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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기지 100년간 홍수 끄떡없게 방재를”

    미국측이 평택 주한미군 기지 이전공사와 관련, 향후 100년간 홍수에 끄떡없도록 방재공사를 해달라고 최근 우리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에 용역을 의뢰, 제방·하수구·저류시설 등을 어떻게 공사할지에 대한 정밀작업에 들어갔다. 군 관계자는 21일 “평택은 원래 물이 많은 지역이라 홍수에 대한 미국측의 우려가 크다.”며 “미국측이 자국의 건축규정을 들어 철저한 방재대책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100년에 한번’ 홍수가 나는 상황에 대비해 방재공사를 하도록 일률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100년에 한번은 상당히 엄격한 기준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랜만의 홍수일수록 피해가 크기 때문에 방재공사가 엄격하다고 한다. 예컨대 ‘50년에 한번’보다는 ‘100년에 한번’이 더 엄격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청계천은 ‘80년에 한번’ 기준으로 건설됐으며, 심한 곳은 ‘200년에 한번’ 기준도 적용된다. 이와 관련, 국방부 주한미군대책기획단 당국자는 “미국측이 정식으로 요청했다기보다는 한·미 양측이 이미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공사 비용을 미국측과 어떻게 분담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지금 칠곡에선] 영남권 내륙화물기지 조성 한창

    [지금 칠곡에선] 영남권 내륙화물기지 조성 한창

    전국의 교통 요충지인 경북 칠곡군이 물류·유통 거점도시로 힘찬 재도약의 날개를 펴고 있다. 영남권 내륙화물기지 건설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 국내 물류의 양대 축인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이 지나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일대는 요즘 영남권 화물기지 건설작업이 착착 진행중에 있다. 지난 1월 민간투자사업자인 ㈜영남권복합물류공사와 편입부지 보상업무 위·수탁 계약을 맺은 칠곡군이 지장물 조사 및 보상업무를 한창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주단지 조성 협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오는 2008년까지 연간 일반화물 357만t과 컨테이너 33만TEU(1TEU는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할 수 있는 화물기지 건설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화물기지의 물류수송에 있어 혈류가 될 도로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SOC)도 잇따라 신설될 예정이다. 배상도(67) 칠곡군수는 6일 “화물기지 건설을 계기로 칠곡을 국내 물류 허브도시로 육성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사업비 2428억원 투입 오는 10월 착공 예정인 영남권 화물기지 건설사업은 2008년 완공 목표로 현재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에는 정부와 한국인프라개발, 농협, 중소기업은행, 교보생명 등 모두 8개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총 2428억원(민자 1360억, 국비 1068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은 내륙 컨테이너기지와 복합화물 터미널을 함께 건설한다. 여기에는 화물취급장(7개동)과 배송센터(3개동), 컨테이너 작업장, 각종 지원시설(편의시설·주유소·차량시설) 등 모두 14개 건물이 1∼5층 규모로 들어선다. 특히 화물기지 건설 사업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1년 칠곡이 영남권 화물기지 입지로 최종 결정된 이후 대기업의 물류센터가 잇따라 유치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4년 11월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달성2차산업단지 내에 있던 ‘현대자동차 종합물류센터’를 왜관읍 아곡리 일대 부지 3만여평으로 임시 이전했다. 이어 왜관읍 삼청리 일대 5만 2000평에 현대차 물류센터를 건설 중에 있다. 현대차 물류센터 박영헌(45) 소장은 “칠곡은 철도를 비롯해 경부·중앙 고속도로, 각급 도로 등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국내 물류 유통의 최적지”라며 “현대차 물류센터 칠곡 이전은 이런 이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엔 영남권 대형급식소 150곳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삼성에버랜드 물류센터가 왜관읍 삼청리에 들어섰다. 하이마트·GS리테일·진로·대우자동차 물류센터 등도 자리잡았다. 중소기업 물류센터까지 포함하면 칠곡지역이 들어선 물류센터는 10개가 넘는다는 것이 칠곡군측의 설명이다. 국내 굴지의 택배회사도 칠곡으로 이전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OC 확충 박차 영남권 화물기지의 원활한 물류를 위한 각종 교통망 등도 추진되거나 계획 중에 있다. 우선 화물기지 완공에 맞춰 진입도로(3.0㎞)와 칠곡 신동역∼화물기지를 잇는 인입철도(5.4㎞), 상수도 등이 개설된다. 또 배후도로로 칠곡 왜관∼성주 국도 33호선과 칠곡 약목면∼김천 국도 4호선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4차로로 확장 개통된다.2008년까지 지천면 연호리∼대구 북구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광역도로(4차로)도 새로 생긴다. 구미권 접근과 공단 연결망 확충을 위해 왜관∼석적∼구미3공단을 잇는 국도 67호선의 4차로 확장공사도 추진 중에 있다. 또 화물기지 건설 등으로 인한 인구 증가에 대비, 지천면 신리 38만평에 대한 택지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981억원의 물류비 절감 영남권 화물기지는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의 중심 화물기지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2009년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가면 이들 지역의 물동량을 집중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연간 981억원의 물류비 절감과 3600여명의 고용창출,47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분석됐다. 군은 연간 93억원의 추가 세수와 1240억원의 간접 투자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함께 수출·입 주력산업 유치 극대화는 물론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터미널업, 창고·포장업, 하역업 등 물류사업의 동반 발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은 물류기지 건설로 인한 물류비 절감 등 기업의 이점을 감안, 화물기지 인근에 왜관 3,4공단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칠곡군 관계자는 “영남권 물류기지 건설로 칠곡은 명실상부한 물류 중심도시로 부상할 것”이라며 “지역 최대숙원인 시 승격도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칠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내륙 화물기지란 내륙 화물기지란 장·단거리 화물의 집결 및 배송을 위한 중계기지 역할과 수출·입 화물의 기지를 제공하는 내륙 거점 수송체계이다. 복합화물 터미널과 내륙 컨테이너 기지 시설을 동시에 갖췄다. 정부는 물류비 절감 등을 위해 기존 항만·공항 위주의 물류정보화 사업을 내륙 화물기지로 다각화하고 있다. 화물기지의 시설별 기능은 복합화물 터미널의 경우 도로, 철도 등 2가지 이상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또 화물의 집하·하역·분류·포장·통관·정보·종합 물류 서비스까지 물류에 관한 모든 작업이 한 자리에서 처리된다. 수입 물류는 이 곳에서 분류돼 소비지로 직송된다. 내륙 컨테이너 기지는 내륙으로 운송돼 온 해상 컨테이너 화물을 내륙 운송수단(도로, 철도)과 연계하는 곳으로, 장치보관·집화분류·통관 등 항만 업무가 이뤄진다. 또 대리점 및 포워드, 하역·트럭·포장회사, 관세사 등이 입주해 물류활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내륙 화물기지는 내륙의 종합 물류거점 및 항만 등의 배후시설, 화물 유통기지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런 내륙 화물기지를 전국 5대 권역별(수도권-군포·의왕·파주시, 중부권-연기·청원군, 호남권-장성군, 부산권-양산시, 영남권-칠곡군)로 운영 또는 건설 중에 있다. 이 중 수도권(군포)과 부산권은 지난 1998년,2003년부터 각각 운영에 들어갔다. 호남권은 2005년 1단계 공사의 완료에 이어 부분 운영 중에 있다. 수도권(의왕·파주)과 중부·영남권은 오는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총사업비 7400억원을 들여 64만평 규모로 건설 중에 있다. 정부는 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인력 양성(317억)과 물류정보화 등 물류기술 고도화사업(960억)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또 종합물류기업 인증제의 본격시행과 물류전문대학원 설립지원, 물류사 및 종사자 교육훈련을 중점 추진한다고 밝혔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내륙 화물기지가 모두 운영되면 연간 화물 2590만t과 컨테이너 355만TEU 처리가 가능하며,7866억원의 물류비 절감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칠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시설표준화·자동화로 최상의 유통편의 제공” “영남권 내륙 화물기지를 전국의 중심 물류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영남권 화물기지 건설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석주(54) ㈜영남권물류공사 사장은 20일 “최신,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화물기지를 건설해 이용자들에게 최상의 편의와 함께 가격쟁쟁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최첨단의 물류 표준화와 자동화, 기계화,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아울러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네덜란드 등 물류 선진국의 노하우를 중점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용객 편의제공 등을 위해 화물터미널과 컨테이너 기지가 분리돼 있는 호남권 등 다른 화물기지와는 달리 이들 시설을 나란히 배치토록 했다. 화물기지 건설과 더불어 2009년 1월 본격 운영에 대비, 안정적인 물동량 확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사장은 “대구·경북 최초의 대규모 물류기지인 영남권 내륙 화물기지의 성공여부는 곧 물동량 확보에 달렸다.”면서 “전국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반드시 성과를 올리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화물기지 진입도로 등 인프라 조기 확충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부와 경북도, 칠곡군의 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관련 예산의 조기 확보 및 집행을 요청하고 있다. 김 사장은 “국책사업인 영남권 화물기지의 차질없는 건설과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며 “편입지역 주민들이 이주희망지 등의 결정문제를 놓고 시간을 끌고 있어 공사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조속한 합의를 이끌어 내달라.”고 당부했다. 칠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인류 우주 식민지 못찾으면 멸종”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64) 박사가 “인류의 생존은 외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13일 주장했다.그는 또 기자 겸 작가인 딸 루시(35)와 함께 우주에 관한 어린이용 책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일부터 6일간 일정으로 홍콩을 방문 중인 호킹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구는 재난으로 멸망할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만일 인간이 앞으로 100년 동안 서로 죽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면 지구의 지원 없이 유지될 수 있는 우주 정착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인류가 앞으로 20년 안에는 달에,40년 안에는 화성에 각각 영구 기지를 세울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다른 태양계로 가지 않는 한 지구만큼 좋은 곳을 찾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호킹 박사는 “인류는 종(種)의 생존을 위해 우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상의 생명은 갑작스러운 온난화나 핵전쟁, 유전공학 바이러스, 그밖에 우리가 아직 생각도 하지 못한 다른 위험 등 재난으로 멸종될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 상태인 호킹 박사의 회견 내용은 컴퓨터 합성음으로 전환돼 기자들에게 전달됐다.호킹 박사의 주장에 대해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앨런 거스 교수는 “호킹 박사가 지금까지의 순수 이론 연구에서 벗어나 인류의 장기적 생존에 적용될 수 있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는 “호킹박사가 앞으로 100년 후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우주를 최후의 구명보트로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호킹 박사의 딸 루시는 “새 책은 ‘해리 포터’의 독자와 같은 연령층을 위한 것”이라면서 “이는 우주의 신비를 설명해 주는 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홍콩 AP 연합뉴스
  • 쿠렁~ 나무가 물을 마셔요

