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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목일 황금연휴 관광제주 ‘신바람’

    오는 식목일 연휴기간 중 제주에 10만명 규모의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제주공항에 ‘식목일 비상’이 걸렸다. 연휴 마지막 날인 5일 식목일에만 하루 수용능력 2만명인 3층 출발대합실을 통해 3만 6000명 이상의 승객이 빠져나가는 등 대혼잡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사는 이에 따라 국내선 출발대합실 입구를 2곳에서 4곳으로 늘리고 청원경찰을 9명까지 증원,배치하는 등 검색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계획이라고 23일 밝혔다. 이와 함께 보안검색장비(X-Ray) 1대를 추가 설치해 시간당 수하물 처리능력을 기존 4500개에서 6000개로 높이고 보안검색장 검색요원도 기존 6명에서 12명으로 증원한다. 대한항공은 연휴 마지막 날인 식목일에 제주 출발편으로 정기편 68편(공급석 1만 6830석)과 특별기 34편(8590석) 등 102편을 띄우고,아시아나항공도 정기편 49편(8970석)과 특별기 9편(1660석) 등 58편을 투입할 계획이다.한편 4월 첫 황금연휴를 겨냥한 해외여행 상품은 대부분 동이 났다. 하나투어 권희석 전무는 “중국이나 일본,동남아 등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중심으로 이미 한두 달 전에 예약이 끝난 상태”라며 “특히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연휴 마지막날인 월요일에 돌아오는 3박4일 상품이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제주 김영주·임창용기자 chejukyj@˝
  • [씨줄날줄] 과태료 50배/이상일 논설위원

    고 함병춘 박사는 자신의 국제정치 안목에 대해 한 미국인이 “아직도 유교적”이라고 비판한 사실을 전한 바 있다.한·미 관계에서 이익 추구외에 신의나 성실을 내세우는 함 박사의 동양적 시각을 간파한 것이다.함 박사는 국내 정치에서도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적지 않게 배어 있다고 말했다.예컨대 선거때 출마하는 입후보자가 어색해 한다거나 자신에게 투표해달라고 직접 호소하기보다 대신 칭찬해줄 찬조연사를 동원하는 것 등이 그런 예라고 지적했다.실제 음식을 차려놓고 잔치판처럼 정치행사를 치르며 후보는 나타나지 않는 걸 흔히 볼 수 있다.그 주변 인물들이 분위기를 띄우고 후보 지지를 호소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7일 모 정당의 지구당 행사후 초콜릿 선물(6000원)과 식사(9250원) 등 1만 5250원을 제공받은 유권자 3명에게 각각 그 50배인 76만 2500원씩의 과태료(過怠料)를 부과키로 했다고 발표했다.음식을 제공해 검찰에 고발된 사람은 지구당 관계자의 부인이었다.향응 받은 유권자들이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세무서장에게 통보된다. 과태료는 일종의 금전벌(金錢罰)로 불법 과외나 주·정차 위반 등 행정질서를 위반했지만 위반 행위가 크지 않을 경우에 매긴다.유권자에게 제공받은 음식의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정치판에서 돈을 준 측뿐 아니라 받은 사람도 처벌,혼탁한 선거분위기를 바로잡으려는 포석이다.사실 선거를 앞두고 부패한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자신들의 관광여행이나 오락행사에 후보들이 돈을 내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과태료치고는 일벌백계의 무거운 뜻을 담고 있다. 다만 한국적 정치판 분위기를 과태료로 일거에 바로잡을 수 있을까,궁금하다.프랑스 학자 뒤르캥은 “처벌이 진정으로 미래에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으려면,우리는 무엇보다도 과거의 단죄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만약 우리가 어떤 죄인이 나쁜 짓을 한 만큼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면,그러한 우리(처벌하려는)노력은 설명될 수 없다.”고 말했다.‘과태료 50배’는 기존 관행에 익숙한 유권자들에게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며 쇼크로 작용할 것이다.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이 버젓이 활보,불형평감을 주긴 하지만 말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 [i 센터] 삼청동 갤러리 ‘빔’

    이번주는 아이들과 품격(?)있게 미술관 나들이를 한번 해 보자.서울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 ‘빔’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과 설치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근사한 미술관을 생각하면 외관을 보고는 실망을 할 수도 있다.하지만 ‘빔’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 눈빛이 달라진다.“이 임금님은 너무 재미있다.”,“달빛 별빛이 너무 예쁘다.” 등 아이들의 감탄사가 이어진다. ‘아라비안 나이트’,‘벌거벗은 임금님’ 등 동화부터 ‘빨간머리 앤’,‘키다리 아저씨’등 만화,‘어린왕자’‘예수님의 탄생’등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작가들의 독특한 해석으로 재구성해 그린 작품들과 해,달,별 등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작품 4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작가가 안내하는 동화나라로의 여행’ 이벤트를 실시한다.오는 26일은 동화를 테마로 도자기 작품을 많이하는 ‘백진’씨,사진작가 ‘최광호’씨 등과 사는 이야기부터 작가의 작품세계까지 구분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이며 입장료는 없다.‘동화나라 여행’ 이벤트 참가는 회원들로 제한한다.갤러리 빔의 회원은 어려운 작가들을 지원하는 의미로 연 10만원의 후원금을 내야 한다.주차장은 근처의 유료주자장을 이용해야 한다.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려 15분정도 걸으면 된다.가는 길에 경복궁과 유명한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아이들과 구경을 하며 걸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다. 근처에 유명한 ‘삼청동 수제비’집이 있다.맛있는 수제비를 한그릇 먹고 봄볕을 맞으며 경복궁을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갤러리 빔(www.biim.net),723-8574 삼청동수제비 735-2965. 한준규기자 hihi@˝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8) 중국 베이징

    한달 보름간 무더운 동남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아직 혹독한 추위가 남아 있는 중국으로 날아왔다.방콕에서 티베트로 바로 갈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한창 발전의 중심에 있는 베이징(北京)에는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계획을 수정했다.하지만 막상와서 보니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고 교통수단이며,숙소며,외국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하다. 중국에는 요즘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어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아직도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헬로나 생큐,심지어 OK도 안 통한다.국제 언어인 보디 랭기지도 별 효력이 없다.길을 물으면 차렷 자세로 손가락이나 고개로 방향도 가리키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중국어로 얘기한다.잘 모르겠다고 영어와 몸짓으로 다시 물어봐도 또다시 중국어만 돌아올 뿐이다.중국말 멈추는 데에만 30초가량 걸릴 정도니 애초 영어로 조금이라도 의사소통을 할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국에서 중국어 말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 배운 한문실력을 총동원해서 나누는 필담뿐이다.동남아에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남편이 중국에서만큼은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화를 나눈다.옛날에 한자깨나 써 보았는지 자기 없으면 길이나 찾을 수 있겠느냐며 큰소리다. 중국에는 간판이나 유명 외국상품 이름에서도 외래어나 영어 알파벳을 찾아보기 어렵다.모든 상표나 단어가 다 한자화되어 뜻글자로 옮겨지고 그 글자를 중국말로 발음하기 때문에 KFC나 베스킨라빈스 같은 외국 브랜드도 중국에서는 그렇게 발음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KFC는 ‘컨더지’라고 하고 간판에는 켄터키 할아버지 옆에 ‘肯德基’라고 쓰여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다.세계의 대도시는 대부분 강을 끼고 있는데 베이징에는 강이 없다.그만큼 옛날부터 물이 부족하고 귀한 곳이다.그런 연유에서인지 정말로 잘 안씻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말쑥한 양복 겉옷을 걸친 사람도 ‘머리를 적어도 며칠은 안 감았다.’는 표시가 확 날 정도이다. 내가 묵는 숙소 지하에는 머리안마를 해주는 곳이 있다.의자에 앉은 채로 샴푸와 물을 조금씩 묻혀가며 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머리를 기가 막히게 감겨주는데,이 역시 물이 귀한 환경에서 생겨난 기술인 듯싶다. 안마 얘기가 나와서 얘기지만,베이징에 온 뒤로 거의 하루 걸러 안마를 받았다.안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안마가 거의 생활화되어 있다.종류도 다양해서 전신마사지,얼굴마사지,발마사지,등,허리,손,귀,목 등으로 다양하고 값도 저렴하다.한 동네 안에 종류별로 여러 개의 가게가 있는데 매일 사람들이 기다릴 정도로 늘 붐빈다.이곳 마사지는 혈을 짚어주는 마사지라서 처음 받고 나면 온몸이 조금 뻐근하지만 한번 받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생활속에 깊이 들어있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공원문화이다. 