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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인디아 리포트] (6) 인도 중산층 가정 탐방

    [新 인디아 리포트] (6) 인도 중산층 가정 탐방

    |방갈로르(인도) 최종찬특파원|기자들을 집으로 초대한 스리니바사 무루티(37) 방갈로르대학 외국어대학원 한국어과 교수는 전형적인 남인도인이었다. 키가 작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드라비디안의 후손이었다. 방갈로르 쿠마아파크 주택가에 위치한 그의 집은 5층 연립주택의 3층에 있었다. 현관문엔 가네시 신의 얼굴이 그려진 상징물과 꽃장식이 걸려 있었다. 거실엔 가죽소파와 양탄자에 수를 놓은 그림, 텔레비전, 물소 뿔조각, 장식장 등이 어우러져 인도 중산층에 걸맞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8개 언어 구사… 한국 이름은 ‘박수인´ 무루티 교수는 언어의 달인이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힌디어, 델레구, 우르드, 카나라, 우르드어 등 8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무르티의 한국 이름은 박수인. 박은 한국 친구의 성에서, 수는 자기 이름의 첫 자, 인은 인도의 첫 자를 땄다. 그가 한국어과 교수가 된 사연은 이렇다. 방갈로르에서 태어나 방갈로르대학을 나온 그는 1992년 문화체험교류 프로그램으로 일본에서 1년간 유학했다. 도쿄, 나가사키, 홋카이도를 오가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운명의 장난인지 인도에 돌아오기 전 한국에 2주간 머물 기회가 왔다. 사찰과 고궁을 돌아보면서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그가 알고 있었던 한국말은 ‘담배’와 ‘고맙습니다’ 단 두 마디. 인도로 돌아온 그는 이화여대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1994년 한국으로 다시 건너와 이화여대 외국어학당에서 3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수업이 없는 날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휴일에는 강릉 등 동해안 일대를 여행하며 한국문화를 체험했다. 그는 “일본인은 자기 속내를 결코 드러내지 않는 반면 한국인은 알고 나면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된다.”고 평했다. ●한국어 널리 보급하는 꿈 포기 못해 인도로 돌아온 그는 미국 회사인 오라클에서 2002년부터 3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인도에 한국어를 널리 보급하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이때부터 그는 모교인 방갈로르대학에 한국어과 개설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단과대학장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난해 9월 남인도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한국어과가 개설되는 성과를 얻었다. 그는 한국어과에 대해 “아직은 수료과정이지만 내년에는 학위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학기의 수강생은 모두 6명. 이중 3명은 IT업체에 다닌다. 이들이 수업을 듣는 이유에 대해 “한국업체에 전직하려는 사람과 다른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 등 두 부류로 나뉜다.”고 설명한 뒤 “다음 학기엔 수강생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달에 8차례 강의 “수강생 많이 늘었으면…” 그는 지금 일주일에 2차례, 한 달에 8차례 한국어 강의를 한다. 학생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모집하며,1년 학비는 2000루피(약 4만 8000원)다. 교재는 이화여대의 허락을 받아 외국어학당의 한국어교재를 사용한다. 하지만 월급이 적어 한국어와 일본어 번역·통역하는 일을 함께한다. 그는 “월급은 적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가르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7명이다. 부인 소유잔야(29)는 전업주부로 그와 같은 카스트 출신이다. 수줍은 미소가 일품이었다. 아들 아슈윈(3)은 엄마를 닮아 조각 같은 얼굴이었다. 아버지 K T 벤카타 랑게고다(76)는 투잡맨이다. 가죽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중풍과 피부질환을 고치는 전통의술도 펼친다. 어머니 G P 락슈미(66)는 전업주부다. 형 자야프라카시(42)는 호주로 건너가 살고 있다. 부동산업자로 성공해 미모의 백인여성과 결혼했다. 형 가족은 몇 년에 한 번씩 고향방문을 한다고 했다. 여동생 스리데비(33)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녀는 인도 랭킹 3위의 실력을 자랑하는 당구선수다. 롤러스케이트 선수로 출발해 사격 등을 하다가 지금은 당구에 전념하고 있다. 거실 장식장에는 그녀가 탄 각종 메달이 놓여 있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당구 국가대표선발전에 출전하려고 집을 나서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스쿠터를 타고 동네 주택가 도로를 빠져 나가려는데 1300㏄ 오토바이가 시속 160㎞로 달려와 받아버리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다. 무루티 교수가 보여준 사고현장 사진 속의 스쿠터는 처참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 있어 사고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갔다. 그녀는 아직도 팔에 깁스를 하고 있다. 그녀는 식당에 걸려 있는 할아버지 사진을 가리키며 “유명한 의사였다.”고 자랑했다. 그는 “연애결혼이 갈수록 늘어간다.”며 “나도 다른 카스트의 여자를 좋아해 결혼하고 싶었는데 여자가 싫어해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동생은 다른 카스트 출신의 남자와 연애를 통해 내년에 결혼을 한다. ●식당 한편에는 가네시 신을 모시는 기도시설 그가 전세금 80만루피(약 1920만원)를 주고 10년째 살고 있는 집안을 둘러보니 큰 방이 4개나 있었다. 주방에는 온갖 향신료가 가득 차 있었다. 문마다 안전고리와 자물쇠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했다. 밤손님들의 방문을 사양하기 위해서다. 식당 한편에는 가네시 신을 모신 기도시설이 있다. 그는 “아침마다 목욕재계한 뒤 향을 피우고 신에게 재앙을 막아주고 재물을 벌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고 말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라는 전갈이 왔다. 모녀가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치킨 칠리(닭고기 고추볶음), 치킨 티카 마살라(닭고기 매운 양념소스), 치킨 비리야니(닭고기가 들어간 밥), 로티(밀가루빵), 파파드(콩으로 만든 넓적한 빵), 찬나 마살라(콩 양념소스), 그린 샐러드, 삼바르(카레수프) 등 북인도 전통음식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힌디어를 하나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알려줬다.“남자가 말할 때는 메 압코 피아르커르타훙, 여자가 말할 때는 메 압코 피아르커르티훙.” 융숭한 대접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밤이 깊어진 줄 몰랐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별을 고하니 무루티 아버지까지 손자를 안고 맨발로 버스 타는 곳까지 나와 기자 일행을 배웅했다. 인도 중산층 가정과 인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하루였다.“단냐밧(고맙습니다) 무루티!” siinjc@seoul.co.kr ■ 한국어 수업 참관기 |방갈로르 최종찬특파원|방갈로르대학 외국어대학원 캠퍼스는 초라했다. 맨땅에 콘크리트 건물 한 동만 덩그러니 있었다. 스리니바사 무루티 교수의 일요일 강의가 예정된 2층의 강의실에 올라갔다. 학교 전체가 정전이 돼 한국어 수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 6명 가운데 3명은 지방 출장 때문에 빠지고 3명만 출석했다. 학생들은 “한국어 좋아합니다.”라는 인사말로 기자 일행을 환영했다. 서투른 한국어로 학생들은 돌아가며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를 밝혔다. 셋 중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하는 도요타 직원인 토마스 V J(33)는 “갈비와 김치찌개를 좋아하며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가수 계은숙도 알고 아리랑도 부를 수 있다.”면서 “한국어는 쓰기는 쉬운데 읽기와 발음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인포테크 직원인 라슈리 라오(여·34)는 “통역사가 되고 싶어 한국어를 배운다.”면서 “한국어는 쓰기는 쉽지만 발음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엘앤티(L&T) 직원인 자프라카시 라이르(35)는 “상대적 희소성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다.”고 털어놨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인도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한국정부가 한국어 보급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한참 대화의 꽃이 무르익어가고 있는데 불이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들 앞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방식은 이러했다. 무루티 교수가 그날 배울 분량을 큰 소리로 한 번 읽어준 다음 원어민의 발음을 카세트 테이프로 듣게 했다. 그리고 나서 한 소절씩 듣고 학생들이 따라 읽게 했다. 수업방식이나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 등 모든 것이 초보수준을 못 벗어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루티 교수와 학생들의 눈빛에서는 고급과정 이상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교실엔 우리 말이 번영의 꽃을 피울 것이다. 바로 옆 교실의 일본어 강좌엔 직장인 20명이 몰렸다. 일본 정부에서 파견해준 일본인 강사가 역시 일본 정부가 지원해준 일본어 교재로 열심히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어 교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2010년까지 최소 10개국어를 가르치는 남인도 최고의 글로벌 랭귀지 센터를 만들고 싶다.”며 한국 대사관의 지원을 요청한 로티 뱅크티시 대학 사무처장의 안경 너머로 무루티 교수와 학생들의 타오르는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siinjc@seoul.co.kr
  • [공기업]정권교체기… 잔여 임기에 울고 웃는 금융공기업 CEO