    쿠렁~ 나무가 물을 마셔요

    초록의 들판으로 터진 길 위에서 중얼거려본다. 나무 나무 종달이 지빠귀 어치 씀바귀 민들레 강아지풀…… 내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 초록색 물감이 들기 시작한다. 뻐꾸기 뻐꾸기 할미새 보리똥열매 참빗나무 하눌타리…… 내 몸이 더욱더 작아진다. 온몸에 초록색 물감이 든다. 드디어 나는 한 마리 초록의 벌레가 되어 나무 이파리 위를 기어간다. 이제 나무 이파리는 드넓은 벌판이다. 더듬이를 세워 허공을 휘저어본다. 모처럼 맑은 하늘이시다. - 나태주의 시 ‘모처럼 맑은 하늘’ 위 시처럼 우리도 온몸에 파란색 물감을 들이러 숲으로 떠나보자. 천년의 원시림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흥겨운 몸짓, 하얀 햇살에 부서지는 연초록 잎사귀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 그냥 스치듯 지나쳤다면 이젠 제대로 한번 느껴보자. 그리고 귀 귀울여보자. 수천, 수만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소리, 흙과 물 그리고 바람이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푸른 6월의 숲은 가장 시퍼렇고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다. 숲은 수첩을 들고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몸에 닿는 대로,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가슴에 담는 그런 곳. 숲에서 신명나게 놀아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신기한 숲학교 6월의 숲은 짙푸르게 옷을 갈아입어 1년 중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생명력을 뽐내는 시기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걷는 것이 익숙한 어른들은 상관없지만 아파트 놀이터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숲은 그냥 ‘나무더미’이고 힘든 곳일 뿐이다. 하지만 숲을 놀이터 삼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놀까 한번 알아보자. # 숲은 자연이 만들어 준 놀이동산 숲 연구소(ww.ecoedu.net)의 생태학습 교육관인 경기도 퇴촌에 있는 ‘율봄 농원’에서 열린 숲 체험에 참가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꼬맹이들이 나뭇잎 모양의 이름표를 달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다. “야, 찾았다. 아빠 거미다 거미. 이것 잡아주세요.”라고 환호성을 올리는 나희(7).“나희야 아빠는 뭐 잡았는지 보여줄까.”라며 애벌레 한 마리를 내미는 김성훈(38·교원나라 벤처투자)씨. 숲 해설가 장인영(35)씨 앞에 모인 네가족. 저마다 잡아 온 곤충을 내민다.“야 정말 여러가지 곤충을 잡았네. 경택이네는 매미의 애벌레, 나희네는 거미와 나방의 애벌레, 윤서네는 무당벌레를 잡았구나.”라며 설명을 해준다. 그러고는 “얘들아 이런 애벌레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나비가 없어져요.”“새도 없어져요.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숲이 지저분해져요.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 없으니까요.”라고 저마다 다르지만 생각보다 똑똑한 답을 내놓는다. 옆에 있던 유진이 아빠는 “어른보다 낫네.”라며 웃는다. “그래요. 애벌레가 없으면 숲이 망가져요. 새도, 나비도, 곤충들도 없어지지요. 그럼 우리가 숲속 친구들을 집으로 가지고 갈까, 여기에 놓아줄까.”“여기에 놓아주어요.”라고 합창하는 아이들. 자 이번엔 나무가 무슨 말을 하나 듣는 시간. 도대체 무슨 소린가, 나무가 말을 하다니. 장인영 해설사는 준비해 온 청진기를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준다.“이건 의사 선생님이 너희들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 쓰는 청진기지. 우리도 청진기를 끼고 나무에 대어보면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한번 해보자.” 아이들은 무슨 의사 선생님이 된 양 청진기를 귀에 끼고 나무에 대어본다. “쿠렁 쿠렁” 비록 소리는 작지만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는 신기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의진이가 소리친다.“선생님, 이 나무는 아무 소리가 안 들려요. 혹시 죽었나봐요.”, 그러자 “이리 와 봐. 이 나무는 소리가 들려.”라는 유림이.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들어본다. 나무가 살아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이렇게 몸으로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아까 우리 애벌레 잡았지. 애벌레는 눈도 없고 신발도 안 신고 다니지. 우리 이번엔 애벌레가 되어볼까.” 신발을 벗고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오직 신체감각에 의존해 앞사람 어깨를 잡고 걷는다.“정신을 집중해 봐. 무슨 소리가 들리나. 어떤 느낌이 오나.” 정말 신기하게 맨발에 느껴지는 나뭇잎, 전혀 들리지 않았던 새소리, 향기로운 나무 냄새가 전해진다. “너무 힘들어요. 애벌레에게 눈도 달아주고 신발도 사줘요.”라는 정민(6)의 말에 모두 웃는다. 이렇게 숲속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느껴보는 시간이 숲 체험이다. “그저 숲이란 걷는 곳이라고 알았는데 이렇게 몸으로 느껴보니 정말 재밌네요. 친구가 숲 해설가를 한다고 했을 때 ‘이상한 녀석이군’했는데 정말 이해가 됩니다.”라는 나희 아빠.“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저에게도 큰 경험입니다. 이렇게 자연을 느껴 본 것이 처음이거든요.”라는 유진의 아빠 정민재(36·서울 성동)씨. 아이들에겐 재미나고 어른들에겐 색다른 경험이고 체험이다. 이밖에도 거울을 눈 밑에 대고 하늘을 보며 걷는 ‘뱀 되어보기’, 누워서 커다란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는 ‘독수리는 어떻게 볼까’ 등 다양한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말 나무나 곤충의 이름을 하나 외우는 단순한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고 만지고 상상하면서 스스로 자연을 배워 나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숲이다. ■ 얘들아 숲놀이 하자 # 숲은 진정한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 반짝이는 나뭇잎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솔잎 향기가 가득한 숲은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 준다. 푹신한 낙엽을 ‘사각사각’ 밟는 소리,‘스스슥’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아무리 유명한 음악가가 작곡한 교향곡도 이렇게 모든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노래를 만들어 낼 순 없다. 이런 편안한 자연의 소리뿐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냄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선하고 깨끗하게 해주는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다. 어쩌면 숲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커다란 선물일 것이다. 나무가 병원균에 저항하기 위하여 방출 또는 분비하는 물질로 쉽게 말해 숲이 내는 기분 좋은 특유의 향기이다. # 숲에서 이런 놀이 해보세요 숲 연구소 남효창 소장이 쉽게 할 수 있는 숲속놀이를 소개한다. 숲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흩어져 있는 모든 것이 보물이다. 먼저 아빠나 엄마가 아이들에게 “숲속의 보물이란 나뭇잎도 될 수 있어. 나뭇잎은 썩어서 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니까.” 등 보물이란 꼭 거창한 것이 아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보물이 된다고 알려주고 10∼20분동안 찾아 온 보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돌멩이, 곤충, 솔방울 모두가 보물이다. 상상력과 인지능력, 발표력 등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물론 부모도 함께 해야 한다. # 느리게 달리기 놀이 달리기 하면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할 것만 같은데 숲에서는 천천히 달려보자. 각자 원하는 동물을 정하고 흉내를 내면서 일정한 거리(1m)를 가장 느리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주한다. 주의할 점은 한 순간도 멈추거나 뒤로 가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 1등이다. ‘느리게 달리기 놀이’를 한 후 아이들과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과 빨리 움직이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더 재미있고 유익하다. # 숲속에서 뒹굴 뒹굴 숲에 들어오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가족이 모두 함께 숲 바닥에 누워보자. 누운 상태에서 숲 하늘을 가슴에 담아보거나 숲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셔 본다. 눈을 감고 숲의 소리를 들어보거나 낙엽을 살짝 들춰내고 그 속의 향기도 맡는다. 오감을 통해 숲을 느낄 수 있는 놀이다. # 같은 물건 찾아오기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나 열매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똑같은 것을 찾아오는 놀이다. 관찰력과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신기한 곤충이나 몰래 숨어 있던 동물, 나무 열매 등을 찾는 재미도 있다. ■ 가볼 만한 숲 꼭 ‘숲’이란 멀리 가야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난 ‘숲’에 가면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서어나무 군락과 정상부의 왜솜다리 자생지인 조령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를 이루면서 울창한 산림과 어우러진 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과 괴봉이 노송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처럼 그 경치가 뛰어나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갈대와 억새풀이 어우러져 자라는 숲에 머물면 아무 곳에서나 쉽게 맛볼 수 없는 황홀경에 젖어 들게 된다. 좀 편하게 숲을 체험하려면 문경시의 문경새재도 추천한다. 문경새재는 옛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이 다녔던 길로 울창한 숲과 깨끗한 계곡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2관문,3관문 주변에 옛 영남대로 길을 가면 그야말로 나무와 풀들이 지천이다. 오대산 북대사쪽의 숲도 좋다. 토양이 비옥하여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인 오대산은 신갈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서어나무, 자작나무 등 나무의 보고이다. 또 물봉선, 도깨비부채, 노랑무늬붓꽃, 개불알꽃, 금강초롱꽃 등 많은 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강원도 평창에 있다. 밤꽃이 유명한 명지산은 경기도 가평에 있어 하루 나들이로 제격이다. 계곡의 맑은 물이 돋보이는 산으로 여름철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려한 산으로 사계절 내내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색의 신비와 깊이에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야생화 군락과 참나무가 아름다운 강원도 평창 계방산은 봄에는 철쭉, 여름엔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숲을 자랑하며 가을 단풍도 예쁘다. 또한 3월초까지 흰 눈꽃을 피워내며 거대한 설경을 펼쳐내어 계방산을 찾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 급부상하는 中내륙 허난성을 가다

