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달 기지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인사 비리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개정법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수사 번복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정담회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736
  • [사설] 美, 냉온탕으론 북한 유인 못한다

    북한이 새달중 6자회담에 복귀하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관련국이 신중해져야 할 때다. 지금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다. 유화 분위기를 보이다가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을 다시 한다. 이란핵 문제가 꼬이는 상황에서 북핵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는 게 미국으로서도 최선이다. 북한은 “미국이 한달만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하지 않으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한 유인책에 앞서 정치적 신뢰구축을 바라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미국이 준비중인 몇몇 조치는 북·미관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미 합참 산하 국방대학교는 다음달 북한의 위기상황에 대비한 모의작전 연습을 할 계획이라고 외신이 전했다. 미 행정부는 북한, 이란, 시리아의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 기술의 구매활동에 연루된 기업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마련했다. 북한에 회담 기피 구실을 주지 않으려면 이런 조치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마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어제 미국으로 출발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나눈 얘기를 미 지도부에 직접 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네오콘의 좌장 딕 체니 부통령과의 면담이 주목된다. 체니 부통령에게 강경정책이 능사가 아님을 충분히 설명하길 바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까지 성사되는 게 6자회담 재개에 도움이 된다.6자회담은 재개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궁극적인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북·미간 잦은 접촉으로 불신이 해소되어야 한다.30일 뉴욕에서 열리는 한반도문제 토론회에서 북·미 당국자 회동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미국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고위급의 대북특사 파견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 부시, 이라크 철군일정 제시 거부

    이라크 전쟁과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하고 철군 여론이 높아지는 등 궁지에 몰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희생은 미국의 미래 안보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며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이라크 주권이양 1주년을 맞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군기지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현지 사정이 어렵고 위험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미 국민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민주당은 물론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요구한 미군의 철수 시한 제시 요청을 일축했다. 부시 대통령은 “철군 시한을 설정하는 것은 이라크 무장세력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며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동시에 추가 파병 가능성도 부인했다. 부시 대통령은 “추가 파병을 한다는 것은 이 전쟁에서 이라크인들이 주도권을 잡도록 이끌어 나간다는 우리의 전략을 손상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이라크에 영원히 머무르려 한다는 암시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이날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9·11 테러를 반복해서 언급하며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되돌려보려 애썼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테러와의 전쟁의 “마지막 전장”이라고까지 말했다. 한편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정책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고 이라크와 9·11 테러를 연계한 것 등을 비판했다. 27일 발표된 CNN과 갤럽의 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했다. 또 50%가 이라크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은 별개라고 답했다. 따라서 9·11 테러를 거론하며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이라크 상황을 지켜 보자는 부시 대통령의 호소가 ‘먹혀들지’는 불투명하다. 미 국방부는 28일 현재 이라크 전쟁으로 사망한 미군 수가 1731명이라고 발표했다.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儒林(37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

    儒林(37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 사마천은 공자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왕도에서조차 학교의 수업을 존중하는 풍조가 사라졌음을 탄식하고 있었다. 사마천은 ‘유림열전(儒林列傳)’을 지어 사기에 넣음으로써 바로 이러한 경박한 시대를 향해 준엄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유림열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공령(功令)을 읽으면서 국립학교의 교관(敎官)을 장려, 확대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언제나 책을 내던지고 탄식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공자의 사후 학교 수업을 존중하는 학풍이 사라지고 학문을 장려하는 학교 교육용의 공령을 읽을 때면 견딜 수 없어 언제나 책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였던 사마천. 사마천은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가의 학문이 끊기지 않고 유림의 숲을 이뤄 영원히 울울창창 뻗어 나가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유림열전을 이어간다. “주왕조가 쇠퇴해지자 관저(關雎:시경의 권두시)가 나타나고 유왕(幽王:BC 781∼771 재위), 여왕(王:BC 878∼828 재위)이 무도했던 탓으로 예악이 파괴되었으니 제후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정권은 강국으로 옮아 갔다. 그래서 공자는 왕도(王道)가 쇠퇴하고 사도(邪道)가 일어나는 것을 슬퍼하는 나머지 ‘서경’과 ‘시경’을 정리해 예악의 부흥에 힘썼다. 공자는 제나라로 가서 성왕 순(舜)이 작곡한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석 달 동안이나 고기맛을 몰랐으며,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와 음악을 바로잡아 비로소 아(雅:정악)와 송(頌:조상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워낙 혼탁 타락해 있었으므로 그를 알고 써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몸소 70여명의 제후들을 방문해 보았으나 제대로 알고 예우해 주는 자도 없었다. 공자는 탄식하며 ‘나를 채용해 주는 군주가 있다면 반드시 한 해 안에 예악을 일으키겠다.’라고 말하였고, 노나라의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이나 나가서 기린을 잡자 ‘나의 도는 다했다.’고 한탄하였다. 노나라 사관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는 결국 ‘춘추’를 저술해 왕자의 도를 보여 주었다.‘춘추’의 언사(言辭)는 미묘해서 그 함축성이 원대하다. 후세 학자들은 이것을 주석(註釋)하고 해설한 사람들이 많다.…” 사마천은 이처럼 공자의 생애를 압축하여 공자가 역사서인 춘추를 쓰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약술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사마천은 공자가 죽은 후의 상황을 부연설명하고 있다. “…공자가 사거한 뒤 70여명의 제자들은 천하로 흩어져 각국의 제후들을 방문했다. 그때 크게 된 사람들은 제후의 스승이나 재상이 되었고, 작게는 사대부의 선생이나 벗이 되었다. 혹은 숨어 버린 제자들도 많았다. 그리하여 자로(子路)는 위나라에 있었고, 자장(子張)은 진나라에 있었으며, 담대자우(澹臺子羽)는 초나라에 있었고, 자하(子夏)는 서하(西河)에 있었고, 자공(子貢)은 제나라에서 생애를 마쳤다.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 오기(吳起), 금활리(禽滑釐)와 같은 인물들은 모두 자하나 혹은 그 동문한테서 학문을 배워 왕자의 스승이 되었다. 그 무렵 학문의 애호가로서는 위(魏)나라 문후(文侯)밖에 없었다. 그 이후 학문은 점차 쇠퇴해지더니 마침내 진나라 시황제에 이르렀던 것이다.…”
  • 5분 데이트 (7) - 강경자