    [공기업]정권교체기… 잔여 임기에 울고 웃는 금융공기업 CEO

    10년만에 여야가 뒤바뀐 정권교체로 새정부의 금융 공기업 기관장 인사에 관심들이 쏠리고 있다. 새정부가 최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한데 이어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들도 통·폐합하고 일부는 민영화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관련 기관장들은 좌불안석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과거 선례를 보면 새정부가 출범하고 4∼5월쯤 공기업 기관장 인사가 단행되곤 했다.”면서 “임기는 3년이지만 과거 정부에서 임명돼 재임 2년을 넘긴 경우에는 인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달 초 한나라당 의원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기업 기관장 및 감사 등 임원 관련 자료를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28조 1항에 따르면 “공기업과 준 정부기관의 임기는 기관장 3년, 이사와 감사는 2년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윤용로(사진 왼쪽) 기업은행장은 지난해 12월, 박대동 예보사장과 이철휘(오른쪽) 캠코사장은 이달 취임했다. 시장에서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데 새정부가 들어섰다고 교체를 시도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만 캠코의 이 사장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용될 가능성도 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금융 공기업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주택금융공사, 예금보험공사, 기술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한국투자공사(KIC)와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이다. 현재 임기 2년을 넘긴 기관장은 산업은행 총재,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 3명이다. 김창록(사진 왼쪽)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 2005년 11월에 금융감독원 부원장에서 자리를 옮겨왔다. 김 총재는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과 돈독한 친분으로 지난해 ‘신정아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2005년 7월에 부임한 한이헌(오른쪽) 기보 이사장도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김규복 신보 이사장도 2005년 7월에 임명됐다. 노무현 정권과의 친소관계를 떠나 모두 임기를 2년 넘겨 물갈이가 단행될 경우 1순위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은 넘고 2년은 미달인 경우다. 금감위 부위원장 출신의 양천식(사진 왼쪽) 수출입은행장과 ‘국부펀드’ 관리자로 새정부가 중요한 기관으로 손꼽고 있는 KIC 홍석주(오른쪽) 사장이 2006년 9월에 임명됐다. 민영화에 속도가 붙을 우리금융지주의 박병원 회장과 우리은행의 박해춘 행장이 지난해 3월에 취임했다. 새정부가 민영화하겠다고 밝힌 주택금융공사 유재한 사장도 같은 시기에 임명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가 관치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책은행을 제외하고는 은행장 인선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 (32) ‘작심 30년’ 계획 세우기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 (32) ‘작심 30년’ 계획 세우기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31일, 그리고 첫날인 1월1일은 물리적 특성으로 보면 그리 큰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은 24시간에 같은 해가 뜨고 지며,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의 일상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매우 다른 날입니다. 대다수 사람에게 12월31일은 한해를 결산하고 반성하며 마무리하는 날입니다.1월1일은 희망찬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날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12월31일 신년 계획을 세우고,1월1일 지나간 해를 반성한다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사람은 왜 동일한 날인데도 다르게 행동하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할까요. 그 이유는 시간의 방향성 때문입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릅니다. 시간의 일방향성(一方向性)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고 사람은 그 법칙에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때문에 과거의 성공 및 실패와 그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때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미래 계획이 수립됩니다. ●시간조망이 긴 사람이 되자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한해의 마지막 날 반성을 하고 새해 첫날 근사한 계획을 세우는데도 불구하고 왜 새해의 마지막 날에는 또 다시 작심 3일의 후회와 회한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조망이 짧기 때문입니다. 시간조망이란 과거를 돌아볼 때 얼마까지 되돌아 볼 수 있는지, 미래를 내다볼 때 얼마까지 볼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조망이 긴 사람은 현재를 기점으로 해서 먼 과거와 먼 미래를 봅니다. 시간조망이 짧은 사람은 신년계획을 세울 때도 가까운 과거와 가까운 미래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만일 시간 조망이 한 달이라면 한 달 이전의 성공이나 실패는 미래 계획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미래 계획 역시 한 달 이상은 내다보지 못하고 수립합니다. 당연히 동일한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증가하겠지요. 따라서 시간 조망이 10년인 사람과 한 달인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하루를 살아도 실제로는 엄청나게 다른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시간 조망이 길게 되면 신년계획은 한해 계획이 아니라 인생 전체의 계획이 됩니다. 동시에 그 계획을 일상적인 삶에서 실천하는 일도 용이해집니다. 긴 시간 조망과 그 시간 조망에 따른 하루 계획을 세우고 매일매일 실천하는 방법을 찾아내 비루한 일상을 성공적인 삶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의 방법을 부모님과 아이들이 배워서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 17명 가운데 15번째로 태어나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나 미국을 대표하는 발명가이자, 정치가, 외교관이 된 벤저민 프랭클린입니다. 프랭클린은 평생 지켜야 할 13가지 미덕을 결정하고 50년 동안 매일 이 미덕에 걸맞은 계획을 세우고 반성했습니다. 긴 시간 조망을 반영한 주간 점검표가 그림 1에 제시되어 있습니다.13가지 미덕 가운데 그날 잘 지킨 것은 동그라미로, 보통은 세모로, 지키지 못한 것은 가위표로 표시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가위표가 많은 항목은 그 다음 주에 중점적으로 실천해야 할 미덕으로 가려내 따로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미덕을 참고로 해서 계획표를 작성할 때 주의할 점은 점검표와는 달리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실천하기에 버겁지 않은 현실적인 항목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절제라는 미덕의 계획표는 부모님의 경우 아이들에게 화내기 전에 3분 참기, 자녀의 경우 하루에 TV 30분 보기 등으로 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한 52가지 미덕 1700년대 프랭클린이 인생계획을 위해 13가지 미덕을 골랐다면,1970년대 북미의 캐벌린 포포프(Linda Kavelin Popov)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52가지 미덕을 골랐습니다. 이 미덕은 세계 가정의 해인 1993년 유엔사무국으로부터 모든 문화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전형이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52가지 미덕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고 칭찬할 수 있다면(미덕은 칭찬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아이들의 시간조망이 조금씩 길어질 것이고, 길어진 시간조망은 52가지 미덕을 더욱 잘 실천하게 하는 선순환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작심 3일이 작심 3개월이 되고 작심 3개월은 작심 30년을 가져와 주·객관적으로 행복한 삶이 부모님과 아이 앞에 펼쳐지게 될 겁니다.
  • 새해 금연 작·심·한·달

    새해 초 금연결심으로 담배 판매량이 줄어들지만 이는 한달을 넘기지 못하는 ‘반짝 감소 효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GS25는 이달 1∼6일 전국 2900여개 점포를 대상으로 담배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판매량이 전달 같은 기간보다 8.7% 줄었다고 7일 밝혔다.2006년 동기(1월 1∼6일)의 경우 전달 대비 7.0% 줄었다. 지난해에는 전달보다 8.1% 감소하는 등 하락폭이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금연결심은 한달을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소하던 담배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 달 단위로 매출을 살펴 보면 2006년 1월에는 매출이 전달 대비 3% 줄었다. 하지만 2월에는 거꾸로 전달 대비 3% 늘었다.2007년 1월 한 달도 전달 대비 매출이 3.5% 줄었지만 다음달인 2월에는 전달 대비 2.2% 증가했다. 한편 GS25에서 판매하는 금연초는 이달 1∼6일 매출이 전월 동기보다 7배 이상, 은단 제품은 36.4%, 껌은 15.6% 늘어나는 등 금연보조 상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가자! 베이징] (5)탁구

    ‘유승민이 탁구 사상 첫 올림픽 2연패의 신화를 쓸까.’ 중국의 만리장성에 막혀 번번이 금메달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탁구.16년 만에 유승민(26·삼성생명)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단식에서 그렇게 두들겨도 꿈쩍도 안 했던 중국의 왕하오(25·세계 랭킹 1위)를 무너뜨리고 금메달을 따냈다. 탁구는 베이징대회에서 또 다른 신화를 쓰겠다며 새해를 맞았다. 유승민은 “한 번 했던 일을 두 번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며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2연패 각오를 다졌다. 남녀 대표팀 총감독을 맡은 정현숙(56) 단양군청 감독은 “중국에 맞설 나라는 한국뿐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과를 이뤘다. 우리는 저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남녀 3명씩 출전하는 탁구는 단식과 단체전이 열린다. 정 총감독은 “강한 모습을 보였던 복식 대신 단체전이 생겨 불리해졌다. 남자는 세계랭킹 2위여서 중국과 맞대결 없이 4강 진입이 가능하지만 여자는 5위여서 4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 단식에선 역시 ‘칼날 드라이브’ 유승민(8위)이 금빛 희망. 유승민은 아테네 금메달 이후 목표가 사라진 탓인지 부진의 늪에 깊게 빠졌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마린(28·2위), 왕리친(30·3위·이상 중국)을 누르며 상승세를 탔다. 남자 단체전도 오상은(30·KT&G·9위),‘수비 달인’ 주세혁(28·삼성생명·12위) 등의 기량이 뛰어나 해볼 만하다. 남자 대표팀을 이끄는 서상길(58) KT&G 감독은 “유승민 오상은 등의 기량은 세계 최정상이다. 체력만 뒷받침되면 중국과 해볼 만하다.”면서 “결승에 올라가면 중국은 쫓기는 입장이다. 비슷한 경기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장거리 달리기 등을 통해 체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여자는 박미영(27·삼성생명·27위)의 상승세가 주목된다.‘맏언니’ 김경아(31·대한항공)의 존재감과 조화를 이뤄 상승 효과를 낼 전망이다.여자팀 사령탑에 오른 윤길중(50) 현대시멘트 감독은 “김경아 박미영 등 수비수들의 연속 공격이 약하고, 이은희 등 공격수들은 랠리를 길게 하는 지구전에서 중국에 밀린다. 이것만 보완한다면 경쟁력이 생긴다. 전력이 부족하지만 남은 기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길중 감독은 “6월 랭킹으로 단체전 나라별 랭킹을 정한다. 앞으로 9개 대회가 남았다.4위인 일본을 밀어내고 4강 시드를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다만 천영석 대한탁구협회장의 독선적인 협회 운영에 반발, 지난달 유남규·현정화 남녀 감독이 물러난 게 걸린다. 간판 유승민 김경아 등이 동조하며 지난달 20∼30일 열린 일본 전지훈련에 불참하면서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얼마나 빨리 이를 봉합, 금메달을 향한 대장정에 모두가 힘을 모아줄지가 관건이다. 대표팀은 22일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본격적인 담금질에 돌입할 예정이다.김영중기자jeunesse@seoul.co.kr
  • [국악인] 전통예술명가의 후예 박환영 교수