    급부상하는 中내륙 허난성을 가다

    최근 한국 정부는 중국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중부 굴기(中部起)’에 대한 투자 타당성 정도를 조사해 그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동부 연안에 위치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중·서부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사례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임금 상승 등 동부 연안지역에서의 생산활동 환경이 나빠진 데 따른 현상이다. 중부 굴기의 중심을 도모하는 허난성(河南省)을 찾았다. |정저우시·뤄양시·덩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소림사 방문차 허난성을 찾았을 때, 리청위(李成玉) 성장으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허난성의 역사를 알면 중국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리 성장은 앙소(仰韶)문명의 본고장이며 중국의 숱한 성씨(姓氏)와 활자가 비롯되는 등 허난성이 중국 문명의 산실이라는 점을 자랑한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다른 지역의 중국인은 ‘허난성’에서 ‘빈곤, 낙후, 농민공, 소매치기, 사기 상술’ 등 부정적인 단어들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외국인에게는 여기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까지 겹쳐진다. 그런 허난성이 지금 새로운 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당 중앙이 지난 3월 전인대에서 최종 확정한 ‘중부굴기’를 그 날개로 삼았다. ●외자기업에 특정세금 최대 60% 반환 초여름 따가운 햇살 속에 허난성 성두(省都) 정저우(鄭州)시는 천지개벽 중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철거와 재개발이 한창인 반면, 다른 한편에는 마천루가 세워지고 있었다. 정저우의 상징이자, 허난성의 심벌로 기획된 ‘정둥신(鄭東新)구’는 이미 도시로서의 그 위용을 갖춰가고 있었다. 구(舊)공항을 옮기고 2003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곳이다.150만㎢의 면적에 150만명이 생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둥신구는 호반을 중심으로 유통·물류타운에 대규모 과학·기술단지, 대학타운, 최첨단 비즈니스 센터가 밀집한 꿈의 도시가 될 것으로 허난성은 꿈꾸고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한 ‘국제전람회의센터’는 도시의 상징물이었다.‘기둥 없는’ 건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데 관계자들의 자부심이 작지 않았다. 정저우시 정부는 타이완·일본과 상하이(上海)를 비롯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상인들의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같은 중부권으로 정저우보다 늘 앞서 있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최근 국내총생산(GDP) 등 몇가지 경제지수에서 앞질렀다.”며 흥분했다. ●정저우시에만 외국투자기업 2800곳 웨쩡푸(岳增浦) 시 상무국장은 “2000년만 해도 800곳이던 외국 투자기업이 2800여개로 늘었다.”면서 “자본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 뤄양(洛陽)시의 한 공장은 수천년 고도(古都), 중국의 ‘단골 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퉈(一拖) 국제경제무역주식회사는 중국 최고(最古), 제1의 트랙터 공장답게 쉴새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세계 92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북한과 남한에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외자기업에 대해서 25%에서 상황에 따라 특정 항목 세금의 최대 60%까지를 반환해 주는 등 개발을 위한 뤄양의 노력은 눈물겹다. 정주∼뤄양 중간에 위치한 덩펑(登封)시 역시 도시 정비와 도로 확충으로 중국 5악(岳)의 하나인 숭산(嵩山)과 소림사, 뤄양 용문석굴(龍門石窟) 등을 잇는 관광자원 확충에 집중하고 있었다. ●AIDS만연·빈곤·낙후 상당부분 치유 허난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실 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된 점이 많다. 허난성의 인구는 1억에 육박해 중국의 전체 성(省)중에서 가장 많다. 또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1차산업에 종사, 낙후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개혁·개방 이후 다른 성과의 격차는 커져갔고, 많은 유민(流民)들이 양산됐다. 허난성이 AIDS 촌(村)으로 알려진 것도, 피를 팔아 생활을 연명해야 할 만큼 가난한 촌락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리청위 성장은 “38개 현에서 1만 9000명이 발병,4000여명이 숨졌으나 AIDS 사태를 야기한 혈액 채취소는 이미 모두 폐쇄됐다.”면서 “성을 뒤덮은 가난의 상흔이 치유돼 왔다.”고 강조했다. 리 성장은 “베이징∼정저우 구간과 정저우∼우한 구간 고속도로 신설 등 고속도로가 4020㎞까지 연장되면, 정저우를 중심으로 사통팔달 연결된 철도망과 함께 성 발전의 대동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j@seoul.co.kr ■ 균형발전 바로미터 ‘중부굴기’ 성공할까 |정저우시·뤄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중국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은 지난달 말 통상 교섭차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중부굴기’를 잊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주요 인사를 만나는 자리면 “중부굴기에 투자해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는 그다. 그는 중부굴기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다. 강력한 차세대 영도자급 주자의 하나로 꼽히는 그로서는 반드시 성공의 기틀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는 1992년부터 10년간 다롄(大連)시장 재직 중 연 10% 이상의 고속 성장 속에서도 다롄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냈다. 이후 랴오닝(遼寧) 성장을 지내며 오늘날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중부굴기는 우선 중국의 각종 대개발 공정의 1차적 마침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2000년 무렵 시작된 ‘서부대개발’과 2003년 본격 가동된 ‘동북진흥’에 바로 뒤이은 또 하나의 역사(役事)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 4세대 지도부가 이 프로젝트를 주시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가장 중시하는 ‘균형 발전’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의 바로미터,‘중원(中原)’ 중국의 중부 지역에는 중국 인구의 28.1%인 3억 6100만명이 산다. 이 가운데 농업인구는 2억 4400만명으로 70%에 이른다.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게다가 개발 공정의 시작도 상대적으로 늦다 보니 서부와 동부지역보다 뒤떨어진 측면이 많다. 2001∼2003년 중부 6개성의 경제성장률은 동부와 서부지역보다 각각 1.8%포인트와 0.4%포인트 낮았다. 총생산 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당 중앙이 공들이는 ‘신농촌 건설’과 ‘균형’이 가장 부합되는 지역은 어찌보면 중부지역인 셈이다. ●“그러나, 추동력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부굴기가 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과 같은 추동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부대개발은 천연가스와 수력전기 등 자원이 풍부하고, 청두(成都)나 시안(西安) 같은 거점 도시가 공정의 주요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동북진흥은 과거 중국의 최대 중화학 공업 기지요 중공업 단지로, 다소의 구조조정과 현대화 작업만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중부지역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같은 특징이 크게 부족하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관망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선정된 개발 공정”이라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균형발전이란 명목을 위한 전형적인 ‘끼워넣기식’ 국가 개발사업이라는 얘기다. jj@seoul.co.kr ■ 내수생산의 중심지부상 가능성 |정저우시·뤄양시·덩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중부굴기 프로젝트에는 아직 구체적인 시간표나 청사진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이 국가발전계획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판공실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직 전문적인 추진 기구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공정의 대상이 되는 산시(山西)·허난(河南)·후베이(湖北)·후난(湖南)·안후이(安徽)·장시(江西)성 등 중부 6개성 일대가 대대적인 수출 전략기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창(長)강이나 주(珠)강 삼각주 경제지역에서처럼 중심도시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성마다 독자적 경제권을 형성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특히 서부와 같은 재정·금융·투자환경 분야의 관련 우대정책을 제정한다는 문서도 없는 상황은 이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지역이 11·5규획 목표에 따라 ‘내수 생산’의 중심지로 가꿔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중국의 중·소 및 중견 제조업체들의 진출이 적합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지 언론들은 상하이, 홍콩 등에서 임금 인상 가속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기업들이 내륙지방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후광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 정·관계를 장악했던 ‘상하이방(上海幇)’에 이어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안후이방(安徽幇)’이 부상하고 있다는 홍콩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편 중부지역은 아세안-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내수와 물류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하는 한국 기업에는 전초기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는 일단 한국 중소기업들이 합작 대상으로 삼는 이 지역 중국 기업들의 신용조사를 정부 재원으로 하는 것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또한 이미 서부지역에서 실시해 효과를 보고 있는 ‘지역별 물류 센터’를 확장, 중부쪽에도 세울 것을 고려하고 있다. jj@seoul.co.kr
  •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시작은 그 끝과의 약속이다.’라는 어귀가 먼저 눈에 띄는 평창동의 ‘김준 재즈클럽’. 이 곳에는 ‘재즈계의 신사’라 불리는 김준씨가 늘 삽화처럼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재즈는 여백이 많은 음악입니다. 불협화음을 화음화하는데 묘미가 있지요. 악보에 없는 음을 표현하는 즉흥적인 호흡이 생명입니다.” 재즈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그걸로 끝장이라고 말하는 김준(66)씨. 때문에 그는 활발한 공연과 더불어 매년 한두 장 이상의 음반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하루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남이 알고, 사흘 안 하면 무대에서 떠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즈에 몰두하는 김준씨 클럽에는 필자가 시간 날 때마다 드나들었지만 불과 두세 번 정도를 빼면 손님이 단 한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스스로 강조하듯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온 지 30여년째다. 솔로 활동 이전 ‘빨간마후라’로 잘 알려진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의 멤버였던 그는 또한 69년도부터 동료 박상규, 장우, 차도균씨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포 다이나믹스’를 결성해 현재까지 근 36년간 함께 활동하며 우정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가수 겸 작곡가 김준씨의 본명은 김산현. 그의 삶은 귀족풍의 얼굴과는 달리 파란만장했다. 1940년 임야만도 18만여 평이 넘었던 신의주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가족은 46년, 진남포 해안에서 어선을 이용하여 탈북, 서울로 와 남산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강원도의 원주와 영월, 문경, 목포 등을 거쳐 제주 최남단 모슬포에 정착, 대정고를 졸업했다. 타고난 음악적 자질로 각종 콩쿠르에서 제주를 석권했던 그였지만 가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지는 경희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 음악경시대회’에 참가한다. 이미 졸업생이었지만 학교장의 배려로 고3재학생으로 서류를 위조해 응시한 것. 결국 그는 200여 명의 참가자 중 3위로 입상하며 경희대 음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60년, 대학생활이 시작되자마자 4.19를 맞아 잦은 휴강과 함께 결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종로2가 ‘뉴월드’ 음악감상실 DJ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함과 동시에 당시 50인조로 구성된 교회 성가대 ‘시온성가단(단장 이동일)’의 일원이 된다. 아울러 이 무렵 당시 4인조 쿼텟 ‘멜로톤’의 멤버 한 명이 입대해 결원이 생기자, 대타로 참여해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61년 5월16일, 라디오에서 새벽을 가르는 군가연주와 ‘혁명공약’을 낭독하는 아나운서의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학교는 4.19에 이어 다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 정문 앞에는 엄청난 포신을 자랑하듯 탱크가 버티고 있었고 이른바 ‘혁명군’들이 10m 간격으로 서서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2학기 수강신청을 끝내고 정상수업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는 한 방문객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내 지프차에 실려 미아리고개에 있는 군부대 막사로 이송된다. 그 곳엔 이미 예닐곱 명이 먼저 와서 초조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중 한명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술 중흥을 위해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새로 창단하는 ’예그린가무단‘의 합창단원으로 입회시키겠다’고 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고에 가까웠던 이 예그린의 단장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혁명 주체 세력’ 김종필씨였다. ‘단복은 계절에 따라 무상 제공’ ‘출연료 파격 대우’ ‘향후 무대활동 보장’ 등이 그들이 내건 조건이었다. 이 예그린합창단의 월급은 당시 돈으로 무려 ‘오천원’ 정도였기 때문에 기성가수나 교직에 몸담은 실력자들까지 앞 다투어 응시, 경쟁이 치열했던 터라 그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된 예그린, 그는 창작 뮤지컬 ‘한 여름 밤의 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으나 1년 후 예그린은 해산되고 만다. 때문에 합창단 중 막내이자 가장 ‘끼’가 많았던 동갑내기들, 즉 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은 4중창단을 결성,62년 ‘자니브라더스’를 결성한다. 예그린은 당시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연기, 춤까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를 요구했던 만큼 이들 네 명의 실력은 이미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적 실력은 대표곡인 ‘빨간 마후라’ 취입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63년 초여름. 이 영화 제작사인 신필름 측은 작곡가 황문평씨에게 주제가 작곡을 의뢰해온다. 아울러 이 영화주제가는 파일럿들이 첫 출격할 때 불러야하는데 하필 오늘 OO기지 비행장을 빌려 촬영하는 날짜라 오늘 중으로 만들어 달라고 독촉을 해왔다. 가사를 받아 쥔 황문평씨는 노래 구상은 물론 동시에 노래를 불러줄 가수부터 찾아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급한 대로 당시 동아방송 강수향 음악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 마침 방송국에 자니브라더스가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황씨는 곧바로 악상의 뼈대를 잡고 방송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멜로디를 다듬었다. 주제가를 의뢰받은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작곡을 했고 두서너 번의 연습 끝에 ‘빨간 마후라’는 자니브라더스에 의해 취입된 것이다. 자니브라더스의 넷 모두는 악보만으로도 곧 바로 노래가 가능한 실력자들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빨간 마후라’는 어느덧 대표적인 공군가로 자리했다. 또한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면서 특히 대만에서도 이 노래가 대만 공군가로 불려지고 있는데 심지어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대만국민들은 이 노래가 자국의 군가로 알고 있을 정도다.(계속) sachilo@empal.com
  • [오늘의 눈] 앞뒤 다른 환경 정보공개/박은호 공공정책부 기자