아침저녁으로 크고 작은 공원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사교댄스,에어로빅,태극권을 각각의 음악에 맞춰 연마하고 따라하는데,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이 수십명씩 줄을 맞추어 태극권을 연마하는 모습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맨손으로 하는 종류와 장검을 들고 하는 것,그리고 부채를 들고 하는 종류가 있는데 가끔 멋있는 무술 동작을 보면 여기가 소림사인지 동네 공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중국에서는 스님들이 비질하는 것만 보아도 무술하는 것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앞으로 15년 안에 세계 3대 강국이 된다고 하는 중국,그 중에서도 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수도 베이징.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이 나라의 10년후,20년 후가 궁금해진다. ■ 조선족 신여성 린원위씨 주중 한국기업 ‘IT-SANHA’에서 경리(우리나라의 과장급)로 일하고 있는 조선족 신여성 린원위(林文玉·38)씨를 만난 날은 마침 ‘부녀절’(3월8일)이었다.중국에는 직업을 갖고 일하는 여성이 워낙 많아 사회적으로 이날을 크게 기념한다.직장여성들이 회사에서는 사장이나 남자 동료들에게 선물도 받고 집에서도 이날만큼은 특별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다는데,육아는 어떻게 하나요. -아기를 보통 생후 4개월 때부터 학교나 일하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에 맡기고,집안일도 남편과 나눠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여성의 95% 이상이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 시스템이 여자들에게 편리하게 되어 있죠.학교 교육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엄마 아빠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해요.점심도 급식으로 대부분 학교에서 해결해주고,기숙사 시설도 초등학교부터 잘 갖추어져 있어서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중국사람들은 자녀를 한 명만 갖는데. -현재 자녀가 두 명 이상이면 벌금을 무는 산아제한 정책이 있는데 다음달부터는 베이징에서 ‘한자녀 갖기 정책’이 완화된다고 해요.조선족처럼 소수민족은 두명까지 허용되었는데 그것도 결혼신고하면 한 명 낳을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고,첫째 아이가 만 4살이 된 후에 둘째를 가질 수 있는 허가증을 다시 받아야 하지요.그런데 요즘 도시에서는 워낙 자녀를 한 명만 두다 보니 아이들이 귀하게 자라서 버릇이 없는 것 같아요. 베이징에서 소수민족으로 직장생활하는 것이 어떤지.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중국내에서 사회생활하는데 차별받거나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요.하지만 중국회사보다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보수도 더 많고,전공과 언어면에서 능력을 두배로 발휘할 수 있어서 선호자지요.˝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2)대원위대감의 생각 (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2)대원위대감의 생각 (上)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高宗,1852∼1919)의 아버지 이하응(李昰應)을 두고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렀다. 그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쇠락한 왕권을 강화해 프랑스,독일,미국,일본,청나라,러시아등 19세기 세계 열강의 침략에 맞설 힘을 기르며 조선을 중흥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오늘은 그 대원위대감이 왜 그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결과는 어떻게 끝났는지,파란만장한 그의 생애 이면에 감춰진,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의 한 증거를 찾아서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로 간다. 예산(禮山)은 유서깊은 고장이다.백제시대에는 오산현(五山縣)이라 불렀는데 신라에 정복당한 뒤 고산(高山)으로 바뀌었으며,예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고려 태조2년의 일이었다. 왕건은 견훤이 다스리던 후백제를 정복한 뒤 이곳을 다스리려 했으나 민중은 왕건의 통치에 순응하지 않았다.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신라에 정복당한 뒤 100년이 넘도록 신라의 강권통치에 대를 물려 저항해왔던 백제유민들이기 때문에 백제가 망한 지 2세기가 지난 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백제 유민들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왕건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자긍심과 백제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정신의 힘때문이었다. 이 정신은 곧 현대사회에서도 충청·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즉 겉은 부드럽지만 안은 강철처럼 단단하고,문학과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지향하는 삶으로 드러나고 있다. 왕건은 이곳 사람들의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정복자로서의 권위나 자신감이 아닌,존경과 화해의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선물하고자 했다.충절과 예의의 고장임을 기리기 위해 예산이란 새 이름을 정하고 민중의 뜻을 물었다.이곳 사람들도 더는 거부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된 고려왕조에 동의해주었다. 그 후 대흥(大興)과 덕산(德山)을 합쳐 지금의 예산군이 된 것은 1914년부터다.오늘의 여행 목적지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상가리(象伽里)에는 대원위대감의 야망과,권력 장악을 위한 고뇌와 갈등,정치의 권모술수와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와 문화적 논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 증거들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다.그리고 역사를 향하여 그 사실들을 부정할 것이다.한국의 정치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과 책임회피 증후군으로 볼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어쩌랴,누구도 자신의 죄를 제 손으로 지울 수는 없으니. ●‘명당’ 가야사 품은 옥양봉, 기도처로 이름나 덕산 들녘에서 서북 방향을 바라보면 예산군과 서산군 경계 쯤에 산맥이 걸쳐 있다.가야산(伽倻山)이다.들길을 지나 상가리 쪽으로 다가서면 맞은편에 잘 생긴 산 하나가 보이고,오른쪽으로도 얌전한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맞은편 산은 옥양(玉陽)산이고,오른쪽 산은 서원(書院)산이다.두 산 모두 가야산이 거느리고 있는 줄기다. 해인사가 깃들어 있는 산도 가야산이라 부르는데,경상도와 충청도에 있는 가야산은 모두 같은 뜻을 지녔다.즉 가야(伽倻,迦倻)라는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 gaya를 음역하여 표기한 것인데,흰코끼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을 부다가야(Budhagaya)라고 부르는 것과 맥이 통하는 상징어다.이 가야산에는 일찍이 6세기 후반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북쪽 자락 해발 200m 가량의 능선 암벽에 새겨져 있기도 해서 온 산이 불교신앙의 성지처럼 숭배되어 왔다. 가야산 남쪽 기슭이 되는 옥양봉 아래에 가야사(伽耶寺)라는 절이 있었다.이곳에는 금탑(金塔)으로 부르는 철첨석탑(鐵尖石塔)이 있었고 탑 사면에는 석감(石龕)이 있어 각각 석불이 봉안되었을 만큼 빼어난 작품이었는데 백제 불교 미술의 정교함과 깊은 신앙심이 깃든 걸작이었다고 한다. 또한 가야사에는 예부터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우 흥미있는 풍수설이 전해져 왔다.가야사 대웅전 터에서 왕손(王孫)이 생겨나리라는 풍수지리설이었다.세간에서는 절을 허물어내고 그 자리에 묘를 쓰면 반드시 왕손을 낳게 된다는 풍수설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는 못하고,대신 훌륭한 자식을 점지해달라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옥양봉에 이르는 계곡은 펀펀하면서도 깊다.그래서 그런지 옥양봉 계곡에는 한때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찰들로 꽉 차서 절골이라고도 불렀을 만큼 승려들의 목탁소리와 범종소리,향 내음과 독경 소리가 일년 사철 끊이질 않았다.상가리(象伽里)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여졌던 것이다. ●구걸로 어린시절 연명한 ‘권력의 화신’ 이하응 이같은 솔깃하고 엄청난 비밀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풍수설을 은밀하게 새기면서 가야사 주변을 여러 해 동안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이하응이란 청년이었다.올때마다 동행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난 지관(地官)이었다.그는 옥양봉,서원산,가야산 정상 어느 한곳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고 돌아다녔다.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전혀 얼굴이 알려진 자도 아니었거니와 행색도 남루했고 늘 빈털터리였다. 이하응은 유아기에 아버지를 여읜 뒤 사고무친의 왕손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후기의 왕족이다.이름은 구(球),사도세자의 서자로서 정조(正祖)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서 남연군(南延君)에 봉해졌다.1771년(영조 47년) 양부 은신군이 정적의 모함으로 작위를 삭탈당한 뒤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변사하자 남연군도 불우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1821년 수릉관(守陵官)이란 말단직을 지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이하응은 남연군이 죽던 해에 겨우 세 살짜리 어린 아이였었다. 이하응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지독하게 불우했다.이름뿐인 왕족으로서 구걸,비웃음과 온갖 능멸로 양식을 삼았다.