    5분 데이트 (7) - 강경자

    남자사병들 경례 잘 받는 미스·해군 강경자(姜敬子) 소위 『일동 차렷! 경례엣!』 표지촬영을 위해「미스」해군 강경자 소위가 65함(艦)에 오르자「브리지」양편에 늘어선 65함의 사병들이 마치 여왕을 모시듯 거수경례를 붙인다. 강양, 아니 강소위님은 의젓이 답례하고-. 『이젠 뭐 경례받는 것 아무렇지도 않아유』하는 이 아가씨는 실은 방년 22세의 앳된 아가씨. 충남 부여산. 대전에서 죽 자라나 충남고, 대전간호학교(3년제)를 거쳐 올해 4월 해군소위로 임관되었다. 한 달간의 훈련을 받고 지금은 진해 해군병원 회복실 근무의 간호장교. 보조간호원 한 명과 남자위생병 8명을 거느리고 있는 당당한 해군장교님이시다. 『처음 임관됐을 땐요. 짓궂은 남자 사병들이 일부러 내 앞에 뛰어와 경례를 붙이곤 해서 당황했지먼유. 이젠 괜찮어라우』 약간 늘어지는 충청도 사투리가 매력있다. 중·고교 시절엔 육상선수였다는 강소위는 지금도 자전거 타기에는 자신 있다고. 교원으로 있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바둑이 지금은 7급, 당구도 1백점을 친다는「레크리에이션」만능선수. 때마침 해군 창설 23주년을 기념하는 전해군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강소위는 의무단 소속 배구선수로 출전, 맹활약. 아무튼 대단히 쾌활한 아가씨이다. 시집은 언제쯤 갈 생각이냐니까 2년 뒤에 만기제대를 하고 나면 곧 결혼하겠단다. 상대는 이미 정해진 거 아니냐니까 그렇다고. 아마 약혼은 곧 할 눈치.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엔 살짝 웃음으로 대답. 진해에 있는 장교님인 건 틀림없는데 해군통제부와 해병기지사령부와 육군대학이 모두 진해에 있으니 알쏭달쏭- 어디 한번 알아맞혀 보실까요? ※ 뽑히기까지 해군에 속해있는 여군은 모두 간호장교님들. 서울, 진해, 포항의 세 병원에 모두 50여명이 있는데 이중에서 선발된「미스」해군이 바로 강소위이다. 때마침 해군 창설 23주년을 맞는 축제「무드」의 군항 진해에「미스」해군의 탄생은 또 하나의 축포가 됐다. 그래서 거리에서, 부두에서, 함상에서 강소위는 경례 받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 선데이서울 68년 11/10 제1권 제8호 ]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너무 가까우면 상대를 깊게 알 수도 있지만 뜻밖에 전혀 모를 수도 있다. 대마도(‘쓰시마’라는 현지 표기 대신 용어의 역사성을 고려해 대마도로 쓴다.)와 한국의 관계가 그렇다. 누구나 아침 6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8시40분에 부산역에 내려 10시30분에 출발하는 대마도행 페리를 탈 수 있다. 불과 1시간30분이면 하타가쓰항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 서울에서 흑산도 가는 것보다도 빠르다. 날씨만 맑으면 당연히 대마도가 육안으로 보이며, 반대로 대마도 최북단 와니우라에서는 불야성을 이룬 한국의 남해안이 지척에 보인다. 거리만 가까운 것일까? 역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대마도는 우리와 ‘하나’가 아닐까. ●부산서 1시간30분… 너무도 가까운 섬 많은 사람들이 대마도는 알지만 이키(壹岐)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이키는 한반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가는 징검다리였으며, 일본 입장에서 보자면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섬들임에도 두 섬의 정체성이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대마도가 한반도에 밀착되어 있다면 이키는 보다 일본적인 곳이다. 대마도 스스로도 조선과 일본 양쪽에 모두 걸친 속국, 혹은 일본 본토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사적으로 대마도가 비일본적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정체성이 한반도에도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마도에서 한반도 문화를 모두 걸러낸다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대마도가 오늘처럼 확고하게 일본 본토에 속하게 된 것은 메이지 정부가 대한(對韓)외교권을 중앙 정부로 가져가 이를 일본 정부에 편입시킨 결과일 뿐이다. 대마도는 국제법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일본 땅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나 심정적으로는 우리와 더욱 가깝다. 대마도 서쪽 해안은 가히 한국 쓰레기들의 종합 전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가 이곳 서쪽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옛적 표류민 표착의 단서가 된다. 한반도 동남부에서 표류를 해도 자연스럽게 대마도에 닿곤 했으니 신라인 박제상이 이곳에서 죽은 것도 실은 이같은 교류사의 내역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백제나 신라식 산성이 존재함은 대마도의 선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부터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조선에서는 대마도가 우리 주권 하에 복속된 섬은 아닐지라도 조선 영토의 일부로 보기도 했다. 지방에 내려보내는 경차관을 대마도에 파견했는가 하면 대마도 사람들이 수직왜인이 되어 조선의 벼슬과 녹봉도 받았다. 일찍이 고려 조정은 대마도주에게 구당관(勾當官)과 만호(萬戶), 즉 변방과 수상교통의 요충지를 책임진 관직을 내렸다. ●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가 일본 본토인들 입장에서는 대마도가 한반도에 가깝다는 주장에 대해 거북스러움을 느낄 터이지만, 정작 역사시대의 일본인들 스스로가 대마도를 별종의 섬으로 간주하여 본토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보았다. 오늘날도 대마도는 ‘국경의 섬’식으로 인식돼 대륙에 맞서는 자위대 기지가 곳곳에 위치하는 전략적 가치만 인정받을 뿐 대단히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가사키현에 붙어서 소외받을 바에는 차라리 부산시 영도구에 붙어서 잘 살아보자는 농담도 나온다. 그 농담이 농담으로만 여겨지지 않음은 웬일일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이키 관광상품을 개척한 범주항공의 신우진 차장은 “이키에는 주로 후쿠오카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만 대마도는 일본인보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통계 수치까지 제시한다.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어 기본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이는 근래의 일이 아니다. 대마도 역사자료관에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본격 한국어 교재가 있다. 한국문화를 흡수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증거다. 대마도는 남북이 81㎞에 이른다. 작은 섬이라고 여기는 일반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미국 밑에 쿠바가 있듯이 한반도 코밑에 거대한 섬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일간 절묘한 곳에 자리잡은 대마도에 왜구가 득실거리기라도 할라치면 한반도는 밤잠을 못이루었던 것이다.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왜구들 극성 대마도는 한마디로 ‘먹고살기 힘든 섬’이다. 북쪽 히타카쓰항에서 남쪽 이즈하라까지 근 2시간여 거리를 달려 보지만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섬이라기보다는 그냥 바다에 산들이 떠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배고픈 사람들이라 눈 앞에 건너다 보이는 조선을 바라보며 해적질을 꿈꾸었던 게 무리는 아니다. 대마도의 이름난 사찰마다 조선에서 얻어온, 정확하게 말해 약탈해 온 불상이나 범종들이 한두 개씩은 놓여 있다. 이키의 안국사에는 한반도에서 전래한 팔만대장경 초판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약탈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섬이라는 고립된 조건 속에서 고귀한 문화유산들이 멸실되지 않고 남아 전하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대마도에 일정한 식량을 공급하고, 무역을 허락하며, 왜관을 열어 회유함으로써 왜구의 고통을 덜고자 했다. 대마도는 부족한 식량을 조선을 통해 해결하는 반면 일본 본토와 조선 사이에서 조정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대마도는 에도 바쿠후를 대리하여 대한 외교를 수행했다. 대리인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바쿠후와 한반도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중재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겼다. 일종의 생존전략인바, 그들은 양자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이윤을 냈으며, 그 수입으로 먹고살았다. 이런 탓에 임진왜란 이후에 일시적으로 한·일간 국교가 단절되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이들도 대마도민들이었다. 현재 나가사키현에 속한 대마도와 이키는 히라도(平戶)와 더불어 왜구의 본거지였다. 태종 때 대마도정벌에 나선 이종무 장군의 아소만 소탕작전도 왜구를 청소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소만을 바라보니 왜 이 장군이 한달여 동안 그토록 많은 피해를 입어가면서도 왜구를 소탕하지 못했던가가 자명해진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다. 섬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흩어져 있어 섬 사이로 신출귀몰한다면 강력한 대군도 왜구 몇을 감당하기 어려운 요충지다. 이키와 히라도에서 출발한 왜구들은 이곳 대마도 왜구와 연합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끊임없이 한반도의 해안을 침탈해 댔으니 고려와 명나라가 왜구 때문에 망했다는 말도 절반은 진실에 가깝다. ●전쟁과 평화 교차하는 ‘국경의 섬´ 그런데 일본의 후소샤판 교과서에는 ‘왜구란 조선반도 및 중국 대륙 연안에 출몰했던 해적집단을 뜻한다. 그들 중에는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왜구는 대마도, 이키제도와 히라도 등을 포함해 세토나이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해적 및 악당들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들어 왜구의 구성을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선 차원의 인간집단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당시의 현실과 동떨어진 가공된 역사상일 뿐이다. 여기에는 왜구 근거지는 북규슈 지역의 도서 연안이고, 발생 원인도 일본 내의 정치적 혼란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왜구의 시대에 이어 이번에는 임진왜란의 주역으로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가 등장한다. 강항은 간양록에서 ‘이번 전란의 꼬투리는 대마도주 소오(宗義智)의 수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카(少西行長)의 딸 마리아가 바로 이 소오의 아내였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 된 고니시의 출병에는 조선말을 잘하는 대마도 사람 8000여명이 동원된다. 웬만한 남자들은 전부 동원됐다.‘전쟁이 끝나자 남자는 없고 과부들만 들끓어 대를 이을 수 없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이키도 대규모 병사를 내어 한반도에 출병했다. 과거의 왜구들이 왜군으로 변신한 것이다. ●조선통신사 맞이하는 기착지… 친선의 가교로 전쟁이 끝나고 조선통신사의 왕래가 재개되자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는 한반도에서 오는 귀한 문화사절단을 맞이하는 기착지로 변신한다. 수백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는 그 자체가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전하는 통로였다. 조선정부는 성심성의껏 사신을 조직하였으며, 대마도와 이키 등지의 번주들도 최선을 다해 이들을 맞았다. 대마도와 이키는 조선통신사를 통한 친선과 교류의 장이었지만 때로는 왜구의 본거지로 역사의 굴절을 계속했다. 이키의 아름다운 ‘원숭이바위’가 있는 곳에는 2차대전 당시의 포대가 있으며, 대마도에도 거대한 지하포대가 있다.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은 아소만 일대에 군함을 잠복시켜 놓고 반세키(万關)운하를 통해 러시아함대를 기습·괴멸시켰다. 근래 대마도에서는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한답시고 곳곳에 러일 친선을 기원하는 전승비를 세웠다. 명분은 친선이겠지만 본래 목적은 딴 곳에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니 이처럼 일본은 대마도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마도를 자국 본토와는 달리 오로지 ‘국경의 섬’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대마도와 이키는 한·일 간의 친선을 돋우는 징검다리도, 침략의 가교도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최익현 선생이 단식 끝에 절명했을 때, 대마도 사람들은 선생의 유해를 지극정성으로 이즈하라의 슈젠지(修善寺)에 모셨다. 이키에는 해방되던 해, 꿈에 그리던 조국을 향해 귀환선에 몸을 실었다가 집단 수장된 우리 동포 160명을 애도하는 비가 한국쪽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또 와니우라 포구의 팔각정 형태의 한국 전망대에는 1703년 무려 112명의 역관사들이 조난당해 생을 마친 사실을 기록한 비석도 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바다가 국제교류의 장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진실된 한일교류의 징검다리되어야 17세기 대(代)의 외교관으로 한국말에 능통했던 아메노모리 효슈의 말처럼 대마도와 이키는 진정한 ‘친선교류’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한반도의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고, 문화재가 불타 버렸지만, 강제 동원되어 이 전쟁에 참가해야 했던 대마도나 이키의 백성들도 운명은 비슷했다. 조선통신사가 오고 갔듯이 이제 한·일간의 해양 네트워크는 더이상 침탈의 역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러일전쟁 100주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국을 꺾었다.’는 자부심과 승리의 기분을 지금껏 향유하려고 드는 한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소인배’라는 비난과 지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1년 전인 1984년. 당시 서울신문사에서 대마도와 이키의 역사·고고·미술·민속·언어·물질문화 등을 망라한 보고서를 냈던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바다를 통해 일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목적의 대마도·이키 답사가 21년 만에 다시 서울신문 지면에서 재현된 셈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발틱함대를 괴멸시킨 러일전쟁 승전 100주년 기념의 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을사늑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친선의 바다인가, 침탈의 바다인가.’ 그 난해한 화두를 대마도와 이키에서 다시 곱씹어 본다.
  • “전방부대 우리 아들도 혹시… ”