    참여정부는 유별나다고 할 만큼 정책홍보에 매달린다. 정부부처가 홍보시스템을 구축해 국민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한 지 오래이고, 공무원에게는 인터넷 댓글 달기를 주문한다. 국정홍보전략회의에 불참한 고위공직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가 하면,‘버블 세븐론(論)’이란 히트 홍보작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듯 전방위로 전개되는 참여정부의 홍보정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기자는 “아니오.”라고 결론지었다. 이 정부 홍보정책의 또다른 주요 수단인 ‘정보공개 제도’의 맥빠진 실상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달 11일 환경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올 들어 4월까지 환경부가 생산한 4만 5783건의 문서목록을 일일이 읽느라 며칠이 걸렸다. 그런 뒤 환경부가 ‘공개’로 분류한 140건을 골라 “구체적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회신 내용은 뜻밖이었다.62건은 공개,29건은 비공개 결정이라는 통지였다. 애초 공개대상으로 분류해 놓았지만, 막상 청구가 들어오자 비공개로 둔갑한 것이다. 나머지 49건에 대한 처리는 더 실망스러웠다.‘미군기지 환경오염조사 결과’ ‘수돗물의 미생물·바이러스 검사 결과’ 같은 문서인데, 이 역시 당초 공개대상으로 분류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정보공개 청구일로부터 26일을 넘긴 6일 현재까지 공개를 할 수 있다, 없다는 통보조차 없는 상태다. 이런 데도 정부가 운영하는 정보공개 사이트(www.open.go.kr)엔 ‘5월29일 통지완료’로 기록돼 있으니 해괴할 따름이다. 기자가 취재 방편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택한 것은 통상적인 취재방식으로는 정보 접근이 거부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마지막 수단으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이마저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반 국민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에 일방통행식 홍보정책이 정말 걱정스럽다. 박은호 공공정책부 기자 unopark@seoul.co.kr
  • [프로야구 2006] 모처럼 배영수

    삼성 배영수는 시즌초 지긋지긋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후유증을 앓았다.WBC에 출전하느라 겨울에 공을 충분히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즌 개막 직후 3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6일 잠실에서 열린 ‘재계 라이벌’ LG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한 배영수는 지난해 11승을 거둔 에이스다운 면모를 되찾았다.5이닝 3안타 3삼진 무실점의 빼어난 피칭으로 5-1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4승(4패)째. ‘디펜딩 챔피언’ 삼성은 배영수의 호투를 발판으로 지난달 6일 이후 꼬박 한 달 만에 다시 선두에 올라서 강팀다운 면모를 보였다. 반면 LG는 전날 이순철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인해 양승호 수석코치 대행체제로 첫 경기를 치렀지만 패배를 당해 4연패를 기록하면서 시즌 처음 꼴찌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특히 LG는 이날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에이스’ 이승호를 선발로 내세우는 등 팀 쇄신에 나섰지만 삼성에 투타에 역부족이었다. 수원에서는 거듭된 호투에도 불구하고 팀 타선의 지원부족으로 번번이 승리를 놓쳤던 두산 리오스가 모처럼 웃었다. 리오스는 7과3분의 2이닝 동안 6안타 4삼진 무실점 투구로 4승째를 챙겼다.‘오버맨’ 홍성흔은 5회 승리에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터뜨려 팀의 4연승에 힘을 보탰다. 한화 정민철은 SK와의 홈경기에 출전, 사상 4번째로 2000이닝을 달성했다. 정민철은 최연소(34세 2개월9일), 최소 경기(319) 2000이닝을 던지는 위업을 세웠지만 5와3분의2이닝 동안 12안타 1홈런을 맞으며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다. 한화는 SK에 3-4로 패해 2위로 내려앉았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서울시장후보 ‘마지막 유세’

    서울시장후보 ‘마지막 유세’

