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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체 수도요금 분할납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서민들의 수도요금 납부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밀린 요금을 나눠서 낼 수 있게 하는 ‘체납급 분할납부제’를 실시한다고 29일 밝혔다.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체납요금 분할납부제’는 체납 수도요금을 카드 할부처럼 나눠서 낼 수 있게 한 제도다. 현재는 체납요금은 납부의지가 있더라도 나눠 낼 수 없어 저소득층 체납자에게 부담이 돼왔다. 시의 수도요금 체납(2월 부과기준)은 21만 8000건에 70억원에 이른다.분할 납부 신청은 거주지 관할 수도사업소에 전화 또는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상수도 사업본부는 또 체납금의 성격별로 가산금을 다르게 부여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개정되는 조례에 따르면 일반적인 저소득층 체납자는 가산금이 5%에서 3%로 낮아진다. 반면 음식점 등과 같이 한달 수도요금이 10만 원 이상 나오는 영업장 등은 체납시 달마다 체납금액의 1.2%에 해당하는 중가산금이 부과된다. 수도요금을 통장에서 자동이체하는 경우 4월부터는 남은 잔액만큼만 우선 출금케 해 시민들의 불필요한 연체료 부담을 줄일 예정이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Seoul In] 동작구 총신대~달마사 녹화거리로

    동작구(구청장 김우중) 총신대∼달마사 도로변이 녹화거리로 탈바꿈됐다. 소나무 등 38종 2만 7268그루를 심은 것을 비롯해 담쟁이 1만 2300포기 등을 식재했다. 또 생태 연못과 쉼터 2개소, 장미아치 5개소 등도 설치됐다. 환경녹지과 820-9840.
  • 儒林(766) 마지막회-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23)

    儒林(766) 마지막회-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23)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23) 가자.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다시 이제 가자. 오마니, 아버지, 누이야. 우리 이제 오마니 등에 업고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 앞세워 달마중 가자. 공자가 제시하였던 그 효(孝)와 충(忠), 그 예(禮)와 경(敬)으로 가득 찼던 숲으로 가자. 유림의 숲으로 가자. 나는 뒷걸음질쳐서 공자의 무덤 앞을 물러나왔다.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나는 빠르게 걸어 무덤 옆길로 빠져나왔다. 그곳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공림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듯이 이곳은 공자를 비롯한 공씨의 후예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 실제로 쏟아지는 흰 눈으로 뒤덮인 공림 곳곳에는 봉분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는 100여 종에 달하는 많은 고목들이 자라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각 지방의 공자 제자들이 자기 지방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을 옮겨 심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공림에는 공자의 후손 50여기의 무덤이 산재해 있는데, 대부분 남자들의 무덤들뿐이다. 한 가지 예외는 72대 연성공 공헌배(孔憲培)의 부인이며, 건륭황제의 딸인 우씨(于氏)의 묘. 이는 황제의 딸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서 특별 예우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눈은 더욱 더 강하게 내려 프로스트의 시처럼 들려오는 소리나는 바람과 날리는 눈뿐. 온 숲 속은 어둡고 깊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으므로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 한가지의 상념이 떠올랐다. 이 공림에 묻힌 사람들의 무덤이 어찌 공씨가문의 무덤들뿐이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 공림에 묻힌 사람들이 모두 공자의 후손들의 무덤이라면 나를 낳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묻힌 이 동방의 대지야말로 유림(儒林)의 숲이 아닐 것인가. 내가 만난 퇴계와 율곡, 그리고 조광조도 이 유림 속에 묻힌 선인들. 그렇게 보면 공자는 우리의 정신을 낳은 아버지인 것이다. 공림을 빠져나오는 내 귓가에 동양 최고의 사가인 사마천의 사자후가 폭풍이 되어 들려왔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경(詩經)에 보면 ‘고산을 우러러보면서 대도(大道)로 나아간다.’고 되어 있다.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나는 공자의 저서들을 읽으며 그 인품을 생각해 보았다.…중략…나는 주위를 거닐면서 차마 그곳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사실을 감지했다. 천하의 어떤 군주나 현인들도 살아서는 영화를 누렸겠지만 죽어서는 그것으로 끝났었다. 그러나 공자는 포의의 신분이었으면서도 덕은 10여대를 걸쳐 전하고 학자들도 공자를 종주(宗主)로 우러러 보고 있는 것이다. 천자와 왕후들을 비롯해 중국전역에서 육예를 논할 때에는 모두 공자를 표준으로 취사선택하니, 과연 공자를 지성(至聖)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마천의 표현처럼 ‘고산을 우러러보면서 대도로 나아가기 위해서’ 공림을 빠르게 걸어 나갔다.
  • 송구영신 소망여행

