잎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움에 절여져 핏빛처럼 붉은 꽃, 바로 ‘꽃무릇’입니다. 한 수도승을 향한 사랑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느 여인의 한이 맺혀진 꽃이란 전설이 전해 오지요. 그래선가 봅니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군요. 첫번째 찾았을 때는 꽃대조차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화사한 자태 보겠다고 서울에서 전북 고창으로, 전남 영광으로 그 먼거리를 달려간 방문객을 어찌나 야멸차게 거부하던지요. 공연히 마음만 달떴습니다. 한 번 돌아선 여인의 마음이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게지요. 글 사진 고창·영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꽃무릇 여행 1번지 여름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이맘때면 전북 고창의 선운사 골짜기에는 꽃잔치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가을을 여는 꽃무릇의 향연이다. 대체로 백로무렵 피기 시작해 9월 중순경 절정을 이루지만, 유난히 늦여름 비가 많았던 올해는 개화시기가 늦어져 한가위 무렵부터 절정을 이루기 시작했다.10월 초까지는 아리따운 꽃무릇의 자태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게 선운사 관광안내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두번째 찾은 선운사 들머리에 꽃무릇이 만개해 있다. 늘씬한 미녀의 각선미를 연상케 하는 연초록 꽃대 위로 왕관처럼 붉은 꽃술이 펼쳐져 있는 모습. 반가운 마음 한편으로 도로 양옆의 철제 가드레일 밑에 고개를 꺾고 있는 모양새에서 애처로움도 느껴진다. 아름답고도 꾀까다로운 이 꽃은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은밀한 환경에서 피어 있어야 할 터. 꽃무릇 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식재했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제 있을 곳이 아닌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니, 노류장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관광객들의 눈수발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처량하다. 꽃무릇을 흔히 상사화(想思花)라고도 부른다.9∼10월쯤 잎이 없는 꽃대에서 꽃이 나오고, 꽃과 꽃대가 모두 사라진 11월쯤 땅바닥에서 개난초 비슷하게 생긴 잎이 펴 겨울을 난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상사화로 불리게 된 연유. 하지만 개화시기나 꽃잎의 색깔 등에서 상사화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꽃무릇은 유독 절집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쓰임새가 요긴하기 때문이다.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함유돼 있어서 탱화를 그릴 때나 단청을 할 때 찧어서 바르면 좀처럼 좀이 슬거나 색이 바래지 않는다고 한다. 독기 품은 여인네처럼 비늘줄기에 품은 유독물질을 제거한 다음 얻은 녹말로 한지를 붙이면, 강력한 살균력 때문에 역시 좀이 스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선운사 들머리에서 절집 담벼락까지 약 200m 구간은 평지형 계곡의 꽃무릇 군락이 장관. 계곡물에 투영된 나무와 꽃무릇의 붉은 색감이 가을 분위기를 돋운다. 선운사 맞은편 동운암으로 향하는 산책로 주변 산자락은 마치 불이 붙은 듯하다. 동운암 못 미쳐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뜻밖에 넓은 차밭과 만날 수 있다. 꽃무릇은 물론 물봉선, 들국화 등 들꽃들이 차밭 고랑 사이에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솔제 휴게소 왼쪽길과 진흥굴 지나 소리재와 포갠바위로 향하는 계곡 등의 꽃무릇 무리도 볼 만하다. 길이 넓고 평탄해 가족과 함께하는 트레킹 길로 마춤하다. 선운사 관광안내소 063)560-2712. #불갑사와 용천사도 가볼 만 전남 영광군의 불갑사도 선운사 못지않은 꽃무릇 군락지. 여느 절집과 달리 부처의 옆모습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의 대웅전이 유명한 곳이다. 최고의 감상 포인트는 대웅전 뒤편 저수지 주변. 조석으로 사진작가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저수지와 잇닿은 산비탈을 가득 채운 꽃무릇이 장관을 이룬다. 사찰 토담벽이나 저수지의 잔잔한 물, 혹은 무게감있는 나무들을 배경삼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저수지 주변의 호젓한 오솔길은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그만이다. 함평 용천사는 불갑사에서 차로 15분 거리.100여 종의 야생화와 꽃무릇이 어우러진 꽃무릇공원이 조성돼 있다. 용천사를 휘돌아간 꽃무릇 군락이 이 일대를 별유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사찰 위 푸른 왕대나무 밭 아래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풍경이 압권. 어렵사리 피어나 잠깐만에 지고 마는 꽃무릇이 남도의 가을을 붉게 붉게 물들여 가고 있다. 영광군청 문화관광과 (061)350-5752, 함평군청 문화관광과 320-3364. #가는 길 선운사:서해안고속도로→선운산 나들목→좌회전→22번국도 선운사 방향. 불갑사:서해안고속도로→영광 나들목, 호남고속도로→정읍 나들목→고창→영광→불갑사. 용천사:서해안고속도로 영광나들목→23번 국도 함평방향→백운리 삼거리→좌회전→838번 지방도→5㎞→용천사. #이곳도 가보세요 ▲학원농장-초봄에는 청보리밭이었던 들판이 가을이면 메밀꽃밭으로 변한다. 규모면에서 국내 으뜸.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www.borinara.co.kr,(063)564-9897. ▲광백사 천일염전-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와 염산면 일대에 광활하게 펼쳐진 천일염전지대. 전국의 천일염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에 이어 두 번째 규모.
  • [아프간 석방 이후] 피랍에서 석방까지

