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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지지, 올림픽 불참, 동맹압박… 미중회담 뒤 혼란 부른 바이든

    대만 지지, 올림픽 불참, 동맹압박… 미중회담 뒤 혼란 부른 바이든

    미중 간 첫 정상회담 이튿날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듯했다가 다시 수습에 나서는 등 각종 발언으로 혼란을 불렀다. 또 백악관 내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기류가 전해지면서 전날 ‘경쟁하되 충돌은 안 된다’던 바이든의 핵심 메시지의 진의를 의심받았다. 미중 정상이 소통의 문은 열었지만 긴장 완화의 구체적인 길은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은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에서 국정 관련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회담에서) 우리가 대만관계법을 지지한다는 걸 (미중 정상회담에서) 아주 분명히 했다”며 “(대만은) 독립적이다. 스스로 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유지 정책’에 어긋나는 답변이다. 미국은 중국에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지만 대만 독립 여부는 언급하지 않은 채 대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균형추를 유지해 왔다. 바이든은 이후 취재진을 찾아 “(대만) 정책을 전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대만) 독립을 장려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난 바이든의 답변은 처음이 아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지난 8월과 10월 두 번이나 ‘그렇다’는 취지로 답해 논란이 됐다. 게다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전날 바이든이 정상회담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지만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를 확인하지 않아 진위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또 이날 연설에서 바이든은 “각국 정상을 만나면 ‘미국에 대항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강조했다.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미국 편에 서야 한다고 압박하는 식의 발언이다. ‘중국 때리기’와 ‘강한 미국’을 원하는 미국인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취지의 발언으로 보이지만 동맹들에도 의미가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백악관이 조만간 바이든이나 어떤 미국 관리도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이 이달 안에 이런 ‘외교적 보이콧’ 방안을 승인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올림픽 성공 개최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미중 관계가 다시 악화될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던 전날에도 중국군 군용기 8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IDZ)에 진입했고, 미국은 일본과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으로 대중 견제에 나서는 등 대립 양상을 보였다. 미국은 회담 바로 다음날 중국 주변국들과의 경제협력 강화 움직임도 연출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적 틀’을 내년 초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고, 도쿄에서 열린 미 무역대표부(USTR)와 일본 경제산업성 회의에선 ‘미일 통상 협력 틀’ 설치를 합의했다. 미중 정상회담 이튿날 눈에 띄는 긴장 완화 조치는 앞서 상대 국가 언론인을 추방했던 조치를 완화하기로 합의한 것 정도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미국이 중국 언론인들에게 1년짜리 복수비자를 발급하기로 했고, 중국도 미국 언론인을 동등하게 대우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 “종말 1분 전” 역설하며 제트기 동원해 탄소 내뿜는 ‘COP26 허풍 밴드’

    “종말 1분 전” 역설하며 제트기 동원해 탄소 내뿜는 ‘COP26 허풍 밴드’

    1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막을 올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개막사를 통해 “인류는 기후변화에 있어 남은 시간을 오래 전에 다 썼다.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 1분 전이며,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의 이 발언은 곧 각국 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하는 환경단체의 공격감이 됐다. 나아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인류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발언이 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입으로는 기후 변화를 막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현실에선 그들의 위선과 허풍(hot air)만 COP26 회의장 상공을 뒤덮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과 경제계 인사들이 동원한 200~400대의 항공기를 꼬집은 것이다. 존슨 총리도 평소 그답지 않게 진중하고도 심각한 연설을 마치고 각국 지도자들을 환대한 뒤 전세기를 이용해 런던으로 돌아갔다. 글래스고에서 런던까지 이동하려면 열차로는 4시간 30분이 걸린다. 그게 오래 걸린다고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걸려 돌아간 것이다. 이렇게 비행기 한 대를 띄우지 않으면 약 3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는데 그런 계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모른다. 유럽환경청 자료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를 이동하는 데 비행기는 탄소 285g을 배출한다. 열차가 14g를 배출하는 것에 견줘 20배에 이른다. 전세기를 이용하면 일인당 탄소 배출량은 여객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10배 가량이 된다. 텔레그래프는 이번 회의 개최 때문에 추가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영국인 4200명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다며 “특히 이번 회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85%는 각국 대표단 전용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총리는 항상 시간적 제한에 쫓기고 있다”며 “비행기에는 친환경 항공유가 사용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환경단체 ‘교통과 환경’ 관계자는 “총리가 탄 전세기의 연료 중 35%만 친환경유고, 나머지는 일반 항공유”라고 반박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존슨 총리는 늘 시간에 쫓기는 정상들과 기업 임원 중 한 명일 따름”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비롯해 비행기만 다섯 대를 띄워 글래스고로 향했다. 대서양을 건너며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1000t에 이른다. 비행기만이 아니다. COP26 회의장 밖에는 190여개국 대표단을 실어나르기 위한 수백대의 육중한 승용차들이 도열해 있다. 어떤 자동차는 지도자들의 이동 시간을 줄인다며 시동을 건, 공회전 상태로 대기하기도 한다. ‘비스트(야수)’란 무시무시한 별명의 미국 대통령 전용 차량도 눈에 띈다. 1마일(약 1.6㎞)을 달리는 데 약 122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달리 마일당 4㎏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미국 대표단은 에든버러 공항에서 글래스고까지 차량 22대를 이용해 이동했는데, 이 차량 행렬이 왕복 약 150㎞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도 4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환경단체 ‘녹색 동맹’의 헬레네 베넷 정책 고문은 “전용기는 기후의 재앙이다. 한 시간 비행에 1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더 친환경적으로 여행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 절망뿐인 서유럽, 이방인에게 기대다

    절망뿐인 서유럽, 이방인에게 기대다

    ‘첫눈이 사라졌다’는 한국판 제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사라진 첫눈을 둘러싼 비밀을 관객이 풀어야 한다는 걸까? ‘월요일이 사라졌다’(2017)의 의역을 참고한 듯 보이는 ‘첫눈이 사라졌다’는 제목은 미스터리한 느낌을 풍기지만, 영화의 전체 의미를 잘 담아낸 제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다시 눈은 오지 않을 거야’(Never gonna snow again)라는 영어판 제목이 이 작품에 접근하는 더 나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첫눈과 눈을 비롯해 사라졌다는 과거형과 오지 않을 거라는 미래형의 뉘앙스 차이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배경은 폴란드 부유층 마을이다. 이곳에 우크라이나 출신 제니아(알렉 엇고프 분)가 드나든다. 그는 유능한 마사지사이자 최면술사다. 제니아는 부유층 마을 사람들 집을 방문해 그들의 심신 안정을 돕는다. 안락한 생활 이면에 다들 걱정거리가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정신없는 여자 등. 환각제와 알코올에 취한 이들이 제니아의 손길을 원한다. 제니아는 마사지 후 이렇게 최면을 건다. “당신의 불행과 고통, 병을 몰아내는 중입니다. 검은 시냇물이 발밑에서 흐르다가 머리를 통해 제 손으로 전달됩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평안을 얻는다. 그것은 눈 내리는 숲 한가운데 그들이 있는 장면으로 형상화된다. 이때 눈이 가진 함의가 무엇인지는 제니아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세상이 지치고 평온을 갈구하면 담요처럼 눈이 세상을 덮어 버린단다.”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는바 눈은 치유와 구원의 상징이다. 이것은 “이제 눈은 내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부유층 마을 사람들과 대비된다. 치유와 구원을 바라지만 그런 가능성을 상실한 이들 앞에 제니아가 나타나 내면의 눈과 마주하도록 하니까. 이는 이 영화가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등 서유럽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배경인 부유층 마을은 물질적 풍요와 상관없이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는 서유럽을 가리킨다. 우리의 구세주가 서유럽인이 아니라 한 수 아래로 간주하던 동유럽인일 수 있다는 점에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놀랐으리라. 더구나 이런 ‘슈퍼히어로’가 소년 시절 체르노빌 피폭 사건을 겪은 남자라면 더욱 그럴 테다. 계급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가난한 이방인이 돈을 받고 부자들에게 힐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이 작품은 종교적 관점으로 감상하는 편이 합당하다. 전동휠을 타고 부유층 마을 도로를 질주하며 제니아는 외친다. “난 슈퍼히어로다. 내가 너희를 구해 주겠다. 전부 다.” 언뜻 농담처럼 여겨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의 발언이 농담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시 눈은 오지 않을 거라는 절망의 세계에서 제니아는 스스로 눈이라는 희망이 되기로 결정한다. 보라, 첫눈은 사라진 적 없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25년을 남편 폭력에 시달려 살해한 발레리 바코 첫 재판에