    송구영신 소망여행

    12월31일 오후 5시40분에 전라남도 소흑산도에서 모습을 감춘 2006년의 해는 새해 1월1일 오전 7시26분 경상북도 독도에서 ‘황금돼지’띠의 첫 해로 떠오른다. 매일같이 뜨고 지는 태양이지만,12월31일과 1월1일에 뜨고 지는 해에는 특별함이 있다. 모두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와는 달리 송구영신(送舊迎新) 여행은 희망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 수평선을 희롱하듯 해돋이-해넘이의 장관을 지켜보며 이루지 못한 소망 등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미련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해 보자. 남해와 동해가 만나서 이루는 절경의 바다,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는 해동용궁사와 땅끝마을 해남을 미리 다녀왔다. 각각 해돋이와 해넘이가 장관인 곳. 이밖에 전국 주요 일출-일몰 명소를 소개한다. 해남 김문·기장 손원천기자 km@seoul.co.kr ■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꼭짓점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해맞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송정으로 가는 길목에 아담한 언덕길이 하나 있다. 달맞이 고개라고 불리는 이 고갯길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와우산 능선을 열다섯번 돌아 넘는다고 해서 예로부터 15곡도라 불렸다. 달맞이길을 넘어 송정해수욕장∼수산전시관∼해동 용궁사∼기장군 대변항을 잇은 해안관광도로는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 이름만큼 고운 청사포 등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해안가 마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해동 용궁사는 동해와 남해가 맞닿은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수상법당. 국내 3대 관음성지 중 한 곳이다. 근동에서는 일출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너른 바다에서 들려오는 해조음과 독경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특이한 문화재는 없지만 늘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처음 창건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당시 이름은 보문사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된 것을 1930년 통도사의 운강화상이 중창했고,1974년 정암스님이 지금의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 12지신상과 함께 ‘소원 한 가지는 반드시 이뤄주는 해동 용궁사’란 팻말이 눈에 띄었다.‘운전하는 데는 조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부적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교통안전기원탑’도 서 있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했으니 이 참에 소원이나 빌어볼까. 교통안전까지 세심하게 기원해주는 절이니 다른 소원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게다. 교통안전기원탑을 지나면 108계단으로 이어진다. 계단 중간쯤 득남불(得男佛)과 학업성취불이 자리잡고 있다. 만지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득남불의 둥근 배는 아들 바라는 이들의 손을 타 까맣게 윤이 나는 것이 기름칠이라도 해놓은 듯하다. 이름에 걸맞게 책을 보고 있는 학업성취불도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108계단을 지나면 드디어 해동용궁사의 전경이 막힘 없이 열린다.‘바다도 좋다 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곳에 뫼단 말가.’라고 했다는 춘원 이광수의 감탄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웅전 앞을 지나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면 해수관음대불과 만나게 된다.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로 그 불상이다. 바다를 굽어 살피듯 용궁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촛불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뤄야 할 소망이 있으니 더욱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108계단에서 해안가로 빠지는 길목에 약사여래불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 사찰에서 가장 바쁘신 분 중 하나다. 몸 아픈 이들이 병을 맡기고 가기 때문. 약사여래불을 지나면 동해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일출암이다. 지옥에 빠져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준다는 지장보살이 이방인을 맞는다. 연말연시만 되면 구름처럼 몰려든 중생들이 밤을 도와 소망을 빈다는 곳. 희망을 품고 왔든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미련을 버리려 왔든, 불상 옆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온갖 시름을 거두어 가는 듯하다. 기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해돋이 명소 ●포항시 호미곶 경북 포항시 영일만에 위치한 호미곶은 우리나라 지도를 호랑이로 표현했을 때 꼬리에 해당하는 곳. 육당 최남선은 조선 10경 중 가장 아름다운 일출 장소로 꼽기도 했다. 청동 조형물인 ‘상생의 손’위로 떠오르는 해가 장관이다. 매년 12월31일 오후부터 새해 첫날까지 해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경주 토함산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마치 산이 바다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토함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붉게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감포의 문무대왕릉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 이맘 때면 해무가 자주 껴 갈매기떼의 군무와 함께 선경을 이룬다. ●영덕 강구항 남으로 포항시, 북으로는 울진군과 맞닿아 있는 조용한 포구. 선착장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풍광을 맞는 것도 좋지만, 해 뜨는 장소가 일정치 않기 때문에 삼사해상공원에서 보는 것이 수월하다. 강구항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삼사해상공원은 인공폭포인 천지연 등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곳. ●동해 추암리 TV에 방영되는 애국가 일출 장면이 촬영된 장소. 해안 절벽과 동굴, 칼바위 등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모여 장관을 이룬다. 추암이란 이곳의 촛대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꽂아놓은 듯 우뚝 솟은 촛대바위 사이로 솟아오르는 해돋이는 동해의 절경으로 손꼽힌다. 특별한 적기 없이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백산 천제단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 특히 겨울철 설경이 비경을 이루는데, 일출과 어우러지면 선계가 따로 없는 곳이다. 산세가 험한 편은 아니지만, 해돋이를 보려면 야간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젠 등의 장비는 필수적으로 지참해야 한다. 매년 12월31일에는 태백산 등산로 일대와 해넘이를 황지연못 등에서 해넘이 행사를 가진 다음, 새벽 3시부터 산을 올라 오전 7시에 일출을 감상하는 행사를 벌인다. ●여수 향일암 향일암은 1300여 년 전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 남해 수평선의 해돋이 모습이 장관이라는 뜻에서 향일암으로 이름지어졌다. 산길은 제법 가파른 편. 중간쯤에 암벽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암자 근처에선 집채 만한 바위 사이로 난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해가 뜨면 서서히 암자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동백과 바위로 둘러싸인 절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 해넘이 명소 ●장화리(인천 강화)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힌다. 동막리에서 장화리로 이어지는 강화도 남단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낙조를 감상하기에 그만. 석모도 남단의 민머루 해수욕장도 주요 포인트 중 하나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충남 태안) 대한민국 대표 낙조 포인트. 안면도 중간쯤 자리잡고 있다. 소나무가 자라는 할미바위 너머로 해가 진다. 모래밭도 단단해 백사장을 거닐기에도 좋다. ●솔섬(전북 부안) 전북의 대표적인 곳. 외변산 지역은 전체가 해넘이 감상포인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쪽으로는 새만금간척지의 방조제 입구부터 남쪽의 모항 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세방(전남 진도) ‘세방낙조’란 명성에 걸맞게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과 쌍벽을 이룬다.‘세방 해안일주도로’가 일품 코스. 떨어지는 해가 가장 오래도록 머무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만 갈대밭(전남 순천) 칠면초보다 더 붉게 탄다는 것이 순천만 노을. 뱃길투어, 갯벌체험, 갈대산책 등을 위해서는 별량면 쪽이 편하지만, 순천만을 한눈에 굽어보려면, 순천만 최고의 낙조 포인트 해룡면 용산에 올라야 한다. ■ 땅끝마을 전남 해남 해넘이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다시 떠오를 거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로 유명한 말이다. 원저자 마거릿 미첼은 평생동안 이 한 작품만을 남겼고 또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서사시의 마침표라는 점에서 더욱 긴 여운으로 다가온다. 지난 주말 오후, 국토의 땅끝마을에 섰을 때 저 바다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문득 이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랑, 질투, 이별, 전쟁…. 그 영화 속에 나온 인물들, 자신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거부할 수 없이 다가온 소용돌이의 삶 속에 몸을 던졌다가 그렇게들 돌아갔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또 그곳이나 이곳이나 하늘 아래 숨쉬는 삶의 땅이기에 희로애락 인간냄새 또한 다를 바 없을 터. 한해가 저무는 12월의 끝자락이다.2006년의 태양이 한해 동안 생겨난 인간사의 온갖 미련과 잡념의 티끌들을 송두리째 안고 바다 속으로 막 자맥질을 하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2007년의 태양, 황금돼지의 태양을 잉태하기 직전 폭풍전야의 마지막 불끈거림이었다. 토말(土末)에서의 새해맞이 진행형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해남 김문기자 km@seoul.co.kr # 울고 왔다 웃고 가는 곳 설레는 마음을 갖고 땅끝마을까지 가는 길은 조금 멀게 느껴진다. 해남읍에서 버스를 타고 50분은 족히 걸렸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노인, 파란 보리밭에서 김매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운전기사가 “해남의 농토는 강원도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의 2배가 넘는다.”고 했다. 또 “여기는 울고 왔다, 웃고 가는 고장”이라면서 “해남의 부자들은 대부분 외지사람”이라고 귀띔한다. 잠시 후 ‘대한민국 땅끝마을’이라고 적힌 돌탑이 보인다.‘땅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는 엄숙함이 앞선다. 누가 국토의 땅끝이라고 했던가. 반도의 맨 앞에서 모진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낸 첨병이요, 태곳적부터 한줄기 빛을 오롯하게 밝히며 묵묵히 ‘처음’으로 살아왔을진대 말이다. 땅끝마을 부두만 하더라도 보길도, 진도 등 남해안의 크고 작은 섬을 연결시키는 연락선이 하루에도 수십차례 기적을 울리며 떠나고 들어온다. # 해넘이·해돋이 축제 땅끝마을 부둣가 광장과 전망대에서는 매년 12월31일 해넘이·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올해가 11회째로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찾는다. 특히 다도해의 절경과 일출·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조건을 지녔다. 이곳에서는 관광객 및 군민이 함께하는 콘서트, 전통놀이마당, 음식문화 잔치,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아련하고 정이 넘치는 땅끝마을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오는 31일 자정무렵에 벌어지는 촛불의식과 달집태우기는 새해를 맞아 소망을 기원하는 하이라이트. 이어 여명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고 소망의 연날리기에 이어 장보고호에 탑승해 선상에서 해맞이를 하면서 횡간도와 노화도를 돌아보는 행사는 땅끝마을만이 간직한 특별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송호해수욕장에서 2006년 마지막 해넘이를 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아울러 사구미해수욕장, 조각공원, 달마산 미황사, 자연사해양박물관, 두륜산 대흥사, 우항리 공룡화석지 등과 인접해 있어 가족끼리 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 한겨울 멋내기 소품의 재발견