수모,고뇌,방랑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암울하고 억울한 세월 속에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을 불태웠다.집념의 핵심은 목숨을 건 타협과 거래였다. 긴 방랑생활 중에 이하응은 가야사의 풍수설을 알게 되었다.딱히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심심풀이 삼아 가야사와 가야산 일대를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풍수설의 내용을 음미해보았다.왕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가야사를 불태워버리는 일쯤은 얼마든지 감행할 자신이 있었다.수차례에 걸친 답사와 계획 끝에 결심을 굳혔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840년(헌종 6년) 마침내 목숨을 건 모험에 돌입했다.부랑배들을 이용하여 가야사에 기거하는 승려들을 밖으로 유인해 낸 다음 절에다 불을 질렀다.목조 건물은 한밤 중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 무렵 조선사회는 이하응의 행동과 같은 짓거리들이 크게 유행했다. ●남연군묘 이장뒤 얻은 둘째 명복이 훗날 고종 전국 곳곳의 사찰이 불타고,불탄 자리에 무덤을 짓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대표적인 예는 신라 선문9산의 하나인 경남 창원 봉림사,경기도 양주 회암사,전라도 흥덕 연기사,경남 산청 단속사를 비롯해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자리로 알려진 사찰들이 유생들에 의하여 불탔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이하응도 그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사 법당터에다 이장했다.누구도 이를 비난하거나 저지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해인 1841년 그는 흥선정(興宣正),1843년에는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다.1846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어 벼슬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남연군의 묘를 옮겨 쓴지 12년만인 1852년 이하응은 둘째아들을 보았고,그로부터 다시 11년 뒤인 1863년 둘째아들 명복(命福)이 조선 제 26대 국왕인 고종(高宗)이 되고,이하응은 마침내 대원위대감이 되어 모험에 찬 정치도박이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2)대원위대감의 생각 (上)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高宗,1852∼1919)의 아버지 이하응(李昰應)을 두고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렀다. 그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쇠락한 왕권을 강화해 프랑스,독일,미국,일본,청나라,러시아등 19세기 세계 열강의 침략에 맞설 힘을 기르며 조선을 중흥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오늘은 그 대원위대감이 왜 그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결과는 어떻게 끝났는지,파란만장한 그의 생애 이면에 감춰진,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의 한 증거를 찾아서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로 간다. 예산(禮山)은 유서깊은 고장이다.백제시대에는 오산현(五山縣)이라 불렀는데 신라에 정복당한 뒤 고산(高山)으로 바뀌었으며,예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고려 태조2년의 일이었다. 왕건은 견훤이 다스리던 후백제를 정복한 뒤 이곳을 다스리려 했으나 민중은 왕건의 통치에 순응하지 않았다.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신라에 정복당한 뒤 100년이 넘도록 신라의 강권통치에 대를 물려 저항해왔던 백제유민들이기 때문에 백제가 망한 지 2세기가 지난 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백제 유민들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왕건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자긍심과 백제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정신의 힘때문이었다. 이 정신은 곧 현대사회에서도 충청·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즉 겉은 부드럽지만 안은 강철처럼 단단하고,문학과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지향하는 삶으로 드러나고 있다. 왕건은 이곳 사람들의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정복자로서의 권위나 자신감이 아닌,존경과 화해의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선물하고자 했다.충절과 예의의 고장임을 기리기 위해 예산이란 새 이름을 정하고 민중의 뜻을 물었다.이곳 사람들도 더는 거부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된 고려왕조에 동의해주었다. 그 후 대흥(大興)과 덕산(德山)을 합쳐 지금의 예산군이 된 것은 1914년부터다.오늘의 여행 목적지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상가리(象伽里)에는 대원위대감의 야망과,권력 장악을 위한 고뇌와 갈등,정치의 권모술수와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와 문화적 논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 증거들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다.그리고 역사를 향하여 그 사실들을 부정할 것이다.한국의 정치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과 책임회피 증후군으로 볼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어쩌랴,누구도 자신의 죄를 제 손으로 지울 수는 없으니. ●‘명당’ 가야사 품은 옥양봉, 기도처로 이름나 덕산 들녘에서 서북 방향을 바라보면 예산군과 서산군 경계 쯤에 산맥이 걸쳐 있다.가야산(伽倻山)이다.들길을 지나 상가리 쪽으로 다가서면 맞은편에 잘 생긴 산 하나가 보이고,오른쪽으로도 얌전한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맞은편 산은 옥양(玉陽)산이고,오른쪽 산은 서원(書院)산이다.두 산 모두 가야산이 거느리고 있는 줄기다. 해인사가 깃들어 있는 산도 가야산이라 부르는데,경상도와 충청도에 있는 가야산은 모두 같은 뜻을 지녔다.즉 가야(伽倻,迦倻)라는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 gaya를 음역하여 표기한 것인데,흰코끼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을 부다가야(Budhagaya)라고 부르는 것과 맥이 통하는 상징어다.이 가야산에는 일찍이 6세기 후반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북쪽 자락 해발 200m 가량의 능선 암벽에 새겨져 있기도 해서 온 산이 불교신앙의 성지처럼 숭배되어 왔다. 가야산 남쪽 기슭이 되는 옥양봉 아래에 가야사(伽耶寺)라는 절이 있었다.이곳에는 금탑(金塔)으로 부르는 철첨석탑(鐵尖石塔)이 있었고 탑 사면에는 석감(石龕)이 있어 각각 석불이 봉안되었을 만큼 빼어난 작품이었는데 백제 불교 미술의 정교함과 깊은 신앙심이 깃든 걸작이었다고 한다. 또한 가야사에는 예부터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우 흥미있는 풍수설이 전해져 왔다.가야사 대웅전 터에서 왕손(王孫)이 생겨나리라는 풍수지리설이었다.세간에서는 절을 허물어내고 그 자리에 묘를 쓰면 반드시 왕손을 낳게 된다는 풍수설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는 못하고,대신 훌륭한 자식을 점지해달라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옥양봉에 이르는 계곡은 펀펀하면서도 깊다.그래서 그런지 옥양봉 계곡에는 한때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찰들로 꽉 차서 절골이라고도 불렀을 만큼 승려들의 목탁소리와 범종소리,향 내음과 독경 소리가 일년 사철 끊이질 않았다.상가리(象伽里)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여졌던 것이다. ●구걸로 어린시절 연명한 ‘권력의 화신’ 이하응 이같은 솔깃하고 엄청난 비밀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풍수설을 은밀하게 새기면서 가야사 주변을 여러 해 동안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이하응이란 청년이었다.올때마다 동행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난 지관(地官)이었다.그는 옥양봉,서원산,가야산 정상 어느 한곳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고 돌아다녔다.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전혀 얼굴이 알려진 자도 아니었거니와 행색도 남루했고 늘 빈털터리였다. 이하응은 유아기에 아버지를 여읜 뒤 사고무친의 왕손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후기의 왕족이다.이름은 구(球),사도세자의 서자로서 정조(正祖)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서 남연군(南延君)에 봉해졌다.1771년(영조 47년) 양부 은신군이 정적의 모함으로 작위를 삭탈당한 뒤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변사하자 남연군도 불우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1821년 수릉관(守陵官)이란 말단직을 지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이하응은 남연군이 죽던 해에 겨우 세 살짜리 어린 아이였었다. 이하응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지독하게 불우했다.이름뿐인 왕족으로서 구걸,비웃음과 온갖 능멸로 양식을 삼았다.수모,고뇌,방랑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암울하고 억울한 세월 속에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을 불태웠다.집념의 핵심은 목숨을 건 타협과 거래였다. 긴 방랑생활 중에 이하응은 가야사의 풍수설을 알게 되었다.딱히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심심풀이 삼아 가야사와 가야산 일대를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풍수설의 내용을 음미해보았다.왕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가야사를 불태워버리는 일쯤은 얼마든지 감행할 자신이 있었다.