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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에만 해외서 3조 펑펑… 서비스수지 사상 최대 ‘적자’

    10월 서비스수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 여행객은 늘고 국내로 오는 외국인 관광객은 줄면서 여행수지 적자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10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서비스수지 적자 규모는 35억 3000만 달러다. 월간 기준 적자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종전 기록은 지난 1월의 33억 4000만 달러였다. 서비스수지 중 여행수지 적자가 16억 7000만 달러에 달했다. 지난 7월 17억 9000만 달러에 이어 역대 2위의 적자 규모다. 여행 수입은 9월 12억 2000만 달러에서 10월 10억 8000만 달러로 줄어든 반면 여행지급은 같은 기간 25억 3000만 달러에서 27억 5000만 달러로 늘었다. 실제 10월 출국자 수는 223만 2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6% 증가했지만 입국자 수는 116만 6000명으로 26.6% 감소했다. 경상수지는 57억 200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이로써 2012년 3월 이후 68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 갔다. 다만 흑자 규모는 전월(122억 9000만 달러)의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한편 11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사상 최대인 3872억 5000만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7억 9000만 달러 증가했다. 외환보유액은 8월 말(3848억 4000만 달러)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뒤 달러화 약세 등으로 두 달 연속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반이민 행정명령 시행하라” 트럼프 손 들어준 美대법원

    미 대법원은 4일(현지시간) 무슬림 6개국과 북한 등 모두 8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효력을 전면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행 제한 행정명령의 효력을 전면 인정하는 판결은 처음이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대법관 9명 중 7명이 ‘하급법원이 행정명령을 부분적으로 저지한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많은 논란을 빚어 온 여행 제한 행정명령과 관련해 중요한 법적 승리를 거둔 것이다. CNN은 “대법원이 지난 3월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9월 행정명령 간의 차별성을 인정했다”면서 “앞으로 사법기관이 트럼프 정부가 취하는 여행 제한 조치들에 대해 승인하는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하급 법원에서 진행 중인 법적 다툼에 상관없이 지난 9월 24일 발효된 수정 행정명령이 전면 시행된다. 9월 수정 행정명령은 북한과 차드,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시리아, 베네수엘라, 예멘 등 8개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지난 3월 대상국이었던 수단은 빠지고 북한과 차드, 베네수엘라 3개국이 추가됐다. 또 시리아, 북한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은 전면 금지했지만, 베네수엘라는 일부 정부 관리와 그들의 가족에 한해 입국을 제한하는 등 지난 3월 행정명령과 차별화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하급 법원에서 내린 2건의 법원 명령을 해제해 반이민 행정명령이 완전히 시행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연방대법원에 요청했다. 지난 10월 하와이주와 메릴랜드주의 연방지방법원 등이 행정명령 발동에 제동을 걸었고,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고등법원도 효력 일부 금지 판결을 내리면서 시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쟈니 윤 쇼’라는 방송을 했다. 그때까지 내게 코미디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짓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쟈니 윤의 코미디는 전혀 다른 식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가서 미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코미디를 했다고 하니 더욱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사사로운 자리에서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 나는 그가 심형래를 능가하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다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웃음부터 날 것 같아 긴장했다. 하지만 내 우려는 완전히 빗나갔다. 쟈니 윤은 우스운 사람이 아니었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는 시종일관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살짝 머금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가 보일 정도로 웃는 일은 없었다. 그는 행동이 무척 신사적인 사람이었고 기대와는 달리 말하는 내내 가벼운 농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날 이전까지 내 머릿속에 있던 쟈니 윤의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졌다. 여전히 나는 그의 본 모습을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인으로서 그는 우스운 연기를 하지만, 실제 쟈니 윤은 로버트 드니로처럼 멋진 신사라고 믿는다. 그 만남이 있은 후부터 나는 쟈니 윤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배우 찰리 채플린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됐다.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소한 체격에 허름한 양복, 윗옷은 자기 치수보다 작아 꽉 끼지만 바지는 헐렁하다. 커다랗고 다 낡아빠진 구두는 발에 매달려 있는 수준이라 걸을 때면 오리처럼 뒤뚱거린다. 우스운 차림이지만 대나무 지팡이까지 있어서 신사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춘 모습이다. 채플린은 매번 똑같은 차림으로 영화에 출연했고 그가 맡은 배역은 언제나 말썽을 몰고 다니는 떠돌이 방랑자 역할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많이 웃었고, 또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채플린이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렇게 전 세계를 웃겼던 사람의 삶이 실은 전혀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많은 사람의 증언을 보더라도 영화 밖의 채플린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다. 채플린과 비슷한 시기에 무성영화에 출연한 배우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버스터 키튼은 경쟁자였던 채플린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그가 가장 우습지 않을 때는 영화를 제작할 때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고 명석하고 면밀한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나비의 날개를 다루는 곤충 채집가의 꼼꼼함에 비견된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사람 채플린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서 정작 자신은 가장 우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채플린은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내고야 마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배우 섭외에서부터 촬영, 연기지도, 시나리오 작성, 필름 편집은 물론 나중에는 영화에 들어갈 음악까지 독학으로 공부해 직접 작곡했다.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촬영장에 의무적으로 분장사를 고용해야 했을 때도 특유의 ‘떠돌이 찰리’ 분장은 언제나 스스로 했다. 이 놀라운 인간은 자서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다. 보통 유명인들의 자서전인 경우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으며 쓰는 일이 많은데 채플린은 삶의 후반기 여러 해 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을 직접 썼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만 해도 본문 분량이 1000쪽이 넘어가는 책이다.워낙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평전이나 연구서도 꽤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 분량이 비교적 적은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제목은 ‘나의 아버지 채플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중앙신서에서 문고본 시리즈로 펴낸 작은 책이다. 서지를 보니 1978년에 초판을 낸 이래 1981년까지 다섯 번을 더 찍었으니 나름 잘 팔린 책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글을 쓴 사람은 찰리 채플린의 아들인 것이 분명하니 더욱 인기를 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평론가나 전문 작가보다 아들의 위치는 채플린과 더욱 가깝다. 그래서 이 책에는 좀더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 있다. 책의 저자는 찰리 채플린의 두 번째 아내인 리타 그레이의 아들인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인데 채플린은 그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리타 그레이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해 자녀를 본 직후인 1927년에 이혼했다. 아내와 함께했던 날은 만 3년뿐이었지만 자녀들과는 이후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채플린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채플린 주니어는 바로 이 책 ‘나의 아버지 채플린’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은 채플린이 ‘키드’, ‘모던 타임즈’, ‘독재자’를 만들 때 작업장에 함께 있었다. 이 때문에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연기 지도자였던 채플린을 누구보다 생생한 모습으로 책에 그려 내고 있다. 채플린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았고 모든 걸 직접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한번 믿음을 준 사람에겐 모든 걸 맡겼다. 책 속에는 채플린의 집에서 일하던 세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집사, 운전사 그리고 요리사였는데 꼼꼼한 채플린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큰 신뢰를 얻었다. 진주만 공습의 여파로 집에 일본인을 두지 못하게 됐을 때도 채플린은 이들에게 때마다 봉급을 줬다. 재미있는 일화도 꽤 있다. 채플린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공로로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를 전문가 몇 명이 평가해서 상을 수여하는 것에 반감이 있던 것이다. 채플린은 평론가들의 의견보다는 더 많은 영화팬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웃어 주는 게 더 값지다며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아카데미 특별상 트로피는 채플린의 집으로 배달됐고 그는 한동안 이 ‘물건’을 문이 닫히지 않도록 틈에 고정해 두는 도구로 사용했다. 떠돌이 방랑자 캐릭터가 워낙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여기저기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도 많이 열렸던 모양이다. 채플린은 미국의 한 동네에서 열린 닮은꼴 경연대회에 신분을 숨긴 채 본인이 직접 참가했던 일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본인이 직접 참가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에서 진짜 채플린은 3등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아들이 쓴 책에 따르면 아버지로부터 경연대회 결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나치가 정권을 잡았던 독일에서는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금지되었던 때가 있다. 히틀러와 채플린은 외모도 닮았지만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는 점 때문에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숱한 이야기가 양산됐다.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성장한 것도 같다. 나중에 채플린은 아예 히틀러와 똑같은 분장을 하고 그의 연설 장면을 흉내 낸 영화 ‘독재자’를 만들어서 크게 히트시켰다. 이처럼 아들이었기 때문에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채플린의 여러 모습이 이 작은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지만 아들이 쓴 책의 마지막 장은 채플린이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인 우나 오닐과 결혼해 스위스에 정착한 것에서 멈췄다. 이때 채플린은 방대한 자서전의 첫 부분을 쓰고 있었다. 얘기가 이렇게 끝난 것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 채플린’은 1960년 롱맨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판됐고 채플린 주니어는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떠돌이 찰리 채플린은 1974년에 자서전 ‘My Life in Pictures’를 펴냈고 197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배우가 죽었을 때 영국 신문 가디언지는 그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공부하러 술집 가요”…장학생은 ‘위스키 석사’ 유학