    “전방부대 우리 아들도 혹시… ”

    서정민(48·여·충남 아산)씨는 25일 주말을 맞아 최전방 강원도 양구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면회를 간다. 원래 아들이 ‘100일 휴가’를 나오기 전에는 면회를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응석받이로 자라 참을성이 부족한 아들이 좀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매를 맞는 것은 아닌지, 험한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서씨는 “언제든 힘들면 숨기지 말고 엄마에게 말하라고 당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 사는 김민선(44·여)씨도 같은날 강원도 철원 군부대로 아들을 보러 간다. 아들은 상병이 돼 군생활에 적응이 됐을 것으로 생각된 데다 철원까지 가는 데 10시간이나 걸려 제대할 때까지 면회갈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총기난사 사건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박씨는 “졸병 때를 떠올려서 후임병들을 괴롭히거나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후임병들에게 먹을 것을 많이 사주라고 돈도 두둑히 주고 올 작정이다. ●부대내 으슥한 곳에서 맞지나 않는지 이번 주말 전후방 군부대는 아들을 면회하러 오는 부모들의 발길로 어느 때보다 붐빌 것으로 보인다. 총기난사 사건 이후 아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루던 부모들이 아들 얼굴도 보고 문제없이 복무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특히 토요일에 면회를 가면 아들과 하루 외박을 할 수 있다. 지난 1월 경기도의 한 부대에 막내아들을 입대시킨 임모(50)씨는 한 달 전 면회를 갔지만 이번 주에 또 갈 생각이다. 그는 “이번에 사고를 친 일병이 우리 아들과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아이여서 마음이 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걱정스럽기는 상병·병장 등 선임병들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칫하면 후임병에 대한 가혹행위자로 몰릴 수 있는데다 총기와 폭탄류가 있는 곳에서 후임병들의 군기를 잡다가 이번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대장이 희생되면서 장교의 부모들도 좌불안석이다. 충북 충주에 사는 이미경(55·여)씨는 아들이 장교로 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그동안 면회 한번 가지 않았지만 이번 주말에 처음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이씨는 “소대장으로 근무하는 아들에게 사병들을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후임병 스트레스 주지말라” 당부 할 것 서울대 임현진(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부모들의 집단적 면회 움직임에 대해 “군이 조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불안감이 확산되고 증폭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군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상 부모들이 직접 나서는 현상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신광영(사회학과) 교수는 “어머니들의 면회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과잉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군이 사회와의 벽을 허물고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부모들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금융사 승부처로 부상

    금융사 승부처로 부상

    금융권에 ‘복합상품’과 ‘교차판매’의 마케팅 열기가 거세다.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들이 단순한 고유상품만으로는 영업에 한계를 느끼면서 이같은 판매전략을 통해 금융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금융등 복합점포 수십곳 확대 나서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달 중순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에 국내 첫 복합금융센터를 개설했다. 예금과 대출, 주식투자, 신용카드, 보험 등 모든 금융서비스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접견실에는 세무사, 증권 애널리스트, 부동산 컨설턴트 등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4곳을 더 늘릴 계획이다. 신한금융지주도 신한은행 점포에 굿모닝신한증권 출장소가 붙어있는 ‘브랜치 인 브랜치(BIB)’ 점포를 11곳에서 연내에 20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복합형 점포는 교차판매의 활성화에서 비롯됐다. 교차판매의 원조격은 방카슈랑스 제도다. 복합상품은 한 상품에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를 끼워팔기 식으로 한데 묶어 판매하는 상품을 말한다. 금융사는 단일 상품을 판매했을 때보다 매출과 수익을 늘릴 수 있고, 고객은 개별 상품에 따로 가입할 때보다 편리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올 1·4분기에 8개 시중은행의 수수료 이익은 보험, 수익증권 등의 판매호조에 힘입어 1조 4451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8.2% 늘었다. ●은행선 주가지수연동상품 봇물 이 때문에 은행권에선 예금과 투자를 결합한 상품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KB리더스정기예금 개별주가연동(3호)’을 한시적으로 판매했다. 만기 때 삼성전자 등의 주가가 기준주가보다 상승하면 연 8.0% 고금리를 지급한다. 신한은행의 ‘에이스(Ace)패키지예금’은 정기예금과 주가지수연동예금을 합친 복합상품이다. 복합상품의 원조격은 손해보험사의 통합보험이다. 생명보험업계에선 대한생명이 최근 CI(치명적질병)보험과 변액보험을 결합한 신상품을 처음 내놓았다. 증권업계에선 동양종합금융증권이 처음 출시한 종합자산관리계좌(CMA)가 복합상품으로 꼽힌다. 삼성증권도 이를 적립식펀드와 다시 연계한 신상품을 출시했고, 교보증권은 CMA계좌를 담보로 야간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소비자 눈을 현혹시키는 ‘조삼모사형’ 상품들도 뒤섞여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 한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대출금의 40∼60%를 갚으면 마이너스 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연계상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은행측은 마이너스 대출도 사실상 주택을 담보한 대출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이자를 무는 신용대출로 간주했다. ●“금융종합유통기업 변신해야” 주문도 금융연구원 지동현 연구위원은 “금융대전의 핵심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교차판매에 달렸다.”면서 “지급결제, 모기지, 투자, 보험를 두루 취급하는 금융상품종합유통기업으로 변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광릉숲 주말개방 해? 말아?

    광릉숲 주말개방 해? 말아?