    [국악인] 전통예술명가의 후예 박환영 교수

    부산대학교 박환영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의 예능보유자 박병천의 아들이다. 문화관광부가 박병천을 중심한 일가를 전통예술명가로 지정했으니까 자연 박환영은 그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박병천 일가는 진도씻김굿만 잘하는 줄 알고 있는데 실은 대금산조를 창시한 박종기(1880∼1947)가 바로 박병천의 종조부이고 지금 박환영이 대금을 전공하고 있으니까 대금산조의 명문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전국적으로 보급된 진도북춤도 박병천에 의해 만들어졌고 진도 상여소리나 진도농악분야에서도 박병천은 최고의 지도자로 또는 출연자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런데 박환영 역시 어려서 진도농악의 상쇠로 크게 활동했고 지금은 대금정악과 대금산조 그리고 진도씻김굿의 이수자로 폭 넓게 활동하고 있으니 이 집안이야말로 진도가 자랑으로 여기고 문광부가 전통예술명가로 지정할 만한 명문가이다. 박환영은 1957년 진도에서 태어났고 진도 지산 초등학교, 진도 지산 중학교, 진도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진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매 맞으면서 장구를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지도하는 진도실업고등학교 농악부에서 상쇠로 활동했다. 그 때까지는 아버지의 음악을 배우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장래에 음악가가 되겠다는 특별한 뜻도 없었고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도 따로 하지 않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와서 이생강 선생에게 대금산조를 1년쯤 배우고 나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육군본부군악대에서 복무하게 된 것이 음악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진도에서 장구를 배우고 장단을 칠 때에는 그 장단이 중모리인지 중중모리인지 장단의 이름도 모르고 그냥 상여소리 장단도 치고 이런 저런 소리의 장단을 치는 식이었다. 그런데 군악대에 있으면서 정악이라는 음악이 엄청나게 많고 국악에 악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재대한 다음 대학의 국악과로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알아봤으나 이미 대학입학 자격고사에 해당하는 학력고사가 끝난 다음이어서 당장 진학할 학교가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추계예술학교의 입학요강이 신문에 났는데 학력고사와 무관하게 진학할 수 있고 국악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추계예술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군대에 갔다 온 후 처음으로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게 된 박환영은 무엇보다 정악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국립국악원에 들어가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정악대금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등교하고 별을 보고 하교할 정도로 매일 대금을 열심히 연습했는데 4학년 올라가면서는 본인의 대금실력을 한 번 테스트해볼 기회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협연자 신청을 해서 협연을 하게 되었는데 정악대금으로 연주하는 난이도가 아주 높다는 이상규 작곡의 ‘대바람소리’를 연주하겠다고 했다. 정악대금을 잡은지 3년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험산준령을 넘어본다는 각오로 도전한 협연은 1984년 4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118회 정기연주회로 최종민(필자)이 객원 지휘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제4회 신인국악연주회에서 독주했고 그 해에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립국악고등학교 출신 아니면서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박환영이 그 관례를 깨고 입단했다. 소년기를 민속악만 접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음악적 성격이 훨씬 달라 보이는 정악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근무했는데 6년 정도 되니까 국악전체를 공부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국악에는 민속악이나 정악도 있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창작음악도 있기 때문에 그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악(작곡전공)과로 진학했는데 국립국악원의 근무는 연주가 많아 대학원 공부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국립국악원을 그만두고 창작음악을 많이 연주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으로 직장을 옮겼다. 더러는 더 좋은 직장으로 알려져 있는 국악원을 그만두고 시립으로 옮긴 것에 대해 의아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본인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시립단원 생활도 10년을 하게 되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고 해서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서는 지휘자나 기획자 행정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휘공부였다. 함께 동아리 ‘오느름’활동을 하는 이용탁이나 함께 시립에 근무하는 이인원 등을 권해서 박은성 교수에게 지휘를 공부했다. 한 5년쯤 지휘이론도 배우고 지휘실기도 배웠지만 아직 지휘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적은 없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있다. 2001년에는 서울시립에서 다시 경기도립국악단 관악악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도자 역할을 하다가 2004년 9월 부산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학교수 생활은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학교 일에 충실하고 있다. 대금전공학생들 실기를 지도하고 장구반주법도 가르치고 있다. 교육대학원 학생들에게는 교사에게 필요한 국악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다. 한양대학교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과 1남 1녀를 둔 박환영 교수는 아들 명규를 국립국악고등학교에 보내 대금을 전공하게 했고 중학교1학년이 딸은 해금을 전공하게 했으니까 온 가족이 음악을 하는 음악가족이다. 자녀들에게 음악을 시키는 이유도 있다. 그들이 자란 환경이 온통 음악으로 둘러싸인 환경이어서 늘 음악을 듣고 자랐고 음악을 할 경우 음악은 자기성취감을 갖게 하기 때문에 비뚤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도 즐겁게 음악을 하고 또 잘 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박환영은 전통예술명가의 후예답게 가문의 음악인 대금음악과 진도씻김굿 음악을 충분히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더 발전시켜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교수로 실력 있는 선생님 역할을 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행사가 있으면 언제나 아버지 박병천을 도와 동생인 성훈 누이동생 미옥, 향옥, 현옥과 함께 씻김굿을 멋들어지게 한다. 대금연주자나 장구반주자로 큰 무대에 자주 서는데 국내·외의 연주를 따지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음반을 낸 수도 상당히 많은데 장구반주자로 나온 것이 많고 본인의 독집음반(박환영 대금연주-박종기의 예술세계)도 냈다. 군복무시절부터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성취하며 살아 온 박환영의 음악인생은 분명 크게 성공하고 있는 삶이다. 뚜렷한 직장이나 행복한 가정 그리고 음악명문가의 배경 등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것을 다 가진 음악가이다. 그런 박환영이 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종증조부 되는 대금의 달인이며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를 내용으로 하는 음악극이나 창극을 만들어 보고 싶고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 재능 있는 후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창조적인 일에 대한 꿈과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이런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기에 박환영의 성취하고 성취하는 삶에 큰 박수를 보낸다.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한국의 대표기업] (8) 현대중공업