    “공부하러 술집 가요”…장학생은 ‘위스키 석사’ 유학

    ‘술꾼’들이 똑똑해지고 있다. 전문가가 엄선한 특별한 술을 마시고 한 잔의 술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음주 문화가 달라지면서 와인 업계의 ‘소믈리에’와 유사한 맥주 업계의 ‘비어마스터’와 ‘브루마스터’, 위스키 업계의 ‘마스터블렌더’ 등 다양한 주류 전문가들의 존재도 전보다 한층 부각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도 다양한 경로로 술에 대한 전문 지식을 탐한다. 수만 가지 제품이 범람하는 주류시장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주류업체와 하나의 문화로서 술을 좀더 깊게 향유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가 맞물려 술자리의 ‘학구열’은 날로 뜨거워지는 추세다.“에일과 라거맥주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한 술집에서 열린 오비맥주의 ‘비어마스터 클래스’는 인근 극단 단원들과 대학생 등 약 50명의 수강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보통 비어마스터 클래스는 오비맥주 건물에 마련된 전용 수업공간에서 진행되지만, 이날은 단골 손님들을 대상으로 맥주 수업을 하고 싶다는 술집 사장의 요청으로 특별 강연이 열렸다. 강의를 맡은 김소희(41·여) 부장의 기습 질문에 참가자들이 정답을 말하려고 잇따라 손을 들었다. “에일은 과일 맛이 나고 라거는 청량한 맛이 나요.” “에일은 상면 발효로 만들어지고, 라거는 하면 발효로 만들어져요.” “두 분 다 정답입니다. 상품 드릴게요.”동영상과 퀴즈 등을 다채롭게 활용한 강의에 참가자들의 눈이 번뜩였다. 처음에는 다소 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세계 각국의 맥주, 전용잔 등 각종 경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열기가 뜨거워졌다. 자연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데만 약 2년이 걸리는 벨기에 람빅 계열 ‘귀즈’를 시작으로 ‘스타우트’, ‘IPA’, ‘스텔라 아르투아’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강의 중간중간 시음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대표적인 밀맥주 ‘호가든’은 2차 발효가 병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병나발’을 불지 말고 잘 흔들어서 전용 잔에 따라 마셔야 본연의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어요.” 김 부장의 설명에 이어 호가든 맥주를 따르는 시범 영상이 스크린에 흘러나오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자리에 놓인 맥주병과 전용잔을 양손에 들고 맥주 완벽하게 따르기 시합에 열중했다. 강의의 꽃은 단연 막바지에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 일회용 컵에 따라 놓은 5가지 술 중에서 자신이 자신 있는 맥주 한 종류를 골라내는 시험이다. 도전자들이 줄줄이 정답을 내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던 와중에 평소 일본의 ‘아사히’ 맥주를 가장 즐겨 마신다고 밝힌 한 참가자가 실제로 아사히 맥주를 골라내자 일동이 환호성을 내질렀다.국내 최초의 맥주 전문학교인 비어마스터 클래스는 맥주의 역사부터 종류와 제조법, 다양한 음용 방식 등 맥주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직접 맛보는 수업이다. 오비맥주는 2013년 3월 첫 수업을 개최한 이후 현재까지 720회 이상 강의를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비어마스터 클래스를 다녀간 사람이 1만 8000명에 달한다. 현재는 주로 기관, 단체 등에서 15명 이상이 사전 신청을 해야지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그나마도 최소 두 달 전에는 예약해야 원하는 날짜에 수강이 가능하다. 초반에 비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빠른 시일 안에 일반인 대상으로 수업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게 오비맥주 측의 설명이다. 이날 수업을 참관한 김병모(25)씨는 “먼저 수업을 들은 지인의 추천으로 참석하게 됐다”면서 “온라인을 통해 떠도는 맥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윤수민(25·여)씨도 “일반 시음행사에서는 맛이 있는지, 없는지만 단순 비교하게 되는데, 수업을 통해 맥주에 얽힌 이야기나 올바르게 마시는 법을 알고 시음하니 내가 선호하는 맥주의 특징이 무엇인지도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과거의 음주문화는 주로 만취할 때까지 들이붓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술을 제대로 알고 맛을 음미하려는 분위기가 보편화됐다”면서 “수업에서도 초기에 비해 맥주의 종류별 음용법, 맛이나 향의 차이 등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이렇게 술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다. 음주문화가 변하면서 술을 기호식품의 하나로 보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해외여행이 증가하고 다양한 수입 주류가 국내에 반입되면서 소비자가 세계 각국의 술을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체코의 글로벌 맥주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 관계자는 “맥주를 비롯한 수입 주류가 대중화되고 저도주의 유행으로 여성의 술 소비가 늘면서 전체적으로 소비자 입맛도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소비자 입맛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맛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수제맥주 회사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 회사인 제주맥주는 지난 8월부터 제주 한림읍에 위치한 양조장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양조장 투어를 통해 관람객은 맥주 몰트 분쇄부터 제품 포장에 이르기까지 수제맥주 양조의 주요 공정을 관람할 수 있다. 또 18종의 맥주 원재료 및 부재료를 직접 확인하고 맛볼 수 있으며, 맥주 양조 전문가처럼 좋은 향과 나쁜 향을 구분하는 훈련도 체험해 볼 수 있다. 사전 예약으로만 참여가 가능하고 1회 참가 인원이 40명으로 제한돼 있음에도 지난달 말 기준 약 5000명이 방문하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16일에는 ‘제주 위트 에일’ 맥주 레시피를 개발한 세계적인 브루마스터 개릿 올리버의 방한을 맞아 제주맥주 양조장에서 맥주 애호가 및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비어긱 클래스’도 열었다. 국내 주요 수제맥주 회사 임직원과 맥주 전문가 등 약 40명의 맥주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올리버가 직접 나서 ‘핸드앤드실 코냑’, ‘로컬1’ 등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한정판 프리미엄 수입맥주 10여종의 시음 방법을 강의했다. 미국 시카고의 대표적인 수제맥주 브랜드 ‘구스 아일랜드’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 매달 맥주 애호가들과 함께 맥주를 연구하는 ‘맥덕 클래스’를 열고 있다. 맥덕 클래스는 구스아일랜드에서 직접 만든 하우스비어 등 다양한 맥주의 맛과 향, 특징 등을 공부하고, 어울리는 음식과의 조합을 직접 발굴해 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는 10명 이내로 제한된다. 맥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위스키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 프로그램으로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에드링턴코리아는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2014년부터 대규모 위스키 시음 클래스 ‘토스트 더 맥캘란’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4000~5000명의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위스키의 종류별 제조법과 향,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과 역사 등을 약 2시간에 걸쳐 설명하고 직접 시음해 보는 기회를 갖는다. 올해도 지난 3월 3일부터 4월 4일까지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메가박스 ‘더 부티크’에서 개최됐다. 특히 올해는 행사 기간 중 맥캘란의 영국 마케팅 디렉터 글렌 그립번이 방한해 국내 소비자들과 시음회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관련업계 종사자를 위한 주류 전문가 양성과정도 늘었다. 필스너 우르켈은 지난해 2월부터 브랜드만의 비어마스터인 ‘탭스터’ 양성과정을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비어마스터는 매장에서 생맥주를 관리하고 완벽하게 ‘푸어링’(맥주를 잔에 따르는 것)하는 직업이다. 와인업계의 ‘소믈리에’와 비견된다. 맥주를 제조하고 생산품질을 유지하는 ‘브루마스터’와는 구분된다. 필스너 우르켈은 세계 각국에 66명의 탭스터를 두고 있으며 체코의 현지 헤드 탭스터 아담이 정기적으로 아시아 지역을 돌면서 맥주를 보관·관리하는 법부터 맥주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법 등을 교육한다. 현재 국내 약 20개 주류 전문점 바텐더들이 수강을 마쳤다. 국내 위스키 전문회사 골든블루는 지난해부터 매년 2명을 선발해 양조전문가로 육성하는 ‘마스터블렌더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스터블렌더란 숙성된 위스키 원액을 조합해 최고의 향과 풍미를 지닌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 주류 제조 전문가다. 원료 선택부터 발효, 증류, 숙성 등 위스키의 모든 제조과정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위스키의 맛과 품질을 유지·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양조협회는 1821년 설립된 스코틀랜드의 해리엇와트대 양조.증류학과 석사 학위자 가운데 일정 경력을 지닌 사람에게 마스터블렌더 호칭을 부여한다. 골든블루는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한 장학생을 대상으로 해리엇와트대의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학비, 체재비, 항공료 등을 전액 지원한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위스키 불모지인 국내 주류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제품 개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류 문화와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아직도 히잡만 보이나요