    25년을 남편 폭력에 시달려 살해한 발레리 바코 첫 재판에

    발레리 바코(40)가 의붓아빠 다니엘레 폴레트에게 처음 유린 당했을 때는 겨우 열두 살 때였다, 1995년 그는 근친상간 혐의로 감옥에 보내졌지만 2년 반 만에 다시 집에 돌아와 의붓딸을 괴롭혔다. 첫 애를 임신했을 때는 열일곱 살이었다. 억지로 25세 연상의 그와 결혼해야 했다,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 그런다고 나아지지 않았다, 계속 폭행에 시달리고 한때는 의붓아버지였던 남편이 아이들 양육비에 보태라며 윤락녀처럼 일하라고 강요하자 2016년 3월 바코는 총을 들었다. 이 가엾은 여인을 어찌해야 할까? 바코에 대한 첫 재판이 21일(현지시간) 중부 부르고뉴 지방 샬롱쉬르손에서 열려 프랑스 언론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날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 법정에 나타난 바코는 총을 들어 남편을 쏴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변호인은 그녀가 당한 세월이 25년에 이르며 딸이 살해하려는 충동에 시달리게 될까봐 자신의 손으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발간된 바코의 책 ‘모두 알고 있었다(Tout le monde savait)에는 “늘상 두려웠다”는 대목과 “끝을 내고 싶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검찰은 살인이 예비돼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고, 변호인들은 자신과 아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없어 결국 살해에 이르게 됐다고 항변했다. 재닌 보낙기운타 변호인은 AFP 통신에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들은 보호받을 곳이 없다”며 “사법 절차는 너무 느리고, 충분히 피해자에 공감하지 않으며,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하다. 그래서 절망에 빠진 여인은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폴레트가 결혼한 뒤에는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동차에서 윤락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총을 빼앗아 쐈다. 두 자녀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숨겼다. 이듬해 10월에야 체포됐고 살인 혐의를 자백했다. 그러자 6만명 이상이 석방하라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여성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끔찍한 폭력에 대한 논쟁이 점화됐음은 물론이다, 이 사건은 다른 프랑스 여인인 자클린 소바주 사건과 아주 닮았다. 그녀도 47년 동안 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던 아들이 2012년 9월 극단을 선택하자 다음날 총으로 남편을 살해했다. 2014년 10월에 살인죄로 징역 10년형이 선고돼 수감됐으나 2016년 12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면 조치로 풀려났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어느 날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 갑자기 코로나보다 무서웠다

    어느 날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 갑자기 코로나보다 무서웠다

    작년 8월 극단 내 코로나 확진 경험자신들 겪은 이야기 90분으로 압축단원들이 느낀 공포·관계 단절 담아“몸은 치유됐으나 마음은 회복 안 돼객석의 박수에 스스로가 치유되길”“이곳은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입소하는 생활치료센터입니다. 각자 적힌 방으로 이동하시고 별도 공지가 있기 전까지 문 밖에 나오시면 안 됩니다.”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에 들어서면 방 번호가 적힌 표와 손 세정제, 커피가 담긴 보급품을 준다. 이어 방호복 차림 안내원이 각자 자리를 찾으라고 건조하게 말한다. A동, B동으로 나눠진 객석을 향하는 길이 바짝 긴장된다. 연극 ‘어느 날 갑자기…!’는 그렇게 관객들을 지난해 8월로 데려간다.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수도권에서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어났던 때, 대학로에서 공연을 앞둔 한 극단에서 41명 중 1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연계 코로나 확산의 근원지가 될 뻔한 상황을 코앞에서 겪은 그 극단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로 용기를 냈다.최근 만난 윤정환 극단 산 대표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이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활치료센터를 거쳐 증상이 악화돼 병원까지 입원했던 그는 극 중 극단 산의 배우 ‘김성진’을 주인공으로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코로나19 양성이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구급차를 타고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는 과정,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 병원으로 옮겨져 겪은 일, 그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숨을 들이키는 모든 시간들을 90분에 압축했다. 동생의 확진 소식에 형은 알코올 대신 양주로 집 안 곳곳을 소독한다. 마구 달리는 앰뷸런스 속에서 ‘교통사고로 먼저 죽겠다’며 멀미를 하던 기억, 의료진은 물론 경찰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서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까지. 시설 속 인물 설정을 제외하고 모든 대사와 상황은 윤 대표와 단원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다. 단원들을 설득해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또 있다. “코로나19는 앞으로 어떻게든 치료가 될 텐데, 멀어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떻게 회복을 해야 하고, 그 거리 때문에 생긴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몸은 치유됐지만 우리 마음에 또 다른 병이 남아 있거든요.” 극단 단원들의 확진 소식이 알려지자 성진의 전화에 불이 난다. “니들이 왔다 갔다고 소문 나서 우리 가게가 장사가 안 된다. 우짜면 좋냐.” “나 지금 촬영해야 하는데 형 만난 거 말 안 하면 안 되나?” 사람들은 환자보다 각자의 상황을 걱정했다. 4인 병실에서 중증 환자가 들어오자 나머지 경증 환자들이 “우리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며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웃픈’ 장면이다. 단원들도 스스로 회복의 시간을 갖기로 한 프로젝트이지만 배우와 스태프 20명 가운데 확진자는 6명만 참여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려움을 호소한 이도 있고, 심리치료를 받는 이도 있다. 이미 연극계를 떠난 이도 있다. “같은 위험 속에 약간의 행운이 엇갈린 것이라 생각하면 좀더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해 주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더 좁혀지지 않을까요.” 윤 대표는 객석의 박수가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길 바랐다. 공연은 13일까지.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학로 발칵 뒤집혔던 그날…극단 산이 연극으로 내놓은 위로

    대학로 발칵 뒤집혔던 그날…극단 산이 연극으로 내놓은 위로

    “이곳은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입소하는 생활치료센터입니다. 각자 적힌 방으로 이동하시고 별도 공지가 있기 전까지 문 밖에 나오시면 안 됩니다.”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에 들어서면 방 번호가 적힌 표와 손 세정제, 커피가 담긴 보급품을 준다. 이어 방호복 차림 안내원이 각자 자리를 찾으라고 건조하게 말한다. A동, B동으로 나눠진 객석을 향하는 길이 바짝 긴장된다. 연극 ‘어느 날 갑자기…!’는 그렇게 관객들을 지난해 8월로 데려간다.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수도권에서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어났던 때, 대학로에서 공연을 앞둔 한 극단에서 41명 중 1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연계 코로나 확산의 근원지가 될 뻔한 상황을 코앞에서 겪은 그 극단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로 용기를 냈다.최근 만난 윤정환 극단 산 대표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이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활치료센터를 거쳐 증상이 악화돼 병원까지 입원했던 그는 극 중 극단 산의 배우 ‘김성진’을 주인공으로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가뜩이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마주해야 하는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그나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작은 경험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 양성이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구급차를 타고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는 과정,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 병원으로 옮겨져 겪은 일, 그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숨을 들이키는 모든 시간들을 90분에 압축했다. 아들이 확진됐다고 하자 부모님은 냅다 마스크부터 쓰고 형은 알코올이 없자 대신 양주로 집 안 곳곳을 소독한다. 갑자기 늘어난 확진자들을 곳곳에서 태우기 위해 마구 달리는 앰뷸런스 속에서 ‘교통사고로 먼저 죽겠다’며 멀미를 하던 기억, 의료진은 물론 경찰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서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 서로 생활 습관이 달라 겪게 되는 갈등까지. 시설 속 인물 설정을 제외하고 모든 대사와 상황은 윤 대표와 단원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다.단원들을 설득해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또 있다. “코로나19는 앞으로 어떻게든 치료가 될 텐데, 멀어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떻게 회복을 해야 하고, 그 거리 때문에 생긴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몸은 치유됐지만 우리 마음에 또 다른 병이 남아 있거든요.” 대학로를 발칵 뒤집은 극단 산의 소식은 삽시간에 퍼지고 보도됐다. 극 중 성진의 전화에 불이 난다. “느그 단원들 16일에 우리 가게 왔었나? (안 다녀갔다고 하자) 니들이 왔다 갔다고 소문 나서 사흘째 손님이 없고 장사가 안 된다. 이 일을 우짜면 좋냐.” “나 지금 촬영해야 하는데 형 만난 거는 말 안 하면 안 되나? (벌써 했다고 하자) 아, 안 되는데. 그럼 마스크 잘 쓰고 아주 잠깐만 만났다고 해주면 안 되나?” 사람들은 환자보다 각자의 상황을 걱정했다. 6인실을 개조한 4인 병실에서 중증 환자가 들어오자 나머지 경증 환자들이 “우리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며 마스크를 쓴 채 이불까지 푹 덮어버리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웃픈’ 장면이다. “다 똑같은 환자입니다. 아직 다 안 나아서 여기 계시는 거고요”라는 간호사의 말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아프고 싶어서, 걸리고 싶어서 얻은 병이 아닌데, 몸도 아픈데 일단 가족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마음은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는다. 지난해 12월이 돼서야 한 자리에 모인 극단 산 단원들은 그들도 스스로 회복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윤 대표가 단원들을 설득해 석 달간 대본을 쓰며 각자의 이야기를 넣었다. 저마다 사는 곳도, 들어간 곳도 달라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이 작품을 위한 배우와 스태프 20명 가운데 확진자는 6명만 참여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려움을 호소한 이도 있고, 심리치료를 받는 이도 있다. 이미 연극계를 떠난 이도 있다. 윤 대표는 아직도 대학로에서 자주 가던 식당에도 가지 않고 되도록 작품을 준비하는 동료들만 만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위험 속에 약간의 행운이 엇갈린 것이라 생각하면 좀더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해 주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더 좁혀지지 않을까요.” 윤 대표는 객석의 박수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길 바랐다. 공연은 13일까지.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학전 30주년, 다시 달리는 ‘지하철 1호선’… “따뜻한 ‘전설’의 명맥 이어갈 것”