    [한국의 대표기업] (8)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정문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큼지막한 문구가 있다.‘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라이벌 일본을 따돌린 것은 2003년이다. 이후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 들어서도 지난달 말까지 3080만CGT의 선박을 수주했다. 전세계 선박 수주량의 3분의1을 훌쩍 넘는다.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이 수주잔량으로 뽑은 ‘세계 조선소 톱10’ 순위에서도 우리나라는 1등에서 5등까지를 휩쓸고 있다. 3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연간 선박 건조량은 50만t에 불과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1%도 채 안 됐다.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조선강국 코리아’로 도약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조선업계의 맏형 현대중공업이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세계 최초로 1만TEU급 컨테이너선 수주 현대가 울산에 조선소를 짓겠다며 나선 것은 1972년이었다. 아무리 현대라도 기술력과 자금 부족으로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입방아가 많았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은 “5만t급 선박만 만들어도 대성공”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영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도면 한 장 달랑 들고 세계를 누볐다. 그 결과, 마침내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해냈다. 정 명예회장 특유의 “해봤어?”가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한사코 망설이던 영국의 은행 관계자에게 정 명예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는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해봤어?’ 정신의 원조답게 현대중공업은 유난히 무에서 유를 많이 만들어냈다.1994년 ‘조선기술의 꽃’으로 불리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을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1998년에는 척당 가격이 10억달러에 이르는 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FPSO)를 역시 국내 최초로 건조했다. 2004년에는 ‘꿈의 컨테이너선’이라 불리는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세계 최초로 수주했다.‘배는 도크에서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도 이 해다. 땅에서 배를 만들어 진수시키는 육상 건조공법을 세계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순익 1조클럽 가입…‘실적 대풍’ 현대중공업이 지금까지 건조한 선박은 1300척이 넘는다. 수주잔량으로도 약 320척을 갖고 있다. 전세계 선박 건조시장의 15%를 차지한다.25년째 부동의 세계 1위다.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선박 엔진 분야에서도 세계 1등이다. 세계 물량의 35%를 제작한다. 고급 선박인 크루즈선 건조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선박뿐 아니라 생산품목도 굴착기(건설장비), 변압기(중전기기), 로봇 등으로 다양화, 종합 중공업회사로 자리잡았다.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세계 4위,7위다. 올해는 특히 실적이 더 좋다.9월말까지 11조 2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순이익 1조클럽에도 가입했다.9월말까지 1조 2232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순이익 1조원 시대의 첫 감격을 맛봤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목표치인 15조 2000억원의 매출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는 고국서’ 군산·울산 등에 수천억 투자 현대중공업은 2010년 매출 225억달러(20조여원)를 목표로 한다. 이에 맞춰 투자도 서두르고 있다. 한가지 눈에 띄는 특징은 ‘국내 투자’를 고집하는 점이다. 다른 조선소들이 “땅값과 인건비 감당이 안 된다.”며 중국 등 해외로 앞다퉈 나가는 것과 대조된다. 민계식 대표이사 부회장은 “(여건이)힘들더라도 가급적 고국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내 투자 검토를 지시했다. 전북 군산(150만㎡ 부지)에 3000억원을 들여 선박블록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나, 울산에 1300억원을 들여 열번째 도크를 짓기로 한 것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결정이다. 울산 엔진공장에도 2600억원을 추가 투자, 생산능력을 늘리기로 했다. 전남 영암에는 핀란드 바르질라사와 함께 680억원을 들여 LNG선용 엔진공장을 짓는다.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미래 먹거리에도 눈돌렸다. 충북 음성에 기존 생산 규모의 2배가 넘는 60㎿급 태양광 발전설비 공장을 설립, 지난 9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대우버스와 공동으로 하이브리드 버스도 개발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원칙과 복지로 세계 1위 이끌어 지난해 가을 어느 날, 현대중공업의 주요 경영진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도 참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정 의원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신문기사를 보니 정년을 1년 연장했대요.” 그해 7월 현대중공업 노사는 정년을 57세에서 58세로 늘리기로 합의했었다. 경영진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임원의 얘기다.“‘당신이 보고 안했어?’하는 표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는데 참으로 무참했습니다. 다들 누가 (보고)했겠지 했던 거지요.” 이 임원은 “정 의원이 워낙 자율경영을 강조하고 일일이 간섭하지 않다 보니 빚어진 일”이라고 당시를 상기했다.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을 맡은 것은 서른한살 때다.1982년 5월19일,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현대중공업 사장에 여섯째아들을 앉히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정 명예회장은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것”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젊은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세계 최고를 요구했다. 동시에 사내 복지수준도 최고로 바꿔놓았다.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이듬해인 1983년, 현대중공업은 선박 수주·건조량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따라잡고 세계 1위 조선소로 등극했다. 해마다 몸살을 앓던 ‘골리앗 농성’은 무노동 무임금의 철저한 원리원칙과 최고를 자랑하는 복지 수준 앞에서 13년 무분규로 바뀌어 나갔다. 지금도 정 의원은 노조를 만날 때마다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우리 모두가 같이 먹는)우물에 침은 뱉지 마라.”라고 강조한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 정 의원은 한때 ‘고문’ 직함으로 회사 경영에 간여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내놓았다. 오로지 개인 대주주 자격으로 회사의 핵심경영 사안만 보고받는다.5년 전 대선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손을 끝까지 잡은 그의 행보에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기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 40명 “기술은 짧은 시간에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착오를 겪은 뒤 포기하고 싶은 마지막 순간에 얻는 값진 선물입니다.” 용접·금속재료·주조 기능장에 이어 최근 배관 기능장에도 합격해 기능장 4관왕에 오른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재료연구실 허태영(49) 기사의 말이다. 기능장 시험은 경력 11년차 이상만 응시할 수 있는 국가기술자격시험이다. 현대중공업에는 허씨와 같은 기능장이 542명이나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기능장 자격증만 643개나 된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단연 가장 많다. 여기에는 회사 차원의 기술인력 양성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기술교육원’을 설립했다. 절단, 용접, 도장 등 지금까지 배출한 기술인력이 11만여명이다. 조선업계의 기술사관학교로 불린다.1999년에는 현중기술대학도 설립, 조선·기계전기공학 등 해마다 100여명의 전문인력을 배출한다. 아마추어 기술 달인을 뽑는 ‘사내기능경진대회’의 명성도 자자하다. 여기서 뽑히면 국제기능올림픽 입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실제 지난달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제39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현대중공업 소속 참가선수들은 9명 모두 메달을 땄다. 우리나라가 4년만에 종합우승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현대중공업은 이 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리스트 40명을 포함해 총 77명의 입상자를 냈다. 배관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이영신(21) 기사는 “2년 가까이 기능훈련팀에서 맹훈련을 받은 덕분”이라며 공을 회사에 돌렸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부인 김윤옥은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부인 김윤옥은

    20대 후반부터 ‘사모님’ 소리를 들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수도 서울의 시장인 남편에게 매서운 조언도 마다하지 않아 ‘Mrs.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화통하되 소탈한 성격. 그러나 위기가 오면 누구보다 강해진다. 간염에 걸려 고생하는 남편에게 먹이려고 한탄강에서 맨손으로 야생 장어까지 잡았다는 그녀가 이제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이명박 당선자의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는 별명이 많다. 한나라당 당직자들 사이에선 ‘사모님’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단순한 사모님은 아닌 것 같다. 이 당선자를 가까이서 지켜 보며 응원하지만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아서다. 이 당선자에게 수시로 “목소리 톤이 좀 높던데 낮추시면 좋겠어요. 시장님, 파이팅”이라는 식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자주 보내는 편이다. 가까운 참모도 쉽게 하기 힘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적 조언도 자주 해 측근들조차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얼마 전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놓고 당에 내분이 있었다. 그때 ‘사퇴’쪽으로 가닥을 잡은 사람이 바로 김 여사다. 그가 “주변의 여성 유권자들이 이 최고위원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전하자, 잔류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이 당선자도 생각을 바꿨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 버스전용차선을 도입한 직후 여론이 악화돼 참모들 사이에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 많았을 때 “처음이니 모두 낯설어 그렇다. 조금 기다려 보자.”고 다독인 것도 김 여사였다. 그렇다고 김 여사가 미국의 ‘힐러리’처럼 남편보다 앞서가는 활발한 내조자는 아니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평소엔 ‘그림자 내조’를 했단다. 바쁜 이 당선자가 직접 못 가는 곳을 구석구석 챙겼다. 내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불심(佛心)에 외면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 틈만 나면 사찰을 찾고 ‘연화심’이라는 법명까지 얻었다. 당 경선 기간에 캠프 사무실에 나와 유권자에게 수백통씩 전화를 돌리는 저력도 보였다. 이 당선자는 김 여사의 성격을 가리켜 “원래가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걱정을 안 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낙천적인 성격이라 빡빡한 바깥 일정을 소화하는 이 당선자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얘기다. 그는 유머를 즐긴다. 이 당선자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에 “여기 데려와 봐라. 바쁜데 일 좀 시키게.”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목이 안 좋은 남편을 위해 생강·도라지 달인 물을 자주 마시게 하고, 모과차와 배즙을 챙긴다. 아침마다 사과 1/4쪽과 부추, 샐러리로 녹즙을 만들어 건넨다. 이화여대 보건교육과 출신으로 이 당선자의 건강은 무조건 직접 챙긴다는 철칙을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1000만원이 훌쩍 넘는 명품 핸드백 논란과 자식 교육을 위한답시고 몇 차례 위장전입했던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가 하루는 셋째사위 조현범씨에게 물었다.“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사위는 “정치인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정치인은 빛이라도 나지, 그 뒷수발하는 정치인 아내가 제일 힘든 직업이라네.”라고 말했다. 고된 정치인 아내 자리에 이제 청와대 안살림까지 맡아 어떤 활동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선택 2007 D-11] “돈으로 주권 훔치려는 매수행위”

    대통합민주신당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은 7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재산환원과 관련해 냉소적인 반응을 쏟아냈다.‘국민을 상대로 한 최후의 뒷거래’,‘더러운 돈으로 주권을 훔치려는 매수행위’ 등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통합신당 김현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후보의 재산은 자녀를 위장취업시켜 탈세하고 성매매업소를 임대해서 얻은 돈”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더러운 돈으로 국민을 매수하려 해서는 안 된다. 위장취업과 탈세를 밥 먹듯 한 사람이 갑자기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이냐.”고 각을 세웠다. 그는 이어 “재산을 내놓으려거든 차명으로 숨겨 둔 2000억원의 다스와 도곡동 땅 등 모든 걸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후보측도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이혜연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명박 후보가 그동안 하도 거짓말과 위장에 능하고 가짜와 짝퉁의 달인이라 노파심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후보는 재산환원을 말하기에 앞서 본인의 실제 재산규모가 얼마인지 기타 재산 은닉문제 등에 대해 소상한 설명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2국] 박영훈,이세돌에 반격개시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2국] 박영훈,이세돌에 반격개시