    한겨울 멋내기 소품의 재발견

    겨울에 멋내기란 쉽지 않다. 좀 튀어 보일려고 조금만 얇게 입을라치면 추위가 걱정되고 방한에 신경쓰다 보면 스타일이 제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 시즌 유행하는 코트, 재킷을 사들이기 위해 얇은 지갑을 열기도 마땅치 않은 일.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작은 소품으로 멋을 낼 줄 아는 센스다. 사실 장갑, 머플러, 모자, 구두, 가방 등은 옷차림을 완성해 주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 게다가 저렴한 비용으로 칙칙한 거리에서 발랄하게 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 털 칼라 작년에 산 밋밋한 코트를 럭셔리하게 변화시키고 싶다면 ‘털 카라’만 한 게 있을까. 코트 깃에 부착만 해주면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저절로 살아난다. 베이지, 핑크, 블랙, 와인 등 다양한 색상으로 나와 있으니 선택의 폭도 넓다. 적은 비용으로 코트를 하나 장만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장갑 장갑의 경우, 올 겨울 코트의 소매 길이가 짧아진 탓인지 팔뚝까지 올라오는 롱 스타일이 부쩍 눈에 띈다.29㎝에 달하는 긴 니트 장갑은 따뜻하면서도 손목을 슬림하게 살려 패션 감각을 높일 수 있다. 토시 같은 스타일로 자칫 소재에서 오는 답답함을 덜어냈다. 정장 코트에는 광택 느낌이 나는 새틴 소재의 장갑을 매치해 보자.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더할 수 있으며, 연말 파티룩 연출에도 쓸모가 있다. ● 스니커즈 거리의 롱부츠 물결에 질린다면 화려하게 변신한 스니커즈는 어떨지. 미니스커트나 레깅스 차림에 목이 긴 금빛의 스니커즈를 신어주면 확실히 튀어 보일 것이다. 패션계에 부는 모피·털 바람을 타고 털 달린 스니커즈도 나왔다. 색다른 걸 원하는 신세대 욕구에 딱 들어맞아 다른 모델에 비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신고 있으면 발바닥에 땀날 정도의 확실한 보온성으로 더욱 인기만점. 이밖에 코르사주를 이용한 포인트 주기도 유행이다. 상의 뿐 아니라 머리끈, 가방, 구두에 부착해 힘들이지 않고 리폼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머플러 별다른 고민없이 손쉽게 매치할 수 있는 것은 머플러. 재미있는 문양에 알록달록한 색상을 지닌 제품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가지고 있는 코트의 스타일에 따라 소재나 디자인을 선택한다. 사랑스러운 느낌의 빨간색 도트 무늬 머플러는 더플 코트에 어울리겠고, 무지개색 목도리는 단정한 검은색 정장 코트에 둘러 주면 한층 세련되게 보일 수 있다. ● 키덜트 패션 키덜트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귀여운 느낌의 빨간색 ‘롱귀달이 모자’에 반색할 듯. 꽈배기 짜임이 따뜻함을 주며 어깨까지 길게 내려와 목도리처럼 두를 수도 있는 재미있는 스타일이다. 재밌고 귀엽기로는 ‘달마시안 가방’도 빠질 수 없다. 이거 하나만 매주면 뒷 자태가 확 살아날 듯하다. 단, 이런 류의 아이템을 남발하면 산만하고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것.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도움말:쌈지,G마켓, 뉴발란스.
  • 구로구 ‘청소 지존’

    “우리 바빠요! 직장 다니랴, 집안 일 하랴, 청소는 무슨….” “할 일도 많은데 왜 우리가 청소까지 해요?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다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청소하면 돈은 얼마나 줘요?” 서울 구로구 가리봉 2동 통장 방윤순씨가 ‘우리 골목 청소를 우리가 하자.’며 이웃 주민들에게 권했을 때 반응은 싸늘했다.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방씨가 이른 아침에 동네 청소를 할라치면 “통장님, 정말 수고가 많네요. 통장님 덕분에 우리 동네가 깨끗해 졌어요.”라고 인사를 하거나 “우리집 앞은 저희가 쓸게요. 힘드신데 같이 하시죠.”라며 청소에 동참한다. 구로구의 거리와 골목이 싹 바뀌었다. 칙칙하고 지저분했던 ‘공단 이미지’에서 맑고 깨끗한 ‘클린 구로’로 다시 태어났다.4년 연속 서울시 자치구의 ‘청소 지존’에 오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처럼 주민들의 태도가 확 바뀐 까닭은 뭘까. 2003년 3월 ‘내 집 앞은 내가 치운다.’는 취지로 결성된 ‘깔끔이 봉사단’ 단원들의 오기와 끈기, 극성을 빼놓을 수 없다. “쪽방이 많은 동네이다 보니 쓰레기 배출 시간이나 규격 봉투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아침에 청소를 다하고 집으로 오다 보면 ‘공포의 검은 봉투’가 저를 또 반기는 거예요. 여름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악성 습진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가리봉 1동의 이순자) 깔끔이 단원 중에는 쓰레기에 대해 ‘조건 반사’를 일으킬 정도의 ‘극성파’도 있었다.“골목 청소를 4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반 점쟁이가 됐다.”는 최영자(구로본동)씨는 “한번은 남자 둘이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 나오기에 혹시나 해서 기다렸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그냥 건물 담벼락에 버리고 가기에, 붙잡고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구 차원의 청소 지원도 한몫했다. 구는 깔끔이 봉사단 출범과 동시에 홍보전단 60만장, 홍보물 3만장을 제작해 배포했다.또 골목길별 청소 등급제를 시행했고, 달마다 우수 골목을 평가했다. 상습적으로 무단 투기를 하는 장소에는 화단 조성과 화분 놓기를 통해 환경 여건을 바꾸기도 했다.‘버려진 양심’을 주워담기 위해 무인 감시카메라도 총 37대를 운영했다. 동기 부여를 위해 깔끔이 봉사왕을 선발했다. 주민 1000여명에게는 연수 및 환경 선진지 견학을 시켰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구로구의 청결 상태는 해마다 나아지면서 외부 칭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깨끗한 서울 가꾸기’사업에서 4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행정서비스(청소분야) 품질평가 사업에서 최우수구로 뽑혔다.2004년에는 국가생산성 미래경영 대상을 받았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종교·문화재플러스] 사회민주화인사 합동천도재