    선거 초반 최대의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장 선거전이 후보들의 막판 강행군 속에 30일 자정 막을 내렸다.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는 이날 밤 명동에서 ‘72시간 마라톤 유세’를 마무리지었다. 지난 28일 0시 명동성당 마리아상 앞 촛불기도를 시작으로 3일 낮밤을 꼬박 새우는 바람에 강 후보의 체력은 거의 바닥났다. 이날 하루에만 군자동 서울지하철 차량기지, 청진동 해장국 골목, 동대문 평화시장, 북창동 인력시장, 을지로 지하철역 주변 등 고된 일정을 소화해 냈다. 강 후보는 ‘서울시민에게 드리는 글’이란 성명에서 “시민들을 만나며 많이 울고, 많이 분노했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직접 나서 서울을 바꾸고,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때”라고 호소했다. 강 후보는 “저는 항상 여러분 속에 있겠다. 현장을 지키고, 여러분을 지키면서 끝까지 같이 가겠다.”고 강조했다. 오영식 대변인은 “강 후보의 유세 게시판에 6만여개의 답글이 게시되고, 여성표가 결집하는 등 고난의 행군이 감동의 파고를 일으켰다.”고 자평했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이날 “정책선거·클린선거·칭찬선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선거를 통해 이런 선거운동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달라.”는 말로 대미를 장식했다. 오 후보는 지난 28일부터 사흘간 이어온 ‘철인 3종 유세’를 마감하며 “몸은 부서질 것처럼 힘들었지만 서울 전역을 걷고, 뛰며 정말 많은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서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온몸으로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날 새벽 5시 송파구 공영버스 차고지와 가락시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선거운동 마지막날 일정을 시작해 강남·강북·구도심권의 순서로 25개구 전체를 순회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냈다. 그는 이날 밤 명동에서 마지막 거리유세를 마친 뒤 시청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클린선거 보고대회’를 갖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민주당 박주선 후보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 ‘대장정 유세’를 이어갔고,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는 중심가를 돌며 ‘열린우리당 사표(死票)론’과 함께 ‘민노당 대안론’을 역설했다. 국민중심당 임웅균 후보는 도심 주변에서 게릴라 유세를 벌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박찬구 전광삼기자 ckpark@seoul.co.kr
  • “지금은 표밭이 우선” 정동영 강행군

    29일 오전 9시, 경남 김해 부원동 새벽시장.5·31 지방선거 김해시장선거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이봉수 후보의 유세차량에 낯익은 인물이 올랐다.“당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당의장 책임이니 인물 보고 표를 달라.”고 한 그는 정동영 의장이었다. 이날 영남과 수도권 지원유세에 나선 정 의장은 절박해 보였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 이후 선거 판세가 그의 말마따나 ‘한나라당 싹쓸이’ 분위기로 전개되는 상황인 데다 전날 같은 당 김두관 최고위원이 그에게 당을 떠나라고 요구하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다 이날 정 의장은 밤잠을 설친 듯 평소보다 피곤한 표정이었다. 약간 비뚤어진 채 매고 있던 넥타이는 첫 일정인 부원동 유세 직후 풀어버렸다. 염색이 풀린 듯 흰머리가 많이 보였다. 그는 첫 일정인 김해 유세에서 “열린우리당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또 “지난 석 달 동안 죽기 살기로 뛰었지만 국민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실패했다. 미움과 회초리는 당의장인 제게 달라.”고도 했다. 유세를 마친 뒤 이봉수 김해시장 후보가 “바쁘신 중에도 김해를 찾아주신 정 의장에게 박수를 부탁 드린다.”고 하자 정 의장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했다. 그는 입고 있던 연두색 열린우리당 점퍼를 벗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은 뒤 시장 상인들과 악수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입 밖에도 안 꺼낸 ‘김두관’ 그는 이날 경남 김해와 밀양을 찾아 김해시장 밀양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한 자리에서도 경남지사 후보로 나온 김 최고위원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안동 유세에서는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경북지사 선거에 나온 강금실 진대제 박명재 후보에 대해 “이 인물들 이렇게 버리시겠느냐.”고 호소했지만 김 최고위원 얘기는 하지 않았다. 밀양 유세 직후 한 지역방송 기자가 “김 최고위원의 어제 발언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고 하자 수행팀이 제지했다. 정 의장은 “버스가 어디 있느냐.”고 물은 뒤 급히 버스에 올랐다. 김 최고위원도 이날 정 의장의 경남 지역 유세장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조우’는 불발됐다. 당 관계자는 “유세일정이 따로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안동 시내 한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함께한 자리에서 한 기자가 ‘(김 최고위원 등이 비판한)선거 이후 민주개혁세력대통합’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지 물었다. 그는 “선거 끝날 때까지는 선거 얘기만 하자.”고 했다.그러곤 퇴계 이황 선생의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아들 퇴계 선생에게 ‘너는 측은지심이 많으니 공부는 하되 벼슬은 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였다. 그는 “어머니가 정치판에 가면 아들이 다칠 것을 우려했던 것”이라고 했다.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김해·밀양·안동·광명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王자형 터널 500명수용 규모 “日본토~한반도 잇는 초계지”

    王자형 터널 500명수용 규모 “日본토~한반도 잇는 초계지”

    ■ 강제 동원된 거문도 생존자 증언 “비가 오고 파도가 높게 치는 날에도 배를 타고 다른 섬에 건너가야 했어.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십장’이라는 일본인들이 사정없이 우리들을 방망이로 내려쳤지. 나야 워낙 어렸지만 연세 많은 아저씨들까지 스무살도 안돼 보이는 십장들한테 얻어맞는데, 정말 비참하더라고.” 1944년 거문도 군사시설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이성화(76) 할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일본군이 매일 필요한 인원을 요청하면 면사무소 직원이 나와서 ‘어느 집 누구 내일 나오시오.’ 하는 거야. 나가지 않으면 식량배급표를 안 주는데 안 나가고 배길 재간이 있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우리 집에 남자는 나뿐이라 고기잡이도 못하고 매일 끌려다녔지.” ●할아버지, 청소년 100여명 노력동원…몽둥이질 일삼아 16세 나이에 강제 부역을 해야 했던 이성화 할아버지는 “60년이 지났지만 당시 일본군이 섬에 머무르며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저지른 만행은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1938년 5월 일제는 전국에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전시체제에 맞춰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1937년 300만명이던 조선 내 노동가능인구를 1941년 400만명으로 늘려잡는다. 노동가능 연령대를 20∼40세에서 14∼50세로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김윤미(26) 조사관은 “생업에 피해를 받으며 무임금으로 부역에 동원됐으면서도 강제동원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군사시설들은 1944년 12월부터 광복 직전인 1945년 6월에 걸쳐 지어졌다. 일본인의 관리감독 아래 황해도 옹진 등의 내국인 발파 기술자를 데리고 왔다. 동원된 100여명의 주민들은 돌을 옮기고 굴을 파는 등 단순작업을 시켰다. 거문도를 구성하는 3개 섬 중 동도에서만 9개의 터널이 발견됐다. 이중 7개는 해안가에 지어졌으며 배를 댈 수 있도록 콘크리트 접안시설까지 갖췄다. 터널은 폭 2.5∼3.0m, 높이 3m, 길이 15∼25m로 h·I·王·T자형의 다양한 형태로 지어졌다. 위원회 한흥수(45) 조사1팀장은 “전쟁이 났을 때 군수물자, 식량, 어뢰정 등의 보관·대피시설로 활용하거나 주변 정찰을 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王자형 터널의 경우 최고 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고 해안가 터널은 군용정 4∼5척까지도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규모”라면서 “특히 콘크리트 벽의 두께가 30㎝ 이상으로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 했을 가능성”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큰 일제시대 군사시설은 제주도의 터널 300여개였다. 그러나 거문도의 시설물은 제주도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지영임 연구원은 “이번에 처음 학계에 알려진 거문도 군사시설은 일제가 한반도 자체를 전장(戰場)으로 삼으려 했음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면에서 제주도 군사시설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서도리 불탄봉(해발 195m) 정상 근처에 있는 참호 2개는 군수물자 보관용이라기보다는 주변 정찰의 용도가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참호에서는 남동쪽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여 지나는 선박의 움직임 등 주변 정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로 입구 두 곳에는 철문을 달 때 쓴 경첩이 남아 있어 유사시 공격에 대비해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찰용 참호를 지을 때에는 주민들이 위치와 형태에 대해 알 수 없도록 비밀리에 진행했다. 이규동(81) 할아버지는 “우리는 중턱까지 시멘트나 목재 같은 물자를 올려주는 일만 했고 그 위로는 올라오지도 못하게 했다.”면서 “불탄봉에 주둔해 있던 육군들이 직접 짓고 포탄을 숨기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돌로 만든 80m 이상 전쟁용 방어벽도 건설 한 주민은 “일주일에 2∼3차례 수송용 비행기가 진해에서 물자를 날라 왔고 1944∼45년 사이에 함정 6∼7대가 항상 정박해 있었다.”고 증언했다.“해안가에 막사를 짓고 일본군과 기술자 100여명이 생활을 했지. 권총을 찬 해군이 군수물자를 지키고 있었는데 내게 권총을 보여주며 나를 귀여워하기도 했어. 나중엔 일본군이 집단 이질에 걸려 일본인 대위가 친구집에서 매실즙을 마시고 나았다고 들었어.”(70세 원용삼 할아버지) 가운데 섬인 고도 거문리의 회양봉 중턱에서는 돌을 쌓아 만든 높이 60∼80㎝의 방벽이 발견됐다. 산책로를 따라 섬의 북쪽을 두르고 있는데 눈으로 확인된 것만 80m 이상이었다. 거문리 신사터 뒤편에는 1938년 일본이 거문리에 130m에 이르는 방파제를 개축했다는 기념비가 있다. 1904년 일본군이 매설한 해저 케이블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직경 약 1㎝의 구리선을 수십가닥 엮어 만든 케이블은 광복 전까지 일본군이 통신용으로 사용했다. ●일본식 건물, 신사(神社)터…황민화 등 일제 잔재 그대로 현재 거문도에서는 1000여명의 주민이 어업·양식업에 종사하거나 낚시꾼을 상대로 하는 민박·식당업을 하고 있다. 하루 두번 관광객과 주민을 실은 배가 오갈 뿐 조용한 모습이다. 그 속에 일제의 잔재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도에는 일본식 건물의 흔적이 많다. 고도는 원래 주민들이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인 거주지역이 됐고 현재는 면사무소, 우체국 등이 있는 중심지다. 일본인들이 거문도에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로 1897년 원양어업장려보조법을 만들어 국가차원에서 어업이민을 장려했다. 김윤미 조사관은 “연중 어장이 풍부하고 지리적 요충지인 거문도는 일본인을 이주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물자를 조달하는 목적으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섬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1942년에는 87가구가 이주해 346명의 일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250가구 이상 살았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다. 일본인이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소학교 3곳과 신사 터도 그대로 남아 있다. 비석만 흉칙하게 남은 200여평 넓이의 신사터는 현재 헬기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도 소학교를 다닌 원용삼 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10장의 카드를 주고 한국말을 사용하면 친구에게 카드를 뺏도록 해 카드의 개수가 적으면 마구 때렸어. 정월 초하루와 해군이 출격하기 전날엔 동네사람들을 모아 억지로 신사참배도 시켰지.”라면서 60여년 전 기억을 더듬었다. 글 사진 거문도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하필 거문도에 왜 지었나 거문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중간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와 부산의 사이에 있지만 거리로 따지면 일본에 더 가깝다. 거문도∼부산이 198㎞인 반면 거문도∼규슈는 161㎞밖에 되지 않는다. 예부터 일본∼중국, 여수·부산∼제주를 오가는 선박들이 풍랑을 피하거나 식수를 얻는 중간 기항지로 이용한 이유다. 이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열강들은 호시탐탐 거문도를 점령할 기회를 노렸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1885년 ‘거문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영국해군은 거문도에 무단으로 침입해 2년 동안 점령했다. 그래서 거문도에는 영국군이 만든 국내 최초의 테니스장과 영국군 묘지가 남아 있다. 일본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터지면서 거문도에 해군과 육군을 1개 중대씩 배치했다. 그러다 1944년 말 군사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로 이미 미군이 일본 오키나와까지 치고 들어가 있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일제는 최후의 항전을 앞두고 거문도를 본국과 한반도를 잇는 초계기지 겸 병참기지로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도와 서도 사이 내해(內海)의 물결이 잠잠하고 외부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활용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비슷한 시기 제주도에 건설된 군사시설은 지하갱도 300여개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제주대 지영임 연구원은 “제주 해안가 갱도는 길이가 40∼60m에 이르며 함정을 출격시킬 수 있는 추진장치도 발견됐다.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제주도에서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총리 “취임뒤 체중 5㎏ 줄었다”