    학전 30주년, 다시 달리는 ‘지하철 1호선’… “따뜻한 ‘전설’의 명맥 이어갈 것”

    올해 30주년을 맞은 극단 학전이 기념 공연으로 대표작인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운행을 재개했다. 1994년 5월 14일 개막해 2008년까지 장기 공연을 하며 247명의 배우와 연주자가 몸을 싣고 72만명의 관객들과 만났던 학전의 대표작이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를 비롯해 스타 배우들을 대거 배출한 산실이기도 하다. 지난 14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2년 만에 운행을 재개한 ‘지하철 1호선’에 새롭게 올라탄 주역들을 12일 연습실에서 만났다. “용 같은 존재였어요.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전설로 알고 있었죠.” 세 배우에게 ‘지하철 1호선’은 존재감부터 거대했다. 작품이 처음 막을 올린 해 태어난 막내 박현선은 전설의 동물을 떠올렸다. 2017년 청소년극 오디션으로 학전과 인연을 맺은 그는 날라리 여고생 날탕 역으로 ‘지하철 1호선’에 올라탔다. “진짜 용을 만났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느냐”면서도 “든든한 동료들이 있어 두려움을 이겨 냈고 함께 용을 타고 날 일만 남았다”며 발랄하게 웃었다.2015년 학전 어린이 무대 오디션에 합격한 뒤 ‘슈퍼맨처럼-!’, ‘고추장 떡볶이’ 등에서 활약하며 어린이 관객들에게 최고의 아이돌로 꼽히는 김민성(제비 역)도 ‘지하철 1호선’은 처음이다. “대학 시절 ‘지하철 1호선’ 대본을 잘 분석해 A+를 받았다”던 그도 이 작품이 첫선을 보였을 땐 네 살이었으니, 차범석의 ‘산불’(1963)이나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1974), 나아가 셰익스피어 ‘햄릿’(1601)처럼 엄청난 고전의 무게를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작품”이었다. 2008년 이후 중단했다가 10년 만에 재개한 2018년 공연부터 함께하고 있는 정재혁은 “연기하려고 서울에 와 보니 연기 좀 한다는 선배들은 대부분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길래 무척 궁금했다”고 떠올렸다. 혼혈 고아 철수 역으로 독일 공연까지 다녀온 정재혁은 이번에는 서울역 걸인 문디로 변신한다.극을 경험한 정재혁조차 1989년생이니 1998년 11월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극이 모두에게 낯설 수밖에. ‘약장사’, ‘쓰리꾼’ 등 온갖 알 수 없는 ‘외계어’뿐이었고, 성매매, 원조교제, 제비족, 인신매매 등 ‘이래도 되나’ 싶은 일들을 대놓고 말하는 게 멋쩍었다. 그 생경함을 풀어 준 건 김민기 대표였다. “이 작품은 풍속화”라고 강조했다는 김 대표의 말을 배우들이 동시에 전했다. “김홍도 그림처럼 이 작품 어느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도 하나의 풍속화가 될 수 있게 많은 인물들이 저마다 가진 사연을 생생하게 잘 표현해 내야 한다고 하셨어요”(김민성). “그래서 어려운 단어나 불편한 대사도 그대로 남기신다고요.”(박현선) 김 대표는 배우들이 연습을 시작한 지난 3월 3주 남짓 공들여 ‘강의’를 이어 갔다. 독일 그리프스 극단의 원작 ‘Linie 1’과의 차이, 번안 및 연출 의도, 극 중 모든 인물 설명과 그들의 배경, 당시 역사적 상황까지 방대한 수업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아무리 짧은 대사 한마디라도 허투루 뱉을 수가 없다”고 세 배우가 다시 한목소리를 냈다.세 사람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단면을 신랄하게 비추고 풍자해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던 ‘지하철 1호선’이 “지금도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재혁은 “과연 30년 전보다 지금이 얼마나 나아졌는가 질문을 던진다”면서 “여전히 세상엔 다양한 군상들이 있고 각자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성은 “우리의 가장 최근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현선은 “저는 선녀가 걸레랑 이야기하며 ‘죽고싶다’는 말을 서슴 없이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면서 “직설적으로 다 포기하고 싶다는 심정을 밝히는 이에게 ‘울 때마저도 아름다운 너’를 부르는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친정처럼 따뜻한 품”(박현선), “밥을 챙겨 주는 집 같은 곳”(정재혁)인 학전에서 이들은 선배들처럼 성장하고 뜻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30주년이라고 특별하진 않아요. 아마 김민기 선생님도 그러실 거예요. 운행을 재개한 ‘지하철 1호선’에 저희가 탔을 뿐 앞으로도 많은 배우들이 같은 경험을 하고 오래 명맥을 이어 갈 것라고 봐요.”(김민성)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서울신문은 13일부터 ‘이우석의 미시(微視)여행’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내 여행지를 매우 좁게 설정해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어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담당할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여행전문가입니다. 글 곳곳에 심어 놓은 저자 특유의 ‘유머 코드’에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부산에 초량동이 있다. 부산역 바로 앞이다. 서울로 따지면 서울역 앞 청파동, 아니 산비탈로 올라서야 하니 후암동쯤 되겠다. 가파른 건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목포역 앞에도 유달산이 있다.(왜 역 앞엔 늘 산이 있을까.) 아무튼 초량에 올라가면 부산 역사를 볼 수 있다. 부산역 역사(驛舍)도 보인다. 지명에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 초량이다. 목포가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는 그 산(山)의 배(腹)를 가른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이랄까. 고개를 들고 엉덩이는 빼고 하늘을 향한 계단을 딛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차로 오르내릴 하늘길이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다. 약 반세기 전 생겨난 부산의 허리띠 산복도로, 그중에서도 초량의 이야기다. ●왜구 침입 잦던 목초지서 19세기말 개항도시 초량은 부산의 원도심이다. 근대도시 부산이란 곳이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용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지만 부산은 확실히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다. ‘가마메’란 이름의 부산이 조선 성종 때 부산(釜山)이란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했고 동래(동래, 해운대, 수영 등)와 동평(지금의 부산 도심), 기장현으로 나뉜, 그야말로 촌구석 취급을 당했다. ‘왜구’랬을까? 잦은 왜구의 침입 탓이었다. 16세기 동래도호부로서 경상좌수영과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다음에야 부산(사실은 동래)은 뭔가 그럴싸한 도시 기능을 하게 됐다. 조선 후기 들어 조정은 사중면 초량에 왜관과 객사를 세웠고 이곳에서 왜와 외교를 했다. 초량은 그저 교통이 좋은 목초지대일 뿐이었지만 19세기 말 갑자기 주목받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장에 속했던 까닭이다. 일제(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와 청(효녀 아니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량은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줄곧 지켜오고 있다. 팽창을 노렸던 일제는 철도와 선박편으로 한반도,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부산을 주목했고 교통 주거 인프라 등 도시개발을 서둘렀다. 간척을 통해 넓어진 초량 일대는 항만(북항)과 철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청 역시 중앙부두와 철도 건설로 생겨난 일자리를 찾아온 자국민 ‘쿨리’(苦力)를 위해 청관을 세웠다. 지금도 초량 부산역 앞에는 차이나타운이 남아 과거 조계지 시절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다. 처음엔 ‘남의 문화유산답사기’였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가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10만여명에 불과하던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무려 14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니 당장 거주지가 태부족이었다. 산기슭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산에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다. 물론 초량 뒷산에도 올라갔다. 하늘까지 층층 이어진 달동네가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백제병원·남선창고… 사람·돈 돌던 이바구길 높이 올라가면 그 역사가 자세히 보일까 싶어 초량을 올랐다. 해발 0m 근처인 부산항, 부산역에서부터 400m 남짓한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그 옆이 초량(草粱)이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부산의 옛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를 들으며 시티투어를 하는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재미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득실한 해운대와 비교하자면 낡은 원도심 마을이겠지만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내려온 배가 초량(그때는 이 일대가 바다였다) 앞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 창고라 불렀다. 선창 일거리만 해도 넘쳐났다. 전국에서 생선 장수들이 몰려들고 청요릿집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전쟁 후 북선 창고는 남선 창고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수산물 유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촌’이 초량에 생겨났다. 말하자면 서울 이태원 격이다.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부산 국제시장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와 필리핀 간판이 가득한 유흥가를 그냥 지나치려고(정말이다) 했지만 이곳에 ‘이바구’가 숨어 있다. 1927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 제645호)이 초량 외국인 거리에 있다. 김해 출신인 최용해는 일본에서 의대를 나와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부산에서 최고 높은 5층 벽돌건물을 짓고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닐까?)을 열었다. 처음엔 병원이 잘됐지만 돌연 사건이 터졌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 시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던 것이 들통났다. ‘돈 없는 환자가 가서 죽으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표본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겁을 먹은 환자들이 외면하며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졌다. 결국 최용해는 일본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대형 청요릿집과 예식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여지껏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현재는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은 일부 허물어진 역사의 잔흔 그대로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커피향만큼은 세련되고 파릇하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남선 창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명태처럼 온데간데없지만 상업과 물류의 지력(地歷)만큼은 여전하다. 우연인지 그 자리엔 현재 할인마트가 생겼는데 옛 창고의 담벼락 일부만 남았다. 1900년대 생겨난 국내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한자동맹 중심지)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전국에 명태를 공급하던 곳이지만 직접 명태를 서울로 공급하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초량 앞바다가 매립된 후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다가 사라질 줄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반대가 되니 좋은 뜻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만 평지다. 이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 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초량초교는 전통이 오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우’인 가수 나훈아와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이 이 학교를 다녔다. 아, 나훈아의 ‘테스형’은 다른 곳을 나왔다. 아테네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공부했다. 초량초교 동문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1947년생, 60년생, 67년생이니 시대는 달랐지만 초량의 변화 속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선 창고가 있던 곳이니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미래의 가수를 위해 누군가는 눈깔이 없는 명태를 먹었다.●168계단 줄기 삼아 작은 골목 가지처럼 연결 길가에는 1893년 지어진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개신교에선 뜻깊은 장소로 알려졌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무려 130년 가까이 됐다. 초량은 얼마나 신식 문물이 빨리 들어온 곳이었나.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부는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제주 올레길처럼 이바구길에는 곳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 역시 옛 분위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딱 추억 속 ‘점빵’ 풍경이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 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쉼터 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끄덕여야 할 만큼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168개의 계단이다. 페루 마추픽추의 계단과 닮았다.계단을 큰 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초량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 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생겨나 ‘도가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계 레일 탓에 정취는 덜하지만 인정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만큼 모노레일 캐빈 속 공간은 따스하다. 소통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168빵카페가 있다. 고소한 빵과 커피 향에 이끌려 저절로 내리게 된다. 일명 ‘홍신애빵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차렸다. 홍씨는 초량 여행을 많이 다닌 듯하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갓 구워 낸 빵 조각을 씹는 그 순간이 초량 이바구길 여행의 딱 중간쯤 된다. 영락없는 전망 휴게소 역할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그는 이 집에 살았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바다를 두고 아래에 다닥다닥 이어진 작은 집들의 지붕을 통해 ‘부싼 싸람’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저 바다를 그리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고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했을 것이다.●블록 쌓아 올리듯… 만화같은 산동네 지붕들 옥상마다 놓인 파란색 물탱크, 허공을 가르는 목욕탕 기둥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난 계단,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차곡차곡 이어진 집들이 만화 같은 산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또 우리 마당은 아랫집 지붕으로 이어진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 더미. 전란을 피해 내려와 산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 반세기가 지나니 말씨도 마음씨도 진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높이 오르니 부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거리며 부산의 허리를 연결한다. 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경치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바다와 항구, 마을과 철도, 교량과 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란 것은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 등 곳곳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여 있다. “여봐요, 백신은 맞았나요?” 1년 후 나의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현실 속 걱정을 함께 적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인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세상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담는 ‘근사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체통 앞에선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펴진다. 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어떤 감상을 마음속에 쌓아 가며 자랐을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무슨 영화 속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초량이 지켜온 반세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살며시 뭔가를 상상해 본다면? 그 포근한 이야기란 차가운 유리투성이 도시의 것보다는 썩 좋을 듯하다. 바다로 열린 청마의 우체통에선 많은 상상들이 미래로 전송되고 있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초량 여행 체크리스트 뭘 먹지? 50년 부산 중심지 초량엔 먹거리가 많다. 부산에 사는 이도 부산을 오가는 이도 초량을 찾아 대선 소주잔을 기울여 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산복도로에서 더 올라가면 360도 전망의 구봉산 초량공원,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돼지불고기를 파는 기사식당 거리와 만난다. 일명 ‘불백거리’인데 값싸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택시 기사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좀더 내려오면 이름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있다.은근히 잘하는 고깃집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산 사람은 아침에 회를 먹고 점심에 생선구이, 저녁에 곰장어 등 생선만 먹고 살진 않는다. “집이 부산이세요? 그럼 집에 배 있겠네요?” 식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매우 어이없어 한다. 구석구석에는 돼지국밥집, 시락국밥집, 유명한 밀면집도 있다. 전국 민물 양식장에서 ‘부산 갈메기’들을 죄다 쓸어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메기탕집도 있다.168빵카페=부산 동구 영초길 191번길 8-1. (010)9330-8544. 168도시락국=부산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소문난불백=부산 동구 초량로 36. (051)464-0846 초량밀면=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051)462-1575. 은하갈비=부산 동구 초량중로 86 (051)467-4303. 우리돼지국밥=부산 동구 초량로 27-1번길 (051)468-5623. 초량메기탕=부산 동구 초량로 15. (051)464-3398. 어딜 가지? 초량은 범일동, 보수동, 중앙동 등과 이어진다. 영화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된다. 격렬하게 매운 떡볶이와 조방낙지로 유명한 곳도 범일동이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인 중앙로는 부산역 쪽으로 건너면 나온다. 어쩐지 익숙하다 할 거다. 맞은편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등장한 보수동 계단이 있다. 헌책방 거리와 자그마한 카페들이 있어 요모조모 둘러볼 것이 많다. 여행상품은? 반값 할인을 뜻하는 ‘반할부산’은 열차와 연계한 다양한 부산여행상품 ‘진짜부산트레킹’을 판매한다. 원도심투어를 비롯해 흰여울마을과 달맞이고개, 황령산 등 다양한 지역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899-2550.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당일(반나절) 버스투어 상품으로 판매한다. 일정은 오전 9시 50분 부산역 이바구버스 정류소 앞 집결 후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초량 168계단&모노레일 탑승, 초량 1941, 초량전통시장(불백골목) 경유 낮 12시 30분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2만원. (051)469-4113.
  • ‘아마존 미용실’ 英에 연다… AR 기술로 머리모양 선택