    ‘산림생태계의 세계적 보고(寶庫)’인 경기도 포천 광릉숲 국립수목원의 주말개방 여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주 5일제 시행으로 여가 패턴이 바뀌면서 지난 1997년부터 숲 보전을 위해 8년째 계속돼온 주말 폐쇄조치를 바꿔 주말이나 휴일에도 개방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네티즌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주말·휴일 개방 캠페인을 펴고 있다. 수목원 홈페이지에도 이에 찬성하는 글들이 계속 늘고 있다. 경단체는 수목원 생태훼손을 우려, 원칙적으로 이에 반대다. 그러나 8년전 주말폐쇄를 이끌어낸 환경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수목원 생태보전을 담보할 수 있는 보완조치가 전제되면 부분적 주말개방에 찬성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주말개방 가능성이 커지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수목원·주민·환경단체나 자치단체 등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합의하지 못했다. 2년 후인 오는 2007년 6월엔 기존 광릉숲 관통도로의 폐쇄를 전제로 진행중인 우회도로 건설도 끝난다. 자칫하면 우회도로까지 건설하고도 광릉숲 환경파괴의 주 원인인 관통도로의 폐쇄나 주말개방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차원의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광릉숲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광사모) 이상천 집행위원장은 국립수목원이 ‘생물자원의 보존과 연구’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산림생태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졌음을 지적한다.“정부가 광릉숲을 지켜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면, 국민들 역시 자유롭게 관람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보전의 중요 주체인 지역사회나 현지 주민의 동의가 없는 일방적 규제중심의 환경정책은 불행한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말한다. 광사모는 지난해 주말개방의 전 단계로 광릉숲 관통도로에 ‘차없는 거리’를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자는 제안을 내놨다. 또 현재 하루 5000명인 1일 입장 허용인원을 주말에는 줄이는 방안도 언급했다. ●차없는 거리·입장 허용인원 줄이기 등 제안 광릉숲 일원에서 카페나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경기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말개방에 적극 찬성한다. 포천시 소흘읍 직동1리 수목원 입구에서 굴비구이집을 운영하는 김경중(60)씨는 “주말개방이 조속히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교편을 잡다 은퇴, 고향인 이곳에 사는 박희찬(67)씨도 주말개방에 찬성이다. 박씨는 “수목원 소나무의 송충이를 잡고 산불 한번 안나게 지킨 건 주민들이었다.”며 “주말폐쇄 후 지역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됐고 개발도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 전 전원주택을 짓고 정착한 이모(48·여·직동리)씨는 “주로 견학생들이나 관광객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오는 평일에 비해 주말엔 일가족이 승용차로 몰려들어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주말개방에 ‘절대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광릉숲 보전 민관협의회’ 포천지역 주민대표인 박춘범(직동 2리 이장)씨는 “차량통행 제한이나 주말개방 등은 수목원 보호에 공을 세우고도 재산권 행사에는 불이익을 받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공원이나 편익시설 등 필요한 지역개발사업과 연계,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광릉숲 보존협회 조상희 부회장은 “97년 주말폐쇄 이전 주말의 광릉숲 관통도로는 자동차로 10여㎞를 가는 데 8시간이 걸릴 만큼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고 말한다. 조씨는 “산림청과 수목원이 다시 주말개방으로 선회한다면 광릉숲 보전에 대한 시민적 여망을 정부 당국이 앞장서서 와해시켰다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말개방 악몽 재연 우려 조씨는 “아예 안식년을 도입, 일정 기간 관람을 전면 금지하고 관통도로의 아스팔트를 모두 걷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5일 근무제와 관련된 주말 개장은 잠재적 희망자가 엄청나 예약 신청이 쇄도할 것”이라며 “주말 입장 재개를 거론하기 전에 대형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론 관통도로 폐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같은 조건이 충족돼도 적어도 주말방문객은 당일 또는 며칠간 ‘산림생태학교’ 등에 입교, 관람자격을 얻기 위한 배타적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수목원 권양계 보호계장은 “주말개방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주차장 시설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협공받는 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측은 관통도로의 양쪽에 각각 320면 정도의 주차장을 두고, 관통도로엔 관람객이 도보로 걷거나 장기적으론 무공해 셔틀버스 등을 이용해 수목원에 입장한다는 계획을 구상했다. 권 계장은 그러나 주차장 시설계획에 대해서는 수목원의 예산 확보난 등을 들어 “지역주민간에 주차장 시설이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민간주도로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천시 신태식 도로계장은 “국립수목원과 주차장 시설에 관한 공식협의가 전혀 없었다.”며 “포천시가 재원을 대거나 운영주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광릉숲 보존협회 조 부회장은 “국립수목원은 이미 해당 부지에 대한 내부 검토를 끝내고도 자가당착적 태만과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 역시 주말개방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선결과제인 주차장 확보에도 소극적인 국립수목원측에 대해 불만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산림생태계 세계적 보고 광릉수목원 국립수목원이 속한 광릉숲은 1468년 조선조 세조왕릉 부속림으로 지정된 이후 530여년간 자연 원형이 보존된 세계적 학술연구 보존림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긴 힘들만큼 천연상태로 보존된 온대낙엽활엽수림이고, 단위면적당 국내 최대의 생물다양성을 자랑한다. 자생식물 904종, 포유류 15종, 곤충류 2439종, 조류 105종, 거미류 256종, 어류 34종, 양서류 10종, 버섯류 462종 등 4225종의 토종 생물자원과 연구·시험용으로 식재된 외래식물 2000여종 등 620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광릉물푸레·광릉요강꽃·광릉골무꽃·참비비추 등 광릉 특산식물과 크낙새·쇠부엉이·까막딱따구리·큰소쩍새와 장수하늘소·하늘다람쥐 등 20여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주변에 난개발이 시작돼 현재 300곳에 육박하는 카페나 식당,3곳의 모텔 등이 들어섰다. 더구나 죽엽산과 수리봉 사이에 관통도로를 포장 개통시키면서 방문차량과 단순 통과차량, 레미콘 트럭까지 폭증해 매연 등의 피해를 입히고 있다. 광릉숲을 관통하는 98번 국지도 5㎞ 구간에는 차량 배기가스로 수령 150년 이상된 전나무 496그루 중 150여그루가 고사했다. 수생 동·식물의 서식처이자 이동로인 봉선사천은 폐수로 오염됐고, 업소의 네온사인 조명은 날파리와 곤충을 숲에서 끌어냈다. 지난해 초엔 벌목꾼과 밀렵꾼들이 숲에 잠입, 고로쇠·헛개·느릅나무 등 희귀목을 밑동째 잘라냈고 개구리를 무차별 포획하거나 짐승용 올무나 덫을 설치해 놓은 현장이 발견되기도 랬다. 이에 따라 지난 97년 정부는 광릉숲 종합보전대책을 마련했다. 주말개방은 평일개방(월∼금요일)으로 변경됐고 한때 연간 120만명에 이르던 방문객은 크게 줄었다. 896억원을 들여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내촌면 진목리간 7.86㎞ 구간에 4차로 우회도로를 건설, 국지도 98번 광릉숲 관통도로를 폐쇄키로 했다. 산림욕장을 폐쇄하고, 야생동물원도 이전하기로 했다. 하수처리장을 건설하고, 주변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완충지역을 설정해 절대보전지구 땅은 매입하고 개발을 제한하기로 했다. 국립수목원을 설치하고 문화재보호구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세워졌다. 특히 다음 달 1일부터는 관통도로에 8t 이상 화물차량의 통행이 금지돼 단속이 시작된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국립수목원이 광릉숲 훼손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 당초 크낙새·장수하늘소가 살던 숲 중심부에 수목원 건물들을 지어 입주한 자체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광릉숲의 훼손과 오염은 종의 축소로 이어져 문화재청과 성신여대 생태조사단의 지난해 합동조사 결과, 크낙새·검독수리·광릉요강꽃, 구렁이·장수하늘소 등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美에 北자극 자제 요청

    정부는 미 국무부의 인권·민주주의 문제를 담당하는 도브리안스키 차관이 지난 20일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난한 데 대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도록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달라고 미국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21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분위기 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발언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지적하고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해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이라크 재건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최근 미국 고위 관리들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언급한 것은 현재의 남북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美 ‘폭정’발언 더 안하면 “철회로 간주할것”

    |뉴욕 연합|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고위 관계자가 20일(현지시간) 미국이 ‘폭정의 전초기지’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7월중에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고위관계자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폭정’ 등 우리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철회로 볼 수 있다.”며 “6자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미국이 (우리를 자극하는 용어를)안 쓰면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6일 이뤄진 뉴욕 접촉에서 미국측에 ‘미국의 폭정 발언 때문에 6자회담에 불참하고 있으며, 이를 철회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6자회담 참여의 명분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이 관계자는 소개했다.
  • [MLB] 빅초이 홈런쇼…쾅쾅쾅