    [아프간 석방 이후] 피랍에서 석방까지

    |두바이(아랍에미리트) 류지영특파원·카불 공동취재단|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돼 40여일간의 억류 생활 끝에 풀려난 한국인 피랍자 19명을 대표해 유경식(55)씨와 서명화(29·여)씨는 3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의 세레나 호텔에서 처음 국내 언론과 기자회견을 갖고 납치 상황과 억류생활, 석방 상황 등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납치에서 석방까지를 재구성했다. ■ 출발직전 운전기사 바뀌어 막무가내로 2명 합승시켜 아프간으로 봉사활동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원 23명은 지난 7월19일 아프간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전세버스를 이용해 가는 길에 운전기사가 “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다른 운전사를 소개시켜 주었다. 봉사단원들은 당시 “밤엔 위험하지만 낮엔 안전하다.”는 말을 믿었다. 새로 온 운전기사는 가즈니주를 지나는 길에 현지인 2명을 태웠다. 봉사단원들이 “왜 모르는 사람을 태우냐.”고 항의했더니 운전기사는 “가면서 내려주면 된다. 아는 사람이다.”고 막무가내로 버스에 태웠다. 2명을 태운 뒤 20∼30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당시 이들은 운전기사에게 총을 겨누면서 정지하라고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했다. 이어 운전사가 정지를 하자 탈레반이 차를 옆으로 빼라면서 차 바퀴에 한발을 쐈다. 차 안으로 무장한 2명이 올라와 운전사를 구타했고, 전부 내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고 배형규 목사는 실신을 하는 등 일행 대부분이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이어 탈레반은 이들을 오토바이 등에 태워 비포장도로로 10분 정도 달려 한 마을로 데려갔다. 맨 처음에 전체를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우고 담벼락 앞에 기관총 소총으로 위협했다. 서너명이 무기로 위협하고 한 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총을 겨누자 이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러더니 자기들이 알카에다라고 밝히는 등 그제서야 신분을 드러내면서 돌변했다.“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총쏘는 시늉을 하면서) 한다.”고 위협했다. 탈레반의 납치극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탈레반이 사전에 치밀히 준비한 것이었다. ■ 5일째부터 3~4명 분산 억류 감자 2개로 4명이 끼니 때워 AK 소총으로 무장한 탈레반은 회당안에 강제로 몰아 넣었다. 회당에서 이들은 단원들이 가지고 있던 핸드캐리용 짐 배낭과 몸을 수색하면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회수했다.“우린 정부의 사복 경찰인데 너희들을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하려고 임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돌려 줄테니 걱정 말라.”면서 노트북 1대, 카메라, 캠코더, 휴대전화 등을 가방 2개에 집어넣고 갈 때 돌려주겠다면서 자물쇠를 채웠다. 탈레반은 반 지하에 짐승 우리 같은 창문 없고 환기통 하나 있는 곳에 감금했다. 이어 이곳에서 나흘 밤을 자고 4박5일 만에 분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11명이 나눠지고 12명은 그 다음에 6명으로 나뉘고 다시 3∼4명씩 나눠졌다. 이들은 주로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10차례 이상 자리를 옮겼다. 이동은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오토바이에 태워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불빛 신호를 보내면서 이뤄졌다.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번 있다. 초반에는 민가에서 보호되면서 그 사람들도 못 먹고 못 살고 해서 적응이 안 됐다. 비스킷 먹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달라고 손짓 발짓했다. 감자 2개를 절반으로 쪼개서 4명이서 먹었다. 토굴에도 머물렀다. 집 마당에 한 사람 겨우 들어갈 토굴이 있었는데 4m 깊이 끝엔 T자로 25m 크기였다. 몸집 작은 사람이 겨우 갈 정도였다. 첨엔 걸려서 못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 기도를 했었다. 탈레반은 “너희가 아프다고 해야 빨리 구출해 준다.”며 육성을 녹음하기도 했다. ■ 29일 탈레반이 석방 알려줘 동료 2명 살해소식에 눈물 8월25일쯤 탈레반이 2명 와서 4일 밤을 자면 석방된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건강 이상없냐. 누구 있냐.”고 물어 “언제 나갈 수 있냐.”고 했더니 며칠만 참으라고 했다. 29일쯤 탈레반이 와서 석방이라며 2명 먼저 간다고 했다. 그날 서씨에게 여자 1명과 함께 나오라고 요구했다. 서씨는 “함께 있던 4명이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하자 보스처럼 생긴 사람이 “너희 정부에서 다 내보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 서명화, 차혜진씨 2명을 탈레반이 오토바이로 접선 장소에 떨어뜨려 놓고 망원경으로 살펴볼 때 둘러보니 적십자 차와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31일 오전 1시쯤 카불 세레나 호텔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의 재회를 했다. 탈레반에 의해 마지막으로 풀려난 제창희(38)씨 등 7명은 30일 밤 먼저 풀려난 12명과 합류했다. 제씨 등은 풀려날 당시 배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됐다는 사실을 몰랐고, 먼저 풀려난 동료들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superryu@seoul.co.kr
  • 일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젊은 화가들… ‘공공미술프리즘’