수차례에 걸친 답사와 계획 끝에 결심을 굳혔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840년(헌종 6년) 마침내 목숨을 건 모험에 돌입했다.부랑배들을 이용하여 가야사에 기거하는 승려들을 밖으로 유인해 낸 다음 절에다 불을 질렀다.목조 건물은 한밤 중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 무렵 조선사회는 이하응의 행동과 같은 짓거리들이 크게 유행했다. ●남연군묘 이장뒤 얻은 둘째 명복이 훗날 고종 전국 곳곳의 사찰이 불타고,불탄 자리에 무덤을 짓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대표적인 예는 신라 선문9산의 하나인 경남 창원 봉림사,경기도 양주 회암사,전라도 흥덕 연기사,경남 산청 단속사를 비롯해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자리로 알려진 사찰들이 유생들에 의하여 불탔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이하응도 그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사 법당터에다 이장했다.누구도 이를 비난하거나 저지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해인 1841년 그는 흥선정(興宣正),1843년에는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다.1846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어 벼슬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남연군의 묘를 옮겨 쓴지 12년만인 1852년 이하응은 둘째아들을 보았고,그로부터 다시 11년 뒤인 1863년 둘째아들 명복(命福)이 조선 제 26대 국왕인 고종(高宗)이 되고,이하응은 마침내 대원위대감이 되어 모험에 찬 정치도박이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7) 라오스 북부 방비엥

    라오스 북부의 작은 마을 방비엥은 여행자들의 당초 여행계획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곳이다.하루를 계획하고 온 사람은 이틀을,이틀을 생각했던 이는 나흘을 머물다 간다.특히 서양 배낭여행자들은 한달 이상 장기체류하는 경우도 많다.전부 도는 데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리는 이 작은 마을의 무엇에 사람들은 그렇게 끌려서 떠나지 못하는 걸까. 방비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쏭강에서 튜브 타기,카약 투어에 참여하기,고산족 마을 방문하기,그리고 마을 구경하기 정도.이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노천시장을 구경하며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일과중 하나이다. 시장 뒤쪽으로 늘어서 있는 집들은 대부분 나무판자나 대나무로 지어져있다.따로 기술자나 건축업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각자 알아서 짓는다.집 짓는 날은 온가족이 나와서 한가지씩 거든다고 한다.각자 지은 농산물을 가져다 사고파는 이곳 장터는 꼭 우리나라 옛날 시골 모습같다.그런데 이색적인 것은 여기서 파는 야생동물들이 가지각색이라는 점.야생쥐부터 야생너구리,박쥐까지 참 다양하다.요리법은 잘 모르겠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나름대로 맛있는 별식이라니,으∼(별식 좋아하는 한국 아저씨들이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방비엥에 있는 동안 날마다 이 신기한 시장구경을 하면서 우리도 다양한 과일을 흥정해서 사먹곤 했다.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외지인들에게 바가지를 잘 못 씌운다.아주 조금씩 가격을 더 불러놓고는 ‘500낍(60원 정도) 더 불렀는데,1000낍 더 불렀는데‘하는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들통날까 초조해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비싸다고 돌아설 듯 어깨만 살짝 틀어도 가격은 곧 내려가고,덤 없냐고 하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몇개를 더 얹어준다.(라오스에서도 똑같이 ‘덤’이라고 한다.) 초저녁에 개울가로 내려가면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구이 파티에 초대하고,마을을 산책하다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바로 이런 순수한 사람들 때문에 여행자들은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곳 역시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한 평화롭고 조용하던 작은 마을이 이제는 거리마다 여행자들이 넘쳐나고,각종 투어 프로그램에 게스트하우스며 외국인 입맛에 맞는 수십개의 레스토랑이 생겨나 마을의 모습도 신흥 관광지처럼 변해가고 있다. 태국여행을 할 때 북부 산악지대 치앙마이에서 고산족 방문이 포함된 트레킹에 참여한 적이 있다.그들만의 세계에서 오롯이 살아가고 있는 고산족을 만나길 기대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어린이들은 피카추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전통의상 차림의 주민들도 관광객들을 위해 형식적으로 갖춰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함께 트레킹을 했던 스웨덴 친구는 “순수한 지역민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 상업화한 나머지 고산족도 패키지 상품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아쉬워했다.요즘 치앙마이 트레킹 투어를 주선하는 에이전트들은 앞다투어 ‘새로 개발한,아직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은 고산족 방문’이라는 문구를 프로그램 소개에 일률적으로 넣고 있다.라오스의 방비엥도,태국의 치앙마이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코스가 됐지만 그 사람들만의 평온한 행복,오롯한 평화가 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게스트하우스 운영 김혜자씨 동남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된 ‘김치 아줌마’ 김혜자(63)씨.예순이 넘은 나이에 라오스를 처음 찾았던 그녀는 라오스가 좋아서,라오스의 순수한 사람들이 좋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라오스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지난 99년 건강이 악화돼 38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 동료교사 넷과 함께 딸에게 가이드를 부탁해 한달간 인도차이나로 자유여행을 떠났어요.태국과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나이도 잊은 채 아주 즐겁게 여행했지요.특히 라오스 북부여행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은 내 유년시절과 똑같아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인터넷 배낭여행 동호회에서 유명하던데. -처음엔 조금씩 메모를 한 것을 딸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곤 했는데,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읽고 격려해주어서 적극적으로 연재를 하게 되었지요. ‘김치 아줌마’라는 애칭은 어떻게 생겼나요. -여행하면서 제일 힘든 게 음식이잖아요.더욱이 한국사람들은 김치를 먹어야 힘이 나지요.그래서 처음엔 우리가 묵었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부터 김치를 담가주기 시작했죠.그러다 보니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나봐요.난 내 이름보다 그 별명이 더 좋아요.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정감도 있고. 라오스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시죠. -오랫동안 초등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여행하면서도 어린이들 교육이나 학교시설에 관심이 많았어요.그래서 방문하는 마을마다 학교는 꼭 갔었죠.그런데 학교시설이 정말 엉망이었어요.학용품도 거의 없고.그래서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학용품을 수집해 전해줬죠.지금은 친한 교장선생님 한분이 자비로 라오스 시골에 학교를 하나 지어주려고 하는데 쉽지만은 않네요.˝
  • [김영희 이혼클리닉]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

    33살 가정주부입니다.회사원인 남편과 5살,3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외아들이라 따로 살고 계신 홀시어머니께 달마다 생활비 30만원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그러나 어머니는 늘 ‘부족하다.’며 불평불만이십니다.시누이들은 모른 척하고,남편은 시어머니 편만 듭니다.힘들어서 더 이상 못 살겠습니다.-성희 엄마- 성희 엄마.얼마 전 매스컴에서 어느 초등학생 어머니가 사교육비로 월 70만∼80만원씩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개인의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자식들 기죽이지 않고 키우기가 정말 어려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결혼해서 지금까지 시어머니께 달마다 30만원씩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데도 불평불만을 하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과 부부싸움이 잦고,속이 상한 성희 엄마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것 같은데,그 심정 이해갑니다.남편 월급으로 두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들어 앞날을 위한 저축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형편인데도,시어머니께 생활비를 더 드리자는 남편이 밉고 야속하겠지만,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남편 마음도 무척 괴로울 것입니다.친구들과 어울려 여행 다니길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충분한 용돈을 드리고 싶고,집안형편은 뻔하고….