    [MLB] 빅초이 홈런쇼…쾅쾅쾅

    “희 삽 초이!희 삽 초이!” 13일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미네소타 트윈스가 3-3으로 팽팽히 맞선 6회 말. 다저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5만여명의 홈팬들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온 북소리에 맞춰 최희섭( 26·다저스)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 순간 최희섭은 상대선발 브래드 래드키의 초구 몸쪽 직구가 들어오자 거침없이 방망이를 돌렸고, 빨랫줄처럼 쭉쭉 뻗어간 공은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이날 ‘빅초이 쇼’의 대미를 장식하는 짜릿한 112m짜리 역전 홈런(12호)이자 데뷔 첫 3연타석 및 세 번째 3경기 연속홈런. 홈플레이트를 밟으면서 하늘을 가리키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마치고 더그아웃에 들어갔지만, 관중들의 들끓는 환호는 식을 줄 몰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빅초이’는 더그아웃에서 나와 모자를 흔들며 ‘커튼콜’에 응답했다. 최희섭이 13일 미네소타전에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 솔로아치 3방으로 3타점으로 쓸어담는 신들린 듯한 방망이를 휘둘러 연고지인 LA는 물론 미대륙 전역을 뒤흔들었다. 최희섭의 방망이는 시작부터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2회 첫 타석에서 미네소타의 선발 래드키의 2구째를 통타, 우측 펜스를 넘어가는 선제 솔로홈런(10호)을 날린 것.1-2로 역전당한 4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서 래드키의 몸쪽 높은 직구를 또 한번 130m짜리 초대형 우월 1점포(11호)로 연결해 순식간에 동점을 만들었다.4연타석 홈런의 대기록에 도전한 마지막 타석에선 좌완 테리 멀홀랜드에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최희섭은 경기뒤 인터뷰에서 “믿기지 않는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라고 상기된 목소리로 털어놓았고, 그를 평가절하하면서 ‘플래툰시스템’을 고집해 온 짐 트레이시 감독도 “어떤 구질, 코스도 모두 쳐낼 수 있는 최고의 배팅을 보여줬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활의 열쇠는 초구공략 ‘부활의 열쇠’는 적극성에 있었다. ‘빅초이’ 최희섭이 미국프로야구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주말 3연전에서 3연타석 및 3경기연속 홈런 등 6홈런을 쏘아올려 한 달 동안의 ‘홈런 가뭄’을 동반한 부진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초구공략이 주효했다.11일 좌완 테리 멀홀랜드를 상대로 터뜨린 생애 첫 끝내기 홈런(9호),13일 우완 브래드 래드키에게 뽑아낸 동점포(11호)와 결승홈런(12호)은 모두 초구를 넘긴 것이고,10호 홈런은 2구째를 노린 것. 타격 메커니즘에 관한 ‘대수술’은 없었지만 조금씩 ‘치료’를 한 것도 주효했다. 슬럼프때 배팅 타이밍이 늦어 직구공략에 실패, 플라이볼로 물러나고 했던 것을 교훈삼아 히팅포인트를 앞으로 당겨 반박자 빠르게 방망이를 돌렸다. 또한 공을 맞힌 뒤 끝까지 휘두르는 팔로스로가 좋아져 운동에너지를 극대화, 비거리가 늘어났다는 평가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여전히 몸쪽으로 바짝 붙는 강속구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난해와 달리 슬럼프를 빨리 벗어나는 요령을 터득해 올시즌 25홈런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해군 고속단정 1척 유실

    해군이 서해 최전방 기지에서 고속단정(RIB) 1척을 잃어버린 사실을 한 달 가까이 숨겨온 사실이 13일 뒤늦게 밝혀졌다. 해군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서해 대청도 해군기지에 결박해둔 고속단정 1척이 파도에 휩쓸려 밧줄이 끊어지면서 떠내려 갔다는 것이다. 해군은 경비정 수십척을 동원해 인근 해상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RIB를 찾는데 실패했으며 대청도 어민들에게도 수색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관계자는 “사고 당일 파랑주의보가 내려 해안에 높은 파도가 일었다. 밧줄이 끊어지면서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IB는 특수부대원 10여명을 태우고 시속 40∼50노트로 항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전 훈련에 이용돼 왔다. 대당 가격은 1억 5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RIB가 조류에 의해 중국이나 북한으로 떠내려 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들 국가에서 아직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단 침수돼 가라앉은 것으로 해군은 추정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심야의 수류탄 소동 14시간

    대구판 김희로(金嬉老) 사건의 도화선은? 푼푼이 모은 돈 8만원 양공주된 누이에 주고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이 자기와 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학대 끝에 미군 위안부로 전락시켰다고 앙심을 품은 사나이. 이 파월병사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은 채 전 가족을 몰살시키고 자신도 폭사하겠다고 약 14시간 동안 버텨 50여 명의 군경이 출동하고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등 큰 소동이 대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67년 10월 군에 입대, 지난 2월 파월된 김용태(金龍泰)(25)상병은 8개월만인 지난 10월 2일 휴가로 귀국, 대구시 서구 비산동 2구 19 아버지 김점준(金点俊)(63)씨를 찾았다. 가족 모두가 무사한데 서울로 식모살이간 누이동생 옥선(玉仙)(22)양이 보이질 않아 서자의 설움이 복받쳐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올라갔다. 이 무슨 변일까? 식모살이 하는 줄만 알았던 누이동생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주택에서 미군 위안부 노릇을 하지 않는가. 두 남매는 부둥켜 안고 자신들의 신세를 이렇게 모질게 꺾어버린 이복형제들을 원망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누이동생 결혼 때 값진 혼수감을 사주려고 푼푼이 모아 갖고 온 10여만원 중 푼돈 쓸 2만여원만 남기고 몽땅 털어주었다. 좋은 신랑감 만나서 호강하며 잘 살려니 생각했던 부푼 꿈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김상병은 치솟아 오르는「복수심」을 억누를 길 없어 발길을 대구로 돌렸다. 생모는 25년 전 이웃 과부 6세 때부터 집떠나 유랑 김상병과 옥선양은 아버지 김씨와 지금 군위군 효령면으로 개가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55)여인 사이에 태어났다. 25년 전 김씨가 대구시 태평로3가(당시 금정2정목)에 살 때 이웃 과부 이여인과 눈이 맞아 동거생활을 시작, 두 남매를 낳고 19년 전 헤어져 세 살 난 옥선양만 데리고 떠났다. 여섯 살 난 김상병은 어머니 품을 떠나 큰 엄마 안학봉(安學鳳)씨와 이복 네 형과 함께 살아왔다. 8세 때 인지국민학교에 입학, 2학년 때 중퇴, 충북 영동군 상촌면 유곡리 아들 없는 고모부 허달(許達)씨 집으로 옮겨 살았다. 거기서 18세 때 귀가, 멍게장수, 품팔이 등을 하다가 군에 입대. 김상병은 이복형들 밑에서 기가 꺾여 남과 다툴 줄 모르나 어딘가 야무진 데가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이웃 사람들은 얘기한다. 세 살 때 어머니 따라 떠났던 옥선양은 7년 전 15세 때 귀가, 완대동 모 직조공장에 취직하여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아 아버지 김씨에게 몽땅 넘겨주곤 서울에서 금은방을 경영한다는 이부동복(異父同腹) 오빠인 강씨에게 간다고 집을 나간 후 이때까지 소식이 없다가 지난 9월 30일께 이복맏오빠 영조(永祚)씨에게 부탁, 호적초본 2통을 서울로 부쳐달라 하며 떠났다는 것. 대구에 되돌아온 김상병은 가족몰살과 함께 자폭한다는 끔찍한 결심을 간직한 채 기회를 노렸다. 설움과 울분이 뒤범벅된 착잡한 심정으로 기회를 잡을 때까지 매일 술로 지새워 지에서는 이틀 밤 밖에 자지 않았다. 기회는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월남으로 떠날 13일이 다가와 마음이 초조해졌다. 10월 11일 밤 8시쯤 시장에서 오징어, 무, 술 등을 사서 짐꾼을 시켜 집으로 보냈다. 짐꾼편으로 가족「파티」를 열겠으니 전 가족을 모아달라고 아버지에게 전했다. 떠나기에 앞서 가족「파티」를 열고 일을 저지를 계획이었다. 이날 밤 12시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결혼 후 달성동에서 별거하는 맏형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를 비롯, 큰어머니, 둘째형, 셋째형, 넷째형, 이복누이동생 등 6명의 가족이 모여 있었다. 술을 한 잔씩 나눈 뒤 김상병은『우리 형제끼리 의논할 일이 있으니 아버지 어머니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김상병의 심상찮은 태도를 눈치챈 아버지 김씨는『내가 있는 데서 할 말 못할 것 있느냐』하며 비켜주지 않고『너 태도가 이상한데 그러면 못쓴다』고 꾸짖었다. 그러자 갑자기 왼쪽 안주머니 속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고『터뜨리면 3초만에 끝장난다』고 소리쳤다. 『왜? 내 동생을 공부 안시키고 양공주로 만들었느냐? 다같이 죽자』고 소리소리 질렀다. 이때가 상오 1시쯤. 이러한 위협 속에 아버지 김씨는 빠져나와 관할 북비산 파출소에 신고했다. 그동안 방안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이복형제들은『술 받으러 간다』『변소에 간다』『물 떠온다』등 핑계로 간신히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 신고에 접한 경찰은 16헌병대로 연락, 출동한 헌병들과 함께 김상병의 자폭을 우려, 접근하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집을 포위, 집 주위 모든 골목길을 차단, 통행을 막았다. 사타구니에 낀 수류탄은 2차 수면제작전에 뺏어 아침 6시쯤 김일수 2군헌병부장, 김덕희 대구경찰서장 등이 김상병과 접선,『수류탄을 터뜨리지 않고 나오면 처벌하지 않을 것은 물론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김상병은『가족을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 터뜨린다』고 위협, 계속 수류탄을 수건에 싼 채 사타구니에 끼고 버티었다. 아침 7시쯤 세든 옆방 정순자 아주머니가 사다 준「사이다」한 병을 이불을 덮어쓰고 그 속에서 마셨다. 왼쪽 손에 수류탄을 쥐고 안전「핀」에 엄지손가락을 낀 채, 상오 10시 30분이 좀 지나 김상병과 가장 친하다는 이웃 김종성(金鍾聲)씨와 이부동복형 강씨가 설득을 위해 위협을 무릅쓰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김상병은 큰방에서 건넌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막걸리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김·강양씨는 기지를 써 막걸리 한 사발에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하루치를 넣어 갖다 주었다. 잠들게 한 뒤 수류탄을 뺏을 계획이었다. 1차 계획은 실패, 하오 1시쯤 2차 계획이 진행, 조금 뒤 김상병은 졸기 시작, 때를 놓칠세라 김·강양씨와 16헌병대 송윤호 중위가 숨을 죽여가며 방안으로 들어가 잠든 것을 확인, 김씨는 수류탄을 쥔 김상병의 왼쪽 손목 맥을 힘껏 쥐고 강씨는 사타구니 속에 넣은 수류탄 쥔 주먹을 살며시 끌어냈다. 한편 송중위는 김상병의 뒤로 돌아 양팔을 요동 못하게 힘껏 안았다. 위기일발 - 이 긴장된 순간 용감한 세 사람은 김상병의 손가락 하나 하나를 제쳐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탈취, 잡는데 성공했다. 이때가 약 14시간만인 하오 1시 50분, 인산 인해를 이룬 군중 속에서 함성이 터져나오고 모든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구 = 최종하(崔鍾夏)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0/20 제1권 제5호 ]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토요영화]