    일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젊은 화가들… ‘공공미술프리즘’

    볼품없는 개 한 마리와 꽃들을 그리며 웃다 “와! 해바라기가 그새 내 키보다 컸네.” 햇볕이 쨍쨍한 안산 협궤 변에는 주민들이 텃밭 삼아 가꾼 야채며 이름 모를 들꽃들로 가득하다. 듬성듬성한 철로 흔적을 따라 거닐며 해바라기와 키 재기를 하는 유다원 씨. “맞은편 승객들의 무릎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았던 꼬마 기차의 추억을 테마로 각종 전시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물론 안산 주민들과 함께요.” 그는 지난 2002년 발족한 문화예술 단체 ‘공공미술프리즘’의 안방 살림꾼이다. 살아가는 모든 공간을 화폭 삼아 예술이 주는 감흥을 함께 나누는 공공미술프리즘. 재능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젊은 예술가 여섯 명은 좁은 아틀리에를 벗어나 붓을 들고 사람들 곁으로 다가간다.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공원 벤치에서부터 골목길 담벼락, 놀이터, 노인정, 버스 할 것 없이 그들 손길이 닿는 것은 곧 예술 작품이 된다. 또 그들과 함께하는 주민들은 예술가가 된다. 경기도 안산 협궤 변을 거닐며 작품 구상을 하고 있는 공공미술프리즘 단원들. 왼쪽부터 김지영.최승미.유다원.전유라. 맏언니 격인 전유라 팀장은 지난해 서울 수궁동에서 주민들과 함께 했던 벽화 작업을 잊지 못한다. “한 아주머니가 볼품없는 개 한 마리와 꽃들을 정성껏 그리며 흐뭇하게 웃고 계신 거예요. 집에서 기르는 똥개 ‘개똥이’라나요. 외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유일한 벗이라며 죽을 때까지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한 그림이래요.” 붙임성 좋아 보이는 그는 주민들과 작업을 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준다. “단순히 담벼락만 예뻐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도 순화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예술을 매개로 한 저희의 역할이에요.” 낯선 곳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텃세를 만나게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림을 그리거나 이상한 조형물을 설치하니 잘 알지 못하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공익을 위한 예술 활동을 강조하며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민들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 평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성산동 시영아파트 작업 때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 조사를 벌이며 아이디어를 모으기도 했다. “페인트를 칠하거나 조각할 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가와 신기한 듯 미술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자연스럽게 작업에 참여했죠. 한창 그림을 그리다가 배고프면 같이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즉석에서 화려하게 꾸미기도 했어요.” 막내 최승미 씨는 유독 마을 어르신들과의 추억이 많다. 고양시 원흥동 마을 회관 현판 글씨를 써준 할아버지는 그가 찾아낸 달필가다. “처음엔 구경만 하시다가 막상 붓을 건네니까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이 나오는 거예요. 쑥스러우신지 연방 헛기침을 하시면서 어찌나 정성을 쏟으시던지요.” 그는 작업을 끝내고 할아버지와 마셨던 시원한 맥주와 마을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김치비빔국수를 잊지 못한다. 새 단장 덕분에 마을 회관엔 이웃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한다. 공공미술프리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200여 명에 달하는 자원 활동가들과 ‘언덕’이라 불리는 든든한 후원자들도 있다. “후원을 부탁하려고 지역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찾아가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는데 요즘엔 오히려 그분들이 저희를 찾아요.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예요. 이곳 안산이 처음으로 저희를 맞이했던 곳이라 뜻 깊죠.” 안산 상록구 주민들은 커다란 고래가 헤엄치는 그림 위에서 족구를 하고, 하늘을 닮은 원형 정자에서 비를 피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놀이 기구에 그린 자기 그림을 가리키며 솜씨를 자랑하기에 바쁘다. 이제는 주민들과 함께 아련한 협궤 열차의 추억을 더듬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이 환하게 피어 있는 해바라기를 닮아 있다.
  •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4)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4)

    한국불교연합회 소속 대학생 50여명이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고구려의 옛 땅인 중국 동북지역 탐방을 떠났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의 인도로 ‘코리아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이번 탐방길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편집자주- 6월 28일 탐방 4일째 아침.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계속 이어졌다. 비옷과 우산으로 무장하고 ‘오녀산성’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오녀산성’이라는 이름은 전설 속의 용감한 다섯 자매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던 흑룡이 산에 살았었는데 이들 다섯 자매가 맞서 싸워 용을 죽이고 자신들도 모두 죽었다는 전설이다. 현재 오녀산성은 마르지 않는 우물인 ‘천지’와 일부 담벼락만이 남아있다. 오녀산성에서 4시간 거리를 이동해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석회암 동굴 ‘본계수동’에 도착했다. 어두운 동굴 안을 보기 위해서는 보트를 타야했다. 본계수동을 둘러보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요녕성 내 최대의 도시 심양에 도착했다. 이곳이 흔히 ‘만주벌판’이라고 말하는 지역이다. 비 오는 심양의 거리에서 만주벌판을 그려본다. 평양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우리 일행은 평양 아가씨들의 공연에 더 관심이 쏠렸다. 평양관에서 공연을 하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평양 친구들을 보면서 가슴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6월 29일. 탐방 5일째 아침이 밝았다. 새벽녘에 아침을 먹고 고구려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는 ‘백암산성’을 향했다. 백암산성은 뒤쪽으로 ‘태자하’라는 강이 흐르고 앞쪽은 가파른 경사 위에 자리잡고 있어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웠던 산성은 성벽을 쌓은 돌을 가져다가 인근 가정집 보수에 쓸 만큼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웠다.백암산성에서 내려와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처음 본 ‘녹두 아이스크림’이다. 예정대로라면 바로 ‘비사성’으로 달려가야 했다. 중국에서의 ‘옆집거리’ 4시간 정도를 갔어야 했지만 일정이 너무 늦어져 다음날로 일정을 연기했다. (계속) 글=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김옥미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1)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2)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3)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4) 경북 봉화 반야마을·샘터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4) 경북 봉화 반야마을·샘터마을