    불교계의 사회민주화인사 합동천도재가 23일 오전 11시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에서 열린다. 천도재에서는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전 서울대생), 안희대(전 민청련 집행위원장)의 제위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축원한다. 달마사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음력 10월 사회민주화인사들의 합동천도재를 봉행해 왔다.(02)813-7425.
  • [seoul in] 산불방지 대책본부 설치

    양천구(구청장 권한대행 안승일) 가을철 건조기를 맞아 다음달 15일까지 ‘산불방지 대책 본부’를 설치·운영한다. 본부 상황실에는 관계 공무원 5개조 20명이 윤번제로 24시간 비상 근무한다. 산불예방을 위한 감시활동과 시민홍보, 진화장비 점검 및 기상상황, 산불위험 지수 확인, 유관기관 연락체계 유지, 산불진화와 현장지휘 등을 벌인다. 양천구에는 지양산, 신정산, 용왕산, 칼산, 달마을 공원 등 산림이 다른 지역보다 많다. 신고는 119 또는 양천구청 산불방지 대책본부 상황실(주간 2650-3395, 야간 2650-3300)로 하면 된다.
  • 교황, 새해 달력 모델로

    |파리 이종수특파원|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달력 모델이 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교황은 이탈리아 가톨릭 잡지가 오는 23일 발간하는 새해 달력의 모델로 등장한다. 이를 위해 이 잡지사의 유명 사진기자가 교황의 허락을 받고 지난 여름 로마 외각에서 교황이 하루를 보내는 장면을 찍었다. 잡지사는 “달마다 새로운 모습의 교황을 본다.”며 광고를 하고 있다. 달력을 구하려면 잡지 가격에 5유로(6000원)를 추가로 지불하면 된다. 판매수익금의 일부는 르완다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겸 고아원의 자선기금에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vielee@seoul.co.kr
  • [Seoul in] 총신대~달마사 녹화거리 조성

    동작구(구청장 김우중) 총신대∼달마사간 도로변에 걷고 싶은 녹화거리를 조성한다. 소나무 13종 635그루를 비롯한 수수꽃다리, 미국담쟁이, 맥문동 등 식물을 심고, 생태연못과 장미아치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 녹화거리는 내년 1월 중순이면 공사가 마무리된다.
  • [儒林속 한자이야기] (141) 安心法門(안심법문)

    儒林(677)에는 ‘安心法門’(편안할 안/마음 심/법 법/문 문)이 나온다. 중국에 禪宗(선종)을 일으킨 達磨(달마)의 禪思想(선사상)중 하나로 ‘절대적인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 敎法(교법)’을 이른다. ‘安’은 집과 여자의 상형을 합한 會意字(희의자). 여자는 집에 있으면서 밖으로 露出(노출)되지 않아야 안전하다는 데 착안하여 ‘편안하다’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用例(용례)로 ‘保安(보안:안전을 유지함.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함),安堵(안도:어떤 일이 잘 진행되어 마음을 놓음),安分知足(안분지족: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등이 있다. ‘心’은 ‘짐승의 심장’을 象形(상형)한 글자.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여긴 데서 ‘마음’‘가슴’‘가운데’‘근본’같은 뜻이 派生(파생)하였다.‘勞心焦思(노심초사: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움),銘心(명심:잊지 않도록 마음에 깊이 새겨 둠) 등에 쓰인다. ‘法’의 원 字形(자형)은 중국 고대의 法官(법관)들이 복잡한 訟事(송사)가 생기면 神獸(신수)인 해태를 데려와 죄 있는 자를 들이받아 공평하게 처결한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用例(용례)에는 法古創新(법고창신: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法語(법어:정법을 설하는 말이나 불교에 관한 글),便法(편법:간편하고 손쉬운 방법)‘ 등이 있다. ‘門’자는 ‘양쪽의 여닫이 문’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러한 대문 모양을 본뜬 것. 어떤 글자의 의미요소로 쓰이는 경우, 관청 같은 큰 집을 가리키는 예가 많다.用例로 ‘登龍門(등용문: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크게 출세하게 됨),門閥(문벌:가문이 대대로 내려오는 지위),門前成市(문전성시:사람이 많이 찾아옴의 형용)’등이 있다. ‘安心法門’은 달마가 주장한 선사상의 原形(원형)중 하나로, 중국 남송(南宋)의 선승(禪僧) 무문혜개(無門慧開)가 지은 불서인 無門關(무문관) 제41칙에 실려 있으며 話頭(화두)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祖堂集(조당집)에 다음의 逸話(일화)가 전한다. 달마는 梁(양) 나라 武帝(무제) 때 중국으로 건너와 因緣(인연)의 到來(도래)를 기다리며 숭산(崇山)의 소림사(少林寺)에서 面壁(면벽) 修道(수도)에 정진하였다.9년째 되던 날,嚴冬雪寒(엄동설한)에 神光(신광)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弟子(제자)의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懇請(간청)하였다. 눈밭에서 하룻밤을 지샌 신광에게 돌아온 것은 ‘하룻밤의 얄팍한 덕으로 큰 지혜를 얻으려 하느냐.’는 싸늘한 꾸지람뿐이었다. 신광은 求道(구도)의 意志(의지)를 꺾지 않고 칼을 빼어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달마는 비로소 혜가(慧可)라는 法名(법명)을 내려 제자의 인연을 허락했다. 어느날 혜가는 달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마음의 平和(평화)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스승께서 마음의 평화를 열어 주십시오.” 달마는 “그대의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라. 마음의 평화를 주리라.”라고 하였다. 혜가의 ‘마음을 찾을 수 없다’는 하소연에 ‘찾을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그대의 마음이겠는가? 나는 벌써 그대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느니라.’라고 말하였다. 김석제 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우주 기운 품은 300점 한자리