    제4보(48∼58) 5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12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결승5번기 3국에서 박영훈 9단이 이세돌 9단에게 흑불계승을 거두었다. 지난 1,2국을 힘없이 내주며 막판의 위기에 몰렸던 박영훈 9단은 수읽기의 달인 이세돌 9단을 상대로 과감한 사석작전을 성공시켜 모처럼만에 쾌승을 이끌어냈다. 이날 패점을 기록한 이세돌 9단은 물가정보배, 강원랜드배, 국수전 등에서 이어온 도전기 무패행진을 9연승으로 마감했다. 전보에서 대바꿔치기를 감행했던 김지석 4단은 백48로 모자를 씌우며 공격의 포문을 연다. 흑49의 응수타진에 백이 밑으로 내려빠진 것은 정수. 백이 이곳을 두지 않으면 반대로 흑이 50을 차지하는 순간 대마의 안형이 풍부해진다. 흑51로 가르고 나온 것이 날카로운 행마.가로 끊는 단점을 노리며 중앙으로 진출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숙고를 하던 김지석 4단은 백52,54라는 실전적인 수법을 들고 나오며 흑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만일 흑이 <참고도1> 흑1로 젖힌다면 불문곡직하고 2로 끊겠다는 뜻이다. 물론 흑3의 단수한방이 아프지만 백6까지의 형태는 오히려 흑이 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흑이 <참고도2> 흑1,3으로 나오는 것은 빈삼각을 둔 꼴이라 선뜻 내키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김진우 3단은 일단 흑55로 방향을 전환한 것인데 백56, 흑57을 교환한 뒤 백58로 공격을 계속하니 흑이 약간 답답해 보인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공직 인맥 열전] (13) 산업자원부(중)

    [공직 인맥 열전] (13) 산업자원부(중)

    산업자원부 국장단은 행정고시 25회 출신이 주축이다. 장·차관을 비롯해 서울고 출신도 유난히 많다. 한때 뚜렷했던 ‘산업통’과 ‘자원통’의 구분은 희미해졌다.1993년 김철수 장관이 “화학적 융합이 필요하다.”며 인사를 뒤섞었기 때문이다. 직함도 관가에서는 낯선 본부장·팀장이다. 기업 마인드를 도입한 산물이다. ●‘산업통´ ‘자원통´ 구분 희미해져 1급(차관보) 승진의 0순위 자리로 꼽히는 산업정책관은 행시 25회의 안현호 국장이 맡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큰 틀을 결정하는 부서다. 노사·환경문제까지 얽혀 있어 뚝심이 요구된다. 선이 굵은 안 국장은 그래서 적임자로 꼽힌다.‘균형발전’의 초석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2000년 입지환경과장 시절, 전국 지도를 들고 다니며 균형발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 주위에 적도 있다. 강력한 라이벌은 행시 동기인 조석 에너지정책기획관이다. 종전까지는 조 국장이 다소 앞서왔으나 안 국장이 수석국장을 꿰차며 앞으로 치고 나가 승부가 흥미진진해졌다. 조정력이 강점인 조 국장은 갈등을 잘 처리한다. 경주 방폐장도 무난하게 조정했다. 이름처럼 ‘조석(밤낮)으로’ 열심이다. 가끔 열성이 지나쳐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안철식 에너지산업본부장과 진홍 지역산업균형발전기획관도 25회의 빼놓을 수 없는 핵심주자들이다. 안 국장은 전형적인 ‘보스형’이다. 민원이 많은 전력·가스·석탄 산업을 맡고 있지만 그가 맡은 뒤로 잡음이 사라졌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진 국장은 여·야 모두가 반대한 참여정부의 2단계 균형발전을 관철시키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 일을 몰아서 하는데도, 새는 틈이 별로 없다. 그래서 ‘벼락치기의 달인’으로 불린다. 국장 서열 ‘넘버3’인 김경식 산업기술정책관은 ‘젠틀맨’(신사)이라는 별명답게 돈을 주무르는 데도 잡음이 별로 없다. 연구개발(R&D) 기금을 배정한다. 사무실이 늘 대학 총장들로 붐비는 이유다. 결단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자동차·조선·철강 등 ‘굴뚝주’를 담당하는 최평락 기간제조산업본부장과 전자·바이오 등 ‘첨단주’를 관리하는 김호원 미래생활산업본부장은 23회 동기다. 최 국장의 성실함은 정평나 있다. 본부 과장 경력이 짧은 게 흠이다. 김 국장은 아이디어 뱅크다. 때로 정책결정이 다소 늦다는 지적도 있다. ●안현호 정책관·조석 기획관 ‘라이벌´ 김정관 에너지자원개발본부장은 안철식 국장과 더불어 산자부에 몇 남지 않은 ‘오리지널 자원맨’이다. 해외 유전개발의 주역이다. 순간 판단력이 뛰어난 반면, 대외활동에 다소 소극적인 편이다. 김동수 감사관은 일처리가 깔끔하면서도 성격이 원만해 위아래 평이 두루 좋다. 대표적인 ‘KS’(경기고-서울대)다. 실력에 비해 관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평가다. 김경원 전기위원회 사무국장도 다채로운 경력과 달리 외곽에 머물고 있다. 산자부의 ‘입’인 정재훈 홍보관리관은 관가의 핵심요직으로 불리는 ‘공(공보관)·비(비서관)·총(총무과장)’ 가운데 두 가지(공·총)를 경험했다. 관가 사정에 밝고 큰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파견 나가 있는 김재홍 국장과 더불어 26회에서 가장 먼저 국장을 달았다. 오정규 무역투자진흥관과 홍지인 통상협력기획관은 부처교류 차원에서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에서 각각 옮겨왔다.‘거쳐간다.’는 생각 없이 친정 부처처럼 열심히 해 내부의 평이 좋다. 박성수 무역조사실장도 ‘초스피드 착근’에 성공한 외인부대다. 올 1월 기업체 임원(SK네크웍스)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개방형 공모를 뚫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기축통화 ‘달러’가 추락한다

    기축통화 ‘달러’가 추락한다

    “미 달러 대신 스위스 프랑이나 일본 엔, 중국 위안화로 갈아 타야 할 시점이다.” 약(弱)달러의 장기화속에 달러 자산을 빨리 팔아버리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월가의 ‘큰손’ 짐 로저스도 약달러 시대의 대처법으로 강조하고 나섰다. 스스로도 “달러로 들어간 내 투자금을 몇 주, 아니면 늦어도 몇달안에 모두 빼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대표적인 헤지펀드인 ‘퀀텀 펀드’를 조지 소로스와 함께 조성한 투자의 달인이다. 미국 달러화는 지난 2002년 이후 6년째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저금리 정책이 달러값 추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FRB는 지난 9,10월 두달새 정책금리를 무려 0.75%포인트나 내렸다.4·4분기 미 경제성장이 1%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기침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 추가 금리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달러값 추가하락은 피할 수 없다. 기축 통화(국제결제의 기본통화)로서의 달러 위상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중동 국가들이 오일 머니를 유로로 대체하려 하고 중국과 일본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 추가 하락에 대비, 유로를 사모으고 있는 것도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7일엔 청시웨이 중국 전인대 부의장이 “1조 43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유로 등 강한 통화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날 유로당 달러는 사상 최고치인 1.47달러까지 치솟으며 달러값이 크게 추락했다. 달러의 흔들리는 위상을 상징하는 작은 실례중 하나였다. 짐 로저스는 이처럼 최근 달러는 빠르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처분하라고 충고한다. 대신 농산물 등 원자재로 눈을 돌리고 ‘차이나 붐’을 적극 활용할 때라고 지적했다.12일 싱가포르에서 홍콩으로 연결된 로이터와의 화상회견에서다. 로저스는 특히 “달러에서 빼낸 자금을 원자재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원자재 중에서도 농산물 특히 현재 최고가에서 80%가량 값이 떨어진 설탕과 면화가 유망하다.”고 꼽는다. 장기적으로 또 다른 유망 품목으로는 원유를 들었다. 원유는 새롭게 공급이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수요는 언제나 꾸준히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200달러로 못갈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약 달러와 관련해서는 “달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극도로 비관적인 만큼 조만간 반등은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스위스 프랑, 엔, 위안화가 투자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속에 달러 약세 현상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달러화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뛰어올라 세계 경제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은 약(弱)달러 현상은 한동안 지속되는 만큼 달러 자산을 처분하고 엔이나 위안화 등에 대신 투자할 것을 권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정부는 4·4분기부터 경제침체가 우려되는 만큼 인위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고민에 빠져 있다.
  • 내일~13일 전주 천년의 맛 잔치