    경상도에서 오지라면 단연 봉화다. 봉화에서도 산골 중의 산골로 꼽히는 석포면 반야마을과 샘터마을. 강원도 태백시를 지나 석포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7㎞쯤 들어가면 도 경계를 넘어 경상북도의 끝자락이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나래기(날개의 방언)를 거쳐야 한다. 마을 모양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과 산비탈 사잇길은 일방통행만 가능한 좁은 길이다. 화전으로 일군 비탈밭은 하늘에 닿아 있다. 고랭지 채소들의 초록빛과 하늘의 푸른색이 청량하다. 이른 아침부터 비탈밭에서 쟁기질을 하는 조상규(65)씨.“요새 채소값이 좋아. 오늘 안으로 저기 산밑에 있는 밭까지 다 갈아야 돼.”라며 아득한 산밑을 가리키며 소를 재촉한다. 나래기 마을을 지나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가파른 노루목을 오르면 짙은 녹음 사이로 탁 트인 너른 들판이 나타난다. 반야계곡의 절경이다. 마을 모양이 소반같이 생겨서 넓은 들이라는 반야(盤野)마을이다. 예로부터 반야마을은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다고 전해 온다. 첫째는 들이 넓어 굶어죽을 염려가 없고, 둘째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니 전염병이 들 리 없고, 셋째 사방이 높은 산과 깊은 골이어서 전쟁의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넓은 들에는 아침부터 아낙들이 줄지어 무씨를 심고 있다. 모자란 일손을 도우려 면에서 왔다는 아낙들은 부지런한 손놀림과 흥겨운 노래로 밭을 메워 나간다. 고랭지 채소를 대구와 부산으로 출하한다는 김진표(68)씨.“채소 농사는 로또와 같아. 온갖 정성을 다해 70일이나 키워. 그래도 폭락할 때는 그 자리에서 갈아 엎어.”라며 채소농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 마을은 춘양목으로 유명했다.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이 소나무는 건축재와 가구재로 많이 쓰여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1996년에 폐교된 반야 분교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분교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200년 된 춘양목이 마을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윗부분은 말라 죽어가고 있다. 작년에 분교를 매입했다는 서양화가 황재형(56)씨는 반야마을에 푹 빠져 있다. 서울에서 태백으로 또다시 반야마을로 들어왔다는 황씨는 오염되지 않고, 자연이 살아 있고, 사람을 품듯이 다정한 지형이 마음에 들었단다. 그래서 춘양목 아래 놓여 있던 정자를 비롯해 자연을 거스르는 불필요한 치장과 시설물들을 제거했다. 반야마을을 지나면 샘터마을이 나온다. 가뭄이나 홍수 때나 마르지 않으면서 언제나 똑같은 물맛을 유지한다는 웅덩이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샘터는 찾을 수 없고 기도처가 자리잡고 있다. 농가 마루에서 오수(午睡)를 즐기던 김진복(70)씨는 “집이 석포면에 있지만 매일 여기에 와. 여기가 제일 편해.”라며 한평생을 지낸 옛집을 찾아 유유자적한다. 자연을 친구 삼아 산에서 약초도 캐고 밭에서 일도 하는 게 제일 좋단다. 해질 녘이면 오토바이로 집으로 돌아간다. 공영버스가 하루 한 편. 그나마 공휴일에는 차편이 없어진다. 그래도 집집마다 무쇠솥이 걸려 있고 담벼락엔 장작을 가득 쌓아 두는 마을이다. 수십년 된 흙벽과 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산길을 따라 드문드문 한가롭게 놓여 있다. 한때 100호가 넘게 사람들이 살았으나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어린이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산비탈을 화전으로 개간한 억센 생명력의 주민들이 자연을 닮은 평화로운 얼굴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조각가 이환권 두번째 개인전