이래저래 자신에게 화가 난 남편은,가까운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지만 속으론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자기를 낳아 길러준 나이 많은 부모님을 길에다 버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식’들도 있는 세상인데,홀어머님께 잘해 드리려는 남편은 효성이 깊은 아들인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수입이 전혀 없으시다면,현실적으로 월 30만원은 생활하기에 부족한 액수지요.성희네 형편으로 더 이상 생활비를 드릴 수 없으니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시어머니와 함께 살면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좋은 점도 있을 겁니다.옛날에 어느 집에 초상이 나서,돌아가신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큰며느리는 땅을 치며 구슬피 우는데,멀리 떨어져 자주 뵙지 못했던 둘째·셋째 며느리는 큰며느리 같지가 않더랍니다.부딪치며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 ‘깊은 정’이 되나 봅니다.부모들을 보고 자란 성희씨네 아이들은,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될 것입니다. 성희 엄마.시누이들도 참석케 하여 가족회의를 하십시오.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형편이 어려우니 같이 살자고 말씀드리지 말고 “저희들,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며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시어머니께 다가가십시오.한 집에 살다보면 시어머니께서 아들네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시게 되면서,이제까지 자신이 몰랐던 점을 많이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함께 사신다면 너무 잘해 드리려 신경쓰지 말고 친정어머니 같이 스스럼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 드리는 게,훨씬 진실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사람은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지요. 제가 거래하고 있는 은행의 박 대리는 언제 봐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상냥해서 “박 대리와 결혼할 사람은 참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저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어요.”라며 시어머니께서 애를 맡아 길러주시니,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항상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그는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준 분이고,친정어머니는 저를 낳아준 분인데,두 분 어머니께서 다 생존해 계셔서 행복해요.승진해서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성희 엄마.“예쁨도,미움도,제 할 탓이다.” “여우하고는 살아도,곰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노년이 되면 외롭고 불안해진답니다.‘젊어서는 남편에게,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고 사는 게 여자의 일생’이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애들 낳고 사는 부부가 사는 게 어렵고 힘들다 해서 이혼을 한다면,결혼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지요.예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당신의 미래인 아이들을 보며,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면,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남편은 당신에게 ‘깊은 사랑’을 보답할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김영희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김영희 이혼클리닉]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

    33살 가정주부입니다.회사원인 남편과 5살,3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외아들이라 따로 살고 계신 홀시어머니께 달마다 생활비 30만원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그러나 어머니는 늘 ‘부족하다.’며 불평불만이십니다.시누이들은 모른 척하고,남편은 시어머니 편만 듭니다.힘들어서 더 이상 못 살겠습니다.-성희 엄마- 성희 엄마.얼마 전 매스컴에서 어느 초등학생 어머니가 사교육비로 월 70만∼80만원씩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개인의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자식들 기죽이지 않고 키우기가 정말 어려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결혼해서 지금까지 시어머니께 달마다 30만원씩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데도 불평불만을 하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과 부부싸움이 잦고,속이 상한 성희 엄마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것 같은데,그 심정 이해갑니다.남편 월급으로 두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들어 앞날을 위한 저축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형편인데도,시어머니께 생활비를 더 드리자는 남편이 밉고 야속하겠지만,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남편 마음도 무척 괴로울 것입니다.친구들과 어울려 여행 다니길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충분한 용돈을 드리고 싶고,집안형편은 뻔하고….이래저래 자신에게 화가 난 남편은,가까운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지만 속으론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자기를 낳아 길러준 나이 많은 부모님을 길에다 버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식’들도 있는 세상인데,홀어머님께 잘해 드리려는 남편은 효성이 깊은 아들인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수입이 전혀 없으시다면,현실적으로 월 30만원은 생활하기에 부족한 액수지요.성희네 형편으로 더 이상 생활비를 드릴 수 없으니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시어머니와 함께 살면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좋은 점도 있을 겁니다.옛날에 어느 집에 초상이 나서,돌아가신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큰며느리는 땅을 치며 구슬피 우는데,멀리 떨어져 자주 뵙지 못했던 둘째·셋째 며느리는 큰며느리 같지가 않더랍니다.부딪치며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 ‘깊은 정’이 되나 봅니다.부모들을 보고 자란 성희씨네 아이들은,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될 것입니다. 성희 엄마.시누이들도 참석케 하여 가족회의를 하십시오.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형편이 어려우니 같이 살자고 말씀드리지 말고 “저희들,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며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시어머니께 다가가십시오.한 집에 살다보면 시어머니께서 아들네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시게 되면서,이제까지 자신이 몰랐던 점을 많이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함께 사신다면 너무 잘해 드리려 신경쓰지 말고 친정어머니 같이 스스럼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 드리는 게,훨씬 진실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사람은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지요. 제가 거래하고 있는 은행의 박 대리는 언제 봐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상냥해서 “박 대리와 결혼할 사람은 참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저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어요.”라며 시어머니께서 애를 맡아 길러주시니,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항상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그는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준 분이고,친정어머니는 저를 낳아준 분인데,두 분 어머니께서 다 생존해 계셔서 행복해요.승진해서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성희 엄마.“예쁨도,미움도,제 할 탓이다.” “여우하고는 살아도,곰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노년이 되면 외롭고 불안해진답니다.‘젊어서는 남편에게,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고 사는 게 여자의 일생’이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애들 낳고 사는 부부가 사는 게 어렵고 힘들다 해서 이혼을 한다면,결혼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지요.예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당신의 미래인 아이들을 보며,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면,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남편은 당신에게 ‘깊은 사랑’을 보답할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김영희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필리핀 여행객 몸조심 하세요”