    아직도 히잡만 보이나요

    지구촌에 깃들어 사는 75억명 가운데 무슬림은 23%인 15억 9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리는 무슬림의 절반인 여성 8억명이 종교·사회문화적 억압 아래 스포츠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고 막연히 여긴다. 히잡(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두건)이나 니캅(눈만 빼고 전신을 가리는 복장) 아래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숨기고서 말이다. 하지만 시나브로 무슬림 여성들은 굴레를 벗어버리고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달리고 있다. 종목별로 무슬림 여성이 얼마나 진출해 있는지, 그들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어떤 게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무슬림 여성 선수들이 따낸 메달이 14개나 된다. 유도 금메달, 레슬링 은메달과 동메달 1개씩, 태권도 동메달 4개, 펜싱 1개 등이다. 튀니지 대표로 펜싱 동메달을 목에 건 이네스 부바크리는 메달을 모든 아랍 여성에게 헌정하며 자신의 승리가 “여성들이 (그곳에도) 존재하며 사회에서 각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히잡을 쓴 선수들이 1996년 애틀랜타대회 전까지는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점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무슬림 금식기인 라마단과 겹친 2012 런던올림픽의 일부 경기를 오전에 배치해 무신경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국제농구연맹(FIBA)은 12㎝ 이상의 머리띠를 쓰지 못하게 해 히잡을 착용한 무슬림 여성들의 출전을 막다가 카타르 대표팀이 2014 아시안게임 출전을 포기하고 철수하자 지난 5월에야 규정을 없앴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히잡을 금지해 2011년 이란 대표팀이 올림픽 예선 출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히잡을 쓰면 질식이나 심장마비 등 위험을 초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도 늘어놓았다. 그러다 여러 업체들이 스포츠 히잡 개발에 나서자 FIFA는 그제야 금지 규정을 지웠다.테니스와 축구, 배구, 농구, 유도와 역도 등에서 괄목할 만한 기량을 보인 이들이 많다. 네 차례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 15위까지 올랐던 이란계 프랑스 선수 아라바네 레자이와 인도 출신으로 복식에서 40차례 우승하며 2015년 세계 1위에 오른 사니아 미르자가 대표적이다. 미르자는 짧은 치마를 입어 인도 무슬림 성직자로부터 거친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07 FIFA 여자월드컵 우승을 이끈 독일 미드필더 파트미레 알루시 바이라마이와 프랑스 여자축구 대표팀의 제시카 우아라 도뫼는 지금도 명성이 드높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알제리와 튀니지 여자배구는 국제대회에서 번갈아 우승하는 강호다. 리우올림픽 비치발리볼의 이집트 대표 도아 엘고바시는 반바지와 어깨를 또렷이 드러낸 셔츠 등으로 뭇남성의 눈을 붙들어 맸다. 고교에서 3000득점 이상 기록한 빌키스 압둘 카디르 등은 미국대학체육협의회(NCAA) 대회에 나서기 위해 FIBA에 압력을 넣어 결국 이 규정을 폐기시켰다. 하지만 카디르 등은 돈벌이로 운동을 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좇아 프로 데뷔를 마다했다.펜싱도 무슬림 여성들이 선호하는 종목이다. 미국 선수로는 처음 히잡을 쓰고 리우올림픽에 나선 입티하지 무함마드는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아도 돼 펜싱을 택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하얀 스포츠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무슬림 인구가 절대적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크리켓이 크게 인기를 끄는데 긴 치마와 긴소매 옷을 입고 신체 접촉도 적은 편이라 여성들에게 맞춤한 종목으로 여겨진다. 이란 대표팀이 2009년 만들어지자 이듬해 나르게스 나푸티가 싱가포르대회에 심판으로 참가해 최초로 스포츠 때문에 홀로 여행한 이란 여성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워낙 반대가 심해 2010년 결성한 대표팀이 2014년까지 잠자는 상태였다.달릴라흐 무함마드는 리우올림픽 육상 여자 400m허들에서 미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그녀의 부모는 “딸의 성공이 무슬림의 믿음, 규율과 재능에 터잡은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이 밖에도 에나스 만수르, 디나 엘타바, 시누나 살라 알합시 카리만 아불리자다옐, 가미야 유수피, 술라이만 파티마 다흐만 등이 이름난 육상 선수다.2011년까지도 역도는 무릎과 팔꿈치를 드러내는 경기복 탓에 무슬림의 참여가 제한됐다. 그래서 쿨숨 압둘라(미국)는 머리와 팔다리를 가리게 한 채 경기하게 해 달라고 국제역도연맹(IWF)에 청원해 뜻을 이뤘다. 그 결과 리우올림픽에서 자지라 자파쿨(카자흐스탄), 스리 와유니 아구스티아니(인도네시아), 사라 아흐메드(이집트) 등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흐메드는 아랍 여성 최초로 역도 동메달을 따냈다. 남자역도 강국인 이란은 2011년에야 여자선수의 등록과 국내대회 출전을 허용한 뒤 최근 국제대회의 빗장도 풀겠다고 공언했다. 카타르, 브루나이와 함께 런던올림픽에 여자선수를 파견해 첫 양성 평등 대회를 일군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제야 여자역도를 허용하겠다고 나섰다. 중동과 아프리카, 서남아시아는 무슬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상하(常夏)의 땅이지만 최근 들어 동계 종목에도 조금씩 무슬림 여성들이 눈에 띄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피겨 선수 자흐라 라리는 남녀를 통틀어 처음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히잡과 전신 유니폼을 입고 연기했는데 나이키가 스포츠 히잡 모델로 채용했다. UAE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파티마 알알리는 지난 2월 북미아이스하키연맹(NHL) 워싱턴과의 합동훈련에 참여했고 워싱턴과 디트로이트의 리그 경기에 앞서 퍽을 떨어뜨려 시작을 알렸다.급속한 경제 성장과 청년층의 증가가 이들 이슬람권의 프로 스포츠와 경기용품, 커뮤니티 스포츠센터의 시장성을 높이고 있다. IOC는 무슬림 여성을 올림피즘 확산에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 IOC가 1984년 LA올림픽 육상 여자 400m허들 금메달리스트인 나왈 엘무타와켈(모로코)을 1998년 IOC 위원으로 선임한 것도 첫 아프리카 무슬림 출신이란 상징성을 감안해서였다. 이슬람교에도 여성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일과 관련해 특별히 금하고 있는 게 없다. 오히려 예지자 무함마드와 아내 아이샤는 틈틈이 달리기 시합을 즐겼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수영이나 승마, 활쏘기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권장했다. 페르시아 미술에서는 남녀가 함께 폴로 경기를 즐기는 모습도 곧잘 눈에 띈다. 일부 이슬람 사회학자들은 여성들이 어떤 유형의 스포츠든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간 남성과의 신체 접촉을 꺼리는 특성 때문에 여성들만 출입하는 체육관이나 대회를 신설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영국에 거주하는 젊은 무슬림 여성들을 연구한 케이 테스는 가족들이 그네들의 스포츠 참여 여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여성일수록 바깥 활동과 관련해 부모들의 감시를 더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사회에 맞춤한 스포츠 프로그램이 적다는 것도 작용한다. 부모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팀 관계자들의 하소연도 있다. 성 역할을 고정하는 편견도 작지 않다. 리사 이사드는 이란과 팔레스타인, 터키 축구 선수와 관중들의 여자는 축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게 가장 힘겹다는 점을 확인했다. 동료끼리의 우정을 동성애 성향이 있는 것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스포츠를 즐기는 무슬림 여성의 모습은 조금 더 자유롭고 서구화된 모습으로 비친다. 아프가니스탄 육상 선수 로비나 무킴야르가 2004 아테네올림픽 때 부르카(머리에서 발목까지 덮어쓰는 통옷 형태의 전통복식)를 벗어버리자 서구 언론은 찬양 일색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서구의 기준에 순응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낯설고 기량도 떨어지며 엉뚱한 곳에 떨어진” 존재로 취급된다.터키 태권도 선수 큐브라 다글리는 “서구 기자들은 내 성공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히잡만 들먹였다. 이런 걸 바란 건 아니다. 우리의 성공이 얘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여성에겐 태권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 차라리 경기 중에는 히잡을 벗어버리라는 비아냥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슬림 여자선수들은 스포츠를 가부장적 권위에 맞설 기회로 여긴다. 팔레스타인 여자축구 대표팀을 연구한 이들은 선수들이 “자기결정권과 평화, 우애를 지향하는 사회운동 수단”으로 축구를 여겼다고 지적했다. 동료에게서 여성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존재란 것을 배우며 자신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비무슬림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스포츠를 택한 이유로 꼽는다. 돈과 영예를 버젓이 들먹이는 서구 선수들과 많이 다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핵전쟁’ 대비 세계 첫 한국산 개인용 벙커 판매