    조각가 이환권 두번째 개인전

    길게 늘어나거나 짜부러진 인물 조각들이 어딘지 기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지난해 11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2점의 작품이 예상가의 10배가 넘는 7500만원에 각각 팔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끈 이환권(33)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미술관(02-822-3457)은 다음달 12일까지 ‘바람부는 날’이란 제목으로 이환권의 조각전을 연다. 합성수지인 FRP로 정감있게 빚어 낸 이환권의 인체는 심하게 왜곡돼 있지만, 어떤 특정한 몸짓을 간직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책이 되다’), 책상에 엎드려 있고(‘오늘은 공부하기 싫어’), 혹은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바람부는 날’)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동작들이다. 작가는 지인들을 여러 방향에서 촬영한 뒤에 포토샵을 이용해 일정한 비례로 가로 또는 세로의 방향으로 늘인다. 만들어진 사진을 조합해 흙으로 빚고 다시 FRP로 떠내는 작업은 적지 않은 노동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길쭉해진 이웃의 모습은 어딘지 애련한 모습이다.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가 연상되기도 하고,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길쭉한 검은 인물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각적으론 즐거우면서도 괴로움을 안겨주는 작품들이다. 대학로의 공공미술 작업 ‘낙산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그의 조각작품 ‘앉아 있는 민형’은 담벼락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조각 작품은 지난해 2억 4000만원의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각광받았고 올해는 홍콩 소버린 아트파운데이션, 타이완 아트센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애드윈갤러리 등으로부터 5억원 규모의 작품을 주문받은 상태다. 오는 10월에는 독일 뒤셀도르프 안데스 갤러리에서 첫 해외 개인전도 열 예정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동아프리카 3국 난민캠프 조명

    1995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은 모두 20만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영국과 캐나다·독일도 각각 13만명 남짓한 난민을 인정했다. 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이 이 기간 동안 난민 자격을 부여한 사람은 52명에 불과하다. 20일은 유엔이 정한 ‘난민의 날’.‘난민들에게 가장 큰 재앙은 무관심’이라는 지적이 유난히 가슴속에 ‘콕’ 들어와 박힌다. 이런 맥락에서 EBS가 이날 오후 8시에 방송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아프리카 3국, 난민캠프를 가다’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 유엔난민기구가 주선하고 한국언론재단이 후원하는 취재단이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우간다·탄자니아의 난민 캠프를 찾았다. 에티오피아 케브리베야 캠프의 유엔사무소 담벼락에는 이웃나라 소말리아에서 종족분쟁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 난민지위를 얻기 위해 길게 늘어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난민으로 인정받는 절차는 까다롭다. 심사만 받는 데도 석 달가량 걸린다. 인터뷰는 가족 전부가 받아야 한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필사적인 까닭은 식량배급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 지위를 얻는 순간 새로운 시련이 시작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체의 3분의1밖에 되지 않는다. 또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갈 데가 없다. 아이들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축구다. 제3국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받아들이는 나라는 적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 캠프보다는 분쟁이 벌어지고 있더라도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탄자니아 루콜레 캠프의 부룬디 난민들은 일주일에 두 차례 고국으로 가는 심사를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난민은 모두 2080만명. 유엔난민기구의 예산으로 난민 한 사람에게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하루 200원에 불과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깔깔깔]

    ●잘못하면 목이…. 신혼인 영수는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고민끝에 영수는 비아그라를 사려고 약국에 갔다. “뭘 드릴까요?” “비아그라 주세요.” 비아그라를 봉투에 담던 약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 약을 드실 때는 빨리 삼키셔야 합니다.” 약사의 말에 깜짝 놀란 영수가 물었다. “아니, 왜요?” 그러자 약사가 하는 말, “잘못하면 목이 뻣뻣해지거든요.”●기발한 아이디어 너무 많은 자전거가 매일 자신의 집 담벼락에 세워져 있자 고민을 하던 집 주인이 담벼락에 자전거를 세워놓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였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부탁의 글을 써 놓기도 하고 온갖 협박의 글도 써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궁리끝에 집 주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여기 세워진 자전거는 모두 공짜 입니다. 아무거나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 그녀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는 속사정