    내일~13일 전주 천년의 맛 잔치

    “맛의 천국 전주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맛의 대향연이 시작됩니다.” 전북 전주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맛과 멋’의 고향이다.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주의 대표 음식. 전국 어느 곳에서나 ‘전주’라는 간판을 내걸면 그 음식점의 신뢰도가 높아질 만큼 전주는 맛의 본향이다.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맛있게 먹은 한끼의 식사, 그 맛있는 추억의 한 가운데 ‘전주의 맛’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맛의 고장’을 자임하는 전주시가 ‘전주 천년의 맛 잔치’를 연다. ●오감 만족 맛잔치 올해 처음 열리는 이번 한마당 잔치는 전주 음식의 브랜드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오감 만족 문화관광축제’이다. 축제를 통해 한국 음식의 기준을 세우고 한국의 맛을 세계에 전한다는 야심찬 구상도 하고 있다.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 동안 한옥마을과 지정음식점 등 전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천년의 맛 잔치는 타 지역에서 열리는 음식축제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메인 행사장에서 음식을 팔지 않는다. 천막을 치고 임시 주방에서 음식을 제공할 경우 위생적으로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전주 음식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행사장인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는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전주시내 190여개 유명 음식점을 안내하고 전주의 전통과 맛의 우수성을 소개한다. 축제기간 전주를 찾아온 외지 관광객들이 전주의 참맛과 후덕한 인심을 제공하는 음식점을 직접 방문토록 함으로써 맛집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유명음식점은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 백반, 전주막걸리, 탕·찌개, 면·분식, 구이류, 중화요리, 일식, 경양식 등 12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맛을 체험하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유명 음식점마다 특징을 설명해주고 가는 길까지 안내해 준다. 맛뿐만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인 만큼 정갈한 손맛과 함께 신명나는 우리 가락도 함께 제공된다. 궁, 양반가, 호남각 등 10개 음식점에서는 판소리, 가야금 등 풍악을 즐기며 전라도 음식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음식 조리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은 전주 음식의 비법을 전수받는 체험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고궁, 성미당, 한벽루, 동락원 등에서는 비빔밥 만들기 체험행사가 열린다. 비빔밥 재료 준비에서부터 양념 만들기까지 맛의 비결을 전수해준다. ●부대행사도 풍성 이번 맛 잔치를 위해 전주시내 음식점들은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한정식집 16곳에서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고 깊은 맛이 으뜸인 양반상을 받을 수 있다. 통상 30여가지의 전통 요리가 상에 오른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비빔밥과 돌솥밥집 12곳도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전주 비빔밥은 업소마다 특색이 있어 약간씩 맛이 다르다. 그러나 전통적인 비빔밥 맛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콩나물국밥집 5곳, 서민들이 즐겨 찾는 한식백반집 27곳은 물론 탕과 찌개를 잘하는 집 41곳까지 전주시내 유명 음식점들이 이번 축제에 총출동한다. 어느 음식점을 가든 반찬 가지수가 많고 서비스도 좋아 외지인들은 입이 떡 벌어지기 일쑤다. 부대행사도 풍성하다. 경기전 앞에서는 양념을 아끼지 않은 김치와 젓갈류를 전시·판매한다. 공예품 전시관 주변에서는 전통한과 만들기, 전통엿 만들기, 짚풀공예, 윷놀이, 떡메치기 등 전통잔치마당을 선보인다. 화산체육관에서는 수타쇼, 피자도우쇼 등 조리달인열전이 열린다. 세계풍물체험, 음식영화상영, 전통옹기전시, 막걸리 시음회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중앙동 차이나거리 일대에서는 중국 춤공연, 태극권 시연, 중국의상 퍼레이드가 열리고 객사에서는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는 망궐례(望闕禮)가 재현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완산칠봉서 전통의 멋 느껴볼까 전주는 먹거리뿐 아니라 볼거리도 많은 전통도시이다. 먹거리 행사가 주로 열리는 경원동 일대 한옥촌에서는 옛 정취에 푹 빠져볼수 있다. 전주 명품관, 공예품 전시관, 최명희 문학관, 한방문화센터, 전통술박물관 등을 도보로 이동하며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한옥촌 인근 오목대, 이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 전주향교, 전동성당 등도 들러볼 만한 곳이다. 가을색이 완연한 전주천과 삼천을 따라 걷거나 화산공원, 완산칠봉 등에 올라 전주시 전경을 내려다 보는 것도 정겨운 전통도시의 깊은 맛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다. 덕진공원,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북대학교, 동물원 등이 인접해 있는 건지산 일대에서는 색깔 고운 단풍이 한창이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단독]교실에 갇힌 학생인권

    [단독]교실에 갇힌 학생인권

    중·고등학생 10명 중 8명이 두발 및 복장 규제와 소지품 검사, 교사 체벌 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학생 7명은 잠이 부족해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답해 입시 공부로 인한 고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제78회 학생의 날(3일)’을 맞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와 수도권학생생활연구회가 지난 10월 한달간 수도권 중·고등학교 학생 2059명을 대상으로 한 ‘학교생활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 인권’은 여전히 수준 미달인 것으로 조사됐다. ●“두발·복장규제, 달라진 것 없어” 학생들은 두발 규제와 소지품 검사에 대해 79.2%와 87.5%가 ‘불만’이라고 답했다.‘휴대전화 휴대 금지’와 ‘교사 체벌’에 대해서도 각각 86.8%와 73.1%가 반대 의사를 나타냈으며, 복장 규제에 대해 65.0%가 불만을 드러냈다. ‘학교 운영에 학생 의사가 반영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80.6%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매우 잘 반영된다.’는 1.7%에 불과했다. 이는 2005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의 두발 자유권은 기본권’이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가 여전히 두발·복장 규제를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 부천시 모 중학교 서모(14·여)양은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2주에 한 번 두발 검사를 하는데 적발되면 운동장에서 얼차려를 받고, 매를 맞는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정모(16)양도 “코트는 무릎을 덮지 않고, 모자가 달리지 않은 검은색만 허용하고 있어 한 겨울에 추위에 떨어야 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잠이 부족해 수업 집중 안돼” ‘잠이 부족해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의견이 73.1%,‘수업이 부담된다.’가 64.3%에 달해 입시 공부로 인해 학생들의 고충도 매우 큰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들의 정신적인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흡연, 음주 등 일탈행동이 줄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 학생이 66.4%나 됐다. 친구 및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62.4%와 69.5%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고교 평준화 정책을 중단하고,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늘려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가 67.0%로 ‘그렇다.(33.0%)’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학생들, 인권 문제 토론회 개최 서울 시내 10여개 고등학교의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 인권단체인 ‘미래’는 3일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나는 이런 대통령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단체 회원인 최재민(17·고척고 학생회장)군은 “학생들이 욕을 듣거나, 합당한 이유없이 체벌을 받을 때, 인권을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면서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학생들 스스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 차원에서 두발 자율화 권고를 한 뒤에도 인권위 상담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전화는 많이 걸려 온다.”면서 “권고는 강제력이 없어 학생들도 ‘인권이 있는 존재’라는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Local] 남원 국악 성지 문 열어

    판소리와 농악 등 국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악 성지가 1일 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서 문을 열었다. 남원은 동편제 판소리의 발상지이자 춘향가와 흥부가가 나온 무대로 국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다. 국악 성지는 7만여㎡에 판소리, 농악, 기악, 전통무용 등 4개 전시관에 400여점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됐다. 또 국악 체험장, 수련장을 비롯, 소리꾼들의 득음을 돕기 위해 동굴 모양으로 지어진 독공장(3개)도 마련됐다. 여기다 판소리의 가왕으로 불리는 송흥록 명창, 거문고의 달인 옥보고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도 있다. 남원시 관계자는 “국악 성지에서는 국악 대중화를 위해 일반인 국악체험과 예비 국악인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국악 정기공연과 경진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 [경기종합] 추성훈ㆍ데니스강 동영상 보기

    [경기종합] 추성훈ㆍ데니스강 동영상 보기

    주먹이 보이지 않았다. 고목처럼 쓰러진 ‘푸른 눈의 슈퍼 코리안’은 넋이 나갔다.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스튼을 잠재운 ‘팬텀펀치(유령의 주먹)’가 ‘풍운의 유도가’의 손에서 환생했다. ‘풍운아’ 추성훈(32·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07히어로스코리아대회 메인이벤트에서 데니스 강(30)을 실신 KO로 잠재웠다. 가슴 한켠에 응어리졌던 한(恨)를 풀어내기 위해서였을까? 맹수의 눈초리보다 더 매서웠다. 지난해 연말 사쿠라바 가즈시와 ‘K-1 다이너마이트대회’에서 보습 크림을 발라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한 뒤 10개월만에 밟아보는 히어로스 무대. 게다가 상대는 같은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는 ‘타격의 달인’ 데니스 강. 힘든 경기가 예상됐지만 추성훈은 타고난 파이터 기질을 단 한방의 펀치에 실어 폭발시켰다. 경기시작 1분 만에 원 투 스트레이트로 데니스 강의 안면을 피로 물들인 추성훈은 1라운드 4분44초께 전광석화같은 라이트 어퍼컷을 작렬했다. 주먹의 스피드가 빨라 팬들은 데니스 강이 제 풀에 쓰러지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전설의 복서’ 알리가 소니 리스튼과 리턴매치에서 작렬했던 ‘팬텀 펀치’가 떠올랐다. 추성훈은 이로써 10개월만의 복귀전을 멋진 KO승으로 장식하며 종합전적 10승1패(4KO)1무효경기로 히어로스 최고의 파이터임을 다시 입증했다. 추성훈에게 무너진 데니스 강은 종합전적 16승8패2무효경기를 기록했다.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31)은 13개월만에 마침내 사각의 링에서 포효했다. 지난해 9월 히카르도 모라예스(브라질)와 프라이드FC 데뷔전에서 충격적인 TKO패를 당한 뒤 와신상담하며 재기전을 준비했던 이태현은 히어로스 이적 데뷔전에서 일본의 베테랑 격투가 야먀모토 요시히사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1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유도왕’ 윤동식(35)도 히어로스 이적 후 3연승을 달렸다. 브라질의 강호 파비오 실바를 1라운드에서 필살기인 암바로 제압해 히어로스 최고의 그래플러다운 솜씨를 뽐냈다. ‘샤크’ 김민수(32)도 속사포같은 펀치로 일본이 자랑하는 베테랑 파이터 미노와 맨을 밀어붙여 1라운드 TKO 승을 거두고 종합격투기 전적 3승6패를 기록했다. 기사제휴 /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산마을 이야기]지리산-(3)경남 함양군 추성리 두지터