    ‘아마존 미용실’ 英에 연다… AR 기술로 머리모양 선택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 된 아마존이 최근 오프라인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언론업, 유통업 등에 이어 미용산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아마존은 영국 런던에서 처음으로 미용실 점포를 개설한다. 금융 중심지구인 시티 오브 런던 인근 빌딩 2개 층에 ‘아마존 살롱’의 문을 여는데 우선 주변 아마존 영국 본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몇 주 안에 일반 대중의 예약을 받을 계획이다. 점포 면적은 약 140㎡다. 아마존 살롱에서는 내부의 의자마다 태블릿PC를 배치하고, 증강현실(AR) 기술로 고객이 스스로 원하는 헤어스타일과 염색 색깔 등을 직접 얼굴에 대보고 비교해 보게 하는 등 다양한 정보기술(IT)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제품에는 QR코드를 붙여 관심 있는 고객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아마존은 “이용자들이 최상의 기술과 헤어케어 용품,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새로운 기술을 시험할 장소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4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 음악 스트리밍, 게임에 이어 아마존 살롱처럼 패션과 미용업계에도 활발히 진출하며 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2017년에는 인공지능(AI) 비서 알렉사를 활용한 ‘에코 룩’ 장치도 내놨다. 고객의 체형과 옷 등을 기반으로 의상 조언을 하는 서비스였지만 지난해 단종됐다. 특히 온라인 기술을 접목해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건 최근의 두드러진 변화다. 서점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고, 유통업에 뛰어들어 ‘홀푸드마켓’을 인수하고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를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의 수석 분석가 수카리타 코달리는 이번 시도에 대해 “아마존은 고객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배우고 그들의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라면서도 “당황스럽다(baffling). 헤어 스타일은 개인 맞춤형 특성이 강한데, 이는 아마존의 강점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AR로 스타일 골라요” 아마존, 영국에 미용실 연다

    “AR로 스타일 골라요” 아마존, 영국에 미용실 연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 된 아마존이 최근 오프라인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언론업, 유통업 등에 이어 미용산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아마존은 영국 런던에서 처음으로 미용실 점포를 개설한다. 금융 중심지구인 시티 오브 런던 인근 빌딩 2개 층에 ‘아마존 살롱’의 문을 여는데 우선 주변 아마존 영국 본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몇 주 안에 일반 대중의 예약을 받을 계획이다. 점포 면적은 약 140㎡다. 아마존 살롱에서는 내부의 의자마다 태블릿PC를 배치하고, 증강현실(AR) 기술로 고객이 스스로 원하는 헤어스타일과 염색 색깔 등을 직접 얼굴에 대보고 비교해보게 하는 등 다양한 IT 기술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제품에는 큐알(QR) 코드를 붙여 관심 있는 고객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아마존은 “이용자들이 최상의 기술과 헤어케어 용품,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새로운 기술을 시험할 장소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1994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 음악 스트리밍, 게임에 이어 아마존 살롱처럼 패션과 미용업계에도 활발히 진출하며 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2017년에는 인공지능(AI) 비서 알렉사를 활용한 ‘에코 룩’ 장치도 내놨다. 고객의 체형과 옷 등을 기반으로 의상 조언을 하는 서비스였지만 지난해 단종됐다. 특히 온라인 기술을 접목해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건 최근의 두드러진 변화다. 서점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고, 유통업에 뛰어들어 ‘홀푸드마켓’을 인수하고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를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의 수석 분석가 수카리타 코달리는 이번 시도에 대해 “아마존은 고객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배우고 그들의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라면서도 “당황스럽다(baffling). 헤어스타일은 개인 맞춤형 특성이 강한데, 이는 아마존의 강점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이어 헤어 스타일링 분야는 개개인의 ‘장인 정신’이 빛나기 때문에 항상 첨단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손글씨에 담은 위로… 책방, 여행의 목적지가 되다