    그녀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는 속사정

    “원 세상에,이런 일도 있습니까? 은행에 저축하기가 너무 번거로운 것 같아 현금을 벽장에다 몰래 숨겨뒀는데….쥐새끼들에 도둑을 맞다니!” 중국 대륙에 한 여성이 귀찮고 번거로워서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벽장에 몰래 숨겨뒀는데,쥐가 이 돈을 물어뜯어버리는 바람에 못쓰게 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 다쭈(大足)현에 살고 있는 한 50대 여성은 두부 장사로 애면글면하며 모은 돈 1만 8000위안(약 216만원)을 몰래 숨겨뒀는데,이를 쥐가 물어뜯어 못쓰게 만들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중경상보(重慶商報)가 최근 보도했다. 이같은 ‘황당한’ 사연의 주인공은 다쭈현 빈허신촌(濱河新村)에 살고 있는 뤄(羅·여·54)모씨.손으로 곱고 맞있게 빚은 두부를 내다팔아 그날그날의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는 보통 사람인 까닭에 ‘큰 돈’을 잃어버려 허탈하기만 할 뿐이었다. 지난달 28일 다주현 한 은행지점.뤼씨는 찢어진 돈이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메고 찾아갔다.은행에 들어서자 마자,“원 세상에,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녀가 풀어놓은 자루 안에는 쥐가 물어뜯어 조각조각 난 지폐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뤼씨와 은행 직원 등 3명이 1시간 동안 모두 짜 맞춰보니 모두 3000위안(약 36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전체 1만 8000위안 가운데 겨우 3000위안만 건진 셈이다. 뤄씨가 이런 일을 당한 사연은 이렇다.지난달 초 두부를 팔아 모은 돈 1만 8000위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 ‘큰 돈’을 은행에 맡길까,아니면 집의 벽장에 몰래 보관할까를 한참 동안 고민했다. 결론은 은행에 예금하기보다 벽장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뤄씨는 1개월 뒤 딸 결혼식 준비 등으로 많은 돈이 필요한 까닭에 몇푼 되지 않는 이자를 챙기려고 은행에 가는 것은 너무 번거롭다고 판단,단단한 자루에 현금 1만 8000위안을 담아 꽁꽁 묶은 뒤 벽장 속에 몰래 숨겨뒀다. 그러던 중 이번 달들어 딸의 혼수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 이 돈을 꺼내려고 벽장에 올라간 뤄씨는 깜짝 놀라 우두망찰할 따름이었다.고이 숨겨뒀던 돈 자루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만 것이다. “벽장 문을 잠궜는 데도 자루가 온데 간데 없어졌으니 황당할 수밖에요.조금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벽장은 물론 집안 곳곳을 2∼3시간 톺아보았으나 어디에도 없었어요.해서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놈이 용돈이 궁하니까 가져갔다고 생각해 아무리 추궁해봐도 아들 녀석은 “절대 손대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에요.정말 미치겠다라구요.” 돈을 찾을 수 없다고 포기한 뤄씨는 마음을 다잡아 먹고 다시 두부 장사에 나섰다.어떤 사람이 두부를 사러왔길래 돈을 받고 두부를 내주다가 우연히 집 담벼락에 난 쥐구멍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든 그녀는 쥐구멍 속을 들여다보니 돈을 넣어둔 자루가 풀어헤쳐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물어뜯어 조각조각 난 돈이 살풍경하게 나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각조각난 돈을 모두 끄집어내 정리해 자루에 담아 이날 은행의 지점을 찾은 것이다.뤼씨는 “집안에 큰 쥐 한마리와 작은 쥐 한마리 등 두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봤는데,쥐가 돈을 뜯어먹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길섶에서] 꿈 속의 아카시아/우득정 논설위원

    고향을 떠난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고향은 여전히 향내를 내뿜으며 꿈길을 타고 다가온다. 겨울은 담벼락 한쪽을 비추는 손바닥만 한 햇살조각처럼 따사롭게, 여름은 한줄기 소낙비와 고막을 때리는 매미소리로 떠오른다. 그리고 5월,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함께 뒤엉킨 아카시아의 짙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잊혀지기엔 향이 너무 짙다. 1년여 만에 다시 고향을 찾기에 앞서 요즘 밤마다 아카시아 꿈을 꾼다. 달빛을 받아 하얀 꽃송이만 도드라진 모습일 때도 있고, 바람결에 탱자나무와 가시돋친 부대낌을 할 때도 있다. 그 산비탈을 걷는 나는 때론 아이였다가 때론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될 때도 있다. 고향 집앞 오솔길을 따라 야트막한 야산까지 길게 뻗었던 아카시아 숲은 아파트와 콘크리트 보도블록에 밀려 오래 전에 사라졌다. 거기엔 더 이상 5월의 향기도 없다. 그래도 5월의 밤이 되면 기억 저편에 숨었다가 얼룩 반점 하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카시아 향에 고향의 그리움을 담아.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과학플러스] KISTI, 佛 국립과학연구소와 공동연구 협정체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이 기술 인력 및 정보 교류, 공동 연구 수행 등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 기관은 구체적인 협력 방안으로 고에너지 물리, 바이오 인포매틱스, 그리드컴퓨팅 분야 등에 한·불 국제연합연구실 설치를 추진키로 했다. 국제연합연구실은 ‘담벼락이 없는 연구소’를 모토로 소수 기관 간에 맺은 장기간 공동연구 협약이다.KISTI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산하 핵·분자물리연구소(IN2P3)는 사이버상에서 컴퓨팅 인프라를 연계 활용하여 입자물리분야 공동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 [문화마당] 글쓰기의 힘/김수이 경희대 교수