    [토요영화]

    ●위대한 샤프트(EBS 오후 11시40분) 1963년 시드니 포이티에가 흑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영화 ‘들에 핀 백합’을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영화에서 흑인 배우가 본격적인 주연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검은 더티 해리’로 불리는 ‘위대한 샤프트’는 1970년대 대표적인 ‘블랙스플로레이션’ 영화로 흑인이 백인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닌, 당당한 영웅으로 떠오르게 하는 물꼬를 튼 작품이다. 흑인 관객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백인 관객들로부터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60∼7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또 아이작 헤이스의 주제 음악도 유명하다. 연출을 맡은 고든 파크스도 할리우드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감독으로 기록됐다. 파크스와 주인공 리처드 라운트리는 2000년 새뮤얼 잭슨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동명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뉴욕 할렘가의 사립탐정 존 샤프트(리처드 라운트리)는 암흑가 두목 범피(모제스 건)로부터 납치된 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흑인에게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샤프트는 오히려 뉴욕 경찰조직 내에서는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인물. 그는 이 사건의 배후에 백인 갱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1971년작.11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K-19(KBS2 오후 11시5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 부인으로도 유명한 캐슬린 비글로가 연출한 작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여 감독 가운데 첫 손에 꼽힌다.1990년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여자 경찰로 나왔던 ‘블루 스틸’이 기존과는 다른 능동적인 여성 액션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1991년에는 페트릭 스웨이즈와 키아누 리브스가 열연을 펼쳤던 ‘폭풍 속으로’를 통해 수많은 팬들을 확보했으나 SF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가 흥행에 실패하며 주춤했다.‘K-19’도 물량 공세에 비해 흥행과 비평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조 과정부터 사고가 많아 ‘과부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었던 실존 핵잠수함의 실화를 그렸다.1961년 냉전 시대. 소련 최초의 핵잠수함 K-19이 출항한다. 항해 도중 노르웨이 해안 근처에서 원자로 냉각기가 고장난다. 인근에 나토 기지가 있기 때문에 원자로가 폭발하면 자칫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극한 상황. 함장 알렉시 보스트리코브(해리슨 포드)와 부함장 미카일 폴레닌(리암 니슨)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데….2002년작,131분.
  • IT수출 39개월만에 마이너스

    IT수출 39개월만에 마이너스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인 정보기술(IT)부문의 수출 증가율이 멈칫하면서 IT 수출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달 수출 증가율은 3년 3개월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력 상품인 휴대전화, 반도체의 부진 탓이 컸다. 정보통신부는 3일 ‘5월 정보통신산업 수출·입 동향(잠정치)’ 자료를 통해 5월의 IT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1% 줄어든 63억 7000만달러, 수입은 7.8% 늘어난 35억 1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휴대전화와 반도체는 각각 1.5%와 5.7%로 한자릿수 증가에 그쳤다.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것은 지난 2001년 반도체 경기침체로 촉발된 세계 IT경기 침체 시기(2001년 3월∼2002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반면 전체 산업의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1.8% 늘어난 233억달러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 이동전화 단말기, 디지털TV 등은 증가했으나 PC, 셋톱박스는 대폭 줄었다. 반도체는 전년 동월 대비 5.7% 늘어난 25억 1000만달러, 휴대전화는 1.5% 늘어난 19억 3000만달러, 디지털TV는 6.5% 늘어난 1억 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PC는 전년 동월 대비 59.5% 줄어든 2000만달러, 셋톱박스는 42.4% 감소한 5000만달러, 액정모니터는 26.3% 감소한 5억 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20억 4000만달러(전년 동월 대비 15.2% 증가),EU지역 11억 5000만달러(19.7% 증가)로 선전했지만 미국은 경기침체 및 원·달러 환율 하락과 우리의 수출지역 다변화 전략으로 전년 동월 대비 36.9% 줄어든 9억 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정통부는 “세계적으로 기술수준이 평균화된 PC, 셋톱박스, 모니터 등의 생산기지가 중국으로 이전하는 추세이고, 디지털TV 같은 차세대 수출 품목이 환율 하락 등의 요인으로 부진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의 산업구조가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도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통부는 850억달러인 올해 IT산업 수출 목표치 수정을 검토하고, 정보통신협력국장을 반장으로 하는 ‘IT수출 대책반’을 구성,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정통부는 한달 수출 액수가 60억달러선을 유지하고 있고,4월과 비교하면 2.1% 증가해 올 하반기 이후 IT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분실휴대전화 이렇게 찾아라