    우주 기운 품은 300점 한자리

    불교의 선(禪)과 묵화(墨畵).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40년간 이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이른바 ‘선묵화’(선화)에 치중해온 스님이 있다. 속리산 달마선원장 범주(63) 스님. 단순히 백지나 천 위에 먹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수행이자 포교의 방편으로 삼아 매달려온 흔치 않은 스님이다. 선화일여(禪畵一如).40여년간 이 선화일여를 몸으로 보여온 범주 스님이 지난 30년간의 선묵 작업을 결산하는 회향 전시회를 갖는다. 다음달 13∼23일 조계사 총무원 전시장,13∼31일 서울 법련사,11월10∼20일 부산 국제신문사 화랑. 국내에서 선묵화, 즉 선화를 하는 스님과 일반인들은 적지 않지만 범주 스님처럼 수행의 범주로 일관되게 선묵화에 천착하는 이는 손꼽을 정도. 범주 스님은 특히 다양한 달마도를 세상에 선보였으며 지난해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 기간중 범어사에서 각국 퍼스트레이디들을 초청해 가로 5m, 세로 6m 크기의 대형 종이에 사람 키만한 대붓으로 달마도를 단숨에 그려보이는 퍼포먼스를 시도할 만큼 국내 최고의 달마도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한국불교의 요체이자 수행 핵심인 선은 마음을 비워 무념과 무아의 경지에 든다는 점에서 묵화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림에 나를 투영해 가면서 나를 잊는 과정에서 무념과 무아를 이룰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의 선이나 선화는 형식에만 매달린 채 근본 정신을 잊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홍익대 미술대에서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전공한 어엿한 미술학도.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서양화가 함섭·박용인 등과 동문수학한 동기다. 출가의 원을 세워 홀연히 입산해 정진하던 중 예술과 수행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게 바로 선묵화다. 무념 무아의 상태에서 선묵화를 그리다 보면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기운이 그림에 투영되면서 그림을 보는 이들도 함께 마음을 비우게 된다는 게 스님의 지론.“비워야만 그릴 수 있고 비워야만 볼 수 있다.”는 것.‘지니고 있으면 액을 쫓고 복을 가져온다.’는 미신을 따라 부적처럼 횡행하는 세상의 달마도에 불만이 많은 게 당연하다. 스님의 수행방편은 선묵화에 머물지 않고 다도와 선을 연결하는 선다화(禪茶畵)로 이어진다.“선다는 선묵처럼 선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수행법이고 예로부터 많은 선승들이 선다를 행했지만 요즘의 선다는 원뜻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2∼3년전부터는 선다화에 치중해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그 작품들을 선보인다. 선다화란 차인(茶人)들이 차실에 거는 그림을 말하는데 스님이 천연염색이며 천연나무, 옛 문짝들에 선묵을 가미해 세상에 처음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작품은 선묵화 100점, 선묵 도자기 50점, 선다화 50점, 선차다기 50점 등 모두 300점. 내년 상반기중 서울 조계사에 들어설 국제 선센터 건립에 힘을 보태기 위한 조계사 전시에선 스님 특유의 달마 퍼포먼스를 또 한차례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부산 지하철 구서동역 저소득층 무료 이발소

    부산 지하철역에 불우한 노인과 장애인 등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는 이발소가 문을 연다. 부산교통공사는 24일 부산 지하철 1호선 구서동역에서 오는 26일 ‘아름다운 이발소’ 개소식을 갖고 역 주변 무료급식소 노인들과 기초생활 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 봉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이발소는 지하철 구서동역 역장이 명예이발소장을 맡아 역 대합실 통로 10여평 공간을 활용해 달마다 넷째주 화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한다.부산지역 이·미용 자원봉사 모임인 한사랑회 회원들이 이발 자원봉사를 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글 김성동 | 사진 이승희 길이 끝나는 곳에는 공항이 있었다. 가없고 위 모를 하늘길 좇아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오는 하늘 밑에 벌레들로 공항 기다림방(대합실)은 저자바닥이었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오박육일 동안 필사적으로 곡차만 마셨으므로 화두가 자꾸 끊어졌다. 금방이라도 무엇이 넘어올 듯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면서 라리라라리 삼삼은 구요 구구는 팔십일로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빠개지듯 골치는 또 쑤셔오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애를 훑어내리는 것 같은 속쓰림을 달래기 위해서는 다시 또 곡차를 마셔야 할 것이었는데, 사바하. 주막은 보이지 않았고 향고양(담배) 또한 올릴 수 없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풀솜할머니(외할머니)가 원앙금침에 넣어주셨다는 햇솜처럼 희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만다라꽃잎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네 둘레는 온통 깨끗하게 빨아 넌 옥양목 호청 빛깔이었는데 뿡빵뿡빵 자동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동구권에는 눈이 드물다는데, 손뼉 소리인가. 알제리 바닷가에서 비롯될 토굴생활을 북돋워주는 축하의 박수 소리. 길게 내어뿜는 망상번뇌 너머로 보이는 것은 비행기였고, 나는 숨을 삼키었다. 길라잡이하는 번역원 사람은 내가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차례를 밟고 있지만, 미안하다. 나는 알제리 보살과 뫼르소 바닷가로 갈 것이었다. 우리는 남몰래 짬짜미(밀약)를 하였고 이제 그 처녀보살 마하살만 나타나면 된다. 길라잡이한테 인생 노선이 바뀐 것을 말하고 알제리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된다. 나는 바지 속에 손을 넣어 강연료가 담긴 봉투를 만져보았다. 청춘의 한 시절이 빗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감으셔요.” “눈을 감으라구요?” “얼르응.” 나는 눈을 감았고 여자사람이 말하였다. “꼭 감으셔야 돼요.” “꼬오옥.” “꼬옥.” 감고 있던 두 눈을 힘주어 더욱 감던 나는 “아” 하고 숨을 삼키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내 입술에 와 닿는 내 것이 아닌 입술의 느낌을 똑똑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뫼르소 바닷가로 갑니다.” 다식판으로 박아낸 것처럼 선이 뚜렷한 입술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돌리었지. 그리고 옆허구리(옆구리) 서늘한 산죽山竹 밭 틈서리로 희미한 치받이(오르막)를 도두밟아(발끝에 무게를 두어 힘들게 밟아) 올라가는데, 아흐. 귀여운 처녀였지. 어여쁜 여자였지. 사랑스러운 보살이었지.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게 이빨로 꼭꼭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너무도 귀엽고 너무도 어여쁘며 너무도 사랑홉아서(사랑스러워서) 아흐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팔만사천 번씩 입 주기를 하여주고 싶은 사람이었지. “우우-” 퍼부어내리는 눈발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는데, 대답이 없다. “우우-”는 그 여자사람과 짬짜미한 군호(암호)였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물론하고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 주기를 하고 싶을 때면 쓰기로 한 비밀주였다. “알제리이이-” 산속 아닌 바닷가라서 거시기하기는 하지만 그곳 또한 중생들 사는 사바세계리니. 무엇을 하든 두 사람 밥이야 굶겠는가. 유럽·아프리카 중생들하고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고 바둑도 두다가 안 되면 진서도 가르치고 붓글씨도 가르치고 정 안 되면 콩트라도 쓰고 에세이라도 써서 알제리보살이 번역해서 원고료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지아비는 씨 뿌리고 지어미는 밭 매면 되지 않겠는가. 땀 흘려 일하는 틈틈새새로 본디 성품자리 들여다보면 되지 않겠는가. 나날 삶이 이와 같을진대 서방정토로 가지 않고 또 어디로 가겠는가. 알제리여, 횃불을 밝히지 말라. 우리 함께 어둠 속을 걷자. 그렇다. 집시가 되자. 나는 염불을 때릴 테니 너는 알제리와 불가리아 민요를 불러라. 알제리는 오지 않는데,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진실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또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얼을 기울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짜장(정말)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를 이루기 위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인가. 한뉘(한평생)를 던져서라도 오직 한 장 그림으로 건지고 싶은 관음보살 미소인가. 영육을 던져 한 자루 뼈로 합쳐질 수 있는 오롯한 여인인가. 넋의 문학인가. 죽음인가. “전화 좀 받아보세요.” 길라잡이한테 잡혀 기다림방으로 들어가는데 손전화기를 건네준다. 알제리였다. “나는 알제리를 못갑니다.” “그런 법이….” “부모님한테 들켰어요.” 서쪽에서 왔다가 동쪽으로 갔고 동쪽에서 왔다가 서쪽으로 갔다니 우습구나 달마 찾는 중생이여 동쪽에서 오면 서쪽이 되고 서쪽에서 오면 동쪽이 되니 온 곳은 어디요 간 곳은 또 그 어드메더란 말이뇨. 내 마음 김성동_열여덟에 고등학교를 자퇴, 출가하였고 스물아홉에 운명처럼 환속했습니다. 하산 이태 후에 대표작 <만다라>(1978)를 세상에 냈고, 그때 평단은 “우리 문학계도 드디어 순도 높은 구도소설 한 점을 얻었다”며 그의 비범한 역량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간 작가는 소설 <풍적風笛> <피안의 새> <꿈>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행> 등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보여주었습니다. 월간<샘터>2006.09
  • 소동파 선을 말하다/스야후이 지음

