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손 큰 할머니의 뜨개질하기/채인선
찬바람이 쌔앵쌔앵 몰아치는 겨울날이었어요. 손 큰 할머니네 집에는 숲 속의 작은 동물들이 놀러와 있었어요. 너구리와 여우와 다람쥐였어요.
“할머니, 추워요. 이불 더 없어요?”
“추운데 뭐 하러 왔어? 제 집에서 겨울잠이나 잘 것이지.”
“만두 먹어야죠. 만두 때문에 겨울잠 못 자요.”
할머니는 쯧쯧 하며 혀를 차더니 몸을 일으켰습니다.
“가만있거라. 다락에 이불이 더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다락은 어두컴컴했어요. 할머니는 손으로 더듬더듬 이불을 찾다가 커다란 바구니를 발견했습니다.
“흠.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이불이나 들었으면 좋으련만.”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에게 할머니는 소리쳤어요.
“바구니를 내릴 테니 밑에서 받쳐라. 바구니가 엄청나게 크다.”
“예, 할머니!”
바구니를 받쳐 들면서 너구리와 여우가 속닥였어요.
“이건 보물단지야. 틀림없이 보물이 들어 있을 거야.”
“보물이라면 무거울 텐데, 그렇게 무겁지 않은걸?”
그때 다람쥐가 끼어들었어요.
“어쩌면 굶어죽은 도깨비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우리를 다 잡아먹을 거야.”
다람쥐의 말에 너구리와 여우는 “이크!” 하며 손을 놓쳤어요. 그랬더니 데구루루 크고 작은 털실뭉치들이 방안 가득 쏟아졌어요. 예전에 할머니가 젊었을 적에 뜨다 만 것들이었죠. 할머니가 신기해하며 중얼거렸어요.
“오호, 이것들이구나! 보물이긴 보물이네.”
너구리가 물었어요.
“할머니, 이걸로 뭐할 거예요?”
할머니가 털실을 매만지며 대답했어요.
“뜨개질해야지.”
다람쥐가 물었어요.
“무엇을 짤 거예요? 제 목도리 짤 거예요?”
“글쎄다, 알아맞혀 보렴.”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뜨개질 바늘을 찾아들었어요.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불어댔어요. 쌔앵쌔앵 덜컹덜컹. 바람소리가 무서워 동물들은 할머니 앞에 바싹 다가앉았어요.
손가락에 실을 감더니 할머니가 바늘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단단한 실뭉치 하나가 헤실바실 풀어집니다. 얼마 안 있어 실이 다 풀어지고 실 끄트머리가 보였어요.
“얘들아, 어서 실을 이어라. 실이 끊어지면 안 돼.”
할머니가 소리치자 바늘 끝만 쳐다보고 있던 동물들이 물었어요.
“왜요?”
“계속 떠야 하니까.”
“아, 그렇구나.”
“서둘러라. 어서 실을 이어.”
“예, 할머니.”
손이 빠른 여우가 얼른 실을 이었어요.
“바로 또 실을 이어야 하니까 미리 준비해 둬. 실이 끊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예, 할머니.”
갑자기 할 일이 생긴 동물들은 저희들끼리 열띠게 의논을 했어요.
“빨간색 다음에 노란색이 좋단 말이야. 노란색 다음에는 파랑색이 좋고…….”
“아니야. 이 노란색 대신 밤색이 나아. 밤색 다음에 노란색을 잇자.”
그러다 말싸움을 했어요.
“밤색은 똥색이야. 노란색을 먼저 해.”
눈 깜짝할 사이에 실 뭉치를 하나 없앤 할머니가 동물들에게 재촉했어요.
“급해, 급해. 어서 다음 것을 이어! 실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했지!”
“예, 할머니!”
동물들은 말싸움을 그만두고 실 뭉치들을 조르르 줄을 세웠어요. 뭉치가 작은 것들은 미리 끝을 이어두었어요.
점심때가 다가왔어요. 뜨개바늘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할머니가 말했어요.
“배고프다. 냉장고에서 만두 꺼내 와서 삶아라.”
“예, 할머니.”
“내 입에다 하나씩 넣어줘.”
“예, 할머니.”
“물도 줘. 목 마르다.”
“예, 할머니.”
“아이, 등이 간지럽네. 등 좀 긁어라.”
“예, 할머니.”
날이 저물었어요. 할머니가 말했어요.
“어둡다. 불 좀 켜라.”
“예, 할머니.”
“바람 들어온다. 문 좀 잘 닫아라.”
“예, 할머니.”
“무릎 아프다. 무릎 좀 주물러라.”
“예, 할머니.”
“화롯불 좀 들쑤셔라. 고구마 다 익었는지 보고.”
“예, 할머니.”
“고구마 먹고 자라.”
“예, 할머니.”
할머니는 뜨개질을 계속 했어요. 한 밤이 지나가고 두 밤이 되었어요. 그 많던 실 뭉치들이 없어지는 대신 할머니의 뜨갯것이 차츰 넓어졌어요. 하지만 그것이 이불인지 목도리인지는 아무도 몰랐죠.
밤이 지나 다시 아침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뜨개질을 멈추지 않았어요. 실을 남김없이 다 쓸 생각이었거든요. 그런 다음 푹 쉬려고 더욱 부지런히 바늘을 움직였던 건데 동물들은 그걸 몰랐어요. 동물들은 실이 자꾸 없어지는 걸 보고 초조했어요. 실을 어서 이으라고, 실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것이 마을로 실을 구하러 가는 것이었어요.