    한총리 “취임뒤 체중 5㎏ 줄었다”

    “국무총리는 난제가 올라오는 자리입니다. 정책을 파악하면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한명숙 총리가 23일 취임 한달을 맞아 삼청동공관에서 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취임 이후 5㎏ 정도 체중이 줄었다.”고 자리에 가해지는 압박이 어느정도인지를 에둘러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조정능력을 발휘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잠자는 시간이라도 줄이겠다.”고 다짐했다. 한 총리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과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급작스러운 별세 등을 거론하면서 “최근 충격적인 일들이 계속돼 마음이 무겁고 책임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한 총리는 새달 5일부터 시작되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협상에 맞춰 몇몇 시민단체가 미국 원정시위를 계획하고 있는 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불법적인 원정시위에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시위대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어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다.”면서 “협상에 불리한 여건도 마련될 수 있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한 총리는 “미군 철수나 기지이전 자체를 반대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원칙론을 내세우고 “하지만 주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과 개헌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있어 남북관계 및 북핵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돌파구가 될 것”이라면서 “개헌의 필요성에는 어느정도 공감대가 이뤄진 것 같지만, 개헌의 주체는 정부가 아닌 국회”라며 한발 물러섰다. 한 총리는 ‘민생 총리’로서의 행보를 5·31 지방선거가 끝난 뒤 본격화하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취임 직후부터 공언한 민생 총리로서 행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로 승부를 내며, 장악이 안되는 것은 없다.”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어 “취임 100일쯤이면 면모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 총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을 놓고 “국회에 상정된 비정규직 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정책을 수립해 시행토록 할 것”이라면서 “현재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동작구 올들어 12.2% 껑충

    “강남 일부에만 버블이 형성된 것이 아니에요. 용산 아파트값도 올해들어 불과 5개월 만에 10% 이상 급등했어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신동아 아파트에 전세 살고 있는 김동균(가명·35)씨는 올해들어 껑충껑충 뛰는 아파트값에 혀를 내둘렀다. 강남·서초·송파 등 소위 ‘버블세븐’지역만 거품이 낀 것처럼 떠든 언론에 강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단기간 급등, 거품이 낀 곳이 버블세븐 외에도 수도권에만 10여곳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아파트값 버블이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수도권 전반에 끼였다고 진단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들어 다섯 달 만에 아파트값이 10% 이상 오른 지역은 모두 18곳에 이른다.5% 이상 오른 지역으로는 무려 28곳이나 된다. 용산구 동부이촌동에서 올들어 가장 많이 올랐다는 신동아 아파트 55평형은 최근 17억원에 거래됐다. 연초보다3억원 올랐다. 같은 평형이라도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호가가 19억원까지 올라 있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다섯 달도 안돼 상승률이 21.4%를 기록했다. 부동산114통계를 보더라도 용산구 평균 아파트값은 올해에만 11.67% 폭등했다. 버블이 끼였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지역이다. 단기간 아파트값 폭등을 기록하고 있지만 버블 세븐에 가려 마치 주택 시장이 안정세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수도권에만 10여곳에 이른다.산본 신도시 역시 올해만 25.93% 상승했다. 양천구에 이어 상승률이 두 번째로 높은 곳이다.지난주에만 1.89% 상승하는 등 이상 급등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군포시 아파트값도 올들어 18.61% 올랐다. 상대적으로 아파트값 상승률이 작었던 지역이지만 전반적인 아파트값 거품 형성 분위기를 타고 동반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천시 아파트값을 지켜보는 전문가들도 버블지역에서 빠진 것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재건축 아파트 붐을 타고 최근 2년 동안 30% 이상 올랐다. 올해만 17.42% 급등했을 정도다.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작었던 일산과 의왕시도 올들어 상승률이 각각 15.90%와 14.43%를 기록했다.그동안 강남지역처럼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아 버블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이런 추세로 집값이 오르면 버블 형성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개발 호재 과다 평가로 거품 형성 용산구는 강북U턴 개발, 미군기지 이전 등의 개발 호재를 안고 있어 가격 상승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발 호재 기대 이상의 단기간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버블8’로 지목하고 있다. 강동구 주공 아파트값 역시 버블이 끼였다. 재건축 일정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은데다 재건축 수익률이 기대 이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 오름세는 멈췄지만 정상 가격보다는 훨씬 높게 평가됐다. 연초 대비 12.23% 오른 동작구도 노량진 일대 뉴타운 개발과 노량진역 민자역사 개발,9호선 개통 호재를 안고 있지만 상승세가 이런 추세로 이어진다면 얼마 가지 않아 버블 논쟁에 휩싸일 지역으로 꼽힌다.K공인 관계자는 “흑석동 현대 아파트 48B평형은 지난 1월 7억∼8억원선에 거래됐지만 최근 8억 5000만∼10억원으로 2억원 가량 올랐다.”면서 “정상 가치 이상의 개발호재가 반영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버블세븐 지역과 함께 단기간 급등한 지역 아파트값도 동반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儒林 (608)-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4)