    인터넷은 글쓰기와 글읽기의 공간이다. 인터넷의 장점인 무한대의 정보 공유와 소통, 기록과 재구성은 모두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수많은 글을 읽고 쓰는 이들의 이름은 다양한 차원에 걸쳐 있다. 실명, 필명, 가명, 예명, 별명, 익명 등 이름의 모든 유형이 여기 망라되어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난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원하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읽는 인터넷 공간은 지금 이 순간도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중에 있다. 가히 ‘글의 우주의 빅뱅’이라고 부를 만한 규모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정체를 드러내거나 감춘 채 인터넷이라는 글의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은 이제 현대인의 특권이자 삶의 조건이 되었다. 현대문명이 창조한 거대한 글의 우주는 놀랍게도 작은 크기로 도처에 존재한다. 이 우주는 사무실과 안방의 책상 위에 놓여 있고, 달리는 자동차 안에 탑재되기도 한다. 심지어 개인의 주머니 속에도 들어 있다. 컴퓨터를 모체로 하는 인터넷의 경우만은 아니다. 초등학생까지 하나씩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는 개인전용의 글의 우주다. 이 우주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발음을 내며 터진다.“삐릭”,“리리링”,“드드드드”…… 이 글의 우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 동네의 담벼락과 학교 화장실은 갖가지 낙서로 뒤덮여 있곤 했다. 벽과 천장을 통째로 낙서판으로 내어주며 손님을 끈 술집과 카페, 분식점도 많았다. 학교 교실이나 대학 학회실에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비치되어 있는 풍경도 흔했다. 독백과 편지, 농담과 철학적 사변이 가득하던 그 공공의 노트의 제목은 이러했다.‘우리들의 이야기’,‘무제’,‘회색 노트’….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글쓰기 환경의 진화는 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현대문명은 글쓰기의 확산과 일상화를 통해 진보하는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첨단 기기가 등장하면 말 한마디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줄 알았던 예측은 빗나갔다. 사태는 오히려 반대다. 기기와 시스템이 진화할수록 글쓰기는 더 자주,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첨단 정보화 사회의 ‘정보’란 결국 글로 저장되고 유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담벼락과 노트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대를 확장한 모든 사적이며 공적인 글쓰기들은- 때로 모국어를 훼손하고 문법을 파괴하는 문제와는 별도로-그 총량과 에너지 자체로 충분히 경이로운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글을 쓰며 살았던 적은 없다. 더욱이 그 양은 한계를 모른 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보편화된, 거대하고 강력한 글쓰기의 에너지를 제도권의 글쓰기 교육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글쓰기 교육은 중·고등학교의 ‘논술’과 대학의 교양과목인 ‘글쓰기’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의 논술은 입시를 목적으로 틀에 박힌 글쓰기를 권장(?)하는 점에서, 대학의 글쓰기는 그런 논술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에 의해 한 번 듣고 마는 일개 교양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에서(간혹 대학 당국에 의해서조차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간과 분량, 표현과 상상력의 제한이 없는 ‘글의 우주’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현실과는 사뭇 동떨어진 상황이다.100분 동안 글자수를 세며 쓰는 논술은 길이만 긴, 변형된 단답형의 시험일 뿐이다.(문제는 또 좀 어려운가!) 3학점 수강으로 ‘완성’되는 글쓰기란 전채요리만 맛보고 끝내는 정식식사와도 같다. 대안으로 통합논술이나 심화 글쓰기 과목이 마련되고 있지만,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아직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대문명이 글쓰기의 문명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문명의 활기와 에너지가 교육 제도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수이 경희대 교수
  • [Let’ Go] 살구꽃 흐드러진 청도여행-운강고택