    ‘핵전쟁’ 대비 세계 첫 한국산 개인용 벙커 판매

    최근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급(ICBM)급 ‘화성-15형’ 시험발사가 전 세계를 위협에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한국형 방사성 낙진 지하 대피소(fallout shelters)가 해외언론에 보도됐다. 30일(현지시간) 영국 미러, 데일리메일 등 현지언론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상업지구에 북한의 핵 공격을 막아줄 수 있는 ‘벙커 전시실’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4인 기준 3000만 원에 달하는 이 벙커는 4개의 침대와 냉장고, 컴퓨터, TV와 같은 가전제품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 8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외부 안전 확인을 위한 감시카메라와 자체 공기 정화시스템, 태양 전지판, 한 달 동안 전력을 제공하는 자동 풍력 발전시설도 마련돼 있다. 실제로 핵 또는 방사능 폭발했을 경우, NASA 우주 비행사용 배급식량, 가족용 방독면 등의 보호장비가 든 생존팩으로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벙커는 다양한 크기로 주문할 수 있으며 하나를 만드는데 대략 3주정도가 걸린다. 해당 벙커를 제작한 한국 기업 ‘첨단벙커시스템’(CBS)은 영국 공기 정화 전문 기업 카스텔렉스(Castellex)와 손을 잡고 핵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피소를 만드는 데 노력해왔다. 주요한 뼈대는 서울에서 만들었지만 그 밖에 많은 재료는 영국에서 수입했다. “지난 9월 회사를 시작해 스위스, 미국, 호주 영국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오랫동안 벙커를 연구해왔다. 적당한 가격에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벙커를 만들기 위해 전 제품을 조사했고 유일무이한 결실이 마침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군대 밖에서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벙커는 우리 제품이 세계 최초”라면서 "벙커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볼 수 있도록 전시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땅끝… 치유의 길 걷다

    땅끝… 치유의 길 걷다

    이 땅의 끝인 전남 해남. 그 끝자락에 산 하나가 불끈 솟았습니다. 달마산입니다. 산꼭대기에는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수많은 암릉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이 모습 덕에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립니다. 산의 높이라야 489m 정도에 불과하지만, 크기에 견줘 장엄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달마산 아래 달마고도가 최근 새로 조성됐습니다. 산자락 7~8부 능선을 따라가는 트레일입니다. 달마고도는 대체로 유순합니다. 일부 구간을 빼면 푹신한 흙을 밟으며 걷습니다. 그러니 산꼭대기의 암릉을 오르내리는 등산로가 ‘정복의 길’이라면 달마고도는 ‘치유의 길’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남도 금강산’ 달마산, 수많은 암릉들이 촘촘히 박혀 왜 달마산일까. 전해오는 옛이야기를 되짚어가면 불교의 남방도래설에 맥이 닿는다. 오래전 인도 우전국 왕자 금인(人)이 불교를 전하기 위해 땅끝을 찾았다. 사자포구에 내린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달마산이었다. 그는 이를 “1만명의 부처님이 앉아 있는 형상”이라며 상찬했다. 현재의 이름은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의 법명에서 따왔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은 “동국여지승람, 미황사 상량문 등에 달마산이 ‘달마대사의 법신이 상주하는 산’이라고 적혀 있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 때 사자포를 찾은 상인들이 배에 싣고 온 달마대사의 법신을 달마산에 묻었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다. 여기서 법신은 육신만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달마대사가 입었던 가사, 썼던 발우, 몸에서 나온 사리 등을 뜻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무엇이 달마산에 깃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트레킹에 앞서 달마고도의 제원부터 살핀다. 전체 길이는 약 18㎞다. 완주하려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미황사를 기준으로 절반은 동남쪽, 절반은 서북쪽 산사면을 따라 조성됐다. 미황사 왼쪽으로 도는 구간이 대부분 새 길이고 오른쪽은 천년숲길 등 기존의 길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 코스는 모두 4개다.달마고도는 건설 장비의 도움 없이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조성됐다.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고, 지게를 져 돌 등의 자재를 날랐다. 매일 40여명의 인부가 동원돼 꼬박 250일 동안 작업을 벌였다. 금강 스님은 이 같은 조성 과정에 대해 “사람이 산에 깃들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복의 욕망으로 달마산을 찾지 말고, 치유를 위해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니 “티베트 사람들이 수미산 꼬라(탑돌이)를 돌 듯 달마산을 한 바퀴 돌면 그 자체가 수행”일 터다. 달마고도는 좌우로 긴 타원형이다. 적당히 걷다 다른 경로로 돌아올 수 없는 구조다. 한 바퀴를 완주하거나 걸었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방법밖에 없다. 시간에 쫓기는 외지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리한 여건이다. 달마산 양쪽의 산사면을 잇는 지선 공사가 끝나면 상황이 다소 나아질 듯하다. 달마고도 4개 코스, 미황사~관음암~노지랑골~도솔암달마고도의 들머리는 미황사다. 창건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고찰이다. 달마산의 암릉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섰다. 대웅보전의 단청 빠진 공포와 배흘림의 늙은 기둥이 절집의 만만찮은 내력을 웅변하고 있다. 기둥을 떠받친 주춧돌엔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다. 경상(불경과 불상)을 싣고 해남 사자포구(땅끝)에 닿은 인도 돌배 설화의 상징물이다.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돌배가 오던 날, 의조 스님은 꿈을 꾼다. 스스로를 인도의 왕자라 밝힌 금인이 나타나 “소에 경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성상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돌배에서 나온 검은 소는 달마산 어귀에 이르자 한바탕 울음을 운 뒤 쓰러졌다. 그 자리에 들어선 절집이 미황사다. 달마고도 1코스는 미황사 일주문 옆에서 시작된다. 숲길과 임도를 따라 1㎞쯤 가면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온다. 달마산의 기암들이 허물어져 내린 흔적이다. 너덜지대 주변엔 나무가 없다. 사방이 트였다. 자연이 안배한 풍경전망대다. 달마고도를 통틀어 이런 너덜지대가 20여곳이나 된다. 칼날 같은 암봉 사이에 뿌리를 내린 몇 그루 단풍들의 자태도 곱다. 회색 바위를 배경 삼은 덕에 빛깔이 한층 더 도드라진다. 2코스 중간의 관음암터에 이르면 작은 못이 나온다.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서 만나는 연못이 퍽 이채롭다. 달마고도를 설계한 권경익씨는 “달마고도 주변에 절터와 연못이 각각 십여곳에 이른다”며 “이는 달마산의 생명력에 대한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달마산 동남쪽 사면, 그러니까 타원형 코스의 왼쪽 끝자락까지는 완도 쪽 풍경이 펼쳐진다. 반면 달마산 서북쪽 사면으로 돌아서면 진도 일대의 풍경이 눈에 담긴다. 3코스는 노지랑골 사거리부터 편백나무숲을 지나 몰고리재까지 연결된다. 4코스는 몰고리재에서 다시 미황사로 이어진다. 내년 1월부터는 주말마다 트레킹 가이드가 배치된다고 한다. 이들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이정표는 코스 곳곳에 잘 세워진 편이다. 다만 1코스 중간의 삼거리엔 이정표가 없다. 삼거리에서 왼쪽은 송촌마을, 위쪽은 달마산 등산로다. 잘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달마고도는 가운데 길로 가야 한다. 아울러 이정표의 붉은 화살표는 등산로, 파란 화살표는 진행 방향, 검은 화살표는 하산 방향을 각각 표시한다. 안내도에 적혀 있지 않으니 꼭 기억해 둬야 한다.땅끝마을, 힘차고 아름다운 해돋이 4코스에 도솔암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다. 달마산 암릉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암자다. 달마고도 노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풍경의 보고인 만큼 빼놓지 말고 돌아보길 권한다. 차로도 도솔암 근처까지 갈 수 있다. 달마고도를 내처 걸은 뒤에 느긋하게 찾아도 좋겠다. 도솔암에 올라서면 땅끝과 다도해가 주르륵 펼쳐진다. 달마산의 장대한 암릉들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땅끝마을은 당연히 찾아야 할 해남의 아이콘이다. 땅의 끝에서 맞는 해넘이 풍경도 곱지만, 그보다 해돋이 장면이 더 힘차고 아름답다. 땅끝마을 뒤는 사자봉이다.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주변에 땅끝탑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송지면 엄남리 해안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사구리 해안까지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드라이브 코스 주변에 송호해변, 땅끝관광지, 사구미해변,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한 곳만 더 덧붙이자. 최근 두륜산 대흥사를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현직 대통령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공간이 있어서다. 하지만 해당 선원은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스님들의 동안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중순쯤 동안거가 해제되면 다시 열린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도솔암 주차장은 송지면 마봉리에서 도솔암 이정표를 따라 3㎞ 정도 오르면 나온다. 주차장에서 도솔암까지는 800m 정도. 잰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린다. 미황사(533-3521) 대웅전이 전면 보수 공사에 들어간다. 시작 시점은 조만간 정해질 예정이다. 해남까지 내려가서 고풍스러운 미황사 대웅전을 못 본다는 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달마고도를 걸어 볼 계획이라면 서두르는 게 좋겠다. →맛집: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80년을 이어온 떡갈비로 소문난 집이다. 땅끝회관(536-3366) 진일관(532-9932) 등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이학식당(532-0203)은 삼치회로 입소문 난 집이다. 송촌마을 입구의 매화식당(536-9595)은 소박한 백반집이다. →잘 곳:유선장여관(534-2959)은 고풍스러운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대흥사 들머리에 있다. 땅끝비치(534-1002)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땅끝마을 언덕에 있다.
  • 中여행사, 단체관광 해제되자마자 비자 신청