    최근 외교통상부가 필리핀 체류 우리 국민과 여행객들에게 공개적으로 ‘품위유지’를 당부하고 나섰다.최근 유흥주점에서의 한국인 소란행위,골프장에서의 추태 등이 현지 언론에 비판적으로 보도되고,관련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지난 4일부터 부처 홈페이지(http:///www.mofat.go.kr) 해외여행정보코너에 ‘필리핀에서의 신변안전 유의 및 품위유지 요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부 국민의 무분별한 행동이 필리핀 내에서 반한(反韓)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국가와 국민의 위신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각자 책임있는 행동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국 골프 관광객 4명이 필리핀에서 골프를 즐기면서 통보없이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필리핀 법무장관 일행을 향해 샷을 날렸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검거되는가 하면 지난 2월3일에는 아키노 국제공항에서 만취한 한국인 관광객이 소동을 벌이다가 송환된 바 있다.한국인 대상 범죄도 잇따랐다. 외교부는 현재 필리핀에 대해 여행시 신변안전을 유의해야 할 제1 단계 ‘주의’국가로,민다나오섬과 술루,바실란,팔라완 이남 지역을 여행의 필요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제2 단계 ‘경고’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레저+α]

    ●롯데월드 새학기를 맞아 초·중·고 및 대학 신입생을 위한 ‘프레시페스티벌’을 개최한다.초·중·고 신입생들에겐 3월 한 달간 자유이용권을 25% 할인해주며,오후 5시 이후 야간 입장권을 구입하면 전 놀이시설 무료 이용 혜택을 준다.대학생 2명이 주간 자유이용권을 커플로 구입하면 레스토랑 이뽀뽀따뮤스의 스테이크 식사권 1매를 증정하며,새내기 대학생들을 위한 미팅대축제,힙합이나 비트박스 등을 배우는 캠퍼스 아카데미 등 이벤트 행사도 연다.(02)411-2000. ●넥스투어 화이트데이를 맞아 20세 이상의 연인이나 부부를 대상으로 논산 딸기농장과 상수허브랜드를 돌아보는 ‘화이트데이 딸기 따기 이벤트 여행’을 13,14일 이틀간 각각 실시한다.오전엔 딸기 따기 체험 및 시식,딸기경매 이벤트,딸기 던져 받아먹기 등이,오후엔 허브전문가의 허브이야기,허브허브 퀴즈이벤트 등이 진행된다.참가비 1인 5만원.(02)554-0644. ●한국관광공사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개최가 예정된 국제회의,전시회 이벤트 등 국제행사 정보를 수록한 ‘2004 컨벤션 캘린더’를 발간했다.총 449건에 달하는 국제 행사들의 개최시기,장소,규모,내용 등이 수록돼 있으며,관광공사의 국제회의 웹사이트(www.koreaconvention.org)를 통한 검색도 가능하다.(02)7299-558. ●서울랜드 대학 캠퍼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캠퍼스축제’를 14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개최한다.서울·경기지역 14개 대학 22개팀이 참가하는 ‘대학생 록 밴드 & 댄스 동아리 페스티벌’이 펼쳐지며,대학생들에겐 3월 한 달간 자유이용권을 40% 할인해준다.(02)504-0011. ●스타크루즈 선상 크루즈와 홍콩 여행을 묶은 알뜰 상품을 내놓았다.4만t급의 호화 유람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홍콩에 도착해 리펄스베이 및 빅토리아 피크 여행,쇼핑,호텔 1박 등으로 짜여져 있다.왕복항공,크루즈,전일정 숙박,입장료 포함 39만 9000원.화·목 출발.(02)752-8998.˝
  • 문재인이 네팔로 떠나는 까닭은?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부인 김정숙씨와 함께 28일 네팔로 장기여행을 떠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7일 “최근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온 문 전 수석이 주말 경 안나푸르나가 있는 네팔로 트레킹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문 전 수석은 H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했고,타이항공편으로 서울을 떠날 예정이다. 문 전 수석은 지난 13일 ‘총선불출마’ 의사를 밝힌 뒤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열린우리당은 포기하지 않았다.문 전 수석이 부인과 강원도쪽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도 휴식이 주된 이유지만,출마를 설득하는 열린우리당의 집요한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었다는 해석도 있다.그동안 ‘만나자.’는 요청이 너무 많아 서울 평창동 집의 전화선을 뽑아 놓았다는 후문이다. 문 전 수석은 지난해 한 사석에서 “대통령이 도와달라면서 출마를 부탁하면 어쩌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티베트로 도망가서 총선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변호사 생활 20년째 되던 해에 아내와 티베트로 여행가기로 약속했는데,2002년 대선으로 지켜지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그 행선지만 티베트에서 네팔로 바뀐 것이다.문 전 수석의 “개인의 삶도 소중하다.”는 의지를 파악한 듯 열린우리당 고위관계자는 26일 ‘출마권유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EBS 지상파, 새달부터 北애니메이션도 방송

    EBS 지상파TV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과 함께 문화교양 전문 채널로 위상을 강화한다.새달 1일부터 시사해설 및 진단,민주 시민 교육,어린이·유아 교육,문화예술,시청자 참여 등의 프로그램을 신설·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케이블·위성 채널인 플러스1과 플러스2가 각각 수능전문 채널과 중학·직업 채널로 전환된 것에 맞물린 차별화 전략이다.신설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먼저 평일 자정부터 연속 방영하는 ‘오늘의 쟁점’과 ‘움직이는 세계’가 눈에 띈다.각각 그날그날의 국내와 국제 이슈를 전문가의 시각으로 분석하고,시청자들에게 세상 보는 눈을 기르도록 도와준다.시민의 건전한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NGO 관련 ‘시민의 힘(목 오후 10시20분)’도 주목할 만하다.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낙천·낙선 운동 등 시민단체의 목소리와 그 활동 상황을 소개한다. ‘집중 조명 우리교육(월∼금 오후 9시40분)’은 교육전문 기간 방송으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정규 편성한 북한 애니메이션 ‘령리한 너구리’(수 오전 9시25분),유아의 연령을 더욱 세분화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끼가 까꿍’(월·화 오전 9시15분),‘바나나를 탄 끼끼’(목 오전 9시5분) 등 어린이 프로그램도 새로 전파를 탄다.‘2003 어린이 드라마 극본 공모’당선작 가운데 2편을 HD드라마로 만든 ‘어린이 미니시리즈’(월∼목 오후 9시15분)도 선보인다.공연,문화 인사,영화,여행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평일 오후 11시대에 따로 편성한다. 처음으로 본격 드라마도 만든다.광복 이후부터 5·16까지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국의 대중문화사를 다루는 24부작 미니시리즈 ‘명동백작’(가제)이 4월말 제작에 들어가 하반기 중 방영될 예정이다. 이영표기자 tomcat@˝
  • 이우승 특검보 돌연 사퇴

    ‘대통령 측근비리’ 특별검사팀에서 썬앤문그룹 의혹 사건을 맡고 있는 이우승 특검보가 16일 “파견검사의 수사방해와 나에 대한 김진흥 특검의 수사권 박탈로 특검보를 그만두기로 했다.”며 돌연 사임했다. 이 특검보는 이날 “농협 사기대출 수사과정에서 피내사자를 발로 찬 적은 있지만 김모 파견검사 등 수사 관련자들이 이를 빌미로 수사를 거부하고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해 더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이로써 폭력수사 시비로 특검보가 사퇴하는 특검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측근비리’ 수사는 최대 난관에 부딪혔다. 이 특검보는 “수사를 거부한 김 검사의 파견을 취소해 달라며 지난 11일 김진흥 특검에게 요청했지만 거부당해 사퇴의사를 밝히자 김 특검이 ‘사임하면 언론이 취재해 (폭행수사로)네가 구속될 수 있으니 눌러 앉아라.특검도 죽고 너도 죽는다.’고 말했다.”면서 “특검 한달이 넘도록 관련 수사는 사실상 착수조차 못했다.”고 주장했다.이어 “김 특검이 지난 13일 나에게 ‘(특별수사관인)김모 변호사와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애기한 뒤 곧바로 우모 변호사도 다른 팀으로 배치하는 등 사실상 수사팀을 해체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김 검사가 폭행수사를 트집잡아 관련 수사관을 불러 진술조서를 받는 등 본연의 특검수사보다 내 약점잡기에 주력했다.”면서 “13일 이준범 특검보 사무실에서 독대한 자리에서는 김 검사가 ‘미안하다.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대검에 보고했더니 돌아오라고 하더라.’고 했다.”고 주장했다.이 특검보는 앞서 “지난 2일 농협 사기대출 사건 수사 도중 피내사자의 발을 한두번 걷어찬 일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김진흥 특검은 이에 대해 “파견검사의 수사방해와 대검 보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말단 수사관도 아닌 수사 지휘자가 가혹행위를 자행한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김 특검은 이날 이 특검보를 직무상 가혹행위 및 비밀누설 등 이유로 대통령에게 해임을 요청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美시민권자라도 군대 가야”