    손글씨에 담은 위로… 책방, 여행의 목적지가 되다

    ‘두 유 리드 미’(Do you read me?!) 서점을 처음 알게 된 건 2014년이었다. 유명 카드 회사의 프로젝트로 베를린 취재를 왔었고, 꼭 가 봐야 할 열 개의 숍 중 하나로 이곳을 소개했다. 미테의 작은 서점이지만, 큐레이션이 좋아 당시 베를리너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었다. 지금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미테의 명소가 됐다. 베를린을 찾는 한국의 여행자들에게도 필수 코스로 꼽힌다. 한국의 많은 매체에서 이 서점을 소개하기도 했고, 블로그에도 많이 나오며, 한국 연예인들도 다녀가 더 유명해졌다. 특히 한 여자 연예인이 어떤 프로그램에서 이 서점의 에코백을 메고 나온 후 인터넷에서 ‘공구’를 할 정도로 큰 인기였다. 검은 바탕에 서점의 이름이 깔끔하게 박힌 에코백이 베를린 여행의 필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증 아이템이 된 것이다. 서점에서도 이 에코백이 유독 한국인들에게 인기인 걸 알고 한국인처럼 보이면 알아서 먼저 보여 줬다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서점은 사실 그렇게까지 친절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관심에 가깝다. 뭔가를 물어보지 않는 이상, 손님이 뭘 보든 뭘 찾든 신경을 거의 안 쓴다. 사실은 그래서 대놓고 책 보기 좋은 곳이다. 얼마 동안 머물든 상관을 안 하니까. 눈치를 안 봐도 되니까. 두 유 리드 미는 미테 한복판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낡은 나무 간판에는 ‘?!’ 표시만 새겨져 있어 간판을 보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작은 내부 안에는 전 세계의 평판 좋은 최신 잡지와 아티스트들의 컬렉션, 디자인, 사진, 건축, 문학에 관한 전문 서적들이 가득하다. 이 작고 콧대 높은 서점에서 나는 유명 작가의 사진집과 잡지를 많이 봤다. 너무 비싸서 사기 부담스러운 책들도 마음대로 볼 수 있고(비닐로 싸 놓은 책이 거의 없으므로), 노골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들에서 영감도 많이 얻는다. 또 베를린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베를리너들이 추천하는 장소를 소개해 놓은 단행본을 꼬박꼬박 샀다. 계절마다 한 권씩 나오는데, 책에 소개된 장소들을 보면서 새로운 베를린 탐험을 하기 좋았다. 작은 책 속에는 짧은 설명이긴 하지만 요약이 잘 돼 있고, 직업별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곳들도 엿볼 수 있었다. 미테를 정처 없이 걷다가도 가장 만만하게 숨어들기 좋은 서점이었다. 오셀롯 서점은 소개한 서점 중에 (유일하게)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곳이다.(두스만 지하에도 카페가 있지만 좀더 분리된 느낌이라 이곳이 좀더 서점 안 카페 같은 느낌이 든다.)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곳. 물론 지금은 록다운 때문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모두 치운 상태다. 커피도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미테의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브루난스트라세에 자리한 오셀롯(Ocelot)은 규모가 꽤 크고 정리도 잘 돼 있다. 네모 반듯한 구조가 아니라 약간 사선의 비정형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넓은 복도를 따라가는 느낌으로 책을 구경할 수 있다. 책은 분야별로 구획이 잘 나누어져 있어 찾기 쉽다. 다만 영어로 된 섹션 비중이 크지는 않아서, 독일어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선택에 한계가 있다. 그래도 비주얼 강한 예술 전문 서적과 패션 잡지가 많아서 곳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읽을 수 있다.(이곳도 책으로 진열해 두어서 지금은 앉을 수 없다.)‘오셀롯’이란 이름은 원래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 이름이다. 표범 같은 갈색 점무늬가 특징이다. 오셀롯은 살바도르 달리가 평생 키운 반려동물로도 유명하다. 달리는 모든 모임에 오셀롯 ‘바부’를 데리고 다닐 만큼 아꼈으며, ‘살아있는 옵 아트’(추상적 무늬와 색상을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실제로 화면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미술)라 부르며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커피 카운터가 있는 벽 위에 일러스트로 그린 오셀롯이 있으며 오셀롯이 그려진 포스터와 에코백, 머그컵 등의 자체 상품도 판매한다. 서점으로서 오셀롯만의 특징이라면 자체적으로 추천하는 책에 직접 손 글씨로 쓴 띠지를 둘러놓는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직접 쓴 추천 띠지를 책에 두르거나 메모를 붙여 놓는 독립서점이 몇 군데 있다. 오셀롯도 띠지에 추천 책들에 대한 감상이나 이유 등을 적어 두었는데 그 이유들이 꽤 시적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을 읽는 건 덜 아문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와 같은 구절. 딱지를 떼어낼 때 느껴지는 특유의 쾌감이 있으면서도 덜 아문 상처로 인한 쓰라림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책이라니…. 베를린 시인인 순예 레베요한의 시집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시를 읽고 싶게끔 만드는 추천사가 아닌가. 직원들의 이름 아래 아름답고 시적인 추천사가 적혀 있는 곳, 오셀롯에 있으면 독일어를 열렬하게 배우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이동미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검은 숲의 호수 끝엔 인어 아가씨가 할로! 초록 숲의 겨울 끝엔 하얀 구름바다 할로!

    검은 숲의 호수 끝엔 인어 아가씨가 할로! 초록 숲의 겨울 끝엔 하얀 구름바다 할로!