    중국 국가여유국이 지난 28일 베이징과 산둥 지역에 한해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자 현지 여행사들이 곧바로 여행객 모집에 나서는 한편 단체 비자 신청도 서두르고 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베이징과 산둥성의 여행사 중 일부는 이미 한국 법무부에 한국 여행을 위한 단체 비자를 신청했다. 중국 여행사가 단체 비자를 신청한 것은 지난 3월 이후 8개월 만이다. 단체 비자는 개인 비자와 달리 중국 현지 여행사들이 주중 한국대사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한국 법부무에 직접 신청한다. 단체 비자 신청은 국가여유국의 출국 허가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단체관광객들은 12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두 지역의 여행사들은 특히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으로 한국 여행상품을 안내하는 등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베이징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한국 단체여행이 개방돼 베이징과 산둥에서 출발하면 지금이라도 갈 수 있다”면서도 “한국 여행 상품에 롯데 관련 일정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갑자기 한국 단체관광이 가능하게 된 것으로, 산둥과 베이징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니라 산둥이나 베이징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관련 내용에 대해 윗선의 지침이 있었다”고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사드 ‘3不’이어 한국여행 ‘3不’ 내건 중국

    사드 ‘3不’이어 한국여행 ‘3不’ 내건 중국

    ‘롯데, 크루즈와 전세기, 온라인 판매는 절대 안 된다’ 28일 중국 국가여유국(國家旅游局)이 한국 단체관광을 일부 허용하면서 내건 세 가지 금지 조건이다. 중국 국가여유국은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정책국과 한국관광공사의 기능을 하는 조직으로 서울지국도 두고 있다. 지난 3월 중국 국가여유국은 한국 단체관광을 구두로 금지했으며, 이번 일부 해제조치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가여유국의 결정에 대해 모르겠다며 “중국은 중한 각 분야 교류와 협력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만 밝혔다.중국은 특히 베이징(北京)과 산둥(山東)성 주민에 한해서만 한국 단체관광을 허가했는데,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 국적 여행객의 30%가 이 두 지역 주민이었다. 중국 관영 영자매체인 글로벌타임스가 중국 최대여행사 가운데 하나인 중국국제여행사(CITS)와 청춘여행사에 28일 확인한 결과 아직 한국단체 관광 상품 구매는 가능하지 않았다. ‘시에청’(携程·씨트립), 취완얼, ‘lvmama.com’과 같은 중국 온라인 여행 사이트도 한국 단체관광 상품을 취급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국가여유국의 제한적 해제 조치 이후 바로 베이징의 한 여행사는 30여명의 단체비자를 한국대사관에 신청했다. 다음 달 2일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다. 베이징 소재 알리바바 그룹 여행 플랫폼인 ‘페이주’(飛猪·fliggy.com)도 톈진에서 서울로 가는 12월 6일 출발 자유관광 상품을 판매 중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 재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금한령(禁韓令) 자체를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한국 단체관광 금지 조치를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까닭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광업계 관계자는 29일 글로벌타임스에 “한국 단체관광이 완전히 개방된 것이 아니므로 단체관광 비자 신청을 받지 않는다”며 “단체관광은 개인적으로 한국 비자를 신청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또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3不약속’(사드 추가배치, 미국 미사일방어 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해 보이는 양면적 태도는 중국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공허한 약속과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랴오닝 사회과학원의 한국 전문가 루 차오는 “두 나라가 우호적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만약 한국이 어떤 구실이나 압력으로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면 상황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中 한국 단체관광 허용, 롯데 사드보복은 여전

    中 한국 단체관광 허용, 롯데 사드보복은 여전

    중국 관광을 총괄하는 국가여유국(國家旅游局)이 28일 각 지방 여유국 별로 대형 여행사 대표들과 함께 회의를 연 결과 한국 단체관광을 일부 허용했다. 베이징(北京)과 산둥(山東) 지역에 한해 일반 여행사들의 한국행 단체 관광을 허용하고, 롯데그룹과는 어떤 협력도 허용하지 않는 등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앙금을 남겼다. 이번 한국 단체관광 허용은 크루즈 전세기 금지, 롯데그룹과의 협력 금지, 온라인 여행사 상품 취급 금지 등의 제한조건으로 전면적 해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지난달 19차 당 대회를 계기로 한국 여행을 소개한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시에청’(携程·씨트립)은 이번 단체관광 허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성주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과는 어떤 협력 조치도 금지해 1년째 중단된 선양(瀋陽) 롯데타운 공사 재개도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됐다.  이날부터 북한으로의 여행도 금지됐다. 단 랴오닝성(遼寧省)과 지린성(吉林省)에 사는 주민은 북한 관광이 가능하다. 일본으로 가는 단체관광객도 여행사별로 올해와 지난해 평균 여행객 숫자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한했다. 이날 회의에서 ‘민족적 존엄성’까지 언급돼 올해 난징대학살 70주년을 맞아 일본 관광은 억제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11일 한국 단체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중국의 대형 여행사들은 일제히 한국 상품 판매를 중단했고, 홈페이지에서 한국 여행 검색조차 차단했다. 그동안 단체여행 금지로 한국에 오는 중국 관광객은 60% 가까이 감소했다.  한국 단체관광은 8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으로 단체 비자 발급 업무를 복원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던 가이드들이 관광 재개 준비를 하려면 12월 중순이나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한편 지난 달 31일 한중관계 개선 협의문인 사드 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인적 교류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11월 셋째 주 중국의 한국 개별비자 신청 건수는 2만 7000여건으로 올 들어 가정 저조했던 3월 신청건수인 1만여건 대비 156%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4% 늘어난 것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교과 공부보다 ‘꿈 찾는 고1’… 오디세이학교 지원하세요

    고등학교 1학년 동안 국어·영어·수학과 같은 교과 공부는 줄이고 자신의 꿈을 찾는 활동을 주로 하는 오디세이학교가 정식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오디세이학교는 주입식 교과 위주의 학습과정에서 벗어난 교육을 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실험이었다. 현행 입시체제를 뛰어넘었다는 기대와 함께, 입시체제 내에서 그 한계가 뚜렷하다는 우려가 엇갈리면서 순항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교육청은 서울형 자유학년제 교육과정인 오디세이학교 2018학년도 신입생 80명을 27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모집한다고 26일 밝혔다. 신입생은 자기소개서 등을 통한 서류 심사와 학생·학부모 면접으로 선발한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기존의 교육방식을 탈피해 청소년 스스로 성찰하고 여러 체험을 하는 오디세이학교를 공약으로 내걸고, 2015년부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범 운영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의 모태가 된 아일랜드 고교 전환학년제에서 본떴다. 내년 3월 1일 정식학교인 ‘각종학교’로 개교한다. 교육과정은 공통 과정과 선택 과정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은 희망하는 교육과정을 선택해 지원할 수 있다. 공통 과정은 글쓰기와 여행, 자치활동과 멘토 특강으로 구성돼 있다. 선택 과정은 프로젝트 과정, 인턴십 과정, 문화·예술 과정, 인문학 과정 등이 있다. 다만 2년 동안 시범운영하면서 학생들의 교과 성적 하락이 문제로 제기됐다. 시교육청은 학생들이 교과 수업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한국사 등 교과별 핵심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2015년 정원 40명 가운데 11명이 적응에 실패해 자퇴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그동안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2018학년도에 더욱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덴마크 애프터스콜레와 학생 교류 등을 하면서 공교육의 새로운 혁신 모델로 확대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지구 최강 직업’ …최고 휴양지 여행하며 월급 1000만원

    ‘지구 최강 직업’ …최고 휴양지 여행하며 월급 1000만원

    세계에서 가장 좋은 휴가지에 머물면서 몇천만 원에 달하는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한 호주 출신 여성에게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됐다. 호주 ABC뉴스는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세계적인 리조트 클럽 ‘써드홈’(Third Home)의 구인광고에 지원한 소렐 아모르(28)가 1만 70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지구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써드홈은 ‘세계 최고급 여행지를 석 달 동안 체험하고, 그 경험담을 소셜미디어로 홍보할 사람을 구한다’는 채용 광고를 냈다. 회사 측은 최후의 1인에게 유명 도시 및 휴양지에 위치한 고급 호텔과 저택에 무상으로 묵으면서 매달 1만 달러의 보수와 여행경비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 행운의 1인에 아모르가 선발됐다. 그러나 무료 세계 여행 티켓을 획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모르는 블로거로서의 경험과 영상 촬영 기술, 40여 개국을 방문한 세계 여행 전문가라는 자질로 회사 측에 자신이 적임자라는 확신을 줬고, 이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그녀는 “합격자 선발 투표를 앞두고 잡지, 인터넷 언론사,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가 자신을 어필했다. 최종 후보자에 오른 사람 중 나만큼 열심히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집념은 빛을 보았다”며 그동안 기울인 노력을 설명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아모르는 13주 동안 발리, 바하마, 크로아티아, 스페인 등을 포함해 12곳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다녔다. 나무 위의 집부터 12개의 침실이 있는 빌라, 1800년대 스코틀랜드성까지 다양한 숙소에 머물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여행 동안 약간의 차질도 빚었다. 소셜미디어용 사진을 찍기 위해 주기적으로 좋은 장소를 발굴하고, 완벽한 한 컷을 포착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공항에서 끊임없이 대기하는 시간은 아모르를 힘들게 만들었다. 아모르는 현재 초호화 세계 일주 여행을 마친 상태다. 지상 낙원의 맛을 본 그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녀는 “아직 작업해야 할 일이 남아 잠을 거의 못 잘 때도 있지만 이는 최고의 일이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최선의 해답을 찾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진=인스타그램(sorelleamore)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문 대통령, 포항여고 깜짝 방문…‘나그네’ 삼행시에 학생들 “네네네” 합창