    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한국 내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아 외국에 사는 이중국적자는 병역의무를 지며,국외여행 허가도 얻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부유층 등에서 유학 중 출산,원정 출산 등으로 이중국적 보유자가 갈수록 늘고 있는 가운데 이중국적자의 병역의무에 관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한경현)는 미국에서 출생,이중국적을 가진 박모(28)씨가 “미국 영주권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시민권자이기에 징병검사를 연기하고 출국정지를 풀어달라.”며 서울지방병무청장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고,미국에 체류하려면 국외여행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미국에서 출생해 시민권을 획득했고,아버지가 국내에서 사업을 경영하는 덕분에 미국에서 11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면서 “부모가 미국 영주권이 있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버지가 우리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병역면제와 국외여행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결혼을 앞두고 있고 미국에 직장이 있으며 현재 28세여서,병역면제 연령인 만 35세까지 7년 동안 국내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병무청의 출국정지 처분을 취소해 미국으로 출국할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병무청은 “미국 여권으로 국내에 드나든 적이 있어 국외여행 허가를 내주기 힘들 것”이라고 밝혀,박씨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전 출국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D화학공업 창업주인 박모(61)씨는 지난 1975년 5월 미국 유학 도중 아들을 낳았다.이듬해인 76년 학위를 받은 박씨는 미국 영주권을 갖고 아들과 함께 귀국했다.아들은 중3까지 국내에서 공부한 뒤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들 박씨는 미국에서 취업했지만 어느 한쪽 국적도 포기하지 않아 이중국적자가 됐다. 그러나 박씨는 이중국적자의 경우 병역을 면제받으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18세가 되어서도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징병검사 통지를 받았다.또 병역미필자가 해외 체류 때 받아야 하는 국외여행허가도 받지 않았다. 반면 미국 여권으로 91∼2002년 한 해 서너차례씩 국내에 드나들었다.병무청은 박씨의 출입국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지난해 2월 신원을 파악,출국정지시켰다.결혼 준비를 위해 그해 4월 입국한 박씨는 신검을 한차례 받았으며,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외국에 거주하는 가족과 함께 영주권을 받은 영주권자는 병역면제나 국외여행 허가를 받을 수 있다.그러나 이 경우도 영주할 목적으로 귀국하거나 1년 이상 국내에 머무르면 병역면제가 취소된다. 정은주기자 ejung@ ˝
  • [종하랑 선영이의 베낭메고 60개국]②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앙코르의 사원들은 7∼11세기 사이 크메르 문명의 전성기에 만들어졌으며,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당시 크메르 제국의 황제는 앙코르에 앉아 남으로는 베트남,북으로는 중국의 윈난성,서쪽으로는 벵골만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통치했다고 한다.앙코르 왕조가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는 정글에 함께 묻혀버렸고,수백년이 지난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캄보디아 씨엠립 킬링필드의 나라,선조들이 남겨준 유적 앙코르와트로 먹고 사는 나라,무장강도와 거지들이 여행자들을 강탈하고 구걸하는 나라,곳곳에 게릴라가 출몰하고 여기저기 지뢰가 묻혀 있는 나라…. 캄보디아에 오기 전 내가 갖고 있던 인상들이었다.그런 무서운 나라에 가는 게 겁나기도 했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그리고 앙코르와트만 보고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태국 아란지방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비행기로 오면 편했겠지만 배낭여행자들인 우리에게 비행기값은 한달 이상의 생활비와 맞먹었기 때문에 두 주먹 불끈 쥐고,심호흡을 하고 그 악명높은 국경넘기를 감행했다. 방콕에서 캄보디아 씨엠립까지 꼬박 하루 버스를 타고 ‘죽음의 길’ 비포장 국경지역을 달려 미지의 땅,무시무시한 나라 캄보디아에 밤늦게 도착했다.캄보디아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밤이 되면 온통 암흑세계가 된다.불안감이 가중된 우리는 빨리 숙소를 잡고 다음날부터 앙코르와트를 돌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연방 두리번거렸다.그런데….이상하게 나쁜 사람은 찾을 수가 없고 가는 곳마다 호의적이고 순한 사람들뿐이었다.물론 여행하기 위험한 지역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곳 씨엠립은 그리 위험한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도 너무나 순박하고 착해 보였다. 하루만에 캄보디아에 대한 나의 모든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고,우리는 정작 앙코르와트 유적지보다도 사람들 사는 모습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캄보디아는 국민소득이 연 300달러에도 못미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고단해보이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자꾸만 맘에 걸리는 것은 국경지대나 유적지 입구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이다.선조들이 남겨준 찬란한 유적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얼 먹고 살까 싶을 정도로 캄보디아는 오직 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에게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전력도 수입해서 쓸 만큼 별다른 기간산업이 없다. ‘원 달러’를 외치며 계속 물건 하나만 사달라고 따라다니며 애원하는 대여섯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들.가난을 안고 태어나 가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어린이들에게 이들의 신은 어떤 은총을 내려줄까….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운 사원이라 칭송받는 앙코르 사원을 돌아보며 이 거대한 신전을 짓기 위해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나르던 고단한 백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 인터뷰 - 고교1년생 싼 보파양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 덕분에 캄보디아의 다른 지역보다는 생활수준이 높은 편.그래도 고교 진학률은 중학교 졸업생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이때문에 이곳의 고등학생들은 혜택받은 소수의 인텔리층에 속한다.씨엠립 외곽에 있는 왓 스배이(Wat Svay)고등학교 1학년생인 싼 보파(Ssan Bopha)도 그런 학생 중 한명이다. 학교 생활에 대해. -유치원을 포함해서 보통 7시에 수업을 시작해요.유치원은 2∼3시간,초·중·고등학교는 6시간 정도예요.교실이 많지 않아서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공부해요. 방과 후나 방학에는 주로 무얼 하는지. -형편이 좋아서 대학진학을 할 수있는 애들은 공부를 더 하는 편이고,그렇지 않은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집에서 농사일을 도와요.방학도 농번기인 4월에 보름,6월에 한달 정도여서 가족들을 도와 들판에서 일을 하는 애들이 많아요. 이곳 고등학생들도 과외를 하나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따로 과외반을 모집해서 등록금 외에 별도의 과외비를 받고 영어나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을 가르쳐요.그런데 시험에 나오는 내용들은 정규 수업시간보다 과외시간에 주로 가르쳐주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 애들은 과외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관광가이드예요.돈도 많이 벌 수 있고,또 외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죠.그 다음으론 택시 운전기사인데,역시 돈을 많이 벌어서예요.저도 대학에 가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어요. 학교시설이 훌륭해 보이진 않았지만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은 모두 밝고 건강해 보인다.캄보디아의 미래가 자신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 조류독감 어떻게 대처할까/삶거나 튀기면 안전 살처분땐 예방약 복용

    동남아 일대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해당 지역을 다녀온 관광객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이들은 단순 감기 증상에도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때문에 일선 보건소에는 조류독감의 증상과 감염 경로 등에 대한 관광객의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한 보건당국의 관계자는 “사망자 발생 보도 이후 증상을 설명하며 조류독감이 아닌지 묻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조류독감이 확산된 지난해 12월 이후 베트남과 태국,홍콩,중국을 다녀온 관광객 수는 24만명을 넘는다.어학연수를 위해 지난 한달 동안 중국에 머무르다 지난 16일 귀국한 박모(23·여·H대 3학년)씨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감기에 걸려 있어 맘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동남아를 여행할 때 살아 있는 조류를 취급하는 장소에는 아예 가까이 가지 말고 조류는 꼭 고열에서 요리한 뒤 먹으라고 충고한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김영택(38) 과장은 “귀국한 지 10일 이내에 조류독감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반드시 관할 보건소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김 과장은 또 “귀가 뒤에는 꼭 손발을 씻고 조류독감 발생농장과 인근의 주민들은 작업시 개인보호구(마스크 장갑 등)를 착용하고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의료원 감염내과 오원섭(38) 교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조류의 배설물이나 침 같은 분비물에 있고 열에 약하기 때문에 삶거나 튀기는 등 높은 열을 가한 닭이나 오리 고기는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면서 “배설물에 있던 바이러스가 묻었더라도 5분 정도만 가열하면 죽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주말매거진We/그 영화 어때?