    “사람은 가을 기러기와 같아서 오면 소식이 있지만, 일은 봄날의 꿈과 같아서 흔적이 없네.” 선(禪)의 풍미가 짙게 깔린 중국의 문호 소동파 시의 한 대목이다. 이 두 마디 시구는 소동파가 이미 인생은 본래 공(空)하다는 이치를 깨우쳤음을 잘 보여준다.‘적벽부’를 지은 당송팔대가의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선과 인생을 가장 조화롭게 아우른 선인(禪人)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출간된 ‘소동파 선(禪)을 말하다’(스야후이 지음, 장연 옮김, 김영사 펴냄)는 그동안 지나쳐온 소동파의 선사상의 일단을 짚어봄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의 정신과 문학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게 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중국의 선비들이 그렇듯이 소동파 또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이루기 위해 벼슬길로 나아간다. 하지만 강직한 성격의 그는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신당파를 비판해 미움을 사고 모함을 받아 죽음 직전까지 가는 ‘오대시안’을 겪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통감, 본격적인 선의 길로 접어든다. 그가 추구한 선은 중국 남북조시대 보리달마가 인도로부터 들여온 불교의 한 종파다. 중국 불교 전문가인 저자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니, 도(道)는 평상에 있다.”는 소동파 선사상의 핵심을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여 들려준다. 정적들의 모함으로 평생을 좌천과 유배로 보낸 천재시인 소동파. 하지만 그는 끝내 쓰러지거나 꺾이지 않았으며 남을 원망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를 즐겁게 하는 유유자적한 낙천가의 삶을 살았다. 그 원동력은 물론 선이다. 소동파가 만들어낸 갖가지 에피소드와 그가 지은 뛰어난 작품들은 선이 평범한 삶에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소동파는 자신의 선을 이렇게 요약한다.“하늘에 있는 용의 고기가 좋긴 하지만 범부는 먹을 수 없다. 땅 위의 돼지고기는 용의 고기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먹을 수 있다. 내가 말한 선의 이치는 돼지고기처럼 소박하고 이해하기가 쉬워 생활 속에 실현되는 것이다.” 1만 2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세번째:길 위에 서다

    길을 걷는다. 오늘도 길을 나서며, 길을 걸었고, 그 길을 걸어 직장으로 가거나 학교에 이르고, 길을 따라 원하는 행선지로 옮기며 길을 돌아 집으로 가거나 저녁 약속의 장소로 이동한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타인들과 접촉을 하고 눈 인사를 나누며 우연히 동료나 친구라도 만날라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이는 사이, 우리는 길 위를 지나고 있다. 여기 길 위에서 삶과 사랑과 인생을 만난 사람들이 있다…. 영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1991년)는 길 위에서 시작해 길 위에서 끝을 맺는다. 그 시작은 이미 달려왔던 길의 연장이며, 그 길의 끝은 다시 이어지는 여행의 시작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언제나 다시 재생산되며 볼 때마다의 감정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수많은 이미지와 느낌표, 그리고 쉼표를 간직한 속내 깊은 이 영화에서 길은, 마음의 고향이며 그곳으로 향하는 희망의 표지이다. 마음의 고향, 빼앗긴 젊음, 고독한 열기의 종착역! 그 머나먼 길을 돌아 다시 길에 서게 된 주인공 마이크는 참 오래도록 우리를 닮아있다. 세상이 그를 부르기 전, 세상이 그를 알아주기 전, 그의 삶을 바꾼 여행.‘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2004년)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다’와 함께 4개월에 걸쳐 전 남미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나는 ‘푸세’라는 23살 청년으로부터 시작한다. 낡고 오래된 모터사이클 ‘포데로사’에 몸을 싣고, 안데스 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 어릴 적부터 천식을 앓고 있는 푸세. 그래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젊은 날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하늘보다 높다. 그들의 여행은 의지만큼 간단하거나 바람만큼 만만치 않다. 그 사이 점점 퇴색되는 페루의 잉카유적을 거쳐 정치적 이념의 차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과 일거리를 찾아 추키카마타 광산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알고 있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에 점차 분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점점 마음속에서 희망과 도전의 의지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만약, 그가 23살 때에 자신이 발 디디고 살고 있는 땅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희망의 목소리를 드높였던 투쟁의 역사를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바로 훗날,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기억되는 세기의 우상 ‘체 게바라’다. 새벽. 작업을 잠시 멈추고 산책을 나섰다. 오가는 사람들과 차도 거의 없고 짙은 안개에 달마저도 사라진 길을, 혼자 걸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들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또는 문득문득 얼굴이 스치는 그 또는 그녀들. 그들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하지만 다시 웃을 용기도 그들에게서 온다는 생각에 이르자 길이란,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구도의 공간이고 기도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바로 당신이 발 디디고 선 그 길 위에 있다. 시나리오 작가
  • 儒林(67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4)