    儒林 (608)-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4)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4) 율곡이 그토록 빠르게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었던 것도 또한 일필휘지로 조선조 최고의 명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내공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는지 어악이 일어나며 모대(帽帶)한 시관이 방을 고이 들고 앞으로 나와 홍마삭 끈을 일시에 올려 달았다. 그러자 종이가 펼쳐지며 마침내 시험결과가 발표되었다. 순간 그 앞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선접꾼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주먹을 휘두르며 세도가의 자제들을 위해 일시에 달려들어 길을 열었으나 율곡은 한 곁에 물러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결과를 보고 낙방한 과유들이 침통한 얼굴로 차례차례 물러갔다. 삽시간에 반수당 뜨락은 썰물처럼 빠져 나간 유생들로 철지난 바닷가와 같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은행나무 밑에 서 있는 율곡 앞으로 큰 소리를 치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 도대체 어디 갔었는가. 한참을 찾고 있었네.” 송강 정철이었다. 정철은 율곡과 동갑내기로 벌써부터 상대방의 문재를 인정하고 있었던 당대의 라이벌이었다. 특히 지난번 세도가 자식들이 합심하여 율곡에게 행패를 부릴 때 기지를 발휘하여 율곡을 위기에서 구해줌으로써 무사히 과거시험을 치르게 하였던 은인이기도 하였다. “방을 보았는가.” 정철이 빙그레 웃으며 율곡을 쳐다보았다. “아직 보지 못하였네. 자네는 보았는가.” “나야 보았지. 나야 보기 좋게 낙방하였네.”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율곡이 29세 되던 1564년에야 대과의 명경과에 장원으로 급제함으로써 마침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호조좌랑에 임명되어 벼슬의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면 정철은 그보다 2년이나 빨리 역시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던 것이다. 물론 율곡이 정철보다 2년이나 늦었던 것은 뜻밖에도 아버지 이원수가 율곡의 나이 26세 때인 그해 5월 갑자기 병사함으로써 3년 동안 율곡은 과거공부를 중단하고 3년 동안이나 파주의 선영에서 시묘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율곡도 진즉부터 정철에 대한 소문을 친구 성혼을 통해 듣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평생 동안 친교를 맺고 지낼 수 있는 벗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성균관 앞에서 정철이 율곡을 위기에서 구해준 기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도대체 천도책이라니, 그 따위 과거시험 문제를 내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늘의 길이라니, 무슨 빌어먹다 죽은 씻나락 까먹는 귀신의 소리란 말인가.” 정철의 몸에서는 이미 술 냄새가 진동하였다. 아마도 술을 파는 장사치로부터 술을 사서 거나하게 취할 만큼 마신 모양이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개교 60주년 맞는 경남대 박재규 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개교 60주년 맞는 경남대 박재규 총장

    불모지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깊이 내렸기에 어찌 바람에 흔들릴까. ‘어린왕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모래 언덕 위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어디엔가 숨어 있는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 약관 20대 나이였다. 다 쓰러져가는 한 대학과 졸지에 맞닥뜨렸다. 아무리 봐도 까마득한 벌판이었다. 뜻을 굳게 세웠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한줄기 빛과 우물을 찾아나섰다. 감천(感天), 떠나가던 학생들이 점차 돌아왔다. 방황 속의 황량한 캠퍼스에는 꽃향기가 생겨났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지금, 지방의 명문사학으로 당당히 뿌리내렸다. ●‘북한학´ 학문 만들어 평생 역사 현장에 박재규(전 통일부장관) 경남대총장. 요즘 들어 각별한 회한에 잠긴다. 첫번째는 자신의 35년 인생을 쏟아부은 큰아들 같은 경남대가 오는 20일로 60세 생일을 맞는다는 것이요, 두번째는 불모지에 ‘북한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내고 평생을 북한 전문가로 역사의 현장에 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 집무실에서 박 총장을 만났다. 먼저 근황 얘기가 나왔다. 개교 60주년 행사 준비로 바쁜 가운데에도 부르는 곳이 여전히 많아 국내외로 특강을 자주 나간다고 했다. 강의 내용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안보문제, 남북관계 전망, 한·미관계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군부대 신세대 장병과 대학생들로부터 강의요청을 자주 받는다. 박 총장은 알다시피 북한문제 전문가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무장관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방북한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날 정도로 북한 고위층 사정에도 밝다. 그렇다면 다음달로 예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일행에 포함됐을까.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남북 정상회담 당시 주무장관의 입장에서 모시고 가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이어 개교 60주년에 대한 화제로 옮겼다. 감회가 남다르겠다고 하자 “함께 살아온 인생과 거의 같다.”면서 지난 세월을 회고한다. 그러니까 광복 직후였다. 국가발전에 필요한 인재양성과 교육정책에 맞춰 서울에 5∼6개의 대학인가가 났을 때였다. 당시 신익희 선생이 서울에 ‘국민학관’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 겸 학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민학관’은 부산으로 서둘러 옮겨졌다. 난리통과 재정난 등 엎친 데 겹쳐 대학은 ‘보따리 신세’로 전전긍긍한다. 결국 1952년 해인사재단으로 넘겨지면서 명칭이 ‘해인대학’으로 바뀐다. 캠퍼스도 경남 진주로 이동했다.61년에는 마산으로 학교가 옮겨지면서 ‘마산대학’으로 다시 개명됐다. 이후에도 재정난 등의 어려움은 계속됐다. 이 무렵 박 총장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다. 그러자 주위에서 “마산과 창원 일대에 대학 하나 있는데 그걸 못살려서야 말이 되겠느냐.”고 하면서 박 총장에게 유학의 경험을 활용해 대학을 살려보라고 권유했다. 이때가 혈기왕성한 20대 후반의 나이였고 딱 1년만 해보자고 뛰어들었다. 특유의 꼼꼼함과 추진력 덕분인지 학교 사정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작해봐야 120여명의 전교생 중 절반 정도만 등교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학생수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2년 서울 한복판에 ‘극동문제연구소´ 차려 박 총장은 72년 수도 서울의 중심 한복판에 ‘극동문제연구소’의 간판을 보란 듯이 내걸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지방대학 주제에 무슨 북한 연구소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동북아와 한반도 통일문제를 다루는 세계적 특성화의 기치를 당당히 내걸었다고 자부했다. 또 연구소 하나만큼은 친자식처럼 키워낸다면 어느 대학 못지않게 자랑스러워질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했다. 얼마 후 소홀히 여겼던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권 국가 연구에 대해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해내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앞서나갔다. 또 많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내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98년 3월 드디어 북한대학원을 개원하면서 연구소의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 이른바 북한 및 통일연구의 메카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 것. 이후 활발한 학술교류, 출판 및 교육활동 등을 통해 규모나 실적 면에서 국내 제1의 대학연구소로 자리매김한다. 또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중심 연구기관이자 사회과학 연구자들을 연결한 휴먼 네트워크의 허브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54차례의 국제학술회의와 91차례의 해외학자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 실적이 이를 입증한다.2005년에는 경남대 북한대학원이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새롭게 태어나 북한과 통일분야를 교육하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전문 대학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 총장이 북한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시절.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니던 중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한스 모겐소 교수와 존 허츠 교수 등의 강의를 듣게 된다. 첫학기때였다. 사회주의 경제학자인 피터 와일리스 교수가 런던에서 뉴욕시립대학에 1년간 교환 교수로 왔다. 그러자 박 총장은 그의 소련 경제학 수강을 택했다. 하루는 강의가 끝난 어느 날 와일리스 교수가 박 총장을 부르더니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남한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북한 경제에 관한 리포트를 하나 작성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할 수 없이 유엔과 대학 도서관 등에서 사회주의 자료를 뒤져가며 정해진 기일 내에 리포트를 완성, 제출했다. 와일리스 교수는 고맙다고 하면서 통일을 대비해 북한 연구를 하면 그 분야의 선구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한다. 그는 또 박 총장이 원한다면 런던 경제대학(LSE)에서 장학금을 주며 박사학위 과정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특히 박 총장은 유학 도중 일시 귀국해 군 복무를 하게 되는데 우연하게도 북한 연구를 하는 곳에서 근무했다. 이때 미국에서 볼 수 없는 여러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고 군복무가 끝날 무렵에는 ‘북한사회의 구조적 분석’이란 첫 저서를 남기게 된다. 군 제대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갔으나 박사학위를 마친다는 꿈을 잠시 미루고 경남대학과 인연을 맺었던 것. 그래서 첫번째 특성화 플랜으로 한층 심화된 북한연구를 위해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연구소 창립 당시만 해도 연구원이 염홍철(현 대전시장)씨 등 두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 재학생 수만 하더라도 1만 5000명이 넘지요. 돌아보면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멸치잡이 가업… 배멀미로 ‘자격미달´ 판정 박 총장은 44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이 이듬해 광복과 함께 입국해 경남 마산 근처의 옥계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래서 고향이 옥계. 부친은 멸치·갈치잡이 배 몇 척을 소유한 선주였다. 하지만 살림은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도 산을 넘고 두 시간 이상 걸어야 했다. 아버지가 어느날 멸치잡이 가업을 물려주려고 배에 태웠다가 멀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자격미달’ 판정을 받는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마산고등학교 진학 후였다. 서울로 전학을 하려고 했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자 1년 동안 용산 미군기지에서 영어를 배운 뒤 63년 미국 뉴욕행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대학 경영인으로, 북한문제 전문가로 항상 역사의 앞길과 현장에서 묵묵히 걸어왔다. 이래저래 이번 개교 60주년을 맞는 감회는 각별하다. 그래서 행사도 다양하고 의미있게 마련했다. 오는 22∼23일 동북아지역 총장협회 총회 및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는 것을 시작으로 10월까지 북한재정 관련 국제심포지엄, 한·조·중 3국 학술회의 등 각종 국제학술회의를 잇따라 연다. 특히 다음달 11일까지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경남대학교 소장 데라우치문고-조선 시·서·화 보물전’이 열린다. 이는 박 총장이 지난 개교 50주년 때 직접 일본에서 데라우치문고를 한국으로 가져와 소장했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국보급 문화재여서 관심을 모은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마산 출생 ▲67년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69년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74년 경희대학교 정치학박사 ▲73∼85년 경남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 ▲73∼86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86∼99년 경남대학교 총장 ▲96∼97년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97∼99년 한국대학총장협회장 ▲99.12∼2001.3월 통일부장관 ▲03∼현 동북아대학총장협의회 의장, 경남대 총장 ▲05∼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상훈 미국 뉴욕 언론연구위원회 공로상(80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 세계 체육지도자상 수상(96년), 제1회 한반도평화상 수상(04년), 아름다운얼굴 교육인상 수상(04년). ●저서 북한사회의 구조적 분석(72년), 북한평론(75년), 북한정치론(84년), 북한의 신외교와 생존전략(97년) 등 수십편.
  • 美軍부지 철조망 설치 완료