    지난주 영화와 음악 시상식이 열린 미국의 베벌리힐스와 프랑스 칸에서는 세계적인 ‘은막의 요정’들과 ‘디바’들이 눈부신 의상과 현란한 몸짓을 선보였다.우승 트로피보다 이들의 관능미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니콜 키드먼은 ‘몬스터’의 찰리 데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빼앗겼지만 금빛 비늘에 싸인 ‘인어공주’로 변신,시상식에 참석한 전 남편 톰 크루즈 등 뭇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금발로 염색한 머리와 금구슬이 박힌 헤어밴드,금줄무늬가 들어간 핸드백에 금팔찌,금반지까지 몸 전체를 그야말로 영화제 이름처럼 ‘골드’로 통일시켰다. 유럽 라디오그룹 NRJ의 뮤직어워드에 참석하기 위해 칸에 도착한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가슴이 절반 넘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고 건강한 육체미를 과시했다.최근 고향 친구와의 결혼 소동이후 다소 체중이 늘어 더욱 풍만해진 모습. 역시 NRJ어워드에 나타난 미국 여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지중해 분위기에 맞춰 헤어스타일과 눈화장,드레스,목걸이,귀걸이,왼쪽 팔꿈치 안의 문신까지 이집트풍으로 연출했다.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여가수 비욘세는 흑인혼혈 특유의 탄력있고 풍만한 몸을 한껏 과시할 수 있는 짧은 의상을 입고 NRJ 시상식에서 공연했다.사자갈기 머리를 젖히고 뒤를 돌아보며 던지는 눈웃음이 더욱 뇌쇄적이다. 이도운기자·외신 dawn@ ●신설국-사랑은 눈 녹듯이… 새달 말 개봉하는 ‘신설국(新雪國)’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영화의 무대는 제목처럼 눈이 지천에 깔린 마을 츠키오카(月岡).절망적 상실감에 자살 여행에 나선 50대 남자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젊은 게이샤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다.그 분위기는 화면을 가득 메운 눈처럼 따스하다. 온 마을이 눈으로 덮인 마을 츠키오카역에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한 쿠니오(오쿠다 에이지)가 내린다.특별한 대사없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영화는 그가 당돌한 게이샤 모에코(유민)를 만나면서 속도를 낸다.연인이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을목도한 상처를 지닌 그녀인지라 직감적으로 쿠니오의 황량한 내면세계를 감지한다.상처입은 과거사를 징검다리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다. 고토 감독이 영화 기획단계에서 염두에 뒀다는 일본의 인기배우 에이지의 우수어린 연기가 은은하게 빛나고 풋풋한 이미지의 유민은 적극적이고 발랄한 연기로 화답한다.지난 2001년 한국으로 건너와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본인 탤런트 유민(일본명 후에키 유코)이 주연으로 데뷔한 영화인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에서 누드신이라는 ‘비틀어진 논란’으로 화제를 모았다.정작 영화 속 정사 장면은 그녀의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준다. 그러나 영화의 따스한 메시지는 갈수록 그 밀도가 떨어진다.별다른 반전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히 산만해지고 식상해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구루-사랑은 사고처럼… ‘유쾌하고 발랄한 러브스토리.’ 30일 개봉하는 ‘구루(The Guru)’는 존 트래볼타 같은 스타가 돼 부와 명성,인기를 얻겠다고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의 댄스 강사 라무 찬드라 굽타(지미 미스트리)의 꿈과 좌절과 사랑 등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재미있고 달콤하게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성적 이미지와 유머를 결합시킨 참신한 발상에 젖다 보면 94분의 상영시간이 휙 지나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날아온 라무를 기다리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울며 겨자먹기로 친구들과 월세방에서 합숙을 하면서 시작한 인도식당 웨이터 일이 성에 찰리가 없다.그러다가 영화사를 찾아가 배역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주연이지만 대사가 너무 적은” 포르노 영화다.실의에 빠진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뉴욕 상류층 만찬에서 주방일을 거들다 우연히 인도 영적 지도자의 대역을 맡아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로 떠오른다.비결은 포르노의 파트너 샤로나(헤더 그레이엄)가 들려준 성 관련 표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 미스트리의 신선한 연기가 매력을 뿜고 진지한 조연을 주로 맡아온 마리사 토메이의 코믹연기 변신도 인상적이다. 이종수기자 ●곰이 되고 싶어요-사랑은 함께 하는 것… 30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는 한마디로 기존의 질서를벗어나는 ‘대항적’인 영화다.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일본이 아닌 덴마크·프랑스·노르웨이 합작으로 만들어진 점도 그렇지만,형식과 내용면에서도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린다. 얼음이 뒤덮인 그린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엄마 곰과 에스키모 부부의 출산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갑작스러운 늑대의 습격으로 새끼를 잃은 엄마 곰은 슬픔에 잠긴다.아빠 곰은 대신 인간 부부의 갓난아이를 훔쳐와 자식처럼 키운다.이번엔 행복했던 인간 부부가 곰이 겪었던 비탄에 똑같이 빠지게 된다.한참 뒤 에스키모는 곰을 죽이고 아이를 되찾아 오지만,아이는 이미 정체성을 잃어 버린 상태.외모만 인간일 뿐 곰으로 자라난 아이는 다시 사람이 되길 거부한다.결국 에스키모 부부는 아이를 곰의 세계로 돌려보내고,아이는 고통의 시간을 거쳐 다시 곰으로 살아간다.‘사랑=함께 있는 것’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 영화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줄 것 같다. 이영표기자 tom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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