    문 대통령, 포항여고 깜짝 방문…‘나그네’ 삼행시에 학생들 “네네네” 합창

    문재인 대통령이 강진이 발생한지 9일 만인 24일 경북 포항을 방문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포항여고를 찾아 전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포항여고를 깜짝 방문했다. 문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교사와 학생들은 문 대통령이 학교에 들어서자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최규일 교장, 엄기복 교감과 함께 학교 곳곳을 둘러보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최 교장은 이번 지진으로 일부 건물에 균열이 생겼고 학교 뒷산도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건물을 둘러본 뒤 원래 있던 교실에 피해가 생겨 다른 교실에 머무르고 있는 3학년 9반·10반 학생들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수능을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의 학생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어제 수능은 잘 치렀어요?”라고 묻고 “워낙 중요한 시험이고 긴장되니까 평소 실력보다 못 치는 게 정상”이라는 농담으로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대피생활도 하고 여진 때문에 제대로 공부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역경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격려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변호사 시절 동료였던 김외숙 법제처장이 포항여고 출신이라는 점을 소개하자 학생들은 환호했고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수능 연기 결정이 어땠어요?”라는 문 대통령의 물음에 학생들은 입을 모아 “좋았어요”라고 대답했다. 한 학생은 “지진이 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 7시 정도여서 불안감이 컸는데 수능이 연기됐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선생님이 “수능을 정상적으로 치른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파 다른 일을 못 했는데 수능이 연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 상황에 귀를 기울여주신 데 감동했다”고 이야기할 때는 일부 학생들이 울먹이기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큰 걱정이 수능이었다”면서 “전체 수험생의 1%도 안 되지만 포항 학생들을 위한 공정함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연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경주지진 당시 경남 양산에 있는 집에 금이 갔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불안했던 마음들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잘 느끼고 있다”는 말로 학생들을 위로했다. 학교의 한 직원이 ‘대학 가기 전 꼭 해봤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씀해달라’고 부탁하자 문 대통령은 여행과 독서를 꼽았다. 문 대통령은 “‘입시,입시’ 하느라 어디 가보지도 못했을 텐데 굳이 해외여행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국내에 가보고 싶은 곳을 리스트로 만들어 다녀보면 좋겠다”며 “외국에 나가는 것은 우리 집이 최고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나그네’라는 단어로 학교 측이 준비한 삼행시를 읽을 때는 교실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학생들이 ‘나’와 ‘그’를 이용해 각각 운을 띄우자 문 대통령은 “나는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그대들도 나를 사랑합니까”라고 읽어 내려갔고 학생들은 마지막에 ‘네’라고 말하며 웃었다. 대화가 끝나고 문 대통령은 단체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문 대통령과 학생들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 후 교사와 학생들은 문 대통령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그들은 내려놔도 우리는 내려놔선 안 된다/안미현 부국장 겸 경제정책부장

    [서울광장] 그들은 내려놔도 우리는 내려놔선 안 된다/안미현 부국장 겸 경제정책부장

    지난 8월 세월호 선체에서 찾아낸 뼛조각이 고창석 교사의 유해로 사실상 확인됐다는 현장 기사가 올라왔을 때 잠시 멈칫했지만 송고했다. 석 달 전 이미 고인의 유해 1점이 나온 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식 결과 확실하다는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한 기사였다. 하지만 이 기사는 곧바로 모든 포털에서 내려와야 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미수습자 가족 한 분이 격하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즉각 내린 것은 그 항의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유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면 사죄해야 마땅했기 때문이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미수습자 유가족의 실낱같은 희망에 대못을 박을 자격이 없어서였다. 엊그제 ‘시신 없는 장례식’이 치러졌다. 다섯 개의 관 속에는 유해 대신 유품과 흙이 들어갔다. 더는 세금을 축내기 미안하다며,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울먹이던 유가족들은 시신 없는 관 앞에서 끝내 오열하며 무너져 내렸다. 이분들은 현관문을 열어 놓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곱디고운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일까. 세월호가 아직 깊은 바닷속에 있을 때, 팽목항에서 수색 작업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가족들은 온갖 것에 의지했다. 집의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아이가 돌아온다는 말에 팽목항에서 한걸음에 경기 안산까지 길을 되짚어 현관문을 열어놓고 온 엄마, 화장을 하면 아이가 돌아온다는 말에 몇날며칠 너무 울어 퉁퉁 부은 얼굴에 화장을 한 엄마, 잠수사가 건져올린 시신의 인상착의를 설명할 때마다 폴로, 나이키 등 메이커 브랜드가 등장하자 ‘우리 애는 돈이 없어 저런 걸 못 사입혀 안 나오나 보다’고 목놓아 울던 엄마…. 우리는 이 모든 사연을 잊어선 안 된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생때같은 304명의 목숨을 바다에 바쳤을 때, 채 스무 해도 살지 못한 보송보송한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내걸 때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며 무던히도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만하자’는 얘기가 들린다. 세월호 선체 좌현의 선수 부분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곳에는 수학여행 떠났던 단원고 남학생들의 방이 있다. 계획대로 세월호를 바로 세워 더 수색해야 한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해야 할 일은 다 해야 한다. 혹자는 유가족이 그만하자는데 수백, 수천억원의 세금을 써 가며 계속할 필요가 있냐며 이제는 냉정하게 판단하자고 한다. 우리가 진정 냉정해져야 할 대목은 세금이 아니다. 참사가 났을 때의 부끄러움과 죄책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던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고 이제라도 미진한 대목은 다잡아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잊고 용서한다. 포항 지진 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연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바뀌긴 했다. 예전 같으면 강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라면 교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정확한 침몰 원인과 구조과정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 재난구조 매뉴얼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거울 삼아 어떤 사고가 일어나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달라”는 유가족의 절규에 응답해야 한다.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이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특조위원 구성 방식 등을 두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모양이다. 2기 특조위를 꾸리지 않아도 될 만큼 세월호 진상 규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국민 앞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자유한국당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유가족들은 3년 7개월의 기다림을 뒤로하고 목포신항을 떠나기로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뼈 한 조각이라도 따뜻한 곳에 보내고 싶었지만 더이상의 수색 요구는 무리라고 결론 내렸다. 이제는 혈육을 가슴에 묻고 내려놓겠다.” 그들은 내려놓아도 우리는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hyun@seoul.co.kr
  • 기내수하물로 들여온 ‘대마 홍차잎’

    기내수하물로 들여온 ‘대마 홍차잎’

    두 달 동안 1억원어치 국내 판매 음성화 사이트서 비트코인 거래홍차잎에 대마를 섞어 기내 수하물로 반입하던 대마 밀수조직을 검찰이 적발했다. 이 조직은 지난 두 달여 동안 2000명이 동시에 흡연할 수 있는 분량인 1.1㎏(1억 3000만원 상당)의 대마를 국내에서 판매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박재억)는 베트남산 대마를 밀수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 A(23)씨와 판매책 B(25)씨, 국제 배송책 C(25)씨 등 3명을 마약류관리법상 영리 목적 대마 밀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또 해외 도주 중인 조직원 3명의 여권을 무효로 하고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려 검거를 추진하는 한편 현지 마약조직과의 연계 여부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의 중고차 매매업체 사장인 A씨는 딥웹(Deep Web·포털 검색이 안 되는 음성화된 인터넷 사이트)을 통한 대마 밀매로 돈을 벌기 위해 직원 3명과 친구 2명을 끌어들였다. 서울 강남 오피스텔에서 합숙까지 하며 범행을 계획한 뒤 A씨 친구가 베트남에서 대마를 확보하고, 이어 직원 C씨가 여행용 가방에 숨겨 기내 수하물로 대마를 국내에 반입했다. 이들은 홍차잎 사이에 대마를 넣고 밀봉한 상태로 베트남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A씨 등은 국내 반입한 대마를 딥웹을 통해 거래했는데, 지난 7월부터 두 달 사이 판매한 분량이 1.1㎏에 달하는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딥웹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판매 광고를 분석하고, 거래에 이용되는 비트코인을 추적해 왔다. 이어 C씨가 출국한 정황을 포착한 검찰은 지난달 26일 입국하는 C씨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된 대마는 1g당 약 13만원에 팔리는 상등품이었고, 피의자들은 불과 2주 만에 약 1.2㎏ 대량 밀반입을 성사시켰다”면서 “베트남 현지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사 확대 방침을 밝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공항에서 주인과 헤어진 개…식음 전폐하다 결국 숨져