    [Let’ Go] 살구꽃 흐드러진 청도여행-운강고택

    박하담은 조선의 문인, 충순공 승원의 아들.1531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자를 거쳐 1536년 교리로 원접사 종사관이 됐다.1538년 파직당했다가 1545년 영월군수로 등용, 군자감 부정 등을 거쳐 좌통례로 춘추관 편수관을 겸해 ‘중종실록’‘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성천 부사로서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사가독서를 했고,1550년 동부승지·대사성을 거쳐 우부승지를 역임했다. 1553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1556년 이황의 뒤를 이어 양관의 대제학을 지냈다. 이후 훈구의 규탄으로 해직당했다가 재등용돼 1576년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밀원군에 봉해졌다. 감과 더불어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 청도. 복사꽃이 만발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달리 흐드러지게 피어난 살구꽃과 자두꽃이 이방인을 반겼다. 어떤 꽃인들 예쁘지 않으랴. 봄바람에 속절없이 떨궈진 살구꽃잎들이 벚꽃을 떠올릴 만큼 화사하게 휘날렸다.4월 중순쯤엔 복사꽃이 수줍은 연분홍 꽃술을 터뜨리고, 뒤를 이어 ‘양반꽃’이라 불리는 능소화가 ‘능소화 마을’(054-373-6417)을 수놓는다. 꽃들이야 생육을 위해 애면글면 수고로운 시기지만, 완상하는 상춘객의 눈은 즐겁기 그지없다. ●한옥, 자연과의 교감 봄꽃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금천면 신지리 ‘운강고택’으로 향했다. 이 고택은 조선시대 소요당 박하담(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서당터에 그의 11대손 박정주가 1809년에 살림집으로 건립했다. 이어 1824년에 운강 박시묵,1905년에 박순병이 크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소유자는 박정주의 6대손이다. “일(一)자 모양의 평면구조 가옥에서 부(富)를 축적하면 구(口)자 형태가 되고, 다시 ‘口’자가 모여 품(品)자를 이루게 되죠. 운강고택은 ‘口’자 형태의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가묘(家廟) 등이 모여 ‘品’자형 구조를 이루는 전형적인 재력가의 가옥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변숙현 청도한옥학교 교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곡식 등을 보관하는 곳간이 두 군데, 안채와 행랑어멈채 등에 딸린 부엌만도 세 군데에 달해 당시 대단한 집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변 교장은 또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우리 민족이 반만년 동안 살아오면서 자연과 소통하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가옥 형태임을 충분히 검증했죠. 조상의 지혜와 정서, 그리고 문화가 그대로 배어있음은 물론이고요. 운강고택 또한 주변 환경을 고려해 안채를 서향으로 배치하는 등 건축주의 인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난 건축물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우선 골목길을 이리저리 꺾어 들어간 초입부터 남달랐다. 변란시에 집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향해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고 은둔자의 삶을 살겠다는 집주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신분사회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 집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와 행랑아범채의 기단 높이와 재료를 달리한 것이나 안채와 행랑어멈채에 별도의 화장실을 두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 또 남자들의 공간인 사랑채 담벼락은 ‘길(吉)’자형 무늬 등을 넣어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 담벼락은 흙으로만 밋밋하게 발라 놓았다. 가묘로 들어서는 일각문의 높이를 낮게 만들어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에선 조상들에 대한 경외감도 엿보인다. ●고택과의 대화 고택 속에 한 시대의 미학과 정서가 깃들어 있다면, 둘러보는 사람 또한 마땅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터. 변 교장은 “우선 그 시대에 대한 이해와 정교한 상상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잣대로 고택을 봐서는 안되지요. 사랑채 뜨락을 거닐던 집주인, 부엌을 오가는 행랑어멈 등과 대화를 나눠 보기도 해야 합니다.”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오감을 통한 체험을 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물론 문설주를 만져 보기도 하고, 귀 기울여 기와의 소리를 듣기도 해야죠. 고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광해설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라고 강조했다. ■ 청도 주변 오감체험 ●월촌마을 청도읍에서 ‘운강고택’으로 가기 전 매전면 하평리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 김씨 집성촌. 수령 500년 이상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인상적이다. 나뭇가지가 펼쳐진 면적만도 1000평에 달한다. 달의 주기인 15일에 맞게 마을 가구 수도 15호를 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054)372-5245. ●꼭두서니 감물염색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있는 천연염색공방. 감물염색은 우리나라 고유의 염색법으로 시염(枾染)이라고도 불린다. 풀을 먹이거나 다림질을 할 필요가 없고,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다. 비를 맞거나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감즙이 방부제 역할을 해 땀이 묻은 채 두어도 썩지 않는다. 감물염색 체험도 가능하다.1만원. 체험에 사용한 1야드(90㎝)짜리 광목천은 가져갈 수 있다.7만∼8만원.www.kokdu.com,(054)371-6135. ●와인터널 청도 특산품인 감을 주원료로 생산되는 ‘감 와인’의 숙성 저장고. 온도와 습도가 연중 일정하게 유지된다. 화양읍 송금리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경부선 철도 터널로 이용되다, 경부선 노선변경에 따라 버려진 것을 와인 저장고로 이용하고 있다. 길이 1015m. 오전 9시30분∼오후 8시 사이 찾아가면 감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시음은 무료. 감 와인 1병은 1만 4000원.www.gamwine.com,(054)371-1135. ●여행수첩 ▶가는 길 자동차: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신대구~부산간고속도로→청도 나들목. 기차:서울역→동대구역→환승→청도역 ▶문의 청도군청 문화관광과: tour.cheongdo.go.kr, (054)370-6371. 운강고택:(054)372-3137.
  • [25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1985년 열렸던 ‘힘전’과 1987년 ‘반고문전’에서는 전시회를 봉쇄하려는 경찰들과 그림을 지키려는 작가들이 대치했다. 신촌, 정릉, 안성의 건물과 담벼락에 그려졌던 벽화들은 하룻밤 사이, 흰색 페인트로 지워지기도 했다.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 때문에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화가로서의 자격이 정지되기도 했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인천 계양구 효성동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간다. 학습 전문가인 정찬호 박사와 함께 공부방 아동들의 기초학력을 진단한다. 초등학교 4학년임에도 아직 한글을 익히지 못한 김준복 학생을 비롯, 학습태도의 개선이 시급한 5명의 아동을 선정하고 기초학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알아본다.   ●연개소문(SBS 오후 8시45분) 드디어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로 향한다. 백제 윤충 장군은 김춘추의 부패한 사위 품석이 지키는 대야성으로 향한다. 고구려군은 당항성으로 진군한다. 주색에 빠져 있던 신라 품석은 부하들의 배신으로 성을 내주고, 품석과 김춘추의 딸 고타소는 참수된다. 김춘추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는데….   ●케 세라세라(MBC 오후 9시40분) 백화점 이벤트 홀에서 행사를 진행하던 태주는 자신의 실수로 팩 모델 한 명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다. 태주는 특설매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은수를 생각해 낸다. 은수는 저녁을 사주면 하겠다고 말한다. 얼굴에 팩을 붙이고 쇼를 하던 은수는 얼굴이 아파도 태주를 생각하며 참고 견딘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부모의 이혼으로 큰아버지댁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훈은 최강의 학교로 전학을 간다. 차갑지만 잘 생긴 외모에 공부는 물론 까칠한 성격까지 두루 갖춘 최훈은 단번에 여학생들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훈의 일거수일투족이 강의 눈에 가시가 돼버리고, 둘의 관계는 꼬여만 가는데….   ●역사기행(KBS1 오후 11시) 17세기, 한 척의 배를 탄 제주도민 24명이 ‘호이안’에 표류한다. 이들은 당시 베트남 지배자인 우옌 푹 떤왕을 알현하고,21명이 생존해 1년 만에 귀국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베트남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하얀 전쟁’의 안정효 작가와 함께 호이안의 역사를 제주도민의 흔적을 따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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