    儒林(67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4)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4) 북제(北齊)의 천보2년(551년) 어느 날.40세쯤 되어 보이는 어떤 사나이가 2조인 혜가 앞에 나타나 절을 하고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소인은 오래전부터 풍병(風病:나병)을 앓고 있습니다.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서인지 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는 참제(懺除)하여 주십시오.” 혜가가 말하였다. “죄를 가져오너라. 그리하면 내가 참제하여 주리라.” 사내는 오랫동안 생각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찾아도 찾아도 죄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혜가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그러하면 그대의 죄는 모두 없어졌다. 앞으로는 불, 법, 승의 삼보에 의지하라.” “스님이 제 앞에 계시오니, 승보임은 잘 알겠지만 무엇이 불보이며, 무엇이 법보입니까.” 이에 혜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법이니라.(心卽是佛 心卽是法)”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곧 부처’란 심법이 최고로 전성기를 이룬 것은 육조혜능(六祖慧能)으로부터 예언된 한 마리의 미친 말, 마조(馬祖) 이후부터였다. 일찍이 한 마리의 말이 태어나 그 말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라고 달마의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로부터도 예언되었던 마조는 천 명이 넘는 대회상을 거느리면서 입실제자만 해도 139명이 넘을 정도로 나름대로 종주(宗主)였을 뿐 아니라 마조선(馬祖禪)이란 독특한 심지법문을 펼쳤던 중국 선불교의 중흥조였다. 마조선의 핵심은 ‘평상심이 곧 도’라는 것과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상으로 대변된다. 마조선의 핵심인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문이 탄생된 것은 마조의 제자인 법상(法常)으로부터였다. 법상은 어려서 출가하여 20세 때 구족계를 받았는데, 계를 받은 후 수많은 경전을 공부한 후 후에는 크고 작은 경론을 강의하였다. 지식은 날로 늘어갔으며, 그의 강의는 더할나위 없이 뛰어났지만 마음속으로는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스로의 위화감에 깊이 번민하다, 드디어 도를 찾아 행각에 나선다. 마침 마조가 널리 수행승을 지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법상은 마조를 찾아가 친견하자마자 대뜸 다음과 같이 묻는다. “무엇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이에 마조가 대답한다. “자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다.” 법상이 다시 물었다. “법(法)이란 무엇입니까.” “자네의 마음이 바로 그것(佛法)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네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법상이 다시 물었다. “그럼 달마에게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단 말입니까.” 마조는 대답하였다. “부족함이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을 간파하라.” 마조의 이 말에 법상은 마침 크게 깨닫고 구름이 걸려 있는 대매산(大梅山)에 올랐던 것이다.
  • 儒林(67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3)