    “독일에선 새해에 뭐해? 한국에선 부모님께 세배하고 아이들은 돈 받고, 큰 자식들이면 부모님께 돈 드리고. 그리고 가족들이 다 모여서 떡국 먹어.” 새해마다 가족과 보내던 아침이 이젠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이 됐다. ‘떡국’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떡국은 또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소고기 반, 물 반일 정도로 푹 넣고 끓인 고기 국물에 혀가 착착 감기던 엄마 표 떡국도 베를린에선 먹을 수 없다. 그래도 육개장 국물로 만든 이상한 떡국 안 사 먹고(작년에), 올해는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은 것만으로도 새해를 두 배는 잘 시작한 기분이다. 할 줄 아는 음식이 늘어갈수록 퍽퍽한 외국살이도 조금씩 야들야들해지는 기분이다.●행운을 가져다주는 새해 도넛, 판쿠흔 “독일에선 특별하게 뭐 하는 게 없는데…. 그냥 산책해.” 그래서 우리는 지난 1년 내내 했던 것처럼, 또 1월 1일부터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오후 4시가 넘으면 도시는 캄캄해지고 한밤중 같은 어둠에 휩싸이므로, 마음은 2시부터 급해진다. 가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시나몬롤도 하나 샀다. “그러고 보니 베를린에서도 새해에 먹는 게 있긴 해.” 남자친구가 말했다. 도넛같이 생긴 ‘베를리너 판쿠흔’ 이야기가 시작됐다. “베를린에선 이 도넛을 판쿠흔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자란 독일 남부에선 판쿠흔은 그냥 팬케이크를 말하거든? 그래서 이 도넛을 말할 땐 판쿠흔이라 하지 않고 그냥 ‘베를리너’라고 불렀어. 베를린 사람들이야 굳이 ‘베를리너’를 붙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판쿠흔이라고 부르는 거지.” 독일 지방에 따라 베를리너 혹은 판쿠흔이라 부르는 이 도넛은 우리에겐 던킨 도넛과 비슷한 모양새다. 가운데 구멍은 없고, 안에는 과일 잼이 들어 있다. 도넛 위에는 두꺼운 설탕 아이싱이나 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판쿠흔은 전통적으로 질베스터(새해 전야)나 로젠몬탁(사순절 전 월요일) 등 카니발 데이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먹었다.(하지만 지금은 1년 내내 먹는다.) 원래는 자두 잼을 넣는 것이 정석인데 요즘은 살구나 딸기, 오렌지 마멀레이드 잼을 넣기도 한다. 여러 개를 사는 경우 겨자가 들어간 판쿠흔도 슬쩍 한 개 끼워 둔다. 이 겨자 잼(?)을 먹는 사람이 최고의 행운을 갖는다는 농담 때문이다. 행운이 찾아온다니, 베를리너들도 아무리 코가 알싸해져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먹지 않을까? 재미 삼아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먹어봐야겠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오래 걸었다. 공원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정초에 산책하는 게 정말 풍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온 아빠,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꼬마, 함께 걷는 커플 등 모두 각자의 산책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된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많이 걷는다는 걸, 한겨울에도 공원 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걸.●검은 숲에서 가장 크고 깊은 호수, 뭄멜제 베를린에 오고 나서 보낸 첫 겨울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해가 많이 안 나서 그렇지 영하로 내려가는 날도 별로 없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았다. 겨울 내내 눈은 거의 내리지 않았다. 드물게 한 번인가 왔던 것 같다. 눈은 남자친구 부모님이 사는 카를스루에(Karlsruhe)에 가서 제대로 보았다. 해를 넘겼으니 벌써 2년 전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그의 가족들과 보내고, 그중 하루는 둘이 여행을 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검은 숲’에 가고 싶었다.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라는 이름에 매혹돼 언제고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독일어로는 슈바르츠발트, 하지만 독일어 발음이 낯선 내게는 ‘블랙 포레스트’라는 이름이 훨씬 신비롭게 다가왔다. 검은 숲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다. 크게 북부의 검은 숲과 남부의 검은 숲으로 나뉘는데, 카를스루에에서는 북부의 검은 숲이 가깝다. 막연하게 동경하던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가게 되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쉽게 믿기지 않았다. 검은 숲의 북쪽을 향해 달리는 차 안은 따스하고 아늑했다. 이렇게 달린다면 몇백 시간을 달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위스를 여행하며 흔하게 보았던 샬레(오두막집)들이 독일의 검은 숲에도 똑같이 펼쳐졌다. 12월에도 파릇파릇한 풀들의 초원이 그대로 있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계절을 알 수 없는 초록색 초원을 지나 귀가 점점 먹먹해지는 산길을 달리니 이번엔 50m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우리를 반겼다. 미스터리한 안개들이 몰려왔고, 점점 키가 큰 전나무들이 덩치를 드러냈다. 바덴바덴의 산 중턱에 걸려 있는 안개들을 뚫고 더 높은 데로 오르자 이번엔 새하얀 구름이 산 위에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말 그대로 구름바다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운해를 본 것이 얼마만인지, 태어나 처음 본 것처럼 감탄했다.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산꼭대기에 오르자 이번엔 사방이 한겨울로 바뀌었다. 캐나다 로키산맥을 달리며 보았던 몇십m 되는 전나무들이 이곳에서도 눈을 얹고 있었다. 로키산맥의 마을 재스퍼에서 머물렀던 별장도 떠올랐다. 그런 고요한 별장이 많은 이곳 바덴바덴에서도 하룻밤을 머물며 스파를 해도 좋겠다 생각했다. 바덴바덴은 독일에서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다. 산을 넘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뭄멜제(Mummelsee). 검은 숲의 남북을 잇는 분데스스트라세 500번 도로 옆에 바로 위치한 호수다. 북부에 있는 여러 분지 호수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뭄멜제’라는 이름은 흰 수련을 뜻하는 이 지역 언어 ‘뭄메른’(Mummeln)에서 유래했다. 오래전에는 이 부근에 흰 수련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지금은 물고기도 살지 않는다. 인기 관광지답게 주차장이 다 차서 좀 멀리 차를 세우고 푹푹 꺼지는 눈길을 걸어 호숫가로 향했다. 호수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기념품숍을 영혼 없이 둘러보고 곧장 호숫가로 갔다. 계단을 오르니 느닷없이 호숫가가 펼쳐졌다. 호수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눈 덮인 전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흰 숲의 풍경이 고스란히 호수에 투영됐다. 완벽한 데칼코마니. 신비로운 풍경이다. 하얀 눈의 정령들 때문에 해가 없어도 눈이 부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크게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인간을 도와준 인어들이 살고 있는 뭄멜제 뭄멜제는 여러 가지 전설을 갖고 있다. 그중 인어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옛적에 이 호수에는 인어들과 인어를 지키는 인어 왕이 살았다. 인간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자, 왕은 특별히 한 인어를 선택해 인간과 같이 살게 했다. 인어는 호숫가에 살면서 밤에 사람들을 돕고,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지냈다. 인어는 양털을 물레에 돌려 좋은 털실을 만들어 인간에게 주었고, 인간들은 이 아름다운 털실로 짠 옷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인어 왕은 매일 새벽 1시가 되면 인어들을 불러 물속으로 데려갔다. 뭄멜제에서 새벽 1시는 인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불행은 언제나 그렇듯 인간들이 불러왔다. 돈맛을 안 인간들이 점점 돈을 버는 데에 혈안이 됐다. 화가 난 인어 왕은 더이상 인간을 도와주지 않고 인어들을 데리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많은 작가들이 이 인어 이야기를 비롯해 호수에 전해내려오는 여러 전설과 관련된 내용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작품과 조각상들이 호수 곳곳에 설치돼 있다. 물레를 돌리는 인어의 모습이 새겨진 나무 조각상도 있고 호수 한가운데에서 피는 꽃을 손에 넣으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마법의 ‘푸른꽃’도 세워져 있다. 호수 중간쯤 가면 베르그 호텔을 바라보고 있는 인어상을 볼 수 있다. 바위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이 인어가 사람들과 함께 살던 인어다. 이 인어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호수와 숲에 살던 인어들과 동물도 보살폈다. 안내판에는 가지고 있는 근심을 호수에 던지고 인어가 속삭이는 말을 들으라고 써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소원을 인어에게 빌라고. 그러면 인어가 웃으며 들어줄 거라고.●눈오는 날 다시 걷고 싶은 둘레 800m 호수 이곳 마을 사람들은 뭄멜 호수를 신성시했다. 호수에 돌을 함부로 던지면 폭풍우가 몰려오고, 반드시 해코지를 당한다고 믿었다. 호수의 깊이는 무려 18m. 저 캄캄한 물속에 지금도 인어가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깊이였다. 호수의 둘레는 800m다. 인어상을 지나고 나면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하얀 전나무 숲길과 더 깊은 산책 길로 이어진다. 남자친구의 낮고 얇은 초록색 스니커스는 눈길에 금세 젖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젖은 발이 엄청 시렸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아서 몰랐다. “발이 점점 얼고 있어.” 짜증이라곤 조금도 섞이지 않은 그의 말이 호숫가의 얼음처럼 고요했다. 그제서야 눈치를 챈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와 베르그호텔의 따스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처럼 몸을 녹이고 따뜻한 수프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온기가 가득했던 실내에서 이 지방의 전통 음식을 나눠 먹었다. 사람들로 북적댔던 그 레스토랑도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그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카를스루에도, 검은 숲도, 부모님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021년을 맞았다.남자친구의 가족들은 메신저로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다. 얼마 전 부모님과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눈이 펑펑 내린 검은 숲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곳에서 썰매를 타는 조카들의 모습도 함께. 다시 눈 덮인 검은 숲으로 가고 싶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마침 베를린에도 눈이 내린다. 지난해에는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눈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눈 소식이 있다. 다시 뭄멜제에 간다면, 지난번에 미처 하지 못한 소원을 인어에게 빌고 싶다. 올해는 사람들이 꼭 가족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의 부모님도, 독일의 부모님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이것 하나만 지켜 달라고. 이동미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갈수록 작아지는 ‘지구의 허파’…아마존 열대우림 8% 사라졌다

    갈수록 작아지는 ‘지구의 허파’…아마존 열대우림 8% 사라졌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에 대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브라질의 민간단체 ‘지리좌표 사회환경정보 아마존 네트워크'(RAISG)는 8일(현지시간) ‘시달리는 아마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8년 아마존에선 열대우림 51만3016㎢가 벌목으로 증발했다. 전체 면적의 약 8%가 벌목으로 초토화됐다는 것. 보고서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원인은 각종 채굴산업과 벌목, 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 화재 등 다양하지만 가장 심각한 원인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벌목”이라고 지적했다.2000~2018년 사이 벌목으로 아마존 면적이 가장 많이 줄어든 해는 열대우림 4만9240㎢가 사라진 2003년이었다. 피해 규모는 한때 줄어드는 듯했지만 2012년부터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해 특히 2015~2018년엔 벌목으로 증발한 면적이 3배로 늘어났다. 2018년에만 아마존 열대우림의 면적은 벌목으로 3만1269㎢ 작아졌다.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표적 국가는 아마존 대국 브라질이다. 아마존 전체 면적의 62%가 몰려 있는 브라질에선 19년간 열대우림 42만5051㎢가 벌목으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2019년 이후의 자료는 이번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아마존의 벌목 피해는 속도가 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1월 출범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정권은 원주민 보호구역 지정을 미루는 등 사실상 아마존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브라질 아마존이 벌목으로 초토화하고 있다면 화재 피해가 심각한 곳은 단연 볼리비아 아마존이다. 보고서는 “2001년부터 매년 평균 아마존 열대우림 16만9000㎢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있다”면서 “전체 면적 대비 피해구역 비율로 보면 화재 피해가 특히 큰 곳은 볼리비아 아마존”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볼리비아 아마존은 전체 면적의 27%가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올해는 이 비율이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보고서 분석에선 제외됐지만 볼리비아는 올해도 아마존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지구의 허파를 보호하기 위해선 관련국의 보호정책부터 조율되어야 한다”면서 아마존 보호에 국제적 공조를 촉구했다.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수리남, 가이아나, 프랑스령 기아나 등 9개국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은 약 840만㎢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아마존 열대우림에 삶의 터전을 둔 사람은 원주민을 포함해 4700만 명에 이른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모더나 “코로나 백신, 연령 상관없이 예방효과 3개월”(종합)

    모더나 “코로나 백신, 연령 상관없이 예방효과 3개월”(종합)