    [산마을 이야기]지리산-(3)경남 함양군 추성리 두지터

    올 연말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산행이 금지된 지리산 칠선계곡은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의 천불동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힌다. 지리산 최고의 원시림 ‘칠선’이 9년간 통제되면서 산행 들머리 추성리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어찌어찌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졸지에 범법자가 되어 과태료 징수라는 칼날을 맞고 있다. 지난 9월 칠선계곡 개방 유무에 대한 용역과업수행의 막바지 조사가 진행됐고, 오는 11월8일 최종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니 사뭇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의 유래에 대해선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편 ‘천왕봉 고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산속에 옛 성이 있는데 일명 추성(楸城)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한다. 의탄에서 5∼6리 떨어졌는데 우마가 갈 수 없는 곳이다.” 함양군 자료에는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가락국 양왕(구형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추성”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추성리 주위엔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했을 때 양왕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란처로 이용했다는 성터가 있다. 그 밖에 추성과 지명이 비슷한 ‘성안’ 마을과 양왕이 진을 쳤다는 ‘국(國)골’이 있다. 국골 옆의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고 두지터는 식량 창고로 이용되었단다. 추성리 비좁은 골목을 지나 장군목에 올라서면 산기슭에 포근히 둘러싸인 두지터와 칠선의 짙푸른 물줄기가 내려다보인다. 고도 500m 안팎의 두지터에는 현재 네 가구 여섯 명이 전부. 그 중 절반이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타지인 1호’로 들어온 문상희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차(茶)의 달인. 야생녹차는 물론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산열매로 차 만들기 작업에 열중이다. 그 밖의 집들은 호두농사, 민박, 양봉, 약초 채취 등을 생계로 삼는다. 울산이 고향인 김성언(41세)씨가 두지터 산골로 들어온 건 순전히 지리산이 좋아서였다.10여년 전 두지터로 들어온 김씨의 허정가(虛精家) 툇마루에선 초암릉과 두류능선이 처마에 내비친 햇살처럼 뚜렷하다. 두지터 주민이 되기 전까진 미친 듯이 지리산을 헤집고 다녔다던 김씨가 이곳에 들어와 제일 먼저 한 건 집수리. 허물어진 집을 손보는 데만도 반년이 걸렸는데, 모든 걸 지게로 지고 옮겨야 했기 때문이라고. 칠선이 자연휴식년제로 묶이면서 산행객들의 발길은 한없이 뜸해졌지만 김씨의 허정가는 산꾼들을 맞고 보내는 일로 주말이 분주하다. 민박을 해 돈을 벌려면 손님들이 훨씬 많아야 할 텐데도 그이는 두지터에 살아 좋은 점을 “사람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산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하며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칠선계곡 개방 여부 결정을 보름여 앞둔 두지터 주민 김씨의 마음은 오늘도 천왕봉의 단단한 어깨처럼 한결 같다. 두지터의 겨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작을 패고,LPG 가스와 쌀을 미리 사두고, 동치미를 포함한 김장도 담근다. 온 세상이 수북이 눈에 덮인 날, 아궁이 군불은 발갛게 달았고 굴뚝으로 매캐한 연기가 흩어지는 이른 겨울 풍경…. 가을은 황망히 떠나고 조급한 겨울은 그 모습 그대로 후드득 찾아올 것이다. ●교통과 숙식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추성리까지 군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칠선계곡 이정표를 보고 의탄을 지나면 광점동과 추성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두지터로 가려면 오른쪽 추성 방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약 25분간 걸어야 한다. 장군목까지 차량 이동이 가능하긴 한데 길이 좁고 오르막인데다 주차 공간도 넓지 않다. 글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시대 과학자는 대부분 중인 출신이었다. 양반 출신의 과학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관청이 자주 바뀌다 보니 평생 과학 연구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남병철·병길 같은 천문학자 집안 말고는, 중인 집안에서나 대대로 과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결혼도 자기들끼리 했고, 직장도 자기들끼리 소개하거나 물려주었다. 이남희 교수의 박사논문 ‘조선시대 잡과합격자연구’에 의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잡과 합격자는 역과 2976명, 의과 1548명, 음양과 865명, 율과 733명을 합하여 6122명이다. 산학(算學)은 정조가 즉위하던 1756년부터 주학(籌學)이라 하여 취재(取才) 형식으로 간단하게 뽑았는데 1627명 이상 선발하였다. 4대가 같은 잡과에서 합격한 세전성(世傳性)은 의과, 음양과, 역과, 율과 순으로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보고 들어야 대물림하기 쉬웠으니, 책에 없는 비법은 핏줄로만 상속되었다. 세전성을 거꾸로 설명하면, 역과 출신은 다른 잡학도 연구하여 전공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역관 김지남이다. ●외교사 자료집 ‘통문관지´를 아들과 함께 편찬 김지남(金指南·1654∼1718) 은 호조 주사(籌士) 김여의와 전의감정(典醫監正) 이몽룡의 딸 사이에 태어나 역관이 되었다. 주학(籌學) 집안과 의학 집안이 만나 역학을 전공한 아들을 키운 것이다.18세에 급제하여 28세 되던 1682년에 일본에 다녀왔다.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가 장군직을 물려받자 축하사절로 파견되었는데,6개월 동안 1만 1000리 먼 길을 여행했으며, 사행일지인 ‘동사일록(東日錄)’을 기록했다. 그 해에 청나라까지 다녀왔으니, 지남(指南)이라는 이름 그대로 길에서 나그네로 한 해를 보냈다. 환갑이 넘도록 중국에 자주 드나들며 유창한 중국어로 외교상의 문제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도 많이 해결하였다.1710년에 정재륜을 따라 북경에 갔을 때 우연히 심양의 장수 송주와 며칠 동안 이야기했는데, 우리 나라가 제후의 법도를 잘 지킨다는 사실을 많이 말했다. 나중에 송주가 재상이 되자 그러한 사실을 황제에게 직접 아뢰어, 황제가 조선에서 바칠 공물을 줄여 주었다. 국가 재정이 그만큼 절약된 셈이다. 김지남이 역관으로 활동하며 남긴 업적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교사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는 ‘통문관지’를 편찬한 사실이다. 이 책의 공동 편찬자인 아들 김경문은 서문에서 편찬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예부터 우리나라는 인접한 중국·요(遼)·연(燕)·여진·일본 등과 어려운 문제를 타결한 법례가 많았지만, 이를 수록한 문헌이 없다. 그래서 고증할 길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 영의정 최석정이 사역원 제조로 있을 때에 김지남이 전고(典故)에 밝다는 사실을 알고, 외교 고사를 수집 정리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이 책에는 사역원의 관제, 역과(譯科), 여로(旅路), 출장비부터 중국과 일본에 보내는 외교문서나 접대하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역관들이 알아야 할 모든 항목이 설명되어 있고, 대표적인 선배 역관들의 간단한 전기도 실려 있다.12권 6책의 방대한 분량인데, 후배 역관들이 비용을 갹출하여 출판하였다. 조선시대에 17회나 재판을 찍을 정도로 많이 읽히고 참고가 된 책이다. 김지남은 역관 박정시의 딸과 혼인하여 7남 3녀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아들 5형제가 모두 역과에 급제했다. 이창현이 편찬한 ‘성원록´에는 경문(慶門)·현문(顯門)·순문(舜門)·유문(裕門)·찬문(纘門)의 가계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어, 대표적인 역관 집안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화약 만드는 법을 연구하고 책까지 쓰다 김지남은 한 사람의 역관으로 편하게 살지 않고, 중국어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정묘호란 뒤에 청나라와 싸우기 위해 화약이 많이 필요해지자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흑색화약의 원료인 유황과 염초를 많이 만들어야 했다. 김양수 교수는 ‘조선후기 전문직 중인의 과학기술활동’이라는 논문에서 1635년에 이서(李曙)가 편찬한 ‘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의 염초 제조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마 밑의 흙과 미리 준비해둔 재·오줌 등을 화합했는데, 뇨분 속에 있는 질산암모늄과 재 속에 있는 탄산칼륨을 반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려면 가마를 때기 위해 막대한 나무가 필요했다. 김지남이 개량한 제조법은 나무 대신에 일년생 잡초를 써서 비용이 줄어들고 품질은 더 좋아졌다. 1692년에 부사로 연행 길에 오른 민취도가 김지남에게 염초 제조법을 알아보라고 하자, 요양의 어느 시골집에 찾아들어가 사례금을 주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인이 죽어 비법을 익히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화약 만드는 것을 국법으로 엄하게 금했으므로, 목숨을 걸고 배워야 했다. 조선이 비록 항복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가상 적국이기 때문이다.2년 동안 실험 끝에 성공했으며,1698년에 그 방법을 책으로 써서 출판한 것이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이다. 화약 만드는 여덟 가지 과정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요약하였다.“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이렇게 만든 화약은 땅 밑에 10년을 두어도 습기에 변질되지 않고, 흙과 재도 예전의 3분의1밖에 들지 않아 자주 국방과 국가 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장인들이 읽기 쉽도록 한글로 언해하였다.1796년에도 다시 출판했으니, 오랫동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두산 기행일기 ‘북정록´ 남겨 김지남은 한국사에 여러 차례 이름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에 역관으로 참여한 사실이다. 백두산은 지형이 험해 조선 쪽에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으며, 청나라에서는 황실의 근본이라고 해서 아무도 살지 못하게 했다.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이 결국 중원과 북경을 포기하고 몽골로 돌아간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이다. 피차간에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국경선이 엄격하게 없었다. 1692년에 청나라에서 백두산을 조사하며 조선 측에 길을 안내하라고 했는데, 길이 없다고 핑계를 대어 무마하였다.1710년에 우리 백성이 국경을 넘어가 살인하자 청나라에서 조사관이 나왔는데, 김지남이 추운 겨울날 길을 안내하지 않고 열흘이나 버텨 유야무야되었다. 그러나 1712년 2월24일에 청나라에서 자문(咨文)이 왔는데, 얼음이 녹으면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가 국경을 조사할테니, 조선 측에서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은 수십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2월15일에 이미 북경을 떠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을 접반사로, 김지남을 수역(首譯)으로 임명하였다. 김지남은 아들 김경문을 데리고 갔다. 이들은 혜산을 출발하여 오시천, 서수라, 화덕, 지당을 거쳐 박봉곶에 도착하여 압록강 근원을 조사하였다. 백두산 천지에 이르러 확인한 다음, 분수령에 내려와 정계비를 세웠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으므로 밀림과 벼랑, 강줄기 사이로 말 타고 갈 수 있게 길을 닦는 것만도 큰 일이었다. 천지 가까이 오자 목극등은 노인이라는 핑계를 대며 박권과 김지남을 떼어내려고 애썼다.5월6일에 백두산 등반 인원이 확정되었는데,59세 되던 김지남은 끝까지 우겨 따라가게 허락받고,55세 되던 박권은 결국 오르지 않기로 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책임자 양반은 빠지고 역관 김지남이 목극등과 대담하며 모든 일을 진행하였다. 백두산을 오가며 세 사람이 모두 기행일기를 썼는데, 김지남의 ‘북정록’이 박권의 ‘북정일기’나 김경남의 ‘백두산기’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훌륭하다. 박권의 기행문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던 것이다. 양반 관원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전문가는 끝까지 따라가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門)’의 증인이 되었다. 비록 정계비를 세웠지만, 나라가 약해지면서 국경도 없어졌다. 조선통감부를 설치해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1909년에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겼다.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정계비마저 없앴다. 최근에 한국 연구자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4㎞ 떨어진 곳에 남아 있는 정계비의 받침돌을 발견하였다. 백두산 관광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김지남같이 책임있는 전문지식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생활행정을 축제로 즐겨라