    儒林(67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3)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3) 왕양명이 이룬 유학은 후세에 ‘양명학(陽明學)’으로 불리며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정통 유교사상에 어긋난다는 인식 때문에 이단시되어 사학(邪學)이라고까지 파면선고를 받은 것은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는 육구연으로부터 비롯된 양명학의 교의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송 대에 들어오면서 성리학이 싹트게 된 데에는 지금까지의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논리에 한계와 염증을 느끼게 됨으로써 많은 유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온 인간의 이성문제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우주의 원리 같은 것에 눈을 뜬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현실적인 존재와 현상을 규명하는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이야말로 언제나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추구하는 개인의 몸가짐뿐 아니라 대인관계, 마침내는 국가통치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원리인 이(理)의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최고의 정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사회에 있어서 육구연이 주장하였던 ‘마음이 곧 이’라는 사상이나 이를 발전시켜 완성한 왕양명의 ‘성인의 도는 내 본성 자체만으로도 족한 것이다. 전에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이치를 추구하려 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라고 선언하고 ‘천하에 어찌 마음 밖에 일이 있고, 마음 밖에 이가 있겠느냐.’면서 ‘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성인’이라는 인간의 내면적인 자유를 구가하였던 왕양명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정통적인 유학으로 볼 때에는 지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술(詐術)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는 ‘육왕파’의 종지는 바로 불교의 선에서 주장하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심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곧 부처’라는 심법은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구경 중의 하나인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는 화두의 골수로 이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은 달마(達磨)가 양의 무제8년(520년) 9월21일,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 동쪽인 중국으로 건너 온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면벽수도하던 달마를 찾아온 혜가(慧可)가 무릎까지 쌓인 눈 속에서 칼을 들어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버림으로써 달마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중국에 있어 2조가 되는데,‘제 마음이 편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하는 혜가의 질문에 ‘그 마음(心)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편안케 해주리라.’라고 달마가 대답하자 혜가는 한참을 생각한 후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달마는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는 그 유명한 ‘안심법문(安心法門)’을 내린 후부터 선이란 곧 마음을 찾는 심법(心法)이란 종지가 골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심법은 혜가의 불법이 제3조인 승찬(僧璨)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1) 남양유업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1) 남양유업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노사문화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한때 노사관계가 좋지 않았던 기업들이 노사 상생의 정신으로 잘 나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파업이나 외환위기의 어려움, 워크아웃의 위기상황, 구조조정의 아픔 등을 노사가 한 마음으로 극복한 회사들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모범적인 사례들이다. 종업원지주제여서 노조는 없지만 전 임직원들이 하나가 돼 경쟁을 헤쳐나가는 기업들도 있다.‘과거의 아픔’을 딛고 노사가 하나가 돼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기업(사업장)들을 찾아가 본다. 남양유업 이형섭(48)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가을 영업담당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 ‘산삼주’를 내놓았다. 주말이면 ‘심마니’처럼 산을 찾아다니며 산삼캐기를 즐기는 그가 직접 채취해 담근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산삼주 드시고 힘내라.”고 말했다. 지난해 9000여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했지만 출산기피 현상과 모유 선호분위기, 수입증가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영업직을 위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영업담당 직원들은 노조에 ‘운동화’를 보냈다.“품질관리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는 뜻을 담은 답례였다. 예전 같으면 영업직원들과 노조는 ‘다른 식구’일 뿐이었다. 영업직원은 비노조원이다. 하지만 두번의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칭찬카드 비치 9일 오후 2시쯤 충남 공주시 장기면 봉안리 남양유업 공주공장. 정문을 통과할 때 게이트 양쪽에서 하얀 소독약이 승용차를 향해 뿜어져 나온다. 청결을 제일로 치는 식품회사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남양유업 로고를 단 지입원유차 수십대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완주 인사총무팀장의 안내로 ‘이오’ 등 요쿠르트와 1.8ℓ 우유를 생산하는 생산3팀 탈의실로 들어갔다. 벽에는 ‘2&1/2’이란 조그만 나무상자가 매달려 있다. 상자에 ‘칭찬카드’와 ‘고충처리 신청카드’가 꽂혀 있다. 이 팀장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라고 말했다.2003년부터 설치했단다. 생산팀은 물론 공장 탈의실마다 1개씩 놓여 있다. 매주 칭찬이 4∼5건씩 들어오고 있다. 생산1팀장 이교덕(49)씨는 “칭찬을 많이 하고 서로를 위해 주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변했다.”면서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너 친척 회사에 한명도 없어 1989년 6월말 첫 파업이 발생했다. 임금인상률을 놓고 노사간 10여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본부는 공주공장에 있지만 집행부가 천안공장에 집결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정문을 폐쇄한 뒤 창업자인 당시 홍두영 대표이사를 나가지 못하게 막는 바람에 쪽문으로 탈출할 정도로 갈등이 극심했다. 파업은 이틀만에 끝났지만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집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젖소 사육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1992년 파업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7월 천안과 신설된 경주공장까지 800여명의 전 노조원이 공주공장에 집결했다. 문선대, 사수대 등 좀더 조직적으로 파업이 이뤄졌다. 떠먹는 요구르트 ‘꼬모’를 막 출시하고 대대적으로 광고전을 펼치던 때였다. 한규만 공주공장장은 “3일간의 파업이었지만 소비자들의 신뢰가 실추됐다.”면서 “이것은 재정적 손실보다 더 큰 타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노조위원장은 대책위원과 회계감사로 두번의 파업에 깊숙이 관여했다.“이러다가는 큰 일 나겠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조에 경영설명회 회사측의 태도도 달라졌다. 연초에 경영진이 노조 간부들 앞에서 경영상태와 영업전망 등을 설명한다. 남양유업에서는 한달마다 ‘노사 소위원회’가 열린다. 현장 근로자든 사무직이든,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가리지 않고 모여 현안과 불만사항을 쏟아낸다.‘현장사원 1일 팀장제’도 실시된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가 걸러져 노사협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삼정(正-규정을 준수하는·情-정감있는·晶-명확하게 성과를 배분하는)주의’란 노사문화가 생긴 이유이다. 이런 노사문화가 전직원 월급에서 매달 1000원씩 떼어 난치병 환자나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을 돕는 데로 확산되고 있다. 자연 직원들의 관심도 노사관계에서 품질개선 쪽으로 옮겨갔다. 노조위원장이 연구소장을 만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회사는 ‘에러 모음집’을 만들어 실수를 줄이게 하고 있다. 파업 전에는 불평불만이 많던 직원들도 자기계발에 힘쓰면서 정부가 지정하는 ‘명장’이 3명이나 나왔다.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이래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노사화합 문화의 역할이 컸다. 빚도 없다. 그런 회사가 사옥 하나 없다. 연구·개발과 공장 신설에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오너의 친인척이 회사에 한명도 없다. 박건호 대표이사도 신입사원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이런 점도 노조의 신뢰를 사고 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방문취업비자制 지연…동포 또울린 조국

    러시아 동포 3세 강은혜(25·여)씨는 중국 동포 3세인 남편 김성진(31)씨와 2년째 생이별 중이다.1997년 연해주에서 만나 결혼한 뒤 아들 진규(6)를 낳았다. 형편이 쉽게 나아지지 않아 할아버지 고국에서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한국행 비자받기가 러시아보다 중국이 어려워 남편은 중국에 두고 진규와 함께 2004년 먼저 국내로 들어왔다. 관광비자로 석달마다 한번씩 연해주를 오가며 충북 충주의 한 식당에서 매달 100만원씩 벌고 있다. 남편은 올초 한국에서 방문취업비자(H-2)를 발급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제도 시행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7월초 시행된다던 제도는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 강씨와 진규는 매일 전화 목소리로 남편과 아빠를 그리워하며 애만 태우고 있다. 중국과 옛소련 동포들에게 자유로운 고국 방문과 취업을 허용하자는 취지에서 지난달 초 시행 예정이던 방문취업비자(H-2) 발급 제도가 늑장 걸음을 걷고 있다. 이 때문에 비자를 발급받아 고국에서 떳떳하게 일하기 위해 자진 출국까지 했던 중국·옛소련 동포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전주의 한 찜질방에서 3개월 초청 비자를 받고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동포 김안드레(35)씨는 비자가 만료된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으로 자진 출국했다. 찜질방에서 일을 잘 한다며 다시 3개월 초청장을 받게 해준다고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한국어 시험 등을 거쳐 방문취업비자만 받으면 5년 동안 자유롭게 출입국할 수 있으며 최장 3년까지 국내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국에서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이 늦어지면서 김씨는 결국 재입국을 포기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이달초까지 자진귀국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과 옛소련으로 돌아간 동포는 모두 1만 3000여명.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방문취업비자로 재입국을 원하고 있다. 제도 시행이 늦어지는 이유는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방문취업비자 제도 시행과 연관된 법률인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 개정안이 민생 법안에 밀려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과 외국적동포과 관계자는 “동포라고 해도 일단 외국인이다 보니 고용허가제 특례규정에 의거해서 출입국 문제를 정할 수밖에 없다. 국회 통과만 됐다면 시행 시기를 예정대로 할 수 있었지만 당분간은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다시 법안심사를 받는다고 해도 상임위를 거쳐 법사위, 본회의 통과와 시행령이 만들어져 시행되기까지 보통 3개월 이상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시행은 내년 초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돕기운동본부 박정렬 사무국장은 “3개월 초청 비자로 어렵게 고국을 오가던 중국·옛소련 동포들에게 방문취업비자는 획기적인 제도로 이들은 한국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정부가 공식 발표로 적절한 설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준석 이재훈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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