    공항에서 주인과 헤어진 개…식음 전폐하다 결국 숨져

    주인과의 이별로 상심한 개 한 마리가 식음을 전폐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 메트로 등 현지 언론은 콜롬비아 파로네그로 국제공항에 버려진 개가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겨우 2살인 강아지는 공항 터미널 주변을 배회하며 주인을 찾아다녔다. 코로 사람들의 체취를 맡으며 쉴 새 없이 온 복도를 누볐지만 사랑하는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를 오랜시간 지켜봤던 공항직원들을 개에게 ‘떠돌이 구름’이라는 뜻의 ‘누브 비아헤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한 달 남짓이 흘렀고 그제서야 개는 주인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을 실감이라도 한 듯 공항 터미널 한 구석에 힘없이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진맥진한 개에게 음식을 건넸지만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동물 보호재단의 도움으로 동물 보호소에 실려갔으나 개는 이미 체력이 약해져 간신히 설 수 있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정맥주사를 통해 음식과 의약품을 먹였다. 그러나 극도의 슬픔과 우울증으로 개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보호소 직원들의 보살핌과 노력에도 개는 먹이를 거부했고 결국 이틀만에 세상을 떠났다. 수의사 알레한드로는 개가 절대 공항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행객이 개를 버린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는 “너무 슬퍼서 규칙적으로 먹지 않다가 완전히 음식을 중단한 것이 신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사진=텔레그래프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이영학, 오늘 첫 재판…“무기징역만은 피해달라, 희망 있는 삶 살고 싶다”

    이영학, 오늘 첫 재판…“무기징역만은 피해달라, 희망 있는 삶 살고 싶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의 첫 재판이 16일 열렸다.이영학은 딸의 초등학교 동창인 여중생을 유인해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영학은 “무기가 아닌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고 호소했고, 범행 당시 환각제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영학은 17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이성호)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공판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아울러 최근 법원에 낸 의견서에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이영학의 의견서 내용을 언급했다. 이영학은 의견서에 ‘아내가 보고 싶어 이런 일(범행)을 저지른 것 같은데,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A양(피해자)은 나와 아내가 딸의 친구 중 가장 착하다고 생각한 아이’라고 썼다. 이영학은 또 의견서에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꼭 갚으며 살겠다. 무기징역만은 선고하지 말아달라. 희망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밖에도 이영학은 의견서에 ‘딸을 위해서라도 아내의 제사를 지내주고 싶다’는 내용을 썼다. 재판장이 의견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피해자가 사망했는데 어떻게 용서를 구할 수 있나”라고 묻자, 이영학은 고개를 떨군 채 “어떻게든…”이라며 말을 흐렸다. 변호인은 “이영학이 환각·망상 증세가 있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고, 살해는 우발적이었다”며 “이영학에게 장애가 있고 간질 증세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영학은 자신이 도피하도록 도와준 혐의(범인도피)로 함께 구속기소 된 박모(36)씨가 혐의를 모두 부인해서 딸(14·구속)과 자신이 증인으로 채택되자 눈물을 흘렸다. 재판장이 “왜 그렇게 우나”라고 묻자, 이영학은 “아이를 여기(법정)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며 흐느꼈다. 이영학 부녀의 증인 신문은 다음 달 8일 열린다. 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영학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서울북부지검에 도착해 구치감에 머물다 법원과 검찰청 사이 지하 통로로 법정으로 이동했다. 이영학은 지난 9월 30일 딸을 통해 A(14)양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추행하고, 다음날 낮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살인, 추행유인) 등으로 기소됐다. 이영학은 딸을 시켜 A양에게 수면제 탄 자양강장 음료를 마시게 해 정신을 잃게 만든 뒤 각종 성인용품 등을 이용해 가학적 성추행을 저질렀고, 이후 A양이 깨어나자 신고당할 것이 두려워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영학은 A양을 살해한 지난달 1일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싣고 강원 영월군 야산으로 이동해 유기한 혐의(사체유기)도 받는다. 한편 이영학의 딸은 아버지의 범행 의도를 알면서도 A양을 집으로 유인하고 시신유기 과정을 돕는 등 범행에 공모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검찰은 조만간 이 양을 구속기소 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원히 기억할 이름 다섯

    영원히 기억할 이름 다섯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기자회견목포신항 떠나서 일상으로 복귀 국민들에 고마움 전하며 마무리 내일 유해 대신 유품으로 장례식“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님, 권혁규군. 이 다섯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십시오.” 전남 목포신항에 머물고 있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국민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떠난다.4대 독자인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남경원(48)씨는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다”라며 “선체 조사가 끝날 무렵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다시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 힘을 내야지 하는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배려심과 리더십, 그리고 유머 감각이 풍부한 현철군은 기타까지 잘 쳐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가족들은 팽목항에 기타 하나를 세워 두고 현철군의 귀환을 기다렸다. 기타에는 ‘아빠, 엄마는 죽을 때까지 너랑 함께 살 거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가족의 간절함이 적혀 있다.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평생 봉사하며 살 것 이라며 애타게 기다렸던 아빠는 “아들이 보고 싶으면 진도로 내려와 현장을 보고 힘을 얻어 돌아갈 것”이라고 울먹였다. 같은 반이었던 박영인 학생은 성격이 발랄하고 쾌활해 부모님에게 딸 같은 아들이었다. 주말마다 부모님 여행에 따라나서는 살뜰한 아들이었다. 영인군은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야구 등 구기 종목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볼링부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축구를 좋아해 체대에 진학해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영인군의 어머니는 사고 전 아들이 ‘축구화를 사 달라’고 했지만 사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새 축구화를 팽목항에 가져다 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인솔 교사였던 양승진(실종 당시 57세) 교사의 부인 유백형(56)씨는 ‘남편 발톱 하나라도 찾아 따뜻한 곳에 묻어 줘야지’ 하는 일념으로 지금껏 버텨 왔다. 교직에 몸담은 지 30년이 된 양 교사는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 준 채 “갑판으로 나오라”고 외치면서 제자들을 구하러 다시 배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게 마지막이었다. 남편이 세월호 선체 좁은 공간에 몸이 끼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어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3년 전 생존자 명단에 남편이 없어 실신한 뒤로 여러 차례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그는 이날도 창백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동생 권재근(당시 50세)씨와 조카 혁규(당시 6세)군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 권오복(63)씨는 생업을 접고 사고 첫날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다. 서울에서 힘들게 생계를 꾸리던 재근씨, 베트남이 고향인 판응옥타인(29) 부부는 제주 귀농을 위해 배를 탔다가 혁규군, 연년생 지연(5)양과 함께 변을 당했다. 참사 당시 학생 등 사람들 머리 위로 옮겨 구조됐던 어린아이가 지연양이다. 오빠가 구명조끼를 벗어 입혀 주었다고 했던 지연양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됐다. 한편 유족들은 18일부터 사흘간 장례를 마친 뒤 찾지 못한 유해 대신 유품을 태워 유골함에 안치하기로 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神도 사랑한 걸작