    美軍부지 철조망 설치 완료

    4일 주한미군 기지 이전 부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등에 대한 국방부의 강제 퇴거(행정 대집행) 작업이 상당수의 중·경상자를 남긴 가운데 종료됐다. 국방부는 이날 새벽 행정대집행을 통해 부지 접수와 함께 기지 이전터 철조망 설치 작업에 전격 착수해 대추분교 등에 대한 철거를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부지 285만평을 군사시설 제한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 일부 주민의 거부로 지체돼 온 미군기지 이전 공사는 본격화되게 됐으며,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08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국책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외교적 신뢰를 손상시킴은 물론 이전사업비 증가, 국가 재정 및 국민 추가부담 소요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 더 이상 사업을 지연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어 “군 병력은 건설지원이 주임무이기 때문에 지역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퇴거 작업은 사실상 경찰이 대행한 셈이어서, 군과 주민들간 직접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지에 진입하려는 경찰과 저지하려는 반대 주민 및 외부 반미 단체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 137명, 시위대 93명 등 모두 23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 가운데 경찰 5명과 시위대 7명은 중상인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시위대 524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국방부는 경찰이 반대 주민들을 폐교된 ‘대추분교’로 몰아넣은 사이 공병과 보병 등 3000여명의 병력을 투입, 주민들의 영농행위를 막기 위한 철조망 설치작업을 완료했다. 철조망이 설치된 농지에는 군병력이 상주할 예정이어서 주민들의 출입이 원천 금지되며, 출입이 허용된 주택 지역도 다음달까지만 거주가 허용된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관 13명을 현장에 파견해 행정대집행 과정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 중이다. 서울 김상연·평택 김병철 이재훈기자 carlos@seoul.co.kr
  • 미군기지 협상 이틀째 헛바퀴

    국방부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1일 저녁 평택시청에서 만나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문제의 절충점을 찾기 위해 이틀째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이날 협상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국방부측이 주민대표로 참석을 요구한 김지태 대추리 이장과 문정현 신부가 참석하지 않았고, 양측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국방부측은 ▲대화기간 중 영농행위 중단 ▲5월 토지측량 등 기초조사 협조 ▲주민대표의 대화 참여 등을 거듭 요청했다. 반면 범대위 측도 ▲기지이전사업 중단 ▲사업 재검토 등 전날 주장을 반복했다. 국방부는 결국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해 2일 오전 중으로 답을 달라.”고 범대위측에 요구했다. 이에 반해 범대위측은 “오는 8일 오후에 다시 만나 협상을 갖자.”고 제안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미군기지 담판 불발

    주한미군 기지 이전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대 접수를 둘러싼 국방부와 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간의 30일 ‘담판’이 ‘대화로 해결한다.’는 원칙만 확인한 채 성과없이 끝났다. 국방부 관계자는 “양측이 평택시청에서 2시간30분간 만났으나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했다.”며 “내일 오후 5시 대화를 재개키로 했다.”고 밝혔다.이날 대화는 지난 달 15일 이후 2차 영농차단 작업이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자 국방부가 제안해 이뤄졌다.그러나 주민대표인 김지태 대추리 이장과 확장반대 범대위 상임공동대표인 문정현 신부 등은 정부가 지난 28일 오후 군·경 헬기까지 동원, 대추분교에 대한 ‘대집행’ 사전연습을 했다며 국방부에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유영재 정책위원장과 신종원 조직국장 등 실무선을 대표로 내보냈다. 국방부측의 미군기지이전사업단 창설준비단장 박경서 육군소장과 정태용 장관 정책보좌관은 실무자가 아닌 주민대표와의 대화를 요구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시론] 서울시 청사 증축 문제있다/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서울시 청사 증축 문제있다/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서울시가 신청사 설계안 당선작을 발표하면서 신청사 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이참에 헐린 시청 별관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고 기존 본관은 역사박물관이나 미술관, 서울시향의 전용심포니홀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민선3기 시장의 임기가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다. 차기 시장 후보들도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현 서울시장이 시청 청사 건축과 같은 불가역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치도의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거니와 비민주적인 일이다. 이명박 시장이 최대의 치적으로 자부하고 있는 청계천복원 사업도 전임 고건 시장이 1000억원에 이르는 청계고가도로 보수공사와 청계천 복원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후임시장에게 위임하고 최소한의 고가도로 보수만 함으로써 가능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청사 신축을 단순히 시청 건물을 짓는 사업으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시 청사는 모든 시민이 쉽게 접근하고 즐겨 찾을 수 있는 시민의 전당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문화와 예술, 관련 산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청의 위치와 규모는 서울시 행정조직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광역자치단체에 대한 구조조정,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건설, 통일 수도로서 서울의 위상 등에 대한 논의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점이다. 때문에 서울시 청사의 건립에 대한 결정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논의해 결정하여야 한다. 조순 시장 시절 서울시청 입지는 신청사 부지선정을 위한 100인의 시민위원회를 통해 결정하였고 이 위원회에는 택시운전사를 포함한 일반시민들과 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의 시청사 증축 결정과정에서 공개적인 의견 수렴을 거쳤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서울시 신청사의 입지는 장래 서울의 공간구조와 장기발전 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시청의 입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도심과 용산이라는 두 거점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하여야 한다. 우선, 광화문에서 시청을 거쳐 남대문에 이르는 국가상징가로축을 초고층빌딩과 공공기관이 도열한 국제업무가로로 조성할 것인가, 세종로 양측의 중앙행정부처 이전부지를 활용하여 시민이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육성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2004년에 마련된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에서는 과도한 고층고밀을 지양하고 사대문안의 역사문화를 복원하는 것을 주된 기조로 설정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반면, 용산은 전임 조순 시장과 고건 시장때 시청입지로 결정되어 있었다. 시청 이전을 전제로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용산공원화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녹사평역을 시청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건축했다. 그 당시는 미군부대의 이전협상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라 계획대로 추진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이제 용산의 미군기지 이전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용산의 활용방안에 대해 종합적인 논의와 발전계획 작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시청의 입지가 현위치인가, 용산인가에 있지 않다. 전 시민의 관심과 참여 속에 서울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구상은 시간에 쫓겨 성급히 결정될 일이 아니다. 서울시 신청사 건립은 다음 시장이 총의와 지혜를 모아 결정하고 추진해도 늦지 않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 재건축 시장 안정세… ‘절반의 성공’

    재건축 시장 안정세… ‘절반의 성공’

    재건축 아파트 투기를 겨냥한 ‘3·30부동산 대책’이 한 달 만에 부동산 시장의 급한 불을 끄는 등 약발이 먹히고 있다. 재건축 개발부담금 도입과 투기지역 고가아파트에 대한 담보대출 억제, 재건축 안전진단 절차 강화 등으로 재건축 시장이 안정세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일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매물이 소화되면서 가격이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성급한 판단은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재건축 개발부담금과 투기지역 6억원 초과 고가 아파트 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등으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였다. ●재건축 단지 전반적 약세 사업 초기단계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는 대책 발표 후 5000만∼1억 5000만원까지 떨어졌다.13평형은 3·30대책 이전 6억 7000만∼6억 8000만원에서 이달 중순에는 6억 1000만원까지 떨어졌다.17평형도 지난달 말 13억 5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 내린 12억원선을 기록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도 3·30대책 발표 이후부터 이달 중순까지 평균 5000만원 떨어졌다. 일반분양분이 많아 개발부담금이 클 것으로 보이는 강동구 고덕 주공 저층 단지도 3·30대책 이후 평균 2000만∼3000만원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주 중반부터 일부 재건축 단지의 저가 매물이 소화되며 호가가 다시 오르는 추세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11평형은 4억 5000만원,13평형은 6억 6000만원으로 3·30대책 이전 가격으로 회복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자들은 “3주 동안 가격이 빠지자 바닥을 쳤다는 심리가 되살아나며 대기 중이던 매수자들이 급매물을 사들인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법´ 국회 상정 정부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해 국회에 상정했다. 골자는 재건축사업에서 사업 준공시점과 착수시점(추진위 승인일)의 집값 차액으로 발생하는 조합원당 3000만원 초과 이익에 대해 최고 50%까지 국가가 환수하는 것이다. 재건축 개발이익이 5억원이면 2억 1500만원의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재건축 개발부담금 납부자는 재건축 사업으로 건축된 주택을 분양받은 조합원으로 한정하며 사업이 10년을 넘을 경우 10년까지만 개발이익을 환수하도록 법안 일부를 수정했다. 건교부는 재건축 초과이익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대로 즉각 실무 태스크포스를 구성,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작업에 착수하는 등 후속작업을 서둘러 9월 시행에 문제가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 “당분간 약보합세 지속” 전문가들은 3·30대책의 영향에다 계절적인 요인까지 곁들여져 단기적으로는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국지적으로 아파트값 불안 요소가 남아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승폭이 둔화되는 것을 보면 3·30대책 약발이 먹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5·6월은 전통적인 비수기여서 당분간 약보합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도 “3·30대책에 담보대출 규제가 포함되면서 투자심리가 많이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시 상승조짐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팀장은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는 않아 급등양상으로 번지지는 않겠지만 곧 상승기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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