    분실휴대전화 이렇게 찾아라

    직장인 정모(44)씨는 지난 달 ‘핸드폰찾기콜센터’로부터 잊어버렸던 휴대전화 단말기를 보관하고 있다며, 주소지로 보내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1년전 택시에 놓고 내린 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차에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이 습득자가 타인이 이 단말기를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불법 유통업자에게 팔아도 몇만원밖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진 신고를 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 40만원대 신제품을 구입,2개월정도 사용하다가 잃었다. 물론 곧바로 분실신고도 했다. ●주운 휴대전화 쓰기 힘들다 휴대전화가 ‘손안의 필수품’이 되면서 분실 건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해까지는 전년도보다 100만대정도가 늘어난 458만대가 분실됐고,2명 중 1명은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분실폰은 불법복제 등으로 범죄에 악용돼 예기치못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크다. 지금까지는 대략 5만원을 받고 암거래상 등에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불법복제에 대한 강력한 단속의지를 밝히고, 분실자들도 신고를 해두면 단말기 일련번호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 분실폰을 사용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단말기를 주웠다, 그다음 어떻게 하지? “최고의 선물로 치는 새 단말기를 주운 사람은 십중팔구 소유 욕심이 생겨 신고를 머뭇거리게 된답니다.” 부산 해운대우체국의 한 직원은 신고가 늦은 이유를 물어보면 ‘일단 신고할까 말까 머뭇거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신고 방법을 잘 모르고 번거로워 신고를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휴대전화를 습득하면 우선 가까운 우체국·경찰서(파출소)나 지하철 등 유실물센터, 철도청, 핸드폰찾기콜센터에 접수를 하면 된다. 이후 콜센터는 단말기 고유번호를 활용, 이동통신사에다 분실폰 가입자 여부를 조회한 뒤 택배로 무료로 전달해 주거나 분실자가 우체국에서 직접 찾아간다. 습득자가 직접 휴대전화를 갖고 가 신고해야 돼 우체함에 넣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습득자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주운 뒤에 무심코 배터리를 빼놓거나, 자신이 쓸 요량으로 기기변경을 하면 고의성이 인정돼 범법자로 몰릴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해 11월 찜질방에서 단말기를 주운 뒤 옷장에 넣어둔 습득자에게 카운터에 맡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정보통신산업협회는 휴대전화 습득자가 신고하면 5000∼2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준다. ●분실자가 챙겨야 할 것도 있다 단말기를 잃어버린 뒤 전화를 하지만 안받는 경우가 많다. 분실 당사자도 지쳐 새 단말기를 구입해 버린다. 하지만 ‘발품, 손품’을 팔아야만 분실휴대전화를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분실신고는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어 이동통신사를 통해 ‘발신정지’만 하고 수신을 살려둘 필요가 있다. 당사자가 해외전화 등으로 장시간 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전화로 계속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위치추적 서비스에 가입했다면 이를 시도해 봄직하다. 친구찾기 등 분실폰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서비스는 업체마다 있다. 이 외에 분실폰에 입력한 전화번호들이 아깝다면 신분증을 갖고 이동통신회사의 서비스센터로 가서 ‘통화내역조회’를 조회하면 복구시킬 수 있다. 이동통신 3사의 대여폰 무상대여 등을 이용해도 도움이 된다. 대여폰은 찾을 때까지 쓸 수 있지만 유료폰과 무료폰으로 나눠져 있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유로 대여폰은 최신형이 많아 폰을 찾지 못하면 그냥 기기변경을 하는 경향이어서 유료 대여폰을 권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KTF는 ‘굿타임 방문 서비스’를 통해 대여폰을 배달해 준다.‘분실폰 위치확인’ 무료서비스도 있다. 신고를 하면 분실폰에 위치가 추적됨을 알리는 문자메시지와 연락처가 전송된다. ‘매직엔→(6)친구찾기→분실폰 위치확인’ 또는, 유선 매직엔(www.magicn.com)을 이용하면 된다. SK텔레콤은 ‘분실휴대폰 찾기’를 운영한다. 네이트(NATE)에서 ‘친구찾기’에 가입해야 한다. 조회 건당 50원의 이용료가 부과된다. LG텔레콤도 ‘엔젤 서비스’에서 단말기 분실때 연락(무선 019-1004·유선 019-1144)하면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찾아가 대여폰을 준다.7일 동안은 무료다. 인터넷사이트(mylgt.co.kr)에 접속해 ‘내폰 찾기’에 들어가면 지도와 함께 위치이동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핸드폰찾기콜센터는 ‘핸드폰 메아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이 서비스는 사전에 콜센터에다 이메일을 등록해 두면 분실폰이 접수됐을때 즉시 이메일로 통보해 준다. 가입은 무료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노원구-포천시 지역발전 ‘윈윈’

    노원구-포천시 지역발전 ‘윈윈’

    ‘동북부 개발하고 지하철 연장하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포천시가 동북부 개발에 관한 ‘윈윈전략’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윈윈전략’이란 포천시의 소흘읍에 차량기지를 만들어 현재 의정부까지 나 있는 지하철 7호선을 포천까지 연장하고, 노원구의 창동 차량기지를 장암으로 옮기는 방안이다. 포천시는 서울까지 연결되는 교통수단을 확보하고, 노원구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차량기지를 없애고 다른 시설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기본계획안 확정 등 본격 추진 준비 노원구는 차량기지 이전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최근 ‘창동차량기지 및 도봉면허시험장 이전 예정부지 활용방안 수립계획’에 관한 용역을 마치고 기본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포천시는 지하철 7호선을 포천으로 연장하는 안이 포함된 ‘2020 포천 도시기본계획(안)’을 올 초 확정, 경기도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와 함께 ‘광역교통기반 신도시개발연구용역’을 국토연구원에 의뢰해 내년 상반기 중 완료한다. ‘2020 포천 도시기본계획(안)’의 핵심은 도시철도 7호선의 연장이다. 포천시의 철도시설 도입에 관한 추진 전략은 ▲도시철도 7호선 연장 ▲소흘읍 일원에 10만평의 도시철도 차량기지 부지 조성 ▲신도시개발사업과 연계한 도시철도망 구축 ▲경기도, 서울시, 중앙정부 지원 추진 ▲수도권 광역교통계획에 현 사업 반영이다. 이를 통해 ▲포천∼서울간 접근성 향상 ▲신도시계획 추진에 기여 ▲낙후된 포천시의 체계적인 발전 도모를 목표로 삼고 있다. 포천시는 총 노선 27∼28㎞로 추정되는 지하철 7호선 연장사업을 1·2차로 나누어 1차사업에서는 소흘지역에 차량기지 이전부지를 제공해 의정부 장암까지의 노선을 포천시 소흘까지 연결한다.2차사업에서는 포천시 신도시사업 추진과 병행해 소흘읍에서 신도시를 거쳐 신북면까지 도시철도를 연장한다는 계획이다. 철도 구축과 신도시 개발이 병행되면 인구도 2003년 16만여명에서 2021년 30만명까지 늘 것으로 시는 예상하고 있다. ●소흘읍까지 지하철 7호선 연결이 1차 과제 포천시 도시과 윤재철 과장은 “철도 시설을 도입하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도시계획안이 이번 달 중순 쯤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다음 달 중앙부처인 건교부로 제출될 예정이다.”면서 “‘수도권 광역교통계획’에 반영시키는 난관이 남아 있지만 이 안이 도에서 통과할 경우 사업 추진이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과장은 “포천의 인구는 1995년 12만 8000여명에서 2004년 12월 말 현재 15만 8000여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서울까지 연결되는 철도교통은 전무한 상태”라면서 “지하철 연장으로 서울과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포천시로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노원구의 움직임도 발빠르다. 지난해부터 (주)어반이엔씨에 ‘창동차량기지 및 도봉면허시험장 이전 예정부지 활용방안 수립계획’ 용역을 맡겨 구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기획안을 내놓았다. 개발을 위한 토지적성평가도 마쳤다. 현재 검토 중인 토지이용계획안 3가지 중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개발안은 현 부지를 준주거지역·일반상업지역·녹지지역으로 나누어 상업시설(복합센터)용지·종합사회복지시설·다국적 언어체험마을·영상미디어예술단지로 구성하는 내용이다. ●멀티영화관·다국적 언어체험마을 계획 개발안에 따르면 상업시설용지에는 멀티영화관·테마 쇼핑몰·사계절 실내 스포츠시설 등을, 종합사회복지시설에는 치매노인 요양소·여성문화회관 등을 세운다. 다국적 언어체험마을은 영어·중국어·일어존(zone)으로 나누어 체험형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노원구 이기재 구청장은 “도시 중앙에 위치해 서울 동북부 지역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창동 차량기지와 면허시험장을 옮겨 민자 유치를 통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문화·교육시설 확충에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면서 “포천시는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만큼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장기적인 시각으로 차량 기지 이전과 교통시설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포천시와의 효과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 2003년 자매결연을 맺은 데 이어 18일에는 구의회와 시의회가 자매결연할 예정이다. ●2조원 육박 비용부담, 중앙 정부 협조가 난제 그러나 차량기지 이전 및 도시철도 연장사업을 시행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1조 5000억∼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비다. 포천시는 창동차량기지 이전에 필요한 부지 10만평을 제공하고 서울시는 이전에 소요되는 사업비를 부담하는 원칙으로 추진했다. 문제는 서울∼의정부∼포천 등 3개 지자체를 경유하는 막대한 사업비를 서울시에서 도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노원구 관계자는 “사업비를 중앙정부, 서울시, 경기도가 분담해야 된다는 원칙하에 의견을 다시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박윤국 포천시장의 구상 “가능한 한 국공유지 활용 민원 줄일것” “서울지하철 7호선 연결은 포천시의 미래와 직접 연결된 최대 현안으로 기필코 결실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박윤국 포천시장은 “자금의 조달과 차량지기 부지확보 등을 위해 다방면으로 현실적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자금조달이 최대의 과제인데요. -중앙정부와 서울시 경기도가 함께 분담하는 방안을 택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자금조달 측면만 본다면 국비 70%가 지원되는 국철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포천 주민들의 교통편의성을 고려, 국비 60%가 지원되는 도시철도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10만여평에 이르는 부지 제공에 따라 예상되는 민원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포천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될 300여만평 규모의 포천신도시 구상에서 7호선 연결은 필수적이란 사실을 시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국·공유지를 많이 포함시켜 대상부지로 정하겠지만, 편입 사유지와 관련한 민원이 발생해도 원만하게 해결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당초 사업자체가 서울시와 포천시만의 ‘윈윈’전략으로 발표돼 경유지인 의정부시가 소외감을 가진 점은 없습니까. -소외감까지는 아니라도 당혹스러운 점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반적으로 공조하고 있습니다. 의정부 입장에서도 동부지역 택지개발지구 주민들의 서울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입니다. 장래엔 의정부가 내년 중 착공하려는 경전철과도 연결될 것입니다. 7호선 연결도 이에 따라 장암에서 의정부 민락지구를 경유, 포천에 이르는 노선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문화시설·공원활용 희망 56% 노원구민들은 창동 차량기지를 개발할 때 멀티영화관 등 문화시설과 공원·녹지공간의 확충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원구 도시정비과에서 조사업체 (주)어반이엔씨에 위탁해 노원구민 101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창동차량기지 및 도봉면허시험장을 개발할 경우 가장 필요한 시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문화시설’(296명)과 ‘공원녹지시설’(268명)이라고 답한 주민이 가장 많았다. 구체적으로 멀티영화관(337명), 전시장(289명), 공연장(270명)이 꼽혔다. 또한 ‘개발시 필요한 시설 2순위’로도 문화시설(261명)과 공원녹지시설(203명)을 택한 사람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3순위로는 ‘체육시설’(153명)이 가장 많았고 문화시설·교육연구시설·공원녹지시설이 뒤를 이었다. 문화·녹지·체육시설 등 생활환경을 중시하는 노원구민들의 성향은 다른 질문에서도 드러났다.‘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주민 217명이 ‘생활환경(문화·체육시설, 공원·녹지시설 등)이 좋아서’라고 답해 가장 많았다.‘자녀 교육관계로’라고 답한 사람은 98명,‘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주민은 58명이었다. 이번 조사는 ‘창동차량기지 및 도봉면허시험장 이전예정부지 토지활용방안’에 대한 주민 의견 조사를 위해 시행됐다. 노원구 이기재 구청장은 “현 부지를 개발할 때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노원구민들의 교육열이 높고 과학고·외국어고 진학률도 높은 만큼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유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분당집값 한달새 6% ‘껑충’