    생활행정을 축제로 즐겨라

    문화의 달인 10월을 맞아 자치구마다 지역 특색이나 전통을 내세운 축제를 앞다퉈 열고 있는 가운데 중랑구는 자체 행정서비스를 컨셉트로 한 ‘희망중랑, 주민서비스 페스티벌’을 준비했다. ‘피부로 와닿는 행정서비스’를 지역 특산품화할 정도로 민원서비스에 주력하는 구의 의도를 살린 독특한 축제다. 11일부터 3일간 중랑천 면목체육공원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행정서비스 테마별 체험코너,8대 주민서비스 참여 코너 등을 마련해 그동안 정보 부족으로 알지 못했던 수준높은 행정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문병권 구청장은 8일 “올해 행정자치부 우수혁신브랜드로 선정된 ‘주민서비스 입체체험관’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현장체험을 강화한 축제를 준비했다.”면서 “민·관의 문화, 복지 등을 한 자리에 모은 종합축제”라고 설명했다. 문 구청장은 이어 “축제를 통해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앞으로 ‘복지’를 중랑의 명품 혁신 브랜드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의 모든 것을 체험한다 명확한 축제 컨셉트에 따라 눈에 띄는 프로그램도 단연 ‘8대 주민서비스 맛보기’이다. 장애인 작업치료 및 직업능력 평가, 사회복지관 프로그램 체험, 노인돌보미 지원 사업 등 복지 분야를 비롯해 ▲악기와 과자를 이용해 가족과 사회를 이해하는 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평생교육) ▲청소년 직업박람회, 간병·집수리 등 자활사업 체험(고용) ▲혈압·체지방·당뇨 측정 등 어르신건강지킴이, 이주노동자·저소득환자 의료서비스, 정신건강센터, 무료한방진료(보건) ▲마을 문화유산 알기, 무형문화재 체험(문화) ▲웰빙공원·중랑천 등 관광코스와 생태 체험(관광) 등 8개 분야,29개 코너로 꾸몄다. 인터넷으로 먼저 문을 연 ‘주민서비스 입체체험관’(e-life.go.kr)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축제에 오면 중랑의 모든 행정서비스를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즐겁게 배우고, 흥겹게 놀고 안심(영유아)·열정(여성)·행복(아동 및 청소년)·나눔(장애인)·시작(노인) 등 5개 코너에서는 재미와 배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행복’은 두뇌건강 음식 다트게임,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드라마 속 직업·카드로 알아보는 진로 등 아동·청소년의 진로와 건강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코너이다. ‘안심’ 코너에서는 구 어린이집의 평가인증 현황과 수준, 교재·교구 전시를 통해 구의 지향점인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을 소개한다. 또 지름 2m, 높이 80㎝의 대형 떡케이크 잔치, 황금돼지 저금통, 아름다운 장터, 추억의 먹거리 등 다양한 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진다.12일에 열리는 떡케이크 잔치는 8대 주민서비스를 의미하는 8색 대형 떡을 3000여명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한 행사다. 강원 원주네트워크의 바른 먹거리 농산물 체험·판매, 경남 거창네트워크의 짚공예체험, 전남 순천네트워크의 풀벌레체험·순천갈대축제 등 지역 네트워크 코너도 마련했다. 셋째날인 13일에는 어르신 덩더쿵 체조와 청소년 비보이·밴드 공연이 열려 세대를 넘나드는 흥겨움을 만끽할 수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민주주의 진정한 의미는

    미얀마 사태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가 세계에서 동시에 방영돼 이목을 끌고 있다. 세계 43개의 공영 방송사들은 8일부터 18일까지 기획 다큐멘터리 ‘왜 민주주의인가(Why Democracy?)’ 시리즈를 함께 방송하는 이벤트를 벌인다. 이 시리즈는 스텝스 인터내셔널에서 4년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각기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실험과 현주소를 담고 있는 작품 10편으로 구성돼있다. 우리나라는 EBS가 참여해 시리즈 가운데 5편을 추려 8일부터 12일까지 매일 오후 9시50분에 ‘다큐-10’을 통해 방송한다.EBS관계자는 “작품을 검토한 결과 우리나라 방송에 부적합하거나 수준 미달인 경우도 있어 5편만 골라 소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영국 BBC, 미국 PBS, 일본 NHK, 프랑스 ARTE, 독일 ZDF 등도 참여한다. 처음 방송을 타는 8일 ‘초등학교 반장 선거’는 중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반장 선거과정을 아이들의 눈으로 조명한다.8살짜리 아이들은 처음으로 접하는 민주적인 선거를 겪으면서 ‘민주주의는 뭘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체득해나간다. 9일 방송되는 ‘카툰 분쟁’도 눈여겨볼만 하다.2005년 덴마크 일간지 율란츠 포스텐에 실렸던 12컷의 마호메트 풍자 만화가 전 세계 이슬람권의 분노를 산 이유와 이후 무슬림들이 일으킨 항의 시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각계의 견해 등을 들여다본다. 이밖에 10일에는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라이베리아공화국의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라이베리아의 철의 여인들’을,11일에는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극단적 애국주의를 지향하는 러시아의 한 마을 이야기인 ‘신과 황제 그리고 조국을 위하여’를 방송한다. 또 마지막으로 12일에는 ‘대통령과 함께 저녁식사를’편에서 군부 지도자 출신의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과연 대통령이 된 군사 지도자가 파키스탄의 민주주의 수장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본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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