    내년 한 해, 최대 10억 회분 제조 전망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4일 내년 1분기 전 세계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1억∼1억2500만회분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중 미국으로는 8500만∼1억회분이 제공되고, 나머지인 1500만∼2500만회분은 다른 나라로 전달된다. 내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제조되는 분량은 5억∼10억회분일 것으로 모더나는 전망했다. 모더나가 개발해온 코로나19 백신(mRNA-1273)은 임상시험에서 예방 효과가 94.5%로 나타나 또 다른 미 제약사 화이자와 함께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예방효과 연령 상관없이 3개월 간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이 연령과 무관하게 1차 접종 후 119일(2차 접종후 90일)까지 예방효과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mRNA-1273’의 임상 1상 지속성 데이터가 공개됐다. 이 논문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mRNA-1273 접종 후 반응 지속성’(Durability of Responses after SARS-CoV-2 mRNA-1273 Vaccination)이란 제목으로 국제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지난 3일(현지시간) 게재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모더나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후 119일, 2차 접종후 90일까지 연령과 무관하게 중화항체와 면역원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원성이란 바이러스 감염성을 없애거나 낮추는 중화항체 증가 비율을 말한다.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34명을 대상으로 28일 간격으로 모더나 백신(용량 100μg)를 2회씩 접종했다. 이후 34명을 18~55세, 56~70세, 71세 이상 연령군으로 나눠 중화항체 보유량을 확인했다. 그 결과 연구진의 예상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화항체 보유랑이 소량 감소하긴 했지만 모든 참가자들이 두 번째 접종 3개월 후에도 중화항체 보유량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임상1상 중 심각한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백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부작용 역시 접종 57일 이후에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토대로 모더나 백신 용량 100μg 기준으로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이날 뉴욕 증시에서 모더나 주가는 장 마감 후 2%가량 내린 주당 154.4달러를 나타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납치·강간에 살해 위협 받는 파키스탄 14세 소녀 英 망명 허용을”

    “납치·강간에 살해 위협 받는 파키스탄 14세 소녀 英 망명 허용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파키스탄의 기독교 소녀의 망명을 허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4세 소녀는 지난해 4월 펀잡주 파이살라바드의 집 근처를 산책하다 이웃에 사는 무슬림 남성 무함마드 나카쉬에게 납치 당했다. 두 공범과 함께 소녀를 자동차에 태웠는데 행인들이 말리려 하자 총을 공중에 발사해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총을 겨눠 위협하며 그녀를 끌고 갔다. 이들은 매춘 조직의 행동대원이란 의심을 샀다. 나카쉬의 집 지하실로 소녀를 끌고 가 약물을 마시게 한 뒤 강간하며 그 모습을 촬영했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했으나 남자들은 듣지 않았고, 나카쉬의 어머니가 지하실에 들어와 “이제 어디에도 못 간다. 우리 명령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나중에 증언했다. 납치를 목격한 사람들과 그녀의 홀어머니가 법원 증언에 나서 그녀를 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소녀는 결혼하겠다고 서류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카쉬를 안심시킨 뒤 탈출했다. 그러자 나카쉬 일당은 재판에서 자신의 뜻대로 증언하지 않으면 동영상과 사진들을 배포하고 가족들을 몰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소녀가 자신과의 결혼에 동의했다며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겁을 줬다. 지난 8월 파키스탄 법원은 그녀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쉼터에 있어도 좋다고 판결했는데 고등법원은 이를 뒤집어 결혼은 합법적이며 나카쉬의 집에 소녀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소녀는 쉼터를 탈출해 숨어 버렸다. 변호인은 나카쉬 친구들이 법정에 우르르 몰려와 소녀를 혼내주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자선단체로 전 세계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돕는 ‘도움이필요한 교회 돕기 운동본부(Aid to Church in Need)’는 영국 정부가 소녀의 망명을 받아들이라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존 폰티펙스 대변인은 “이 충격적인 사례는 종종 서방 국가들도 포기한 기독교인의 안위를 지켜주겠다는 영국의 맹세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10년 이상 교도소에 수감됐던 파키스탄의 기독교 여성 아시아 비비가 지난해 캐나다에 망명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 정부는 당시에도 비비의 망명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저했고, 결국 비비는 캐나다로 방향을 틀었다. 존슨 총리는 당시 그녀를 영국에 오게 하고 싶지만 “폭력에 대한 협박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지 못하게 허용해선 안된다”고 했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는데 행동은 정반대로 수수방관했다.인권단체들은 최근 파키스탄 법원이 기독교와 힌두교를 믿는 소녀들이 매년 수백명씩 납치돼 결혼을 강요 당하고 이슬람 개종을 강요당한다고 주장한다. 판사들은 편견을 갖고 있거나 보복이 두려워 납치 혐의자들을 엄단하는 데 주저한다. 현재 소녀와 어머니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재판을 받고 있지만 소녀를 돕는 이들은 경찰의 보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카쉬는 되레 어머니와 친척들이 자신의 아내를 납치했다고 맞고소를 제기했다. 살해 위협을 보낸 것은 자신이 아니라 친구들이라고 발뺌했다. 변호인 수메라 샤피크는 “소녀는 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그녀와 가족이 파키스탄을 떠나지 않으면 그들은 늘 살해 위험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 ACN은 정부가 답변을 해야 하는 1만명의 서명을 거의 다 받았다고 했다. 25일 런던에서 붉은수요일(#RedWednesday) 집회를 열어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할 계획이다. 반면 파키스탄 라호르에서는 지난 21일 정부가 신성모독 법률을 개정하려는 데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무슬림 지도자 카딤 후사인 리즈비의 장례식에 수만명이 운집했다. 리즈비는 비비에게 관용을 베풀어선 안된다고 주장했고, 무함마드 만평에 대한 항의로 프랑스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슬라마바드 집회를 주도해 온 도시를 마비시켰는데 갑자기 54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리뷰] 소용돌이 속 절절한 부성애 따라가면 어느새 눈물바다…창극 ‘아비, 방연’

    [리뷰] 소용돌이 속 절절한 부성애 따라가면 어느새 눈물바다…창극 ‘아비, 방연’

    “평생 올곧게 살아 금부도사 되었고 시대가 부르는 대로 원칙과 소신으로 살았으나 내 마음 흔들리게 한 것이 있으니…” 햇볕이 들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주군을 모시고 급기야 사약까지 두 손으로 직접 건네게 된 충신. 그는 신하이기 전에 홀로 애지중지 키운 딸의 아버지였다. 국립창극단이 지난달 3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창극 ‘아비, 방연’은 조선 초기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 당시 영월로 귀양가는 단종을 호송하고 유배 중이던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것으로 기록된 왕방연을 그린다. 무거운 임무를 수행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생몰연도가 기록되지 않으며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그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절절한 부성애를 지닌 한 아비로 풀어냈다. 땅에 발 닿을 틈도 없이 아끼고 아낀 딸 소사를 지키기 위해 왕방연은 충심을 다해 모셨던 주군 어린 단종의 유배길을 함께한다. 겨우 무사히 딸의 혼례를 치뤘지만 한명회의 계략에 신랑 송석동이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몰려 참형에 처해진다. 사육신의 삼족을 멸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혼례는 가졌지만 초야는 치루지 않았다”며 수의 입으려는 딸을 말리던 아비는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충신들의 아이들을 도륙하라고 직접 입을 뗀다. 남의 자식들이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가 하면 충신들의 아내와 딸들이 노비로 공신들에게 끌려가자 소사의 처지를 한명회에 애원하다 급기야 단종을 찾아가 사약을 내민다.“꼭 다시 모시러 오겠다”고 약속한 아끼던 왕방연이 찾아오자 반가워하던 단종은 이내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피눈물을 머금고 사약을 마신다. 왕방연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통곡하지만 이내 다시 딸을 생각하며 말을 달린다. 그야말로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왕방연이라는 한 아비의 정은 너무 처절하다 못해 내내 아프다. 결국은 주군도 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마는 왕방연의 처지가 딱한 것은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야속하고 잔인하다. 대사 한 줄, 가사 한 줄 곳곳에 마음을 울리는 단어들 투성이라 어느덧 무대 위 소리 만큼 객석의 훌쩍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지난 2015년 초연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무대엔 초연 주역인 김금미(도창), 최호성(방연), 민은경(단종) 등이 더욱 성숙하고 깊은 소리로 절절한 아픔을 뿜어냈다. 특히 소사를 연기한 박지현은 중학교 1학년이던 5년 전에 이어 고등학생이 된 지금 또 다시 호흡하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애절한 딸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다. “아버지, 나 다시 아이가 될까? 그럼 아버지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으니”라고 말하며 아버지 방연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소사의 눈빛과 목소리의 울림이 코끝을 찡하게 하며 감정을 툭 건드린다.이번 공연에 새롭게 참여한 이들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무자비하고 흉포한 성질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수양대군의 광기를 ‘국악계 아이돌’로 꼽힐 만큼 인기있는 김준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려냈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책략도 서슴지 않는 간사한 한명회를 이시웅이 카리스마있게 담아낸다. 사육신 가운데 성삼문을 노래한 유태평양을 비롯해 극 중 사육신이나 이들의 부인들, 자녀를 연기한 아역배우들까지 무대 위 모든 인물들이 진심을 다해 처절한 역사를 표현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도록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바쁘게 훔쳐가면 어느새 100분이 지나있다. 무대와 음악, 조명 등 많은 효과들이 더해졌지만 무엇보다도 오롯이 집중하도록 엮어낸 목소리들이 꽤 오랫동안 여운을 준다. 공연은 8일까지 이어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택진이형’ 만난 김종인…공개 발언은 게임 얘기만