    분당집값 한달새 6% ‘껑충’

    경기 성남 분당의 집값이 5월 한달새 무려 6%나 올랐다. 과천은 3.6% 상승했다. 전국의 집값이 3개월만에 둔화세로 돌아선 것과 대조적이다. 1일 국민은행이 발표한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자료’에 따르면 5월 전국 집값은 4월보다 0.5% 올라 3개월만에 오름세가 주춤해졌다. 올들어 전국의 집값은 1월에 0.3% 하락한 이후 2월 0.3%,3월 0.4%,4월 0.6%로 꾸준히 오름세를 탔다. 전체적인 상승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서울 은평·성동구 등 전국 26곳이 주택거래신고지역과 주택투기지역 후보지에 올랐다. 지역별로는 서울 서초구(2.1%), 강남·용산구(이상 1.7%) 등이 많이 올랐지만 강북(-0.3%), 노원(-0.1%), 강서(-0.5%)는 하락했다. 반면 판교신도시의 영향으로 분당은 4월 3.7%에서 5월 6%로 상승폭이 확대되면서 올들어 15.9%나 올랐다. 과천도 두 달 연속 3.6% 상승했다. 주택거래신고지역 후보지에 오른 곳은 서울 은평·영등포와 대전 중·서·유성·대덕, 수원 영통, 성남 수정, 안양 동안, 안성, 충북 청원, 충남 천안, 공주, 경남 창원 등 14곳이다. 투기지역 심의대상은 서울 성동, 부산 수영, 대구 동·북·수성·달서·달성군, 광주 광산, 울산 동구, 청주 흥덕구, 경북 구미, 포항 북구 등 12곳이다. 건교부는 이들 지역에 대한 심의를 벌여 2일 주택거래신고지역을 지정할 방침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새 공시지가 세금 얼마나

    새 공시지가 세금 얼마나

    올해 개별공시지가가 평균 18.9% 오르면서 이를 기준으로 매겨지는 각종 세금이 줄줄이 오를 전망이다. 특히 재산세는 개인 상한선인 전년 대비 50%까지 오르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여 가계마다 세금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세부담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자 과표 반영률을 낮추거나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세부담 경감 방안을 찾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세부담 증가를 우려해 공시지가 상승률을 일부러 낮췄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세금감면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견줘 국민들의 세부담 증가는 불가피하게 됐다. ●종합부동산세 대상 늘듯 개별공시지가 인상으로 세부담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세목이 재산세다. 올해 개별 공시지가가 예년보다 한 달 앞당겨져 재산세 과세기준일(6월1일) 이전인 5월31일 고시됨에 따라 재산세가 올해 공시지가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고시일이 과세기준일보다 늦은 6월30일 고시돼 전년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부과됐다. 따라서 올해 재산세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인상된 공시지가를 적용받게 된다. 예컨대 2003년 공시지가가 100만원이었던 땅의 경우 지난해 평균 상승률(18.58%)을 적용한 지난해 공시지가는 118만 5800원이 되며, 여기에 올해 평균 상승률(18.94%)을 적용하면 141만 390원이 된다. 이처럼 평균 41% 높아진 공시지가가 재산세 산출시 적용됨에 따라 올해부터 도입되는 종합부동산세에 해당하는 토지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가 재산세 증가 상한선을 50%로 정했기 때문에 재산세가 50% 이상 늘어나지는 않는다. 또 정부는 올해 부동산을 통해 거둬들이는 세금을 지난해(4조 3000억원)보다 10%가량 늘어난 4조 5000억원대로 묶기로 했다. 이번 개별공시지가를 바탕으로 세금징수 시뮬레이션을 통해 세수가 10% 이상 늘어나면 세금감면 시책을 내놓기로 했다. 거래금액의 4.6%(주택은 4%)가 부과되는 취득·등록세의 경우 이번 개별공시지가 상승분만큼 세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양도소득세는 보유기간이나 양도차액에 따라 세율이 달라 정확한 인상률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고 4배가량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기도 구리시에서 200㎡짜리 대지를 지난 2003년 12월 1억 1860만원에 매입한 경우 개별공시지가가 오르기 전에 팔면 457만원의 양도세만 내면 됐으나 이번에 오른 공시지가(상승률 35.37%적용)를 적용하면 세금이 1176만 9600원으로 1.57배 늘어난다. 반면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지정된 토지투기지역 41곳은 양도세가 지금도 실거래가로 부과되고 있어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영향이 없다. ●전국 땅값 2000조원 넘어 공시지가가 오르면서 전국 땅값이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716조 6600억원에서 2041조 7215억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전국 2791만 812필지 가운데 서울은 92만 811필지로 3%에 불과하지만 땅값은 587조 6272억원으로 전체의 4분의1을 차지했다. 경기도(562조 7618억원)와 인천(97조 7830억원)을 더하면 수도권 땅값이 전국의 60%에 달했다. 건설교통부가 밝힌 개별공시지가 상승 시·군·구 상위 10곳에는 경기가 1∼4위 등 6개 시·군의 이름을 올렸다. 충남과 경남은 각각 2개 시·군이 10위권에 등록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후보지인 연기군은 평균 48.41%, 공주시는 37.31% 올랐다. ●서울 명동빌딩 평당 1억3900만원 ‘최고’ 전국에서 최고로 비싼 땅은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명동빌딩 터.㎡당 10만원 올라 4200만원(평당 땅값 1억 3900만원)으로 2년째 수위자리를 지켰다.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외국계 S커피전문점은 최근 비싼 임대료 부담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까지 14년간 최고가 땅으로 화제를 모았던 명동 2가 우리은행 명동지점 부지는 ㎡당 200만원 올라 4000만원이 됐지만 명동빌딩의 기록에는 못 미쳤다. 가장 싼 곳은 경북 경주시 양남면 효동리 산360의3 임야로 ㎡당 49원(평당 162원)이다. 용도지역별로는 상업지역에서 명동빌딩 자리가 최고가였고 최저가는 전북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137의2로 ㎡당 5000원(평당 1만 6529원)이다. 주거지역은 올해 입주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평당 1785만원) 터가 가장 비싸게 책정됐다. 전남 완도군 노화읍 화목리 441의3이 평당 6645원으로 가장 낮았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