    神도 사랑한 걸작

    이슬람 건축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머리를 외로 꼬지 싶습니다. 서구의 이름난 성당은 줄줄이 꿰도 이슬람 사원이라면 당최 생경한 경우가 태반일 겁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계, 그러니까 ‘서구’와 ‘기독교’의 반대편에 이슬람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르다거나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요. 경계의 장막을 걷어 내면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전설로 남은 이슬람 건축의 거장 미마르 시난입니다. 모든 이슬람 건축의 표준이자 ‘건축가’(미마르)라는 보통명사로 남은 이가 바로 그입니다.미마르 시난은 오스만 제국의 건축 거장이다. 서구에서 ‘동쪽의 다빈치’라 부를 때마다 다빈치를 ‘서쪽의 시난’이라 응수할 정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다. 시난은 자신을 제외하고 이슬람 건축을 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거대한 돔과 미나레트(첨탑)가 특징인 오스만의 건축 양식이 그의 시대에 확립됐고, 그가 활용했던 여러 지표들은 이슬람 건축의 표준이 됐다.터키 여정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변경의 소도시 에디르네다. 도심에서 불과 수㎞ 떨어진 곳에서 그리스, 불가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슬람 건축물이 밀집된 이스탄불을 제치고 에디르네를 먼저 찾은 것엔 까닭이 있다. 외부의 시선과 시난 자신의 평가가 일치하는 걸작 셀리미예 모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교도 용병서 오스만 최고의 건축 거장으로 셀리미예 모스크는 최대, 최고 등의 수식어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걸작이라 상찬받는 이유는 뭘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난의 인생을 되짚어 봐야 한다. 우선 생몰 연대부터. 공식적으로는 1490~1588년이다. 한데 사망한 해에 대해서는 이견이 덜하지만 출생한 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1489년이라거나 심지어 1500년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또 하나는 그의 사랑 이야기다. 기록으로는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이지만 거의 사실처럼 회자되고 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시난이 평생 단 한번 사랑한 이는 미흐리마 공주다. 한데 공주가 술탄 슐레이만의 딸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공주는 뤼스템 파샤와 결혼하게 되고, 시난은 황제의 명으로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와 뤼스템 파샤 모스크를 짓는다. 두 모스크의 미나레트 위로는 일 년에 한 차례 해와 달이 동시에 뜬다. 절기상 춘분이자 공주의 생일인 날이다. 이 같은 천문 현상까지 고려해 모스크를 지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후대에 지나치게 미화되고 각색된 ‘혐의’가 짙다. 술탄 슐레이만은 예니체리(이교도 용병)였던 시난을 거두고 그가 기량을 맘껏 펴도록 도왔던 이다. 아무리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해도 왕족이 아닌 자와 자신의 딸이 결혼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슐레이만 자신도 사랑에 관한 한 여느 술탄과 다소 다르긴 했다. 술탄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대신 하렘에 있는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살아야 했다. 한데 슐레이만은 한 여인만 사랑했고 결혼했다. 자신이 그랬으니 딸의 파격적인 사랑에도 관대했을 수 있겠다. ●여덟 개 코끼리 다리가 42m 돔 떠받쳐 셀리미예 사원은 시난 스스로 역작이란 상찬을 아끼지 않았던 모스크다. 1575년에 완공됐다. 터키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아한 모스크로 꼽힌다. 외형은 여덟 개의 거대한 코끼리 다리(기둥)가 중앙의 돔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다. 중앙돔은 높이가 42m, 직경이 31.22m에 달한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시난이 셀리미예 모스크를 설계할 때 역점을 뒀던 부분 중 하나는 채광, 즉 빛의 유입이다. 이는 빛인 알라를 건물 안으로 영접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혁신적이고 기하학적인 설계 방식을 도입해 모스크에 수백 개의 창을 냈다. 그 덕에 모스크로서는 이례적으로 예술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엄숙함을 충족시키는 밝은 실내가 탄생했다. 셀리미예 모스크에는 다섯 층에 걸쳐 모두 999개의 창문이 엇갈리게 배열돼 있다. 여기서 창문은 ‘99개의 이름을 가지신 분’이자 ‘빛’인 알라를, 다섯 층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을 각각 상징한다. 돔 천장과 벽면 등엔 2만여개의 타일이 붙어 있다. 하나같이 무슬림이 좋아하는 파란빛을 띠고 있다. 돔은 공간 확장의 의미가 있다. 지붕을 돔 형태로 만들어 하중을 분산시키고, 작은 돔을 세워 이를 도왔다. 그러니 기둥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게 됐고, 신을 경배하는 공간은 더욱 확장될 수 있었다. 돔은 울림을 통해 소리의 확장에도 도움을 줬다. 스피커가 없었을 상황을 떠올리면 더 알기 쉽겠다. 만년의 시난이 설계한 셀리미예 모스크는 수수하다. 뜨거웠던 청춘의 뒤안길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빼고 정미한 것들만 남긴 듯하다. 우리의 종묘처럼 단순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지 싶다.모스크는 주변에 병원과 목욕탕, 시장 등 여러 건물들을 거느린다. 셀리미예 사원 주변에 남아 있는 알리 파샤 시장과 소쿨루 목욕탕(이상 1569년), 카누니 다리(1554년) 등 역시 시난이 설계한 건축물들이다.에스키 사원은 캘리그래피가 인상적인 곳이다. 1403년에 건축이 시작돼 1414년에 완공됐다. 사원 여러 곳에 독특한 형태의 캘리그래피를 새겼다. 캘리그래피는 ‘신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이다. 알라의 가르침을 글자로 표현했다. 중심 단어는 알라와 그의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다. 대개의 경우 왼쪽 벽면에 무함마드, 오른쪽 벽면에 알라를 그려 넣는다. 우츠 셰레펠리 사원도 볼만하다. 장식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가장 ‘화려한’ 자태의 모스크이지 싶다. 1438~1447년 건축됐다. 모스크의 이름은 ‘3개의 발코니’라는 뜻이다. 미나레트에 이례적으로 3개의 발코니가 달려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 영문 ‘M’ 자 모양의 회랑도 인상적이다. 바키프대학의 수피 사치 건축학과 교수는 “아치 형태의 건축 기법인 ‘레와크’가 이 모스크에서 가장 먼저 시도됐다”고 설명했다.●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은 영묘 이스탄불에도 미마르 시난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슐레마니예 모스크,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 등이 유명하다. 이스탄불의 대표 명소인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에도 그의 영향이 미쳤다. 블루 모스크는 시난의 제자들이 지었고, 아야 소피아는 라미레트를 새로 세우는 등 시난이 중건을 도맡았다. 시난의 인생을 돌아보는 여정의 끝은 그의 영묘다. 슐레마니예 사원 끝자락에 있다. 영묘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누추하지도 않은 모양새다. 스스로 자신의 묏자리를 정했다는데, 무엇보다 그 형태가 독특하다. 두 개의 골목이 만나는 뾰족한 지점에 자리 잡았다. 위에서 내려보면 영락없는 삼각자 모양이다. 건축가가 영면할 자리로 이만큼 완벽한 곳이 또 있을까. 글 사진 에디르네·이스탄불(터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한국에서 에디르네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세 시간 정도 더 가야 한다. 카파도키아는 국내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거리는 네브셰히르 공항이 가깝지만, 운항 스케줄은 카이세리 공항이 더 많다. 이스탄불은 유럽의 허브를 자처하는 공항이다. 터키항공이 이를 활용한 스톱 오버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환승 시간을 활용해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다.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짧지만 제법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다. 비즈니스 승객이나 스타얼라이언스의 골드 회원(동반 1인 포함)은 C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카파도키아 열기구는 탑승 인원과 탑승 시간에 따라 요금 차이가 크다. 2~8명이 1시간 30분 정도 탈 경우 1인당 25만원을 훌쩍 넘긴다. 보통은 1시간짜리를 주로 탄다. 16명 정도가 타는데 1인당 15만원 선이다. 카파도키아는 해발 1200m의 고원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꽤 추운 편이다. -통화는 터키 리라다. 1리라는 약 285원 정도다. 전기 콘센트는 우리와 같은 형태다. -터키 사람들은 홍차와 커피를 즐겨 마신다. 특히 터키 커피는 유럽 커피의 기원이 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터키 커피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블랙커피와 다소 다르다. 커피 가루를 타서 마시는 형태인데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잔 바닥에 남은 침전물로 점을 치기도 한다. -그랜드 바자르는 시장이자 관광명소다. 하지만 물건값은 꽤 비싼 편이다. 구경은 하되 기념품은 이집션 바자르에서 사는 게 좋다. 갈라타 다리 부근에 있다.
  • “톱 10이 목표”… 초심으로 빛 본 ‘핫 식스’

    “톱 10이 목표”… 초심으로 빛 본 ‘핫 식스’

    “오늘 시상식 드레스를 고르러 가요. 저녁은 먹지 말아야겠어요.”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정은(21)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올 시즌 27개 대회에 출전하느라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20번이나 ‘톱 10’에 들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쳤다는 게 얼굴과 말투 곳곳에서 묻어났다. 오는 27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상식의 주인공도 이정은이 될 전망이다. 대상·최저타수·다승왕·상금왕을 모두 휩쓸며 KLPGA 투어 역대 8번째 개인 타이틀 전관왕에 오른 데다 인기상도 유력하다. 이정은은 시상식 좌석에 앉아 있을 새도 없이 부지런히 무대를 오르내려야 한다. 이정은은 “아직 축하 파티를 못 했다. 시즌은 끝났지만 왕중왕전을 비롯해 세 대회가 남아 있어서 그렇다”며 “다다음주에 팬들을 모시고 제대로 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로 여행도 간다. 이번에는 제대로 쉬고 싶다”며 “동료 골프 선수들과 함께 가지만 골프는 전혀 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한 뒤 크게 웃었다. 2017 KLPGA 투어 역사를 썼지만 그의 목표는 항상 소박하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이 아닌 톱 10에 드는 것이 목표다. 톱 10에 많이 들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상이 개인 타이틀 넷 중에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매번 최고의 자리를 목표로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여느 선수들과 다르다. ‘올 시즌 4관왕을 할 줄 알았냐’는 질문에도 “상금 10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도리질을 했다. 그러면서 “작은 계획을 세웠다가 성적이 잘 나온 적이 있어서 그 뒤로 계속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무대를 평정한 선수들은 이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은은 신중하다. 기회가 되면 해외 대회에도 출전하겠지만 여전히 주무대는 KLPGA 투어라고 못을 박았다. 차근차근 준비한 뒤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4관왕을 했으니 내년에는 그 네 가지 중에서 적어도 하나 정도는 2연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정은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가 5학년 때 잠시 그만뒀다. 이유를 물어 보니 “하기 싫어서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운동이 힘들었지만 후일 골프 레슨으로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형편 탓에 빨리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낸 만큼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올 시즌을 정리해 말해 달라는 주문에 이정은은 늘 그렇듯 모범 답안을 내놨다. “준비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뤄 행복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2년차일 뿐입니다. 골프를 해야 할 날이 많기 때문에 행복을 너무 만끽하기보다는 다음을 위해 준비하겠습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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