“할머니, 금방 갔다 올게요. 천천히 뜨고 계세요.”
“손 큰 할머니라면 엄청 큰 것을 떠야 하는데 실이 모자라면 안 되죠.”
“걱정 마세요. 우리가 실을 많이 구해올게요.”
동물들은 이렇게 말하고 마을로 내려갔어요. 할머니는 뜨개질에 열중해서 동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실 구해요. 실.
다락이나 헛간 속에
못 쓰는 실이나 아직 안 쓴 실,
쓰다 만 실이나 나중에 쓰려고 아껴둔 실,
조금씩 보태 주시면 요긴하게 쓰렵니다.
실 구해요. 실.
한 집에 하나씩 주시면 잘 받겠습니다.
실이오, 실.
아무 실이나 다 받아요.
개나리 노란 실, 하늘 파랗다 파란 실,
고추 빨갛다 빨간 실, 깜깜 밤이다 까만 실.
모두모두 주세요.
온갖 실 다 주세요.
망태기를 짊어진 동물들이 마을을 한 바퀴 돌자 사람들이 기특하다며 실 뭉치를 하나씩 던져주었습니다. 순식간에 망태기가 실 뭉치로 가득 찼어요. 으쓱으쓱 신이 난 동물들은 빠른 걸음으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어요.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뜨개질을 막 끝내고 막 쉬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동물들이 마을에 내려가서 실을 구해왔다니! 더구나 이렇게 많은 실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음……. 할 수 없이 더 짜야겠네.”
할머니는 밥을 한꺼번에 많이 지어먹고 뜨개바늘을 다시 집어 들었어요. 그러곤 계속 뜨개질을 했어요. 동물들이 할머니에게 모여들었어요.
“할머니, 하품 대신 해드릴까요?”
“그래라.”
“할머니, 뒷간에 대신 갔다 올까요?”
“그래라.”
“양치질은요? 대신 해드릴까요?”
“그래라.”
“할머니, 뭐를 좀 먹고 싶죠? 만두 삶아올까요?”
“그래라.”
너구리가 만두를 삶아와 할머니 입에 넣어 주고는 물었어요.
“목 마르죠? 물도 드실래요?”
“그래라.”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그래라.”
“이리 좀 돌아앉으세요. 등도 긁어드릴게요.”
“그래라.”
한 밤이 지나가고 두 밤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여전히 뜨개질을 하고 동물들은 그 옆에서 쿨쿨 잠을 잤어요.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동물들은 드르렁 코고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어요. 그랬더니 주위에 뜨개질 거리가 말끔히 치워져 있고, 할머니가 팔다리를 쭉 뻗은 채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어요. 동물들은 서로 중얼거렸어요.
“이제 할머니가 뜨개질을 다 한 건가?”
“그렇다면 무엇을 짰지?”
“글쎄 말이야. 무언가 다 짜놓았을 텐데.”
영문을 몰라 방안을 살피는데 몸이 슬슬 더워졌어요. 이마에 땀이 흥건히 배었어요. 동물들이 다시 말을 나누었어요.
“왜 이렇게 덥지? 갑자기 한여름이라도 되었나?”
“정말 더워 죽겠다. 밖으로 나가자.”
“그래그래. 여기 있다가는 만두처럼 삶아지겠어.”
동물들은 할머니가 짜놓은 것을 찾다 말고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그러곤 바로 알게 되었죠. 할머니가 무엇을 완성했는지. 그건 바로 스웨터였어요. 왜 방안이 그렇게 더웠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 스웨터를 산골집이 입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파랗고 빨갛고 노랗고 푸른 스웨터였어요. 탐스러운 방울도 달려 있고 크고 작은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스웨터였어요. 깨알 같은 꽃도 무더기로 붙어 있는데, 그건 실 한 오라기도 버리지 않고 다 쓰기 위해 만든 것이었어요.
“집이 스웨터를 입고 있다니, 정말 웃긴다.”
“스웨터가 정말 예쁘다. 개나리 진달래 다 피어 있잖아.”
“그런데 정말 크다. 이렇게 큰 스웨터는 처음 보았어. 할머니는 역시 대단해.”
동물들은 손 큰 할머니의 멋진 작품을 앞에 놓고 짝짝짝 박수를 쳤어요. 이제 추워서 덜덜 떨 일은 없겠죠?
●작가의 말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춥고 긴 것 같습니다. 안팎으로 희망적인 일보다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 원고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설날이면 만두를 엄청 많이 해서 우리의 이웃, 동물과 나누어 먹는 손 큰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과 씩씩한 마음이 요즘에 더욱 그리워집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춥다고 덜덜 떠는 어린 동물들을 위해 아주아주 큰 스웨터를 만들었답니다. 마음이 추울 때 할머니의 스웨터 입은 초가집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어보면 좋겠습니다.
●약력
▲1962년 강원도 함백 태생 ▲1985년 성균관대 불어불문과 졸업 ▲1997년 창비주관 제1회 좋은 어린이책 공모상 입상 ▲‘내 짝꿍 최영대’, ‘아름다운 가치 사전’, ‘토끼와 늑대와 호랑이와 담이와’, ‘시카고에 간 김파리’ 등 발표. ▲현재 경기도 용인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가족과 함께 생활.