    ‘택진이형’ 만난 김종인…공개 발언은 게임 얘기만

    김택진 대표 정계 진출 가능성 관심김종인 “특별히 또 만날 상황 없는 듯”김택진 “저는 기업가…정치에 뜻 없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27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났다. 정치권에서 김 대표의 정계 진출 가능성이 거론돼온 만큼 만남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은 이날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엔씨소프트 본사를 방문했다. 김 대표가 건물 입구에서 김 위원장과 국민의힘 미래산업일자리특위 위원들을 마중했다. 1층 로비에서 열린 행사의 취지는 정책간담회였다. 게임 산업을 4차 산업혁명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규제 개선을 논의하자는 것으로, 특위 위원장인 조명희 의원이 주도해 이뤄졌다. 김 위원장이 먼저 김 대표가 구단주로 있는 NC다이노스의 창단 이후 첫 프로야구 정규시즌 우승을 축하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엔씨소프트에서 게임만 만드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해 상당히 집중적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다”며 엔씨소프트가 AI 관련 정부 보고안을 제출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김 대표는 “특위 목표가 미래산업 육성과 좋은 일자리 제공이라고 알고 있다. 게임 산업이 바로 그런 목표에 부합하는 산업”이라며 “게임 산업은 ‘디지털 액터(배우)’를 만드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만남은 행사 주제와 별개로 이목을 끌었다. 정치권에서 김 대표의 정계 진출 가능성이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친근한 이미지로 ‘택진이형’이라는 별칭을 얻은 김 대표는 성공한 1세대 벤처 기업가로 꼽힌다. 상당한 인지도를 갖춘 그가 야권에 투신할 경우 ‘인물난’에 시달리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호재다. 다만 이날 공개 발언은 물론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김 위원장이나 김 대표 모두 정치 관련 발언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이 ‘김 대표와 또 만날 수 있겠나’라고 묻자 웃으면서 “뭐 때문에 추가로 만날 필요가 있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김 대표가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군으로 거론된다는 질문에는 “기업과 관련해서 특별히 물어볼 게 있으면 만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이외에 내가 만나야 할 상황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김 대표도 정계 진출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뜻이 없다. 저는 기업가다”라고 답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텔레그램방에서 ‘가짜 나체’ 합성…1년간 피해자 최소 10만명

    텔레그램방에서 ‘가짜 나체’ 합성…1년간 피해자 최소 10만명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여성 얼굴에 가짜 나체 사진을 합성해주는 텔레그램 대화방 피해자가 지난 1년간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영국 BBC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민간 정보업체 센시티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문제의 텔레그램 대화방은 사람들이 여성의 사진을 전달하면 ‘딥페이크 봇’(딥페이크를 만드는 인공지능)이 옷을 삭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딥페이크란 실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다른 인물이나 이미지에 감쪽같이 합성한 편집물을 뜻한다. 해당 텔레그램 대화방은 사진을 받고 몇 분 만에 편집을 완료하며, 비용도 청구하지 않는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텔레그램 대화방 1곳을 통해서만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약 10만 4852명의 여성이 가짜 나체 사진이 유포되는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BBC는 몇몇 여성의 동의를 얻고 그들의 사진을 이 대화방에 제출한 결과, 실제로 편집물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한 사진에선 배꼽이 횡격막 쪽에 달리는 등 편집물이 사실적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P’라고만 알려진 이 대화방 운영자는 BBC에 “이 서비스는 오락물일 뿐 폭력 행위는 없다”면서 “사진 퀄리티도 사실적이지 않아, 이를 이용해 누군가를 협박하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딥페이크봇은 그 어떤 사진이라도 무차별적으로 편집해 피해가 급격히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딥페이크 봇에 의뢰된 사진 중 일부는 미성년자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지오 파트리니 센시티 대표는 “사진이 노출된 SNS 계정만으로도 충분히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의 서비스는 특히 러시아 SNS 사이트인 VK에서 많이 광고되고, 이용자 대다수가 러시아 등 구소련 국가 출신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딥페이크를 활용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는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책 ‘딥페이크와 인포컬립스’의 저자 니나 식은 ”딥페이크물이 더욱 정교해지는 건 시간 문제“라며 ”우리의 법 제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이크 포르노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절망적인 상황“이라며 ”이들은 사생활 침해와 모욕감으로 인생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1세기로 온 향단이… 바로 나였구나

    21세기로 온 향단이… 바로 나였구나

    판소리 ‘춘향가’에서 향단은 조연 중의 조연이다. 향단의 역할은, 단오날 그네 뛰던 춘향과 그에 반한 이몽룡의 대화를 이어 주는 ‘쪽지’ 수준이다. 그런 향단을 주연으로 끌어올리고, 이름에 배경도 붙여 줬다. “춘향이 ‘향’자 따고 ‘끝 단’자 따서 향단이 하면 쓰겄다.” 동시에 그의 고민에 주목했다. 우리가 춘향 인생의 최대 위기로 봤던 그 순간,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해 옥에 갇힌 부분은 따져 보면 오로지 춘향을 위해서만 살아온 향단에게도 이만한 위기가 있을까. “이제 나는 어떡하면 좋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창작 판소리 ‘몽중인- 나는 춘향이 아니라,’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그럴 필요도 없었던 향단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이란 것을 해야만 하게 되면서다. 작품은 구상·작·작창·소리를 맡은 소리꾼 이승희가 2년 전 춘향의 내면을 들여다본 ‘동초제 춘향가- 몽중인’의 두 번째 연작이다. 춘향의 그네를 뒤에서 밀던 향단이 ‘딱해서’ 이번에는 향단을 무대로 세웠다. 처지를 골몰하던 향단은 꿈속에서 2020년 서울에 왔다. ‘언니’라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고 “네 자신을 위한 일을 해보라”는 권유에 취직도 한다. 여기서부턴 먹고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달리는 청년 노동자들과 많이 닮았다. 새벽 5시 사무실 청소, 정오부턴 카페 아르바이트, 저녁엔 패스트푸드에서 일하며 꽉 찬 일상을 보낸다. 마치 랩을 하듯 다양한 메뉴의 커피 주문을 받고 햄버거를 조리하는 과정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일도 열심히 잘하고 시급까지 받으니 향단은 춘향을 좇던 삶보다 나아진 듯한 느낌도 받는다. 그런데 어쩐지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된 노동은 여전했고 카페 매니저는 희롱을 일삼았다. 퇴근길 지하철에 자리가 있길 바라는 향단의 축 처진 얼굴은 우리 모습 그대로다. 언니는 “넌 뭐든 될 수 있다”는데 오히려 향단은 “뭐가 뭔지 알아야 뭐가 되든지 말든지”하며 좌절한다. ‘뭐’에만 고음을 올려 연신 꺾어대는 소리가 향단의 극심한 혼란을 보여 준다. 향단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얼굴들을 돌아보고서야 비로소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 “네가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듣고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꿈에서 깨기로 한다. 이승희는 “향단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2020년 서울’로 데려오게 됐고, 그 시대 노동자였던 향단을 통해 이 시대의 노동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소리를 받치는 장단도 춘향이 있는 시대엔 전통 고법으로, 향단이 꿈을 꿀 땐 베이스와 전자 키보드 등으로 구분돼 시대를 넘나드는 몰입감을 높였다. 다만 시대와 상황이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먹고살기 위한 치열한 현실이나 고민들은 어떤 반주에서든 뚜렷했다. 2017년 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 선정된 이승희는 음악과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국악창작자이기도 하다. 입과손스튜디오 멤버로 안데르센 동화시리즈와 ‘레미제라블’ 속 ‘팡틴’을 판소리로 재창작하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국악의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면서 “판소리 다섯 바탕 안에도 무수히 많은 인물과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 앞으로도 다양하게 해석해 관객들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동거녀 미성년 두 딸 강간한 남성, 징역 28년형

    [여기는 베트남] 동거녀 미성년 두 딸 강간한 남성, 징역 28년형

    최근 베트남에서는 동거녀의 미성년 두 딸을 강간한 남성이 2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낭 인민법원은 16세 미만 청소년을 강간 및 성추행한 혐의를 적용해 탄(38)씨에게 징역 28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베트남에서는 성인이 16세 미만 청소년과 성관계하면 징역 1∼15년에 처하는데, 탄씨는 두 딸을 강간한 혐의로 각각 징역 14년, 총 28년을 선고 받았다. 지난 2013년 탄씨는 이혼 후 사실혼 관계의 동거녀 H와 그녀의 두 딸과 함께 살았다. 두 딸은 각각 2000년생과 2003년생으로 당시 13살, 10살에 불과했다. 그는 첫째 딸이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점을 노려 2014년부터 음란물을 보여주고, 약을 먹인 뒤 강간한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딸도 지속해서 성추행, 강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딸에게는 사실을 알리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2017년 4월 동거녀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큰딸은 그해 11월 출산했으며, 검사 결과 탄씨의 아이로 밝혀지면서 그의 파렴치한 범죄 행위가 드러났다. 탄씨는 이 외에도 불법 마약 소지죄로도 체포된 바 있다. 한편 공안부의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2015년~2019년 1일 평균 5명의 아이들이 강간, 폭행에 시달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집 혹은 학교처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범죄가 발생했고, 가해자는 피해자와 가까운 가족 혹은 교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 통신원 litta74.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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